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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경향(총 5 건 검색)

50대가 됐나요? ○○은 입에도 대지 마세요
50대가 됐나요? ○○은 입에도 대지 마세요
2023. 06. 15 07:13 건강
50대가 되면 일상 습관이 곧 건강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는 중년부터 절대 먹어선 안 되는 몇 가지 음식을 강조했다. 남성은 심혈관 건강, 여성은 골다공증…중년에 접어들면서 건강에 대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상 습관을 바꾸면서 건강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는 여지가 꽤 있다고 말한다. 미국 매체 퍼레이드가 주목한 ‘영양사가 말하는 50세 이상이면 거의 먹지 말아야 할 특정 음식과 음료’에 대해 알아본다. 퍼레이드 자문 영양사이자 당뇨 전문가 제나 아펠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식단에서 특정 음식을 빼는 것은 상당한 박탈감을 불러온다”라면서도 “그렇지만 50세 이상이 과도하게 섭취하면 건강을 악화시키는 특정 음식과 음료는 존재한다”고 말한다. 중년 건강에 가장 큰 악영향을 주는 음식, 전문가는 ‘탄산음료’를 꼽았다. 그가 강조하는 가장 악영향을 주는 음식은 ‘탄산음료’이다. 그는 “만약 탄산음료를 매일 마셔야 한다면 과일이 든 탄산수로 점차 바꾸는 것이 건강에 이로울 것”이라고 강조한다. 탄산음료는 설탕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거의 모든 질환에 좋지 않다. 연구에 따르면 정기적으로 탄산음료를 섭취하면 체중 및 당뇨병 위험이 증가하고 뇌에도 좋지 않아 뇌졸중과 치매의 위험을 높인다. 최근에는 설탕 대신 인공 감미료를 사용한 다이어트 탄산음료가 붐을 타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건강에는 좋지 않다. 다이어트 탄산음료를 꾸준히 마시는 것으로 제2형 당뇨병과 대사증후군 위험을 피할 수 없다. 그 외에도 달달한 스낵, 정제된 곡물, 고 포화지방 식사 같은 고도로 가공된 식품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유형의 식품에는 당, 지방, 나트륨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공 페이스트리나 패스트푸드도 ‘최소화해야 할 식품’의 범주다. 아펠은 “설탕과 나트륨이 첨가된 조미료에 대한 영양 라벨과 성분 목록을 꼼꼼하게 읽는 것부터가 현명한 식단 차림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먹어야 할까. 과일과 채소, 통곡물, 저지방 단백질 및 건강한 지방을 중심의 식사, 즉 지중해 식단이다. 아펠은 호르몬 균형(갱년기 여성)에 도움이 되는 단백질과 건강한 지방을 우선시하고 혈당 수치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염증을 줄이는 식단을 권장한다. 아보카도, 견과류, 씨앗류, 올리브유 등이 그가 50세 이상에게 추천하는 음식이다. 영양이 풍부한 음식으로 접시를 채우고 설탕과 나트륨이 많이 함유된 음식을 최소화하는 것. 병원 신세를 지지 않는 건강한 중년의 첫걸음이다.
50·60대 입에도 대지 말아야 할 3가지 음식
50·60대 입에도 대지 말아야 할 3가지 음식
2022. 12. 30 06:57 요리
50대가 넘으면 떨어지는 신진대사, 가공식품보다는 신선식품을 챙겨 먹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50·60대가 넘으면 신진대사가 느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건강한 체중을 유지하고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 처리가 점점 어려워진다. 50대 이상이 되면 먹는 음식이 곧 건강과 직결되는 이유다. 신진대사를 빠르게 지원하는 먹거리는 가공식품보다 신선식품이다. 전문가가 알려주는 ‘50대의 느려진 신진대사 회복을 위해 절대 먹어선 안 되는 3가지 식품’은 무엇일까? 설탕 범벅 시리얼 영양사에 따르면 맛있고 편리한 설탕 시리얼은 신진대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공식품 중 하나다. 달달한 시리얼에는 설탕, 나트륨 및 정제된 탄수화물이 가득하다. 이러한 식품을 지속해서 섭취하면 비만, 고혈압, 당뇨병 및 심장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도로 가공·정제된 성분은 일반적으로 빠르게 소화되어 혈당을 높이고 신진대사를 늦출 수 있다. 일부 시판용 시리얼에는 설탕, 나트륨, 정제된 탄수화물로 가득하다. 특히 당으로 인한 인슐린 급증은 세포 내 호르몬에 내성을 갖게 하므로 복부 주변 체중을 증가시키고 제2형 당뇨병 및 기타 대사 질환 위험을 증가시킨다. 그릇에 시리얼과 우유를 붓는 만큼 편한 아침식사는 없겠지만 시간이 걸리고 번거로운 만큼 건강한 아침 식단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패스트푸드 패스트푸드 역시 바쁜 일상에 편리하고 빠른 식단이지만 차차 신진대사를 망칠 수 있다. 패스트푸드는 다량의 지방, 나트륨 및 건강에 썩 좋지 않은 기름으로 만들어진다. 지속해서 섭취한다면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여 체중 증가, 비만, 심혈관 질환, 심장병 및 뇌졸중을 불러올 수 있다. 물론 가끔 먹는 햄버거 하나가 건강 문제를 극단적으로 일으키진 않을 것이다. 햄버거와 함께 감자튀김 대신 샐러드, 콜라 대신 물이나 건강 주스를 곁들여 먹는 것을 추천한다. 냉동식품 냉동식품이 신진대사를 늦추는 이유는 그 안에 함유된 지방과 소금 때문이다. 냉동식품은 일반적으로 맛을 좋게 하고 장기간 보존하기 위해 많은 양의 지방과 소금을 넣는다. 앞서 언급했듯 이들은 신진대사를 늦춰 각종 대사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가공식품의 또 다른 문제는 영양소가 적고 열량이 높다는 점이다. 우리 몸의 온전한 기능 유지를 위해 필요한 비타민, 미네랄 및 기타 영양소는 적고 대신 체중 증가와 기타 건강 문제를 일으키는 첨가제가 들어 있다. 나중에 먹을 수 있도록 직접 만든 음식을 냉동하는 것은 다르지만 시판 냉동식품의 지속적인 섭취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도쿄 주부’ 김민정의 일본 대지진 체험 수기
2011. 03. 29 18:05 화제
무력(無力). 삶에선 수시로 자신의 무력함과 부딪치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늘 쥐구멍 정도는 있는 법이다.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게다가 작디작은 쥐구멍을 찾았을 때 크나큰 희열도 함께하는 법이었다. 그러나 내가 일본에 와서 가장 큰 지진을 경험한 날, 그 구멍조차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무지했으며, 철저히 무방비했다. 혼란했던 나날들을 한국 독자들에게 생생히 전하려 한다. 첫날, 이런 큰 지진은 처음이었다 2011년 3월 11일 금요일은 구청 복지시설인 아동관에서 딸아이 ‘하나’의 마지막 수업이 열린 날이었다. 마지막 수업에는 0세부터 3세 아이들이 모두 모여 작은 파티를 했다. 과자를 먹고 차를 마시며 아이들은 종이로 된 기차를 타기도 했다. “1년간 엄마 고생하셨습니다. 하나도 수고했어요.” 종이 꽃가루를 흠뻑 맞으며 하나도 신이 났고 엄마인 나도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2시 46분경. 거실에서 번역 원고를 정리하고 차를 한 잔 하고자 했다. ‘어, 흔들리는데? 금세 멈추겠지.’ 처음엔 지금까지 여러 번 체험했던 진도 3 정도의 지진이려니 짐작했다. ‘이상해, 지진이 멈추지를 않네.’ 거실에서 낮잠을 자던 하나도 진동이 점점 강해지자 절로 눈을 떴다. 하나를 안아들었다. 동시에 피아노 위에 올려놓았던 액자와 시계가 떨어졌다. 그동안 지진을 겪어왔지만, 물건이 떨어지는 진동은 처음이었다. 순식간에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화장실! 그래 화장실이야!’ 문득 화장실이 떠올랐다. 일본은 욕실과 화장실이 따로따로인 집이 많은데, 특히나 네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작은 공간인 화장실이 가장 튼튼하다. 하나를 안고 화장실로 뛰어들었다. 지진이 일어나면 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도 있는데,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유리창, 간판, 신호등, 전봇대, 전선, 오래된 벽 등 밖에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지진이 일어나면 우선 머리를 가리고 책상 밑이나, 식탁 밑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위에서 떨어지는 물건들, 움직이는 가구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왜 일본 사람들은 베란다 문에 유리창을 넣지 않는지 궁금했다. 살다 보면 지진 때문이란 걸 저절로 알게 된다. 베란다에 유리창이 있으면 지진 후, 자신도 또 외부 사람들도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동관에서의 즐거운 한때. 불과 몇시간 후에 끔찍한 재앙이 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수분이 지나니 지진이 멈췄다. 그러나 살았다는 희열은 없었다. 다시 지진이 일어난다면? 이 강도의 지진이 또 온다면? 두렵고 또 두려울 뿐이었다. 우선 TV를 켰다. 어느새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지진 특별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해일 피해가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바다 근처에 사는 분들은 바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여진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조만간 간 나오토 총리가 기자회견을 열 겁니다.” 도쿄 진도는 5도로 표시됐다. 역시나! 일본 생활 19년 중 겪은 지진 중 가장 큰 규모였다. 동북 지방은 진도 7도라니. 5도도 가슴이 철썩 내려앉는데 7도란다. 현관문을 여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미 밖에 나와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공원에는 초등학생과 주부들 20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누군가 라디오를 틀어놓고 있어 다 같이 그 라디오에서 전해주는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오두방정을 떠는 아줌마가 한 분쯤 있을 만도 한데, 그저 조용히 라디오를 듣거나 작은 소리로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긴장된 분위기였지만 나보다는 모두 침착해 보였다. 그럴수록 내 긴장은 더해갔지만. 그날 밤, 침착하게 줄 서는 일본인 고교 시절 일본에 온 나는 지진 대비 훈련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일본 사람들은 모두 침착한 모양인데 난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대비는커녕, 솔직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부정적인 단어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미래 따윈 아무래도 좋았고, 그 미래가 부정적이라면 생각 따위는 집어치워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작정 남편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저녁 7시, 8시가 되도록 소식도 없었다. TV에선 도쿄의 교통망이 두절됐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무려 9만 명이 졸지에 ‘퇴근 난민’이 됐다. 전철은 멈췄고 버스는 운행 중이나 버스로 퇴근자가 몰려, 수백 미터 줄을 서 있다는 소식, 그리고 도쿄의 각 대학들이 집으로 가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시설을 개방했으며, 도쿄소방서 등이 긴급 피난소를 제공했다. 회사원들은 걸어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걷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고 한다. 동생이 시나가와 지역에서 근무하는데 집까지 14km를 4시간에 걸쳐 걸어왔다고 한다. 무작정 걸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 어떤 이들은 화장실을 빌려준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었단다. 다행히 남편은 회사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여진만 없다면 무사히 돌아올 것이다. 도쿄는 온통 줄 선 사람들뿐이었다. 집에 가기 위해, 가족의 안부를 전화로 묻기 위해, 화장실에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기 위해, 물을 얻기 위해, 담요를 받기 위해. 상점에선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기 위해. 그 어느 누구도 소란을 피우거나 큰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들 조용히 줄을 서 있을 따름이었다. 언제던가, “왜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 줄을 잘 서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일본 사람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것밖에 할 것이 없으니까.” 마땅한 말이다. 줄을 서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인 것이다. 소란을 피워 체력을 소모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 결코 좋은 일이 못 된다. 그들은 지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밤 9시 반.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가 “파파” 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가 자전거로 무사히 귀환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 지진이 다시 일어날지 몰라 마음을 졸이며 밤새 TV를 틀어놓았다. 삐비빗. 지진 긴급 속보가 울렸다. 3도 이상의 지진이 일어나기 수십 초 전에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TV에서 이 소리가 울릴 때마다 나는 하나를 끌어안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이튿날, 물건은 동이 났지만 약탈은 없었다 하루 새에 집근처 상점의 물건이 동났다. 2011년 3월 12일 토요일. 여진은 계속되고 있었다. 3도 이상의 지진이 벌써 몇 차례 일어났는지 셀 수도 없다. 지진 긴급 경고가 날 때마가 가슴이 철썩 내려앉았다. ‘5도는 이제 견딜 수 있어. 근데 더 큰 지진이 오면 어쩌지?’ 이런 맘이 드는 건 나 하나가 아니었다. 집 앞 편의점 물건들이 동이 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바닥이 난 건 물이었다. 그리고 컵라면, 휴지, 건전지, 깡통 음식들. 지진으로 고립됐을 때 한 사람당 하루 필요한 물은 3리터라고 한다. 도쿄 사람들은 언제 올지 모를 더 큰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당분간 먹어둘 식량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진 후 살아 있을 거란 전제하에. 일본은 언제나 지진에 대비해 현관 앞에 가족 숫자만큼 긴급용 가방을 하나씩 마련해두고 그 안에 물과 건빵, 초콜릿, 장갑, 손전등, 휴대용 라디오, 타월 등을 넣어놓는다. 그러다 보니 상점의 물건들이 하루 새에 텅 비어버렸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 “이게 마지막 티슈인 거지?”, “오늘 가게에 이게 마지막 휴대용 라디오였어”, “이게 마지막 건전지야.” 마지막 하나 남은 것, 그것은 식탁 접시 위에 굴러다니는 마지막 한 젓가락과는 하늘과 땅 차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에 넣어야만 하는 귀중한 가치였고, 사재기의 악순환의 요인이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일본인들은 질서를 지켰다. 모두가 보란 듯이 줄을 서서 물건을 샀다. 지진으로 바닥에 떨어진 상품들을 손님들이 선반 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최소한의 양심을 일본은 지키고 있었다. 그 사이 숨 막히는 공포가 일본 열도를 뒤덮었다. 11일 후쿠시마 원전은 지진 직후 분명 자동 정지됐어야 했다. 그런데 12일 오후 6시, 에다노 관방장관이 TV에 나와 1호기가 폭발했으며 국가는 요오드제를 준비했고, 10km 권 내 사람들을 피난시키고 있다는 최악의 이야기를 전했다. 아니 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얘기야? 근데 후쿠시마는 또 어디야? 뭐 도쿄에서 250km 떨어져 있다고? 방사선으로부터 안전한 걸까? 사, 나흘째, 우리 부부 결혼 후 최대 위기가 왔다 지진보다 무서운 건 방사선이었다. 도쿄까지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까? 2011년 3월 13일. 원전 사고 이후, 교민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공항으로 향했다. 11일 폐쇄됐던 하네다와 나리타가 12일 개방했다. 일이 있는 아빠들은 도쿄를 지키고, 엄마와 아이들은 공항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요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평상시의 3배나 됐다. 그러나 가격은 문제가 아니었다. 과연 언제 비행기에 오를 수 있을까. 제발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교민들은 소리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일본을 훌쩍 떠날 수 있었던 주재원 가족과는 달리 일본에서 자영업 중인 사람들은 도쿄를 지켜야 했다.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손님이 있든 말든 깨진 유리 조각을 치우고, 영업에 돌입했다. 고민의 무게는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진이나 방사선 공포보다 다음달 월세가 더 비중 있는 문제일 수도 있는 법이다. 2011년 3월 14일 월요일. 또다시 월요일이 찾아들었다. 간 나오토 총리가 계획 정전을 발표했다. 원전 사고와 화력발전소 가동 중지로 전력이 부족했다. 정부는 관동 지역을 몇 개 구역으로 나눠 3시간씩 돌아가면서 정전을 시작했다. 지진, 해일, 원전, 정전 어느 하나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소식은 없었다. 이번에 지진을 겪은 사람들의 정신적 충격은 어마어마했고, 다양한 증상이 표출됐다. 아이들은 지진 발생 후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해일이 밀려들었을 때의 충격, 친구를 잃은 상실감으로 카운슬링이 필요한 실정이었다. 어른들은 묘한 울렁증에 시달렸다. 지진도 아닌데 흔들리는 느낌이 가시질 않는 것이다. 난 원전 사고 이후, 단 한 차례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나흘 동안 양말을 벗지 못했다. 지진이 일어나 깨진 유리에 다치지 않으려면 양말은 기본이고, 운동화도 머리맡에 두고 자야 했다. 청바지도 내내 벗지 못했다. 잠옷을 입고 있다가 지진이라도 나면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나가야 할 텐데 잠옷 바람은 아니지 싶었다. 13일에 후쿠시마 원전에선 3호기 연료봉이 노출됐고, 14일엔 4호기 또한 수소 폭발을 일으켰다. 원전 사고는 공포심을 극도로 자극했다. “한국에 가야겠어. 티켓을 끊어야겠다고.” 그런데 남편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왜?!’ 방송국 PD인 남편이 대학 시절 만든 아마추어 필름 중에 ‘지구 멸망’의 당일을 다룬 짧은 영상이 있다. 지구 멸망을 앞둔 날,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 있고 어찌 하면 좋을지 몰라 우왕좌왕하는데 한 여자가 쓰레기를 버리고 좁은 원룸에서 컵라면을 먹는 단순한 내용이다. 남편은 내가 그 여자가 되길 바라는 것일까? 그는 덧붙였다. “일본은 괜찮아.” 가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일본 사람들은 자국을 믿는다. 이 ‘믿음의 대상’이 일본 정부인지, 일본 사회인지, 기술력인지, 일본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느 하나일 수도 있고, 전부 다일 수도 있다. 원전 사태를 보며, 일본인들이 정부의 늦장 대응을 비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원전 부근 주민들은 “우릴 모른 척하고 죽이는 일”이라고 소리쳤다. 도쿄에 사는 일부 엄마와 아이들은 남쪽으로 친척을 찾아 잠시 떠나기도 했다. 일본을 굳건히 믿는 남편을 설득해 한국에 가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평소엔 내 말을 100% 믿어주는 사람이 나보다 정부를 믿다니!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결혼생활 6년 중 최고의 위기였다. 침착한 게 아무리 좋다지만 목숨이 더 중요한데. 일본이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다지만 이 사태를 과연 수습할 수 있을까. 도쿄의 방사능 농도는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다지만 그 말이 과연 사실일까? “나 한국 갈 거야. 공항 가서 기다릴 거야.” 그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악몽의 나날, 일주일이 지나고 있다 딱 일주일 만에 동북 지역은 전기가 복구됐다. 라이프라인의 일부가 살아난 데 대해 동북 지역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대피소 상황은 여전히 열악했다. 16, 17일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데다 눈까지 내렸다. 가족의 시신을 간신히 찾았지만 회수하지 못해 시신 위에 눈이 쌓여가는 걸 조용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생수, 연료, 식료품이 가장 급하고 아기 분유, 기저귀도 달렸다. 의약품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을 위한 음식도 구호물자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피난처에는 지인과 가족을 찾는 메모로 벽 한쪽을 가득 메웠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도쿄에 있는 우리는 정전을 막기 위해 난방은 지진 직후부터 하지 않고 지냈다. 저녁에도 전력소비량이 높아진다는 5~7시 사이 이외 시간에 밥을 지었다. 난방을 끈 탓일까. 하나가 심한 코감기를 앓고 있고, 나도 남편도 요 며칠 목감기와 코감기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 아닐까? 일본은 괜찮다는 남편 고집을 꺾지 못했다. 아니 꺾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그냥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주고 싶었다. 우리 아이를 걱정하는 건, 나만큼이나 그 사람도 똑같으니까. 한국에선 돌아오라는 전화가 빗발쳤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갈 곳이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걱정해주는 마음에 대한 고마움. 단, 일본 정부는 여전히 내겐 미심쩍은 존재다. 원전 사고 레벨을 내내 레벨 4라고 주장하다가 일주일이 지나서야 레벨 5로 수정한 것도, 지진 직후 미국의 도움을 받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하지 않은 것도, 대피 구역을 10km, 20km 뒤늦게 고쳐버린 점도 그렇다. 게다가 도쿄전력은 방송사들의 막강한 스폰서다. 지진 이후, 일주일간 하나와 나는 단 한 발자국도 현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지진도 무섭고 방사선도 걱정이 되어서. 우린 집에서 없는 재료를 모아 김밥도 싸고, 해물스파게티도 만들고, 돼지고기도 삶았다. 평상시와 똑같을 순 없지만, 가능한 한 비슷한 정도의 기분은 내고 살았다. 가장 중요한 건 늘 희망이니까. 이번 지진과 원전 사고는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프랑스는 국민에게 도쿄에서 남하하든지 도쿄를 떠나라고 했고, 실제로 도쿄에 거주하는 프랑스인 5천 명 중 3천 명이 자취를 감추었다. 한국에선 방사선비가 내린다는 유언비어가 돌기까지 했다고 들었다. 일주일이 지난 18일 오늘 도쿄의 방사선 수치는 신주쿠에서 10시에 0.05마이크로시버트. 평소 수치가 0.02~0.2 정도라니 안정권 내이긴 하지만 평소보다 두 배나 높은 수치다. 지진은 일주일이 지난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과연 일본은 이 사태를 극복할 수 있을까? 아니 극복해야만 한다. 일주일이 지난 오늘 도쿄 거리가 오랜만에 술렁인다는 친구의 메일을 받았다. 지진, 방사선 공포에 휩싸였던 한 주에서 벗어나 술에서 위로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는가 보다. 부디 동북 지방 사람들이 이 고난을 이겨내기를 두 손 모아 진심으로 기도드린다. 그리고 내일은 꼭 원전 사태가 진정되기를. 원전이 어떤 존재인지 마음과 온몸으로 체험했으니, 원전에 반대할 용기를 가질 수 있기도 빌어본다. 이번 지진을 두고 어떤 두 살배기 아이가 ‘내가 지진을 체포해올 거야’라면서 신발을 신었다는데, 난 과거로 돌아가 얄밉게 혓바닥 내놓은 앨버트 아인슈타인을 체포해오고 싶은 심정이다. ‘당신 잘못은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무슨 대책은 세워놓으셨어야지요!’ 이번 원전 사태는 과잉 소비와 과잉 공급만을 목표로 해온 이 사회의 부의 산물이 고스란히 들어난 결과가 아닐까. 살아남은 사람들에겐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복구해나갈 의무가 생겼다. 하늘은 분명 이 재난과 함께 극복할 힘도 주었으리라 믿는다. -2011년 3월 18일 금요일 도쿄에서 김민정. 김민정 주부가 전하는 혼란 속 절절한 사연들 1 바다를 메워 만든 디즈니랜드 주차장은 액상화 현상으로 진흙이 올라왔다. 디즈니랜드 방문객은 그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고, 디즈니 측에서는 과자를 무료로 나눠줬다. 부모들은 아이와 함께 피난소에 머물러 과자조차 받으러 가지 못했다는데, 한껏 멋을 내고 놀러 왔던 젊은 처자들이 엄마 대신 과자를 받아서 피난소 아이들에게 나눠줬다는 후문이다. 2 동북 지역은 수십만 명(38만 명, 17일 통계)의 피난민이 수천 개의 대피소에서 생활하다 보니 물자 부족이 심각했다. 대피소의 배급 식량은 1인당 소금 간을 한 주먹밥 2개가 전부였다. 아이가 있는 엄마들은 그것조차 먹지 않고 아이에게 주기 위해 주머니에 넣어 보관했다. 3 아내의 손을 놓아버린 언덕에서 하염없이 한숨만 쉬는 한 할아버지의 모습도 포착됐다. 해일이 왔을 때 몸을 못 쓰는 아내를 데리고 몸을 피하려 했는데 아내가 소리 없이 그 손을 놓았다고 한다. 혼자만 구조된 할아버지는 언덕을 떠날 줄 몰랐다. 4 인구 1만7천여 명 중 8천 명 가까이 희생된 미나미산리쿠 마을. 이 마을 방범 담당 여직원의 순직 소식도 전해졌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해일이 닥칠 때까지 마을회관 건물에서 꼼짝도 않고 “해일이 옵니다, 어서 도망가세요”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녀는 겨우 스물다섯 살이었다. 5 외신들은 원전 결사대 50명의 영웅을 칭송했지만 약간 와전된 감도 없지 않다. 그 50명은 일시적으로 남겨졌던 숫자에 불과하다. 15일 시점까지 50명씩 돌아가면서 작업을 했던 건 분명하다. 국가 상정하의 피폭치 이내에서 수백 명이 돌아가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 정년퇴직을 얼마 남기지 않은 사원들이 유서를 쓰고 후쿠시마로 향하고 있다. 그들은 용감하고 위대하다. 6 진정한 영웅은 원전 20, 30km 내의 의료 종사자(의사, 간호사, 전문 간병인)들이다. 일본 정부는 원전 20, 30km 내는 ‘실내 대기’ 명령을 내렸다. 실내 대기란 현실적으론 알아서 도망가란 뜻이다. 젊은 사람들은 이미 자발적으로 피난 간 지 오래다. 그러나 그곳 고령자 시설에 무려 1천여 명이 남아 지내고 있다. 모든 시설은 난방도 되지 않고 일손이 너무 부족한 상황이다. 실내 대기 명령이 내려진 뒤 이 지역으로 물자 배송을 해주는 곳은 하나도 없다. 추위와 의약품 부족, 의료 종사자 부족으로 환자가 사망하기도 했다. 한 살짜리 아이를 둔 엄마는 NHK에 절실한 편지를 보냈다. ‘아이가 열이 40℃나 됩니다. 경찰도 보이지 않고 병원도 문을 연 곳이 없습니다. 다 도망갔어요. 옆 동네까지 가기엔 자동차 휘발유가 부족합니다. 아무도 우릴 구해주지 않습니다. 이대로 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볼 수는 없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정부는 이제야 환자를 옮기겠다고 방침을 발표했다. 유령 도시가 된 곳에 남아서 아직까지 환자를 돌보고 있는 의료 종사자들이야말로 영웅이다. <■기획 / 이유진 기자 ■글&사진 / 김민정(writeforhappy@hanmail.net), 경향신문 포토뱅크>
가을 대지의 정기를 담은 약선 요리…뿌리채소로 차린 밥상
2008. 10. 15 요리
땅에서 나는 근채류는 대지의 풍미를 그대로 담고 있는 영양의 보고다. 항산화 물질과 비타민, 섬유소가 풍부해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하고 칼로리가 낮아 성인병과 비만을 예방하는 뿌리채소를 새로운 스타일로 조리해 풍성한 가을 식탁을 차려본다. 부드러운 단호박과 플레인 요구르트의 상큼함이 더해진 찐 고구마 단호박카나페 재료 고구마 2개, 사과 1/2개, 단호박·양파 1/4개씩, 대추 4개, 아몬드 슬라이스 2큰술, 잣 약간, 드레싱(마요네즈 2큰술, 설탕·생크림·플레인 요구르트 1큰술씩, 소금 약간) 만들기 1 고구마는 껍질째 깨끗이 씻어 찜통에 부드럽게 쪄낸 뒤 한 개는 2cm 폭으로 썬다. 사과와 양파는 껍질을 벗긴 뒤 다진다. 대추는 편으로 갈라 속씨를 꺼내고, 돌돌 말아 썰어 꽃 모양을 만든다. 2 단호박은 씨를 파내고 찜통에서 부드럽게 쪄낸 뒤 속을 깨끗이 파내 볼에 담는다. 3 ②에 다진 양파와 다진 사과, 아몬드를 함께 넣고 나머지 고구마 한 개를 넣은 뒤 나무 주걱으로 고루 섞는다. 4 ③에 분량의 드레싱 재료를 넣고 고루 섞는다. 5 ① 위에 ④의 단호박을 얹은 뒤 대추와 잣으로 장식해 낸다. 근채류의 숨겨진 영양 성분 ? 무 디아스타아제, 가락타제, 옥시다아제 등 소화를 돕는 효소가 풍부해 소화불량에 효과적이고 위염과 위궤양을 예방한다. 탄 생선에 들어 있는 발암물질을 억제하기 때문에 생선 조림에도 빠지지 않는다. 수분과 비타민도 풍부하다. 토란 당질과 인, 염분, 칼슘, 칼륨 등이 풍부한 알칼리성 식품으로 고혈압과 변비를 예방하고 피로 해소 효과도 있다. 또 특유의 미끈거리는 무틴 성분은 체내에서 글루크론산을 만들어 신장을 튼튼하게 하고 소화를 도우며 노화를 예방한다. 우엉 식이섬유소가 많아 장을 청소하고 대장을 건강하게 한다. 체내의 독성을 배출하기 때문에 고기를 많이 먹는다면 필히 섭취할 것. 필수아미노산인 아르니긴이 들어 있어 성장을 촉진하고 체력을 높여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좋다. 비타민이 적은 대신 미네랄이 풍부하다. 고구마 대표적인 알칼리성 식품으로 식물성 섬유소가 들어 있어 변비에 효과적이다. 또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인슐린 분비를 줄여 성인병을 예방한다. 특히 하루 한 개만 먹어도 하루에 필요한 비타민 C를 모두 섭취할 수 있을 정도며 주근깨나 기미를 개선하고 피부를 깨끗하게 한다. 연근 비타민 C가 풍부하며 특히 녹말로 보호돼 있어 영양소가 쉽게 파괴되지 않는다. 항산화 성분인 폴리페놀 성분이 함유돼 항암 효과가 뛰어나며 기력을 회복하고 기침, 스트레스나 우울증에도 좋다. 피부 건강은 물론 소화 기능을 촉진시키고, 빈혈, 위염을 다스리는 데도 효과적이며 니코틴 해독 작용도 한다. 체내 흡수가 느려 인슐린 소비가 줄기 때문에 포만감도 높다. 참마 비타민 B·B₂·C 가 풍부해 소화불량과 위장, 당뇨병, 폐 질환 등에 효과적이다. 특히 신장을 튼튼하게 하고 원기 회복에도 좋다. 또 장속 세균의 활동을 왕성하게 하기 때문에 장염에도 좋으며 당뇨병의 혈당을 낮추는 데도 좋다. 날것 혹은 즙을 내어 먹을 수 있다. 몸에 좋은 우엉의 담백함이 돋보이는 대추채 올린 꿀 우엉 찹쌀구이 재료 우엉 3토막(7cm 길이), 찹쌀가루 4큰술, 잣가루·채썬 대추 1큰술씩, 꿀·식용유 적당량, 소금 약간, 물 3큰술 만들기 1 우엉은 깨끗이 씻어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뒤 껍질을 칼등으로 벗긴 다음 반 갈라 찜통에서 5~7분간 부드럽게 쪄내어 식힌다. 2 찹쌀가루와 소금을 섞은 뒤 농도가 되직할 정도로 물을 붓고 반죽해 냉장고에 넣어둔다. 3 ①을 나무 방망이로 살살 두들겨 넓게 편 뒤 ②로 옷을 입히고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약한 불에 노릇하게 앞뒤를 익힌다. 4 접시에 ③을 가지런히 담고 꿀을 뿌린 뒤 잣가루와 채썬 대추를 올려 낸다. 간장소스에 부드럽게 녹아든 다시마와 밤, 마늘, 대추의 조화 다시마 토란조림재료 토란·대추 10개씩, 밤 8개, 다시마 1장(10×10cm), 쌀뜨물 5컵, 조림장(통후추 6개, 마늘 5톨, 대파 1/2대, 양파 1/3개, 간장·설탕 1/3컵씩, 맛술 1큰술, 다시마 국물 5컵) 만들기 1 토란은 껍질을 벗기고 쌀뜨물에 30분간 담가 아린 맛을 뺀 뒤 냄비에 쌀뜨물과 물을 자작하게 부은 다음 중간 불에 삶아 건진다. 밤은 껍질을 깐다. 2 다시마는 끓여 국물을 만든 뒤 건져 5×0.5cm 크기로 썰어 매듭을 짓고 이 매듭을 10개만 준비한다. 3 볼에 분량의 조림장 재료를 통째로 모두 넣고 섞어 조림장을 만든다. 4 냄비에 대추와 밤과 조림장을 1/2 분량만 넣고 밤이 익을 때까지 끓인 뒤 토란과 다시마 매듭을 넣은 다음 다시 나머지 조림장을 넣어 약한 불에 조림장을 숟가락으로 고루 끼얹어가며 윤기 나게 조려 낸다.새콤한 레몬 향의 연근이 식감을 자극하는 꽃 연근 레몬소스 절임 재료 연근 150g, 비트 30g, 레몬 1개, 양파 1/2개, 무 1/3토막(12cm길이), 월계수 잎 2장, 식초 적당량, 절임장(통후추 6알, 올리브유 4큰술, 식초·레몬주스 2큰술씩, 피클링 스파이스 1큰술, 통후추·소금 1/2큰술씩) 만들기 1 연근은 껍질을 벗겨 얇게 저민 뒤 꽃 모양으로 깎은 다음 식초를 넣은 물에 데친다. 살짝 데친 뒤 바로 찬물에 씻어 건진다. 2 비트와 무는 꽃 모양 틀로 찍거나 깎는다. 레몬과 양파는 반 갈라 길게 썰어 네 쪽을 만든다. 3 볼에 분량의 재료를 넣고 고루 섞어 절임장을 만든다. 4 연근, 비트, 레몬, 양파를 월계수 잎과 함께 병에 담고 절임장을 부은 뒤 냉장고에 넣어 하루 정도 색이 배도록 둔 다음 꺼내어 접시에 담는다. 은은한 마늘 향의 풍미와 참마가 어우러진 마늘소스 마양갱재료 참마 150g, 한천가루 2와 1/2큰술, 꿀 2큰술, 소금·잣가루 약간씩, 5% 식촛물(물 1컵:식초 1큰술), 물 2컵, 마늘소스(마늘 6톨, 참기름 2큰술, 흑설탕·참깨 1작은술씩, 우유 1/3컵) 만들기 1 참마는 껍질을 벗긴 뒤 깨끗이 씻어 5%의 식촛물에 5분 정도 담가 갈변을 없앤 뒤 강판에 간 다음 체에 밭쳐 마의 점성을 충분히 제거한다. 2 냄비에 물을 붓고 한천가루를 넣은 뒤 30분간 그대로 두었다가 약한 불에 서서히 녹인다. 어느 정도 녹으면 꿀을 넣고 소금 간해 한천가루를 완전히 녹인 뒤 냄비째 찬물에 담가 한김 식힌다. 3 ②에 ①의 마를 잘 섞은 뒤 틀에 붓고 냉장고에 넣어 굳힌다. 4 달군 팬에 마늘을 굽고 우유를 부어 약한 불에 마늘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끓이면서 조린다. 마늘이 익으면 참기름, 흑설탕, 참깨와 함께 블렌더에 곱게 갈아 마늘소스를 만든다. 5 마젤리가 꾸덕꾸덕하게 굳으면 틀에서 뒤집어 꺼낸 뒤 접시에 담아 마늘소스를 곁들인 다음 잣가루로 장식해 낸다. 양지머리 육수의 감칠맛과 햇 견과류의 고소함을 더한 햇 견과류 가을 무조림재료 은행 8개, 밤·호두 4개씩, 단호박 1/6개, 무 1/3토막, 잣·솔잎 약간씩, 조림장(간장 2큰술, 식용유 1큰술, 설탕·물엿 1/2큰술씩, 참기름 1작은술, 양지머리 육수 2컵, 다시마 국물 1컵) 만들기 1 은행과 밤, 호두, 단호박은 껍질을 깐 뒤 잘게 깍둑썬다. 무는 껍질째 씻어 6cm 길이로 통째로 썰어 껍질을 벗긴 뒤 무의 위아래에 열십자로 칼집을 넣는다. 2 냄비에 무를 넣고 조림장 재료 중 간장, 식용유, 설탕, 물엿, 참기름을 넣고, 양지머리 육수와 다시마 국물은 분량의 반만 부은 뒤 한소끔 끓인 다음 중간 불로 줄여 무에 간장이 잘 배도록 조린다. 어느 정도 간이 배면 불을 약하게 줄이고, 나머지 양지머리 육수와 다시마 국물을 부은 뒤 은행, 밤, 호두, 단호박을 넣어 함께 조린다. 3 ②의 조림장이 1큰술 분량 남았을 정도로 조려지면 무를 건져 접시에 담고 남은 조림장을 뿌린 뒤 은행, 밤, 호두, 잣을 골고루 얹은 다음 솔잎으로 장식한다. ■장소 협찬 / 삼청각(02-765-3700, www.3pp.co.kr) ■그릇 협찬 / 단고재(02-775-8337, www.edangozai.com) ■요리&스타일링 / 정신우(Vione77@naver.com), 김기영, 김고은(어시스트) ■진행 / 김민정 기자 ■사진 / 이주석
재연 드라마의 숨은 주역들 장대지·이중성·유재익
2004. 01. 01 연예
“3류 연기자로 보지 마세요. 단 한 꼭지라도 ‘서프라이즈’에서는 주인공이랍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재연 연기로 일약 급부상하고 있는 장대지·이중성·유재익· 재연 드라마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한다. 정통 드라마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며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무대 위에서 어느 순간 사라지는 연기자가 아니라 영원히 자리매김할 수 있는 연기자로 남길 희망하는 그들과의 이야기. 미소가 아름다운 남자 장대지 누구 닮았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는 그는 KBS 신세대 탤런트 출신이다. 작은 팬 카페는 어느 새 팬클럽이 될 만큼 규모도 커졌다.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행동도 조심스러워졌다. 고등학교 때 교복 CF에 출연하면서 연예인의 꿈을 키웠다. 끼와 재능을 눈여겨봤던 연출가에 의해 KBS ‘신세대보고 - 어른들은 몰라요’로 처음 데뷔를 했지만 미션 스쿨인 이유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연예활동을 포기해야만 했다. 어머니의 얼굴을 모르고 자란 어린 시절,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옷 하나도 늘 깨끗이 다려 입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기에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군대 제대 후 방송국에서 연락을 받고 다시 연기를 하게 된 그는 스스로도 인생의 두번째 기회라고 말한다. ‘서프라이즈’는 MBC 30기의 등용문이었다. 지난해부터 합류하게 된 그는 요즘 연기를 통해 인생의 참맛을 느낀다고 한다. 갑자기 빠져버린 캐스팅에 대타로 기용된 그는, 배우는 그 역할이 중요하든 중요하지 않든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 몇 컷을 찍기 위해 아침부터 고생한 기억 때문에 ‘서프라이즈’는 다시는 출연하고 싶지 않았지만 성실한 자세로 연기하는 그를 보고 연출가도 러브콜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인연으로 지금까지 ‘서프라이즈’를 대표하는 배우로 남을 수 있던 것이다. 새해에는 3월부터 시작하는 SBS ‘광수생각’을 소재로 5분 단막극에 출연할 예정이다. 처음 1회부터 10회까지는 차태현과 손예진이 출연하고 11회부터 1백 회까지는 주연을 맡기로 했다. 또 해외에 출품하기로 한 ‘이현 미루이 집’에 출연할 예정이다. 과묵함 뒤에 숨어 있는 미소의 주인공 유재익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악역 전담배우답게 느껴지는 카리스마도 범상치 않다. 연기를 하게 된 계기는 1989년 ‘신의 아그네스’라는 연극을 보고 문화적인 충격을 받고서부터다. 그로 인해 잘 나가던 회사도 그만두고 과감히 연극에 몸을 던졌다. 가족들에게는 2년 동안 회사를 그만둔 사실을 숨기며 그동안 받은 월급으로 생활했다. 생계를 위해서 막노동도 해보고, 포스터 붙이는 아르바이트도 했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건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연기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에 기존 배우들이 재교육받을 수 있는 과정에 일반인임에도 불구하고 참가하게 됐다.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분위기에 휩쓸려 어울려 다닌 게 지금은 후회스럽다. 그때 많이 배워둘걸 하는 후회가 새록새록 밀려든다. 그래서 연기의 꿈을 저버릴 수 없는 것이다. 뒤늦은 선택이지만 그 선택이 옳았음을 밝히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검증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서서히 깨닫는다. 지금까지 작품 중에서는 ‘대권 무림’이라는 정치풍자 소설을 희곡화한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방송은 1994년 ‘경찰청 사람들’을 통해 첫발을 내밀었다. 물론 그때 배역은 범인이었다. 그 때 재연 드라마를 하고 지금껏 재연 드라마는 피했다. 오히려 더 퇴보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에. 우연한 기회에 출연을 한 ‘서프라이즈’는 정말 선택을 잘했다고 느낄 정도다. 지금까지 세 번 밖에는 출연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기억에서는 오랫동안 출연해왔던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만큼 잘은 몰라도 어디선가 많이 본 친근함을 느껴서인 듯. 아직 솔로인 그는 독립 영화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에서 출연하기도 했다. 비록 한 컷이고 원조교제하는 여자를 겁탈하는 역이지만 최선을 다한다. 연기는 바로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 나약함 뒤에 드러낸 연기의 열정 이중성 고등학교 시절에 우연히 접한 연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 부모님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길 원했기 때문. 중3 때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보고 매료되어 연기자의 꿈을 키웠다. 연기보다는 춤에 더 일가견이 있어 보이는 그는 재즈댄스와 탭댄스도 수준급. 시카고의 연출가 밥 파시의 무대연출을 보고 느꼈던 것은 저런 작품을 하는 사람들은 실력뿐 아니라 재능도 뛰어날 것 같다는 것. 뮤지컬 오디션을 보던 날, 쟁쟁한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합격을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의외로 좋은 점수를 받아 뮤지컬을 시작한다. ‘서프라이즈’에 합류한 지는 1년이 채 안 되었다. 마스크의 이미지 때문인지 일본인 역할은 도맡아하고 있다. 평범한 배역을 맡아 연기를 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배역은 소화하기 힘들 것 같았던 그에게 처음 맡겨진 배역은 일본인 무사. 나풀거리는 바지와 긴 일본도를 찬 모습을 상상해봐라. 거기에 머리까지 쪽을 진다면 누가 봐도 여지없는 일본인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그는 3년째 삼성신입사원을 연수하는 강사로 있다. 누군가가 힐끗 쳐다보며 수군거리면 먼저 다가가 방송 나온 적이 있다고 말한다. ‘서프라이즈’를 처음 찍고 다른 드라마 촬영 때문에 스키장에 갔을 때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진 찍자고 한 것이 새삼 기억에 남는다. 박효신의 ‘좋은 사람’ 뮤직비디오 찍을 때 발레를 선보였는데 그때의 모습이 지금은 소중히 다가온다. 역시 춤과 연기는 어느 하나 소홀히 하기엔 너무 비중이 크다. 아직은 2년차 햇병아리지만 커다란 암탉이 될 때까지 노력하겠다. 글 / 강승훈(객원기자)  사진 / 강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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