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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와 ‘어디로’ 실종…뭘 위한 재난문자죠?(2023. 06. 09 11:23)
- 2023. 06. 09 11:23 사회
- ㆍ민방공 경보 알맹이 빠진 표준문안 수정 추진 ㆍ현 90자에서 157자로 바꾸면 구형폰 수신 불가 북한이 발사체를 발사한 지난 5월 31일 7시쯤 서울역 대합실에서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서울시가 보낸 경계경보 재난문자는 이날 6시 41분 도착했다. / 연합뉴스 “오늘 6시 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5월 31일 서울시가 발송한 재난문자에 서울 일대 시민들은 ‘대혼란의 아침’을 맞았다. 위급 재난문자에 적용되는 사이렌 음까지 울렸지만 왜 대피해야 하는지,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빠져 있었다. 경보에 놀란 시민들이 일시에 포털 접속을 시도하면서 네이버 접속 장애도 발생했다. 불안감만 조성했을 뿐 대피에 필요한 정보는 전달하지 않은 채 22분이 흐른 뒤에야 행정안전부의 ‘오발령’ 문자가 도착했다. 이어 서울시가 ‘경보 해제’ 문자를 보냈다. 혼란은 소동으로 끝났지만 “실제상황이었으면 어쩔 뻔했나”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이번 소동은 재난대응 체계의 큰 허점을 드러냈다. 재난문자는 알맹이가 없었고, 중앙정부·지자체 간 소통채널은 무너져 있었다. 재난문자상 경보 발령 시각은 32분이었지만, 재난문자가 전파된 시점은 6시 41분으로 9분이나 늦었다. 오발령이냐, 경보 해제냐를 두고 행정안전부와 서울시가 공개적으로 다투면서 국무조정실이 감찰까지 나섰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세계 1위(전 국민의 95%·미국 시장조사기관 퓨리서치의 2019년 조사결과)인 한국에서 재난문자는 재난대응 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다. 책임소재를 두고 행안부와 서울시의 공방이 앞으로도 이어지겠지만, 정작 중요한 건 이번 소동을 재난문자 체계의 재정비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재난문자에 어떤 정보를 얼마나 더 담을 수 있는지, 이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점은 없는지 등을 짚었다. 재난문자, 정보 더 담을 수 없나 서울시가 보낸 ‘경계경보 발령’ 재난문자는 행정안전부 예규인 ‘재난문자방송 기준 운영규정’의 표준문안을 그대로 따왔다. 2008년 최초로 만들어져 여러 차례 개정돼온 이 규정엔 태풍, 호우, 대설, 감염병, 방사능 누출 등 각종 재난에 상응하는 문안이 나열돼 있다. 그중 ‘적의 침공’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민방공 경보’는 경계경보·공습경보·화생방경보로 나뉘는데, 세 경보의 문안이 조금씩 다르다. 경계경보의 표준문안 내용은 “오늘 ○○시 ○○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5월 31일 서울시민들이 전송받은 그대로다. 다음 단계인 공습경보의 표준문안은 주·야간 두 가지다. “오늘 ○○시 ○○지역에 공습경보 발령. 가까운 지하대피시설로 대피 후에 방송으로 전달되는 국민행동요령에 따라 행동해 주시기 바랍니다”(주간). “오늘 ○○시 ○○지역에 공습경보 발령. 전등을 끄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 후에 방송으로 전달되는 국민행동요령에 따라 행동하시기 바랍니다”(야간). 화생방경보 문안은 “오늘 ○○시 ○○지역에 화생방경보 발령. 호흡기 및 피부 등을 보호하시고, 방송으로 전달되는 국민행동요령에 따라 행동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다. 이 운영규정은 중앙정부·지자체 등의 ‘재난문자 입력자’가 표준문안을 활용하되 상황에 맞게 수정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하지만 5월 31일 서울시가 그랬던 것처럼 위급 상황에서는 표준문안 그대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알맹이 없는’ 재난문자는 일본 J-경보(전국순시경보시스템)의 메시지와 대비되면서 더욱 비판을 받았다. 일본 오키나와현에선 북한의 발사체 탐지 1분 만인 6시 30분에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보입니다. 건물 안 또는 지하로 피난해 주십시오”라는 경보메시지가 전파됐다.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발사체가 5월 31일 남쪽으로 발사된 뒤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 공습경보가 내려지자 섬 주민들이 급히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 연합뉴스 행안부는 늦게나마 ‘왜’ ‘어디로’를 포함할 수 있도록 재난문자 규정을 정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행안부의 김경희 재난정보통신과장은 지난 6월 7일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재난문자 문안은 재난 종류별로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해 논의를 곧 시작할 예정이고, 6월 말까지는 전문가 회의도 열 계획”이라면서 “예규를 정식으로 개정하려면 두세 달은 걸리지만 선시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정보 충분하게’ vs ‘소외 단말기 없게’ 재난문자에 ‘왜’ ‘어디로’ 등의 정보를 넣기로 했다고 해도 고민은 남는다. ‘얼마나 구체화할 것이냐’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현재 90자인 문자수를 늘려 지역별 대피소 등 구체적인 정보를 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부에선 “문자수를 늘리면, 일부지만 재난문자를 못 받는 이들이 나올 것”(행정안전부)이라며 주저하고 있다. 재난문자의 문자수 확대가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 쪽에서는 문자의 ‘실효성’을 강조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안전교육이 철저한 미국에선 경보가 울리면 일단 하던 일을 멈추고 바깥으로 나오지만, 한국은 경보 발령 이유와 구체적인 행동요령을 알려줘야만 움직이는 편”이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재난문자에는 ‘왜 발령했나’는 물론 ‘전기차단기를 내리고 가스 밸브 잠그고 신속하게 이동하라’ 등의 구체적 요령과 지역별 대피소 등이 지역 맞춤형으로 담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 교수는 그러면서 “현재 통신기술로도 지금의 90자를 넘어선 157자 재난문자가 가능하고, 각 구별 발송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현 불가능한 방안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90자 이내’인 재난문자의 문자수를 157자로 늘리는 것은 실제로 가능하다. 다만 재난문자 수신기능 의무 탑재가 적용된 2019년 이전에 출시된 LTE 단말기의 경우 ‘157자 재난문자’는 깨진 형태로 전달되거나 아예 수신이 안 될 수도 있다. 정부가 ‘157자 재난문자’ 적용을 망설이는 이유다. 재난문자는 문자가 아니다? 현재의 재난문자는 사실 ‘문자’라기보다는 ‘문자로 전하는 방송’에 가깝다. 재난문자는 CBS(Cell Broadcasting system)라 불리는 체계에 의해 전파되는데, 특정 상대에게 보내는 문자와 달리 동일 기지국 안에 있는 단말기에 동일한 문자가 전송된다. TV나 라디오가 상대를 가리지 않고 같은 내용을 내보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은 2005년 세계 최초로 재난문자 전국 송출체계를 만들었지만, 정작 3G 스마트폰 단말기에 대해선 긴급재난문자 수신기능 의무화 작업을 하지 못했다. 지금도 3G폰엔 재난문자가 오지 않기 때문에 정부는 3G폰 이용자들에게 안전디딤돌 애플리케이션을 깔아 이 앱을 통해 재난문자를 확인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3G폰 이용자들은 (정부가 걱정하는 2019년 이전 출시 4G폰 이용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재난문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니, 재난문자를 157자로 늘리되, 재난문자에서 소외되는 이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공하성 교수)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5월 31일 시청 브리핑실에서 이날 오전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발사체 발사와 관련해 서울시가 발송한 ‘경계경보’ 재난문자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재난문자를 통해 지역별 대피소를 안내하는 방안은 가능할까. 현재 CBS 시스템은 시·군·구별 전송이 가능하기 때문에 불가능하진 않다. 행안부 관계자는 “코로나19 재난문자, 경찰의 실종자 문자에서 이미 활용된 링크 첨부 방안을 이번에 함께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 경우에도 득실을 잘 따져야 한다고 본다. 통신 분야 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대피소를 확인하기 위해 접속자가 동시에 몰릴 경우 기지국이 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기능을 못 하게 되면, 그때는 전화통화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서 “코로나19 확진자 정보나 실종자 정보 확인을 위한 접속량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접속량이 순간적으로 몰릴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글에 익숙하지 않은 이주민 등 외국인을 고려해 문자 대신 그림을 이용한 재난문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을 위해 만든 ‘이머전시 레디 앱(Emergency Ready App)’을 깔면 외국어로 번역된 재난문자를 받아볼 수 있지만, 관광객을 비롯한 단기 체류자들은 이 앱을 잘 알지 못해서다. 행안부 측은 “그림 재난문자의 경우 오히려 혼란을 줄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어 적절한 방안을 찾기 위해 국책기관을 통해 연구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진짜 대피해야 할 일 생기면? 재난문자 체계를 정비한다 해도 모든 재난대응 정보를 문자로 확인한다는 건 비현실적이다. 재난대응과 관련한 상식은 미리 숙지하고 있을수록 좋다. 일단 가까운 대피소를 잘 모른다면 한번쯤 확인해두기를 권한다. PC에서는 국민재난안전포털 → 민방위 → 비상시설 → 대피소에서 지역별 대피소를 확인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 안전디딤돌 앱을 깔면 첫 화면에서 ‘대피소 조회’가 가능하다. 이번 경계경보 문자에선 ‘대피 준비를 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대피를 준비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대피 준비’는 화재 위험을 대비해 전열기 코드를 뽑고, 가스 밸브 등을 잠근 다음 비상물품을 챙겨 대피소로 떠날 준비를 하는 단계를 말한다. 국민재난안전포털은 이때 필요한 비상물품으로 “30일분의 쌀, 라면, 밀가루, 통조림(식량)과 식수, 버너와 부탄가스(15개 이상), 가정용 상비약품, 방독면 등”을 제시한다. 현실적으로 가족 수대로 30일치 식량을 보관해두기는 어렵다. <거의 모든 재난에서 살아남는 법>(2018년 따비 출판)의 저자인 성상원 작가의 ‘노하우’를 참고해보자. 그는 미리 준비해두면 좋을 비상물품으로 “줄만 당기면 알아서 데워지는 발열 도시락(한 사람당 두 끼 정도·대피 12시간 뒤엔 비상배급체계 가동될 것을 전제), 2ℓ 이상의 물, 구급상자, 물티슈와 티슈, 손전등 기능이 있는 자가충전 라디오, 은박지 소재로 된 담요(1개당 1000원이면 구입 가능), 던져서 불을 끄는 소화기, 민간방독면 등”을 제시했다. 비상물품은 많으면 많을수록 도움이 되겠지만 사실 성 작가가 가장 중요하다며 제시한 ‘첫 번째 준비물’은 따로 있었다. 체력이다. 성 작가는 “하루 스?R 100개 이상, 플랭크 3분 이상은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야 대피하는 과정에서 체력 손실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다”면서 “비상시 들고 가야 할 것이 많은 가족일수록 체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주간 舌전]“긴급 문자, 과잉 대응이라도 오발령은 아냐”(2023. 06. 02 11:28)
- 2023. 06. 02 11:28 정치
- 오세훈 서울시장 / 서울시 제공 “긴급 문자는 현장 실무자의 과잉 대응일 수는 있지만 오발령은 아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5월 31일 새벽 서울시가 발송한 ‘경계경보’ 위급재난문자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이날 북한이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남쪽으로 우주발사체를 발사했고, 서울시는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위급재난문자를 보냈다. 행안부에 따르면 경계경보는 백령·대청 지역에만 발령돼야 했으나 행정상 실수로 서울에 잘못 발령된 것으로 확인됐다. 오 시장은 “많은 분에게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면서도 “다소 과잉 대응을 했다고 해서 (담당자) 문책 얘기가 나온다면 실무 공무원들이 상당히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새벽 벌어진 혼란을 두고 국민의힘은 옹호에 나섰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재난과 관련돼선 지나친 게 모자란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말했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북한이 국제기구에 발사 사실을 통지했는데, 이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새벽에 경계경보를 발령하는 황당한 일이, 또 무책임하고 무능한 일이 벌어졌다”고 비판했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참으로 무능한 정부”라며 “정말 위급한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찌 됐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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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간 舌전]“문자폭탄, 권장할 일”(2021. 04. 30 11:27)
- 2021. 04. 30 11:27 정치
-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 강성 지지자들의 ‘문자폭탄’ 행위에 대해 한 말이다. 김 의원은 4월 28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문자를 보내는 이들은)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하는 지지자들이라고 생각한다”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런 적극적인 의사표시는 권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원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소통 통로가 없고, 통로가 끊겨 있기 때문에 (당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게 문자”라고 덧붙였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 김정근 기자 앞서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여러분이 문자행동(문자폭탄)을 할수록 재집권의 꿈은 멀어져 간다”며 “문파가 전 국민의 과반 이상이라면 문파의 뜻을 따르는 것이 바로 국정 운영이고 선거전략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수의 뜻을 살피는 것이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 아니냐”며 문자폭탄 행태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한 박완주 의원도 문자폭탄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박 의원은 지난 4월 1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강성 지지자 의견이) 과대평가를 받는, 마치 이게 당심 전체인 양 비쳐서 언론이나 국민에게 표현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김 의원의 ‘문자폭탄 권장’ 발언을 두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SNS에 “잘하고 있다”며 “국민의힘은 얘(김용민 의원)만 믿고 가면 된다”고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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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을 생각한다]문자발신자(2021. 04. 16 11:08)
- 2021. 04. 16 11:08 오피니언
- 지난해 3월 위성정당 창당 논의를 위한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가 열리기 전날 새벽, 한 민주당 지지 유튜버의 생방송을 4만여명의 지지자가 지켜보고 있었다. 진행자는 위성정당 창당에 반대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배신자’라고 한참을 성토하더니 그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화면에 띄웠다. 시청자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응징하겠다고 지령에 화답했다. 배신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의원들은 이날 이후 약속이나 한 듯 위성정당 문제에 입을 닫았다. 지난해 7월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한 방송에 출연해 재보궐선거 후보 공천을 두고 “공당이 문서로 규정으로까지 약속을 했으면 그 약속을 지키는 게 맞다”며 무공천을 주장했다. 이날 민주당 지지자들이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 지사의 휴대폰번호와 소셜미디어 계정 ‘좌표’가 찍혔다. 이 지사는 다음날 “저는 서울·부산 시장 무공천을 주장한 바 없다”고 한발 물러섰다. 민주당의 대패로 끝난 재보궐선거 다음날, 이 당 초선의원들의 뒤늦은 반성문이 나왔다. 이날 오영환·이소영·장경태·장철민·전용기 의원은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지지자들은 즉각 이들을 ‘초선 5적’으로 명명하고 휴대폰번호 좌표를 공유했다. 지지자들의 문자폭탄에 응징당한 5인방은 하루 만에 전날의 사과를 철회하고 문자발신자들의 입맛에 맞춘 다른 버전의 사과문을 낭독했다. 문자수취인들의 태도가 말해주는 것은 발신인들을 탓하는 것만으로 이 신종 테러리즘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테러행위를 부추긴 것은 문자여론에 기민하게 반응해온 정치인들이다. 수취인들의 태세전환을 지켜본 문자발신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들에게 문자폭탄은 도깨비방망이다. 휴대폰과 좌표만 주어진다면 무엇이든 갈아엎을 수 있을 것 같다. 고작 문자 한통으로 엄청난 효능감을 맛본 사람들은 다음번에는 더 끔찍한 말들을 문자에 태워 보내겠지. 그깟 문자 몇개가 만들어낸 효과는 대단했다. 민주당이 원칙을 배반하는 순간마다 극성지지자들의 문자폭탄이 있었다. 그들은 집요하게 폭력적인 방식으로 당리당략 추구를 요구했고, 당은 이를 기민하게 수용했다. 당내 소신파들을 변절자로 낙인찍었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의원들은 스스로 입을 봉했다. 그렇게 당이 서서히 질식돼 가는 사이 ‘문자여론’을 등에 업은 극단주의자들이 전면에 나섰다. 모두가 문자폭탄의 위협에 꼬리를 내렸던 것은 아니다. ‘조금박해’라고 불리는 이 당의 4인방은 민주당에서 가장 많은 문자폭탄을 받은 정치인들이다. 강성지지자들의 위협에 꿈쩍하지 않았던 그들은 당내에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거나 질타를 받으며 당을 떠났다. 저 당을 지배하는 것은 문자발신자들이다. 과대대표된 소수의 노이즈에 휘둘리면 작고 귀여운 정당이 된다는 것이 아스팔트보수에 휘둘리다 쪼그라든 새누리당의 교훈이다. 두 당을 보면 ‘손님은 왕이다’라고 써붙이고, 진상손님들 입맛에 휘둘리다 망해버린 식당을 보는 것 같다.
- 황교안 구미 동원 문자 백승주 의원실서 작성(2019. 06. 10 10:01)
- 2019. 06. 10 10:01 정치
- ㆍSNS 담당 비서관 “PC로 작성해 문자발송시스템으로 보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구미보 방문 동원 문자’ 최초 원본 제작자가 백승주 의원실 관계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백승주 의원은 한국당 구미갑 지역구 의원이다. 그동안 이·통장 동원 등 선거법 위반 의혹은 같은 당 장석춘 의원 지역구인 구미을 지역의 사례를 통해 제기됐었다. 최초 원본 작성이 백 의원 쪽이었던 것이 확인되면서, 선거법 위반 논란 문자는 구미시 전역에서 더 광범위하게 유포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최초 작성된 문자가 문자대량발송시스템을 통해 발송된 사실도 확인됐다. 그에 따른 선거법 위반 논란도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황교안 대표 구미보 방문 동원 문자 의혹 기사가 나간 후 제보받은 백승주 의원 밴드에 올라온 동일한 형식의 문자. <주간경향>은 앞서 ‘꼬리를 무는 의혹, ‘황교안 구미보 이·통장 동원 문자’ 기사를 통해 이·통장들이 보낸 문자의 ‘원본’을 자유한국당 구미을 지역보좌관이 보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해당 지역보좌관은 “언제 처음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황교안 대표 구미 방문(5월 13일) 3~4일 전부터 보낸 문자이며, 문구는 ‘우리’가 만들었지만 누가 만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기사가 나간 후, 또 5월 9일자로 된 다른 ‘동원 문자’를 제보받았다. 행사 4일 전이다. 앞서 입수한 5월 10일, 12일, 13일 문자와 동일하게 ‘휴대폰에서는 입력이 어려운’ 특수문자를 똑같이 썼다. 이 문자는 백승주 의원 밴드에 올라온 글로, 아래엔 백승주 의원의 지역사무실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지역사무실 관계자에게 문자 작성 경위를 문의했다. -밴드에 문자는 누가 등록했나. “우리가 올리지 않았다. 서울 의원사무실에서 올린 것이다. 밴드 관리자가 서울에 따로 있다.” -아래에 지역사무실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데. “서울에서 그것도 써서 올린 것이다. 문자 보내는 사이트를 우리와 (서울이) 같이 쓴다. 서울에서 책임당원들에게 문자를 보낸 것으로 안다. 의원실로 연락해보라.” 백승주 의원실로 연락했다. 소셜미디어(SNS)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의원실 김모 비서관은 자신이 해당 문자를 작성해 보냈다고 했다. -밴드에 지역사무실 번호를 넣어 올린 글도 김 비서관이 쓴 것인가. “(검토한 뒤) 5월 9일자 올라간 것도 내가 쓴 글이 맞다. 직접 작성해서 올린 것이다.” -휴대폰으로 입력할 수 없는 특수문자가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문자 내용이 이·통장이 쓸 수 없다는 의혹이 나왔었다. “휴대폰이 아니라 PC로 써서 ‘뿌리오’라는 문자발송시스템으로 책임당원들에게 단문으로 문자를 보냈다. 이·통장 발송 경위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기자가 입수한 이전 동원 문자들은 전부 자유한국당 ‘비당원’들로부터 받은 것이다. 결국 정리해보면 구미갑 백승주 의원실에서 5월 9일 이전 작성해 만든 황교안 대표 구미보 방문 문자가 구미을 지역 이·통장을 비롯한 비당원들에게 ‘알 수 없는 경위로’ 유포된 것이다. 검찰에 동원 문자 의혹을 고발한 민주당 측 관계자는 “실제 우리가 제보받은 내용에 따르면 해당 동원 문자가 수만 건 뿌려졌고, 다양한 형태로 뿌려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진실을 밝히려면 문자를 작성한 PC, 대량발송메일시스템 서버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6월 5일 기자와 통화에서 “수사당국의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섣불리 선거법 위반 여부를 예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 꼬리를 무는 의혹 ‘황교안 구미보 이·통장 동원 문자’(2019. 05. 24 16:51)
- 2019. 05. 24 16:51 정치
- ㆍ[단독]장석춘 의원 지역보좌관도 동일한 형식 문자 발송… 보좌관 “이·통장에게 보낸 적 없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구미보 방문에 앞서 전송된 이·통장 동원 문자 의혹과 관련, 지역 의원보좌관이 같은 형식의 문자를 만들어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5월 13일, 경북 구미시 선산읍 구미보 ‘민생투어’에 나선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일행이 ‘4대강 보 철거반대’ 플래카드를 들고 구미보 위를 행진하고 있다. / 연합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구미보 방문을 앞두고, 구미시 이·통장연합회 조모 회장이 이·통장들에게 전날 ‘단합된 모습으로 현수막을 준비하고 많은 인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 협조를 구한다’는 문자를 발송한 사실이 드러났다. (…) 더욱 이상한 사실은 문자 발송 경위와 문자 내용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문자 내용상 60대 중반 고령의 노인으로 보이는 연합회장이 휴대폰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특수문자에 장문의 안내문을 작성해 의심의 여지가 있다. 그 작성의 배후는 누구이며 어디까지 관여되어 있는지 조사가 필요하다.” 5월 14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의 논평이다. 전날 황교안 대표는 경북 구미의 박정희 생가와 구미보를 방문해 ‘4대강 보 철거 반대’ 집회에 참여하는 등 ‘민생투어’ 행사를 가졌다. 의혹은 이틀 전 구미지역 이·통장연합회 대표가 이·통장들을 대상으로 동원 문자를 보내면서 불거졌다. 민주당 중앙당과 지역 도당은 정당행사에 관조직을 동원하는 것은 공직선거법 86조 공무원 등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금지 조항에 대한 정면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법 위반의 대가도 무겁다. 같은 법 255조에 따르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6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사안은 의혹 제기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동원 문자 “‘제3의 인물’ 윤모 총무가 발송” 구미시 총무과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실제 문자 발송자는 조모 이·통장연합회장이 아니라 연합회 사무국장이 회장 명의로 발송한 것이었다. 그러나 기자가 제보받은 문자를 보면 실제 발송자는 따로 있었다. 조씨가 동시에 회장을 맡고 있는 선산읍 이장협의회 윤모 총무였다. 윤모 총무는 선산읍 원2리 이장이다. 구미시 조사에서 조 회장은 5월 11일 오전 8시쯤 해당 문자를 발송한 뒤 “문제가 된다”는 지적을 받고 당일 오후 문자 발송을 취소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장협의회 윤씨가 조 회장 명의로 발송한 문자를 보면 5월 13일 오전 6시47분 발송한 것이다. 황교안 대표의 구미 방문 당일이다. 문자에는 ‘우리 이장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로 우리 지역 의원님들의 입장을 한 번 세워줍시다’라는 말이 덧붙여 있었다. 민주당 경북도당 측은 “윤씨도 실제 작성자가 아니라 특정 인물이나 조직이 명의를 도용해 대량발송시스템으로 발송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조 회장도 모르게 명의 도용이 있었다면 정보통신망법·전기통신사업법도 위반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실은 무엇일까. 황 대표의 구미보 방문 일주일 뒤인 지난 5월 20일 구미를 찾았다. 조 회장과 윤 총무는 기자를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 모내기철이라 바쁘다는 이유였다. 두 사람 모두 전화로 취재했다. 다음은 윤씨 집 앞에서 전화로 나눈 일문일답. -조 회장 명의로 된 문자는 윤 총무 휴대폰으로 발송됐다. 이유가 뭔가. “나는 이장협의회 총무다. 총무가 회장을 대리해 써서 보낼 수 있는 것 아닌가.” -몇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나. “선산읍 이장협 소속 이장 26명에게 보냈다.” -보낸 문구를 보면 휴대폰에서 입력할 수 없는 특수문자가 삽입되어 있다. 실제 보냈다면 어떻게 특수문자를 입력할 수 있었는지 설명해달라. “60대 중반 노인 어쩌고 하면서 비하하던데 나도 대학 다 나온 사람이다. 특수문자 입력방법을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는가.” -휴대폰으로 특수문자 입력이 불가능해 대량발송시스템 같은 것을 사용한 것 아닌가. 아니면 최소한 그렇게 받은 문자를 가져다 아래 내용만 입력한 것 아닌가. “내가 직접 쓴 거 맞다. 취조하는 것처럼 들린다. 기분 나쁘다. 더 이상 답하지 않겠다.” 역시 이날 통화에서 조 회장은 “문자는 자신의 지시로 보낸 것”이라고 답했다. -이·통장들에게 그런 문자를 보낸 것이 선거법상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이라는 지적이 있다. “무슨 선거냐. 지난 1월과 2월 구미보에서 물을 빼 농사를 짓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중앙에서 유력한 사람이 방문한다고 하니, 우리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한다고 해도 같은 문자를 보냈을 것이다.” -내용을 본인이 쓴 것은 맞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보내라고 해서 보낸 거 아니겠느냐. 지금은 모내기철이라 바쁘다. 문자는 내 이름으로 보냈지만 나도 그 행사에 참여하진 않았다.” 원본은 자유한국당 지역 당협이 작성 문자의 출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제3의 동원 문자를 확보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구미 방문’이라는 제목 옆에 별표(★)를 붙이거나 일시·장소 표시 옆에 손가락 표시(☞) 등 특수문자를 쓴 것은 동일했다. 그런데 발신일은 5월 12일 오전 10시42분이다. 지금까지 논란 과정에 등장하지 않았던 문자다. 발신인 휴대폰 번호의 소유주를 확인해봤다. 구미 지역구 의원인 장석춘 의원의 지역보좌관이었다. 지역보좌관 ㄱ씨의 말이다. “그 문자는 우리가 만들어 당협에서 당직자들, 시·도의원들에게 보내는 문자였다. 논란이 된 이·통장에게 보냈던 문자와는 무관하다.” -이·통장에게 보낸 문자 발송일은 11일이었다. 동원 논란 이후 불거진 윤씨 문자는 13일이었고, ㄱ보좌관의 휴대폰으로 발송된 문자는 12일이다. 뒤에 덧붙여 있는 내용은 조금씩 다르되, 논란이 되었던 특수문자를 사용한 앞부분은 같다. “언제 처음 보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당원이나 당직자들에게 보낸 문자다. 행사 3~4일 전에 1차로 보냈고, 그 후 2차, 3차로도 보냈다. 우리도 당직자들에게 인원 동원, 행사 참여를 독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문구는 누가 만들었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협에 저와 여직원을 포함해 3명 정도가 근무한다. 내가 여비서에게 부탁했을 수도 있다. 문구는 당협 사무실 PC로 만들었다.” -논란이 되었던 이·통장 동원 문자는 당에서 만든 그 문구를 복사해 보낸 것이 아닌가. “정리하자면 우리당 당원이나 당직자들에게 문자를 발송한 것이 맞고, 이·통장에게 문자를 보낸 적은 없다.” “황교안 구미시 방문 안내 문자를 당협 PC를 써서 만들었다”는 장석춘 의원 지역보좌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앞서 “자신이 직접 특수문자를 입력해 만들었다”는 윤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취재과정에서 지난 5월 2일 자유한국당이 대거 참여해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4대강 보 해체 저지 1차 범국민투쟁대회’ 참가 독려 문자도 확보했다. 문자 발송일은 4월 29일. 역시 윤씨가 조 회장 명의로 이장들에게 보낸 것이었다. “그 사람들이 왜 그게 문제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 여기는 자유한국당 왕국이었기 때문이다. 통장이나 이장협의회와 같은 공조직을 정당 행사에 동원하면 안 된다는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적어도 여기에서는 통하지 않는 상식이었으니까.” 구미농민회 김창섭 회장의 말이다. 그나마 이번에 문제가 제기된 것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구미·선산지역 선거역사상 최초로’ 민주당 시장이 당선됐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공공연하게 이뤄지던 말단 공조직 동원이 문제가 된 것이다. 5월 14일 검찰에 이 사건을 고발한 민주당 경북도당은 5월 23일 참고인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말 4대강 보 서울 행사 동원 문자 등을 추가로 물어보기 위해 윤씨에게 연락을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 [인생도처유상수]캘리그래피 이시규 교수-문자의 세계로 오세요, 힐링이 됩니다(2017. 06. 12 18:11)
- 2017. 06. 12 18:11 사회
- 이 교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캘리그래피를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마음속 잡념이 있을 때 붓을 들어 마음에 드는 글귀를 써보라. 상념은 사라지고 기쁨의 한 자락을 맛볼 수 있다”고 권한다. 글씨가 새로운 옷을 입은 채 다가오고 있다. 소위 캘리그래피가 유행하고 있다. 술병이나 화장품 포장, 책표지와 광고판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글씨들이 선보이고 있다. 캘리그래피 전문업체도 늘고 있고, 디자인 업체에서는 전통 서체보다 캘리그래피에 더 주목해서 상표와 메시지를 표현하고 있다. 글씨만 40년 넘게 써온 목정 이시규 교수(세한대)도 캘리그래피를 오랫동안 써온 이다. “캘리그래피라고 하지만 근본은 서예에서 출발한다. 캘리는 아름답다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이고, 그래피도 역시 글씨라는 말이다. 그 합성어인 캘리그래피는 말 그대로 서양식 서예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다만 캘리그래피는 전통 서법에서 벗어나 자유로움과 변화를 강조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거기에 미술적 아름다움과 감성을 추구하는 것이 서예와 가장 다른 점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서체 디자인을 중시하는 조류를 반영해서 손글씨가 새로운 영역을 열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예는 무엇보다 써야 할 글에 집중한다. 그 내용을 곱씹고 정신적인 이해를 거쳐 어떻게 표현할까를 고민한다. 글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바탕으로 전통과 정체성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있고, 그 범주 내에서 개인의 표현이 가능한 것이 전통식 서예의 기법이다. 이시규 교수는 “캘리그래피는 우선 감성을 중시한다. 글을 떠올렸을 때 마음에 일어나는 감성과 감각을 그림처럼 표현해 내는 것이다. 감각적 자극을 좇는 요즘 문화와 맞닿아 있다”는 설명을 더해 우선 배우기가 쉽다고 강조한다. 서예를 배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 공들인 연습과 숙련이 필요하지만 캘리그래피는 쉽게 입문할 수 있다는 장점을 들었다. -imgtbl_start_1--> 붓을 세워야 마음과 글씨가 제대로 선다. 국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0년 정도 그는 국내에서 캘리그래피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10여년 정도 됐다고 추정했다. “그전에도 캘리그래피는 있었다. 인쇄 디자인 분야에서 도안사들이 그리던 그림글씨들이 캘리그래피의 원조다. 영화 타이틀이나 상표 등 한정된 부분에서 쓰였기 때문에 대중에게 친숙하지 못했을 뿐이다”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서예가 특정한 계층의 관심사였다면, 예쁜 손글씨로 광고판과 메뉴판 등을 장식하는 POP는 캘리그래피보다 앞서 유행했던 손글씨 쓰기 문화였다. 글씨는 콘텐츠를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므로 형태를 달리해서 반복적으로 생명력을 연장해 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캘리그래피는 한 10년 가까이 폭을 넓히면서 대중화됐다. 하지만 서서히 한계도 오고 있다. 너무나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싫증도 쉽게 나기 때문이다. 미인도 처음 볼 때는 혹하지만 자꾸 보면 싫증이 나는 것과 같다. 깊이가 없으면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캘리그래피의 유행에는 국내 서예계의 현실이 반영됐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 국내 대학에 설치되기 시작했던 서예과는 지금 거의 다 폐과되고 경기대학교 한 곳만 남았다. 인문학 열풍이 불어도 그 하나의 뿌리를 이루는 전통문화가 생존할 길은 없는 셈이다. “먹고 살 길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오지 않는다. 대학교육도 취업교육 위주로 성과를 강조하는 풍토라서 문화나 예술분야가 살아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역시 재직하는 세한대학교에서 서예과가 없어졌다. 이제는 폐과 전에 입학한 3·4학년과 대학원 과정만 남았다. 그 앞길이 쉽지 않아 보인다. 서예를 배운 학생들이 캘리그래피 분야에 진출한 점도 유행의 원인이다. 국내 서예의 쇠퇴에는 교육과정도 한몫을 했다. 초·중·고 과정에서 서예시간이 빠지고 미술시간에서 곁가지로 다루게 되면서 학교에서 글씨쓰기를 배우는 일이 사라졌다. 사범대학에서도 서예과정은 사라졌다. 가르칠 사람도 배울 학생도 없으니 마른 우물이 되고 만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학생들은 긴 시간 집중하지 못한다. 대략 10분 정도가 한계인데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준비와 마무리 시간이 길다. 그러니 현장교육에서 어려움이 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입시위주 교육에서 정신성을 강조하는 서예는 걸림돌이 되기 십상이다. 서체와 서법에 따라 다양한 붓이 필요하다.(왼쪽) 캘리그래피도 근본을 갖춰야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오른쪽) 그는 서예문화 종주국인 중국의 예를 들어 교육현장에서 글씨쓰기 교육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강조했다. “시진핑 주석이 중국 초등학교 3학년부터 서예교육을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현장 교사들의 반발로 벽에 부딪혀버렸다.” 10분을 가르치기 위해 30분 이상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오늘의 교육과정에서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교양을 위해 캘리그래피 교육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 이시규 교수의 주장이다. 국내 각 단체의 공모전을 통해 배출된 서예 관련 초대작가의 수는 대략 1만명 이상. 그러나 그 대부분은 계속해서 글씨를 쓰지 않고 있다. “명예를 얻으면 그 다음부터 붓을 놓는다. 그러니 발전 없이 정체된다. 젊은층은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캘리그래피를 통해 문자의 세계로 들어오지만 역시 쉽게 한계를 만나 붓을 놓는 게 현실이다.” 한 분야에서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서는 벽을 뚫고 산맥을 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결국 그가 내다보는 캘리그래피의 앞날 또한 밝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걷지 않는 어려운 길도 누군가는 걷고 새로운 길을 만든다. 캘리그래피 분야 역시 그래야 한다는 것이 그의 희망이다. 국내 서예의 쇠퇴, 교육에서도 빠져 그는 “캘리그래피가 전통 서예와 기법에서 다른 점은 붓의 사용에 있다. 글씨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얇은 붓을 써서 그림 그리듯이 문자를 표현한다. 서예는 붓을 세워 쓰는 것이 기본이고, 캘리그래피는 붓을 세우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 가장 기본은 붓을 세우는 것인데, 그림은 붓을 세우기보다 눕혀 칠을 하므로 글씨보다 그림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전통은 고답주의가 있어 과거로부터 이어진 것을 지키려 한다. 유행은 시류에 따라 변화와 자유로움을 강조한다. 그것이 서예와 캘리그래피의 또 다른 차이점이다. 캘리그래피의 장점은 다른 예술분야와 접목하기가 쉽다는 점이다. 음악·무용 등과 함께 퍼포먼스를 펼치는 데도 캘리그래피의 자유로움과 창의성이 활력이 된다. 이시규 교수는 “싫증을 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캘리그래피는 그런 점에서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며 정체성을 지키며 자유롭게 도전하고 파격을 시도하는 것이 예술의 생명이라고 말한다. 그는 캘리그래피뿐 아니라 문자로 된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이시규 교수는 벼룻돌로 으뜸을 삼는 보령석의 원산지 보령 출신이다. 그의 부친은 벼루 제작의 장인이었다. 어려서부터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이 묵향과 문자의 세계였다. “근 50년 가까이 글씨를 썼다. 글씨를 다루는 예술분야는 서예뿐이 아니다. 전각, 문인화, 캘리그래피 등 문자로 정신과 예술을 표현하는 모든 길을 걷게 됐다”고 말한다. 글씨와 관련된 것은 무엇이건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서예에 새로운 문화를 접목한 캘리그래피. 좋은 말만 쓰니 마음도 편안해져 이시규 교수는 캘리그래피와 더불어 사람들이 관심 가질 만한 부분으로 일본의 에테카미(繪手紙)를 꼽았다. 그림과 글씨로 장식하는 그림엽서는 일본 전통문화 중 한 가지다. 아기자기한 멋과 조형적인 글씨체를 담을 수 있어 눈길을 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엽서문화가 없는 국내에서는 그 또한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유행하는 책 베껴쓰기도 문자의 세계로 들어가는 좋은 문이라고 권한다. 우선 글씨쓰기에 익숙해지고 재미를 들이면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베껴 쓰기와 캘리그래피, 서예에 이르기까지 힐링문화의 대표적인 수단이 된다고 설명했다. “문화가 되려면 우선 대중의 관심이 있어야 한다. 글씨쓰기는 문장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고도의 정신성을 요구한다. 요즘의 풍토에서 문화의 뿌리를 내리기에 적절치 않다”며 캘리그래피와 같은 대안이 계속 생겨야 그나마 글씨쓰기의 맥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서실에서 먹을 갈며 준비하던 이희자씨는 서예나 캘리그래피를 가리지 않고 글씨를 써보면 현실과 연결된 정신의 세계에 들어설 수 있다고 강조한다. “먹이 벼루에 갈리는 소리에서 시간이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붓이 지나갈 때마다 가을바람에 낙엽 쓸리는 소리가 난다. 마음속 상념이 한순간에 스러지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캘리그래피로 나쁜 말이나 욕을 쓰지 않으니 항상 좋은 말만을 배우고 쓸 수 있어 마음을 새롭게 하는 데는 그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문구점에는 캘리그래피용 붓펜과 펜 등이 쏟아져 나온다. 그만큼 대중의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지루하게 먹을 갈거나 손에 묻히지 않아도 연필처럼 쉽게 쓸 수 있는 도구들은 쉽게 캘리그래피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이시규 교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캘리그래피를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마음속 잡념이 있을 때 붓을 들어 마음에 드는 글귀를 써보라. 상념은 사라지고 기쁨의 한 자락을 맛볼 수 있다”고 권한다. 경험해보고 문을 들어서야 더 넓고 깊은 세계를 바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다가 한계에 부딪히면 포기하는 사람도 나오겠지만 글씨의 기본으로 돌아와 더 배우려는 이들도 나올 것을 기대했다. 문화는 어떤 방식이건 현실에 맞는 옷을 입을 것이고, 형태를 바꿔 존속해갈 것이다. 캘리그래피와 서예 또한 시류에 맞는 옷을 바꿀 뿐이라 믿는다. 그가 요즘 하는 일은 가을에 열기로 기약한 네 번째 개인전 준비다. “사람을 만나 즐겁게 놀자고 글씨를 쓰고 가르치며 예술을 한다. 그래야 마음과 세상에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닌가. 인생사의 목표를 평화에 두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모두 그렇게 되길 바란다”며 웃는다. 캘리그래피도 전통에 기반을 두면 어떤 모습을 보일 수 있는지 선보이겠다고 했다. 그는 돈 안 되는 일이지만 꼭 해야 한다면 앞서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비를 털어 예술잡지 를 100호째 발간하고 있고, 13년 전부터 평화미술협회를 세워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협회에서는 평화예술제와 서예·문인화 대전도 계속 열고 있다. 그에겐 세상 예술가들이 평화롭게 놀 수 있는 공간 하나는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다. “저절로 잘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기본을 배우고 계속 해야만 자신의 길이 열린다. 붓글씨의 근본은 붓 세우는 법을 배우는 데서 시작한다. 사람도 곧게 서야 잘 걸어갈 수 있는 것처럼 뜻을 바로 세워서 자기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새로운 유행이 닥치고 세태가 변해도 근본을 알면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 것 없이는 남에게 끌려다니고, 생각하지 않으면 세상에 휩쓸려 떠밀려 가야 한다. 서예가 됐건 캘리그래피가 됐건 어떤 변화의 시간에도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이 그곳에 있다는 것이 목정 이시규 교수의 지론이다.
- 인생도처유상수
- [표지이야기]“우리 심정을 좀 헤아려주세요” SNS문자에 실낱 같은 희망(2014. 04. 21 16:19)
- 2014. 04. 21 16:19 사회
- ㆍ안산 단원고 강당의 학부모들과 학생들 “혹시나 연락올까” 휴대폰에 온신경 착 가라앉은 분위기. 날씨도 잔뜩 흐려졌다. 곧 비라도 쏟아질 분위기였다. “아까 남자애들 카톡 온 것이 맞네.” 학부모로 보이는 50대 여성의 말에 술렁였다. 4월 17일 오후 2시. 경기도 안산 단원고. 사건이 알려진 후 28시간이 경과했다. 4층 강당 밖에서는 통신사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무료전화·WiFi 시설을 설치하는 중이다. 강당 단상에는 TV 생중계 화면이 커다랗게 떠 있다. 신경 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강당에 모인 학부모와 학생들은 대부분 손에 휴대폰을 꼭 쥐고 있었다. 학생들로부터 50~60대 학부모까지 대부분 카카오스토리와 카톡 단체대화방을 띄워놓고 열심히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4월 17일 진도 앞바다 여객선 참사로 많은 실종·사망자가 발생한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교실. 학생들이 남겨놓은 소지품만 놓인 채 텅 비어 있다. | 정지윤 기자 MBC 로고가 찍힌 마이크를 든 여기자가 철제의자에 앉아 있는 학부모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춰 심경을 묻는 질문을 했다. 하지만 대답은 간헐적이다. 인터뷰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학생들의 경계심은 조금 더 커 보인다. 이곳 저곳에서 기자들이 다가와 물어보지만 시큰둥한 반응이다. 대부분 5~6명씩 그룹을 지어 모여 있다. 주로 강당 뒤편에 있다. 문자를 주고 받으며 현재 상황에 대해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취재경쟁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 “저건 다 거짓말이에요.” 50대 여성 학부모가 TV 생중계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애들 다 살아 있다고 하잖아요. 식당칸에 모여 있다고 하잖아요.” 옆에서 같이 앉았던 다른 중년 여성이 맞장구를 친다. “연락된 사람들이 어젯밤부터 그렇게 많은데, 한 줄도 나오지 않아요. 다리를 다쳐 움직일 수 없다, 옆에 시체가 있어 무섭다는 안에 있는 아이의 메시지도 있었는데요.” 하지만 이 학부모가 내민 ‘증거’는 기자가 단원고를 방문하기 전에 확인한, 이미 김포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만들어 보냈다는 메시지였다. 새 ‘정보’의 주도권은 아무래도 휴대폰 조작에 익숙한 아이들이 쥐고 있었다. “자기네도 죽을 수 있으니 안 들어가는 것 아니냐.” 왼쪽 옆자리에 앉은 60대 할아버지가 TV 화면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손자가 아직 안에 있다고 했다. 아이의 부모는 전날 일찍 시측이 마련한 버스로 진도로 내려갔다. 구조작업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수시로 전화를 주고받지만 아직까지 아이가 구조되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이제 막 도착한 한 할머니가 통곡을 하자 삽시간에 할머니 주위로 15~20명 내외의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격앙된 반응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아니 사람을 왜 찍습니까.” “어머 웬일이야.” 그때 기자 오른쪽 옆에 앉아 문자를 확인하던 50대 여성 학부모가 작은 탄성을 질렀다. 2~3명의 학부모들이 모여들었다. 진도에 가 있는 한 학부모가 세월호 안에 살아 있는 학생과 통화하는 데 성공했는데, 그 학생이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 보내달라고 했는데, 방금 휴대폰 메시지로 명단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잠시 뒤, 배 안에서 작성되었다는 ‘명단’이 전달됐다. 명단을 보기 위해 3~4명의 기자가 달려왔다. “카메라 치워요, 치워! 지금 이러면 안 되잖아요.” 단원고등학교 졸업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20대 여성이 카메라 기자들의 통제를 시도했다. 조건은 이것이었다. 한 명씩 차례대로 찍을 것, 사람은 찍지 말고 휴대폰 액정에 떠 있는 명단만 찍을 것. 하지만 금세 통제는 무너졌다. 서로 찍으려는 기자들과 막는 학부모, 학생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뒤쪽에 있던 한 여학생이 울부짖었다. 간신히 버텨온 것이 무너진 아이들. 몸을 가누지 못하고 서로 기대 울고 있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명단을 받은 학부모 주변으로 스크럼을 짜는 학생들. 기자들은 분노 표출의 대상이 되었다. 험악한 욕설이 터져나왔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아직 배 안에 아이들이 있는 학부모나 친구들은 얼마나 심리가 불안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런 사태가 생기는 것 아닙니까.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머리가 희끗한 50대 교사가 나섰다. 학부모로 보이는 또다른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방송국 당신들도 양심이 있으면 애들이 여기서 애원하는 것이 보이지 않나.” 여학생들이 흐느꼈다. “앞으로 절대로 카메라는 못 들어오게 해. 현장에서 연락 들어오는 분들도 말하지 말고, 그냥 SNS에 올려요. 주변에 카메라 들고 있는 사람 다 적발해. 휴대폰으로 찍는 사람도. 분명히 경고했어. 이후 벌어지는 사태에 대한 책임은 카메라 찍는 사람들이 져야 합니다.” 기자들이 전원 퇴장했다. 강당 밖에서 양복을 입은 학부모들 3명이 모여 대책회의가 열렸다. “사실 이런 것을 보도해야 하지 않나요.” 앞서 구조상황을 비판하던 할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국민들이 알아야 하는 것이, 아이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이런 ‘증거’ 들인데, 막상 그런 증거들은 내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옆의 50대 남성 학부모가 거들었다. “애들이 아직 살아있는데 쉬쉬하고 있는 것이 문제 아닙니까.” “생존자 있다” 미확인 보도 번복 소동 “잠시 긴박한 상황이 연출되었는데요.” 기자들이 나간 뒤 한 학부모가 마이크를 잡았다. 속보로 “안산 단원고 강당에서 기자들 퇴장”이라는 기사가 뜨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피해자로서 우리 아이들의 부모·친지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감정이 상당히 예민해져 있는 상태예요. 그런데 기자들에게 이걸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기자들도 기자로서 사명감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논의를 했는데, 앞으로 인터뷰를 하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사전에 당사자 동의를 받고 그렇게 진행하려고 합니다. 부모님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예”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30여분이 지나고 기자들이 다시 들어왔다. 학부모 대책위 측이 준비한 패찰을 차고 있었다. 스크럼이 풀리고 다시 아까의 ‘명단’에 대해 물어봤다. 추가로 들어온 정보는 없다고 했다. 단원고 학생들이 제일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이날 오전 11시 22분에 작성되었다는 자신의 위치정보를 찍어 첨부한 한○○ 학생(여)의 ‘식당 옆 객실에 6명이 생존해 있다’는 페이스북 글이다. 하지만 실제 그 학생이 글을 작성했는지 여부는 불분명했다. 뒷자리에 앉은 학생들에게 문의하자 한 여학생이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페이스북 친구로 등록되어 있는 한양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여줬다. “노출이 되어 있지 않은 건 그걸 페이스북 메시지로 보내서예요.” 4월 18일, 한양의 메시지를 보도했던 한 인터넷 전문매체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어서 삭제한다”며 기사를 내렸다. 오후 4시 2층 학부모 대책위 사무실 앞. 소란이 있었다. 문을 발로 차던 중년 남자. 경찰이 출동했다. “왜 발로 찼느냐”는 질문에 그는 “교장보고 나오라고 했는데 나오지 않았다”고 답했다. 세월호 수학여행 간 자녀를 둔 학부모냐는 질문에 그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경찰에 끌려갔다. 대책위 사무실에서 나온 학교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학부모는 “학교 측으로서도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리도 잘못된 정보일 수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배 안에 있고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 아닙니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이날 저녁 8시.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아이들이 학교 농구장 스탠드에 모여들었다. 아이들의 손엔 각자가 친구와 동생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글을 적은 종이가 들려 있었다. 눈물을 훔치는 학생들. 실낱 같은 희망을 하늘이 외면하지 않기를 기원했다. 무심히도 하늘에선 보슬비만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 표지 이야기
- [시사2판4판]문자메시지 ‘하는 것처럼’(2012. 12. 04 14:10)
- 2012. 12. 04 14:10 정치
- 모검사 : 00아, 검사다. 개혁하는 것처럼 하자. 모총장 : 00아, 총장이다. 우리가 먼저 개혁하는 것처럼 하자. 모후보 : 00아, 후보다. 경제민주화하는 것처럼 하자. 모정당 : 00아, 정당이다. 뭔가 바꾸는 것처럼 하자. 모의원 : 00아, 의원이다. 지역구에서 열심히 선거운동하는 것처럼 하자. 모후보 : 00아, 후보다. 정치개혁하는 것처럼 하자. 검사의 문자메시지가 대선정국을 흔들었다. ‘개혁하는 것처럼 하자’는 모토는 대선정국에서도 유용하다. 그의 탁월한 식견에 감탄할 뿐이다. 대선캠프에서 그를 특별채용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 시사 2판4판
- [언더그라운드.넷]‘한글 세계문자올림픽 2연패’의 전말(2012. 10. 16 11:46)
- 2012. 10. 16 11:46 사회
- “세계문자올림픽서 한국 2연패” 한글날이던 10월 9일, 각 언론에 보도된 기사 제목이다.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2회 세계문자올림픽’에서 한글문자가 2009년에 이어 또다시 가장 우수한 문자로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한글의 우수성을 다시 한 번 만방에 떨친 쾌거 정도로 흐뭇한 일로 넘어가면 좋으련만,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누리꾼들은 의혹을 제기했다. 첫 번째 의혹. 세계문자올림픽이라고 하지만 한국을 제외하고 이 쾌거를 보도한 외신은 거의 없었다는 것. 두 번째 의혹은 이 올림픽을 개최한 주최측 웹사이트로부터 나왔다. 행사를 주최한 대회장이자 ‘세계문자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는 배순직 회장은 대회의 의의에 대해서 “한글이 1등으로 판정된다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한글의 우수성을 알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10월 1일부터 4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2회 세계문자올림픽 대회. 제2회 세계문자올림픽 공식사이트 의혹은 꼬리를 문다. 이 올림픽대회의 공식사이트는 .kr로 끝난다. 국제조직을 뜻하는 .org나 .net 페이지도 없다. 세계문자대회라고 하지만, 영어나 다른 언어로 된 대회 소개 페이지조차 없다. 한국 서울에서 열린 1회 대회와 관련한 과거 웹 기록도 의혹을 더했다. 1회 대회를 알리고 후원 또는 모금을 독려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목사 또는 선교사다. 심지어 한 목사는 이런 말까지 한다. “세계문자올림픽은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수한 한글을 가지고 전 세계로 나가 12만개의 한글학교를 세우고 선교의 도구로 사용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니까 결국 이 대회는 선교를 위한 것? 자자, 차근차근 밝혀보자. 우선 한글학회에 문의했다. 돌아온 공식답변은 이랬다. “세계문자올림픽과 한글학회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대회에 참석한 어떤 사람도 학회 회원이 아니다.” 대회 사무국장과 통화했다.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선교와 대회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일부 목사들이 후원을 위해서 선교를 말한 것뿐이다. 대회 참석자에는 힌두교 신자도 있고 무슬림도 있었다. 이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이날 한글의 우수성을 발표한 이상억 서울대 명예교수도 이렇게 증언한다. 그렇다면 대회의 공식성은? 이 교수의 말로 대신해 보자. “사실 나도 우려했던 부분인데,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배 회장의 신념이랄까, 진정성은 인정할 만합니다. 올림픽이라고 이름 붙이기 어려운 작은 규모라는 걸 알아요. 하지만 배 회장은 자신의 사비를 털어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그건 칭찬받아야 할 일 아니에요?” 목사나 선교사들의 후원금 이야기는 뭘까. 대회 사무국장은 “지난 1회 대회 때 교계에서 그렇게 후원한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실제로 후원 한 사람은 거의 없었고, 2회 대회에는 아예 없었다.” 정리하자면 2회 세계문자올림픽은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사재를 털어넣은 배순직 회장의 고귀한 희생을 바탕으로 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자. 그런데 ‘세계문자올림픽 2연패’라고 하기 전에 그 앞에 ‘배 회장배(盃)’ 정도의 수식어를 달았으면 누리꾼의 의혹은 덜하지 않았을까.
- 언더그라운드.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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