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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유턴한 친박 핵심 김재원(2016. 06. 14 13:57)
2016. 06. 14 13:57 정치
ㆍ중국 6개월 연수 가며 “나는 자유다”… 가자마자 정무수석에 임명 6월 8일 아침 여의도 국회에서는 김재원 전 의원이 정무수석에 임명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SNS를 통해 떠돌았다. 김 전 의원은 이미 5월 24일 수많은 기자들에게 중국으로 떠난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대구·경북지역 신문에서는 당내 경선에서 떨어진 김 전 의원이 중국 외교학원 초빙으로 중국으로 간다는 기사를 실었다. 은 김 전 의원이 인천공항에서 손을 들어 보이며 인사하는 사진을 올리고 앞으로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아무것도 생각하는 것이 없다”는 김 전 의원의 말을 전했다. 중국으로 떠난다며 대외적으로 ‘거창하게’ 알린 김 전 의원에 대한 인사설은 뜻밖의 상황으로 받아들여졌다. 김 전 의원은 6월 5일 오전 중국에서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사막에 왔다. 나는 자유다!’라고 적혀 있었다. 6월 7일 오전에는 또 다른 사진에서 ‘중국대륙의 서역 끝 신장위구르자치구 카슈가르(喀什)의 찻집에 왔다. 나는 자유다!’라고 적었다. 임명 후에도 ‘사막’ 페이스북 올려 6월 8일 오전 김 전 의원의 정무수석 임명이 속보로 떴다. 하지만 이날 점심때쯤 김 전 의원의 페이스북에는 사막에서 점프를 하는 또 다른 사진이 올라왔다. 이 옆에는 ‘자유롭게 훨훨’이라는 글귀가 붙었다. 여당 내부에서는 이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다. 중국에 있어서 아직 임명 소식을 못 듣고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린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도 제기됐다. 김 신임 정무수석은 이미 6월 5일 귀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수석은 임명 이후 기자들과 만나 장기 상용비자로 바꾸려고 5일 귀국했다고 이야기했다. 당초 5일 귀국했다가 15일 다시 출국하는 일정이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6월 5일 오후 귀국한 후 이 같은 인사가 급박하게 이뤄진 것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때문에 그는 사전에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6개월간의 연수 일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이 6월 5일 페이스북에 올린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사막에서의 사진. 이 사진 옆에 ‘사막에 왔다. 나는 자유다!’라는 글을 올렸다. / 김재원 정무수석 페이스북 문제는 국내에 와서 정무수석 내정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페이스북에서는 마치 중국 사막에서 ‘자유’를 구가하는 듯한 사진과 글을 올린 점이다. 댓글이 수없이 달리자,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려 했는데… 10리도 못 가고 발병이 났다며 놀리네요’라는 글로 바뀌었다. 여당 내부에서는 이 같은 페이스북 해프닝을 놓고 김 수석의 일면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한 여권 인사는 “혹시 수석 내정이 사전에 외부에 알려질까봐 페이스북에 사막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듯한 글을 올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석 임명이 발표된 이후에도 이런 사진과 글을 올린 것에 대해서는 여당 내부에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른 여권 인사는 “김 수석은 여당에서는 유능한 인물로 손꼽히지만 능력에 비해 진실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하면서 페이스북 해프닝을 꼬집었다. 김 수석은 4월 총선의 당내 경선 당시 지역인 경북 상주시 선거사무실에 ‘대통령의 오른팔’이라는 간판을 크게 내걸었다. ‘진박 중의 진박’으로 불리는 김 수석은 17대 국회 초선으로 입성할 당시에는 친박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치열하게 다툴 때 박 후보 캠프에 들어가면서 원조친박 대열에 끼어들었다. 서울대 법대 졸업-사법시험 합격-검사-변호사-국회의원으로 이어지는 경력 덕분에 박 후보 캠프에서 이 후보 측 네거티브를 막는 해결사로 활약한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 양 캠프 간 미묘하게 오갔던 최태민 목사와 사위인 정윤회씨 의혹도 포함돼 있었다. 김 수석은 친박 가운데 박 대통령의 ‘대리인’ 역할을 맡은 대표적 인물이다. 이 같은 박 대통령의 대리인으로는 김 수석과 유영하 변호사(전 서울 송파을 예비후보)가 손꼽힌다. 김 수석은 18대 총선에서는 친이 측의 미움을 사 공천을 받지 못했다. 공천을 받지 못한 후 바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버렸다. 때문에 친박 무소속의 대열에 끼지 못했다. 19대 총선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가 등장한 후 다시 국회로 복귀했다. 김 수석은 19대 국회에서 원내 수석 부대표로 활동하며 율사 국회의원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당시 이완구 원내대표와 함께 세월호 협상을 이끌었다. 물론 청와대와 여당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당시 원내 업무를 맡았던 한 인사는 “김 수석은 워낙 머리가 잘 돌아가는 분인 데다가 법률뿐만 아니라 국회법을 꿰차고 있어서 야당을 압도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야당에서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해 와도 합의문에서 표현하는 문구를 놓고 협상을 할 때면 김 수석의 즉흥적인 꾀를 따라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략은 탁월하나 진실성 부족’ 평판 김 수석의 탁월한 능력은 박 대통령이 그에게 5월 24일부터 11월 24일까지의 중국 외교학원 연수를 포기하게 하고 청와대에 불러들인 중요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여당 내부에서는 여소야대 국회에서 김 수석만큼 능수능란한 지혜로 대국회 업무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다가 친박과 비박 간 갈등이 상존하는 당내 상황도 김 수석의 ‘꾀’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수석이 청와대에서 중책을 맡으면서 우병우 민정수석과 쌍두마차를 형성하게 됐다. 두 수석은 공교롭게도 서울대 법대 84학번 동기다. 두 수석은 학교 시절이나 검사 시절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고 한다. 김 수석과 친박 실세인 최경환 의원과의 관계도 흥미롭다. 17대 초선 국회의원으로 만난 두 정치인은 2007년 대선 캠프에서 초선 의원으로 함께 활동했다. 게다가 지역 역시 경북으로 자주 접촉할 수밖에 없는 사이다. 최 의원은 연이어 20대 국회까지 4선 의원이 됐지만 김 수석은 한 회기씩 건너뛰며 재선에 그쳤다. 이번 총선에서도 TK(대구·경북)지역 공천에서는 두 정치인이 막후에서 협치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으로도 당·청 간의 관계에 있어서 두 의원 간 협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원내수석부대표(원내수석)에서 정무수석으로 변신한 김 수석이 당내의 친박 간 협치는 이룰지 몰라도 당밖 야당과의 협치는 물음표다. 여기에다 여전히 그의 뒤에 따라다니는 ‘지략은 탁월하나 진실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존재감이 커진 야당에 김 수석은 어쩌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새누리당의 한 인사는 “원내수석 당시는 여대야소였다”면서 “김 수석의 야당에 대한 협상 방식은 ‘그래, 싫으면 관둬라’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이 방식대로라면 협치와는 거리가 멀다고 봐야 하는데, 몸에 밴 협상 방식을 여소야대 국회에서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야당에서도 김 수석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수완이 좋고 유능하지만 권모술수에 능하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에 비유되기도 한다. 국정원 개혁법을 놓고 김 수석(당시 국정원 개혁특위 여당 간사)과 협상을 벌였던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원내수석)은 “김 수석만한 협상가가 없다”고 평가했다. 정 의원은 “야당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지만 정치의 속성이 그렇다는 것을 감안하면 야당에서는 그를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더 유능한 실력자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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