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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왜 태극기부대 끌어안나?(2020. 09. 11 14:31)
2020. 09. 11 14:31 정치
ㆍ“대권도전 염두 둔 정치행보” 주장에 “당 교란용 마타도어” 반박 “부디 여러분이 집회를 미루고 국민과 함께하길 두 손 모아 부탁한다.” 9월 10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김종인 위원장의 발언이다. 여기서 ‘여러분’은 10월 3일 개천절 문재인 대통령 탄핵집회를 추진하는 강경 보수세력, 이른바 태극기부대를 겨냥한 말이다. ‘두 손 모아 부탁한다’는 것은 충심을 이해하니 간청한다는 뜻이다. 끌어안는 모양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9월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 이준헌 기자 그는 이날 회의에서 “스페인독감이 창궐하던 시기에 3·1 만세운동에 나서던 선조들이 생각난다”며 정치하는 입장에서 죄송하다고도 언급했다. 10·3 개천절 집회에 나서는 일부 강경 보수세력을 독립운동에 비유한 것이다. 김 위원장이 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한 것은 5월 27일. 9월 3일이 취임 100일이었다. 9월 3일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강경 보수세력들과의 관계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국민의힘은 국민 모두를 아울러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와 생각을 좀 달리하는 분들도 흡수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나가면 자연적으로 영역이 확대될 것”이라고 답했다. 과거 “집회가 야당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8월 18일), “그런 사람들(집회참석자들)은 상대할 필요가 없다. 무시하면 된다”(8월 27일)와 같은 발언과는 사뭇 다른 뉘앙스다. 달라진 김 위원장 발언의 뉘앙스 기자는 지난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취임의 컨벤션 효과가 왜 보이지 않을까를 짚는 기사를 썼다. ‘컨벤션 효과’가 미비한 것은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미래통합당이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꾼 것은 비대위원장 취임 전날인 9월 2일이었다. TBS와 리얼미터의 9월 첫째 주 정당지지율 조사 집계표를 보면 국민의힘은 31.9%로 전 주인 8월 넷째 주 지지도(30.1%)에 비해 1.8%포인트 늘어났을 뿐이다. 95% 신뢰수준에서 오차범위가 ±2.5%이므로 오차범위 내의 변동이다. 역시 같은 방송사와 함께 치러진 리얼미터의 9월 둘째 주(7~9일) 조사에서도 다시 1.8%포인트 늘어 32.8%를 기록했다. 9월 둘째 주 조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집권당인 민주당 지지율의 눈에 띄는 하락이다. 전 주(37.8%)에서 33.7%로, 4.1%포인트가 하락했다. 국민의힘과 오차범위 내에서 붙었다(전체 조사결과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즉 당명을 바꾼 컨벤션 효과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집권당에 대한 지지층의 이탈이 두드러진 것이다. 정치공학적으로만 계산한다면 김 위원장의 발언은 집권당에서 이탈해 중도로 갈 사람들을 겨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반대다. 왜일까. “간단한 것 아닌가. 노욕이다. 우리끼리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김종인 위원장이 5·18 묘역에 가서 왜 무릎을 꿇었겠는가. 자기가 대선에 나오고 싶으니까.” 과거 핵심당직자를 맡았던 인사의 독설이다. 그는 “이 당의 문제는 지난 총선에서 역대 최악의 패배를 기록해놓고 패배원인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도 없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은 채로 당명 바꾸고 신장개업하는 식으로 흘러왔다는 것”이라며 “정치적 지지율도 자기 당의 내부혁신이나 국민의 지지 없이 다른 당의 잘못으로 반대급부로 올라는 것은 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내부혁신의 상은 과감한 정당개혁과 결과, 구체적인 총선패배에 대한 책임이다. “지난 총선에서 그나마 된 사람은 영남하고 강남 아닌가. 거기에 김종인만 얹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당은 영남기득권에 얼굴마담만 교체해 반사이익을 얻어 그대로 가는 식이다. 구악(舊惡)들이 신악을 탓하며 ‘이때다’ 하고 뭉쳐가는 것이다. 한두 번이어야지 국민도 이제는 안 속을 것이다.” ‘객토’ 수준의 변화 없이는 몰락의 길로 가는 건 불가피하다는 게 이 인사의 진단이다. 광주 서구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는 페이스북에 “혹시 당 이름을 바꾸면 원래 유권자들이 원래 정당이 어디였는지 잊어먹을 것이라고 기대하는가”라고 반문하며 자신의 선거경험을 거론했다. “선거 때 유권자를 만나면 여러 번 바뀐 당 이름을 기억 못 하고 ‘아, 황교안 당?’ 하고 되묻는 분이 많았다. 아마 지금도 국민의힘이라는 당 정체성을 가장 잘 인식시키는 워딩은 ‘아, 그 김종인 당?’일 것이다. 이래서는 이길 수 없다.” 리더십 부재의 대안? “김종인밖에 없다” 주 대표와 통화했다. 당 이름을 영어로 표기하면 People Power Party(PPP)라고 하는데 누가 우스갯소리로 ‘인민권력당’이라고 하더라. “국민의힘이라는 당명에서 국민이라고 했다고 좌파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름도 그렇지만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경제민주화가 김종인 위원장이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정치적 자산인데,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지난 총선 때 나는 경제민주화 조항을 폐지하는 운동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제민주화는 엄밀히 말하면 경제의 정치화다. 정치는 민주화가 시대적 대의지만, 경제는 자유화가 맞다. 경제민주화라는 레토릭 위에서 정부개입과 규제강화, 큰 정부로 가는 길이 열린다. 결국 경제민주화는 좌파에게 어드밴티지를 주는 정책이라고 본다.” 주 대표도 앞서 전 당직자와 마찬가지로 결국 김종인 위원장의 최근 행보는 정치적 사심이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야권보다 앞서 냈다는 기본소득이라는 의제도 마찬가지다. 과연 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을 내걸어 성공한 정치세력이 있는가. 다 포기하고 실패로 결론 난 정책이다. 다른 나라에서 다 실패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려면 그런 설명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 역시 없다.” “김 위원장이 ‘앞으로는 보수·진보와 같은 말도 쓰지 말자’고 말했지만 보수의 강점은 유연함이나 실사구시다. 사실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파정체성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김장수 제3시대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미국에서 선거제도연구로 정치학박사를 받은 그는 컨벤션 효과도 당대표 선출 같은 데서는 언급할 수 있지만 “당명 변경에서 그러한 현상이 안 나타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컨벤션 효과라는 말 자체가 미국 정치 현상을 분석하면서 나온 개념이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과 다르다.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양대 세력의 지배구조가 완결된 나라다. 우리나라처럼 뭣하면 당명을 변경해온 나라가 아니다.” 당명까지 바꿨지만 지지율이 안 오르는 이유는 차기를 담당할 리더십의 부재 때문이라는 것이 김 소장의 설명이다. “한국의 선거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진보나 보수와 같은 진영이 아니라 결국 중도를 누가 차지하냐의 게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의힘에서 현재까지 의미 있는 주자는 김종인이 될 수밖에 없다.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중요한 자리를 맡았을 때 얼마나 내공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점이다.” 그럴까. 현재까지 김 위원장의 발언은 “대권 도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9월 3일 비대위원장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연대 가능성을 묻는 말에 “자연스럽게 우리 당 내부에서 후보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저는 확신한다”고 말했다. 9월 10일 서울신문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대권 도전설과 관련 “국민의힘을 교란하기 위한 소리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앞으로 어떻게 더 구체화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주식의 눈]김종인과 알키비아데스
[정주식의 눈]김종인과 알키비아데스(2020. 06. 26 15:27)
2020. 06. 26 15:27 오피니언
알키비아데스(BC 450~404)는 고대 그리스 세계를 들었다 놨다 했던 정치가였다. 아테네의 영웅 페리클레스의 조카이자 소크라테스의 애제자였던 그는 빛나는 지략으로 전쟁마다 승리를 거뒀다. 자신감이 넘쳤던 그는 “태어나서 나보다 잘난 인간을 보지 못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알키비아데스는 서른한 살에 아테네군을 이끌고 스파르타의 동맹국 시라쿠스 공격에 출정한다. 출정 중 정치적 음모에 휘말린 그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적국 스파르타로 망명한다. 알키비아데스는 망명을 요청하며 스파르타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지금까지 너희에게 끼친 피해보다 더 큰 것을 안겨주겠다.” 1년 뒤 알키비아데스는 약속대로 스파르타 해군을 이끌고 출정해 아테네 해군을 전멸시킨다. 스파르타에 충성을 맹세하고 자신이 원래 스파르타인이었던 것처럼 행동했던 알키비아데스는 그곳에서 또다시 사고를 친 뒤 적국 페르시아로 망명한다. 그리고 이번엔 페르시아군을 이끌고 아테네를 도와 스파르타군을 격파한다. 알키비아데스는 이 승리를 발판으로 아테네에 금의환향했지만, 다음 전투에서 스파르타에 패배하면서 고국에서 다시 추방당한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의 손자다. 그는 해외 유학을 마치고 교수와 관료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뒤 전두환의 민주정의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한다. 이후 민정당 계열 정당에서 세 차례 국회의원을 지내고, 노태우 정부에서 보건사회부 장관과 경제수석을 지낸 그는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된다. 김종인은 2004년 새천년민주당에서 다시 한 번 국회의원을 한다. 2011년에는 다시 한나라당으로 건너가 비상대책위원을 맡아 경제민주화 공약을 이식하고 박근혜 정부 탄생에 기여한다.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는 다시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전국 선거 9년 만의 승리를 안긴다. 그리고 4년 뒤, 김종인은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미래통합당으로 다시 적을 옮겼다. 명문가 출신, 탁월한 정치 감각, 필요에 따라 진영을 넘나드는 기민함, 자신 외에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함까지, 김종인은 알키비아데스를 닮았다. 알키비아데스의 말로는 불운했다. 어느 나라에서도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그는 3국 모두에게 반역자로 몰려 쫓기는 신세가 된다. 결국 그는 숨어 지내던 페르시아의 바닷가 거처에서 암살당하며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한다. 누가 암살의 배후였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누가 암살을 사주했는지 그리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는 누가 죽였어도 이상하지 않은 존재였으니까. 김종인의 정치에도 황혼이 보인다. 그는 알키비아데스와 달리 지금의 당에서 ‘시민권’을 얻을 수 있을까? 4년 전 민주당에서 새누리당을 물리칠 방법을 알려주었던 그는 이제 그 당에서 민주당을 이길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아테네에서는 스파르타를 물리칠 계략을, 스파르타에서는 아테네를 멸망시킬 방법을 알려주었던 알키비아데스를 그리스 역사는 최악의 배신자로 기억한다. 유랑객 김종인의 정치는 어떻게 기억될까?
‘이낙연 대 김종인’ 2차 대전 예고(2020. 06. 05 16:49)
2020. 06. 05 16:49 정치
ㆍ이 의원 당 대표 선출 유력… 중도층 확장 놓고 여·야 대표로 일전 불가피 이낙연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 출마할 뜻을 내비침에 따라 내년 초까지의 여야 정국에서 이 의원이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의 경쟁 상대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의원은 지난 4월 총선에서 민주당 압승의 제1공신이었다. 때문에 8월 전당대회에서도 다른 후보들을 앞서는 ‘1강’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두 정치인은 각 당의 선거를 책임지는 선대위원장으로 일전을 겨뤘다. 만약 이 의원이 당 대표직에 오른다면 ‘이낙연 대 김종인’의 ‘2차 대전’이 올해 하반기 정국을 뜨겁게 달굴 것으로 예측된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우여곡절 끝에 당권을 잡았지만, 이 의원은 우선 8월 전당대회라는 고개를 넘어서야 한다. 당내에서는 이 의원 외에 홍영표·우원식 의원, 김부겸 전 의원이 당권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홍 의원은 친문(親文) 직계인 ‘부엉이모임’에 속해 있다. 친문 중에서도 직계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로, 부엉이모임 멤버는 문재인 대통령과 가깝다. 우 의원은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에 속해 있다. 김 전 의원은 대구·경북 대의원을 중심으로 영남지역의 지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컷오프 3명’의 윤곽에 주목하고 있다. 유력 후보 4명 중 한 후보가 탈락하게 되면 새로운 경쟁 구도로 재편되기 때문이다. 어떤 구도이든 이 의원이 대세를 쥐고 있는 것으로 당내에서 인정하고 있다. 이 의원 측은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내에서 탄탄한 지지 그룹을 만들어 대선 가도에 진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8월 민주당 전당대회 이낙연 독주 이낙연·홍영표·우원식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 네 명의 후보가 모두 출마하게 되면 1강 1중 2약, 또는 1강 2중 1약이 될 수 있다. 1강은 이 의원의 몫이다. 하지만 컷오프 후 세 명의 후보 중 1강 1중 1약이 2강 1약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다른 후보 측은 전당대회 격돌을 기대하고 있다. 이 의원의 대항마로, 한 특정 후보에게 힘이 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2강 사이의 승부를 예측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다른 후보 측의 기대다. 이 의원의 독주 체제에 대한 견제심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구·경북의 한 민주당 인사는 “부산·경남·울산의 영남권 대의원들이 김부겸 전 의원을 응원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이낙연 의원과 1 대 1로 맞선다면 김 전 의원의 경쟁력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벌써 각 후보와 중진급 인사의 여러 만남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어떤 후보가 어떤 중진과 만났다는 이야기다. 이런 만남의 내막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 의원의 독주 체제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이라는 점이다. 이런 움직임에는 과연 ‘7개월짜리 대표 체제가 온당하냐’는 불만도 깔려 있다. 유력 대권주자로 꼽히는 이 의원이 8월 전당대회에서 1위를 하게 되면 내년 3월 초까지 대표직을 맡을 수 있다. 당권·대권 분리 조항 때문에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1년 전에 당권을 내려놔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후보 측뿐만 아니라 여당의 다른 대권 주자 측에서도 ‘7개월 대표 체제’에 대한 불만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7개월짜리 대표를 위해 두 번의 전당대회를 연다는 것에 대해 당내에서 의구심이 많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될 당시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구호가 나왔다. 이 의원이 전당대회에 출마하면 당내에서 ‘어대이(어차피 대표는 이낙연)’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모든 흐름은 이 의원에게 유리한 국면이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대부분 이 의원이 출마하면 전당대회에서 1등을 할 것으로 보지만 과연 2등을 누가 할 것이냐도 관심사”라고 말했다. 대세에 따라 이 의원이 당 대표를 맡게 된다면, 다른 후보들에게는 이번 8월 전당대회보다 7개월 후 전당대회가 더 중요하게 된다. 2등도 큰 의미가 될 수가 있다는 점에서 8월 전당대회는 더 치열한 국면을 예상해 볼 수 있다. 두 정치인 ‘태도 보수, 생각 진보’ 공통점 이 의원이 당 대표에 선출될 경우 ‘이낙연 대 김종인’의 ‘2차 대전’ 역시 핫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다. 두 정치인이 민주당과 통합당, 양당의 얼굴로 나설 경우 전통적 지지층보다 중도층 확장을 위해 광장으로 나서는 형국이 된다. 두 정치인은 지난 4월 총선의 ‘1차 대전’에서 서로 중도층 공략에 나섰지만, 승리는 이낙연 의원에게 돌아갔다. 중도층은 민주당에 훨씬 더 많은 표를 던졌다. 2022년 대선에서도 승리는 중도층 표심에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두 정치인은 ‘태도 보수, 생각 진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면서 “이 의원의 중도 확장성은 ‘태도 보수’에서 나오고, 김 비대위원장의 중도 확장성은 ‘생각 진보’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용호상박”이라고 예상했다. ‘태도 보수, 생각 진보’는 이낙연 의원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정치적 노선이다. 김상일 시사평론가는 “두 정치인이 두 정당의 얼굴로 전면에 등장한다면 중도층에게는 흡족한 시대가 온다고 볼 수 있다”면서 “각 정당의 열렬한 지지자가 아니라 일반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정치를 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두 정치인이 중도층의 확장을 위해 똑같이 나선다고 할지라도 반응이 같을 수는 없다. 엄경영 소장은 “이낙연 의원은 상대적으로 젊고 미래를 대표하는 데 비해,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상대적으로 구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비쳐지기 때문에 이미지나 호감도 면에서 이 의원이 앞설 것”이라고 말했다. 두 정치인이 중간지대로 나설 경우 약점도 있다. 중도층 확장을 위해 나서게 되면, 자연스럽게 전통적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상일 평론가는 “두 정치인은 모두 당내 기반이 약하다”며 “이를 당 외부의 여론 지지로 극복해야 하는데, 어떻게 극복해내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낙연 의원은 우선 친문 지지자들이나 진보 진영의 지지도 함께 이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의원은 윤미향 의원 관련 의혹이나 종합부동산세 완화 문제 등에서 이해찬 대표 체제와는 다소 결이 다른 태도를 보였다. 지지층이나 진보 진영의 생각보다 중도층의 생각에 더 가까운 입장이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역시 “진보보다 앞선 진취적 정당이 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통합당 내 보수 성향 인사의 반발을 넘어서야 한다. 엄경영 소장은 “통합당이 바뀌려면 단순히 정책뿐 아니라 범보수의 이념 좌표·가치·비전 등에 대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김 비대위원장이 이를 능숙하게 해낼 수 있을지는 당분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장이 5월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6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총선 지휘관 ‘이낙연 대 김종인(2020. 04. 10 15:08)
2020. 04. 10 15:08 정치
ㆍ‘이해찬 대 황교안’ 구도 밀어내고 본격 선거운동 돌입하면서 존재감 커져 “제가 여기에 더 이상 안 있어도 되죠?” 한때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의 선거 유세에서 한 말이다. 서둘러 전국 지원 유세를 떠나야 하는 만큼 지역구에는 얼굴만 비치고 지역 주민의 양해를 구하는 모습이었다. 이 이야기는 미래통합당 인사들이 선거 때마다 ‘지휘관’의 중요성을 거론하며 꺼내는 회고담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왼쪽)이 4월 8일 경남 창원 진해경화시장 앞에서 창원시 진해구 황기철 후보를 지원 유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통합당에서는 ‘선거 지휘관’으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을 내세웠다. 2012년 19대 총선과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을 오가며 역전승을 이끌어냈던 ‘김종인 매직’을 기대한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차기 대권주자 1위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이 전면에 나섰다. 이 위원장은 예전의 박 전 대통령처럼 자신의 지역구(서울 종로)뿐만 아니라 전국 지원 유세에도 뛰어다니고 있다. 본격적인 선거 운동에 들어가면서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과 김종인 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은 양당 선거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민주당에서는 이해찬 대표가 건강이 나빠져 한 차례 입원한 후 이낙연 위원장의 역할이 크게 늘어났다. 통합당은 김 위원장이 전면에 나서고 황교안 대표는 서울 종로 선거에 치중하고 있다. 이해찬 대표 대 황교안 대표의 대결로 가던 총선 구도가 4월 들어 이낙연 위원장 대 김종인 위원장으로 바뀐 것이다. 황 대표 잦은 말실수로 지휘 능력 의문 지난 4월 2일 공식 선거 운동이 시작되면서 먼저 기선을 제압하고 나선 것은 통합당이었다. 김종인 위원장이 수도권 지역에 지원 유세를 나서면서 바람몰이를 시도했다. 여기에 유승민 의원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공천 논란으로 한때 주춤했던 통합당이 기세를 올리던 시점이었다. 이른바 ‘김종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하지만 황 대표의 말실수가 연이어 터지면서 상승 기세는 금방 가라앉았다. 황 대표는 ‘교회 내 코로나19 감염 거의 없음’, ‘n번방 호기심’, ‘키 작은 사람’ 등의 발언 실수를 했다. 통합당의 한 인사는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황 대표의 선거지휘 능력이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서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현장에서 뛰는 당 후보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지상욱 서울 중·성동을 후보는 4월 6일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에서 열린 당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우리가 열심히 새벽부터 뛰더라도 당 지도부에서 적절치 않은 발언이 나온다면 저희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 대표의 잇따른 말실수 이후 김 위원장이 전국 선거를 맡고, 황 대표의 활동 영역은 서울 종로 지역구로 좁혀졌다. 하지만 김대호 서울 관악갑 후보와 차명진 경기 부천병 후보의 막말 파문이 연이어 터지면서 통합당은 곤혹스러운 국면에 처했다. 당 대표와 후보의 잇따른 구설로 ‘김종인 매직’은 사그라들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당내 이견도 노출됐다. 황 대표가 ‘전 국민에 50만원 재난지원금 지급’을 제안하자, 유승민 의원이 ‘악성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했다. 2012년 새누리당에서 김종인 위원장과 비대위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상돈 민생당 의원(비례)은 “지금 미래통합당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김 위원장이 평소에 추구하던 경제민주화와 스토리텔링이 안 맞아들어간다”면서 “김 위원장이 걸어온 길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유권자들에게) 설득력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그동안 통합당이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내세우면서 반대에만 몰두해왔기 때문에 김 위원장을 영입해 중도층의 확장을 노린다는 것이 오히려 보수층 결집에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왼쪽)이 4월 9일 서울 강북구 한천로에서 열린 강북갑 정양석 후보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종인 매직’은 무엇보다 말실수 앞에서 위력을 잃고 있다. 이 의원은 “김 위원장이 열심히 노력하지만 황 대표의 말실수 때문에 지금까지 ‘김종인 효과’는 백약이 무효”라고 말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통합당으로서는 격차를 줄이고 보수층을 결집해야 하는데, 연이은 말실수로 판세를 뒤집을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보수표가 통합당 지지표보다 더 많기 때문에 지금은 ‘샤이 보수’가 아니라 ‘샤이 미래통합당’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통합당은 보수표도 다 주워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일원 대표는 “통합당의 정권 심판론과 민주당의 코로나 극복론이 맞붙은 상황에서 정권 심판론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는 국면”이라면서 “중도층 외연 확장이라는 ‘김종인 효과’도 각 당 지지 흐름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의 존재감은 더욱 커졌다. 이 위원장은 경기와 강원·부산·경남 등지의 지원 유세에 나섰다. 당내에서는 이 위원장에 대한 지원 유세 요청이 이어졌다. 종로 지역구의 비교적 안정적인 판세도 이 위원장에게는 지원 유세를 마음 놓고 떠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통합당의 말실수가 잇따르면서 민주당으로서는 몇몇 실수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국면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주당은 지역구 130석이라는 목표만 밝힐 뿐 투표일까지 ‘안전 모드’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당에서 ‘궂은일’이라고 할 수 있는 비례정당 문제를 이해찬 대표가 전적으로 떠맡았다”면서 “대규모 지원 유세 같은 경우 이 대표가 건강 때문에 전면에 나서기도 힘들지만, 사실상 차기 대권주자인 이 위원장의 자리를 깔아준 것”이라고 말했다. 궂은일은 이 대표가 맡고, 자리가 빛나는 일은 이 위원장이 맡은 역할론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이낙연 지원 유세 요청 줄이어 정치권에서는 총선 승패에서 차기 대권주자의 역할론에 주목하고 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차기 대권주자였던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선거를 이끌어 승리했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역시 차기 대권주자인 문재인 민주당 대표가 있었기에 승리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총선에서는 결국 차기 대권주자인 이낙연 위원장과 황교안 대표의 기싸움이 총선의 승패를 가를 수 있다”면서 “이 위원장의 전면 등장으로 호남에서 민주당이 선전하게 됐고, 조국 전 장관 이슈가 뒤로 물러나고, 중도층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양당의 구심력 싸움에 민주당에서는 이 위원장이 전면에 나서게 된 반면, 통합당에서는 황 대표가 뒤로 빠지는 국면이 됐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번 선거는 사실상 ‘이낙연 선거’가 됐다”고 말했다. 김종인 위원장과 황 대표의 역할 분담이 유권자들에게 잘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평도 나온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김종인 위원장은 메시지에 주력하는 정치인이지 대권후보가 아니다”라면서 “게다가 보수우파의 신망 있는 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선거용’이란 이미지를 지우기 힘들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황 대표가 본인 선거도 처음이지만 선거지휘도 처음이기 때문에 초기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황 대표가 공천도 마찬가지지만 선거 역시 모든 것을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홍형식 소장은 “황 대표가 김종인 위원장을 데리고 온 것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심판이라는 이미지만 쓰려고 하는 것이지, 김 위원장을 차기 대권주자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 소장은 “이번 총선의 전체 승부는 ‘이낙연 위원장 대 김종인 위원장’의 대결이 아니라 결국 차기 대권주자인 ‘이낙연 위원장 대 황교안 대표’의 대결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희복의 인물탐구]더민주 비대위 대표 김종인…전매특허 하나로 5선 신기록에 도전
[원희복의 인물탐구]더민주 비대위 대표 김종인…전매특허 하나로 5선 신기록에 도전(2016. 03. 29 15:24)
2016. 03. 29 15:24 정치
흔히 뻔한 3대 거짓말로 노처녀가 ‘시집 가기 싫다’는 말, 노인이 ‘늙으면 죽어야지’ 하는 말, 장사꾼이 ‘밑지고 파는 것’이라는 말을 든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면, 정치인이 ‘금배지 싫다’는 말일 것이다. 인간의 권력욕은 원초적이다. 더구나 한 번 ‘권력의 맛’을 봤던 사람이 그것을 포기하기란 더욱 어렵다. 흔히 국회의원이 좋은 점을 한마디로 ‘책임은 없고 권한만 많아서’라고 말한다. 대학교 총장을 하다가, 검찰총장을 하다가, 대기업체 사장을 하다가, 심지어 국정원장, 대법관을 하다가 국회의원을 준다면 만사 제치고 달려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과문하지만 기자는 주는 금배지를 거절하거나 포기하는 정치인을 한 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있다. 자중지란에 빠진 제1야당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삼고초려해 모신 인물이다. 그는 처음 수차례 “비례대표에 관심 없다”고 말했지만 스스로 남자 1번에 ‘셀프 공천’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금배지에 관심이 없다는 정치인의 말은 ‘새빨간 거짓’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시킨 것이다. 그의 셀프 공천도 논란이지만, 이번에 당선되면 비례(전국구)로만 5선을 하는 헌정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다. 파란만장한 우리 정치판에서 ‘낙점’으로만 5선을 한다는 것은 거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그는 연구대상이다. / 서성일 기자 할아버지 김병로의 비서로 정치계 입문 김종인은 해방 후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의 손자다. 그는 1940년 가인의 둘째아들인 김재열의 2녀1남 중 외아들이다. 그의 부친은 보성전문을 나와 일본 규슈(九州)대를 졸업하고 일본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뒤 변호사 개업을 준비하다 31세로 요절했다.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할아버지인 가인 집에서 성장했다. 중앙고와 한국외국어대 독어과를 나와 당시 정치에 뛰어든 할아버지 비서를 지냈다. 대법원장까지 마친 가인은 74세인 1960년 7·29 총선에서 고향 전북 순창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5·16 쿠데타가 나고 민정이양 시기인 1963년 가인은 야당 민정당(民政黨) 창당 발기 취지문을 쓰는 등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가인의 비서였던 그도 적극 참여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정치물을 먹은 것은 50년이 훨씬 넘었다. 그러나 1964년 1월 ‘실제적 지주’인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뮌스터대학에서 ‘개발도상국에 있어서 분배 및 재분배 정책의 기능성과 한계’라는 논문으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종인은 1973년 당시 서강대 상경대 이승윤 학장(이후 경제부총리 역임)의 천거로 서강대 재정학 교수가 됐다. 당시 서강대 상경대는 남덕우 전 총리, 이승윤 경제부총리, 김만재 한국개발연구원(KDI) 초대원장 등이 이른바 ‘서강학파’를 형성하고 있었다. 서강학파는 학문적 학파가 아니라 ‘선 성장 후 분배, 재벌 육성을 중심으로 한 압축성장’으로 상징되는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세력이었다. 김종인 역시 서강학파의 일원답게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정부는 1970년대 중반 경제개발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부가가치세 도입을 검토했다. 이를 실무적으로 추진한 사람이 당시 경제기획원 김재익 기획국장이다. 그는 재무부 조세제도 심의의원으로 김재익의 자문역을 하면서 가까워졌다. 그보다 두 살 위인 김재익은 당시 금융계 집안의 큰딸을 중매할 정도로 가까웠다. 부가가치세는 1976년 입법되고 1977년부터 시행됐다. 10·26 이후 등장한 신군부는 초법적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만들었다. 이 국보위 경제과학위원장에 바로 김재익이 임명됐다. 김종인도 이 국보위 경과위 재무분과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는 국보위 참여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폐지한다고 협조해달라고 요청이 와서, 이것만큼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국보위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보위 경과위원장이 부가세 도입 실무책임자인 김재익이라는 점에서 앞뒤가 맞질 않는다. 또 ‘마지못해 갔다’는 그의 주장은 당시 증언과 정황으로 보면 사실과 다르다. 원래 국보위 경과위원장은 서울대 조순 교수를 염두에 뒀다. 조 교수는 육사 교관시절 전두환·노태우 등 육사 11기를 가르친 인연이 있다. 전두환·노태우는 스승인 조순을 국보위 경과위원장으로 초빙했다. 그러나 조순은 국보위 참여를 거부했다. 신군부의 ‘삼고초려’에도 거부하다 보니 국장급인 김재익이 일약 위원장으로 발탁된 것이다.( 1993년 5월 2일) 이는 새누리당 김용갑 상임고문의 주장과도 상통한다. 김용갑은 “당시 국보위 참여를 사양한 사람이 특별히 없었다고 한다”면서 “경제부총리를 지낸 조순 당시 서울대 교수의 경우는 사양을 했다고 나중에 들었다”라고 주장했다. 김용갑은 또 “국보위는 부가가치세 폐지를 추진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2016년 1월 31일) 국보위 참여 “마지못해 갔다” 사실일까 김재익은 전두환 정권에서 경제수석으로 승승장구했고(그러나 1983년 아웅산 폭발 사건 때 순직했다), 김종인도 덩달아 전국구 금배지를 달았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김종인이 신군부의 민정당 창당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사실이다. 남재희 증언에 따르면 그는 권정달 보안사 정보처장이 주도하는 창당작업에 가담해 정강정책을 만들었다. 언론인 출신으로 민정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남재희는 “독일에서 유학했던 김종인씨에 의해 주로 만들어진 정강정책은 추상적·이론적 내용이 담긴 서독 정당 스타일이었다. ‘정당의 정강정책은 형식적 구호 나열이 아니라 정치철학서가 돼야 한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었다. 김씨 등이 모처럼 뜻을 펴겠다고 만든 작품이었지만 보안사 장교인 권씨의 눈에는 학자들의 공리공론에 불과했다. … 권정달씨에 의해 일언지하 휴지가 됐다”고 증언했다.(, 동아일보 1993년 10월 3일)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3월 21일 당무를 거부하고 서울 구기동 자택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얄궂은 운명이라면 운명인 것은 1963년 할아버지가 민정당(民政黨) 발기 취지문을 썼고, 자신은 17년 후 이름이 같은(한자만 다른) 민정당(民正黨) 정강정책을 처음 기초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민정당은 군부정권에 맞서는 야당인 반면, 손자가 참여한 민정당은 광주의 피를 통해 만들어지는 군부정권을 합리화하는 여당이라는 점이다. 신군부가 만드는 비밀 창당작업에 참여해 의욕적으로 정강정책을 기초하던 사람이 ‘마지못해 참여했다’고 한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가 창당된 민정당 전국구(비례대표) 금배지를 단 것도 이 덕분일 것이다. 그의 정치운과 관운 대부분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의해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태우는 “당에서 크고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자연스럽게 모이는 팀이 있었다. 이른바 ‘기획팀’이었다. 최병렬, 현홍주, 김학준, 김종인, 강용식, 임인규 등이 중심이 되고 상황에 따라 당직자들이 합류했다. 이들은 갖가지 사항들에 대해 내게 조언해 주었다”고 기록했다.(, 2011) 전국구로 두 번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지역구 서울 관악을 지역에 출마했다. 교수 출신의 전국구 의원은 원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보통인데 그는 지역구를 택했다. 이는 금배지의 매력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지역구에 현직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는 등 ‘전폭적’으로 지원했지만 신예 이해찬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김 대표가 이해찬을 낙천시킨 것은 이런 과거의 악연이 작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는 곧장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복귀했고, 1992년 경제수석이 됐다. 그는 서강학파의 일원답게 친재벌 압축성장론자다. 그러나 그는 1987년 현재의 헌법 개정작업에 참여하면서 헌법 119조 2항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을 신설했다. 이는 서강학파 입장에서는 일종의 ‘이단’이다. 하지만 이는 당시 시대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던 측면이 있다. 당시 부동산 광풍이 불고, 집값 폭등에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재벌의 과도한 부동산 투기가 문제가 됐다. 이에 위기감을 가진 정부는 자연히 재벌을 억제하는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다. 그가 30대 재벌 부동산 4800만평을 매각하는 5·8조치를 단행한 것도 그런 배경이다. 햇볕이 있으면 음지도 있다. 그는 1991년 권력형 비리사건인 수서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1993년 5월 동화은행으로부터 2억1000만원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뇌물)로 구속됐다. 당시 김종인은 “가문의 명예를 더렵혔다”고 자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3년 7월 23일) 그는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1994년 1월 28일 2심에서 ‘자수 감경’돼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으로 풀려났다. 이후 1995년 10월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다시 기소돼 징역 5년을 구형받았다. 이후 김종인은 사실상 정계를 떠났고,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러나 10년 후인 2004년 그는 제17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네 번째 비례대표 금배지를 단 것이다. 이후 그의 정치적 행보는 극과 극을 넘나드는 광폭의 연속이었다. 2011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박근혜 대동령 당선에 기여했다. 그러나 2016년 1월에는 다시 180도 전환,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으로 변신했다. 뇌물혐의로 실형, DJ정부에서 부활 그의 정치적 이력이나 평소 지론, 신념이나 의식은 야당인 더민주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네 번의 국회의원을 모두 여당에서 했다. 경제민주화를 제외한 다른 정책에서는 더민주 당론보다 훨씬 보수적이다. 단지 더민주는 경제민주화라는 일종의 ‘전매특허’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를 영입했을 것이다. 사실 정당은 ‘이념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기 위한 모임’이라는 기본적 개념에 비추어 극과 극을 넘나드는 그에게 명확한 정치적 이념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특히 줄곧 여당만 한 그는 야당이 아스팔트 위에서 최루탄을 마시며, 보안사 지하실에서 알몸으로 고문을 당하며 만든 정당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당무를 거부하고 자신의 사무실에서 ‘고민이 많겠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고민이 많아? 내가 왜 고민을 해? 나는 고민 절대로 안 해. 고민을 안 하고 오히려 맘이 편해”라고 말했다. 이 말은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우선 선공후사 정신의 부재다. 비대위원장의 당무 거부가 가져올 파장, 특히 선거를 불과 20여일 남긴 시점에서 득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감안하지 않았다. 이는 공천 탈락에도 불구하고 선거지원에 나선 나이 어린 정청래 의원과 크게 대비된다. 그는 자신의 공천안이 당원들과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자 설득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는 교수시절부터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이 셌다. 이는 바닥인 유권자들로부터 선택받지 않고 위로부터 선택된 사람이 가지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좀처럼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 것, 당무를 거부하는 ‘노여움’에서 전형적인 우리 ‘노인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보통 노여움과 고집은 나이가 들수록 더 세진다. 그의 실제적 지주인 가인 김병로의 비문에는 “무릇, 시대의 탁류 앞에서는 세 종류의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니, 하나는 거기에 굴종하는 사람이요, 또 하나는 피하며 숨는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그 탁류와 더불어 마주 싸우며 끝까지 지조를 급히지 않는 사람으로…”라며 가인이 마지막 세 번째 인물이라고 추모하고 있다.(김진배, 1983) 김종인은 과연 탁류의 정치에서 끝까지 지조를 굽히지 않고 싸웠을까. 이제 말 많던 공천도 마무리됐고, 각 당은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이번 4·13 총선에서 국민들은 김종인의 더민주에 어떤 평가를 내릴까.
원희복의 인물탐구
[유창선의 눈]‘차르 김종인’의 리더십
[유창선의 눈]‘차르 김종인’의 리더십(2016. 03. 15 10:30)
2016. 03. 15 10:30 오피니언
러시아 군주를 가리키는 ‘차르’(tsar)라는 호칭을 처음 사용한 이는 1533년에 즉위한 이반 4세였다. 그는 재위하면서 주변 지역들을 차례로 정복해 영토를 확장하며 러시아를 동유럽 강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을 폈던 그는 ‘잔혹한 이반’이라 불릴 정도로 공포정치를 행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반 4세뿐 아니라 러시아의 모든 차르들은 전제군주였기 때문에 그 누구도 비판조차 할 수 없는 절대권력자였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도 ‘차르’라고 불리는 인물이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에게 당내에서, 그리고 언론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이반 4세처럼 공포정치를 하는 것이야 아니지만, 그래도 야당에서는 근래에 볼 수 없던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대표라는 의미다. 필리버스터를 계속해야 한다던 원내대표에게 “선거 망치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고 야단쳐서 끝내 중단시키는가 하면, 더민주에서는 성역과도 같았던 시스템 공천도 원점으로 돌리며 자신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대북문제, 노동문제에 관해서도 기존의 정체성에 구애받지 않는 발언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당 바깥을 향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야권통합을 제안해 놓고는 상대 당 대표를 향해 “정치를 잘못 배워서 그렇다. 나라면 그 자리에서 박살냈을 것”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막말을 이유로 현역 의원은 물갈이하면서 정작 자신은 다른 사람들을 아랫사람 대하듯이 욕보인다. 그런데도 정작 더민주 내부에서는 김종인 대표의 언행에 대해 별다른 이의 제기가 없다. 공천 칼자루를 쥔 사람 앞에서 입을 닫아버린 현실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위기에 처했던 더민주를 구해낸 주인공이 김종인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구원투수로 등장했기에 더민주가 급속히 안정을 찾고 총선에서 여당과 승부를 겨뤄볼 만한 지점까지 왔다는 데는 특별한 이견들이 없다. 그는 오랜 정치적 경험에서 나오는 능수능란한 정치기법으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끌고 가는 능력을 보였다. 그러다 보니 야당과는 어울리지 않을 가장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이 오히려 지지층의 환호를 받는 진풍경이 빚어지고 있다. 하지만 ‘차르’ 정치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사이, 또 다른 폐해가 생겨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갑자기 등장한, 그것도 선출되지 않은 대표 한 사람이 당원들의 생각조차 묻지 않고 60년 역사를 가진 제1야당의 정체성을 일거에 바꾸는 것이 정상적인 장면일 수는 없다. 오랜 논의 끝에 마련된 시스템 공천안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고 다시 대표 한 사람에게 칼자루가 쥐어지는 상황도 당연한 것일 수는 없다. 지금까지 봤던 ‘차르 김종인’의 통치방식은 정당민주주의와는 양립하기 어렵다. 그래서 김종인 리더십은 과거형 리더십이지 미래로 가는 리더십일 수 없다. 경제개발을 이루었다는 이유로 박정희의 개발독재 리더십을 미화할 수 없듯이, 더민주를 구해내는 실적을 올렸다고 해서 김종인 리더십을 그리 칭송할 일은 아니다. 김종인 리더십은 어디까지나 선거라는 특수상황에서만 인정될 수 있는 한시적 방식이지, 우리 정당들이 오래 가지고 갈 가치가 있는 대안은 아니다. 더민주는 ‘안정’을 얻는 대신 ‘가치’를 잃었다. 한때 위기에 처했던 더민주에 김종인 대표는 극약인 셈이다. 극약은 부작용을 감수하며 투약한다. 하지만 극약은 자주, 그리고 오래 쓰면 사람의 건강을 해쳐 위험하게 만든다. 김종인 대표가 총선 이후의 상황에 대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역할이 오래가면 제1야당은 활력을 잃은 죽은 정당이 될 수밖에 없다. 혼란이 지겹다고 독재를 그리워해서는 안 될 일이다.
금주의 칼럼
김종인 ‘야권 통합 카드’ 일파만파(2016. 03. 08 14:24)
2016. 03. 08 14:24 정치
ㆍ더민주 내부 강경파 목소리 사그라져… 국민의당 지도부는 내분 하루 만이다. 192시간이나 달궜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정국이 끝나자마자 하루 사이에 상황은 급반전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대표가 꺼낸 ‘통합 카드’가 국면 대전환을 가져왔다. 김 대표는 3월 2일 “국민 염원에 부합하고, 4·13 총선의 승리를 위해서도 단합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야권에 다시 한 번 통합에 동참하자고 하는 제의를 드린다”고 말했다. ‘연대’가 아닌 ‘통합’이라는 카드를 던진 것이다. 김 대표는 다음날 ‘통합 아닌 연대’ 제안에 대해 “연대라는 것은 당대 당 연대 이런 것보다도 선거가 지역별로 표차가 뚜렷하게 나타날 때 그 과정에서 후보자 간에 필요성에 따라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면서 “현재로서는 연대를 당 차원에서 이야기할 시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필리버스터 중단에 대한 더민주 내부의 반발이 고조되는 가운데 던진 ‘야권 통합 카드’는 효과적이었다. 덕분에 더민주 내부의 강경파 목소리는 사그라졌다. 야권통합의 대상인 국민의당의 지도부는 난데없는 협상 제의에 찬반 논란으로 내분이 생겼다.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즉각 반대했지만, 천정배 공동대표와 김한길 선대위원장은 논의해볼 만하다는 쪽으로 갈라섰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김 대표를 보면 하나의 카드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장의 카드를 한꺼번에 던지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상대방이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여러 장의 카드를 던지기 때문에 상대하는 쪽에서 대응 카드를 꺼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이 카드를 오래전부터 준비했다가 가장 적절한 시점에 던지기 때문에 상대방이 마땅한 수를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와 위원들이 3월 2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 대표는 모두발언을 통해 야권의 통합을 제의했다. / 강윤중 기자 최재천 의원 중간 가교 역할 가능성 ‘야권 통합 카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를 탈당했으나 국민의당에 합류하지 않고 중간지대에 남은 최재천 의원은 2월 중순 무렵 “3월이면 야권 통합과정에서 뭔가 할 일이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미 야권 통합을 내다보고 한 달 전에 김 대표가 최 의원에게 뭔가 역할을 주문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김 대표가 ‘야권 통합 카드’를 던진 후에야 비로소 최 의원이 김 대표와 국민의당 현역 의원들 사이에 중간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당시 최 의원은 “김 대표와는 오래전부터 각별한 인연이 있다”면서 김 대표가 더민주의 비대위원장을 맡고 난 뒤에도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더민주 이종걸 원내대표는 물론 국민의당 의원들과도 자주 어울려 술자리를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인 최 의원은 열린우리당 당시에는 천정배계로,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김한길계로 분류됐다. 현재 천 의원은 국민의당에서 공동대표이고, 김 의원은 선대위원장인 만큼 양당 지도부가 최 의원과 각별한 관계를 갖고 있는 셈이 된다. 때문에 통합 카드를 놓고 최 의원의 행보에 정치권은 주목하고 있다. 최 의원은 와의 통화에서 “더민주는 안 대표가 탈당 전 요구한 계파 패권주의 타파와 낡은 진보와의 결별 의지를 강조하고, 국민의당도 불필요한 명분이나 소아병에서 벗어나 과감하고 실용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야권 통합 카드는 국민의당뿐만 아니라 더민주의 내부에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공천 결정을 앞두고 있는 만큼 친노 인사와 운동권 출신 강경파 인사에 칼바람이 몰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에서 통합을 반대하는 안철수 대표 측에서는 더민주에 여전히 친노 패권주의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민주를 탈당한 국민의당의 한 관계자는 “한두 명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고 해서 패권이 정리된 것은 아니다”라면서 “민주당이 그렇게 변할 수 있었으면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렀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같은 우려를 불식하려는 듯 더민주의 김종인 대표는 3월 4일 “더민주의 패권정치를 씻어내려고 노력 중이고, 앞으로도 패권정치가 부활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친노의 입장은 김 대표의 입장과 다르다. 친노 측 한 인사는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거론되는 친노 패권주의 청산에 대해 “친노 패권주의는 원래부터 실체가 없었다”면서 “역설적이지만 그런 패권이 있어서 한 번이라도 써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친노 패권주의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친노 강경파에 대한 공천 탈락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안심번호를 통해 경선이 이뤄지기 때문에 특정 계파에 대한 물갈이 공천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야권 일각에서는 야권 통합 협상이 무르익는다면 양당의 협상과정에서 향후 친노 측에 불리한 당내 구도가 전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재인 대표 당시 비주류에 속했던 더민주의 한 의원은 “국민의당 의원들이 패권문제에 대해 덜 청산됐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남은 문제는 통합 후 패권을 청산하면서 해결하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3월 4일 의원총회에서 통합 없이 독자행보한다는 것으로 뜻을 모았다. 야권 통합이 쉽게 이뤄질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우선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를 비롯한 안철수계 인사들의 반발이 만만찮았다. 안철수 직계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나갈 사람은 나가면 된다”면서 “지금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안 상임대표가 현역 의원을 영입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면서 “갈 사람은 가고 오히려 단출해지면 지지자들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측 “친노 패권주의 여전하다” 국민의당의 수도권 예비후보들 역시 야권 통합 제의에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3월 4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당 지도부는 야권 통합 제안을 원천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 금천에 출마하는 정두환 정치혁신특위 상임위원은 “김종인 대표의 통합 카드가 국민의당을 흔드는 효과가 있었지만 ‘안철수 상임대표만 빼고 더민주로 다시 오라’는 발언은 김 대표의 실수”라면서 “이제는 우리가 상황을 결정짓도록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상임위원은 “통합도 반대하지만 연대도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지지율 저하와 함께 더민주 김종인 대표의 야권 통합 카드로 곤궁에 처했다. 국민의당 정두환 상임위원은 “중심이 흔들리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진다”고 경계심을 나타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김 대표의 통합 카드는 결과적으로 진정성 측면보다는 국민의당을 위축시키는 전략적 측면으로 작용됐다”면서 “국민의당을 통합 또는 내부 갈등에만 묶어둠으로써 선거캠페인을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윤 여론분석센터장은 “더불어민주당이 선거 때마다 내부 혼란과 계파 갈등으로 시달렸는데, 이번에는 영구적이든 일시적이든 내부를 정비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더민주가 유례없이 좋은 국면을 맞이하고 있어 ‘김종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표지이야기]대선캠프 경제브레인 김종인·이정우·장하성은 ‘경제민주화 스타일’(2012. 10. 09 14:46)
2012. 10. 09 14:46 정치
“경제민주화를 통해 경제적 약자들의 꿈이 다시 샘솟게 하겠다.”(박근혜) “약자와 강자가 공존 상생하는 경제질서를 만드는 것이 경제민주화”(문재인)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성장동력과 결합하는 경제혁신을 만들어야 한다.”(안철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출마선언에서 공통적으로 들어간 화두는 ‘경제민주화’다. 경제민주화는 이들 유력 세 후보가 강력하게 내세우고 있는 공약이다. (왼쪽)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 연합뉴스 (가운데)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 | 김세구 기자 (오른쪽) 장하성 고려대 교수 | 연합뉴스 각 후보의 대선 캠프에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좌장도 모두 경제민주화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에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있다. 김 위원장은 ‘경제민주화 조항’이라고 불리는 헌법 제119조 2항을 만든 당사자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 캠프의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은 참여정부에서 정책기획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토지공개념제’ 도입을 주장하는 등 개혁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 캠프의 경제정책 총괄역은 장하성 고려대 교수다. 그는 소액주주운동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해온 대표적 재벌개혁론자다. 경제민주화 구체적 정책은 아직 없어 경제정책 좌장 3인방의 이력은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적 과제에 부합한다. 그러나 이들이 이끌고 있는 대선후보 캠프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경제민주화 정책을 내놓은 것이 없다. 각 후보의 지지율이 혼전을 거듭하면서 서로 눈치보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캠프가 구체적인 정책과 이를 실현할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아 경제민주화 논의는 여전히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은 “각 대선후보들이 같은 얘기를 서로 반복해서 주고받다 보니 ‘가짜와 진짜 논쟁’이나 ‘진정성 논쟁’ 따위로 흘러가고 있다”며 “특히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부분에서 그런 경향이 심하다”고 말했다. 특히 18대 대선이 박빙의 승부가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각 캠프의 관심은 캐스팅보트인 중도층 잡기에 쏠려 있다. 경제가 대선의 핵심 쟁점인 만큼 경제정책 또한 ‘중도층’이라는 부동층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경제민주화를 상징해온 경제정책 좌장 3인방도 이러한 정치적인 지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제민주화가 상징적 인물을 영입하면서 정략적으로만 접근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당내 불협화음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에 중도는 왼쪽이다. 재벌개혁론자인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중도를 겨냥한 새누리당의 좌클릭을 상징한다. 김 위원장의 영입으로 새누리당은 쇄신의 진정성을 호소해 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당내 입지는 다른 경제정책 좌장 3인방인 이정우·장하성 교수에 비해 가장 약하다. 김 위원장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태도가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박 후보는 지난해 디도스 사태 이후 꾸려진 비상대책위원회 때부터 지금까지 김 위원장을 요직에 중용해 왔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 정책 추진에 대한 박 후보의 지원은 없었다. 경제민주화를 둘러싸고 당내에서 줄곧 불협화음이 있었던 것이 이를 방증한다.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김종인 위원장 측과 이를 비판하는 이한구 원내대표 간의 갈등은 지난 1년 가까이 지속됐다. 정책의 결정권은 후보에게 있는 만큼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 정책 추진에 후보가 힘을 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핵심 관계자는 “사실 당내에서는 김종인 위원장과 이한구 원내대표의 대립을 심각하게 보지 않고 있다”며 “박근혜 후보도 김 위원장과 이 원내대표의 설전을 그냥 놔두는 것 같다. 일부러 잡음을 내면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를 정책적인 의지보다는 정략적인 판단으로 본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이중적 태도는 대선 캠프 구성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경제민주화 정책은 당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경실모)에서 주로 제기하고 있다. 경실모는 당내 자생적인 모임으로 이들 법안이 곧 당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경실모에는 남경필·김세연 의원을 중심으로 새누리당 전·현직 의원 2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경실모에서는 재벌의 경제범죄 형량 강화, 일감 몰아주기 금지와 처벌 강화, 신규 순환출자 금지 및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 제한, 금산분리 강화를 법안으로 발의했다. 경실모의 중심인 김세연 의원은 박 후보 캠프의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산하 경제민주화단 위원이다. 경제민주화단장은 김종인 위원장이 겸임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박 후보의 경제정책은 실무추진단의 안종범 의원이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정우 위원장, 참여정부서 중도 퇴진 경실모의 한 관계자는 “정책은 결국 후보가 받느냐 안 받느냐의 문제다. 캠프에서는 안종범·강석훈 의원의 입김이 세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이자 박근혜 후보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인 안 의원은 보수적인 경제학자로 분류된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국가미래연구원(박근혜 후보의 싱크탱크) 연구진이 100명이 넘는다. 이 많은 연구진들이 제안서를 만들어 후보에게 올려보낸다. 안종범·강석훈 의원 등이 박근혜 후보와 상의를 해서 정책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국가미래연구원은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우파 경제학자인 김광두 서강대 교수가 원장으로 있다. 김 원장은 2007년 박근혜 후보의 경제 슬로건인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 질서를 ‘세’우기)를 고안해 낸 핵심 인물이다. 실질적인 정책은 김광두 원장이 만드는 만큼 김종인 위원장은 ‘상징적 존재’일 뿐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김종인 위원장은 토사구팽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새누리당과는 반대로 민주당에서 중도는 오른쪽을 뜻한다. 이들 중산층은 ‘경제성장’과 ‘세금’에 민감하다. 문재인 후보가 ‘일자리’를 강조하고, 민주당이 증세에 필요한 복지재원 마련에 침묵하는 이유다. 그러나 성장정책의 강조와 경제자유화는 노무현 정권이 경제개혁에 실패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정우 위원장이 참여정부에서 물러난 것도 같은 이유다. 2004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은 비서실에 심각한 양극화에 대한 대처방안을 찾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지시는 이정우 정책위원장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전달됐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두 개의 보고서를 받았는데 하나는 동반성장을 강조하며 경제자유화 중심의 정책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이정우 위원장의 보고서였다. 다른 하나는 KDI에서 제출한 것으로 기존의 경제자유화와 성장기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보고서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KDI 보고서를 채택했고, 2005년 7월 이정우 위원장은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했다. 9월 23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서울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나란히 서 있다. | 연합뉴스 이번에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온 이정우 교수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담쟁이 캠프의 경제민주화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이정우 위원장은 참여정부 당시 개혁의 실패를 재벌과 관료의 문제로 진단한 바 있다. 한 진보성향의 경제학자는 “이정우 위원장이 개혁적이지만 민주당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 관료들이 또 중요한 일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며 “현재 캠프에 참여정부 때보다 개혁적인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경제개혁에 다시 실패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참여정부 당시 이정우 위원장을 나가게 한 건 재벌이 아니라 같이 청와대에 있었던 친노들 아니냐”며 “그때보다 지금 캠프의 인적 구성이 나아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와 이정우 위원장이 참여정부가 실패한 곳에서 또다시 실패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그런 만큼 경제민주화를 실현할 구체적이고 뚜렷한 청사진이 필요하다. 그러나 문 후보의 경제정책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고 특히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실현할 재원 마련 방안이 없다. 중도 유권자를 의식해 재원 마련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경제민주화와 복지에 추가재원이 필요하지만 부자증세 이외에 중산층까지 적용되는 증세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이 세금을 더 낼 수 있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지만, 현실에 닥치면 조세저항이 만만치 않다”며 “선거판에서 증세 이야기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제시한 경제정책 공약으로만 보면 연간 45조원의 재원이 더 필요하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은 “복지재원은 엄밀하게 계산해야 하는데 민주당은 MB정권의 부자감세만 철회하면 된다고 이야기한다”며 “재원 마련 방안이 취약한 복지공약을 민주당이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책과 재원이 따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후보의 복지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김용익 의원은 “증세 가능성은 지금 현재로서는 말하기 어렵다. 후보의 정책을 바탕으로 계산을 한 후에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세 후보 중 가장 중도층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건 안철수 후보다. 하지만 정치경험의 부족은 중도층이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를 망설이는 주요 이유다. 안철수 후보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영입한 것도 이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전 총리는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극복해 긍정적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그때 김대중 대통령은 공동정부를 구성한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측 요청으로 이헌재 당시 비상경제대책위 실무기획단장을 금융감독위원장에 임명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자민련 몫으로 입각했지만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다”며 “경제위기를 돌파하는 데 적임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최근에도 가계부채, 유럽 재정위기 등 국내외적으로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 전 총리 영입은 안철수 캠프 측에서 일종의 위기극복의 프로세스를 제시한 것으로 분석된다. 안철수 캠프, 이헌재 전 부총리와 선 그어 반면 이 전 부총리는 ‘론스타 먹튀 사건’의 당사자로 관치금융과 신자유주의적 경제관료로 비판받아 왔다. 이 전 총리 영입으로 안철수 후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 전 총리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안철수 캠프의 경제 총괄역인 장하성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철수 후보가 지향하는 새로운 혁신경제, 기존의 틀을 깨는 개혁만이 아니라 그 다음 단계로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에 현실적으로 그분(이헌재 전 부총리)의 경험과 지혜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해 이 전 총리가 안철수 캠프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것임을 시사했다. 장하성 교수는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위원장과 고려대 경영대학장 겸 경영대학원장을 역임했고 고려대 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을 맡아 왔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재벌을 개혁해야 한다는 진보적인 경제학자로 장하성 교수와 이헌재 전 부총리가 함께 영입된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장 교수와 이 전 부총리는 ‘금융’으로 경제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헌재 전 총리는 외국 자본에 대항해 토종 사모펀드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2005년 ‘이헌재 사단’으로 불리는 변양호 재정경제부 전 금융정책국장이 만든 ‘보고펀드’다. 장하성 교수는 2006년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장하성 펀드’를 만들었다. 이들의 실험이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진보성향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금융’이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은 “금융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도 가난한 사람까지 금융으로 집을 갖게 하면서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안철수 후보의 정책이 이란 책에 나온 만큼 개혁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진보성향의 한 경제학자는 “안철수 후보의 출마 이후, 안철수의 ‘생각’과 안철수의 ‘실천’에는 괴리가 있는 것 같다”며 “장하성 교수도 근본적인 경제개혁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주주자본주의·금융자본주의에 충실해서 온건한 시장경제개혁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 참고: , 정태인 외,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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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경이 만난사람]김종인 박근혜 경선후보 캠프 공동선대위원장(2012. 08. 06 18:39)
2012. 08. 06 18:39 정치
ㆍ“안철수, 대한민국 풍토에서 기업인으로 성공했으니 하자 한 두개 아닐게다” 대학교수, 청와대 경제수석, 장관, 그리고 현재 박근혜 선거대책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경력과 직함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종인 새누리당 박근혜 경선후보 캠프 공동선대위원장(73)을 ‘김 박사’라고 부른다. 물론 그는 독일 뮌스터대학 출신의 진짜(?) 박사이지만 정치와 경제,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해박한 학식과 대화 도중에 연도나 각종 지수 등 숫자를 정확히 또박또박 말하는 모습에 누구나 “역시 김 박사”라며 감탄하기 때문이다. 김종인 | 김석구 선임기자 김 공동선대위원장은 요즘 가장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거의 하루 걸러 공중파와 케이블채널, 종편에 이르기까지 각종 뉴스와 시사토크 프로에 등장한다. 여야가 모두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정책으로 내건 ‘경제민주화’를 헌법에 명문화한 주인공이기도 하고, 현재 가장 지지율이 높은 박근혜 후보 캠프의 수장이기도 하며, 안철수 교수나 정운찬 전 총리 등과의 인연으로 대중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서울 부암동 사무실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언제나처럼 거침없고 단호한 말투로 모든 질문에 답했다. 김 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우리 헌법 제119조 제2항에 명시한 것이 1987년이다. 벌써 25년이 지났으니, 사람으로 치면 대학원도 졸업했을 때인데 왜 지금, 그것도 여야 모두의 화두이자 대선 공약의 핵심이 되었을까.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것이 정치력이 아니라 재벌 위주의 금력이고 정부가 제어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은 이제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주장한 후 더욱 그랬다. 국민들은 경제대통령임을 자임한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하고 서민생활 향상을 기대했는데 더 상황이 나빠지고 갈등구조가 커졌다.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국민의 역동성이 취약해지면서 효율과 안정 유지를 위해 뒤늦게 경제민주화를 다들 간판으로 내건 것이다. 지금 우리 국민의 45%가 자신을 하층민이라고 칭하는 시대에 기대할 것은 경제민주화밖에 없지 않은가.” 전경련 등 경제단체는 물론 연세대 정갑영 총장, 또 많은 경제학자들이 경제민주화가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무식해서 그렇다. 요즘 경제학자들이 대부분 신자유주의 경제만 공부한 탓이다. 보수 경제단체들은 재벌 대변인 역할만 한다. 자본주의에서 마냥 커진 인간의 탐욕이 절제가 되는가. 탐욕의 본능과 생존본능이 부딪치면 그 결과는 사회 폭발이다. 또 학자들 말대로 시장에 다 맡기는 시장원리만 강조한다면 다 망해야 한다. 1997년의 IMF사태 때 정부가 가만히 손놓고 기업이건 은행이건 자멸하길 지켜보기만 했어야 했나. 개인과 기업이 스스로 절제 못하니 공동체 유지를 위해 정부가 개입한 것이다. 경제민주화란 재벌 해체가 아니라 의사결정의 민주화가 핵심이다. 기업만이 아니라 노동시장까지 각 분야에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잡으면 기득권의 횡포도 사라진다.” 재벌 해체론자 이미지가 강하다. 과거에도 수 차례 국무총리나 재경부 장관 물망에 올랐으나 재벌들과 재경부 관리들의 반대가 심해 무산되었다고 들었다. 진짜 재벌 해체론자인가. “내 입으로 재벌 해체를 말한 적이 없다. 암탉이 마당에서 여기저기 다니며 아무거나 먹어치운다고 목을 비틀면 어떻게 되나. 알도 못 낳고 나눠 먹을 게 없어진다. 비유를 들면 일정한 울타리 안에 가둬놓고 모이를 먹게 하려는 것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을 적용하라는 주장도 있으나 현행법 조항에 모순이 많다. 공정거래위가 불법적 사안을 조사하고도 조치를 안 하는 걸 보고, 내가 ‘당신들 왜 고발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고발해봐야 검찰이 기소 안 한다. 기소를 안 하는데 우리만 인심을 잃으려고 고발하느냐’고 했다. 설령 기소를 해도 법원에서 상식과 다른 판결이 나온다. 상당수 언론·지식인·법률시장이 그 사람들 지배하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민주화는 지도자, 즉 대통령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과거 정운찬 전 총리에게 대통령 출마를 권했고 지난해 가을까지 안철수 교수와 교류했다. 그리고 올해는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 왜 그렇게 킹메이커가 되려고 하나. “17대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조순형 전 의원에게 ‘대통령 후보를 고르러 국회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청와대 수석에 장관까지 했는데 국회의원 자리가 그토록 탐이 났겠는가. 오랜 공부와 정치경험을 통해 좀 탐욕스럽지 않은 사람, 그 주변이 심플한 사람, 이익집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한 번쯤 대통령이 되면 나라 기강이 세워지지 않겠나란 바람을 가져 왔다. 그런 조건을 갖춘 사람을 열심히 관찰하고 찾았다. 그 기준에 가깝다고 판단한 정운찬 총장에게 2007년 대권 도전을 권했지만 당시 그 사람은 권력의지가 없었다. 당시 경제대통령을 원할 때라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는데….” 안 교수와는 왜 결별했는가.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닌데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안 교수는 작년 봄에 법륜스님의 소개로 만났다. 법륜스님도 대한민국의 평화와 정치발전에 관심이 많아 제3세력을 형성해 새로운 당을 만들 예정이었다. 윤여준 전 의원과도 만나 안 교수에게 다음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라고 설득했다. 그런데 돌연 8월 31일에 만났을 때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간다고 했다. ‘조그만 벤처회사 경영과 서울시 운영은 다르다. 설사 당선돼도 당신이 망신당하거나 서울시가 망한다. 국회의원 경험부터 쌓으라’고 충고했다. 그랬더니 ‘아무 하는 일도 없는 국회의원을 왜 하라고 하느냐’고 하기에 그 자리에서 나와버렸다. 국민들이 보기엔 매일 싸우고 의사당에서 싸우거나 조는 것처럼 보여도 국회의원이나 정당이 절대 간단하거나 만만한 자리나 조직이 아니다. 겉으로는 박원순 후보에게 대담한 양보의 결단을 내린 것처럼 보이지만 안 교수가 숙고 끝에 본인이 감당하기 어려워 포기한 것이다. 과거 행적이나 최근의 행보를 보면 안 교수는 절대 진보도 아니며 민주적 마인드를 갖고 있지 않다. 이번 책을 펴낸 시기도 양당 경선 날짜 즈음이다. 자신을 대통령 후보군에 올려놓은 것이다.” 김종인 | 김석구 선임기자 그럼 왜 대중들은 안철수에게 열광하고 그토록 높은 지지율을 보일까. “같이 청춘콘서트에 참여해보니 대중들의 감성을 읽고 다독거리는 능력은 탁월했다. 정부나 정치인이 무관심했던 지방 청년들, 취업도 어렵고 희망과 자신감이 상실된 청년들에게 찾아가 ‘여러분 힘든 것 안다’라고 위로해주면 당연히 열광하고 기대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무슨 해결방안을 제시했는가. 이번에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출연했던 힐링캠프 시청률이 최고라고 하는데 정확한 지지율을 뜻하지는 않는다. 대체 저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서 반대파에서도 방송을 보고 책을 읽는다. 아마 그 책도 새누리당이나 다른 당의 당원들이 많이 사봤을 게다.” 현재 안철수 교수의 인기나 지지율이 거품이란 말인가. “그 사람의 대중적 인기나 호감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인이나 학자로 성공한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정치인, 특히 대통령이라면 자질과 경력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깨끗하고 바르게 살아왔다고 주장하지만 대한민국 풍토에서 창업을 해서 저 정도 수준에 오르는 과정을 꼼꼼하게 점검하면 하자가 한두 개가 아닐 게다. 벌써 재벌과의 친목단체인 V-소사이어티 등의 문제가 나오지 않는가. 바다 위에 아파트를 지을 수는 없다.” 박근혜 대표도 검증할 게 많지 않은가. ‘만사올통’(만사가 올케인 서향희 변호사를 통한다)이라는 말도 있고 공적 활동을 하지 않은 18년 동안의 생활이 미스터리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 대선 때 이미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았나. 또 부모를 총탄에 잃고도 18년간이나 꿋꿋하게 자신을 추스르며 이겨낸 강인한 의지, 다 허물어져가던 한나라당을 매번 선거 때마다 구출한 위기관리 능력이야말로 강점이 아닌가. 지도자는 외로움과 고독을 이겨내는 인내력이 있어야 한다. 청와대는 정말 적막강산이다. 그걸 못견뎌 자식과 측근을 불러들여 다 비참한 말로를 보지 않았는가.” 그럼 박 대표의 단점은 무엇인가. “외곬 기질이다. 한 번 옳다고 생각하면 안 바꾸려 한다. 그래서 불통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 문제도 전직 대통령과 아버지 박정희로 분리해야 하는데 효심이 깊어서인지 잘 안되는 것 같다. 콘텐츠 부족을 지적하는 이들이 많은데 하도 공부한 게 많아 오히려 정리가 필요할 지경이다.” 박 대표의 대통령 당선을 확신하나. “그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1대 1의 양자구도라면 가능하다.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150석을 차지했어도 전체 표의 분배를 보면 보수세력의 표가 적다. 지금 민심을 분석해보면 46대 46까지는 가지 않을까. 누가 2%를 더 얻느냐가 당락을 결정할 것으로 본다. 지금 지지표만으론 안심할 수 없어 굉장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21세기 진정한 지도자의 덕목과 자질은 무엇인가. “우선 국민과 시대의 변화를 읽는 능력이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경우 1958년의 영웅으로 등장했다 민심의 변화를 읽지 못해 1965년에 초라하게 퇴장했다. 그 다음은 인재 활용력이다. 막스 베버는 란 책에서 ‘아무리 측근이라도 거리를 두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을 도운 공신과 핵심측근이라도 능력이 없다면 중용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되려고 결심했다면 선거 1년 전에 이미 정부 조각을 완료할 리크루팅 능력이 필요하다. 대통령 당선 후에야 인명사전 들추며 인수위원회 만들고, 아는 사람들이나 보은의 의미로 자리를 주면 되겠나. 그 정부의 청와대 참모 구성만 봐도 흥망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어느 정부가 조각을 잘 했나. “전두환 대통령은 워낙 갑자기 대통령이 되었고 군인 출신이어서 초기에는 비교적 전문가들을 잘 기용한 것 같다. 그 인재들이 아깝고 안타깝게 아웅산에서 대부분 사라졌지만….” 김대중 대통령 이후 각 대통령의 당선을 정확히 예측했다. 1997년이나 2002년에는 경제가 어려워도 국민이 정치력을 더 원할 것이라고 했고, 2007년 1월의 인터뷰에서도 경제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 분석력이나 각종 정보는 어디에서 나오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두 시간 케이블TV로 CNN BBC 등 각국의 뉴스프로그램을 시청하면 세상에서 무엇이 이슈가 되며 대중심리가 어떤지 파악이 된다. 또 정보가 몇몇 사람을 만나거나 인터넷 서핑을 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다. 자주 해외에 나가 체험을 한다. 지난 프랑스 대선 때도 프랑스에 가서 올랑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소문이지만 박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김 박사가 책임총리, 그리고 이모 교수가 감사원장이라는 등 조각이 끝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음 정부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나는 자리에 욕심 없다. 국무총리도 수 차례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다. 또 지금 후보와 약속을 했다 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 정치에선 나중을 기약하는 것이 아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
[유인경이 만난사람]민주당 김종인 의원(2007. 01. 09)
2007. 01. 09 정치
“차기 대권 경제가 잡습니다” 정치·경제전문가들이 신뢰하는 ‘족집게’ 4選의원 대통령 선거가 있는 2007년. 유명 역술인들은 다투어 올해 우리나라의 운세나 차기 대통령감을 예언한다. 하지만 정치·경제전문가들이 ‘역술인보다 더 족집게’라며 각종 현안이 궁금할 때 찾는 이는 민주당의 김종인 의원이다. 김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도 예언(?)했으며 지난 보궐선거 때는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으로 대부분 반대하는 조순형 후보를 내세워 당선시켰고 조 의원은 국회에 들어오자마자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지명의 ‘위헌’을 지적해 김의원의 혜안에 화답했다. 최근 반값아파트 논쟁 속에서도 그는 여론조사기관에 의뢰, 설문조사를 해서 국민들의 61%가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민심을 입증했고 또 ‘다음 정권은 한국 현대정치사상 처음으로 경제가 결정할 것’이라고 예견해 화제가 되고 있다. 정치인이 하는 이야기는 자기 이름을 빼고는 다 거짓말이라는데 김 의원의 진단과 처방에 신뢰를 보내는 이유는 뭘까. 그의 지인들은 “서강대 교수, 보건사회부 장관, 청와대경제수석 비서관, 4선의 국회의원이란 경륜을 통해 얻은 지혜와 식견은 물론 매일 국내외 쟁점들을 연구 분석하는 노력 덕분에 특히 경제가 어려워지는 고비마다 그의 견해를 경청하게 된다”고 전한다. 김 의원은 세계사, 경제사, 정치사를 총망라해 정확한 연도와 자세한 시대 상황, 풍부한 배경 설명을 곁들여 ‘아주 특별한 강의’를 해 여느 교수들의 단조로운 강의와 달리 자신의 경험과 단호한 소신을 곁들여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난해한 전문용어나 외국어, 또 자기자랑을 늘어놓지 않아 짜증스럽지도 않았다. “반값 아파트 현실성 없어요” 김종인 의원은 2007년에도 부동산값은 계속 오를 거라고 진단했다. “참여정부가 부동산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부동산값이 올랐어요. 정부대책이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하니까 국민들은 속았거나 나만 바보가 된 것 같은 실망감을 느끼죠. 반값아파트만 해도 말이 쉽지 현실성이 없어요. 분양가를 줄이려면 정부가 땅을 많이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 재원을 어디서 확보합니까. 가격을 맞추려면 형태도 임대아파트가 될 텐데 집을 주거공간만이 아니라 재산증식 수단으로 여기는 한국인들에겐 호응이 없을 거예요. 그러면 기존 아파트 값만 더 올라갈 겁니다. 과거엔 부동산이 과열되면 세금으로 해결했지만 요즘은 잠시 움찔했다가 그 세금만큼 가격이 오르게 되어 있어요. 사실 아파트값보다 땅값이 오르는 게 더 문제예요. 비싼 땅에 아파트를 지으면 당연히 분양가도 오르지요. 1986~1989년 사이에 국제수지흑지가 330억 원이었는데 130억 원을 토지구입에 썼어요. 제가 청와대 경제수석 시절에 재벌들에 비업무용 토지를 매각하게 해서 30대 재벌이 4800만 평의 땅을 내놨습니다. 물량이 많으니 사겠다는 이도 없어 대부분 정부가 채권을 발행해 구입했고 일부 기업은 헐값에 파느니 기부한다며 학교 등에 내놓아서 땅값이 안정되었죠. 참여정부는 혁신도시, 행복도시 등으로 땅 수용 보상비를 40조 원 이상 풀었는데 부동산에서 나온 돈은 다시 부동산으로 흘러갑니다. 이제 똑똑해진 국민들은 ‘새해엔 대선이 있으니 표를 의식해서 강력한 대책은 없을 것이고 선심성 규제완화나 선물만 있겠다’고 예측하는데 부동산값이 왜 내리겠어요? 문제가 생기면 근원을 파악해 해결하는 게 중요합니다.” 다시 화제를 정치로 돌렸다. 과거 두 대통령은 물론 조순형 의원 등의 당선을 예측한 비결이 뭔지 궁금했다. 김 의원은 “민심을 읽으면 된다”고 아주 간단하게 답했다. “선거를 할 때는 그 선거 직전의 선거를 보면 됩니다. 보궐선거 전의 지자체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했어요. 민심이 돌아선 거죠. 성북구는 서민층이 대부분인데 민주당은 지지하지 않지만 조 후보에 대해서는 호감을 갖고 있더군요. 유권자들의 의식이 성숙해서 ‘지역구를 위해 애쓰고 소신있는 조 후보가 돼야 한다’는 여론이 금방 형성되더군요. 해남도 마찬가지예요. 과거 지방선거는 돈 뿌리는 금권선거였지만 이젠 ‘돈이 있는데 안 쓰는 게 아니라 돈이 없어 못쓰는 후보’는 인품을 보고 뽑아주더군요. 노무현 대통령이 등장할 당시에 노 후보는 기존 정치인에 비해서 때묻지 않았고 입신양명한 개인 성공사도 감동적이고 또 서민적 풍모를 갖고 있어서 개혁을 바라는 층에서 표를 던졌죠. 하지만 지지했던 서민층에 해준 게 없으니 민심이 돌아설 수밖에요. 과거 우리 대통령들을 보세요. 건국대통령 이승만, 경제기초 다진 박정희 대통령 등은 시대변화를 읽지 못했어요. 건국기틀을 다졌으면 물러나야 했고, 보릿고개를 면해 기초욕구를 해소해줬으면 다른 욕망과 욕구도 충족시켜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먹고 살게 해줬는데 무슨 불만이냐’며 유신에 3선개헌 등을 하니 압축성장으로 경제성공을 거둬도 정치엔 실패한 겁니다. 우리 지도자들의 문제는 늘 말로는 민주와 평화를 앞세우지만 정작 민주가 ‘국민이 주인이고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는 기본 의미를 모른다는 겁니다.” “민심과 시대정신을 읽어라” 김종인 의원은 현재 대권 후보, 혹은 잠룡들 가운데 누가 당선될 거라는 예언은 하지 않지만 ‘다음 정권의 향방은 경제가 결정한다’고 단언한다. “요즘 각 후보들이 박정희 흉내내기에 바쁜데 향수는 향수일 뿐이고 일반 국민들은 경제에 제일 관심이 많아요. 이승만 이후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정권교체 때 경제가 결정적 동인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죠. 김영삼 정권 때 IMF라는 국가파산상태에서도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었고, 카드대란 등으로 시끄러웠던 2002년에도 경제전문가가 아닌 노무현 후보를 선택했죠. 하지만 이젠 모든 국민의 관심사가 경제예요. 얼마 전 택시를 탔는데 10만 원 고액권 발행을 검토한다는 뉴스가 나오니까 택시기사가 “정치하는 놈들이 손쉽게 ‘받아 처먹으려고’ 고액원을 만드는구나”라고 화내더군요. 고액권을 글로벌스탠더드의 개념이 아니라 가진 자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은데 그런 국민정서도 읽어야 해요. 지식정보 사회인데 아직도 신도시나 토목사업(운하를 비롯)으로 경제를 풀어서는 안 됩니다. 물건 하나를 팔려고 해도 소비자 심리를 파악해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나라를 운영하면서 왜 국민들의 마음을 읽거나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노력을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선생 친손자 요즘 김종인 의원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가장 친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을 잘 아는 지인들은 “서울대 총장이 될 뜻이 없던 정 교수를 김의원이 선거 두 달 전에 설득해 총장 선거에서 이기게 만들었다”고 전한다. 김 의원은 다시 정 전 총장을 설득해 대통령 선거에서도 승리를 안겨줄까. “정 교수와는 학연·지연 등 아무 인연도, 일면식도 없었어요. 1986년 그 살벌한 전두환정권 시기에 공무원 신분인 국립대교수로서 직선제개헌 서명을 주도했다기에 제가 먼저 만나자고 했죠. 만나보니 겉으론 연약해보이는데 대학에서 쫓겨나면 생계를 걱정해야 할 형편에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나선 용기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1990년에 금융통화위원을 하라고 권했더니 ‘대학교수가 1주일에 한 번 회의에 참석해서 무슨 제대로 된 역할을 하겠냐, 소신에 맞지 않는다’며 거절하더군요. 그 자리를 노리고 각종 로비를 하는 이가 수두룩한데 6개월 후의 제안도 또 거절했어요. DJ정부 때도 한은총재는 ‘잘할 확신이 없다’며 사양하더니 서울대 총장선거는 동료교수들의 응원도 있어선지 나가더군요. 서울대폐지론·3불정책 등 현 정부와의 갈등, 황우석사태 등에서도 냉정성을 유지하며 무사히 4년 임기를 채웠으니 행정력과 리더십은 검증된 셈이죠. 대통령 출마에 대해서는 제가 강요할 문제도 아니고 본인도 다시 복귀한 교수 생활에 충실하길 원하는 것 같아요. 지지율이 떨어진 열린우리당이 초조하니까 괜히 거명하고 부추기고 주변 정치인들이 친한 척해서 화제가 되는 거죠. 그리고 지금은 조직이나 캠프를 거느리거나 정당이 영입한 대권후보가 아니라 ‘자연인’이고 ‘학자’로서 하는 말인데 기자들이 모든 말을 정치적으로 해석해서 엉뚱한 방향으로 보도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모든 건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지만 전공인 경제학만이 아니라 국가 당면과제를 분석할 수 있는 지식을 갖추고 ‘시대’가 요구하면 그때는 나올 수도 있겠지요. 저는 그저 ‘열심히 공부하시라’는 충고만 할 뿐입니다. 부드러워 보여도 강한 의지와 소신이 있는 분이니 바른 결정을 하겠지요.” ‘소신’하면 김종인 의원도 만만치 않다. 그는 정치권에서도 정당을 초월한 소신있는 언행으로 유명하며 당을 초월한 의원들의 모임인 ‘조화로운 사회를 위한 모임’을 이끌고 있다. 대통령을 비롯, 각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과거부터 재벌 개혁론을 주장해왔다. 재벌과 건설업계에서는 ‘저승사자’로 불리는 그는 DJ시절이나 참여정부 때도 경제부총리 등 입각 후보 0순위였지만 재계나 경제관리들의 반대로 번번이 탈락했다고 알려졌다. 6공 때 청와대 경제수석 제안을 받고는 ‘이런저런 일은 하게 해달라’는 문건을 작성해 대통령에게 구두가 아닌 문서로 허락을 받아낸 일도 있다. 그는 ‘대쪽 판사’의 원조로 법조계의 추앙을 받는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친손자로 할아버지의 ‘소신’을 가장 고마운 유산으로 여긴다고 했다. 경제전문가면서도 단지 부인인 김미경 이화여대 교수의 직장이 가깝다는 이유로 압구정동 아파트를 팔고 강북 구기동으로 이사했고 부인과 미장원에 함께 가서 머리를 다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신데렐라처럼 12시 전에는 꼭 집으로 들어가는 애처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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