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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총 16 건 검색)

[장르물 전성시대]킨 - 노예제 시대로 타임 슬립(2022. 07. 29 14:16)
2022. 07. 29 14:16 문화/과학
1976년 <패턴마스터>로 데뷔한 옥타비아 버틀러는 당시 SF계에서 가장 이질적인 작가로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주로 백인 남성 작가들이 백인 남성 캐릭터를 앞세우던 SF계에서 그는 흑인이면서 또 여성이었다. 이러한 ‘독특한’ 정체성은 그대로 작품에 반영돼 독보적인 성취로 이어졌다. 그는 2006년 58세로 타계하기 전까지 아프리카 문화와 미국 역사에 판타지를 덧대 인종과 젠더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등 권력과 시스템에 저항하고 반발하는 SF 장르의 보다 근원적인 의미에 천착했다.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작가 개인의 배경 그대로 그의 작품에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과 이를 부추겼던 낯설고도 익숙한 환경이 무척 이채롭게 그려졌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장편소설 / 비채 1979년작 <킨>은 타임 슬립과 미국 노예제도를 결합한 그의 대표작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1800년대 초 미국 메릴랜드로 강제로 소환된 흑인 여성 다나는 느닷없이 엄혹한 노예제의 희생자가 된다. 갑자기 과거로 가게 되는 이유나 방법은 알 수 없지만 루퍼스라는 백인 남자아이가 곤경에 빠질 때마다 자신이 그곳, 그 시간대로 옮겨가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처음 타임 슬립했을 때도 물에 빠진 루퍼스를 구해 인공호흡으로 겨우 살려냈다. 그런데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아이의 부모란 작자들이 ‘검둥이(nigger)’라는 차별적인 언사와 함께 다짜고짜 총구를 들이대는 것이 아닌가. 총에 맞기 직전 다나는 원래의 1976년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후에도 이 일은 반복된다. 이번엔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다음에는 어떨까. 심지어 금세 돌아올 거라는, 아니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없다. 실제로 다음엔 남편 케빈과 함께 과거로 간 다나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노예로 생활한다. 게다가 노예주에게 가죽 채찍을 맞고 극도의 고통을 느낀 나머지 케빈을 남겨둔 채 홀로 현대로 소환된다. 다나는 8일 후 다시 과거로 가지만 그사이 케빈은 그곳에서 무려 5년을 버텨야 했다. 다나를 위협하는 건 노예제가 상징하는 명백한 폭력만이 아니다. 위생 개념이라고는 없어 언제고 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그는 음식을 섭취하는 위험과 배고픔을 저울질한다. 그럼에도 가장 큰 고통은 루퍼스와의 애증관계에서 찾는 게 옳다. 다나는 루퍼스가 자신의 먼 조상임을 곧 깨닫는다. 루퍼스가 강제로 범한 노예 앨리스 역시 족보에는 그의 부인으로 명시돼 있었다. 그러니 현대의 자신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루퍼스를 지켜야만 할 테고, 지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진실을 알고 있는 ‘권력자’ 루퍼스에게 의존해야 한다. 하지만 루퍼스는 이 시대 다른 백인 남자들과 다르지 않아 변덕스럽고 잔인하며 자기중심적이다. 그리고 뭐든 소유하려 한다. 다나의 마음까지도. <킨>의 타임 슬립은 노예제를 그대로 체험하는 듯한 감각으로 왜 이 시스템이 사람을 그토록 옭아맬 수 있었는지 그 효율적인 심리 감옥을 현대인의 시선에서 들여다보게끔 이끈다. 나아가 현대인인 다나가 루퍼스에게 느끼는 증오와 애착이 상충하며 만들어내는 갈등은 단순히 시대의 고통에 그치지 않고, 타락과 공포, 용서와 복수까지 아우르며 내내 인간의 충동과 이성을 저울질한다. 그렇게 우리의 눈으로 바라본 19세기에는 이기적인 인간의 저열한 지배욕이 낱낱이 드러나 있다. 여러 위기와 갈등으로 그려낸 서스펜스와 애증의 드라마 모두 시대의 비극을 넘어선 위대한 작가의 위대한 유산답다.
장르물 전성시대
“난 왕, 넌 별점노예” 다시 바라보는 별점노동(2021. 07. 19 10:38)
2021. 07. 19 10:38 경제
“옷을 그냥 다 한쪽에 몰아놓으셨어요. 4시간 다 채우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2.5시간 일하신 느낌이에요.”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플랫폼 업체를 통해 가정집 청소를 하는 이경희씨(가명·61)가 얼마 전 받은 ‘별 2개’ 리뷰(별 5개 만점)의 내용이다. “그 집은 옷 분류가 문제가 아니었어요. 쓰레기가 너무 많았거든요. 그거 정리하느라 오래 걸린 건데….” 문제의 청소 공간은 작은 원룸이었다. 먹다 만 음식물들엔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냄새도 심각했다. 일반 쓰레기를 모았더니 20ℓ짜리 봉투 4개가 나왔다. 재활용 쓰레기는 비슷한 크기의 봉투 10개로도 모자랐다. “팥쥐 엄마가 파티 가면서 ‘무조건 다 해놔라’ 하는 것도 아니고….” 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한 그는 ‘2.5시간 일하신 느낌’이라는 평가에 속이 상했다. 그럼에도 항변할 길은 없다. 해당 플랫폼엔 노동자가 답변을 올릴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이다. 며칠 후엔 자신을 ‘선택’할지 말지 고민하는 소비자로부터 이런 질문도 받았다. “그동안 별 5개 받으시다가 최근에 왜 별 2개 받으신 거예요?” 2점 받은 경위를 설명하라는 요구에 그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별점노동’의 시대다. 공산품과 음식은 물론, 가사노동·개인강습 등의 서비스, 택시 이용 등이 플랫폼으로 쉼없이 거래된다. 대개의 플랫폼들은 고객에게 5점 만점 척도의 별점을 매기고 후기를 작성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렇게 쌓인 별점은 노동자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소비자의 평가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평가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뿐 아니라 ‘기분’에 좌우될 때가 많다. 단 한 번이라도 고객의 ‘감정적 만족’을 받아내는 데 실패하면 “개념없다”, “별 1개도 아깝다”는 평가가 올라오기 일쑤다. 지난달 한 소상공인은 새우튀김 1개 환불 요구를 거절했다가 혹평에 시달렸고,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했다. 해당 고객은 쿠팡이츠 리뷰란에 별 1개와 ‘개념 없는 사장’이란 후기를 남겼다고 한다. 쿠팡이츠는 사업주에게 4차례나 전화를 걸어 주의를 줬다. 플랫폼을 통해 청소 일감을 받고 있는 한 가사노동자가 가정집을 정리하고 있다. / 송윤경 기자 시시각각 별점 평가를 받는 이들은 “후기를 보고 고칠 점을 배울 때도 있지만, 인격적 모멸감에 시달릴 때도 적지 않다”고 호소한다. 플랫폼 기업은 별점평가의 맹점을 알면서도 노동자 혹은 입점업체를 경쟁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고객 말씀에는 그냥 ‘예예예’ 해드리는 겁니다.” 이경희씨가 플랫폼 측에 억울함을 호소했다가 들은 말이라고 한다. ‘손님은 왕’이라는 정서와 플랫폼이 만나 만연해진 ‘별점평가’. 결국 별점평가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 우리는 과연 이런 ‘디지털 혁신’을 원했던 것일까. ‘별점노동’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물기 안 닦았다고 별 0.5개 가정집 청소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A사의 앱을 열었다.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고르니, 그날 일할 수 있는 가사노동자의 프로필이 주르륵 뜬다. 그중 1명을 택하란 얘기다. 노동자의 사진 옆에는 점수가 붙어 있었다. ‘B 전문가’는 4.4점, ‘C 전문가’는 3.7점, ‘D 전문가’는 4.9점이었다(이 플랫폼에선 가사노동자를 ‘전문가’로 칭했다). 각 고객이 남긴 후기와 점수도 별도로 정렬된다. 별점과 후기가 좋아야 ‘선택’받는 구조다. 노동자 입장에선 일감의 개수가 달라지는 문제다. 과거 인력사무소를 통해 10년간 가사노동을 한 경험이 있는 김형라씨(가명)는 “인력사무소 시절에는 점심시간이 되면 일을 나간 집에서 밥을 주기도 했지만 플랫폼으로 일하는 지금은 그런 관행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도시락을 챙겨 다닌다. 이날 그의 점심은 토마토와 삶은 계란이었다. / 송윤경 기자 또 다른 청소 플랫폼 E사의 ‘별점 활용’은 더 노골적이다. 별점에 따라 아예 시급이 다르다. 낮은 별점을 받는 노동자에겐 먼 곳의 일감을 몰아주기도 한다. 3년 전 처음 일할 때 별점이 낮았던 이경희씨는 당시 “평점을 높여야 서울에서 일할 수 있다. 당분간 경기 지역의 일만 연결해주겠다”는 얘길 들었다고 한다. 별점평가에 따라 시급과 일감이 달라지는 것이 문제냐고 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소와 돌봄 등 가사노동의 평가기준은 고객마다 천차만별일 뿐 아니라 플랫폼 업체는 노동자와 고객 양쪽에 ‘서비스의 표준’을 제대로 제시하지도 않는다. ‘화장실 청소 후 물기를 닦아내지 않았다’와 같은 이유로 0.5점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 대상은 개별 노동자가 아니라 이런 매뉴얼을 갖추지 않은 업체여야 한다. 대다수의 가사노동 플랫폼들은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세부 매뉴얼과 교육을 사실상 생략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플랫폼 노동자들은 무엇이 ‘무리한 요구’인지도 헷갈리게 된다. 이향란씨(가명·54)는 플랫폼을 통해 배정받은 곳에 청소하러 갔다가, 청소도구가 없는 것에 당황했다고 한다. “사무실 천장에 붙어 있는 선반을 닦아달라고 하는데, 사다리도 없고 전용 도구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건물 관리소에 가서 직접 사다리를 빌려 행주로 청소를 했다. 사실 그는 ‘가정집 청소’ 분야로 지원했기 때문에 사무실 청소는 거절할 수 있었지만, 업체의 이런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플랫폼 페이지 한구석에는 ‘높은 곳의 위험한 청소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구가 있다. 그는 이런 ‘유의사항’ 역시 전달받은 적이 없다. 카카오T 블루 이용 기사가 운행을 준비하고 있다. / 김원진 기자 가사노동을 하는 이들은 플랫폼 측에서 고객에게 ‘사전 안내’라도 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청소도구 준비,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와 아닌 서비스의 구분, 쓰레기 등의 청소량을 감안해 시간을 선택할 것 등을 “손님에게 미리 알려주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줄어들 것 같다”(이경희씨)는 것이다. “특히 이제까지 청소를 해보지 않은 이들은 별점을 터무니없이 낮게 주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는 이경희씨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인지를 알 수 있도록 플랫폼 측에서 얘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적정 서비스의 기준 없이, 무조건 ‘높은 별점을 받으세요’라고 떠밀릴 때, 노동자는 갑질과 감정노동에 쉽게 노출된다. 10년간 인력사무소를 통해 파출부로 일해오면서 “일 못 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던” 김형라씨(가명·71)는 “이곳(플랫폼)에선 기분 맞춰주는 외교술, 화술 같은 것이 별점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김씨의 별점은 다른 노동자들보다 낮은 3.7점이다. 플랫폼이 방치하는 별점테러 “쓰레기가 온 줄 알았네요. 와플크림에선 설탕이 씹히고, 딸기주스에선 침 뱉은 맛이 나요.” 경기 의정부에서 2년째 디저트 카페를 운영하는 김나현씨(가명·40)에겐 잊을 수 없는 ‘별 1개’ 리뷰가 있다. 와플크림에 대한 취향 차이는 그렇다 쳐도 “침을 뱉은 맛”이라는 표현은 참을 수가 없었다. 물을 섞지 않는 과일주스를 판다고 자부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환불은 물론 ‘시간낭비에 대한 보상’까지 요구하는 이 고객과 크게 다투고 말았다. “알고 보니 상습적으로 별 1개를 주는 유형”의 고객이었다고 한다. 경쟁이 치열한 외식업계는 손님의 별점에 ‘생존’이 달려 있다. 배달 플랫폼에 공개된 리뷰가 소비자의 선택 기준이다 보니, 단 한 번의 ‘별 1개’도 이들에겐 치명적이다. 특히 “납득가지 않는 이유로 별점테러를 하는”(김씨) 손님이 가장 골칫거리다. 많은 소상공인이 ‘별점테러’ 리뷰 삭제를 플랫폼에 요청하지만 ‘주관적 평가’라는 이유로 거절당할 때가 많다고 한다. 카카오T 블루 이용 기사들의 별점에 따른 등급표(위). 카카오T 이용을 마친 뒤 승객이 평가할 수 있는 항목 / 김원진 기자 인천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은진씨(가명·26)에게도 별점에 대한 씁쓸한 기억이 있다. 마카롱 배달 주문이 들어왔는데, 하필 손님이 원하는 맛의 마카롱이 소진된 상태였다. 그는 전화로 양해를 구했고, 다른 맛의 마카롱을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서비스로 ‘커피맛 마카롱’을 얹어서 보냈다. 그런데 별점이 매우 낮았다. 손님이 내세운 이유는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사람에게 커피맛 마카롱을 보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별점과 리뷰가 고객 ‘기분’에 좌우될 때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다. 외식업계의 별점전쟁은 얼핏 ‘사장님’과 ‘손님’ 간의 문제로 보이지만, 이 시스템을 굴리는 주체는 플랫폼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플랫폼 입장에선 별점경쟁이 붙을수록 이득이다. 거래가 늘수록 수수료 이익이 커지고 독점적 지위도 강화된다. 김나현씨의 경우 창업 후 배달 플랫폼에 가입하자마자, 플랫폼 매니저로부터 ‘리뷰 이벤트’ 권유를 받았다. 리뷰 이벤트란 리뷰를 약속하는 대가로 음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벤트다. 대다수 사업주가 출혈을 감수하며 리뷰이벤트에 나선다. “너무 배고파요. 연어초밥 4p 더 부탁해요. 리뷰 예쁘게 잘 올리겠습니다. 별 다섯 리뷰ㅎㅎ”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된 무리한 서비스 요구 사례는 업체들의 ‘리뷰이벤트’ 홍수와 무관치 않다. 배달 플랫폼은 별점평가를 활용하면서도 ‘악성리뷰’ 앞에서 소비자 입장만 주로 대변했다. 지난 6월 ‘새우튀김 1개 환불’ 문제에 시달리다 사망한 사업주는 쿠팡이츠로부터 여러차례 ‘주의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쿠팡이츠의 경우 점주는 리뷰에 답변을 게재할 수 없어 사실상 ‘방어권’이 없다. 업주가 답변을 남길 수 있는 플랫폼에서도 ‘항변’은 만만찮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게 하는 고도의 ‘감정노동’이 요구된다. 공산품을 판매하는 영역에서도 별점과 리뷰 때문에 점차 감정노동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형 칠판을 판매하는 한 소상공인은 “택배가 늦어 기분이 나빴다며 보상을 요구한 손님에게 택배사 사정에 따른 배송 속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보상은 어렵다고 답했더니 ‘후기를 나쁘게 쓰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별점노예 택시업계 별점노동의 그림자도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11일 카카오모빌리티는 사측이 제시한 수준보다 별점이 낮은 택시기사들에게는 ‘카카오T 택시 프로 멤버십’ 가입을 못 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 멤버십은 ‘우선배차’ 기능을 제공한다. 한마디로 별점을 낮게 받는 택시기사에겐 우선배차 기능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카카오 측은 지난 3월 이 멤버십을 유료(월 9만9000원)로 처음 도입했는데, 시장 장악력이 커지자 별점으로 노동자 통제에 나선 것이다.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된 ‘배달 요청사항’. 별점 5개와 좋은 후기를 남길테니 초밥 4개를 더 달라는 내용이다. 이 영수증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한 소상공인은 “(요구한 서비스는) 7천원 금액의 초밥”이라고 설명했다. / 보배드림 캡처 22년차 택시기사인 정현수씨(가명·61)는 “사실 카카오의 별점 압박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해 3월 출시된 서비스인 ‘카카오T 블루’의 기사인 그는 매달 ‘월간리포트’를 받고 있다. 리포트에는 승객의 별점 평가결과가 담긴다. ‘카카오T 블루’의 기사들은 평점에 따라 ‘마스터 그룹’(평균 4.8점 이상), ‘나이스 그룹’(4.0 이상 4.8 미만), ‘화이팅 그룹’(평균 4.0 미만)으로 나뉜다. 나이스 그룹과 화이팅 그룹은 서비스 개선 요청과 함께 ‘제한 조치’를 받을 수 있다. 제한 조치는 일정기간 배차 정지 등을 뜻한다. 정씨가 받은 리포트에는 평점 평균이 아니라 민원이 발생할 때도 1일 배차 제한이 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카카오T 블루’의 별점 평가 리포트는 한때 택시업계를 위협했던 ‘타다’를 연상시킨다. 과거 ‘타다’는 고객 평점 평균이 4.5점을 넘지 않으면 일감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기사들을 옥좼다. 정씨는 “확인할 순 없지만 평점이 딱 하나만 낮게 나와도 콜이 잘 안 뜬다. 다른 기사들도 모두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정씨는 별점평가를 ‘노예화’라고 표현했다. “주관적이고 일방향인 고객평점으로 기사를 쥐어짠다”는 의미에서다. 7년차 택기기사 최준영씨(가명·51)는 음악을 예로 들었다. “클래식을 틀어놓았더니 지루하다며 짜증을 낸 분이 있었다. 아예 음악을 끄고 가면 ‘운전기사가 라디오도 안 틀어놓냐’고 뭐라고 하는 분도 있다. 두 번 다 별점을 나쁘게 받았던 것 같다.” 현재 카카오 블루는 서비스 가이드 라인에 ‘꼭 KBS 클래식 라디오를 틀어놓으세요’라고 규정해놨다. 20년차 택시기사 김승환씨(가명·58)도 별점에 속 썩은 적이 있다. 김씨는 “구토를 한 승객이 그냥 가려고 하시길래, 운행을 못 하는 부분은 운수사업법에 따라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비용은 일부 받았지만 바로 평점 평균이 0.3점이 깎였다”고 했다. 카카오T에 상황을 설명하려 전화했지만 30분 넘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담배 심부름을 거절했더니 평점을 0점 준 손님도 있었다. 소비자 평가를 통한 착취는 디자인, 웹 개발 분야의 프리랜서들도 예외가 아니다. ‘라우드소싱’이라는 디자이너 플랫폼에선 콘테스트 방식으로 노동자에게 일감을 연결해준다. 문제는 고객의 요구에 맞춰 디자인 시안을 만들고도 수고료를 거의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고객이 내는 상금의 70%는 콘테스트 우승 디자이너에게 돌아가고, 1차 통과자에게는 10%가 배분된다. 나머지 20%는 플랫폼이 수수료로 챙긴다. 상금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1차 통과를 했어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어렵다. 이하은 경기청년유니온 위원장은 “라우드 소싱은 평가 자체가 유급과 무급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플랫폼이다. 시세가 수천만원에 형성되는 디자인을 200만~300만원에 공모한다. 단가 저하와 함께 디자인은 싸게 할 수 있다는 인식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말했다. “제 점수는요” ‘별점노동’은 플랫폼 기업이 대거 등장하면서 만연해졌다. 플랫폼에게 별점은 ‘만능키’에 가깝다. 구체적인 업무 매뉴얼과 제대로 된 교육을 생략한 채 별점이 높은 노동자들을 보여주며 ‘이런 전문가들이 있다’고 홍보한다. 그러면서 별점이 낮은 노동자에겐 일감이나 시급 등을 통제하며 압박한다. 별점 자체가 인사노무 도구인 동시에 마케팅 수단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노동자는 ‘소비자의 기분을 맞춰주는’ 감정노동에 노출되고, 자괴감을 느낀다. 지난해 플랫폼 가사노동을 그만둔 김정희씨(가명·60)는 “사람을 숫자로 평가해 값을 매긴다는 것이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외식업계 ‘사장님’들의 별점경쟁 역시 배달 플랫폼의 ‘설계’ 속에서 이뤄진다. “배달 플랫폼과 음식점의 관계는 본사와 대리점 간 ‘갑을 관계’와 유사해지고 있다”(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남양유업 갑질 사례에서 보듯, 기업은 ‘어떻게든 많이 팔라’며 대리점·가맹점을 압박한다. 배달 플랫폼은 더 많은 ‘거래’를 촉진하는 도구로 ‘별점경쟁’을 활용하고 있다. 최근 별점평가와 리뷰 문제를 개선할 대책을 정부가 마련했다고 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악성 리뷰를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리뷰·별점제도 개선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배달 플랫폼들도 점주 보호방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이 별점평가를 노동자와 입점업체를 길들이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한 부작용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별점이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몬다면, 일상 깊숙이 들어온 ‘별점권력’을 다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별점평가에 대한 당신의 별점은 몇점인가.
표지 이야기
[김사강의 눈]노예도 아닌데 도망쳐야 하는 노동자들
[김사강의 눈]노예도 아닌데 도망쳐야 하는 노동자들(2020. 09. 11 14:29)
2020. 09. 11 14:29 오피니언
전북의 어느 섬을 찾아갔다가 섬에 갇혀 일 년에 하루도 못 쉬고 일한다는 노동자들을 만났다. 그들을 그냥 남겨두고 온 게 못내 마음에 걸려 한 달 뒤 그 섬을 다시 찾아갔다. “거기들이 왔다 가고 나서 난리가 났었어. 애들이 여럿 도망쳐서.” 민박집 주인이 우리를 보자마자 한 말이었다. 지난 방문 뒤 이주노동자 몇 명이 섬을 떠났다. 선주의 감시 때문에 여객선을 타지 못한 이들이 어디선가 배를 불러 나갔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인권단체 놈들인지, 브로커인지가 애들을 꾀어 빼돌렸다며 선주들이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야기도 건너 건너 들은 터였다. 도망이라는 소리가 안 나오게 이번에는 순서대로 절차를 밟아보기로 했다. 계약조건 위반이나 임금체불 등 노동청에 진정할 수 있는 사유와 증거가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추려 만났다. 힘들겠지만 조사가 진행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섬에서 버텨달라고 부탁했다. 그 사이 지역 방송국에서 이들의 상황을 취재해 방송에 내보냈다. 그런데 방송을 본 선주가 인터뷰에 응했던 노동자의 목을 조르고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진정을 결심했던 노동자들은 두려움에 뭍으로 나오고 싶어했다. 섬을 벗어나려는 노동자들과 이를 막으려는 선주들 사이 실랑이가 이틀간 지속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세 명을 제외한 열한 명이 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도망쳐서 어찌 되는지 두고 보자는 선주들의 으름장을 뒤로 한 채. 노예는 주인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도망을 쳐야 했다. 그러나 노동자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임금을 받기로 하고 고용주와 계약을 할 뿐이다.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계약관계를 끝내면 그만이다. 고용주가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듯이 노동자 역시 고용주를 떠날 자유가 있다. 이것이 노예와 노동자의 차이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노예처럼 도망을 쳐야 한다. 한번 계약을 맺은 이주노동자를 순순히 보내주려고 하는 고용주는 드물다. 일은 고된데 임금이 낮거나 노동관계법을 수시로 위반하는 사업장에서는 특히 그렇다. 계약을 해지하고 사업장을 변경하고 싶다는 이주노동자에게는 추방시켜 버리겠다는 협박이 돌아오고, 이는 종종 실행으로 옮겨진다. 출입국관리법은 고용된 외국인의 소재를 알 수 없게 된 고용주에게 신고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무단이탈 신고제도’다. 고용주를 피해 관계기관에 사업장 변경과 권리구제를 요청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망친 이주노동자들이 신고당한다. 한 달 이내에 소명하지 않으면 해당 이주노동자는 체류자격이 취소되고 강제퇴거 대상자가 된다. 도망친 노예, 이주노동자들은 추노가 된 출입국의 단속 대상이 된다. 일주일 전, 그 섬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들의 진정 신고를 관할 노동지청에 접수했다. 예상보다 일이 신속하게 진행되어 벌써 근로감독관이 배정되었고, 조사를 위한 출석일자도 정해졌다. 섬에 남아 있는 세 명의 진정인들이 출석 조사 날 문제 없이 여객선을 탈 수 있을지 걱정하는 와중에 고용주들은 당사자들이 다 섬에서 도망쳐 버려 조사를 받으러 갈 수 없다며 근로감독관에게 거짓말을 했단다. 도망쳐도 난리, 버텨도 난리다.
[원희복의 인물탐구] 쓴 동국대 교수 황태연 “친일파는 왜에 빌붙은 노예다”(2020. 03. 06 14:33)
2020. 03. 06 14:33 사회
서울대 교수 출신 이영훈을 비롯한 낙성대연구소 필진이 쓴 <반일종족주의>가 한동안 베스트셀러가 됐다. 통계수치와 나름 그럴듯한 증거를 동원한 이 주장에 독자들이 현혹된 것이다. 이에 맞선 <일제종족주의>라는 책이 나왔다. 필자는 “이영훈의 <반일종족주의>를 비아냥거리려 단 책 제목”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매우 격렬한 표현으로 친일학자를 공박하고, 통계수치와 해외 사료까지 폭넓게 인용하고 있다. 지난 2월 27일 대표 집필자 황태연 동국대 교수(65)를 만났다. -이영훈 등 친일학자를 비롯한 친일파를 ‘부왜노(附倭奴)’, 즉 ‘왜에 빌붙은 노예’라고 표현했다. 너무 과격한 표현 아닌가. “오래전부터 목포·여수 등에 정착해 산 왜구를 ‘토왜’라 했고, 나중에 친일파를 토왜라 불렀다. 단재 신채호는 외국에 붙어 외국문화를 칭송하며 우리를 깔보는 자를 ‘부외노(附外奴)’라고 표현했다. 우리말사전에 ‘부왜(附倭)’는 ‘왜국에 붙어서 나라를 해롭게 하는 사람’, ‘부왜역적’도 사전에 나오는 말로 과격한 표현이 아니다.” -그 ‘부왜’를 하는 이영훈을 비롯한 낙성대연구소 인사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과도해 보인다. “(허허)그들을 반국가단체로 잡아넣지 않는 검사X이 나쁜X이다. 반국가단체란 반헌법적단체다. 우리 헌법에는 상해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잇는 반일독립국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친일은 곧 반헌법적이고 반국가행위다.” <반일종족주의>에 맞선 <일제종족주의> 인터뷰 초반부터 매우 논쟁적이다. 그렇다면 일본과 교역하는 것 역시 반헌법적이고 반국가적이란 말인가. 현직 대학교수 주장치고 비약이 크고 극단적이다. 마치 <반일종족주의>에 나오는 이영훈의 주장과 180도 차이만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 근거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북한만이 반국가단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면서 “역사적으로 북풍(대륙세력)은 한 번도 우리 민족을 말살한 적이 없지만 남풍(해양세력·일본)이 우리를 멸망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수·당은 우리를 침략하다 망했고, 원은 고려와 37년 항쟁을 벌이다 왕조·영토·전통을 그대로 두는 조건으로 항복만 받았다고 주장했다. 원·청이 중국 한족에게 머리를 깎는 변발을 시켰지만 고려·조선인은 그대로 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국권을 빼앗고, 단발령으로 머리까지 깎았다고 말했다. -<갑진왜란과 국민전쟁>이라는 책에서 갑오경장을 ‘갑오왜란’으로 을미사변을 ‘을미왜변’으로, 1904년 무단 군사 침략을 ‘갑진왜란’ 등으로 표현했다. “그 사건을 왜란으로 보지 않는 것 자체가 친일이다. ‘경장’은 왜란을 감추려고 지어낸 말이다. 갑오경장은 통화를 바꿔 경제를 일본에 종속시키고, 군대를 해산시키고 친일 괴뢰군대를 만드는 등 우리 조선 입장에서 반동적 행위다. 그게 어떻게 경장인가. 일본이 경장이니 사변이니 표현했던 것을 정신 나간 역사학자들이 해방 후에도 그냥 쓰는 것이다. 아관파천도 친일신문 <한성신문>만 파천이라 썼고, 당시 모두 ‘아관망명’이라 썼다. 파천이란 임금이 도성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의미인데 고종이 한성에 있었는데 왜 파천인가. 일부 국사학계와 서울시도 아관파천길을 아관망명길로 바꿨다.” -책을 보면 대한제국을 너무 미화하고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국뽕’적 시각 아닐까. “일본 기준에 의하면 과대평가지만 정당한 평가다. 일본이 놓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한강철교(1897년 착공, 1900년 준공)와 경의선 모두 고종이 놓은 것이다. 전철도 일본 도쿄보다 2년 먼저 부설했고, 전화는 일본과 같은 시기(1902년)에 가설했다. 나는 고종을 영조보다 뛰어난 군주라고 생각한다. 아시아에서 신식군대 3만 명을 보유한 나라는 일본을 제외하고 대한제국밖에 없었다. 국제법적 처음으로 독도를 우리 땅이라 선언한 사람도 고종이다.” -그럼 고종 독살설을 믿는 것인가. “당연하다. 고종은 북경으로 망명하려 했고, 헤이그에 이어 베르사유에 왕자 이강과 미국에서 공부한 최초의 여학사 ‘김란사’를 밀사로 또 보냈다. 그런데 이강은 안동에서 잡히고 하란사는 북경에서 독감에 걸려 죽는 바람에 실패한다. 이것은 지금 역사학계에서도 확인한 사항이다. 그러나 역사학계는 이를 일련의 통사로 연결하지 못한다. 내가 <갑진왜란과 국민전쟁>에 자세한 사료를 기반으로 통사를 썼다.” 구한말 역사 상식에 반하는 주장 -한국 기록, 이를테면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고종의 무능과 민비 일가의 부패, 이에 따른 기아와 수탈이 기록돼 있다. 이 때문에 갑오농민혁명이 일어난 것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 “매천(황현)이 친일 박영효파로 <매천야록>은 아무 근거 없이 고종을 비난한다. 민비가 무당을 불러 굿을 했다는데, 그것은 당시 모든 왕비가 하던 행사다. 매천도 <매천야록>에 민비의 영민함을 많이 언급했다. 그런 부문은 안 보고 부정적 부문만 과장되게 알려졌다. <운현궁의 봄>을 쓴 정비석 등 친일작가들이 고종과 민비상을 어그러뜨렸다.” 그는 일반이 알고 있는 구한말 역사 상식을 정면으로 깬다. 그는 근거로 다양한 사료와 수치를 증거로 들고 있다. 그는 1901년 독일 <쾰른신문> 기자로 한국을 방문한 지그프리트 켄터의 연재물을 제시했다. 신문은 “북경도·동경도·상해도 서울처럼 전신과 전화, 전차와 전기조명을 동시에 가진 것을 자랑하지 못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1886년 육영공원 영어교사로 초빙된 헐버트가 1906년 다시 한국을 방문한 쓴 <한국의 독립투쟁>이라는 책에 “서울은 전등·전차·영화관이 있었다… 상류계급의 많은 한국인이 미국 대학에서 졸업장을 받고 귀국하고 있었다. 경찰은 신식복장을 갖추고 신식으로 훈련되고 있었고, 적지만 근대적인 군대가 출범했다”는 대목을 제시했다. 황 교수도 수치를 제시한다. 그가 제시하는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경제통계 책임자로 오래 근무했던 앵거스 매디슨이 산출한 한·중·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다. 매디슨은 1911년 조선경제는 일본 경제학자 미조구치 도시유키가 추계한 ‘1911~1938년 1인당 국민생산 추계’를 활용, 1990년 국제평균 달러로 환산했다. 이에 따르면 1911년 조선의 1인당 국민소득은 815달러로 아시아 4위이고, 1915년에는 필리핀·인도를 제치고 일본에 이어 2위가 된다. 황 교수는 “고종이 직접 통치했던 1897년부터 1903년까지는 경제적으로 최악이 아닌 고도성장기였다”면서 “낙성대연구소에서 이 통계를 수정했는데 고종재임 기간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6%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구한말 경제상황이 최악이라는 것은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이론적 근거다. 최악의 경제 빈곤으로 조선이 망했고, 식민지화한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는 근거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 교수의 이런 주장은 식민지근대화론자 근거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황태연 교수가 2018년 한 역사문화강좌에서 대한제국 시기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황 교수는 “역사학자들은 조선총독부 촉탁 이병도 논문만 보거나 기껏해야 일본 측 자료만 본다”면서 “나는 영어·독일어·러시아어 사료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우리 역사학자들은 통계나 숫자에 약해 이영훈 같은 경제학자들이 내미는 엉터리 통계를 반박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마르크스로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경제학 공부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1955년 동학혁명 본거지인 전북 정읍 출신으로 전주고를 나와 74년 서울대 외교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당시 법대 유명 이념서클인 농법학회에서 활동했지만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다 대학 3학년 제11회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그러나 그는 외교관보다 학문을 선택했다. 대학원(서울대)에서 헤겔로 석사학위를 받고, 8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으로 유학했다. 그는 “당시 운동권에는 공산주의 이론만 난무하는 전환기 상황이었다”면서 “사회운동의 근본적 이론으로 독일 사회민주주의를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DJ에게 ‘DJP연대’ 제안 우리가 잘 아는 유시민·진중권 등이 독일에 유학했지만 박사학위를 받지 못했다. 독일은 절대 학위를 대충 주지 않는다. 게다가 유학생 대부분 한국 정치 상황으로 박사학위를 받는 실정에서 독일철학의 ‘종합판’격인 마르크스로 학위를 받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그는 “매주 소논문을 제출하고 평가를 받아야 박사논문을 쓸 자격을 준다”면서 “마르크스의 지배와 노동’을 주제로 7년 반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이는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학부·석사·박사를 모두 마칠 기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1994년 동국대에 정치사상 교수로 부임했다. 하지만 그는 현실정치에 관심을 가졌다. 92년 대선에 실패해 영국 체류에서 돌아온 당시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김종필의 충청지역과 연합이라는 소위 ‘DJP연대’를 제안했다. 황 교수는 “원래 이탈리아 남부지역에 적용된 안토니오 그람시의 이론”이라며 “‘어떻게 유신잔당과 손을 잡나’라고 망설이던 DJ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결국 DJP연대는 성사되고 그는 ‘평화적 정권교체’의 막후 인물로 떠올랐다. 그의 이 주장은 1997년 <지역패권의 나라>라는 책으로 출판됐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정책자문위원을 맡았다. 정치권에서는 그가 ‘DJ정부 막후 실세’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답방 문제가 거론됐다. 그는 한 국회의원 연구모임에서 “6·25전쟁과 KAL기 테러 등은 사과가 아닌 국제법적 사안”이라는 발언으로 보수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비난의 표적이 됐다. 그는 보수 언론의 종북몰이에 소송까지 벌이며 싸웠지만 결국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기성 정치권에서 돌아온 그는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갑진왜란> <국민전쟁>·<대한민국 국호의 유래와 민국의 의미> 등 한국 근대사 연구에 매달렸다. 그는 “역사는 당시대 국민이 공감하는 ‘공감적 해석학’이 옳다”면서 “갑오왜란(경장) 이후 김홍집 내각에 당시 국민은 ‘왜당정부’라 불렀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부르주아나 계급사관이 아닌 보통 국민사관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에게 두 가지 민족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일제 침략·제국주의를 비난하는 저항적 민족주의로 지금까지 자신이 친일파와 식민지근대화론자를 혹독히 비판하는 이유다. 다른 하나는 통일을 향한 통일민족주의다. 그는 “통일에 자유민주주의를 앞세우면 정복하자는 논리로 남북적대의 불씨가 된다”면서 “민족이 하나라는 감정적 동력인 통일민족주의는 분단이 계속되는 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통일을 남북이 공감하는 평화통일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지금 헌법 정신이고, 대통령의 의무라는 것이다. 황 교수는 요즘 ‘공자철학’에 매료됐다.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 기원>·<공자의 인식론과 역학> 등 17~18세기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 서구 계몽주의 기원이 공자사상에 있음을 규명하고 있다. 2년 전부터 유튜브 ‘황태연 아카데미아’를 통해 이런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실용적 중도정치가 DJ 민주당 정치의 맥’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이는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 정치노선과 맥이 닿아 있다. 그는 “내 이론을 안 대표가 좋아하는 것이지 DJ처럼 정치적 연결은 없다”고 밝혔다.
원희복의 인물탐구
[언더그라운드 넷]누리꾼이 발견한 신안군 염전노예?
[언더그라운드 넷]누리꾼이 발견한 신안군 염전노예?(2019. 04. 29 11:01)
2019. 04. 29 11:01 사회
“누가 그런 말을 합니까. 와서 직접 확인해보라고 하세요.” 노인은 “기분 나쁘다”고 했다. 전남 신안군 자은면의 안모씨(70). 지난해 5월, KBS <인간극장>에 출연한 그는 신안군에 따라붙은 오명, ‘염전노예’라는 말이 불쾌하다고 했다. 과거 지적장애인들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데도 관이 염전주들의 착취를 묵인한 사건에서 비롯된 별명이다. 지난해 5월 KBS에서 방영된 ‘소금꽃이 피었습니다’의 한 장면. 방영 후 누리꾼들은 여기 찍힌 CCTV가 인부 감시용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 KBS 화면캡처 그 후 1년. 인터넷에서는 <인간극장>의 캡처 영상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영상을 보면 안씨네 염전에서 일하는 일꾼 중 ‘자신의 아버지 이름은 기억하지만 주민등록증은 없는’ 막내아재(누리꾼이 붙인 별명이다)가 나온다. 지적장애인으로 보인다. 누리꾼들은 ‘주민등록증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거기까지 가서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의혹을 제기한다. 그리고 결정적 물증이라며 스치고 지나간 화면을 확대 제시한다. CCTV다. 즉 ‘감금된 지적장애인 탈출 감시용’이라는 설명이다. 사실일까. 물어물어 안씨와 연락이 닿았다. <인간극장>에 나온 ‘막내아재’가 누군지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지난 1년여간 인터넷 논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눈치다. “인력소개소를 통해서 인부들을 데리고 옵니다. 한 달도 안 돼 떠나는 사람도 많아요. 그만둔다고 하면 군소리 없이 그때까지 일한 거 계산해서 줍니다. 월급은 다 똑같아요. 최저임금 수준이죠.” 인부들은 염전에서 200m쯤 떨어진 별도의 사택에서 기거한다. 그렇다면 설치된 CCTV는 염전이나 인부 감시용? 안씨의 설명에 따르면 CCTV가 설치된 곳은 세 군데이고 모두 집 앞 마당이다. 그는 방범용이라고 덧붙였다. “여기 들어와서 보면 우리 집이 외딴 데 있는데 주말이면 난장판입니다. 방송 촬영지 본다고…. 뭐가 없어지기도 하고 실제 도둑도 여러 차례 맞았습니다.” 예전에는 섬이었지만 섬과 섬을 잇는 연륙교가 설치되면서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인부들 사는 곳요? 그쪽엔 따로 CCTV는 없어요. 최근엔 일하려는 사람이 없어 외국인 노동자들 세 명을 데리고 있었고….” 안씨는 누리꾼들의 의혹 제기에 언짢아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래도 방송에 나온 사람인데 내가 나쁜 사람이라면 방송을 내보냈겠습니까. 그래도 의심 가는 사람이 있으면 직접 와서 눈으로 보고 판단하면 좋겠습니다.”
언더그라운드 넷
[법률 프리즘]염전노예 착취 사건은 국가의 책임
[법률 프리즘]염전노예 착취 사건은 국가의 책임(2018. 11. 05 14:25)
2018. 11. 05 14:25 사회
염전을 몰래 빠져나온 그로부터 도움을 요청받은 경찰은 지적능력이 부족한 그를 보호하고 염전주의 위법행위가 있었는지에 관하여 조사하였어야 했다. 그는 이른바 ‘염전노예’ 사건 피해자였다. 그는 전남 신안군의 한 섬 염전에서 8개월여간 일하였다. 당시 근로계약의 내용은 ‘월급은 70만원, 소금을 안 낼 때에는 임금을 주지 않고 오직 숙식만 제공하며, 계약기간은 2013년 2월부터 소금 생산이 끝나는 2013년 10월 말까지’였다. 그는 근로계약으로 정한 소금을 내는 일 이외에도 소금을 포대에 집어넣는 포장작업이나 차에 싣는 상차작업도 하였으며, 밭일과 어업도 하였다. 염전주는 그에게 소금을 내고 나면 돈을 주겠다고 하면서 임금을 주지 않았다. 심지어 그를 때리기도 했다. 그는 두 차례 탈출을 시도했으나 인근 주민이 염전주에게 그의 소재를 알려줘 실패했다. 서해안의 한 염전 모습./연합뉴스 그는 한여름 밤 세 번째 탈출을 시도한 끝에 파출소에 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지금은 밤이니까 옆에 있는 방범사무실에서 자고 다음날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는 그다음날 날이 밝자 파출소에 가서 파출소 밖으로 나오는 경찰에게 “염전주에게 맞으며 일하고 있으며, 힘들어서 섬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경찰은 그에게 방범사무실에서 기다리라고 말한 후 운동을 갔다. 그가 방범사무실에서 혼자 기다리는 동안 그 경찰의 연락을 받은 염전주가 방범사무실로 찾아왔다. 염전주는 그에게 “염전에서 소금 낼 때까지만 일을 더 도와달라”고 했고 그는 이에 동의했다. 그는 경찰 앞에서도 같은 취지로 진술하였는데, 염전주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가 염전에서 착취당하도록 내버려둔 국가의 책임을 묻는 소송에서 정말로 경찰이 그의 신고를 묵살했는지가 다투어졌다. 증인으로 나온 경찰은 그가 파출소에 왔을 때 염전 일이 힘들어 섬을 나가고 싶다고 말했을 뿐 염전주에게 맞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며, 그의 주장을 완강히 부인하였다. 그도 같은 날 법정에 나와 분명히 염전주에게 맞고 있다고 말하였는데, 경찰이 신고를 묵살했다고 진술하였다. 법원은 경찰의 증언을 믿기 어렵다고 하였다. 법원은 그가 임금을 못 받고 있으며 육지로 나가고 싶다고 하는 상황에서, 경찰이 염전주를 파출소로 불러 그와 단둘이 만나도록 한 점을 보면 경찰은 그보다는 염전주의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고 보았다. 피고 대한민국이 염전노예 사건과 관련된 경찰들에 대한 불문경고, 직권경고 등 처분의 기초가 된 조사자료, 구체적인 처분사유가 적힌 문서를 끝내 제출하지 않은 점도 고려되었다. 다음으로 경찰이 그와 염전주를 만나게 한 것이 위법하였는지 다투어졌다. 법원은 일반적으로 가해자와 면식이 있을 뿐만 아니라 생활을 같이 하는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신고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때에는 가해자를 불러 피해자와 마주하게 하는 것은 신중하여야 하고, 특히 경찰공무원이 부재한 상태에서 피해자의 동의 없이 가해자와 피해자 둘만을 같은 공간에 있게 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경찰이 그의 신고를 받고도 염전주에게 연락하여 그가 있는 파출소 또는 방범사무실로 오라고 한 후 자신은 운동을 이유로 파출소를 비워둬 염전주가 그를 독대하게 한 행위는 그 행위의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어 그 자체로 위법하다고 하였다. 섬에서 가족이나 친인척 없이 생활하는 그가 염전주의 폭행 등 위법행위에 관하여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대방은 경찰이 유일했다. 염전을 몰래 빠져나온 그로부터 도움을 요청받은 경찰은 지적능력이 부족한 그를 보호하고 염전주의 위법행위가 있었는지에 관하여 조사했어야 했다. 법원은 그가 느낀 당혹감과 좌절감이 극심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이유로 그가 청구한 3000만원 모두를 위자료로 인정하였다.
법률 프리즘
[신간 탐색]19세기 흑인 노예 소녀의 탈출기
[신간 탐색]19세기 흑인 노예 소녀의 탈출기(2017. 09. 04 15:50)
2017. 09. 04 15:50 문화/과학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황근하 옮김 은행나무 펴냄·1만4000원 19세기 흑인 노예들의 탈출을 돕던 실존 조직 ‘지하철도(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를 모티브로 해 노예 소녀의 탈출기를 그린 이 장편소설은 미국에서 24년 만에 퓰리처상(2017년)과 전미도서상(2016)을 동시 수상한 책으로 화제를 모았다. 소설의 주인공 코라는 농장에서 흑인 노예로 태어나 살던 중 주인이 도망치다 잡혀온 코라의 동료를 산 채로 불태우는 모습을 보고 탈출을 결심한다. 탈출을 위해 ‘지하철도’에 오르는 그녀를 노예 사냥꾼 리지웨이가 혈안이 돼 뒤쫓기 시작한다. 지하철도를 타고 새로운 역에 도착할 때마다 코라는 매번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다.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던 흑인 노예들의 비참한 삶과 인종 우월주의에 기댄 인간들의 광기, 긴박감 속에서도 그녀를 돕던 지하철도 조직원들의 헌신도 이어진다. 코라의 여정은 노예제도의 보이지 않는 이면을 점층적으로 드러내며, 그 비극과 부조리를 조망한다. 작가는 노예제도 안에서 흑인들뿐만 아니라 백인들 역시 어떻게 피폐해져 갔는지, 흑인 내부에서는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등을 그려내며 결과적으로 노예제가 인간 모두를 얼마나 괴롭혀 왔는지를 환기시킨다. 이와 함께 한 인간으로서 우리는 손에 쥐고 있는 자유를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 물음도 제시한다. 코라의 엄마 역시 노예로 살다가 코라를 버리고 탈출을 감행, ‘농장에서 탈출한 유일한 노예’가 됐다. 코라는 바람대로 엄마처럼 자유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신간 탐색
[우정이야기]일제 노예를 거부한 우당선생 기념우표(2017. 04. 25 15:38)
2017. 04. 25 15:38 경제
‘난잎으로 칼을 얻다.’ 지난 2015년 2월 덕수궁 중경전에서 열린 우당 이회영과 6형제를 다시 생각하는 전시회 제목이다. 우당이 난 그림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당의 가문은 조선 최고의 가문이었다. 우당 가문에는 ‘상신록’이라는 문집이 있다. 정승을 10명 이상 배출한 가문에서만 만들 수 있는 문집이다. 이항복도 그 중 한 명이다. 우당의 부친 이유승은 고종 초기 이조판서를 지냈다. 동생 이시영은 평안남도 관찰사와 한성 재판소장을 지냈다. 나중엔 상하이 임시정부 부통령(초대)을 맡았다. 우당 가문은 조선 최고의 부자였다. 서울 명동 땅의 절반은 모두 우당 집안의 소유였다.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2조원이 넘는 대부호였다. 일제는 그의 재산 유지를 약속했지만 우당 가문은 이를 거절했다. 이유승에게는 6명의 아들이 있었다. 이들 역시 조선 최고의 형제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들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무엇인지 보여준 독립운동가다. 그들의 죽음이 이를 대변한다. 가장 많은 독립운동자금을 댔던 둘째 이석영은 중국 빈민가에서 굶어죽은 채 발견됐다. 넷째 우당은 안중근 의사가 처형된 여순감옥에서 고문을 받다가 절명했다. 막내 이호영은 행방불명됐으며 끝내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우당 이회영 선생 탄생 150주년을 맞아 기념우표 56만장을 발행했다. 우표는 우당 이회영 선생의 옆모습과 6형제가 회의하는 모습을 태극기와 함께 디자인해 우당 선생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았다. 그들의 운명을 바꾼 것은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당한 을사늑약이었다. 독립운동에 가장 앞장섰던 우당은 상동교회 목사 전덕기와 함께 비밀결사조직인 ‘신민회’를 1907년 조직하여 국권회복운동을 펼친다. 그리고 전덕기와 함께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거사를 기획하여 고종에게 청원한다. 이것이 실패로 끝난 헤이그 밀사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고종은 강제 폐위되고 대한제국의 군대는 해체된다. 1910년 12월 어느 날 우당의 6형제가 한 자리에 모였다. 그 자리에서 우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형제가 당당한 호족의 명문으로서 차라리 대의가 있는 곳에서 죽을지언정, 왜적 치하에서 노예가 되어 생명을 구차히 도모한다면 이 어찌 짐승과 다르겠는가?” 평생이 보장된 신분을 버리고 6형제가 함께 만주로 망명 길을 떠났다. 우당은 동북3성 총독에게 만주 현지 땅 구입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보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당시 중국의 실력자였던 위안스카이와 단판을 짓고 마침내 허락을 받아낸다. 1911년 중국 지린에 경학사(이상촌) 건립을 추진하고 1912년 신흥학습소를 세운다. 독립군을 양성했던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이다. 무장 항일투쟁의 젖줄이 됐던 신흥무관학교는 1919년 11월 안도(安圖)현 삼림지역으로 이동할 때까지 약 35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님 웨일즈의 에는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김산의 생생한 수기가 실려 있다. 고국에서 가지고 왔던 그 많던 돈도 1918년 바닥이 나고 만다. 우당은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고종의 중국 망명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듬해 고종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이마저도 실패했다. 1919년 다시 중국 망명길에 올라 본격적인 아니키스트 활동에 돌입한다. 비밀결사조직인 다물단(1925년)과 테러행동단인 흑색공보단(1932년)을 결성했다. 우당은 자신이 친 난 그림을 팔고 고국에서 부인 이은숙이 삯바늘질해서 보내온 돈까지 이들 단체를 꾸려나가는 데 보탰다. 올해는 우당 선생의 탄신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정사업본부는 그의 탄생을 기념하는 기념우표 56만장을 발행했다. 수조원의 재산과 6명의 생명을 바친 독립운동가와 그들 후손에게 조금의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정이야기
프란치스코 교황 ‘현대판 노예제와의 전쟁’(2015. 04. 20 17:20)
2015. 04. 20 17:20 국제
교황청은 4월 17일부터 21일까지 인신매매 범죄 문제에 대한 회의를 여는 데 이어, 27일에는 교황청 주재 스웨덴 대사관 등과 함께 인신매매의 ‘특수한 희생자’인 어린이 노예노동에 대한 세미나를 열 계획이다. “선한 의지를 가진 모든 남성들과 여성들, 멀리 있고 가까이 있는 모든 이들, 민간기구의 고위층에 있는 사람들, 오늘날에도 이뤄지는 노예제의 채찍질을 목도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호소합니다. 이 악(惡)의 공범이 되지 말아 주십시오. 자유와 존엄성을 빼앗긴 우리 형제자매들, 우리의 형제 인류가 겪는 고통에 등돌리지 마십시오.” 지난 4월 14일(현지시간) 바티칸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하나가 개설됐다. ‘노예제를 끝내자(www.endslavery.va)’는 이름의 이 사이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줄곧 제기해왔던 인신매매와 아동노예·성노예 등 21세기에도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늘어가는 노예 문제를 다루고 있다. ‘노예제를 끝내자(www.endslavery.va)’는 이름으로 바티칸이 개설한 웹사이트. “2020년까지 인신매매 종식” 세계에 호소 교황은 2020년까지 인신매매를 종식시키자며 세계에 호소했고, 지난해 말 세계 종교지도자들과 힘을 합하기로 다짐했다. 영국 국교회인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 그리스 정교회 총대주교를 비롯해 유대교·이슬람교·힌두교·불교 지도자들과 바티칸에서 만나 인신매매와 강제노동, 성매매, 인체조직·장기밀매 같은 반인도적인 범죄에 맞서자는 ‘종교지도자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4개월여 만에 웹사이트를 열었고, 트위터 계정(@nonservos)도 개설했다. 교황청 산하 과학·사회과학아카데미는 인신매매와 노예제 문제에 대해 이달부터 잇달아 회의와 세미나를 개최한다. 오는 17일부터 21일까지 인신매매 범죄 문제에 대한 회의를 여는 데 이어, 27일에는 교황청 주재 스웨덴 대사관 등과 함께 인신매매의 ‘특수한 희생자’인 어린이 노예노동에 대한 세미나를 열 계획이다. 흔히들 노예제가 지난 세기에 근절된 것으로 여기지만 노예는 사라지지 않았다. 미국 학자 케빈 베일스는 저서 (1999)에서 ▲자신의 선택이 아닌 강요나 사기에 의해 ▲생존에 필요한 것 이상의 보수를 받지 못한 채 ▲강제로 노동에 종사하는 경우를 ‘노예’로 규정했다. 베일스와 조 트로드, 알렉스 켄트 윌리엄슨은 공동저서 에서 노예제를 철폐하기 위한 싸움의 역사를 소개하고, 현대 노예제의 다양한 형태를 살핀다. 이들에 따르면 가장 대표적인 노예노동 중의 하나는 ‘성노예’다. 아직 어린 소녀들을 포함한 여성들은 때로는 포주에 의해, 때로는 자신들을 ‘사간’ 남성들에 의해, 때로는 마을에 쳐들어온 점령자들에 의해 노예가 된다. 여성 노예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고통은 특히 심하다. 벤저민 스키너의 은 ‘더부살이’라 불리며 주인집 종 노릇을 하는 아이티의 어린 가내 노예, 냉전이 끝난 뒤 사회안전망이 무너진 동유럽에서 서유럽을 거쳐 세계로 팔려나가는 여성 성노예, 무슬림 부족집단에 조직적으로 학살당하고 노예로 전락한 수단 남부 아프리카계 기독교도 등의 사례를 추적한다. 이 무색할 정도로, 스키너가 뒤쫓은 사건들은 참혹하고 잔인하다. 지난해 11월 국제 노동인권단체 워크프리는 “세계 인구의 0.5%에 해당하는 3580만명이 노예 상태에 있다”고 봤다. 워크프리의 ‘세계노예지수’에 따르면 노예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인도이고, 인구 중 노예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아프리카 모리타니다. 모리타니의 경우 무장한 부족군벌집단이 특정 지역 주민들을 예속시켜 착취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그러나 노예는 머나먼 아프리카나 남아시아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해 영국 내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노예노동에 시달리는 사람이 영국에만 최대 1만3000명이었다. 보고서에는 루마니아와 폴란드, 알바니아 출신 노예 사례가 여럿 포함됐다. 터키 등을 거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 스페인을 비롯한 남유럽에 예속노동자로 팔리는 남성들 사례도 보고됐다. 루마니아 어린이들이 이탈리아 등지의 범죄조직에 ‘구걸을 위한’ 노동력으로 인신매매되기도 한다. 영국 정부가 현대의 노예에 대해 공식 보고서를 낸 것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영국 인권·노동단체들은 불법 이주해온 제3세계 출신들이 노예노동을 강요받고 있다며 정부의 대응을 촉구해왔다. 영국 범죄수사국은 이런 지적에 따라 2013년 2744명 이상이 노예노동에 시달려왔다고 밝힌 바 있다. 공식 보고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숨겨진 노예들’임을 보여줬다. “세계인구 0.5%인 3580만명이 노예 상태” 사람들이 노예로 전락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동유럽처럼 갑작스런 정치·사회적 격변 때문에 흔들린 곳도 있고, 남수단이나 모리타니에서처럼 오랜 계급·부족·종교 갈등이 조직적 노예사냥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다. 인도에서는 낮은 카스트의 못 배운 빈곤층이 노예가 되고, 미얀마에서는 군부 정권이 소수민족을 정글로 몰아 벌목과 댐 공사를 시키며 노예로 부렸다. 스키너의 책에는 한국도 동유럽 성노예들의 기착지 중 한 곳으로 언급돼 있다. 가장 최근 사례는 이라크와 시리아다.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는 소수 공동체 ‘야지디’ 남성들을 학살하고, 여성들은 잡아가 노예로 삼았다. 야지디뿐 아니라 이라크의 젊은 여성 수백~수천명이 성폭행과 집단 성폭행에 시달렸고 ‘성노예’로 전락했다. IS는 “무슬림이 아닌 여성은 노예로 삼아도 된다”는 지침까지 내렸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중동미디어연구소(MEMRI)가 공개한 IS의 ‘지침’에는 “노예들은 자산일 뿐이므로 선물하거나 팔아도 된다”는 구절도 있다. 민간기구와 학자들은 현재 노예상태에 놓인 사람들의 수가 유사 이래 가장 많다고 지적한다. 물론 세계 전체의 인구 규모가 크기 때문에, 노예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과거보다 적다. 노예노동에 의존하는 경제의 규모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몫도 미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예노동이 횡행하는 것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노예를 부리는 비용이 낮아진 탓이다. 18~19세기 미국의 백인 농장주들이 노예를 사고 먹이고 유지하는 데 쓴 비용과 비교하면 지금은 유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고 베일스 등은 지적한다. 이제는 노예를 먹이고 건강하게 유지할 필요조차 없어졌으며, 노예가 죽으면 얼마든지 새로 사들일 정도로 ‘사람값’이 싸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여러 가지 정치·사회적 현실과 결합돼 있기 때문에 노예제와의 싸움은 지난하다. 세계는 그동안 이 문제를 거의 중시하지 않았다. 2013년 3월 프란치스코가 즉위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로마 가톨릭이, 그것도 교황이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선두에 설 것으로 예상한 사람들은 없었을 것이다. 교황은 즉위 뒤 처음으로 바티칸 밖으로 나가는 외출 때 이탈리아 남부의 ‘난민섬’ 람페두사를 첫 행선지로 정했고,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온 난민들을 만났다. 그들 중 일부는 인신매매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지난해 말의 종교지도자 공동선언에 이어 교황은 2월 8일을 ‘세계 인신매매 반대 기도의 날’로 정했다. 이전에도 노예노동을 막기 위한 인증제도나 공정무역, 스웨덴의 ‘성 구매 불법화’ 같은 움직임은 있었다. 교황은 이런 흐름을 세계에 확산시키기 위해 나섰다. 프란치스코의 호소에 21세기 세계시민들의 ‘양심’은 어떻게 응답할까.
[영화 속 경제]노예 12년-흑인노예를 감시하면 생산량은 는다(2014. 06. 10 17:24)
2014. 06. 10 17:24 경제
“너는 자유인이 아냐. 조지아에서 탈출한 깜둥이야.” 뉴욕에 사는 흑인 솔로몬 노섭은 1남1녀를 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예술가다. 1841년 어느날, 그에게 두 남자가 접근한다. 지상 최대의 서커스쇼 단원인데 악사가 필요하다며 순회 중인 단원들을 따라 워싱턴까지 동행해줄 것을 요청한다. 조건은 짭짤하다. 매일 1달러에 야간공연을 하면 3달러를 주는 조건이다. 하지만 두 남자는 인신매매범이었다. 1840년대 미국에서는 노예 수입이 금지됐다. 그러자 미국 내 자유주에서 흑인을 납치해 노예주로 팔아넘기는 인신매매가 성행한다. 만취돼 쓰러졌다가 눈을 뜨니 손발이 묶여 있다. 졸지에 노예가 됐다. 이름은 플랫, 출신은 노예주의 한 곳인 조지아로 바뀐다. 자신이 자유인임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노섭은 노예주 중에서도 가장 지독하다는 남부 루이지애나로 끌려간다. 첫 주인 포드는 노섭을 이해하지만 자유를 허락하지는 않는다. 백인을 때려 노섭이 위험에 처하자 엡스에게 팔아치운다. 악명 높은 면화 대농장주 엡스는 수확량이 적은 노예에게 매질을 하고 어린 여자노예 팻시를 성노리개로 삼는다. 탈출을 기도하는 노섭. 쉽지 않다. 우체국을 통해 북부의 지인에게 편지를 보내려던 계획까지 수포로 돌아간다. 스티비 맥퀸 감독의 은 2014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맥퀸 감독은 오스카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감독이 됐다. 팻시 역을 맡은 루피타 뇽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미 피플지는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선정했다. 이 영화의 제작자가 브레드 피트다. 노섭이 사탕수수밭 농장에 대여될 때 농장주와 농장 관리인들은 노예들이 일하는 모습을 마차 위에서 지켜본다. 엡스의 관리자들은 채찍을 휘두르며 노예들이 면화 따는 것을 독려한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관리자들이 지켜보면 정말 생산량이 늘어날까? ‘호손 효과’에 따르면 그렇다. 호손 효과란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을 의식하는 현상을 말한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를 의식해 평소와 다르게 행동한다. 하버드대의 산업심리학위원회는 1927년부터 1932년 사이 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적정 조도를 찾기 위한 실험을 했다. 이 실험이 이뤄진 곳이 미국 일리노이주 소재 웨스턴 일렉트릭의 호손공장이었다. 연구원들은 실험할 호손 노동자들을 선발한 뒤 한 쪽은 조명을 밝게 했고, 한 쪽은 어둡게 했다. 그런데 양쪽의 생산성은 모두 개선됐고, 개선 정도는 별 차이가 없었다. 노동자의 휴식시간, 근무시간, 급료 등을 달리하면서 실험을 해봤지만 역시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들이 뒤늦게 내린 결론은 외부 작업환경이 아닌 노동자의 마음자세였다. 자신이 실험 대상으로 관찰되고 있다는 것을 안 노동자들은 행동이 달라졌다. 자신들이 선택됐다는 자부심에 외부조건이 어떠하든 열심히 일을 한 것이다. 호손 효과는 1930년대 경영학에 큰 충격을 줬다. 그 이전만 해도 경제학은 노동자를 기계와 같은 존재로 봤다. 근로환경을 적절하게 조절해 주면 생산성도 그에 따라 늘어날 것으로 봤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방법이나 앙리 패욜의 기능적 경영론이 대표적이다. 만약 농장주나 농장 관리인이 노예들을 감시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면화를 많이 따더라도 자신의 수익이 아니어서 경제적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농장주와 농장 관리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팻시는 사탕수수 볏집으로 인형을 만든다. 요즘 CC-TV가 설치된 사업장이 많다고 한다. 보안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노동자들을 감시하기 위한 조치로 보는 시각도 많다.
영화 속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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