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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다리]영화 기사에 달린 정치 댓글(2024. 11. 22 15:30)
- 2024. 11. 22 15:30 사회
- 지난 11월 1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에 대해 1심 법원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자 법원 앞 지지자들이 판결에 항의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정치 영역에는 여지가 필요한데,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하다. 너무 전방위적으로 모든 곳에 법의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22년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정치의 사법화란 정치 문제를 사법적 판단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지난 11월 15일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TV 방송 토론과 국정감사에서 ‘대장동·백현동 의혹’에 거짓말을 한 혐의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돼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일각에선 ‘유력 대선주자를 말 한마디로 처벌해 대권을 막는 것이 옳으냐’며 야단이다. 정치의 사법화란 정치인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2022년 대선 당시 나는 사회부에서 검찰을 취재하고 있었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여야 정치인들은 검찰청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온갖 사건으로 상대 후보를 고발했다. 자신들이 고발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다고 항의하며 검찰총장이나 서울중앙지검장과의 면담을 막무가내로 요구하기도 했다.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을 하겠다는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하겠다는 민주당까지 검찰 수사를 부추기는 모습에 기자들도, 검사들도 어이없어했다. 정치의 사법화만큼 ‘사법의 정치화’도 심각해 보인다. 사법의 정치화란 정치가 여론을 등에 업고 사법적 판단에 개입하는 것이다. 정치적 생명이 판결로 결정되니 이제 여야는 노골적으로 법원을 회유하고 압박한다. 이재명 대표 1심 선고 닷새 전 민주당은 국회 예산심사에서 대법원 예산을 정부 원안보다 246억원이나 늘려줬다. 유죄가 선고되자 다음 날 민주당은 서울 광화문에서 수만명 규모의 집회를 열어 “미친 정권에 미친 판결”, “검찰 독재 정권에 부역한 정치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여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가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자 국민의힘은 “정치적 판결”, “억울한 측면”, “법원 좌경화”라는 논평을 냈다. 그러자 민주당은 “사법체계와 국민의 법 상식을 조롱하지 말라”고 맞받았다. 법원이 우리 편에게 유죄를 선고하면 “정치 판사를 탄핵하라”며 비난하고, 무죄를 선고하면 “사법부를 겁박하지 말아라”며 옹호하는 추태가 요즘 국회의 문화다. 법원의 정치적 중립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는 판사·검사·변호사 출신 의원들이 오히려 공세에 앞장선다. 지금 나는 문화부에서 영화 담당 기자로 일하는데, 영화 기사에 뜬금없이 ‘??’(윤석열 대통령 멸칭)과 ‘쥴리’(김건희 여사 멸칭)를 수사하라고, ‘찢죄명’(이재명 대표 멸칭)을 구속하라고 정치 댓글이 자주 달린다. 예술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느낄 틈도 없이 일상이 정치만으로 가득 찬 사람을 생각하면 슬프고 안쓰럽다. 모니터 앞에서 전쟁하듯이 댓글을 다는 시민들도, 법원과 검찰청 앞에서 칼바람을 맞아가며 시위하는 시민들도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을 믿지 않는다. 자신들이 재판과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심지어 영향을 줘야 한다고 믿는다. 국회가 그런 간절한 믿음을 만들고 이용하며 시민의 일상을 정치화·사법화하고 있다.
- 꼬다리
- [취재 후]혐오성 댓글, 누구 책임인가(2023. 07. 14 11:19)
- 2023. 07. 14 11:19 사회
- “추운 겨울, 사촌오빠와 덕수궁 구경하러 갔다가 와플을 사먹었습니다. 와플 가게엔 포장하는 곳과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카페가 따로 있었는데, 카페는 ‘노키즈존’이라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눈을 맞으며 꽁꽁 언 손으로 담벼락에 서서 와플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7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노키즈존 넘어 아동친화사회로’ 토론회에서 초등학교 4학년인 이지예 활동가가 털어놓은 ‘노키즈존 경험담’입니다. 어린이 활동가들이 직접 나선 이번 토론회를 앞두고 주최 측인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은 언론사에 “댓글창을 비활성화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당사자들을 향해 쏟아질 혐오성 댓글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댓글창 폐쇄’가 이제 더는 낯설지 않은 선택이 됐습니다.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 직후 관련 기사엔 유가족을 향한 혐오·모욕성 댓글이 줄줄이 달렸습니다. 일부 언론사는 자체적으로 댓글창을 닫았고, 유가족협의회가 직접 폐쇄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2021년 5월엔 정준영 불법촬영 사건의 피해자가 성범죄 기사 댓글창의 방치는 ‘살인 방조’와 같다면서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올려 공론화를 시도한 바 있습니다. 혐오와 모욕이 난무하는 댓글창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삭제 및 퇴장 조치’ 등으로 엄격히 관리하자는 의견도 있고, 폐지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어떤 길을 택하건 언론과 포털이 댓글창에 대한 책임의식을 분명히 갖는 과정이 선행돼야 하겠지요. 사실 혐오 댓글을 쏟아내는 ‘그들’만 지적하기엔 기자로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합니다. ‘클릭’을 유도하는 자극적 기사에는 필연적으로 악성 댓글이 붙습니다. 그럼에도 언론은 수익을 위해 그런 기사를 양산해왔습니다. 기자인 저도 혐오성 댓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앞으로 언론과 포털이 ‘혐오의 댓글창’ 해법을 적극 모색할 수 있도록 언론사 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감정을 배설하는 댓글이 여론으로 오인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 취재 후
- 댓글로 뿌리내린 차별·폭력···닫을까 엄격관리할까(2023. 07. 07 11:29)
- 2023. 07. 07 11:29 경제
- 한 포털사이트의 이용자가 뉴스에 댓글을 달고 있는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 7월 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매일 퇴근시간에 서울 혜화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예산 확대의 필요성을 알리는 선전전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장애인 정책예산 비중(0.6%)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14%)의 3분의 1 수준. 전장연은 그간 “예산에 맞춘 제도가 아니라 필요한 제도에 맞는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전장연은 “기획재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 장애인특별교통수단 예산 3350억원을 반영해 국회에 제출할 때까지 선전전을 계속하겠다”면서 “시위로 인한 열차 지연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전장연 활동가들은 열차 탑승을 시도했지만 서울교통공사에 의해 저지됐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올라와 있는 전장연 관련 최신 뉴스의 내용이다. 전장연의 요구사항인 ‘장애인특별교통수단 예산 확대’와 이들의 활동계획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댓글란을 살폈다. 의견이라 보기 어려운 ‘감정 배설’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죽음’을 언급하는 혐오 댓글이 여러 건 눈에 들어왔다. 혐오표현이란 무엇인가. 어떤 개인, 집단이 가진 속성을 이유로 편견, 차별을 조장하거나 멸시, 모욕, 적의를 드러내고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을 말한다. 문제의 댓글을 두고 ‘혐오냐 아니냐’를 따지는 일은 한가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표현이라는 걸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네이버는 악성 댓글 신고를 받고 있다. 이미지는 댓글 신고를 할 때 체크하도록 돼 있는 신고 이유 분류표 / 네이버 이미지 캡처 이 명백한 혐오 댓글들을 지우고 싶었다. 네이버·다음(카카오) 등이 회원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는 지난 4월 28일 “혐오표현으로 인한 피해의 예방 및 구제 절차”를 담은 ‘혐오표현 자율정책 가이드라인’(혐오표현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미디어·법학 등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혐오표현심의위원회가 4개월여에 걸쳐 만든 이 가이드라인은 발표 직후부터 각 포털 사이트에 적용됐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회원사는 혐오표현을 ‘가리거나 노출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고, 혐오표현 여부를 판단하기 힘들다면 혐오표현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해당 혐오표현의 방치가 ‘가이드라인 위반’은 아닌지 혐오표현심의위원회 측에 물었다. “혐오표현에 대한 삭제 등의 조치는 포털의 몫이며 심의위원회는 포털이 요청한 사안에 대해 혐오표현인지 여부를 심의할 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심의위원회는 “(우리는) 포털이 혐오 댓글 삭제 등의 조치를 얼마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평가하는 기구는 아니다”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네이버 댓글 정책에 따라 ‘신고’를 해봤다. ‘욕설/생명경시/혐오/차별적 표현입니다’에 체크한 뒤 조치를 기다렸다. 댓글은 24시간이 넘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언론을 담당하는 네이버 관계자에게 문의했다. 이 관계자는 “‘클린봇’이 부적절한 표현을 탐지해 삭제 처리하고 있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 기사 링크를 공유해주시면….” 몇 분 뒤 해당 댓글은 “운영규정 미준수로 인해 삭제”됐다. 그러나 ‘쓰레기’를 거론하며 폭력을 선동하는 내용의 또 다른 혐오 댓글들은 그대로였다. 소수가 쓰고 다수가 읽고 포털뉴스의 댓글은 누가 달까.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1 언론수용자조사’에 따르면 ‘지난 1주일 동안 뉴스에 댓글을 단 적이 있다’고 답한 이들은 100명 중 6~7명(응답자 3976명의 6.8%). 반면 댓글을 읽는 사람은 100명 중 62명(61.7%)이었다. 지난해 2월 한국리서치 조사에선 ‘항상’ 혹은 ‘종종’ 뉴스 댓글을 읽는 이들의 비중이 100명 중 88명(응답자 1000명 중 88%)이었고, 그중 42명은 댓글 많은 뉴스를 골라 읽고 있었으며 27명은 뉴스보다 댓글을 먼저 읽었다. 댓글 세계는 ‘소수 이용자의 독과점’ 상태에 가깝다. 2020년 12월 SBS와 이원재 카이스트 교수팀의 분석에 따르면 댓글 작성자의 10%가 전체 댓글의 73(다음)~75%(네이버)를 쓰고 있었다. 이처럼 소수가 지배하는 댓글창이 혐오·모욕·폭력성 댓글로 얼룩진 것은 하루 이틀의 얘기는 아니다. 혐오 발언을 분류해내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강태영 언더스코어 대표는 “악성댓글의 비중이 포털 뉴스 댓글창은 약 40% 정도”라고 본다. 2016년 인권위원회조사(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에 따르면 시민들이 ‘온라인 혐오표현’을 가장 많이 경험한 곳 1위는 뉴스(기사·영상) 댓글이었다. 10·29 이태원 참사 100일을 이틀 앞둔 지난 3월 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를 다룬 뉴스의 포털 댓글의 절반 이상은 ‘혐오성 댓글’이었다는 분석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 성동훈 기자 특히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재난 참사의 피해자 등을 집중적으로 다룬 보도일수록 혐오 댓글은 두드러진다. 국민일보와 이원재 카이스트 교수팀이 지난해 이태원 참사 직후의 댓글 123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참사 관련 뉴스 댓글의 절반 이상(58.27%)은 ‘혐오 댓글’이었다. 이태원 참사 유족의 기자회견이나 장애인 이동권 현장을 다룬 보도의 댓글창은 그야말로 ‘혐오가 넘쳐 흐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영향 안받는다? 혐오가 난무하는 댓글창을 두고 혹자는 ‘무시하면 된다’고 말한다. ‘나는 혐오 댓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해결책(?)이다. 혹시 혐오 댓글에 휘둘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당신만 그런 것은 아니다. 미디어가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제3자 효과’라고 하는데 혐오 성격이 두드러지는 댓글에 대해선 이 효과가 커진다고 한다(‘혐오성 댓글의 제3자 효과’ 조윤호·임영호·허윤철). 그러나 우리 누구도 혐오 댓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나는 영향을 안 받는다’는 생각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높지만(범죄기사와 지역감정 조장 댓글을 함께 본 경우 특정지역에 대한 편견이 증가함을 보여주는 실험 연구가 있다), 이 생각을 받아들이더라도 ‘혐오 댓글에 영향받는 다른 사람들’을 상정함으로써 자신의 여론 인식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악성 댓글이 여론 지각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인터넷 뉴스 댓글이 여론 및 기사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지각과 수용자의 의견에 미치는 효과’, 이은주·장윤재)가 나온 건 이미 15년 전 일이다.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가 지난 1월 20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 22주기를 맞아 헌화하고 있다. 지난해 전장연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다룬 뉴스 댓글창에는 대규모의 혐오 댓글이 쏟아진 바 있다. / 성동훈 기자 이은주 서울대 교수는 혐오 발언을 다룬 강연집 <헤이트>(마로니에북스)에서 “<퍼블릭 오피니언>이라는 고전에서는 ‘객관적 실재로서의 세계’와 ‘우리 머릿속의 현실에 대한 그림’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언론이 한다고 본다”면서 “오늘날은 온라인에서 접하는 다수의 이름 모를 사람들이 올리는 글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현실 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많은 연구에서 보고됐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혐오 댓글은 당사자들에게 극한의 고통을 안긴다는 점에서 더는 방치할 수 없는 문제다. 혐오·모욕으로 점철된 댓글들로 고통받다가 생을 마감한 이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이태원 참사 46일 뒤 자살한 A군은 숨지기 직전 혐오·모욕 댓글에 고통을 받아왔다고 한다. A군의 유족은 인터뷰(MBC 뉴스데스크, 12월 14일)에서 “(A군이) 희생된 친구들을 모욕하는 댓글들을 보면서 굉장히 화를 많이 냈다”고 전했다. “너무 지쳤어요. 삶도, 겪는 혐오도, 나를 향한 미움도.” 전직 음악 교사이자 퀴어 활동가였던 고 김기홍씨가 유서에 남긴 말이다. 김씨와 같은 성소수자들이 주인공이 되는 ‘퀴어 축제’를 다룬 보도의 포털 댓글창은 올해도 혐오 발언들로 얼룩졌다. 가수 설리와 구하라, 프로배구선수 고유민은 생전 악성 댓글에 고통받아왔고, 이들의 죽음은 포털뉴스의 연예·스포츠 댓글창 폐쇄로 이어졌다. “차라리 댓글창 닫자” vs “적극적 관리부터” ‘혐오가 넘쳐 흐르는 댓글창’을 어떻게 할 것인가. 뉴스와 댓글, 혐오 발언을 오래 들여다본 미디어·사회학·법학·여성학 연구자들과 미디어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댓글창 폐지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언론학자인 김민정 한국외대 교수는 2021년 3월 한겨레 시민편집인으로서 쓴 칼럼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를 말하는 보도내용과 별개로) 댓글란에선 혐오의 언어가 넘쳐난다. 이 상황을 방치해선 안 된다”면서 “혐오의 언어를 걸러내기 위한” 댓글창 폐쇄를 촉구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도 지난해 12월 한 칼럼을 통해 “인터넷 포털뉴스 댓글 이제는 없애자”고 제안했다. 권김 소장이 생각하는 방향은 이렇다. “기사의 댓글창을 일단 모두 닫고 예외적으로만 열면서 댓글 토론의 주제, 규칙을 정하고 토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댓글창이란 공간에 대해 언론·포털이 책임을 지게 하자는 것이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의 ‘혐오표현 자율정책 가이드라인’ 캡처 / 한국인터넷자율정책가구 홈페이지 댓글창을 폐지하면 ‘온라인 공론장’이란 순기능이 사라지므로, ‘혐오표현을 적극 삭제’하는 등으로 방법을 더 강구해야 한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처럼 언론 지형이 이념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상황에서 댓글이 사라진다면 ‘편파적이다’, ‘가짜뉴스다’라는 지적들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이라면서 “뉴스로 돈 버는 포털이 혐오표현이 올라오는 대로 적극 삭제하고, 혐오표현을 자주 사용한 이용자는 퇴출하는 방식으로 관리를 하면 된다. 혐오 댓글 때문에 댓글창을 닫자는 것은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혐오표현을 적극적으로 지우고 해당 이용자에 벌칙을 부과하면 된다’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권김 소장은 “특정 표현을 삭제하면, 그 표현을 우회하는 방식의 혐오표현이 생겨난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지 않느냐”면서 “지금의 댓글 공간은 이미 온라인 공론장으로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에, ‘공론장이란 순기능을 살리냐 아니냐’라는 프레임부터 틀렸다고 본다”고 말했다. 2017년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이 국정원 퇴직자 모임인 양지회의 서울 서초구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뒤 압수물을 옮기고 있다. / 연합뉴스 사회 약자를 멸시·억압하는 ‘일베’적 사고방식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음을 지적한 <보통 일베들의 시대>(오월의 봄)의 저자 김학준 독립연구자도 “포털뉴스 댓글엔 공론장 기능이 없다”고 본다. 그는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모인 온라인 공간에서의 ‘말’은 결국 자극, 도발, 흥분의 언어놀이 성격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최소한 포털뉴스에선 댓글이 없어져야 하고, SNS의 댓글 공간 역시 (해당 계정이) 일정한 팔로워 수를 넘긴다면 계정주든 플랫폼이든 책임을 갖고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털사들의 혐오표현 가이드라인 심의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장기적 교육’과 ‘관리’를 병행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사실 법적 처벌이 가장 강력하겠지만 사후대책일 수밖에 없고, 부작용도 크다. 댓글창의 순기능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혐오, 차별, 배제를 담은 주장이 어떻게 민주주의와 공동체를 해치는지를 학교와 사회에서 적극 교육하면서 현재 마련된 것과 같은 포털사 혐오표현 가이드라인 규제가 더 적극적으로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혐오 댓글 부추긴 언론·정치권 반성부터 다만 댓글창 ‘폐지’든 ‘삭제 관리’든 염두에 둬야 할 변수가 있다. 혐오표현 제재에 대한 이용자들의 수용성이다. 혐오 발언을 분류해내는 프로그램 ‘헤이트스코어’를 개발한 강태영 언더스코어 대표는 “댓글창 폐지 후 이용자들이 (포털이 아닌) 유튜브 등 다른 공간에 몰려가 혐오 발언을 퍼붓는다면 온라인이 시궁창인 것은 똑같다. 포털은 국내기업이지만 외국 플랫폼엔 정책적 수단마저 쓸 수 없게 된다”면서 “엄격한 삭제관리도 가능하겠지만, 이용자들이 ‘재미없다’면서 다른 공간으로 떠나는 순간 결과는 (댓글창 폐지와) 유사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미 댓글창이 폐지된 스포츠·연예 분야에선 커뮤니티로의 혐오표현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7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시민들이 잔디밭에 무지개 깃발을 펼쳐놓은 채 행사를 즐기고 있다. / 한수빈 기자 결국 넘쳐나는 ‘혐오성 댓글’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억제하느냐는 우리 사회가 혐오를 얼마나 단호하게 차단할 분위기를 갖추고 있느냐와 맞물려 있다. 시민 다수가 ‘혐오 댓글 그만’이라는 시그널을 받아들인다면 혐오를 배설할 ‘대체 창구’로 몰려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혐오 댓글창’ 해법 모색의 첫 단계는 그간 혐오 댓글을 유도·방치한 언론과 정치권의 뼈저린 반성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댓글 폭력의 공범이다>의 저자인 정지혜 세계일보 기자는 책을 통해 “댓글창이 망가진 공론장의 오명을 갖게 된 데는 언론의 실책도 크다”면서 “포털에 좌판을 깔고 조회 수 낚시 기사를 써댄” 언론사 역시 ‘공범’임을 꼬집었다. 언론에 포털의 ‘혐오성 댓글’이 조회 수를 돈으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부산물에 가까웠다면, 정치권에는 혐오성 댓글이 ‘표’였다. MB 정권은 국정원, 경찰 등을 동원해 노조, 세월호 유족 대상 혐오를 배설하는 ‘댓글 부대’를 운영했다. 댓글 추천 수 조작으로 여론을 움직이려 했던 ‘드루킹 사건’으로 민주당 측 역시 ‘댓글창을 망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해외 언론사들의 댓글 정책 사례를 참고할 필요도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 주간지를 내는 ‘더 위크’ 편집장 벤 프루민은 2015년 댓글창을 폐지하며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가장 현명한, 최선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우리의 (저널리즘적) 임무에 반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하루 30개 내외의 기사와 칼럼에만 댓글을 달 수 있고, 뉴욕타임스는 15% 정도의 기사에만 댓글창을 연다. 뉴욕타임스의 경우 모든 댓글은 관리자의 검토를 거쳐 게시 여부가 결정된다. ‘댓글 운영정책에 대해 과도하게 논의하는 댓글’조차 퇴출시킬 만큼 기준이 엄격하다. 노르웨이 공영방송 NRK는 기사 내용과 관련된 퀴즈를 풀어야만 댓글을 달 수 있게 하는 ‘노투코멘트’(know2comment)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아직은 일부 기사에만 적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외 언론의 댓글창이 축소되고 있다’고만 해석하는 것도 곤란하다. 최지향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신문과 방송’(2022년 9월호) 기고문을 통해 이렇게 지적했다. “2010년대 중반 많은 해외 언론사가 뉴스 댓글 기능을 폐지하면서 온라인 기사 댓글은 소멸할 것이라는 예측이 대두되기도 했지만, 지금도 기사 댓글 기능은 없어지지 않았고 도리어 그 기능을 강화하는 언론사도 있다.” 요컨대 해외 언론사들의 사례는 폐지하든 관리하든, 댓글 공간에서도 저널리즘적 책무를 놓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 표지 이야기
- 사회재난 뉴스 ‘혐오·막말’ 댓글 막을 수 있을까(2023. 03. 17 14:26)
- 2023. 03. 17 14:26 사회
- ㆍ댓글창 닫기 의무화 정통망법 개정안 발의 ㆍ“표현의 자유 필요” 반대 커 입법 힘들 수도 지난 1월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1명이 사회재난 관련 뉴스에는 독자 의견게시판(댓글창)을 만들지 못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정통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규정을 어긴 언론사와 뉴스를 제공하는 포털 등에는 위반 시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이 개정안의 골자다. 10·29 이태원 참사 100일을 이틀 앞둔 지난 3월 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성동훈 기자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내에서 인터넷 댓글을 규제하려는 과거 20년간의 시도는 늘 숱한 논란과 함께했다. 결과적으로도 실패였다. 2002년 첫 논의가 시작된 ‘인터넷 실명제’는 2006년에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와 나란히 국회를 통과한 뒤 시행됐다. 인터넷 실명제는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위헌 결정(2012년)을 받았다.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도 합헌(2015년)과 위헌(2021년)을 반복한 끝에 폐지됐다. 비록 제한 범위를 사회재난으로 한정했더라도 한 의원 등이 발의한 정통망법 개정안은 과거 인터넷 실명제보다 규제 수위가 더 높다. 실명 여부 확인 차원을 떠나 아예 댓글을 달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이에 개정안에 대한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도 “입법이 힘들 것”이란 쪽에 무게가 실린다. 개정안이 나온 계기가 된 건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희생자와 그 유가족에게 쏟아진 온갖 모욕과 폭언, 조롱 등의 악성 댓글이었다. 우리가 지난 20년의 논쟁 속에 규제하지 않기로 결론 내린 댓글은 정말 ‘표현의 자유’를 위해 존재하는지 돌아볼 때가 됐다. 우리 사회가 희생자와 남겨진 가족들을 보호하고 위로할 수 있게끔 제도적으로, 의식적으로 성숙해 있는지도 개정안의 국회 통과 여부와 관계없이 여전히 되새겨봐야 할 문제다. 뉴스 이용자 84.3% “혐오 댓글 심각”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이태원 참사’ 관련 보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보고서를 보면 이태원 참사 관련 뉴스를 본 이용자의 79.5%가 댓글을 읽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포털에서 뉴스를 본 이용자의 69.5%가,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뉴스를 본 이용자의 64.2%가 참사 관련 혐오·인신공격성 댓글을 읽거나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포털 뉴스 댓글을 본 이용자의 86.9%가, 언론사 홈페이지 뉴스 댓글을 본 이용자의 84.3%가 혐오·인신공격성 댓글에 대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국민일보는 이태원 참사 당일인 지난해 10월 29일부터 11월 9일까지 참사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 123만여개를 분석한 결과 혐오가 포함된 댓글이 58.27%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댓글 10건 중 6건꼴이다. 해당 분석에서 혐오 댓글의 내용을 보면 절반이 넘는 51.12%가 욕설 등의 악플이었다. 한 의원 등은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최근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에 희생자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성 댓글들이 작성되면서 그 가족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있다”며 “댓글이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견 표현을 넘어 특정한 개인 또는 집단의 비난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표현의 자유가 다른 사회구성원의 기본권 침해까지 이어지는 현재 상황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희생자의 댓글 피해와 더불어 불필요한 사회 갈등도 유발되고 있어 공동체 보호라는 측면에서도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개정안에서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언론사 및 인터넷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털 등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조 제1호 나목에 따른 사회재난과 관련된 기사를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거나 매개하는 경우 해당 기사에 대해 독자가 생산한 의견을 게재하는 게시판(댓글)을 운영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이에 따르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조 제1호 나목에 규정된 사회재난과 관련된 뉴스는 모두 댓글창을 의무적으로 닫아야 한다. 해당 조항에서 사회재난은 ‘화재·붕괴·폭발·교통사고(항공·해상사고 포함)·화생방사고·환경오염사고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 이상의 피해’로 규정돼 있다. 국가 핵심기반의 마비, 감염병 또는 가축전염병의 확산, 미세먼지 등으로 인한 피해도 사회재난에 해당한다. 사회재난이 워낙 다양하게, 예고 없이 발생하기 때문에 법으로 그 유형을 모두 정의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시행령에서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 이상의 피해’에 대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대처가 필요한 인명 또는 재산의 피해 ▲그 밖에 제1호의 피해에 준하는 것으로서 행정안전부 장관이 재난관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피해 등으로 그 범주를 넓게 열어뒀다. 사회재난에 해당하는지의 판단을 정부가 하도록 했다. 댓글 규제의 대상이 되는 ‘사회재난’을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다 보니 ‘사회재난 뉴스’를 특정하는 문제도 간단치 않다. 예컨대 이태원 참사를 기사에서 단순 언급해도 ‘사회재난 뉴스’가 되는 것인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 대응을 주로 비판하는 기사도 ‘사회재난 뉴스’가 되는 것인지 등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시행령에서 ‘행안부 장관이 인정하는 피해’로 규정해 놓고 정작 그 기준은 마련되지 않은 것을 보면 사회재난을 구분하는 기준 자체가 모호한 것으로 보인다”며 “의무를 부여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의 처벌을 내리려면 명확한 기준부터 마련하는 게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 등 “그래도 표현의 자유는 보장해야”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기본권 보호, 사회적 갈등 방지 등의 입법 취지에도 불구하고 댓글을 아예 쓰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는 지나치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오픈넷은 “개정안은 사회재난을 놓고 시민들 사이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가치에 역행하고, 국론 분열 방지를 이유로 전체주의적인 사고를 강요할 위험이 있어 그 자체로 정당한 입법목적이라 보기 어렵다”며 “사회재난과 관련한 모든 내용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명백히 위배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오픈넷은 “이 같은 규제가 용인되면 다른 모든 온라인 뉴스 기사 섹션의 댓글 게시판을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이나, 나아가 뉴스 기사 댓글 게시판뿐 아니라 다른 형식의 인터넷 공론장도 금지하는 내용의 극단적인 법안들이 정당성을 주장하며 우후죽순으로 발의 및 통과될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2월 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회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사회재난 뉴스의 댓글창을 닫아도 피해자에 대한 혐오나 모욕 등이 근절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반론 사유다. 한 미디어 업계 관계자는 “과거 연예·스포츠 부문 뉴스의 댓글창을 폐지한 뒤 스포츠나 연예 관련 커뮤니티 등에서 혐오와 모욕 표현이 증가한 사례가 있다”며 “최근에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미디어나 매체를 통해 혐오가 양산되고 확산되는데, 이는 댓글을 막는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공론의 장으로서 사회재난 뉴스의 댓글이 갖는 ‘순기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정부가 재난에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 등 문제 인식을 공유하거나 참사를 위로하기 위한 통로로 댓글이 활용되는 경우도 많다”며 “문제가 있다면 임시로 댓글창을 닫거나 기존에 마련된 법을 통해 처벌하는 등 원칙을 가지고 대응을 해야 하지 차단하는 건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개정안의 계기가 된 이태원 참사 댓글 문제의 경우 유가족들이 개별적으로 댓글에 대응해왔다. 발의에 앞서 개정안을 놓고 유가족들과 의원들 간 별도의 협의 과정이 있었던 건 아니다. 김덕진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대외협력팀장은 “유가족과 대책회의 차원에서 각 언론사에 추모주간 등을 고려해 댓글창을 임시로 닫아달라고 요청한 적은 있지만, 법으로 규제하도록 해달라고 국회 차원에서 요청하거나 관련 협의를 한 적은 없다”며 “다만 일방적으로 희생자와 가족들을 폄훼하는 댓글이 많은 게 사실이고, 이를 악용하는 언론 역시 있는 게 사실인 만큼 일정 부분 규제는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민주당 내에서도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긴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발의에 참여한 의원들은 입법 의지가 상당히 강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반론이 많아 21대 국회에서 처리되긴 어려울 것”이라며 “개정안을 계기로 현재 댓글 규제의 문제점이나 언론사의 행태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고, 관련 논의의 장이 열린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제도와 인식의 미성숙이 가져온 악성댓글 개정안에 대한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입법 찬성이 반대보다 약간 높게 나타났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지난해 11월 25~30일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국가적 재난이나 사고 발생 시 관련 뉴스 및 정보에 달리는 댓글을 차단해야 한다’는 질문에 절반이 넘는 55.8%가 찬성(매우 찬성 18.4%·약간 찬성 37.4%)한다고 응답했다. 가장 우선적으로 댓글을 차단해야 할 곳으로는 포털 뉴스 댓글(35.1%)을 가장 많이 꼽았다. 댓글 차단 대상으로 포털 뉴스를 우선적으로 꼽은 건 그만큼 포털들의 악성 댓글 대응이 미흡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포털 뉴스는 크게 기사를 클릭했을 때 포털을 통해 뉴스를 보는 ‘인링크(Inlink)’와 직접 해당 언론사 사이트로 연결되는 ‘아웃링크(outlink)’로 구분된다. 아웃링크 뉴스의 경우 댓글창 생성이나 관리 등은 전적으로 해당 언론사가 맡는다. 포털들은 인링크 뉴스의 댓글창을 관리한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월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회 추모제에서 헌화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양대 포털인 네이버나 다음의 댓글관리 방법은 유사하다. 비속어나 욕설, 혐오표현 등이 포함된 댓글을 아예 작성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해당 댓글을 자동으로 가려주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을 기본적으로 운영한다. 여기에 더해 댓글 신고 제도 및 상습 악플 작성자에 대한 제재, 뉴스 이용자가 댓글을 스스로 가릴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가장 중요한 인링크 뉴스의 댓글창을 생성할지 닫을지 여부는 해당 언론사에 판단을 맡겼다. 악성 댓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포털들을 향해 “책임 회피”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언론사의 경우 포털 수준의 댓글 관리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을 뿐더러 사회재난 기사 댓글창 생성에 대한 문제 인식도 전반적으로 부족하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지난 2월 2일 참사 100일을 맞아 2월 3일부터 5일까지 사흘간 포털과 언론사에 참사 관련 보도 댓글창을 닫아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포털의 경우 다음은 자체적으로 관련 인링크 기사의 댓글창을 모두 닫았고, 네이버는 “각 언론사에 맡기겠다”며 요청을 사실상 거절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각 언론사의 대응을 모니터링한 결과 전체 언론사 45곳 중 12곳은 네이버 인링크 기사의 댓글창을 한 번도 닫지 않았다. 모니터링 대상 기사 217건으로 놓고 보면 요청에 응해 댓글창을 닫은 기사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105건이었다. 댓글 문제에 대한 포털과 언론사들의 미지근한 대응은 ‘자율규제’에 대한 신뢰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익명을 요구한 한 언론학자는 “포털을 통해 뉴스가 유통되는 국내와는 달리 해외에선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뉴스가 유통되고, 댓글도 해당 언론사에서 직접 관리하며 삭제나 차단하는 등 여러 제약을 가한다”며 “댓글을 달 자유가 무제한 보장되는 게 아니란 점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그는 “포털사들은 악성 댓글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언론사들은 기사 페이지뷰를 높이기 위해 악성 댓글을 방조하는 행태까지 보인다”며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성 댓글들이 과연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고, 여론이나 공론형성에 기여하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참사 때부터 사회재난과 치유 문제 등을 연구해온 유해정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는 “혐오·모욕 등의 댓글로 유가족이 겪는 고통과 아픔은 말로 헤아릴 수 없다”면서도 댓글창을 제한하는 개정안의 입법에 반대한다.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회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댓글 문제가 끊이지 않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의 제도와 인식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유 활동가는 말한다. 그는 “국가의 책임이 명료한 사회적 재난은 피해자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하고 보호할 것인지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사회 인식도 피해자들을 옹호하고 보호하려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혐오를 줄여가야 한다”고 밝혔다.
- [취재 후]“절도 아니라 살인” 공감 댓글에 놀랐다(2022. 10. 28 11:00)
- 2022. 10. 28 11:00 사회
- 최근 <얼굴 없는 검사들>을 출간한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인터뷰에 앞서 책을 읽었습니다. 3장에 ‘임금 체불 사건’이라는 꼭지가 있었습니다. 임금체불이 ‘빚의 수렁’으로 이어진다는 대목이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임금을 못 받게 되면 대출을 받아야 하고, 제도권 금융 대출이 막히면 상상할 수 없는 고금리 사채를 써야 하는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평소 깊은 문제의식이 없다 보니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체불 피해 노동자가 민사소송에서 이긴다 해도 곧장 체불임금이 지급되는 게 아니라는 점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사업주의 재산이 없으면 강제집행이 불가능해 승소 판결문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얼굴 없는 검사들>을 읽으면서 임금체불에 무감각했던 스스로를 반성했습니다. 반성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임금체불을 주간경향의 ‘표지 이야기’로 다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취재를 시작해 지난 호에 임금체불의 실태, 문제점 그리고 대안을 다루는 기사 두 꼭지를 실었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 댓글의 반응을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산업재해를 제외하면 노동 이슈를 다룬 대부분의 기사에 ‘험악한 내용’의 댓글이 많은 편인데 이번에는 공감의 메시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기사 중 임금체불을 ‘임금절도’로 표현하는 게 타당하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한 독자는 “절도가 아니라 살인”이라는 댓글을 남겼습니다. 노동자들은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임금체불을 훨씬 더 절박한 문제로 여긴다는 방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울산 A중공업 하청업체에서 일한다는 한 노동자는 “장기간 임금을 못 받아 답답한 마음에 몇자 적어본다”며 e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다음 달에 꼭 준다는 식으로 사람을 붙잡아둔다. 정말 갈 데 없는 사람은 나중에 줄 거란 믿음에 일을 한다.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른 하청업체에서 일을 못 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임금체불은 가족들까지 죽으란 소리다.” 임금체불 근절은 이런 노동자의 현실과 매년 1조원을 웃도는 체불임금액 통계에 무감각해지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 취재 후
- [이기환의 Hi-story](7)쌍욕에 신상털기까지 조선판 댓글문화(2021. 10. 29 14:27)
- 2021. 10. 29 14:27 문화/과학
- 요즘 댓글문화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130년 전에도 일종의 댓글문화가 있었습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도서대여점(세책점)에서 빌린 소설책에 독자들이 툭툭 써내려간 낙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게 요즘의 댓글이 아니겠습니까. 매국노 이완용을 욕한 낙서. 소설의 내용 사이사이에 붉은 글씨로 “대역부도한 이완용” 운운이라고 썼다. 공개적으로 고관대작을 비판할 수 없는 조선 민중의 울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 유춘동 강원대 교수 제공 국권이 침탈되던 당대 소설책에 쓰인 낙서 가운데는 암울한 시대상황을 꼬집고 풍자하는 이른바 ‘시국 댓글’이 있었습니다. 낙서, 즉 당시 댓글의 주공격 대상은 매국노 이완용(1858~1926)과 송병준(1858~1925) 등이었습니다. “이완용 놈아! 내 손에 죽으리라!” “이완용 놈아… 네 몸이 남지 못하리라”, “대역부도 이완용아, 네가 무슨 일로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이 나라 망하게 놓은 자는 누구냐 하면 이완용과 송병준이라 하니… 두 놈을 잡아내 장안에서 만민의 원수를 갚으세”, “천하에 몹쓸 놈 아무 때 죽어도 내 손에 죽으리라. 총리대신 이완용 개자식.” 대놓고 욕할 수 없었던 매국노를 향한 조선 민중의 울분을 대여점 소설책에 고스란히 풀어놓은 겁니다. 민중의 각성을 촉구하고 나름의 해결책까지 제시한 댓글도 제법 눈에 띄었는데요. 어떤 댓글은 “심심하니까 이런 고담(옛 이야기·소설)만 보겠지만, 이젠 고담을 보지 말고 학교에 가서 교사합시다”라고 당부합니다. 소설에만 빠지지 말고 신식교육만이 살길이라고 당부하고 있는 거죠. 가없는 항일의식을 표출한 댓글도 있습니다. “우리 대한국 이천만 동포들아! 언제나 자주독립하여… 대한 동포끼리 살아볼까. 이 책 보는 동포들은… 아무쪼록 정신을 차려서 일본을 다 죽이고 삽시다.” 순수하게 소설의 내용에 대한 독자의 감상과 촌평도 있었습니다. <삼국지>를 읽고 “이 책은 <삼국지>가 아니라 <망국지>”라 하는가 하면 “가련타! 유황숙(유비)이여! 통일 천하하기 전에 영안궁에서 귀천하니 천도가 무심하다”는 댓글을 단 이가 있습니다. 조선판 ‘악플’과 신상털기 이런 댓글도 있지만 요즘처럼 익명성에 기댄 지독한 욕설과 신상털기 등의 악플은 지금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중에는 책대여값이 비싸다며 도서대여점 주인을 겨냥한 댓글(낙서)도 줄을 잇습니다. 개중에는 월남과 파란(폴란드)의 망국사까지 들먹이며 세책점 주인을 비판한 낙서가 눈길을 끄네요. “월남과 파란(폴란드)의 망국사를 보지 못했는가. 이런 세계에 음담패설로 꾸민 언문 이야기책을 돈 받고 세를 놓을 게 뭐냐… 내 말을 그르다 말고 이후에는 책세를….” 이건 양반입니다. 차마 눈과 입에 담을 수 없는 댓글을 남긴 이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책주인아, 예전같이 돈을 받으면 감옥소에 보내 종신징역하게 될 터이니 조심해…”라고 해놓고 “좌편에 있는 ○○와 ××는 너와 네 어미와 △하는 거야”라는 음란한 그림까지 그렸습니다. 그 외에도 남자의 성기 옆에 나체의 책 주인 어머니를 그려놓고는 “이 물건은 세책점 엄마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쓴다거나, “네 딸년을 나한테 보내라”든지 하는 쌍욕을 해댄 낙서도 있습니다. 세책점(도서대여점) 주인의 부모까지 소환해 음란한 그림을 그린 망측한 낙서도 있다. / 이민희·유춘동 강원대 교수 제공 주인의 실명을 거명하고 비판하는 경우도 제법 됩니다. “임경삼아, 내용을 고치라고 몇 번을 말했느냐”거나 “장주영(張周泳) 마자(馬子)이고, 어견자(魚犬子) 잡종류(雜種類)”처럼 도서대여점 업자 이름(장주영)을 거론한 뒤 한글욕을 한자로 옮긴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도서대여비 시비가 붙어 “주인의 대가리(머리)가 구녁(구멍)이 뚫어지도록 두들겨서 붙잡혀 갔다”는 내용까지 기록한 낙서도 보이네요. 상대의 실명을 터는 것도 모자라 그 가족까지 들먹이며 성적인 욕을 서슴지 않고 해대는 모양이 어쩌면 그렇게 요즘의 SNS 댓글과 비슷한지 모르겠습니다. 당대 최고의 히트곡 ‘유산가’ 낙서한 사람을 욕한 댓글도 있습니다. 유치한 악플 릴레이라 할 수 있겠죠. “이것 쓴 사람은 개자식”이라든지 “이 글씨 쓴 자식은 개자식의 자손”이라든지 “만약 이 낙서를 보고 욕하는 놈은 내 아들이다”라든지 하는 식이죠. 이런 ‘악플’에 일침을 가하는 댓글도 있는데요. “무식하게 욕설을 기록하지 마시오. 그리고 지금 관민이 아사 지경인데 어찌 이야기책만 보시오”, “이 책에 욕설을 쓰거나 잡설을 쓰는 폐단이 있으면 벌금을 낼 것이니 이후로 깨끗이 보시고 보내주소.” 당대의 유행가를 끄적거린 경우도 꽤 됩니다. 그중 민속성악곡인 ‘유산가(遊山歌)’는 당대 최고의 인기곡이었던 것 같아요. 현전하는 90여종의 세책 중 20종에서 낙서가 보입니다. ‘유산가’는 봄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하면서 봄구경을 권하는 노래입니다. “화란춘성(花爛春城)하고 만화방창(萬化方暢)이라. 때 좋다, 벗님네야, 산천경개(山川景槪)를 구경 가세…” 하는 내용입니다. 낙서나 댓글은 당대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일종의 쌍방간 의사소통이죠. 지독한 악플이 문제지만 그 역시 당대 사회의 민낯을 비춰주는 거울이니까, 그 자체로 소중한 역사자료임이 틀림없습니다. “잠자고 싶으면 한문책을 읽어라” 이 대목에서 궁금한 점이 생기죠. 당대 사람들이 얼마나 책을 많이 읽었기에 책을 빌려주는 도서대여점까지 있었다는 말일까요. 18세기 중후반까지 올라가 볼까요. 잠을 청하려면 책, 그것도 어려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죠. 낙서 중에는 책주인을 욕하는 댓글에 대해 다른 독자가 “이 글씨를 쓴 자식” 운운하며 악플 릴레이를 벌인 경우도 많다. / 유춘동 교수 제공 그걸 실천한 이가 다름 아닌 영조 임금이었답니다. 야사가 아니라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승정원일기>에 나와 있으니 엄연한 정사입니다. 1758년(영조 34년) 12월 19일의 일인데, 도제조 김상로(1702~?)가 밤잠을 설치던 영조에게 “제가 읽어주는 언문(한글) 소설책을 들으시면서 잠자리에 드시라”고 권했답니다. 그러자 영조는 “언문이 아니라 한문소설을 읽어야 잠이 올 것”이라고 민간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예전에 어떤 아낙이 아기가 울자 한문책으로 얼굴을 덮어주었다는 거야. 이웃집 사람이 ‘왜 하필 한문책이냐’고 물었더니 아낙은 말했네. ‘아이 아버지가 잠을 청할 때마다 한문책을 읽읍디다. 그래서 나도 이 애 애비처럼….” 영조는 그러면서 “이 말이 절묘하지 않은가. 한문책이야말로 사람을 잠들게 하는 거지”라며 크게 웃었다(大笑)고 합니다. 정조의 분서사건 이 일화는 조선 후기 소설 열풍을 소개할 때 양념으로 식탁에 올리는 메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조와 그의 아들인 사도세자(1735 ~1762)는 두분 다 ‘소설마니아’였습니다. 영조는 중국소설은 물론이고,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등 한글소설을 즐겨 읽었고요.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히기 불과 4일 전인 1762년(영조 38년) 윤5월 9일 <서유기>와 <수호지>, <삼국지> 등의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중국소설회모본>의 서문을 썼답니다. 반면 문체반정의 기치를 든 정조(재위 1776~1800)는 소설을 민간의 잡담을 꾸민 거짓투성이라며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연암 박지원(1737~1805)에게 “경박한 문체로 <열하일기>를 썼다”면서 반성문 제출을 요구했고, 성균관 유생 이옥(1760~1815)의 과거(대과) 응시를 막기도 했답니다. 또 예문관 숙직 중에 <평산냉연> 등 중국소설을 본 서학교수 이상황(1763~1841)과 이조참의 김조순(1765~1832)을 파직하고 이른바 불온서적을 불살라버렸답니다. 그들이 보았다는 <평산냉연>은 재주와 미모가 뛰어난 남녀의 결혼과정을 묘사한 청나라 통속소설입니다.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 이 일화들은 무엇을 일러줄까요. 다른 분도 아닌 조선의 중흥군주라는 정조가 분서사건을 일으킬 정도로 조선에 소설 열풍이 불었다는 얘기죠. 당시 서울거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후유증을 딛고, 기상이변에 따른 전염병 창궐에서 겨우 벗어나 한숨을 돌렸습니다. 여기에 18세기 초 대동법의 확대시행으로 각 지방에서 바치던 공물을 쌀로 통일하게 되자 큰 변화가 일어났고요. , , , 등의 고소설이 이광수나 김동인 같은 근대소설가가 쓴 소설보다 대중적으로 훨씬 더 많이 읽히고 팔렸다. 조정에서는 지방에서 거둬들인 쌀을 팔아 필요한 물품을 시장에서 사서 쓰게 됐죠. 그러다 보니 시장이 활발해졌고, 조정이 필요한 물품을 주문받아 생산하는 민영 수공업이 활발해졌고요. 상공업이 크게 발달하게 된 서울에는 다양한 물화가 돌았고, 저잣거리 문화가 꽃피게 됐답니다. 양반 사대부의 전유물이던 책은 중인과 평민의 벗이 됐고요. 독자들의 구미에 맞는 한글소설이 창작되기 시작하죠. 그래도 일반 백성이 책을 사보기에는 너무 비쌌죠. 그래서 중국에서 수입되는 책을 유통하는 책쾌(서적 중개인)와 책을 읽어주고 돈을 받는 전기수(傳奇?)와 같은 새로운 직업이 탄생했는데요. 전기수는 청계천 주변을 하루씩 한달 단위로 돌며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당시 전기수는 배우톤의 연기와 대사로 청중을 사로잡았답니다. 조수삼(1762~1849)의 <추재집>에 흥미진진한 내용이 나옵니다. 전기수는 마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연기톤으로 책을 읽다가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면 갑자기 대사를 멈추고 뜸을 잔뜩 들였답니다. 애가 단 청중이 돈을 던지면 그제야 대사를 이어갔다는데요. 비극도 일어났습니다. 소설 <임경업전>에서 임경업 장군이 역적 김자점의 무고로 목숨을 잃는 장면을 읽고 있던 전기수가 구경꾼이 휘두른 칼에 찔려 죽었다고 합니다. 임경업 장군이 실의에 빠지는 연기가 너무 실감 나서 벌어진 어이없는 살인사건이었던 셈이죠(이덕무의 <아정유고>, <일성록> 1790년 8월 16일자). 인기 있는 전기수는 부잣집 여인들의 부름을 받아 여장을 하고 여자 목소리를 내며 양반집 안채를 드나들었다는데, 이때 안방마님과 전기수가 눈이 맞은 게 들통나 포도대장에게 죽임을 당한 사건도 일어났답니다. “책 빌리려고 가산 탕진?” 깨끗이 베낀 책을 빌려주는 ‘조선판 도서대여점’도 탄생했습니다. 세책점은 당대 불어닥친 소설 열풍을 타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회문제로 비화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부녀자들이 소설에 흠뻑 빠졌다는 건데요. 책은 보고 싶은데, 빌릴 돈은 없으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녀자들이 비녀나 팔찌를 맡기거나 팔아, 혹은 빚까지 내서 책을 대여하는 통에 가산을 탕진할 정도였다는 겁니다. 실학자 이덕무(1741~1793)는 “부녀자들이 투기와 음란한 내용이 대부분인 소설에 정신이 팔려 있다”면서 “부인들의 방탕함과 방자함이 여기서 비롯됐다”고 비판합니다. 일본인 오카쿠라 요시자부로(岡倉由三郞·1865~1935)는 “조선에서는 냄비, 솥 등을 맡기고 책을 빌리며, 요금은 2~3일 기한에 권당 2~3리 정도”(<조선의 문학>)라고 했고, 프랑스 외교관 모리스 쿠랑(1865~1935)은 “세책점은 10분의 1~2문에 빌려주는데, 돈이나 화로 혹은 솥을 담보로 요구한다”고 기록했습니다. 당대 서울의 세책점은 30곳이 넘었다는데요. 육당 최남선(1890~1957)도 “골방에 갇혀 지내던 부인네들에게 달 밝고 별 깜박거리는 시원한 하늘을 보여주는 것이 실로 이 소설의 세계였다”고 소개했습니다. 당대의 베스트셀러 그렇다면 당대의 베스트셀러는 무엇이었을까요. <삼국지>나 <수호지> 등 중국소설의 번역물은 스테디셀러였죠. 그러나 베스트셀러 한글창작소설들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윤하정삼문취록>(186책) 같은 100책 이상의 대하소설과 <옥루몽>(30책) 같은 20책 이상의 장편소설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물론 <춘향전>, <홍길동전>, <소대성전>, <유충렬전>, <임경업전>, <숙영낭자전>, <심청전>, <여장군전> 등도 베스트셀러였죠. 당대 꼬장꼬장한 사대부 남성들도 앞에서는 눈살을 찌푸리는 척하면서 뒤돌아서서는 이른바 통속소설을 탐독하며 웃고 울었을 겁니다. 분명한 것은 <홍길동전>, <춘향전>, <소대성전>, <유충렬전> 같은 고소설이 이광수(1892~1950)나 김동인(1900~1951) 같은 근대소설가가 쓴 소설보다 훨씬 더 많이 읽히고 팔렸다는 사실입니다. 위로는 영조 임금부터 즐겨 찾았고, 아래로는 안방의 여인네들까지 가재도구를 탕진하면서까지 빌려보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 이기환의 Hi-story
- [포커스]‘김정은 위중설’ 댓글 분석해보니(2021. 03. 26 13:00)
- 2021. 03. 26 13:00 정치
- ㆍ오보 확인되자 진보 댓글러들 보수언론 찾아가 공격적 비난 2020년 4월은 국내 코로나19 확산세가 한풀 꺾이던 때였다. 4월 30일에는 전날(자정 기준) 대비 신규 확진자 수가 4명에 불과했다. 잠잠해진 코로나19의 빈틈을 북한 이슈가 파고들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위중설’이 지라시로 등장한 뒤부터다. 2020년 4월 14일이었다. 2020년 4월 1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는 사진(위). 이날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같은 해 5월 2일 공개된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 참석 사진 / 평양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이후 김정은 위원장 위중설은 빠르게 퍼졌다. 국내 북한 전문매체인 데일리NK와 미국 보도전문채널 CNN은 ‘건강 이상’을 보도했다. 북한에서 온 태구민·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이 “못 걷는다”, “사망 확률 99%”라고 했고, 언론이 받아쓰며 위중설을 키웠다. 반전은 5월 2일이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전날 김정은 위원장이 평안남도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이슈는 보수·진보가 대립하는 주제 중 하나다. 진보가 대북 유화정책을 관대하게 본다면, 보수는 북한에 보다 적대적이다. 김정은 위중설 국면에서도 보수세력이 가짜뉴스를 증폭한 측면이 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김정일 위중설 직후 펴낸 ‘북한 관련 허위정보와 대응’ 보고서에서 ‘북한 관련 가짜뉴스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정보를 주고받으므로 더 극단화되는 진영논리에 갇힌 집단극화 현상으로 확증편향 표출’이라고 분석했다. 흔히 국내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란은 여론 장악의 고지처럼 여겨진다. 댓글 여론을 선점하려다 벌어진 국정원 대선 댓글 조작 사건이나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처럼 검찰수사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김정은 위중설을 둘러싼 국내 포털사이트(네이버) 뉴스 댓글 양상은 어땠을까. 공수교대와 ‘전략적 비난’ 김정은 위중설을 둘러싼 보도는 대부분 팩트체크 성격을 띠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나타나기 전후로 사실관계 확인 중심의 보도가 이어졌다. 카이스트 경영공학과의 강태영씨(석사)와 심재웅씨(박사과정)가 쓴 논문 ‘팩트체킹에 대한 온라인 뉴스 댓글에서의 당파적 반응 연구-김정은 사망설을 중심으로’는 김정은 위원장 생존 확인 전후의 댓글 양상을 분석했다. 이 논문은 ICWSM(전미인공지능학회의 웹·소셜 미디어 부문 콘퍼런스)에 실렸다. 논문은 2020년 4월 30일부터 닷새간 네이버 정치 섹션 인기 뉴스 상위 30개에 댓글을 단 유저 8만2100명을 추렸다. 이중 268만6039개 댓글 이력이 있는 유저 1642명을 무작위 추출했다. 이들의 댓글 이력을 자체 알고리즘으로 추적해 정치성향을 보수와 진보로 나눠 다시 1617명을 선별했다. 예를 들어 “그래도 탄핵당한 대통령 배출한 정당은 절대 안 뽑는다!”, “홍발정당이 할 말이 있나?”와 같은 댓글을 쓴 유저는 진보성향으로 간주했다. “더듬어만진당;;;”, “북한이랑 왜 친하게 지내야 하지”와 같은 댓글을 자주 쓴 유저는 보수성향으로 분류했다. 분석 결과를 보면, 김정은 위원장 생존 확인 전후의 댓글 양상은 진보와 보수의 ‘공수교대’ 양상을 보였다. 생존 확인 이전까진 보수의 우세, 생존 확인 이후에는 진보의 우세가 두드러졌다. 김정은 위중설이 가짜뉴스로 판명 난 뒤에는 댓글을 다는 진보성향 댓글 유저 비율이 보수성향 댓글 유저를 역전했다는 말이다. 2020년 5월 2일 이전에는 보수성향 유저들의 댓글 작성 비율이 79.43%로, 진보성향 유저(73.66%)에 비해 높았다. 김정은 위원장 생존 확인이 된 뒤에는 진보성향 유저(91.23%)의 댓글 작성 비율이 보수성향 유저(89.46%)를 앞질렀다. 진보성향으로 분류된 댓글 유저의 ‘전략적 움직임’이 포착되는 점도 특징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공식 석상 등장을 알린 2020년 5월 2일 이후 조선·중앙·동아일보가 다룬 김정은 위중설 기사에 진보성향 댓글 유저의 욕설이나 부정적인 댓글이 늘었다. 눈에 띄는 포털사이트 메인 기사가 아닌 특정 언론사 기사를 ‘콕 집어’ 찾아가 댓글을 달았다는 점에서 전략적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연구설계에 따라 댓글을 단 전체 유저로 확대해보면, 진보성향 댓글 유저가 조선·중앙·동아일보에 단 부정적 댓글은 약 3만9450개 늘어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희망사항은 아니고? 그런데 정은이 죽으면 좋은 일 생기냐?”, “가짜뉴스 정말 문제다.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조선 고마해라 추잡하다 ㅉㅉ 이것도 신문이라고”, “누구냐. 얘 99프로 디졌을 꺼라는 넘이” 등 댓글이 네이버의 조선·중앙·동아일보 기사에 달렸다. 늘어난 진보성향 댓글 유저의 욕설 댓글을 추정해보면 4만4330개가량이다. 욕설 댓글 중에는 공격적으로 보수언론과 보수세력을 비난하는 댓글도 다수 보였다. 욕설 댓글로는 “이ㅅㄲ 인버스나 국방위산업체에 배팅해놨는지 조사해야 한다”, “사진 나왔어 븅시나ㅋㅋㅋ 국정원을 안 믿고 꽃제비와 해외에서만 주로 활동한 태영호 믿는 수준” 등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진보나 보수나 거기서 거기? 온라인 공간에서 진보와 보수는 어떻게 움직일까. 논문 저자 강태영씨는 “직관적으로 보수와 진보는 각각의 생래적 특징이 있다고들 생각한다. 가령 보수가 온라인 공간에서 더 공격적이라고 여겨진다”고 했다. 진보매체 이용자는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들이 뉴스에 단 댓글이 더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강도가 보수매체 이용자에 비해 더 크다는 취지의 국내 연구도 있다. 연구의 결론은 기존 견해와 결이 다르다. 강태영씨는 “이 연구는 생래적 특징을 떠나 특정 상황이 주어질 경우 양 진영 사람들이 모두 전략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했다. 진보·보수의 생래적 특징보다 상황과 맥락의 영향이 더 크다는 주장이다. 공저자 심재웅씨는 “진보성향의 유저들이 진보언론보다 보수언론의 기사에서 더 공격적인 댓글을 많이 남겼다는 것은 상대 진영의 정당성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행동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보수 중심의 한국언론 지형도 진보 댓글러의 ‘전략적 움직임’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4월 한국언론학보에 실린 논문 ‘한국 정파언론 환경의 특수성은 보수와 진보수용자의 매체 태도와 이용에 차별적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면, 보수성향 독자에 비해 진보성향 독자가 적대적 정파성을 더 강하게 지각한다. 보수성향 독자가 진보언론을 평가하는 것보다, 진보성향 독자들이 보수언론을 더 부정적으로 본다는 의미다. 실제로 포털사이트 다음에 올라온 보수언론 기사에는 내용과 관계없이 언론사를 비판하는 댓글이 다수 달리기도 한다.
- 특집
- 반노동 정서 혐오 댓글들, 왜?(2021. 01. 18 10:54)
- 2021. 01. 18 10:54 사회
- ㆍ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해고철회 투쟁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지난해 12월 24일 오전 11시 12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의 투쟁 뉴스가 포털에 걸렸다. 박소영 공공운수노조 LG트윈타워 분회장의 전화 인터뷰(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내용을 갈무리한 기사였다. 금세 노동자를 겨냥한 날 선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정규직을 목적으로 하는 농성’, ‘정년을 70세까지 요구하고 급료도 많다’는 댓글이 최다 추천을 받아 올라왔다. ‘노동자가 쉬는 대기실은 넓다’, ‘모든 청소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한 것도 아니고 (용역업체)지수에는 청소만 있는 게 아니라 타 시설팀 직원도 수십명이다’와 같은 내부 정보를 언급한 댓글도 있었다. 인터뷰 기사가 나온 날은 LG 측의 해명문이 배포되기 전이다. 이 때문에 노조는 사측이 조직적으로 거짓을 섞은 악의적인 댓글을 달아 여론 선점 작업을 벌였다고 판단한다. 노조 측은 “실제로 <MBC 뉴스데스크> 유튜브에 ‘배00’이라는 이름으로 댓글이 달렸는데 확인해보니 배씨는 LG그룹의 자회사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에 근무하는 관리자(운영PL)”라며 “노동자들이 파업 돌입 당시 불법 대체인력 투입에도 관여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하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 이석우 기자 청소 하청회사는 구 회장의 고모 회사 그런데 사측의 댓글 작업 정황을 떼어놓고 봐도 LG트윈타워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사회적 연대와 지지가 이어졌던 2011년 홍익대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와 비교해도 온도차가 있다. 그 사이 우리 사회의 반노동 정서가 심화된 것일까.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건 2019년 10월이다. LG그룹은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에 LG트윈타워의 건물 관리를 맡겨왔다.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은 관리 업무 가운데 건물 청소를 지수아이앤씨에 재하청했는데, 지수아이앤씨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두 고모인 구미정·구훤미씨가 50%씩 지분을 나눠 소유한 회사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구 회장의 ‘고모 회사’인 지수아이앤씨와 계약을 맺고 일했다. LG트윈타워 노동자들은 연결된 세 회사를 한 몸으로 본다. 노동자들이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해고에 대한 책임을 LG 측에 묻는 이유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계약해지는 용역업체가 단독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다. 지분 구조나 일감을 몰아줬던 운영 방식을 미루어 봤을 때 총수 일가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LG가 공동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왜 노조를 결성했을까. “정규직 전환이라니요. 정규직의 ‘정’ 도 꺼낸 적 없어요. 정규직 전환해달라고 떼쓴다는 댓글 저도 봤어요. 거짓말이에요. 우리가 원하는 건 지금처럼 여기에서 일하는 것뿐이에요.” 박소영 분회장은 억울하다고 했다. “정규직·비정규직에 대한 개념도 모르고 일한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1년씩 계약해 일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일하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노조 만들었다고 갑자기 나가라고 하네요. 이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싸우고 있는 겁니다. 이제는 거짓말을 퍼뜨려 우리를 욕보이네요.” 박춘남씨(60)는 야간 노동자다. 밤 9시에 청소를 시작해 새벽 5시까지 일한다. “야간에는 관리자 갑질이 심해요. 창문에 물방울 자국 하나만 있어도 다시 청소를 시키죠. 일이 끝이 없어요. 폭언에 욕설을 듣기도 해요. 그래도 찍소리 못합니다.” 청소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인 175만원을 받고 일했다. 주말 노동도 했지만 수당 지급은 없었다. 박씨는 “혜택을 달라는 게 아니에요. 주어진 권리를 찾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노조를 만든 거예요. 우리 말 좀 들어달라고.” 비정규직 중에서도 청소용역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조건이 가장 열악한 노동자에 해당한다.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상시 해고위협에 시달리고 인격적 무시를 당한다. 용역, 청소, 여성이라는 삼중의 차별을 당하며 일한다. 사고를 당했거나 신체의 이상이 생겨도 해고나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산재신청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전체의 3분의 1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청소용역노동자 노동조건 및 생활 실태 분석, 조돈문 2007) 노조 결성하자 계약 종료, 사실상 해고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뒤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은 지수아이앤씨와 계약을 종료했다. 청소 품질 저하가 계약 해지의 이유였다. 이후 노동자 80여명은 지난해 12월 31일 사실상 해고됐다. 용역업체 교체 후에도 고용승계를 하는 업계 관행에 비춰보면 부자연스러운 조치였다. 고용노동부는 ‘기간제 및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가이드라인’에 “도급사업주는 사내하도급 계약 중도해지 또는 계약만료 1개월 이전에 수급사업주에게 통지하고 고용승계 등의 방법으로 사내하도급 노동자의 고용 및 근로조건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LG 측은 따르지 않았다. LG트윈타워 노동자 집단해고는 2011년 홍대 청소노동자 해고 사태와 비슷한 모양새다. 그런데 여론 지형은 홍대 사태 때와 비교해 나아지지 않았다. 온라인상에서는 청소노동자의 투쟁을 귀족노조의 떼쓰기로 매도하고 공격하는 혐오 댓글이 넘친다. 현실에서 노조 조직률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반노동 정서는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불거진 공정성 논란이 반노동 정서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한다. 이 연구위원은 “인천국제공항 등 일련의 사태를 거치면서 고용 이슈에 대한 피로감이 쌓인 상태”라며 “하청 노동자의 고용 유지 요구를 마치 불공정한 정규직 전환 이슈처럼 받아들여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다른 노조의 투쟁은 별개 사안으로 철저히 분리해서 본다. 사안의 배경이나 현실을 배제한 채 투쟁의 당위성만 따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보다 약자에 대한 혐오가 짙어진 사회적 환경도 반노동 정서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홍대 청소노동자 사태 때와는 사회적 정서가 다르다. 지난 10년간 한국사회의 양극화는 심해졌다.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삶의 질이 하락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결국 고령의 여성 노동자까지 혐오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독자댓글 1358호를 읽고(2019. 12. 27 16:06)
- 2019. 12. 27 16:06 오피니언
- “제2, 제3의 용균이를 만들지 말라” 아픔을 누르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힘쓰는 모습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감사합니다._네이버 kil2**** 늦게라도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려는 김미숙씨를 폄하하지 말자. 소시민은 할 수 없는 용기와 의지로 가장 열악한 노동자의 대변인이 되고 있으니._다음고양이가되고 싶어 용균이 어머니는 비정규직 아들에게 발생했던 산재에 초점을 맞춰 분노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 불을 피워야 합니다._다음 canzy 삼성 ‘신경영 스타’가 산재노동자 된 까닭 글로벌 삼성의 민낯이다. 노동자의 피와 땀이 신경영이란 이름으로 총수 가족의 배만 불렸다. 노동자는 한마디로 기계였다._경향신문 나그네 노동자 쥐어짜기가 만연한 회사를 위해 일하다 병들었을 때 냉정하게 버림받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_네이버 kjle**** 노동자들의 고혈을 짜내야만 이익이 난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분배의 문제다._네이버 dana**** 선거법으로 본 각 당의 손익계산 어느 당에 유불리를 떠나 석패율은 민주주의에 맞지 않는 제도다. 청백전 애들 장난 예능도 아니고 국민투표로 다득표 1인에게 몰아줬는데 왜 패자부활전이냐._네이버 jong****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새 선거제도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나빠질 겁니다._다음 에버그린 다른 걸 다 떠나서 지역구 선거에서 떨어진 후보를 비례대표로 구제해주는 편법이 어떻게 공정한 방식일 수 있는가. 룰을 무력화시키는 담합일 뿐이다._다음 edsi ◆독자투고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글을 기다립니다. <주간경향>을 읽은 후 느낀 점이나 의견이 있으면 자유롭게 적어서 보내 주십시오.
- 독자댓글 1357호를 읽고(2019. 12. 20 16:35)
- 2019. 12. 20 16:35 오피니언
- “재판 잘못한 판사, 수사 잘못한 검사도 처벌하자” 특히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 기소종결권까지 가지고 있으면 누구보다 공정하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단 말이야. 수사권 제한하고 잘못 기소하면 책임도 지게 해야지._네이버 awak**** 제멋대로 재판하고 수사해도 책임지지 않고, 전관예우까지 받는 초특권층이 있는 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는 불가능하다. 이제라도 강력한 처벌을 입법해 올바른 세상이 되어야 한다._네이버 juki**** 범죄를 저질러도 그들 스스로 면죄부를 주니 범죄자 집합소가 된 거지. 징벌받지 않은 범죄는 더 큰 범죄를 부르게 되어 있다._다음 가브리엘 총선 유튜브대전, 보수가 승리한다? 인터넷과 유튜브는 야당의 것일 수밖에 없죠. 촛불이 그랬듯이요. 그게 억눌린 야권의 힘인 거고요. 여당이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되는 수순이랄까._토리노 유튜브로 판단하긴 시기상조인 것이, 유튜브를 찾아서 보는 게 자기 지지세력에 대한 대중매체의 분석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이 보는 것인지, 그냥 상관없이 다 보는 것인지 진단이 필요한 듯._네이버 hang**** 이건 정말 보통문제가 아닙니다. 말을 비틀어 사실을 왜곡하고 의혹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을 보면 입이 쩌~억 할 정도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을 미디어로 생각하고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_apff**** 전기요금 현실화 막는 포퓰리즘 전체 전기 소모량 중에서 가정용은 고작 20%도 안 되는데, 가정용만 비싸게 해놓고 공업용은 거의 원가로 공급해 전기소모가 극심한 산업구조로 만들어놓고, 다시 가정용 전기요금만 손보려고 하니 그렇지._냐냐냥 가정용 전기가격도 올라가야 하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낮은 전기료 때문에 고효율 가전기기 도입 유인이 낮거든요. 산업용이든, 상업용이든, 가정용이든 모두 올라가는 게 맞습니다. 몇 퍼센트 상승하는 거니 너무 아까워하지 마시길._Brian Jung 후대에 원전폐기물 처리라는 고통스러운 문젯거리를 남겨주면 안 된다. 돈이 들더라도 버릴 건 버리고 가자._네이버 sh12**** ◆독자투고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글을 기다립니다. <주간경향>을 읽은 후 느낀 점이나 의견이 있으면 자유롭게 적어서 보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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