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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시간 줄였더니 사직률 감소했다(2024. 08. 05 06:00)
- 2024. 08. 05 06:00 사회
-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들 ‘주 4일 실험’…노동환경 개선, 지표로 확인 권미경 세브란스병원노조 위원장이 지난 7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노조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한국에서 일하면 시간이 부족하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 말고 밥 먹고 잠자는 등의 개인 시간과 친구를 만나고 취미활동 등을 할 수 있는 여가 말이다.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일과 삶의 균형’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하루에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평균 15.1시간, 한국은 14.8시간(최신자료 2018년 기준)이다. 상급종합병원 간호사라면 13시간대로 떨어진다.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은 2023년에 1년간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주 4일제 시범사업’을 했다. 3개 병동(신촌 2개·강남 1개)에서 30명(상·하반기에 5명씩 병동별 10명)이 임금 10% 삭감을 수용하고 참여했다. 비록 규모는 작았으나 365일 24시간 문을 여는 병원에서, 중증도가 높은 환자가 많은 상급종합병원에서 정부나 기관 주도가 아닌 노사 합의를 통해 이뤄진 실험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세브란스병원노조와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는 지난 7월 23일 국회 토론회에서 지난해 시범사업 성과를 발표했다. 이 실험을 통해 ‘주 4일제를 하면 노동자의 일과 삶의 균형을 비롯한 노동환경이 개선된다’는 것이 확인됐다. 당연한 결과 같지만, 주관적·객관적 지표로서 이를 확인한 것은 국내에선 사실상 처음이다. 그간 민간 사업장에서 주 4일제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추진한 사례들이 나왔으지만 연구집단과 함께 주 4일제 실험을 설계하고, 이 사업의 성과를 분석·평가한 건 세브란스병원이 처음이었다. 권미경 세브란스병원노조 위원장을 지난 7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노조 사무실에서,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소장을 지난 7월 31일 서울 중구 센터 사무실에서 각각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직률’ 감소가 의미하는 것 주 4일제 실험에 참여한 신촌 병동의 2023년 사직률은 전년 대비 3.6~6.2%포인트 감소했다. 강남 병동은 전년 대비 8.8%포인트 줄었다. 신촌 1개 병동에서 지난해 사직률은 ‘0%’였다. 전체 실험 병동의 병가 사용(1·2인실 병동 제외)은 시행 이전보다 절반가량 감소했다. 고객소리함에 들어온 연간 친절 건수는 1.5~2.6배로 증가했다. 수면장애, 근골격계 질환, 우울감 등이 줄었다. ‘프리젠티즘’(아파도 출근)도 감소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두 사람은 주요 결과 가운데 ‘사직률 감소’를 가장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3월 대한간호협회가 병원간호사회의 ‘2023 병원간호인력 배치 현황 실태조사’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 2022년 한 해 동안 병원을 사직한 간호사의 80.6%가 5년 미만 근속자였다. 해마다 신규 간호사의 사직률은 40~50% 수준. “노조에서 이 실험을 시작한 출발점은 높은 사직률이었습니다. 신입 간호사를 교육하는 데 몇 개월에서 1년 가까이 걸리는데, 그 전에 떠나버리는 거죠. 동료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제껏 병원 간호사가 정년퇴직한 사례가 없다고 합니다. 정년퇴직 사례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권미경 위원장)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소장이 지난 7월 31일 서울 정동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김종진 소장은 “중증도 높은 환자가 있는 병동에서 간호사 사직률이 0%가 나왔다는 건 주 4일제 효과 말고는 해석이 어렵다”며 “심리적 계약 관계, 즉 병원에서 당장 이걸 보장하지는 않더라도 예측 가능한 기대치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직률이 감소하면 노동자는 단절 없이 경력을 이어가고, 병원은 신입 직원을 교육해야 하는 부담이 줄어든다. 환자는 숙련도 높은 간호사의 간호를 받을 수 있다. 김종진 소장은 “사학연금 가입 대상인 대학병원이 아닌 다른 사업장이라면 퇴직자에 지급할 고용보험의 실업급여가 나가지 않는데, 이런 사회경제적 효과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출근일수 감소로 일과 삶의 균형 맞춰 세브란스병원 3교대제 병동의 간호사는 하루 평균 9~10시간 내외 일을 하고 휴식시간은 4~15분 남짓, 식사시간은 10분 미만으로 조사됐다. 주말 근무는 월평균 8~9일에 달했고, 야간 근무도 5일 정도 발생했다. 지난해 주 4일제 참여 간호사의 월평균 평일 근무일은 17.4일에서 12.6일로 4.8일 감소했고 휴무는 3일, 휴가는 0.8일 증가했다. 근무일이 줄면서 노동시간은 연간 469시간 20분 감소했다. 여기에 출퇴근 시간(연간 52시간 36분)도 줄면서 생활시간은 연간 521시간 56분이 늘어났다. 이번 실험에서 연구진은 4차례 설문을 진행하고 2차례 면접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주 4일제 근무자의 행복도(10점 만점)는 1차 조사 5.3점에서 4차 조사 때 6.2점으로 올랐다. 일과 삶 균형 정도는 1차 조사 3.7점에서 4차 조사 5.5점으로 높아졌다. 자녀가 있으면 만족도가 더 높았다. ‘시간의 쓰임’도 달라졌다. 주 4일 근무자는 미디어, 게임 등을 제외한 교제, 육아돌봄, 교육학습, 스포츠, 종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시간을 보냈다. “저는 어쨌든 하루 더 휴식 시간이 좀 필요했어요. 그게 주 5일제 근무하면 일주일에 이틀밖에 못 쉬니까, 지금까지 일하면서 길게 쉰 적이 거의 없는데, 이제 임금이 좀 깎이더라도 나한테 또 언제 있을지 모르는 기회니까 6개월 정도는 쉬면서 다니고 싶고, 다른 것도 좀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 주 4일제로 쉬는 시간이 느니까 몸이 회복돼요. 여가활동 시간이 좀 늘어나고 일 말고 다른 거 하는 시간이 좀 늘어나니까 스트레스에서 많이 벗어나서 좀 밝아지는 느낌이에요.”(면접참여자 A) “일단 변화는 휴가와 쉬는 날이 많으니까 여가도 즐길 수 있고, 애들 돌보는 시간도 많아지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았던 것 같아요. 한 달에 쉬는 날이 늘어 애들하고 집에서 같이 하는 시간도 늘고 주말에 쉴 때 나들이, 여행도 되게 많이 가고 해서 육아하는 사람들한테는 진짜 좋은 것 같아요.”(면접참여자 B) 권미경 위원장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아빠들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젊은 후배들은 ‘집-병원-집’의 일상에서 벗어나 공연을 보며 여가를 즐기고, 사람을 만나 사회관계를 회복하고 무엇보다 건강을 챙기게 됐다”며 “시범사업 참여 병동에선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한다”고 했다. 노조에서는 주 4일제 요구안을 만들기까지 해외 사례 검토를 비롯해 ‘이것이 가능한 것인가’란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또 간호사들의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여러 노력을 선행했다고 한다. “인수인계 시간을 줄여보고 일일이 찾아다니며 퇴근을 독려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기존 연차를 더 많이 붙여 쓰자는 제안도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효과가 떨어지고 (임의적인 것이라) 쉬는 것이 예측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출근일수를 줄이는 것이었습니다.”(권미경 위원장) ■주 4일제 1년 실험, 다음의 과제 권미경 위원장은 지난 1년의 성과를 두고 “노동자들의 삶이 좋아지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주 4일제가 필요한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며 “노조 입장에서는 ‘그다음’이란 과제를 받아들었다”고 했다. 올해는 같은 조건에서 병동 2개를 늘려 신촌 3개 병동, 강남 2개 병동(병동별 10명씩·총 50명)에서 주 4일제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노조는 내년에도 사업을 확대·지속하는 것을 목표로 교섭을 막 시작한 단계다. 올해 상반기 의·정 갈등으로 인해 병원 사정이 안 좋아진 것은 걱정되는 부분이다. 그는 “지금은 병동, 3교대제, 간호사 이렇게 제한이 있는데 이제는 상근직 간호사를 비롯해 누구나 신청을 하면, 꼭 5명이 아니더라도 6개월이든 1년이든, 유연하게 할 수 있는 모델이 저희 안에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역시나 재정이 관건이다. 이번 실험에서 각 병동에 대체인력 1.5명이 추가 투입됐다. 세브란스병원 3개 병원(신촌·강남·용인)에서 일하는 간호사 인력은 약 6000명. 지난해 10월 중간보고회 당시 연세의료원에 따르면 주 4일제를 전체 간호사에 도입하려면 연간 약 440억원이 더 필요하다. 김종진 소장은 “보건복지부가 지금 간호사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3교대 근무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주 4일제도 시범사업으로 추진해볼 만하다”고 했다. 그는 “세브란스병원 사례를 전면 적용하기 어렵다면 국립대병원, 특수목적 병원, 지방의료원 등 권역별로 30~40개 병원에서 시작해보면 어떨까 싶다”며 “정부 재정 혹은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되는 ‘시범사업’이라면, 임금 삭감 없이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는 민간 병원 중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한다면 중소·영세 사업장 위주로 정부가 추가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했다. 지난 7월 23일 국회 토론회에서 복지부는 주 4일제 시행을 확대하려면 병동의 안전사고 감소나 환자의 의료비 경감 등의 추가적인 데이터가 필요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김종진 소장은 “세브란스병원에서 한 건 노조에서만 연구비를 내면서 의학적으로 분석이 이뤄지지 못했고, 사례자 수가 적어서 고급 통계를 내기에 한계가 있다”며 “복지부 말대로 근거 데이터가 더 필요하다. 복지부가 시범사업을 진행하면 오히려 민간에서 하는 것보다 건강보험 데이터 등 방대한 자료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간호사 직군으로 한정해보면 주 4일제만이 노동환경 개선책은 아니다. 예측 가능한 교대제, 간호사 1명당 환자 수 줄이기, 주 4일제 등 적용 가능한 정책을 병원 상황에 맞게 교차 적용하면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김종진 소장은 말했다. ■주 4일제, 확산될 수 있을까 권미경 위원장은 “노조는 계속 ‘우리는 현장 사례를 하나 만든 것뿐이다’라고 이야기한다”라며 “지방의료원이라든지 인력 수급을 힘들어하는 공공영역 병원들에서부터 다른 병원들까지 주 4일제를 적용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최근까지도 많은 사업장에서 문의가 와 요구안 만들 때 회의 자료까지 다 공개했다”며 “우리 사례가 변화를 유인하길 바란다. 사회 전체적으로 주 6일 일하다 주 5일제가 도입된 것처럼 주 4일제가 법제화·제도화까지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주 4일제가 확산할 수 있을까. 병원, 철도, 공항 등 1년 내내 운영되는 사업장에서 주 4일제를 도입하면 서비스를 주 4일만 하고 3일은 중단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주 4일만 일한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동주민센터, 은행 등 시민 편의성이 중요한 사업장은 주 5일 서비스를 유지하면서 역시 그 안에서 노동자가 주 4일만 일한다. 두 경우에선 대체인력을 투입해야 하고 일자리 나눔 효과가 있다. 다만 중소·영세 기업의 인건비 부담 증가 등을 들어 경영계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김종진 소장은 “한국사회에서 주 4일제를 단번에 전면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며 “예산 문제도 크기 때문에 우선은 업종별·유형별로 한 3년 시범사업을 해보면서 그동안 다양한 오류들도 찾아내 바로잡으면서 우리와 적합한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당장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지 않더라도, 장시간 노동 문제 해소나 일과 삶 균형 지원 등의 명목으로 정부 주요 사업의 예산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병원과 같은 공공성이 강한 사업장부터, 중대재해 발생 빈도가 높은 사업장을 우선해 추진하면 시민들의 지지를 얻으면서 정책 취지에 부합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OECD 통계를 보면 2023년 기준 한국은 연간 노동시간이 1872시간으로 OECD 회원국 평균(1742시간)보다 긴 편이다. 독일(1343시간), 덴마크(1380시간) 등은 한국보다 훨씬 적고 가까운 일본도 1611시간이다. 김종진 소장은 “한국은 1953년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진 이후 노동시간이 계속 증가했고, 2000년대 들어서야 주 5일제를 하면서 감소세로 돌아섰다”며 “1950년대 이후부터 노동시간이 지속해 줄어든 독일 등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했다. “연간 노동시간 1500시간대까지 내려갔을 때만이 진정으로 돌봄 성평등이 가능하고, 지역 정치에 참여할 수 있으며, 기후위기에 조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요즘 ‘파리올림픽’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지하철을 운영하는 파리 교통공사가 주 4일제 시범사업을 하고 있어요. 세계 곳곳에서 지자체별로, 기업별로 주 4일 실험을 하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주 4일제가 아마 전 세계적으로 언젠가 우리가 해야 할 근무 형태로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오늘을 생각한다] 노동시간 단축 없는 저출생 대책(2024. 06. 21 16:00)
- 2024. 06. 21 16:00 오피니언
-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지난 6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2004년 합계출산율 최하위 국가로 자리매김한 지 20년 만의 일이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진 유일한 국가다. 2018년 합계출산율 0.98명을 기록한 이후 한국은 전인미답의 길을 걷고 있다. 새삼스레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으면 비상한 대책이라도 발표할 것을…. 일·가정 양립, 양육(돌봄), 주거 등 3대 핵심 분야 지원에 역량을 집중하겠단다. 제자리걸음이나 제자리높이뛰기나 결국 제자리일 뿐이다. 본질을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 외면하는 것인지, 정권이 바뀌어도 저출생 대책은 여전히 헛발질이다. 첫째, 문제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 “백약이 무효였던 원인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6년간 280조원을 써도 실패했으면 발상의 전환을 했어야지, 비상사태라면서 왜 재탕 삼탕인가? 주 40시간(연장근로까지 52시간) 근무제로는 외벌이 모델에서 맞벌이 모델로, 남성 생계부양 사회에서 보편적 생계부양 사회로 전환할 수 없다. 12시간 동안 집이 비는데 돌봄과 살림을 누가 언제 한단 말인가? 노동시간 단축 없는 저출생 대책은 가짜다. 주 35시간, 주 30시간으로 가는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주 69시간 노동유연화를 주창했던 윤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해결하겠다니 말이 되나? 주 69시간 일하면 나 자신도 못 돌볼 텐데 출산은 무슨! 주 69시간 노동유연화를 주창했던 윤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해결하겠다니 말이 되나? 주 69시간 일하면 나 자신도 못 돌볼 텐데 출산은 무슨! 주 35시간, 주 30시간으로 가는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둘째, 여성 고용단절 문제를 해결하라. 윤 대통령은 “현재 6.8%인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을 임기 내에 50% 수준으로 대폭 높이고, 현재 70% 수준인 여성 육아휴직 사용률도 80%까지 끌어올리겠다. 첫 3개월 육아휴직 급여 상한액을 월 250만원(현행 150만원)으로 인상하겠다”라고 밝혔다. ‘여성 육아휴직 사용률 70%’라니 현실 인식부터 글러 먹었다. 육아휴직은 안 잘려야 쓰는 것이고, 육아휴직 급여도 안 잘려야 받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2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만 25~54세 여성 중 42.6%가 결혼·임신·출산·육아·돌봄의 이유로 고용단절을 경험했다. 응답자의 76%가 혼인을 경험했고, 69.5%가 유자녀라고 답했으므로 자녀 돌봄으로 고용단절을 경험한 비율은 어림잡아 60%가 훌쩍 넘는다. 2005년 이후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앞서고 있는데 취업률·평균임금은 여전히 남성보다 낮고, 고용단절이라는 결정타가 도사리는 사회다. 여성 노동자의 관점에서 육아휴직·돌봄·주거정책으로 출생률을 제고할 수 없는 이유다. 이 밖에도 저출생 대책이 실패할 이유는 많다. 미래의 동료시민을 대상화하고 도구화하는 발상이라는 것부터 문제다. 그들은 우리 산 자들을 위해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태어나서도 안 된다. 이제 출산율에서 눈을 떼고 2018년부터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자살률에 주목하자. 염치가 있다면 살 만한 사회를 만들어 놓고 누군가 태어나길 바라자.
- 오늘을 생각한다
- 노동시간 단축 대신 외국인노동자 투입···이런다고 애 낳을 맘 생길까(2023. 09. 01 10:57)
- 2023. 09. 01 10:57 사회
- 지난 7월 31일 열린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 계획안 공청회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노동·여성단체 활동가들이 정부의 시범사업 추진 강행을 비판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저출생 원인으로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장시간·불안정 노동, 과도한 주거비용과 사교육비, 성 불평등 등이 지목된다. 합계출산율 0.78은 저출생을 야기하는 한국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지난 7월 31일 고용노동부는 저출생 대책 일환으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한국사회에 필요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비용 절감’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답습한 정책이라는 비판이다. 그 결과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실효성 없이 오히려 저출생을 악화시키는 정책이 되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지난해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서 제안하면서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3월에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전제로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하는 가사법 개정안을 발의해 논란이 됐다. 지난 5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주문했고, 이후 정책은 빠르게 추진됐다. 고용노동부는 비전문 취업비자(E-9)에 가사서비스 분야를 확대하고 이르면 올해 안에 필리핀 등 외국인 가사노동자 100여명을 국내에 도입하는 시범사업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최저임금제 적용을 받으며 최소 6개월 이상 서울시 가정에서 일하게 될 예정이다. 수요 얼마나 될까 전문가들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자녀를 양육하는 가구의 실제 수요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전국 성인 15~59세 2만2000명을 대상으로 한 ‘2022년 전국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일하는 양육자의 일-생활 균형을 위해 일하는 시간과 돌봄 시간 중 어떤 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이 필요한지도 조사했다. ‘양육자의 일하는 시간은 그대로 유지하고 주로 서비스나 타인의 도움을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것’과 ‘양육자의 직접 돌봄이 이루어지도록 주로 일하는 시간에 대폭 변화를 주는 지원을 하는 것’ 중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일하는 시간 보장’보다 ‘자녀를 직접 돌보는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성·연령·학력·소득수준과 관계없이 일관되게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 이민정책연구원이 발행한 이슈 리포트 <‘돌봄’의 관점에서 본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장주영 부연구위원)은 해당 조사를 인용하며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라는 정책의 방향성이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늘려달라는 국민의 요구와 일치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와 서울시가 시행한 수요조사를 공개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8월 28일 고용지방노동청 앞에서 열린 ‘이주·가사 돌봄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공동행동)’ 기자회견에서 송미령 가사·돌봄유니온 사무국장은 “고용노동부는 ‘내국인 종사 인력 감소와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어 저출산에 대응하고 여성경력 단절방지를 위해 외국인력 활용요구가 증가되고 있다’라고 했다. 어떤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인가”라고 비판하며 “수요조사를 했다면 그 결과를 공개해 달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수요조사와 관련해 “고용노동부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공개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외국인력정책위원회는 9월에 열릴 예정이다. 수요가 있어도 일부 소수 계층에만 해당되는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월 200만원 이상을 주고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는 가정은 현실적으로 소수에 불과하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른 국가들의 경험을 통해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출생률 제고에 효과가 없다는 것이 이미 알려졌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돌봄서비스를 시장에 맡기고 지불 능력이 있는 소수 가정에만 혜택(장기적으로는 혜택이라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을 주는 무책임하고 근시안적인 정책이다”라며 “대다수 다른 가정은 똑같은 시민이라도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출생률을 높이고, 성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복지국가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역행하는 제도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필리핀 가사노동자 고용으로 자녀의 영어 교육 효과를 기대하는 수요가 있다고도 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야말로 소수 엘리트, 일부 중산층에서 대졸에 영어를 구사하는 외국인 젊은 가사노동자를 국내 가사노동자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고용하려는 수요다. 극히 일부의 수요를 위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우려되는 정책을 도입해야 하나”라고 비판했다. 해당 정책의 수요가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예측되면서, 서울시가 지원하기로 한 1억5000만원 상당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초기 정착비용에 대한 타당성 논란도 이어진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현실적이며 여러 가지 면에서 위험할 수 있는 정책이다. 입주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경우 그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성폭력과 학대, 폭력, 장시간 노동 등 인권침해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라며 “출퇴근을 한다면 그들의 거주지는 어떻게 제공할까.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주거비용을 시에서 일부라도 부담한다면,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중산층 가정에 풀타임 가사노동자를 파견하기 위한 비용을 서울시민이 부담해야 한다면 시민들이 동의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9월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제안했다. / 연합뉴스 노동시간 단축과 기업 책임 강화 전문가들은 저출생의 해법을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앞서 보건사회연구원 실태조사가 시사하듯,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의 ‘장시간 노동’과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은 저출생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주희 교수는 “저출생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장시간 노동이 핵심 원인 중 하나다. 조직이 장시간 노동을 선호하면,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더 지고 있는 여성은 승진하기 어렵거나 심지어 경력단절이 되기 쉽다”라며 “그 결과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덜 일하는 불안정한 시간제 일자리밖에 재취업할 기회를 얻지 못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여성은 자녀를 낳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성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여성이 남성을 대신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보편적 생계부양자 및 돌봄자 모델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 일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게 하려면 당연히 노동시간 단축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시간 단축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의 부담과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앞다퉈 내놓는 저출생 대책에는 기업의 책임을 유도하는 맥락은 상당 부분 빠져 있다. 정재철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강사는 “인구위기는 국가적 접근으로 해결해야 하며, 기업 책임을 유도해야 한다는 발상 없는 지금의 위기대응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까지 가정의 출산 및 양육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본 집단은 기업이다. 그 같은 관점에서 보면 우리 기업은 전혀 저출생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미래 노동력 확보’라는 관점에서 출산 및 양육 과정의 혜택을 기업이 과도하게 누리는 만큼 기업도 출산 및 양육에 기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복리후생이나 노사협약이 아닌 국가적 차원의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정재철 강사는 19세기 영국의 아동 노동착취에 국가가 개입한 사례를 설명했다. 1842년 ‘아동 노동에 대한 왕립 위원회 실태 보고서’는 가혹한 아동 노동실태를 드러냈다. 이후 영국은 탄광에서 일하는 아동노동을 규제하는 ‘광산·탄광법’을 통과시켰다. 정 강사는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 아동 노동착취는 이익이지만, 총자본인 국가의 입장에서는 노동력의 손실이다. 아동은 국가가 보호하고 길러야 하며 개별자본에 맡기면 안 된다는 게 그간의 역사적 경험이다”라며 “이런 인식은 인구정책을 미래를 위한 사회투자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예방적 사회정책’의 등장으로 이어졌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동 양육지원이라는 ‘예방적 사회정책’의 혜택은 기업이 본다. 그런 관점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비롯해 세액공제·다자녀 우대정책 등 개별적·가족적·세대적인 접근은 해결책이 못 되며, 공동체적 관점에서 기업도 책임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저출생 위기는 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저출생’ 악화할 수도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한국의 저출생 위기가 심각하기 때문에 다양한 정책을 시도라도 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황무지에서 작은 낱알을 찾자는 것”이라며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주장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대표적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시범사업은 말 그대로 시범사업”이라며, 시범사업 결과를 보고 정책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 있다고도 했다. 시민사회나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접근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시범사업 자체를 막아야 한다고 반박한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일단 시범사업이 시작되면 끝이다. 이후에는 확대 추진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시범사업 추진은 본사업으로 진행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범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더라도 본사업에서 동일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주영 이민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부와 서울시는 어떻게든 긍정적인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사용인(신청 가구)과 노동자들을 모집할 것이다. 최대한 경력이나 나이·언어·능력 면에서 괜찮은 자격조건을 갖춘 사람들을 데려오려고 노력할 것이고, 사용인들도 마찬가지로 선발할 것이다”라며 “그래서 시범사업이 더 위험하다고 본다. 100명을 도입하는 시범사업에 성공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이게 정말 훌륭한 제도다’라고 과연 결론내릴 수 있을까. 이 제도를 확대한 이후에도 동일한 질의 수요와 공급을 보장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서울시는 시범사업 사용인 선정방식에 대해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이 또한 9월에 열리는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 열린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황무지서 작은 낱알을 찾자”며 시작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오히려 저출생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출산과 가족에 대한 서울 청년의 인식을 다룬 2023년 연구보고서 <세계 대도시 시민들과 비교한 서울시민들의 젠더와 돌봄에 대한 인식>(허정원 서울대 연구교수)에 따르면 자녀를 기쁨으로 느끼는 비율보다 부담이라고 느끼는 비율이 높은 도시는 15개 국가 대표도시 중 서울과 도쿄뿐이었다. 서울시민 응답자의 81%는 자녀를 경제적 부담으로 여겼다. 아이의 성장을 보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이라는 응답자도 68%에 그쳤다. 특히 자녀가 기쁨이라는 긍정적 가치에 대한 태도는 무자녀 응답자가 유자녀 응답자보다 30%포인트 정도 낮게 나타났다. 장주영 부연구위원은 최근 수행한 <‘돌봄’의 관점에서 본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에서 이 조사를 인용하며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젊은 층의 이러한 가치관을 더 강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 부연구위원은 “지금 정부가 젊은 세대에게 보내고 있는 시그널은 ‘저출생이라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여러분은 나와서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중요하지 않고 또 돈까지 드는 일이니 이를 저렴한 값에 해결해 주겠다’라는 것이다”라며 “지금 출산을 유도해야 하는 집단에 전혀 호소력이 없는 정책인 셈이다. 한마디로 ‘출산과 육아는 힘들고 보상은 낮은 일이다’라고 정부가 선언해 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돌봄의 핵심은 ‘비용’ 아닌 ‘관계’ 또 다른 문제는 준비 없는 졸속 도입이다. 정부가 빠른 속도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시범사업을 추진해도 될 만큼 한국사회는 과연 충분히 준비돼 있을까. 한국사회가 ‘돌봄노동’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지, 외국인노동자들을 불합리한 차별과 착취 없이 동등한 구성원으로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앞선다. 가뜩이나 평가절하된 돌봄노동의 가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으로 인해 더 저평가될 수밖에 없다. 이주희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보수로 가정 내 돌봄노동을 하게 되면 시장에서 소득을 얻을 수 없고, 유급노동에 종사한다고 해도 그 소득은 감소한다. 얼마나 소득과 재산을 늘리는가의 관점으로 한 사람의 노동의 가치를 평가한 탓에 우리 생활의 질을 높이고 공동체의 장기적인 발전에 기여하는 여러 다른 형태의 노동, 즉 돌봄노동과 자원봉사, 지역사회운동 등의 가치는 항상 저평가돼왔다”라며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이런 우리 사회의 유급노동 편중성과 돌봄 가치의 하락을 오히려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지급할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한 가구의 남녀 모두 장시간 더 일할 인센티브가 강화되고 돌봄은, 돈을 번다는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저임금을 주는 다른 노동자에게 맡겨 버릴 수도 있는 일로 더 평가절하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차별 등이 끊임없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둘러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하면 상황이 더 나빠지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당초 오세훈 서울시장, 조정훈 의원 등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과 관련해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한 주장이었다. 지난 8월 28일 ‘공동행동’은 기자회견에서 “안전장치 없이 단순히 비용 절감만을 목적으로 이주 가사·돌봄노동자를 확대하는 것은 외국인 차별과 착취에 앞장서는 일과 다름없다”라며 “이런 중대한 이슈가 제기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더구나 한 번의 토론회, 한 번의 공청회라는 최소한의 절차만 거친 채 시행을 앞두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섣불리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하게 된다면 피해는 아동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장주영 부연구위원은 “돌봄의 핵심은 관계이다. 다문화 수용성이 아직 확고한 사회적 가치로 자리 잡지 못했고, 특히 저렴한 돌봄노동 제공이라는 목적으로 외국인을 도입하자는 이 정책의 관점에서 외국인 대리양육자의 의사결정권과 훈육을 포함한 육아 가치를 부모가 존중하고 권한을 위임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라며 “대리양육자의 권한이 존중받지 못하면 그에게 양육을 받는 아동의 애착과 신뢰 형성 등 정서적 발달에 영향을 미치고, 학령기 아동의 경우 이주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형성하거나, 존중의 대상이 아닌 사람에게서 돌봄을 받는 자신의 가치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라고 말했다. 이런데도 왜 하려는 걸까 정책 효과는 불투명한 반면, 부작용이나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다각도에서 제기됨에도 외국인 가사노동자 정책이 정부의 저출생 대책으로 급부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저출생이 문제라고 다들 입을 모으지만, 정작 저출생 위기의 핵심인 ‘돌봄’에 대해서는 진지한 관심과 고민이 없는 정책 결정자들의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경아 교수는 “남성 정치인이나 고위직의 정책 결정권자 중에서 돌봄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19세기 경제학에서 가사노동의 가치를 따지는 논쟁이 있었을 때 모든 남성 경제학자들이 가사노동을 비경제활동, 주부를 잉여인구로 분류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아직도 성장과 안보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저출생이나 기후변화를 얼마나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라고 말했다. 그 배경에는 ‘형님문화’로 대변되는 정치권 특유의 수직적 위계질서가 있다. 이는 새로운 사회문제에 대해 안일하고 관습적인 대응만 반복하게 만든다. 신경아 교수는 “정치권의 형님문화는 한 사회의 시대적 과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정치를 철저히 ‘남성 집단의 위계서열과 그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른 권력의 나눠먹기’로 만들어 왔다. 이런 배타적인 조직 속에는 새로운 시각이나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들어가기 어렵고, 그 내부의 구성원들이 개방성이나 변화를 위한 지향성을 갖기도 어렵다”라며 “동일시와 동질성, 충성심의 크기에 따라 지위와 권력이 부여되기에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새로운 이슈가 터져나와도 이런 조직 구도에서는 그것의 심각성을 재빨리 감지하고 중요성을 인지해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작업을 기대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합계출산율 0.78은 저출생을 야기하는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과 같은 정책은 ‘성장’이나 ‘비용 절감’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했던 기존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답습한다. 문제의 원인을 문제의 해법으로 내세운 셈이다. 저출생을 야기한 사회의 기반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한국의 저출생 위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 표지 이야기
- “노동시간 단축은 저출생·불평등 해결 열쇠”(2023. 04. 21 13:56)
- 2023. 04. 21 13:56 사회
- ㆍ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인터뷰 지난 3월 정부는 주 노동시간을 현행 52시간에서 69시간까지 늘릴 수 있는 노동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에 대해 정규·비정규, 장시간·단시간, 성별을 망라한 “모든 노동자의 시간주권을 침해하는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4월 11일 연평균 노동시간이 1916시간(2021년 기준)으로 우리(1915시간)와 비슷한 칠레는 주 근로시간을 45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아이슬란드는 노동자 상당수가 주 4일제(35~36시간) 적용 대상이며,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주 35시간)도 주 4일제(주 32시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 교수는 오늘날 “근로시간 단축은 더 논의할 것도 없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말하며, 특히 저출생, 소득불평등, 4차 산업혁명 등 굵직한 시대적 과제들이 중첩된 한국사회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이를 해결할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주 4일제 도입이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면서도 이와 함께 새로운 노사관계, 사회보장제도 확대 등의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 김창길 기자 -지난 3월 정부는 주 노동시간을 현행 52시간에서 69시간까지 늘릴 수 있는 노동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노동시간 선택권 확대’라는 미명하에 초장시간 노동을 ‘유연화’로 포장해 추진 중이다. 가뜩이나 후진적인 장시간 노동 관행을 완화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노동시간을 늘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연히 일자리 감소, 노동자 건강 악화, 시간당 실질 임금 하락 등 많은 문제가 예상된다. 또 이번 개편안에는 근로자대표제도 정비 방안이 나와 있다. 그중 하나로 근무 형태나 방식이 다른 직종·직군의 노동자들이 본인에게 맞는 근로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이는 노동시간 개편이 특정 직종·직군에만 적용되는 경우, 사용자가 해당 노동자의 동의만 받아도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현행법에 따르면 노동시간 변경을 위해서는 사용자가 과반수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와 서면합의를 해야 한다). 정부 개편안은 이를 개별 노동자들과 하겠다는 건데, 사용자가 하겠다는데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교섭력을 가진 노동자가 얼마나 될까.” -여론의 반발에 대통령은 ‘주 60시간 이상 노동은 무리’라고도 했다. “지금 젊은 세대는 자신을 갈아 넣어서 산업 역군이 되는 일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세대가 아니다. 민주화·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인구집단이기에 산업혁명기의 장시간 노동으로 되돌아가는 퇴보에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다. 이번 개편안의 또 다른 문제는 정부가 국회 및 노동계와 충분한 토론 없이 이를 발표했다는 점이다. 이 정부의 일관된 특징 중 하나다. 정부가 내놓은 개편안의 상당 부분이 입법 사항이다. 여론의 반발이 있자 그제야 이야기를 듣겠다고 한다. 그마저 특정 노동인구, 특정 세대에 한해서만 의견 수렴을 하고 있다.” -정부는 개편안을 두고 노사에 ‘시간주권’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시간주권은 노동자가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정부의 개편안은 모든 노동자의 시간주권을 침해한다. 장시간 노동은 국내에서는 점점 소수가 돼가는 핵심노동자(정규직)의 과로, 주변부 노동자(비정규직·간접고용 노동자·플랫폼 노동자 등)의 단시간 노동 및 실업을 유발한다. 핵심노동자는 휴식과 재생산·재충전의 기회가 박탈되고, 주변부 노동자는 저임금으로 휴식시간의 질이 심각하게 훼손된다. 또 핵심노동자의 다수는 남성이고 주변부 노동자의 다수는 여성이다.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면 누군가 옆에서 도와줘야 하는데, 여성이 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계속해서 주변부 노동을 하게 된다. 결국 남녀 모두의 시간주권과 평등이 훼손된다. 게다가 이미 법정근로시간 밖에서 장시간 일하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 지난해 8월 고용노동부는 3년간의 특별연장근로(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이 정하는 ‘특별한 사정’ 있는 경우 한시적으로 1주 최대 64시간까지 근무 가능) 인가 현황을 분석·발표했다. 특별연장근로는 노동부 장관의 허가가 있어야 가능하다. 2022년 1~7월 특별연장근로 인가 건수는 모두 5793건으로, 2021년 같은 기간에 견줘 2523건(77.2%) 늘었다. 놀라운 수치다. 행정부의 독단으로 장시간 노동은 이미 상당히 확대되고 있다.” -최근 칠레 의회가 주 4일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한국과 달리 세계는 주 4일제 실험 등 노동시간 단축을 향해 가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모든 선진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사실 더 논의할 것도 없다. 첫째,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 확대와 연결된다. 노동운동이 주도해온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의 휴식과 여가 확보뿐만이 아니라 기술 발전으로 인한 실업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둘째,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혁신을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짧은 노동시간은 기업으로 하여금 생산성 향상을 위한 더 나은 방식을 찾도록 한다. 이는 기술혁신으로 이어진다. 노동시간 단축이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술혁신과 창의성 증진으로 이어지므로 사용자에게도 나쁜 선택이 아니다.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 등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을 영감(inspiration)이 아니라 땀(perspiration)에 의한 것이라고 논평한 바 있다. 노동자를 쥐어짜내 성장하는 장시간 노동으로 가게 되면 앞으로 더욱 기술혁신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셋째, 장시간 노동은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낮추고, 소득불평등, 성불평등을 강화한다. 앞서 언급했듯 전일제 노동자들이 장시간 일하게 되면, 다른 한쪽에서는 단시간 노동, 불안정 일자리가 증가하게 된다. 장시간 노동자는 시간이 없어서, 시간제 노동자는 실질적인 돈이 없어서 총수요가 촉진되지 않는다. 노동자가 재충전하지 못하면서 인적자원의 손실도 발생한다. 넷째, 저출생은 필연적이다. 단시간 노동이나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여성이나 청년이다. 이들은 아이를 안 낳음으로써 단시간·불안정 노동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시간이 길어지면 돌봄, 자원봉사, 시민참여 등 공동체를 위한 의미 있는 활동이 위축된다. 장시간 노동으로 너무 바쁜 노동자들은 공동체에 관심을 두지 못하고 힘이 세고 영향력이 큰 미디어에만 의존하게 된다. 장기적으로 볼 때, 노동시간 단축은 경제 전반에 또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지금 정부는 그러나 이런 혜택은 염두에 두지 않고 당장 사용자가 원하는 데로만 쫓아가고 있다.” 지난 4월 10일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민주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주 4일제를 공약으로 내놓았지만, 크게 쟁점은 되지 못했다. “워낙 다른 이슈가 많았던 원인이 크겠지만, 주 4일제가 절대다수의 노동자에게 해당하는 일이 아니었다는 점도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1인 자영업자,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그리고 근로기준법 적용이 안 되는 직종들에는 주 4일제 공약의 울림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주 4일제를 도입하면 대기업 정규직에만 혜택이 돌아갈 거라는 비판이 있다. “국내에 주 4일제를 도입하는 데 두 가지 걸림돌이 있다. 첫째는 저임금과 임금불평등이다. 임금불평등도가 높으면 저임금은 물론 고임금 직종 또한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된다는 조사가 있다. 임금이 낮으면 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어 당연히 장시간 노동을 선호하게 된다. 고임금은 노동시간에 대한 보상이 크고 휴식에 대한 기회비용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임금일수록 일을 더할 인센티브가 생기는 것이다. 둘째는 비표준적 고용관계다. 노동자로서 고용계약을 맺지 못하는 특수고용직, 자영업자로 오분류된 플랫폼 노동자와 같은 위장된 1인 자영업자가 비표준적 고용관계에 놓여 있다. 이들은 법정근로시간이 아무리 줄어도 이를 적용받지 못한다. 특히 이들은 ‘노동하는 시간’과 ‘노동하지 않는 시간’에 대한 구분이 잘 안 된다.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단시간 일감이므로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신경을 쓰고 있어야 한다. 고용관계라면 노동시간에 포함될 수 있는 대기시간이다. 기업들은 점점 더 정상적인 고용관계를 맺기보다 업무를 극단적으로 외주화하려고 한다. 과거에는 정규직 노동자로 고용했던 직종을 독립계약자, 1인 자영업자에게 맡기는 전략을 쓰고 있다.” -주 4일제 도입과 함께 어떠한 정책들을 고려해야 하나. “새로운 노사관계, 사회보장 확대 등을 고려한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 비표준적 고용관계에 놓여 있는 노동인구가 늘고 있는데, 여전히 노동법과 사회보장체제는 위계적이고 집합적인 고용관계를 상정하고 있다. 기존의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으로는 이 노동자를 보호할 수 없다.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완화하고 이를 입증하는 책임은 사용자가 지도록 해야 한다.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플랫폼 사업자 등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교섭의무도 명확히 해야 한다. 유럽연합 등 선진국에서는 플랫폼 노동자의 상당수인 배달·운송 종사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례가 축적돼 있다. 기존의 노동법에서 노동자 개념·사용자 개념을 재정립해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노동법의 외연을 넓혀도 자영업자, 프리랜서 등 노동법적 보호가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위해서는 사회보장의 보편성을 확대해야 한다. 고용보험·산재보험 등 지금의 사회보험제도는 고용을 매개로 이루어지고 있다. 노동법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기본법’ 등을 통과시켜 사회보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나는 기본소득도 하나의 대안이라고 본다. 이론과는 달리 현실에서 사회보험과 기본소득에 대한 수요는 배타적이지 않다. 기본소득이 미래의 모든 형태의 불안정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로 기능할 수 있고, 장시간 노동을 제어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조세, 공공주택 정책 등 더 정교한 제도 설계와 소통으로 주 4일제가 가져올 수 있는 차별적 효과를 완화할 수 있어야 한다.” -주 4일제 도입을 위해서는 국가의 개입이 필수적이지만,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없다면 지불능력이 큰 대기업 조직에서만 하게 할 것이다. 지금의 20~30대는 주 4일제를 원하기 때문에 좋은 인력을 끌어들이려면 기업은 결국 주 4일제를 할 수밖에 없다. 그 외의 대다수 노동자는 지금 정부의 방침대로라면 장시간 노동으로 더 힘들어질 우려가 크다. 시장에만 맡기면 불평등이 심화되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해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에 대한 개념이 없는 정부 같아 사실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우선적으로 대기업 조직에서만 주 4일제를 시행하더라도 효과가 없다고만은 볼 수 없다. 제한된 대상으로라도 시행돼 문화 자체가 확산되면 그 추세를 되돌리긴 어렵다. 문화의 특성이 그렇다. 일부에서 시작만 해도 그 자체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리라고 본다.”
- 표지 이야기
- [표지 이야기]노동시간 줄면 경쟁력 떨어질까(2019. 03. 18 14:12)
- 2019. 03. 18 14:12 사회
- ㆍ주 40시간 시행 이후 10인 이상 제조업체 1인당 연간 실질 부가가치 산출 1.5% 향상 지난 3월 10일 시가총액 1조원의 연예기획사 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 대표의 일과표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공개됐다. 30분 단위로 시간 활용 계획를 짠 박 대표는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지퍼와 단추, 허리끈을 채우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고무줄 바지를 입고 배변시간까지 정해둔다. 분초를 다투는 박 대표의 일과는 시간 투자가 성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짜여진 결과물이다. / 일러스트 김상민 박 대표의 시간 관리법을 노동자에게 적용한다면 어떨까. 낭비되는 시간을 절약해 노동시간을 늘리면 경쟁력이 생길까. 그렇다면 반대로 노동시간을 줄이면 경쟁력은 떨어질까. 패러다임의 전환 주5일 근무 1960~70년대 공단 노동자들은 밥 먹을 시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터로 내몰렸다. 1953년 도입된 근로기준법은 노동시간을 ‘1일 8시간, 1주 48시간’으로 규정했지만 현장은 무법천지였다. 노동자들은 ‘번개식당’에서 끼니를 때우고 작업장으로 복귀해야 했다. 이선관 시인은 1979년 발표한 <번개식당을 아시나요>에서 당시 노동자의 삶을 이렇게 묘사했다. ‘누구는 공순이라 부르는데 /그 지역 정문 아닌 후문에 /정오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이동식 포장마차 대열 /거기에 차려놓은 /번개식당의 다양한 메뉴 /1분 막국수 2분 짜장면 3분 김밥.’ 이후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노동시간을 줄여왔다. 근로기준법이 생긴 지 36년 만인 1989년, 주 44시간제로 법이 개정됐다. 노동자가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할 때마다 재계와 경영진은 생산성 악화로 경쟁력을 잃게 된다며 반발했다. 양측이 가장 격렬하게 맞붙었던 시기는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추진한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2000년 국내 노동자들의 1년 평균 노동시간은 2474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1000시간 더 길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산업 선진화가 된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인 반면 산업재해율은 가장 높은 편에 속했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생산성 저하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노동계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주5일 근무제 도입으로 비정상적인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경련과 경총 등 경제단체는 이번에도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주5일 근무제 도입에 반대했다.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려면 월차·생리휴가 폐지와 주휴 무급화와 같은 사용자를 위한 ‘당근’을 달라며 맞섰다. 보수언론과 경제매체도 ‘주5일 근무제 도입은 시기상조’라며 재계 주장에 힘을 실었다. 주5일 근무제를 둘러싼 지난한 갈등과 공방전이 이어졌다. 노·사·정 합의 결렬 등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2004년 7월 현행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됐다. 결과는 어땠을까. 생산비용 부담 증가로 인한 생산물 가격 인상이 국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재계의 예측은 빗나갔다. 2017년 발표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근로시간 단축이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정책(주 40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10인 이상 제조업체의 노동생산성은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 1인당 연간 실질 부가가치 산출이 1.5% 향상된 것이다. 그럼에도 국내 노동환경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7년 OECD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연평균 근로시간은 2024시간으로, OECD 평균(2016년 기준)인 1763시간보다 261시간이 길다. 2000년 연평균 노동시간 2474시간보다는 450시간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7월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도 연간 노동시간 감소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월에 발표한 ‘2019년 1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노동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1967시간으로 조사됐다. 1967시간은 전년(1996시간)보다 29시간(1.4%) 감소한 수치. 주 52시간제가 노동시간 단축에 큰 효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계는 지난 2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기로 합의하면서 노동시간 단축이 더욱 요원해졌다고 본다. / 경향DB 돈 대신 저녁을 택할 수 있을까 단위기간이 6개월로 확대되면서 6개월 연속으로 주 64시간(법정근로시간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노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회사에서 합법적으로 야근을 시킬 수 있는 우회로를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사노위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 공익위원으로 참여한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지난 3월 7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관련 토론회에서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안은 예외조항이 불명료하고 내용의 애매함이 있다”며 “장시간 노동체계가 정착된 가운데 사용자들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무한정 쓰려 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노동계에서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을 중심으로 주 4일 근무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금융노조는 지난 1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주 4일 근무제 도입을 장기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노조가 2017년 7월 국내 14개 은행에서 일하는 조합원 3만4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노동환경 조사에 따르면 은행원의 연간 노동시간은 2350시간으로 OECD 기준 2017년 한국 평균 노동시간(2024시간)보다 300시간 이상 길다. 금융노조가 주 4일제 연구용역과 여론 확산작업을 벌이는 이유다. 하지만 금융노조의 주 4일 근무제는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가장 큰 벽은 ‘임금’이다. 현재의 임금체계는 시간이 돈이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자리잡으면서 장시간 노동을 해야 더 많은 소득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다. 예전처럼 사용자가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기보다는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일을 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노동자가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 않고 ‘스스로를 착취하는’ 사회가 된 셈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저서 <피로사회>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노동사회, 성과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며 계속 새로운 강제를 만들어 낸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모두가 자유롭고 빈둥거릴 수 있는 그런 사회로 귀결되지 않는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이로써 지배 없는 착취가 가능해진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노동시간이 줄면 임금도 줄어드는 구조”라며 “조합원들이 돈과 시간을 바꿀 준비가 됐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00년 5월 종묘공원에서 민주노총이 주5일 근무 시위를 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이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법정 노동시간 단축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기존의 운동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동-자본의 권력관계가 변함에 따라 법과 제도에 기댄 일괄적인 노동시간 단축은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최민 노동시간센터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제도를 통해 노동시간의 양을 줄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다양한 고용형태가 있는 상황에서 일률적인 시간 단축은 한계가 있다”며 “노동시간을 노동자 스스로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식으로 노동시간 단축운동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노동시간 단축, 사회보장제도와 묶어 장기 플랜 세워야” ‘시간빈곤’은 현대에 새롭게 등장한 가난이다.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에 필요한 기본적인 생활과 충분한 휴식, 여가시간을 갖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고 사용할지에 대한 통제권과 자기결정권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시간빈곤을 해결할 수 있을까? 한국노동연구원 김승택 선임연구위원에게 노동시간 단축과 시간빈곤 해결을 위한 방안을 들어봤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시간빈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시간빈곤은 회사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일 수 있고, 한편으로 회사 일 외에 가사나 육아 같은 다른 일도 많아 여가에 투입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생긴다. 개인이 ‘워커홀릭(일 중독)’이라서가 아니라, 회사가 일을 많이 시켜서 일이 많은 경우라면 법정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방향으로 해소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가사와 돌봄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사회 공공서비스도 확충해야 한다.” -기업에서 초과근로가 만연한 이유는 무엇인가? “시간에 대한 선호, 즉 여가에 대한 선호보다 돈을 벌겠다는 욕구가 크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경우 임금이 높은 사람들이 오히려 초과근무를 더 원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신규채용으로 고용보험과 4대보험 등의 비용을 지출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초과근로를 원한다. 직장 내 장시간 노동은 집단주의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점점 사라지고 있으나 같이 회의하고, 밥먹고, 일을 해야 하는 문화, 상습적으로 초과근로를 하는 문화가 없어지는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여가시간을 더 중시하는 직원들의 비중이 커질수록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방안은? “4차 산업혁명으로 미래에 일자리가 줄어들면 높은 임금을 받는 ‘고생산 전문직’과 ‘저생산 저임금’ 일자리로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다. 낮은 임금을 받는 사람들은 사회보장이 확실히 갖춰지지 않는 한 장시간 일해야 소득을 유지할 수 있다. 저임금 상태에서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면 그 정도로 일해선 먹고살 수 없는 사람들의 노동수요를 오히려 외면하게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해 사회보장제도 확충을 위한 재정정책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구조조정을 포함한 산업·경제정책을 포괄적으로 논의해야 전체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할 첫 번째 일도 바로 이런 밑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노동시간 단축 논의와 사회보장제도, 실업보조 등을 묶어 장기 플랜을 마련하지 않고 닥치는 일만 하나씩 해결하려고 하면 그때마다 생기는 부작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노동시간 단축시 임금은 어떻게 조정해야 하나? “포괄임금제를 시행하던 사업체의 경우라면 초과근로 여부와 상관없이 임금을 주기 때문에 노동시간을 단축한다고 이(임금)를 줄일 수는 없다. 한편, 초과근로를 일이 생겼을 때만 하고 그때마다 수당을 주는 곳이라면 노동시간 단축으로 초과근로가 줄면 당연히 그 수당이 줄어든다. 근로자도 이를 감수해야 한다. 두 가지 경우를 섞어서 몽땅 임금을 줄여야 한다거나 줄일 수 없다고 말하는 건 노사가 각자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꼴이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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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이야기]노동시간 단축의 역사(2019. 03. 18 14:12)
- 2019. 03. 18 14:12 사회
- 인간의 시간은 노동과 여가로 나눌 수 있다. 이 둘의 비중은 시대마다 변했다. 과거 로마제국의 시민은 노예노동을 바탕으로 한 해 200일의 휴일을 즐겼다. 그러나 여가(유희)를 죄악시한 종교개혁과 노동을 신성시하는 프로테스탄트 윤리, 산업혁명의 확산으로 노동시간은 급격히 증가했다. 장시간 노동은 건강을 해치고, 삶의 여유를 없앤다. 노동자들이 돈을 쓸 능력과 시간이 부족하면 기업은 물건을 만들어도 팔 곳을 찾기 어렵다. 19세기 선진 산업국가의 노동시간은 연간 3000시간대에 이른다. 현재는 그 절반 정도 수준으로 떨어졌다.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운동의 투쟁에 따른 결과물이면서, 한편으로 자본주의를 지속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아쉽게도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17년 기준 2024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가장 짧은 독일과는 700시간 가까이 차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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