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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총 8 건 검색)

[박희숙의 명화로 보는 신화](11)딸 돌아오자… 대지에도 행복이 가득(2022. 05. 20 15:41)
2022. 05. 20 15:41 문화/과학
식용유 대란이다. 식용유를 1인 1병씩만 마트에서 판매한다고 한다. 식용유가 품귀현상을 일으키는 이유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밀, 옥수수, 해바라기를 농사지을 수 없어서다. 그리스 신화에서 농사를 관장하는 신은 데메테르다. 데메테르가 농사에 관여하지 않는 시기는 딸 페르세포네가 지하에 있을 때다. ‘페르세포네의 귀환’ (캔버스에 유채, 리즈 시립미술관 소장) 데메테르는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딸 페르세포네를 낳았다.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신 하데스는 아름다운 페르세포네를 사랑해 결혼하려 했지만, 어머니 데메테르는 딸을 영원히 하계의 어둠 속에서 살아가게 할 수 없다며 하데스의 청을 거절했다. 하데스는 페르세포네가 시칠리아의 숲에서 오케아노스의 딸들과 꽃을 꺾으며 놀고 있을 때 순식간에 마차에 태워 지하세계로 데려간다. 데메테르는 딸이 하데스에게 납치됐다는 사실을 듣지만, 지하세계로 찾아갈 수 없어 거처인 시칠리아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데메테르가 움직이지 않자 대지는 곡식을 생산할 수 없었고 초목은 메말라갔다. 그러자 굶어죽은 사람들이 늘어났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다 못한 제우스신은 하데스에게 페르세포네를 데메테르에게 돌려보내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페르세포네는 지하세계에서 석류 하나를 먹었기 때문에 지상으로 복귀할 수 없었다. 하데스가 지하세계에서 뭔가를 먹은 사람은 누구든 지상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규칙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우스신은 형 하데스와 데메테르에게 페르세포네가 1년의 3분의 2는 지상에서 보내고 나머지는 저승에서 하데스의 아내로 살도록 중재했다. 그래서 페르세포네가 하계에 있는 동안에는 데메테르가 슬픔에 빠져 대지를 돌보지 않아 농사를 지을 수 없다. 페르세포네가 지상으로 올라오는 시기에는 데메테르가 기쁨에 넘쳐 대지에 온갖 생물이 자라난다. 데메테르가 딸을 맞이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 프레더릭 레이턴(1830~1896)의 ‘페르세포네의 귀환’이다. 동굴 입구에서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여인이 데메테르다. 데메테르가 입구에 서 있는 건 지하세계로 들어갈 수 없음을 암시한다. 페르세포네의 얼굴이 창백한 건 그가 아직 지상에 도착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페르세포네를 안고 있는 남자가 전령사 헤르메스다. 독수리 날개가 달린 지팡이는 헤르메스를 상징한다. 그는 지상에서 지하까지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이 작품에서 맑은 하늘과 꽃이 핀 대지는 계절의 변화를 나타낸다. 데메테르의 행복을 의미하기도 한다. 동굴 속에 있는 축 늘어진 식물은 페르세포네가 있던 저승을 암시한다.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이 한국에까지 영향을 끼칠 줄은 몰랐다. 식용유에 이어 밀가루도 구입을 제한한다고 한다. 빵이 주식이 아님에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다.
박희숙의 명화로 보는 신화
[만화로 본 세상]우리 할머니-일본 대지진 쓰나미에 쓸려간 할머니의 기억(2019. 08. 30 14:31)
2019. 08. 30 14:31 문화/과학
이 만화를 덮고 나면 돌봄노동에 대한 딜레마가 결국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세계가 직면한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계만화학원>을 펴낸 오스카 에이지는 책의 서문에서 “만화와 관련된 사람들은 마치 ‘어디로든 문’을 갖고 있는 것처럼 다양한 현실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썼다. 이는 세계를 돌며 만화 워크숍을 열어온 필자의 경험을 반영한 것으로, 국가 간 관계가 어떻든지 만화에 대해서만큼은 서로의 현실을 나누고 이해할 수 있는 문이 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노재팬 운동’이 열기를 띠는 지금, 구태여 일본만화를 소개하려는 것도 나 역시 ‘만화는 어디로든 문’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니코 니콜슨 작가의 만화 중 한 장면 / 학산문화사 다소간의 용기를 내어 소개하고 싶은 책은 만화 <우리 할머니>다. 만화는 다음의 대사로 시작한다. “있지, 엄마랑 같이 죽어버릴까 싶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던 니코의 엄마 사와코가 딸 니코에게 건넨 말이다. 초반에 니코는 할머니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되레 사와코를 나무라는데, 이후 니코가 직접 집에 내려와 목격한 할머니는 이미 치매가 손쓸 도리 없이 진전되고 있는 상태였다. 이미 이사 간 이웃을 찾아 동네 어귀를 서성거리거나 화장실 가기를 잊고 속옷에 볼일을 보는 것도 예사다. 이후 치매 증상이 더 심해지면서 할머니는 수시로 감정의 언덕을 오르내리며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니코와 사와코에게 온갖 분노를 쏟아붓는다. 할머니는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니코는 할머니가 ‘자라온 땅에서 뿌리째 뽑힌 듯’ 기운을 잃어간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실제 그대로다. 할머니는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수십 년간 살아왔던 집과 마을을 모두 쓸려보냈다. 힘들어하는 할머니를 위해 사와코는 최대한 이전의 집과 같은 모양새로 집을 복구하지만, 그래도 이미 사라진 마을과 떠나간 마을사람들까지 돌아오진 않는다. 대지진 이후 상태가 나빠지는 할머니를 보면서 사와코는 지진 당시 쓰나미에 휩쓸려가던 할머니를 기어코 살려낸 자신을 자책하기에 이른다. 니코와 사와코는 할머니에 대한 책임감으로 끈질기게 버텨내면서, 울고 쓰러지고 괴로워하다가 잠시 행복에 젖고 다시 통곡하는 일상을 반복한다. 이 만화를 덮고 나면 돌봄노동에 대한 딜레마가 결국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세계가 직면한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국내에서 연재된 웹툰 <우두커니>도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돌보는 내용의 일상툰인데, 이 만화도 <우리 할머니>처럼 결국 환자를 시설에 모시는 것으로 귀결된다. 돌봄시설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 한국 사회를 넘어 바다 건너 나라인 일본에서도 돌봄문제에서만큼은 우리만큼이나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 더 눈에 띈다. 여기에 만화가 ‘어디로든 문’이어야 하는 이유가 숨어 있다. 일본산 제품들도, 일본 여행도 막아야 하는데 만화가 뭐라고, 만화만큼은 ‘어디로든 문’이 되어야 하나. 비단 만화가 ‘제9의 예술’이기 때문이기에 그런 건 아니다. 나는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서로의 현실을 인식하고 공동의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이야기’만큼은 자유롭게 흘러 다녀야 한다고 여긴다. 이야기의 물길을 만드는 일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출구를 무엇보다 ‘함께’ 상상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연다. 그것이 국경을 넘어선 이야기의 힘이다.
만화로 본 세상
[와인기행]갈색의 대지에서 탄생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2012. 12. 31 13:43)
2012. 12. 31 13:43 문화/과학
토스카나 와인을 처음 세계에 알린 것은 가볍고 마시기 좋은 키안티 와인이지만, 일등공신은 19세기 이후에 탄생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다. 몬탈치노를 여러 차례 방문하였지만 항상 가슴이 두근거린다. 녹색과 갈색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구릉들이 마치 파도처럼 전개된다. 토스카나의 전형적인 자연, 포도원과 올리브농원 사이로 키다리 사이프러스가 줄지어 서 있다. 이런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 와인애호가가 아닐지라도 감동하게 된다. 토스카나의 자연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요 극장이다. 몬탈치노성에서 바라본 광활한 갈색대지와 왼편에 중세마을의 고색창연한 좁은 골목이 보인다. 이탈리아 중부의 심장에 위치한 토스카나는 피에몬테와 함께 이탈리아 와인 산지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피렌체, 피사, 루카, 시에나, 몬탈치노 등 어디를 가나 고색창연한 역사의 흔적과 르네상스의 찬란한 문화가 배인 예술적인 마을들이 즐비하다. 뿐만 아니라 적당한 높이의 구릉을 따라 전개되는 토스카나 지방의 토양은 찬란한 태양과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최적의 와인 생산지이기도 하다. 토스카나 지방의 주요 와인 산지로는 피렌체 남부지방에 위치한 시에나를 중심으로 키안티와 키안티 클라시코, 몬탈치노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가 있다. 또 몬탈치노와 동쪽에 이웃하고 있는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 외에 최근 수퍼 토스칸으로 유명해진 토스카나 서쪽 해안지역의 볼게리 지역이 있다. 아름다운 브루넬로의 갈색 토스카나 와인을 처음 세계에 알린 것은 가볍고 마시기 좋은 키안티 와인이지만, 일등공신은 19세기 이후에 탄생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다. 몬탈치노 역시 키안티 와인처럼 이탈리아의 토착품종인 산지오베제로 만들지만, 100% 몬탈치노 지역에서 재배된 산지오베제만으로 양조해야 한다. 몇 년 전 이탈리아 사법당국이 이 와인에 다른 품종을 배합하였다고 하여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간 스캔들이 있었다. 와인의 품질 보증 제도가 얼마나 엄격한지를 보여주며 와인은 진실의 술이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사건이었다. 몬탈치노 남동쪽 외곽에 있는 비온디 산티 와이너리는 그 역사를 간직한 듯 오래된 사이프러스 가로수 길과 더불어 담쟁이넝쿨로 뒤덮인 건물이 인상적이다. 원래 브루넬로는 산지오베제 그로소를 표현하는 현지 방언인데, 지금은 포도품종으로 쓰이고 있다. 브루넬로는 갈색을 뜻하지만 단순한 갈색이 아닌 매혹적인 갈색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와인을 갈색의 대지에서 탄생한 ‘아름다운 브루넬로의 갈색’이라고 하면 어떨까?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최소 2년 동안 오크통에 숙성시키고 다시 병에서 4개월 이상 숙성시킨 후, 포도 수확 5년차 1월에 출시하도록 엄격하게 법으로 정해져 있다. 이것이 브루넬로가 매혹적인 진홍색과 함께 남성적인 강건함 그리고 풍부한 과일향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짜임새 있는 명품와인이 된 비결이다. 브루넬로는 최소한 10년에서 심지어 50년까지 숙성하여도 여전히 그 힘을 잃지 않고 개성을 유지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진하고 강렬한 풍미 5년을 기다릴 수 없는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브루넬로의 대체품으로 수확 이듬해 9월에 출시하는 로소 디 몬탈치노(Rosso di Montalcino)가 있다. 이 와인은 투자비를 조기 회수할 수 있어 와이너리들의 자금흐름에 도움이 된다. 로소 디 몬탈치노가 비록 브루넬로와 비견될 수 없지만 나름의 개성과 풍미는 어떤 와인과도 견줄 수 있는 와인이다. 브루넬로 와인의 탄생은 몬탈치노만이 갖고 있는 테루아(토양)와 이 테루아에 맞는 포도품종의 개발, 그리고 현대적인 양조기술이 빚어낸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몬탈치노는 남쪽에 폭풍우를 막아주는 해발 1700m의 아미아타산, 바다가 가까워 따뜻하고 건조한 기후, 해발 500m까지 이어진 점토질과 이회토의 테루아는 세계에서 가장 농축되고 강건한 산지오베제의 생산을 가능케 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클레멘테 산티 가문의 공헌을 빼놓을 수 없다. 어쩌면 오늘의 브루넬로 와인의 탄생은 전적으로 산티 가문이 없었으면 지금도 한낱 척박한 몬탈치노의 한 지역 와인으로 끝났을 것이다. 산지오베제 그로소(브루넬로)가 이 곳 토양에 맞을 것이라고 확신한 산티는 19세기 중반부터 이 포도나무를 심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진하고 강렬한 풍미의 위대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을 탄생시켰다. 현재 200여개 와이너리에서 일 년에 400여만병을 생산하고 있는 이 와인은 산티 가문의 혁신적인 도전정신이 있어 더 향기롭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몬탈치노 남동쪽 외곽에 있는 비온디 산티 와이너리는 그 역사를 간직한 듯 오래된 사이프러스 가로수 길과 더불어 담쟁이넝쿨로 뒤덮인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카스텔로 반피의 유리박물관 내부 모습. 고성에서 열리는 와인 페스티벌 몬탈치노 남서쪽 성안젤로스칼로 인근에 위치한 카스텔로 반피 와이너리는 미국에 뿌리를 둔 세계적인 와인 거상이다. 11세기 중세에 세워진 반피성에 있는 마리아니 박물관은 설립자 마리아니에게 헌정하는 세계적인 유리박물관으로 불, 유리, 와인을 연계한 테마 박물관이다. 기원전 15세기부터 로마제국시대 그리고 현대까지의 다양하고 방대한 수집품들은 유리잔을 통해 암흑기부터 황금기까지 모두 보여준다. 카스텔로 반피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답게 와인산업을 호스피탈리티 사업과 연계하여 성공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 유리박물관, 와인시음장과 숍(Enoteca), 전통 레스토랑(Taverna Banfi), 14개의 방을 갖춘 고성 호텔과 와이너리 관광 등 2차 세계대전에 폐허로 변한 이 곳을 호스피탈리티 센터로 개축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남쪽으로 부드럽게 뻗어 있는 구릉, 총 2900ha(870만평)의 광활한 땅에 포도밭, 올리브, 밀, 과수원, 사슴목장을 소유한 반피의 제국을 건설하였다. 이곳에서는 최상급 와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리제르바급인 포지오알로로(Poggio all‘Oro)부터 엑셀수스, 그리고 화이트와인까지 생산된다. 에노데카에서 시음한 여러 와인들 중 플래그 십 와인인 가스텔로 반피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2004 빈티지는 브루넬로 와인의 전형이었다. 진한 루비색에 체리와 블랙베리향, 가죽과 스파이시한 풍미에 산미가 강하게 느껴지나 부드러운 타닌이 입안을 꽉 채우는 풀 보디의 균형 잡힌 와인이었다. 왜 바티칸 왕국의 셀라에 납품되고 있는 와인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중세마을인 몬탈치노의 좁은 골목을 따라 해발 500m 정상에 남성미를 자랑하며 서있는 몬탈치노성에 도착했다. 성 안은 텅 비어 있었다. 14세기 시에나의 요새로 축조된 성은 여름이 되면 와인 앤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다. 성의 망루에 올라서면 토스카나의 자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끝없이 펼쳐진 갈색의 대지는 이곳이 토스카나임을 말해준다. 중세 이탈리아의 정치적 혼란기였던 만큼 주인이 바뀌었던 마을이다. 지금은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 하나로 문화, 역사, 예술이 어울리는 낭만의 성, 토스카나의 보석이 되었다. 시에나로 가는 노을 길에 마주한 해바라기 밭과 사이프러스가 지평선을 만든 들녘을 지나면서 다양한 자연을 반영하는 몬탈치노 와인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글·사진|송점종 j-j-song@hanmail.net
와인기행
[북리뷰]대지진 참사 1년, 일본이 주는 교훈
[북리뷰]대지진 참사 1년, 일본이 주는 교훈(2012. 03. 27 15:23)
2012. 03. 27 15:23 문화/과학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를 휩쓴 쓰나미와 이로 인한 원전 폭발은 전에 없던 재앙이었다.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나도록 일본은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자 김대홍은 KBS 도쿄 주재 특파원으로서 그때의 대재앙을 지켜볼 수 있었다. 뉴스로 미처 전달하지 못한 생생한 현장 이야기와 그 후 일본 사회가 겪고 있는 변화가 책에 담겨 있다. 책 전반부는 지진이 일어나던 날에 저자가 겪은 상황을 그리고 있다. 쓰나미 경보가 내려진 후 대피 독려 방송을 하다가 숨진 젊은 여직원 엔도 미키씨, 순식간에 목숨을 잃어버린 소방대원들에 관한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김대홍 지음·올림·1만4000원 저자도 지적하듯이 쓰나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원전 폭발로 인한 방사능 오염이다. 일본 정부는 방사능 오염을 솔직하게 인정하기보다는 사회적 안정을 되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러다 보니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만 가고 있다. “일본인들이 재앙 앞에서도 질서를 지키고 슬픔을 안으로 새긴다”는 이야기도 옛말이라고 저자는 전한다, 일본인들은 이제 일상적인 먹거리가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았을까 걱정하게 됐다. 심지어 수돗물도 방사능에 오염되었을 것이라는 걱정을 하게 되었으니 상황이 심각하다. 일본 정부와 원자력 과학자들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 ‘생각지 못했던 일’(‘소키가이·想定外’)이라고 하지만 저자가 만난 많은 과학자들은 후쿠시마 사고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수 차례 경고했기 때문에 후쿠시마 사고는 ‘과학적으로 예측가능한 일’(‘소테나이·想定內’)이라고 말한다고 전한다. 익명을 조건으로 취재에 응한 과학자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한 정부의 발표에 의문이 많다고 말했다. 쓰나미 이전부터 후쿠시마 제1원전에는 문제가 있었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았다고 저자는 전한다. 후쿠시마 원전이 연쇄폭발하게 된 원인은 쓰나미로 인해 비상발전기가 고장이 나서 냉각기능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처음부터 바닷물을 주입했더라면 온도를 낮추었을 것이고, 그러면 수소 발생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자로에 바닷물을 주입하면 원자로가 못쓰게 되는 것을 알고 있던 전력회사 경영진이 바닷물 주입을 망설이는 바람에 상황을 키웠다. 후쿠시마 1호 원전에는 냉각수 수위 측정기가 고장이 나 있어서 당시 상황의 심각성을 잘 몰랐을 것이라는 말마저 있다. 일본 정부와 전력회사가 정보를 숨겨서 이 같은 대형 원전사고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와 원전 사업자에겐 이런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일본의 왜곡된 원자력정책이 초래한 바가 크다는 지적이 많다고 저자는 전한다. 원전업계의 연구비를 받는 교수, 발전회사의 후원금에 의존하는 정치인들 때문에 기약도 없는 폐연료 재처리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가고 있다는 평가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전역에 있는 54개 원전 가운데 52기가 점검 등의 이유로 멈춰서 있고, 2012년 5월부터는 나머지 2개도 중단할 예정이어서 그 후로 일본 국민들은 원전 없이 생활을 해야 한다. 원전에 의존해온 일본의 원자력정책과 일본인의 삶에 어떤 변화가 올지에 대해선 우리도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우리나라는 일본 못지않게 원자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에 특히 그러하다. 쓰나미와 원전 폭발은 일본 정치에도 지진을 일으켰다. 집권 민주당 정권은 취약해서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반면 이시하라 도쿄 도지사,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 같은 대중선동형 우익 정치인들의 입지가 좋아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후지산이 곧 폭발할 것이라는 등 자연재앙에 대한 공포감도 커가고 있다. 3·11 대지진으로 일본 열도가 뒤틀려버려서 이해하기 어려운 자연현상이 일본 열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과연 “일본에 미래가 있을 것인가” 하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늘어가고 있다. 천재와 인재를 동시에 겪은 일본의 경험으로부터 우리도 교훈으로 삼을 것이 많음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이상돈
북리뷰
[표지이야기]대지진이 남긴 ‘참혹한 상흔’(2011. 03. 23 17:24)
2011. 03. 23 17:24 국제
연속적으로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후쿠시마 제1원전의 폭발 전후 모습. 지오아이에서 제공한 위 사진은 2009년 11월 15일, 디지털 글로브에서 제공한 아래 사진은 지난 3월 14일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일본 미야기현 나토리시의 지진 전후 모습. 작년 4월 4일과 지진 다음날인 지난 3월 12일의 위성 촬영 사진이다. 일본 지진의 최대 피해지역인 미야기현 센다이시의 센다이 공항. 작년 8월 3일과 지난 3월 12일의 위성 촬영 사진이다. 센다이시를 떠나는 아이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다. |연합뉴스 미야기현 게센누마시에서 자위대 대원이 주민을 구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우라 레이코(68)가 쓰나미 피해지역인 이와테현 오쓰치정에서 실종된 조카를 찾고 있다. |연합뉴스 미야기현 센다이시의 한 대피소에서 아이들이 카드놀이를 하며 밝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원전이 폭발했고, 해안선이 달라졌다. 규모 9.0의 지진과 10m 높이의 쓰나미로 인해 2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사망·실종됐다. 지오아이(GeoEye) 등 고화질 위성사진 제공업체들은 피해지역의 재앙 전후 사진을 공개했다. 폭발한 후쿠시마 원전의 모습이 선명히 찍혔고, 쓰나미로 온 마을이 통째로 쓸려나간 모습도 담겼다. 위성사진에 찍힌 그 자리에는 10만명의 일본 자위대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구조대가 한 명의 생존자라도 더 찾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실종자들을 찾아 현장에 온 가족들도, 피해지역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편 주민 대다수는 대피소에 모였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집단 피난생활에도 아이들은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표지 이야기
[친디아 리포트]대지진서 살아 남은 자의 슬픔
[친디아 리포트]대지진서 살아 남은 자의 슬픔(2008. 06. 12)
2008. 06. 12 국제
중국 사랑하는 가족 잃고 생활터전마저 무너져 앞으로 살 길 막막 중국은 지난 5월 12일 발생한 쓰촨성 대지진의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7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나왔고 실종자도 2만 명에 달하는 중국 역사상 보기 드문 자연재해기 때문이다. 현재 구조 작업은 끝났고 복구 작업이 한창이지만 여진이 계속되는데다 지진으로 생겨난 자연호수(언색호)가 붕괴 위험을 맞고 있고, 전염병이 발생할 위험 때문에 중국 당국은 긴장하고 있다. 지진으로 죽은 사람들의 사연도 절절하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지금 우리에게 또 다른 아픔을 안겨주고 있다. 쓰촨성 베이촨현. 이번 지진의 최대 피해 지역이다. 이곳에 사는 농민 룽밍푸(62)는 5월 12일 오후 2시 28분 산기슭에 있는 자신의 밭에서 아내와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산 아래 마을의 땅이 파도처럼 뒤집어 지더니만 검은 연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는 지진이 일어난 줄 직감하고는 산 아래 집으로 달려갔다. 집은 산에서 밀려든 돌멩이와 자갈 때문에 100여m 밀려가면서 완전히 잠겨버렸다. 마을로 달려가자 곳곳에서 살려달라는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유치원 무너져 여동생 시체 못찾아 그는 학교에 간 손자 2명이 생각났다. 그는 먼저 작은 손자가 1학년에 있는 취산 초등학교를 찾았다. 학교 건물이 박살이 난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다른 학부형들과 마찬가지로 건물 폐허 더미에 올라가서 큰 소리로 손자 이름을 불렀다. 여진은 계속 되고 발아래 콘크리트가 계속 움직였지만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10여 분을 외친 다음에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지나가면서 말했다. “찾지 마세요. 손자는 선생님과 운동장에 있었거든요. 아무 일 없어요” 작은 손자의 손을 잡고 학교를 빠져나오면서 그는 학교 앞의 유치원 건물이 무너진 것을 발견했다.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유치원은 여동생이 일하던 곳이었다. 여동생은 유치원이 무너지면서 수십 명의 원생과 함께 폐허 더미에 깔렸고 지금도 시체를 찾지 못하고 있다. 큰 손자는 베이촨 중학 1학년 학생이었다. 베이촨 중학에 가는 길에 그는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그동안 무너진 집에서 20여 년째 같이 살던 친정어머니(86)를 찾던 중이었다. “아무래도 어머니를 찾을 수 없어요” “그럼 손자부터 먼저 챙깁시다” 그들 부부는 베이촨 중학으로 갔다. 다행히 큰 손자는 별탈이 없었다. 지진이 났을 때 현 사무소에서 열린 예술공연에 참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이미 오후 5시가 넘었다. 저녁 7시가 되자 그는 집 주방 폐허 더미에서 먹을거리를 찾았다. 아내는 어디선가 옷가지를 찾았다. 그들 부부와 손자 2명 등 일가족 4명은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옮겨 음식을 먹었다. 저녁 9시가 너머 딸네 일가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그들 일가족은 베이촨에 더 이상 머물 생각이 없었다. 서둘러 쓰촨성 제2 도시인 양시로 걸어서 피난길을 떠났다. 그는 피난 사흘째인 5월 15일, 갑자기 집에 남겨둔 개 두 마리 생각이 났다. 구조작업을 하러 베이촨에 들어가는 군부대 차량을 얻어타고 집을 다시 찾았다. 집에 있던 개 두 마리 가운데 황소만한 개는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그는 개를 묶고 있던 목줄을 풀고는 “어서 가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이 암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다. 7·8년 동안 키웠던 정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진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정신없이 달려가는 개의 뒷모습을 그는 물끄러미 쳐다봐야 했다. 일가족은 지금 양시 주저우 체육관에 마련된 천막에 임시로 거주하고 있다. 그들 부부와 딸, 사위, 외손자가 일가족이다. 손자 2명은 광둥성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이 데려갔다. 지진으로 1978년에 지은 벽돌집은 완전히 무너졌다. 가족을 먹여 살리던 돼지 9마리도 이번 지진으로 모두 숨졌다. 특히 다음 달 새끼를 낳을 예정이던 암퇘지가 죽은 것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는 비교적 운이 좋았다고 자위하고 있다. 가족 중 2명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생필품 가게서 물건들 마구 집어가 베이촨현 레이구진 젠신촌. 장셴윈(70)은 폐허가 된 자신의 구멍가게를 떠나지 않고 있다. 그는 지진이 일어난 뒤 정든 집을 떠나는 다른 이재민들과는 달리 아무리 폐허라도 여기가 내 터전이라는 생각에서 가게를 지키고 있다. 이들 부부는 동네 어귀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했다. 목이 좋아 벌이가 꽤 솔솔 했다. 지진이 일어났을 당시 그는 기어서 가게에서 빠져나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가게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는 아내와 외손녀 2명을 안전지대로 피신시켰다. 하지만 그는 곧 야박한 인심을 절감해야 했다. 그날 밤, 폐허의 큰 돌덩이 위에서 잠을 청했던 그는 밤새 가랑비가 내렸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그만큼 피곤했던 것이다. 이튿날 새벽, 노인은 눈을 뜨자 가게 물건이 많이 사라졌음을 알았다. 갈수록 많은 동네 사람들이 물건을 ‘빌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체면이 있는지 빌려간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말도 없이 물건을 슬그머니 들고 가버렸다. 라면, 생수, 치약과 먹을거리, 일용품이 한눈에 사라졌다. 그는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가로막고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무릎까지 꿇고 애원도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가 마음을 비웠다. “마음대로 가져가시오” 노인은 장탄식을 했다. 지금 구멍가게는 담배 한 보루만 남았다. 두장옌시에 살고 있는 마칭춘(46·여)씨는 정리해고 노동자다. 그녀는 정리 해고된 뒤 지난 몇 년 동안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올해 초 회사 측은 정식으로 퇴직 통보를 하고 월 600위안(우리 돈 7만8000원)을 퇴직금조로 주고 있다. 남편(샤오더칭)은 두장옌시 임업국 산하 농장에서 근로자로 일하다가 지난해 11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을 산에 묻었을 때 11세 아들(샤오안)이 자신의 어깨를 부축하면서 “울지 마세요. 제가 집안에서 유일한 남자니까 앞으로 잘 보살펴 드릴게요”라고 말했다. 아들이 다니던 신젠 초등학교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마칭춘은 미칠 것만 같았다. 아들은 그 학교 5학년 1반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반 52명 학생 가운데 6명만 목숨을 건졌다. 마칭춘은 당시 시장에서 저녁거리를 사들고 오는 길이었다. 살고 있던 아파트 어귀에서 지진을 만났다. 경비실이 풀썩 무너지고, 단층 건물들도 잇따라 무너져내렸다. 그녀는 급히 도망쳐 화를 면했다. 이웃 주민이 지나가면서 신젠 초등학교 건물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다리가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웃 주민이 부축해서 도로변 벤치로 데려갔다. 작년에 남편 잃고 올해 아들마저 그녀는 벤치에서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신젠 초등학교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서둘러 학교를 가보니 정말로 건물이 무너져 있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그녀는 아들 이름을 부르면서 헤매고 다녔다. 순간적으로 빗물이 흥건한 학교 운동장 바닥에 기절해 쓰러졌다. 해방군 병사가 그녀를 들것에 옮겼다. 담임교사가 달려와 “아드님이 세상을 떠났다”고 울면서 말했다. 그녀는 “그럴 리가 없다. 아들이 떠났을 리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5월 14일 오전 8시, 마칭춘은 학교에서 아들 시신을 보았다. 아들은 외상이 전혀 없었다. 그저 입과 코, 귀, 눈에 먼지와 흙이 잔뜩 들어 있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7일 만인 19일 오전, 강변을 거닐다가 아들과 비슷한 크기의 남자아이가 지나는 것을 보고 달려갔으나 아들이 아닌 것을 알고는 땅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마칭춘은 요즘도 하늘이 무심하다며 탄식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가족 2명이 사라진 것이다. 지진이 발생한 이후 그녀에게는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는 딸(22)이 유일한 혈육으로 남았다. 다른 가족과 함께 공용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녀는 이제 눈물마저 말랐다. 더 이상 아들과 비슷한 모습의 남자 애를 뒤따라가지도 않게 됐다. 아들의 시체를 직접 본 이후 그녀는 이미 몸과 마음이 마비 상태가 된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일이 걱정이다. 중국 쓰촨성 지진으로 발생한 산사태 때문에 생겨난 호수가 붕괴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말 피해가 우려되는 칭촨현에서 이재민들이 구조대원의 도움을 받아 피난길에 오르고 있다. 7만 명 이상이 숨지고, 2만 명 이상이 실종된 중국 대지진은 전염병 창궐 등 살아남은 자들에게도 고통을 주고 있다. 중국 어린이들이 지진이 발생한 쓰촨성 더양에 세워진 임시 천막 교실에서 활짝 웃고 있다. 지진 후의 고통 속에서도 다시 희망을 일구려는 중국 인민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인터넷 인민재판 ‘인육수색’ 최근 지진과 관련한 잘못된 발언으로 중국 네티즌의 표적이 된 여배우 샤론 스톤. 우리말로는 ‘인물 검색’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을 인터넷으로 공개수배하면서 신상정보를 샅샅이 알리는 것이다. 인터넷 인민재판이라고도 한다. 마녀사냥을 방불케 하는 네티즌의 공격은 구글, 바이두, 소후 등 중국의 주요 인터넷 사이트의 ‘인육수색’을 통한다. “누구를 찾는다”라는 수배령으로 시작하는 이 검색 엔진이 작동하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목표물의 이름과 직업, 학력 등을 찾아낸다. 이 같은 신상정보가 인터넷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네티즌의 공개재판을 받는다. 그동안 인육수색이 종종 있었지만, 쓰촨성 대지진으로 네티즌이 인육수색에 나서는 경우가 더 잦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여배우 샤론 스톤이 중국 네티즌의 ‘공적 1호’다. 샤론 스톤은 5월 24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중국 지진은 (중국 당국이 티베트 시위를 유혈 진압한) 업보”라고 주장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네티즌은 100만 명이 서명해 샤론 스톤을 비난하면서 “무지는 용서할 수 있지만, 모욕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흥분했다. 결국 네티즌의 분노를 감안해 프랑스 화장품 회사 디오르는 샤론 스톤이 모델로 나온 CF의 중국 내 방영을 중단하는 한편 샤론 스톤과 모델 계약을 파기해야 했다. 그녀가 단골로 참석하던 상하이영화제도 올해는 초청을 포기했다. 베이징대 출신으로, 쓰촨성 두장옌 광야학교에서 중국어 교사로 있는 판메이중 교사도 인육수색의 후폭풍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판 교사는 중국 최대 토론 사이트인 톈야에 올린 글에서 지진이 났을 때 자신이 학생들을 포기하고 먼저 도망친 과정을 생생하게 소개했다. 네티즌은 “선생님도 인간인 이상 지진이 났을 때 본능적으로 도망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의기양양하게 공개하는 것은 무례하다”고 비난하고 있다. 네티즌의 인육수색 대상이 된 인물로 랴오닝성의 한 여성을 꼽을 수 있다. 이 여성은 5월 21일 쓰촨 대지진에 대한 막말을 4분 40초 동안 내뱉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 여성은 다리를 탁자 위에 올린 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국무원(정부)의 결정으로 중국 전역에서 오락활동을 중단하라고 해 게임을 할 수 없게 됐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이 사실이 퍼지면서 네티즌은 분노의 표시로 13억이 함께 이 여자를 찾아내자는 운동을 펼쳤다. 인육수색 엔진이 작동했다. 21일 오후 1시쯤 이 여성에 대한 신상명세가 공개되고 경찰은 문제의 여성을 한 PC방에서 체포했다. 여성의 부모는 중국 국민에 사과의 편지를 공개하는 한편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예금액 전액을 이재민 돕기 성금으로 내겠다고 밝혔다. 인육수색이 좋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가끔 있다.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 구글 중국법인은 중국 지진 발생 4일째인 5월 16일 지진 피해자 및 부상자 가족 찾기 인육수색 작업을 시작했다. 첫날 10만 건의 접속 건수를 기록한 데 이어 17일에는 40만 건의 접속 건수를 자랑했다. 구글에 따르면 5월 20일 현재 344개 웹사이트를 통해 80개 병원이나 대피소에 머무르고 있는 부상자나 이재민 3만8284명에 대한 정보를 올려놓아 이중 1000여 명이 그리던 가족이나 친지를 찾는 데 성공했다. 홍인표iphong@kyunghyang.com
친디아 리포트
[전문병원탐방]칼 대지 않고 디스크 ‘원위치’(2006. 07. 11)
2006. 07. 11 사회
고도일신경외과 / 디스크 전문 고주파 수핵 감압술로 주변 조직 손상없이 치료… 5분 시술, 2시간 후 퇴원 고도일 원장이 디스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울산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성철씨(30)는 어느날 갑자기 장딴지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통증의 강도는 심해졌다. 검진 결과 ‘장딴지 근육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장딴지 부위에 깁스를 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고민 끝에 친지의 소개로 서울의 고도일신경외과(02-544-3805, www.godoil.com)에 내원한 김씨는 놀라운 결과를 들었다. 적외선 검사와 MRI 검사 결과 근육파열이 아니라 ‘디스크’라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허리디스크로 인해 좌골신경통이 발생한 것이다. 김씨의 경우 허리 통증이 전혀 없어 의료진조차 디스크를 의심하지 않은 탓에 빨리 치료하지 못했던 것이다. 김씨는 이 병원에서 고주파 수핵 감압술을 받은 후 완치의 기쁨을 누렸다. 방치하면 전신 통증 일으켜 우리 몸의 척추는 모두 33개의 뼈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골반 위 상체를 지탱하는 24개의 뼈 사이에는 물렁뼈가 있다. 이 물렁뼈는 뼈와 뼈를 서로 연결하면서 중력에 의해 척추가 받는 무게를 완화시키고 충격을 흡수하는 쿠션 작용을 한다. 이로 인해 뼈들이 서로 마찰 없이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추간판 탈출증’, 일명 ‘디스크’는 척추뼈 사이에 위치한 물렁뼈 조직이 나이가 듦에 따라 점점 딱딱하게 변성되고 이때 무거운 짐을 들 때 등 과도한 하중으로 빠져나와 주위 신경을 누르면서 생기는 질환이다. 특히 4, 5번 허리뼈와 엉덩이뼈 1번 디스크가 자주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다. 디스크의 초기 증상은 대개 허리와 엉덩이의 뒤쪽 통증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가벼운 근육, 인대 통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근육통을 동반한 경우, 허리를 굽히거나 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통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치료가 쉬워 빨리 전문의를 찾아 진료를 받으면 큰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초기 디스크를 치료하지 않거나, 초기 디스크 단계에서 낙상이나 교통사고 등의 사고를 당하면 중증디스크로 발전한다. 이때는 신경을 건드리는 정도가 커서 허리와 엉덩이는 물론이고, 허리, 허벅지, 무릎, 종아리, 발가락, 발등까지 통증이 번진다. 서울 강남구 논현역 부근의 고도일신경외과는 칼을 대지 않는 시술로 디스크를 치료하는 것으로 유명한 척추전문병원이다. 척추전문의만 7명이 포진해 있다. 특히 이 병원 대표원장인 고도일 원장은 1997~99년 청와대 물리치료실장으로 몸이 불편하고 나이가 지긋한 김대중 대통령 내외의 건강을 살폈을 정도로 실력파다. 그 명성으로 하루 평균 200여 명의 환자가 내원하고 있다. 고도일 원장은 “2~3주 정도 물리치료를 받아보아도 낫지 않고 통증이 지속된다면 약물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만약 약물치료를 한 후에도 통증이 지속된다면 이차적으로 피부 절개 없이 최소침습으로 이루어지는 고주파 수핵 감압술을 고려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단, 고주파 수핵 감압술은 중증디스크로 신경을 누르고 있는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경우에 시술한다. 중증인 경우엔 피부를 절개해 이루어지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재발 환자는 ‘경막 외 내시경’ 왼쪽_추간판 탈출증과 협착증이 진행된 허리의 모습. 오른쪽_치료 후 정상이 된 허리를 MRI로 촬영한 모습. 고주파 수핵 감압술은 피부 절개가 없기 때문에 전신마취가 필요 없고, 시술 중 출혈을 일으키지 않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출혈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수혈이나 기타 합병증 우려도 없으며, 수술 후 환부가 붓는 일 없이 바로 회복된다. 시술에 걸리는 시간이 5~2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시간에 구애 없이 받을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시술은 극소량의 국소마취 후 문제가 생긴 디스크 내에 가는 주사바늘을 삽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주사바늘을 통해 고주파를 쏘아 통증의 원인이 되는 디스크 수핵을 제거하는 것이다. 고 원장은 “고주파는 50도 정도의 저온이기 때문에 주변 조직을 손상시키지 않고 이상 부위만 제거한다”며 “보통 5분 정도의 시술로도 탈출한 디스크 부위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시술이 끝나면 2시간 정도의 회복시간을 가진 후 바로 퇴원할 수 있으며, 퇴원과 동시에 일상생활 복귀가 가능하다. 흉터도 남지 않는다. 고도일신경외과의 또 다른 강점은 ‘경막 외 내시경’ 시술이다. 간혹 피부를 절개해 이루어지는 디스크 수술을 받은 후에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수술 후 염증, 유착, 재발 등이 원인이다. 하지만 이미 수술을 한 탓에 더 이상의 치료 없이 고통을 감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막 외 내시경술은 이같은 환자들에 유익하다. 고 원장은 “경막 외 내시경술은 꼬리뼈를 통해 내시경을 삽입하여 수술된 상태를 살펴보면서 이상부위를 해결하는 방법”이라며 “내시경으로 환부를 관찰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유착 방지제를 뿌리거나 염증을 제거하고, 신경이 눌린 부분을 해결해준다”고 말했다. 1~2㎜ 가량의 내시경을 사용한 간단한 시술로, 시술 후 회복기간 없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수술 후 관리가 성공과 실패 좌우 디스크는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다고 해도 잘못된 생활습관이나 자세를 고치지 않으면 언제든 재발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수술 후에도 허리를 보호하는 생활습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 담배는 디스크를 늙게 한다 담배를 피우면 디스크에 영양을 공급하는 미세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혀서 산소공급이 차단될 수 있다. 이로 인해 디스크의 노화를 촉진하는 퇴행성 변화가 나타나기도 한다. 또 척추를 약하게 만들어 각종 척추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2. 과도한 음주는 허리에 독 맥주 한 병 정도라면 근육을 이완시켜주는 효과가 있지만 과도한 음주는 일시적인 혈액순환 장애를 일으킨다. 디스크 영양공급에 장애가 생기면 수술 후 회복이 늦어질 수 있다. 3. 허리에 좋은 자세를 취한다 늘 허리를 똑바로 펴고 다니고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 사무직 종사자라면 1~2시간에 한 번씩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가볍게 풀어주는 습관을 들인다.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허리를 심하게 구부리는 것을 피한다. 쿠션을 허리에 받쳐주는 것도 좋다. 잘 때도 허리에 쿠션을 받히고 똑바로 자거나 옆으로 누워 무릎을 구부리고 자면 허리를 안정시킨 채 잠을 잘 수 있다. 4. 스트레칭으로 회복을 돕는다 가벼운 스트레칭은 잘못된 자세를 바로 잡아주고 일과 중 허리에 쏠려 있던 무게를 몸 전체로 돌려주는 역할을 해준다. 특히 허리를 뒤로 젖히는 동작은 등쪽으로 밀린 디스크가 원위치로 돌아오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고도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및 대학원 졸업 ·호주 국립 멜버른 대학 카이로프랙틱학과 졸업 ·서울 아산병원 신경외과 수련 ·청와대 물리치료실 실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외과 연구강사 ·울산대, 연세대, 인제대학교 의대 외래교수 ·대한복원의학회 교수 ·대한척추내과학회 부회장 ·대한테이핑학회 회장 ·대한신경통증학회 이사 ·대한신경외과 개원의협의회 학술이사 ·대한스포츠의학 전문의 ·호주 카이로프랙틱 전문의 ·일본 키네시오 테이핑 국제강사 ·현 고도일신경외과 원장
전문병원탐방
[출판]대지의 수호자 잡초(2003. 11. 13)
2003. 11. 13 문화/과학
얼마 전 〈야생초 편지〉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없애버려야 할 잡초가 약초가 된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잡초는 인간에게 해로운가 이로운가'라고 물으면 역시 답은 '해롭다'이다. 백과사전을 보면 잡초는 '농업에서는 경작지에서 재배하는 식물 이외의 것'이라고 정의하고 '작물이 차지할 땅과 공간을 점령하고 양 분과 수분을 빼앗는다'고 설명되어 있다. '작물보다 큰 것은 일광을 차단하여 작물의 광합성작용을 방해함으로써 작물의 생장을 방해한다'고 부언하고 있다. 해롭다는 답이 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학교 교육에서도 잡초는 해로운 식물일 뿐이다. 〈대지의 수호자 잡초〉는 이러한 인간 중심적인 사고가 자연에는 얼마나 큰 폭력인지 낱낱이 고발한다. 인간에게 기르는 작물 주위에 자란다고 나쁘게 보는 것은 인간의 생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느 특정한 장소에서 한 식물이 잘 자란다면 그곳이 바로 그 식물의 집이자 제자리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다. 인간의 사고가 자연의 이치를 따를 때 잡초는 제거해야 할 대상에서 비옥한 땅을 만드는 생명초로 부활한다. 인간 세계에서 잡초가 생명초로 자리잡은 곳은 인디언의 땅이었다. 인디언은 직접 손으로 잡초를 돌보며 키웠다. 여자들은 잡초를 약재로 먹기도 하고 식량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비름이나 명아주 씨앗은 빻아서 빵이나 죽을 만들 때 넣어 먹었다. 그들이 사는 땅으로 백인이 몰려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잡초는 식량의 보고였다. 인디언은 명아주가 60㎝ 정도 떨어져 자라면서 감자의 생산량 증가의 주된 역할을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너무 빡빡하게 자라지 않도록 인간이 조금만 관리하면 작물에 도움이 되는 식물이었던 것이다.  제1-2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화된 땅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은 것 역시 잡초였다. 전쟁은 폭격만으로 인명을 앗아가는 것이 아니다. 땅이 황폐화돼 먹을 것이 없게 됐다. 이때 식량이 된 것이 잡초였다. 초토화된 땅에서 자라는 것은 잡초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서야 학자들은 잡초가 어떻게 땅을 재건하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잡초의 억척스러운 생명력은 강인한 뿌리의 힘에서 비롯된다. 대부분의 잡초는 자신의 키의 수백 배에 달하는 거리를 뻗어나갈 수 있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 이 뿌리는 지하 깊은 곳에서 양분을 빨아올려 땅의 표면을 기름지게 했다. 땅을 푹신푹신한 스펀지처럼 만들어 그 속에서 수많은 미생물이 살아 숨쉴 수 있게 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잡초에 대한 상식 반대편에 서보면 잡초는 이처럼 '척박한 땅을 개간하는 성실한 농부'다. 50년간 생물학과 환경보존학을 연구한 저자 조셉 코케이너는 "너무 황폐해 잡초의 힘으로도 땅을 살릴 힘이 부족할 때는 인간이 잡초를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잡초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솎아주고 거름을 주고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제 아무리 황폐한 땅이라도 작물이 자랄 수 있는 비옥한 땅으로 변한다는 주장이다.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땅의 숨을 거두는 현대 농업은 노예에게 노동력을 쥐어짜듯 토양의 영양분을 쥐어짠다. 얼마 안 돼 토양은 황폐해지고 작황은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는 잡초학이라는 학문이 없다. 잡초방제학만 있을 뿐이다. 오로지 농작물을 위해 잡초를 얼마나 말끔히 해치울 것인지만 연구한다. 하지만 잡초는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끊임없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또 농부가 떠난 황페화된 자리에 땅의 복원을 위해, 자연을 자연답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구의 근대 농업을 받아들인 우리는 토양을 약탈하고 있는 것이다. 토양과 농작물, 그리고 잡초와 인간이 함께 '잘 사는' 상생의 길을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 이 책의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조셉 코케이너 지음, 양금철-구자옥 옮김, 우물이 있는 집, 12,000원. 성실한 농부황인원 기자 hi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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