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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슈퍼갑 네이버 ‘우려’에 스스로 권리 접은 창작자들(2024. 03. 11 06:00)
- 2024. 03. 11 06:00 사회
- <검정고무신> 사태 1년…만협은 왜 ‘이우영법’을 우려했나 네이버 웹툰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해 3월 11일 <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그가 평생 그려온 작품의 저작권 문제로 고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업계의 계약 행태가 비극의 원인으로 주목받았다. 정치권에서도, 만화를 즐겨보는 독자들로부터도 만연한 불공정 계약을 수정하라는 요구가 쏟아졌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과연 만화·웹툰 업계는 무엇을 바꾸었을까. 변화를 따지기에 앞서 <검정고무신>이 제작됐던 시점과 현재 상황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일부 플랫폼, 만화 제작사들은 <검정고무신> 사태가 현재 업계의 관행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개선할 것도 없다”는 논리다. 실제로 차이는 있다. 우선, 종이책으로 보던 만화가 ‘웹툰’ 형태로 진화했다. 이에 따라 생산 구조는 출판사-창작자에서 플랫폼-제작사-창작자로 변했다. 웹툰 제작도 분업과 전문화가 이뤄지며 과거보다 더 다양한 창작자들이 참가한다. ‘저작권’ 문제는 종전보다 더욱 애매해졌고, 공동으로 소유하는 예도 늘었다. 한 작품의 창작자가 4~5명이어도 더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작가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받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다. 출판사가 누린 ‘갑’의 지위가 플랫폼, 제작사로 옮겨졌을 뿐 작가는 여전히 ‘을’에 머물러 있다. 빛나는 한국 만화·웹툰의 어두운 민낯이다. 국회는 할 일을 했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법안을 만들고 통과를 호소했다. 2020년에는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2022년에는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 등이 주축이 돼 이른바 ‘문화산업공정유통법(문산법)’을 발의했다. 법의 방점은 창작자의 권리 보호에 찍혔다. 그래서 이른바 ‘검정고무신 사태 방지법’, ‘이우영 법’으로도 불렸다. 결과적으로 문산법은 산업계·학계 등의 비판을 받고 제21대 국회 임기 내 통과가 어렵게 됐다. 법안이 좌초된 것 자체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포괄적인 법조문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 역시 경청해야 할 내용이다. 그러나 해당 법안을 비판한 곳들에 한국만화가협회(만협) 등이 포함돼 있다는 것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심지어 이들의 우려 혹은 반대 논리에는 플랫폼이 지급해야 할 비용을 걱정하는 대목까지 있다. 이제 플랫폼, 제작사들에 ‘왜 문산법을 반대하느냐’, ‘기다리면 무료(기다무), 매일 열시 무료(매열무)는 작가와 협의해 기존처럼 유지할 수 있지 않으냐’고 물으면 “이 법은 창작자들이 ‘우려하는 법’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들이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지 않고, 숨을 수 있게 창작자 단체가 퇴로를 열어준 셈이다. 현직 웹툰 작가인 김동훈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 위원장은 “우리는 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이제 이런 기회를 다시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희생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의원 ‘입법’보다 센 네이버의 ‘우려’ 독자 제공 “네이버에서 ‘문화산업공정유통법’ 관련해서 우려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창작자 대표 단체인 만협에서 법안을 최초 발의한 유정주 의원실에 우려 표명을 해주면 좋겠다고 합니다.” 지난해 12월 13일, 한국만화가협회 임원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한 간부가 올린 글이다. 내용에는 해당 발언을 한 것이 네이버 웹툰 소속 누구인지까지 명시돼 있다. 글이 올라오고 딱 하루만인 12월 14일 실제로 만화협회는 해당 법에 대한 우려를 담은 공문을 유정주·김승수 의원실 등에 제출했다. 대화 내용대로라면 이상한 점이 많다. 첫째는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단순 플랫폼이다’라고 주장하는 네이버가 왜 문산법을 우려하느냐다. 둘째는 우려가 있다면 법안을 발의한 의원과 공개적으로 논의를 하지 왜 해당 법안 수혜자인 창작자 단체에 우려를 밝히느냐다. 네이버 웹툰 측은 지난 3월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쪽(유정주 의원실)에 의견을 전달하라고 한 적은 없다. 그러나 (네이버 웹툰 관계자 이름을) 도용한 거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협회와 네이버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의견을 교환하다가 ‘우려 입장이다’까지만 말했다”며 “네이버 웹툰이 만협에 지시하는 관계는 아니다”고 밝혔다. 이를 전해 들은 한 웹툰 작가는 “해명을 뒤집어 보면 ‘나는 이런 게 우려되네’ 한마디에 만협이 알아서 기었다는 것 아니냐”며 “정치, 조폭 만화보다 현실이 더 만화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글을 게시한 간부한테 연락해보라. 틀림없이 네이버와 똑같이 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대화를 올린 만협 간부에게 “네이버 측으로부터 문산법 관련 우려를 의원실에 전달하란 요청을 받은 적 있느냐”고 물었다. 네이버의 해명 그대로 “우려하는 입장이라고만 들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네이버 웹툰 관계자가) 유정주 의원실에 우려 표명을 해주면 좋겠다고 한다고 동료 간부, 작가들에게 말한 적 없느냐”고 묻자 공식 e메일로 질문을 접수해 달란 답이 돌아왔다. 재차 같은 내용을 질의했다. 질문과 관계없는 내용의 회신만 돌아왔다. 그런데 답변에는 “문산법 제정 취지에 적극 공감하며 법안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김승수 의원실에) 분명히 전달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는 만협도 법안을 우려한다는 네이버 설명과는 또 다르다. 추가로 해당 간부에게 문자 및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이에 의원실, 만협, 현직 작가 등 문산법 추진에 조금이라도 얽힌 사람들을 찾아서 이야기를 들었다. 김휘빈 웹소설작가연합 대표는 “이 법과 관련해서 변곡점이 된 시점이 (지난해) 11월이었다”며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법을 두고 플랫폼이 회기 종료와 함께 얼렁뚱땅 처리될 것을 우려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부터 법안이 통과하면 안 된다는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산법과 관련해 일했다면 네이버의 활약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현직 작가 역시 “참 이상한 일이었다. <검정고무신> 사건이 터졌을 때는 창작자 권리를 보호해 달라고 외쳤던 단체 관계자의 입장이 지난가을 기점으로 싹 바뀌었다. 가장 황당한 것은 ‘웹툰작가창작환경 개선을 위한 간담회’처럼 처우 관련 논의를 해놓고 현장 의견은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법안에 반대하는 창작자들의 주요 근거 중 하나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이다. 네이버 관계자 역시 이 문제를 지적한다. 그런데 2023년 5월 11일 국회에서 ‘웹툰계약서 실태조사를 위한 국회 토론회’가 열렸었다. 이 자리에는 김현희 당시 만협 부회장, 김동훈 당시 한국웹툰작가협회 부회장 등이 토론자로 이름을 올렸다. 실제로 토론에 참석한 김동훈 당시 부회장(현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 위원장)은 “유정주 의원, 김승수 의원 등이 참석해 문화산업 공정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문산법 내용에 관해 설명도 했다”고 말했다. 김승수 의원은 지난 3월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만화가는 ‘을 중의 을’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그들과 많은 논의를 해서 법안을 제출했다”며 “그런데 법안 처리 과정에서 플랫폼이 만화가들에게 법안이 통과하면 ‘그동안 너희에게 주던 혜택이 없어진다’고 했는지 만화가들이 굉장히 불안해했다”고 말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문산법과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한쪽 눈치를 본다. 그런데도 그 한쪽인 플랫폼은 여전히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들은 뒤로 빠지고 플랫폼 하부에 있는 집단이 전면에 나서 싸우고 있는 형국이다. 비단, 창작자 단체들뿐만 아니다. 눈치채지 못한 사이 독자들도 이들의 볼모로 잡혔다. 누가 이들을 제어할 것인가 문산법 통과의 부정적 효과로 두드러지는 것은 기다무, 매열무가 없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문산법 제13조에서 ‘판매촉진에 소요되는 비용 또는 합의하지 아니한 가격할인에 따른 비용 등을 문화상품 제작업자에게 부담시키는 행위’를 금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그동안 플랫폼이 광고를 위해 공짜로 쓰던 것을 돈을 내고 쓰라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법은 독자들에게 돈을 내라고 강제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3월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검정고무신 고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공동제작자인 이 작가의 동생 이우진 작가가 발언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문재원 기자 해당 조치는 논리적 근거도 있다. 기다무, 매열무를 통해 신규 독자가 유입되면 수익이 늘어나는 것은 작가뿐만이 아니다. 웹툰이 흥행하면 플랫폼 수익도 올라간다. 그런데도 그동안 광고에 들어간 비용은 사실상 작품 제공 대가를 받지 못한 작가만 지불했다. 법은 플랫폼도 이익을 얻는 만큼 정당한 비용을 논의해 지불하라는 것이다. 이마저도 거부한 플랫폼은 이번에도 대신 싸워줄 대상을 물색했다. 기다무, 매열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하면 플랫폼보다 법을 비판할 독자들이 차고 넘쳤다. 보도에 따르면 네이버웹툰의 연간 매출은 1조 5031억원이다. 2023년 1분기 3531억원, 2분기 3696억원, 3분기 3798억원, 4분기 4006억원을 기록하며 우상향 중이다. 상각전영업이익(에비타·EBITDA) 기준으로도 흑자전환이다. 네이버는 네이버웹툰의 IPO 전제 조건으로 ‘흑자전환’을 건 만큼 이는 사실로 보인다. 그럼에도 네이버 웹툰 관계자는 작가와 협의해 기다무, 매열무를 유지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운영상 어려움도 있고,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문산법이 찍힌 또 다른 이유는 ‘신진작가가 더 이상 나오지 못할 것’이란 논리다. 역시 제13조에서 ‘제작방향의 변경, 제작인력의 지정·교체 등 문화상품제작업자의 제작활동을 방해하는 행위’, ‘문화상품을 납품한 후에 해당 문화상품의 수정·보완 또는 재작업을 요구하면서 이에 소용되는 비용을 보상하지 아니하는 행위’ 등을 금지했다. 이로 인해 플랫폼 입맛에 맞는 기존 작가만 쓰지, 신진 작가는 발굴하지 않을 것이란 논리다. 이를 두고 김 대표는 “지금도 수정 시 비용을 청구하거나 수정 횟수를 제한하는 내용이 계약에 있지만 플랫폼이 위력을 이용해 작가에게 강제적으로 수정을 시키는 경우가 있다”며 “심지어 계약관계가 아닌데도 작가에게 이것은 안된다며 수정을 시키거나 내용에 개입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냥 늘 하던 행위를 법으로 금지시킨다고 하니 막고 싶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네이버 웹툰 관계자는 ‘<검정고무신> 사건 이후 스스로 개선한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상황이 다르다. 플랫폼이 개선할 것은 없다”고 일축했다. 현행 웹툰 업계의 계약은 주로 플랫폼-제작사, 제작사-창작자 간 계약으로 이뤄진다. 플랫폼과 제작사 간 계약은 작가조차 보지 못한다. 이들 계약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창작자의 계약이 공정할 수도, 불공정할 수도 있다. 갑-을-병으로 내려오는 구조의 최상단인 플랫폼이 책임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하도급 논리와 닮았다. 지난해 11월 나온 <검정고무신> 관련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이우영 작가와 출판사 형설앤이 2007년 맺은 사업권 계약과 2010년 맺은 양도각서의 효력은 계약이 해지돼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만 해당 계약 효력 정지 시점을 2018년 11월로 판시해 문제가 복잡해졌다. <검정고무신> 저작권은 이 작가 유족에게 돌려주면서 2018년 11월 이전에 발생한 이 작가의 사업권 계약, 양도각서 위반은 인정한 것이다. 결국 이 작가의 배우자 이지현씨에게는 약 4400만원, 열한 살 딸에게는 약 3000만원의 손해배상 의무가 생겼다. 양측 모두 즉각 항소했다. 이지현씨는 기자와 통화에서 “재판을 꼭 이길 것”이라며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사후 70년간 남는다는 저작권이 아니라 아빠가 끝까지 맞서 싸운 것들이 정말로 불공정하고, 나쁜 것들이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검정고무신> 사태의 본질은 창작자의 권리 보호 문제다. 만화책에서 웹툰으로 구독 방식이 변하고, 플랫폼과 제작사가 과거 출판사의 지위를 대신해도 마찬가지다. 본질이 바뀌지 않았는데 파생된 문제가 다를 수 없다. 이제 플랫폼은 왜 모든 업계 관계자들이 플랫폼 눈치만 보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볼 때다.
- 특집
- “네이버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자” 저자 원용진 서강대 교수(2021. 10. 08 14:52)
- 2021. 10. 08 14:52 사회
- 2017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이슈였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처음 국회 국정감사에 나왔다. 당시 네이버가 언론사처럼 움직이면서 기사 배치를 조작하고, 정작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해진 GIO는 “뉴스를 생산하지 않아 기존 언론사와는 다른 개념”이라고 했다. 사진/박민규 선임기자 2021년 국감은 ‘플랫폼 국정감사’로 불린다. 플랫폼 사업자의 독점적 지위와 사업 확장에 초점이 맞춰졌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지난 10월 5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카카오의 골목상권 침해에 관한 질문에 “죄송하다”, “반성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카카오 플랫폼으로 돈 없고, ‘빽’도 없고, 기술도 모르는 사람들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고 했다. 4년 사이 국정감사의 이슈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이해진 네이버 GIO가 2017년 국정감사에서 네이버의 정체성을 언론사가 아닌 “기술 플랫폼 회사”라고 강조했지만, 대부분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먼저 떠올렸다. 폴랫폼의 독과점에 따른 부작용이 심해진 올해가 돼서야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이 주요 이슈가 됐다. 플랫폼은 “외부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해주는 것에 기반을 둔 비즈니스”(책 <플랫폼 레볼루션>)라고 정의된다. 요약하면 플랫폼 기업은 ‘중개사업자’에 가깝다. 네이버는 홈페이지 하단에 “통신판매중개자이며, 통신판매의 당사자가 아닙니다”라고 공지한다. “상품, 상품정보, 거래에 관한 의무와 책임은 판매자에게 있습니다”라고도 밝힌다.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최근 플랫폼화된 네이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책 <메가플랫폼 네이버>(공저)를 냈다. 문화연구자인 그는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향한 비판적 분석은 많았지만, 플랫폼 기업이 된 네이버를 들여다본 연구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연구 논문을 검색해보니, 네이버의 뉴스 배치 등을 분석한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그는 책에 “네이버 같은 인터넷 사업자가 플랫폼화되는데 ‘온 사회가 다 들었다’는 점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썼다. 이용자의 참여와 흔적(데이터)으로 성장한 네이버가 책임은 회피한다는 비판이 주된 논지다. 원용진 교수를 지난 10월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3시간가량 이어졌다. -왜 네이버를 분석했는가. “네이버나 카카오는 요즘 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기업이다. 사실 네이버는 여러 플랫폼 기업의 은유이기도 하다. 네이버라는 이름의 자리에 카카오나 쿠팡을 넣어도 같은 분석을 할 수 있다. 이중 네이버는 플랫폼 기업으로 덜 다뤄진 측면이 있다. 네이버와 관련된 문제는 뉴스 생산과 유통에 집중됐다. 네이버는 종합 포털에서 플랫폼으로, 다시 메가 플랫폼으로 몸집을 키워가는데 비판적 분석이 보이지 않았다. 연구도 부족했고, 시민사회의 견제도 없었다. 국회도 플랫폼의 성장이 어떤 파장이 올지 전혀 신경쓰지 못했던 것 같다.” -네이버 밖에서 네이버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던 것일까. “올드 미디어가 돼버린 방송사는 시청자 1000명 정도를 기반으로 더듬더듬 수용자 파악을 하는 수준이다. 반면 플랫폼 기업은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들어온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네이버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난 20여년간 압축 성장을 했다. 초기 종합 포털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가 놓쳤던 이 모습을 들여다봐야 한다.” -책을 보면 시종일관 네이버에 비판적이지만, 동시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어지는 이야기다. 현재 플랫폼 기업 네이버를 다룬 담론이 적다. 참고할 문헌이나 자료 없이 강한 주장을 펼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이번 책을 계기로 논의가 두터워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일방적으로 비판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우리가 (네이버를) 잘 사용해왔고, 사용가치를 무시할 순 없다.” 네이버의 소상공인 대출 서비스 안내문 / 네이버 제공 -네이버를 ‘메가 플랫폼’이라 부르면서 ‘플랫폼화’됐다고 표현했다. “미국 FTC(연방거래위원회)에서는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에서 두개를 문제 삼는다. 약탈적 가격 책정과 수직 통합이다. 가격을 확 낮춰 시장점유율을 확장하고, 결국에는 시장을 독점하는 아마존식 영업을 약탈적 가격 책정 방식으로 본다. 한국의 플랫폼 시장에선 네이버나 카카오의 수직 통합은 진행 중이다. 유통을 담당하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생산까지 직접 하려는 시도가 점차 늘어난다. 플랫폼 중심의 산업구조 개편인데, 이를 플랫폼화라고 이름 붙였다. 플랫폼이 생산과정을 통합해 집어삼키는 것을 뜻한다. 모든 책임을 네이버에 다 지울 순 없지만, 사회가 전부 플랫폼화돼가는 데 우려를 제기해야 한다고 본다.” -네이버를 향한 지적은 예전부터 적지 않았다. 네이버에서만 이용자를 머물게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폐쇄적이라는 비판도 많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과거 포털로 불리던 시절 네이버나 지금의 카카오(다음)에는 그들이 제일 잘하는 비즈니스가 일정 정도 공론장 역할도 해줄 거라고 기대가 있었다. 지루하고 덜 중요하다고 여겨질 순 있는 부분들이다. 요즘은 다음 아고라나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에서 그런 기대가 있는가? 없다. 네이버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블로그는 이제 마켓이 됐다. (네이버가 인증한) 파워블로거의 대부분은 상품과 관련된 이들이다. 소비자가 네이버에서 누리는 편익도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종류의 것들이 가장 활성화됐다.” 공정위는 2020년 10월 6일 네이버가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며 26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네이버가 자사 쇼핑과 동영상 부분 검색서비스에서 우선 노출 알고리즘을 인위적으로 조작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네이버는 자사 쇼핑 입점 업체 상품에 1.5배 가중치를 부여해 화면 상단에 노출하는 방법을 썼다. 공정위가 확인한 알고리즘 조작 횟수만 6번이다. -플랫폼 없인 생활이 어색해진 상황이기도 하다. 플랫폼이 주는 편리함의 매력이 점점 커지는 것 같다. “모두 많이 무뎌졌다. 저는 플랫폼의 ‘배경화’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물고기라면 플랫폼이 물처럼 돼버렸다. 깔끔하고 편하니까 사용할 수밖에 없다. 장사하시는 분들도 플랫폼에 어떻게 노출될지부터 고민한다. 여기에도 다 비용이 들어가는데, 플랫폼에 들어갈 비용을 이제는 기본 전제로 깔고 있다.” -플랫폼을 시민의 사회생활 전체를 자원 삼아 온갖 상품을 만드는 ‘사회적 공장’에 가깝다고 비유했다. “한국은 자국의 플랫폼이나 포털서비스가 점유율을 차지하고 유지하는 드문 예다. 네이버의 성장에는 한국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크게 작용했다. 지금은 이용자들의 검색패턴 등을 데이터로 읽어내 쇼핑이나 뉴스제공에 활용한다. 과거에는 지식인과 블로그가 그랬다. 네이버가 이용자들의 아이디어를 무료로 사용했던 부분들이다. 이용자들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감사함을 표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정작 네이버는 ‘구글에 대항하는 삼별초가 될 것’이라며 애국심 마케팅을 펼친다.” -네이버의 이윤 창출은 이용자 데이터에서 나온다고 계속 강조한다. “아들이 미국에서 대형 플랫폼 회사에 다닌다. 한국 플랫폼 기업 몇곳에서도 일을 했다. 언젠가 한국으로 들어올 텐데, 학위가 있어도 학교로는 안 간다고 하더라. 학교로 가면 데이터가 없어 (플랫폼과 관련된) 일을 못 한다고 한다. 기업으로 가면 비즈니스 연구소가 있고, 그곳에선 사용할 수 있는 이용자 데이터가 축적돼 있다. 플랫폼은 데이터를 만져야지 이익을 낼 수 있다. 데이터가 있으면 맞춤형 광고와 서비스가 가능하다. 이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접속 기록으로 다 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는 어떤 서비스를 해주자, 이게 된다.” -이해진 네이버 GIO는 2017년 국정감사에서 ‘소상공인이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광고 플랫폼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소비자만이 아니라 생산자도 편익을 누리고 있다는 취지다. “자료를 보면서 네이버가 온라인 쇼핑 분야에서 1위라는 점을 확인하고 놀랐다. 매출의 상당액은 높은 포털 점유율에서 나오는 이용자들의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상품을 제공함으로써 나왔을 것이다. 생산자가 누리는 편익을 부인할 순 없겠지만, 모든 비즈니스가 다수에게 동등한 기회를 줄 것이라는 가설에 적극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네이버는 온갖 비즈니스를 다 만들어놨다. 네이버 지도에는 근처에 가면 갈 만한 곳이 자동으로 뜬다. 기계가 한다고 다 중립적일까? 네이버는 순위를 매길 수밖에 없다. 어떻게 배치하는지 정하는 룰 없이 순위를 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알고리즘을 보여달라고 하면 영업비밀인데 보여줄 리 없다.” 네이버 파이낸셜의 대출상품은 네이버 쇼핑에 축적된 데이터를 이용한다. 네이버에 기록된 판매기록 등으로 소상공인 신용도를 평가하고, 은행과 소상공인을 중개해 대출상품을 파는 식이다. 네이버는 정확한 신용도 파악이 안 돼 대출이 어려운 소상공인에게 대출의 문턱을 낮췄다고 홍보한다. 네이버가 개인정보를 사용하는 주요 근거는 이용자들이 잘 읽지 않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이하 방침)에 있다. 방침에는 ‘서비스 방문 및 이용기록의 분석, 개인정보 및 관심에 기반한 이용자 간 관계의 형성, 지인 및 관심사 등에 기반한 맞춤형 서비스 제공 등 신규 서비스 요소의 발굴 및 기존 서비스 개선’이나 ‘서비스 이용기록과 접속 빈도 분석, 서비스 이용에 대한 통계, 서비스 분석 및 통계에 따른 맞춤 서비스 제공 및 광고 게재’에 개인정보를 이용한다고 쓰여 있다. -플랫폼의 독과점이 심해질수록 비용을 더 많이 지불하는 이용자가 유리해질 것 같다. “모바일이나 웹에도 공간 배치의 제약이 있다. 누가 돈을 더 내느냐에 따라서 위치가 정해진다. 생산자 모두가 혜택을 받는 것 같지만 혜택은 선별적이다. 이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플랫폼에 예속되거나 종속되는 부분이 더 커지고, 지불해야 할 게 늘어난다. 노출 기준 중 하나인 소비자 평가 또한 점점 진솔해지지 않고 있다. 독점적 지위가 확고해져 다른 사업자가 들어올 수 없게 될수록 네이버의 비즈니스 방향은 돈을 더 내는 이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줄 것이다.” -책에서는 네이버의 잦은 인수합병도 비판한다. 기업 생태계에선 큰 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면서 선순환이 이뤄지는 게 보편적인데. “스타트업은 유지가 아니라 높은 가치에 기업을 파는 것이 목표라고도 하지만, 사회적 관점에선 기업 인수·합병(M&A) 자체가 늘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미국 아마존은 인수 제안을 거절한 유아용품 업체를 고사시키는 전략을 펴기도 했다. 아마존이 독자적으로 유아용품의 가격을 크게 낮춰 판매했고, 기존 업체는 결국 인수·합병됐다. 그리고 합병이 이뤄져 생긴 결과는 독과점이다. 덩치 큰 기업이 무차별적으로 기업을 사들이면서 독과점을 강화하는 방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해진 네이버 GIO가 2017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플랫폼 업계의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책의 1차 독자는 가족이었다. 이번 책을 본 자녀들이 내 의견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둘 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는데, 열심히 개발하고 프로그램 짜서 좋은 서비스 만들었는데, 거기에 공적 책임 부여하는 게 이상하다는 식이다. 조금 달리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디어를 잘 내면 호텔 없이 호텔업하고, 큰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런 발상이 천재적이라며 회자된다. 매끈한 아이디어로 돈을 벌어가는 것들. 다 좋은데, 아이디어를 고안한 사람이 잘나서 혼자 힘으로만 플랫폼 비즈니스를 키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용자들의 참여가 있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비즈니스 관점에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면, 이제 플랫폼에 사회적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이 더 많이 필요하다. 물론 어느 쪽이 정답인지 답은 없다.” -최근 한국 정부도 플랫폼 규제 움직임이 있는데, 여러 관점에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다른 나라를 보면 반독점법을 더 강하게 적용하거나, 아니면 플랫폼 기업은 일반 기업과 성격을 다르게 보고 별도의 공적 규제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의견이 있다. 아직 우리는 논의가 무르익진 않은 상황이다.” -앞으로 네이버를 비롯한 플랫폼 기업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까. “카카오뱅크의 성장을 보면 결국 보험·예금처럼 금융서비스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의 성장도 카카오뱅크의 약진에 힘입은 바가 크다. 단군 이래 가장 편한 결제 방식이 도입됐다고 하는데, 사실 이 또한 금융과 관련된 데이터가 대거 공개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자신들의 데이터를 내어준 시민들의 양보가 없었으면 성장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사업에서도 네이버나 카카오의 역할이 어느 정도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최근 <오징어게임>이 화제가 되면서 넷플릭스의 이익배분이 논란이 됐다. 국내 망은 망대로 쓰면서 비용을 거의 지불하지 않는 점도 이야기가 나온다.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이 있고, 투자 여력이 있는 기업은 현실적으로 국내에선 네이버와 카카오 정도다.”
- 네이버와 구글, 서로 닮아가나?(2018. 10. 15 14:19)
- 2018. 10. 15 14:19 경제
- ㆍ네이버, 모바일 첫 화면에 뉴스 사라져… 검색 중심으로 개편 네이버는 지난 10일 발표한 모바일 개편에서 뉴스를 뺀 자리를 ‘연결’과 ‘발견’이라는 화두로 채웠다. 뉴스 댓글 조작과 자의적 편집 논란을 벗고, 인공지능(AI) 기반의 네이버 서비스와 쇼핑을 전면에 내세우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개편안을 발표한 네이버 커넥트 행사에서 “3000만명이 주목하는 네이버 모바일 첫 화면은 가장 중요한 발견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며 “네이버의 본질인 연결만 남기고 모든 건 내려놓기로 했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10일 네이버 모바일 화면을 개편해 첫 화면에서 뉴스를 빼고, 그린닷이라는 새로운 검색 도구를 도입했다. 그린닷을 누르면 이미지 검색, 음성 검색, 장소 기반 검색 등 인공지능을 이용한 검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 네이버 제공 새 변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뉴스 서비스의 변화다. 개편안에 따르면 네이버 뉴스 배열자가 개입하는 뉴스 편집은 사라진다. 모두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콘텐츠나 이용자가 언론사를 구독하는 형태로 바뀐다. 위치도 첫 화면의 중심부에서 오른쪽 첫 화면으로 밀려났다. 이용자가 선택하면 아예 변방으로 밀려나거나 삭제될 수도 있다. 네이버 뉴스를 이용하려면 손을 한 번 넘겨야 하는 ‘허들’이 생겼다. 베타 서비스가 시작된 지 하루 지난 시점의 반응을 보면 호불호가 엇갈린다. 자주 뉴스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첫 화면을 비움으로써 더 깔끔해졌다는 반응도 나온다. 그린닷의 기술적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지난 11일 언론 대상 백브리핑에 나선 네이버 서치앤클로바 김광현 리더는 “뉴스를 주로 보던 입장에서는 개인적으로 불편하지만 평소 뉴스 소비를 하지 않은 10대를 중심으로 한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깨끗하고 좋다는 반응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네이버 측은 첫 화면을 개인화된 공간으로 만들자는 논의를 반영한 결과라고 했다. 베타 서비스 반응 엇갈려 검색창 아래 새로 생긴 동그란 녹색 단추인 ‘그린닷’은 네이버의 AI 서비스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첫 화면은 물론 네이버에서 여는 모든 페이지 아래에 나타나는데 뉴스를 클릭하면 함께 읽으면 좋은 뉴스를 추천해주고 쇼핑 화면에서는 관련 상품을 띄워주는 식이다. 그린닷을 눌렀을 때 화면 상단에 나타나는 키워드 3개는 평소 이용자의 사용 행태와 환경을 분석해 인공지능이 자동 추천한다. 예를 들어 최근 자주 찾았던 검색어는 다시 입력할 필요 없이 키워드가 뜨도록 지원한다. 첫 화면에서 왼쪽으로 화면을 넘기면 쇼핑서비스가 담긴 ‘웨스트랩’이 나온다. ‘요즘 유행’ ‘랭킹템’ ‘마이(MY)페이’ 등이 설정되어 있는데 사용자가 네이버 쇼핑에서 자주 찾은 상품들이나 사용자의 사용후기 점수, 좋아요를 누른 수 등을 토대로 자동으로 상품을 추천한다. 이번 모바일 네이버 개편은 네이버 이용자 중 60%가 검색, 25%는 콘텐츠, 15%는 쇼핑(커머스)을 이용한다는 자체 분석 결과에 따른 것이다. 검색 질의어의 40% 이상도 상품 검색이라는 게 네이버 측 설명이다. 검색 도구인 검색창과 그린닷을 중심에 두고 오른쪽에 기존 텍스트 위주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왼쪽으로는 쇼핑을 시작으로 사진과 영상 중심의 콘텐츠를 제공한다. 김광현 리더는 “익숙함 속에서 어떻게 새로움을 만드느냐가 숙제였다”고 말했다. 이번 네이버 개편안 발표는 공교롭게도 국회 국정감사가 열린 시기와 일치한다. 올해 국감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드루킹 사건으로 촉발된 포털 뉴스의 댓글 조작 논란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다. 네이버 측은 정치적 상황과 이번 개편은 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언론전문가들 역시 네이버 모바일 개편을 정치상황과 연결짓기보다 네이버의 성장전략 측면에서 취해진 결정으로 보고 있다. 김위근 한국언론재단 상임연구위원은 네이버가 콘텐츠·서비스 중심 포털에서 검색 중심 포털로의 방향 전환을 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포털이 기본적으로 콘텐츠와 서비스 중심의 포털인데 네이버는 검색 포털과 콘텐츠 포털의 중간을 지향하면서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 포털에서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실험적 길에 나섰다”고 말했다. 또한 “구글이 검색 중심이면서도 콘텐츠를 노출하는 전략으로 가고, 반대로 네이버가 콘텐츠 중심에서 검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향하는 건 흥미로운 지점이다”라고 봤다. 구글은 올해 검색 메인 화면을 바꿔 검색창만 존재하던 방식에서 아래로 화면을 스크롤하면 뉴스 등 개인화된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지난달 말에는 검색 서비스 시작 20주년을 맞아 인공지능 기술을 검색 서비스에 대거 추가했다. 핵심은 ‘디스커버’라는 단추다. 그린닷과 비슷하게 버튼을 누르면 인공지능이 이용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콘텐츠를 추천해준다. 검색이 입력에서 ‘터치’하는 방식으로 바뀔 것이라는 네이버 측의 전망과 일치하는 흐름이다. 네이버와 구글이 서로 닮아가는 형국이라고도 볼 수 있다. 통신사 뉴스 소비 줄어들 듯 국내에서 네이버와 경쟁하는 다음이 최근 모바일 메인의 색깔에 카카오의 상징이라 할 노란색을 강조하는 등 모바일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개편한 것도 네이버의 모바일 개편과 맞물려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지켜볼 대목이다. 네이버는 자체 시험 결과 뉴스 트래픽이 기존보다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뉴스를 비롯한 모든 화면 판은 이용자 선택에 따라 뒤로 밀릴 수도 있기 때문에 실제 적용했을 때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대체적으로 화면이 한 판씩 넘어갈 때마다 트래픽은 몇백만씩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한 언론전문가는 “네이버는 현재 유튜브 때문에 이용자들이 이탈한다는 위기의식이 강하다”며 “뉴스라는 위험한 상품이 이용자가 떠나는 데 기여하지 않길 바라는 심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 댓글 조작 논란에 환멸을 느낀 젊은 이용자들이 동영상·사진 위주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뉴스를 일단 밀어낼 필요가 있었다는 뜻이다. 김위근 연구위원은 그러나 아직은 시험기간이라 성급한 판단은 어렵다는 견해를 보였다. 다만 통신사의 트래픽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용자가 뉴스를 구독하는 형태로 바뀌기 때문이다. 김 위원은 “거대 언론사, 특히 통신사 뉴스 트래픽이 포털에서 굉장히 높은데 상당히 많이 빠질 것 같다”며 “구독으로 바뀌면서 뉴스 통신사들의 실시간 속보를 보기 어려워지는 구조로 가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 네이버 유럽 진출 ‘비장의 카드’는(2018. 09. 03 14:30)
- 2018. 09. 03 14:30 경제
- ㆍ‘네이버 프랑스’에 2600억원 추가 투자… 이해진 회장 제2의 ‘라인 신화’ 재현 주목 2016년 7월 15일 네이버의 글로벌 메신저 서비스인 ‘라인’이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라인을 10년 동안 준비해온 이해진 라인 회장(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은 “꿈을 꾸는 것만 같다”며 감격했다. 라인을 처음 준비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죽도록 했다. 수도 없이 밤을 샜다”고 소회를 털어놓기도 했다. 이 회장은 “네이버 설립 이래 처음으로 자금에 여유가 생긴 것 같다”면서 “다음 도전지는 미국이나 유럽”이라며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2016년 열린 네이버의 개발자 콘퍼런스 행사인 ‘데뷰 2016’에서 이해진 당시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향후 계획을 밝히는 이 회장의 주머니 속에는 이미 ‘유럽 구상’이 들어 있었다. 두 달 뒤 네이버는 2억 유로(약 2593억원)를 출자해 유럽 현지에 펀드를 조성했고, 유럽의 유망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센터를 설립했다. 제록스로부터 인공지능연구소도 사들였다. 유럽의 거점기지로는 유럽 문화의 중심지인 프랑스를 선택했다. 최근에는 프랑스에 설립한 ‘네이버 프랑스’에 2600억원을 추가로 투입하고 본격적인 유럽 시장 진출에 나섰다. 이 회장은 유럽에서 제2의 ‘라인 신화’를 일궈낼 수 있을까. 내년 초까지 유럽 특화된 SNS 선보인다 네이버는 8월 23일 네이버 프랑스가 발행하는 신규주식 200만주를 인수하고, 운영자금 1400억원 등 2600억원을 유상증자한다고 공시했다. 정보기술(IT)업계는 이번 대규모 유상증자를 네이버의 본격적인 유럽 진출 선언으로 해석하고 있다. 2017년 6월 19일 설립한 네이버 프랑스는 그리 큰 현지법인이 아니다. 사무실도 크지 않고 직원도 몇 명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유상증자 목적 중 하나로 “본격적인 유럽 사업에 앞서 사무실도 넓히고 직원도 채용하는 등 서비스 준비에 나서기 위한 차원”이라고 꼽았다. 최대 관심사는 네이버가 유럽에서 첫선을 보일 서비스다. 라인이나 스노우 등과 같은 기존 네이버의 글로벌 서비스는 아니다. 라인의 경우 일본에서 첫선을 보인 뒤 유럽에서도 한때 좋은 반응을 보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산 ‘와츠앱’이나 페이스북의 ‘페이스북메신저’에 밀려 가입자를 크게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해진 회장도 “라인은 유럽에서 초기에 좀 좋았다가 잘 안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네이버가 프랑스 현지에서 진행 중인 스타트업 육성과 맞물려 현지에서 개발된 스타트업 서비스의 사업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경우 서비스 개발시 철저하게 현지화를 목표로 하는 이 회장의 방침과도 맞아떨어지는 방향이다. 다만 네이버가 프랑스에서 본격적으로 스타트업을 육성한 지 1년 남짓 된 터라 아직까지 서비스 단계에 이른 사업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네이버는 유럽 공략을 목표로 국내에서 개발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SNS와 지역 커뮤니티 서비스가 조합된 새로운 SNS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며 “이르면 연말에,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서비스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역시 평소 “아이디어만 갖고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이 회장의 지론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과거 ‘V앱’의 성공사례를 들며 “일단 국내에서 기술을 개발한 뒤 아이디어를 합쳐 해외에 진출하는 게 성공확률이 높다”며 “V앱도 동영상 전송기술만 수년을 다듬었다”고 밝혔다. 네이버가 유럽에 출시할 SNS 서비스는 국내에서는 제공되지 않은 새로운 형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장은 2017년 7월부터는 이사회 의장직도 반납하고 글로벌투자책임자(GIO) 자격으로 매달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사업 구상에 전념하고 있다. 네이버가 유럽 진출의 교두보로 프랑스를 택한 이유도 흥미롭다. 프랑스가 유럽 문화의 중심지라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배경에는 다름아닌 ‘반(反) 구글’ 정서가 작용했다. 구글을 비롯한 미국산 서비스를 경계하는 프랑스 정부와 평소 구글 독점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온 이해진 회장의 소신이 일종의 동맹관계를 형성케 했다. 한국인 입양아 출신으로 프랑스 장관직을 지낸 플뢰르 펠르랭 코렐리아 캐피탈 사장. / 경향신문 자료사진 유럽연합(EU)은 7월 18일 “구글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로 지배력을 남용했다”며 구글에 43억4000만 유로(약 5조7000억원)의 과징금과 90일 이내의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누가 제일 먼저 기뻐했을까. 바로 프랑스 정부다. 프랑스 정부는 과징금 부과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성명을 내고 “탁월한 결정”이라고 지지했다. 벤자민 그레보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한술 더떠 “구글을 포함한 그 어떤 기업도 법 위에 있지 않다”고 구글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왜 프랑스인가, 이유는 ‘반 구글 동맹’ EU는 유럽의 인터넷 패권이 미국 기업에 통째로 넘어가고 있다는 데 커다란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예컨대 검색시장 점유율만 해도 구글은 유럽에서 90% 가까운 지배력을 보이고 있다. 유럽에는 한국의 네이버나 중국의 바이두 같은 포털도 없다. SNS 시장도 페이스북에 내준 지 오래다. 페이스북의 경우 친정인 미국보다도 유럽에서의 점유율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U가 최근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을 강화해 데이터 주권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도 사실상 구글이나 페이스북, 아마존 등의 미국 기업을 겨냥한 조치로 풀이된다. 프랑스는 구글 정서를 배척하고 독자적인 모바일 생태계 구축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유럽국가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많은 스타트업이 활동하는 국가도, 해외 스타트업 유치와 스타트업을 하기 위한 재정·행정적 지원이 가장 활발한 국가도 바로 프랑스다. 네이버도 이 같은 프랑스 정부의 의지에 손을 맞잡았고, 이를 바탕으로 해 유럽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다. 프랑스 정부와 이해진 회장의 ‘반 구글 동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디지털경제 장관(현 코렐리아 캐피탈 사장)이다. 펠르랭 전 장관은 서울에서 태어나 생후 6개월 되던 해에 프랑스로 입양된 한인 출신 정치인이다. ‘김종숙’이라는 어엿한 한국이름도 가지고 있다. 프랑스에 입양된 뒤 최고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엘리트 코스를 거쳐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초대 디지털경제 장관에 올랐다. 입지전적인 이력으로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양국 간 문화 교류 등을 목적으로 2015년 방한한 적도 있다. 펠르랭 전 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네이버도 프랑스 정부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 한성숙 현 네이버 대표도 펠르랭 전 장관 방한 당시 그를 만난 적이 있다. 네이버가 총 2억 유로를 투자한 유럽의 스타트업 펀드인 ‘K-펀드 1’이 바로 펠르랭 전 장관과 유럽의 금융전문가인 앙투안 드레위가 설립한 코렐리아 캐피탈이 조성한 펀드다. 네이버 관계자는 “프랑스 정부가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미국 서비스로부터 자국 시장을 지키는 것과 함께 유럽 내 모바일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며 “유럽 진출이 필요한 네이버와 윈·윈 차원에서 동맹을 맺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 [만화로 본 세상]네이버웹툰 (2018. 09. 03 14:29)
- 2018. 09. 03 14:29 문화/과학
- ㆍ괴기스럽고 소름끼치는 고시원 사람들 좁은 공간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옆방 사람 목소리가 다 들리는 얇은 벽과 공동화장실은 꽤 불편하다. 그런데 <타인은 지옥이다>는 이러한 주거불안과 불편을 공포로 전환하며 재미를 만들어낸다. 김용키 작가의 만화 의 한 장면.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은 원래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로부터 유래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사르트르는 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검색어 상위 결과는 모두 네이버웹툰 <타인은 지옥이다>(김용키 작가)가 차지하고 있어서다. 2018년 3월부터 연재를 시작해 무료 분량은 49화까지, 유료는 53화까지 열려 있는데, 연재 5개월차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인기나 주목도가 높은 편이다. 주 2회 목요일과 일요일 연재로, 일요 웹툰 중에는 1위, 목요 웹툰 중에는 4위를 차지하고 있다. 목요 웹툰 중에서도 별점 투표 수가 더 많은 작품은 1위인 <연애혁명>뿐이며, 댓글 수는 <타인은 지옥이다>가 전체에서 가장 많다. 추측성 댓글이 많이 나오는 호러·서스펜스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관심을 많이 끌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관심은 물론 재미도 이유겠으나, <타인은 지옥이다>가 지금 웹툰의 주요 구독자층인 20~30대에게 현실적으로 어필할 요소들을 다양하게 담고 있어서인 측면도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주거불안이다. 25살 주인공 윤종우는 선배가 차린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되어 서울에 왔다. 인턴 월급으로 당장 지낼 수 있는 곳은 고시원이 유일해, 그 중에서도 무척 저렴한 곳에 입주했다. 좁은 공간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옆방 사람 목소리가 다 들리는 얇은 벽과 공동화장실은 꽤 불편하다. 그런데 <타인은 지옥이다>는 이러한 주거불안과 불편을 공포로 전환하며 재미를 만들어낸다. 말없이 빤히 쳐다보는 206호 남자 고시원 생활을 막 시작한 종우에게 가장 큰 문제는 그곳 사람들이다. 고시원 주인 아주머니를 비롯, 기입주자들이 모두 어딘가 괴기하고 꺼림칙하다. 지저분한 외모의 204호 남자는 첫날 마주칠 때부터 말없이 빤히 쳐다본다. 종우가 얼결에 뭘 보냐고 톡 쏘아붙인 후로는 더욱 종우를 노리고 주시하는 모양새다. 206호 남자도 이상하다. 첫날 종우가 치약을 빌려달라고 하니 모기 눈꼽만큼 주고는, 샴푸를 빌려줬더니 열 번을 넘게 펌프를 눌러 써버린다. 이후로도 과장된 웃음과 이상한 농담으로 종우의 심기를 거스른다. 조직폭력배 출신인 듯한 205호 거구의 남자도 불편하지만 이들만큼 이상하지는 않다. 다음달에 나가겠다고 했는데 206호 남자와 다툰 다음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은 수상쩍은 일이지만. 가장 이상하고 두려운 건 203호 남자다. 외모는 이 고시원에서 상대적으로 평범한 편인데도 어딘가 소름끼치는 분위기를 풍긴다. “해체하고,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일”을 한다는 그가 고시원 부엌에서 대접한 ‘좋은 고기’를 한 점 먹고 종우는 이상한 맛에 욕지기를 느낀다. 나중에 203호 남자는 205호에 새로 들어온 스무 살 석윤에게도 ‘좋은 고기’를 대접하고는 “그거 사람고기인데” 하고 농담처럼 말한다. 청년세대의 현실과 잇닿는 또 다른 요소는 회사생활이다. 갓 취업한 사회초년생에게는 일을 가르쳐 주는 선배(사수)가 있게 마련인데, 종우의 사수는 유달리 ‘까칠’하다. 일을 가르쳐주기보다는 구박하고 야단치기 일쑤라 종우로서는 질문 하나 하기도 어렵다. 회식 자리에서 종우가 만취해 말실수를 한 후로는 종우에게 더 야박하게 구는 사수다. 업무를 주면서 서류를 내던지기까지 한다. 회사의 다른 사람들은 큰 문제가 없지만, 회사 대표인 선배도 때로 종우의 형편을 헤아리지 못하는 말로 종우의 부아를 돋운다. 고시원이 힘들어서 옮기고 싶다는 종우에게 고시원에서 살아본 적도 없는 부잣집 도련님이 그 정도도 못 견디면 사회생활 못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초년생의 회사생활을 구성하는 갖가지 곤경이 고시원의 공포와 함께 중첩되어 <타인은 지옥이다>에 그려진다. 갈굼, 무시, ‘꼰대질’ 등은 단독으로도 스트레스이지만, 다른 불안과 함께할 때 시너지를 일으킨다는 것이 종우에게서 잘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청년세대의 현실과 닿아 있는 요소는 <타인은 지옥이다>의 핵심 주제인 인간관계다. 지금의 2030 세대는 어려서부터 인터넷 네트워크와 비네트워크의 일상을 함께 경험해온 사람들이다. 인터넷 이전 세대에게는 비네트워크(오프라인)의 일상만이 현실이었지만, 이 세대들에게는 접속을 통해 접근 가능한 네트워크(온라인)의 일상도 현실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 두 일상을 함께 영위하면서 2030은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접속과 차단을 오프라인에서도 적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런 관계맺음의 형식과 타인을 보는 시선이 <타인은 지옥이다>의 전제이자 텍스트를 관통하는 정서를 이룬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사회도 지옥일까 이런 현실적 요소들을 많이 담고 있는 <타인은 지옥이다>지만, 관건은 그것을 어떻게 담아서 어떻게 보여주는가다. 지금까지 <타인은 지옥이다>가 보여준 것은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 대한 혐오에 가깝다. 만화의 과장된 그림체를 통해 못생긴 사람, 이상한 사람을 혐오스럽게 묘사한다. 그 주요한 대상은 ‘고시원’이라는 복잡한 공간에 살고 있는 다소 덜 가진 사람들이 되고 만다. 다른 이야기들 속에서는 무관심의 대상이거나 운 좋은 경우 친구나 동료가 되기도 하는 고시원 사람들이 <타인은 지옥이다>에서는 혐오의 대상으로, 또한 위협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지금 고시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 만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고시원 생활을 해보지 않고 풍문으로만 들은 이들이 이 만화를 즐기며 고시원에 대한 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울러, 지옥과 같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도 더욱 지옥 같은 존재로 변모해 가는 주인공 종우를 보여주는 것은 일견 똑똑하지만, 앞으로가 우려스럽다. 원래 사르트르의 말뜻은 <타인은 지옥이다>의 공포감을 조성하는 고시원 사람들과는 맥락이 전혀 다르다. 이상하고 살벌한 인격의 차원이 아니라, 실존 그 자체의 차원에서 타인은 지옥이다.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라고 사르트르가 작품을 통해 외쳤을 때, 그것은 마치 지옥처럼 가본 적이 없기에 알 수 없고 내가 하고픈 대로 할 수도 없는데 내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쳐서 내 주체성을 제약하는 그런 것이 타인이라는 의미였다. 그래서 ‘지옥이 있다면 바로 타인들’인 것이다. 하지만 <타인은 지옥이다>는 어떤 특이하고 괴기한 성격의 소유자인 타인을 지옥으로 상정하고, 주인공마저 그런 지옥 같은 타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만약 이후 전개에서 203호 남자를 비롯한 고시원 사람들이 정말로 사람을 고기로 “해체하고,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것은 사르트르의 원래 말뜻으로부터는 너무 멀어진다. 멀어질 뿐만 아니라, 혐오할 만한 지옥 같은 타인과 그렇지 않은 접속 가능한 타인을 분리해낼 것이다. 차단과 접속을 가려가면서 하는 것이 늘 잘못된 것은 아니나, 그것이 기본적인 삶의 태도가 될 때,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는 근거가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편견이 될 때, 그때야말로 타인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지옥일 것이다. 다행인 것은 타인이 늘 지옥인 것과 달리, 사회는 타인과 나의 공동체인 ‘우리’가 만드는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사회는 지옥이 아닐 수 있다. <타인은 지옥이다>의 초반부에서처럼 맞아죽는 사람을 못본 체하는 사람들의 사회가 아닐 수 있다. 천국은 못 만들더라도 지옥은 피할 수 있기를, 한때 ‘헬조선’이라고 불리던 곳에서 살며 기도한다.
- 만화로 본 세상
- [만화로 본 세상]네이버 연재 웹툰 (2018. 08. 13 14:50)
- 2018. 08. 13 14:50 문화/과학
- ㆍ성폭력 몰카 속 ‘사람’은 ‘콘텐츠’가 아니다 노회찬 의원의 죽음뿐 아니라 웹툰 속 차윤희의 폭행 영상, 그리고 누군가의 성관계 몰카까지…, 다른 이의 죽음과 고통 등 수용자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은 언론·포털·SNS 등에서 ‘콘텐츠’로서 유통된다. 웹툰 <내일>은 네이버에서 연재하고 있는 만화로, ‘내일’이라는 만화의 제목은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내일을 만들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만화의 주인공은 세 명의 저승사자다. 사람의 생명을 거두어야 하는 저승사자들이 엉뚱하게도 되레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막으러 다닌다. 저승사자들은 모두 저승 독점기업 ‘주마등’에 소속되어 있는 회사원이고 자살을 막으러 다니는 이 세 명의 저승사자는 ‘위기관리팀’ 소속이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자살이 급증하여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영혼들이 많아지자, 이를 조정하기 위해 주마등에서 저승사자들을 새로 편성하여 ‘위기관리팀’을 만들었다. ‘위기관리팀’은 자살 위험도가 높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문제 해결을 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그들이 자살하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라마 작가의 만화 의 한 장면 |네이버웹툰 자살을 막으러 다니는 저승사자들 위기관리팀이 만나러 다니는 사람들은 매우 다양하다. 학교에서 왕따당하는 학생, 대입을 준비하는 재수생,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다이어트를 이어가는 직장인,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이어가는 6·25 참전용사 할아버지…. 이들은 모두 ‘자살 위험 수치’가 높은 사람이지만, 정작 당사자의 주변에는 이를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주변에 사람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당사자가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거나 토로할 수 있는 여유조차 없이 괴로운 상황인 경우도 있다. 위기관리팀이 끼어드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들은 자살 위험도가 높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심리적인 안정을 찾게 해준다. 6·25 참전용사 할아버지처럼 주변의 사람들이 이미 없거나 떠난 경우에는 그의 마지막까지 함께 있어 준다. 위기관리팀은 누군가 자살하기 직전에 나타나 그들의 자살을 막는 게 아니라, 사전에 그들의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기 위해 꽤 오랜 시간 그들의 주변에 머문다. 최근 그들이 탐색하고 있는 사람은 강간상해 피해자 차윤희로, 그녀는 수년간 자해와 자살 시도로 병원을 수시로 드나들고 있었다. 윤희가 사건을 겪은 건 그저 평범한 어느 날의 일이다. 친구들과 놀다가 평소와 다름없이 귀가하던 중이었는데 생전 처음 본, 얼굴도 모르는 남성이 뒤따라와 폭력을 휘둘렀고 그것이 성폭행으로 이어졌다. 그것 자체도 끔찍한 폭력이었지만, 윤희의 고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떻게 유출되었는지 윤희가 폭행당하던 CCTV가 윤희의 동의 없이 온라인에 공개된 것이었다. CCTV에 찍힌 자극적인 내용은 곧 언론 보도를 탔고, 매스컴에까지 알려지면서 윤희가 폭행당하던 당시의 영상은 온라인에 반복적으로 공유됐다. 급기야 윤희의 신상정보까지 온라인에 알려져서 사람들은 윤희의 개인 SNS까지 침범해 댓글을 남겨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해자의 처벌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윤희가 사건을 신고하여 법정에서 재판이 이루어졌지만 가해자가 초범이라는 점, 반성의 기미가 보인다는 점 등이 참작되어 고작 징역 4년만을 선고받았다. 작중에서는 이제 그 4년간의 형마저 곧 끝나 가해자가 출소를 앞두고 있다. 온라인에 이미 피해자의 신상이 공개되어버린 지금, 윤희는 그날의 악몽이 다시 재현될까 두려워하며 불안해한다. 윤희와 같은 일이 만화 속에만 있는 건 아니다. 여성정책원이 2013년 발표한 <성폭력 피해자 사례연구를 통한 지원체계 개선방안 연구>에도 이와 같은 피해사례들이 목록화되어 있다. 연구에 따르면, 미디어에서 피해자의 개인정보나 신상이 동의 없이 공개된 점, 가해자의 가족들이 피해자에게 반복적으로 연락을 취하거나 피해자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유포하는 행위들(가해자의 가족들이 동의 없이 연락하는 사례는 <내일>의 차윤희에게도 동일하게 등장한다. 이전에 영화 <한공주>에서도 다루어졌다.) 인터넷 댓글로 인한 심리적 충격 등은 다양한 성폭력 사례 가운데에서도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2차 피해 요인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자극적 뉴스로 소비 성폭력 사건뿐만 아니다. 지난 7월 노회찬 의원이 별세할 때에도 자극적인 언론 보도가 끊이지 않았었다. 한 방송사는 병원으로 이동되는 과정을 라이브로 생중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자살보도 권고기준’이라는 게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것으로, 본래 2.0 버전까지 발표되었다가 노회찬 의원이 별세한 이후인 7월 31일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으로 최신화되어 발간됐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매우 세세한 항목까지 예시를 들어가며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예컨대 ‘자살’이라는 단어를 쓰기보다 ‘사망’이라고 쓰거나 아니면 문학적 표현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또한 이 가이드라인은 고인이 사망 직전 남긴 글에 관해서도 확인되지 않은 경우 섣불리 ‘유서’라고 단정 짓지 않고, ‘글이 발견되어 분석 중’으로 표현할 것을 권고한다. 문체부도 아닌 보건복지부에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는 건 매우 상징적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자극적인 뉴스로 소비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보건복지’ 측면에서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사실 그 이유에서만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죽음이나 고통에 대해 섣불리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유가족과 피해자에게도 큰 상처가 된다. 지난 7월 28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성관계 영상 몰카와 유통구조를 조명한 바 있다. 성관계 영상은 단순히 공개된 데에 이어 피해자의 신상을 터는 것으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고통받은 피해자가 자살하자 이 영상은 다시 ‘유작’으로 헐값에 판매되고 있다. 노회찬 의원의 죽음뿐 아니라 웹툰 속 차윤희의 폭행 영상, 그리고 누군가의 성관계 몰카까지…, 다른 이의 죽음과 고통 등 수용자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은 언론·포털·SNS 등에서 ‘콘텐츠’로서 유통된다. 사실 ‘콘텐츠’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굉장히 많은 것들을 뭉뚱그려 스스로 탈가치화된 단어로도 볼 수 있다. ‘콘텐츠’가 아는 것은 클릭과 트래픽일 뿐, 그 안에 말려 들어간 수많은 인격들에게는 쉽게 씻을 수 없는 상처만을 남긴 채 대부분 도외시된다. 언론과 SNS 미디어뿐만 아니라, P2P 사이트, 밴드 등에서 버젓하게 공유되는 숱한 콘텐츠들은 단지 영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사람들이다. ‘1 click is 2 many’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서 내걸었던 캠페인 구호다.(지금 한사성에서는 청와대 청원 사이트에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 성범죄 산업에 대한 특별수사’를 청원했다.) “당신에게는 한 번의 클릭이지만, 그 한 번의 클릭조차 피해자에게는 너무 많다”는 뜻이다. 어떤 콘텐츠들은 다른 사람들을 절벽으로 내몰고, 그 콘텐츠를 소비하는 단 한 번의 ‘클릭’은 누군가의 ‘내일’을 삭제한다. 이건 비단 몰카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성폭력 사건, 몰카,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죽음까지도 그저 자극적으로 소비되는 것이 우리 사회 ‘콘텐츠’ 시장의 추악한 모습이다. 지금 우리가 생산하고 소비하는 그 사람들은 콘텐츠가 아니다. 사람은 사람이다.
- 만화로 본 세상
- 네이버 자구책, 댓글 논란 끝낼까(2018. 05. 14 13:54)
- 2018. 05. 14 13:54 경제
- ㆍ메인화면 뉴스 제외하고 댓글 제한… 시민단체 “댓글 규제는 표현의 자유 침해” 네이버가 5월 9일 모바일 서비스 첫 메인화면에서 뉴스를 제외하고 온라인 뉴스서비스에 부분 아웃링크(클릭 시 외부 사이트로 연결)를 도입하는 등의 개편안을 공개했다. 논란의 중심인 댓글도 기사당 댓글 수를 3개로 제한키로 했다. 올 1월 네이버 댓글 조작 의혹이 불거진 이후 네이버가 발표한 개편안만 벌써 두 번째다. 9일 개편안을 놓고도 ‘파격적’이라는 평가와 ‘조삼모사’라는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이제 관심의 초점은 네이버의 자구책이 댓글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 여부에 쏠리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댓글을 법으로 규제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댓글 규제와 관련된 법 개정안만 10여개가 발의된 상태다. 이참에 2012년 위헌판결로 폐지된 인터넷 실명제를 재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반면 정보기술(IT)업계에서는 과도한 댓글 규제가 산업의 위축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입법화를 반대하고 있다. 5월 9일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네이버 뉴스 및 뉴스 댓글 서비스 개선안을 발표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IT업계 “매크로가 무슨 죄냐” 댓글 조작 파문을 불러온 ‘드루킹 사태’의 경우 그 원인과 배경이 다양하게 거론되지만 해법으로는 뉴스서비스를 제공하는 포털을 규제하는 방안이 거의 유일하게 거론되고 있다. 네이버가 부랴부랴 넉 달 새 두 번이나 개편안을 내놓는 동안 “포털에서 뉴스서비스를 아예 빼야 한다”, “뉴스 댓글을 없애야 한다” 등의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사안마다 워낙 파장도 크고 논란이 많은 탓에 아직까지 논의가 구체화되지는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대신 ‘댓글을 다는 행위’ 자체를 규제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쏟아내고 있는데, 대부분의 법안에서 거론하는 공통적인 규제가 바로 매크로 프로그램(이하 매크로)에 대한 사용제한이다. 매크로 프로그램은 동일한 업무를 자동으로 수행하도록 짜여진 프로그램이다. 드루킹이 사용한 건 댓글을 자동으로 달아주는 매크로였다. 국회에 제출된 댓글 규제 관련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대다수는 법안에 따라 표현상의 차이는 있지만 바로 이 매크로를 이용해 게시판에 글을 쓰거나 댓글을 다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처벌하는 게 골자다. 이들 개정안을 보면 매크로를 이용해 ‘조작’ 행위를 할 경우 법안별로 최대 징역 3년 이하 혹은 5000만원 이하 벌금 등에 처해지게 된다. 문제는 개정안들에서 규정하는 매크로 사용에 대한 규제 범위나 대상이 모호하고 해석의 여지도 분분해 법안 취지와 다르게 엉뚱한 피해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드루킹은 매크로를 ‘범행도구’로 사용하긴 했지만, 매크로는 어디까지나 사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개발된 프로그램이다. 게시판에 글을 자동으로 게재할 수 있는 매크로의 경우 온라인에서도 30만~40만원대에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이런 매크로의 경우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업체를 홍보할 때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온라인 게시판 등을 통해 광고·홍보영업을 하는 바이럴 마케팅 업계다. 바이럴 마케팅 시장규모는 1조5000억원으로 전체 온라인 광고시장의 30%에 이를 만큼 급성장하는 추세다. 매크로를 이용한 바이럴 마케팅의 경우 과대광고나 거짓홍보로 논란을 빚기도 하지만 비용 대비 광고효과가 높다는 점에서 중소업체들이 많이 찾는 기법이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매크로로 과도하게 바이럴 마케팅을 할 경우 사기 등 현행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며 “게시판 관리자가 기술적으로도 막는 게 가능한데 굳이 법으로 사용 금지를 할 필요가 있나 싶다”고 말했다. 오픈넷은 “매크로는 가치중립적인 ‘기술’ 그 자체이자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라며 “사람이 일일이 타이핑을 하면 괜찮고 기술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발상은 4차 산업혁명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인터넷 실명제를 재도입하자는 논의에 대해서도 한 차례 위헌판결이 났다는 점 외에도 문제의 인과관계를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손지원 변호사는 “인터넷 실명제 도입 이후 ‘하나의 댓글이 곧 한 명의 의견’이라는 의식이 생겨났고, 이는 댓글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당초 댓글이 신뢰하기 어려운 정보라는 개념이 자리잡혔다면 댓글 조작과 같은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법으로 규제하는 나라 없어 정치권의 댓글 규제 움직임에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들도 잇달아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매크로를 활용한 여론 왜곡 등을 막기 위해 포털에 대한 법적 규제가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인터넷상 각종 표현활동은 공론 형성과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 권장돼야 할 활동”이라며 “드루킹 사건을 계기로 한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후퇴시킬 수 있는 바람몰이 졸속입법 추진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포털의 댓글 서비스를 법으로 규제하는 해외 사례가 찾기 어렵다는 이유 등을 들어 입법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국회 입법조사처 최진응 입법조사관은 4월 30일 <이슈와 논점> 보고서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극히 일부의 정치적 통제가 심한 국가를 제외하고는 유사 입법 사례를 찾기 어렵다”며 “법적 규제를 강화할 경우 자의적인 법률 해석과 과도한 규제로 국민의 정치적인 의사표현을 제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 조사관은 이어 “민간의 자율적 조치를 통해서도 입법이 의도하는 유사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네이버가 9일 공개한 자체 개편안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어서 주목된다. 댓글 논란의 해결책 중 하나로 거론되는 네이버의 아웃링크 전면도입에 대해서도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현재 자유한국당과 일부 언론이 말하는 아웃링크 도입은 드루킹 국면을 활용하려는 정치권의 속셈과 광고수익을 높여 보려는 언론사들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나오게 된 것”이라며 “아웃링크 도입 시 당장 수천만 명의 사용자들이 불편함을 겪게 될 텐데 이에 대한 고려나 배려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등이 아웃링크 도입을 요구하면서 사례로 든 구글의 경우 네이버가 개편안을 발표하던 날인 9일 “자체 인공지능 기술을 결합한 뉴스서비스를 선보이겠다”고 선언했다. 댓글을 다는 행위 자체를 규제하기보다는 댓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에 대한 관리책임 부여와 처벌을 강화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동훈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매크로 댓글과 같은 기술적 조작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으므로 포털이 자체적으로 여론 조작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 대책과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하는 게 맞다”며 “포털의 여론과 관련된 사회적·법적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독일의 경우 구글의 검색어 자동완성 기능에 대해 최근 ‘인격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며 “현행 정보통신망법의 경우 포털에 대한 각종 면책조항이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하다. 이를 강화해 문제를 풀어야지 법으로 댓글을 규제한다는 건 초법적인 발상”이라고 덧붙였다.
- 네이버 이해진은 왜 억울한 걸까(2017. 11. 07 10:52)
- 2017. 11. 07 10:52 경제
- ㆍ국감장 출석해 “글로벌 시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억울함 토로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전 이사회 의장(현 글로벌투자책임자)이 국회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가 국감장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다. 이 전 의장은 1999년 네이버 창업 이후 대외활동을 꺼리며 언론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아, 인터넷 업계의 절대적 위상과는 반대로 ‘은둔형 경영자’로 불렸다. 10월 3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31일 정무위원회의 종합국정감사에 각각 증인으로 나선 이 전 의장은 뉴스 청탁 및 편집 조작, 포털의 불공정행위, 포털의 사회적 책임 등에 대해 집중 질의를 받았다. 주요 질문에 대해 “국외 사업과 기술 분야에 집중해 세부 내용은 잘 모른다”고 답변해 질타를 받기도 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부분을 봐달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목소리를 높여 또박또박 설명했다. 그는 “유럽이나 중국은 구글·페이스북과 같은 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서 “인터넷은 국내가 아닌 전체 시장을 봐야 한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왜 억울한 걸까. 이 전 의장이 처음부터 국감장에 나오겠다고 밝힌 것은 아니다. 10월 12일 국회 과방위가 방송발전기금 부과 등 포털의 사회적 책임, 실시간 검색어 조작 등에 대해 질의하겠다고 출석 요구했으나 이 전 의장은 유럽 출장 중이고 경영을 책임지는 역할이 아니라 해외투자를 책임지고 있다며 불출석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국회 과방위가 30일도 불출석하면 고발하겠다고 경고하며 고강도로 압박했고, 여야 모두 포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지난 27일 급거 귀국했다. 10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글로벌 투자책임자가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 ‘은둔형 경영자’ 이해진은 누구 네이버 측은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출석한다”며 이 전 의장의 출석을 설명했지만, 10월 20일 네이버가 청탁을 받고 특정 단체에 불리한 기사를 독자가 볼 수 없게 편집한 사실이 밝혀진 뒤다. 지난달 한 매체를 통해 프로축구연맹 홍보팀장이 네이버스포츠를 담당하는 ㄱ이사에게 수시로 ‘연맹을 비판하는 기사를 잘 보이지 않게 재배치해 달라’고 청탁했고 네이버 측이 이를 수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동안 네이버는 뉴스 편집 공정성이 불거질 때마다 “공정한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를 한꺼번에 무너뜨린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한성숙 대표가 사과문을 올렸으나 사태가 잠잠해지지 않자 직접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이 전 의장은 공정거래법상 ‘총수’(동일인)로 지정됐다. 자산 6조6000억원인 네이버는 공정거래법상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됐고, 동일인은 해당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법인이나 자연인이 지정된다. 집단 현황자료 제출 등 공시대상기업집단에 부여된 의무사항을 이행하는 최종 책임자다. 네이버 측은 특정 개인이나 일가가 그룹을 소유하는 기존 재벌과 구조가 다르고 이 전 의장의 지분도 4%로 미미하다고 했지만 공정위는 이 전 의장을 중심으로 한 총수 체제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이 전 의장은 3월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2선으로 퇴진했다 해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인 그가 사내에서 가진 지위가 여전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 전 의장은 30일 오후 5시20분쯤 잿빛 정장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국회 현관에 나타났다. 지금껏 개발자 출신 기업인답게 캐주얼 복장을 입었던 것과 다른 모습이었다. 국감 내내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고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30일 국회에서 이 전 의장은 뉴스 배치 조작에 대해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벌어진 데 대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네이버의 여론 조작 의혹에 관해서는 “뉴스 부문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한다”고 직접적인 답변을 피했고 “네이버가 언론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네이버는 뉴스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 언론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거대 포털을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구글 등 글로벌 IT기업의 전체 점유율을 봐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이 전 의장은 “구글은 세계 검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네이버가 이 상황에 한국에서 검색 점유율 70%를 지킨다는 사실만 봐서는 안된다”며 “한국에서 우리 기업이 1등을 하는 분야는 검색(네이버)과 메신저(카카오)밖에 없다”고 밝혔다. 10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종합국정감사에 일반증인으로 출석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글로벌 투자책임자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 뉴스 청탁 및 조작 고개 숙여 사과, 그러나 31일 국회 정무위 국감 질의 후 마지막 발언이 ‘정점’이었다. 이 전 의장은 발언을 신청해 “우리 회사와 제가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을 뼈저리게 받아들인다”며 “더 개선하고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바로 작심한 듯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인터넷이란 곳은 국경이 없다. 예전 오프라인 시장과는 다르게, 꼭 글로벌하게 봐야 한다. 싸이월드가 사라지면 그 매출이 신문사 등에 가는 것이 아니라 다 페이스북에 간다. 페이스북과 구글은 다 어마어마한 돈을 버는데 (국내에서) 세금도 안 내고, 고용도 안 된다. 유럽이나 중국 등에서는 미국 기업과 싸워 살아남기 위해 자국 기업이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만들고 그런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인터넷 시장을 볼 때 국내가 아니라 전체 시장을 봐야 한다”고 준비한 듯 말을 쏟아냈다. 이 전 의장은 “회사와 내가 부족했다”고 말하면서도 국내 인터넷 업계에 구글·페이스북 등 미국계 기업이 대거 침투해 경쟁이 치열하다며 토종 업체의 육성 필요성을 강변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과 국내에서 불공정 문제가 생긴 것은 다른 층위의 문제다. 국감장에서 지적한 것은 국내에서의 불공정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네이버 간편결제 서비스인 ‘네이버페이’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는지 살피기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면서 국내에서의 불공정 문제는 왜 못 푸는가. 당장 구글코리아는 2일 “국정감사에서 행한 이 전 의장의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이 전 의장이 네이버의 허위 클릭·검색어 조작 등 문제에 대해 ‘구글도 겪는 문제’라고 답한 것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 전 의장이 굳이 구글을 끌어들여 이런 논란을 만든 것은 아닐까. 구글보다 작은 회사라고 하지만 시가총액이 28조원인 기업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달라고 서운해 할 수는 있지만 그것도 국내 불공정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국감장에서 말했다. “모든 과학기술의 관건은 인간이라고 본다. 인간 없는 기술은 인류에게 흉기가 될 수밖에 없고, 이는 암울한 미래로 이어질 수 있다. 네이버가 1위 포털사업자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이번 국정감사 출석을 혁신의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 [특집]‘네이버 총수’ 이해진, 국감에 가나(2017. 09. 18 18:27)
- 2017. 09. 18 18:27 사회
- ㆍ‘동일인’ 지정을 둘러싼 논란… 합리적 결과냐, 과도한 규제냐 ‘예정된 수순’일까, ‘긁어 부스럼’일까. 올 국정감사장에 네이버 이해진 전 의장(현 글로벌투자책임자)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것도 현 직책인 투자책임자로서가 아닌 대기업의 ‘총수’로서 말이다. 네이버는 9월 4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57개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포함되면서 명실상부한 ‘대기업’이 됐다. 그리고 네이버의 총수를 의미하는 ‘동일인’으로는 이해진 전 의장이 이름을 올렸다. 네이버가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들어가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하지만 동일인으로 이 전 의장이 지정되는 건 네이버에도, 이 전 의장 자신에게도 가장 피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그 때문인지 공정위 발표가 난 직후 네이버는 “동일인 지정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정소송 검토 방침을 밝혔다. 이번엔 더민주에서 “이해진 나와야” 네이버가 반발하면서 사안은 이 전 의장의 동일인 지정이 합당한지를 놓고 갑론을박의 논쟁으로까지 번진 상태다. 이 전 의장을 다른 재벌 총수들과 같은 잣대로 바라보는 게 불공평하다는 반론도 있는 반면, “왜 그렇게 동일인 지정을 싫어하는지 국감장에서 들어보자”는 의견도 있다. 이 전 의장을 둘러싼 논쟁과는 별도로 경제민주화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 출범을 맞아 그간 논란이 돼온 네이버의 골목상권 침해문제 등 이른바 네이버의 ‘갑질’ 문제가 국감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취재 결과 여당의 한 의원이 올해 국정감사에 이 전 의장을 증인으로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 국정감사는 10월 12일부터 열린다. 국감에 증인으로 채택되면 적어도 국감 시작 일주일 전까지는 해당 증인에게 출석 통보를 해야 한다. 올해는 추석 연휴가 유난히 긴 탓에 출석 통보 일정을 감안하면 늦어도 9월 말까지는 증인명단을 확정해야 한다. 국감에서 증인채택은 소관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를 통해 확정된다. 이 때문에 이 전 의장이 증인 출석 요구를 받게 될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특이한 점은 이 전 의장 증인신청에 나선 곳이 민주당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과거 야당 시절 네이버의 국감 출석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당시 여당(현 자유한국당)의 공세를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포털 독과점과 편향적 언론관 등을 이유로 네이버를 출석시켜 추궁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민주당은 언론 자유를 침해하고 포털을 억압할 수 있다며 맞섰다. 2015년에는 여당에서 이해진 당시 네이버 의장에 대한 증인신청 요구를 하기도 했지만 민주당의 반대 속에 실현되지 않았다. 그랬던 민주당에서 올해는 왜 이 전 의장에 대한 증인신청에 나섰을까. 재계에서는 네이버가 대기업으로 지정되면서 정부의 본격적인 규제가 시작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네이버는 2013년 공정위 조사에서 키워드 검색 등과 연관된 다수의 불공정행위가 포착됐다. 당시 네이버가 1000억원을 출연해 상생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고, 공정위도 이를 받아들이면서 이른바 ‘자진시정’으로 불리는 ‘동의의결’로 처벌이 일단락됐다. 이후 네이버는 실제 자금을 출연해 집행했고, 포털 검색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사업 확장 과정에서 계열사가 최근 74개(자체 공시 기준)로 불어나는 등 ‘문어발식 확장’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주요 경제 공약으로 중소기업 활성화, 소상공인 보호 등을 제시한 문재인 정부에서 이제 엄연한 대기업이 된 네이버도 국감을 통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여당 관계자는 “네이버는 정보기술(IT) 업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이라며 “국감에서 골목상권 침해문제는 없는지, 갑질 문제는 없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네이버, 행정소송 안할듯 이 전 의장 증인신청에 대한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내부적으로는 여당이 이 전 의장 소환에 나설 경우 ‘포털 장악’ 등과 같은 부정적 여론을 조성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관건은 야당에서 증인채택에 동의해줄지 여부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경우 이 전 의장의 증인채택을 요구했던 전력 등을 감안하면 이에 반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네이버의 뉴스 배치 등이 좌편향돼 있다는 주장을 거두지 않고 있다. 국민의당의 경우 일단 안철수 대표가 김상조 공정위원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터라 동의 여부가 불투명하다. 김 위원장이 네이버의 총수로 이 전 의장을 지목한 직후 가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 전 의장을 애플 창업자인 고 스티브 잡스와 비교한 것이 원인이었다. 안 대표는 “정치가 기업과 기업가를 머슴으로 보는 오만함과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비판했고, 논란이 확산되자 김 위원장은 “무겁게 받아들이겠다”며 한 발 물러선 상태다. 네이버가 공정위의 결정에 반발한 사안은 크게 이 전 의장에 대한 동일인 지정과 현재 네이버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변대규 휴맥스홀딩스 회장 회사의 계열사 편입 문제다. 동일인 지정의 경우 네이버가 바랐던 시나리오는 동일인이 없는, 일명 ‘총수 없는 대기업’이었다. 네이버는 이미 지난해부터 올해 대기업집단에 편입될 것을 예상하고 부지런히 ‘총수 없는 대기업’이 되기 위한 사전작업을 진행했다. 작년 말 이 전 의장이 오랜 기간 재임했던 의장직을 내려놓고 “유럽 시장을 공략하겠다”며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전 의장은 올해 자신의 네이버 지분 일부를 매각하며 회사에 대한 지배력 유지나 자녀 세대로의 경영세습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네이버의 임원들이 지난해부터 네이버 지분을 순차적으로 매각한 것도 이 전 의장의 회사 지배력을 최대한 낮추기 위한 시도로 풀이하고 있다. 특정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될 경우 그 특정인이 임명한 임원의 회사 보유 지분도 지배 지분으로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작업으로 이 전 의장의 네이버 지분은 4.31%까지 줄었다. 주주 구성 현황만 놓고 보면 10.76%를 보유한 국민연금이나 5%대 지분을 보유한 해외 펀드들보다도 지분이 적다. 여기에 이 전 의장이 네이버를 제외한 다른 계열사 지분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점, 네이버의 경우 계열사 대부분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등 지배구조가 단순하고 투명한 점을 들어 민간기업으로는 국내 최초로 ‘총수 없는 대기업’이 된다는 게 네이버의 목표였다. 이 전 의장은 임원들과 함께 직접 김 위원장을 찾아가 네이버의 이 같은 취지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한때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던 이 전 의장 성향을 감안하면 ‘총수 없는 대기업’ 지정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 전 의장이 실질적으로 네이버를 지배한다고 볼 수 있다”며 동일인으로 이 전 의장을 지목했다. 공정위는 동일인 지정 이유로 단순 재무적 투자자를 제외하면 이 전 의장의 지분율이 매우 높은 점, 사내이사 임명 등에 이 전 의장이 유일무이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점 등을 들어 이 전 의장이 네이버의 총수가 맞다고 판단했다. 네이버가 동일인 지정에 실망감을 나타내며 법적 대응을 거론하긴 했지만 적어도 이 전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것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정위 시행령 등에 보면 동일인 지정 요건을 아주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며 “해당 조항과 이 전 의장의 위치 등을 봤을 때 동일인 지정은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 네이버의 한 관계자는 “내부 법무팀 등을 통해 검토해본 결과 동일인 문제에 대한 행정소송을 할 경우 승산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며 법적 대응 가능성이 낮음을 시사했다. 동일인 지정은 기업가에게 ‘족쇄’인가 다만 네이버는 변대규 회장 개인의 회사까지 네이버의 계열사로 편입된 상황만큼은 공정위에 이의제기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변 회장의 경우 이 전 의장과 친족관계도 아니고, 네이버와 지분이나 금전적으로 얽혀 있는 관계도 없다. 변 회장의 경우 이해진 전 의장의 요청으로 네이버 의장직을 수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회사와 전혀 관련이 없는 변 회장의 개인회사까지 공시의무 등을 지는 건 지나친 규제”라고 밝혔다. 네이버와 공정위가 소송전을 벌이지는 않더라도, 이 전 의장에 대한 동일인 지정이 과도한 규제인지 여부를 놓고는 한동안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가가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여러 규제를 추가로 받게 된다. 우선 본인은 물론 배우자 및 6촌 이내 혈족 등이 보유한 회사와 동일인으로 지배 중인 회사 간 거래내역을 모두 밝혀야 한다. 총수 사익편취 규제도 받게 돼 이 전 의장의 개인회사로 알려진 지음 등 3개 회사가 공정위의 감시 대상으로 오르게 된다. 무엇보다 기업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한 ‘총체적인 책임’을 동일인이 져야 한다는 부담이 생긴다. 당장 올 국감에서 이 전 의장이 증인으로 채택될 경우 스스로 “공개석상에 나서서 말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밝힌 이 전 의장으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룹의 총수로 지정된 마당에 출석을 안할 경우 국회 요구를 거부하는 것으로 비쳐져 마냥 거부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다음을 세웠던 이재웅 창업주는 이 전 의장의 동일인 지정에 대해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정부 도움 하나도 없이 한국과 일본 최고의 인터넷 기업을 일으킨 기업가를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비판했다. 이재웅 창업주의 비판 자체를 놓고도 “오만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하지만, 갈수록 기업의 규모나 형태가 다양해지는 추세에 기업인에 대한 일괄적인 동일인 지정 규제가 적절한지 여부는 계속 문제제기가 됐던 부분이다. 공정위 신영선 부위원장의 경우 지난해 6월 상호출자제한 대상기업 지정 자산 기준을 종전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올리는 법개정에 대해 설명하던 중 “자산 5조원의 카카오와 350조원의 삼성을 대기업으로 같이 지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차등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자산 5조원대의 동일인인 이 전 의장과 350조원대의 동일인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같은 동일인 규제를 받는 게 옳은지에 대한 의문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네이버가 이번 동일인 지정건을 놓고 “공정위의 기준이 그때그때 다르다”고 꼬집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상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규제하는 목적은 총수가 사적 이익을 위해 경영 전횡을 일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동일인으로 지정되면서 여러 개인적인 불편함이 발생할 순 있지만 규제나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경영활동을 했다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 특집
- [IT 칼럼]새로운 이해진과 네이버를 기다리며(2017. 09. 11 15:24)
- 2017. 09. 11 15:24 문화/과학
-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네이버를 공시대상기업집단(준대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이해진 전 네이버 창업자는 ‘동일인’으로 지정됐다. 그가 네이버와 여러 계열사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이었다. 그는 어쩌다 ‘총수’가 되었다. 이번 준대기업집단에는 ‘넥슨코리아’도 지정됐고, 김정주 현 NXC 회장도 ‘총수’가 됐다. 계열사인 네오플의 ‘던전앤파이터’ 매출 호조에 힘입어 자산규모가 5조원을 넘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정주 회장과 부인인 유정현 NXC 감사가 보유한 지분은 NXC의 70% 이상이다. 카카오도 김범수 의장의 친인척과 특수관계인들이 36% 지분을 갖고 있고 다음커뮤니케이션, 멜론 등을 인수·합병하면서 같은 상황이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지난해 10월 24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데뷰 2016’ 콘퍼런스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네이버 제공 인터넷 붐을 타고 등장한 네이버는 1997년 12월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카카오는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해 현 사명을 쓰지만 2008년께 김범수 NHN 대표가 사임하고 만든 회사가 모태다. 넥슨은 이 두 업체보다 빠른 1994년 설립됐다. 지분 구조나 지배력에서 본인과 친인척 위주로 화사를 운영하는 ‘재벌식’ 모델에서 보면 네이버는 예외적이다. 넥슨과 카카오라는 유사업종의 종사자들에 비하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해 가고 있는 건 명확해 보인다. 그렇기 때문이었을까. 네이버만 이와 관련해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이번 행보에 행정소송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카카오나 넥슨은 담담하다. 특히 이번에 발표된 네이버의 71개 계열사 중에는 변대규 이사회 의장이 일군 휴맥스홀딩스도 들어갔다. 괜히 남의 회사 이사회 의장에 참여했다가 17개 정도의 휴맥스 관계사들이 대거 따라 들어갔다는 것이다. 네이버는 바로 이런 지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싶어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한국 사회에서 투명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운영해 왔다. 또 그 의견에 동의해 동참한 이가 뜻하지 않은 상황에 맞닥뜨려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는 바로 이 지점을 문제제기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현재 행정소송은 검토 중인 사안일 뿐이다”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어쩌면 한국 사회의 많은 이들은 1979년 설립된 마이크로소프트나 1988년 9월에 설립된 구글, 2004년에 등장한 페이스북, 2011년 등장해 북미지역 10대의 사랑을 듬뿍 받은 스냅챗처럼 경영과 소유가 분리된 회사들을 동경해 오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인터넷과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흐름에 올라타고 등장한 기업도 궁극적으로 ‘재벌’과 유사한 방식으로 세를 확장하고 지배력을 키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에 네이버의 이번 지정에 대해서 많은 토론들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생각해봐야 할 건 다른 데 있는 게 아닐까. 거의 20여년 전 등장한 국내 인터넷과 게임의 대표주자들 말고 신진세력이 판을 뒤흔들었는가. 미국은 거대한 사업자가 있어도 새로운 신진세력이 또 등장해서 무섭게 크고 있다. 이번 기회에 ‘네이버’의 투명경영이 아니라 왜 네이버를 긴장시킬 새로운 서비스와 인물이 한국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까 하는 것도 함께 논의해봐야 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역동성이 떨어지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 IT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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