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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초연금에 여유, 든든”…노인빈곤 해소엔 한계(2024. 07. 22 06:00)
- 2024. 07. 22 06:00 사회
- 김창남씨, 나경희씨, 황정옥씨(왼쪽부터)가 지난 7월 16일 서울 광진구 대한은퇴자협회 사무실에서 도입 10년을 맞은 기초연금에 관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것 같습니다.”(1954년생 김창남씨)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소득이라서 든든하죠.”(1955년생 나경희씨) “마음에 여유가 생기더라고요.”(1949년생 황정옥씨) 올해로 도입 10년을 맞은 기초연금 이야기다. 2014년 7월부터 만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하위 70%에 해당하면 달마다 고정적으로 기초연금이 지급됐다. 10년 사이 급여액은 월 최대 20만원에서 33만4810원까지 인상됐다. 수급자 수는 435만명에서 지난해 말 기준 651만명으로 늘었다. 기초연금은 노인빈곤율을 낮추고 노인 우울감 해소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기초연금만으로는 노인빈곤 해소에 역부족인 상황이다. 2022년 기준 상대적 노인빈곤율은 38.1%(통계청)에 달한다. 노인인구 증가로 재정부담도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과 더불어 기초연금도 개혁의 시기를 맞고 있다. ■내 삶에 기초연금이란 기초연금은 은퇴자들의 삶에서 무슨 의미일까. 지난 7월 16일 서울 광진구 대한은퇴자협회 사무실에서 기초연금을 받는 세 사람을 만났다. 김창남씨(70)는 은퇴 전 작은 학원의 수학 강사로 일했다. 국민연금(1988년 도입)이 생겼을 때 몇 년 보험료를 납부했지만 예상 연금 수령액이 많지 않아 최소 가입기간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일시금으로 받았다. 현재 기초연금은 부부 감액 제도(20% 삭감)에 따라 26만7000원가량을 받는다. 부인은 별도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받고 김씨는 다문화가정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쳐주는 일을 해 돈을 번다. 소액 개인연금 등을 포함해 부부의 평균소득은 월 350만원가량. 그 가운데 기초연금은 53만원 남짓이다. 김씨의 말이다. “우리 두 사람이 한 달에 200만원 안쪽으로 쓰는 것 같습니다. 제가 굉장히 아끼는 스타일인데, 교통비도 한 달 2만원 이내로 쓰고 외식은 아예 안 합니다. 그 대신에 남은 돈을 모아서 1년에 한 번씩 여행을 갑니다. 만족하면서 살죠. 기초연금은 정기적으로 정부가 보장해주는 확실한 소득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최소한 ‘먹는 것’에 대해선 보장해주는 거죠. 기초연금이 없었으면 뭔가 더 많이 (소비를) 줄여야 하는데, 고맙게 생각합니다.” 김창남씨가 지난 7월 16일 서울 광진구 대한은퇴자협회 사무실에서 기초연금이 삶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역 복지관 등에서 체조 강사로 일하고 있는 나경희씨(69)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합쳐 월 50만원가량 받는다. 남편도 비슷한 수준으로 두 연금을 받고 있다는 나씨는 “특별히 아픈 데 없으면 두 사람이 별도로 크게 지출할 게 없으니까 의식주는 충분히 해결하고, (연금·강사 소득 등으로) 그 안에서 잘 살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같이 사는 자녀로부터 약간의 생활비를 받고, 또 자신은 연로한 어머니에게 얼마의 용돈을 드리면서. 이런 나씨에게 기초연금은 국민연금과 더불어서 “열심히 살아온 스스로한테도 감사한 마음이 들게 한다”고 했다. “우리 정말 열심히 살았잖아요. 쌀 한 톨 못 버리고. 많이는 못 넣었지만 지금 국민연금도 나오고, 기초연금이 고정적으로 나온다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나경희씨가 지난 7월 16일 서울 광진구 대한은퇴자협회 사무실에서 기초연금이 삶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황정옥씨(75)는 40대 후반에 큰 교통사고를 당해 약 5년간 병상 생활을 했다. “출장 뷔페 일을 하다가 길게 아프고 나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이 많았어요. 의식주 해결하기 바빴고, 아이들 둘 가르치느라고 노후 준비를 못 하고 이 나이가 돼버렸어요.” 황씨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더해 한 달 60만원 정도 받는다. 딸이 매달 용돈을 보내주는데 혹시라도 딸이 용돈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기초연금을 받으니 기본적인 삶은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황정옥씨가 지난 7월 17일 서울 광진구 대한은퇴자협회 사무실에서 기초연금이 삶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도 되니, 크게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게 세 사람의 공통된 바람이었다. 현재 소득으로 생활하는 것에 큰 무리는 없지만 의료비는 걱정이기 때문이다. 황씨는 교통사고 이후로 민간 보험을 들기 어려웠고 김씨는 암보험, 나씨는 실손보험이 있지만 보장성이 약한 상품이라고 한다. “건강이 허락하면 죽을 때까지 일을 하고 싶습니다.” 세 사람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이들의 한 달 소득을 보면, 공적연금과 비슷한 수준의 소득이 일자리에서 나왔다. 황씨는 투병 중에 동화구연, 실버 체육, 노인 심리 미술 등 각종 자격증을 따뒀다고 한다. 지금은 색종이 접기 강사로 일한다. 그는 “내가 80을 앞두고 있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플 때 낫기만 하면 봉사하며 살겠다”는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씨는 “자녀들한테 돈 달라는 말을 안 하려고 남편이랑 열심히 살고 있다”며 “또 제가 일을 하면서 저를 보고 어르신들이 기뻐하면 자부심도 느끼고 운동하고 공부하면 건강도 지키는 일이기도 하고, 할 수 있는 날까지 하려고 한다”고 했다. 김씨는 “나이 들면 안 좋은 생각도 드는데, 일하면 그런 생각을 잊어버릴 수 있고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도움이 된다”며 “끝까지 일하고 싶다”고 했다. 기초연금이 노후생활에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우울감 감소 등의 효과를 내고 있다는 연구 결과(노인 다차원적 빈곤이 우울에 미치는 영향에서 이전소득의 조절적 역할에 관한 탐색적 연구·송치호·2023)가 있다. 기초연금과 일자리가 은퇴 후 삶에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정서적 지원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초연금, 노인빈곤율 낮췄지만 기초연금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난 10년 사이에 가장 빠르게 양적으로 성장한 복지제도이고, 노인빈곤 해소라는 효과를 확연하게 달성한 제도”(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집행위원장)라고 평가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의 세대 간 이전이라는 역할 측면에선 미가입자들은 사각지대에 있었다. 그걸 메울 기초연금이 도입된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가 크다”라고 했다.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도 “(외환위기인) 1997년 이후 가구 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인의 삶이라는 게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어 갔는데 기초연금은 그 상황을 개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노인빈곤율(65세 이상 인구 중 소득이 중위소득 50% 미만인 비율)은 기초연금 도입 전 2013년 46.3%에서 2021년 37.6%로 감소했다. 다만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평균 18%·2018년)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노인세대에서도 나이가 많을수록 빈곤율이 높게 나타난다. 2021년 기준 76세 이상 연령층은 2명 중 1명(51.4%)이 빈곤층에 속한다. ‘최극빈층’에 속하는 기초생활보장제 수급자들은 기초연금을 ‘사실상’ 받지 못한다.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기초연금 모두 신청해야만 받을 수 있는데, 둘 모두 신청한 A씨의 경우를 가정해보자. 올해 생계급여 1인가구 최대급여액은 71만3102원으로, A씨가 소득이 ‘0’원이면 이 급여를 모두 받는다. 소득이 20만원이 있으면 51만3102원을 생계급여로 받는다. A씨 통장에 기초연금이 33만4810원이 들어오면 이는 A씨의 소득으로 간주돼 생계급여액에서 깎인다. 기초연금 통장에 급여가 들어오면 그만큼 생계급여 통장에서 나가는 식이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 용산구에서 홀로 생활하는 이호산씨(78·가명)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60대가 되면서 자연스레 일거리가 줄어 약 10년 전부터 생계급여를 받고 있다. 올해는 생계급여로 매월 60만원 정도를 받는다. ‘한 달 생활비로 충분한지’에 대한 질문에 이씨는 이렇게 답했다. “아, 부족하죠. 그런데 없는 사람들은 절약하면서 사니까 살아지죠. 저는 술·담배도 안 합니다. 조금 돈 모이면 친구들 만날 때 차 한 잔씩 하는 거고…. 겨우 먹고만 사는 거죠. 그런데 먹고만 사는 건 돼지 취급하는 거 아닙니까.” 이씨는 생계급여를 받는다고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는 것은 정책이 불합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끼면 살아”지지만 ‘먹는 것’만 해결됐다고 삶의 질이 충분히 보장되긴 어렵기 때문이다. 기초연금 기준연금액이 올라도 생계급여 인상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복지부 산하 ‘2023년 기초연금 적정성 평가위원회’는 지난해 9월 작성한 최종보고서에서 “보충성 원칙을 따르는 기초생활보장제에서 기초연금을 차감하는 현행 방식은 바람직하지만, 최빈층 노인이 다른 70% 이하 노인이 받는 급여에서 제외되는 현상에 대한 지적이 계속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개선책으로는 장애인 연금처럼 별도의 수당으로 생계급여에 기초연금 일정액을 더해 지급하거나, 소득인정액 산정 시 근로소득 30%를 공제해주는 것처럼 기초연금도 30%로 공제하는 방안(노년유니온·2023년 11월 기초연금 40만원 약속한 대통령 회견에 대한 성명) 등의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개혁 요구받는 기초연금 2023년 기초연금 적정성 평가위는 “현행 기초연금 기준연금액은 소비지출액 대비 26.4%, 국민연금 A값(전체 가입자 평균 소득) 대비 11.3% 등 다른 지표와의 상대적 관계를 고려할 때 적정한 수준으로 판단”했다. 다만 해외 국가들과 비교해 기초연금액 수준이 낮고 저소득 노인의 소득 수준 개선이 불충분하다고 봤다. 윤석열 정부는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했다. 기초연금 기준연금액은 물가인상률에 연동돼 매년 오르기 때문에 정부 공약 이행 여부와 상관없이 기초연금은 몇 년 후 40만원에 가까워질 것으로 보인다. “노후 준비를 못 해 놓았더니 여행 한 번 가기가 어렵습니다. 기초연금이 오른다고 하면 문화생활 한 번씩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황정옥씨) “물가 오르는 거, 특히 식비 생각하면 지금보다 연금액이 더 오르면 좋긴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자녀세대가 얼마나 (세금을) 부담될까 걱정도 되고요, 부모세대한테 배려를 조금 하면 좋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요. 서로에게 좋은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면 좋겠어요.”(나경희씨) “올려주면 좋아하는 여행을 한 번 더 갈 수 있으려나요. 그런데 저는 인상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미래소득을 끌어다 쓰는 게 미안한 일인 것 같아서요. 주면 고맙지만 인상 안 해줘도 하등 섭섭하지 않습니다.”(김창남씨) 노인빈곤은 여전한데 노인인구 증가에 따른 재정부담이 커진다. 기준연금액을 올리는 것만으론 해법이 될 수 없다. ‘누구에게 얼마의 기초연금액을 주어야 하는지’ 다시 짜는 작업이 필요하다. 연금 구조개혁을 한다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논의가 우선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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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다리] 노인만 잘못하는 운전은 없다(2024. 07. 10 06:00)
- 2024. 07. 10 06:00 사회
- 역주행 차량이 인도를 덮쳐 9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 안전 펜스가 부서진 자리에 지난 7월 2일 한 시민이 국화꽃을 놓고 있다. 문재원 기자 영화 <인턴>에서 스타트업 인턴으로 들어간 70세 노인 벤은 차량 운전을 계기로 30대 젊은 CEO 줄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술을 마시거나 허둥대는 이전 운전기사와 달리 벤은 안정적으로 운전하며 길도 잘 안다. 영화 <오토라는 남자>의 은퇴 노인 오토도 발군의 운전 솜씨를 가진 것으로 그려진다. 정작 노인이 운전과 관련해 주목받은 영화는 주인공이 교통사고를 내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다. 데이지는 장을 보러 가다가 기어 미숙으로 사고를 내고, 걱정한 아들은 흑인 운전사를 고용한다. 다른 인종인 두 사람이 친구가 되는 과정이 영화의 핵심이지만, 이를 본 미래학자들은 고령 운전의 위험성에 초점을 맞춰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신드롬’이란 말을 만들었다. 지난 7월 1일 60대 운전자가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역주행해 벌인 사고로 ‘노령 운전자’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9명이나 사망한 데다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라 충격이 컸다. 회사가 근처에 있다 보니 내게도 ‘무슨 일 있는 것 아니지’ 등 지인들의 연락이 여럿 왔다. 윤석열 대통령, 오세훈 서울시장 등 정치권도 애도를 전하며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그중 하나가 노령 운전자 ‘면허 갱신’ 제도 변화다. 노령층의 경우 운전면허 갱신을 좀더 어렵게 해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자는 취지다. 지난해 65세 이상 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는 대략 4만 건, 전체 교통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 수준으로 점점 느는 추세라 하니 우려에 근거가 없지는 않다. 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는 2050년엔 고령 인구가 2배로 늘어난다는 전망을 언급하며 운전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대부분 언론도 ‘조건부 면허제’를 꺼내 드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것만이 적절한 대책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웃 나라 일본은 최근 차량 내 안전장치 부착을 의무화한다고 공표했다. 장애물 인근(1~1.5m)에선 액셀을 강하게 밟아도 부딪치지 않도록 시속 8㎞ 미만으로 속도를 억제하는 장치다. 이처럼 연령 구분 없이 오조작 자체에 집중한 방안도 가능하다. 게다가 이번 사고에선 가드레일이 제 기능을 못 한 채 판판이 부서졌다지 않나. 더 튼튼한 안전 방안이 마련돼 있었다면 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른다. 노령 운전자 증가는 고령화의 불가피한 결과이며, 택시나 버스처럼 운전을 생업으로 삼는 노인도 많다. 대중교통 환경이 열악한 지방 노인들에게 면허 박탈은 일상을 힘들게 만드는 요인일 수 있다. 20대 운전자의 교통사고 비율은 한때 다른 연령대 대비 무려 2.6배였는데, 그래도 ‘운전 미숙은 면허를 뺏자’는 등 얘긴 나오지 않았다. 운전 능력은 어느 연령대건 검증받아야 하며, 노인이나 장애인 등은 인지 기능 등 의학적 진단까지 함께 받도록 하는 종합 대책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뉴질랜드나 일본이 이렇게 한다. 노인 포함 시각, 인지 약자를 고려해 역주행 방지 등 안내판 글자 크기를 더 키우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이번 사고 분석이 개인 잘못으로 결론이 난대도 이런 종합 접근 필요성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노령층만 콕 집어 자격 운운하는 통에 안 그래도 일상화된 노인 혐오만 더 커지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 늘 젊을 것 같던 내 아버지·어머니도 벌써 60대 중반, 우리 모두 언젠가 노인이 된다.
- 꼬다리
- [김규항의 교육·시장·인간](2)반공 노인과 반페미 소년(2023. 08. 25 10:55)
- 2023. 08. 25 10:55 사회
- 경향신문 자료사진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한 의견과 차이를 서로 존중함으로써 작동한다. 모든 성원이 그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령 한국의 노년 남성 중엔 노동운동이라면 다짜고짜 ‘빨갱이’라 반응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노동운동에는 여러 갈래와 현실적 상황들이 있다. 그에 따라 누구든 제 나름의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을 싸잡아 혐오하는 일은 노동자의 권리와 인권의 부정이며, 무지다. 비슷한 상황이 이 사회의 가장 젊은 세대에서 펼쳐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청년 남성의 페미니즘 혐오 현상이다. 몇 년 사이 급속히 확산해 초등학생이 주 독자인 ‘고래가 그랬어’와 나에게도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부모가 많아졌다. 나 또한 처음 이 현상을 알았을 때 일었던 거부감이 이젠 깊은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청년 남성의 페미니즘 혐오 이유로 이른바 ‘한남 무시’가 등장한다. 한국 청년 남성이 느끼기에 한국 청년 여성들이 자신들을 무시하며, 그 중심에 페미니즘이 있다는 것이다. 설사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 해도, 한남은 모든 한국 청년 남성을 가리키지 않는다. 상위 20을 뺀 나머지를 의미한다. 하위라는 말에 붙는 숫자는 50을 넘을 수 없으므로, ‘하위 80’은 성립할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20 대 80의 사회에서 하위 80은 명백하게 실재한다. 청년 남성과 청년 여성의 갈등은 양극화와 노동위기라는 사회경제적 모순 위에 놓여 있는 셈이다. 반공주의자 노인의 굴절된 의식은 사회 탓도 크다. 그들은 전쟁과 반공주의 독재하에서 성장하고 인생의 절반을 보냈다. 그들은 대부분 노동자였지만 기업이 잘되고 국가가 잘되는 게 내가 잘되는 길이며, 노동자의 권리 따위는 그 모든 걸 파괴하려는 빨갱이들의 선동이라 배웠다. 그들은 제 사회적 정체성의 부정을 증빙으로 사회의 일원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노인을 유용성을 잃은 폐상품으로 대하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그들은 더 강퍅한 반공주의자가 되는 것 외엔 제 자존을 지킬 방법을 찾지 못한다. 그들은 그러나 적어도 민주화 이후 수십 년 동안 그들이 의식을 수정할 사회적 기회를 가진 것도 사실이다. 청년 남성, 더욱이 소년 남성은 이들과 경우가 다르다. 그들은 제 의식에 자극을 받고 새로운 의식을 만들어 갈 권리,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그들이 결국 현실에서 일어나는 불안과 좌절을 반페미로, 고작 동 세대 여성에 대한 적대로 보상받으려 한다면, 그건 사회의 책임이며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반페미 아들 일로 고민하는 이를 만나면 이렇게 말을 꺼낸다. “페미니즘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만 알아도 달라질 텐데요.” 페미니즘 혐오의 배경에도 무지가 있다. 해방을 좇는 모든 사회운동이 그러하듯, 페미니즘은 역사적으로 가부장제, 자본주의, 계급, 소수자 정체성 같은 문제와 결부 지어 다양한 갈래를 형성했으며 지금 이 순간도 역동한다. 하지만 반페미 청년-소년 남성에게 페미니즘의 노선과 사상이란 ‘성 분리주의’ 하나뿐이다. 이 외엔 본 일도 배운 일도 없다. 이 무지가 막막한 현실과 결합해 페미니즘 혐오로, ‘남자가 차별받는 세상’ 같은 얼토당토않은 하소연으로 표출될 때, 옹호할 순 없다. 사회와 기성세대는 그러나 그들의 상황과 처지를 좀 더 깊이 고민해야 할 책임이 있다. 다시 ‘교양 교육’을 이야기할 때다.
- 김규항의 교육·시장·인간
- 키오스크 급증···장애인·노인은 가슴만 칩니다(2023. 04. 14 14:20)
- 2023. 04. 14 14:20 사회
- ㆍ85%가 장애인 팔 안 닿고 영어 많아 고령층에 ‘장벽’ 지체장애인 A씨는 최근 같은 장애를 가진 지인과 함께 시내 식당을 찾았다가 불편을 겪었다. 해당 식당이 무인정보단말기(키오스크)로만 주문을 받는 식당이었기 때문이다. 휠체어에서는 키오스크를 조작하는 터치스크린이 너무 높아 닿지 않았다. 음식을 나르던 한 직원에게 “주문을 받아달라”고 요청했지만, “키오스크에서만 주문이 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인과 다시 다른 식당을 찾아가기도 마땅찮던 A씨는 재차 사정을 설명하며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해 겨우 주문을 할 수 있었다. A씨는 “똑같이 비용을 지불하면서 사정사정해야 하는 현실에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며 “키오스크가 늘면서 점점 장애인이 갈 수 있는 식당이나 커피전문점도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시각장애인이 직원의 도움을 받아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122㎝. 장애인이 휠체어에 앉아 힘껏 팔을 뻗었을 때 닿을 수 있는 최대 높이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의 평균 키 정도인 이 높이가 키오스크 앞에 선 장애인들에겐 거대한 장벽처럼 다가온다. 한국소비자원의 2022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키오스크의 85%가 122㎝보다 높게 설치돼 지체장애인의 접근이 아예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체장애인뿐만이 아니다. 시각장애인, 지적 장애인들이 자력으로 이용 가능한 키오스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65세 이상 고령층 10명 중 6명 이상은 키오스크 조작 자체에 어려움을 느낀다. 코로나19 확산 시기를 거치면서 전국적으로 키오스크가 급속하게 보급되는 추세다. 위생과 안전, 효율과 편리를 추구하는 동안 키오스크는 장애인과 고령층 등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또 다른 상징이 됐다. 정부는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며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대부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요식업계 키오스크 3년새 16배 ‘급증’ 지난 4월 5일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공공·민간부문에 설치된 키오스크 수(추정)는 2019년 18만9951대에서 지난해 45만4741대로 2.4배가량 늘었다. 여기에는 2019년에는 키오스크 대상에 포함되지 않던 주유소, 빨래방, 무인상점 등의 키오스크(약 17만7000대)가 포함된 이유가 크지만 주목할 곳은 요식업계다. 장애 여부나 연령대와 관계없이 일상에서 키오스크 이용이 가장 빈번한 부문이기 때문이다. 요식업계의 키오스크는 같은 기간 5479대에서 8만7341대로 3년새 16배가량 늘었다. 말 그대로 ‘폭증’이다. 요식업계에서 키오스크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대면 서비스’ 제공 차원에서 최초 주목받았다. 패스트푸드점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먼저 키오스크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후 대여(렌털)방식을 이용하면 “비용 절감 효과가 높다”는 입소문이 자영업자 사이에서 돌면서 소규모 골목상권까지 키오스크가 진출했다. 한 요식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최저임금 기준으로 하면 직원 1명을 고용할 경우 월 230만원가량 인건비로 지출을 해야 한다”며 “반면 키오스크는 3년 렌털 조건으로 월 10만~15만원이면 도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건비 절감 효과가 월등하다”고 말했다. 키오스크 확산에는 1인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국내 특성도 작용한다. 통계청의 2020년 경제활동인구 조사를 보면 전체 553만1000명의 자영업자 중 1인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75%(415만9000명)에 달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식당을 혼자 운영하는 B씨도 지난해 말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그는 “주문을 받아 조리하는 동시에 손님을 응대하거나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며 “키오스크를 설치하니 바쁠 때 주문이나 계산을 위해 사람을 따로 고용하지 않아도 되고, 조리에만 집중할 수 있어 일의 효율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물가와 인건비 상승 등으로 원가 절감 수요가 계속 늘고 있기 때문에 키오스크 보급 확산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추세라고 요식업계는 전망한다. ‘키오스크’라는 또 다른 배제와 차별 정부가 ‘장애인·고령자 등의 정보 접근 및 이용 편의 증진을 위한 고시’를 통해 분류한 키오스크를 보면 무인발권, 결제, 주문, 체크인 등 모두 16종에 달한다. 여기에 각 분류별로 업종 특성에 따라 키오스크가 많게는 수십여 종으로 다시 나뉜다. 이미 일상생활에서 워낙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키오스크가 쓰이고 있는 탓에 일일이 숫자를 헤아리기도 어렵다. 키오스크의 확산 추세에 비해 장애인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속도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2022년 ‘키오스크 이용 실태조사’를 벌이면서 요식업(패스트푸드점), 영화관, 주차장 등에 설치된 키오스크 20대를 대상으로 약자층에 대한 정보 접근성 보장 여부를 심층조사했다. 심층조사 결과를 보면 장애인 대상 정보 접근성은 ‘낙제점’에 가까웠다. 정부가 지난해 마련한 ‘키오스크 KS 표준’에서는 키오스크가 제공하는 모든 시청각 정보를 다른 감각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대체 콘텐츠로 제공해야 하지만 조사대상 20대 모두 기준에 미달했다. 이 때문에 시각장애인의 경우 20대 모두 사용이 아예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20대 중 15대는 일단 이용이 가능했지만 필요 시 ‘호출’을 통해 음성안내를 들어야 하는 5대의 경우 이용이 어려운 것으로 조사됐다. 지체장애인의 경우 조사대상 20대 중 17대가 휠체어를 탄 채 이용 가능한 최대 높이인 ‘122㎝’를 초과한 높이에 있어 대부분 이용이 불가능했다. 이들 키오스크는 고령층이 이용하기에도 불편한 점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층이 어려움을 겪는 ‘이용방법 안내’의 경우 20대 중 12대는 이용방법 안내가 아예 없었고, 2대는 안내가 부실했다. KS 표준에서는 키오스크 글자 크기로 ‘높이 12㎜ 이상’을 규정했지만 20대 중 14대는 이보다 글자 크기가 작았다. 20대 중 7대는 화면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70% 이상으로 너무 컸고, ‘품절’, ‘호출’ 등의 용어를 영어로 표시해 고령층에 혼선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영문이 섞인 키오스크만으로 주문을 받는 모 대형 프렌차이즈점을 가리켜 ‘노(NO)인존’이라고 빗댄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9년 기준 국내 등록장애인 수는 261만8000명으로 전체인구의 5.1%를 차지했다. 통계청 추계에서 국내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2025년에 20.3%, 2050년에 39.8%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 사회복지단체 관계자는 “예컨대 장애인과 고령층도 이용이 가능했던 식당이 키오스크 주문으로 바뀌면서 이용이 어렵게 됐다면 그 자체로 과거에는 없던 배제와 차별이 생긴 것”이라며 “지하철의 경우 장애인 이동권 보장 문제로 십수 년째 갈등과 논란을 반복 중인데, 키오스크 문제 역시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의 한 영화관을 찾은 고령층 관람객이 키오스크를 이용해 관람권을 발급받고 있다. / 김기범 기자 “정부 대책 한계”, 인프라·인식 개선해야 정부도 키오스크 확산에 따른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2019년부터 과기부 등에 전담반을 꾸려 제도 및 키오스크 기기 개선 등에 나섰다. 지난해 7월에는 지능정보사회에서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국가기관의 역할 등을 명시한 ‘지능정보화 기본법’이 시행됐다. 앞선 작년 5월에는 기술 표준 등을 만들어 장애인·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키오스크를 공공기관이 우선 구매토록 하는 고시를 제정했다. 보건복지부도 ‘장애인차별 금지법’ 등 소관법률과 관련 시행령을 활용해 대책을 마련해 나가는 중이다. 소병훈 의원은 최근 고령층을 배려한 키오스크 보급을 명시한 노인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노인 등의 키오스크 사용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키오스크 기술 표준의 경우 기기의 구조나 기능 등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표준이 마련됐지만, 현재 시급한 건 소프트웨어 표준을 마련하는 일이다. 키오스크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소프트웨어도 제각각이라 키오스크가 바뀔 때마다 사용법을 그때그때 즉석에서 다시 익혀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가뜩이나 키오스크 사용이 어려운 장애인·노인 등에겐 ‘이중고’다. 이성훈 과기부 디지털포용정책팀장은 “지난해부터 키오스크의 사용환경(UI)과 사용경험(UX) 표준화를 목표로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라며 “가급적 연내 소프트웨어 표준을 마련해 민간부문 등에 공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올 1월에는 장애인차별법 시행령 개정으로 공공·민간부문에서 키오스크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성을 보장하도록 의무화했다. 키오스크 설치 시 휠체어 접근성 보장, 점자블록 설치, 자막·점자 자료·그림 등 대체 콘텐츠 제공 등이 가능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도입하도록 한 내용이 골자다. 하지만 시행령의 적용 시기는 공공기관이 내년 1월부터다. 민간부문의 경우 사업장 규모 등에 따라 2025년까지 단계적 적용을 하도록 했다. 시행령 시행 이전 설치된 키오스크에는 기존 렌털 기간 등을 고려해 3년간 제도 적용을 유예했다. 50㎡ 이하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보조 인력(점주 포함)이 상주할 경우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의무가 사실상 면제됐다. 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 추진연대 활동가는 “50㎡이면 장애인·노인 등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이용하는 음식점·편의시설 등이 대부분 해당돼 시행령이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며 “이미 상위법인 장애인차별법에서 포괄적으로 ‘차별금지’를 규정하고 있는데, 하위법인 시행령에서 이를 유예하고 일부는 면제하는 조항을 둔 건 법체계의 모순”이라고 말했다. 제도와 기술의 개선과 함께 반드시 필요한 것이 사회적 인식 개선이다. 소비자원의 실태조사에서 ‘키오스크 이용 중 중단 사유’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60대 이상 연령대는 “뒷사람 눈치”(71.2%)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홍경순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은 “장애인·노인 등이 키오스크를 사용할 때는 좀더 기다려주고 배려하도록 사회인식이 전반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며 “키오스크 제조업체나 자영업자들도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등을 ‘비용 지출’보다는 잠재적인 고객 확보를 위한 투자로 인식해 법규제와 상관없이 도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이기환의 Hi-story](77)50대에 ‘노인 대접’ 요구···무리수 둔 숙종·영조(2023. 03. 31 11:22)
- 2023. 03. 31 11:22 문화/과학
- ‘기로(耆老)’라는 말이 있습니다. ‘늙을 기(耆)’에 ‘늙을 노(老)’이므로 노인을 가리키는 말인데요. 1719년(숙종 45) 4월 18일 숙종이 59세의 나이로 기로소에 입소한 뒤 그 기념으로 기로신 10명을 초청해 잔치를 벌인 모습을 그린 중 ‘경현당석연도’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예기> ‘곡례 상’은 “60세는 기(耆)이며, 남에게 일을 시켜도 되는 나이(六十耆指使)이고, 70세는 노(老)이며, 자기 일을 넘겨주고 은퇴하는 나이(七十曰老而傳)”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즉 ‘기로’는 예순 살(60)이 넘어가면 노인 대접을 받고, 일흔 살(70)이 되면 정년퇴직한다는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70세가 되더라도 물러나지 않는 법이 있긴 있었습니다. 임금에게서 궤장(?杖·의자와 지팡이)을 하사받는 것인데요(<예기> ‘곡례·상’). 예컨대, 신라 문무왕은 664년 70세가 돼 은퇴를 결심한 김유신(595~673)에게 궤장을 하사했습니다(<삼국사기> ‘열전·김유신’조). 은퇴하지 말고 임금이 내려준 지팡이를 짚고 출근해 의자에 앉아 근무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삼달존’의 조건 그건 예외였습니다. <증보문헌비고> ‘직관·치사’조는 “70세가 되면 은퇴하고, 비록 70세가 되지 않더라도 사직을 청하면 대부분 허락한다”고 설명했습니다. 70세 이상의 은퇴 관리 중 정2품 이상의 문관 중 ‘기로소’로 입소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원로원이라 할까요. 물론 자격요건을 채우더라도 다 기로소 회원이 될 순 없었습니다. 우선 과거급제를 통하지 않고 관리가 되면 아무리 학문이 높고 명망이 두터워도 원칙적으로 입소할 수 없었습니다. 무관 출신도 역시 자격을 얻지 못했답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조건이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덕(德)’이었습니다. <맹자> ‘공손추·하’는 “세상에서 존귀하게 여기는 세 가지가 벼슬(작·爵)과 나이(치·齒)와 덕(德)”이라 했습니다. 이것을 ‘삼달존(三達尊·존귀한 조건 세 가지)’이라 하는데요. ‘정2품 문관(爵)’으로서 ‘70세 이상(齒)’이 된 이라도 ‘덕(德)’을 겸비하지 못한 이는 기로회원이 될 수 없었습니다. 노인 대접 받겠다고 아우성친 임금 이렇게 ‘삼달존’의 원로대신만이 입소할 수 있는 기로소에 들어가겠다고 아우성친 임금이 두 분 있었습니다. 숙종(1661~1720·재위 1674~1720)과 그 아들인 영조(1694~1776·재위 1724~1776)입니다. 더욱이 이 두 분은 70세는커녕 60세도 안 된 59세(숙종), 심지어 51세(영조)에 기로소 입소를 강행했습니다. 숙종은 초대한 기로신 10명에게 다섯 잔씩 술을 마시도록 했다. 기로신들은 임금이 따라주는 술을 사양할 수 없어 만취했다.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두 분은 임금 신분으로서 들어갈 필요가 없는 기로소 입소가 뭐가 그리 급했을까요. 1719년(숙종 45) 4월 18일이었습니다. 59세에 기로소에 입소한 숙종은 기로신 10명을 초청하여 기념잔치를 벌였습니다. 당시 숙종은 눈병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았는데요. 그래도 “병든 몸이 궁전에 오르니… 여러 관리 모여 있고…. 이 연회는 본시 높이려는 뜻에서 나왔으니 가득한 술잔에 자주 손이 간들 어떠리”라는 어제시를 지었습니다. 숙종은 기로신들과 하루종일 어울리며 5차례에 걸쳐 다섯 잔씩 술을 마시도록 했습니다. 그날의 연회 내용을 글과 그림으로 제작한 것이 <기사계첩>(보물)입니다. 59세에 “노인 대접 받고 싶다” 숙종의 기로소 입소를 처음 거론한 이는 여성군 이집(1668~1731·인조의 고손자)이었습니다. 이집은 1719년(숙종 45) 1월 10일 “어차피 올 연말이면 (춘추 60을 앞둔) 성상의 기로소 입소를 준비할 것인데,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견을 냅니다. 이때 대리청정 중이었던 세자(경종 1688~1724·재위 1720~1724)가 반색했습니다. “태조대왕께서도 60세에 기로소에 들어가셨단다. 성상(숙종)도 59세가 되셨으니 자식된 마음에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 하지만 법과 절차에 따라 추진해야 했습니다. 곧 난제가 생겼습니다. “‘태조가 60세에 기로소에 입소했다’는 내용을 <실록> 등 공식 기록에서 찾을 수 없다”는 보고가 올라온 겁니다. 조정은 지춘추 민진후(1659~1720) 등 춘추관 관리 2명을 실록이 보관된 강화 정족산 사고(史庫)에 급파했습니다. 민진후는 그러나 “두 사람이 <태조실 록> 첫권부터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출처를 확인할 수 없어 헛걸음했다”(<숙종실 록> 1719년 1월 22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면서 “근거와 출처가 없으니 차라리 날씨가 따뜻해지기를 기다려 양전(숙종과 중전)을 위한 잔칫상을 베푸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한마디로 관례도, 출처도 없는 군왕의 기로소 입소 행사 강행에 신중론을 개진한 겁니다. 이 말에 충격을 먹은 것일까요, 삐친 것일까요. 숙종은 “그래? 기록이 없다니 할 수 없지. 논의를 중지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이 무렵 <실록>을 읽으면 잘 짜인 각본 같습니다. 임금이 “야, 증거 없다잖아. 안 할래”라고 떼를 쓰자, 종친들이 상소문 릴레이를 펼치고…. 세자가 맞장구치고…. 급기야 연잉군 이금(영조) 등이 종신(宗臣·벼슬하는 종친)을 거느리고 나섭니다. “실록에 없다고 갑자기 논의를 중단하다니요. 아니 될 말씀입니다. 국초에는 사관들이 더러 빠뜨리고 기록했을 겁니다.” 기로소에 입소한 숙종은 눈병에 걸린 중에도 어제시를 지어 하사했다.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연잉군 등은 갑자기 “선조 말년에 태조대왕의 고사를 뒤쫓아 기로소에 입소하려고 했다가 미처 시행하지 못했다”는 가짜뉴스까지 동원했습니다. 선조(1552~1608·재위 1567~1608)는 57세에 승하했거든요. 또 <선조실록>에도 “선조가 기로소 입소를 도모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숙종은 “세자와 왕자, 여러 종친이 한목소리로 청하고… 선조의 고사까지 전해진다니 명백한 일이 아니냐”면서 기로소 입소의 명을 내렸습니다. 아무리 눈치 없는 신하들이기로서니 더는 반대할 수 없었습니다. 59세나 51세나 60 바라보는 건 매한가지 이 숙종의 기로소 입소 소동은 새 발의 피였습니다. 숙종의 아들인 영조는 51세에 기로소에 입소했으니까요. 영조는 “기로소에 입소한 뒤 국사를 원량(사도세자 1735~1762)에게 맡기고 한가롭게 지내는 것이 평생의 소원”(<영조실록> 1743년 1월 11일)이라 했습니다. 종신들이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1744년(영조 20) 7월 29일 여은군 이매가 “전하의 춘추가 ‘50을 넘어 60을 바라보게 됐으니’ 기로소 입소 자격을 갖췄다”는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51세=망육(望六·60을 바라보는 나이)’이라 하니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숙종은 59세였고 전하는 51세입니다. 조금 차이는 나지만 ‘육순을 바라보는 것은 매한가지(望六旬則一)’입니다.” 그런 억지춘향이 어디 있습니까. 영조는 그러나 “기로소 입소가 내 소원이기 때문에 겸손 떨지 않겠다”면서 “선조(숙종)의 고사를 따르려면 59세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몸이 아픈 내가) 어찌 될 줄 알겠느냐”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영조실록>은 이 대목에서 “영조의 하교가 누누이 수백 마디에 달했다”고 표현했습니다. 보다 못한 우의정 조현명(1690~1752)이 “성교(聖敎·임금의 지시)가 너무 장황하고 번거롭다”고 일침을 놓았답니다. 영의정 김재로(1682~1759)가 가세했습니다. “태종·세종·세조·중종·선조 같은 분들은 50세를 넘겼지만 모두 기로소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기다렸다가 의논하더라도 늦지 않습니다.”(8월 11일) 59세에 기로소 입소를 추진하려던 계획은 실록 등에서 그 근거와 출처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의 목소리에 부딪혔다. 그러나 종신(벼슬에 나선 종친)들이 상소릴레이를 펼치고 급기야 왕자인 연잉군 이금(훗날 영조)까지 앞장서자 일사천리로 강행됐다.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영조는 평소 “기로소에 입소하는 것이 일생의 소원”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남들은 젊어 보이려고 흰 머리털 뽑는데… 정승들까지 앞장서서 반대하자 영조가 어린아이같이 생떼를 부립니다. “자네들이 나를 아비라고 여긴다면 8년을 기다리라고 했겠느냐. 역시 아들이 아버지 생각하는 마음과 너희 같은 신하들이 임금 생각하는 건 다르구나.”(8월 19일) 이에 조현명이 일침을 놓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늙는 것을 싫어해 족집게로 흰 머리털을 뽑기까지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젊어 보이려 애쓰는데 임금이라는 분은 왜 저렇게 노인 대접을 받으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어느 누가 임금의 고집을 꺾을 수 있겠습니까. 조현명 등은 “정 그러하시다면 특별 교서로 명하시면 불가하지 않겠다”면서 항복했습니다. 마침내 극심한 반대여론을 잠재웠다고 의기양양한 영조 앞에 새까만 관리가 나섰습니다. 사헌부 지평(정5품) 박성원(1697~1767)이었는데요(8월 29일). 박성원은 “성상께서는 100세까지 사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그리 급하시냐”고 꼬집은 거죠. 영조가 펄펄 뛰었습니다. “네가 감히 임금이 기로소에 들어가는 것을 반박하는가.” 영조는 ‘너 때문에 더러워서 임금 노릇 못해 먹겠다’는 듯 “모든 정사는 앞으로 승정원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명까지 내렸습니다. 결국 박성원은 영조의 역린을 건드린 죄로 절도(남해)에 유배됐습니다. 이 지경이니 누가 반대 목소리를 내겠습니까. 영조는 1744년(영조 20) 9월 9일 ‘60을 바라보는 나이(망육·望六)’라면서 기로소에 입소했습니다. 이때 입소를 기념해 제작한 계첩도 있습니다. 바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기사경회첩>입니다. 초조했던 59세, 51세 임금 숙종·영조 부자는 왜 말도 안 되는 생떼를 쓰면서까지 기로소 입소를 ‘소원’했을까요. 갖가지 해석이 나오지만 역시 건강문제를 들 수 있겠네요. 조선 임금들의 평균수명은 48세(한국나이) 정도였는데요. 27명 중 환갑을 넘긴 이는 태조(74), 정종(63), 광해군(67), 숙종(60), 영조(83), 고종(67) 등 6명입니다. 숙종의 경우 병치레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기로소에 입소하기 2년 전인 57세 때는 다리가 저리며 양쪽 눈이 어지럽고 잘 보이지 않는 증세에 시달렸습니다. 세자(경종)에게 대리청정을 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과연 숙종은 기로소에 입소한 직후 급격하게 쇠약해졌습니다. 1720년(숙종 46) 1월 예순을 맞이했는데요. 그 해가 마지막이 됐죠. 6월 8일 승하할 때까지 6개월 이상 병석에 누워 있었습니다. 숙종은 60을 맞이하기도 어려운 몸 상태를 알고 기로소 입소를 강행한 것 같습니다. 영조는 어떨까요. 83세까지 산 영조는 조선 임금 가운데 가장 장수한 왕이죠. 그러나 ‘골골 팔십’이라는 말이 꼭 맞았습니다. 특히 기로소에 입소할 무렵인 50세 때는 담증과 근육통, 어지럼증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영조가 “선조(숙종)의 고사를 따르려면 59세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어찌 될 줄 알겠느냐”고 조바심을 낸 겁니다. 또 영조는 무수리 출신인 숙빈 최씨(1670~1718)의 소생이었습니다. 출생 콤플렉스가 만만치 않았죠. 게다가 이복형(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이 평생 따라다녔습니다. 영조는 기로소에 입소한 부왕 숙종의 모습과 자신을 대비시키면서 왕권의 정통성을 입증하려 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습니까. 두 임금이 59세, 51세에 기로소에 입소하겠다면서 생떼를 썼죠. 만백성의 어버이로서 천근만근 국정의 무게를 짊어졌던 군주였으니 그 정도는 애교로 봐줄까요. 영조가 기로소에 입소한 기념으로 제작한 중 ‘영수각친림도’. 모든 반대를 묵살한 영조는 1744년 9월 9일 평소 소원하던 기로소에 입소했다.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노인 대접 받는 법? 요즘 ‘노인 연령’ 문제가 반드시 풀어야 할 화두로 등장했는데요.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 등에 따라 제도적으로 통용되는 ‘노인 연령 기준’은 만 65세입니다.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그 기준을 늘려야 한다는 논의가 일고 있죠. 2025년이 되면 5명 중 1명이 노인으로 분류된다면서요. 그럼 그런 노인들을 부양해야 할 젊은이들의 부담이 너무 커질 것 같네요. ‘정년 연장’ 문제도 함께 논의돼야 할 것 같고요. 저도 환갑이 넘은 지 몇 년 돼서 만 65세를 향해 가고 있는데요. 곧 ‘노인 대접’을 받게 됩니다.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낀 세대’라는 푸념도 해보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대로라면 우리 자식들 부담이 너무 커지잖습니까. 무엇보다 ‘기로(60~70세)’에 접어든 분들은 옛사람들이 강조한 ‘삼달존’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나이’란 시간이 지나면 쌓이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벼슬(작·爵)’을 얻은 분들이나, 필자 같은 장삼이사라면 ‘덕(德)’이 필요하겠네요. ‘노인 대접’을 제대로 받으려면….
- 이기환의 Hi-story
- [조정목의 함께하는 세상(稅上) 이야기](5)노인정책과 자기 결정권(2023. 03. 24 12:50)
- 2023. 03. 24 12:50 경제
- 내년이면 저는 예순 살, 환갑이 됩니다. 굽이굽이 먼 길을 걸어온 것 같은데 돌아보니 지난 세월이 금방입니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형님이 모시고 계신 노모를 뵈러 부산에 갔습니다. 올해 94세인 어머니는 거동이 힘들어 주로 집에만 계십니다. 지난 열흘 동안은 몸이 편찮으셔서 누워만 계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뵈러 갔다가 하룻밤만 함께 지내고 다시 일상의 삶이 있는 서울로 올라와야 하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스마트폰에 저장해둔 노모의 사진을 보면서 그동안 보살핌만 받고 살아온 생각에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2년 전입니다. 아버지께서 낙상해 병원에 입원하고는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자식들은 바쁘다는 이유로 돌봐드릴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어 부산에서 평판이 좋다는 요양병원을 찾아서 아버지를 모셨습니다. 그 후 형님은 틈만 나면 그곳에 찾아가 정성껏 보살펴 드렸지만, 아버지는 5개월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너무 어이없이 세상을 놓아버린 아버지를 보고 형님은 크게 상심했습니다. 그래서 거동이 불편한 노모는 계속 모시고 계십니다. 부모님을 곁에서 돌보지 못하는 저는 형님 내외분께 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초고령사회와 노인정책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 고령(65세 이상) 인구는 급속하게 증가해 왔습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1970년에 고령인구수는 91만명이었고, 전체인구의 3.1%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2000년에는 339만명, 7.2%로 증가해 고령화사회로 진입했고, 그로부터 18년 뒤인 2018년에는 736만명, 14.3%로 늘어 고령사회가 됐습니다. 다시 7년 후인 2025년에는 고령 인구수가 1058만명으로 늘어나고 전체인구의 20.6%가 돼 초고령사회로 들어서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빠른 고령인구의 증가 속도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늙어가는 사회가 우리에게 어떤 대비를 요구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볼 시간적 여유도 별로 없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세대에 성취한 의학·보건의 눈부신 발전은 많은 사람에게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늦추는 큰 축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저의 할아버지는 40대에 며칠을 앓다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60대에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도 80대 초반까지 생존하셔서 할아버지 수명의 두 배를 누리셨습니다. 이런 수명 연장은 그러나 많은 숙제도 함께 던져주었습니다. 통계청 ‘2020년 생명표’에 따르면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가 평균 17년 정도 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 기간만큼 건강하지 못한 말년을 보낸다는 것이지요. 결국 어르신들에겐 늘어난 노년을 어떻게 잘 보내고 삶을 마감해야 할 것인가라는 어려운 문제가, 우리에게는 그 기간만큼 더 오래 어르신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과제가 생겼습니다. 고령인구 모두가 여생을 건강하게 원하는 대로 살다가 가족의 품에서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최첨단 의료·보건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건강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고, 가족구조도 핵가족으로 급속히 변하면서 이런 소망스러운 삶과 죽음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우리가 대면하게 된 노년의 삶과 고독한 죽음은 개인이나 가족만이 아니라 국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숙제가 된 것입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현대국가는 고령인구 증가를 중대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적극 대응 중입니다. 북유럽 국가를 포함한 선진 각국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노인정책을 추진해 왔습니다. 이들보다 선진경제로의 진입은 늦고, 고령사회화 속도는 훨씬 빨라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최근 들어 우리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인문제에 대처해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노인대책을 수립해오던 정부는 2021년부터 제4차 5개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추진하면서 기존의 국가주도 인구정책에서 사람중심 복지정책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했습니다. ‘삶의 질 제고’를 기본으로 하면서 ‘모든 세대가 함께 행복한 지속가능한 사회’를 추구하는 정책을 집행한다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올바른 방향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발표된 노인정책의 세부내용을 살펴보니 건강하고 능동적인 고령사회 구축이라는 목표와 함께 5가지 주요 정책이 균형 있게 잘 제시돼 있었습니다. 정책수립과 집행계획 마련을 위해 많이 고민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정책 자료 중에서 제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본 것은 ‘노후를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 자기의 삶을 결정해 나갈 기본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늙어가면서 능력은 줄어들고 삶의 폭도 좁아지는데 외부의 간섭으로 자율권마저 침해된다면 자존감을 잃고 상실감이 더 커질 것입니다. 보호라는 명목 아래 어르신들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게 된다면 그들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은 보장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선의로 추진한 정부 정책이 어르신들 삶의 자율권을 제한하고 예상 못 한 굴욕감까지 주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노후를 보낼 수 있게 지원한다는 문구에 특별히 눈이 간 이유입니다. 노년의 삶과 자율권 모든 것은 포기하면 끝이 납니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가신 후 왜 그렇게 빨리 돌아가셨는지 의문입니다. 그곳의 관리통제, 수월한 간호를 위한 약물치료 등이 스스로 결정하며 살아오던 일상을 앗아가자 무력해지면서 삶을 포기하신 것은 아닐까 추측만 해봅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당신 뜻대로 살아가고 계십니다. 거동은 어려워도 별다른 간섭없이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약 없이 자신이 많은 것을 결정하고 행동하며 그것이 존중받기에 어머니에겐 여전히 삶의 동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와의 동행이 더 오래 계속될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다행히 화요일 아침에 어머니께서 기력을 회복하셨다는 형님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노년 삶의 질은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커지는 무력감을 잘 이겨내며 살아갈 때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차 5개년 계획에 포함된 경제적 지원, 사회연대 구축, 시스템 강화와 같은 노인정책이 어르신들의 자기 결정권을 잘 반영하면서 추진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 조정목의 함께하는 세상(稅上) 이야기
- 최병천 “불평등의 최하층은 노인” vs 윤형중 “지나친 단순화는 금물”(2022. 10. 21 11:08)
- 2022. 10. 21 11:08 사회
- ㆍ지상논쟁(1) - 최병천, 윤형중의 「좋은 불평등」 비판에 대한 반론 윤형중 정책연구가는 지난주 주간경향에 ‘OECD 1위’ 수준인 한국의 노인빈곤을 주제로 글을 썼다 . 윤형중의 글에는, 최근에 필자가 펴낸 <좋은 불평등>을 비판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다른 일로 기자와 통화하다가 ‘반론 기고’ 얘기가 나왔다. 좋은 생각이다 싶었다. 비판이라도 오랜 시간 공들여 집필한 저서에 대한 관심이라 우선 반가웠고, 생산적 토론을 위해서도 ‘지상(紙上)대담’ 형식의 논쟁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흔쾌히 수락했다. 반론을 쓰려고 윤형중의 글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었다. 후회가 밀려들었다. ‘비판의 논거’가 다소 모호해 어떻게 반론을 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10월 19일 광주 북구 우산근린공원에서 노인들이 ‘마음나눔 도시락’을 받은 뒤 돌아가고 있다. / 광주 북구 제공 <좋은 불평등>은 ‘불평등에 관한 잘못된 통념’에 도전하기 위해 집필한 책이다. 기존의 통념에 도전하기 위해 110개의 데이터를 수록했다. 책의 전반부는 한국 불평등 30년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다룬다. 책의 부제가 ‘글로벌 자본주의 변동으로 보는 한국 불평등 30년’이다. 한국의 경제불평등은 특히 ‘중국발’ 불평등 성격이 강했음을 논증한다. 책의 후반부는 소득주도성장론과 진보경제학 비판을 담았다. 2018년 도입한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이 실제로는 어떤 부작용을 일으켰는지 살폈다. ‘저임금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통해 불평등을 줄이려던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이 현실에선 고용쇼크와 불평등 확대로 귀결됐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정책 실패의 원인 중 하나로는 우리 사회 ‘하층’의 진짜 실체가 저임금 노동자가 아니라 ‘노인’이라는 점을 들었다. 역대 정부에서 ‘하층 노인’을 겨냥한 정책은 실제로 빈곤축소 효과를 냈다. 동시에 불평등 축소로 이어졌다. 반면 ‘저임금 노동자’를 겨냥한 정책은 (정책의 의도와 무관하게) 불평등이 축소될 수도, 거꾸로 확대될 수도 있다. 필자로선 윤형중의 글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같은 글 안에서, 상충하는 내용이 공존하고 있어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①한국의 노인빈곤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윤형중 주장]. ②“노인빈곤이 불평등 문제의 핵심”이라는 최병천의 진단은 틀렸다[최병천 비판]. ③왜냐하면 한국의 노인 소득 통계는 ‘자산’ 부분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최병천 비판의 논거]. ④통계의 한계가 있지만, 노인빈곤의 심각성은 엄연한 사실이다[윤형중 주장]. ①~④의 관계는 여러 번에 걸쳐 상충한다. 윤형중은 ③을 근거로, ②에서 최병천의 주장이 틀렸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본인 자신은 ①을 주장하고 있다. ③을 근거로 최병천의 주장이 틀린 것이라면, ①의 윤형중 주장 역시 틀린 것이 돼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OECD 중에서 압도적 1위라는 것 역시 최병천이 활용했던 ‘통계청 데이터’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또한 ④가 맞다면 최병천의 주장이 틀렸다고 공격하는 ②의 주장 역시 앞뒤가 안 맞게 된다. 이외에도 혼돈하게 하는 내용이 더 있지만,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불평등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층’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층’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규명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에서 불평등의 하단, 하층의 핵심은 ‘노인들’이다. 저임금 노동자가 아니다. 특히 노인 중에서도, 75세 이상의 후기 노인들이 가장 중요하다. 이분들이 불평등의 ‘진짜 하층’이다. ㆍ지상논쟁(2) - 윤형중, 최병천의 반론에 대한 재반론 필자는 지난주 주간경향에 노인빈곤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글을 기고하는 과정에서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의 주장을 비판한 적이 있다. “노인빈곤의 문제는 분명 중요하지만 얼마나 빈곤한지는 파악하기 어려운 뚜렷한 한계”가 있고, “특히 한국의 불평등을 한 세대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노인빈곤 통계가 자산을 고려하지 않고, 한국의 행정자료에서 임대소득, 양도소득 등도 제대로 집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최병천은 ‘당신도 노인 빈곤이 심각하다고 하면서 왜 같은 얘기를 한 내가 틀렸다 하느냐’고 반박한다. 그의 주장과 반박 모두 ‘지나친 단순화에서 비롯된 오류’에 빠져 있다. 최병천은 이번 책에서 의미 있는 분석을 여럿 했지만, 오류로 인해 잘못된 진단들 또한 상당수 내놓고 있다. 그 오류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등호(=)’와 ‘부분집합(⊃,⊂)’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여러 요인을 엄밀히 따지지 않고, 특정 요인의 기여를 과대평가했다. 하나씩 살펴보자. 최병천의 주장대로 ‘한국의 하층=노인’일까. 당연히 노인의 상당수가 하층이지만, 아동과 청년, 중장년층에도 하층은 있다. 게다가 통계만으로 빈곤을 따지기엔 한계가 분명하다. 두 가구의 예를 들어보겠다. 아동 한명과 부부가 있는 3인 가구의 근로소득이 월 250만원이면 이들의 연 소득은 2022년 기준 중위소득인 월 419만원의 59.7% 수준으로 빈곤선(중위소득의 50%)보다 높다. 노인 부부 2인 가구의 월 소득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합쳐 150만원이면 2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 월 326만원의 46.0%로 빈곤가구에 속한다(노인빈곤율은 2020년에 40.4%). 그런데 이런 상황이 추가된다고 가정해보자. 3인 가구는 한 달에 월세로 100만원을 내고, 노인 2인 가구는 자신의 집에 거주하고 있어 주거비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노인가구와 3인 가구 중 어느 쪽의 형편이 더 어려울까. 실제로 이런 사례가 적지 않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0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만 65세 이상이 가구주인 노인가구의 자가점유율은 75.4%로 청년가구(16.1%)의 5배가량 된다. 같은 자료에서 ‘임대료 및 대출금 상환 부담 정도’에 대한 조사를 보면 노인가구는 43.1%가 ‘해당없음’이라고 답하지만, 같은 답변을 한 비율이 ‘일반가구’는 18.6%, 청년가구는 1.1%, 신혼부부가구는 4.6%다. 하나의 상황을 더 가정해 3인 가구가 임대료를 다주택자인 2인 노인가구에 지급한다면 임대소득은 대부분 과세되지도 공식적인 행정통계에서 소득으로 집계되지도 않는다. 이처럼 하층의 상당수는 노인이지만, 노인빈곤율이 노인의 빈곤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층엔 노인이 아닌 다수의 사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임금 노동자 대신 노인 지원에 집중하자는 최병천의 대안은 적절한 방안이 아니다. 최병천은 한국 불평등이 중국의 경제부흥에서 비롯됐다는 타당한 진단을 하면서 기존 불평등에 대한 원인 진단이 모두 틀렸다고 단언한다. 각 원인의 기여율을 엄밀히 따지지 않은 오류는 차치하더라도, 각 요인의 특징을 간과한 채 설명한다. 불평등을 야기하는 원인 가운데 통제하기 어려운 요인, 통제가 부적절한 요인, 통제해야 하는 요인 등을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 중국의 경제부흥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비정규직, 파견직과 플랫폼 중계 등 불안정 노동의 증가, 부동산가격 폭등에서 비롯된 자산 불평등은 영향이 크지 않다고 부정할 게 아니라 통제해야 하는 요인이다.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비중이 큰 점도 정책에서 고려해야 한다.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시각으론 정확한 진단도, 정합성 있는 정책 생산도 기대하기 어렵다.
-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11)‘OECD 1위’ 노인빈곤, 해결책 있다(2022. 10. 14 14:52)
- 2022. 10. 14 14:52 경제
-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소득 통계를 비교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간에는 부동의 세계 1위다. 불과 6년 전인 2016년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6.5%였다. 나이가 65세 이상인 분들 가운데 2명 중 1명은 빈곤 상태란 의미다. 노인빈곤율을 측정하는 기반 통계가 2017년부터 가계동향조사에서 모수가 더 큰 가계금융복지조사로 바뀌었고, 그 영향 탓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그 이후 노인빈곤율은 점차 나아졌다. 2017년 42.3%에서 2020년 38.9%까지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기초연금 지급액 인상, 노인일자리 확대 등의 효과로 보인다. 그래도 OECD 1위다. 노인 10명 중 4명이 여전히 빈곤하다. 노년알바노조(준)가 지난 9월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기초연금 대신 노인수당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노인빈곤의 문제가 방치되고 있진 않다. 한국의 많은 구조적인 문제들이 정책적 개입 없이, 혹은 대안조차 모색되지 않은 채로 방치되지만, 노인빈곤은 다르다. 선거 때마다 노인빈곤을 다루는 정책이 주요 공약으로 등장하고, 실제로 이행도 된다. 개선 더디고 예산 폭증하는 노인빈곤 대책 노인빈곤은 정치적 역동이 있는 의제이자, 필자가 자주 쓰는 표현으론 ‘공론화의 계기’가 자주 마련된다. 그럼에도 두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정치적 역동의 크기에 비해 문제가 개선되는 수준이 미약하다. 기초연금은 2008년 1월 도입한 기초노령연금에서 비롯됐다. 2012년 대선에서 월 최대 20만원으로 증액, 2017년 대선에선 월 30만원으로 인상한다는 공약이 나왔다. 이 공약들은 대상과 범위 등에선 일부 미이행됐지만, 지급 수준에 대한 약속은 대체로 지켜졌다. 2022년 대선에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월 최대 40만원으로의 증액을 약속했다. 한국의 정책 역사를 통틀어 이 정도로 대상과 금액이 급속도로 확대된 사례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지만, 노인빈곤율의 개선은 더디다. 실제로 빈곤한 사람들에겐 기초연금이 적고, 빈곤하지 않은 다수도 기초연금을 지급받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문제는 고령화의 속도로 볼 때 기초연금 소요 예산의 증가 수준을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운데다 이를 제어할 만한 정치적 계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노인 유권자층이 사회 전반을 장악해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하는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의 조짐마저 보인다. 핵심 원인은 급증하는 고령 유권자의 숫자다. 기초노령연금을 처음 도입한 2008년 65세 이상 인구수는 499만명이었다. 이땐 0~14세 인구가 848만명으로 고령인구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고령층이 2017년에 707만명으로 0~14세 인구 672만명을 넘어섰고, 베이비부머(1955~1963)가 본격 합류하기 시작한 2020년 815만명에서 한해에 40만명 이상씩 늘어 2022년엔 902만명이 됐다. 장래인구 추계를 보면 2030년엔 1306만명, 2040년엔 1725만명이 돼 전체인구의 34.4%를 차지할 전망이다. 현재의 수준으로도 기초연금 예산은 폭증할 예정이고, 대상과 지급 금액이 확대되면 더 크게 늘어난다. 그런데도 승자독식의 선거 구조에서 이 거대한 유권자층의 이해에 반하는 정책을 제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렇게 꼬일 대로 꼬인 노인빈곤의 문제가 최근 다시 공론화의 계기를 맞고 있다. 필자가 최근 주목하는 흐름은 두가지다. 하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기초연금을 월 40만원으로 증액하고,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핵심 의제로 내걸었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기초연금 증액과 대상 확대를 7대 민생입법 과제 중 하나로 제시했다. 윤석열 정부는 기존 지급 대상(노인의 70%)을 유지한 채 월 최대 40만원으로 증액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민주당이 기초연금 의제를 본격 제기하면 정부로서도 고령 유권자층의 표심을 고려해 나름의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다른 하나의 흐름은 <좋은 불평등>의 저자인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이 제기하는 불평등론이다. 한국의 불평등이 중국의 경제 부흥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으로 통념과는 다른 불평등 원인론을 제기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그는 한국 불평등의 핵심이 노인빈곤이고, 대안으로 75세 이상에게 한시적으로 20만~40만원의 보충연금과 노인에게 최저임금을 감액 적용해 일할 기회를 늘리자고 제안한다. 이 두 흐름을 논평하면서 필자의 진단과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최병천의 잘못된 진단 우선 최병천 소장의 불평등론에서 여러 의미 있는 진단과 정책 방향이 있긴 하지만, 그가 단언하는 ‘노인빈곤이 불평등 문제의 핵심’이란 진단은 틀렸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한국의 빈곤=미취업자=65세 이상 노인=초등학교 이하 졸업자=1930~1940년대 출생한 여성=불평등의 하층”이라며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좌파적이어서 실패한 것이 아니”고, “진짜 하층을 위한 정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한국사회의 진짜 하층은 노동조합 조합원 중에 있지 않”고 “대한노인회 회원 중에 압도적으로 많이 몰려 있다”고 주장한다. 임금노동자 가운데 빈곤층이 적으니 무임금자인 노인을 지원하자는 게 그가 제안하는 불평등 해법이다. 일단 그의 진단부터 틀렸다. 노인빈곤의 문제는 분명 중요하지만, 얼마나 빈곤한지는 파악하기 어려운 뚜렷한 한계가 있다. 특히 한국의 불평등을 한 세대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시각이다. 책에서 제시한 중국이란 외생변수, 무임금자에 대한 고려 못지않게 고용형태의 변화, 영세 자영업과 소상공인의 비중, 부동산 가격 폭등에서 비롯된 자산 불평등을 종합적으로 조망해야 한국의 불평등을 진단할 수 있다. 대신 최 소장은 “신자유주의 반대, 비정규직 철폐” 등의 몇몇 구호가 불평등을 오인하게 했다며 이를 ‘적폐의 경제학’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마치 타인의 잘못을 입증했다고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격이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이 집필한 의 표지 / 메디치미디어 노인빈곤율은 자산을 고려하지 않고 소득만을 기준으로 산정되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국토교통부가 하는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고령 가구의 자가점유율(보유한 주택에서 거주하는 비율)은 2020년 기준 75.4%로 다른 가구 형태에 비해 유독 높다. 이런 한계로 자산을 반영한 노인빈곤 수준을 측정하려는 시도는 보건사회연구원(최현수 외·2016), 국민연금연구원(안서연 외·2018) 등 여러차례 있었다. 자산을 반영한 통계의 미비로 각각의 시도가 일정한 한계가 있긴 하지만, 자산을 소득으로 환산하면 노인빈곤율이 상당히 낮아지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기존의 소득 통계에서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특히 주택임대소득은 대거 미신고되고 있고, 부동산과 주식 양도소득 등은 대부분 비과세되면서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우리의 조세체계상 비과세되는 소득 항목들은 아예 집계되지 않는다. 그나마 2020년부터 비과세되던 2000만원 이하의 임대소득을 과세하기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신고되지 않고 있다.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2020년에 신고된 2000만원 이하 임대소득자는 25만명에 과세 금액이 1001억원에 불과하고, 이는 전국의 800만 전월세 가구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주식 양도소득세도 종목당 10억원 이상을 보유하지 않는 대다수 투자자에겐 부과되지 않는다. 이들의 소득 역시 집계되지 않는다. 이처럼 소득 통계에 여러 한계가 있고, 이들 소득의 상당수는 자산이 적지 않은 고령층과 관련이 깊다. 중부담-중복지의 기획이 필요하다 노인빈곤율의 통계에 한계가 있다고 해서 노인빈곤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역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노인자살률만 봐도 노인빈곤의 심각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빈곤 노인은 기초연금 수급자의 일부이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극빈 노인은 오히려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노인빈곤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기초연금을 개편한다면 현재의 지급 대상을 줄이고, 형편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해야 바람직하다. 문제는 이런 개편이 가능하느냐다. 미리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하고 사적이전소득을 얻는지, 신고조차 되지 않는 임대소득이 얼마나 되는지, 비과세되는 각종 양도소득이 얼마나 있는지, 유동화할 수 있는 자산이 얼마나 있는지 등을 면밀하게 파악하는 건 쉽지 않고,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드는 일이다. 이미 받던 사람들에게 기초연금 지급을 중단하는 건 더 어렵다. 최대 유권자층을 화나게 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선 자해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민주당이 제시한 대로 기초연금 증액과 대상 확대를 하되 몇가지 대안의 병행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임대소득 과세 정상화다. 모든 임대소득을 신고하도록 하고, 전세 임대 역시 보증금을 소득환산해 과세하는 방안이다. 현재 임대소득엔 필요경비와 기본공제가 과도해 2000만원 소득에 고작 14만원을 과세한다. 이런 공제를 대폭 줄여야 한다. 두 번째는 10억원 이상의 증여를 한 이들에겐 기초연금을 제한하는 것이다. 자산을 사적으로 증여하고, 소득을 공적으로 보전받는 행위는 이익을 사유화하고 비용을 사회화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자산을 증여하기보다는 노후 소득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주택연금을 신청한 이들에겐 세제 혜택이나 기초연금 수급권 등의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 세 번째 방안이다. 주택연금의 활성화는 부동산 매물의 지속적 공급에도 도움이 된다. 네 번째는 극빈 노인에게 부가급여를 지급하는 방안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도 기초연금을 지급하고, 차상위계층에게 부가급여를 지급하면 빈곤 문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다섯 번째는 정치가 고령층의 이해에만 편향되지 않도록 기초연금의 증액과 대상 확대를 아동수당, 청년 지원 등과 연계하는 것이다. 일각에선 세금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자충수이고, 정치적인 실패가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세금을 건드리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다. 세상의 온갖 문제가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특정 정치세력이 성공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에겐 중부담-중복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기초연금의 개편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
- [취재 후]노인파산이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게(2022. 10. 07 14:00)
- 2022. 10. 07 14:00 사회
- 일본 NHK가 다큐멘터리 <노인표류사회-‘노후파산’의 현실>을 방송한 것이 2014년 9월입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된 일본은 노인빈곤 문제도 한국보다 빨리 도드라졌습니다. NHK 취재팀은 고령층이 연금만으로 빠듯하게 생활을 꾸려가는 상태를 ‘노후파산’으로 정의했습니다. 주간경향은 제도로서의 ‘파산’에 주목해 고령층의 빚 문제로 취재 영역을 좁혔습니다. 마침 60세 이상 고령자의 파산이 증가하고 있다는 법원행정처의 통계도 있었습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당초 예상보다 고령층의 채무조정을 돕는 기관·단체가 많았습니다. 파산신청은 준비해야 할 서류가 많습니다. 변호사를 찾게 되면 200만~300만원이 들어갑니다. 소액 빚에 신음하는 저소득 고령층에는 답이 되기 어렵습니다. 지자체 금융복지상담센터 등은 이들에게 무료로 채무조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많은 곳에 연락을 취했음에도 고령층 파산신청자의 사례를 접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파산은 수십년을 꾸려온 한 개인의 경제, 가정 경제의 종착역입니다. 오랜 시간 고통을 받았기에 다시 회고하는 일이 달가울 리 없습니다. ‘빚진 죄인’이라는 말처럼 파산신청자들은 심리적으로도 위축돼 있었습니다. 공격적인 채권추심이 가능했던 과거에 빚을 진 이들일수록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가정은 파괴됐고, 사회와는 단절된 삶을 사는 이들이 적잖았습니다. 그랬기에 파산신청도 최후의 순간까지 미뤘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령층 파산신청자의 다수는 IMF 때 진 빚을 20여년간 청산하지 못한 이들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자활 가능성이 제로예요.” 오랫동안 노인 빈곤층의 채무조정을 도운 시민단체 활동가의 말이었기에 더 귀에 들어왔습니다. 노년의 파산은 채권추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편일 뿐, 자활이나 재기와는 거리가 멉니다. 노동 능력이 떨어진 만큼 자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파산신청자 중 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많다는 점도 걸림돌입니다. 일할 수 있어도 수급자격 박탈로 주거지원 등이 끊길 것을 우려해 일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코로나19 기간 빚더미에 오른 자영업자들, 청년, 중장년이 적지 않습니다. 노인파산이 이들의 미래가 되지 않도록 재기의 기회를 폭넓게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 늦은 결정에 다음 기회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 취재 후
- [건강설계]조심하세요, 3대 노인성 안질환(2022. 07. 08 14:23)
- 2022. 07. 08 14:23 건강
- 1과 2를 합한 숫자 3은 ‘생명과 결실’, ‘완전성’을 상징한다.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나 일상생활의 통념, 심지어 우리의 무의식에서 숫자 3은 친숙하다. 기독교의 경우 삼위일체를 기본적인 교의로 삼고 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한 동방박사도 3명이다. 힌두신화에는 브라마, 비슈누, 시바의 3대 주신(主神)이 있고 그리스신화에서도 제우스와 포세이돈, 하데스 등 3명의 신이 하늘, 바다, 지하세계를 나눠 다스린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에서는 더하다. 단군신화의 환인, 환웅, 단군 세 인물이 한반도 역사를 열었다. 조선시대에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삼정승을 두었다. 일을 시작했으면 삼세번까지 해야 하고, 참을 인(忍) 자도 세 번 써야 한다.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라는 고사성어인 삼인성호(三人成虎)도 있다. 단판 승부는 너무 가혹하고 3판 2선승제가 더 공정한 것 같다. 노인성 안질환도 3가지가 특히 유명하다. 바로 백내장, 녹내장, 황반변성이다. 첫째로 백내장이다. 눈으로 들어온 빛은 수정체를 통과하면서 굴절돼 망막에 상을 맺게 된다. 백내장 때문에 수정체가 혼탁해져 빛을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하게 되면,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다. 적절한 처치 시기를 놓쳐 백내장이 너무 많이 진행되면 수정체가 딱딱해진다. 이 경우 일반적인 초음파 유화술로 제거하기가 어렵다. 수술 방법이 복잡해지고 치료 기간이 길어져 시력 회복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박영순 안과전문의둘째로 녹내장이다. 여러 이유로 시신경이 손상되는 질환인 녹내장으로 시력이 손상되면 터널 속에 있는 것처럼 바깥쪽부터 시야가 점점 좁아진다. 초기 자각 증상이 없어 흔히 ‘소리 없는 시력 도둑’이라 불린다. 녹내장인지도 모른 채 계속 방치한 결과 시력 결손이 일어나고 심하면 시력을 잃는 사례도 많다. 가족 중에 녹내장 환자가 있거나 고혈압, 당뇨, 비만이 있는 분들은 꼭 1년에 1~2번은 안과에서 정밀 검진을 받는 게 좋다. 마지막으로 황반변성이다. 황반변성은 망막의 중심부에 있는 시신경 조직인 황반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시력이 감소하고, 심하면 실명에 이르는 질환이다. 주요 증상은 시야 한가운데가 검게 보이거나 비어 보이는 것, 계단이나 바둑판같이 직선으로 돼 있는 사물이 휘거나 찌그러져 보이는 것 등이다.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황반변성도 노안과 비슷해 가볍게 지나치기 쉽다. 오랜 기간 방치해 이미 망막 신경이 많이 손상된 경우에는 뒤늦게 치료를 시작하더라도 시력 호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3대 노인성 안질환은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시점에 치료하는 것이 소중한 눈을 지키는 최선이다. 40대 이후부터는 빠르냐 느리냐의 문제일 뿐 누구나 노화로 인해 조금씩 시력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1년에 한두 번씩 정기적으로 안과 검진을 받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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