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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나온다 하믄 자다가도 벌떡…올 농사 어쨔쓰까”(2023. 02. 24 11:16)
2023. 02. 24 11:16 사회
댐의 만수위선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나무와 흙이 구분해준다. 지난 2월 16일 전남 화순군 동복면의 동복댐은 만수위선에서 한참 아래에 물을 담고 있었다. 눈대중으로 20m는 돼 보인다. 지금은 취수구 높이를 수위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데, 쓰지 않는 2차 댐 당시 취수구는 물 밖으로 10m 가까이 올라와 있었다. 1985년 준공된 동복댐은 1971년 1차, 1981년 2차 댐으로 단계적으로 커졌다. 지난 2월 20일 전남 화순군 백아면 와천리의 제 2망향정에서 바라본 동복댐 상류의 모습. 과거 수몰된 와천마을의 다리가 보인다. / 주영재 기자 물가에 계단이 보였다. “저수율이 22%까지 내려가니까 1~2차 댐 때 쓰던 시설이 저렇게 드러난 거죠.” 2월 16일 만난 최하열 동복댐 관리소장이 말했다. 지난해 극심한 가뭄으로 세계 곳곳에서 강과 저수지 바닥에 있던 유적이 드러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동복댐에선 옛 관리소의 흔적이 나타났다. “갈수록 가뭄과 폭염이 심해지잖아요. 우리나라도 벌써 그런 나라에 포함된 것 같아요. 2020년엔 비가 그렇게 많이 내려 엄청난 피해를 주더니, 또 이렇게 가물어 피해를 주고. 일기를 예측할 수 없으니 댐을 관리하는 입장에선 굉장히 부담이 됩니다.” 상수도댐은 지자체 관할이라 동복댐도 광주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운영한다. 이서천과 남천, 동복천, 길성천, 내복천 등 주변 5개 하천이 동복댐에 흘러든다. 동복댐 상류를 찾았다. 창랑적벽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물이 저 멀리 후퇴해 가늘게 흐르고 있었다. 댐이 만들어지면서 수몰된 와천마을 실향민들의 그리움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인근의 제2 망향정에서 보는 풍경도 비슷했다. 가뭄이 심할 때만 드러나는 옛 마을의 다리가 보였다. 바닥을 드러낸 동복댐 상류 동복댐은 광주시 수돗물을 60% 정도 공급한다. 나머지는 주암댐에서 감당한다. “동복댐이 하루 25만~30만t 공급했죠. 광주 전체로 보면 하루 50만t 정도 쓰고요.” 평상시의 일이다. 지금은 가뭄으로 거꾸로 주암댐에서 70% 정도를 공급하고, 동복댐은 30% 정도를 공급한다. 주암댐이 동복댐의 4.5배 정도 커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동복댐의 유효저수량은 9200만t이다. 현재 저수량은 2200만t이다. 지금 추세가 계속되면 공급 가능한 일수는 120일 정도다. 아무 조치가 없다면, 6월 초에는 공급이 끊길 수 있다. “그래서 영산강 물을 끌어쓰기 위해 비상관로를 설치하고 있어요. 3월 중 완성될 텐데 하루 5만t 정도 받을 수 있습니다. 동복댐 상류에서 지하수 관정도 뚫으려 계획 중입니다. 지하수가 어느 정도 양인지는 확인해봐야 합니다.” 1월 말까지 38공을 착공했고, 4월 말부터 하루 1만~2만t 확보를 기대하고 있다. 여차하면 ‘사수’까지 끌어다 쓸 계획이다. 사수는 댐이나 저수지의 취수구 아래에 있는 물을 말한다. 동복댐 물을 취수해 지하관로로 12㎞ 떨어진 용연정수장에 보내는데, 취수할 수 있는 물의 한계가 만수위에서 144m 아래다. “그 밑의 물은 이용할 수 없는 물이라고 해서 사수라고 하죠. 비상시에는 사수를 활용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지만 얼마나 투자 대비 효과가 있을지가 문제입니다.” 물을 취수구에 넣으려면 수중펌프를 설치해 물을 끌어올려야 한다. 수중펌프를 설치할 바지선도 있어야 한다. 바닥에 있는 물이라 수질 상태도 점검해야 한다. 사실 이 지역 물 사정은 지난해 초부터 좋지 않았다. 지난해 2월 중순 동복댐의 저수율이 46% 정도였다. 이것도 평년보다 적은 수준이다. 최하열 소장은 10년 이상 동복댐에서 일하고 있다. “예년 같으면 한 60% 정도는 있어야죠. 이렇게 저수율이 낮은 건 댐이 생긴 이후 처음이에요. 봄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비가 오는 장마철을 두고 봐야죠.” 최 소장은 댐에 물이 차려면 장마철에 100㎜ 이상씩 몇 차례는 와야 한다고 말했다. “비가 한 번에 많이 오냐 조금씩 오냐에 따라서 차이가 크죠. 조금씩 오면 땅에 스며드니 유입량 쪽에선 비가 한 번에 많이 오는 게 좋지만 그러면 또 호우 피해가 있을 거잖아요. 그래서 50~100㎜씩 여러 번 와 주는 게 가장 좋습니다.” 지난 2월 17일 찾은 전남 완도군 노화읍의 한 식당 앞에 물탱크 두 개가 놓여 있다. / 주영재 기자 기상청이 지난 1월 18일 발표한 ‘2022년 연 기상가뭄 발생 특성’ 분석 결과를 보면 지난해 남부지방 기상가뭄 발생일수는 227.3일로 1974년 이후 역대 가장 지속됐다. 특히 광주·전남 지역이 281.3일을 기록하며 심각한 상황이다. 이 지역의 최근 1년간 누적강수량은 896.3㎜로 1973년 이후 두 번째로 적은 양이다. 최근 6개월간의 누적강수량은 395.5㎜로, 평년의 66.8% 수준에 불과하다. 남부지방 가뭄은 지난해 봄철 이동성고기압의 영향으로 맑은 날이 많아 강수량이 평년보다 적어지면서 시작됐다. 여름철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동서로 좁게 발달해 강수가 중부지방에만 집중됐다. 태풍도 비껴가면서 충분한 물을 공급받지 못했다. 물이 부족해지면서 지난해 3월부터 완도 등 전남 도서 지역에서는 제한급수를 시작했다. 광주시는 올해 3월 제한급수를 시작하려 했는데 5월로 일단 연기했다. 1월 중순 비가 한 번에 38㎜ 정도 온 덕분이다. 광주 시민이 물 절약에 한마음으로 동참한 것도 큰 역할을 했다. 광주시는 ‘가뭄 극복 생활 속 20% 물 절약’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수돗물을 줄여 사용할 경우 최대 13%의 요금을 감면해주는 인센티브 제도도 시행 중이다. 절수율은 주마다 집계한다. 2월 2주째에 전년 동월 대비 9.3%를 기록했다. 대체로 6~8%를 기록하고 있다. 적극적인 시민 참여의 성과다. 변기 수조에 벽돌 넣기, 계량기 수압 조절 가뭄 취재 동안 광주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변기 수조에 벽돌을 넣어 쓰고 있었다. 벽돌 부피만큼 물을 덜 쓸 수 있어 필수가 됐다. 계량기 밸브를 조절해 수압을 낮추는 것도 습관화됐다. 수압이 낮아지는 만큼 같은 시간 수도꼭지에서 빠져나오는 물의 양은 줄어든다. 광주 남부대학교 시립국제수영장에서 만난 정슬기씨(30·서구)는 “집마다 수압을 조절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는 홍보 포스터가 붙어 있어요. 저도 예전보다 씻는 시간을 줄이고, 설거지할 때도 물통에 다 넣고 세제를 풀어쓰고 있어요. 아무래도 물이 졸졸 나오니 시원하게 못 써 불편하긴 하죠”라고 말했다. 함께 수영장을 찾은 조은비씨(27·광산구)는 “수영장에서 샤워할 때 아이들이 장난을 치면, 어른들이 슬며시 물 이렇게 쓰면 수영할 수 없다고 말을 해주시죠. 서로 알려주는 게 습관이 됐어요”라고 말했다. 2015년 유니버시아드, 2019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열린 이곳 수영장은 4개 풀장에 1만2000t의 물을 담고 있다. 풀장의 물은 먹는 물 기준으로 정화해 계속 사용해서 실제 풀에서 소모하는 양은 미미하다. 물 절약에 동참하려고 수질 정화 시스템의 역세척 횟수를 하루 1회로 줄여 운영 중이다. 김영대 남부대국제수영장 시설팀 과장은 “기존의 복합여과 방식은 필터 1개당 최소 20분에서 40분 정도 역세척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약 150t의 물을 버립니다. 우리 수영장은 가압필터 방식이라 3분 정도면 역세척이 가능합니다. 시간이 줄어든 만큼 물 사용량도 15t으로 줄였습니다”라고 말했다. 수영장은 매월 1만t 이상의 물을 쓴다. 사용량의 80% 이상이 수영 전과 후 샤워를 하면서 쓰는 물이다. 그래서 샤워시설에 절수장치를 달고 수압을 낮췄다. 수영장 복도에는 물 절약을 홍보하는 포스터가 줄지어 붙어 있고, 10분마다 물 절약 안내 방송이 나온다. 이용객도 이런 노력에 호응해 평상시에 비해 한 달 물 사용량을 18.26%(2257t) 줄였다. 광주 시민들은 불편하지만 아직은 견딜 만하다고 했다. 하지만 불안감이 없지 않다. 광주·전남지역에 들어오면 ‘안전 안내 문자’를 받는다. 매일 동복댐의 저수율 수치와 함께 물 절약 방안을 알려준다. 정씨는 “아침마다 문자가 오는데 계속 저수율이 줄어드는 걸 볼 때마다 물을 아껴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가뭄이 심해져 제한급수가 되면 수영장을 이용할 수 없는 건 물론 샤워조차 못 할 수 있으니 걱정이 된다”라고 말했다. 조씨는 “농번기가 오는데 물이 없으면 농사를 못 짓고, 그러면 물가도 폭등하지 않을까, 이런 악순환이 반복될까 싶어 두렵다”라고 덧붙였다. 최하열 광주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 동복댐 관리소장이 2월 16일 댐의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물탱크가 보물 1호가 된 완도 제한급수가 되면, 일상의 불편함이 커진다. 제한급수는 특정 시간에만 수도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상수도 공급을 제한하는 조치를 말한다. 제한급수에 들어가면 아파트 저수조의 물 공급 배관까지 잠근다. 광주시는 동복댐 저수율이 7% 아래로 내려가면 격일제 제한급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한급수가 되면 불이 나도 소화전을 이용할 수 없다. 그래서 광주지역 소방서는 제한급수를 대비해 자연하천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 비상훈련을 최근까지 두 차례 전개했다. 주남주 광주동부소방서 대응총괄팀장은 “소방용수는 상수도를 통해 공급받는데 제한급수가 되면 상수도가 다 차단된다. 대체 소방용수로 확보한 게 광주천과 저수지다. 광주천은 도심을 흘러가는 가장 근거리의 수원이라 가장 적합하다”라고 설명했다. 광주 시민이 받는 안전 안내 문자. 매일 동복댐 수위가 낮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월 23일 현재 동복댐의 저수율은 22% 수준으로 떨어졌다. / 정슬기씨 제공 광주천 물도 여의치 않을 경우 2차 방안으로 민방위 정호를 활용할 계획이다. 민방위 정호란 전시를 대비한 용수로 지하수를 뚫어 뽑아올려야 한다. 주 팀장은 “광주천에서 물을 끌어쓰기 위해 수중펌프를 설치하고, 이를 돌리기 위한 발전기와 호스, 전선릴 등을 보관할 창고도 만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종률 광주시 소방안전본부 방호예방과장은 “가뭄에 대비한 소방용수 확보를 위해 폐수를 처리한 방류수를 소방용수로 공급해줄 수 있도록 광주시 환경공단과도 협약을 맺었다”면서 “제한급수에 들어가도 불을 끄는 데 차질이 없도록 준비를 마쳤다”라고 말했다. 제한급수가 되면 급수가 되는 날 물통에 물을 담아놓고 물이 공급되지 않는 날을 버텨야 한다. 단수기간이 길어질수록 이런 물통의 크기도 커진다. 2월 17일 전남 해남군 땅끝항에서 뱃길로 30분 떨어진 전남 완도 노화도를 찾았다. 이곳은 지난해 3월부터 ‘4일 단수, 2일 급수’ 체제에 들어갔다. 읍내를 내려다보니 커다란 파란색 물통이 집마다 설치돼 있었다. 노화도 전통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겁내 불편해라”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가장 젊은 50대의 김향수씨가 대표로 말했다. “이 일대에 물통 없는 집이 없어요. 두 개, 세 개씩 다 있죠. 굉장히 불편해요. 물이 나온다고 하면 자다가도 나와서 물을 받아야 하고요. 일하다가도 그 시간 맞춰 집에 가야 합니다. 겨울에 물탱크 모터가 얼어 터지면 새로 달아야 하는데 섬이라 물건이 없으니 며칠씩 기다려야 하죠. 비용도 최소 5만원 이상은 줘야 해요. 장사 못 하고 문을 닫는 집도 있어요. 옆에 농협 공중화장실도 물이 안 나오는 날엔 문을 닫아 놓죠.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편해요. 빨래도 모아놨다가 물 나오는 날 해야 하고. 하다못해 지난여름엔 쌀 씻을 물도 부족했어요.” 이 지역은 일상적으로 가뭄에 시달린다. 3년 전엔 8일 단수하고 이틀 물을 줄 때도 있었다. 물이 떨어지면 식당 영업도 중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웬만한 가게들은 옥상이나 노상에 큰 물탱크를 여럿 놓고 쓴다. 노화도 이목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최은미씨(58)는 물탱크가 여기 사는 주민들의 ‘보물 1호’라고 했다. 최씨도 2층 건물 옥상에 5t짜리 물탱크 하나에 3t짜리 물탱크 3개를 설치했다. 도합 14t이다. 처음 설치할 때는 무서워서 잠을 못 잤다고 했다. “옥상이 무너질까봐. 무게가 엄청나니까요. 공간이 없는 집은 땅을 파서 묻기도 하죠.” 그는 물 쓸 때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먼지가 묻어 가게 창문을 청소하고 싶어도 물이 부족한데 우리만 청소할 순 없잖아요. 세차를 하고 싶어도 눈치가 보이죠.” “하나님이 비를 안 뿌려준다는데…” 똑같은 섬이라도 상황은 조금씩 다르다. 산을 끼고 있어 지하수가 나오는 동네는 아직 버틸 만하다. 바닷가 쪽에 면한 마을은 물이 더 부족하다. 노화읍 양하리 마을회관 앞에서 주민 김철씨(58)를 만났다. “어르신, 완도의 가뭄이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어떠신가요”라고 물었다. “아니, 우리 동네는 지하수가 있어요.” 커피 한잔하고 가라고 안으로 안내하면서 이어 말한다. “저 산꼭대기에 동네에서 파놓은 샘이 있어. 거기서 동네에 날마다 물을 주고 있거든.” 양하리에는 100가구 정도 사는데 노인이 대부분이라 물을 많이 안 쓴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복 받은 동네죠. 작년 10월부터 지하수를 썼는데 그 전에 한동안 우리도 8일 단수하고 이틀 물 받았어요.” 김씨는 아직은 괜찮지만 농사가 걱정이라고 했다. 마을 아래로 있는 양하저수지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오리들이 어울려 노닐고 있고, 한쪽에는 낚시꾼도 있다. 물은 차 있었지만, 둑에서 몇m씩 내려간 상태였다. 수위가 매우 낮아 보였다. “물이 저것밖에 안 차 있으니까 농사에는 지장이 많이 있죠. 올해도 그렇고 작년에도 물이 많이 안 찼어요. 저수지 아래쪽에서 논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작년부터 힘들어했죠.” 보길도는 노화도와 다리로 연결돼 있다. 높이 425m의 적자봉 등 섬치고는 꽤 높은 산이 중심에 있어 물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래서 이곳 부황제 물로 노화도 주민 5000명과 보길도 주민 2500명의 용수를 공급한다. 이곳 부황제도 가뭄으로 저수율이 최근 18%까지 떨어졌다. 물이 더해지지 않으면 앞으로 30일 정도 공급량밖에 남아 있지 않다. 현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인근 하천에서 하루 600~900t의 물을 끌어올려 쓰고 있다. 지하수도 찾는 중이다. 지하 저류 시설을 설치해 이곳에서도 물을 모으고 있다. 보길·노화도는 부황제의 저수율이 지난해 3월 20% 아래로 내려가면서 그해 3월 10일부터 9월 7일까지 2일 급수, 4일 단수로 1단계 제한급수 조치를 했다. 이후 9월에 태풍 힌남노가 지나가면서 잠깐 해제했다가 11월부터 2차 제한급수를 했다. 한국수자원공사 완도지사 관계자는 “저수율이 낮아지면 2일 급수, 6일 단수로도 가는데,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려고 군과 협의해서 2일 급수, 4일 단수로 가고 있다”면서 “일부 보길도 주민들은 섬 물이 노화도로 공급되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지만, 완도군 입장에선 모두 같은 군민이니 옮겨서 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보길도에서도 바닷가에 면한 통리와 중리는 물 사정이 더 여의치 않다. 통리에서 만난 김생빈씨(71)는 “불편해도 어쩌겠습니까. 할 수 없죠. 하나님이 비를 안 뿌려준다는데”라고 말했다. 전복 작업 중이던 그는 “보길도에는 예전에 다 지하수가 있었는데 이제 실질적으로 고갈됐어요. 지하수 수질검사를 해도 식수로는 힘들고, 조금 짠물이 나오죠. 상황이 어려워지면 물탱크를 트럭에 싣고 육지의 친척 집에서 물을 받아올 생각도 하고 있어요.” 지난 2월 17~18일 광주·전남지역에 간만에 비가 내렸다. 완도에서 제법 굵게 내려 기대했지만, 광주에는 2㎜ 정도에 그쳤다. 동복댐의 물 사정은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주암댐의 수위는 오히려 17일 92.97m에서 19일 92.60m로 낮아졌다. 남부 가뭄은 늦은 봄이나 초여름은 돼야 해소를 기대해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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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사람]남원 실상사 작은학교의 ‘농사’ 선생님 하수용씨 “지속가능한 세상 위한 작은 밀알”(2018. 12. 03 14:14)
2018. 12. 03 14:14 사회
마을 앞 논밭이 교실인 선생님이 있다. 학생들과 함께하는 농사일이 그의 ‘커리큘럼’이다. 전북 남원 실상사 작은학교의 ‘농사’ 선생님 하수용씨 얘기다. 학교에서 실전 농사수업과 살림살이를 맡은 하씨는 스스로를 ‘머슴’이라고 부른다. 몸으로 농사일을 배운 만큼 아이들 수업도 농지에서 현장수업 중심으로 이뤄진다. 자치살림과 농사작업장, 중학교 농사 등 과목도 학년과 교육과정에 맞춰 나눈다. 수업을 통해 거둔 수확물은 자급자족하는 데 쓴다. “주 4일 내내 농사수업이 있어요. 벼농사뿐만 아니라 감자와 양파, 배추처럼 굵직한 작물은 다 농사를 하죠.” 물론 손대는 작물마다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그 해 날씨에 따라 실패하는 작물도 많다. 비닐하우스처럼 인위적인 농사는 피하는 탓이다. 작황이 좋으면 자급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다 먹어야 한다. 농사 7년차, ‘달인’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지향하는 농사는 뚜렷하다. 지속가능한 생태농사가 하씨의 농사철학이다. 작은학교가 바라보는 방향이기도 하다. 하씨의 터전인 작은학교는 이름처럼 규모가 작은 비인가 대안학교다. 재학생은 모두 합해 30명 정도로 5년제 학교다. 지금은 선생님이지만 한때 하씨도 작은학교의 학생이었다. 1기 졸업생인 그는 졸업 후 서울에 갔다가 방황 끝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마냥 행복했던 기억밖에 없어요. 작은학교에서 보낸 그 시간이 제 삶에 준 영향이 무척 큽니다. 물론 학교로 돌아온 지금도 행복합니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배운 곳은 학교에 돌아오기 전 적을 두었던 변산공동체에서다. 농사뿐만 아니라 변산공동체 식구들이 도와준 덕분에 지금 아내와 결혼식도 올릴 수 있었다. 최대한 환경에 해를 덜 끼치고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는 결심은 변산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더 강하게 굳어졌다. 하씨는 “농사 지으며 몸을 놀리며 살다보니 갖고 있던 생각을 실천하며 산다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며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더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매순간은 새롭지만 항상 기쁘기만 한 건 아니다. 공동체 안에서 화합이 안 되는 모습을 마주할 때가 가장 힘들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는 건 힘을 합쳐 ‘큰일’을 해냈을 때 느끼는 성취감 덕분이다. 모내기와 추수처럼 한 해 농사를 결정하는 일들을 하나로 뭉쳐 해내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큰 의미다. “아이들이 어느샌가 주인의식을 갖고 이곳에서 사는 모습을 볼 때 그때 선생으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4년차 선생님인 하씨의 바람은 하나다. 작은학교가 지금처럼 앞으로도 실험적인 공동체로 남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대안을 사회에 제시할 수 있는 학교가 됐으면 좋겠어요. 아주 큰 변화는 몰라도 작은 힌트를 던질 수 있다면 만족합니다.”
주목! 이 사람
[인생도처유상수]순돌이드론 조순식 대표 “힘든 농사일도 드론 이용하면 쉽고 빨라요”(2017. 09. 25 17:58)
2017. 09. 25 17:58 사회
순돌이는 농업용 드론만을 생산하고 있다. 조순식씨는 “농민들에게 기계를 설명하면 돌아서서 이름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기억하기 좋은 순돌이라는 이름으로 회사와 드론 명칭을 지었다”고 말한다. 드론의 시대가 열렸다. 드론은 최근 몇 년간 각 분야에서 새로운 하늘을 열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에 유통되는 드론의 대부분은 중국산이다. 농업용 드론을 개발·생산하는 순돌이의 조순식 대표는 국내 드론시장을 여는 이들 중 한 사람이다. 드론은 생각보다 단순한 기계라는 것이 조 대표의 주장이다. 드라마 속 전파사 주인 순돌이 아빠 군사목적에서부터 건설과 영상 촬영까지 드론이 미치지 않는 영역은 찾기 힘들다. 그 중에도 농업은 가장 빠르게 그리고 유용하게 드론이 활용될 분야로 꼽힌다. 순돌이는 농업용 드론만을 생산하고 있다. 조순식씨는 “드론 이름이 대체로 영어이거나 기계식 약자인 경우가 많다. 농민들에게 기계를 설명하면 돌아서서 이름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기억하기 좋은 순돌이라는 이름으로 회사와 드론 명칭을 지었다”고 말한다. 중노년층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드라마 속 전파사 주인 순돌이 아빠에서 따온 이름이다. 조 대표는 농업용 드론시장을 낙관한다. “농촌인력의 노령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농사일 중에서 비료 주고 농약 치는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데, 드론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한 번 활용하면 얼마나 편한지 체감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농사철 인력 구하기가 쉽지 않고 외국인 노동자들도 약제 살포작업은 꺼린다고 한다. 제초제와 살충제 등의 독성에 대한 염려가 크기 때문이다. 순돌이 한 대가 살포할 수 있는 약제는 1회에 10ℓ, 약 3000평의 밭을 8분 안에 끝낼 수 있다. 그야말로 기피 1순위의 농사일이 쉽고 빠르게 처리 가능하다는 점이 농업용 드론의 활성화를 가져오고 있다. 농사에 드론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2년 사이의 일이다. 처음에는 가격이 접근의 장벽이었다. 6000만원 이상 되는 고가 장비들이 농업용 드론시장의 문을 열었다. 관심을 가진 농부들도 선뜻 거액을 투자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정부의 융자와 지원으로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지만 가격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았다. 조순식씨는 “중국산이 수입되면서 농업용 드론이 3000만원대로 낮아졌다. 작년 순돌이를 시장에 내면서 그보다 절반으로 가격을 낮췄다. 업체들의 반발이 컸지만 가격을 낮출 여지는 더 있다”고 설명한다. 내년에 선보일 순돌이의 다음 제품은 600만원대가 될 것이라고 귀띔한다. 지금보다 또 절반 이상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농업용 드론시장에는 거품이 많이 끼여 있다고 말한다. “농업용 드론 가격이 비싼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유통부분이다. 유통업체가 가져가는 비용이 너무 크다. 다음에는 교육과 AS 비용을 가격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순돌이는 농민들에게 직접 보급하고 필요한 부품과 기술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했다. 경쟁사인 중국 제품의 실제 가격이 600만원대이고 국내 농업용 드론의 거품이 알려지면서 직접 구매하는 직구현상이 드론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다만 고장 수리와 부품 조달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드론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복잡하고 어렵고 고장 나면 고칠 수 없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농업용 장비는 내구성이 강하고 단순해야 한다. 잘 고장 나서도 안 되고 고장 나도 간단히 고칠 수 있어야 한다. 초창기에 농사용 드론을 도입한 이들은 고장 때문에 창고에 방치한 채 수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입장비다 보니 맞는 부품이 제때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현실을 설명했다. 가장 고장이 잘 나는 부분은 비행제어에 필요한 각종 센서들이다. 약제에 오염되기 쉬워 비행 오류를 일으키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했다. 순돌이는 농촌의 현실에 최대한 맞게 장비를 단순화하고 있어서 고장의 여지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농부들이 직접 조립할 수 있는 드론을 개발하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내년에 600만 원대 제품 출시 예정 현재 상업용 드론시장의 최고 강자는 중국 업체인 DJI이다. 각 분야에서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고, 국내에 출시된 농업용 드론도 DJI 제품이 선도하고 있다. 그들은 저렴한 가격과 잘 만든 소프트웨어를 바탕으로 드론을 실생활에 한 발 가까이 끌어들였다. DJI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국내 드론 기술도 중국에 뒤처지지 않았다고 한다. 특정분야에서는 앞서 있다는 것이 조 대표의 주장이다. 그러나 국내 업체들이 규제와 높은 가격 등으로 제자리걸음을 할 때 DJI는 세계적인 회사가 되고 말았다. “기술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 차이가 날 만한 것도 없다. 다만 시장을 읽고 상품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탁월하다. 드론은 실제 워낙 단순한 기술이어서 더 이상 기술적인 격차는 찾기 힘들다”는 것이 조 대표의 설명이다. 때문에 농업 등의 특수분야는 국내업체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대표의 다음 목표는 저가 드론을 넘어 농부들이 직접 드론을 조립하고 필요에 맞춰 기능을 추가하는 직접제작(DIY)도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그만큼 부품을 단순화시키고 조립 가능한 형태로 체계화하면 약간의 교육으로 농부들이 자기에게 맞는 드론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현재 농기계는 직접 수리하는 분들이 많다. 농업용 드론도 농기계이고 다른 장비에 비해 단순하다. 다만 교육과 사후 지원이 철저해야 하리라고 본다”고 이야기한다. 현재 순돌이가 오작동을 하거나 이상이 있을 때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올리면 동영상으로 수리방법을 찍어 보내는 원격지원도 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맞춤형 드론 조립도 가능하리라고 예상한다. 농사일은 시간과의 전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때를 놓치고 철을 지나치면 한 해 농사를 망쳐버리기 때문이다. 고가의 농기계가 쉽게 수리될 수 없다면 결국 무용지물을 넘어 원수 취급을 받는다. 조 대표는 그 때문에 판매보다 교육과 지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간단히 조치를 취하면 되는 이상이라 전화나 동영상으로 설명해도 되지만 현실은 직접 얼굴을 봐야만 한다. 곳에 따라 정보를 얻고 교류할 이들이 없는 것도 농촌의 실정이다. 조 대표는 번거롭더라도 가서 이야기를 듣고 이상에 대한 대처법을 설명하고 돌아서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돌아올 때 챙겨주는 농작물은 수고에 대한 보답이다. 그는 현재 우리 농업에 변화 시점이 왔다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농업은 방제와 영양제 살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과거에 경운기가 농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듯이 앞으로는 드론이 필수장비가 될 것이다. 노동시간의 단축과 우수한 작업 결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농촌에서 방제작업은 늘 문제가 됐다. 농약중독의 피해도 적지 않게 발생했다. 그 대안으로 항공방제가 이루어졌지만 효과는 아쉬웠다. 드론 이전에는 무인헬기를 이용한 방제와 비료 살포가 주목받았다. 하지만 무인헬기는 크기와 비용, 그리고 조작법의 어려움 때문에 일반화될 수 없었다. 드론은 작은 크기에 원하는 만큼 작업 조절이 가능하며 다양한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경운기에 비견되는 장비라는 것이다. 순돌이는 현재까지 3개 기종이 출시됐다. 영상제작 분야서도 활용 가능성 커 순돌이는 드론 날개를 접이식으로 만들어 일반차량의 트렁크에도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조종기와 제어용 소프트웨어는 상용제품을 순돌이에 맞게 탑재해서 제작단가도 낮췄다. 그는 농업용 드론은 다양한 기능보다 직관적이며 단순한 기능이 농촌 현실에 적합하다고 설명한다. “자동항법기능 등도 있지만 처음 한두 번 신기해서 사용할 뿐 대부분은 수동으로 작동한다. 그게 더 편하고 작업이 빠르기 때문이다. 현실은 고압선이 많고 농작물 거치대 등 장애물이 많아 자동 기능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숙달될수록 눈으로 보고 수동으로 조종하는 사용자가 더 많다고 한다. 다양한 드론들이 하늘을 날면서 정부의 관리·감독에 대한 요구도 높아졌다. 현재 드론을 상업적으로 띄우려면 조종면허가 필요하다. 드론의 무게와 사업 여부에 따라 면허 없이는 비행이 불가능하다. “관리는 필요하다. 농촌 현실에서 농업용으로 쓰기 위해 교육을 받고 시험을 쳐서 면허를 따야 한다면 제대로 활용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현재 25kg 이상의 드론을 날리려면 면허가 필요한데, 순돌이는 24.5kg이다. 면허 없이 날릴 수 있는 기종이고, 자가 사용이라면 별다른 규제 없이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상 제작에서 드론 이용이 일반화되면서 새로운 직종으로 드론 면허를 따는 사람들이 몰렸다. 그러나 수요가 한정적이자 대다수는 방제와 농업용 드론시장에 눈을 돌렸다. 전국에 100여개의 드론을 이용한 농업방제업체가 생겼고, 영농법인들도 앞 다투어 농사용 드론을 도입했다. 조 대표의 계획대로 저가의 농업용 드론들이 생산되어 자가용 드론 도입이 늘어나면 시장은 폭발적으로 늘 수도 있을 것이다. 조 대표는 드론과의 인연이 30년은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드론은 아니지만 한강 위에 떠 있던 광고용 비행선에 매료되어 초등학교 때부터 무선조종 비행기에 빠졌다. 당시만 해도 비행기체와 조종장비가 워낙에 고가여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비용을 충당했다고 한다. 그는 비행선 제조업체와의 인연으로 중국에 가서 수년간 무선조종 비행선 제작과 교육을 담당했다. 그때만 해도 무인비행체에 대한 제작은 우리가 앞서 있던 시절이었다. 비행선의 모양도 음료수병 그대로 만들거나 다양하게 제작하고, 자유로운 비행을 할 수 있어 중국 시장에서 인기가 높았다. 그러다가 조 대표는 드론시장의 확대를 보고 농업용 드론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DJI는 외부의 투자도 받지 않는다. 중국 시장이 너무 커서 개발비와 제조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시장을 키워야 더 나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 농업에 특화된 드론으로 세계 시장에 도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국내 농업용 드론의 높은 가격대를 파괴해야만 시장이 커질 수 있다고 파악한 것이다. 조순식 대표는 중국회사에 한국 진출을 타진했을 때 그들은 국내 시장이 중국의 한 도시만도 못하다며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그는 더 좋은 제품으로 더 싸게 만드는 길밖에 시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설명한다. 씨앗을 뿌려 농사를 지음으로써 인류의 비약적인 진보가 가능했다. 지난 세기 농사는 비료와 농약의 힘을 빌려 생산성을 눈부시게 끌어올렸다. 기계화를 거치면서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기계들이 나왔고, 드론은 그 끝에서 또 다른 농업혁명의 문을 열고 있다. 조순식 대표가 어린 시절 보았던 비행선은 이 시대의 농부를 돕는 드론이 됐다. 그가 만드는 저렴하고 강력한 순돌이가 농업의 새로운 길을 여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도처유상수
[김규항의 동병상련 부모공부]자식 농사 ‘인생의 절기’를 빠트리면 망친다(2015. 03. 31 10:07)
2015. 03. 31 10:07 사회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의 ‘시장 경쟁력’에 몰두하느라 다른 모든 성장의 기회를 생략하거나 박탈한다. 그러나 인생은 어떤 시기라도 그 가치가 차별될 수 없다. 10대든 20대든 40대든 80대든 모든 인생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김광석의 노래 중에 ‘서른 즈음에’가 있다. 그 노래가 나왔을 때 그와 우리는 서른 즈음이었고 그 가사에 깊이 교감했다. 뜨거웠던 20대를 보내고 30대로 접어드는 우리의 회한이 그 노래에 담겨 있었다. 작년엔가 어느 방송 프로그램이 계기가 되어 한참 김광석 노래가 널리 불리는 일이 있었다. ‘서른 즈음에’를 말 그대로 ‘서른 즈음’인 사람이 부르는 걸 우연히 보는데 ‘참 안 어울리는구나’ 싶었다. 편하게 말해서 애늙은이 같았달까. 생각해보면 20여년 전 서른 살과 오늘 한국의 서른 살은 참 많이 다르다. 스무 살이 되면 법적으로는 성인인데 실제로는 여전히 아이일 뿐이다. 경제적으로는 물론 어떤 면에서도 부모에게서 독립된 상태를 확보하기 어렵다. 서른이 되어도 독립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한국은 어느새 ‘성장 불가능’의 사회가 되어버렸다. 이 문제를 여러 면에서 분석하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88만원 세대’라는 말로 대변되는 노동문제로 접근할 수도 있다. 그러나 88만원 세대가 말 그대로 ‘세대문제’로만 이해되면 본질을 벗어나는 것이다. 물론 부모 세대가 청년이던 시절보다 오늘 청년들이 취업이나 고용 안정성에서 좋지 않은 상황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본질이 세대에 있지 않다는 건 간단한 질문으로 드러난다. ‘현재 청년들은 모두 88만원 세대인가?’ 현재 청년들 중에 소수의 88억 세대 혹은 888억 세대가 존재한다. 바로 그 소수를 위해 대다수 청년들이 88만원 세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상황의 본질인 것이다. 88만원 세대 문제의 본질은 세대가 아니라 계급이다. 2014 청년 취업박람회'에 참가한 한 여성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독립된 성인답지 못한 ‘성장 불가능’ 모습 그런 기만적인 맥락들이 잘 살펴지고 드러나질 때 조금씩 해결의 실마리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성장 불가능’의 문제를 단지 노동현실 등 사회 구조적인 맥락으로만 이야기하는 건 허무한 일이다. 사회 구조를 이야기하는 건 그 구조에 끼여 살아가는 주체, 즉 청년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오늘 한국의 스무 살은 옛 스무 살 혹은 다른 나라의 스무 살보다 훨씬 아이이고, 서른 살은 옛 서른 살 혹은 다른 나라의 서른 살보다 훨씬 아이이다. 부모들이 청년일 때 제 부모와 진로문제로 갈등을 벌인 경험이 있거나 주변에서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은데 부모가 반대해서 고민이라는 식으로 기술되는 갈등 말이다. 그런 갈등은 ‘이상’과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인류 역사에서 청년과 기성세대 사이에 늘 이어져온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런 갈등의 소지 자체가 사라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청년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내가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좀 더 깊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 말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로 이어져 있다. 이런 현상은 중간계급 이하의 청년들에게서 만연하고 상층계급 청년들에게서는 적게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되곤 한다. 노동이나 경제 등 생존을 가능하게 하고 지속하는 물리적 뼈대에서 상층계급 청년들이 좀 더 멀쩡한 모습을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주체 자체를 파고들어 살펴보면 잘 프로그램된 교육과 성장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그 모습 이면에서는 다를 바 없는 ‘성장 불가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삶의 국면에서 평탄치 않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여지없이 독립된 성인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요즘 한국은 이혼율이 매우 높은데, 상층계급 청년들일수록 이혼 진행과 처리를 당사자가 아니라 엄마들이 도맡는 경우가 많다. 멀쩡한 모습의 그들이 실은 ‘헬리콥터 맘의 아이’에 불과함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부모도 자신들의 10대 때를 떠올려보라 계급이나 계층을 불문하고 나타나는 ‘성장 불가능’ 현상의 원인은 물론 모든 아이들이 성장할 기회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아이의 ‘시장 경쟁력’에 몰두하느라 다른 모든 성장의 기회를 생략하거나 박탈한다. 한국 부모들은 아이의 인생을 ‘준비기’와 ‘본격기’로 나누어 전략을 짠다. 대학 입시까지 19년 동안은 인생의 준비기이고, 스무 살 이후가 본격적인 인생이다. 준비기 인생은 본격적인 인생을 위한 준비기일 뿐이며, 그 자체로서 고유한 가치는 없다. 그래서 좀 못 놀아도 되며 즐겁지 못해도 되고, 오로지 시장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행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은 어떤 시기라도 그 가치가 차별될 수 없다. 10대든 20대든 40대든 80대든 모든 인생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부모들은 이미 ‘준비기’를 지나버렸기 때문에 준비기가 본격기에 미치는 실리에만 주목하지만, 자신들도 10대 어느 날의 가슴 뛰는 순간과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올려 본다면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또한 인생이란 내일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아이의 준비기 인생을 온갖 걸 희생시키며 최선으로 꾸려놓았는데, 아니 할 말로 아이가 그즈음 떠난다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죄를 짓는 것인가. 신이 아닌 이상, 아이 인생을 준비기와 본격기로 나누는 건 애당초 해선 안 될 일이다. 요즘 아이들은 도시에서 태어나는 비율이 훨씬 높지만 부모들은 고향이 시골인 경우가 많다. 어릴 적 익숙한 모습이겠지만 농사는 절기와 때에 맞추어 꼬박꼬박 하는 일이 참 많다. 그래서 농부는 1년에 절반 이상은 동이 틀 때부터 해질 무렵까지 매일 일한다. 만일 절기와 때에 맞추어 꼬박꼬박 해야 하는 일을 빠트리면 여지없이 농사를 망치게 된다. 봄과 여름에 했어야 할 일은 가을 수확 전에 몰아서 할 방법도 없다. 옛 사람들은 아이를 키우고 교육하는 것을 ‘자식 농사’라고 했다. 그 말엔 인류가 만들어낸 어떤 교육사상보다 깊은 깨달음과 지혜가 들어 있다.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려면 인생의 절기와 때에 맞추어 꼬박꼬박 하고 넘어가야 하는 일들이 있다. 이를테면 13세 이하의 아이는 ‘마음껏 놀아야’ 한다든가. 그런 것들을 생략하거나 빠트리면 자식 농사는 망친다. 무서운 건 논농사농사는 망친 게 눈에 뻔히 보이지만, 자식 농사 망친 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스펙에 준수한 외모를 가진다면 자식 농사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람은 자동차나 냉장고처럼 스펙과 외관으로만 이루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에겐 내면, 즉 인성과 영혼이 있으며, 그거야말로 사람의 실체다. 오늘 한국 교육은 스펙과 외관을 위해 그 실체의 성장을 생략해야 아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미친 교육이 아이의 미래와 인생을 망가트리고 있다. 사람이 제대로 성장을 해야 행복하든 안 하든 할 게 아닌가. 한국 부모가 아이를 보며 진정 불안해 할 일은 아이의 성적도 경쟁력도 아닌, 성장이다.
김규항의 동병상련 부모공부
[세계]다국적기업 ‘자살 씨앗’ 농사의 자연섭리 위협(2013. 12. 24 14:51)
2013. 12. 24 14:51 국제
‘자살 씨앗’은 한 번 수확을 하면 자손을 남기지 않고 죽어버리도록 유전자를 변형시킨 종자이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 이후 인류는 씨앗을 뿌려 수확하고 좋은 것들을 추려 다음 농사에 써왔다. 씨앗을 저장하고 뿌리는 권리는 1만년 넘게 이어왔다. 모든 생명체는 후속 세대를 남긴다는 자연의 섭리에 맞는 당연한 권리가 위협받고 있다. 다국적 종자 기업들이 유전자 변형 기술로 창조한 ‘자살 씨앗’ 때문이다. 브라질 의회는 자살 씨앗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종결자’(Terminator) 기술로도 불리는 ‘유전적인 사용 제한 기술’을 이용해 한 번 수확을 하면 자손을 남기지 않고 죽어버리도록 유전자를 변형시킨 종자이다. 결과적으로 농부들은 매번 작물을 심을 때마다 새로 씨앗을 사야 한다. 자살 씨앗이 도입되면 농부들의 자기 충족적인 작물 재배가 어려워지고 다국적 종자 및 화학기업에의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다국적 종자 화학기업 몬산토는 2012년부터 가뭄에 잘 견디도록 유전자를 변형시킨 옥수수를 시험 재배하고 있다. | 몬산토 홈페이지 전 세계 수백만명에 달하는 소농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1990년대 인도, 중남미, 동남아시아의 소농과 원주민 모임, 시민사회단체들은 국제적인 반대운동을 벌였고, 2000년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자살 씨앗’의 사용 중단에 합의했다. 모라토리엄은 2006년 당사국 총회에서 한 차례 더욱 강한 어조로 개정됐다. 총회는 ‘유전적인 사용 제한 기술’에 관해 “적절한 과학적 자료가 정당화할 때까지 현장 시험과 상업적 사용을 허가해선 안 된다”고 권고했다. 다국적 기업은 이후 유전자 사용 제한 기술을 씨앗의 번식능력을 허용하지만 유전자 변형 형질을 ‘끄는’ 형태로 바꿨다는 논리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들은 종결자 기술로 미국을 비롯해 유전자 변형 농작물을 재배하는 지역에서 나타나는 교배현상을 막을 수 있어 전통 농법을 보호한다고 주장했다. 모라토리엄 종결을 원하는 브라질 토지 소유자들도 종결자 기술이 유전자 변형 형질이 2대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해 안전하며 오직 비식용 작물에만 사용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자살 씨앗을 약품 제조나 유칼립투스 나무처럼 제지 생산에 사용되는 특정 식물의 통제된 재배에 사용할 수 있도록 의회를 압박하고 있다. 농부들 스스로 씨앗 생산 불가능 현재 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자살 씨앗 허용’ 법안은 크리스마스 휴정 전인 20일 표결 처리되지 않는다면 내년 2월 초까지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인 기술감시단체인 ETC는 사법위원회 위원장이 ‘친 종결자 법안’에 반대의사를 밝혔지만 위원회 다수는 이 법에 우호적이라 어느 때든 이를 통과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환경단체들은 브라질 의회가 이 법을 통과시킬 경우 자살 씨앗의 모라토리엄을 뒤집으려는 시도가 세계 각지에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하며, 12월 초 3만5000개의 개인·기관의 서명을 받아 항의서한을 의회에 제출했다. 브라질 환경단체들이 ‘자살 씨앗’ 허용 법안을 논의하는 의회 위원회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 ETC 홈페이지 환경단체 ‘상트로 에콜로지코’의 마리아 주제 구아젤리는 “법안이 통과되면 농부들은 더 이상 그들 스스로 씨앗을 생산할 수 없을 것”이라며 “다국적 종자회사들이 오는 크리스마스에 1만년간 이어져온 농부의 씨앗권에 사망선고를 내린 것에 대해 축하할지 모른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기술감시단체인 ETC는 유전적 사용 제한 기술은 불완전하며 불임 형질이 이웃 식물 종으로 옮겨가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다국적 종자기업들이 종결자 기술의 사용을 허가받으면 즉각 시장에서 일반 씨앗을 철수시키고 2~4배나 수익성이 높은 자살 씨앗만 남길 것이라고 전했다. ETC의 팻 무니 사무총장은 “법안이 통과되면 브라질 정부는 2014년 한국에서 열리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193개국이 합의한 모라토리엄을 무너뜨리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브라질 의회 사민당 원내대표 에두아르도 시아라는 “유전자 사용 제한 기술은 장점이 있다. 법안은 오직 인류에 유용한 한에서만 이 기술의 사용을 허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전자 사용 제한 기술은 미 농무부와 다국적 종자·화학기업들에 의해 개발됐다. 몬산토, 듀퐁, 신젠타, 바이엘, 바스프, 다우가 세계 종자시장의 60% 이상을, 농화학시장의 76% 이상을 차지한다. 이들 모두는 종결자 씨앗 기술에 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특정 제초제에만 내성을 갖게 해 종자뿐 아니라 농약도 자사 제품을 쓰도록 하는 패키지 마케팅 전략을 쓰고 있다. 몬산토의 대변인 톰 헬셔는 “몬산토는 1999년 종결자 기술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확고히 지키고 있으며, 이와 관련한 연구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몬산토 홈페이지에는 이 공약이 오직 ‘식용 작물’에만 해당한다고 나와 있어 브라질이 추진하고 있는 나무와 의료용 작물은 종결자 기술의 적용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변형종자 수입 반대 네팔 농민들 시위 네팔에서는 유전자 변형 종자를 도입하는 정부에 맞서 농부들이 시위에 나섰다. 네팔 치트완 지역의 농부들은 18일 몬산토의 유전자 변형 옥수수 종자가 시장에 판매된다는 보도 이후 반대시위를 열었다.  2010년 네팔에서는 유전자 변형 옥수수 재배에 실패해 농부들의 항의시위가 크게 나자 정부가 몬산토의 옥수수 종자를 수입하려던 계획을 중단한 바 있다. 네팔의 농부 리쉬 압하카리는 “몬산토는 농부들에게 더 나은 수입을 약속하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토착 종자를 (유전자 변형 종자로) 대체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 ‘리퍼블리카’에 말했다.  압하카리는 네팔의 농민들이 몬산토의 시장 진입에 반대하는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며 “비록 이런 다국적 기업들이 처음에는 하이브리드 종자를 나눠주지만 뒤에는 유전자 변형 종자를 심도록 부추길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브리드 종자는 다른 성질의 씨앗을 교배시켜 만들어 두 씨앗의 유전자들을 통째로 이용하는 종자로, 한 생물체의 유전자 중 필요한 유전자만 분리해 다른 생물종에 옮겨 원하는 특성을 갖게 만든 유전자 변형 종자와 구분된다.  하이브리드 종자는 잡종 1대로 잡종강세라는 성질이 작용해 생육이 좋아지고 모양과 수확 시기가 일치해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우량 성질은 다음 세대에 이어지지 않아 새로 씨앗을 구매해야 한다. 몬산토는 유전자 변형 농작물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는 과학계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프랑스 캉대학교 생물학자인 질 에릭 세랄리니는 지난 11월 28일 몬산토의 유전자변형 옥수수 ‘NK603’과 제초제 ‘라운드업’의 잠재적 유해성을 연구한 논문이 철회됐다고 말했다. 몇 시간 후 지난해 9월 이 논문을 게재한 학술지 을 발행하는 출판그룹 ‘엘제비어’는 “실험 동물의 수가 적어서 논문이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부족했다”며 논문 철회 사실을 밝혔다. 문제의 논문은 현재 생산·시판되는 ‘NK603’을 실험쥐들한테 2년 동안 먹이며 살펴보니 일반 옥수수를 먹고 자란 실험쥐들에 비해 종양과 간·신장 등의 장기 손상이 더 많이 발생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NK603’은 2000~2011년까지 세계 21개국 정부가 식품으로 승인한 품목으로 한국 정부도 2002년 식용, 2004년 사료용으로 승인한 이후 꾸준히 수입해 왔다. 세랄리니 연구진은 학술지 규정에 따르면 “논문 철회는 윤리위반이나 표절, 논문이 이미 발표된 경우나 사기 혹은 선의에 의한 오류로 연구를 신뢰할 수 없는 경우에만 가능하다”며 자신들의 논문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또 논문 철회에 외압이 작용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세랄리니는 몬산토에서 수년간 연구원으로 일하다 미국 네브라스카대학 교수가 된 리차드 굿맨이 올해 학술지의 편집위원으로 임명된 것을 근거로 들었다.
[정치]농촌으로 돌아가는 강기갑 의원 “다시 농사꾼으로 농민운동 전념”
[정치]농촌으로 돌아가는 강기갑 의원 “다시 농사꾼으로 농민운동 전념”(2012. 05. 08 18:38)
2012. 05. 08 18:38 정치
ㆍ낙선 후 농촌으로 돌아가는 강기갑 통합진보당 의원 농사꾼·농민운동가(전국농민회총연맹 부의장) 출신의 재선 강기갑 통합진보당 의원이 농촌으로 돌아간다.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농사꾼으로 돌아간다고 웃었지만, 마음은 무겁다. 통진당 비례대표 후보 선출과정에서 부정파문이 터져나왔고, 미국에서 광우병이 다시 발견됐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대표를 역임한 그가 통진당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농사꾼 출신 의원으로서 생각하는 광우병 파동의 해결책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19대 총선 선거운동 기간 중에 수염을 깎았다. 후회는 없나. “24년간 길렀던 수염이다. 선거 캠프에서 (수염을) 깎자고 했을 때 그 결정을 따르기 힘들었다. 막상 깎고 나니까 지역에 있는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하더라. 유권자와 약속을 한 것이라서 18대 임기까지는 기르지 않을 것이다. 수염 깎은 것은 후회하지 않는데, 매일 아침마다 면도하는 것이 어렵고 귀찮다. 면도하다가 상처도 많이 났다.” 5월 2일 통합진보당 강기갑 의원이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강 의원은 19대 총선 선거운동 기간에 수염을 자른 후 지금까지 수염을 기르지 않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에서 광우병이 다시 발견됐다. 정부가 미국을 상대로 검역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당장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해야 한다. 검역 중단은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다. 과거 정운천 농림식품부 장관이 광우병이 발견되면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그 말에 힘을 실어줬다. 광우병이 발견되면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대통령이 의지를 밝힌 것이다. 장관이 국민에게 약속을 했고, 대통령이 뒷받침해줬다. 오리발 정권이 아니라면 당장 수입을 중단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대표를 지낸 의원으로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출과정에서 불거진 부정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당대표를 할 때 보좌관한테 ‘경기·동부연합이 뭐냐’고 물었을 정도로 초정파적 입장과 소신을 가지고 활동했다. 당에서 정파적인 경쟁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별 문제 없다. 정파가 과도하게 이해관계에 몰입하면 문제가 생긴다. 지금은 정파가 너무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절제를 해야 한다. 당대표 시절 심각성을 느꼈고, 당내 정파적인 움직임에 대해 일갈을 한 적도 있다. 정파가 자기조절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당원들이 잘 판단해야 한다. (당원이) 정파를 정화해야 한다.” 국회에 있는 동안 많은 사건이 있었다. 18대 국회에서 ‘공중부양’ 때문에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되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 이라크 파병 반대, 한·미 FTA 쌀 재협상 등을 외치면서 단식을 했다. 그때는 정부의 양심과 진정성에 호소했지만, MB정부 때는 그게 소용이 없는 정권이었다. 미디어법, 감세정책, 4대강 사업 등이 모두 재벌 곳간을 채워주는 것 아니냐. 소수 야당으로서 싸움마저 하지 않으면 부자와 재벌을 위한 국회가 되었을 것이다. ‘공중부양’으로 폭력의 대명사가 됐다.(웃음) 19대 총선 선거 운동 기간에도 상대 후보가 국회폭력을 물고늘어져 힘들었다.” 17·18대 국회 활동에서 아쉬운 것은 없나. “여한이 없다. 옳다고 생각한 일에 적당하게 힘을 쓰지 않고 모든 것을 던졌다. 이제는 농사꾼으로 돌아간다. 국회에 있을 때도 매년 봄이 되면 농사에 대한 유혹이 너무 컸다. 정치 농사가 끝났으니까, 자동으로 농사꾼으로 돌아간다. 농사를 지으면서 기본적인 정당활동은 할 것이고, 농민운동도 해야 한다. 강의나 교육을 통해 농어민들의 의식을 깨우는 일들을 계속할 것이다.”
[표지이야기]토박이 농민 다른 마을로 출퇴근 농사(2011. 10. 26 11:41)
2011. 10. 26 11:41 사회
ㆍ제주 강정마을 지금은, 절대보전지역 구럼비바위 몸살 제주도 강정마을 앞바다에 위치한 구럼비 바위는 개발이 허용되지 않는 절대보전지역이었다. 2009년 8월 김태환 당시 제주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가 무산되자 그해 12월, 한나라당이 다수당이던 제주도의회는 구럼비 바위 일대에 대한 절대보전지역 해제를 의결했다. 급기야 올해 10월 6일에는 해군이 평탄화 작업을 위해 구럼비 바위를 시험발파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해군기지 반대 깃발 너머로 한라산이 보인다. 2007년부터 시작된 강정 주민들의 해군기지 반대투쟁은 오늘도 계속된다. 사업단 입구 도로 주민진입 봉쇄 강정마을에서 만난 여균동 감독은 “해군이 발파한 자리를 보니 944호에 사진을 찍어 보낸 ‘나비바위’도 부서진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어릴 적 물놀이도 하고, 기도도 드리고, 용천수도 떠서 마시던 구럼비 바위는 추억 속의 장소로만 남을지도 모른다. 이미 마을에는 10월 24일부터 해군이 본격적인 발파를 시작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던 10월 20일 아침, 제주도 강정마을에 긴급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최윤희 신임 해군참모총장(57)이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현장에 위치한 해군제주기지사업단을 방문한다는 소식이었다. 최 총장은 공사현장 방문 뒤 우근민 제주도지사(69)를 만나러 갈 예정이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최 총장이 원래 21일에 공사현장에 온다고 알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루 빨리 왔다”고 말했다. 문정현 신부도 “내일 온다면서 도둑질하듯 오늘 방문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군기지사업단은 19일 언론을 통해 최 총장이 21일에 제주를 방문한다고 알린 바 있다. 문정현 신부와 주민 10여명은 공사현장으로 달려가 신임 참모총장 ‘환영식’을 벌였다. 이미 사업단 입구는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최 총장의 차가 원활히 지나갈 수 있도록 경찰은 주민들이 차도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주민들이 “우리들의 농토와 바다를 돌려달라!”는 구호를 외치는 동안 최 총장의 차가 도착했다. 주민들과 경찰들 사이를 통과한 최 총장의 차는 갑자기 가속도를 내며 사업단 내부로 사라졌다. 마을 주민들의 시위에 대한 최 총장의 반응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해군 관계자는 “총장님이 오셨다고 주민들이 특별히 시위를 한 것은 아니고 예전부터 항의시위는 있었다”며 “총장님의 반응은 특별히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취임한 최 총장이 취임 3일 만에 제주도를 찾은 이유는 제주도 측에 해군기지 건설에 관한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다. 제주도는 지난 18일 해군제주기지사업단 측에 해상에 오탁방지막(공사 과정에서 나온 토사 등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차단하는 시설)을 완벽하게 설치한 후에 공사를 하도록 하는 내용의 긴급지시를 내렸다. 추가 발파는 막은 셈이다. 제주도 측이 제시한 1단계 2030m의 오탁방지막이 설치되는 데에는 최소한 1개월의 시간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제주도는 오탁방지막이 설치되기 전에 해군이 구럼비 바위 발파작업을 진행한 데 대해서도 심한 유감의 뜻을 전했다. 도지사, ‘민·군 복합항’ 재검증 요청 20일 최윤희 해군참모총장은 사업단 방문을 마친 뒤 제주도청에서 우근민 도지사와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우 지사는 현재의 제주해군기지 사업이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과 다르게 진행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최 총장은 “소통의 부재로 인해 일을 미흡하게 했다. 앞으로는 잘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면담이 끝난 뒤 최 총장은 기자들을 만나 “공사 중지에 대해서는 얘기한 바 없다”면서도 “제주해군기지가 갈등 없이 제대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문정현 신부가 10월 20일 아침 미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아침 미사와 저녁 집회는 지난 몇 달간 강정 주민들의 일상이 됐다. 국회에서도 제주 해군기지 건설문제가 쟁점이 됐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하 제주해군기지사업 조사소위원회는 21일 회의에서 제주 해군기지에 15만톤급 크루즈 여객선의 입·출항이 가능한지 검증하기로 합의했다. 그동안 해군 측은 제주 해군기지에는 크루즈 선박 2척을 동시에 접안할 수 있기 때문에 민·군 복합항의 조건을 충족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제주도가 9월 30일 발표한 ‘제주 해군기지 TF팀 1차 보고서’는 현재의 설계대로 공사가 진행되면 크루즈 선박이 들어설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해군이 건설해온 것은 ‘군항’이지 ‘민·군 복합항’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보고서 발표 자리에서 우근민 도지사는 정부에 제주 해군기지가 민·군 복합항으로 적절한지 여부를 재검증해줄 것을 요청했다. 물론 국회와 제주도의 결정은 강정마을 주민들의 요구를 온전히 반영한 것은 아니다. 강정 주민들의 대다수는 민·군 복합항의 개발이 아닌 제주 해군기지의 백지화를 원하고 있다. 강정마을에서 멀지 않은 화순항에 8만톤 규모의 크루즈 선박 입항이 가능한 접안시설이 이미 존재하는 데다가, 마을 내부의 갈등과 토지 강제수용으로 인한 일거리 상실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강정마을이야말로 살아있는 올레길” 자신의 땅을 강제수용당한 농민들은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땅을 얻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강정마을 주민 김성규씨는 한라봉 재배농민이다. 김씨의 밭은 현재 해군이 설치한 펜스 안쪽에 위치한 강제수용 대상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땅이 국방부에 넘어가 있었고, 언젠가부터는 ‘국방부 땅을 무단점유하고 있다’, ‘벌금을 매길 수도 있다’는 내용의 편지가 집안에 날아들기 시작했다. 평생을 강정 토박이로 살아온 김씨는 결국 다른 마을에 땅을 임대해서 출퇴근 농사를 짓고 있다. 철조망 너머로 구럼비 바위가 보인다. 현재 구럼비 바위 발파작업은 일시 중지됐지만, 해군기지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공동체의 파괴도 심각했다. 1993년 창립된 강정마을 민속보존회는 마을의 전통문화를 지키고 후손에게 잘 간직하자는 취지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모임이었다. 제주 전역을 돌아다니며 공연도 하고 각종 문화제에서 상도 탔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서 공연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런데 2007년 해군기지가 강정에 들어서기로 결정된 이후 모임 내부에 분열이 일었다. 수적으로 열세인 해군기지 찬성파 회원들이 자연스레 모임에 참석하지 않게 됐다. 갈등이 일면서 1년에 고작 한두 번 총회를 여는 수준으로 활동이 줄어들었다. 마을 공동체의 파괴는 집단불안 현상으로 돌아왔다. 2009년 서귀포신문이 강정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주민 4명 중 3명이 적대감, 우울, 강박 등 정신적인 이상 소견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군참모총장이 다녀가고 난 뒤인 20일 11시, 주민들, 평화활동가들, 천주교 신부들 50여명은 공사장 인근의 코사마트 사거리에서 미사를 드렸다. 주민들은 이미 익숙한 듯 별다른 설명도 필요 없이 기도를 드리고 찬송을 불렀다. 미사가 끝난 뒤에는 미리 준비해둔 옥수수를 나눠 먹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한 아주머니는 멀뚱히 미사를 지켜보고 있던 기자에게도 옥수수를 하나 건넸다. 여균동 감독은 “제주 올레길이 히트상품이라곤 하지만, 강정마을이야말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살아있는 올레길이 있는 곳”이라며 “강정마을을 살리면 제주도 전체가 살아날 수 있다. 박제화된 4·3사건이 ‘평화의 섬’으로 돌아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정마을 평화활동가들은 10월 29일 2차 평화비행기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해군기지 반대에 공감하는 전국의 시민들이 제주시와 강정마을에서 촛불집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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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스포츠도 농사, 선수육성 토양 조성”(2007. 02. 13)
2007. 02. 13 스포츠
울산농구협회 박소흠 회장, 인재 발굴 위해 초중고 팀 창단 물심양면 지원 “스포츠는 농사짓는 것과 같다” 는 박소흠 회장은 좋은 씨앗을 기름진 땅에 뿌리고 제때 물과 거름을 주어 가꾸면 잘 자라는 것처럼, 인재를 발굴하여 좋은 프로그램으로 육성하면 훌륭한 선수를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 1월 29일부터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18회 ‘아시아 청소년여자농구선수권대회’ 첫날 경기에서 한국이 대만을 80-68로 제압하는 등 한동안 주춤했던 농구가 활력을 되찾고 있다. 한국에 농구가 처음 들어온 1907년부터 지금까지 100년 동안 수많은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위기를 기회삼아 3대 인기 스포츠 종목으로 성장을 거듭해온 농구는 2007년 새로운 1세기를 맞았다. 이러한 시점에 지역 스포츠 활성화에 많은 노력을 해온 울산농구협회 박소흠 회장이 올해 대한농구협회 부회장직을 맡으며 남다른 각오를 다지고 있다. 그는 “지난 100년 간 많은 선수들의 열정과 도전이 희망의 미래를 열어온 것처럼, 열린 정책과 개혁을 앞세워 새로이 이어갈 농구 100년 또한 원대한 포부를 실현시켜 나가는 희망의 여정이 될 것”이라며 자신이 부회장직을 맡은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농구 100주년 원대한 계획 동참 ‘뿌듯’ “농구계에 헌신한 뒤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협회 부회장이라는 직함까지 맡게 돼 어깨가 무겁습니다. 대한농구협회는 올 100주년을 전환기로 삼고 여러 가지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아마추어 농구와 프로농구를 연계해 새로운 농구 패러다임을 구축할 것이며 선진국형 지역단위 중심의 농구클럽을 보급, 대중화하여 지역주민과 함께 하겠다는 장기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런 원대한 계획에 제가 함께 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앞으로도 울산지역의 농구뿐 아니라 한국 농구가 세계적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아낌없는 지원을 할 생각입니다.” 박소흠 회장의 ‘농구사랑’은 농구경기에 대한 남다른 철학에서 시작되었다. 선수 각자가 가진 뛰어난 재능에 맞춰 위치가 주어지고, 한정된 시간 안에 점수를 많이 얻어야 되는 게임인 농구는 그 어느 스포츠보다 팀워크가 중요한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농구를 배운 선수들은 함께 어울리는 법과 독립된 개인의 존엄성을 배울 수 있다. “초등학교 선수들이 팀워크를 맞춰 땀흘리며 경기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는 그의 말에서 농구와 선수들을 향한 애정이 느껴진다. 동울산 JC 회장을 맡으며 사회봉사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는 박소흠 회장은 1999년에는 씨름연맹 회장을 역임하며 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키워왔으며, 그의 열정을 높이 산 사람들이 그를 농구협회장으로 추대했다. 그가 2001년 12월 울산광역시 농구협회장으로 취임했을 당시만 해도 울산 전체에 학생 농구부가 두 곳밖에 없을 정도로 농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낮았다고 한다. 취임 후 농구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과 열정으로 울산지역 농구의 활성화를 주도해온 그는 2005년 전국체전 농구 남자 일반부 금메달과 2006년 소년체전 여자초등부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현재까지 울산시체육회 이사직을 맡으며 울산 농구 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박소흠 회장을 도와 청소년 인재를 발굴, 육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울산농구협회 염원상 전무이사는 울산지역의 농구발전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그가 울산농구협회장을 맡은 후 가장 먼저 추진한 일은 청소년 인재를 발굴하여 육성할 수 있도록 연계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선수가 울산지역 내의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하고,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를,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울산지역의 대학이나 실업팀에 진학하여 연속적인 훈련을 할 수 있는 운동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러한 연계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그는 지금도 각 초·중·고등학교에 농구부를 창단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울산에는 송정초등학교, 화봉중학교, 무룡고등학교가 남자 농구부를, 연암초등학교, 연암중학교, 울산여자고등학교가 여자 농구부를 교기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특히 아직까지도 여자선수들을 길러낼 인프라가 남자선수들에 비해 약한 현실 속에서 2006년 12월에 창단된 연암중학교 여자농구부는 울산농구협회의 희망이 되고 있다. 날카로운 카리스마보다 푸근한 마음으로 실력에 상관없이 모든 선수를 다독여 키워주는 박소흠 회장은 “스포츠도 농사짓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씨앗을 기름진 땅에 뿌리고 제때 물과 거름을 주며 가꾸면 잘 자라는 것처럼 인재를 발굴하여 좋은 프로그램으로 육성하면 훌륭한 선수를 만들 수 있습니다”라며 앞으로도 여자농구팀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쏟을 것을 다짐했다. 지역 내 실업팀 창단 최대 목표 오랫동안 현대중공업에 몸담아온 박소흠 회장은 현재 (주)우신기업의 대표이사로 지역경제 발전에도 일조하고 있다. 가치있는 일에 지원을 하는 것을 투자로 생각하는 그는 울산지역 농구 발전을 위해, 나아가 농구를 전 국민의 생활체육으로 자리매김시키기 위해 농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그는 현재 울산에 실업팀이 없는 부분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선수들이 장래의 진로를 걱정하지 않고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기 위해 초등학교팀부터 실업팀까지 울산의 농구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그가 가진 최대의 바람이자 계획이라고 전했다. 울산농구협회는 올해 5월 경북 김천에서 개최되는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참가해 메달을 따는 것을 단기 목표로 삼고 있으며, 박소흠 회장은 적어도 2개 이상의 금메달을 확신했다. 그에 이어 10월 광주에서 개최되는 전국체육대회에서 메달권에 진입하는 것을 올해의 목표로 정했다. “올해 열리는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 보이지 않게 후원하는 사람들의 기쁨이 될 수 있도록 이끌고 싶습니다. 또한 농구는 대중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많은 사람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울산시민이 선수의 금메달에 환호하는 것도 좋지만 선수들이 남몰래 흘린 땀과 눈물에 찬사를 보냈으면 합니다. 산업도시를 벗어나 생태도시로 나아가려면 시민의 체육에 대한 관심도가 좀더 높아져야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학교마다 농구부가 생기길 바라고, 올해가 황금돼지해라고 하니 울산의 농구선수와 협회원들에게도 더불어 복이 찾아오길 기원합니다.“
[BOOK]제국 & 명문기업가의 자식농사
[BOOK]제국 & 명문기업가의 자식농사(2006. 12. 12)
2006. 12. 12 문화/과학
제국 ‘해가지지 않는 나라’ 원동력은 닐 퍼거슨 지음, 김종원 옮김, 민음사, 3만5000원 제국 하면 제일 먼저 로마가 떠오른다. 그 옛날 유럽을 평정한 로마는 수백 년 간 평화를 구가하며 ‘팍스로마나’라는 말을 이끌어냈다. 기원 전 로마제국이 있었다면 기원 후에는 영제국이 있다. 그것도 비교적 최근인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영국은 전 세계 영토와 인구의 4분의 1을 지배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던 기원 전 로마는 유럽을 지배하는 데 그쳤지만 영국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할 것 없이 막강 화력을 앞세워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옥스퍼드대 교수를 거쳐 현재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닐 퍼거슨은 꽤 두꺼운 책 ‘제국’에서 17세기까지만 해도 유럽 변방의 섬나라에 불과했던 영국이 어떻게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이와 함께 영국의 세계 지배가 역사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점검한다. 사실 17세기 초까지만 해도 영국은 세계는커녕 유럽에서도 주목받지 못한 나라였다. 퍼거슨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앞장선 ‘신대륙의 발견’ 시절, 영국은 단지 제국이 남긴 부스러기를 찾아다니는 해적에 불과했으며 그들을 따라하려는 ‘제국의 모방자’였다고 평가한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더 이상 ‘제국의 모방자’로 머물 수 없었다. 변방의 섬나라는 급속하게 성장하는 경제를 모두 소화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포화상태에 이른 섬에서 벗어나 영국은 대륙으로 진출했고 경제성장을 계속 이끌어갈 수 있는 땅인 식민지를 혈안이 되어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강력한 전함부대를 앞세운 영국은 급기야 기존의 ‘지배자’였던 에스파냐,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 등을 물리치고 5대륙 43곳의 식민지를 건설하는 대제국을 이룩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표현은 영국이 얼마나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는지 대변한다. 그렇다면 영국의 대제국 건설이 남긴 것은 무엇일까.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민족을 이주시켰다는 것이다. 영국은 식민지를 통치하기 위해 자국민을 진출시켰다. 17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무려 2000만 명의 영국인이 조국을 떠나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사실상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미국 역시 조상은 영국인이 아닌가. 영국인의 세계 진출은 ‘영어의 국제화’와 직결된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7분의 1이 영어를 구사할 줄 알게 된 것도 ‘대영제국’의 영향이다. 만약 영국이 아닌 스페인이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모든 대륙에 식민지 통치를 했다면 아마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저자는 영제국의 부산물로 영어 외에 의회 민주주의의 확대, 자본주의 체제, 프로테스탄트의 영향력, 자유 무역의 확대 등을 꼽는다. 그러나 영제국이 남긴 것 중에는 부정적인 면도 많다. 무엇보다 영제국은 식민주의를 낳았다. 제국주의 시대가 사라진 지금, 식민주의는 의미가 없다고 할지 모르나 아직도 극심한 인종차별과 각국의 외국인 차별·혐오, 그리고 빈번하게 터지는 대량살상은 바로 식민주의와 노예무역에서 파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영제국의 건설과정과 그것의 영향을 꼼꼼히 분석하고 설명한 궁극적인 이유는, 결론 부분에서 짐작하건대 미국에 충고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저자는 오늘날 미국이 과거 영제국의 영향력에 버금가는 힘을 발휘하고 있음(발전 과정은 다르지만)에 주목한 것이다. 사실 오늘날 영제국이 남긴 것 중에는 긍정적인 요소보다 부정적인 요소가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영어의 세계화, 의회 민주주의의 확대, 자본주의 체제, 자유 무역의 확대… 이러한 것들이 과연 인종차별과 대량살상보다 더 중요한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미국에 충고하는 저자도 영제국을 좋게 보고 있지는 않다. 명문기업가의 자식농사 부자 3대서 끝나지 않으려면 이규성 지음, 밀리언하우스, 1만2000원 ‘부자 3대 못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헤픈 씀씀이를 탓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식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많은 재물을 힘써 모은 사람은 흥청망청 쓰지 않는다. 재물을 바닥내는 사람은 아무 노력 없이 그저 윗대로부터 재물을 물려받은 자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식교육을 제대로 한다면 엄청난 부를 고스란히 이어갈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재물이 더 불어날 수도 있다. 이 책은 고 정주영 현대 회장, 고 이병철 삼성 회장, 고 최종현 SK 회장 등 자신의 성공을 2세, 3세까지 대물림한 재계의 내로라하는 명문가와 오너의 자식교육 방법을 담고 있다. 평범한 아버지도 자식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갖기 힘들다. 자식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하물며 그룹 회장이라면 더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지난 시절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고 지금의 우리나라 경제를 있게 한 유명 회장들은 자식교육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자식에 관한 한 직접 챙기고 비록 짧은 시간일지라도 엄격하게 교육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은 생전에 자식들에게 어떤 문제이든 꼭 여섯 번 ‘왜?’라는 질문을 하라고 교육했다. 즉흥적·감정적인 결정을 피하고 모든 사정을 꼼꼼히 따져보고 난 후 결단을 내리라는 뜻이다. 남의 말을 경청하고 늘 메모하는 습관도 고 이 회장이 지금의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롯한 자식에게 길러준 것이다. 이러한 습관은 이건희 회장을 거쳐 그 아들인 이재용 상무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자녀교육은 아침밥상에서 시작된다. 현대 가(家)는 새벽 일찍 일어나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늘 온 가족이 아침밥상에 모여야 했다. 고 정 회장은 자식들에게 일찍 일어나는 습관과 가족의 소중함 등을 자연스럽게 가르쳤다. 자식교육 문제에서 대부분 명문 기업가의 공통점은 ‘혹독하게 키운다’는 것이다. ‘오냐오냐’ 하지 않고, 사자가 새끼를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리듯 혹독하게 키웠다. 고 조홍제 효성 회장은 유학간 자녀에게 접시닦이를 시켜 경험을 쌓게 했으며 최진순 청풍 회장은 자녀의 학교 등록금과 유학자금을 스스로 벌게 했다. 오랫동안 경제분야 기자로 활동한 저자는 현장에서 보고 직접 수집한 자료를 종합해 15개 기업 오너의 자식교육 방법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요즘 부모에게 큰 보탬이 되는 책일 듯하다.
BOOK
[골프]골프 '1년 농사'(2004. 01. 07)
2004. 01. 07 스포츠
한 해가 저물고 희망찬 2004년이 용솟음치고 있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로운 기대와 희망, 그리고 계획을 갖는다. 골퍼들도 한 번쯤 18번홀 마지막 그린 위에 서서 잠깐이나마 골프를 통해 얻은 교훈과 철학을 음미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정신없이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온 365일.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내가 이룬 보람은 무엇일까. 나의 삶은 과연 진지했는지, 우리 각자의 모습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평가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녹색 코스 위에서 신사임을 자처하면서 동료나 후배들에게 불편함이나 마음의 상처를 준 일은 없는지, 골프를 통해 좋은 친구를 얻었으면 다행이지만 반대로 귀중한 친구를 잃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자. 접대와 사교라는 명분 아래 과도하고 분별없는 골프로 명예를 잃지는 않았는지, 내기골프 상대에 대한 질투와 증오로 남의 결점이나 약점을 찾아 비난하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남을 칭찬해주고 장점을 찾으려고 노력은 했는지. 1년에 한 번쯤 자선골프대회에 참가해 기부한 적은 있는지. 연습보다는 골프채로 부족한 실력을 감추기 위해 비싼 외화를 낭비하지는 않았는지, 스코어에만 집착한 나머지 골퍼로서의 기본 매너를 망각해 손가락질받는 골퍼로 낙인찍히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양심을 속인, 부끄럽고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은 얼마나 있었는지, 거울 앞에서 겉치장만 열심히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자. 도대체 골프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인지 한 번쯤 지난 1년간 자신의 골프행적에 대해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새로운 출발에 앞서 끝맺음하는 이 순간이 1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삶은 자기 성찰 없이는 발전이 없고 후퇴만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일들은 후회와 아쉬움으로 점철되어 다가온다. 공전하는 우리 생활의 수레바퀴는 똑같은 궤도로 삶을 채찍질하며 돌고 있다. 이제 우리 모두 올해의 슬펐던 일, 괴로웠던 일들은 모두 지워버리고, 대신 즐겁고 아름다웠던 일들을 추억으로 곱게 접어 마음속에 담아두도록 하자. 이제 생활이나 골프, 어느 분야에서든 새로운 꿈을 가지고 밝은 미래와 희망찬 새해를 설계하자. 김맹녕〈대한항공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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