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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총 128 건 검색)

[정태겸의 풍경](70) 경북 울릉도 현포-들판의 보랏빛 파도 ‘그림 같은 밭’(2024. 07. 31 06:00)
2024. 07. 31 06:00 문화/과학
차를 몰아 경북 울릉도를 일주할 때였다. 바다를 끼고 달리다 산길로 올라 오르락내리락. 코너를 돌아서 나가던 중 눈이 휘둥그레졌다. 드넓은 들판에 보랏빛 파도가 일렁였다. 평평한 땅이 드문 울릉도에서 보기 힘든 규모의 밭이었다. 귀한 풍경에 차를 멈추었다. 울릉도는 화산섬이다. 지형이 가파르고 평지가 드문 건 그래서다. 바위가 많고 척박하다. 야생화가 많고, 여름이면 나리이 여기저기 만발하다. 이렇게 한 종류의 을 무더기로 보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심지어 보랏빛이라니. 한쪽에 누군가 의 이름을 적어 두었다. 버들마편초. 본 이름은 숙근버베나라고 부르는 남미 원산의 식물이다. 사진을 찍고 관련 자료를 찾아봤다. 다른 버베나에 비해 이 종은 키가 크고 줄기가 꼿꼿해 비바람에도 쉬이 꺾이지 않는다고 했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바람 많은 울릉도에는 안성맞춤이다. 울릉어선안전국 현포중계소가 있던 자리라고 했다. 면적은 3967㎡(약 1200평). 울릉군은 2022년 텅 빈 이 땅에 버들마편초를 심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으로 가득 채워졌다. 저쪽으로는 진청색 바다가 일렁이고, 육지의 이쪽은 자줏빛으로 물든 절경이라니. 울릉도여서 볼 수 있는, 섬이 주는 즐거움이 하나 더 늘었다.
정태겸의 풍경
[렌즈로 본 세상] 잎 날리고 새도 울고(2024. 04. 09 06:00)
2024. 04. 09 06:00 사회
제주 4·3사건 76주기를 하루 앞둔 4월 2일 제주 4·3평화공원. 희생자 추념식 준비로 분주한 위령 광장을 지나 행방불명인 표석으로 향했다. 오후에 예보된 비 때문인지 세차게 부는 바람에 만개한 벚나무 잎이 비처럼 쏟아졌다. 까마귀 떼가 표석 위에 앉아 연신 울어댔다. 유가족들의 발걸음이 종일 이어졌다. 희생된 부모·형제의 표석을 찾은 유가족들은 손수건으로 먼지를 닦고 제사를 지냈다. 나이 지긋한 유족들은 한참 동안 표석 곁에 앉아 있었다. 4·3으로 둘째 형을 잃은 양원석씨(85)는 “당시에 내 나이가 조금만 많았더라면, 나도 죽었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주 4·3사건은 1948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에서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다. 광복 이후 미 군정과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일어난 소요를 군경이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됐다. 다음날 열린 추념식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4·3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라며 진상조사와 생존 희생자의 트라우마 치유 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렌즈로 본 세상
“민주, 경기도 압승” 김어준의 ‘’ 여론조사 절반, 공천파동 이전 실시(2024. 03. 18 06:00)
2024. 03. 18 06:00 정치
총선 판세 여론조사 ‘비싸면 예측도 정확’할까…“여론은 시시각각 변하기 마련” 인터넷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씨가 3월 11일 그가 대표로 있는 ‘여론조사’이 조사한 경기도 판세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전체적으로는, 이 추세대로면 지난 총선보다 경기도에서 민주당이 더하겠는데? 판이 뒤집혔다면서? 판이 안 뒤집혔어요.” 지난 3월 11일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이하 ‘뉴스공장’)에서 방송인 김어준씨는 이렇게 단언했다. 김씨가 “판이 안 뒤집혔다”며 근거로 제시한 것은 자신이 대표로 있는 여론조사기관 ‘여론조사’(이하 ‘’)의 ‘경기도 56개 선거구별 판세 조사’ 결과다. 이날 확정된 경기도 선거구는 60개지만, ‘’의 결과는 조사 당시 선거구가 확정되지 않은 화성시 3개 선거구 등을 뺐다. 방송에서 공개된 ‘’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가 이뤄진 56개 선거구 중 더불어민주당이 뒤지는 선거구는 성남 분당을, 동두천시·연천군, 포천시·가평군, 여주시·양평군 등 4개뿐이다. ‘민주당 압승’ 경기도 판세 조사, 맞을까 2020년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경기도 7개 지역구에서 이겼다. ‘’의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래통합당 후보가 당선됐던 용인시갑, 평택시을, 이천시, 분당갑 그리고 심상정 의원의 지역구인 고양갑까지 민주당이 강세다. 이날 방송에 패널로 참여한 컨설팅업체 ‘주식회사 박시영’ 박시영 대표도 “일단 이 자료만 놓고 보면 경기도는 민주당이 압승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다수 여론조사기관의 전국 단위 조사 추세는 다르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는 지난해 10월부터 ‘전국단위 선거 여론조사 결과의 주요 데이터’를 공개하고 있다. 여심위에 등록된 각 여론조사 기관의 전국단위 정당 지지율 수치를 한데 모아 요약해 보여준다. 여심위가 공개하고 있는 3월 1주차 각 기관의 정당 지지율을 보면 전국단위에서 국민의힘이 경합우세로 앞서는 곳이 많다. 2월 5주차 데이터와 비교하면 기관별로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과 국민의힘 지지율 상승이 교차하는 조사 여럿이 눈에 띈다. 그런데 ‘’의 조사결과는 전체 선거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서울·수도권을 선거구별로 조사해보니 ‘민주당 지지세 하락이 아닌 압도’ 경향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의 수치가 많아 봐야 몇백 개란 말이죠. 우리는 2만4000개잖아요. 그러면 2만4000개는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해야 정상 아닙니까.”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은 지난 3월 5일 서울 지역 선거구별 조사 결과에 기초한 여론조사 판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유튜브 캡처 지난 3월 5일 김씨가 뉴스공장에서 한 발언이다. 김씨는 대부분 언론이 ‘서울지역 180개 샘플’로 이뤄진 갤럽 등의 조사에 근거해서 서울지역에서 국민의힘이 강세를 보이고 민주당 지지추세가 하락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2만4000개 샘플을 써서 서울시 모든 선거구를 조사해 민주당 절대우세를 ‘입증’한 ‘’의 여론조사 결과는 인용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상황’에 대한 논평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왜 안 할까요? 정확하지 않아서 인용하지 않는 게 아니다. 정확할까봐. 그리고 그게 퍼져 나갈까봐.” 2만4500샘플 대 180샘플, 숫자가 깡패다? 다 인용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MBC <100분 토론>에 참여한 유시민 작가는 종전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회의론을 펴면서 ‘’의 손을 들어줬다. “리얼미터의 경우 1000샘플 전국조사인데 이중 서울이 180개다. 평일 낮에만 조사를 하는데 그러면 평일 낮에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있다. 리얼미터는 민주당 3% 우위에서 국민의힘 17% 우위로 반전됐는데 20%포인트 차가 났다. 국정농단 정도의 사건이 터지지 않는 한 이런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 갤럽도 1000샘플 중 주관적 정치성향이 보수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120개 정도 많았다.” 지난 2월 말~3월 초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 상승은 여론조사를 후보 결정에 도입한 경선 여론조사가 이유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후보 결정을 두고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면서 여론조사 전화를 받아 자신이 미는 후보 지지 의사를 표명하려는 보수 지지자들의 ‘전화기 앞 집결’이 국민의힘 강세라는 여론조사상의 ‘착시효과’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반면 대부분 정치평론가나 여론조사전문가들은 민주당 공천파동과 한동훈 효과 등을 여야 지지율 변동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여론조사 서울판세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한 유튜버가 가공·리뷰해 올린 유튜브 영상 표지. /유튜브 캡처 ‘수가 많다고 정확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 여론조사에서 제일 처음 배우는 기초적 정리(theorem)다. 가장 극적인 사례로 1936년 미국 대선에서 240만명을 대상으로 우편설문조사를 한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의 대선 예측과 1500샘플 면접조사를 한 갤럽의 예측이 있다.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의 공화당 후보 당선 예측은 틀렸고, 갤럽의 루스벨트 민주당 후보의 당선 예측은 맞았다. 대부분 여론조사 교과서 맨 앞부분에 실려 있는 일화다. “학자들이 잘 언급하지는 않지만 여론조사 비용 문제는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변수인 것은 사실이다.” 최근 여론조사 보도 문제를 다룬 책 <여론다움>을 낸 신창운 한국여론평판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선거 여론조사에서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반드시 있다. 4억원이 아니라 30억원을 쓴다고 하더라도 4월 10일 총선 판세가 어떻게 될 것인지 맞히긴 어렵다. ‘비싸면 정확하다’는 말을 최대한 용인하더라도 가능한 것은 현재까지의 판세다. 앞으로 어떻게 되리라고 말하기 어렵다. 1936년 미국 대선에서 갤럽이 맞춘 것을 과학적 여론조사 사례로 거론하지만, 최근 갤럽 미국 대선 예측도 세 차례나 틀렸다. 베이지안 정리를 여론조사기법으로 도입한 네이트 실버도 트럼프 당선 예측에 실패한 바 있다.” 유시민 작가는 일부 친윤 언론뿐 아니라 진보계열 신문들도 (국민의힘에 편향된) 여론조사 결과에 휘둘리고 있다며 이들 진보신문의 기자와 비평가들이 “자신의 주장에 분명한 실증적 논리적 근거가 있는지를 점검하고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훈계하는 문장을 쓰는 시간에 데이터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총선을 넘어 압승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의 경기도 판세 예측 데이터들을 점검해봤다. ‘’의 서울과 경기도 판세 조사는 여심위에 별도로 등록하지 않았다. 다만 ‘총선 판세 특집 여론조사’라는 이름으로 선거구별 조사 결과를 등록해 놓았다. 대부분 500개 내외 샘플에 95% 신뢰수준에 ±4.4%P 표준오차 ARS 조사다. 방송을 통해 공개한 조사기간은 지난 2월 7일부터 2월 28일까지로 돼 있는데, 실제 여심위에 등록된 선거구별 결과를 전수조사해보니 조사기간은 네 덩어리로 나눠진다. 첫째는 2월 7일에서 8일 이틀간 진행한 선거구별 조사로 12개다. 둘째는 2월 13~14일 진행한 조사로 14개(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진행한 광주갑과 14~15일 양일 조사한 여주·양평을 이 그룹에 포함시키면 16개다). 나머지는 2월 26~27일 양일 조사한 19개와 27~28일 실시한 10개 선거구다. 문제는 이 조사를 한 시기다. 방송에서 경기도 선거구 중 민주당과 국민의힘 격차가 가장 큰 걸(30.3%차)로 거론됐던 고양을 조사의 경우 조사는 2월 7~8일에 실시됐는데 여심위 등록은 2월 22일, 공표는 3월 11일이다. 조사부터 공표까지 시차가 한 달이 넘는다. 민주당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지적됐던 민주당 공천파동의 주요변곡점으로 기록될 수 있는 김영주 의원 탈당 기자회견이 열린 날은 지난 2월 19일이었다. 임종석 전 대통령실 실장의 공천배제가 최종 결정된 것은 2월 27일이었다. 이 시기를 민주당 공천파동의 절정부로 본다면 ‘’이 3월 11일 발표한 경기도 판세 조사의 절반가량은 민주당 공천파동 이전에 실시됐다. 반면 KBS의 윤석열 대통령 인터뷰가 방송된 날은 2월 7일이었고, 이튿날엔 윤 대통령과 용산 대통령실 직원들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설 인사 영상이 공개됐다. 2월 7일과 8일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정권·여당 지지율에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열린 KBS 신년대담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2월 7일 공개) 녹화를 마치고 박장범 앵커에게 집무실을 소개하고 있다. /대통령실 “탄핵 전 여론조사로 보수 이긴다고 주장하는 꼴”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여론은 시시각각 변하게 마련”이라며 “비유하자면 누구나 문재인 당선을 예측할 수 있었던 2017년 대선에서 박근혜 탄핵 전 여론조사 결과를 가져와 이번 대선에서 보수가 이긴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꼴”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최정묵 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 소장이 낸 <국민 집권 전략>에 따르면 올해 4월 총선은 254개 선거구 중 여야가 경합하고 있는 49개 선거구의 승패에 따라 결정된다. 각축을 벌이고 있지만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이 49개 경합지역에서 몇 개를 선점하냐에 따라 선거 결과는 2~3개 시나리오에 수렴된다는 것이다. 최 소장이 제시하는 데이터에 따르면 경합지 49군데 중 16개가 경기도 선거구다. ‘’의 판세 조사에 따르면 이번 조사 결과에 포함되지 않은 화성갑과 분당을을 제외한 14개 선거구 모두 민주당이 우세하다. 지역 총선 여론조사, 얼마나 믿을 만할까“첫 조사를 했더니 반향이 장난이 아니야. 다 할 테니 기다리세요.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갈 겁니다.” 지난 9월 15일 공개된 유튜브 방송 https://m.weekly.khan.co.kr/view.html?med_id=weekly&artid=202309221124391&code=113 ‘’의 경기도 판세 조사가 3월 11일 직전 진행된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는 지적에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시청자나 독자에게 발표하는 시점의 여론이 반영하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킨다면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며 “대부분의 여론조사 언론 발표 시점은 하루 전이나 이틀 전에 치러진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하지 1주일 전, 한 달 이상 전에 수행된 조사로 판세를 주장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 측은 “조사는 기획단계를 거쳐 각 지역의 판세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그것을 큰 지도로 그려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진행됐으며 일정은 내부사정에 맞춰 진행한 것”이라며 “조사된 내용은 여심위와 선관위의 검토를 받아 공표하고 있고, 공표된 데이터는 선관위가 미리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라고 답했다. “선거구별로 조사기간이 한 달 이상 벌어지면서 조사와 발표 시점에 판세 차이가 나타날 수 있지 않으냐”는 질문엔 답하지 않았다. 이른바 서울지역 ‘180샘플’ 논란에 대해 갤럽 측은 “정당 지지도는 상당수의 무당층이 있을 수밖에 없어 정당 지지로 묻느냐 후보 지지 또는 투표 의향으로 묻느냐에 따라 질문·응답이 다를 수밖에 없다”라며 “(갤럽과 ‘’의 조사는) 사실상 다른 개념인데 같은 개념으로 놓고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성소수자 환대로 출교…실패 아닌 거름이길”(2024. 03. 12 06:40)
2024. 03. 12 06:40 사회
이동환 목사 “재판보다 힘들었던 거대한 적개심…소수자들의 고통 느낄 수 있었죠” 성소수자를 위한 축복식을 집례했다는 이유 등으로 출교 처분을 받은 기독교대한감리회 이동환 목사가 지난 3월 4일 서울 종로구 감리회관 앞에서 선고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우연과 우연이 겹쳤다. 그 사이에서 결정을 내린 건 이동환 목사(43) 자신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나아갈 방향을 구하며 걸어온 길”이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지난 3월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리회관 회의실. “피고인(이 목사)의 상소를 기각한다.” 감리회 총회 재판위원회가 선고를 내렸다. 이 목사의 출교가 확정됐다. 감리회법인 ‘교리와 장정’의 동성애 찬성·동조 금지 조항을 어겼다는 게 주된 이유다. “마음이 좋지 않았죠. 결국 이렇게 됐구나.” 이 목사는 착잡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재판위원회는 유죄 판단의 이유를 읽어 내려갔다.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잎을 뿌리며 성소수자를 축복하는 축복식을 집례한 점,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형 무지개 깃발을 흔드는 퍼포먼스를 한 점….” 그간 자신의 행적이 정리된 내용을 들을수록 이 목사는 의아했다. ‘성소수자 환대가 잘못인가.’ 그는 다시 떳떳하게 고개를 들었다. 퇴출이라는 결과만 놓고 보면 실패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그 과정은 의미가 컸다. “앞으로 을 피우는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목사는 이날 선고 직후 ‘복직 투쟁’을 예고했다. 이 단어가 낯설지 않다. 그는 2013년 재능교육 학습지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장을 시작으로 여러 복직 투쟁 현장에서 기도를 집례했다. 다른 개신교인들과 함께 ‘개신교대책위원회’를 꾸려 활동했다. 특히 2018년 12월 25일 성탄절에는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도 올랐다. 75m 위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파인텍 노동자 2명이 농성 중이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가장 낮은 이들’을 위해 이 목사는 기도했다. 이제 이 목사 스스로 복직 투쟁의 주체가 됐다. 그의 곁에는 ‘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가 함께하고 있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게” 각서 포기 이 목사는 모태신앙으로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 다녔다. 교회 안에서 배웠던 대로 동성애를 ‘뭔가 무섭고 잘못된 존재’로 여겼다. 신학대를 졸업하고 2014년 작은 교회의 목사로 부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교인이 커밍아웃했다. 등줄기에 땀이 흐를 정도로 당황했다. 그러나 교인에게 ‘동성애는 죄입니다’라고 정색하고 말할 순 없었다. 교인은 ‘무섭고 이상한’ 존재가 아니었다. 이 사회가 쉽게 대상화하며 뭉뚱그려 지칭하는 성소수자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이었다. 이후 성경과 교회 내 각종 논의, 해외사례, 심리학·의학 등을 공부하면서 성소수자를 향한 자신의 기존 시각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깨달았다. 그의 앞길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는 2019년 8월 31일 개최된 인천 퀴어문화축제였다. 행사 며칠 전 주최 측은 축복식을 진행할 목회자 1명이 급히 필요하다며 이 목사의 아내에게 연락했다. 기독교 내 페미니즘 운동 활동가인 아내는 이 목사에게 참가를 제안했다. 이 목사는 잠시 고민도 했다. 감리회법에 동성애 찬성·동조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처벌하는 조항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축복식 집례가 교회법에 저촉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목회자가 축복기도를 올리는 건 일상적인 일이다. 특히 행사 참가자들은 누구보다 축복이 필요한 이들이었다. 요청을 떨치는 게 외려 목회자의 본분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이 목사는 축제에 참석해 기도하면서 잎을 뿌렸다. ‘낮은 곳’으로 임했던 예수의 삶을 따르기 위해 해고노동자들과 함께했던 것처럼. 이동환 목사가 2019년 8월 31일 인천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 등 참가자를 위한 축복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 쥬피터 제공 그러자 교단 내 반동성애 진영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재판 회부 여부를 심사하는 첫 단계인 경기연회 자격심사위원회가 이 목사를 소환했다. 이들은 “동성애는 죄냐, 아니냐” 등을 따져 물었다. 자격심사위는 이 목사에게 각서도 제안했다. ‘동성애는 죄다, 다시는 이런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에 서약하면 이번 일은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겠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각서를 앞에 두고 “이걸 쓰지 않으면 재판을 받게 될 텐데 어떻겠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대답했다. “어차피 미래에는 교회법에서 성소수자 차별 조항이 사라질 거고, 그렇게 세상이 변할 것이기 때문에 역사 앞에 부끄럽게 남지 말자.” 힘을 얻은 이 목사는 ‘각서를 대신하여’라는 글을 자격심사위에 제출했다. “내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서는 내 신앙과 양심에 배치된다”는 취지였다. 각서 포기는 이 목사가 교회 내 성소수자 차별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운동’에 발을 딛게 된 변곡점이 됐다. ■거대한 적대감 교단은 2020년 6월 이 목사를 교회법정에 세웠다. 감리회 재판은 2심제다. 1심에 해당하는 경기연회 재판위원회는 정직 2년을 선고했다. 2심 법원인 총회 재판위원회도 2022년 10월 징계를 확정했다. 재판은 규정보다 긴 2년 이상 진행됐다. 또 재판을 공개해야 한다는 원칙은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았고, 이 목사를 심사(기소)했던 사람이 재판위원장을 맡는 등 절차적 문제로 줄곧 논란이 됐다. 이 목사는 재판을 받는 도중에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다시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해 축복식을 집례했고, 무지개 깃발을 흔들었다. ‘Q&A(큐앤에이)’라는 단체도 설립했다. 정기적으로 성소수자들과 함께 기도를 올리는 등 이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곳이다. 재판에서 정직 2년이 확정되고 5개월 뒤인 2023년 3월 감리회 목사와 장로 등이 이 목사를 고발했다. 그는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이번에도 동성애 찬성·동조가 이유였다. 여기에 더해 언론 인터뷰 등에서 교회를 비판한 발언 때문에 ‘교회를 모함 및 악선전’ 혐의가 추가됐다. 기소 과정에서 하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공소기각 결정이 나기도 했지만 재차 기소됐다. 2023년 12월 1심은 출교를 선고했고, 지난 3월 4일 2심은 이를 확정했다. 이 목사의 감리회 목사직은 물론 교인 자격까지 박탈됐다. 4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심신이 많이 상했다. 재판보다 더 괴로웠던 건 사방에서 날아오는 적개심 가득한 ‘화살’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전화 통화와 문자메시지로 욕을 해댔다. 새벽에 전화를 걸어 ‘방언기도(신자와 하나님 사이의 특별한 언어를 통한 기도)’를 하고 끊기도 했다. 대인기피증과 공황장애가 왔다. 지하철에서 졸도한 적도 있고, 지금도 대중교통을 타지 못한다. 이동환 목사가 설립한 성소수자 운동 단체 ‘Q&A’의 로고 그러면서 깨달은 바도 있다. 자신도 이런데, 성소수자인 당사자들은 얼마나 힘들까. 소외와 차별로 인한 고통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재판 결과보다 속상한 건 재판 과정에서 성소수자가 그저 하나의 부류로 묶여 부정적으로 호명됐다는 점이다. 큐앤에이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성소수자 개개인은 모두 고유한 존재였는데, 재판에서는 그저 ‘그들’로 불렸다.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이들이 사랑과 자비를 말하는 종교 안에서조차 죄인 취급 당하는 게 슬펐다. 재판 전략상 ‘축복식 집례는 동성애 찬성·동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부분도 마음에 짐이었다. ‘동성애는 죄’라는 인식이 있는 것처럼 주변에 비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법원이 개입해야” 이 목사는 향후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고민 중이다. 목사직을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은 사회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게 유일해 보인다. 감리회 목사직에 미련은 없다. 그러나 복직 투쟁을 통해 이번 판결과 교회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무감도 느낀다. 이대로 두면 교단 내에서 성소수자 환대가 위축되는 분위기가 짙어질 수 있다. 앞서 이 목사는 2023년 2월 정직 2년 처분에 대한 징계 무효 확인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이번 출교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면, 두 사건이 병합될 수도 있다. 징계 수위만 다를 뿐 쟁점은 유사하다. 이 목사는 진행 중인 소송에서 동성애 찬성·동조를 금지하는 교회법 조항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양심·표현·종교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또 교회재판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가 발생했던 점도 피력한다. 이에 따라 징계가 취소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인권을 심대하게 침해한 사건인 만큼 법원이 심사해 달라고 요청한다. 반대로 감리회 측은 종교단체 내부의 징계 결의이기 때문에 법원이 개입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맞선다. 종교단체 내부 사안은 원칙적으로 심사를 자제하되,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예외적으로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대법원의 기존 태도다. 이 목사 측은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서도 법원에 냈다. 인권법 전문가인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30년 동안 신학·종교철학을 강의한 이정배 교수 등이다. 내용은 “종교 집단 내부의 문제라고 해도 사회질서를 위반하고 사회적 해악을 끼친다는 점이 명백하거나, 개인의 권리가 구체적으로 침해되거나, 중대한 절차 위반이 있다면 불가피하게 법의 개입이 필요하다”, “법원의 적극적 개입과 판단이 없다면 향후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종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용인될 수 있고, 이는 다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등이다. 다음 변론기일은 오는 4월 3일이다.
자유로운 몸짓 하나하나, 으로 피었다(2023. 12. 12 07:00)
2023. 12. 12 07:00 사회
장애인 대상 인문강좌 수강생들, 성동구청 도서관서 공연 “김춘수의 ‘’ 연상”…문화예술위 “치유·회복 기회 확대” 지난 11월 27일 서울시 성동구청 책마루도서관 1층에서 열린 장애인 인문강좌 ‘주파수를 맞추는 몸’ 수강생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송진식 기자 조용하던 도서관 로비에 차분한 라운지 음악이 흘렀다. 경쾌하지만 경박하진 않다. 스피커 주변으로 동그랗게 진을 치고 모여있던 수강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중앙 대리석 바닥에 봉오리 영상이 카펫인 양 깔렸다. 이것으로 무대 준비 완료. 잠시 뜸을 들인다. 서로 눈치 주고받기를 수십 초. 강사가 먼저 바닥에 내려앉아 손을 휘젓는다. 영상 속 봉오리를 쓰다듬는 듯한 모습이다. 망설이던 학생들이 하나둘 강사를 따라 봉오리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이내 음악이 바뀐다. 비트가 더 빠르고 강하다. 바닥을 휘젓던 손들이 허리 위로, 다시 머리 위로 조금씩 올라간다. 몸이 풀린 학생들은 이제 거칠 게 없다. 흥이 많은 학생 A씨가 ‘견디지’ 못하고 무대 중앙으로 나왔다. 아무 말 없이, 미소를 띤 채 손을 움직이며 제자리에서 천천히 한 바퀴 돈다. 그가 모두를 바라보고, 모두가 그를 바라본다. 이곳이 어디인지, 또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기억하려는 듯했다. ■“몸짓 하나하나가 나를 표현하는 것” 지난 11월 27일 오후 서울 성동구청 책마루도서관 1층 로비에서 ‘특별한’ 공연이 열렸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개최한 장애인 대상 인문강좌 ‘주파수를 맞추는 몸, 너와 나의 몸짓’의 수강생들이 공연의 주인공이었다. 이들은 모두 중증 발달 장애인들. 평소 활동지원사의 도움 없이는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거나 외출조차 어려운 이들이다. A씨처럼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운 수강생이 대부분이다. 이날 공연이 ‘특별한’ 이유다. 강좌는 음악에 맞춰 장애인들이 자신만의 ‘춤’을 추도록 기획됐다. 그것이 춤이든 체조든 손짓이든 발짓이든 상관없다. 평소 자율적인 거동이 어려운 이들 수강생에겐 움직임과 몸짓 하나하나가 자신을 표현하는 길이 된다. 다른 수강생들의 움직임을 보고 그에 따라 자신의 움직임을 맞춰보거나 따라 하는 것도 이번 강좌의 목적이다. 지난 8월 중순 시작한 이 강좌는 지난 11월 30일 15회차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공연은 종강을 사흘 앞두고 약 석 달간 이어진 강좌의 성과를 확인하고, 미리 종강을 자축하기 위한 차원에서 마련됐다. 처음부터 이런 공연을 계획하고 시작한 강의는 아니었다고 한다.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강좌를 맡아온 신재 연출가는 “매번 강의실에서 진행했는데 조금 갑갑한 면이 있었다”며 “보다 개방된 장소에서 수강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주변 분들에게도 강좌의 성과를 보여드리고 싶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장소 섭외에도 취지를 전해들은 성동구청이 흔쾌히 도서관 로비를 내주었다. 공연 시작 전 수강생인 발달장애인 B씨가 마이크를 들었다. 발성이 쉽지 않은 그이지만, “감사합니다. 잘 봐주세요”라며 공연 소감을 밝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장애인 인문강좌에서 한 수강생이 강사의 도움을 받으며 손동작을 취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공연은 수강생들이 천천히 손을 움직이는 것부터 시작해 점차 큰 몸동작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짜였다. 처음엔 다소 긴장하고 낯설어하던 이들도 몸이 풀리자 이내 자신만의 ‘흥’을 드러냈다. A씨가 무대를 한 바퀴 돌며 분위기를 잡자 하나둘 중앙으로 나오더니 자신만의 몸짓을 선보였다. 음악이 점차 빨라지고 분위기가 고조되자 서로 얼싸안고 몸을 출렁이는 수강생들도 등장했다. 신 연출가가 참여하기를 머뭇거리는 한 수강생의 손을 잡고 무대로 걸어나왔다. 둘이 손을 마주 잡고선 빙글빙글 돌았다. 흡사 왈츠를 추는 것 같았다.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활동지원사들도 함께 무대로 나와 수강생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함께 ‘몸짓’을 한다. 평소엔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이지만, 이날 무대에서만큼은 동등한 ‘친구’가 됐다. 약 30분 이어진 공연이 끝났다. 여기저기서 자축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몇몇은 서로를 껴안으며 기뻐했다. 마치 “수고했어. 잘했어 우리”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기념촬영이 이어지고, 손에는 공연 뒤 갈증을 달래줄 음료수가 쥐어졌다. 몇몇은 공연을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완벽한 마무리. ■장애인 대상 강좌 턱없이 ‘부족’ 로비를 지나던 시민 몇몇은 발길을 멈추고 공연을 바라봤다. 예고 없던 공연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다. 그랬다.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보면 일반적인 ‘공연’의 모습은 아니었다. 부자연스러운 장애인들의 몸짓이었던 터라,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저 손을 잡고 빙글 도는 것이 무슨 공연인가’라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더 ‘공연’다웠다. 현재 사회복지시설이나 장애인을 위한 직장 등이 없어 집에서만 머무르는 발달장애인 수가 20만명을 넘는다. 정부에 등록된 수만 이렇다. 평소에는 이들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 이들이 원해서가 아니다. 밖으로 나와 움직이고 어울리려면 활동지원부터 이동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원이 필요하지만 그렇지 못한 탓이다. 해마다 발달장애인들이 ‘지하철 탑승권’을 얻기 위해 차디찬 역사에서 집회 시위를 벌여야 하는 현실이다. 따라서 수강생들이 이렇게 ‘공공의 장소’에 나와 몸짓을 보이고, 집안을 벗어나 다른 이들에게 공개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만큼 ‘공연’의 진짜 의미에 부합하는 일도 없다. 필요한 건 그들의 몸짓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이해와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공연을 지켜본 한 시민은 “김춘수 시인의 ‘’이 연상된다”고 말했다. 신 연출가는 “특히 의사 표현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의 경우 몸짓을 통해 아주 기본적인 의사 표현조차 하기 어려워하거나 못 하는 사례가 많다”며 “강좌를 통해 조금이나마 자신이 원하는 것, 말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면 그 자체로 성과”라고 말했다. 이번 강좌를 기획한 단체인 ‘장애인문화예술판’ 관계자는 “실제로 강좌를 들으면서 전보다 표정이 밝아지고, 전에 없던 몸짓을 하며 뭔가 의사 표현을 하려는 수강생들이 늘어난다”며 “본인은 물론 보호자(가족)들도 강좌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27일 서울시 성동구청 책마루도서관 1층에서 열린 장애인 인문강좌 ‘주파수를 맞추는 몸’ 수강생들이 음악에 맞춰 몸짓과 춤을 선보이고 있다. 송진식 기자 장애인 지원이 부족한 현실 속에서 이 같은 장애인 대상 인문강좌는 더 드물기 때문에 이번 공연은 더욱 빛을 발한다. 장애인 관련 공연기획과 연출 등에 다수의 경험이 있는 장애인문화예술판 측도, 신 연출가도 “이런 강좌는 처음인 듯하다”고 입을 모았다. 신 연출가는 “보통 장애인이 참여하는 공연은 기획 등에 6개월가량 시간을 두고 추진하는데 이번 강좌는 3개월 정도로 다소 짧아서 그 점은 아쉬웠다”고 말했다. 신 연출가와 함께 강좌를 진행한 한혜인 보조강사는 “강의를 하다 보니 장애인들의 활동보조나 원활한 도움을 얻기 위해 보조강사가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원이 더 확대돼 더 많은 장애인이 인문강좌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문화예술위 “인문동행 강좌 확대할 것”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올 한 해 ‘일상이 풍요로워지는 보편적 문화복지’ 실현을 위해 사회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모두 1200여회의 인문강좌를 열었다. 인문가치 확산을 통한 자존감 회복, 위로와 치유, 사회적 연대감 제고 등을 위해 지난해부터 전개해온 ‘우리가치 인문동행 사업’의 일환이다. 이는 코로나19라는 위기를 겪으며 얻게 된 사회 전체의 상처를 서로 보듬고 치유하며 연대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사업이다. 외국인 이주민, 한 부모 가정, 자립청년, 소방공무원, 교사 등을 대상으로 지난해 연 인문강좌에 이어 올해 들어 노인과 장애인 대상 강좌를 추가했다. 실질적인 강좌 개설과 운영은 문화예술위의 사업 공모를 통해 선정된 16개 민간운영단체가 맡고 있다. 문화예술위 관계자는 “단순히 지식만을 전달하는 강좌가 아니라 인문학을 통해 참여자가 자신을 돌아보고 자존감 회복에 나설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강좌를 지향하고 있다”라며 “사업의 성과와 결과를 평가해보고, 개선할 점은 개선해 앞으로 사업을 보다 확대해나갈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정태겸의 풍경](54)충남 공주 정안천 메타세쿼이아 길 - 연향 대신 청량한 숲의 향기(2023. 09. 15 10:58)
2023. 09. 15 10:58 문화/과학
ㆍ 햇볕이 제법 온화하다. 비로소 가을이 제자리를 찾아온 느낌. 충남 공주 여행을 떠난 길에 입소문 자자한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찾았다. 메타세쿼이아가 양쪽으로 늘어선 아름다운 풍경으로 손꼽히는 곳은 단연 전남 담양일 테다. 하지만 공주 정안천 곁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안천은 금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류, 그러니까 금강수계에 해당하는 지방하천이다. 이 물길을 따라 곳곳에 충적평야가 만들어진다. 정안천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보물앞들, 새보들, 백보들, 오인들, 수촌들처럼 ‘들’이 붙은 지명이 유난히 많다. 물길이 만들어진 평야임을 보여주는 이름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풍광이 오밀조밀한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낸다. 정안천 생태공원 일대는 그런 면모의 정점을 이루는 곳이다. 과거 이 주변은 방치돼 있던 곳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자연생태의 가치가 부각하면서 2010년대에 이 일대를 공원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심은 것도 이즈음이다. 이제는 양쪽으로 울창하게 늘어선 나무가 터널을 만든다. 여름 내내 이 일대에 연 향기가 은은했지만, 지금은 메타세쿼이아의 청량한 향기가 그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정태겸의 풍경
[주간 舌전](놀이패 비판에) “수사가 화투 같은가”(2023. 08. 25 10:54)
2023. 08. 25 10:54 정치
“수사가 화투 게임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 조태형 기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8월 2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수사를 두고 “놀이패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자 이렇게 반박했다. 이 대표 수사를 둘러싼 놀이패 논란은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가 “검찰이 굳이 정기국회에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보내려 한다면 비법률적 요소로 민주당을 궁지에 몰아넣고 타격을 주려는 정치행위”라며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면 방탄이라고 비판하고, 가결되면 민주당이 분열됐다며 정치적 타격을 주려는 그야말로 놀이패를 만들려는 의도”라고 비판하며 시작됐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한 장관을 겨냥해 “정치한 지 올해로 20여 년이 됐지만 가장 비정상 저질 법무부 장관 같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 장관은 “이 대표의 범죄혐의 내용은 민주당과 전혀 무관하다”며 “이건 성남시민에게 현실적으로 대단히 큰 피해를 준 범죄혐의에 대한 수사”라고 반박했다. 한 장관의 발언이 알려지자 민주당은 재반박에 나섰다. 이소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8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 후 “(한 장관이) 이해를 잘못한 것 같다. 놀이패는 바둑의 정석에 나오는 내용”이라며 “(한 장관이) 자주 발끈하는데 발끈할 땐 상대방 말을 잘 듣고 정확히 이해한 다음에 하는 게 좋겠다”고 비판했다.
주간 舌전
“지난 1년 변화의 씨앗···‘기회수도 경기’ 필 것”(2023. 07. 07 11:29)
2023. 07. 07 11:29 경제
ㆍ1년간 10조원 외자 유치 ‘돈 버는 도지사’…김동연 경기지사 취임 1주년 인터뷰 사진 / 경기도 제공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취임 1년을 맞았다. 경제부총리 출신의 ‘경제전문가’답게 10조원 투자 유치의 성과를 거뒀고, 전임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과 차별화한 ‘기회소득’ 정책은 안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년을 대상으로 한 ‘기회패키지’를 포함해 그가 내놓은 다양한 민생 정책도 주목받았다. 윤석열 정부를 향해서는 쓴소리를 이어가며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비판의 수위는 더 높아가는 중이다. 수도권 유일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으로서, 차기 대권을 의식한 행보 아니냐는 정치적 해석도 있다. 10조원 외자 유치·임기 내 100조원 유치 달성 “기회의 새 물결이 강물처럼 넘치는 ‘기회수도 경기’를 만들겠습니다.” 김 지사는 취임 후 1년 동안 10조원의 외자를 유치하면서 ‘돈 버는 도지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세계 1위로 꼽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기업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스(미국) 연구개발센터와 전력반도체 기업 온세미(미국) 신소재 첨단 연구 및 제조시설을 각각 유치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반도체 노광장비 기업 ASML(네덜란드)의 화성 반도체 클러스터를 유치했다. 올해 들어서는 세계 1위 산업용 가스 기업 린데(미국)의 반도체 희귀가스, 수소 충전시설 및 산업용 가스 생산시설이 경기도에 터를 잡았다. 특히 삼성전자가 용인에 세계 최대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기로 하면서 투자 유치의 을 피웠다. 지난 3월 첫 해외 출장에서는 미국 5개 지역과 일본 2개 지역을 방문해 4조3000억원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산업용 가스 기업인 에어프로덕츠(미국) 산업용 가스 생산시설, 반도체 진공 장비 분야 세계 최고 기업인 알박(일본) 반도체 제조 장비 기술개발 연구소 등을 유치했다. 이와 함께 평택에 현대모비스 첨단 자동차 생산시설을 유치하는 등 공격적 투자 유치로 경제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김 지사는 “지난 1년간 ‘돈 버는 도지사’가 돼 국내외 가리지 않고 열심히 뛰어다녔다”면서 “그 결과 외자 10조원을 유치했으며, 임기 내 100조원 투자 유치라는 공약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경기국제공항, 경기북부특별자치도 등 핵심 공약을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각오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의 경우 이미 추진 조직, 예산, 조례 등 기반을 확보했고, 로드맵에 따라 시·군별 토론회가 진행 중이다. 김 지사는 “지난 5월 초 국회토론회에 국회의원 48명이 참여하는 등 많은 국회의원이 뜻을 함께하고 있다. 21대 임기 내에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를 위한 특별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경기국제공항은 도민 의견을 듣고 공론화 과정을 거친다면 충분히 추진할 수 있는 일로, 차근차근 제대로 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청년 기회패키지부터 예술인·장애인 기회소득까지 “지난 1년간 ‘변화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이제는 그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기회의 ’을 피울 차례입니다.” 경기도는 청년에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기회패키지’를 포함해 다양한 민생 정책을 추진 중이다. 저소득 청년에게 외국대학 무료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경기청년 사다리 프로그램’의 경우 본궤도에 올랐다. 7월부터 8월까지 미국 미시간대·뉴욕주립대 버팔로대·워싱턴대, 호주 시드니대, 중국 푸단대 등 5개 해외 유명 대학에 200명을 보낸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도내 청년에게 해외연수 기회를 제공해 교육 격차를 좁히고, 다양한 진로 개척의 기회를 마련한다. 함께 추진 중인 ‘경기청년 갭이어’는 1인당 최대 500만원의 지원금으로 청년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도전할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대학생, 미취업 청년, 이직 희망 청년 등 19~34세의 청년이 대상이다. 이들이 기획하는 진로 탐색을 위한 프로젝트·분야별 멘토링·역량강화 교육 등을 진행한다. ‘경기청년 역량강화 기회 지원’ 사업은 도내 거주하는 미취업 청년을 대상으로 취업에 필요한 자격 기준 획득 기회를 더 고르게 제공하기 위해 도입됐다. 토익 등 어학 19종, 한국사 등 국가 기술 자격 544종, 국가 공인 민간 자격 95종에 해당하는 응시료를 실비로 지원한다. 1인당 연간 최대 지원금은 30만원이며, 1개의 시험당 최대 10만원까지 3회에 걸쳐 받을 수 있다. 시·군별 사업비 소진 시까지 선착순으로 지원한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 6월 23일 화성 YBM연수원에서 열린 2023년 경기청년 사다리 프로그램 참여자 예비교육에 참석해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 경기도 제공 ‘경기청년 기회사다리 금융’ 사업을 통해 청년층의 안정적 금융 생활도 지원한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25~34세 청년을 대상으로 하나의 계좌에서 저금리 대출과 우대금리 저축을 이용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다. 경기도는 지난 6월 21일 하나은행과 1조원 규모의 대출을 공급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올해 안에 상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예술인·장애인을 위한 ‘기회소득’ 사업도 추진 중이다. 중위소득 120% 이하 예술인에게 연간 150만원, 중증장애인에게 월 5만원씩 6개월간 모두 30만원을 지원한다. 이에 더해 기회소득 지원 대상을 플랫폼 노동자까지로 확대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기회소득은 사회에서 가치를 창출하지만 보상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일정 기간 소득을 보전하는 것으로,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기본소득’과 차별화한 정책이다. 광역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직업훈련장애인 기회수당을 도입하고, 장애인 자산형성 지원을 위한 누림통장 대상자를 만 19세에서 만 19~21세로 확대하기도 했다. 정부의 공익형 노인일자리 축소에 대응해 자체적으로 노인일자리를 9만 개에서 올해 10만 개로 늘렸고, 결식아동 급식지원 단가는 1식 7000원에서 8000원으로 상향했다. 2022년 8월 수원 세 모녀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나흘 만에 ‘긴급복지 핫라인(010-4419-7722)’을 개설해 지난 6월 말까지 위기가구 1841가구를 지원했다. 과거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서도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지자체 최초로 경기도 거주 피해자 123명에게 500만원의 위로금과 월 20만원의 생활안정지원금을 지급했다. 경기 화성시 에이에스엠케이에서 지난 5월 24일 열린 네덜란드 ASM 기공식 모습(위).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이승열 하나은행 은행장이 지난 6월 21일 ‘경기청년 기회사다리 금융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경기도 제공 경기도는 전력 소비량의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RE100을 선도적으로 실천해 나가고 있다. 지난 4월 ‘경기 RE100 비전 선포식’을 갖고 2026년까지 원전 6기 규모인 9GW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 확충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0%까지 높이고 온실가스 배출량은 40% 감축한다는 목표다. 특히 공공분야의 경우 민선 8기 동안 전력 소비량의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할 방침이다. 31명의 주요국 대사와 만남…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김 지사는 지난 1년간 미국, 중국, 영국을 비롯해 모두 31명의 주요국 대사와 만남을 가졌다. 지난해 7월 27일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를 도청 집무실에서 만나 경기도와 영국 간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등 교류 확대를 논의했다. 크룩스 대사는 북한에서 영국대사로 근무한 경험 등이 있는 한반도 전문가로 꼽힌다. 이뿐만 아니라 미하엘 라이펜슈툴 주한 독일대사,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전 대통령, 챕 피터슨 미국 버지니아주 상원의원, 아리스 비간츠 주한 라트비아대사, 타마라 모휘니 주한 캐나다대사대리, 나이젤 토핑 유엔기후변화협약(COP26) 기후대응대사,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 아밋 쿠마르 주한 인도대사 등 다양한 국가의 외교사절을 만나 경기도와의 협력을 논의했다. 지난 4월 미국 출장 때는 미국 민주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주지사를 만나기도 했다. 해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는 미국 공화당 내 ‘잠룡’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만나 눈길을 끌었다. 서울을 찾은 디샌티스 주지사가 서울시장이 아닌 경기도지사를 만나 더 관심이 쏠렸다. (위부터)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 2월 28일 경기도청 구청사로 자리를 옮긴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지원센터에서 피해자들과 환담을 하고 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론 디샌티스 미국 플로리다주지사와 지난 4월 26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무역·투자 파트너십 행사를 갖고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 6월 30일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민선 8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경기도 제공 “남탓, 언론탓, 과거탓”… 윤석열 정부에 연일 ‘쓴소리’ 김 지사는 지난 6월 30일 경기도청에서 있었던 민선 8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윤 정부의 정치·외교·경제 분야 전반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날 김 지사는 “정치의 경우 양당 구조가 더욱 강고해지며 대화와 타협이 없는 완전 대결 국면으로 가고 있다”며 “흑백논리를 적용해 우리 편과 상대편을 노골적으로 나누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일방으로 외교를 하다 보니 중국과 척을 지는 모습인 데다 국제 경기 악화까지 더해지는 바람에 ‘외교 삼중고’를 겪고 있어 경제난이 가중된다”며 “외교 문제는 어느 나라와도 척지지 않는 개방된 통상 국가로 나아가도록 균형감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한데 (윤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말하며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며 “축구를 예를 들면, 공격으로 득점이 필요한 상황에서 ‘침대축구’를 하는 것과 같다. 균형 잡힌 대외경제 정책으로의 선회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김 지사는 “이 문제는 정부가 크게 잘못하고 있다”며 “지금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를 대신해서 그 당위성을 설명하고 국민을 설득하려고 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문제는 오염수 방류가 제일 싼 방법이고, 다른 방법들은 돈이 수백 배 든다는 점”이라며 “정부가 애초부터 오염수 방류라는 프레임에 말려들 것이 아니라 이런 방법에 대해서 강력하게 요구를 하면서 방류는 막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김 지사는 “지금이라도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해 유엔 해양법 위반에 따른 ‘긴급처분’을 주장해야 한다”면서 “(오염수 방류는) 우리 수산업 어민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민의 수산물에 대한 수요가 뚝 떨어지면 정말 큰 문제가 생길 텐데 (정부가)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도 “(윤 정부가) 남탓, 언론탓, 과거탓만 하면서 국정 난맥을 자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요한 정책 방향은 당정 협의를 거쳐서 발표해야 하는데, 거꾸로 대통령이 사고 치면 당정 협의에서 수습하고, 수습 과정에서 또 헛발질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지사는 “경기침체로 인해 취약계층의 삶이 더욱 팍팍해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그렇다면 지출 구조조정이나 또는 추경까지 해서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했다.
[꼬다리]재난 현장에도 은 피겠지만(2023. 06. 09 11:23)
2023. 06. 09 11:23 사회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5월 1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본청 계단에서 사연이 적힌 종이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이행 신청을 위해 서울의 한 주택도시보증공사 관리센터를 찾았다. 평일 오전 번호표는 이미 50번대를 넘겨 있었다. “하루에 150명씩 와요. 여기 집주인 이름 있나 보세요.” 안내를 담당하는 A씨가 책상 위에 붙은 A4 용지를 가리켰다. 북센, 동센, 영센, TF(태스크포스)…. 서울지역 관리센터명을 줄여 표기한 단어 옆에 ‘악성 임대인’ 10여명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TF 글자 옆엔 ‘빌라왕’ 김모씨의 이름도 있었다. 집주인의 이름은 목록에 없었다. “다행이네. 여기 (집주인) 이름만 없어도 양반이에요.” A씨가 대기석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서류 준비도 완벽하게 했으니, 접수하고 후련하게 자리 떠야지.’ 기대감은 2시간을 기다려 접수창구에 앉자마자 무너졌다. 임대인에게 카카오톡으로 전한 전세 계약 해지 통보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집주인은 내가 보낸 메시지를 읽으면서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대화창의 ‘1’이 사라진 것만으로는 ‘의사표시 도달’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집 문제는 늘 그의 아내와 상의했는데, 이는 법적 효력이 없었다. 첫 해지 통보를 인정받지 못하면서 모든 게 어그러졌다. 내용증명도, 나 홀로 전자소송을 통해 받아낸 임차권등기명령도 ‘무쓸모’였다. 지침도 모르고 자만했던 나 자신에게, 연락을 피하며 답장 한 번 하지 않던 집주인에게 화가 났다. 불똥은 접수창구 직원에게도 튀었다. 서류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접수가 불가하다”고 말하는, 표정 없는 얼굴이 야속했다. 평소보다 날이 선 목소리로 인사말을 건네고 자리를 떴다. 보험만 믿었는데…. 하늘이 노래진다는 말뜻을 알게 됐다. 하늘이 무너져도 돈은 벌어야 하니까. 다음날 어김없이 기자실로 출근했다. 점심시간 ‘02’로 시작하는 낯선 번호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날 접수를 담당한 직원이었다. 그는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전화했다”며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서류 목록을 점검하며 추가로 할 일도 차분히 설명했다. 잠깐이지만 그가 밉다고 생각한 것이 부끄럽고 민망했다. 내 일에만 몰두해 무심히 지나쳤던 장면도 떠올랐다. 직원의 오른 손목에 둘려 있던 보호대, 임대인이 사망한 임차인의 사례를 두고 대안을 찾기 위해 대화하던 심각한 얼굴들, 센터를 나서는 내게 “그래도 잘 해결될 것”이란 말을 덧붙이던 A씨까지. 하루 150명을 상대하는 직원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제도적 공백과 공사의 모호한 지침이 문제였을 뿐. 한 달 지나 다시 센터를 찾았다. 악성 임대인 목록은 20명을 넘겼다. ‘전세사기’라는 사회적 재난은 현재 진행형이다. 책임질 사람들은 빠진 그곳에 핏기도 웃음기도 사라진 얼굴의 임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갑은 아닐 ‘조력자’들이 있다. 다만 언제까지 ‘을끼리’ 선의에 기댄 채 살게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재난 현장에도 은 피겠지만, 지금 필요한 건 재난을 멈추고 예방할 제대로 된 정책이다. “전세는 사인 간 계약”이란 말만 되풀이하는 국토교통부 장관보다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센터 직원들의 모습이 몇 배나 더 진중하게 다가오는 현실이 씁쓸하다.
꼬다리
김상식 늦깎이 도전, 화려한 피우다(2023. 05. 19 11:24)
2023. 05. 19 11:24 스포츠
5월 7일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7차전에서 승리하며 챔피언 자리에 오른 KGC 선수들이 김상식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5월 7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한국프로농구(KBL) 챔피언 결정전 최종 7차전. 치열한 연장전 승부 끝에 홈팀 안양 KGC인삼공사의 100-97 승리를 알리는 버저가 길게 울리자 KGC 김상식 감독(55)은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 40여년 농구인생의 정점을 찍는 기쁜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그야말로 만감이 스쳐갔다. “순간적으로 울컥 감정이 솟구쳤어요. 두 코치(최승태·조성민) 얼굴을 보니 벌써 울고 있더라고요. 정규리그, 챔프전 통합우승에 동아시아 슈퍼리그(EASL)까지 3관왕. 이런 거는 남들한테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내 인생의 이야기가 아니고 다른 훌륭한 사람의 일로만 알았는데. 농구 지도자로서는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서울 SK와 벌인 챔프전은 역대급 드라마였다. 첫판을 지고 반격에 나서 4차전까지 2승 2패로 균형을 맞췄지만 5차전을 내줘 벼랑 끝에 몰렸다. 한 판만 더 지면 정규리그 1위의 영광마저 퇴색될 위기. 하지만 김 감독을 비롯해 팀의 기둥인 오세근과 배병준, 변준형, 문성곤, 박지훈, 오마리 스펠맨, 데릴 먼로 등 선수들은 저력을 발휘해 6, 7차전을 연승하며 대역전 우승을 완성했다. 지난해 10월 시작된 시즌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1위를 내주지 않고 정규리그 우승을 이룬 뒤 플레이오프, 챔프전까지 모두 승리한 와이어 투 와이어, 퍼펙트 우승의 신화였다. 서울 SK와 벌인 역대급 드라마 김상식 감독은 벅찬 감동의 시간을 열흘 정도 보내고 다시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사실 저는 평소에 눈물이 별로 없거든요. 다른 팀 우승 장면을 보면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데, 그런 기분을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정말 그럴까, 상상만 했는데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김 감독의 눈물 속에는 팀과 함께 땀 흘린 시간뿐 아니라 자신이 선수와 지도자로 걸어온 역경의 기억이 모두 녹아들어 있다. 특히 지도자로서 여러 팀을 전전하며 능력을 펼쳐 보일 기회조차 변변하게 얻지 못하고 마감하려 했던 순간에 감행한 ‘마지막 도전’이었기에 감격이 더 컸다. 김상식은 배재중, 양정고, 고려대를 거쳐 1990년 실업팀 기업은행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그의 아버지는 1956년 멜버른올림픽 국가대표 출신으로 당대 최고의 가드이자 은퇴 후 국가대표 감독, 체육 행정가, 금융계 CEO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체육사에 한 획을 그은 김영기 전 KBL 총재(87)다. 아버지가 한국농구 최고스타이자 성공한 지도자, 행정가로 명성을 떨친 분이다 보니 그의 행실은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큰 산과 같은 아버지는 그에게 힘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1997년 프로농구 출범 후 광주 나산에서 주전 슈터로 활약하며 ‘이동 미사일’이라는 멋진 별명까지 얻었던 그는 1999년 안양 SBS(KGC의 전신)로 트레이드돼 2003년까지 뛰다가 은퇴했다. 모기업이 파산한 나산 농구단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간판선수인 그를 현금을 받고 내준 게 트레이드의 이유였다. 평범한 지도자 생활을 꿈꿨지만, 은퇴 후 여정은 기억하기조차 힘든 시간이었다. KT&G(SBS 후신)에서 기업은행 시절부터 그를 이끌어준 은사인 김동광 감독을 보좌했지만, 2007년 성적 부진으로 김 감독이 중도 퇴진하면서 감독대행을 맡아 잔여 시즌을 정리해야 했다. 이게 그의 ‘감독대행 인생’의 시작이었다. 위기의 팀을 잘 수습했지만, 정식감독으로 승격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2007-2008시즌에는 이충희 감독을 도와 대구 오리온스에서 코치로 일했다. 이 감독의 시즌 중 퇴진으로 또 감독대행으로 남은 시즌을 치렀다. 이번엔 정식감독으로 승격됐지만, 2008-2009시즌 끝 무렵에는 그가 중도 퇴진의 운명을 맞았다. 이후 잠시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아 허재 감독과 함께 일한 그는 2012년부터 서울 삼성에서 다시 김동광 감독 아래서 코치로 일할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반복되는 운명처럼 2014년 김 감독이 중도퇴진했고, 3번째 감독대행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번에도 정식감독의 몫은 그에게 오지 않았다. 공백이 생길 때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선진 농구를 보고 온 것만도 3차례. 매사에 성실하고 겸손한 그는 항상 노력하며 준비했으나, 기회는 오지 않았다. 이후 허재 감독과 다시 만나 국가대표팀 코치로 일했다. 2018년 아시안게임 이후 허 감독의 사퇴로 운명 같은 4번째 감독대행을 맡아야 했다. 이후 감독으로 선임돼 일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대표팀 활동이 여의치 않게 되면서 물러났다. 그는 2022-2023시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프로팀 지도자 기회를 엿봤다.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감독 공백이 생긴 팀들은 대부분 젊은 지도자들로 빈자리를 채웠다. 그가 설자리는 없었다. 농구와의 인연 끊으려던 순간에 “농구는 저와 인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련을 모두 버리고, 마음을 정리하려고 제주도로 한달살이를 떠나 있을 때 허재 감독님 모친상으로 서울에 잠시 올라왔는데, 그때 KGC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지난 2년간 팀을 우승, 준우승으로 이끈 김승기 감독이 신생팀 고양 점퍼스로 이동하면서 생긴 자리에 그가 추천된 것이었다. 인터뷰 당일 구단과 즉석에서 사인한 그는 사실 큰 부담을 안고 시즌 준비에 뛰어들었다. 전성현이라는 KBL 최고슈터가 이적해 득점원에 공백이 생겼기 때문. 김 감독은 이를 선수 전원이 뛰면서 기회를 노리는 ‘모션 오펜스’로 해결했다. 배병준, 정준원 등을 영입해 많은 선수가 뛰면서 득점을 조금씩 나눠갖도록 했다. 쉼 없이 움직이는 농구를 하기 위해 선수들을 칭찬하고 장점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팀워크를 깨는 행동은 엄격히 견제했다. 선수의 대학졸업식에 찾아가고, 외국인 선수 어머니의 방한 때는 작은 선물을 하는 등의 배려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선수와 지도자가 서로 믿고 희생하는 소통의 농구, 즐거운 농구는 ‘김상식 리더십’을 설명하는 대명사가 됐다. 지난 5월 15일에도 김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군에 입대하는 변준형 등을 격려하기 위해 논산훈련소에 다녀왔다. 농구와의 인연을 끊으려던 순간 찾아온 마지막 기회에서 일군 그의 성공을 가장 기뻐한 이는 그의 부모였다. 김영기 전 총재는 자신의 그늘에 마음고생을 많이 한 아들을 늘 안쓰럽게 여겼다. 김 감독은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부모에게 늘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우승 뒤에 아버지께 전화 드렸더니 ‘어, 수고 많이 했어’라고 한마디 해주셨어요. 우리가 평소에 살갑게 대화하는 편은 아니에요.” 시즌 시작 전 6강 후보로조차 거론되지 않던 팀을 3관왕으로 이끈 그는 최근 구단과 1년 연장계약을 맺어 앞으로 2년을 보장받았다. 돌이켜 보면 그가 걸어온 가시밭길의 경험이 극적인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언제까지 지도자를 하겠다는 계획은 없어요. 힘든 과정을 너무 겪다 보니…. 제일 중요한 것은 선수들과 늘 즐겁게 최선을 다하자는 겁니다. 올해처럼 변함없이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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