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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경향(총 3 건 검색)

쿠팡 노동자 잇단 사망 '과로사' 논란
쿠팡 노동자 잇단 사망 '과로사' 논란
2021. 03. 09 14:57 화제
국내 온라인쇼핑몰 쿠팡이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다. 쿠팡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를 통해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위한 신고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쿠팡 본사의 모습.미국증시 상장을 앞둔 쿠팡이 소속 배송기사의 연이은 사망 사고에 다시 한 번 과로사 논란에 휩싸였다. 9일 쿠팡과 택배연대노조 등에 따르면 쿠팡 송파 1캠프에서 심야 배송을 담당하던 배송기사, ‘쿠팡친구(쿠팡맨)’ A씨가 지난 6일 숨진 채 발견됐다. 연락이 안 된다는 배우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서울 송파구의 한 고시원에서 숨진 A씨를 발견했다. 경찰은 출동 당시 이미 숨진 상태였던 A씨가 사망한 지 이미 이틀 정도 지난 것으로 추정했다. 택배노조는 이번 사망 사고를 두고 “명백한 과로사”라며 쿠팡 측의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쿠팡에 계약직으로 입사해 얼마 전 정규직으로 전환된 A씨는 바쁜 배송업무를 위해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며 평소 배우자에게 심야 노동의 어려움에 대해 호소해왔다. A씨의 임금은 280여만원 수준으로, 근무 시간대가 심야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 수준이라고 노조 측은 밝혔다. 반면 쿠팡 측은 해당 배송기사의 근무시간이 많지 않았고 휴가 중에 사망했다는 점을 들어 과로사 주장을 반박했다. 쿠팡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고인과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와 위로를 표한다”면서도 “지난 12주간 고인의 근무일수는 주당 평균 약 4일이었으며 근무기간은 약 40시간이었다”며 “고인은 지난 2월24일 마지막 출근 이후 7일 동안 휴가 및 휴무로 근무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했다”며 “지난 4일 복귀 예정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숨진 A씨는 평소 아무런 지병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A씨는) 평소 밤 9시부터 아침 7시까지 매일 10시간씩(무급휴게시간 1시간 포함) 주 5일을 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지난 해 3월 이후 쿠팡에서 근무 중 사망한 노동자는 A씨를 포함해 총 6명에 달한다.
쿠팡
연대해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힘얻은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창근
연대해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힘얻은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창근
2012. 11. 30 19:35 화제
해고는 살인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됐다. 2009년 5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사측의 대규모 정리해고에 반발해 파업을 시작하면서 선언했던 구호는 ‘해고는 살인이다’였다. 경영 논리에 의해 도출된 결론인 ‘해고’는 각 노동자와 그들을 울타리로 삼아가는 가정에는 인생의 마지막 선고나 다름없는 ‘살인’일 수 있으니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 그러니 그런 결과를 만들지 말아달라는 일종의 부탁이자 경고인 셈이었다. 그런데 그 구호가, 그 선언이, 지금을 설명하는 현실의 문장이 됐다. 미래를 위해 함께 구호를 외쳤던 동료들이 세상을 등진 뒤, 남은 사람들에게 덩그러니 남은 구호는 현실을 비추는 후회이며 고통이고 눈물이며 아픔이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씨(40)는 그동안 동료들을 떠나보내며 ‘이름만 바꿔 써 넣으면 되는’ 보도자료를 써왔다. 기술 유출, ‘먹튀’ 자본, 해외 매각, 회계 조작 의혹 등 쌍용차 문제의 실체를 다 덮어버리고 이제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쌍용차=죽음’이라는 등식을 심어줄 정도로 줄기차게 이어진 동료들의 죽음 앞에서 스스로도 깨닫기 힘든 절망감과 슬픔에 젖기도 했다. 동료들의 죽음을 두고 ‘세상을 떠난 사람만 바뀌었을 뿐 쌍용차 해고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라는 똑같은 사건으로 치부하는 언론과 사회에다 대고 ‘또 한 번의 죽음’이라는 말을 반복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보다 괴로웠다. 계속해서 소리치고 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없고, 누구에게 어떻게 화를 내고 따지고 혹은 하소연하고 부탁해야 할지 그 실체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이 막막하고 지치기만 했다. “함께 일하던 형, 동생, 친구들이 사라진 상황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공장에 들어가는 게 너무 싫었어요. 다른 동지들도 상복 입고 분향하는 거 정말 끔찍해 했고요. 그런 상황에서 더 이상 공장 안에서만 이러고 있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우리의 문제를 구체화시키면서 외연화해보자는 생각으로 대한문에 나오게 된 거예요. 시민, 사회와 접촉면을 넓히고 싶었던 거죠.” 파업 투쟁이 한창일 때도, 심지어 70일이 넘는 옥쇄파업 중 무자비하게 진압을 시도하던 경찰특공대와도 맞서 꿋꿋하고 강인하게 자리를 지켰던 그들이 서울 시내 한복판 대한문 분향소를 차리게 된 것은 아마도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답답했기 때문일지도, 혹은 일반 시민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나누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어떤 폭력보다 그 어떤 탄압보다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동료들의 빈자리를 연대의 힘으로 채우고, 한편으로는 그들 한 명 한 명을 단 한 사람이라도 떠올리고 생각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곳, 대한문 분향소에서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따뜻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추운 날씨에도 발걸음을 멈추고 뜻을 보태주는 분들, 퇴근길에 매일같이 들러 우리를 걱정해주는 분들, SNS 등을 통해 저희의 소식을 계속해서 전해주는 분들, 적극적으로 서명과 모금 활동에 동참해주시는 분들…. 한 분 한 분 모두가 진심으로 고맙고 소중한 분들이에요. 저희 먹으라고 집에서 손수 밥을 지어 ‘밥셔틀’ 해주신 분들, 자발적으로 콘서트나 문화제에 동참해주신 분들, 그리고 저희보다 더 열심히 소리치고 뛰어다닌 각계각층의 전문가들도요. 감사함을 전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저희의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전달해준 책 「의자놀이」와 몇 년째 현장에서 기록하고 쓰고 담아내는 것을 계속해주는 분들이에요.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어 죄송스럽네요. 참, 그리고 해고노동자를 위한 정신상담센터인 ‘와락센터’의 정혜신 박사님께도 특히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이창근씨는 2008년 촛불시위에서부터 이어져 온 수많은 시민들의 연대가 지난해 ‘희망버스’라는 기점 이후 계속해서 주체적이면서도 다양한 형태로 파생되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과 함께 큰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올해는 특히 쌍용차가 그러한 혜택을 가장 크게 누린 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노조원들이 특별히 뭔가를 잘했다기보다는 사안이 갖고 있는 무게와 불안정한 노동 현실이 반영된 일련의 모습들이 구체적 형태로 드러나는 사업장이다 보니 더욱 많은 연대가 가능하지 않았나 분석해본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연대해준 힘으로 국정청문회까지 갔음에도 결국에는 국정조사에 착수하는 데는 실패한 것이 가장 아쉬운 점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아직 올해가 다 간 건 아니고, 여러 가지 유동적인 변수가 많으니 끝까지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국정조사를 촉구하며 41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던 김정우 지부장이 결국 건강 악화로 쓰러지는 바람에 단식은 중단했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악착같이 투쟁해야죠. 사실 저희 내부적으로도 그렇고 함께하는 분들도 그렇고 피로가 많이 쌓여 있어요. 앞으로는 이 피로감을 더는 형태의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고 있고요. 또 종전에 우리가 해왔던 것 중 놓치고 있는 부분, 간과하고 있는 부분을 찾아 메우는 방식으로 쌍용차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때까지 계속해서 싸워나가야죠.” 이창근씨를 비롯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말한다. 쌍용차 문제는 단순히 ‘23명의 사람이 죽었다’, ‘2,646명이라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정리해고 됐다’, ‘인간의 존엄성과 공공성을 무시한 채 지나치게 폭력적인 국가 공권력이 행사됐다’라는 사실을 넘어 매우 다양하고, 하지만 일반적인 이야기들을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내가 딛고 서 있는 발아래가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불안정한 판 위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앞으로 언제 어디서든 충분히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들이라는 거다. 정리해고를 넘어 사회의 문제, 사람의 문제, 그리고 삶의 문제를 총망라한 것이라는 점에서 쌍용차 사태를, 용산을, 강정을, 한진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 “위태롭고 안타까운 지금의 그 자리에, 언제나 사람은 있었어요. 우리가 몰랐고 주목하지 않았을 뿐이죠. 저 역시 ‘해고’를 통해 ‘사람’을 보게 된 겁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싶어요. ‘해고’가 우리들 사이에 있는 장막을 걷어내주고, 좀 더 애틋하고 아프게 느낄 수 있게 해줬어요.” 다만, 이러한 이야기가 모두가 죄책감을 갖고 괴로워하거나 사명감을 갖고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계속해서 쌍용차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때로는 세상을 등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모두에게 죄의식을 덮어씌우려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이창근씨는 동료들의 죽음을 두고 “온전한 하나의 세계가 스물세 개나 사라진 끔찍한 사건이다”라 말한다. 단순히 숫자로만 치환되는 죽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온전한 하나의 세계를 또 잃어버릴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 그 세계를 잃지 않는 길이 바로 당신이 사는 길이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박동민, 안진형(프리랜서)>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 후 다시 ‘청소노동자’로 돌아간 김순자씨
2012. 05. 04 18:29 화제
출근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동료들과 부둥켜안고 커피도 마시고 건물 구석구석을 청소합니다. 세상을 빛나게 하는 청소 노동자 맞지요? 많은 분들의 응원 참말로 고맙습니다. -김순자 트위터(@kimsunja0411) 청소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간 선언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19대 총선이 끝났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선거를 치른 만큼, 후보들의 당락에 따라 명암이 엇갈리며 후폭풍도 거세다. 각 정당들은 선거 여파에 대한 수습과 함께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진통을 치료하는 데 골몰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선자와 지자체 간에도 선거 과정 중 벌어진 갈등을 해소하고 하루빨리 술렁이는 민심을 잠재우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성과보다는 다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를 더 많이 도출한 채 막을 내린 4·11 총선에서, 비록 낙선했지만 한국 정치와 사회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며 박수를 이끌어낸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이가 바로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으로 선거에 나섰던 김순자씨(60)다. 청소노동자 출신으로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주장하며 기성 정치판에 일침을 가한 김순자씨는 ‘말’이 아닌 일상 속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진짜 ‘정치’임을 온몸으로 역설하며 유권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특히 TV 토론회 등에서 선보인 가감 없는 발언들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순자 어록’이란 이름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선거일 다음날부터 바로 일터로 복귀한 김순자씨는 다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당선 뒤 국회의원 자격으로 낡은 관습과 잘못된 정책들을 직접 싹싹 쓸어내겠다는 다짐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지만, 대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과 그렇게 해야만 하는 시대의 이유를 발견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일이 쏟아진데다 여기저기서 그녀를 찾는 이들이 많아져 선거운동 기간만큼이나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12일 새벽에 출근해서 하던 대로 한 바퀴 돌며 청소를 끝내고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도 끌어안고 반가워하는 시간을 가졌죠. 당면한 노조 현안들도 하나 둘씩 처리하고, 이렇게 언론사 인터뷰도 하느라 엄청 바빴어요. 울산 지역을 비롯해 집회 현장 지원도 나가고 있고, 이곳저곳 와달라고 부탁하는 곳이 많아져서 쉴 틈이 없어요.” 선거운동 당시 김순자씨의 모습. 인터뷰가 이루어진 이날만 해도 오전 내내 학교 건물 청소를 끝낸 김순자씨는 점심 식사를 마치자마자 사측과의 임금 협상 교섭회의에 참여했다. 그러고는 인터뷰 일정을 소화한 뒤 서둘러 울산지역연대노조 울산과학대지부장 자격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집회에 참석했다. 다음주만 해도 대학교 및 위원회 등 지원 요청이 들어온 각종 단체를 방문할 계획이 잡혀 있다. 그동안 그녀가 보여준 실천과 행보를 거울삼아 연대의 원동력을 마련하고자 하는 이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연락을 해오고 있다.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을 대변하고자 마음먹었던 김순자씨로서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고마운’ 부름들이다. “2007년 우리가 학교 측과 투쟁할 때도 지역 노조 사람들뿐 아니라 많은 노동자들이 지지해주고 힘을 줬었거든요.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도 선거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이들의 응원과 도움을 얻었어요. 특히 ‘우리들의 바람을 대변해줘서 고맙다’라며 오히려 제게 더 큰 힘을 보내주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면서는 이제껏 제가 걸어온 길이 틀리지 않았고, 또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음을 깨달았어요. 제가 거꾸로 그들을 통해 희망을 봤다고 할까요? 그래서 저를 필요로 하고 불러주시는 곳이 있으면 가능한 한 어디든 달려가서 연대하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안타깝게도 국회 입성은 좌절됐지만 김순자씨는 이번 선거 출마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조금이나마 달라진 데 대해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관심을 갖게 되고, 또 결코 자신과 무관한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게 만든 것. 그리고 청소노동자도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결국 그만큼 정치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삶에 이어져 있다는 것을 널리 알렸다는 점만으로도 금배지를 단 것 이상의 빛나는 성과라고 생각한다. “예전부터 종종 이야기했던 게 국회에 우리 같은 청소노동자 출신 의원이 세 명만 있었어도 전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노동 조건, 처우 문제가 지금과 같진 않을 거란 거였어요. 우리를 대변해줄 사람이 없다 보니 한없이 약했고 마치 세상에서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죠. 세상엔 무척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만큼, 그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의 목소리를 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청소노동자’로서 저와 같은 사람들의 생활이 개선될 수 있도록 우리들의 뜻을 대변하는 일을 하면 되는 거고요.” 그녀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이에 대해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청소노동자의 인간 선언이 이루어졌다’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각도 확연히 달라졌다고. 예전 같으면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청소노동자’가 사회에서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본인들 스스로부터 비관적으로 생각했다고 하면, 이제는 들러리가 아닌 당당한 주인공으로서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발맞춰 걸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는 것.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낸다면 점차 모두가 조금씩 행복해지는 세상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새로운 희망도 품어보게 됐다. 상식과 약속이 통하는 사회 물론 국회에 입성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 입장에서나 개인으로서나 쉽지 않은 결심을 한 만큼, 선거 결과에 거는 기대도 컸기 때문이다. 만약 당선이 됐다면 ‘비정규직 악법’ 철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및 처우 개선 등에 큰 힘을 실을 수 있었을 테고, 따라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1 선거운동 중, 김순자씨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담아 빗자루로 쓸어 없애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 대한문 앞에 차려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분향소를 찾아 관계자와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를 주고받고 있다. “저는 제가 당선될 가능성이 딱 절반 정도라고 생각했었어요. 다만, 선거에 나설 결심을 하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기까지 너무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바람에 준비가 미흡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선거까지 20일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선거운동을 시작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아무리 바삐 움직여도 유권자들은 만날 시간도 많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도 한정되더라고요. 차근차근 좀 더 전략적으로 준비해서 더 제대로 목소리를 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후회도 돼요.” 한동안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정치권에 직접 뛰어들어 경험을 해보면서 그녀는 현실과 정치는 절대로 떨어질 수 없음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또 평소 생각하고 말하던 것을 그대로 이야기했을 뿐인데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기존의 정치권이 서민들의 생활과는 얼마나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를 꾸려왔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다. “4월 9일에 열렸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 토론회가 끝난 이후 많은 지지와 주목을 받았어요. 저로서는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반응이었어요. 사실 제가 한 말들은 토론회를 위해 따로 준비한 게 아니라 일상생활 중에 늘 하던 이야기들이었거든요. 당에서 토론회 일정이 잡히고 저한테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최저임금이 채 100만원도 안 되는데 그 돈으로 사람이 어떻게 삽니까? 도둑질을 해야 합니까, 그냥 굶어야 합니까?’라든가 ‘있는 법도 안 지키는 판국에 무슨 법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와 같은 이야기를 했죠. 거기서 제가 좀 말투가 세다 보니(웃음) 당 관계자 분들이 예쁜 말로 다듬어주시기만 한 거예요. 사실 제가 자유 토론이 뭔지, 토론 규칙이 뭔지, 생전 그런 걸 해봤어야 알죠. 잘 모르니까 그냥 진솔한 이야기들이 나오더라고요. 다른 분들은 준비해온 자료만 수십 장이 되던데 오히려 핵심을 벗어나서 어렵게만 이야기한단 생각이 들었어요.” 김순자씨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기존 정치권이 실제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결코 와 닿지 않는 이야기,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상식적이지 않은 이야기들만 모아놓고 결론도 없이 주야장천 주고받고만 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선거철에나 바짝 유권자들을 찾아다니고 평소에는 언제나 ‘말’만 앞세우는 정치인들에게 질려버린 사람들이 더 이상 정치를 신뢰하지 않게 되고 결국에는 무관심해지면서 이렇게 모두가 어려운 사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2000년에 비정규직에 관한 공약을 했지만 12년이 지난 지금도 거기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그대로잖아요. 우리 삶을 돌아봐도 어느 것 하나 발전한 게 없고요. 처음 제가 진보신당으로부터 비례대표 제의를 받았을 때 무척 많이 망설였는데, 결국 결심을 하게 된 데는 더 이상 ‘그들’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들어서였어요. 저도 처음에는 돈 있고, 많이 배우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나 국회의원도 하고 정치를 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가 고용승계 보장 투쟁을 통해 우리 노조원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개선시켰던 것처럼 더욱 열악한 처지에 있는 다른 노동자들의 삶도 나아지게 만들고 싶었어요. 진보신당 동지들을 비롯해 지지를 보내주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것이 가능할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고요.” 김순자씨와 함께 일하고 있는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노조원들. 돌이켜보면 힘든 상황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청소노동자도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희망을 전하기 위해 나선 그녀에게 용기와 힘을 준 건 오히려 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전국 곳곳을 돌며 청소노동자, 경비노동자, 급식조리원 등을 만나는 동안 “우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 후보가 있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라는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하고 뿌듯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당선이 되든 안 되든 앞으로도 꾸준히 그들과 함께 연대하며 잘못된 것을 함께 고쳐나가고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거란 다짐을 했었다. “선거운동 기간 만난 분들에게 만약 떨어지더라도 꼭 다시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했어요. 적어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식당에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 거예요. 전국적으로 다녀보니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는 아직까지도 근무 시간 식사비를 안 주는 회사가 허다해요. 그들 대부분이 최저임금 정도밖에 받지 못하는 처지인데 밥까지 사서 먹으면 월급은 더 줄어드는 셈이고요. 그리고 그들에게도 차가운 지하 구석방이나 계단 한 구석이 아닌 식당에서 똑같이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는 권리는 주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요? 무작정 월급을 올려달라거나 쉬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게 아니잖아요. 근로기준법에 근거해서 최소한 사람이 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정당한 노동에 따른 보장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 사회가 이런 기본이 제대로 지켜지는 그날까지 제가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노력할 생각이에요.” 김순자씨는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들이 부디 선거운동 기간의 마음가짐을 잊지 말고 말이 아닌 행동을 보여줬으면 한다는 당부를 남겼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후보가 앞으로 비정규직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이번만큼은 꼭 국민들이 더 이상 실망하지 않도록 반드시 지켜주길 바란다고. “정치인들에게 이런 부탁을 하지 않아도 될 세상, 노동자들이 정치인들을 믿고 사회를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마도 지금까지보다 앞으로가 더 중요할 거라 생각해요. 꼭 하나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평범한 아줌마였던 제가 노조를 만들고 격렬하게 투쟁을 하고 또 이렇게 선거에까지 나가게 된 건,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부터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내 문제를 내가 부당하다고 먼저 말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아요. 스스로 소리 내고 싸울 때, 세상은 바뀔 수 있는 거예요. 모두가 불합리하고 올바른 것에 대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박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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