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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총 27 건 검색)

[주간 舌전]“한·미는 대등한 동맹국가…속국이 아니다”
[주간 舌전]“한·미는 대등한 동맹국가…속국이 아니다”(2023. 04. 28 10:55)
2023. 04. 28 10:55 정치
“대한민국과 미국은 대등한 동맹국가다. 속국이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 한수빈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4월 26일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이 대표는 “한·미 정상회담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지고 있다”며 “(윤)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과 언행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미국 측도 많은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어떤 동맹도 우리의 국익보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민생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며 “우리 경제의 생명인 반도체를 불공정한 차별로부터 지켜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한국 기업이 중국의 반도체 부족분을 메우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미국 측 요청이 있었다는 보도를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 방미 성과를 부각하며 적극 방어에 나섰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기간을 ‘공포의 한주’라고 비난하는 더불어민주당 행태는 매국 행위나 다름없다”며 “국가대표팀 월드컵 경기에서 ‘져라’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 대변인은 “(민주당) 전·현직 당대표들의 부패 스캔들을 덮어보고자 정상외교마저 정쟁화하는 얄팍한 꼼수에 속을 국민은 없다”며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 윤 대통령의 경제 성과에 이어 안보 성과 역시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주간 舌전
“한·미·일 동맹 추진, 무지가 빚어낸 역사인식”(2022. 07. 08 14:24)
2022. 07. 08 14:24 정치
ㆍ 펴낸 송철원 현대사기록연구원 이사장 두껍다. 등산하는 느낌이다. 다 읽는데 꼬박 2주 걸렸다. 676쪽 분량이다. 그것도 ‘Ⅰ권’이다. 앞으로 나올 ‘Ⅱ권’도 비슷한 분량일까.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7월 5일 저자 송철원 현대사기록연구원 이사장(81)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박정희와 일본 Ⅱ>는 현재 절반 정도 집필을 끝냈다. Ⅲ권까지 계획 중이라고 했다. 검토할 부분이 많아져 원래 Ⅱ권에 담으려 했던 ‘박정희가 어떻게 대한민국을 일본화하려 했는가’ 부분을 별도로 다룰 수밖에 없게 됐기 때문이다. 송철원 현대사기록연구원 이사장이 7월 5일 서울 종로구 교남동에 자리 잡은 연구원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최근 그가 펴낸 새 책 <박정희와 일본 Ⅰ>은 이런 부제를 달고 있다. 무솔리니와 박정희 그리고 한일협정. “두 사람을 왜 결부시켰나 하면, 이 두 사람이 오늘날 부활하고 있어요. 이탈리아와 한국에서. 일부에선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고 공이 일곱이고, 과가 셋이면 잘한 것이니 하는데 정말 그러냐를 따져볼 필요가 있어요. 다음으로 두 사람이 살아온 길도 비슷해요.” 송 이사장의 정리에 따르면 두 사람은 ①사범대를 나와 ②군대에 갔다가 ③한때는 공산주의자였다가 전향했고 ④쿠데타를 일으켜 사람을 많이 죽인 데다가 ⑤여색을 좋아하며 죽을 때 여자와 같이 있었고 ⑥총을 맞아 죽은 것까지 비슷한 삶의 궤적을 보였다. 그렇긴 해도 박정희는 무솔리니처럼 사살된 뒤 거꾸로 매달려 시신이 전시되진 않았다. “그렇죠. 히틀러는 자신이 죽으면 그런 취급을 받을까 봐 자살했다고 합니다. 여하튼 이 두 사람의 삶이 비슷하니까 나는 무솔리니와 박정희의 삶을 멀리서 관조해보려 합니다. 그냥 평지에서 보면 평행선도 원근법에 따라 저 끝으로 가면 작게 만나는 것으로 보이게 되죠.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냥 평행선이 그대로 보입니다. 박정희나 무솔리니가 좋다, 나쁘다기보다 두 사람의 삶을 그렇게 비교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다음으로 박정희가 일본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던 동기, 다시 말해 한일협정을 체결하지 않을 수 없었던 동기는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이 5·16쿠데타에서 박정희를 승인한 것 자체가 박정희가 필요하니까 승인한 겁니다. 장면 정권 아래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민족주의 내지 진보세력이 득세해 통제 불능이 될 것 같으니까.” 당시 국제정세 아래에서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공산세력을 막을 ‘교두보’로 한국과 일본이 필요했고, 한국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해 쿠데타를 승인하는 한편, 한일회담을 성사시켜 이른바 청구권 자금으로 한국경제를 일으켜 소위 반공의 최전선으로 지킨다는 속셈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내가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이겁니다. 공개된 CIA 문서에 따르면 소위 한일협정을 타결했는데 일본으로부터 6500만달러를 뒷돈으로 받았어요. 대충 환산해봐도 37조원이라는 엄청난 돈인데, 협상하는 대가로 그런 엄청난 도움을 받고 무슨 협상이 됩니까.” 60여년 전 한일협정을 비판하는 이유 책엔 당시 상황이 생생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특히 주로 학생세력으로부터 터져나온 협상 반대 목소리를 담은 여러 성명서, 문건들과 함께. 송 이사장은 당시 ‘항쟁’에 앞장선 주역이었다. 최근 기자는 지인을 통해 당시 상황을 기록한 ‘난동데모’라는 정부 제작 공보영화를 입수해 봤다. 거기서 젊은 시절의 송 이사장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964년 5월 20일 열린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행사에서 “시체여! 너는 오래전에 이미 죽었다”로 시작하는 조사(弔辭)를 낭독하는 모습이다. 민족적 민주주의란 당시 박정희 정권이 지향하고 표방하던 이념이다. ‘장례식’은 박정희 정권이 내세웠던 구호의 허구성을 가장 날카롭게 폭로하는 퍼포먼스였다. 송 이사장이 술회하는 당시 일화. “그 뒤 수배로 도망 다닐 때 내가 신분을 감추고 가정교사로 들어가 있었거든. 그런데 나한테 배운 애들이 대한극장에 가서 그 영화를 봤는데 선생님 얼굴이 나온다는 거야. 이거야 그 얼굴이 그 큰 화면에 나오니 얼마나 커. 그래서 거기 못 있고, 또 다른 데로 옮기고 그런 적이 있어요.” / 도서출판 현기연 책에서 인용한 자료들은 당시 보도기사와 각종 회고록 등도 있지만 이제는 거의 구하기 힘든 당시 원자료들을 입체적으로 인용하고 있다. 성명서 원문이나 공판기록 등 당시 기록들은 아들이 수배된 뒤 관련 자료를 수집·스크랩한 선친(2010년 작고)의 노력 덕분이다. 일제강점기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한 선친은 서울 시내 여러 병원 원장을 맡았고, 아들이 학생운동에 연루됐을 때는 철도병원 원장이었다. “그러니까 이 양반이 무슨 야당 성향 정치색이 있던 분이 아니었어요. 그냥 평범한 고급 공무원 의사였는데 정권이 아들을 건드리니까 이제 화가 난 거예요. 그래서 정신이 바짝 들어가니 이게 뭔가 하고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기록을 남긴 겁니다.” 선친 송상근 선생이 남긴 스크랩북은 45권 6750쪽 분량이다. 1971년 선친이 미국에 이민하면서 자료를 넘겨받은 송 이사장은 군부정권에 자료를 빼앗길까봐 항아리에 넣어 땅속에 묻었다. 이 자료가 다시 햇빛을 본 것은 군사독재 시절이 끝나고 YS가 대통령이 된 이후였다. 송 위원장으로부터 야사에 가까운 무용담을 듣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의문. 최근사의 일, 예컨대 2015년 위안부 합의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는 한일 갈등의 뿌리가 결국 박정희 정권 당시 한일협정 때 돈을 받아온 명목이 뭐였냐를 명확히 정리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 아닐까. “그럼요. 2015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씨가 한일협정이 뭔지, 위안부가 뭔지를 몰랐던 겁니다. 그리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하려면 당사자들에게 물어야지 피해당사자한테 묻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불가역적이니 하며 합의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사실 한일협정이 애당초 잘못된 것이었어요. 애당초 1905년 을사늑약이 합법이었냐 불법이었냐 그걸 제대로 따지고 넘어가야 하는데 그냥 ‘이미 무효’라는 이상한 말로 넘어가 버렸기 때문에 저쪽은 왕이 도장을 찍었으니 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왕이 도장도 찍은 적이 없고 일부 찍은 것은 가짜로 해서 찍었고, 또 협박에 의한 것으로 무효라고 주장해야 했는데….” 피해당사자 의사 묻지 않은 ‘최종해결’은 억지 의문은 전 정권의 동북아 외교정책이 친북·친중 편향이라고 비판하며 한·미·일의 공조를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 정책에까지 이어진다. 군사정보 공유로부터 시작해 한·미·일 동맹의 ‘실상’은 일본을 중심으로 동북아시아 질서를 재편하려는 미국의 계획에 따라 한국이 미·일 동맹의 수직적 하위파트너로 전락할 위험이 있지 않을까. 벌써 60여년 전이지만 경험해본 선배로서 현 정부에 조언 내지는 경고할 것이 있지 않을까. “조언할 입장은 아니에요. 평소에 이런 생각을 해왔습니다. 나이가 70이 넘고부터는 후배들의 세상이니까 후배들이 하는 일에 간섭하지 말자는 거였어요. 그런데 어차피 나도 국민으로 살고 있으니깐 할 말은 해야지요. 한마디로 이 사람들은 역사에 무지하고 무식한 겁니다. 이게 뭐와 합쳐졌냐면 자기 이익의 보호, 또는 자기 주변 사람들, 자기 세력권이라고나 할까. 거기에 빠져 더 이상 타인의 고통이나 이런 것을 모르는 거죠. 내 나이가 올해 4월 3일로 만 80을 넘어선 마당에 좌고우면할 것 없이 여태껏 공부했던 것을 완결시키고 싶어요. 다만 이제 건강이 허락한다면 말이죠. 하하.”
한미 ‘비대칭 동맹’이 불러올 미래(2022. 06. 03 11:24)
2022. 06. 03 11:24 정치
ㆍ윤 정부, IPEF 참여로 미국의 인태전략 지지 ㆍ정책 전환에 북한 문제·한일 관계 등 난관 초래 아시아를 중심으로 국제정세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한반도는 그 중심에 서 있다. 지난 5월 21일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인도-태평양(인태) 전략’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물었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참여로 화답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현대 국제사회는 경제를 중심에 두고 정치·안보를 엮는 방식으로 새 판을 짜고 있다. 비슷한 수준의 경제블록이 중첩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협력의 본질이 ‘세력 구분’에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결국 IPEF 참여도 한국이 미국 주도의 ‘경제’ 질서에 한발을 걸친 것이 아닌 중국 주도의 ‘세계’에서 한발을 뺐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한미동맹을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를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관계 강화’를 시대정신으로 내세워 출범했다. 앞으로 5년 동안 한국은 미중 전략경쟁의 파고 속에 미국 쪽으로 다가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적 ‘기조’가 한미동맹의 ‘구조’와 만난다는 것이다. 당장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얻고자 한 모든 것을 얻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한국의 성과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정부의 협상력 문제가 아니다. 한미동맹이 강대국과 상대적 약소국의 ‘비대칭 동맹’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앞으로 이러한 현상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중국을 겨냥한 협력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외관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IPEF 참여다. 해당 사안의 본질은 미국의 ‘인태전략’과의 연계다. 인태전략은 말 그대로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한다는 통합적 인식이다. 일본 등이 주창해온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 Pacific)’에서 착안해 미국이 전략으로 가다듬었다. 목표는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중국을 겨냥한다. 인도-태평양은 중국이 해양으로 나올 수 있는 길을 통칭한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전략을 구체화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재균형 정책(Rebalancing Strategy)’ 등을 내세웠지만 이는 ‘부상하는 중국’과 우호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 반면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중국과의 대결 의지를 드러냈다. ‘신고립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지역 전략에서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외쳤다. 2017년 11월,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인태전략을 구체화했다. “미국은 언제나 인도-태평양 국가일 것이고, 강압이나 부패가 아닌 자유와 개방성의 미래를 보장”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든 국가의 주권과 독립 존중’, ‘분쟁의 평화적 해결’, ‘개방된 투자, 투명한 협약,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 ‘자유로운 항행과 비행을 포함하는 국제법 준수’를 원칙으로 제시했다. 하나하나가 중국의 행보와 배치되는 내용들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5월 23일 오전 일본 도쿄 소재 영빈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인태전략을 통한 중국견제는 두가지 측면에서 이뤄진다. 하나는 지정학적 측면이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일본·인도·호주의 4개국 안보협의체 ‘쿼드’다. 2007년 등장했지만 호주와 일본의 발빼기로 1년도 안 돼 좌초됐다가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함께 부활했다. 쿼드 회담은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만 여덟 번 열렸다. ABT(Anything But Trumph·트럼프 빼고 전부 다)를 내세운 바이든 행정부가 유일하게 예외로 남겨둔 것도 인태전략이다. 계승에만 그치지 않고 오히려 발전시키는 모양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국장급 실무회담, 외교 장관회담 등을 거쳐 지난 5월 24일 일본 도쿄에서 쿼드 정상회담이 열렸다. 또 다른 하나는 지정학적 측면이다. 중국은 경제개발 재원이 필요한 인도-태평양 국가들에 대규모 금융 지원을 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 중이다. 경제적 연결고리 확보가 정치적 영향력 확대로 이어지는 구조다. 미국은 이에 대응할 다양한 기구를 시험하고 있는데 IPEF는 새롭게 떠오른 대안 중 하나다. 윤석열 정부는 IPEF 참여를 계기로 미국의 인태전략에 가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미정상회담 결과로 발표한 공동성명에서도 여러 차례 ‘인도-태평양’을 언급했다. “번영하고 평화로우며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유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동 지역에 걸쳐 상호 협력을 강화한다”거나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및 번영의 핵심요소로서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등의 내용이다. 이는 모두 중국을 겨누고 있다. 북한, 일본이라는 난관 정부 출범 11일 만에 열린 한미정상회담은 윤석열 정부의 대외전략 전환을 밝히는 계기가 됐다. 문제는 정책 전환이 초래할 난관이다.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과제는 북한 문제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 간 협력을 한반도 문제 해결의 지렛대로 삼았다. 북한 문제를 중심에 놓다 보니, 중국과의 관계 역시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전략적 모호성’으로 대표되는 균형외교는 미중 전략경쟁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판단뿐만 아니라 북한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 정부의 태생적 한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문재인 정부는 미중 경쟁 상황에 ‘연루’돼 북한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을 경계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대외전략을 설정하면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정책적 고려에서 벗어난 듯한 모양새다. 외교무대를 한반도에서 인태지역으로 옮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손을 잡고 중국을 견제해 나가는 방식이다. 윤석열 정부는 미중 경쟁 상황에서 양쪽 모두로부터 ‘방기’돼 고립되는 상황을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북한 위협에 대한 대응이 미국의 확장억제에만 맞춰진다는 점이다. 확장억제는 북한의 핵 포기를 의미하는 ‘비핵화’와는 다른 범주다. 정부가 밝힌 비핵화 방안은 ‘북한 스스로 깨닫고 핵을 포기하고 나오라’는 것이다. 국제사회 공조를 통한 압박도 말하지만 북·중·러가 밀착하는 상황에서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바이든 정부의 외교 우선순위에서 북한의 중요성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 역시 국제 공조를 통한 비핵화 가능성을 낮춘다. 북한은 바이든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이 끝난 지 불과 12시간 만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단거리 탄도미사일 3발을 섞어서 발사했다. 북한은 이들 미사일 모두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북한발 위협이 고조되면 다시 중국 역할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 한국의 보수 정부뿐만 아니라 미국조차도 대북 압박을 위한 중국의 역할을 기대했다. 한국 정부의 인태전략 참여로 북한 문제 해법이 복잡해질 수 있다. 또 다른 난관은 한일관계다. 미국은 한·미·일 삼각협력을 대북공조 차원을 넘어 대중견제, 봉쇄 차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문제는 한일 간의 역사문제를 둘러싼 갈등이다. 양국은 반세기 넘게 해법 도출에 실패했다. 한일관계는 단순한 외교 문제가 아닌 국내정치적 사안과도 직결된다. 이미 인태전략의 중추로 자리 잡은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가 또 다른 뇌관으로 떠올랐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미일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고 했다. 유엔 안보리 개혁을 전제로 한 발언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안보리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외교적 수사로만 읽기도 어렵다는 의미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안보리 진출 추진을 놓고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외교부의 “찬성과 반대 차원을 넘어서는 복잡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이 전부다. 유사한 상황은 또 있다. 지난 5월 29~30일 한국 선박이 독도 주변에서 연이틀 해양조사를 하자 일본이 조사활동 중지를 요구했다. 독도 수역이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는 논리다. 일본 정부 대변인 역할을 하는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한국이 일본 EEZ에서의 해양조사에 대해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았으므로 강력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한일 간 영토 문제가 한·미·일 협의의 의제로 오를 경우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자칫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처럼 문제가 졸속 처리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2019년 중국 방문길에 나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 환영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인민해방군의 사열을 받고 있다. / 베이징 | AP연합뉴스 대미외교의 구조 ‘비대칭 동맹’의 심화가 파생하는 문제는 주변국과의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장 근본적인 건 대미 외교에서 자율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느냐다. 한국이 미국의 안보지원에 의존하는 정도가 커질수록 ‘방기’에 대한 불안이 커진다. 이를 막기 위해 필연적으로 더욱 ‘연루’될 수밖에 없다. ‘자율성-안보 교환’의 딜레마다. 이를 해소하려면 ‘방기’가 초래하는 불안의 근원을 제거해야 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북핵’ 문제의 해결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협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사실상 실패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전임 정부와 반대 방향으로 질주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는 ‘압박’을 선택했다. 정확히는 미국을 통한 압박이다. 결국 한국은 미국에 지불해야 할 비용이 늘어나는 구조로 들어섰다. 한국은 미국이 추진하는 인태전략을 지지 및 지원함으로써 비용을 지불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국과의 마찰은 한국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미국이 한국을 대신해 한반도에서 중국과 싸워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동시에 한국은 인태전략 내에서 일본·호주·인도 등과 전략적 지위를 놓고 다퉈야 한다. 일단 ‘연루’를 시작한 만큼 더 이상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논란은 소모적이다. 발생 가능한 문제점을 최소화하고 어떻게 한국이 인태전략의 중추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표지 이야기
[신간]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 外(2021. 04. 09 11:40)
2021. 04. 09 11:40 문화/과학
ㆍ한미관계 ‘동맹 중독’ 극복은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 김준형 지음·창비·2만4000원 한국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전쟁의 도탄에서 구원해준 은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역사적 흐름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모범적인 나라….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현실적으로도 그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되는 세계 최강국이기도 하다. 그래서 양국의 동맹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조금이라도 읽히는 모든 움직임은 맹렬하게 공격받던 때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정작 자국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미국의 태도 앞에서 주권국이라면 응당 취해야 할 대응을 하지 못하는 한국의 모습을 볼 때도 많다. 국립외교원장이자 한미관계 전문가인 저자는 이러한 한국의 관성을 일종의 세뇌라 할 수 있는 ‘가스라이팅’ 상태라고 진단한다. 불균형한 관계 속에서 합리적 판단을 할 힘을 잃었고, 그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희박해진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타난 문제는 자국의 입장과 이익을 추구할 기회는 점차 잃어가면서, 반면 노력하면 충분히 가능한데도 미국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향은 대체로 실패해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러한 ‘동맹 중독’을 극복하고 상호적인 관계를 회복해야 함을 역설한다. 책은 이와 같은 논지를 150년에 걸친 양국 간의 관계 속에서 역사적으로 살펴보는 동시에, 특히 최근의 정권들인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이나 사드 배치,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 남·북·미 대화 등의 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충실하게 논평한다. 미국과 중국 두 나라 사이의 갈등과 대치가 점차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흔들리게 하는 상황 속에서 균형외교를 회복할 수 있는 단서는 역시 남북의 평화공존으로 나아가는 데서 찾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왕 시작한 거 딱, 100일만 달려 볼게요 | 이선우 지음·설렘·1만5800원 50세에 마침내 박사학위를 받고 새로운 시작을 기대했던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좌절할 위기에 처한다. 이때 무작정 시작한 새벽 달리기로 100일 동안 총 1180㎞를 달린 과정을 얘기하며 운동을 머뭇거리는 이들에게 과감히 나서라고 권한다.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 양창모 지음·한겨레출판·1만4000원 강원도에서 병원에 닿기조차 어려운 아픔을 겪는 환자들을 왕진하는 저자는 지금까지 600회가 넘는 왕진을 진행하며 가파른 산길과 고개를 넘었다.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것은 ‘질병’이지만 왕진에서 마주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 정희진 지음·교양인·1만4000원 논쟁적인 주제에 관심 있는 ‘편협한’ 독자임을 자처하는 저자가 편안한 말, 기존의 언어나 이데올로기를 반복하는 책보다 ‘전압이 높은 책’을 읽으며 몸과 마음의 평화를 깨는 긍정적 의미의 스트레스와 자극을 받고 인생관이 뒤바뀐 경험을 책으로 펴냈다.
신간
민주화 세대 넘어 ‘80동맹’의 출현(2021. 01. 04 15:48)
2021. 01. 04 15:48 정치
ㆍ한국사회 분석서 낸 80년대생 저자들을 주목하는 까닭 “나는 분명히 밑에서부터 시작했다. 월급 100만원짜리 직업이었다. ‘노력하면 클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공채를 거치지 않으면 위로 치고 올라가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 기업홍보부서에 적을 두고 있다’고 저자소개에서 밝힌 백승호씨의 말이다. 백승호씨의 생각은 최근 한국사회에서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는 ‘공정’에 가닿는다. “중요한 것은 역동성이다. 정규직 대기업에 가지 않더라도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면서 학벌과 별개로 실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열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역동성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도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채 아니면 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공채문화를 어떻게 하면 공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저자들 왼쪽부터 김시우, 한윤형, 하헌기, 임경빈, 양승훈, 백승호 / 메디치 미디어 제공 ‘공정’에 대한 기존 해법에 의문 기존의 진보담론과는 다른 각도의 문제 제기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일단 해법이 아니다. “기업들도 앓는 소리를 한다. 해고도 힘들고 뭣도 힘들다고 한다. 일정 부분 타당성은 있다. 사기업에 대해서는 고용을 자유롭게 해줄 테니 해고에 대해서는 고용보험, 사회보험제가 강화돼야 한다. 공무원 사회는 오히려 정부가 결단하면 쉬울 것이다. 지금도 외부채용이 늘어나고 있는데, 공무원의 일정 부분은 정규직을 뽑되, 급수가 되는 직군은 전문가가 들어갈 수 있는 포지션을 늘여야 한다.” 사회적 고용안전망이 바탕이 되는 가운데 개방형 직군을 늘이는 것이 또 다른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대론과 색깔론에 가려진 한국사회 성장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추월의 시대>에 ‘공채공화국을 타파하라’라는 챕터가 들어가게 된 문제의식이다. 공채, 그러니까 시험 선발이 실제 그 사람이 입사 후 보일 업무수행능력과 일치하지 않는 건 경험적으로 안다. 그러나 다른 공정한 선발기준이 없기 때문에 모두가 평등한 조건에서 치르는 것으로 가정하는 시험이 선호된다. 공채구조는 20대 후반의 높은 실업률을 만들어낸다. 공무원 선발에서는 공시를 줄이고 ‘어공(어쩌다 공무원·별정직)’을 늘리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민간기업의 영역에서도 첫 직장이 낙인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사회의 이직 역동성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88만원 세대> 이후 나온 모든 세대론은 어떻게 보면 (기득권화한) 86세대를 몰아내자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의 문제의식을 요약한다면 ‘안 몰아내자’라고도 할 수 있다. 세대론적 갈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들의 인식론적 특권 대신 기여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대긍정론이냐’는 질문에 대해 역시 저자로 참여하고 있는 한윤형씨의 말이다. 저자들이 보기에 세대론과 색깔론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규정한다. 남성의 관점에서 봤을 때 ‘스무 살 무렵 이미 가족 중에서 가장 많은 소득을 올리게 된 세대’가 산업화 세대라면 ‘스무 살 무렵 이미 가족 중에서 가장 학력이 높았던 세대’가 민주화 세대다. 이들 두 세대에 속하지 않았거나 이들 세대에 속했더라도 그들의 서사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은 때에 따라 한쪽의 손을 들어주면서 한국사회는 발전해 왔다.(책 159쪽) 다시 말해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각각의 공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이 보기에 두 세대는 각자의 ‘폐쇄적 서사’에 갇혀 상대방의 공로를 인정하지 못했다. “산업화 세력에는 ‘북한과 그 추종자들’이라는 빌런(악당)이 있었다. 민주화 세력에는 ‘독재자와 그 부역자’라는 빌런이 있었다. 그들은 빌런이 존재하는 한 어떠한 고난을 겪더라도 굴하지 않고 영웅으로서의 책무를 짊어져야 했다. (…) 상대편이 퇴장하지 않는 한 퇴장할 수 없다.”(책 164~165쪽) 이들에 제안하는 전략적 방책은 ‘역사화해서 집에 잘 보내드리기’다. 히어로의 위선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히어로를 퇴장시킬 수 없다. 유일한 방책은 히어로가 이미 자신의 미션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음을 깨닫게 하는 것뿐이다. 일종의 해원(解怨) 내지는 씻김굿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이 시각의 연장선에서 평가해보자면 최근의 조국대전이나 검찰개혁을 둘러싼 갈등은 이미 역사적 소명을 다한 이들이 벌이는 유령싸움이다. 한윤형씨의 말이다. “조국 사태와 같은 것은 너무 민감해서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적어도 우리는 상대화하는 인식틀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가령 이런 이야기다. 제 또래의 입장에서는 조국 전 장관이 사노맹 활동을 했다는 것은 30년 전 이야기다. 86세대들의 경험으로 치환하자면 자신의 부모에게 한국전쟁 경험을 듣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조국대전과 검찰개혁 논란의 본질은 / 메디치미디어 책 저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80년대생이라는 점이다. 이들 스스로의 분류에 따르면 ‘중도파 2세대’다. 바로 윗세대인 70년대생들, 이른바 포스트 386세대는 ‘부모가 산업화 세대였지만 그에 반발해 민주화 세대의 인식에 합류했다’면 1980년대 생들은 산업화의 유산 속에서 자라난 부모들, 중도파의 자녀였기 때문에 민주화에 우호적이었지만, 대학 시절의 ‘세례’에도 불구하고 산업화에 완전히 부정적일 수는 없었다.(책 84쪽) 저자 임경빈씨의 말이다. “굳이 우리의 위치를 말하자면 연령으로 보나 사회적 위치로 보나 사회초심자 내지는 신입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산업화 세대나 86세대처럼 완전 기득권·권력층이거나 상위 플레이어 역할을 가진 실권자가 아닌 실무를 맡고 있는 중간관리자의 역할이라고 해야 할까. 실무에서 있어서는 어느 정도 실력은 갖췄고 돌아가는 공정도 알지만, 아직 권한을 갖지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서 이들의 목소리를 내보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 그런 목소리가 사회의 다수를 차지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가제는 ‘80동맹’이었다. 80년대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해보겠다는 취지도 있었지만, 흔히 이야기하는 ‘20 대 80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지만 억눌려 있는 80%의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기자가 이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것은 대략 1년 전 즈음이다. 이들 저자를 묶는 또 하나의 테두리는 팩트체크 유튜브 채널 ‘헬마우스’였다. 헬마우스 채널에서 스피커를 맡고 있는 방송작가 임경빈씨는 “책을 통해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 원래 가지고 있던 미션이고, 유튜브 채널은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라고 말했다. 책 집필에 참여한 저자들을 외부적으로 대표하고 있는 이는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이다. 하 소장의 말이다. “새로운소통연구소는 실체가 없는 조직은 아니다. 이번처럼 단행본 책도 쓰고 보고서도 만들어 공개한다. 거기다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작은 정치스타트업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책 이전에 외부로 노출된 활동은 역시 헬마우스 유튜브 활동이었다. 헬마우스에서 하 소장이 맡은 직책은 CP, 대표콘텐츠 공급자 역할이었다. “사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계속 우리에게 제기된 질문은 보수냐 진보냐 진영을 명확히 하라는 것이었다. 사실 진영적으로 따지면 딱히 어디에 속한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겠나. 사실은 보수에 가깝지 않을까. 확실히 우리 스스로 평가하기에도 민중당이나 정의당과는 색깔이 다르다. 우리는 기존의 진보·보수 모두 시대적응을 못 하고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코로나 국면에서 초기방역대응에 성공했다고 평가되었던 한국의 의료제도도 독자적인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는데, 영리 의료체계를 주장하는 보수파나 유럽식 주치의 제도를 주장하는 진보파 모두 안 맞는다. 이 논의는 한국식으로 발전시켜야 하는데 모두가 이념논쟁으로 진행하니 답이 안 나오는 것이다.” 80년대생들은 어떻게 ‘의식화’되었을까 기자가 이들의 활동을 주목한 것은 햇수로 2년이 넘었다. 궁금한 것은 이들이 오늘의 문제의식까지 이르게 된 경로다. 86세대가 형성된 1980년대나 포스트 386세대의 1990년대까지 그 경로는 명확해 보였다. 언더서클과 과 학회를 통한 이론학습과 ‘데모참가’와 같은 현장실천이 결합한 공정이었다. 하 소장의 경우 대구에서 지역예술가들과 활동과정이 출발점이었다. “대구에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많았다. 창작하려면 서울에 올라갔다가 꿈도 못 이루고 다 잃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요새는 온라인으로도 얼마든지 활동이나 수익창출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지방에다 회사를 만들었다. 임대료도 싸고 큰돈을 들이지 않고 만들어 활동하는 것이 가능하니까. EBS 공감 같은 데도 나가고 나름 효과가 있었지만, 도저히 채산이 맞지 않은 것이다. 상업적으로 아무리 해보려고 해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런 고민을 하다 만난 것이 신대철 선배다. 음원시장 구조에 대한 고민이 서로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바른음원협동조합이라는 창작자 단체였다. 종편 방송작가였던 임경빈 작가는 JTBC의 뉴스룸 팩트체크 작가로 합류한 뒤 2016년 박근혜 탄핵이라는 ‘공화국의 가장 간절한 순간’을 경험했다. 유튜브 헬마우스의 메인간판이 되면서 그는 집중 공격 대상이 되었다. 헬마우스 채널은 ‘청와대와 JTBC가 우파 유튜버를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낸 음모’와 같은 마타도어가 끊임없이 돌았다. 임 작가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제는 90년대생과 86세대를 잇는 중간관리자, 허리세대가 되었지만 우리가 20대 때만 하더라도 청년논객 또는 그 자장 안에 있던 사람들이다. 진중권이나 김규항이 주장하던 B급 좌파의 탐독자이고, 그 ‘키즈(kids)’라고 할 수 있다. 그 키즈들이 20대 중반을 넘어 실무자로 각 현장에 진출했다. 정치현장이든 담론, 노동, 산업현장이든 부딪혀 체득한 것들과 선배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틀린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또 한편으로 어느 부분은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아랫세대들은 잘 모르는 이야기일 수는 있지만, 윗세대의 공과를 비교할 수 있었던 세대라는 점에서는 행운일 수도 있다. 이것 또한 우리 세대의 의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포커스]바이든 시대, 한미동맹과 대북정책의 변화는(2020. 11. 20 14:30)
2020. 11. 20 14:30 정치
ㆍ트럼프식 압박 줄어들 가능성…‘전략적 인내 또는 무시’ 답습하지 않을 듯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이 다시 이끌어야 한다(America Must Lead Again)”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협력을 회복하고, 동맹을 회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가시밭길이 놓여 있다. 국내 혼란과 어려움으로 대외정책에 얼마나 에너지를 쏟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한미관계는 일단 바이든의 공약대로 동맹 관계의 복구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트럼프식의 양자적인 압박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고, 특히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동맹을 트럼프 방식인 ‘보호비 갈취(protection rackets)’의 대상으로 보지 않겠다고 천명한 만큼 해소될 것으로 예상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그러나 국제정치의 기본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미국은 역사적으로 동맹을 동등한 친구로 대한 적이 없다. 바이든이 등장했다고 우리 스스로 동맹을 다시 실용적 관점을 넘어 신화로 되돌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특히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의 기치 아래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한·미·일의 대중봉쇄망 구축과 미사일 방어를 위한 상호운용성의 제고에 방점을 두었던 것은 오바마 8년의 민주당 정권이었다. 미국 민주당의 축적된 대북 데이터 전문가 대다수는 한미동맹은 바이든 정부가 훨씬 나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대북정책에 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어왔다. 이유는 북한 문제를 거의 방치했던 오바마 정부 8년의 소위 ‘전략적 인내의 부활’ 가능성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으로 대통령의 부족한 외교적 역량을 보완했던 바이든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오바마 정부와의 연속성을 강조할 수 있다. 또한 북한체제와 맞았던 트럼프의 하향식(top down) 방식과 비교해 실무진의 협상을 통한 상향식(bottom-up) 접근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부정적 요소다. 지난 30년간 대북 실무협상은 주로 민주당 측에서 담당해왔는데, 신고, 사찰, 검증, 제재 등을 강조하는 바람에 협상이 결렬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부 교체의 경우 정책 검토와 외교안보팀 임명과 인준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점에서 시간 손실이 예상되고, 미국 내 산적한 문제로 말미암아 북한 문제가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 크다는 점도 거론된다. 그러나 긍정적인 요소도 꽤 있다. 우선 바이든 캠프 인사들은 ‘전략적 인내 또는 무시’라는 비판에 반발한다. 오바마 정부 당시 북한의 태도로 인해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가능한 옵션들을 성의껏 추진했다고 주장한다. 바이든 정부는 전략적 인내에 대한 비판을 충분히 인지하고 불편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답습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대거 포진했으며, 바이든 당선자는 이들의 견해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민주당의 축적된 대북 데이터와 경험에다 전문성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북한문제 해결에 나설 수도 있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을 선호하며, 한미 양국의 진보 정부가 공유하고 있는 외교 철학이 디딤돌이다. 무엇보다 바이든 당선자가 앞으로 어떻게 외교안보팀을 구성할지가 주목된다. 현재 파악되고 있는 바는 크게 두 축으로 나눌 수 있다. 외교안보정책의 경우 특정 지역이나 국가를 전문으로 하는 ‘지역주의자(regionalist)’와 특정 분야나 이슈를 다루는 ‘기능주의자(functionalist)’로 나뉘는데, 한반도 및 아시아 전문가 또는 북한 전문가들이 전자에 속하고, 핵무기 및 비핵화 전문가들은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보통의 경우 지역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지역주의자들은 온건한 편이고, 지역 불문하고 미국의 대외정책 전반의 통일적인 접근을 중시하는 기능주의자들은 강경파들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북한에 관해서는 지역전문가들은 북한에 대한 불신이 깊고, 과거 협상 실패의 경험으로 인해 타협보다는 엄격한 제재와 압박을 통한 포괄적 비핵화를 주장한다. 반대로 기능주의자는 북한의 핵 능력이 과거와 달리 매우 다양하고 고도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꺼번에 비핵화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므로 일단 동결 같은 중간과정을 거침으로써 핵전력 강화를 막은 다음 장기적으로 비핵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들이 전체 대외정책에서는 주류지만, 한반도 문제에 관련해서는 비주류다. 하지만 최근 조금씩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 문제 직접 다룰 전문가는 누구 국가안전보장회의 안보보좌관, 국무장관, 국방장관 등 최고위급의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토니 블링컨, 제이크 설리번, 수전 라이스, 크리스 쿤 등은 북한을 신뢰하지 않아 때때로 대북 강경발언을 내뱉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협상을 통한 해결을 지지한다. 이들은 미국 대외정책을 총괄한다는 점에서 북한 문제를 직접 다루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직접 북한 문제를 다룰 관료들과 자문역할을 하는 전문가들의 의견 개진이 중요하고, 바이든이 누구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일 것인가가 관건이다. 의회의 움직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9년 2월 샌더스를 포함한 51명의 진보파 의원들이 종전선언 결의안을 제출했다. 2016년 민주당 내의 진보파들이 나서지 않았던 것이 선거패배의 중요한 이유였는데, 이번에는 트럼프의 낙선을 위해 대체로 통합적이었다. 이는 이들 진보세력이 바이든 당선에 지분이 있다는 뜻이다. 북한 문제는 미국의 대외정책에 있어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 어젠다다. 즉 미국이 해결한다고 해도 미국의 이익에 보탬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다. 핵문제가 해결되고 남북이 평화공존을 이루거나, 또 통일될 경우 중국 경사로 갈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있다. 따라서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성공을 위해 한국은 이 부분에 대해 미국을 설득시킬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그래야 미국의 외교안보팀과 바이든을 움직일 수 있다. 미·중 갈등이 새 정부에서도 지속할 상황에서 우리의 대응 카드는 결국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적극적인 추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반도가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서 이용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남북의 평화공존이 요구된다. 바이든 정부의 출범이 미국이나 세계질서에도 변곡점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한반도에도 기대와 동시에 도전이다.
특집
[표지 이야기]‘민트동맹’ 실현가능한 얘긴가요?(2020. 11. 13 15:10)
2020. 11. 13 15:10 정치
ㆍ민경욱 전 의원 부정선거 공동대응 호소… 동조하는 트럼프 측 인사 아직 없어 “‘이게 통계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제가 여섯 달 동안 외쳐왔던 말이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 입에서 나왔습니다.” 민경욱 전 의원이 11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민트동맹. 민 전 의원이 만들어낸 말이다. 이튿날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상상의 나래가 도를 넘었다”며 당에 제명을 촉구하는 글을 올리자 민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부정선거의 큰 파도를 헤쳐나갈 것”이라며 “민경욱과 트럼프의 앞글자를 따서 민트동맹으로 불러주기 바란다”고 답했다. 지난 10월 2일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미국 백악관 앞에서 지난 4·15선거는 부정선거였다며 “한국민주주의는 죽었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민경욱 페이스북 지난 4월 15일 치러진 총선이 투표함 조작을 통한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던 민 전 의원은 현재 미국 체류 중이다. 10월 2일, 그는 미국 백악관 앞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죽었다(South Korea’s Democracy Dead)’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한국의 부정선거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것이다. 백악관 앞까지 갔지만 백악관 인사를 만나진 않았다. 민 전 의원이 겨냥하는 것은 지난 총선 투표조작설을 주장하는 국내외 한국 사람들이었다. 동맹에는 상대가 있어야 한다. 트럼프나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을 비롯한 트럼프캠프 누구도 민 전 의원이 호소한 동맹에 응한 사람은 아직 없다. ‘동맹 호소’ 트럼프 측 반응은 없어 트럼프의 부정선거 주장에 가로세로연구소를 위시해 그동안 4·15 부정선거를 주장해온 인사들은 적극 호응하고 나섰다. 카톡 등에는 이들이 주장한 ‘한국과 미국의 부정선거 유사점’이라는 글이 돈다. “-엉터리 여론조사 발표로 분위기를 조성한다. -코로나 핑계로 사전투표, 우편투표를 장려한다. -사전선거, 우편투표에 특정 후보 몰표가 나온다. -이기고도 표정이 안 좋다. -코로나 상황에도 투표율 최고치를 갱신한다….” 이 ‘가짜뉴스’가 과거와 다른 점은 출처표기가 있다는 점이다. 위 카톡 글엔 “(사진: 가세연인싸뉴스 11.9)”이라는 출처가 표시되어 있다. “4·15는 미 대선을 향한 예행연습이었다.” 11월 10일, 민 전 의원이 게시한 웹포스터에 적힌 구호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배경으로 ‘대한민국 4·15 부정선거’를 ctrl+c해 미국 대선 11·3 부정선거로 ctrl+v, 즉 ‘복붙’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 일을 했다는 말일까. 민 전 의원 등은 그 답을 정확히 제시하지 않는다. 답은 전 세계 지배를 꿈꾸는 ‘딥스테이트’와 같은 음모세력일 수도 있고, 투표지 분류기 프로그램 소스에 ‘당을 따르라(follow the party)’는 암호를 심어놓은 중국공산당일 수도 있다. 어쨌든 부정선거는 있었고, 그 주체는 누구라도 좋다. 전모를 밝히는 것은 자신의 일이 아니며 진실을 추구하는 정의로운 사람들, 또는 언론이 해야 할 몫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미국 대선에서 유사음모론은 이제 막 쏟아져 나오는 중이다. 미국 대선에서 사용된 개표기의 제작사는 도미니언(Dominion)이라는 회사의 제품인데, 이 회사 제품에 중국산 부품이 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미 하원 조사에서 드러났다는 출처 불명의 글이 트위터를 통해 돌고 있다. 민 전 의원은 “미국 대선에서도 부정선거 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이미 두 달 전에 해놓았다”며 당시 찍은 영상을 증거라며 올려놓고 있다. 11월 5일, 한 유튜버가 이번에 치러진 미국 대선의 부정선거 양상이 지난 한국 총선과 유사하다며 올려놓은 유튜브 영상 / 유튜브 닥터리와 아이들 캡처 사실 개표조작을 통한 선거조작은 보수우파계열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방송인 김어준씨가 자신이 진행하던 인터넷방송을 통해 적극 주장했고, 이후 영화(<더 플랜>)까지 만들면서 내놓았던 개표조작설 주장이 대표적이다. “투표가 아니라 개표가 결정한다”는 <더 플랜>의 음모가설은 거의 반박되었다. 김씨 등은 영화를 통해 ‘개표기’라는 표현을 썼지만 엄밀히 말해 개표장에서 사용되는 기계는 ‘투표지 분류기’다. 분류해놓은 표들은 정당 참관인들이 다시 검증하는데, 실제 개표단계에서 조작이 이뤄져야 한다면 수많은 사람이 공모해야 한다. 미분류상대득표율, 이른바 ‘K값’이 1.5로 비정상적 패턴이 전국적으로 유사하게 나왔다는 주장 역시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경험적으로 반박되었다. “개표조작” 주장에 문재인 당시 후보의 말 2000년대 들어 대선과 같은 큰 선거 직후에는 선거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조작 주장이 항상 있었다. 2012년 대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였던 문재인 현 대통령이 박근혜 후보에게 석패한 것을 두고 ‘도둑맞은 선거’였다는 주장을 펼치는 단체들과 개인이 있었다. “개표조작으로 인한 부정선거”라는 이들의 주장은 그 후에도 끈질기게 이어졌다. ‘왜 부정선거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가’라며 당시 부산 사상구에 있던 문재인 의원 사무실 앞에서 단식농성까지 벌였다. 당시 문재인 의원은 단식 농성자들과의 면담에서 “당신들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후 출간한 2012년 대선을 결산한 책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이렇게 못을 박고 있다. “12월 19일, 저는 선거에서 졌습니다. 공정하지 못한 선거였습니다. 선거에서 진 것이 그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선거가 공정하지 못한 덕으로 박 대통령이 당선됐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논란은 의미 없는 일입니다. 바람직하지도 않은 일입니다.” 지난 4·15총선 후 등장한 부정선거 음모론은 진영만 달리했을 뿐 크게 다를 바 없는 논리 구조를 담고 있다. 코로나19 정국 이후에 화제를 모은 ‘K-방역’처럼 이 ‘한국발 K 부정선거음모론’도 미국을 비롯한 세계로 수출될까. 현재까지 결과만 놓고 보면 그럴 것 같진 않다. 한국 총선 개표결과가 조작(Fraud)에 가깝다는 보고서를 발표해 한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월터 미베인 미 미시간대 정치학과 교수는 11월 9일 이번 미국 대선과 관련해선 “바이든의 득표데이터를 보면 현재까지 부정선거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특이사항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는 지난 5월 YTN 인터뷰에서 “자신이 쓴 Fraud라는 말의 의미가 꼭 조작이라는 뜻은 아니며, 자신이 개발한 분석모델에서 통계학적 표준을 벗어난 표를 의미하는 용어에 불과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표지 이야기
과도한 ‘동맹국 뜯기’ 부메랑 될라(2019. 11. 29 15:32)
2019. 11. 29 15:32 국제
ㆍ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통상에서 안보로 확대… 글로벌 리더십 상실 우려 “전화 두어 통으로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5억 달러(약 5900억원)를 더 내기로 했다. (이게 끝이 아니고) 앞으로 수년에 걸쳐 오를 거다. 멋진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월(현지시간) 백악관 회의에서 이같이 말하고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웠다. 그러면서 “좋은 무역협정과 군사합의를 하기까지 갈 길은 멀지만 오늘 유리한 지점에 있고, 앞으로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 26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선라이즈캠패인 랠리에서 발언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실제로 올해 한국이 분담하기로 한 분담금은 1조389억원으로 전년보다 787억원(6600만 달러·8.2%) 증가한 액수였다. 한국 정부가 ‘5억 달러’ 증가설을 적극 부인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치적 자랑’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향후 분담금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파다했다. ‘열 달도 안 돼’ 이는 현실이 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내년 한국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으로 올해 분담금의 5배인 50억 달러(약 5조9000억원)를 제시했다. 올해 대비 4조9000억원가량 증가한 액수로 전년 대비 인상률 400%다. 논리나 명분 없는 실리찾기에 급급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전략이 통상무역에서 외교·안보 분야로 본격 확대되고 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재개정,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폐기와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체결, 미·중 무역분쟁 등에 이어 방위비 분담금으로 ‘총구’가 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공약을 통해 미국의 글로벌 역할론을 부인하고 철저한 실리찾기를 예고했다. 미국이 동맹들과 세계 경제를 위해 희생하는 동안 미국만 피폐해졌던 만큼 이제는 제 몫을 찾아가겠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실리찾기에 논리나 명분은 뒤로 밀렸다. 한국에 요구한 방위비 분담금이 왜 50억 달러인지는 아는 사람이 없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느닷없이 한국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를 주장했고, 미 국방부와 국무부 당국자들이 간신히 설득해 47억 달러로 줄였다”고 보도했다. 올 초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한 해 우리에게 50억 달러를 부담시키면서 (과거) 5억 달러만 내고 있었다”며 50억 달러를 언급한 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상징적으로 ‘50억 달러’라는 숫자를 기억했고, 이를 동맹청구서로 무작정 제시했을 가능성이 크다. <뉴욕타임스>는 11월 22일 ‘트럼프의 한국에 대한 루즈-루즈(lose-lose) 제안’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측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는 동맹을 약화시킨다”며 “한국 정부와 국회가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며 미군을 ‘용병’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꿰뚫고 있는 것은 기저에 흐르는 민심이다. 400% 인상에 대해서는 과도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국으로부터 분담금을 더 얻어내는 데 싫어할 미국 국민은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워싱턴포스트> 조차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 차원에서 (주한미군이) 아시아의 전진 방어기지로서 그 자체로 값어치를 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하면서도 “확실히 한국은 (방위비를) 더 지불할 여유가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50억 달러 전부는 아니더라도 20억 달러만 받아내도 내년 대선용으로는 충분할 수 있다. 100% 인상률은 역대 어느 정권도 하지 못한 ‘성과’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꺼낸 청구서를 도로 집어넣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내년 대선을 향한 계산된 행보이기 때문에 한·미 양국 간 외교채널로도 해결하기 어렵다. 미국은 연말까지 한국과 협상을 마친 뒤 내년에는 일본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도 차례로 분담금 협상에 나선다. 한국 사례가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친소에 관계없이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시각을 유지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분담금 증액을 언급하면서 “한국은 그저 하나의 예일 뿐”이라며 “나는 한국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갖고 큰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메리카 퍼스트’ 전략이 지금까지는 잘 먹혔다. 11월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의 3대 지수는 한 주 만에 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또다른 새로운 기록”이라면서 “즐겨라”라고 썼다. 이 같은 경제적 성과는 민주당으로부터 탄핵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유일한 ‘믿을맨’이 되고 있다. ‘동맹들 뜯기가 과도하다’는 안팎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퍼스트를 밀어붙이는 이유다. 내년 미국 대선을 겨냥한 계산된 행보 반면 미국의 통상·안보 상대국은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 주가가 역대 최고를 기록한 날 멕시코 통계청은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계절조정치 기준)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멕시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해 4분기와 올 1, 2분까지 3분기 연속 역성장을 하고 있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지난 석 달 연속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경기를 부양시키는 데 역부족이었다. 멕시코 경제의 부진은 미국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여파가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NAFTA를 폐기하고 USMCA를 새로 체결했지만 미 의회에서 비준이 늦어지면서 불확실성도 한층 커졌다. 멕시코뿐만이 아니다. 독일·중국·한국·일본 등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들은 일제히 깊은 침체에 빠졌다. 무역비중이 높은 싱가포르·홍콩 등의 GDP 감소도 예사롭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에 수입산 자동차에 25%의 고율관세를 부과하기 위한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슈퍼 제301조’를 동원해 100% 보복관세를 미국이 부과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슈퍼 제301조에 따르면 한 국가가 불공정한 무역관행을 일삼고 있다고 판단될 경우 미 의회의 승인 없이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100%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복수의 소식통들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가 자동차 관세를 강행하기 위해 유럽연합(EU)의 무역관행에 대한 새로운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에 EU도 벼르고 있다. 미국이 끝내 고율관세를 부과할 경우 보복 조치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한·미 FTA를 재개정했지만 한국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산업에 부정적 영향이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특정국가에 대한 시혜적 조치를 좀처럼 내리지 않는다. 중국이 사지 않아 남아돌게 된 미국산 옥수수를 일본 아베 정권이 사겠다고 해도 “고맙다”는 말은 그때뿐이었던 게 트럼프 행정부다. 경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장기적으로는 결국 미국에게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동맹에조차 과도하게 실리를 추구하다가 신뢰를 잃게 되면 글로벌 리더십을 급격히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가 “중국은 장기적 관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동맹과 세계무역질서를 망가뜨리는 것을 더 선호할 수 있다”고 전 백악관 보좌관의 말을 빌려 보도한 것은 이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트럼프에 뿔난 국가들 ‘반미 동맹’?(2018. 09. 03 14:30)
2018. 09. 03 14:30 경제
ㆍ터키, 중국·러시아·이란과 연대… EU와도 경제협력 강화 하반기 세계 경제가 어떻게 될까 점치고 싶다면 경제기관에 갈 필요가 없다. 미국 백악관에 물으면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에 글로벌 경제가 출렁이고 있다. ‘트럼포비아’는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 직전 최고조에 이를 전망이다. 트럼포비아란 트럼프 대통령과 포비아(phobia·공포)의 합성어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서 비롯된 정치·경제적 공포를 뜻한다. 지난 5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를 ‘스트롱맨’이라고 칭했다. 하지만 ‘스트롱맨 중의 스트롱맨’은 단연 트럼프 대통령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8월 28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왼쪽)이 전달한 ‘레드카드’를 취재진을 향해 들어 보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미국의 경제제재에 직격탄을 맞은 세 나라가 있다. 러시아, 터키, 이란이다. 8월 한 달간 미국은 이 세 나라에 경제제재를 잇달아 부과했다. 미국은 8월 22일부터 러시아에 대해 안보 관련 품목 및 기술 수출을 금지했다. 만약 러시아가 계속해서 화학무기를 사용하고, 유엔 사찰단의 새 화학무기 조사를 거부할 경우에는 90일 이후 더 강력한 추가제재를 할 방침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8월 10일 터키의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관세를 현행보다 2배로 올리도록 지시했다. 그보다 사흘 전인 7일에는 이란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가 복원됐다.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는 나라들은 예외없이 환율 폭등과 주가 폭락을 겪었다. 가뜩이나 구조적으로 취약성이 큰 신흥국들이어서 미국이 부과한 경제제재의 영향은 컸다. 미, 멕시코·캐나다·한국·일본도 압박 국제금융센터 자료를 보면 미국의 경제제재가 본격화된 8월 15일 기준 터키의 리라 환율은 7월 말 대비 17.4% 절하됐고, 주가는 6.9% 하락했다. 국채금리는 242bp(100bp=1.0%)가 상승했고, 부도위험을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188bp가 상승했다. 8월 28일 현재 터키 리라화는 1달러당 6.2리라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1월 초(달러당 3.7리라)와 비교하면 70%가량 절하됐다. 미국은 터키가 가택연금시킨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을 석방하지 않을 경우 추가제재에 나서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러시아 루블화도 미국 제재 다음날인 8월 23일 달러당 67.7루블을 찍으며 환율이 급등했다. 연초(57.7루블)와 비교해보면 17%가 절하된 것이다. 미국은 지난 4월 시리아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 정부 관료와 기업인, 이들이 소유한 기업에 대해 제재를 가했다. 이후 불안감을 느낀 외국인 투자자들이 떠나면서 러시아 채권은 뚜렷한 약세를 보이고 있다. 3월 말 러시아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은 34.5%였지만 6월 말에는 28.2%까지 떨어졌다. 8월 22일 제재는 지난 3월 영국에서 발생한 이중스파이 살인사건이 직접적 원인이 됐다. 미국은 스파이를 살해한 나라로 러시아를 의심하면서 추가제재를 예고해 왔다. 미국 제재에 이란 리얄화도 곤두박질쳤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복원된 이틀 뒤인 8월 9일 이란 리얄화는 달러당 4만8906리얄에 거래돼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란은 핵개발을 포기하고, 국제사회는 이란 제재를 해제하겠다는 이란 핵협정(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합의를 이란이 이행하지 않는다며 지난 5월 미국은 협정에서 일방 탈퇴했다. 미국은 11월부터는 동맹국들에게도 이란산 원유 수입을 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란 정부 예산의 26%를 차지하는 돈줄을 끊어버리겠다는 얘기다. 미국과 대치국면에 있는 국가로 중국도 있다. 중국도 미국과의 관세전쟁이 표면화된 이후 위안화 약세와 주가 하락을 겪고 있다. 미국은 두 차례에 걸쳐 관세폭탄을 중국에 던졌다. 8월 23일(미국 동부시간 기준) 미국은 160억 달러 상당의 중국 제품에 25% 추가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화학제품과 하이테크 전자부품, 철강제품 등 279개 품목이 대상이다. 한 달 전인 7월 관세 부과(340억 달러)와 합치면 추가 관세 25%를 내게 되는 중국 제품은 1097개 품목 약 500억 달러(56조원) 규모에 달한다. 중국도 이날 16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25%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며 맞대결에 나섰다. 하지만 승자는 미국이었다. 미국이 고율관세를 추가로 부과한 23일 상하이종합지수는 2668.97까지 떨어지며 연중 최저치를 찍었다. 석 달 전인 5월 29일 종가(3120.46)와 비교하면 14%가량 주가가 떨어진 것이다. 환율도 7월 한때 달러당 170원대로 올라서며 연중 최고를 찍었다. 미국은 9월 초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대해 고율관세를 추가로 예고한 상태다. 중국은 6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상품에 대한 고율관세로 맞대응한다. 미국, 단기적으론 경제지표 호전 경제제재와 무역전쟁은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전략 차원에서 나온 것이 분명해 보인다. 미국은 멕시코, 캐나다와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한국과 일본은 철강·세탁기 등 주요 수출품에 대한 고율관세 부과를 놓고 얼굴을 붉히고 있다. 또 최근에는 121개 개발도상국에 적용하던 관세특혜를 줄이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 동남아국가들은 이 조치로 부담을 받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전략은 미국 내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고용과 물가, 성장률 등 거시경제지표가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는 2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을 4.2%로 상향조정했다. 2014년 3분기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다. 지난 5월 실업률은 3.8%로 17년 만의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일자리는 1년 만에 240만개가 늘어났다. 감세정책과 함께 시행된 고율 수입관세 부과는 미국 내 생산을 확대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트럼프노믹스가 장기적으로도 탄력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적대국은 물론 한국, 캐나다, 멕시코, 유럽연합(EU) 등 동맹국에게까지 전방위로 확대한 무역전쟁으로 인한 부작용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당장 미국의 무역제재를 받는 나라 간 연대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미국을 대체할) 새 동맹을 찾겠다”고 말했다. 중국 공상은행(ICBC)은 터키의 에너지·교통부문에 36억 달러 차관을 제공하겠다고 밝혔고, 중국 정부는 터키 채권 매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터키와 경제협력을 강화하기로 했고, 터키는 러시아제 방공미사일 S-400 도입에 이어 러시아제 전투기인 수호이-57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터키와 이란도 가까워지고 있다. 터키는 미국의 대이란 원유수입 금지조치를 따르지 않고 예정대로 수입을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에 뿔난 EU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독일과 프랑스는 터키와 경제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잇따라 밝혔다. 또 미국이 일방 시행 중인 대이란 경제제재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광범위한 ‘판 벌리기’에 대해 미국 내에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벤 사세 상원의원은 “전세계를 상대로 한 지나친 무역전쟁을 지양해야 한다”며 “이런 조치는 세계 경제 질서를 위협하고 동시에 미국의 일자리 감소와 경쟁력 저하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칼럼]동맹의 재구성
[칼럼]동맹의 재구성(2017. 10. 31 13:26)
2017. 10. 31 13:26 오피니언
한반도 전쟁 가능성에 대한 국제 사회의 긴장과는 달리, 국민의 일상엔 별다른 동요가 없다. 냉전수구세력의 안보마케팅에 이골이 난 탓일 수도 있고, 하루 평균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하는, 사실상 전시수준의 참사(연간 1만5000여명이다!)가 일상이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소위 ‘안보불감증’에도 맥락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안보불감증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위기에 대응할 ‘자기주도력’이 부재한 것이다. 안보를 남의 나라에 맡겨버린 다음에야 안보무력증에서 헤어날 길이란 없다. 핵무장 전략폭격기와 항공모함이 한반도로 집결하고, 민족절멸의 대참사가 단지 ‘군사적 옵션’이라는 세련된 언어로 운위되고 있는데도 그야말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북핵은 제네바 합의 때만 해도 핵 동결과 평화협정, 북·미수교가 일괄타결 방식으로 등가교환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선을 넘어 버렸다. 즉 북한은 ?이미 보유한 핵무기(몇 기나 되는지 가늠도 안 된다) ?현재 개량 중인 핵무기와 이를 지원하는 재처리시설 ?앞으로 소형화·경량화로 진화를 계속할 미래 핵기술 등 최소한 3개의 카드를 가진 셈이 되었다. 중국의 ‘쌍궤병행(비핵화와 평화체제 맞바꾸기)’도 물 건너간 것이다. 이제는 유예-동결-감축-불능화-비핵화라는 복잡한 다단계협상이 불가피해졌다. 북한은 자신들의 전략자산이 ‘뻥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연일 미사일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북한의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은 “화성-12 중장거리전략탄도미사일(IRBM) 4발을 동시에 발사해서 괌을 포위사격하겠다”면서, “이는 일본의 시마네(島根)현, 히로시마(廣島)현, 고치(高知)현 상공을 통과, 사거리 3356.7km를 1065초간 비행한 후 괌 주변 30~40km 해상에 탄착하게 될 것”이라고 미사일의 궤적과 시간, 거리 등 1급 군사정보를 일부러 공개했다. 왜 그랬을까.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제에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MD체제는 북한보다도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의 일환으로 구축되어 왔다. 일본의 재무장이나 한국의 사드 배치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지난 8월 30일 미국의 군축협회 미사일방어 전문가인 킹스턴 리프 국장이 “미국과 일본은 북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방법이 없다”고 실토했듯이, MD체제는 아직 갈 길이 먼 형편이다. 미국으로선 궤적까지 미리 알려준 북한의 미사일 요격에 실패한다면, MD의 효용과 신뢰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제 북핵문제는 남북문제를 넘어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에 대응하는 최대 현안으로 격상되었다. 위기의 진앙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핵은 그동안 남북문제로 위장되어 오던 한반도 긴장의 실체를 드러내게 하였다. 북·미 대치가 첨예해질수록 남측의 개입 공간은 더더욱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선 북한이 남측의 어떠한 대화 제의에도 응할 리 없다.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에 우리 정부가 완전히 포박돼 있는 이상 우리에게 허용된 운전자의 자리는 없다. 꽉 막힌 사태 해결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전술핵 배치나 참수부대 창설 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한·미동맹의 전략적 재조정이다. 문정인 특보의 말대로 “동맹은 전쟁을 막자고 있는 것이지, 전쟁을 일으키는 게 동맹의 기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미·일 동맹의 ‘강화’가 아니라, 반대로 전략적 ‘이완’이 필요한 시점이다. 결국 북핵문제의 해법은 목표도 방법도 ‘평화’밖에 없다. 그 길은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증하는 것으로 수렴된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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