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옵션
닫기
범위
전체
제목
본문
기자명
연재명
이슈명
태그
기간
전체
최근 1일
최근 1주
최근 1개월
최근 1년
직접입력
~
정렬
정확도순
최신순
오래된순

레이디경향(총 5 건 검색)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 '간소하게'···유튜브 생중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 '간소하게'···유튜브 생중계
2020. 05. 22 13:03 화제
노무현 전 대통령 11주기 추도식을 하루 앞둔 22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시민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공식 추도식이 23일 오전 11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대통령묘역에서 엄수된다. 올해 추도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생활 속 거리 두기 실천 차원에서 유족과 노무현재단 임원, 정당 대표 등 100여명만 참석하는 작은 추도식으로 치러진다. 공식 초청 대상이 아니면 추도식장에 입장할 수 없다. 참배를 희망하는 일반 추모객은 오후 1시 30분, 3시, 4시 등 세 번에 걸쳐 공동 참배에 참여할 수 있다. 서거 11주기 추도식 주제는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강한 나라’이다. 박혜진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되며 추도사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낭독한다. 추도식은 국민의례, 추도사, 특별 영상 상영, 이사장 감사인사, 상록수 특별 영상 상영, 참배 순으로 진행되며 노무현재단 홈페이지와 유튜브 등을 통해 생중계된다. 노무현재단은 5월 한 달 동안 온라인 추모 전시회와 추모 방송을 이어간다고 밝혔다.
생중계온라인문재인노무현재단
노무현 전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와의 인연 그리고…
2010. 01. 04 16:39 화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제2부속실장 지낸 이은희 마포교육문화센터 소장 2009년 한 해 동안 대한민국을 가장 뒤흔든 뉴스는 단연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다.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대미문의 사건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회자될 것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파격과 도전, 온몸을 던지는 정치적 승부사로 새로운 정치 ‘아이콘’이 됐지만 충격적인 서거로 그의 정치 실험은 미완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서거 이후 ‘깨어 있는 시민이 역사를 만든다’는 노 전 대통령의 유지가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마포교육문화센터 소장으로 지역운동을 하고 있는 이은희씨는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잇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그녀는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제2부속실장으로 노 대통령 내외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인물 중 한 명이다. 권양숙 여사가 ‘청와대 입성 3주년’을 맞아 본지와 인터뷰할 때, 이은희 소장은 당시 제2부속실장으로 실무를 담당했다. 기자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권양숙 여사 보좌하며 신뢰 쌓아 사람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인연이다. 이은희 소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 권양숙 여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1988년 제가 연세대 총여학생회장으로 활동할 때 5공 청문회 스타였던 노무현 국회의원을 처음 뵈었어요. 그 후로 그분의 정치 역정이나 지방자치실무연구소 활동에 관심이 많았고 1998년 지방선거 때도 뵈었죠.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것은 2001년 초 전대협동우회 초청 토론회에서 만나 금강캠프의 여성특보로 일하면서부터예요. 권양숙 여사는 2001년 겨울에 처음 만났습니다.” 금강캠프에서 이은희 소장은 여성 조직을 관리하고 권양숙 여사의 활동을 보좌하는 활동을 주로 했다. 그러나 그 일의 시작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당시 이 소장은, 홀로 여성 행사와 당원 행사에 참석해 노무현 후보를 홍보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후보 부인 없이 참모가 대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평소 말수가 적고 나서는 걸 싫어하던 권 여사가 “정치는 남편이 하는 겁니다. 나는 정치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조용히 내조하겠습니다”며 외부 활동에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이은희 소장은 권 여사를 설득하기 위해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사저였던 혜화동 집으로 출퇴근을 했다. “그렇게 일주일쯤 여사님과 함께 지내며 현재 캠프 사무실 현황이나 다른 후보 부인들의 활동에 대해 알려드렸어요. 그리고 ‘수십 명의 참모가 있다 해도 후보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후보 부인뿐입니다. 최선을 다해 여사님을 보좌하겠습니다’라며 권 여사를 설득했어요.” 그렇게 노무현 전 대통령, 권양숙 여사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힘들 것 같았지만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듯 진정성을 갖고 진심으로 뛰어들자 서로 신뢰감이 쌓여갔다. 대통령의 아내 사랑과 권 여사의 남편에 대한 믿음 이은희 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와 짧은 시간에 깊은 신뢰를 쌓은 배경에는 개인적인 공감대도 한몫했다. 이은희 소장은 노 대통령이 부산상고 출신으로 어렵사리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를 거쳐 정치활동을 시작한 것이나, 권 여사가 가난 때문에 학업을 마치지 못한 아픔을 깊이 공감했다. 이 소장 역시 서울여상을 졸업한 후 대학에 가기 위해 주경야독하던 힘든 시절이 있었다. 이런 개인적인 역경이 서로의 마음에 닿은 듯했다. “제가 보기에 두 분의 성격은 다른 듯하지만 서로를 보완해주었고 닮은 부분도 많았어요. 대통령도, 여사님도 낙관적인 분이세요. 여사님께서는 가정주부로만 지냈기 때문에 자칫 소심하고 사회적 감각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본 여사님은 누구보다 사회적 감각이 탁월한 분이세요. 가족이 말하는 여사님 별명이 ‘뉴스 마니아’예요. 아침 6시부터 라디오 뉴스를 틀어놓고 식사 준비를 하셨어요. 그리고 3, 4종류의 신문과 저녁 9시 뉴스를 꼭 챙겨 보십니다. 나중에 여쭤보니 남편이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 몸에 밴 습관이라고 하시더군요.” 신문과 책을 읽으며 쌓인 권양숙 여사의 내공은 위기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발휘되며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이은희 소장이 지난 2001년부터 청와대 시절까지 옆에서 보좌하며 제일 힘들었던 두 번의 상황도 권 여사는 담담하게 이겨냈다. “민주당 국민경선 기간 중에 경쟁 후보가 권 여사의 부친 이야기를 꺼냈어요. 선거 캠프에서 지금 당장 사실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전화가 빗발쳤지요. 하지만 이동하는 차 안에서 여사님은 몇 시간 동안이나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그러면서 충격을 이겨내고 계신 것 같았어요. ‘아무 대응도 하지 말라’는 한 말씀만 하시더군요. 그때는 두 분 모두 힘드셨을 거예요. 당시 노 후보께서는 장인의 좌익 경력을 공격받자 ‘대통령이 되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아내를 버려야 한다면 차라리 후보직을 버리겠습니다’라며 국민의 심금을 울리셨죠. 잔인한 정치 현실이었지만 두 분의 사랑과 감동으로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셨습니다.” 두 번째 어려움은 대통령 탄핵 사건이었다. 그날도 예정대로 지방 일정을 소화하고 여성 모임 오찬장소로 이동하던 중에 ‘탄핵 가결’ 소식을 들었다.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20분 후의 오찬 일정을 그대로 진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권 여사는 눈물을 닦고 감정을 추스른 후 오찬에 참석했고 연설 원고도 없이 단호하게 당신의 소신을 밝혔다. “여사님께서는 ‘국민의 판단을 겸허히 받겠습니다. 대통령께서 언행에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을 줄로 압니다. 하지만 작은 언행 실수는 있어도 국가와 국민에 대한 생각과 신념, 철학에 큰 잘못은 없습니다. 국민의 판단을 믿고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심적으로 무척 힘드셨는데도 그날의 일정을 다 마친 후에야 서울로 올라오셨죠.” 2개월가량의 대통령 탄핵 기간 동안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는 책을 읽고 산책을 하며 관저에서만 지냈다. 그나마 마침 백일이 지난 첫 손녀딸이 있었기에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공공도서관 사업이 가장 큰 보람 권양숙 여사는 정치인의 아내로 활동하는 것보다 가족과 오순도순 어울려서 조용히 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권 여사는 남편의 정치활동을 조용히 내조하면서 정치와 사회뉴스를 관심 있게 지켜보았고 지역주민의 일상적인 생활과 여론을 주의 깊게 살폈다. 또 남편의 신념을 믿고 어려운 정치 행보의 선택을 지지해왔다. 평소에도 권 여사는 정치인의 아내로서 한발 앞서지도 않고 뒤처지지도 않게 내조하려 했다. 또 영부인으로서 해외 순방과 국빈 접견, 문화 행사 참석을 통해 우리 문화를 외국에 알리는 외교사절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국내적으로는 교육, 문화, 복지 분야에서 여성과 장애인, 소외계층을 대변하고 국민 여론과 현장을 살피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 중에서도 영부인이 관심과 애정을 많이 기울였던 분야가 공공도서관 활성화 사업. 이은희 소장은 당시 공공도서관 정책 관련 업무를 하면서 실무를 책임지고 있었다. “여사님의 어릴 적 꿈은 서점 주인이 되는 것이었어요. 평소에도 책을 많이 읽으시고 손녀딸에게도 틈틈이 책을 읽어주셨죠. 해외 방문시에도 각국의 도서관을 시찰하시며 우리나라도 도서관이 지식정보문화의 산실이 되기를 기대하셨죠. 지역주민의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는 작은 도서관에 특히 관심이 많으셨어요.” 몇 해 전 MBC-TV의 ‘기적의 도서관’ 건립운동, 지금은 많은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작은 도서관운동’, 언론의 도서 캠페인 등 책과 도서관운동은 영부인의 관심과 함께 사회적 운동으로 번져나갔다. 특히 세계도서관대회 유치,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행사 지원, 대통령 직속 도서관위원회 설립 등은 ‘책과 도서관’에 대한 영부인의 관심으로 이루어낸 성과들이다. 봉하마을에서 무척이나 행복했던 대통령 내외 이은희 소장은 지난 2006년 6월 대통령비서실 제2부속실장을 퇴직했다. 만 5년 동안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던 청와대 생활이었지만 해외 순방과 교육, 문화, 복지 분야의 행정 경험을 충분히 익혔던 매우 귀한 시간들이었다. 퇴직 후에도 영부인의 활동 등을 정리하느라 틈틈이 찾아가 인사하곤 했다. “참모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봉하마을로 내려가겠다는 뜻이 확고하셨어요. 말씀을 하시는데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설렘과 기대감에 가득 찬 듯 보이셨죠. 저는 봉하마을이 워낙 시골이라 여사님이 살기에는 불편하실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두 분은 행복해 보이셨어요.” 퇴임하는 날, 이은희 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의 귀향길에 동행했다. 그날 봉하마을에 도착해 대통령의 귀향을 환영하는 사람들에게 “야, 기분 좋다. 고향에 오니 정말 좋습니다”라며 기쁨에 가득 차 있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과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고. “식목일 전후로 봉하마을에 인사를 드리러 가겠다고 하니, ‘할 일이 많으니 내려올 때는 작업복에 운동화 신고 오세요’ 하시더군요. 왠지 마을에 활력이 넘쳤어요. 여사님은 새신부처럼 얼굴에 분홍빛이 가득하고 대통령은 얼굴이 까맣게 그을려 그대로 시골 농부였습니다. 오찬 때는 봉하마을에서 생산한 산딸기주 자랑을 많이 하셨어요. 한 잔 두 잔 꽤 드셨는데 봉하마을을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인사할 시간이 다 되었죠. 얼굴이 붉어져서 다들 걱정하고 있는데 노 전 대통령께서 나가시더니 ‘아, 오늘 서울에서 미인들이 한꺼번에 오는 바람에, 제가 부끄러워 얼굴이 발갛게 됐습니다. 이해해주세요’라고 하시더군요.” 1 당시 노무현 후보가 2002년 국민 경선에서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후 비서실 가족들과 함께 북한산 등반 기념촬영. 2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지였던 미국 LA의 토요한글학교를 방문한 권양숙 여사와 함께. 3 부산 APEC 정상회의를 마치고 시민과 해운대를 산책하는 대통령 내외와 함께. 4 2008년 (주)중소기업유통센터 상임감사 재직시 중국 중소기업박람회에서. 5 2004년 11월 청와대 직원들을 위한 김장 담그기 행사에서 주방 아주머니들과 함께. 이은희 소장은 봉하마을에서 무척 행복해하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부엉이바위의 유래, 화포천을 되살려 생태습지를 복원할 계획, 우리 몸에 좋은 장군차 재배법, 우렁이농법과 오리농법으로 친환경 쌀을 재배하는 과정 등 곳곳의 나무와 환경, 습지 등을 설명하면서 흥미로운 시골 농부의 이야기와 생활을 이야기하던 대통령. 전직 대통령이 고향으로 귀향해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충격적 서거와 봉하마을 지키고 있는 권양숙 여사 하지만 한사람의 시민으로 돌아가 행복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활은 길지 않았다. 2008년 연말부터 노 전 대통령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향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었다. 끝내 4월 30일, 노 전 대통령이 검찰조사를 받았다. 이은희 소장은 이때, 노 전 대통령을 찾아가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던 것이 가슴에 통한으로 남는다고 한다. “차마 그런 일은 상상조차 못했어요. 너무나 죄송해서 가슴에 사무칩니다. 우리가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지요. 우리는 충격 속에서도 대통령 장례식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권양숙 여사는 쓰러져 있고 건호씨와 정연씨 내외는 탈진 상태였다. 권 여사는 며칠 동안 식사는커녕 물 한 모금도 넘기지 못한 채, 걷지도 못했다. 3일 후 입관식 때 휠체어에 의지해 내려온 여사님을 본 조문객들은 모두 울음을 터트렸다. 건호씨와 정연씨는 입관식을 마친 후부터 국민장을 치를 때까지 의연하게 상주 역할을 다했다. “당시 봉하마을의 장례위원회는 마치 예전의 청와대를 옮겨놓은 듯했어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일들을 일사분란하게 처리했죠. 대통령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모두가 최선을 다했어요. 마을 분들과 수많은 자원봉사자 모두 한마음이었습니다.” 권 여사는 지난 7월 1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를 마치고, 참모진들과 함께 대통령 묘역 관리와 생가 복원 사업, 노 전 대통령이 하던 일들을 다시 추스르며 봉하마을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한동안은 건호씨가 여사님과 함께 있어서 마음이 든든했어요. 하지만, 젊은 건호씨의 장래나 얼굴이 너무 알려진 손녀딸을 걱정하는 여사님의 간곡한 뜻으로 지금은 회사에 복귀해서 미국에 나가 있습니다. 건호씨는 요즘도 매일 여사님께 안부전화를 드린다고 합니다.” 2008년 2월 노 대통령의 퇴임 직전 봉은사를 찾아 새벽 예불을 마치고 명진 스님과 차담을 하는 권 여사와 함께(사진 위). 2005년 청와대 직원 가족 초청 행사에서 시어머니, 친정어머니와 함께. 요즘은 권양숙 여사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하던 일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화포천 습지 관리나 친환경 봉하쌀 재배와 농작물 관리까지. 최근에는 지난 12월 16일 서강대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고집인 「진보의 미래」 출판기념회에도 참석했다. 더 많은 ‘시민 노무현’과 함께 풀뿌리 민주주의를 만들겠다 이은희 소장은 최근 인터넷 블로그(future2002/tistory/com)를 만들었다. 이는 월드컵 4강 신화와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이끌어낸 2002년의 국민 에너지를 더욱 키우겠다는 뜻으로 만든 공간이다. 이 소장은 이곳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그분의 유지를 이어받아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을 키워 나가겠다고 한다. “출판기념회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육성과 동영상을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의 장래를 고민하는 대통령을 다시 만났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힘없는 보통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자신과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던노 전 대통령의 모습과 목소리가 되살아나 펑펑 울었어요. 하지만 이제 다시는 울지 않을 겁니다.” 그녀는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시민주권의 시대를 열자, 깨어 있는 시민이 되자’는 뜻을 자신의 삶의 현장인 마포에서 시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태도와 삶의 자세로, 대통령비서실의 행정 경험을 살려 마포의 지방행정을 새롭게 실현하고자 한다. 더 많은 ‘시민 노무현’과 함께 참여하고 소통, 연대하는 새로운 지방자치의 모델을 만드는 것이 이은희 소장의 꿈이다. 이은희 소장이 전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의 에피소드 베스트 5 ■ 대통령의 빠른 걸음걸이 때문에 의전에 어려움 겪어 “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는 걸음이 빠른 편이었다. 때문에 국빈 방문 등 부부 동반 일정에서는 두 분의 보폭을 맞추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대통령 차량이 현장에 도착하면 운전석 뒷자리에 앉은 권 여사께서 차의 후미를 돌아 대통령 옆에 서기도 전에 먼저 발걸음을 떼시곤 하셨다. 그렇게 세 발자국 정도 가신 후에야 부인을 찾으셨다. 때문에 대통령께서 앞서 걷지 않도록 의전상 매우 조심해야 했다. 처음엔 무척 힘들어하셨는데 점차 익숙해지셨다.” ■ 발가락 양말에 얽힌 사연 “대통령 후보 부인 초청 토론회에서 어떤 대학생이 권양숙 여사께 ‘대통령 후보께서 보좌진의 만류에도 발가락 양말만을 고집한다고 하던데…. 고집이 너무 센 것 아닌지요’라는 질문을 했다. 이에 권 여사는 ‘그분이 발가락 양말을 고집하는 것은 군대에서 생긴 무좀 때문입니다. 그것은 건강의 문제지 신념이나 고집의 문제는 아닙니다’고 대답하셔서 폭소가 터졌다.” ■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숙면을 취했던 노 전 대통령 “노 전 대통령께서는 피가 마르는 순간에는 모든 걸 내려놓고 휴식하셨다. 사법고시 합격자 발표날에도, 부산에서 국회의원 선거 당락이 결정될 때에도 투표장에 다녀온 후에는 깊은 잠을 주무셨다고 한다. 또 후보 단일화 여론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날, 대통령 선거 당일에도 아침 일찍 투표를 마친 후 서울의 모처에서 하루 종일 휴식을 취하셨다.” ■ 참여정부 시절 간식은 감자, 고구마, 옥수수 그리고 무, 당근, 오이 “노 전 대통령 내외분은 감자, 고구마, 옥수수를 좋아하셨다. 청와대에 계실 때도 간식으로 제일 맛있다며 즐겨 찾곤 하셨다. 여름에는 무와 당근, 오이 등을 길게 썰어놓고 수시로 드셨다. 무척 맛있게 드시기에 아주 특별한 과일인 줄 알았다.” ■ 대통령 해외 순방의 필수품은 라면 “노 전 대통령께서는 해외 순방이나 입맛이 없을 땐 가끔 라면을 맛있게 드셨다. 권 여사께서는 가끔 오찬으로 보좌진들이 사온 떡볶이, 어묵, 김밥, 치킨 등으로 편안한 식사를 즐기셨다. 두 분 모두 입맛이 소탈하셨다.” 이은희 전 청와대 제2부속실장은 1983년 서울여상 졸업, 대한재보험 주식회사 근무. 1985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입학. 1988년 연세대학교 제1대 총여학생회장 지냄. 1991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졸업. 1995년 연세대학교 여성연구소 상임간사. 2000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지방자치 전공) 졸업. 논문 「한국 여성의 정치 참여에 관한 연구」 발표. 2001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상임고문의 여성 특보.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비서실 정무비서. 2003년 대통령 인수위원회 비서실 정무비서. 2003년 대통령비서실 제2부속실 선임행정관. 2006년 대통령비서실 제2부속실장(비서관) 퇴직. 2007년 (주)중소기업유통센터 상임감사 역임. 현재 마포교육문화센터 소장. ■글 / 경영오 기자 ■사진&제공 / 민영주, 이은희 ■장소 협찬 / 서울가든호텔 바 스콜피오(02-7107-264/5)
노무현 대통령 이명박 당선인 선거포스터 사진 찍은 박상훈
2008. 02. 15 화제
지난 선거는 이미지 전쟁이었다. 누가 좀 더 마음에 와닿는 이미지로 유권자들의 감성을 붙잡는지가 승부의 관건이 됐다. 미디어의 발달로 영상 광고와 UCC까지 등장했지만 그래도 후보의 이미지를 압축해 단번에 보여주는 것으로는 포스터 사진만 한 것이 없다. 당선자의 후보 사진은 누가, 어떤 고민을 거쳐 만들어낸 것일까. 박상훈 사진작가가 들려주는 사진 촬영 뒷이야기, 그리고 그의 사진 이야기. 당선됐다는 즐거운 생각이 만든 편안한 표정 12명이나 되는 후보자가 나오는 바람에 여느 때보다 치열했던 17대 대통령 선거는 후보자들의 포스터가 진열된 벽보 전쟁으로도 유명했다. 이명박 당선인의 포스터 사진을 촬영한 박상훈(55) 사진작가는 환하게 웃는 이 당선인의 사진을 찍고 나서 지난 대선의 승리를 예감했다고 한다. ‘웃는 표정’이 아니라 진짜 ‘웃고 있는’ 이 당선인의 얼굴을 프레임 속에 잡아냈기 때문이다. 보통 수백 장의 사진을 찍어놓고 서로 비교해가면서 가장 나은 것을 고르는데, 이 사진을 보는 순간 ‘더 볼 것도 없이 딱 이거다’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솔직히 이 당선인이 사진 촬영하기에 만만한 스타일이 아니라 촬영 전에 걱정이 있었죠. 좀 딱딱해 보이기도 하고 포토제닉한 느낌도 없고(웃음). 제가 고민했던 건 과장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어떻게 하면 부드럽고 친근감 있게 표현할까’였어요. 최종 결정된 이 사진은 억지로 만들지 않은 자연스러운 느낌이라 마음에 들었죠.”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게 마련인 모델에게서 연출이 아닌 자연스러움을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바쁜 선거 일정에 치인 탓인지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선 이 당선인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시라고 한 가지 주문을 했죠. 지금 후보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당선 축하 기념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하라고 했어요. ‘지금 제가 청와대에서 대통령 사진을 찍고 있는 겁니다’라고 했더니 표정이 부드러워지시던데요.” 이 ‘즐거운 상상’은 이 후보의 얼굴에 편안함뿐 아니라 자신감을 새겨 넣으며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후보 느낌이 역력한 다른 후보 포스터들에 비해 이 당선인은 실제로 대통령이 된 것 같은 당당함이 배어나와 유권자들에게 더욱 신뢰감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 당선인은 처음에 “내가 눈이 작아서 웃으면 눈이 안 보이는데…”라며 신경을 많이 썼는데, 촬영한 사진을 본 후에는 웃는 모습이 시원스럽게 나왔다고 만족해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 얼굴의 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사진이 나오면 그것만 주의 깊게 봐요. 하지만 매력적인 웃음을 보면 거기에 끌리는 거지 누가 눈만 들여다보나요. 저는 눈이 이 당선인보다 더 작은데도 이렇게 활짝 잘 웃잖아요(웃음). 콤플렉스를 의식하지 않게 하는 것도 사진가가 할 일이죠.” 그렇다면 사진에 대한 확신만큼 이명박 후보의 당선도 예감했을까. 박 작가는 이 당선인에게서 당당한 힘을 느꼈다고 했다. ‘내가 사진을 찍어줬으니까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진 촬영을 하며 “아직 멀었느냐”고 보채는 편인데 이 당선인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하는 모습에 모델로서의 점수도 높게 주었단다. 이번 대선은 워낙 출마 후보가 많았던 탓에 각 후보 진영마다 포스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쏟았다. 심지어는 사진을 찍고도 시간을 쪼개 두 번이나 재촬영을 감행한 후보가 있을 정도. 다른 후보들 사진이 신경 쓰일 법도 하지만 박상훈 작가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전·현직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 요즘 그를 두고 항간에서는 ‘대통령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02년 대선 때 ‘부르튼 입술’의 노무현 대통령 포스터 사진을 찍은 이도 그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사진 또한 그의 작품이니 대통령과 인연이 예사롭지 않다. 이명박 당선인도 지난 대선에서 노 대통령 포스터를 찍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았다고 한다. “노 대통령과는 포스터 촬영 전에 두어 번 만났죠. 「노무현 죽이기」라는 책이 있는데 그 표지를 제가 촬영했거든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희호 여사께서 오슬로 기념관에 걸 사진을 새로 찍으려고 작가를 물색하다 제 포트폴리오를 보고 낙점해서 만나게 됐구요. 평화상을 수상하러 여사님이 함께 오슬로에 가셨다가 역대 수상자들 사진을 보니까 다들 멋있는데 남편 사진만 어색하고 이상하니까 속상하셨던 거죠.” 3대에 걸쳐 대통령들과 인연을 만들어오면서 기억에 남는 일도 많다. 촬영에 비교적 의욕적이었던 노 대통령, 이 당선인과 달리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진 찍는 것을 어려워하는 편이었다. 게다가 전날 있었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의 영수회담 결과가 나빴던 탓에 얼굴이 더욱 굳어 있었다. 기분을 풀어보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특별한 인연을 찾아냈다. 김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한 프로그램에서 남대문 상인이 되어 ‘골라골라’를 외치며 좌판을 벌였던 적이 있는데 그 프로그램 담당 PD가 박 작가 동생의 부인이었던 것. 지금도 가끔 이야기할 정도로 그 경험이 재밌었다는 김 전 대통령의 얼굴이 화사해진 건 당연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김 전 대통령의 연륜과 무게감을 담은 사진이 탄생할 수 있었다. 노르웨이 기념관에 걸려 있는 그 사진은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보게 될 소중한 작품이다. 노무현 대통령 포스터 사진은 당시로선 새로운 시도였다. 이마에 깊게 파인 주름, 부르튼 입술이 적나라한 노 대통령의 모습은 ‘포샵질’ 한번 거치지 않고 담벼락에 그대로 나붙었다. 흰머리 한 올, 주름 하나 없이 깨끗한 타 후보와 달리 피부결이 거칠게 드러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투박한 질그릇’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뚝배기같이 친근하지만 단단하다는 느낌. 그분이 가진 소탈하고 서민적인 모습이 바로 유권자들이 그분에게 바라는 모습이라 생각했고 그 모습을 좋아할 것 같더라구요.” 배경으로 썼던 태극기도 낯선 것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태극기는 고리타분하고 강건하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때가 바로 2002 월드컵으로 태극기가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됐던 때였어요. 디자인적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태극기는 한 나라를 상징하는 의미도 있으니까 대통령 후보 포스터 배경으로 적당하다 싶어서 썼죠. 그땐 우리 포스터에만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까 태극기가 많이 나왔더라구요. 생각나는 대로 마음껏 연출했는데 나중에 남들이 그걸 쫓아오는 재미가 사진을 하는 큰 즐거움이 돼요.” 포스터 사진을 찍으며 노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이 사람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있었다. 당시 여론 조사 결과가 상당히 열세였는데도 불구하고 자신감 있는 ‘환한’ 모습에 어떤 직감 같은 것을 느꼈다고. “설득력이 굉장히 뛰어난, 논리적인 분이었어요. 촬영 중간 장난도 잘 치시고, 어렵지 않고 솔직한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대통령 되실 것 같다. 청와대에서 만나자’라고 말씀드렸죠. 사람의 기운이라는 게 있나 봐요.”분야를 넘나드는 편안한 그의 이야기 포스터 사진으로 또 한번 관심이 높아졌지만 원래 그는 풍경 사진, 광고 사진 등으로 이름을 떨쳐온 작가다. 특히 뉴욕페스티벌 한국인 최초 금상, 칸 국제광고제 금사자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의 스튜디오는 유명 스타들의 사진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들도 “아, 이거!”라고 할 만큼 알려진 그 사진들은 하나같이 담백하고 편안하다. “저는 꾸미는 게 싫어요. 속에 있는 것을 건드려 내면을 끌어내려고 하죠. 사람들은 결국 ‘진짜’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제 사진을 좋아하는 분들은 양념 맛이 아니라 재료 본연의 맛을 음미하고픈 분들이에요.” 수많은 스타들의 사진을 찍으며 그들이 가진 뒷모습을 발견해온 그다. 그중에서도 ‘주름이 만든 카리스마’라는 컨셉트로 찍은 안성기와 ‘눈물이 빛나는’ 김희애의 사진이 마음에 남는다고. 본인들도 그 사진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할 정도로 특별했던 작품. 특히 김희애의 남편은 그 사진을 가지고 다니며 자랑할 정도 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가 스타나 상품 사진을 잘 찍는 ‘상업적인’ 작가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십 년 넘게 새벽 사진을 찍어온 그는 여명의 오묘함을 담아낸 ‘새벽 시리즈’로 풍경 사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나같이 똑같은 일출, 산세 풍경 대신 흐트러진 일상의 시작에 주목했던 것이다. “풍경 사진은 어떤 면에서는 많이 고통스러워요. 생각해보세요. 새벽에 잠도 안 자고 추울 때 나가기가 얼마나 싫겠어요. 기다리고 참고 고통을 즐길 수 있어야 좋은 풍경을 내 눈에 안을 수 있죠. 하지만 시시때때로 변하는 자연을 보면서 겸허함도 느끼고 자연 속에서 나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게 되죠. 자연과 나, 나와 타인. ‘관계’라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해요.” 풍경, 인물, 광고 사진까지. 아직도 사진에 대한 ‘열정’으로 목마른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흐름은 바로 ‘소통’이다. 사람과 제품과 자연에 끊임없이 말을 걸고 생각을 나눌 때 그는 가장 행복하다. 그리고 그 소통의 결과를 책으로, 전시로 내놓으며 또 다른 소통의 길을 만드는 것이 흥미롭다. “한때는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나를 옭아맨 적도 있었죠. 하지만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알았어요. 이 세상에 완벽한 게 어디 있어요. 완벽하려는 노력 대신 사진을 좋아하는 열정을 거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고, 사람을 알아가는 게 좋아요. 아마 죽을 때까지 사람을 찍고 있을 겁니다.” 박상훈 작가는 아직 해보고 싶은 것이 많다고 했다.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작업의 결과물들을 선보일 사진전도 준비 중이다. 최근에는 현대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내’가 들어 있는 이 도심 속의 사람들에 집중하고 있다. “목표는 거창하지 않아요. 그저 좋은 작가, 훌륭한 작가가 되고 싶은 게 제 바람이에요. 나름 이런저런 결과물을 내놓았고 좋은 평가도 받았지만 아직 나는 ‘좋은’ 작가가 되지 못했어요. 운 좋게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됐고 타고난 예술적 기질이 조금은 있다는 데 감사해요. 그런 열정을 원천으로 삼아 더 많이 노력할 겁니다.” 그에게 사진이란 무엇일까. 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같은 질문을 받지만 그때마다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고. 그만큼 사진이 가진 다양한 힘에 매료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어쩌면 물방울 같은 것이 아닐까요. 물방울은 하나의 작은 방울이지만 독립된 게 아니라 그릇을 이루고 바다가 되면서 의미를 만들잖아요. 세상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죠. 사진도 한 컷 그 자체만으로 완전한 것이 아니라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다양한 의미를 갖는 거예요. 소통의 매개가 되는 거죠.”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선인인 이명박도 그랬고, 그의 카메라 앞에 섰던 이들은 모두 “잘 찍어줘서 정말 고맙다”라는 인사를 남겼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없는 것을 억지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고. ‘잘 나왔다’고 생각되는 그 모습은 모델 본인이 가진 원래의 모습 중 한 단면이다. “저는 그 모습을 잘 찾아낸 것뿐이죠”라는 박상훈 작가. 억지로 애쓰지 않고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편안한 그의 사진이 정말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민영주
[재테크 가이드]노무현 대통령도 ‘펀드’에 가입했다는데...
2005. 09. 01 재테크
‘펀드’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은행권의 예금 이율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마이너스 금리 시대다. 그리고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과 인구 감소의 영향으로 부동산에 대한 불안감마저 생겨 재테크의 대안으로 펀드가 떠오르고 있는 것. 익숙한 듯하면서도 생소한 펀드의 매력과 장점을 알아본다. 재테크 수단, 부동산에서 펀드로 이동? 지난 7월 22일, 일간지 경제면에 일제히 노무현 대통령의 펀드 가입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개인 예금 8천만원을 코스닥 편입 비중이 큰 펀드에 나눠 투자했다’는 소식이다. 이에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른 ‘펀드’의 궁금증이 더욱 커지고 있다. 요즘 라디오 광고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두 가지가 ‘대리운전’과 ‘적립식 펀드’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펀드는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단어가 됐다. 펀드란 여러 투자자가 자금을 모아 만든 대규모의 기금(Fund)을 말한다. 일반 투자자들에게 부족한 정보와 전문 지식을 갖춘 펀드매니저가 이 기금을 운영한다고 보면 된다. 주식시장의 개미투자자처럼 직접 투자가 아닌 간접 투자를 하는 것이 바로 펀드다. 펀드매니저는 주식, 채권, 유동자산 등 다양한 대상에 투자해서 이익을 내고, 그 이익을 투자자에게 되돌려준다. 펀드매니저와 운영회사는 이익금의 일정 부분을 보수로 받는 것이다. 펀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직접 투자를 할 때보다 신경 쓸 일이 적어지고, 투자의 위험(리스크)이 줄기 때문이다. 펀드매니저는 대규모의 자금으로 다양한 종목에 분산투자함으로써 리스크를 줄인다. 대부분의 펀드매니저는 우량종목에 투자함으로써 손실의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 펀드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는 ‘저금리 시대’이기 때문. 1억을 은행에 예치했을 때 이자가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다. 이런 저금리 기조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인건비가 상승하고, 가계부채가 많은 상태에서 은행 이자를 올린다는 것은 서민과 기업의 부담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테크의 모든 것이라고 여겨지던 부동산 시장도 예전만큼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또 정부의 규제와 인구의 감소로 부동산 시장이 예전처럼 호황을 누리지는 못하리라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펀드는 이런 시대의 흐름에 맞게 생겨난 재테크 방법이다. 대통령이 펀드에 투자한 것은 부동산 시장에 몰려 있는 시중 자금의 흐름을 금융과 자본시장 쪽으로 돌리기 위한 ‘제스처’라고 말하고 있다. 펀드의 매력 4가지… 소액투자, 전문가 운영, 분산투자, 다양한 상품 펀드의 종류에는 주식에 주로 투자하는 주식펀드, 장기채권에 투자하는 채권펀드, 단기채권에 투자하는 머니마켓펀드(MMF)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리고 영화펀드, 선박펀드, 해외펀드 등 ‘틈새펀드’까지 선보이고 있다. 펀드는 은행예금과 달리 금융기관 파산시 투자자 보호를 위해 정부에서 금융기관을 대신해 5천만원까지 원리금을 지급하는 ‘예금보호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펀드 가입으로 인한 손실은 투자자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 펀드는 미래의 수익을 예측할 수 없다는 위험이 있다. 하지만 펀드는 증권사와 은행 그리고 보험사(현재는 보험회사 상품만 팔 수 있다)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모든 금융기관에서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품의 경쟁력을 엿볼 수 있다. 펀드의 매력은 소액으로 가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려면 수백만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 주식의 경우에도 우량주는 한 주당 수십만원을 호가한다. 채권은 적어도 1백억원 이상이 있어야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 투자자가 직접 사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펀드는 1만원 이상이면 가입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이 펀드에 가입하여 돈을 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거대한 자금이 모인다. 펀드로 모인 자금이라면 여러 종류의 채권이나 주식을 사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그리고 펀드는 개인이 아닌 전문가가 대신 운영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 우리나라 증권시장에는 1천7백여 개에 달하는 종목이 있고, 8천여 개의 채권 종목이 거래되고 있다. 개인투자자가 이 모든 것을 알고 투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정보와 전문성도 떨어진다. 하지만 펀드를 통해 모인 대규모 자금은 경제분석가, 기업분석가, 펀드매니저를 다수 확보해 자금을 전문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전문가들이 얼마나 자질을 갖췄고, 운영 능력이 있는지 판단하면 된다. 펀드는 분산투자를 통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복잡한 경제 환경 속에서 펀드의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분산투자가 필수다. 여러 종목에 분산투자하는 것은 한 기업이 나쁘더라도 다른 종목들의 수익률이 건재하기 때문에 손실을 줄일 수 있다. 개인투자자는 소액자금이고,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우량한 종목들의 분산투자로 위험을 낮춘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펀드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다양한 상품이다. ‘펀드는 주식펀드를 말한다’ ‘펀드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펀드 상품이 7천여 개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놀랄 것이다. 은행권의 정기예금이나 적금의 상품도 이렇게 다양하지 않다. 7천여 개의 상품 유형은 대략 30종 이상으로 본다. 쉽게 말해서 개인투자자들이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은 펀드에 다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투자자들은 본인의 생각에 따라 펀드를 잘 고르기만 하면 된다. 펀드의 유형은 크게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채권펀드, 주식펀드, 채권혼합형 펀드, 주식혼합형 펀드, 머니마켓펀드로 나눈다. 채권펀드는 채권과 같이 안정적인 자산에만 투자하는 펀드다. 채권은 정부, 지방 공공단체나 사기업이 필요한 자금을 빌릴 때 발행하는 유가증권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채권펀드는 채권에 60% 이상을 투자하고, 나머지 40% 이하를 현금성 자산(팔아서 당장 현금으로 돌려받는 자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채권펀드는 어떤 채권을 사느냐에 따라 국공채펀드(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원리금 지급을 보증하는 채권으로 신용도와 안정성이 높다)와 회사채펀드로 나눈다. 회사채펀드는 기업의 신용도에 따라 나누기도 한다. 주식펀드는 자산의 60% 이상을 주식으로 운영하는 펀드를 말한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고, 대부분의 펀드라고 이해하면 된다. 적립식 펀드 붐이 주식형 펀드의 꾸준한 증가를 가져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혼합형 펀드는 주식과 채권을 섞어서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혼합형 펀드는 다시 주식혼합형(주식 50%이상 60% 이하 투자)과 채권혼합형(주식 0~50% 투자)으로 구분한다. 특히 채권혼합형 펀드는 주식이 50%까지 들어갈 수 있는 펀드이므로 채권펀드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채권펀드 중에서 최단기로 자금을 입·출금할 수 있는 상품을 머니마켓펀드라고 한다. 주로 만기가 짧은 단기채권이나 기업어음, 양도성 예금증서 등과 같은 현금성 자산(당장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다. 이 펀드는 단기채권에 투자하기 때문에 수익률은 낮지만 위험성도 매우 낮다는 것이 장점이다. 일반적으로 투자자들이 혼동하는 것이 채권펀드가 확정금리를 주는 상품이라는 인식이다. 채권펀드 역시 실적 배당 상품이다. 또 투자 방법에 따라 적립식 펀드와 거치식 펀드로 나뉜다. 적립식 펀드는 저축을 하듯이 월별로 일정액을 펀드에 투입하는 것이고, 거치식 펀드는 목돈을 일시금으로 투입해 운영하는 것이다. 거치식 펀드보다는 적립식 펀드가 대세다. 펀드는 다양한 종류의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다 펀드는 투자자에게 모집한 자금으로 여러 유가증권에 투자해서 얻은 수익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사전에 일정한 수익률을 돌려준다는 약속을 못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펀드의 다양한 상품 종류처럼, 펀드의 수익구조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이자수익은 펀드에서 보유한 채권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말한다. 주식펀드와 같이 주식에만 투자하는 일부 펀드 외에 대다수 펀드가 회사채, 국공채와 같은 채권으로 수익을 발생시킨다. 채권이자는 일반적으로 3개월이나 6개월 단위로 결산한다. 중간에 환매하는 고객도 전혀 불이익이 없도록 합리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배당수익은 주식이 결산을 맞아 배당을 주면 얻는 수익이다. 배당수익은 1년에 한 번씩 들어오는데, 지금까지는 기업의 낮은 배당정책으로 인해 상당히 저조한 수익률을 보여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저금리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배당수익률이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어, 배당수익을 중요시하는 투자 관행이 정착되고 있다. 주식펀드가 요즘 가장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주식과 채권을 매수한 뒤 가격이 올랐을 때 매도하면 매매차익이 발생한다. 물론 가격이 하락한 뒤에는 매매 손실이 발생한다. 매매이익이나 매매손실은 이미 펀드의 가치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수익률로 반영되어 있다. 매매 이후에 추가적으로 반영되는 이익과 손실은 그다지 크지 않다. 펀드는 운용 과정에서 발생한 이익을 매일 정확하게 평가한다. 평가 결과를 ‘기준가격’이라는 방식으로 매일 투자자에게 공시한다. 펀드는 운용 성과를 대개 1년에 한 번씩 결산해서 투자자에게 ‘결산분배금’ 형식으로 분배한다. 만일 투자자가 결산분배금을 찾아가지 않으면 이미 가입해 있는 펀드에 자동적으로 재투자된다. 펀드 중 만기상환일이 정해져 있는 경우에는 상환일에 펀드를 청산해 상환금을 투자자에게 돌려준다. 대부분의 펀드는 처음 펀드에 가입한 이후 너무 일찍 투자자금을 찾아가면 벌금인 ‘환매수수료’를 물리고 있다. 펀드에서 빠져나가는 투자자 수익에서 일부를 떼어내어 펀드에 돌려주는 것이다. 환매하는 투자자에게 이익금의 30~70%를 벌금으로 부과하는데, 이익이 나지 않았다면 부과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펀드에 투자하려는 투자자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손실의 책임이 투자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원금을 보전해주는 펀드는 없다는 말이다. 그만큼 투자자가 펀드의 종류와 운영방식 등을 꼼꼼히 살펴서 선택해야 한다. 펀드의 대세는 적립식 주식펀드 적립식 주식펀드는 매달 조금씩 주식을 사서 평균 매입단가를 낮춰 리스크를 줄이는 상품이다. 매달 1백만원씩 적립식 주식펀드에 가입했다고 가정해보자. 첫 달에 1백 주를 샀는데, 두번째 달 주가의 하락으로 1백50주를 살 수 있었다. 세번째 달에는 주가의 하락이 심해져 3백 주를 샀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평균 1백80여 주를 산 것이 된다. 자신이 투자한 자금에 손실이 왔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주식을 더 많이 샀다고 생각하면 적립식 주식펀드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단기적인 상품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하는 상품이다. 공격적으로 수익을 올리는 상품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적립식 주식펀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 7월 말 시중은행 8곳의 적립식 펀드 잔액이 4조원을 돌파했다. 2004년 말 1조6천억원에서 무려 130% 이상이 급증한 수치다. 잔액뿐만 아니라 최근의 주가 상승 덕분에 수익률 역시 고공 행진중이다. 지난 7월 29일, 주식펀드의 수익률이 지난 3년 평균 총 76.1%라는 놀라운 수익률이었다. 주식투자로 연평균 10% 내외의 수익을 올린다고 보면 주식펀드의 수익률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주식펀드로 수익을 올리려면 투자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식펀드는 장기투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 주가지수 1천 포인트가 새로운 지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주식시장이 장기적인 상승세인 만큼 몇 개월 보유하고 환매하는 방식보다는 장기 보유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주식시장에도 사이클이 있습니다. 떨어질 때가 있고, 오를 때가 있다는 거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10년 이상의 긴 안목으로 보면 우량주들은 상승했습니다. 삼성전자나 포스코, 신세계, 농심 등 우량주들을 보면 알 수 있어요. 85년과 95년 그리고 2005년의 주식평가액을 비교해보면 우량주들은 대부분 상승했습니다. 주식펀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야지, 단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면 실패할 확률이 큽니다.”(ING생명 재무상담사 김현욱) 만일 향후 주식시장을 불투명하게 보는 투자자라면 환매를 하더라도 가입 금액을 일정 부분 분할 환매해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품에 따라 우량주나 저평가된 가치주, 코스닥주 등 각양각색으로 펀드를 운영한다. 따라서 수익률 역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주가상승률에 일희일비하는 자세로는 적립식 주식펀드의 장점을 간과하기 쉽다. 그리고 저금리·고령화 시대에 단순한 예금과 적금으로는 노후 설계를 할 수 없다. 주식이 저축이라는 생각으로 적극적인 투자 자세가 필요하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자료 제공·컨설팅 / 한국펀드평가(www.kfr.co.kr) 노무현 대통령이 가입했다는 코스닥펀드는? 노무현 대통령은 코스닥 편입 비중이 큰 펀드에 나눠서 투자했다고 한다. 펀드 운영 포트폴리오에 코스닥의 비중이 큰 펀드에 가입했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 코스닥펀드에 가입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코스닥펀드를 이해하려면 장외주식형 펀드를 알아야 한다. 장외주식형 펀드란 거래소 상장 기업 외에 코스닥 등록기업이나 비상장 비등록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장외주식형 펀드는 코스닥 등록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코스닥펀드와 비상장 비등록기업에 투자하는 프리코스닥펀드 등이 있다. 코스닥 시장이 좋았을 때는 각광받았지만, 요즘은 그리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펀드들이다. 장외주식형 펀드는 일반 주식형 펀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장외주식형 펀드는 장외주식을 집중적으로 편입하는 펀드라고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코스닥이나 비상장 주식투자 비율이 약관상 60% 이하, 30% 이하, 20% 이하 등으로 정한 것이 많다. 장외주식형 펀드면서 장외주식을 한 주도 편입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코스닥 시장은 일반적으로 거래소 시장에 비해 주가 변화가 크다. 코스닥에 주로 투자하는 장외주식형 펀드 역시 리스크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위험이 큰 만큼 높은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때문에 펀드의 약관을 보면 장외주식의 편입 비율이 각 회사마다 천양지차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담당 펀드매니저나 투자신탁설명서를 통해 약관상 장외주식 편입 비율과 실제 장외주식 편입 계획을 꼼꼼히 비교해야 한다. 장외주식형 펀드는 고위험 펀드인 만큼 분산투자 차원에서 고려하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펀드 리스트 ● 주식펀드 3년 성과 상위 20개 펀드 펀드명 운용사 설정일 미래에셋디스커버리주식형 미래에셋(자) 2002년 04월 02일 미래에셋인디펜던스주식형 미래에셋(자) 2001년 02월 14일 세이고배당주식형 SEI에셋 2001년 07월 06일 PCA업종일등주식D-1 PCA 2002년 04월 18일 신영마라톤주식 신영 2002년 03월 30일 PCA베스트그로쓰주식A-1 PCA 2002년 01월 29일 BEST모아모아적립식주식1 조흥 1999년 01월 11일 미래에셋솔로몬성장주식1 미래에셋(투) 2001년 04월 02일 한국부자아빠인덱스파생상품 한국운용 2002년 04월 10일 온국민뜻모아주식1 동양 2002년 01월 22일 온국민파이팅!코리아 KB 2002년 06월 03일 골드플랜연금주식A-1 한국운용 2001년 10월 08일 삼성인덱스프리미엄파생상품 삼성 1999년 03월 06일 프런티어뉴인덱스플러스파생상품αF-1 우리 2001년 01월 31일 Pru나폴레옹FREE주식1 푸르덴셜 2002년 01월 11일 유리인덱스200주식파생상품 유리 2001년 09월 11일 TempletonGrowth주식5 템플턴 2001년 03월 06일 삼성팀파워90주식형 삼성 2002년 03월 08일 Big&Safe인덱스주식03-1 CJ 2002년 02월 05일 Pru나폴레옹주식2-1 푸르덴셜 2001년 04월 03일 ※2005.8.16 영업점 기준가 기준. 주식 고편입 공모펀드 중 설정액 50억원 이상, 운용기간 3년 이상 경과된 펀드에 한함. Mini Interview ING생명 재무상담사 김현욱 Q 펀드가 뜨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안정적이라는 부동산 시장 역시 인구의 감소와 부동산 정책에 따라 지금처럼 큰 이익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다. 그리고 은행의 예·적금은 저금리 때문에 재테크 수단으로 큰 매력이 없다. 앞으로도 저금리 기조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시중에 묶여 있는 자금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펀드에 몰리면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Q 펀드의 매력은 무엇인가? 다양한 상품이 있다는 것이다. 펀드 상품만 4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만큼 투자자들의 성향과 목표 수익률에 맞출 수 있는 상품이 다양하다는 것이 매력이다. Q 적립식 펀드에 대한 인기가 높다. 이유가 무엇인가? 매달 일정액을 불입한다는 측면에서는 적금과 비슷하다. 하지만 적립식 펀드의 수익률이 적금의 이자보다 높다는 것이 매력이다. 특히 노후 대책과 퇴직 이후의 생활을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 것 같다. 적립식 펀드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투자해야 하는 상품이다. 단기적으로 목돈을 만들려면 적금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 김현욱이 제안하는 펀드 투자시 유의해야 할 사항 1 펀드는 퇴직이나 노후 준비 등 장기적인 목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큰 수익에는 큰 위험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차분한 마음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해야 손실을 줄이고, 이익을 얻을 수 있다. 2 펀드의 수익은 펀드매니저에게 맡겨야 한다. 그날그날의 주가지수 등에 부화뇌동하면 이익보다는 손해를 볼 가능성이 많다. 3 펀드 상품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다. 현재 7천여 개의 펀드가 존재한다. 이 펀드를 유형으로 나눠봐도 30종 이상이다. 각종 펀드 정보를 정확하게 숙지하고 가입하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손실을 볼 수 있다. 4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 본인이 져야 한다. 투자자는 각종 경제, 투자에 대한 지속적인 공부를 해야 한다. 5 장기투자는 매입 시점보다는 환매 시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6 펀드 가입시 가능한 검증이 된 펀드나 수탁고가 많은 펀드를 고르는 것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각종 펀드 평가 사이트를 통해서 펀드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것이 좋다. 7 펀드 투자시 자신의 재무상태와 자신의 투자 성향을 파악한 후 적합한 펀드 투자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8 펀드 투자시에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다양한 종류의 펀드에 분산투자하는 것이 손실을 줄이는 방법이다.
재테크 가이드
노무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첫 딸’ 출산 임박
2004. 01. 01 화제
첫 손녀 보게 되면 안팎으로 시끄러운  청와대에 함박웃음 피어날까?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안팎으로 가족 경사가 끊이지 않았다. 딸 정연씨의 결혼과 아들 건호씨의 결혼… 그런 후 잘나가던 국정 운영이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대통령의 주름이 더 깊어진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이 때 장남 건호씨의 첫 딸 출산이 임박하면서 새로운 기대가 솟구쳐 오른다. 첫딸은 살림밑천이란다. 희망의 씨앗인 셈! 손녀딸을 기다리는 할아버지의 애틋한 심정에 더불어 국정 운영도 희망으로 넘쳐나길 바란다. 첫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데… 요즘 청와대를 보면 즐거운 일이 없을 듯하다. 안으로는 사안별로 정치적인 변수가 있는 사건들이 속속 터지고, 밖으로는 이미 결정되었지만 이라크 파병 등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 자연인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부분들을 뛰어넘는 것들이라 대통령의 고민도 이해가 되고, 예단이나 속단을 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라 불안해하는 민심도 그럴 만한 이유는 있는 듯하다. 이런 와중에 노무현 대통령 집안에 그나마 위안이 되는 가족 경사가 있을 듯하다. 2002년 12월 25일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결혼식을 치른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30, LG전자)가 조만간 딸을 출산할 예정이라는 얘기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연세대 후배인 아내 배정민씨(27)는 만삭으로 출산 준비중이다.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처럼 어려운 시기에 치국을 해야 하는 대통령의 복잡한 마음에 힘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가족들에게도 오랜만에 함박웃음을 짓게 할 반가운 소식이다. 조만간 태어날 노무현 대통령의 첫 손녀는 그만큼 어려운 시기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이 되기에 충분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무리 대통령이 됐더라도 장남인 노건호씨는 물론 딸 역시 평범하기를 바라는 탓에 근접 밀착 경호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할 정도였다. 이런 생각은 얼마 안 있으면 아빠가 될 노건호씨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그러나 보통 사람으로서의 삶은 이미 노무현 대통령 일가의 손을 떠난 듯 하다. 노건호씨는 앞으로 최장 12년 동안 대통령 경호실의 호위를 받는다고. ‘대통령경호실법’은 대통령의 자녀는 퇴임 뒤 7년까지 ‘호위’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끝은 아니다. 7년이 지난 뒤에는 경찰이 호위 업무를 맡는다. 법적인 의미에서 ‘호위’는 ‘신체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위해를 근접에서 방지 또는 제거하는 행위’(경호실법 2조1항)라고. 결국 생활하는데 위험한 요소를 없애야 하는 만큼 근접 경호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주위에 경호원이 배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앞서 밝혔듯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지난해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건호씨와 딸 정연씨에 대한 ‘부드러운 경호’를 주문했지만 정도를 줄일 뿐 원천적으로 경호 업무를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경호실 관계자 역시 최대한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경호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경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경호 활동은 호위, 즉 신변경호와 거주지 경비로 나뉘어진다고. 호위는 청와대 경호실, 경비는 여의도경찰서에서 담당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시 장남 김홍일 의원의 서교동 자택에는 마포서에서 파견한 경비 병력 10여 명이 배치됐었다. 그러나 건호씨가 살고 있는 여의도 아파트에는 인근 파출소에서 15분 단위로 순찰을 도는 정도로 경비가 대폭 축소됐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호위와 경호와 관련된 보도는 보호를 받아야 하는 측과 보호를 해야 하는 측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LG전자에 근무하는 노건호씨에 대한 경호 해프닝도 그중 하나다. LG전자 사람들 입에서 “건호씨 부서 사람들은 회식도 마음놓고 못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고 그 이유가 경호원들의 밀착 경호 때문이라는 것. 물론 회사 측과 청와대 경호실 측은 ‘그런 일 없다’며 펄쩍 뛰고 있지만 이런 말은 꼬리를 물고, 다른 회사 사람들의 입에까지 전해져 사무실에 ‘칸막이 방을 마련해 눈에 띄지는 않지만 근무시간 내내 경호의 눈을 떼지 않는다’고까지 알려진 상황이다. 건호씨 회사 퇴사 후 유학설 모락모락 소문은 정황 근거를 가지고 퍼져나갔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노건호씨 근무 부서에서는 올해 들어 전체 회식을 할 때 2차까지 간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한다. 회식 자리 또한 경호를 해야 할 상황이기에 경호원이 자리를 피해줄 수는 없는 일. 결국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경호원들이 신경쓰여 부서 사람들 전체가 편하게 회식을 즐길 수 없어 일찍 끝낸다는 것이다. 또 경호원 1∼2명이 출입이 통제되는 LG전자 사내까지 들어와 부서 분위기가 경직되기도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회사 측은 조목조목 이유를 대며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경호원이 회사 안까지 들어온 일은 없다”며 “또 회식 때 노건호씨가 문제가 되면 빼놓고 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건호씨를 둘러싼 경호 잡음을 일축했다. 청와대 경호실 역시 입장은 마찬가지다. “100%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반인들은 경호요원이 누군지 식별하기조차 쉽지 않다. 엉뚱한 사람을 착각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건호씨는 이에 대해 지극히 평범한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동안 경호문제 등으로 해외지사에 나가게 됐다는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일반 사원과 똑같이 LG전자가 있는 서울 여의도 쌍둥이빌딩에 오전 8시 30분까지 출근, 오후 6∼7시에 퇴근하는 보통 직장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회사 관계자는 물론 입사 당시에는 경호문제로 동료 직원들이 다소 불편했던 점을 인정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회사 일에 적응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한 간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아들이라는 사실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매우 평범한 샐러리맨 생활을 하고 있다”면서 “상사한테 결재도 받고, 필요할 경우 야근도 하면서 주위 동료들과 잘 어울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소문은 지난 5월 사전출입 예약제까지 실시되면서 더욱 커졌었다. 심지어 ‘노건호 보호작전’에 돌입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사실 이때부터 LG전자는 그룹 내 계열사라도 사원증만 있으면 출입시켰던 보안 시스템을 전자 사원들 외에는 1층 로비 안내 데스크에서 확인을 받은 뒤 임시출입증을 발급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도록 바꿨기 때문.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 생기면서 노건호씨가 회사를 그만두고 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는 소문이 측근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아무리 평범하게 살려고 해도 평범할 수 없는 대통령의 가족. 그러나 대통령의 이쁜 손녀의 탄생과 함께 이런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리길 바란다. 글 / 강석봉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