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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총 7 건 검색)

[할 말 있습니다](19)전 세계 배달 라이더들 ‘분노의 질주’(2022. 11. 11 15:05)
2022. 11. 11 15:05 경제
“사람들은 우리 배달 라이더가 파업할 수 없을 거라 말하죠. 건당 배달비를 받는 경쟁 때문에 힘을 모을 수 없을 거라고요. 우리 말고도 여러분 집으로 배달을 해줄 배달원들이 많이 있으니까, 회사는 우리가 결국 지쳐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우리 대답은 이겁니다. 아니오(No)!” 배달노동자들이 지난 4월 25일 서울 송파구 배달의민족 본사 앞에서 내비게이션 실거리 요금제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올해가 시작된 1월, 플랫폼 노동자 투쟁의 첫 포문을 연 것은 영국 배달 라이더였다. 놀랍게도 이들의 파업은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돼 반년 넘게 지속됐다. 배달 플랫폼 ‘저스트이트’, 이들의 배달을 대행해온 ‘스튜어트’가 기본 배달단가를 무려 24%나 삭감해 버리자 이에 분노한 라이더들이 파업을 시작했다. 2월은 튀르키예, 3월은 미얀마, 4월 포르투갈, 5월 아랍에미리트(두바이), 6월 네덜란드, 7월 독일, 8월 말레이시아, 9월 프랑스, 10월은 이탈리아·한국·태국·홍콩에서 배달 라이더들의 파업과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우버’를 비롯한 앱 택시기사들도 남아공(8월), 케냐(10월) 등에서 파업을 조직한 바 있지만, 올해의 경우 플랫폼 노동자들 저항의 핵심부대는 배달 라이더였다고 할 수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배달 수요와 라이더 규모가 폭증했다가, 엔데믹과 함께 배달료 후려치기를 비롯한 노동조건 악화가 시작된 것이 주된 원인이 됐다. 감염병 공포 시기에는 ‘필수노동자’라며 추켜세웠지만, 그 기간이 지나가자 일회용 소모품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파업과 저항의 핵심 요구에는 항상 삭감된 배달료 원상회복 또는 배달료 인상이 포함돼 있다. 특히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튀르키예의 경우 지난 2월부터 수도 이스탄불에서 배달 플랫폼 ‘예멕세페티’ 라이더들의 파업이 1주일 이상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라이더유니온과 배달플랫폼노조가 ‘쿠팡이츠’의 배달료 삭감 이후 20여차례 교섭했지만 개선되지 않아 지난 10월 두 차례 파업을 벌였다. 알고리즘 이슈도 뜨거운 쟁점 홍콩의 ‘푸드판다’ 배달 라이더들이 10월부터 최근까지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부정확한 배달거리 계산 맵을 개선하기로 약속을 받았다. 최근 새로 적용한 맵으로 배달을 해봤더니 배달료가 오히려 삭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 아닌가. 그렇다. 한국에서도 ‘배달의민족’이 자체 개발한 앱을 사용해 배달거리를 줄이는 방식으로 알고리즘을 조작해 배달료를 삭감한다는 의혹을 받았다. 라이더유니온으로부터 고발도 당하고 배달플랫폼노조의 항의가 이어지자 상용 내비게이션을 사용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푸드판다는 미얀마와 말레이시아에서도 똑같은 일을 벌여 각각 3월과 8월에 라이더들이 파업을 조직한 바 있다. 배달료를 직접 삭감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알고리즘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라이더 저항을 주도하고 있는 노동조합들은 모두 노동조건을 좌우하는 배차·가격 결정 알고리즘 등을 투명하게 설명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스페인 노동조합 CCOO는 지난달 ‘글로보’ 배달 플랫폼에 알고리즘 설명 요구를 공식 전달하기도 했다. 지난해 만들어진 스페인 라이더법에 의하면 회사는 요청을 받은 지 15일 이내에 정식 답변을 내놔야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푸드판다와 배달의민족, 글로보 모두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의 자회사라는 점이다. 즉 배달의민족에서 벌어진 일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자회사를 통해 동시에 벌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10월 5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글로보 배달 라이더들이 24시간 파업을 벌였다. 전날 사고로 세바스티앙 갈라시라는 26세의 청년 배달 라이더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글로보가 고인에게 “유감스럽지만 계약조건에 명시된 업무를 수행하지 않아 귀하의 계정은 정지됐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죽어서도, 지옥에 가서 앱 열고 배달하란 말인가. 이탈리아 4개 총연맹 소속 라이더들이 모두 파업에 돌입하는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8월에는 그리스 노동부 앞에서 배달 라이더노조가 ‘E-푸드’ 산재사고 증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교대조 근무가 끝날 즈음에 사고가 집중되며, 제공받는 헬멧이 부실해 머리를 많이 다치고 있는데 회사가 아무런 대책도 수립하지 않고 있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라이더들은 E-푸드의 “쉬지 않는 배달”, “시한폭탄처럼 카운트다운을 요구하는 배달”로 인해 스트레스가 심한 조건에서 배달에 나서기에 사고가 잦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날 노동조합은 ▲노동부의 공식 조사와 근로감독 ▲‘위험직업 보험’을 모든 라이더에게 제공할 것 등을 요구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E-푸드 역시 딜리버리히어로의 자회사다. 11월 1일에는 필리핀 라이더그룹이 촛불집회를 열었다. ‘라라무브’ 배달 플랫폼으로 일하던 라이더 한명이 배달 콜을 기다리던 중 잠시 눈을 붙이다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한 일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배달료 삭감⇒노동조건 악화⇒잦은 사고 세계 곳곳에서 배달료 삭감에 나선 배달 플랫폼들은 라이더들의 노동조건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심지어 태국에서는 라이더들이 콜을 거절하면 8바트의 돈을 플랫폼에 지불해야 하는 황당한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항의파업이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배달료 삭감은 결국 라이더들이 생활임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배달 일감을 더 빠른 속도로 쳐내야만 한다는 의미다. 그럴수록 라이더들의 안전은 위험해진다. 이는 세계 전역에서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다. 악순환은 플랫폼 노동의 조직화와 저항으로, 플랫폼 규제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AB5법, 스페인 라이더법, 유럽연합의 플랫폼 노동 관련 입법지침 등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에 공통적으로 녹아 있는 원칙이 있다. 이들 기업을 규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보장하고 단체협약을 통해 플랫폼 기업의 탐욕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 이런 원칙을 입법으로 만든 그들이 ‘플랫폼 자율규제’라는 형용모순 단어를 듣는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벌써부터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한다.
할 말 있습니다
‘산재 전속성’ 벽에 가로막힌 배달라이더(2022. 04. 08 14:54)
2022. 04. 08 14:54 경제
ㆍ보험료 냈는데도 불승인… 특고노동자들 “까다로운 요건 폐지해야” 부업 배달라이더인 ‘배민 커넥터’로 일하던 박재범씨(49)는 지난 1월 15일 경기도 안산시 초지동의 한 사거리에서 음식배달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녹색으로 신호가 바뀌는 걸 보고 앞차를 추월해 주행하던 중 오토바이가 횡단보도에서 미끄러졌다. 지난 4월 5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열린 배달노동자 산업재해 문제 해결을 위한 인수위 면담 요청 기자회견에서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등 참가자들이 인수위로 면담요청서를 배달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산재 불승인 이유는 박씨는 이 사고로 갈비뼈 3개에 금이 가고 왼쪽 신장이 파열됐다. 현재까지 치료비로만 1000만원이 들어갔다. 그는 우아한청년들(배민 커넥터 운영사)이 주 단위로 산재보험료(월 7600원가량)를 원천징수했기 때문에 당연히 산재보험이 적용될 것으로 생각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는 사업주가 산재보험료를 모두 부담하지만 배달라이더와 같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사업주와 종사자가 반반씩 보험료를 부담한다. 박씨의 예상과 달리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 불승인’ 통보를 했다. 산재보험료를 내고 있었는데 왜 불승인이 됐을까. 이유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두곳 이상의 업체로부터 일감을 받아 일할 경우 사고가 난 업체에서 벌어들인 소득이 월 115만원을 넘거나 일한 시간이 93시간 이상이어야 한다는 ‘전속성’ 요건 때문이다. 직장인인 박씨는 지난해 10월 10일부터 주말에 부업으로 배달 일을 시작했다. 딸이 올해 대학 입학을 하면서 돈 들어갈 일이 늘어나서다. 일감은 쿠팡이츠, 배달의민족 2개의 플랫폼으로부터 받았다. 사고가 날 때까지 3개월간 220만원가량 벌었다. 소득의 80%가 배달의민족에서 발생했다. 박씨는 “처음에는 안전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고, 오토바이·헬멧만 있으면 앱 설치 뒤 바로 배달을 할 수 있는 쿠팡이츠에서 일감을 받았다”며 “하지만 11월부턴 시간제 보험이 도입돼 있던 배달의민족에서 대부분의 일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만약 박씨가 배달의민족 한곳에서만 일감을 받아 일했다면 소득이나 일한 시간과 무관하게 전속성을 인정받아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다. 하지만 두곳에서 일감을 받았기 때문에 사고가 난 업체(배달의민족)에서 ‘월 소득 115만원, 종사시간 93시간 이상’이라는 요건을 충족해야 했다. 박씨는 이 기준에 미달해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불승인 통보를 했다. 박씨는 “일 시작할 때 두개 업체에서 일감을 받았다는 이유로 전속성이 없다고 판단한 걸 납득할 수 없다”며 지난 3월 21일 근로복지공단에 심사 청구를 했다. 그는 “사고 전까지 전속성이라는 단어 자체를 몰랐다”며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등 플랫폼 업체들도 전속성 문제 때문에 산재보험 적용이 어려울 수 있다는 걸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에도 음식을 배달하다 사망했지만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한 사례가 발생했다. 지난 3월 30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에서 전기자전거를 이용해 일하던 40대 여성 A씨가 5t 트럭에 치여 숨졌다. 라이더유니온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월부터 매일 12시간씩, 8만보를 걸어 배달했다. 그러다가 다리가 아파 전기자전거를 장만했는데 이 자전거로 쿠팡이츠 배달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A씨 역시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두곳에서 일감을 받아 일했기 때문에 산재보험을 적용받으려면 사고가 난 쿠팡이츠에서 ‘월 소득 115만원, 종사시간 93시간 이상’이라는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고인은 쿠팡이츠뿐 아니라 배달의민족에서도 해당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속성 기준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박씨와 A씨처럼 전속성 기준 때문에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산재보험 적용의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는 전속성 기준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은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원칙적으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해야 산재보험법을 적용받을 수 있다. 다만 산재보험법 제125조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라는 샛길이 있다. 노동자는 아니지만 업무상 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면 산재보험을 적용하겠다는 내용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원래 노동자였지만 자영업자로 신분이 바뀐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보호할 필요성이 커진 데 따른 조치다. 문제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산재보험 적용을 받으려면 세가지 ‘허들’을 더 넘어야 한다는 점이다. ‘주로 하나의 사업에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할 것’, ‘노무를 제공할 때 타인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두 요건을 모두 충족하고, 대통령령이 정하는 직종에서 일해야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배달라이더는 퀵서비스 기사로 분류돼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택배기사, 학습지 교사, 대리운전기사 등과 함께 대통령령이 정한 15개 직종에 포함돼 있고, 노무를 제공할 때 타인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지만 배달라이더들의 상당수가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주로 하나의 사업에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할 것’이라는, 전속성 기준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배달라이더 박재범씨가 지난 3월 23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보험 전속성 폐지’를 요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 라이더유니온 제공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례가 시행된 2008년 당시 보호 대상으로 꼽힌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레미콘 기사 등은 주로 하나의 사업장에서 일을 했다. 이 때문에 전속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는 않았다. IT(정보기술) 발전으로 복수의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받아 일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대리기사·배달라이더 등이 대표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월 공개한 ‘플랫폼 노동종사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대리운전 종사자는 8만명에서 11만명 사이로 추정된다. 이중 하나의 대리운전업자로부터 업무를 의뢰받아 대리운전을 하는 사람은 9명뿐이었다. 복수의 플랫폼에서 일감을 받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하나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게 되레 이례적인 일이 돼버렸다. 음식배달을 부업으로 하는 사람도 늘어나면서 그 부업에서의 수입으로만 생활하지 않는 사례도 덩달아 늘었다. 전통적인 전속성 기준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불가피하게 전속성 기준의 해석을 수차례 변경해왔다. 1단계에선 본업이 회사원이고, 부업으로 배달 일을 하는 경우 부업의 소득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게 아니니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례 조항을 아예 적용하지 않았다. 2단계에선 부업에도 특례 조항을 원칙적으로 적용하되, ‘한곳에서만 일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3단계에선 2개 이상의 업체에서 일을 하더라도 산재보험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사고가 난 곳에서의 소득 혹은 일한 시간이 특정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렇게 조금씩 전속성 기준을 유연하게 해석하면서 적용 범위를 확대해왔지만, 여전히 박씨와 A씨 사례처럼 전속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가정이긴 하지만 이런 불합리한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B씨가 쿠팡이츠, 배달의민족 두곳 모두에서 ‘월 소득 115만원, 종사시간 93시간 이상’을 충족했다고 가정해보자. 산재보험은 중복가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두곳 중 하나로만 가입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산재보험 가입이 안 된 곳에서 사고가 나면 월 소득, 시간 기준을 충족시키고도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부 교수는 “전속성 기준을 유지하는 것은 배달라이더, 대리기사 등 새롭게 등장한 유형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를 사실상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번엔 폐지될까?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전속성 폐지’를 골자로 하는 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전속성이 충족되지 않는 사업장에서 산재가 발생해도 보상이 되도록 하는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 임종성 의원이 지난해 10월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국민의힘도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플랫폼노동 희망찾기’는 성명을 내고 “산재보험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례 제도가 시행된 지 14년이 됐지만, 정부는 전속성을 핑계로 특수고용노동자를 산재보험에서 실질적으로 배제해왔다”며 “수많은 안타까운 사연과 지난한 싸움 끝에 정부와 국회가 전속성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꾸물거리는 사이 또 한 명의 플랫폼 노동자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고 비판했다. 라이더유니온은 지난 4월 5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배달라이더 산재 문제 해결을 위한 면담 요청서’를 인수위 측에 전달했다. 인수위는 라이더유니온 요청을 받아들여 조만간 면담에 나설 예정이라고 한다. 인수위도 전속성 폐지에 공감하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관련 법안 논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있다. 소극적으로 전속성 기준을 해석해온 노동부는 2020년 뒤늦게 전속성 폐지로 방침을 정했다. 노동부는 최근 “개정 법안이 조속히 통과돼 시행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동계는 전속성 폐지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된 만큼 노동부가 법 개정 전이더라도 전속성의 해석을 더 유연하게 해서 산재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명교의 눈]배달 라이더 죽음으로 내모는 알고리즘(2020. 09. 24 16:39)
2020. 09. 24 16:39 오피니언
우리나라에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가 있듯 중국에도 ‘메이퇀(美團)’ ‘어러머(餓了?)’와 같은 대륙 전역에서 널리 쓰이는 배달 플랫폼이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저명한 월간지 ‘인물’에 ‘테이크아웃 라이더들은 시스템 안에 갇혀 있다’는 제목으로 배달 플랫폼 라이더들의 노동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르포가 실려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해당 르포는 지난 3월부터 반년간 수십명의 배달 체인 노동자들을 심층 조사했는데, 이에 따르면 배달앱 라이더들은 갈수록 더 심하게 목숨을 내놓고 일하고 있다. 어러머의 한 라이더는 최저 32분에 처리하던 배송을 이제 30분 안에 완수하기 위해 진땀을 빼야 한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배달시간이 그만큼 짧아졌기 때문이다. 메이퇀에서 3년간 일한 다른 노동자 역시 2016년 1시간이었던 배송 간격이 이듬해 45분, 다음해 38분으로, 급기야 지난해에는 28분으로 줄었다. 라이더가 감수해야 할 위험과 노동강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상하이에서 몇년째 배달노동을 하는 한 라이더는 건마다 한 번씩은 역주행한다. 그래야 배달시간을 단축해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마칠 수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속도와 신호를 엄수하는 등 교통법규를 제대로 지킬 경우 배달 건수가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배송시간을 지키지 못할 경우 매번 평점과 소득이 감소하고, 점수가 더 깎일 경우 잘리기도 한다. 중국사회과학원 쑨핑 연구원은 라이더들의 교통법규 위반은 알고리즘에 의해 오랜 기간 통제받으며 체득된 결과라 말한다. 알고리즘이 정한 시간 내에 배달하기 위해 더 빠르고 위험하게 달리게 되고, 이런 데이터를 수집한 알고리즘은 더 짧은 배송시간을 지시한다. 악순환의 연속인 셈이다. 2017년 상반기 상하이 공안국 교통경찰총대 자료에 따르면 상하이에서는 2.5일에 1명꼴로 라이더들이 목숨을 잃었다. 2018년 청두시 교통경찰은 배달 플랫폼 노동자의 교통법규 위반 건수가 1만건에 달하고 사고는 196건, 사망은 155명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라이더들이 시스템에 의한 통제로 죽어갈 때, 플랫폼 기업들은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메이퇀의 주문량은 25억건에 달했고, 1인당 수입은 전년 대비 0.04원 늘었으며, 원가는 0.12원이 절감됐다. 이는 해당 분기 한화 700억원의 이익을 늘리게 했다. 각각 ‘초뇌(超腦)’, ‘방주(方舟)’라 명명된 알고리즘들은 자본가들에겐 첨단 AI 기술을 과시하는 자랑거리지만, 1000만라이더에겐 죽음을 독촉하는 쳇바퀴일 뿐이다. 무엇이 죽음을 향한 경주를 멈추게 할 수 있나? 첫째, 초뇌와 방주의 원리가 라이더들 인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려면 알고리즘의 구성원리를 노동자들에게도 알려야 하고 개입할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둘째, 제도와 문화 등 사회의 복잡성과 집단 실천이 알고리즘 구성에 반영되어야 한다. 셋째, 무엇보다 라이더들의 노동 3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본의 이익과 죽음이 비례하는 이 끔찍한 초고속 발전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
[표지 이야기]2019년 주목받은 인물 -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2019. 12. 20 16:34)
2019. 12. 20 16:34 사회
ㆍ배달노동자 인권을 보장하라 지난 5월 1일 노동절, 국회 앞에 모인 배달노동자들은 배달기사들의 첫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을 출범시켰다. 이들은 오토바이에 배달노동자를 존중하라는 의미의 ‘라이더를 리스펙’ 스티커를 붙이고 청와대까지 행진했다. “우리는 배달하는 기계가 아니다”, “라이더 인권을 보장하라”는 구호를 더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이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와의 단체교섭이 시작됐음을 알리고 있다. / 박정훈 페이스북 이날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33)이 초대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라이더유니온의 탄생에는 언론 인터뷰와 페이스북 글쓰기, 카카오톡 단체 채팅 등으로 노조 참여를 독려한 그의 공이 적지 않다. 배달용 오토바이 전용보험이나 플랫폼사와의 단체교섭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그의, 그가 조직한 라이더유니온의 적극적인 여론 환기 작업 덕택이다. 그는 기본 3000원에, 프로모션이라는 이름으로 적게는 500원에서 많게는 2000원까지 배달단가가 요동치면서 라이더들이 내일 수수료가 얼마나 내릴지, 올라갈지 알 수가 없는 불안함 속에서 ‘실험용 쥐’처럼 대우받고 있다고 했다. 최근 배달앱 1·2위인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가 인수·합병하기로 하자 라이더유니온은 합병이 배달단가 후려치기로 라이더들에게 피해를 줄까 두렵다면서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타다 플랫폼을 둘러싼 불법파견 논란이 커지고, 타다에 우호적이었던 여론의 흐름을 역전시키는 데 그도 한몫했다. 그는 지난 5월 7일 페이스북에 “공유경제가 새로운 혁신이고 대안인데, 규제 때문에 못 한다며 마치 세상을 바꾸는 주역인 양 생각하는 분들이 너무 많다”며 타다 운영사의 모회사인 쏘카의 이재웅 대표를 ‘저격’했다. 타다가 기사들의 근태를 카톡으로 일일이 보고하게 하고 고객에게 말 걸지 않기 등 타다만의 업무방식을 교육·지시하며 사실상 불법파견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뒤다. 타다가 운전자 딸린 렌터카 유상 임대사업을 하면서 사실상 택시면허 없이 택시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고, 검찰 기소와 여객운수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로 이어졌다. ‘타다가 혁신인가’라는 논쟁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박정훈 위원장은 이에 대해 지난 11월 <오마이뉴스> 기사를 통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 열사의 이 외침이야말로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의 삶을 바꾼 혁신의 순간이었다”며 “대한민국이 과거로 퇴보할 게 아니라 미래로 전진하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다가 아니라 전태일이다”라고 밝혔다. 박정훈 위원장은 과거 알바노조 위원장을 지냈다. 2016년 ‘최저임금 1만원’ 단식투쟁과 2018년 ‘폭염수당 100원을 주세요’ 1인 시위도 했다. 올해 초에는 자신의 경험과 주변 알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모은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책을 냈다. 그는 바쁜 배달 일과 중에도 적극적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하면서 배달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 중·고생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노동인권 교육도 한다. 페이스북 글쓰기로 플랫폼 업계의 변화와 노조 소식을 알리는 데 열성적이다. 노동현장에 밝아 각종 토론회에도 자주 참석한다. 그의 활동이 더 눈에 띌수록 플랫폼 노동이 더 나은 노동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표지 이야기
할리우드, 이번에는 ‘인클루전 라이더’다(2018. 03. 19 14:45)
2018. 03. 19 14:45 국제
‘인클루전 라이더’란 영화를 제작할 때 배우와 스태프의 성적·인종적 다양성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한다는 내용의 계약조항을 뜻한다. 여성과 유색인종, 성적소수자, 장애인 등을 영화 제작과정에서 배제하지 말고 ‘포함’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 로스앤젤레스|AP연합뉴스 ‘미투’ 운동의 진원지로서 전세계에 충격과 영감을 불러일으킨 미국 할리우드가 또 한 번 새로운 고민거리를 세상에 던졌다. 미투 운동이 영화계 유력 인사의 성폭력과 성차별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 화두는 유력 인사들이 그 힘을 성별·인종·성정체성·장애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해소하는 데 행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발단은 지난 4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개최된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수상자 프랜시스 맥도먼드(61)가 수상소감 도중 꺼낸 두 단어 ‘인클루전 라이더(inclusion rider)’였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해야” 맥도먼드는 여우주연상 시상자인 배우 조디 포스터와 제니퍼 로렌스가 자신의 이름을 호명하자 상을 받기 위해 무대에 오르다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마이크 앞에 선 맥도먼드는 “만약 내가 넘어지면 일으켜달라. 해야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수상의 기쁨과 감사를 표한 뒤 “지금 이곳에 앉아 있는 모든 여성 후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주기 바란다. 메릴 (스트립), 당신이 일어난다면 모두가 따라 일어날 것”이라고 요청했다. 배우 메릴 스트립을 필두로 시상식 후보에 오른 여성 배우와 프로듀서, 감독, 작가, 작곡가 등이 일제히 기립했다. 성차별과 성폭력을 이겨내고 그 자리까지 온 할리우드의 여성들이 서로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맥도먼드는 “우리는 말해야 할 이야기가 있고 비용을 모금해야 할 프로젝트가 있다”며 주의를 환기한 뒤 “오늘 여러분에게 단어 두 개를 남기겠다. 인클루전 라이더”라고 수상소감을 마무리했다. 관객석에서는 잠시 정적이 흐른 뒤에야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대다수 관객이 인클루전 라이더가 무슨 뜻인지 몰랐던 것이다. 맥도먼드의 수상소감 이후 화제의 표현이 된 인클루전 라이더는 직역하자면 ‘포함 조항’이다. 스테이시 스미스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저널리즘)가 2014년 제시한 것으로, 맥도먼드 자신도 시상식 후 인터뷰에서 “영화산업에서 35년을 일했는데도 지난주에야 알았다”고 할 정도로 생소한 개념이다. 포함 조항은 영화를 제작할 때 배우와 스태프의 성적·인종적 다양성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한다는 내용의 계약조항을 뜻한다. 여성과 유색인종, 성적소수자, 장애인 등을 영화 제작과정에서 배제하지 말고 ‘포함’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스미스 교수는 주·조연을 맡는 A급 배우들이 출연계약서를 작성할 때 인클루전 라이더가 계약서에 들어가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협상력 있는 유명 배우들이 앞장서서 목소리를 높여야 영화제작사가 남성, 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위주로 배우와 스태프를 고용하던 종전의 관행을 바꿔 나간다는 것이다. 스미스 교수는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대사가 있는 배역은 40~45명 정도이고 이 중 스토리와 관련 있는 배역은 8~10명에 불과하다”며 “나머지 30여명의 배역이 영화가 펼쳐지는 공간의 인구통계를 반영해선 안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현실에서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고 일부는 장애인이거나 유색인종, 동성애자인 것처럼 배우와 스태프의 구성도 현실의 다양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다. 스미스 교수는 인클루전 라이더가 미국풋볼리그(NFL)가 2003년 채택한 ‘루니 룰(Rooney Rule)’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루니 룰은 구단이 감독이나 구단 고위직을 새로 채용할 때 백인이 아닌 인종을 후보군에 넣고 면접해야 한다는 규칙이다. 스미스 교수는 “인클루전 라이더의 진짜 목적은 오디션과 캐스팅 과정의 편견에 맞서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제작하는 작품에 인클루전 라이더를 채택하겠다고 밝힌 배우 겸 제작자 벤 에플렉(왼쪽)과 맷 데이먼. / AP연합뉴스 동참 선언하는 배우들 맥도먼드의 수상소감 이후 인클루전 라이더의 대의에 공감하는 배우들이 하나둘 동참을 선언하고 있다. 2016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브리 라슨이 가장 먼저 맥도먼드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명했고 제작사인 인데버 프로덕션도 계약서에 인클루전 라이더를 넣겠다고 밝혔다. 영화 <블랙 팬서>에 출연한 배우 겸 제작자 마이클 B 조던은 지난 7일 “이 싸움을 이끌고 있는 여성과 남성을 지지하며 앞으로 우리 회사 아웃라이어 소사이어티가 제작하는 모든 작품의 계약에 인클루전 라이더를 넣겠다”고 말했다. 조던은 ‘결의’를 보여주기 위해 아웃라이어 소사이어티 대표인 얼래나 메이오, 자신의 에이전트 필 선과 함께 촬영한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다. 아웃라이어 소사이어티는 영화 <토머스 크라운 어페어>의 리메이크작과 넷플릭스 드라마 <레이징 디온> 제작을 앞두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배우 겸 제작자 맷 데이먼과 벤 에플렉, 영화감독 폴 페이그가 이 행렬에 동참했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2016), <스파이> 등을 연출한 페이그 감독은 “(인클루전 라이더는) 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냥 상식”이라며 “인클루전 라이더를 채택하지 않는 사람과 스튜디오, 회사는 전진하는 게 아니라 퇴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클루전 라이더 바람은 영화계를 넘어 다른 분야에도 불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 관련 컨설팅 업체인 ‘바야 컨설팅’ 창업자 니콜 산체스는 “인클루전 라이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전화를 10여건 정도 받았다”고 말했다. 산체스는 “기술업계에서도 채용 후보자가 ‘성별 임금 격차를 특정 시한까지 줄여달라’고 사측에 요구한다든가 하는 식의 인클루전 라이더를 요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개념의 원작자인 스미스 교수는 이번 기회에 인클루전 라이더에 대한 인식이 널리 확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는 “인클루전 라이더를 채택하겠다는 영화제작사의 전화가 걸려오기를 희망한다. 고용 관련 변호사들도 바쁘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화제]‘카트라이더’는 대박 났는데(2006. 03. 28)
2006. 03. 28 사회
올 첫 자동차경주대회 ‘힘빠진’ 시동… 부대시설 부족, 레이싱 모델에만 관심 쏠려 3월 15일 경기 용인 스피으웨이에서 열린 타임 트라이얼전에서 자동차들이 굉음을 내며 달리고 있다. 3월 12일 경기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올해 첫 자동차경주대회가 열렸다. 겨우내 조용했던 경기장에 특유의 굉음과 환호성이 울려 퍼진 것이다. 막판 기승을 부리는 꽃샘추위 때문에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졌고 살을 에이는 듯한 칼바람이 불었지만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린 레이서들, 레이싱 모델들, 팬들은 오전부터 스피드웨이에 모여들었다. 이날 경기는 타임 트라이얼 1전이었다. 타임 트라이얼은 출발선에서 여러 대의 차가 동시에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한 대씩 일정한 간격으로 출발해 가장 빠른 시간에 구간을 통과하는 선수가 승리하는 경기 방식이다. 박진감은 다소 덜할지 모르나 현란한 레이싱 테크닉을 볼 수 있는 경기이다. 모터스포츠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빅3 스포츠이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모터스포츠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 귀에도 익숙한 독일의 미하엘 슈마허가 전 세계를 통틀어 매년 스포츠갑부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모터스포츠의 인기가 대단함을 방증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모터스포츠가 일반인들의 시선을 많이 끌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빈약한 모터스포츠 현 주소 확인 3월 15일 올해 첫 자동차경주가 열린 용인 스피드웨이.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자동차 생산 면에서 미국, 일본, 독일, 중국에 이어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세계 10대 자동차 생산국들이 저마다 경기장을 5개 이상씩 보유하고 있고 각종 세계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애쓰는 현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모터스포츠 현황은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을 만큼 초라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자동차 경기장도 상설경기장으로는 경기 용인과 안산, 강원 태백, 이렇게 세 곳에다 경남 창원에 특설경기장이 있을 뿐이다. 3월 12일 열린 타임 트라이얼전의 텅 빈 관람석은 빈약한 국내 모터스포츠의 현 주소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날이 추운 것이 큰 원인이었겠지만 올해 첫 경기라는 것을 감안하면 텅 빈 관람석은 업체들의 지원도, 대중들의 관심도 극히 미비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이날 스피드웨이를 찾은 사람들도 대부분 자동차경주 자체보다는 ‘경기장의 꽃’으로 불리는 레이싱 모델들에 더 심취해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카메라를 들고 레이싱 모델의 모습을 한 컷이라도 더 담아내려고 애썼다. 이날 참가하지 않은 한 레이싱 모델의 팬이라고 자처한 사람은 “수년 동안 경기장을 찾았으나 경주를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사람들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갈 때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레이싱 모델들이 ‘피트 워크(pit Walk)’(경기를 앞둔 자동차가 출발선상에서 준비하고 있을 때 레이싱 모델들이 차와 함께 포즈를 취하는 것) 행사에 참여할 때이다. 추운 날씨 때문에 레이싱 모델들도 곤욕을 치러야 했다. 레이싱 모델들의 유니폼이 짧은 것은 다 아는 사실. 모델들은 담요나 두툼한 재킷 등으로 맨살을 가리며 몸을 보온하기에 바빴다. 쉴새없이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마구 헝클어지는 긴 머리칼도 이날만큼은 골칫덩어리였다. 실내가 아니고서는 머리칼이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추위에 떠는 모델들을 안타까워한 팬들은 앞다퉈 따뜻한 음료나 담요 등을 직접 선물하기도 했다. 현란한 자동차 묘기에 탄성 터져 3월 15일 열린 타임 트라이얼전에서 입상자들이 샴페인을 터뜨리며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모델 구은경씨는 “날이 추운 것 말고는 어려운 점이 없었다”며 “오히려 사진을 찍는 팬들이 더 고생했을 것 같다”고 팬들을 걱정했다. ‘안구건조증’이 있다는 모델 김시향씨는 “날이 추우면 눈이 더 이상해진다”며 “추운 날은 많이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자차나 초콜릿, 쌍화차 등을 챙겨주는 팬들이 있어 힘이 난다”고 한다. 이날 처음 레이싱 모델로 데뷔한 황영아씨는 “한 팬이 직접 선물해준 것”이라며 두툼한 담요로 허벅지와 종아리를 친친 감고 있었다. 그러나 모델들은 ‘피트워크’ 때나 ‘포토타임’ 때만큼은 담요와 재킷을 걷어내고 카메라 앞에서 과감한 포즈를 취해 프로다운 면모를 보였다. 서브 스폰서 업체의 수가 적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날 서킷의 부스는 본부측과 콘보이 등을 합해 모두 4곳뿐이었다. 타임 트라이얼전을 주최한 하우스버그의 박윤재 실장은 “날이 추웠고 첫 경기 일정을 1주일 연기한 탓에 당초 참여하겠다던 업체의 부스가 서너 곳 비게 되었다”며 서브 스폰서 업체의 수가 적었던 까닭을 설명했다.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경기장 한쪽에 마련해놓은 아스팔트 구역에서는 드리프트(레이싱 테크닉)를 연습하는 차량이 끊임없이 굉음을 내고 있었다. 드리프트에 한창인 차량을 보기 위해 구경꾼들이 몰리자 차는 더 현란한 묘기를 선보이며 구경꾼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타임 트라이얼전에서 입상한 선수들과 레이싱 모델들의 시상기념촬영 모습.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올해 첫 자동차경기가 펼쳐졌지만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경기였다. 가장 큰 아쉬움은 아직까지 우리나라 모터스포츠가 대중화돼지 못했다는 현실이다. 정부와 업체들의 지원이 부족해 모터스포츠를 제대로 홍보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레이서들 역시 거의 자비를 들여 경기에 참여하기 때문에 모터스포츠에만 빠져 있을 수 없다는 것도 모터스포츠 대중화를 저해하는 요소다. 경기보다는 레이싱 모델들에게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원인이 된다. 매점, 화장실 등 경기장 내의 시설이 부족해 가족단위로 경기장을 찾기가 꺼려진다는 것 역시 모터스포츠가 대중화에 성공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자동차경주협회, 한국자동차경주선수협의회 등 단체들 간 의견이 쉽게 조율되지 않고 있으며 자동차경주 관련 업체와 협회들 간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한국자동차경주협회측은 “현재 열악한 자동차경주 환경과 풍토가 서서히 좋아지고 있으며 앞으로는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자신한다. “자동차경주는 첨단레저스포츠이자 생활체육”이라는 한국자동차경주협회측의 말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대중화가 시급하다. 화창한 날, 아빠·엄마와 아이들이 손잡고 자동차경주장을 찾을 날은 과연 언제일지 궁금하다.
[화제]‘카트라이더’ 무한질주 씽씽~(2005. 03. 08)
2005. 03. 08 문화/과학
단숨에 1000만 회원 넘긴 온라인 레이싱 게임…조작 쉽고 승부에 부담없어 ‘초대박’ ‘싸이월드 이후 최고의 히트상품’. 지난해 6월 출시된 넥슨(www.nexon.com)의 온라인 게임 ‘카트라이더’의 열기가 뜨겁다. 카트라이더는 경주용 자동차의 축소판인 카트(kart)를 조종해 승부를 내는 레이싱 게임. 카트라이더는 지난 설연휴 기간에 회원수 1000만을 가볍게 돌파한 뒤 지금도 하루에 4만명씩 꾸준히 신규회원이 늘어나는 경이적인 '초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한게임이나 넷마블 등 게임포털이 회원수 1000만명을 넘긴 일은 종종 있었지만 단일 게임이 이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은 드문 일이라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1000만 회원 돌파는 지난 1월 회원수 850만명에서 채 한달도 되지 않아 세워진 기록이어서 놀라움을 더한다. 현재 온라인 게임업계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엔씨소프트(www.ncsoft.net)의 주력인 ‘리니지’(‘리니지2’ 포함)는 회원수 500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누적회원수가 아니라 실제 게임을 즐기는 회원들만 집계한 것이라 카트라이더와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출범 7년을 넘어선 리니지의 동시접속자수가 25만5000명 수준이고 카트라이더의 동시접속자수가 20만명이 넘는 것을 놓고 보면 아직 돌잔치도 하지 않은 신생 게임이 누리고 있는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다. 과연 카트라이더의 인기 비결은 무엇이고 이 열풍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카트라이더 회원들이 꼽는 인기비결은 무엇보다 ‘재미’다. 은근히 승부욕을 자극하는 아기자기한 짜임새가 게임에 푹 빠져들게 한다. 키보드의 방향키와 ‘Shift’ ‘Ctrl’ ‘Alt’키만 사용하는 간단한 조작법도 인기에 한몫했다. 그동안 전략시뮬레이션이나 RPG(롤플레잉게임:게이머가 게임 속 캐릭터의 역할을 맡아 직접 수행하는 형식의 게임장르)를 주로 했다는 김영진군(15-중2)은 “같은 반 친구들 가운데 80%가 카트라이더를 즐기고 있다”며 “무엇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실제 운전하는 느낌의 스피드를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은근히 승부욕 자극해 ‘인기’ 다른 온라인 게임에 비해 돈이 덜 든다는 점도 회원들이 몰리는 커다란 요인이다. 카트라이더는 무료로 즐기는 데 거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돈을 들여 아이템을 구매하지 않아도 차별없이 경주에 참가할 수 있다. 넥슨 홍보팀의 구기향씨는 “기획단계에서부터 아이템 구매에 따른 실력치 증가는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굳이 아이템을 사서 치장을 하고 싶다면 게임을 할수록 성적에 따라 쌓이는 상금(루찌)을 쓰면 된다. 양정석씨(34-회사원)는 가장 초보적인 장비들로 레이싱을 즐기는 케이스. 그는 “점심을 먹고 사무실 직원들이 한방에서 레이싱을 즐긴다”며 “동료들끼리 친목을 다지는 데 이보다 싸게 먹히는 방법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즐거워했다. 단판으로 승부가 갈리지만 각자의 게임머니를 걸고 레이스를 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꼴등을 했다고 분통이 터지는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도박성이 가미되지 않으면 게임 자체가 느슨해지고 쉽게 흥미를 잃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카트라이더는 전혀 다른 쪽에서 승부욕을 자극한다. 홍성표씨(35-대학원 박사과정)는 “라이선스 제도가 제일 흥미진진하다”고 말한다. 아무리 승리를 많이 해 등급이 올라가도 라이선스를 따지 못하면 고수들과 레이싱을 즐길 자격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면 죽기 살기로 라이선스 취득에 매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캐주얼 게임이 대세” 현재 카트라이더에서 최고수를 의미하는 ‘무지개장갑’과 L2 라이선스 보유자는 각각 1000여명, 54만명이다. 열성 회원들은 “최고수들과 같은 트랙에서 레이싱을 펼친다는 상상만 해도 온몸이 불타오른다”고 입을 모은다. 카트라이더의 성공은 온라인 게임 시장에 지각변동을 몰고 왔다. 온라인 게임의 축이 RPG에서 캐주얼 게임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전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애들이나 하는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던 캐주얼 게임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카트라이더가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 홍보팀 김진석과장은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캐주얼 게임의 성공은 다소 폭력적이고 몰입도가 강한 RPG가 주류를 이루던 게임 시장의 저변 확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아울러 그는 “이제 캐주얼 게임은 대세”라고 못 박고 “앞으로는 고스톱이나 포커만 알던 성인 게이머들이 스포츠와 연계된 캐주얼 게임을 통해 여가를 즐기는 모습이 보편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카트라이더 회원의 연령층을 살펴보면 20세 이상이 전체의 53%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국민게임’으로 카트라이더가 자리잡았다는 통계다. 캐주얼 게임의 득세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RPG로 온라인 게임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엔씨소프트도 개발 중인 캐주얼 게임의 테스터를 모집해 출시 막바지 작업에 들어가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대작 RPG ‘아크로드’를 내놓으며 잠시 ‘외도’를 했던 NHN의 한게임 역시 “이후 출시될 7~8개의 게임은 모두 캐주얼 게임이 될 것”이라고 밝혀 올 한해는 캐주얼 게임이 봇물을 이룰 것임을 예고했다. 이래저래 2005년은 게이머들에게 가장 행복한 한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 인기는 상상하지 못했죠” 카트라이더 개발 주역 정영석실장 카트라이더의 탄생을 책임졌던 개발2실 정영석실장(36)은 아직 대학교 4학년이다. 그렇다고 늦깎이 대학생은 절대 아니다. 게임 개발을 너무 하고 싶어 학업도 제쳐두고 뛰어다녔더니 여태 졸업을 못했다. 요즘은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에 자리에 앉아 있을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다. 그럼 게임 개발은 언제 하느냐고 물었더니 함께 자리한 직원이 "그래서 새벽에 작업한다"고 대신 대답하며 웃는다. 여러 게임이 그의 손을 거쳐갔지만 카트라이더를 제일 아끼는 작품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동안 게임을 개발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를 전부 쏟아부었고 상상했던 대부분을 현실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실 레이싱 게임은 가볍게 즐기기 어려운 장르”라며 “그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귀여운 캐릭터와 결합시켜 접근성을 높이는 한편, 이겨도 재밌고 져도 재밌는 게임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그 역시 카트라이더가 성공할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하지 않았지만 이처럼 큰 반향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고 했다. 처음 게임을 개발할 때 염두에 둔 목표 회원수는 2만명 정도. 당시 온라인 레이싱 게임을 즐기는 회원수가 딱 그만큼이었다. 요즘 그는 “점심시간이면 접속자수가 살짝 늘어나는 것을 볼 때 ‘내가 정말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었구나’를 실감한다”고 기뻐했다. 게임을 설계한 개발자지만 실력까지 최고는 아니다. 한때는 ‘언터처블’이었지만 현재 그의 카트라이더 성적은 라이선스 L2에 등급은 ‘무지개장갑’보다 하나 낮은 ‘검정장갑’이다. 그는 “무지개장갑은 모든 트랙의 맵과 특성을 전부 외워서 눈을 감고도 레이싱이 가능할 정도는 돼야 딸 수 있는 신의 경지”라고 말했다. 유병탁기자 lum3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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