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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금정치 복원? 17년 전 노무현, 한나라·민노당에서 배워라(2024. 09. 16 06:00)
- 2024. 09. 16 06:00 정치
- 그간 정부 입장 부재로 개혁 실패…이번에도 공방만 하다간 같은 길 세대별 차등 인상 등 쟁점에 17년 전처럼 고난도의 정치력 발휘해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9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은 올해 수준인 42%로 유지하는 내용을 담은 ‘연금개혁 추진계획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정부가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고 은퇴 전 소득 대비 연금액을 뜻하는 소득대체율은 올해 수준인 42%로 유지하는 개혁안을 지난 9월 4일 내놨다. 중장년일수록 보험료가 빠르게 오르도록 보험료율 인상 속도에 세대별 차등을 뒀고, 가입자들의 기대 여명과 가입자 수 증감에 따라 연금액을 조정하는 자동조정 장치를 2036년 이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정부가 구체적인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놓은 것은 2003년 이후 21년 만이다. 국민연금의 재정을 전망하고 보험료 등을 조정하기 위한 국민연금법상의 ‘재정계산’은 2003년 처음 했는데 2047년에 기금이 소진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참여정부는 이 계산 결과를 토대로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을 위해 ‘더 내고 덜 받는’, 즉 보험료율을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낮추는 법안을 국회에 2003년 10월 제출했다. 이후 3년 8개월간의 진통 끝에 2007년 개혁이 이뤄져 보험료율 9%-소득대체율 40%(기존 소득대체율 60%를 2008년 50%로 낮춘 뒤 해마다 조금씩 떨어져 2028년 40%에 도달하도록 설계) 체제가 만들어졌다. 노인 중 소득하위 70%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기초노령연금)도 이때 도입됐다. 이후 17년간 국민연금 개혁은 없었다.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두 번째 재정계산이 있었지만 이때는 ‘9%-40% 체제’의 안착이 주된 과제였고, 세 번째 재정계산이 이뤄진 박근혜 정부에선 기초연금-국민연금 연계 논란이 벌어져 국민연금 개혁을 논의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네 번째 재정계산이 이뤄진 2018년엔 개혁 기대감이 높았으나, 문재인 정부는 4개의 개편안을 병렬적으로 발표한 후 쟁점 논의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넘겼다. 그러나 경사노위 역시 단일안을 내지 못하고 3개의 개편안을 발표한 뒤 활동을 종료했다. 그간의 개혁 실패 사례에서 공통으로 확인되는 것은 정부의 ‘입장 부재’였다. 윤석열 정부는 이번에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을 비롯한 구체적인 정부안을 21년 만에 내놓았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충족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다음 단계다. 국민연금 개혁은 미래세대에게 지나친 짐을 지우지 않도록 세대 간 형평을 기하면서 적절한 노후소득 보장이란 애초의 제도 취지도 놓쳐선 안 되는 고난도의 정치 과정이다. 그런데도 정치 역량을 보여줬어야 할 국회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수년간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 않은 채 사회적 대화나 전문가 합의만을 강조해왔다. 정치권이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전문가들 사이에선 소득대체율 인상론과 재정안정론이 부딪쳐 접점 없이 논쟁만 되풀이됐다. 국민연금은 안 그래도 복잡한 제도인데, 양측 대립이 격해지면서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노인빈곤 개선에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 등의 기초적인 사실관계마저 ‘합의’되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안이 마련됨으로써 개혁 논의의 출발선은 그어졌지만, 각 정당이 개혁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이번에도 정부안을 둘러싼 전문가 공방만 이어지다가 개혁의 불씨는 사그라들 것이다. 국회 의안과에 법안 서류들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어떻게 해야 연금정치가 ‘가동’될까. 2007년 마지막으로 이뤄진 국민연금 개혁 과정이 한국형 연금정치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야당들은 정부안에 격렬히 반대하면서 정부안의 취약점을 보완할 대안을 각자 가져왔고, 정부는 이 대안들을 토대로 타협안(기초노령연금 도입)을 제시함으로써 돌파구를 만들었다. 이때 개혁에 실패했다면 국민연금 소진 시점은 여전히 2047년이었을 것이고(지난해 다섯 번째 재정계산에서는 소진 시점이 2055년으로 나타났다), 노인빈곤율을 낮췄다고 평가받는 기초연금제도는 지금 없었을 것이다. 2007년 연금개혁 과정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연금정치의 ‘조건’을 살펴보자. ■2007년 개혁은 어떻게 가능했나 참여정부 시기 연금개혁 논의가 처음부터 불붙었던 것은 아니다. 2003년 6월 국민연금의 첫 번째 재정계산 결과를 토대로 정부는 보험료율을 15.9%(당시 보험료율 9%)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50%(당시 소득대체율 60%)로 낮추는 법안을 그해 10월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여야는 국민연금에 대해 별 논의를 하지 못한 채로 이듬해(2004년) 총선 국면을 맞았다. 이어 16대 국회 임기 만료로 정부의 법안은 폐기됐다. 당시 참여정부는 개혁 이전에 ‘제도 불신’부터 극복해야 했다. 2004년 여름 인터넷상에선 사실과 다른 ‘국민연금 8대 비밀’이라는 글이 확산했고 ‘안티 국민연금’ 운동이 벌어졌다. 정부는 ‘국민연금 비밀 바로알기’ 자료를 배포하고 가입자 불만을 사항을 제도 개선에 반영하면서 ‘안티 사태’를 진화한 뒤 국민연금 개혁 법안을 2004년 10월 다시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의 법안에 대해 야당들과 시민단체들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보험료 인상에 대한 반박도 있었지만, 국민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당시의 수많은 고령자 즉 광범위한 사각지대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 비판의 주된 내용이었다. 이때 야당인 박근혜 대표 체제의 한나라당은 비판에 그치지 않고 가장 먼저 정책 대안을 마련했다. 64세 이상 모든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연금의 도입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기초연금의 소득대체율은 9%로 시작해 2028년까지 20%로 높이기로 하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60%에서 20%로 크게 낮추자는 내용이었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기존(9%)보다 낮은 7%를 제시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도 정부안을 수정한 대안을 마련했는데 소득대체율은 정부가 제시한 대로 낮추고(60%→50%), 보험료율 조정은 4년 뒤로 미루자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양당은 1년여 동안 각자의 안을 고집하며 대립했다. 2007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일과 가정이 함께하는 기업환경 조성보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유시민 당시 복지부 장관 / 연합뉴스 지루한 대치 국면을 깨뜨린 것은 2006년 2월 새로 취임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다. 이때 복지부는 두 차례에 걸친 내부 토론회를 통해 한나라당이 주장한 기초연금을 받아들여 ‘기초노령연금’ 제도를 도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가장 큰 걸림돌인 재원은 국무조정실,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와의 회의를 통해 증세 없이 세출 구조조정, 비과세 감면·축소 등으로 조달하기로 했다. 복지 확대에 늘 부정적인 경제부처를 움직인 것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었다. 유시민 당시 복지부 장관(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유튜브 방송에서 기초연금 도입의 ‘결정적 장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첫해에 얼마 드는데?’ 물어보시더라고요. (중략) 기획예산처 장관님한테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렇게 한다니까 잘 얘기해서 도와주시오’ 전화하셔서 내부적으로 추진하기로 됐어요. 그 후 국회에서 대상을 늘려라 해서 ‘돈 더 주셔야 되겠는데요’ 했더니…. (중략) ‘아니 뭐 싫으시면 말고요. 어르신들 노무현이가 잘 모신다고 해놓고 잘 모신 것도 없지 않습니까’ 했더니 (대통령이) ‘알았어’ 하시더라고요.” 이상이 2006년까지의 얘기다. 이때까지는 정부 개혁안의 취약점을 파고들어 타당한 대안(기초연금)을 내세웠던 한나라당과 그 대안을 받아들인 정부의 ‘플레이’가 돋보였다면 2007년 마무리에선 ‘캐스팅보트’ 민주노동당의 활약이 컸다. 2006년 보건복지부가 각 신문에 실은 국민연금 개혁 광고 / 출처: 참여정부 정책보고서 2-23 국민연금 ■캐스팅보트 ‘민노당’의 활약 기초노령연금 도입을 담은 정부 법안이 다시 국회에 제출된 이후 개혁 논의는 급물살을 탔지만, 야당들은 여전히 정부안에 회의적이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은 정부안에 맞서 국민연금·기초연금 단일안을 만들었다. 이 단일안은 한나라당보다는 민주노동당의 색이 강했다. 기초연금을 도입하면서도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크게 약화하지는 않도록 민주노동당이 한나라당을 설득해낸 것이다. 가장 보수적인 정당과 진보적인 정당이 손을 잡고 정책대안을 만들어낸, 한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사례였다. 다만 ‘결전’이 이뤄진 2007년 4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선 또 한 번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나라당-민주노동당의 기초연금·국민연금 법안과 정부의 국민연금 법안이 모두 부결되고 정부의 기초노령연금 법안만 통과됐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민주노동당과 함께 만든 법안에 투표하지 않았다. 정부로서도 난감한 결과였다. “국민연금법 개정이 입에 쓰기에 기초노령연금법안을 사탕과 같이 올려놨는데, 약사발은 엎고 사탕만 먹었다”(유시민 전 장관)는 말이 나왔다. 기초연금만 도입하고 국민연금 개혁에는 실패했다는 비판 여론 속에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 최종 협상을 이어갔다. 그리고 양당의 협상 결과는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앞선 단일안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낮추지만(60%→40%) 기초연금을 도입함으로써 노후소득 보장은 약화시키지 않는 법안이 만들어진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한나라당을 설득해 만든 연금 단일안이 없었다면 거대 양당의 협상 결과는 퍽 달랐을 것이다. ■타협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지난 9월 4일 정부가 발표한 국민연금 개혁안으로 다시 돌아오자. 2007년의 기초연금과 같은 타협점이 이번에도 나올 수 있을까. 일단 ‘전선’은 보험료율 인상 세대별 차등 적용을 둘러싸고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자동조정장치가 급여 삭감으로 이어진다는 논란이 있지만, 정부는 한발 앞서 2036년·2049년·2054년 도입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충분한 논의와 세밀한 검토를 거쳐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중장기 과제’로 설정했다. 정부가 제시한 소득대체율(42%) 역시 민주당과 시민단체에서 강력 반발하고 있지만, 지난 9월 12일 국민의힘이 “42%와 45% 사이에서 국회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김상훈 정책위의장)며 협상할 공간을 만들었다. 앞서 21대 국회에서 여야는 보험료율 13%에는 합의했으나 소득대체율에선 43%(국민의힘), 45%(민주당)로 입장이 갈렸고, 이재명 대표가 국민의힘이 수정 제시한 44%를 수용하겠다고 했으나 국민의힘이 구조개혁도 해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련의 ‘줄다리기’가 보여주는 것은 소득대체율 역시 타협의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세대별 인상 차등을 두고 여야가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민주당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이 제도”가 저소득 중장년에게 부담을 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다만 “가입이력이 짧아 과거 후한 소득대체율의 혜택을 못 누린 중장년에게 청년보다 빠른 보험료율 인상은 부당할 수 있으므로 이들을 위한 감면 특례 등의 보완 등을 모색하자”(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는 제안도 있다. 사실 절충과 타협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것은 무엇보다 ‘개혁 의지’다. 오 정책위원장은 “노무현 정부의 경우 정부안을 제시한 후 개혁을 달성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현 정부가 낸 정부안은 지난 2년 동안 안 내다가 떠밀려 낸 성격이 강해 앞으로 얼만큼의 추진력을 보여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들이 정책 정당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줄지도 미지수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2007년 국민연금 개혁 성공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만큼 주목해야 할 사람이 기초연금을 제안한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 “민주당이 연금개혁에 의지가 있다면, 비판만 하지 말고 박근혜처럼 역제안을 해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기성정당에선 볼 수 없던 정책적 역량으로 거대 양당에 자극제가 됐던 민주노동당 같은 ‘캐스팅보트’가 없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개혁신당(3석)이 국민연금의 구연금·신연금 분리 대안을 내며 개혁 논의에 참여할 의지를 보이지만, 의석구조상(민주당 계열 175석·국민의힘 계열 108석·조국혁신당 12석) 영향력을 가지기 힘들다.
- [박주연의 메타뷰](3) “꾹 다문 노무현의 입술, 타살 아님을 확신했죠”(2022. 02. 18 13:57)
- 2022. 02. 18 13:57 사회
- ㆍ불법체류노동자부터 6명의 전직 대통령까지 마지막 길 배웅한 ‘염장이’ 유재철씨 유재철씨(63)는 매일 아침 6시 서울 은평구 사무실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작은 불상 앞에 촛불 3개를 켜고 향초를 피운 후 기도를 한다. 그가 배웅한 고인들의 극락왕생을 위한 기도다. 그는 스스로를 ‘염장이’라 부른다. 염장이는 ‘염습(殮襲)’을 하는 사람이며, 염습은 고인을 마지막으로 목욕시키고 깨끗한 옷을 입혀 관에 모시는 일이다. 유씨는 염습 외에도 장례지도사로서 매장이나 화장, 묘소 조성, 봉안 등 장례 전반의 일을 진행한다. 유재철씨가 지난 2월 15일 서울 은평구 사무실에서 전직 대통령들을 포함해 자신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고인들의 장례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지난 29년 동안 그의 위로를 받으며 떠난 고인은 우리 사회 가장 낮은 곳에 머물던 불법체류노동자·무연고자부터 최고 권력 또는 재력가에 이르기까지 수천명에 달한다. 최규하·노무현·김대중·김영삼·노태우·전두환 등 전직 대통령 여섯명도 포함된다. 그에게 ‘대통령의 염장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일붕·법정·숭산·법전·무진장 등 큰스님들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이맹희 전 CJ그룹 명예회장의 마지막 길도 그가 배웅했다. 유씨는 최근 에세이 <대통령의 염장이>(김영사)를 펴냈다. 전직 대통령뿐 아니라 그가 곱게 단장해 이승을 떠나보낸 이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2월 15일 유씨를 인터뷰했다. -전직 대통령 여섯분의 장례를 잇따라 맡게 된 첫 단추가 최규하 전 대통령 서거였다지요. “염장이로 일하면서 동국대 대학원 장례문화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았어요. 2005년 ‘한국의 단체장(葬)’으로 석사 논문을 쓰고 싶어 행정안전부 의정팀에 연락했죠. 대통령 장례식 자료가 필요했거든요. 하지만 대통령기록물은 30년간 공개할 수 없다고 해요. 대신 육영수 여사 기록물은 막 비밀해제가 됐다면서 주더라고요. 별 도움이 안 됐어요. 이듬해 10월 새벽 1시에 TV에서 최규하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 속보로 떴어요. 장례식장으로 무작정 달려갔죠.” -부르지도 않았는데요. “그랬죠(웃음). 가보니 비서진들은 뭘 먼저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더라고요. 명함을 주며 돕겠다고 했어요. 당시 저는 대학원생인 동시에 강의도 맡고 있어 명함에 장례문화학과 외래교수로 찍혀 있었거든요(웃음). 비서진들이 아침에 보자고 해요. 다음날 아침 종묘사직의 제사를 맡고 계신 인간문화재 이건웅 선생님과 영친왕의 아들 이구의 왕실 장례를 진행한 이홍경 선생님을 모시고 다시 갔어요. 비서에게 두분을 소개했더니, 마침 잘됐다며 최 전 대통령의 유지가 적힌 파일을 꺼내 보이더라고요.” -유지에는 뭐라고 적혀 있었습니까. “최 전 대통령은 돌아가시기 전 직접 자신의 장례와 제사 방식을 정리해 놓으셨어요. 이건웅·이홍경 선생님은 격을 높여 왕실 장례 방식으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셨어요. 유족은 흔쾌히 동의했고, 염은 제게 맡기셨죠. 마침 장례식장에 온 한 스님이 저를 알아보고는 제가 이전에 수만명이 모여든 큰스님들의 다비식을 진행한 사실을 유족에게 알렸거든요. 직후 박정희·윤보선 전 대통령 장례식 자료 복사본도 행안부 의정팀으로부터 받았어요. 전직 대통령 장례를 왕실 방식으로 치른 건 그때가 유일했어요.” 유재철씨는 매일 아침 6시면 작은 불상 앞에 촛불 3개를 켜고 향을 피운 후 자신과 인연을 맺은 고인들의 극락왕생을 위해 기도한다. 29년째 하는 일이다. / 우철훈 선임기자 -왕실 방식의 염습은 일반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돌아가신 분의 수의 겉옷을 입혀드릴 때는 보통 두가지 방법이 있어요. 다리를 들고 엉덩이 밑으로 겉옷을 넣어 입히는 게 한 방법이에요. 또 다른 방법은 환자복을 입히듯 어깨와 허리를 옆으로 세워서 반쯤 말아놓은 겉옷을 넣은 다음, 다시 몸을 반대로 돌려 겉옷을 펴고 팔을 끼워 입히는 방법이죠. 왕실에서는 하의를 입히고 여러 사람이 고인을 공중으로 들어올린 다음, 시상대에 펼쳐놓은 겉옷에 고인을 내려 양팔을 끼워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총탄에 의해 서거했어요. 염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내용도 있었나요. “아쉽게도 없었어요. 박정희·윤보선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장례는 교보문고와 종로2가 사이에 있던 종로장의사라는 곳에서 진행했어요. 장의업을 하던 분이 돌아가시고 후손들도 가업을 잇지 않으면서 문을 닫았죠.”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은 ‘다행히 깨끗하셨다’고 책에 기술했어요. 표정은 어땠습니까. “두 눈은 감겨 있고 입술은 꾹 다물고 계셨어요.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둘러싸고 일부에서 타살 의혹을 제기했지만 저는 타살이 아님을 확신했어요. 타살일 경우 얼굴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겁먹거나 놀란 표정 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에요. 노 전 대통령은 피는 많이 흘렸지만, 외관상으로는 훼손된 부위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손과 발뒤꿈치 등 몇군데 외에는 꿰매드린 부위가 거의 없었어요.” 2009년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후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지낸 운구행렬이 숭례문 앞을 지나고 있다. 2000개의 만장이 펄럭였다. / 김기남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엠바밍(emba- lming·시신 부패 방지를 위해 몸속에 약품을 넣으면서 피를 빼내는 작업)을 했지요. “냉방 장치가 열악한 봉하마을 마을회관에 차려진 분향소에서 7일장을 진행하려면 어쩔 수 없었어요.” 2009년 5월 29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제에 사용된 만장 2000개를 준비하는 과정은 ‘기적’에 가까웠다. 불과 이틀 만에 만장에 글씨를 쓸 서예가를 섭외하고 만장 깃대인 대나무도 그만큼 구해야 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급히 조계사에 연락했고, 조계종 총무원장이셨던 지관스님이 만장을 쓰시는 모습이 방송을 타자 전국의 서예가들이 몰려들어 하루 반 만에 만장 1200장에 글씨를 써줬다”고 했다. 남은 800장은 서예과 교수들과 학생들이 썼다. 이후 행안부는 “이유는 묻지 말라”며 어렵게 구한 대나무 대신 PVC 파이프로 만장 깃대를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나중에 언론보도를 통해 만장에 쓴 대나무가 죽창이 돼 청와대로 향하게 될 위험 때문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염습도 직접 했습니까. “유일하게 제가 염습을 안 해드린 분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에요. 고인의 비서실장을 했던 박지원 당시 의원(현 국가정보원 원장)이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 측에 사전에 맡겼거든요. 하지만 다른 대통령의 장례식과 마찬가지로 빈소와 시신 안치, 분향소 운영과 관리, 영결식 후 운구 행렬 등 장래 전반의 진행은 제가 맡았어요.” -노태우·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습니까. “두 분 모두 못 알아보겠더라고요. 노태우 전 대통령은 오랫동안 병석에 계셔서 많이 수척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얼굴이 몹시 초췌하셨어요. 그런데 전 전 대통령은 만져보니 젊은이 못지않게 다리 근육이 정말 단단했어요. 운동을 열심히 하신 것 같았어요. 두 분 모두 고인이 누울 관 바닥을 한반도 모양의 꽃장식으로 해드렸어요. 두분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물을 것이고, 저는 염장이로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다해 고인을 잘 보내드리고 싶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는 영정에 두르는 검은 띠를 없앴지요.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식 때는 상주가 왼팔에 차던 완장을 없애고 베로 만든 상장을 왼쪽 가슴에 달게 했고요. 운구병들이 착용하던 마스크와 장갑도 벗게 했고요. “모두 우리 전통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왼팔에 두르는 검은 띠는 일제의 잔재이고, 운구병들의 마스크와 장갑은 군사문화의 하나예요.” 2015년 11월 23일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입관식에서 손명순 여사가 김 전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 김영삼 전 대통령 유가족 제공 그는 경기도 광주 태생이다. 다섯 살 때 가족이 서울 천호동으로 이사했고, 그의 아버지는 항아리 장사와 쌀집으로 큰돈을 벌었다. 그는 전문대학 졸업 후 군에서 제대한 다음, 부자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크게 벌렸다가 큰돈을 날렸다. 당시 아파트 3채 값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한강에 뛰어들 생각을 할 만큼 자포자기 상태가 됐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위해 안암동 고려대 뒤쪽 개운사에 가서 기도를 드렸다. 그게 인연이 돼 스님들과 많은 대화를 하고 힘을 얻었다. 이후 학원 운영도 하고, 형이 운영하는 무역회사에서도 일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어쩌다 염장이가 된 건가요. “어머니 따라 절에 가서 공부하니까 재미있더라고요. 법륜스님, 암도스님도 뵀고요. 자연스럽게 대한불교청년회에 가입했죠. 그러다 1994년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전국불교청년대회에 참가했는데 그곳에서 만난 청년회원 2명이 상조회사를 만들어 3년 만에 큰돈을 벌었다는 거예요. 초기자금이 없어도 된다면서, 나도 배워보라고 권했어요. 이후 가족에게조차 비밀로 하고 주말마다 광주로 내려갔어요.” -시신을 만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우리 집은 집안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가족이 손수 염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시신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어요. 만으로 서른다섯 살에 처음 염습을 배우러 간 날부터 그랬어요. 그날 고인은 할머니였어요. 여자 염사가 염을 주관했고, 저는 옆에서 그분을 따라 했어요. 몸을 닦아드릴 때 할머니의 찬 피부가 손에 닿을 때마다 왠지 애틋하게 느껴졌어요. 이 일을 시작한 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특히 유족들이 진심으로 고마워하실 때 큰 보람을 느껴요.” 염습 / 유재철 제공 불교와 인연을 맺으면서 시작된 염장이 인생. 그는 1996년 6월 25일 일붕스님이 입적한 날, 처음으로 큰 장례를 맡았다. 7일장에 수많은 조문객이 몰렸다. 염습하는 내내 스님들로부터 “왜 발을 들어서 등 뒤로 장삼을 올리느냐?” “옷고름도 못 매느냐?” “왜 그렇게 승복을 입히느냐?”는 타박을 들어야 했다. 허둥대고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성공적으로 치렀다. 이후 큰스님들이 입적할 때마다 그는 단골로 불려갔다. -투병생활로 서울의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 길상사에서 입적한 법정 스님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기술이 인상적이더군요. 잠깐 잠드신 것처럼 보여 흔들어 깨울 뻔했다고요. “표정이 몹시 편안해 보였어요. 법정스님은 수의 대신 평소 즐겨 입던 승복을 입히고 관도 준비하지 말고 사리도 찾지 말라고 유지를 남기셨어요. 하지만 고민이 됐어요. 3월 초여서 송광사 다비장까지 가는 길이 꽁꽁 언데다 경사로여서 남자 걸음으로도 30분은 걸리거든요. 그런 길을 관 없이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 결국 묘수를 냈죠. 법정스님이 오대산 암자에서 책을 읽거나 명상하실 때 쓰던 대나무 평상을 서울로 가져오게 했어요. 거기에 법정스님을 누이고 혹시 운구 중에 법체가 미끄러지면 안 되니까 광목으로 평상에 스님을 살짝 묶은 후 옮겼어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이맹희 전 CJ그룹 명예회장 등의 장례도 진행했는데, 유명인의 장례만 맡습니까. “아니에요. 오래전에는 불법체류하다 사고로 숨을 거둔 이주노동자들이나 무연고자의 염습도 많이 했어요. 안타까운 건 상당수 한국인 고용주들이 노동자가 사망해도 찾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그러면 고인의 신원이 불분명하니까 2~3℃ 상태인 시립병원 안치실에 그냥 방치되면서 시신이 심하게 훼손돼요. 뒤늦게라도 가족이 알게 돼 본국 송환을 요청하면 엠바밍을 해야 하는데, 부패가 많이 진행돼 있어 약품을 투입할 혈관조차 찾기 어려워요. 그러니 고인을 온전한 모습으로 가족에게 보내드릴 수 없어요.” 법정스님이 입적한 후 서울에서 송광사 다비장으로 법체를 이동할 때 관 대신 법정스님이 오대산 암자에서 사용하던 평상을 이용했다. / 유재철 제공 -끝내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는 무연고 사망자는 어떻게 하나요. “스님이 말씀하셔서 무료로 해드렸어요. 무연고자 염습을 정성껏 해드리고 나면 이상하게 일이 갑자기 많이 들어오는 등 보답이 따랐어요.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없어요. 정부가 무연고자 장례 입찰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문제는 가격을 가장 낮게 적어낸 장례업체가 선정되다 보니 병원 시트에 고인을 싸서 염습도 안 한 채 관에 넣어 화장장으로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에요.” -그러면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장례협회도 있고, 염습을 비롯해 봉사하고자 하는 일반인도 많이 계세요. 수의·관 등 장례에 꼭 필요한 실비 70여만원만 정부가 제공하면 무연고자라고 해도 고인의 마지막을 잘 보내드릴 수 있다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저는 법이 바뀌면 좋겠어요.” -삶처럼 죽음에도 계급·계층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돈의 유무에 따라 장례식 규모나 장례용품의 수준 차이는 어쩔 수 없겠죠. 하지만 제게 모든 이의 죽음은 다르지 않아요. 저마다의 삶과 죽음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가 있기 때문이에요.” -영혼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있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 기마놀이하다 떨어졌을 때도, 2015년 고속도로에서 고라니가 갑자기 뛰어드는 바람에 교통사고로 죽을 뻔했을 때도 유체이탈 경험을 했어요. 2015년 교통사고 때는 전복된 자동차의 열린 창문으로 겨우 빠져나와 살았는데, 그때 제 힘으로 빠져나온 것 같지 않았어요. 누군가 저를 창밖으로 확 빼낸 느낌이었죠. 저와 인연을 맺은 영가(영혼)들이 도와준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 외에도 신기한 경험이 몇 번 더 있었어요.” ‘국가장’으로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의 장례문화의 획일성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그는 “장례식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고인이 중심이 돼야 한다”며 “기획을 통해 노래나 춤, 시 낭송 혹은 생전 고인의 영상 관람 등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갖는 문화로 바뀌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장례식을 자신이 직접 기억하고 준비한다면 인생의 마침표를 제대로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그에게 29년 동안 수천명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면서 얻게 된 지혜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물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죠. 오늘을 열심히 살고, 지금 내가 만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 죽음은 누구에게나 언제 닥칠지 모르니까요.”
- 박주연의 메타뷰
- [편집실에서]노무현이 만난 링컨(2021. 07. 27 16:34)
- 2021. 07. 27 16:34 오피니언
- 제가 처음 완독을 한 정치인의 책은 <노무현이 만난 링컨>입니다. 대선을 앞둔 2002년, 정치부 초년 기자 때였습니다. 기자실에서 굴러다니던 이 책을 봤을 때 처음에는 위대한 대통령, 링컨의 이름 빌려 적당히 자신과 버무린, 그렇고 그런 정치인 책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장 넘겨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서문 10여쪽을 제외하고는 전부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책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링컨의 일생을 따라가 보면서 정치인 노무현이 가고 싶은 길을 투사시켜보려 했던 것 같습니다. 당대 수많은 공격을 당하고 계속된 실패를 겪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뚜렷한 가치기준을 가지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한 링컨에 노 후보는 매료가 됐다고 서문에서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강한 나라’를 추구한 사람이었다고 링컨을 평가했습니다. 돌아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라크파병, 항만노조 개혁, 방폐장 부지선정 등의 난제와 맞닥뜨렸을 때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에는 링컨이 많은 영향을 미쳤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정치인이 쓴 책에는 그가 누구인지 엿볼 힌트가 숨어 있습니다. 살아온 길, 가족관계, 정치철학, 미래비전 등이 긴 글 속에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제는 있습니다. 제대로 쓴 책이어야 합니다. 출마를 위해 자신을 과도하게 미화했거나 정치권 주변을 맴도는 논객들이 책을 팔기 위해 쓴 평전이라면 안 읽어보느니만 못할 수 있습니다. 올해 정치인들이 쓴 책이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당내 계보는 옅어졌고, 압도적 지지를 받는 절대강자가 없는 선거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알려야 합니다. 게다가 검찰개혁 과정에서 조국백서와 조국흑서가 이슈가 되면서 정치서적시장은 예열이 된 상태였습니다. 주간경향 1438호는 최근 뜨거운 정치인들의 책에 주목했습니다. 유튜브,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영상물에 밀려났던 책이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체가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합니다. 책은 언론매체와 달리 정치인들이 자신의 언어로 하고 싶은 말을 유권자에게 맘껏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책 때문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습니다. 과거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자전적 에세이 <나 돌아가고 싶다>에서 언급했던 돼지흥분제 얘기가 뒤늦게 논란이 돼 낭패를 겪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보, 나 좀 도와줘>,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 <성공과 좌절> 등 많은 책을 남겼습니다. 게다가 매 여름휴가를 앞두고는 추천도서를 공개하면서 독서바람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저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꽤 멋진 대통령이었습니다.
- 편집실에서
- “노무현 정신 계승” 단 부동산은 빼고(2021. 05. 28 11:32)
- 2021. 05. 28 11:32 정치
- ㆍ말로만 노무현 찾고 보유세 등 부동산 정책은 반대로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들과 지도부가 노 전 대통령 추도식을 위해 봉하마을에 모였다. 이날 봉하마을에 모인 여권 인사들은 모두가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약속했다. 친문·친노 정치인의 SNS에는 한동안 ‘노무현’이 넘쳐났다. 매년 5월 반복되는 풍경이다.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야외전시장에 시민들이 전시물을 감상하고 있다. / 권호욱 기자 노무현 정신은 무엇일까. 부동산 분야에서 노 전 대통령이 확고한 의지를 보인 정책은 보유세 강화다. 노 전 대통령은 공식 취임 전 인수위원회 시기부터 보유세 강화 정책을 준비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낮은 지지율 국면에서도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했다. 조세 저항과 함께 강한 반발을 불렀다. ‘세금폭탄론’과 맞물려 대통령 지지율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은 보유세 강화 장기 로드맵에 따라 정책을 시행했다. 참여정부의 보유세 강화 정책 효과가 나타난 2008년, GDP 대비 보유세 비율은 역대 최고치(0.95%)를 기록했다. ‘노무현의 적자’도 보유세는 완화 보유세를 비롯한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정책은 보수 정권 10년을 거치면서 무력화됐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보수의 보유세 강화 정책 폐기를 비판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도 언론을 통해 보유세 강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공약에는 반영되지 않았고, 정권 출범 이후에는 오히려 보유세 인상과 선을 그었다. “부동산가격 안정화 대책으로 (보유세 인상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 공평과세, 소득재분배 또는 추가적인 복지재원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정부도 검토할 수 있을 것.”(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2018년 9·13대책을 통해 보유세 인상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인상폭이 낮았다. 지난해 종부세율 인상이 이뤄졌지만, 고지서가 나오기 전부터 여당에서는 보유세 완화론이 나오고 있다. 이미 국회에는 민주당 의원발 보유세 완화 법안이 올라와 있다. 민주당의 부동산정책에서 ‘노무현’은 사라졌다. ‘친노’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 추도식 자리에서 대선 출마 의지를 공식 표명했다. 이 의원 자신이 노무현의 적자임을 강조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의원은 최근 자신의 정책 비전을 담은 책 <노무현이 옳았다>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소신과 철학을 계승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 의원은 책을 통해 세대와 정치, 기술, 교육, 부, 글로벌 시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서술했는데 여기에는 부동산 분야가 빠져 있다. 이 의원은 “한국은 자산이 부유층에 쏠리는 자산 불평등 현상이 심각하다. 상위 1%에 부자들이 국민 전체 자산의 25%를 소유한다. 소수의 사람이 자산을 독식해 다수의 사람이 고통받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에 대한 해법은 제시하지 않는다. 부동산정책에 대한 서술은 지역 균형발전의 당위와 혁신도시 2.0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수준에 그친다. ‘노무현 부동산’의 핵심인 보유세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 의원은 보유세 완화론자다. 지난 4월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노무현 대통령 시절 대한민국 1% 안에 매겼던 세금이 종부세”라며 “(과세기준)을 현재 9억원에서 대폭 상향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종부세는 과세 대상이 상위 1%에 한정된 세금이니 현행 종부세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이 의원의 1% 종부세 발언은 근거 없는 이야기이고 사실도 아니다”라며 “앞에서는 노무현 정신을 내세우면서 어떻게 노무현 정부를 상징하는 정책을 부정할 수 있나. 종부세 과세 대상이 전체 부동산 소유자의 4%에 달한 시기도 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는 2004년 12월 과세기준 9억원으로 책정해 국회에 통과한 종부세 대상을 다음해 8·31 대책을 통해 6억원으로 강화한 바 있다. 2005년 8·31 대책 발표 당시 정부는 이번 부동산 대책의 대상은 ‘국민의 2%’임을 강조했다. 참여정부가 언급한 ‘1%’는 보유세 강화 장기 로드맵에서 제시한 보유세 실효세율 달성 목표(2017년)뿐이다.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위 김진표 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부동산특위·서울시 구청장 정책현안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국회 사진기자단 민주당 소속 7개 구청장도 완화 요구 보유세 완화를 주장하는 이 의원의 견해는 당내 소수의견이 아니다. 서울시 민주당 소속 7개구(강남·강동·노원·송파·양천·영등포·은평) 구청장들도 보유세를 낮출 것을 당에 요구하고 있다. 조세 저항과 민심 이반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에서 패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회에서도 보유세 완화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국회 정무위 간사인 김병욱 민주당 의원(성남 분당을)은 지난달 종합부동산세 공제액 기준을 공시가격 합산 현행 6억원에서 7억원으로 상향하고, 1가구 1주택은 종부세 적용 기준을 공시가격 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리는 내용의 종부세법 개정안과 재산세율을 낮추는 지방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을 비롯해 노웅래, 정청래, 안규백, 김영주 의원 등 고가 아파트가 몰려 있는 서울·수도권 지역 의원들은 보유세 완화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이 가운데 친노친문 인사로 분류되는 정청래 민주당 의원(마포을)도 1주택자 보유세, 2주택자 양도소득세 부담을 덜어주는 내용의 종합부동산세·지방세·소득세법 개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표 부동산정책의 다른 한 축인 ‘공공임대주택’도 비슷한 처지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국민임대주택 건설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해 장기공공임대주택 보급 확대를 추진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참여정부에서 공급한 국민임대는 47만호(사업 승인 기준)에 달한다.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문재인 정부도 공공임대주택 개발을 추진한다. 지난해 8월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서울시는 ‘서울권역 등 수도권에 대한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하고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부지와 서울 마포구 서부면허시험장 등 공공부지에 13만2000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신규 아파트 물량의 상당 부분은 공공임대주택으로 할당했다. 공공임대주택도 반대에 부딪쳐 정부 계획이 발표되자 민주당 소속 김종천 과천시장은 즉각 반대 성명을 내고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김 시장은 “정부과천청사 부지와 청사 유휴지에 또다시 4000여호의 대규모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과천시민과 과천시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것”이라며 “도시발전 측면은 고려하지 않고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과천을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지역구에 서부면허시험장이 있는 정청래 민주당 의원도 공공임대주택 공급 정책에 즉각 반발했다. 정 의원은 SNS를 통해 “제가 문재인 정부의 주택정책을 반대할 리 있겠냐”면서도 “상암동은 이미 임대비율이 47%인데 또 임대주택을 지어야 하느냐. 지역구 국회의원과 사전협의 없이 추진하는 방식은 찬성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의 발언을 두고 임대주택 거주자를 고려하지 않은 경솔한 언행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정 의원의 언행은 노무현 정신이 아니라 본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공공임대 주거권보다 표를 중시한 발언인데, 노무현 정신을 내세우고 싶다면 적어도 공공임대주택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지역에는 반대’라고 말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4·7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부동산정책에서 민주당의 ‘노무현’ 지우기는 가속화되고 있다. ‘비문’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부동산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규제 완화론자’ 김진표 민주당 의원을 내정했을 때부터 예견된 흐름이다. 송 대표는 5월 26일 집중 민심 경청 주간으로 마련된 ‘찾아가는 민주당’ 행사에서 “집값 상승 우려에 그렇게 마음 놓고 하진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규제) 완화하려고 논의하고 있다”며 “집값의 10%만 있으면 집을 살 수 있는 ‘누구나 집 프로젝트’도 검토 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재산세 감면과 대출규제를 확정지은 민주당 부동산 특위는 다음 단계로 종부세와 양도소득세 완화를 놓고 고심 중이다. 민주당의 행보를 두고 시민사회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참여연대는 일련의 부동산 규제 완화를 ‘퇴행적인 주거 부동산정책’을 규정하고 민주당의 규제 완화 시도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참여연대는 “1주택자 기준으로 전국에 종합부동산세 대상 주택이 3.7%에 불과하다. 종부세 완화는 부자 감세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대출 규제 완화는 집값을 낮추라는 국민적 요구에 전혀 맞지 않는 ‘빚내서 집 사라’식의 엉뚱한 해법”이라고 비판했다. 전강수 교수는 “민주당 정책에서 ‘개혁’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민주당이 진보 정당은 아니더라도 그동안 개혁 정당을 표방해온 정당인데 이제는 개혁 어젠다도 사라진 것”이라며 “노무현 정신의 핵심이 부동산인데 지금 민주당은 말로만 노무현을 말하고 정책은 반대로 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펼쳤던 정책을 살리는 것이 노무현 정신을 구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 [주간 舌전]“검찰이 노무현재단의 주거래 은행계좌를 들여다본 사실을 확인했다”(2019. 12. 27 16:03)
- 2019. 12. 27 16:03 정치
-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의 유시민 이사장이 검찰의 불법 의혹 사찰을 제기하며 한 말이다. 해당 발언은 2019년 12월 24일 재단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한 ‘유시민의 알릴레오 라이브’에서 나왔다. 유 이사장은 또 “제 개인 계좌, 제 처 계좌도 들여다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도 유 이사장의 발언에 힘을 보탰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방송 내용이 사실이라면 검찰이 마음에 들지 않는 개인에 대한 보복을 위해 검찰권을 악용한 것”이라며 “검찰은 사찰과 뒷조사의 폭주를 멈추고 국민 앞에 겸허한 자세로 진실을 밝히고 의혹을 해소해야 하며 잘못이 드러날 경우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 경향 DB 검찰은 해명에 나섰다. 서울중앙지검은 “검찰은 노무현재단, 유시민, 그 가족의 범죄에 대한 계좌추적을 한 사실이 없다”며 “법집행기관에 대한 근거 없는 악의적 허위 주장을 이제는 중단해 주시기 바란다”는 입장을 내놨다. 유 이사장은 이른바 조국 정국에서 검찰의 수사 행태를 비판해왔다. 유 이사장은 앞서 “검찰총장이 조국 장관 지명 전 청와대에 부적격 의견을 개진하고 면담 요청을 했으며, 지명 전인 8월 초부터 조국 일가를 내사했다”며 조 전 장관 내사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대검찰청은 유 이사장의 주장이 허위라고 반박했다. 2019년 내내 팽팽했던 양측의 갈등은 2020년이 돼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주간 舌전
- [영화속 경제](2019. 05. 31 15:07)
- 2019. 05. 31 15:07 경제
- ㆍ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의 ‘왝더독 현상’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은 16부작 정치드라마로 불렸다. 지지율 2%의 후보가 여당의 잠룡들을 하나씩 쓰러뜨린 끝에 대선후보로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선출된 후보가 노무현이었다. 이창재 감독의 는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을 다룬다. 지지율 2%의 꼴찌 후보에서 대선후보 1위, 대통령이 되기까지 노무현의 역전 드라마를 담았다. / 영화사 풀 제공 이창재 감독의 <노무현입니다>는 2002년 뜨거웠던 40여일간의 민주당 대선 경선을 다룬다. 2001년 10월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민주당은 한국 정당사상 처음으로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한다. 당원·대의원뿐 아니라 일반국민들에게도 문호를 연 국민참여경선은 대선 흥행을 이끌기 위한 승부수였다. 막강한 당내외 지지를 받는 이인제의 대세론은 견고해 보였다. 첫 경선인 제주 경선에서 3위로 가능성을 확인한 노무현은 세 번째 경선이던 광주 승리로 대세론을 허물 발판을 마련한다. 이인제의 고향인 대전·충남 경선에서 대패해 위기에 몰렸지만 강원 경선에서 박빙의 승리를 거두며 흐름을 끊는 데 성공한다. 이어진 대구와 인천 경선에서 대역전극을 마침내 일궈낸다. 경제학의 눈으로 보자면 2002년 경선은 ‘왝더독 현상’의 전형이다. 왝더독(Wag the dog)이란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뜻으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말한다. 커진 선물시장이 현물시장을 흔드는 일이 잦아지자 주식시장에서 먼저 쓰였다. 예를 들어 선물시장에서 하락장을 예상하면 현물시장도 공공연히 하락 쪽으로 방향을 튼다. 뭔가 이유가 있으니 하락에 배팅하지 않았느냐는 대중의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외국인이나 기관투자자 같은 큰손들이라면 의도적으로 시장에 개입할 수도 있다. 하락에 베팅한 선물의 만기일이 다가오면 보유한 주식을 내다 팔아 약세장을 유도하는 식이다. 이런 이유로 옵션만기일에는 주식시장이 출렁이는 경우가 많다. 기초자산 가격에 의해 결정되는 파생상품의 시세가 오히려 기초자산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왝더독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신용부도스와프(CDS)의 경우 해당 채권에 대한 위험도를 반영해야 하지만 때때로는 CDS에 따라 채권의 가치가 결정되기도 한다. 2002년 민주당 경선이 시작됐을 때 노무현 후보는 눈에 띄지 않았다. 이인제 외에도 DJ의 적자인 한화갑,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의 김중권, 운동권의 대부 김근태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바보 노무현’이라는 자산이 있었다. 서울 종로 지역구를 버리고 도전한 2000년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또 낙선하자 지역감정에 무모하게 도전하는 그에게 대중이 붙여준 애칭이었다. 노사모가 조직됐고, 그 힘은 국민경선에서 돌풍으로 나타났다. 노무현에게 쫓긴 이인제는 색깔론 카드를 꺼낸다. 노무현 장인의 빨치산 전력을 부각시켰다. “제 장인은 좌익활동하다 돌아가셨습니다. 결혼 한참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알고도 결혼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 잘 키우고 잘 살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됐다는 겁니까? 이런 아내를 버려야겠습니까? 그러면 대통령 자격이 생깁니까?” 이 연설로 승부는 끝났다. ‘왝더독 현상’을 이용한 마케팅으로 증정품을 끼워주는 ‘덤 마케팅’이 있다. 우유 꾸러미에 요구르트를 끼워준다든가 커피 꾸러미에 머그잔을 끼워주는 식이다. 스타벅스의 다이어리도 마찬가지다. 몸통(커피)보다 더 탐나는 꼬리(다이어리) 때문에 자꾸만 매장을 찾게 만든다. 때로는 가격할인보다 덤을 제공하는 방식이 소비자에게 더 먹힌다. 대통령이라는 권력(몸통)보다 좋은 정치(꼬리)를 꿈꿨던 평범한 사람들의 바람이 모여서 만든 왝더독 현상이 2002년 경선이었다. 그 꿈은 지금도 유효할까.
- 영화 속 경제
- [주간 舌전]“노무현의 그 꿈을 향해 다시 전진하겠습니다”(2019. 05. 24 16:48)
- 2019. 05. 24 16:48 정치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인 지난 5월 23일, 봉하마을에는 많은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추도식은 오후 2시부터 엄수됐다. 이 자리에는 노 전 대통령의 첫 번째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희상 국회의장도 참석했다. 문 의장은 이날 추도사를 낭독하며 고인을 기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노무현의 그 꿈을 향해 다시 전진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10년을 통해 잠시 멈출 수는 있어도 결국 ‘역사는 진보한다’는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님은 뒤돌아보지 마십시오. 부디 당신을 사랑한 사람들과의 추억만 간직하고 평안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이날 추도사를 통해 “대통령께서 꿈꾸시던 세상을 이루기까지는 갈 길이 멉니다. 그래도 저희들은 그 길을 가겠습니다. 대통령님을 방해하던 잘못된 기성 질서도 남아있습니다. 그래도 저희들은 멈추거나 되돌아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추도식에 불참했다. 많은 정치인들이 고인의 뜻을 계승하겠다는 뜻을 밝히지만 노 전 대통령이 이루고자 했던 ‘사람 사는 세상’이 오기까지는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적폐청산은 여전히 갈 길이 멀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강력하게 추진했던 검·경 수사권 조정 역시 안갯속이다. 정치권의 협치는 사라진 지 오래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언제쯤 고인이 꿈꿨던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 주간 舌전
- [렌즈로 본 세상]노무현 서거 9주기 날 ‘피고인석’에 앉은 MB(2018. 05. 28 14:04)
- 2018. 05. 28 14:04 사회
- 110억원대 뇌물수수와 350억원대 다스 비자금 횡령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5월 23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해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이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재판이 열린 지 1년 되는 날이었고, 이 전 대통령 재임 중 검찰 수사를 받고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9주기이기도 했다.
- 렌즈로 본 세상
- [표지 이야기]버려야 할 노무현의 정치적 유산(2017. 05. 16 10:28)
- 2017. 05. 16 10:28 정치
- ㆍ뺄셈정치 대신 덧셈정치를… 정치과잉의 대립을 반면교사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는 노무현 정부를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존해 있을 때 대통령 문재인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만큼 권력의지가 없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사후 약 8년여 만에 문재인 대통령 시대를 만들었다. 오늘의 문재인 대통령을 설명하는 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상수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역설적으로 노무현식 정치를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일 수 있다. 노무현식 정치에서 무엇을 버려야 할까. 한국 정치에 노무현 전 대통령만큼 풍운아가 있을까? 그는 탁월한 정치적 승부사였다. 변방의 인권변호사가 정치적 고비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며 대통령의 권좌에 오르게 됐다.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도 국회에서 정치적인 탄핵을 당했으나, 소수정당에서 국회 과반수 정당을 만드는 반전을 이루기도 하였다. 또한 사후 ‘문재인 시대’를 만들었다. 5월 10일 서울 종로구 선거연수원에서 관계자가 제19대 문재인 대통령의 벽화를 건물 외벽에 그리고 있다. 왼쪽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보인다. / 연합뉴스 싸워서 제압 말고 설득해서 함께 가야 ‘노무현의 정치’는 뺄셈정치였다. 뺄셈정치는 순혈주의와 맞닿아 있다. 정치적 순혈주의는 더럽혀진 세력과 타협하거나 혼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말한다. 따라서 싸워서 이기는 것이 정치의 선이라 생각한다. 보수기득권 세력은 물론이며 같은 당을 하고 있는 기존의 주류세력도 타파해야 할 기득권세력으로 생각했다. 그 결과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였으며 민주세력은 분열의 씨앗을 낳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노동세력은 노동의 유연성을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농민세력은 FTA 체결과정에서, 공직자들은 공직 혁신 과정에서 이탈시켜버렸다. 개혁을 추진하는 데 개혁의 중심세력은 없었다. 대통령이 전면에서 치고받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정치는 실종되고 노 전 대통령은 갈수록 고립되어 갔다. 문재인 정부는 덧셈정치를 해야 성공할 수 있다. 나를 지지한 세력은 물론이고 지지하지 않은 세력도 자신의 세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특히 집권당인 민주당은 120석으로 국회에서 법률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가 불가피하다. 권력을 나누고 공동의 책임을 지는 연립정부를 구성할 것인지, 사안별로 야당과 합의를 통해 협치를 할 것인지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결정해야 한다. 협치를 한다면 어느 당과 어느 수준에서 할 것인지 결정하여 곧바로 실행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내각 구성을 무리없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 비전과 어젠다를 제시하고 야당과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싸워서 제압하려 하지 말고 설득해서 함께 가려 해야 덧셈정치를 할 수 있다. 개혁은 대통령 혼자 할 수가 없다. 개혁의 주체세력이 있어야 하며 개혁의 방향과 내용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위해 대통령이 평검사들과 직접 대화를 시도했지만 검찰개혁에는 실패했다. 검찰 내부로부터 개혁을 할 수 있는 주체세력을 만들고 개혁의 방향을 잡아 국민과 함께 진행해야 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는 국정운영 철학이 있었다. 지방분권·균형발전·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등 국가의 장기적 과제를 준비하는 위원회 체계를 마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가 민생은 팽개치고 정치싸움만 일삼았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국민이 소수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을 국회 과반수 정당으로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민생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4대 개혁입법(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진상규명법 제정, 언론개혁법 제정, 사립학교법 개정)을 전면에 걸고 여야가 장기적인 대립과 투쟁만 하다 아무 결론도 내지 못하고 말았다. 국회 과반수 정당을 만들어준 의미를 개혁입법을 처리하라는 것만으로 해석한 정치과잉이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부동산 값이 폭등해 사회양극화는 극심해지고, 자영업자를 비롯한 서민경제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정치적 문제 해결을 당면한 과제로 설정한 오류다. 더구나 노무현 정부는 임기말에 이르러 개헌을 제기하여 국정운영의 중심을 되찾아 보려 했으며,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제안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모든 문제를 정치적 어젠다를 통해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행사하려다 보니 국민은 정치싸움만 일삼는 정부로 인식하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 비전과 민생 어젠다를 전면에 제시하고 야당과 협치를 해야 한다.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고 싸움을 걸기보다는 진정성 있게 설득하고 국민적인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은 사회적 대타협기구를 만들어 합의를 이루고 정치권이 제도적인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유럽의 복지국가들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했다. 다소 시간이 걸리고 효율성은 떨어지더라도 인내를 가지고 타협을 이끌어야 한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개혁은 정부 주도의 개혁보다 몇 배의 효과를 담보할 수 있다. 2012년 4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서울 마포구 서교동 노무현재단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서성일 기자 대통령은 물론 참모들도 품격 갖춰야 우리에게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는 낯설게 느껴진다. 국회가 싸우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는 정치적 어젠다로 국회를 시끄럽게 하기보다는 민생의 어젠다를 가지고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적 어젠다는 대통령이 추진하기보다는 시민사회의 힘으로 추진하고 정치권이 받아 입법화를 추진하는 형식으로 해야 정쟁이 완화된 형식을 띠게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言)로 지지도를 잃었다. “대통령 못해먹겠다” “막가자는 거지요” 등 국민들이 대통령의 언어로 받아들이기에는 부적절했으며 신뢰감을 잃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국민이 생각하는 대통령 상(像)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대중적인 언어라고 할지라도 대통령에게는 용납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대중적 언어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의 반대파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빌미를 제공했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언어는 상대적으로 침착하고 품격을 갖추었다. 문재인 대통령뿐만이 아니라 참모들까지 품격을 갖춘 언어를 사용하게 해야 한다. 언어를 보면 대화와 타협을 하려는 자세가 보이기 때문이다. 항상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말하는 대통령과 참모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경쟁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를 통해 반면교사를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홍 후보의 언어는 자신의 지지세력을 복원하는 데는 효과를 보았을지라도 대통령이 되기에는 부적절했다. 정치는 말로 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국가를 흔들 수도 있고, 많은 국민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음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시대, 대한민국의 시운(時運)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가장 많이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정치적 유산을 과감히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에서 떨어진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바로 세워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 표지 이야기
- [신간 탐색]달변 노무현 ‘소통의 말하기’(2016. 08. 29 17:49)
- 2016. 08. 29 17:49 문화/과학
- 대통령의 말하기 윤태영 지음·위즈덤하우스·1만5000원 “싱싱한 고등어가 있습니다. 싱싱한 고등어. 한 마리에 980원. 싱싱한 노무현이 왔습니다. 싱싱한 노무현.”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부산의 한 마트 지하식품매장에 들렀다. 마이크를 잡은 노 후보는 시장 상인의 말투를 흉내내며 자신을 고등어에 비유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윤태영 노무현사료센터장(전 청와대 대변인)은 “말하는 이의 겸손은 듣는 이를 한 걸음 다가오게 한다”며 이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노 전 대통령은 참 말이 많은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가 달변이었다는 사실에 반대하는 이는 드물다. 사석에서 그는 “사상이 빈곤하면 말도 빈곤하다”, “말만 잘하고 일을 못하는 지도자가 과연 있는가?”라며 ‘말’에 대한 철학을 자주 피력했다. 참여정부 5년은 ‘말’의 전성기였다. 의 저자인 윤 센터장은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쉴새 없이 쏟아지는 노 전 대통령의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 적는 일을 했다. 이 책은 업무노트 100여권, 수첩 500여권 등 노 전 대통령의 말이 담긴 방대한 자료 속에서 23가지의 소통의 법칙을 정리한 책이다. 윤 센터장의 전작 가 ‘말로 본 노무현의 진짜 모습’이라면 이번 책은 ‘노무현으로 본 진짜 말하기 방법’이다. 윤 센터장은 노 전 대통령처럼 말을 잘하고 싶다면 원고 없이 말하는 훈련을 하라고 권한다. 노 전 대통령은 주어진 연설문을 그대로 읽는 법이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표현을 고치고, 틀린 내용은 바로 잡아서 읽었다. 때로는 아예 원고를 덮어놓고 연설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애를 먹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금기를 깨는 말하기 방식은 대통령에 대한 불필요한 권위를 무너뜨렸고, 그만큼 한국 사회는 성숙해졌다. 윤 센터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강연은 재미있다”며 책 말미에 노 전 대통령이 신임 사무관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록을 실었다. 때로는 백 번 설명하기보다는 한 번 눈으로 보는 게 더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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