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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경향(총 3 건 검색)

<마인> <힘쎈여자 강남순> 백미경 작가 BBC 라디오 출연…‘K-드라마를 말하다’
2024. 07. 02 10:29 문화/생활
BBC가 한국 여성 서사 드라마의 글로벌 영향력 주목해 작가 백미경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BBC 캡처 백미경 작가(이하 백 작가)가 영국 BBC 라디오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K-드라마의 글로벌 인기를 분석했다. 최근 백 작가는 BBC In the Studio의 ‘Baek Mi-kyoung: writing a female superhero K-drama In the Studio’ 편에 섭외를 받고 출연해 전 세계를 사로잡은 K-드라마의 작가 백미경이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BBC In the Studio는 아티스트, 음악가, 작가 등 전 세계 유명 창작가들의 창작 과정을 따라가며 이들의 작품 세계와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들어보는 BBC의 대표적인 라디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백 작가는 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 <마인>, <힘쎈여자 강남순> 등 탁월한 여성 서사를 구현해 내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재벌가 여성들의 연대를 통해 쾌감을 선사한 <마인>부터 모계 혈통 이야기로 새로움과 카타르시스 모두를 극대화하며 재미를 선사한 힘쎈여자 시리즈 등 여성 서사 붐이 일기 전부터 꾸준히 매력적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왔다. 이에 BBC는 한국 여성 서사 드라마의 글로벌 영향력에 주목, 여성 서사 맛집인 백미경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 조명했다. 이날 백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드라마 집필을 시작하게 된 배경과 집필 과정 등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한 것은 물론, 전 세계를 사로잡은 K-드라마의 매력과 K-드라마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백 작가는 1시간 정도 영어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과거 영어학원 원장으로서의 경력을 되살리며 탁월한 영어 회화 실력을 뽐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백 작가는 꾸준히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며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 다시 한번 K-드라마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한편 백 작가가 출연한 ‘BBC In the Studio’는 7월 2일(영국 현지 기준) 전 세계로 송출될 예정이며, 방송 후 BBC 월드 서비스 누리집에서 다시 들을 수 있다.
이보희 27년 전, 그 자리에서 리마인딩 화보
2014. 03. 28 15:20 연예
1987년 4월. 당시 「레이디경향」에 실린 패션 화보를 27년이 흐른 지금, 고집스럽게 재현해봤다. 같은 날, 같은 장소, 같은 디자이너의 의상 그리고 같은 모델 이보희와 함께. 이것이 진정한 ‘리마인딩’이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창간 32주년 기념호를 준비하는 기자의 손길이 바쁘다. 특집 기사 아이템을 찾기 위해 회사 자료실 구석에서 묵은 먼지를 걷어내며 과거 잡지를 헤집었다. 그때! 한 여인과 시선이 마주쳤다. 여리하고 촉촉한 눈망울로 비스듬히 기자를 올려다보고 있는 여인. 스물아홉의 이보희(55)였다. 넘실거리는 한강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그녀는 신화 속 여신처럼 환상적이다. 별다른 표정을 지은 것도 아닌데 보는 이의 마음이 흔들린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적당히 타협하며 과하지 않은 매력을 발산하는 그녀는 참 현명한 배우다. 1980, 90년대 당시 이보희는 단연 톱스타였다. 매달 「레이디경향」의 중요 지면은 그녀의 소식이 차지하고 있었다. 어떤 달은 스님과 ‘인생’이란 주제로 심도 깊은 대담을 나눴고, 또 어떤 달은 바쁜 영화 촬영장에서 시간을 쪼개 인터뷰를 했다. 때로는 이렇게 멋진 패션 화보로 청초한 매력을 발산했다. 촬영 당일 사진 속 그날처럼 한강은 너울너울, 빌딩의 조명을 받아내며 아름답게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도 이렇게 칼바람이 불었을까? 꽃샘추위의 끝자락에서, 더구나 밤 촬영을 강행했더니 체감온도는 한겨울 못지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시스루 소재의 얇디얇은 S/S 의상을 입어달라는 가혹한 부탁을 했다. 눈을 질끈 감고 “리마인딩이어서요…”라며. 게다가 다음날은 이보희가 새로 들어가는 MBC-TV 일일드라마 ‘모두 다 김치’의 첫 촬영일이다.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추워서 어떡하냐”라는 기자의 말에 오들오들 떨던 그녀의 대답은 의연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더라도 번지점프를 해내야 하는 것이 배우의 숙명이에요. 한 번 하겠다고 한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야 해요. 배우의 약속은 한 사람과 한 것이 아니니까요. 수많은 스태프와 더 많은 시청자들과 한 약속이니까요. 제가 배우를 하고 있지만 참 대단한 직업인 것 같아요. 책임감 없이는 길게 못해요.” 이보희는 배우 생활 35년간을 거의 쉬지 않고 달려왔다. KBS-2TV 주말드라마 ‘왕가네 사람들’을 끝낸 지 한 달이 채 지났을까. 바로 다음 작품에 들어간다.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단 한 해도 작품을 쉰 적이 없다.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과 강한 책임감 탓이다. 그녀의 리즈 시절 이보희는 특히 화보를 사랑했다. 제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엇박자처럼 어긋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찰나의 순간에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런 작업들이 신기하다. “옛날에는 화보 찍는 걸 즐겼기 때문에 제 자료가 많을 거예요. 젊을 때는 어떤 머리를 해도, 어떤 화장을 해도 예뻤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나이 들수록 점점 카메라를 피하게 되는 거죠. 의상은 변함없이 젊고 세련됐는데, 모델이 따라주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죠.” 그녀만큼 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중견 배우는 많지 않다. 비결은 주름을 잠시잠깐 감춰주는 시술이 아니다. 그녀는 꾸준한 요가로 군살 없이 탄탄한 몸매로 ‘55 사이즈’를 유지하고 있다. “화보 촬영할 때 숨 들이마시느라 힘들었는데 눈치 못 챘나요?(웃음) 아무리 바빠도 1주일에 서너 번은 요가를 해요. 원래 찌는 체질은 아니지만 나잇살이나 군살은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더니 살들이 좀 정리되는 것 같아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면 자동 완성 검색어에 ‘리즈’라는 단어가 뜬다. 사람들은 이보희의 아름다운 젊은 날의 사진을 보며 그 시절을 추억하곤 한다. 또 자연 미인이 귀한 요즘이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그녀의 ‘리즈 시절’이 화제에 오르기도 한다. “젊었을 때는 제가 예쁘다는 생각을 한 번도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 나이가 들어 그 시절 사진을 보면 정말 예뻤다고 느껴요. 젊음이 예쁜 거지요. 젊음이….” 시간이 주는 선물 이보희는 지금의 김태희, 한가인으로 비견되는, 시대를 대표하는 미인이었다. 요즘 젊은 여배우들이 당당한 직업군으로 인정받으며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왕년에 잘나가던 동료 여배우들과 가끔 골프를 쳐요. 모여서 하는 얘기의 대부분이 ‘시대를 잘 타고나야 한다’예요. 지금은 연예인들의 직업적 위상이 전문직만큼이나 높잖아요. 아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고요. 우리 때는 특수한 직업이긴 했지만 그리 대우받지는 못했거든요.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지 못했고요.” 무엇보다 그녀가 후배들에게 가장 부러운 점은 여배우에 대한 한층 너그러워진 대중의 시선이다. “여배우를 바라보는 깐깐한 잣대도 많이 사라졌죠. 우리 때는 남자와 사귀기만 해도 결혼해야 되는 시대였으니까 참 살기 퍽퍽했어요. 요즘 배우들은 자유롭게 연애하고 일도 열심히 하며 인정받잖아요. 참 부러워요(웃음).” 얌전하고 부끄러움을 잘 탔던 그녀는 자신이 배우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저 우연한 기회에 친구를 따라갔다가 이 길로 들어섰다. 지금 생각하면 인생의 기회를 잡은 거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고 내 주장이라곤 없었던 사람이었어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거절하지 못했지요. 요즘은 내 삶을 주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록 드라마 속에서는 악역, 아니면 푼수 역할을 주로 맡지만… 그래도 좋아요. 지금까지 꾸준히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전 선택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어느 순간 ‘내가 말을 이렇게 잘하는 사람이었나?’ 하고 깜짝 놀랄 정도로 넉살도 늘고 용감해졌다. 문득 흐르는 세월이 나쁜 것만을 가져다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이번 화보에서 보여준 그녀의 완숙미와 우아함도 시간이 준 선물이 아닌가. 「레이디경향」 1987년 4월호에서 다룬 톱디자이너 3인의 특집 화보이다. 이광희 디자이너는 ‘로맨티시즘&어반’ 컨셉트로 배우 이보희와 함께 한강에서 야간 촬영 화보를 완성했다. 27년 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디자이너의 감각과 이보희의 비주얼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Mini Interview 또 한 명의 주인공, 이광희 디자이너 이번 리마인딩 화보의 또 다른 주역은 이광희(62) 디자이너다. 그녀의 손길은 과거 「레이디경향」의 이곳저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우리나라 패션계가 막 태동했던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늘 선두자리를 지키며 트렌드를 이끌어왔다. 지금은 ‘상위 1%를 위한 로열 부티크’로 자리 잡고 과거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옛날에 참 재밌게 일했어요. 저도 의욕이 넘쳤으니 국내에서 새로운 시도란 건 다 해봤을 거예요. 일반인들이 해외에 잘 나가지 못했던 시절에도 처음으로 해외 화보 촬영을 했으니까요.” 지금의 ‘관광청’이나 ‘항공사’의 후원도 없었던 시절. 오롯이 그녀의 자비를 들여 해외 촬영을 준비했다. “일하는 걸 좋아해서 그랬는지, 새로운 도전에는 돈 생각이 나지 않더라고요(웃음). 당시 패션에 대한 인식은 지금처럼 좋지 못했어요. 디자인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멋진 옷을 사는 건 과소비나 사치로 치부했죠. 그런 인식을 바꾸고 말겠다는 나름의 사명으로 일했어요.” 그녀는 디자이너로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당대 톱스타들과 많은 작업을 진행했다. 이보희도 빼놓을 수 없는 주요 모델이었다. “이보희씨와는 굉장히 많은 작업을 했지요. 참 조용한 스타일이었어요. 촬영장에 와서도 유난스러운 것도 없고 말도 잘 안 하고 해야 할 일만 묵묵히 했어요. 저도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편해서 잘 맞았어요.” 디자이너는 인맥이나 커뮤니티 관리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녀는 ‘대인기피증’이 아니냐는 의심을 살 정도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밥 한 끼를 같이 먹지 않고 20년을 함께 일한 기자도 있어요. 인맥을 만드는 능력은 빵점이지요. 지금까지 제 곁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세월을 통해 가까워진 사람들이죠. 함께 있어도 굳이 말이 필요 없는 사람들.” 그녀는 5년 전부터 아프리카에 눈을 돌려 ‘희망고’라는 국제NGO 단체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희망고’는 ‘희망의 망고나무’의 준말로 망고나무 심기를 통해 남수단 톤즈 지역 주민들의 자립을 돕는다. 또 얼마 전에는 현지 지역 주민들을 위한 복합교육문화센터인 ‘희망고 빌리지’를 만들기도 했다. “제가 평소 존경했던 김혜자 선생님을 따라 아프리카에 처음 간 것이 계기였어요. 부티크를 운영하면서는 대중과 소통하기 어려웠죠. 그런데 구조 봉사활동을 하면서 함께 호흡하고 다가가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남녀노소 좋아할 만한 티셔츠나 블라우스를 디자인하고 바자회도 열고 있습니다.” 그녀는 천생,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외면의 아름다움 그리고 이제 내면의 아름다움에까지 다다른다. 이광희 디자이너와 배우 이보희, 두 사람의 공통점은 책임감과 사명이었다. 세월의 흐름에도 흔들림 없이 건재할 수 있었던 두 여인의 본질일 것이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원상희, 안진형(프리랜서) ■의상&소품 협찬 / 이광희 부티크(02-792-3311), 에스콰이아 ■헤어&메이크업 / 수민, 김수민(위드뷰티살롱, 02-515-2322) ■촬영 협조 / 한강사업본부 문화홍보과>
‘엄마’ 자신을 위한 마인드 테라피
2011. 10. 28 17:29 육아/교육
ㆍ한국형 자녀교육 심리전문가 문은희 박사의 조언 한국형 자녀교육 심리전문가이자 한국 알트루사 여성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문은희 박사는 신간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를 통해 아이의 문제는 곧 엄마의 문제로부터 기인한다고 밝히고 있다. 문 박사는 “이제는 아이보다 엄마를 이야기할 때”라고 말한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할아버지의 재력과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이 필요하다는 세간의 말이 있다. 뒷맛이 씁쓸하지만 이것만큼 요즘 세태를 잘 꼬집은 말도 없다. 엄마들은 혹여 자신의 나태함이나 무지로 인해 아이가 뒤처질까봐 시간을 내어 육아서나 교육 지침서를 읽는다. 그리고 각종 교육 설명회에도 다니며 학원 정보에 소외되지 않기 위해 학부모 모임에도 열심히 참석하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을까? 해마다 청소년 우울증과 자살 비율은 높아만 가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인 ADHD나 틱장애와 같은 각종 정신적 질병을 앓는 어린이 환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엄마의 사랑이 부족한 탓일까? 엄마는 아이를 위해 더 열심히 뛰어야 하는가? 루소의 「에밀」을 읽고 심리학자의 길로 서울의 중심인 종로의 번잡한 대로변 뒤에는 이곳이 서울인지 믿기지 않을 만큼 전혀 다른 느낌의 동네가 있다. 가회동, 계동, 삼청동 일대를 일컫는 북촌마을이다. 종로의 기세야 그 옛날부터 대단했을 터이지만 자리를 지켜온 마을의 모양새는 소박하고 정답기 이를 데 없다. 북촌길 골목을 걷다 작은 골목 가파른 계단 끝에 다다르면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작은 한옥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소박한 입간판에는 (사)한국 알트루사 여성상담소라고 적혀 있다. 이곳은 심리 문제를 전문적으로 상담하면서 정신건강 사회운동을 벌이고 있는 국내 유일의 단체다. 지난 20여 년간 이 상담소를 이끌어온 사람이 바로 심리학자이자 자녀교육 전문가인 문은희 박사다. 문 박사는 문재린 목사의 딸이자 문익환 목사의 여동생으로 또 언젠가부터는 영화배우이자 사회운동가인 문성근의 고모로도 불리고 있다. 이름만 대면 모두 알고 있는 아버지와 오빠, 조카의 그늘 아래서 다소 위축된 삶을 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지만 문 박사가 살아낸 삶의 족적을 보면 누군가의 그늘이 아니라 큰 뿌리 위에서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눈의 총기와 말씨의 또렷함은 여전한 기상을 드러내고 있었다. 문은희 박사의 첫 전공은 의학이었다. 하지만 주삿바늘 하나 찌르지 못하는 성정으로 인해 의대를 중도 포기하고 교육학과 심리학을 공부했다. 돌이켜보면 누군가를 고치는 삶은 애초부터 그녀에게 맞는 옷이었던 듯하다. 결과적으로 몸이 아닌 마음을 고치는 것이 되었지만 말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스무 살이 되던 해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이란 책을 읽게 되었어요. 읽어봤나요? 꼭 읽어보세요(웃음)…. 가상의 주인공인 ‘에밀’의 성장과 교육 과정을 담고 있죠. 루소는 인간은 본래 선하게 태어났고, 교육은 이런 인간, 즉 아이들의 본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찾을 수 있게 돕는 과정이라고 봤어요. 그 책을 읽는데 무엇인가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어요. 구체적이진 않았지만 ‘이거다!’ 싶더라고요. 교육심리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라고도 할 수 있고,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죠.” 포함 단위, 한국 엄마들의 독특한 심리구조 포함이론이란 한국 여성과 서양 여성의 우울증을 비교·연구하는 과정에서 한국 여성만의 독특한 심리구조인 ‘포함 단위’를 문 박사가 학문적으로 정립한 것이다. 문 박사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영국의 한 시사 프로그램을 예로 들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오랫동안 집과 소식이 끊긴 노숙인을 조사해 집중 보도한 적이 있었다. 그때 기자는 런던 거리에서 만난 젊은 노숙인을 그의 어머니가 사는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머니는 별로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우리네 정서로는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는 것처럼 얼싸안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그녀는 그저 담담하게 문을 열어주었을 뿐이다. 다음날 기자가 다시 그 집을 방문했을 때, 아들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이어지는 그 어머니의 답은 놀라웠다. “아들과 나는 성격이 맞지 않아 같이 살 수 없어요.” 한국의 엄마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자 대답이다.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식을 집에서 내보내는 것도 모자라 노숙인 신세가 되었음에도 모른 체하는 엄마가 한국에 있을까? 문 박사는 경제 사정이 좋아질 때까지만 부모의 집에서 머물기를 원하는 노숙자 아들을 내치는 어머니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를 이상할 것 없다는 듯 받아들이는 영국 시청자들이 더 놀랍게 느껴졌다고 한다. 문 박사는 이어 한국 가정의 예를 소개했다. 공무원으로 평생을 보낸 남편과 장성한 아들을 둔 한 중년 여성이 있다. 맏아들은 연애 결혼 후 아들, 딸 낳고 교회도 열심히 다니며 잘 살고 있다. 그런데 가뜩이나 신앙생활을 하지 않아 걱정이었던 둘째 아들이 삐걱대던 결혼생활을 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이혼까지 하고 말았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오면서 잘 살아왔다고 자부해오던 그녀는 깊은 시름에 빠졌고, 이어 이들 가족 모두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급기야 남편은 충격으로 쓰러지기까지 했다. 그녀는 둘째 아들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교인들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아들을 보고 뭐라고 할지 걱정이고, 아들에게 붙을 ‘이혼남’ 꼬리표는 괴롭다 못해 아프기까지 하다. 서양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문제지만, 보통의 한국 엄마들은 그녀의 심정에 충분히 공감을 표할 것이다. 나아가 ‘아들에게 이렇게 얘기해봐라’, ‘이혼한 며느리를 찾아가 저렇게 하는 것이 좋다’라며 적극적으로 훈수 두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모질게 느껴지는 영국 엄마와 자식에게 전부를 건 듯한 헌신적인 한국 엄마의 다른 점은 그저 성격 차이 때문일까? “영국 엄마의 사례를 접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저도 한국 여자이자 한국 엄마니까요(웃음). 영국 엄마의 자아에는 ‘나’라는 그녀 자신 하나가 있는 거예요. 반면 한국 엄마의 자아 속 ‘나’에는 자신뿐 아니라 아이, 남편, 부모 더 나가서는 시댁, 친정 등 모두가 포함되어 있거든요. 영국 엄마의 경우 ‘나’ 와 ‘너’로 분리되어 있지만 한국 엄마의 경우 모든 것이 ‘나’로 동일시돼 전부 내 문제인 거죠.” 엄마가 주고 싶은 사랑 말고, 아이가 받고 싶은 사랑을 한국 엄마의 ‘나’에는 자식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아이=나’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그렇기에 모든 엄마들은 아이에게 거침없이 개입한다. 어렸을 때 아이가 울면 왜 우는지 알려 하지 않고 그저 달래기에 급급해한다. 시간이 지나면 ‘우는 것은 좋지 못하다’거나, ‘못나고 약해 보이니 울지 말라’고까지 말한다. 조금 큰 아이가 장래희망을 말하면, ‘너 어렸을 때 병원놀이 하면서 의사선생님 되고 싶다고 했잖아’라며 아이의 꿈을 ‘의사’로 몰고 가버린다. 좋은 성적을 받으면 기뻐하고, 나쁜 성적을 받으면 무섭게 야단친다. 구두쇠 스크루지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서 스크루지 영감이 착한 사람으로 변한 것에 감동하는 아이를 보면서 ‘구두쇠로 살아도 모자랄 판에 다 퍼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렇게 되려 하면 어쩌나’ 하고 내심 여리고 착한 아이의 심성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한다. 여기서 아이의 감정은 없다. 오로지 엄마의 입장과 엄마의 판단, 엄마의 감정만이 존재할 뿐이다. 엄마들은 끝없이 ‘널 위해서’라는 이유로 어느 학교를 가며, 어떤 친구와 사귀고, 어떤 직업을 가지며,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에 대해 끝없이 주입하고 강요한다. “우는 아이는 달래야죠. 울게 내버려두는 것이 좋다는 말이 아니에요. 그런데 많은 엄마들이 아이가 왜 우는지에 대해 알려 하지 않고 빨리 달래거나, 울지 않는 상태가 좋은 줄 알아요. 그게 잘하는 엄마인 줄 알고 아이가 울 기회조차 허용하지 않아요. 기저귀가 젖어 울기 전에 기저귀를 갈아주고, 배고파 울기 전에 젖을 주고, 졸려서 울기 전에 재워주는 거죠. 아이는 배고픈, 찝찝한, 졸린 느낌을 경험할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고 엄마는 문제를 해결만 한 것이지 문제를 공유하지는 못했죠. 이렇게 키우게 되면 아이는 엄마와 감정을 소통하지 못하고 어딘가로 숨어버립니다. 많은 엄마들이 ‘우리 아이는 하루 종일 책만 읽어요’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하지만 혹여 아이가 엄마를 거부하고 책 뒤로 숨은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할 거예요.” 문 박사는 엄마가 사랑을 담아서 한 행동이 아이들에게는 정작 사랑으로 전해지지 않는다면, 아이에겐 고역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인공조미료 하나 쓰지 않은 유기농 재료로만 식사를 준비하고, 늘 예쁘고 깨끗하게 차려입혀주고, 좋은 학교, 좋은 학원을 찾아 보내주는 등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노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해보자. 혹 엄마 노릇을 일거리로 생각하고 열심히 해내고만 있었던 것이 아닌지 말이다. “아이의 눈을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어요. 아이가 입으로 말하는 것 말고 눈으로 말하는 것을 들어보려고 해보세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러지 마라’와 같은 말은 마음을 나누겠다는 자세가 아니죠. 아이에게 가면을 씌우고 엄마가 듣고 싶은 거짓된 답을 유도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그저 눈을 좀 맞추고, 아이의 감정이 말하는 것을 느껴보세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죠. 아이의 감정이 말하는 것을 듣기 위해서는 엄마 마음이 건강해져야 하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 안의 아이를 찾아 그 느낌을 회복해야 해요.” 겉보기엔 더없이 좋아 보이는 엄마가 있다. 시댁과 친정에 헌신적이라 집안 어른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는다. 남편과는 부부 싸움 한 번 하지 않았다고 자부할 만큼 금실 좋은 사이로 알려졌다. 웬만하면 의견 충돌을 피하고 남편 뜻에 따라주고, 아이들에게는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체벌 없이 키웠다. 사람들은 신사임당이 따로 없다고 칭찬해준다. 그러나 정작 이 엄마는 만성적인 갑갑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잘한다고 하지만 정작 남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이들이 어떤 기분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집에 큰 소리 안 나고 조용하면 되는 줄 알고 참고 또 참기만 해온 것이다. 문 박사는 이 엄마 안에 숨은 ‘아이’를 찾아보았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와 줄줄이 태어난 동생들 때문에 그녀는 어릴 적 외가에서 살았다. 그런데 불행히도 외조부모는 사이가 몹시 좋지 않았다. 허구한 날 밤이면 큰 싸움을 하는 탓에 어린아이는 그때마다 외조모의 무서운 고성에 잠을 깨곤 했다. 어린 눈으로 싸움의 잘잘못을 알지 못했고 그저 무서운 표정으로 고함을 지르는 외조모의 모습이 공포처럼 다가왔다. 그녀는 ‘할머니만 소리치지 않는다면 이 무서운 상황이 끝날 텐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무서운 상황, 불편한 상황은 ‘나만 참으면, 나만 말하지 않으면, 나만 화내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 일’이 된 것이다.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한 후에도 그녀의 마음속 어린아이는 그 상황이 너무 무서워서 조금이라도 싸움이 될 것 같거나 의견 충돌이 일어날 것 같으면 참았다고 한다. 해야 할 말조차 하지 않고 사태를 덮기에 급급해왔던 것이다. 엄마 안의 ‘아이’가 그렇게 반응해온 것이다. 느낌을 회복하고, 포함의 단위를 더 넓힐 때 아이를 아프게 하는 엄마도 분명 과거엔 자녀와 똑같은 아이였고, 보살펴주는 엄마가 있었을 것이다. 과거의 엄마 ‘아이’는 이제는 친정엄마라 불리는 그 엄마와의 관계가 어땠을까? 엄마 ‘아이’의 과거는 행복했을까?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아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엄마 안의 상처받은 ‘아이’로 인해 지금 내 아이를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때라고 문 박사는 말한다. 그것을 ‘느낌의 회복’이라고 표현했다. 느낌이라는 사전적 의미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 행간을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요즘 엄마들이 얼마나 건조하게, 마음을 기능적인 용도로만 사용해왔는지 잘 알 수 있어요. 느낌이란 말을 아주 어려워하거든요. 무엇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대요. 감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어요. 기쁨과 설렘, 포근함, 뿌듯함, 슬픔, 아픔, 분노, 창피함, 감격, 흥분, 그리움 등등 마음의 색깔 말이죠. 감정의 근원적인 뿌리, 그 원인을 찾으면 내 감정의 실체를 알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내 아이가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말하지 않아도 느낌을 알 수 있는 사이, 부모와 자식의 건강한 관계가 되는 거죠.” 문 박사는 느낌을 회복하고 자녀와의 관계를 건강하게 가꾸는 첫 시작으로 거창한 것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과거 상처를 주었던 부모의 역할을 해줄 ‘대리모’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엄마 안의 아이가 과거의 감정을 풀어내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여기서 ‘대리모’란 일종의 멘토와 같은 상담자 역할을 일컫는다. 그런 상대를 찾는 것이 여의치 않다면 글을 써보라고 권했다. 여기서 글이란 일기가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 듣고 있다는 기능을 발휘하는 글쓰기. 쉽게는 인터넷을 이용한 글쓰기도 좋다고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읽고 달린 몇 개의 댓글도 과거의 상처를 끄집어내는 좋은 촉매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포함 단위’로 한국 엄마들을 설명할 수 있었어요. 느낌을 회복하고 자녀를 엄마인 자신으로부터 건강하게 분리시키라고 조언했죠. 분리시킨다는 말을 포기하거나 방치하는 것으로 잘못 받아들이는 엄마도 있는데, 이는 아이를 믿고 지켜봐주는 것이랍니다. 그러면서 그 포함의 단위를 더 넓혀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 아이에서, 내 아이의 친구에게로 또 내 아이의 학교 아이들에게로 그 단위를 점점 넓히다 보면 건강한 공동체 의식이 자란답니다. 모든 아이를 내 아이처럼 생각하는 넓은 포함 단위는 엄마와 아이뿐 아니라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엄마는 나를 어른이 되어서 알기 시작했지만,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평생 엄마와 알고 지냈다!’ 문은희 박사의 아들이 작문 시간에 쓴 글의 한 구절이라고 한다. 그녀는 이 구절을 읽고 아이들이야말로 엄마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한다. ‘우리 애는 이해할 수가 없어’라고 오늘도 푸념하고 속상해하고 있다면 내 아이 말고, 내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엄마 안의 ‘아이’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내 아이에 대한 답은 내 안의 ‘아이’에게 있으니 말이다. 문은희 박사가 말하는 아이를 아프게 하는 엄마의 잘못된 행동 16가지 1 자녀의 큰 꿈에만 박수쳐주었는가? 2 엄마의 꿈을 자녀의 꿈이라고 착각하지 않았는가? 3 엄마 말 잘 들어야 착하다고 칭찬했는가? 4 아이답지 않고 어른스러워야 좋아했는가? 5 규칙과 약속을 꼭 지키게 했는가? 6 엄마 취향과 같은 것을 고를 때만 허용했는가? 7 슬픔을 공감하기보다 해결해주기 위해서만 노력했는가? 8 “너는 내 전부다”라고 부담을 주지 않았는가? 9 실패할까 두려워 미리 지적하고 잔소리하지 않았는가? 10 아이와 마음을 나눈다고 엄마의 생각을 여과 없이 쏟아냈는가? 11 자만하지 말라고 남들 앞에서 깎아내리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12 아이가 조용히 책을 읽고 있으면 안심했는가? 13 아이 자신보다 아이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가? 14 전문가나 책에서 시키는 대로 했는가? 15 아이를 울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는가? 16 체벌하지 않고 다그치지 않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는가? <■글 / 강은진(프리랜서) ■사진 / 원상희 ■참고 서적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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