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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프리뷰] 데드풀과 울버린-데드풀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원할까
[시네프리뷰] 데드풀과 울버린-데드풀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원할까(2024. 07. 31 06:00)
2024. 07. 31 06:00 문화/과학
극장을 나서면서 이 모든 깨알 같은 슈퍼히어로 영화들의 인용과 데드풀 자체라고 할 라이언 레이놀즈의 미국식 농담이 팬층을 넘어서 일반 관중에게 소구력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아, 이건 데드풀 영화였지. <데드풀과 울버린>이 시작한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이야기 구성은 현란한 싸움 장면을 보여주고 그렇게 이르게 되는 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데드풀>(2016)과 같다. <데드풀> 특유의 ‘제4의 벽을 깨는-스크린 너머의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 냉소적인 농담과 함께. 영화 제목이 ‘울버린과 데드풀’이 아니라 <데드풀과 울버린>인 이유다. 이 영화가 울버린 영화였다면 ‘울버린 10편’이 됐을 것이다. 우리는 <엑스맨> 시리즈를 포함해 울버린/로건의 ‘최후’를 알고 있다. 그래픽 노블 <울버린: 올드맨 로건>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로건>(2017)에서 울버린의 유전자로 만들어진 소녀 X-23 로라와 친구들은 캐나다로 떠나기 전, 국경의 어느 산골짜기에 울버린을 묻었다. 로건/울버린 역을 맡은 배우 휴 잭맨도 “다시는 울버린 역을 맡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그때 말했다. 이듬해 나온 영화 <데드풀 2>에서는 아예 울버린이 자신의 클론 X-24에 당해 나뭇가지에 가슴이 관통된 모습의 미니어처가 스쳐 가듯 등장한다. 그런데 7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7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울버린 사실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긴 했다. <데드풀 2> 쿠키 영상에서 데드풀이 미래에서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과거로 온 ‘케이블’의 시간 이동 장치를 고쳐 과거 타임라인을 마구 바꾸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데드풀> 1편과 2편에서 깨알같이 이 ‘남자 중 남자’ 울버린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는 이스터에그를 곳곳에 숨겨뒀으니 결국 울버린이 죽기 전으로 시간 이동해 죽음을 막는 건 충분히 상상해봄 직한 이야기다. 그뿐인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2021) 이후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멀티버스’ 개념이 도입되면서 영화는 난해해졌지만, 영화를 만드는 건 아주 편해졌다. 데드풀이 모종의 이유로 울버린을 데려와야 한다면 평행우주에 무한대로 존재하는 ‘다른 울버린들’ 중 한 명을 픽업하면 되기 때문이다. 멀티버스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난해 이야기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TVA(시간 변동관리국)라는 조직이 등장한다. 이들은 ‘신성한 시간선’이라는 걸 관리하며 시간과 차원을 넘나드는 캐릭터들 때문에 예정과 다른 시간선이 만들어지면 바로잡는다. 전편에서 미래에서 온 시간 이동 장치로 마음대로 역사를 바꿔버렸으니 데드풀이 이 조직의 ‘제거 대상’이 되는 걸까. 결국 TVA에 끌려간 데드풀은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각각의 평행우주 시간선에서 줄거리의 주축 인물을 앵커(anchor)라고 하는 데 자신이 있던 지구의 앵커는 울버린이었다는 것이다. 앵커가 사라지면 그 세계는 소멸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있던 지구는 소멸 예정이라는 것. 데드풀은 자신의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 평행우주상 ‘울버린들’ 중에서 최적의 인물을 찾아 나선다. 잊힌 캐릭터들의 깨알 같은 등장 분명 원작 코믹스와 MCU라는 세계관에 매료된 팬들이 환호할 만한 요소를 영화는 듬뿍 담고 있다. 각기 다른 설정의 수많은 울버린, 그리고 레이디 데드풀을 위시한 데드풀 군단의 깨알 같은 등장도 마니아층의 기대를 충족시킬 것이다. TVA는 제거된 캐릭터들을 영화 <매드맥스> 시리즈가 형상화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세계인 ‘보이드’로 보내는데, 거기서 관객들은 거의 잊힌 과거 <엑스맨> 시리즈와 폭스/마블의 슈퍼/안티히어로 캐릭터를 여럿 만나게 된다. 극장을 나서면서 이 모든 깨알 같은 슈퍼히어로 영화들의 인용과 데드풀 자체라고 할 라이언 레이놀즈의 미국식 농담이 팬층을 넘어서 일반 관중에게 소구력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데드풀은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이후 스텝이 꼬여버린 듯한 MCU를 구원하는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제목: 데드풀과 울버린(Deadpool & Wolverine) 제작연도: 2024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28분 장르: 액션 감독: 숀 레비 출연: 라이언 레이놀즈, 휴 잭맨, 엠마 코린, 모레나 바카린, 롭 딜레이니, 레슬리 우감스, 카란 소니, 매튜 맥퍼딘 개봉: 2024년 7월 24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수입/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엑스맨 탄생: 울버린>에서 이미 만난 울버린과 데드풀 bp.blogspot.com 데드풀과 울버린이 격돌한 것은 <데드풀과 울버린>이 처음은 아니다. 엑스맨 유니버스의 스핀오프 작품으로 울버린의 과거사를 다룬 영화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사진 맨 왼쪽이 <데드풀> 라이언 레이놀즈가 연기한 웨이드)에서 데드풀이 되기 전 멀쩡한 얼굴의 ‘웨이드’가 나온다. 그는 이 영화에서 데드풀의 트레이드 마크인 등에 꽂은 2개의 카타나(일본도)를 들고 울버린과 대결을 펼친다. 이 버전의 웨이드는 사실상 사기 캐릭터에 가깝다. 전 세계 뮤턴트들을 모은 스트라이커 대령은 로건을 비밀인간병기 ‘웨폰X’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스트라이커 대령은 원래 재생능력(힐링 팩터)을 지녔던 로건/울버린의 전신 뼈에 아프리카에 떨어진 운석에서 채취한 가상의 금속 아다만티움을 주입해 천하무적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로건과 같은 특수부대 소속이었던 웨이드에겐 아다만티움 골격뿐 아니라 불을 뿜는다든가 투명인간이 되게 한다든가 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총집결시켜놓았다. 영화 막판 둘은 스리마일섬 원자로 위에서 격돌한다. 어찌어찌해 스리마일섬 원자로가 붕괴하면서 ‘천하무적 웨이드’가 같이 묻히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런데 이때 울버린은 정말 웨이드를 물리친 걸까. <데드풀 2> 쿠키 영상에서 이들이 만나는 장면은 재사용된다. 다만 갑자기 나타난 데드풀이 막 모습을 나타낸 ‘인간병기’ 웨이드의 머리에 총을 쏴 처치해버렸기 때문에 울버린과 웨이드의 재대결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나름 해피엔딩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 세계관의 설정에 따르면 아다만티움으로 강화된 돌연변이는 아다만티움 총알로만 죽일 수 있다. 어차피 쿠키 영상이니 데드풀의 짓궂은 농담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면 그만이겠지만 진지하게 말한다면 이는 해결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간 것으로 봐야 한다.
시네프리뷰
[시네프리뷰]이터널스-새로운 신화 꿈꾸는 마블의 창세기(2021. 11. 05 14:49)
2021. 11. 05 14:49 문화/과학
선입견이나 생경함을 극복하고 나면 이제껏 봐왔던 어떤 슈퍼영웅물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독특한 여운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볼 것’보다는 ‘생각할 것’에 방점이 찍힌 작품이다. 제목 이터널스(The Eternals) 제작연도 2021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56분 장르 SF, 액션, 드라마 감독 클로이 자오 출연 젬마 찬, 리처드 매든, 앤젤리나 졸리, 셀마 헤이엑, 마동석 개봉 2021년 11월 3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2019년 봄, 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기록한 <어벤져스: 엔드게임>과 이어 9월 개봉한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을 끝으로 소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페이즈 3’가 막을 내렸다. 코로나19로 인해 개봉일이 미뤄지면서 페이즈 4의 시작도 늦어졌는데, 드디어 올여름 개봉한 <블랙 위도우>를 시발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 이어 이번 <이터널스>가 공개되면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확장은 본격적인 가속을 밟고 있다. 기존 ‘마블’ 영화가 구축한 인기와 관객들의 선호를 잃지 않으면서도 이전과 차별된 오락거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작사 마블 스튜디오의 부담은 페이즈 4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이런 고심은 결국 작품에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서는 깊이를 부여해보자는 결론에 도달한 듯하고, 과감하게도 소위 작가주의 독립영화 감독으로 평가받는 인물들을 연출에 등용함으로써 새로운 도전은 가시화됐다. 평가는 아직 진행 중이다. 이미 2편의 영화가 개봉했지만 어중간한 평가가 지배적이고 이번에 공개된 <이터널스> 또한 시사회를 통해 흘러나온 평가들이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진정 흥행과 작품성의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것은 욕심일까? <이터널스>의 개봉 이후 대중의 평가를 기다리며 침이 마르는 것은 비단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인 ‘케빈 파이기’만은 아닐 것이다. 슈퍼영웅의 옷을 입은 고대신화 우주 만물의 창조와 흥망성쇠를 관장하는 셀레스티얼족의 ‘아리솀’은 10명의 ‘이터널스’를 각성시켜 초기 지구로 보내 포식자 ‘데비안츠’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라는 사명을 부여한다. 그들은 인간의 순수한 모습에 감동하며 문명의 진화에도 관여하지만 어느 날 홀연 모습을 감춘다. 그리고 수천년이 지나 인간들 속에 섞여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고 있던 그들은 다시 모습을 드러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다. 장장 3시간에 육박하는 영화는 슈퍼영웅의 옷을 입은 고대신화처럼 보인다. 주인공들이 단순한 초인의 경지를 넘어서는 신격화 인물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지만 7000년을 넘나드는 시간적 설정이나 지구를 넘어 범우주를 아우르는 공간적 배경까지 이제까지 봐왔던 이야기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를 보여준다. 애당초 이렇게 거대한 세계관과 다수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한편의 오락물 안에 담아내겠다는 포부 자체가 꿈같은 기획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존 마블 영화로 익숙했던 재미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 일단 전작들에 비교해 액션의 규모나 짜임새가 상당히 나약해보임은 부정할 수 없다. 또 워낙 광범위한 시간적 배경과 인물들의 관계를 그려내다 보니 수시로 등장하는 회상장면이나 단절된 이야기들의 구성이 산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선입견이나 생경함을 극복하고 나면 이제껏 봐왔던 어떤 슈퍼영웅물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독특한 여운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볼 것’보다는 ‘생각할 것’에 방점이 찍힌 작품이다. 클로이 자오와 마동석의 존재감 연출을 맡은 클로이 자오는 중국계 여류감독으로 전작 <노매드랜드>로 올해 상반기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한 다수의 영화제 수상으로 선풍을 일으킨 인물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 작품을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라기보다 연출을 맡은 클로이 자오의 작품이라고 단언한다. 일리 있는 단정이기도 하지만 엄밀히는 정체성 그대로 ‘새로운’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로 인정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영화 속에는 오리지널 스코어 외에도 다수의 명곡이 상당히 등장하는데 이중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타임(Time)’은 유난히 강렬하게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귀에 익숙한 전주는 반갑지만, 이야기의 전개에 비춰 너무 정직한 가사와 멜로디가 노골적이다 못해 촌스럽게까지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음악의 등장에 느끼는 감정의 호불호란 영화 전체에 대한 평가와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국내 관객들에게는 ‘길가메시’ 역을 맡은 마동석의 출연이 가장 큰 기대요소일 것이다. 다행히 그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상으로도 중요한 역할이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실망하진 않을 것 같다. 본편 이후 2개의 쿠키영상이 있다. 전단지 광고 스케일마저 남다르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코로나19 이후 침체했던 문화계가 이달부터 시행 중인 거리 두기 개편으로 인해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다. 극장도 심야상영이 가능해졌고, 백신 접종자에 한해 음식섭취가 가능해지고 있다. 이런 변화의 시점에 때맞춰 공개되는 할리우드 대작 <이터널스>는 회복과 성장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공산이 크다. 이런 기대를 반영하듯 홍보사는 한동안 보지 못했던 대규모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전단지의 형태와 스케일은 이전에 볼 수 없는 역대급이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 홍보물이라 할 수 있는 전단지는 다양한 크기와 독특한 모양으로 작품의 분위기를 전달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B5 사이즈에 낱장인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처럼 온라인 광고가 없던 시절엔 골목 어귀마다 나붙던 포스터나 신문, 잡지 광고와 더불어 영화의 개봉을 알리는 가장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인쇄광고의 하나였다. 근래에는 A4 사이즈의 낱장인 형태가 기본으로 굳어진 모양새다. <이터널스>는 개봉 한달 전에 투명 플라스틱 재질로 제작된 특수형태의 투명 전단지를 뿌리며 관련 이벤트를 진행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개봉 임박해서는 2단으로 접히는 A4 접이전단을 배포했는데, 펼치면 A2 사이즈로 영화 속 주인공 중 한 인물의 포스터가 된다. 이러한 형태가 과거에도 있었다고 기억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독보적인 점은 <이터널스>의 주인공이 총 10명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각각의 다른 인물이 개별적으로 인쇄된 10종류의 전단이 만들어졌다는 것. 앞서 말한 투명 전단지와 보편적인 A4 낱장 전단까지 더하면 총 12종류의 전단이 존재하는데, 이는 한국 영화사에 전무후무한 대규모 전단 홍보 기록이다.
시네프리뷰
[시네프리뷰] 블랙 위도우-페미니즘으로 중무장한, 마블영화의 ‘중독성’(2021. 06. 25 16:20)
2021. 06. 25 16:20 문화/과학
영화는 미투운동 이래 할리우드를 휩쓸고 있는 강력한 패션인 페미니즘으로 무장하고 있다. 제목 블랙 위도우(Black Widow) 제작연도 2020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34분 장르 액션, 모험, SF 감독 케이트 쇼트랜드 출연 스칼렛 요한슨, 플로렌스 퓨, 레이첼 와이즈, 데이비드 하버 개봉 7월 7일 오후 5시 전 세계 동시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난무한 예상은 다 틀렸다. 마블 코믹스의 슈퍼 빌런 태스크마스터. <앤트맨과 와스프>(2018)에서 메인 빌런으로 나올 뻔하다가 ‘고스트’에 밀려 ‘페이즈 4’의 첫 영화 <블랙 위도우>의 메인 빌런으로 등장한다고 알려졌을 때 모든 사람이 예측한 것은 남성캐릭터였다. 사전에 공개된 예고편에서도 철저히 감춰졌다. 하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페이스 4’가 시작될 때 미투의 영향을 받았다는 제작진 측의 인터뷰가 있었으니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앤트맨과 와스프>의 빌런 ‘고스트’도 생각해보니 여성이다. 마블영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시사회장에서 오랜 지기인 한국 영화제작자이자 영화학과 교수를 만났다. 그는 기자가 쓰는 휴대폰을 바라보며 퀴즈를 냈다. “마블영화와 아이폰의 공통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 답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생태계 내에 사람들을 붙잡아둔다는 것이다. 떠날 수 없다. 아이폰을 쓰다 보면 안드로이드폰으로 갈아타기 어렵다. 마블영화 시리즈 구석구석에 감춰놓은 디테일을 알아채려면 마블영화들을 또 봐야 한다. 시리즈의 새로운 작품이 개봉하면 정교하게 구축된 이전 세계와 정합을 따지면서 영화를 봐야 한다. 보는 입장에 따라 피곤할 일이다. 예를 든다면 블랙 위도우, 나타샤 로마노프가 미국 오하이주에 있을 때 엄마 멜리나가 부엌에 헤비메탈그룹 아이언 메이든 포스터를 걸어놓은 의미를 굳이 주목할 필요가 있나. 앞으로 영화가 정식개봉을 하면 팬들이 깨알 같은 트리비아로 적을 이야기겠지만 간단히 답하자면 코믹스에서 멜리나의 다른 이름이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영화의 주인공은 블랙 위도우다. 어벤져스의 분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이후 쉴드를 피해 종적을 감추며 블랙 위도우는 “당신들은 원래 내 과거 이력을 모르고 있다”라고 말한다. 단독영화 전 제대로 설명된 적 없다. 어벤져스의 멤버가 되기 전 그는 소련 KGB 소속의 스파이였다. 주로 주요요인 암살과 같은 전 세계에서 비밀리에 수행되는 공작을 위해 만들어진 인간병기였다. 그리고 그를 만들어낸 비밀조직이 레드룸이었고. 영화는 1995년 오하이오주 시골의 평범해 보이는 가족 일화로 시작한다. 어느 날 퇴근한 아버지는 “오늘 집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한 뒤 급히 짐을 챙긴다. 헛간 속에는 경비행기가 있고, 쉴드의 추격팀이 아버지를 쫓는다. 과학자로 위장해 비밀정보를 캐내던 아버지는 ‘알고 보니’ 알렉세이 쇼스타코프, 미국의 캡틴 아메리카에 맞서 소련이 만들어낸 레드 가디언이었다. 가만 소련이라고? 1995년이면 이미 사라진 제국 아니던가. 영화는 시대적 배경에 맞서 소련 대신 러시아를 상정한다. 어쨌든 그들의 행선지는 쿠바다. 이 가족은 진짜 가족이 아니었다. 어린 옐레나는 버림받은 소녀였다. 나타샤는 강제납치됐는데 레드룸은 딸을 찾아온 나타샤의 엄마를 죽이고 묘비도 없이 시체를 처리하는 잔학성을 보였다. 할리우드 휩쓴 페미니즘 열풍 소련, 아니 러시아의 비밀조직 레드룸은 전 세계에서 버림받은 소녀들, 고아들을 끌어모아 비밀인간병기 위도우를 만들어낸다. 이들은 세뇌돼 레드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다. 성인이 된 멜리나도 이런 인간 전투병기로 작전에 투입되는데, 해독제를 넘기고 죽은 동료 덕분에 깨어나게 된다. 위도우들의 각성 내지 반란. 진짜 언니는 아니었지만 블랙 위도우에게 전달된 우편물에 해독제가 몰래 숨겨진 바람에 블랙 위도우는 베일 속의 강적 태스크마스터와 첫 조우한다. 페이스 4의 첫 영화가 여성 비초인 캐릭터인 블랙 위도우라고 예고했을 때 어느 정도 예상됐다. 영화는 미투운동 이래 할리우드를 휩쓸고 있는 강력한 패션인 페미니즘으로 무장하고 있다.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영화. 마초히어로(레드 가디언)가 안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20년 넘게 감옥에 갇혀 있던 그는 뱃살이 늘어져 자신의 슈트를 입는 것조차 힘겨워한다. 주인공과 메인 빌런, 주요캐릭터가 모두 여성이지만 강박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며 루즈해진 다른 최근 페미니즘 히어로물(예를 들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2021년 공개된 <썬더 포스>)처럼 망가지지는 않아 다행이다. 마블영화답게, 자막이 다 올라간 뒤 붙어 있는 쿠키영상이 있다. 기대되는 올해 마블유니버스 페이스 4 영화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원래 <블랙 위도우>는 지난해 4월 30일(북미는 5월 1일) 개봉예정이었다. 거의 1년 넘게 개봉이 미뤄진 것은 영화의 완성보다 코로나19 때문이었다. 개봉 연기 소식은 대충 세 번 정도 들었던 것 같다. 당초 지난해 11월 개봉이라고 하다가 올 5월 개봉이 확정적인 줄 알았는데, 최종적으로 7월 7일 개봉한다. 페이스 1부터 3편까지 관통하는 핵심 이야기는 인피니티 스톤을 둘러싼 이야기였다. 이때까지 최종 보스는 장갑에 낄 보석 모으기에 집착한 타노스였고. 시사회장에서는 영화의 시작에 앞서 페이스 4의 다음편인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예고편을 틀어줬는데 개봉예정이 11월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터널스 단독영화 <이터널스>가 앞의 <샹치…>와 동시 개봉하고, 스파이더맨 3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까지 올해 개봉하도록 돼 있다. 지금 개봉 지연으로 보면 여차하면 <샹치…>나 <이터널스>도 올해를 넘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중 국내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영화는 아무래도 한국계 미국인 배우(이지만, 주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마동석이 출연하는 <이터널스>다. 그는 이 영화에서 길가메시 역으로 출연하는데, 대충 <이터널스>판 헐크라고 보면 된다. 헐크와의 차이는 차용한 고대신화에서도 보이듯이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는 점. 역시 <샹치…>의 예고편과 함께 <이터널스>의 티저 예고편도 시사회장에서 상영됐는데 우리에게도 꽤 친숙한 팝송 ‘The End of the World’가 흐르는 가운데 다른 히어로들과 함께 마동석이 해변에 서 있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사진). 유튜브에 공개된 티저 예고편을 보면 이들의 회식 장면에서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떠났으니 이제 누가 어벤져스를 이끌지?” 하고 묻고 답하는 장면이 추가돼 있다.
시네프리뷰
[영화 속 경제]
[영화 속 경제](2019. 10. 14 16:29)
2019. 10. 14 16:29 경제
ㆍ타인보다 뛰어나다고 믿는 ‘과신오류’ 날고 기는 히어로들만 모였다는 어벤져스팀에서도 가장 파워풀한 히어로를 꼽으라면 단연 캡틴 마블이다. 캡틴 마블은 양손에서 엄청난 블래스터를 뿜어대며 자유자재로 우주를 휘젓고 다닌다. 거대한 전함도 캡틴 마블 앞에서는 추풍낙엽.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는 타노스와도 맞대결을 벌인다. 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최초의 여성 단독 주연 영화이다. 동시에 솔로 무비 최초로 주인공의 로맨스 서사가 완전히 배제된 작품이다./나무위키 마블은 전대미문의 초울트라 히어로에 남성성이 아닌 여성성을 부여했다. 영화 <캡틴 마블>은 마블 최초의 여성 히어로 솔로 영화다. 공동연출과 감독을 맡은 애너보든은 마블 영화 최초의 여성감독. 캡틴 마블 역을 맡은 브리 라슨은 “<캡틴 마블>은 위대한 페미니스트의 상징이 될 수 있는 영화”라고 말했다. 캡틴 아메리카도, 아이언맨도 없는 1990년대. 크리족 전사인 비어스(캡틴 마블)가 미국의 한 블록버스터 비디오숍에 떨어진다. 크리족은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외계종족 스크럴과 싸우고 있다. 비어스는 과거 자신에 대한 기억이 없다. 꿈을 꿀 때마다 나타나는 기억의 편린들이 괴롭다. 마침내 비어스는 자신이 여성 공군 조종사 캐럴 댄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크리족 상관인 욘로그는 비어스가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자 비웃는다. “넌 우리가 아니면 인간에 불과해. 내가 너를 최고로 만들었어. 너를 증명해봐!” 욘로그는 캡틴 마블의 블래스터 한 방에 나가 떨어진다. 캡틴 마블이 시크하게 한마디 던진다. “난 네게 증명할 게 없어.” 행동경제학의 눈으로 보자면 욘로그는 ‘과신오류’에 빠져 있다. 과신오류란 자신의 능력이 타인보다 뛰어나다고 믿는 경향을 말한다. 운전을 하면서 상대방이 끼어들기를 하면 “아니 운전을 저따위로 해”라며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나는 너보다 운전을 더 잘한다’고 믿기 때문에 낼 수 있는 역정이다.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보면 미국인의 90% 이상은 자신이 평균 이상으로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2008년 잡코리아가 설문조사를 해보니 ‘나는 평균보다 우수한 인재’라고 답한 사람이 응답자의 70%에 달했다. 하지만 기업이 평균보다 우수한 인재로 보는 직원은 통상 20% 정도라고 한다. 과신오류는 잘못된 판단으로 이끌 수 있다. 욘로그처럼 말이다. 문제는 과신오류가 자존심이 강한 지도자, 전문가 그룹에서 더 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판단을 과신하거나 자신이 사적으로 얻은 정보를 더 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과신오류는 ‘워비곤 호수 효과’라 부르기도 한다. 워비곤 호수는 개리슨 케일러의 라디오 드라마 ‘프레이리 홈 컴패니언’에 나오는 가상의 마을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평균보다 더 잘생기고, 힘이 세고, 똑똑하다고 믿었다. 대니얼 카너먼은 “과신오류는 사회적으로 비관주의보다 낙관주의가 더 높은 평가를 받고, 불확실성보다 자신감이 더욱 인정받기 때문에 생겨난다”며 “완전히 없앨 수 없는 인간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대해 수출규제를 밀어붙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과신오류에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 2018년 기준 일본과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격차는 3배. 30년 전인 1988년의 15배에서 크게 좁혀졌다. 삼성전자는 일본의 모든 전자회사 수익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 기업이 됐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 정도 경제력 차로는 특정 국가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기 힘들었다. 되레 한국인들의 일본산 상품 불매운동과 일본관광 자제가 이어지면서 일본 경제에 더 큰 타격을 줬다. 자기자신을 똑바로 안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영화 속 경제
마블 10년, 상상 그 이상의 막강 팬덤(2018. 04. 30 14:31)
2018. 04. 30 14:31 문화/과학
ㆍ어벤져스 세 번째 시리즈인 티켓 전쟁 대학생 유지영씨(21)는 얼마 전 PC방에서 날을 꼬박 새웠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티켓을 예매하기 위해서였다. 4월 25일 개봉한 이 영화 티켓 예매가 시작된 날은 개봉 12일 전인 13일. 하지만 몇 시에 예매가 시작되는지는 공지되지 않았다. 극장 측이 특정 시간대에 지나치게 많은 인파가 몰려 서버가 다운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유씨는 전날인 12일 밤 11시부터 PC방에서 기다렸다. 예매 페이지를 띄워놓고 예매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새로 고침’을 수시로 눌러댔다. 졸린 눈을 비비며 기다리던 중 오전 6시가 되어서야 예매 창이 열렸다. 그는 이 영화 관람에 최적의 시설을 갖췄다는 서울 용산 CGV 아이맥스관의 첫 시간 티켓을 가까스로 살 수 있었다. 4월25일 개봉한 의 한장면. 내한 배우들 보기 위해 이틀밤 새워 12일 오후 서울 코엑스에서는 베네딕트 컴버배치, 톰 홀랜드 등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홍보를 위해 내한한 배우들의 레드카펫 행사가 열렸다. 가까이서 이들을 보기 위해 유씨는 11일 밤부터 수백 명의 인파와 함께 현장을 ‘지켰다’. 사실상 이틀밤을 꼬박 새운 셈이다. 그는 “나도 모르게 잠들어 예매를 못할까봐 카페인 알약까지 먹고 버텼다”면서 “‘팬질’하다 코피를 쏟을 지경이지만 즐겁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교사인 김지윤씨(28)와 회사원 박주영씨(29)는 2015년 <아이언맨>의 주인공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내한했을 때 팬미팅 현장에서 만나 친구가 됐다. 이들은 4월 21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마블런’ 행사에 함께 참여했다. 마블 히어로의 캐릭터들을 즐기면서 가벼운 마라톤을 하는 이 행사에는 이들 외에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렸다. 박주영씨는 “이번 영화는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됐기 때문에 아이맥스관에서 첫 상영을 놓쳤다면 팬 자존심에 용납할 수 없는 상처가 됐을 것”이라며 “영화 관람을 위해 일찌감치 연차도 내놨다”고 말했다. 이들은 27일과 28일에도 각각 서울 상암동과 성남 판교의 아이맥스관에서 추가로 관람했다. 2015년 개봉 당시 서울을 찾았던 주연 배우들./이선명 기자 ‘마블 덕후’(열성 팬)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피말리는 티켓 확보 경쟁을 하는지. 그러자 김지윤씨는 “팬이라면 남들보다 먼저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면서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스포일러를 차단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말했다. 조성진 CGV 전략지원 담당은 “아이맥스관이 생긴 이래 조조상영 시간대가 매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영화팬들의 관심과 열기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밝혔다. 마블 영화에 대한 국내 팬들의 사랑이 뜨겁다. 어벤져스 세 번째 시리즈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개봉을 두고 벌어진 반응은 신드롬에 가깝다. 일찌감치 매진된 ‘명당자리’ 티켓은 10배가 넘는 가격(최고 11만원)에 암표로 거래됐다. 개봉 이틀째 관객 100만명을 돌파한 것은 국내 영화 개봉 사상 처음이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제작사 ‘마블 스튜디오’가 만든 영화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지만 특히 한국에서의 반응은 열광적이다. 마블 영화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는 국내에서도 대중적으로 친숙한 캐릭터가 된 지 오래다. 아이언맨을 비롯해 캡틴 아메리카, 헐크, 토르, 닥터 스트레인지, 앤트맨, 블랙팬서 등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을 가진 슈퍼히어로들이 국내 팬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개봉 2일 만에 관객 100만 돌파 미국 영화시장에는 마블과 양대산맥으로 일컬어지는 DC(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의 슈퍼히어로)가 있다. SF의 전설로 꼽히는 스타워즈, 스타트렉 시리즈에 열광하는 관객들도 많다. 그런데 한국 시장에서 다른 영화들은 크게 맥을 못추는 반면 마블은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준다. 이 같은 존재감을 발휘하는 것은 거대하고 탄탄한 팬덤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영화 흥행성적을 비롯해 팬미팅 열기, 캐릭터 상품 매출 면에서 볼 때 마블 팬덤의 ‘화력’은 웬만한 인기 아이돌그룹 못지않다. 서울 용산 CGV에서 티켓을 출력하는 관객들. /연합뉴스 (사진 왼쪽) . 4월21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마블런 행사에 팬들이 참여해 캐릭터 체험을 하고 있다. /이선명 기자 영화 커뮤니티 사이트인 ‘익스트림 무비’의 ‘영화 수다’ 코너는 강호에 흩어져 있는 고수 팬들의 내공을 엿볼 수 있는 장이다. 깊이 있고 분석적인 글이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는 빼놓을 수 없는 참고자료로 각광 받는 사이트다. 여기에서도 마블 영화와 관련한 글의 조회수나 댓글 반응은 다른 영화에 비해 월등히 많다.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의 시작은 2008년 개봉된 <아이언맨>부터다. 마블 팬덤의 성장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그 전까지 마블은 만화에 기반해 슈퍼히어로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미국과 달리 국내 대중문화 시장에서 코믹스(만화)는 크게 각광 받지 못했다. 영화 <아이언맨>의 세계적인 성공은 마블 슈퍼히어로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아이언맨은 국내에서도 4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 이후 <인크레더블 헐크> <토르 천둥의 신> <퍼스트 어벤져> 등을 통해 헐크, 토르, 캡틴 아메리카가 착착 소개됐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 한 편에 소개된 캐릭터가 해당 영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화에도 함께 등장하며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즉 마블 슈퍼히어로들이 공유하는 가상세계라는 신개념은 국내 영화팬들에게 신선하고 흥미롭게 받아들여졌다. 마블 슈퍼히어로 시대 알린 아이언맨 2016년 개봉한 2012년 4월 개봉된 <어벤져스>는 그런 개념을 실체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각각 다른 작품에서 소개됐던 캐릭터들이 <어벤져스>에 모두 등장해 악당에 맞서 싸우는 내용이었다. 7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으며 성공했던 데에는 슈퍼히어로가 팀을 이뤄 활약한다는, 상상 속에의 개념을 눈으로 보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컸다. 영화 홍보마케팅사 호호호비치 이채현 대표는 “이전까지 없던 개념과 구성, 매력적인 내러티브를 보여주면서 영화팬들을 사로잡았다”면서 “하나의 세계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의 연속성은 ‘마블’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감과 호기심을 갖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전 세대에 익숙했던 슈퍼맨 등의 슈퍼히어로와 달리 마블의 슈퍼히어로는 인간적인 면모와 약점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화팬들이 동질감을 갖고 몰입할 수 있었다”면서 “아이언맨과 같은 개별 캐릭터뿐 아니라 영화 자체에 대한 팬덤이 빠르게 확장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초창기 마블 영화 팬들이 관심사를 나누고 호기심을 해소한 공간은 코믹스 전문 블로그,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나 관련 카페였다. ‘아로니안’과 같은 코믹스 전문 블로그는 마블 슈퍼히어로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콘텐츠로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 전문 블로거이자 유튜브 크리에이터인 ‘발없는 새’도 마블 팬들이 즐겨찾는 ‘참고서’ 역할을 했다. 팬덤이 본격적으로 결집되고 확산된 계기는 유튜브의 활성화다. 2016년 4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개봉을 전후로 영화를 다루는 채널이 꽤 생겨났다. 현재 영화 전문 채널로 인기가 높은 ‘고몽’ ‘삐맨’ 등은 당시 마블 영화를 소재로 한 영상들을 주로 업로드하면서 성장했다. 41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고몽’ 운영자는 “영상을 즐기고 댓글로 소통할 수 있는 유튜브 채널은 영화 팬들이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모일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을 제공했다”면서 “마블 슈퍼 히어로의 성장은 유튜브의 성장과 맞물리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마블 영화의 강력한 팬덤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밀도나 영향력 면에서 한국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 1인당 연평균 영화 관람 횟수가 4.2회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인 영화팬들이 모여 있는 시장인 셈이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마블은 18편의 영화를 국내에서 개봉했고 누적 관객 8400만명을 모았다. 2015년 개봉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외화로는 역대 최단기간 1000만명을 돌파했다. 발달한 IT기술문화를 기반으로 한 강력한 전파력, ‘떼창’ 등으로 대변되는 열성적인 팬덤 활동은 특유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마블 역시 이 같은 이유로 한국 시장을 주목한다. 예전만 해도 할리우드 스타들의 아시아 방문은 중국이나 일본에 집중됐지만 최근 몇 년 새 이 같은 관심은 한국으로 옮겨왔다. ‘아이언맨’의 주인공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2008년부터 세 차례나 한국을 찾았으며 로키를 연기한 톰 히들스턴과 스파이더맨의 주인공 톰 홀랜드도 각기 두 차례씩 한국을 방문했다. 올해 2월 개봉한 <블랙팬서>는 아시아 지역 기자간담회와 세계 최초 시사회를 서울에서 열었다. 이 영화에는 부산 광안리가 배경으로 등장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도 서울의 모습이 담겼으며 국내 배우 수현이 출연했다. 올해 2월 가 개봉했을 때 마블 캐릭터숍 동부산점을 찾은 팬들이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마블 컬렉션 엔터식스 제공 국내 개봉 마블 영화 누적관객 8400만명 MCU를 총괄하고 컨트롤하는 마블 스튜디오 케빈 파이기 대표는 지난해 한국 팬들에게 영상으로 감사 메시지를 보냈다. 이 영상에서 그는 “한국은 해외에서 중국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시장이며 영화뿐 아니라 마블 상품, 게임도 큰 인기를 끈다는 점이 놀랍다”고 말했다. 마블은 2016년 세계 최초로 공식 캐릭터숍 ‘마블 컬렉션 엔터식스’를 서울에 열었다. 현재 전국에 마블숍은 6개다. 지난해는 전년 대비 매출액 성장률이 108%였으며 올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2% 늘어났다. 의류, 이어폰, 스피커, 피규어 등 3000여가지 상품이 갖춰져 있다. 30만~100만원에 이르는 고가의 피규어도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마블 컬렉션 엔터식스 영업·마케팅 담당 김홍빈 이사는 “이번처럼 영화가 개봉하는 달은 다른 달에 비해 매출이 2배 이상 늘어난다”면서 “평균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 매입액)는 5만~6만원 정도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영화 속 캐릭터 덕후 ‘쩜오디’ 유튜브 채널 ‘코튼 팩토리’는 마블 팬들 사이에 유명하다. 내한한 배우들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선물을 전달하고 사인을 받는 등 온갖 ‘덕질’(열성적인 팬의 활동)을 촬영한 영상을 업로드하기 때문이다. 채널이 개설된 지 이제 석 달 정도 됐을 뿐인데 그의 ‘덕질’을 보려는 구독자가 4000명이 넘는다. 톰 히들스턴(왼쪽)이 정소민씨(오른쪽)에게서 인형을 전달받은 뒤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덕후’ 정소민씨(25)는 블로거이자 유튜버, 영화 마케팅 서포터즈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2015년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계기로 영화 블로그 운영을 시작한 그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016년 마블이 실시한 팬아트 공모전에 당선되면서다. 당시 ‘닥터 스트레인지’의 캐릭터를 본뜬 인형을 만들었던 그는 홍콩에서 열린 영화 프로모션 행사에 초대돼 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직접 인형(사진 오른쪽)을 전달했다. 인형 만들기에 재미를 붙인 그는 지난해 7월 <스파이더맨: 홈커밍> 개봉에 맞춰 한국을 찾았던 배우 톰 홀랜드에게 레드카펫 현장에서 인형을 선물했다. 올 4월 방한한 톰 히들스턴에게도 역시 같은 선물을 했다. 자신의 캐릭터를 닮은 인형을 선물 받은 이 배우들이 다른 인터뷰에서 그에게 선물 받은 인형을 언급하는 바람에 정씨는 ‘베이비돌 장인’으로도 불린다. 정씨 같은 일반 팬들이 배우들과 따로 접촉할 기회는 없다. 레드카펫 현장에서 펜스 너머로 건네주는 것이 고작이다. 때문에 배우를 바로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무조건 일찍 가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하루 전날 밤을 새우는 것은 기본이다. “중학생이던 2006년부터 코믹스에 빠졌어요. 일본 애니메이션만 해도 제법 팬층이 있는데, 미국 코믹스는 정말 비주류였거든요. 다른 사람들과 취미를 공유한다는 사소한 즐거움을 누릴 기회 없이 혼자서만 ‘팠어요’.” 2012년 <어벤져스>가 개봉한 뒤 마블 슈퍼히어로가 국내 팬들에게 알려지면서 ‘덕후’ 친구들이 생겨났다. 내한 배우들의 레드카펫 현장을 찾아갔고 함께 돈을 모아 캐릭터 상품을 공동으로 제작·구매하기도 했다. 팬들끼리 교류회를 열어 정보나 캐릭터 상품을 나눌 때도 있다. 영화 상영기간이 끝난 뒤에는 따로 극장을 대관해 상영회도 갖는다. 이때는 팬들이 캐릭터 코스프레를 하고 참여해 파티처럼 꾸며지기도 한다. 정씨처럼 영화 속 캐릭터를 좋아하고 관련 활동을 즐기는 덕후들을 ‘쩜오디’ 덕후라 일컫는다. 좋아하는 대상이 애니메이션이라면 2D, 가수나 배우 등 현실의 인물이라면 3D, 영화 속 캐릭터이면 2.5D인데 이를 줄여서 ‘쩜오디’라 부르는 것이다. 그는 “마블은 영화 속 세계가 현실과 연결되고 이어지는 것처럼 상상하게 할 뿐 아니라 그 상상을 눈앞에 보여주기 때문에 쩜오디 덕후들에게 더할나위 없이 매력적인 대상”이라고 말했다.
[사회]'부루마블'시키신 분∼(2003. 11. 20)
2003. 11. 20 사회
"블루코스랑 루미큐브 하나 연희관 018호로 갖다주세요." 전국 최초로 보드게임 대여업체 '후에고'(www.juego.co.kr)를 차린 두 젊은이가 주목받고 있다. 보드게임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젊은이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부루마블' '할리갈리' 등이 있다. 취업난 가운데 나온 이색 아이디어의 주인공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97학번 전시완씨(27)와 전성구(27)씨. 이들은 대학 1학년 때부터 줄곧 같이 다닌 단짝이다. 사업을 생각한 것은 전시완씨이다. 시완씨는 1학년 때부터 벤처 창업을 염두에 두고,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아이템'이 걸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템을 찾은 것은 9월 중순 친구 자취방에서였다. 그는 이곳에서 보드게임을 처 음 해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재미있다고만 생각했지만 이튿날 성구씨와 이야기를 하다가 사업 아이템으로 생각하게 됐다. 대개는 보드카페(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곳)에서 게임을 즐긴다.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고 불편하다. 시완씨는 이 점에 착안, 싼 가격에 집에서 편안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완씨는 성구씨에게 '손님이 원하는 곳까지 보드게임을 배달하는 사업'을 제안했고, 성구씨가 찬성해 사업을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자본금은 갹출과 투자를 통해 해결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사무실과 컴퓨터 등 돈 들어갈 곳 투성이였다. 이들은 필요한 것을 새로 구입하는 대신, 여기저기서 조달해 비용을 줄였다. 사무실은 연세대 서문 근처의 하숙집을 싼 가격에 빌려 해결했다. 테이블은 중고 제품을 샀고 컴퓨터는 집에서 들고 왔다. 인터넷 홈페이지는 책을 보고 만들었다. 보드카페에 침투(?) 정보 입수 문제는 보드게임이었다. 보드게임 초보자 수준이었던 이들은 어떤 게임이 인기가 있는지, 어떤 게임이 쉬운지 전혀 몰랐다. 이때부터 이들의 '발품'은 시작됐다. 보드카페에 손님으로 위장, 정보를 입수했다. 이 과정을 거쳐 구입한 게임은 처음에는 5개였지만 지금은 20개로 늘어났다. 홍보에도 발품을 들이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 홍보와 오프라인 홍보를 병행하고 있다. 이들이 처음 생각한 사업권은 연세대 주변이었기 때문에 연세대와 관련된 인터넷 사이트 등에 주로 글을 올렸고,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로 연세대 주변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거나 스티커를 붙였다. 사업이 알려지면서 '사업권'은 연세대와 홍익대, 이화여대 등으로 넓어졌다. 사업권역이 넓어져 손님이 많아지면 좋은 일이지만, 몸은 고달프다. 이들은 50㏄ 오토바이를 타고 손님이 원하는 곳까지 보드게임을 배달한다. 정해진 시간까지 달려가는 것은 이들의 의무. 게다가 손님이 게임방법을 모를 때에는 일일이 설명해줘야 한다. 인원이 2명밖에 안 되기 때문에 시간을 맞출 수 없는 게 가장 큰 고민거리이다. 게다가 요즘은 주문이 비연대권에서 들어와 더욱 힘들다. 여의도까지 배달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힘들고 빡빡한 일과의 연속이지만 이들은 일을 즐기고 있다. 다른 사람이 시킨 일이 아니라 '자기 일'이기 때문이다. 성구씨는 "카드 한 장 한 장에 '프로텍터'를 끼우고 있자면 '내 일이 아니라면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며 "내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재용 기자 politika9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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