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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총 29 건 검색)

금리 피벗 빨라질까···미국 물가둔화에 시장 ‘들썩’(2024. 06. 17 06:00)
2024. 06. 17 06:00 경제
“G7 중 미국·일본 제외 기준금리 인하, 한국은 빠르면 4분기 가능” “일각선 선제 조치 주장, 환율·물가·가계부채 등 고차함수 풀어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지난 6월 12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뒤 연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 동결 방침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요 국가들이 금리를 내리면서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서고 있다. 남미 신흥국부터 유럽과 캐나다 등의 선진국도 기준금리 인하에 시동을 걸었다.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어서다. 세계 금리 방향의 키를 가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올해 4분기 전후로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끈적거리는 물가가 잡힐 것으로 예상되면서 피벗 확산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연준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하가 빠르면 4분기에 시작되거나, 물가 상황에 따라 내년 초에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 물가가 ‘파월의 입’ 보다 강했다 연준은 지난 6월 12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5.25∼5.50%로 동결했다. 한국(3.50%)보다 2.00%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연준 위원들은 향후 금리 수준을 예상한 점도표를 통해 올해 기준금리 인하 예상 횟수를 기존 3번에서 1번으로 줄였다. 시장은 회의에 앞서 발표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예상보다 낮게 나온 것에 주목했다. 이날 발표된 미국의 5월 CPI는 전년 동기 대비 3.3% 올라 4월(3.4%)보다 상승률이 낮아졌다. 연준이 중시하는 주거비·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서비스 물가를 나타내는 슈퍼코어 물가상승률도 전월 대비 0.04% 하락해 2021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연준이 서비스물가가 둔화해야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고 강조해온 만큼 피벗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달성했다.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으로 미국 주식시장은 사상 최고치로 마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연준이 이번 FOMC 회의에서 연내 1차례 금리 인하를 시사하면서도 2차례 인하 가능성도 열어놨다”고 평가했다. 시장금리로 연준의 기준금리를 전망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준의 9월 금리 인하 확률이 6월 11일 46.8%에서 12일 62.0%로 높아졌다. 연내 2회 내릴 확률도 절반을 넘어선 62%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빨리 둔화한다면 언제든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 시장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다만 시점이 언제인지에 대해선 답변을 피했다. 미국보다 앞서 기준금리를 올린 한국은행은 올해 4분기 이후에나 금리 인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여전히 피벗에 신중하다. 원·달러 환율이 1370원대를 맴도는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면 상방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 계속되는 이스라엘-이란 사태와 오는 11월 미국 대선,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의 약진 등으로 환율을 자극하는 변수가 대기 중이다. 고환율로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 인플레이션이 또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금리 인하를 단행한 유럽에서도 미국과의 금리 격차 확대로 유로화 가치가 절하돼 물가가 다시 오를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은이 금리 인하에 나서더라도 유럽 등의 상황을 봐가며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농수산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 수준이 높은 것도 고민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2월(3.1%)과 3월(3.1%) 3%대를 유지하다가 4월(2.9%) 석 달 만에 2%대로 내려왔다. 하지만 과일을 비롯한 농축수산물이 10.6%나 치솟는 등 2%대 안착을 확신할 수 없다. 주춤했던 가계대출도 다시 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5월 가계대출은 주택 거래 증가와 함께 6조원가량 불었다. 지난해 10월(6조7000억원)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량이다. 한은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2.5%로 올려잡으면서, 금리 인하의 명분을 제시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이런 불안 요소를 고려하면 내달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다시 현 수준(3.50%)에서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5월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6월 12일 한은 창립 74주년 기념식에서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현재의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물가 시기의 마지막 구간(라스트 마일)에서 성급히 금리를 낮췄다가 물가 안정기 진입 자체가 흔들릴 위험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이날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라는 아우구스투스 로마 황제의 원칙을 거론하며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마지막 구간에 접어든 지금, 상충관계를 고려한 섬세하고 균형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섣부른 통화 완화 기조로의 선회 이후 인플레이션이 재차 불안해져 다시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 감수해야 할 정책 비용은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왔던 주요국들은 최근 통화정책을 ‘긴축’에서 ‘완화’로 전환하고 있다. 경기가 더 악화하기 전 선제 금리 인하에 나선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6월 6일 기준금리를 연 4.50%에서 연 4.25%로 인하했다. 독일, 프랑스 등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20개국에 적용된다. 금리 인상을 시작한 2022년 7월 이후 1년 11개월 만의 방향 전환이다. 이로 인해 미국(기준금리 5.25∼5.50%)과 금리 차는 1.00∼1.25%포인트로 확대됐다. 유로존의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2년 연말 10%를 넘겼다가 지난해 10월부터 2%대에 머물면서 목표치인 2.0%에 근접했다. 유럽은 변동금리 비중이 높고, 가계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커 고금리에 따른 타격이 크다. 통화정책이 소비 심리에 미치는 시차를 고려할 때 먼저 금리 인하에 나서야 하반기 경기 반등을 기대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다만 ECB는 올해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모두 상향 조정해 추가 금리 인하까지는 다소 오래 걸릴 수 있음을 예고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금리 인하에 따른 통화 약세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지만 유로존은 더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전날에는 캐나다 중앙은행인 캐나다은행이 기준금리를 기존 5.00%에서 4.75%로 인하했다. 주요 7개국(G7) 중 캐나다가 처음이다. 앞서 스위스와 스웨덴도 각각 지난 3월과 5월에 금리를 내렸다. 금리를 내리면 자본이 빠져나갈 위험이 큰 멕시코 등의 신흥국도 저성장 탈피를 위해 공격적 금리 인하에 나섰다. 영국은 올해 7월 총선이 끝난 후 금리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국도 올해 2월 인민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 격인 대출우대금리(LPR)를 연 4.20%에서 3.95%로 0.25%포인트 내렸다.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일본은 적절한 시기를 재고 있다. ■KDI 금리인하 군불, 내수 활성화는 미지수 일각에선 한국도 선제 금리 인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내수 경기가 악화하는 가운데 자영업자와 중·소상공인의 폐업이 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군불을 때고 있다. KDI는 지난 6월 11일 발표한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높은 수출 증가세에 따라 경기가 다소 개선되고 있으나 내수는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며 “가계와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이 지속 상승하는 등 고금리 기조가 내수 부진의 주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KDI는 지난 5월에도 보고서를 통해 선제적 금리 인하를 주장했다. 고금리가 장기화할 경우 경기회복 불씨가 꺼질 수 있어 미국 금리 인하와 관계없이 내려야 한다고 본다. 관가 안팎에서는 유럽 등에서 금리 피벗이 확산하자, KDI가 재정 여력이 부족한 기획재정부를 대신해 금리 인하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금리 인하 시기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경기침체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금융 부실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 전 선제적으로 먼저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에 환율 상승 우려 속 섣부른 금리 인하가 내수 회복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맞선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등의 다른 국가에 비해 한국은 금리 인상 시기에 충분히 금리를 올리지 않아 (금리를 내리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며 “금리를 내린다고 해도 영끌해 집을 산 이들이 소비를 늘릴 가능성이 없어 실질적인 내수 진작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시장금리에 이미 한 차례 기준금리 인하(0.25%포인트) 기대가 반영돼 하반기 대출·예금 금리 하락 폭이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영끌족’과 자영업자 등 대출 부담이 큰 금융 소비자들이 연내에도 고금리 긴축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다. 최근 한 달 사이 ECB 기준금리 인하 기대 등으로 시장금리가 약세를 보이면서 주요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도 대체로 떨어졌다.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15)올라가는 온도, 치솟는 밥상 물가(2024. 04. 26 16:00)
2024. 04. 26 16:00 경제
미국 워싱턴 타이달 베이슨 호숫가에 벚꽃이 만개했다. /언스플래시 미국의 수도 워싱턴 중심에 있는 내셔널몰(National Mall)은 “미국의 앞뜰”이라고 불리는 공원이다. 길이 3㎞, 폭 483m에 달하는 거대한 직사각형 잔디광장으로, 중앙에는 워싱턴의 가장 높은 건축물인 워싱턴기념탑(169.3m)이 우뚝 서 있다. 그 동쪽에는 연방 의사당이, 서쪽에는 링컨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고 북쪽으로는 백악관과도 연결된다. 미국 수도의 한복판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이 광장에서는 역사적인 집회와 시위가 열리기도 한다. 1963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로 시작하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그 유명한 연설이 있었던 곳이 바로 이 광장이다. 워싱턴기념탑 남쪽의 인공호수 타이달 베이슨(Tidal Basin)은 포토맥강과 연결돼 있는데, 이 주변에는 벚나무가 줄지어 있다. 매년 이맘때쯤 이 호수 주변으로 국가 주관 화려한 벚꽃 축제가 열린다. 1912년 일본이 기증한 벚나무를 옮겨 심은 날을 기념하는 축제다. 미국 동북부의 봄을 알리는 이 축제는 연날리기, 폭죽, 가장행렬 등 다채로운 행사로도 유명하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약 150만 명의 관광객이 모여 계절의 변화와 흩날리는 벚꽃잎을 즐긴다. 화려한 벚꽃 사이에 볼품이 없어 유명해진 벚꽃이 있다. 타이달 베이슨호 남쪽 호숫가에 있는 이 벚꽃은 나무속은 비어 있고, 줄기 몇 가지만 남은 못생긴 그루터기(Stump)지만, 지역주민들은 스텀피(Stumpy)라는 애칭도 붙여주었다. 소금기가 있는 호숫물이 뭍으로 밀고 들어와 많은 벚나무가 견디지 못하고 죽었지만, 스텀피는 달랐다. 그리고 다른 화려한 벚꽃 사이에서 자신의 소박한 분홍색 꽃을 매년 만들어냈다. 스텀피의 끈질긴 생명력에 지역 시민들은 열광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고난을 이기고 꽃을 피울 수 있다는 희망을 전했다. 매년 벚꽃이 필 무렵 찾아가 아직 스텀피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며 같이 기뻐했다. 하지만 이제 스텀피를 더 보기 어렵다. 지구온난화로 바닷물 수위가 상승하면서 포토맥강과 연결된 타이달 베이슨호의 수위도 같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호수의 방조제가 지어진 이후 한 세기 동안 호수 수위가 30㎝ 넘게 솟아올랐다. 호수 주변의 제퍼슨기념관 등 중요한 문화유산에도 침수 위협이 생겼다. 이에 국립공원관리청은 호숫가에 가까운 벚나무들을 올여름이 오기 전 베어 내고, 방조제 개축을 결정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이 소식에 지역주민들은 스텀피의 마지막을 기억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진을 찍고, 손편지를 적으며 스텀피에게 이별을 고했다. 세계기상기구 지구 현황 보고서 스텀피처럼 지구온난화로 인한 자연의 변화는 이제 피할 수 없다. 그리고 변화의 정도가 빈번해지고, 강해진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22년 지구 대기 중의 주요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농도가 ‘기록적’인 수준을 보였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혁명 이전인 1750년쯤과 비교해 50% 높아졌다. 메탄과 아산화질소는 1750년 이전보다 각각 164%와 24% 증가했다. 구체적으로 이산화탄소 농도는 417.9ppm, 메탄 농도는 1923ppb, 아산화질소는 335.8ppb를 기록했다. WMO는 이 같은 온실가스 증가로 인해 지난해 전 지구 평균 지표면 온도는 1850~1900년 평균보다 1.45도 높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후 가장 따뜻한 해로 기록됐다고 밝혔다. 산업화 시기 대비 지구 기온 상승폭 1.5도는 ‘기후변화 마지노선’으로 불린다. 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 파리 기후협정에 따라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고자 노력한다’고 합의를 했다. 이제 기후 마지노선에 0.05도 차로 근접했다. 육지 못지않게 바다도 뜨거웠다. 해수면 온도와 해양열 역시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전 지구 평균 해수면 온도는 지난해 4월부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해양 열용량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이렇게 바다가 달궈지면서 남극과 북극의 해빙은 무서운 속도로 녹았다. 특히 남극의 해빙 면적은 지난해 2월 인공위성 관측이 시작된 이후 최소치를 기록했다. 남극과 북극 해빙이 사라지면서 지구 전체의 평균 해수면 상승 속도는 1990년대에 비해 2배 이상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1993~2002년의 지구 평균 해수면 상승 속도는 연평균 2.13㎜였고, 2003~2012년에는 연평균 3.33㎜, 2014~2023년에는 연평균 4.77㎜로 계속 증가 중이다. 2023년에는 산불 피해도 극심했다. 캐나다는 산불 피해 면적이 1490만㏊(헥타르)로, 평균 대비 무려 7배가 넘었다. 2023년 8월 하와이에서 발생한 산불은 100명 이상의 인명 피해와 56억달러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 사건으로, 지난 100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치명적인 산불로 기록됐다. 지구온난화에 따라붙는 가격표 지구온난화는 또한 주변에 ‘가격표’를 새로 붙인다. 지난해 9월 과학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은 기후위기가 가져온 경제적 손실을 밝힌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기후의 전 세계 비용’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의 저자는 2000년부터 2019년까지 폭염과 홍수 등 기후위기로 인해 연평균 1430억달러(약 200조원)의 피해 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계산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20년 동안 12억 명에 달했으며, 인명 피해에 따른 비용이 가장 큰 비중(63%)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극한기후 중 특히 폭풍(64%)으로 인한 피해가 가장 많은 기후 비용을 발생시켰으며, 폭염과 홍수·가뭄 피해에 따른 비용도 각각 16%, 10%였다고 덧붙였다. 지구온난화는 가깝게는 국내 장바구니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과의 생산량이 30% 이상 감소하며, 사과를 비롯한 신선식품 가격의 급등을 이끌었다. 사과 가격은 작년 동월 대비, 1월 56.8%, 2월 71% 올랐다. 기온 상승으로 국내에서 사과 재배가 가능한 면적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증가하는 온실가스로 인해 국내 사과 재배는 장기적으로 계속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초콜릿 한 조각의 여유도 부담스럽다. 최근 로부스타 커피의 선물가격은 1년 전보다 60% 넘게 오르며 역대 최고 기록을 썼다. 가격 폭등의 주원인은 주요 공급처인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량 감소 때문이다.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 선물가격도 1년 만에 3배가 급등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세계 코코아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서아프리카를 덮친 가뭄으로 생산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먼 나라부터 가까운 장바구니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곳곳마다 새로운 가격표를 붙인다. 안타깝게도 기후위기에 맞서 변할지, 안 변할지는 이제 우리에게 남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이미 기후 마지노선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이끌지, 아니면 기후위기의 피해와 희생을 (스텀피처럼) 그대로 맞으며 변화에 끌려갈지만 남았다. 어쩌면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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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경제 괴롭힌 물가, 올해는 과연 나아질까(2024. 01. 26 16:30)
2024. 01. 26 16:30 경제
지난해 상승률 3.6%…정부 “하반기 2%대 초반까지 떨어질 것” 지난 1월 23일 서울 서초구의 한 식당 메뉴판 /연합뉴스 지난해 서민들을 가장 힘들게 한 건 고물가였다. 치솟은 밥상물가와 공공요금은 서민 삶을 더욱 팍팍하게 했다. 정부는 올 하반기에 물가가 2%대 초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하지만 물가를 자극할 변수가 많다. 지난해 고물가 원인이었던 전쟁과 이상기후에 따른 국제 원자재 가격 불확실성, 농수산물 가격 불안, 공공요금 인상 등이 올해도 물가 불안을 키울 수 있다. 작년 물가, 얼마나 올랐나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6%였다. 2022년 5.1%에 비해 상승폭은 줄었으나 물가안정 목표치(2%)를 훨씬 웃돈다. 먹거리물가와 공공요금이 고물가를 주도했다. 대표 먹거리 지표인 가공식품 물가상승률은 6.8%로 전체(3.6%)의 1.9배, 외식 물가상승률은 6.0%로 1.7배를 기록했다. 가공식품 물가는 2년 연속 전체 물가상승률을 상회했다. 2022년(7.8%)을 제외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8.3%) 이후 14년 만에 가장 높았다. 외식 물가는 전년(7.7%)보다 낮아지긴 했으나 1994년(6.8%) 이후 약 30년 만에 가장 높았다. 외식의 세부 품목 중 하나인 구내식당 물가의 경우 6.9% 올라 관련 통계가 시작된 2001년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전기·가스·수도 물가는 전기료와 도시가스 등의 가격 인상으로 무려 20.0%나 올랐다. 먹거리 물가가 오르면 저소득층 비용 부담은 상대적으로 더 커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소득하위 20%(1분위) 가구의 평균 처분가능소득(전체 소득에서 이자·세금 등을 뺀 것으로 소비나 저축에 쓸 수 있는 돈)이 91만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0.6% 증가하는 데 그친 반면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상승률은 1분위 가구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의 각각 10.5배, 9.0배였다. 정부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 민생대책으로 추진했다. 28개 농식품에 대해서는 소위 ‘빵 서기관’, ‘라면 사무관’ 등과 같은 관리 전담자를 두는 물가안정책임관제가 이명박(MB) 정부 이후 부활했다. 고물가 현실을 반영한 말들도 물가 관련 보도에 자주 등장했다. 가격은 그대로 두거나 올리면서 제품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와 물가 상승인 ‘인플레이션’을 합친 ‘슈링크플레이션’, 원윳값이 우윳값을 밀어 올리고 연쇄적으로 빵·과자류 물가를 자극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밀크플레이션(밀크+인플레이션)’,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서 일반 물가도 상승시킨다는 뜻의 ‘애그플레이션’ 등이다. 이동훈 한국물가정보 선임연구원은 “작년 국제유가 상승 영향으로 제조와 유통 등 산업현장 전반적으로 비용 부담이 커진 데다 공공요금 인상, 기후 이상에 따른 작황 부진 등이 겹치면서 1년 내내 고물가가 지속됐다. 올해 설 차례상에 오를 품목의 비용을 조사한 결과만 봐도 밀가루와 식용유 등 일부 공산품을 제외한 대다수 품목에서 가격이 올랐다. 고물가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1월 24일 전문가격조사기관인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올해 차례상 비용(4인 가족 기준)은 전통시장 기준 28만1500원으로 역대 최고치다. 밀가루와 식용유의 경우 2022년에 국제곡물가격이 급등하자 지난해 정부가 식품 원료 7종에 대해 연말까지 0% 할당관세(수입 물품에 대해 기본 관세율보다 낮은 관세율을 적용하는 것)를 적용하고 원료 수입선을 다변화하면서 가격이 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월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 겸 물가관계 장관회의에 참석해 참석 장관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2%대 진입 전망, 합리적인가 정부는 올 하반기에 물가가 2%대에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월 21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상반기까지 3%대에 머물다 하반기에 가서야 2%대 초반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기획재정부는 앞서 1월 4일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올해 물가 상승세가 완만하게 둔화해 연간 2.6%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의 주요 물가안정 대책은 상반기에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공공요금을 동결하고, 채소·축산물·과일 등에 관세를 면제하거나 할당관세를 적용하는 내용이 골자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12월 20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에서 올해 연말로 갈수록 2% 부근에 근접할 것으로 봤다. 정부 진단대로 최근 물가 추이는 완만한 하향세를 보이는 중이다. 국내 물가는 2022년 7월 고점(6.3%)을 찍은 후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과 기저효과 등 영향으로 고물가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흐름이 낮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하반기 월별 물가상승률을 보면 9월 3.7%, 10월 3.8%, 11월 3.3%, 12월 3.2% 등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들의 물가 전망도 하향 쪽이 우세하다. 한은의 1월 24일 ‘1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1월 기대인플레이션은 전달보다 0.2%포인트 하락한 3.0%로, 2022년 3월(2.9%) 이후 최저치다. 기대인플레이션은 소비자들의 향후 1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을 나타낸다. 석유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올해 상반기 공공요금이 동결되고 먹거리 물가 상승폭이 다소 둔화한 영향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팀장은 “재정당국이 내수를 부양시키기 위해 올 상반기에 기존 계획보다 세출을 늘리면, 하반기엔 세출 규모가 상대적으로 감소해 물가를 자극할 만한 요소가 줄어들게 된다. 여기에 (지난해 고물가에 따른) 기저효과도 일부 반영되리라고 본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올 하반기에 무난하게 2%대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올해 물가 상방 압력 요인은 다만 대내외 변수가 많아 경계감을 풀긴 어려운 상황이다. 물가 상방 압력 변수로는 작황 부진에 따른 농수산물 가격 상승, 중동 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 리스크 확산, 총선 이후 또는 하반기 공공요금 인상 등이 있다. 한은에 따르면 11월 생산자물가는 1년 전과 비교해 1.2% 올랐다. 전년 동월 대비로 5개월 연속 상승세다. 딸기와 사과 등 농산물의 작황 부진과 수요 상승, 오징어 등의 어획량 감소 등의 영향 때문이다. 생산자물가는 통상 1~2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단계적으로 반영된다. 서울시 지하철 기본요금은 경기도와 인천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등 관계 기관과 협의를 거쳐 하반기에 150원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 300원 인상된 서울 시내버스 요금과 마찬가지로 지하철도 300원 인상 방안을 추진했으나, 서민 물가 상승 부담 등을 이유로 150원을 먼저 올리고 추후 나머지 150원을 다시 인상하기로 한 바 있다. 다음은 국제유가 불확실성 증폭 가능성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상반기 평균 배럴당 75달러, 하반기 평균 80.3달러로 연간 77.6달러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러시아 등 비회원 주요 산유국 협의체)의 감산이 올 들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홍해 교전으로 중동지역 리스크가 심화해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면 공급자 측 가격 상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연구원은 “주요 산유국의 감산 강화와 중동지역 리스크 등에 따라 배럴당 80달러 안팎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환율 역시 물가를 끌어올릴 변수다. 중동지역 확전 가능성, 중국 경기침체 심화 등의 리스크가 현실화하면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하면서 달러화 강세가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소비자물가 상승세를 키울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월 1일 발표한 ‘2024년 글로벌 트렌드’에서 “물가는 상당 기간 중간 수준(중물가)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며, 세계 수요가 반등할 경우 고물가 현상이 재현될 가능성도 상존한다”고 분석했다. 이부형 팀장은 “물가가 완만한 하향세를 보일 것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올해 물가를 자극할 변수가 적지 않다. 대외적으론 환율의 변동성 확대와 (우리와 동조성이 높은) 중국 경제의 회복 속도, 전쟁과 국제 분쟁 등을 꼽을 수 있다. 대내적으로는 하반기에 미 연준이 금리 인하에 나설 경우 우리도 (그에 따라 금리 인하에 나서면서) 원화량이 늘어 경기와 물가를 동시에 자극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 1월 18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우유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공급 측면에서 보면 중동지역 긴장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양상의 확대, 예멘 후티 반군 사태 등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고, 대내적으론 유류세와 공공요금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물가 상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변수들 때문에 물가 안정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1월 11일 기준금리 동결(연 3.50%)을 결정한 후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함으로써 물가 안정을 이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한다”면서 금통위원 의견이 아닌 사견을 전제로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기준금리 인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규철 실장은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가 2%대 초반을 유지하는 흐름을 보일 때 (물가가 안정권에 들었다는) 판단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4.0%로, 전년(4.1%)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먹거리 물가, 더 오를 일만 남았다(2023. 07. 28 11:06)
2023. 07. 28 11:06 경제
ㆍ폭염·추석 이어 국제 곡물가 급등 ‘악재 산재’…애그플레이션 우려 확산 지난 7월 19일 전북 익산시 망성면의 한 수박 재배시설이 장맛비로 불어난 흙탕물에 침수돼 훼손됐다. / 연합뉴스 먹거리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집중호우 여파로 농축산물 가격이 크게 올랐다. 휴가철, 추석 등 수요와 맞물려 가격은 더 오를 수 있다.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파기 등으로 국제 곡물 가격도 뛰고 있다. 시차를 두고 우리 장바구니 물가를 자극할 공산이 크다. 농산물 물가 상승이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는 ‘애그플레이션’ 우려도 나온다. 농축산품 가격, 얼마나 올랐나 집중호우로 채소류 중심의 농산물 가격이 급등했다. 지난 7월 26일 기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를 보면, 적상추 4㎏당 도매가격은 평균 7만3740원으로 한 달 전인 4주 전(1만9740원)보다 273.6% 급등했다. 같은 기간 시금치는 4㎏당 평균 1만8596원에서 5만2000만원으로 179.6%, 얼갈이배추는 4㎏당 평균 7512원에서 1만4060원으로 87.2% 급등했다. 애호박(117.2%)과 깻잎(112.9%)도 크게 올랐다. 공사가 발표한 7월 셋째 주(7월 17~22일) 주간동향에서도 채소류 도매가격은 급등한 것으로 확인된다. 무(1개) 평균 도매가격은 한 주 전 1092원에서 1409원으로 29.0% 올랐고, 양파(원/kg)는 1367원에서 1474원으로 7.8% 올랐다. 가락시장 주요 품목별 주간동향(7월 셋째 주)도 마찬가지다. 28개 품목 중 애호박, 백다다기오이, 청양고추, 대추방울토마토, 상추(포기찹), 양상추, 대파, 열무, 무, 배추, 복숭아(백도), 사과(부사), 감자(수미), 양파, 포도(캠벨얼리) 등 15개 품목이 한 주 전보다 가격이 올랐다. 바나나(수입), 당근, 밤고구마, 찰옥수수 등 8개 품목은 5% 안팎 수준에서 보합을 보였다. 자두(대석), 새송이버섯, 복숭아(천도), 양배추, 물오징어 등 5개 품목은 전주 대비 하락했다. 전체 물량으로 보면, 반입량은 전주 대비 24% 감소하고, 평균가격(2만4968원)은 전주(1만3805원) 대비 97% 상승했다. 동향 보고서는 7월 넷째 주에도 충청지역 비 피해, 경기지역 햇 물량 일조량 부족에 의한 생장 지연으로 반입량이 감소하며 시세가 전주 대비 강보합세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집중호우 피해 현장 방문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18일 충남 논산시 성동면 화정리 수박 재배 농가를 찾아 출하를 앞두고 수해를 입은 비닐하우스를 둘러보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호우로 인한 침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7월 26일 기준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사유시설 피해는 3940건(충북 1829, 충남 946, 전북 474, 경북 470 등), 공공시설 피해는 8416건(충북 3649, 경북 2080, 충남 1725, 세종 304, 전북 301 등)이다. 농작물 침수나 낙과 피해 규모는 서울 넓이(6만524ha)의 절반이 넘는 3만6252㏊(1㏊=1만㎡)다. 닭과 오리 등 폐사한 가축은 92만9000마리로 집계됐다. 돼지고기 가격도 뛸 조짐을 보인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이 공개한 7월 셋째 주 돼지고기 목살(100g)과 삼겹살(100g)의 유통업체 평균 판매가격이 각각 3704원, 3853원으로 2주 전에 비해 4.5%, 7.1% 상승했다. 장마가 물러간 뒤엔 폭염 피해가 우려된다. 한국물가정보 이동훈 선임연구원은 “이번 집중호우로 상추, 깻잎, 시금치 등과 같은 엽채류 채소가 큰 피해를 입었고 가격도 크게 뛰었다. 이젠 폭염이 기승을 부릴 텐데 집중호우 뒤에 따라오는 폭염으로 잎채소류 이파리가 타거나 녹아내리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해 출하량이 급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먹거리 수요가 커지는 휴가철과 9월 말을 전후해 가격은 더 오를 여지가 크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엔 8월 집중호우, 9월 초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태풍 힌남노 등으로 대규모 낙과 피해가 발생해 제수용 과일 출하량이 급감했다”며 “올해도 집중호우와 폭염 등으로 피해가 커지면 출하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휴가철과 추석 수요까지 겹치면 농축산물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곡물가 급등 등 악재 산적 집중호우와 폭염, 수요 증가 등이 농축산물 가격 변동성을 키우는 대내 요인이라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대표적인 대외 요인이다. 전쟁 이후 올해 들어 안정세를 보이던 국제 곡물 가격이 7월 17일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참여 중단 선언 이후 치솟는 분위기다. 흑해곡물협정은 튀르키예와 유엔의 중재로 지난해 7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맺은 협정이다. 전쟁 중에도 흑해를 통해 곡물과 비료를 수출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 3차례 연장됐지만, 러시아가 4번째 기한 연장을 앞두고 파기했다. 러시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흑해 연안의 우크라이나 항구도시 오데사를 공격해 세계식량안보 우려를 키우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대 곡물 생산국 중 한 곳이다. 흑해 항로가 막히면 우크라이나의 밀과 옥수수 등 주요 곡물 출하도 차질을 빚게 된다. 호우특보가 발효된 지난 7월 17일 전남 해남군 한 농경지 앞에서 마을 주민이 침수된 농경지를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러시아는 7월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다뉴브강의 항구도시인 오데사주 레니의 곡물창고들을 공격했다. 하루 뒤인 25일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선물시장에서 밀 가격은 부셸(곡물 중량 단위·1부셸=27.2㎏)당 7.7달러에 거래됐다. 지난 2월 21일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협정 파기 선언 당일인 7월 17일 밀 선물 가격은 부셸당 6.5달러였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해외곡물시장정보(7월 25일자)와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올레 키퍼 오데사 주지사는 7월 24일 우크라이나 방송에 출연해 “러시아는 우리 곡물 수출을 완전히 차단하고, 세계를 굶주리게 만들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곡물 가격은 더 오르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7월 25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피에르-올리비에르 고린차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흑해 곡물협정이 우크라이나로부터 충분한 곡물 공급을 보장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협정이 중단되면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흑해 곡물협정 중단으로 국제 곡물 가격이 10~15% 오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기후이상에 따른 작황 부진 여파로 주요 곡물 생산국들이 빗장을 걸어 잠그는 것도 곡물 가격 변동성을 키울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통신의 7월 21일 보도를 보면, 인도 상무부는 하루 전날 자국 전체 쌀 수출의 45% 정도를 차지하는 쌀(바스타미 품종이 아닌 흰쌀)의 수출을 즉시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쌀 최대 수출국 인도는 지난해 전체 쌀 수출량(2200만t)의 45%인 1000만t 정도를 전 세계에 수출했다. 국제 곡물 가격 급등은 사룟값 등 생산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만큼 축산농가 부담이 커지게 된다. 김종진 농촌경제연구원 FTA이행지원센터장은 “국제 곡물은 국내 수입업체가 선물 계약을 맺어 구매하기 때문에 가격 변동 폭은 대략 3~6개월의 시차를 두고 국내에 반영된다. 이런 구조에서 공동구매 방식으로 구매하는 사료업체는 원재료 가격 인상폭을 비교적 발 빠르게 반영해 시중에 판매한다. 국제 곡물 가격이 오르더라도 크게 손해를 보는 구조는 아니다. 하지만 축산농가는 사정이 다르다. 통상 축산농가 생산비 중 사룟값 비중이 50~60%를 차지한다. 이들이 소나 돼지를 팔 때 가격은 국제 곡물 가격 흐름과 무관하게 시장의 수급 사이클에 따라 형성된다. 사룟값이 올랐다고 해서 비싼 가격에 가축을 팔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란 의미다. 국제 곡물 가격이 오르면 생산비 부담이 늘면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집중호우로 인해 시금치와 상추, 오이 등의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오른 지난 7월 18일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에서 시민이 채소를 고르고 있다. / 연합뉴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적인 이상 기후 등으로 생산비 부담을 호소하는 축산농가는 우유 원유 가격 인상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농가의 생산비는 전년 대비 13.7% 상승했다. 전체 생산비 중 사룟값 비중이 59.5%였다. 생산비 등을 원유 가격에 즉각적으로 반영하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지난해 원윳값이 각각 55%, 37% 상승했다. 농식품부는 7월 25일 보도자료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적인 이상기후 등으로 사료 수급이 원활하지 못했다”며 “낙농가가 1년 이상 생산비 급등을 감내하다 보니 목장 경영을 포기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등 어려움이 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곡물과 설탕 등 국제 곡물 가격이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향후 빵과 라면, 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 가격도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매월 발표하는 설탕 가격 지수는 지난 6월 152.2로 집계됐다. 한 달 전(5월 157.2)에 비해 다소 낮아졌지만, 올해 1월 116.8에 비하면 30.3% 오른 상태다. 애그플레이션 우려 커지는 이유 정부는 최근까지도 국내 소비자 물가가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했다. 21개월 만에 2%대 물가를 회복했기 때문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7월 4일 ‘2023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브리핑’에서 “지난해 6.3%(7월)까지 상승하던 소비자 물가가 올해 6월 2.7%로 하락했다. 생활물가도 2.3%로 27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하면서 물가 상승세는 확연히 둔화하는 모습”이라며 “한국 경제가 지난 1년간 힘든 시기를 지나 ‘긴 터널의 끝’이 보이는 지점에 왔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이날 올해 소비자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3.5%에서 3.3%로 소폭 하향 조정하면서 “특별한 변수만 없다면 하반기 물가는 평균 2% 중후반대 수준에서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봤다. 앞서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6월 소비자 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2.7% 올랐다. 물가상승률이 2%대로 둔화한 것은 2021년 9월(2.4%) 이후 21개월 만이다. 석유류 가격이 하락한 영향이 컸고, 지난해 6월(6.0%) 큰 폭으로 치솟은 데 따른 기저효과도 작용했다. 국내외 기관의 전망은 그러나 기재부의 낙관적인 전망과 온도차를 보인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7월 13일 기준금리를 3.50%로 동결하면서 “물가상승률이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8월 이후 다시 3% 내외로 높아지는 등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금통위 통화정책 방향 회의 의결문을 보면 7월까지는 물가가 둔화 흐름을 이어가겠지만, 8월 이후 다시 높아져 연말까지 3% 내외에서 등락하면서 최종적으로 올해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5월 전망치(3.5%)에 부합할 것으로 봤다. 현대경제연구원도 7월 26일 ‘한국 경제의 다섯 가지 모나리자 모호성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물가수준을 나타내는 소비자물가지수는 2020년을 100으로 보았을 때, 전 품목이 평균적으로 10% 이상 상승해 있는 상황”이라며 “올 6월 물가상승률은 낮아졌으나 물가 수준 자체는 여전히 높다”고 평가했다. 지난 7월 20일 서울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시민이 할인 행사 중인 한우를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되레 전망치를 높였다. ADB는 7월 19일 ‘2023년 아시아 경제전망 보충’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종전보다 0.3%포인트 상향한 3.5%로 전망했다. 주목할 대목은 기재부의 하향 전망이 시점상 집중호우와 폭염,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참여 중단 선언과 같은 대내외 변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서 먹거리 물가를 포함해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는, 이른바 ‘애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정부도 다급해졌다. 7월 26일 추 부총리 주관으로 열린 ‘물가 관련 현안 간담회’에서는 집중호우로 인한 물가 상승과 향후 농축수산 품목의 물가 상승 압력을 줄이기 위해 7월 말부터 8월까지 최대 100억원을 투입해 농축산물 할인행사를 열기로 했다. 또 피해 농가에 대한 충분한 보상 방안을 마련해 8월 중 처리하고, 농작물 재해보험을 추정 보험금의 50% 내에서 선지급하기로 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과거 집중호우 이후 농축산물 수급 불안과 이에 따른 가격 상승이 전체 소비자 물가 상승을 주도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최근 농축산물 물가가 전체 소비자 물가 상승을 주도한 건 2020년 9월이다. 당시 물가상승률은 1.0%로, 1%대로 올라선 건 6개월 만이었다. 긴 장마와 집중호우, 태풍 등의 영향으로 농축수산물이 전년 동월 대비 13.5% 오른 영향이 컸다. 당시 농축수산물의 물가 상승 기여도는 전체 품목 가운데 가장 높았다. 주원 실장은 “(7월 초) 기재부 전망 당시와 비교해 하반기 물가 상방 압력은 확실히 커진 상황이다. 특히 곡물 가격 급등세와 국제유가 상승세, 기저효과 등까지 감안하면 3분기 중에 다시 3%대로 올라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물가 잡으려 업계 팔 비트는 정부(2023. 06. 30 11:25)
2023. 06. 30 11:25 경제
ㆍ과도한 시장 개입 우려…무늬만 ‘민간·시장 중심 경제’ 표방 지난 6월 27일 한 대형마트에 농심 신라면이 진열돼 있다. / 연합뉴스 라면, 과자, 빵 등 식품업계가 정부 압박에 못 이겨 판매가격을 일제히 인하했다. 인하폭이 크지 않아 ‘생색내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다른 한편에선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며 우려를 나타낸다. 민간·시장 중심 경제를 강조해온 현 정부 기조와도 배치된다. 기업의 팔을 비트는 방법이 전부여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은 통화정책이 물가 대응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고성 압박’에 일제히 가격 인하 라면 업계의 가격 인하 발표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권고’ 이후 9일 만에 나왔다. 추 부총리는 지난 6월 18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서 “지난해 9~10월에 (라면 판매 기업들이 가격을)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라면의 주원료인 밀 가격이 지금은 크게 내려갔으니, 거기에 맞춰 가격도 낮추라는 압박이다. 추 부총리는 정부의 시장 개입 비판을 의식한 발언도 이어갔다. 그는 “정부가 하나하나 원가를 조사하고 가격을 통제할 수는 없다. 이 문제는 소비자단체가 압력을 행사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국내 라면 업계 1위 농심이 지난 6월 27일 가장 먼저 인하 대열에 나섰다. 자사 대표상품인 신라면과 새우깡의 판매가격을 각각 4.5%, 6.9% 낮췄다. 소매점 기준 1000원짜리 신라면 한 봉지는 50원, 1500원인 새우깡은 100원 정도 내렸다. 삼양식품은 삼양라면 등 12개 제품 가격을 평균 4.7%, 오뚜기는 면류 15개 제품의 가격을 5%, 팔도도 11개 제품의 가격을 5.1% 각각 인하했다. 롯데웰푸드, 해태제과, SPC 등 제과·제빵업계도 주요 품목들의 판매가격을 5~10%까지 낮췄다. 라면은 지금의 고물가 흐름을 주도하는 주요 품목 중 하나다. 지난 5월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3%로, 둔화하는 추세다. 반면 가공식품(7.3%)과 외식(6.9%)은 전체 물가상승률의 두 배 이상이다. 그중에서도 라면은 1년 전보다 무려 13.1% 올랐다. 반면 국제 밀 가격은 지난해 정점을 찍은 후 꾸준히 하락세다.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전 세계 주요 생산국들의 작황 부진, 수급 불안 등 영향으로 5월 1t당 선물가격이 419달러까지 올랐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올해 6월엔 1t당 243달러까지 내려갔다. 지난해 5월의 58% 수준이다. 다만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5년에서 2019년의 1t당 160~180달러 수준에 비하면 여전히 높다. 또 다른 라면 원재료인 팜유(식용유)나 옥수수 역시 1년 전에 비해 20% 안팎 낮아진 상태다. 소비자단체는 식품업계의 인하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물가부담 완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6월 28일 성명에서 “정부의 압박과 사회적 여론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하는 생색내기식 가격 인하가 아닌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가격 인하를 결정해달라”고 했다. 농심을 예로 들면 지난해 9월엔 신라면 10.9%, 너구리 9.9% 등 라면 26개 품목을 인상했으면서 이번엔 너구리, 짜파게티 등은 제외하고 신라면만 4.5% 인하하는 데 그쳤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6월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정부 압박은 전방위적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6월 2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가능성을 더 열심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공정위도 라면 등 주요 식품 가격 추이를 들여다보고 있다. 농식품부는 6월 26일 7개 제분 업체와 간담회에서 가격 인하를 요청했다. 라면 이전엔 소주·맥주였다. 이때도 추 부총리가 나섰다. 추 부총리는 지난 2월 ‘소주 1병 6000원 시대가 열릴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자 “소주 등 국민이 정말 가까이 즐기는 그런 품목(의 가격 인상)에 대해서는 업계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기재부는 인상 요인을 집중 점검했고, 주무 관청인 국세청은 주류업체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어 압박 강도를 높였다. 하이트진로, 롯데칠성음료, 오비맥주 등 주류업계는 가격 인상 계획을 전면 보류했다. 실효성 없이 부작용 논란 우려도 정부는 라면값을 찍어 누르고 있지만 라면이 전체 소비자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2020년 기준·461개 품목)를 보면 1000을 기준으로 했을 때 라면은 2.7에 그친다. 전세(48.9), 휘발유(20.8), 전기요금(15.5) 등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라면을 포함해 과자와 빵의 원재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밀가루의 소비자물가 가중치는 0.1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정부가 라면을 타깃으로 삼은 가장 큰 이유는 대표 서민 식품이기 때문이다. 식품물가는 한 번 오르면 좀처럼 가격을 내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라면 업계가 이번에 가격을 내린 것도 2010년 이후 13년 만이며, 새우깡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라면값, 과잣값에서 50원, 100원 낮춘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물가하락을 체감하거나 가계지출 부담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부 당국은 (이번 조치가) 서민물가 안정화에 힘쓰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엔 충분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6월 19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 설명회에서 추 부총리의 가격 인하 발언에 대해 “어느 나라나 물가가 빠르게 오를 땐 생필품, 저소득층 관련 물가를 관리한다. 세계적으로 이번 물가 상승기에 기업 마진이 늘었는데, 기업들도 이제 원자잿값 떨어졌으니 그에 맞춰 고통을 분담해 달라는 정치적 말씀으로 해석한다”고 했다. 불가피한 시장 개입이라는 측면에도 불구하고, 특정 품목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물가 대응은 실효성 없이 부작용 논란만 키울 수 있다. 당장은 가격을 억눌러 안정된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제때 인상분을 반영하지 못하고 미루면 기업은 기업대로 힘들어지고 훗날 한꺼번에 가격 인상에 나섰을 땐 소비자가 더 큰 부담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지금의 정부 대응은 과거 이명박(MB) 정부 때와 여러모로 닮아 있다. MB 정부는 출범 첫해인 2008년 물가상승률이 4.7%에 이르자 물가 안정을 국가적 과제로 설정하고 대대적인 압박에 나섰다. MB 물가지수가 대표적이다. 예컨대 ‘품목별 책임관’제를 도입해 농림수산식품부 기획조정실장은 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배추·고추·돼지고기·쇠고기 등을 맡는 식으로 각 부처 1급 간부가 서민생활과 밀접한 52개 품목을 집중 관리했다. 공정위도 동원됐다. 조사대상 기업, 동원된 조사반원 숫자 등에서 공정위 창설 이후 최대 규모라는 평가를 받았다. 밀가루, 두유, 치즈, 김치 등 반찬류와 주요 생필품이 이들의 조사대상에 대거 포함됐다.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MB 물가 5년간 상승률이 일반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6배에 달했다. 당시 물가관리 실패는 유동성을 증가시킨 저금리 기조와 수입물가 상승을 부추긴 고환율 정책 등이 원인이었는데, 엉뚱한 생필품 관리만 나섰다는 지적을 받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즈음해 물가가 상승세를 탄 지난해 2월엔 기재부와 농식품부가 외식 물가를 잡겠다며 12개 외식 품목의 일부 프랜차이즈 업체 가격과 등락률을 매주 공개하는 외식가격 공표제를 도입했다가, 3개월 만에 폐지한 일도 있었다. 지난 2011년 4월 7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서울 양재동 농협 하나로클럽에서 제82차 국민경제대책회의를 마친 후 하나로클럽 매장을 방문해 물가를 점검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시장 개입보다는 통화정책으로 식품업계 가격 인하 압박은 민간과 시장 중심 경제를 강조해온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와도 배치된다. 추 부총리는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 말 3조1000억원 상당의 민생안정대책을 발표하면서 “정부가 물가를 직접 통제하던 시대는 지났다. 물가를 강제로 끌어내릴 방법이 없고 만약에 그렇게 하면 경제에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했다. 당시 민생안정의 주요 대책 내용도 7개 식품원료에 대한 관세를 0%로 적용하는 등 시장 개입이나 가격 통제보다는 원가 부담을 줄여줘 기업이 자율적으로 소비자 가격을 낮추도록 유도하는 방안이었다. 어윤종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쟁 제한적 상황에서 업계 담합으로 라면 가격이 오른 것인지, 아니면 원재료 가격 상승 등 불가피한 요인으로 가격이 오른 것인지는 구별해야 한다. 전자의 경우라면 정부가 당연히 행정적 조치로 개입하는 것이 맞고 후자라면 정부의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장의 자원배분 기능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는 당연히 적극 관리해야 하는 게 맞지만, 정부가 라면과 같은 상당히 시장에 노출돼 있는 개별 품목의 가격 결정에 직접 개입하면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도움이 안 된다. 기업은 가격 인하에 따른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려 할 텐데, 이렇게 되면 제품의 양, 질 등에서 변화가 불가피해진다. 물가 안정이 지향점이라 한다면 근본적으로는 (금리 인상과 같은) 통화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맥주·탁주, 물가연동제 폐지해도 되나(2023. 03. 24 12:51)
2023. 03. 24 12:51 경제
ㆍ기재부, 세제 개편 검토…소주·와인과 과세 형평성 논란 정부가 ‘물가가 오르면 맥주와 탁주(막걸리) 가격도 따라 오르는’ 현행 주세 체계를 손질한다. 업계가 세금 인상을 핑계로 판매가격을 큰 폭으로 올리면서 고물가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매년 물가 상승분을 반영하는 ‘물가연동제’를 폐지하는 방안까지 거론된다. 연구용역을 맡기고 여론도 들어보고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나, 벌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물가 변동과 무관한 소주 등 주류와의 과세 형평성 문제가 커질 수도 있다. 세율 조정으로 물가를 잡겠다는 방안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사진 / 이준헌 기자 종량세 물가연동제 개편, 왜 “맥주·탁주에 종량세를 도입하면서 물가 연동으로 (과세)하는 부분에 관해서는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월 9일 기재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현재의 맥주·탁주 세제를 개편하겠다면서 한 말이다. 종량세는 술의 용량을 기준으로 주종별 세율을 곱해 세금을 매기는 제도다. 가격이 달라도 종류와 양이 같다면 같은 세금을 부과한다. 종량세율은 매년 물가를 반영해 조정한다. 물가 상승에 따라 가격이 오른 만큼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는 소주 등과의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올해는 지난해 고물가(5.1%) 상황 등을 반영해 물가상승률의 70%인 3.57%를 올렸다. 이렇게 결정된 세율은 4월부터 적용된다. 정부가 물가연동제 폐지까지 거론하며 재검토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세율 인상이 업계에 빌미를 줘 물가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주류 제조업체들이 세금 인상을 이유로 맥주·소주 등 출고가를 인상하면, 이후 마트와 편의점, 식당 등에서 연쇄적으로 가격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기재부와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 2월 ‘외식 품목’ 중 맥주의 물가지수는 112.63(2020년=100)으로 1년 전보다 10.5% 올랐다. 같은 기간 ‘가공식품’ 맥주의 상승률(5.9%)을 훨씬 웃돈다. 식당이나 주점에서 팔리는 맥주가격이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팔리는 맥주가격보다 더 가파르게 오른 것이다. 다른 주류도 마찬가지다. 소주는 외식 품목이 11.2% 올라 가공식품 상승률(8.6%)을 웃돌았다. 막걸리도 외식 품목 상승률(5.1%)이 가공식품 상승률(1.6%)보다 높았다. 추 부총리는 “세금 (인상) 탓에 15원 정도 맥주가격 상승 요인이 있을 때 (업계가) 맥주가격을 1000원에서 1015원으로 15원만 올리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주류업계는 가격 인상 요인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전방위 압박에 가격을 동결하는 분위기다. 물가연동제에 따라 올해 인상분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1ℓ당 붙는 세금은 맥주의 경우 30.5원이 추가돼 885.7원이 되고, 탁주는 1.5원이 추가돼 44.4원이 된다. 330㎖ 캔 기준으로 약 6.8원(275.4→282.2원), 640㎖ 병 기준으로는 약 13.3원(534→547.3원) 인상된다. 정부는 지난 2월 주류업계의 가격 인상과 관련해 제조사 실태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비맥주는 카스 등 국산 맥주의 가격을 당분간 동결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2~3월 약 3년 만에 소주 제품 가격을 8% 정도 올린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도 가격 인상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다만 수입 맥주와 막걸리는 원가와 물류비 상승 등의 이유로 4월부터 가격이 오를 예정이다. 오비맥주가 수입·유통하는 버드와이저, 스텔라아르투아, 코로나 등의 가격은 3월 중 평균 9% 오른다. 우리술의 톡생막걸리(750㎖) 가격은 1950원에서 2300원으로, 가평잣생막걸리(750㎖) 가격은 1850원에서 2300원으로 각각 오른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월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제공 주세, 어떻게 바뀌었나 주류에 붙는 세금을 다룬 주세법은 1949년 제정됐다. 모두 종량세 체계였다. 1968년부터는 주류 소비를 줄이고 세수를 늘릴 목적으로 종가세 체계가 도입됐다. 주류가격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 방식은 출고가격이 인상되면 부과 세금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구조다. 인플레이션(물가 오름세) 상태에서 세수가 증대될 수 있고, 공평과세를 실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원재료가 싸면 세금을 적게 내고 가격 경쟁력이 좋아지는 반면, 양질의 원재료나 고급 포장재를 사용하는 비싼 주종일수록 세 부담이 늘어난다. 종가세에서 종량세로의 전환 논의는 1999년 6월 세계무역기구(WTO)의 주세율 조정 판정을 계기로 본격화했다. WTO는 당시 35%였던 소주 주세율과 100%였던 위스키 주세율의 차이가 규정 위반이라고 판정했다. 같은 증류주임에도 국내산과 외국산을 차별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정부는 WTO 결정에 따라 소주 등 증류주의 세율을 72%로 일치시켰다. 정부는 다만 국민 여론 등을 이유로 종량세 전환 논의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종가세 체계에 가장 큰 불만을 표출한 건 맥주 업계였다. 마트나 식당에서 사먹는 맥주와 편의점 등에서 판매하는 수입 맥주 간 형평성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국산 맥주는 판매관리비, 매출, 이익 등이 모두 포함된 가격에 세금이 붙는 반면, 수입 맥주는 마케팅과 유통 등의 비용이 과세표준에서 빠진 수입 신고 시점 가격에 세금을 매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세 부담이 낮았다. 2019년 국세청에 따르면 출고가격(제조원가+이윤+판매관리비)을 과세표준으로 한 국산 맥주의 주세는 ℓ당 평균 848원이었으나, 수입 신고가격(수입가액+관세)을 과세표준으로 하는 수입 맥주에 부과된 세금은 ℓ당 709원이었다. 국산 맥주 업계는 이 때문에 수입 맥주가 ‘4캔 1만원’과 같은 공격적인 마케팅이 가능했고, 이를 앞세워 단기간에 시장점유율(2015년 8.5%에서 2018년 20.2%)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2019년 6월 맥주와 탁주부터 종량세로 전환키로 하고 이듬해부터 적용(물가연동제는 2021년부터 적용)했다. 맥주업계 등의 불만도 있었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고품질 재료를 사용하면 출고원가가 오르면서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했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데 있었다. 세계적 흐름도 비슷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종량세 체계를 도입한 국가가 30개국이었다. 맥주와 탁주는 종량세로 전환됐지만 소주는 기존 종가세가 유지됐다. 소주뿐 아니라 같은 증류주인 위스키 등까지 종량세로 전환하면 세 부담이 대폭 낮아질 수밖에 없고, 이는 소주업계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같은 증류주이면서 소주의 대체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스키, 보드카, 백주, 화요 등이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임재현 기재부 세제실장은 2020년 5월 최종적으로 종량세 전환 대상에서 소주를 제외한 이유에 대해 “소주세율이 대폭 올라가거나 위스키 세율을 대폭 낮춰야 하는데, 소주세율 대폭 인상은 쉽지 않고 위스키 세율을 소주만큼 낮춰주는 게 국익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소주와 위스키는 종량세로 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도 당시 WTO 결정을 계기로 모든 주류에 종량세 전환을 검토한 것이 사실이지만 소주업계뿐 아니라 여러 반대 여론을 의식해 사실상 기형적인 형태로 맥주와 탁주만 대상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맥주를 구매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물가연동제 개편, 기대와 우려는 물가연동제 전면 재검토에 나선 정부는 관련 연구용역과 공청회 등 외부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한다. 구체적인 개편 내용은 올해 7월 세법 개정안에 담아 발표할 예정이다. 내부적으로는 물가연동제를 폐지하거나 매년 물가 상승분을 반영하는 방식이 아닌 비정기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다만 세율조정은 정부가 아닌 국회가 주체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추 부총리는 지난 3월 9일 간담회에서 “세금을 물가에 연동하기보다는 종량세도 일정 시점에 한 번씩, 국회에서 양에 따라 세금을 정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주류가격 상승 결정에 따른 책임과 부담을 국회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물가연동제를 폐지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가격이 오를 때마다 세금이 인상되는 소주·와인·위스키 등과의 과세 형평성 논란이다. 종가세 대상 주종은 물가 상승에 따라 출고가격이 인상되면 그만큼 세 부담이 증가하는 반면, 양에 비례해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 대상 주종은 물가 반영은 되지만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세금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전체적인 물가와 판매가격이 오르는데 맥주와 탁주에 붙는 세금이 그대로라면 업계의 배만 불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차후 세금 인상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세율 인상을 미루다 한 번에 큰 폭으로 가격을 인상해야 할 수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2005년 이후 근 10년 만인 2015년 세율이 인상된 담뱃세가 대표적이다. 당시 1갑당 2500원에서 4500원으로 가격이 큰 폭 오르면서 국민 여론이 크게 나빠졌다. 추 부총리가 종량세율 조정의 주체로 언급한 국회가 물가가 올랐다고 해서 국민 여론과 무관하게 주류가격을 올릴지도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세율을 조정해 물가를 잡겠다는 접근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는 “업계에서 출고가는 그대로 두면서 원자재 등 물가상승분을 만회하기 위해 다른 항목에서 비용을 추가할 수 있다. 또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팔리는 맥주와 막걸리의 판매가격을 정부가 강제해 묶어둘 수도 없다. 업계 담합 같은 경우 정부가 나설 수 있겠지만 물가를 잡기 위해 세율을 묶는 방식은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고 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종량세 취지를 살리면서 물가연동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게 합리적이다. 예컨대 재정과 내수 여건을 봐가면서 국회 동의를 얻어 정부가 평균 3년 주기로 세율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깝고도 먼 아세안](4)경제 성장·물가 안정 ‘두 토끼’ 잡은 베트남(2023. 01. 13 11:36)
2023. 01. 13 11:36 국제
베트남 호찌민 항만공사 / 호찌민 항만공사 홈페이지 경제성장률 8.02%. 베트남이 2022년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최근 12년 동안 가장 높은 경제 성장 수치를 기록하며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시장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지난해 12월 29일 베트남 통계청은 2022년 베트남 국내총생산(GDP)을 발표하면서 국제통화기금(IMF) 6%, 아시아개발은행 6.5%, 세계은행 7.5% 전망치보다 높은 8.0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는 연초 베트남 정부의 목표치인 6.0%보다 2.02%나 초과 달성한 수치다. 1인당 GDP는 전년도보다 393달러 증가한 4110달러가 될 것으로 추산됐으며, 1인당 노동생산성은 전년 대비 622달러 증가한 8083달러가 될 것으로 집계됐다. 이와 아울러 베트남 일반 소비자물가는 3.15%, 평균 근원물가는 2.59% 상승해 안정적인 물가 관리에도 성공했다.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고강도 긴축 정책으로 경제가 침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베트남은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베트남, 자동차 생산·수입 60만대 첫 돌파 2022년 베트남 국가 통계 중 눈여겨볼 것은 국내에서 생산된 자동차와 수입한 차량의 증가다. 베트남 통계청에 의하면 2022년 베트남 국내에서 생산된 차량이 43만9600대로 전년 대비 14.9% 증가했다. 완성차 수입량은 17만6590대로 10.5%, 수입액은 38억7000만달러로 6.8% 각각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생산과 수입 합산 자동차 대수가 60만대를 돌파한 것은 베트남 사상 처음이다. 베트남자동차제조업협회(VAMA)는 2022년 1~11월까지 회원사들이 전년 동기 대비 43% 증가한 36만9334대를 판매했다고 발표했다. VAMA 회원이 아닌 수입 자동차 회사들의 수입분 17만여대까지 계산하면 2022년 한 해 50만여대의 자동차가 베트남에서 판매된 것으로 추산된다. 등록된 오토바이만 4500만대가 넘는 오토바이 왕국 베트남에서 중산층의 급격한 성장으로 자동차 소비가 덩달아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베트남 경제가 발전하고 일반 국민의 소득이 증가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지표다. 베트남은 무역에서도 사상 최대 성과를 이뤘다. 베트남 통상산업부는 2022년 12월 26일 베트남 수출입액이 사상 처음으로 7000억달러를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2007년 1월 베트남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수출입액 1000억달러를 달성한 이래 15년 만에 무역 규모가 7배 성장한 7200억달러를 달성했다. 2022년 베트남의 수출액은 10.5% 증가한 3710억달러로 92억달러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전 세계적으로 석유 가격이 급격히 인상되고 베트남의 주요 수출품인 의류, 신발이 미국 경제 침체로 주문이 잇따라 취소되면서 위기감이 형성됐다. 일부에서 베트남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를 극복해냈다. 2021년 기준 베트남은 수출로는 세계 20위, 수입으로는 23위로 아세안에서는 싱가포르에 이은 2위의 무역 대국이다. 아직 아세안 각국의 무역 규모가 공식적으로 발표되진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베트남의 무역 규모 순위가 더욱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의 베트남 국가신용등급도 조만간 상향될 것으로 보인다. S&P가 2022년 5월 ‘BB+ 안정적’으로 상향 조정했는데 당시 S&P는 베트남 GDP 성장률을 실제보다 낮은 6.9%로 예측하고 평가를 내렸다. 또 다른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그해 9월 베트남 국가 신용등급을 ‘Ba2 긍정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여러 근거 중 베트남이 세계 최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라는 점과 이 때문에 중국에서 많은 생산기지가 이전해온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단순 노동집약산업의 생산기지들이 베트남으로 옮겨올 뿐만 아니라 고부가가치의 하이테크 산업들이 베트남으로 이전해오고 있어 베트남의 전망은 더욱 밝다. 미·중 갈등을 피해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한 아이폰 공급 업체들이 폭스콘, 럭스셰어(Luxshare), 고어텍(GoerTek) 등 모두 21개 업체에 이른다. 이들이 고용한 베트남 노동자만 20만여명이다. 애플의 아이팟을 베트남에서 생산 중인 폭스콘은 올해 5월부터는 ‘메이드 인 베트남’ 맥북을 생산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폭스콘은 베트남 북부 박장성에 3억달러를 추가 투자해 50만5000㎡ 규모의 용지를 임대하고 3만명의 인원을 추가 고용할 예정이다. 폭스콘과 함께 아이폰 생산을 많이 하는 페가트론(Pegatron)은 LG전자 그룹 계열사들이 자리 잡은 하이퐁에 최대 10억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짓고 있다. 업계에서는 1~2년 내에 조립 형태로 베트남에서도 아이폰을 생산하기 시작할 것으로 내다본다. 2030년까지 제조업 45% 하이테크 전환 베트남 정부는 2030년까지 베트남 전체 제조 비중의 45%를 하이테크 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저임금 노동력 중심 산업 국가로 머물러 있으면 중진국에서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음을 명확히 알고 있는 베트남은 ‘2021~2030년 국가 투자·협력 전략’ 하에 글로벌 500대 기업 중 절반 이상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빠른 기술 이전과 국가 성장을 위해 외국 기업을 유치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맹목적인 해외 기업 유치만이 능사는 아니다. 베트남 정부가 첨단산업 육성에만 집중하다 보면 봉제, 신발과 같은 노동집약 산업 노동자들을 외면할 수 있다. 그간 베트남 경제 성장의 한 축이었던 이들이 급작스러운 산업 구조 개편으로 직장을 잃게 될 것에 대비해 이들의 재취업 교육을 강화하고 지원해야 한다. 또한 베트남 통계청이 언급했듯 사상 최대를 기록한 2022년 수출 실적의 74%는 외국 투자 기업들에서 나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내수 기업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이들의 인재 양성과 세제 혜택, 대출 지원 등도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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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5)물가 대책에 횡재세·대중교통 지원 정책 활용하자(2022. 07. 08 14:23)
2022. 07. 08 14:23 경제
전 세계가 물가로 난리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8.22로 전년 같은 달보다 6.0% 올랐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1월에 기록한 6.8% 이후 23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물가가 외국에서 수입된 유류, 곡물 중심으로 오르다 보니 서민들의 체감도가 더욱 크고, 대외적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고물가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류세 인하 폭이 37%로 확대된 7월 1일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전날보다 11.37원 내린ℓ당 2133.53원을 나타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전날보다 7.38원 내린 ℓ당 2160.28원을 기록했다. 사진은 이날 유류세 추가 인하분이 반영된 서울의 한 주유소 / 연합뉴스 문제는 정부의 대응이다. 정부는 지난 5월 30일 제1차 경제장관회의를 열어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핵심은 식용유, 돼지고기 등 식품원료 7종에 대한 관세와 커피와 코코아 원두에 붙는 부가가치세를 내년까지 면제하는 등 생산자들에게 부과하는 세금을 줄여 판매 가격의 인하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윤석열 정부가 선호하는 이른바 ‘시장친화적 물가 대책’인 셈이다. 시장친화적 물가 대책의 한계 특정한 정책을 선호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선호하는 방식의 장단점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생산자에게 감세하는 방식의 물가 대책은 시장친화적일 순 있어도, 효과가 늦을 수밖에 없다. 시장이 경쟁적일수록 느리게나마 줄어든 생산비가 판매 가격에 반영되고, 덜 경쟁적인 시장에선 줄어든 생산비는 생산자의 잉여로 돌아간다. 실제로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의 효과는 미미했고, 시장에서 거의 잊힌 물가 대책으로 취급받았다. 뒤늦게 정부는 6월 19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어 ‘당면 민생 물가안정 대책’을 내놨다. 골자는 이미 30%까지 인하한 유류세를 법정 최대한도인 37%까지 낮추는 것이다. 7월까지였던 유류세 인하 시한도 연말까지로 늘렸다. 또한 경유 사용 운송사업자에게 9월까지 한시적으로 지원 중인 유가연동보조금의 기준가격을 낮춰 지원액을 늘리고, 대중교통비의 소득공제율을 상향하는 등의 내용도 담았다. 이렇게 여러 물가 대책을 내놨지만, 사실상 유류세 인하가 물가 대책의 거의 전부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딜레마의 관점으로 유류세 인하는 얼마만큼 효과적인지, 다른 효과적인 대책들은 없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유류세 인하는 물가 대책으로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정책이다. 물론 유가가 낮은데 물가가 고공행진 하는 경우엔 고려 대상이 아니겠지만, 한국의 고물가는 대부분 고유가를 동반했다. 이는 고물가의 요인이 외부에서 수입하는 원자재 가격, 즉 ‘공급’ 측면에서 상당 부분 비롯됐다는 의미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11일 국무회의 의결로 이듬해 4월까지 유류세를 역대 최대폭인 20%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4월엔 유류세 인하 폭을 30%로 확대하고, 인하 시한을 7월까지로 연장하는 등 고유가 부담 완화 3종 정책을 발표했다. 유류세 인하 이후로도 기름값은 계속 올랐다. 지난해 11월 1700원대인 휘발유 가격이 유류세 인하폭을 30%로 확대한 5월엔 1900원대를 넘어 최근엔 21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 기간에 국제유가는 일정 기간 올랐다가 내렸다. 보통 국제유가와 유류세 변화가 유가에 반영되기까지 일정 기간이 걸린다. 국제유가가 반영되기까지는 비축량에 따라 다르지만 2~3주일, 유류세는 ‘제조장에서 반출될 때’ 부과되기 때문에 가격 반영에 1~2주일의 시차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유류세 인하, 효과는 제한적 문제는 시차를 감안해도 국제유가나 유류세의 변화가 고유가 시기에 국내 가격에 제대로 반영이 안 된다는 점이다. 이를 입증하듯 정부는 유류세를 인하하고선 매번 전국의 주유소들에 가격을 내렸는지를 점검한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7월 1일 “주 2회 이상 전국 순회 주유소 현장점검을 집중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유류세 인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점은 여러 수치로도 드러난다. 기본소득당의 용혜인 의원실이 지난 6월 2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류세 20% 인하 시에 휘발유에 부과되는 세금은 1리터당 182원이 감면됐지만, 실제 가격에 미친 효과는 69원 인하에 불과했다. 이 수치는 유류세 인하 전후의 국제 휘발유 가격 차이를 감안한 것이다. 정유사들은 고유가의 상황에서 이익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국내 정유 4사인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의 합산 영업이익은 올 1분기에만 4조7668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이처럼 유류세 인하는 상당한 세수 결손을 감수하고 실시하는 정책인데도 소비자들이 효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감세로 유류 소비가 유지되도록 지원하는 성격도 있어 탄소 배출 감축에도 역행하고, 정유기업의 막대한 이익을 정부가 일부 보장하는 성격도 있다. 유류세 인하의 혜택도 저소득층보다는 고소득층이 더 많이 누린다. 이는 소득계층별로 ‘기름값에 따른 수요의 변동’(수요의 가격탄력성)을 따지지 않아도 분명하다. 고소득층의 유류 소비량이 더 많기 때문이다. 계층별로 가격탄력성은 여러 연구마다 조금씩 결론이 다른데 기본적으론 고소득층이 더 탄력적으로 수요를 조절하는 편이고, 소득계층보다 차량 보유 여부 등 다른 요인들이 탄력성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의견도 있다. 유류세 인하의 장점은 ‘신속성’이다. 이는 현행 유류세 법체계에서 탄력세율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탄력세율이란 국회가 법을 개정하지 않고도 정부나 지자체가 신속하게 일정 범위 내에서 세율을 조정할 수 있도록 법률로 규정하는 제도다. 유류세 인하가 물가에 대한 자동반사적 대응인 것처럼 유류세 인하의 효과가 제한적일 때도 자주 나오는 대안은 탄력세율을 조정하는 법 개정이다. 현행 30%인 탄력세율을 50~60%로 확대하자는 법률 개정안들이 다수 제출됐다. 이렇게 법률이 개정되면 신속하고도 과감한 세율 인하가 가능해진다. 유류세 인하가 장단점이 뚜렷하기에 다른 정책 대안들과의 조합을 이뤄 단점을 보완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미 전례가 있다. 유가가 급등하던 2008년 당시 이명박 정부는 저소득층에게 현금을 직접 지급하는 ‘유가환급금’ 제도를 시행했다. 명칭이 ‘환급금’이었을 뿐이지, 실제론 유류 구매 여부를 따지지 않고 연 소득이 3600만원 이하인 근로자(자영업자는 연 소득 2400만원 이하)에게 최대 24만원을 지급했다. 수요 측면에서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고물가로 고통을 받는 소득 계층에 직접 현금을 지급한 선례이고, 당시 소득재분배와 소비효과 등이 충분히 검증됐다. 횡재세와 대중교통 지원 정책 ‘횡재세(windfall profits tax)’라고 불리는 초과이득세는 국내에선 여러 오해가 있지만, 영국과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이미 시행 중이다. 미국 상원에도 법안이 제출되며 진지하게 논의하는 제도다. 일각에선 초과이득세가 부과되면 유류 공급이 줄어 오히려 유가가 올라가는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익에 대한 과세는 공급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과 유럽의 석유회사들엔 횡재세가 공급을 늘리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들 업체는 최근 막대한 영업이익을 올리면서도 셰일가스 개발 등 공급량을 늘리는 투자에 인색하고, 주주들의 이익 극대화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 다각화를 통해 비정유 사업 비중을 늘리고 있는 국내 정유 업체들에도 횡재세는 괜찮은 투자 유인이 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미 세계 10위 이내의 배터리 업체이고, GS칼텍스는 수소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전기차와 수소차 충전소 네트워크를 구축 중이고, 에쓰오일은 석유화학 복합시설 등에 투자하며 정유사업의 비중을 꾸준히 축소해왔다. 이들 신산업에 대한 투자액을 늘릴수록 세금이 부과되는 이익의 규모가 줄어든다. 그러고도 거둔 횡재세 세수입은 다른 고물가 대책에 사용할 재원이 될 수 있다. 국내에서 자주 회자되는 횡재세 비판 논리가 있다. 적자일 때는 지원하지 않으면서 왜 이익이 날 때만 더 과세하려 드느냐는 주장이다. 통상적인 이익에 과세하는 게 아니라 유류 급등기에 얻은 초과이득에 대한 과세이고, 심지어 정부가 유류세 인하라는 조세지출을 통해 보장한 이윤이라 과세의 명분은 충분하다. 국내에서도 조만간 횡재세 법안이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은 유가가 급등한 해에 정유사가 얻은 이익을 최근 몇년간 얻은 평균 이익과 비교해 ‘초과이득’을 개념화하고, 여기에 일정한 세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담아 법안을 마련 중이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정유사들이 자발적으로 출연해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자발적인 출연이 안 될 경우 횡재세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하나 고려해볼 만한 전향적인 정책 분야는 대중교통이다. 이 정책은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활동을 촉진하는 ‘캠페인’이 될 수 있다. 유류세 인하라는 역진적인 정책을 불가피하게 사용할 때가 실험적인 교통정책을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미 독일은 6월부터 석 달간 ‘9유로 티켓’ 하나로 한 달간 근거리 대중교통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뉴질랜드는 지난 3월 석 달간 모든 대중교통 요금을 절반으로 줄이는 정책을 발표했다. 국내에선 대중교통이 잘 갖춰진 수도권에 혜택이 집중되는 단점이 있지만,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지옥철로 불리는 서울지하철 9호선 등 각 지역의 대중교통 인프라를 확충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에서 지난 7월 4일 주최한 ‘고유가 대책’ 토론회에서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대중교통 활성화는 고유가 시대에 유류 사용을 줄일 수 있고, 기후위기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며 “독일의 9유로 티켓과 같은 정책이 고유가 대책으로 먼저 제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기후친화적, 경제정의적, 서민친화적 정책들과 조합을 이룬다면 정부의 시장친화적 대책도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부디 정부가 유연한 자세로 검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
가파르게 치솟는 물가 잡을 수 있을까(2022. 06. 03 11:24)
2022. 06. 03 11:24 경제
“세상에 좋은 세금은 없다”고 했던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말처럼 세금은 누구에게나 달갑지 않다. 납세자로서는 공평하지 않은 것 같고 세 부담이 과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세금의 불공정 문제 제기는 그나마 납세자 본인이 어떤 세금을 얼마나 내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을 전제로 가능하다. 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갈 때는 어떨까. 인플레이션(물가 오름세)은 ‘소리 없는 도둑’ 또는 ‘숨은 세금’으로 불린다. 소리 소문도 없이 내 지갑에서 돈을 빼간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평소에 구입하고 이용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다. 실질소득만 낮추는 게 아니다. 불평등의 심화도 인플레이션의 폐해다. 부동산과 같은 실물자산 부자들은 이득을 보게 된다. 자산가치가 늘어난 계층은 소비가 늘어날 수 있지만 몇백원 인상된 식료품값이 부담스러워 구입을 머뭇거리는 이들도 많다. 고물가의 고통은 특히 저소득층과 은퇴자 등 취약계층에겐 치명적이다. 사진 / 이준헌 기자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왜 “현재 (경기보다) 물가 위험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당분간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5월 26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기준금리 인상(1.50→1.75%) 결정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시중의 돈줄을 조이면서 경기 회복세를 둔화시킬 수 있지만, 발등의 불이 된 물가를 잡기 위해 이를 감수하겠다는 의미다. 그만큼 위기상황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을 만났다.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비용 상승형 인플레이션’에 가깝다. 코로나19 이후 경기회복 과정에서 전 세계 수요가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직접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등이 사태를 키웠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망 차질 등과 같은 비용 유발 요인들이 주범이다 보니 묘수를 찾기가 쉽지 않다. 최근 몇년 새 두드러진 기후위기에 따른 작황 부진과 식량난 고조도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웠다. 원유와 밀 등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은 이러한 글로벌 변동성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수입 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의 5월 넷째 주(5월 22∼26일) 평균가격은 배럴당 108.9달러를 기록했다. 5월 평균치와 비교하면 지난해 54.8달러에서 올해 108.2달러로 1년 새 97.4%나 뛰었다. 한국의 2020년 기준 하루평균 석유 소비량은 256만배럴이다. 미국(1718만배럴)과 중국(1423만배럴) 등에 이어 세계 7위(국회예산정책처)다. 국제유가는 통상 3~4주 뒤 국내 유가에 반영된다. 가공식품 등 공업제품 물가에도 영향을 줘 소비자물가 전체를 끌어올린다. 국제유가는 연말까지 고공행진을 이어갈 공산이 크다. 유럽연합(EU)이 지난 5월 30일(현지시간)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부분 금지하기로 한 데 이어 연말까지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90%까지 줄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밀과 옥수수 등 국제곡물 가격 급등은 더 심각한 문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 3월 밀의 선물가격(미 시카고상품거래소 기준)은 t당 407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무려 73.9% 상승했다. 3월 국내 곡물수입단가는 평년(2015~2019) 대비 43.0~59.3%, 전년 동기 대비 21.2~47.2% 상승했다. 한국의 곡물 수입 규모는 연간 1717만t으로, 세계 7번째 곡물수입국(2020)이다. 반면 쌀을 제외한 밀(0.5%)과 옥수수(0.7%) 등의 곡물자급률은 3.2%에 그친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북서부 부차의 집단 매장지에서 법의학 요원들이 민간인들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수입곡물은 국내 가공업체들이 선도 구매하기 때문에 3~7개월 시차를 두고 가공식품과 외식 등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국장은 6월 1일 ‘2022년 BOK(한국은행) 국제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국제유가가 10% 상승했을 때 소비자물가 상승률 효과는 평균 0.2%포인트 미만인 반면 곡물 등 농산물 가격이 10% 상승했을 때 곡물 수입국의 인플레이션 상승효과는 0.4%포인트 이상”이라고 분석했다. 고물가 시대, 어떻게 바뀌었나 물가 상승 추이는 ‘당분간’ 5%대 이상을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2% 초중반대 물가상승률을 보였던 1년 전과 비교해 주요 생필품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 살폈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유류세 인하 조치에도 지난 5월 말부터 다시 리터(ℓ)당 2000원을 넘겼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포털 오피넷에 따르면 6월 2일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은 ℓ당 2016.64원이다. 1년 전(1555.59원)과 비교해 약 30% 뛰었다. 경유는 같은 기간 1352.56원에서 2010.08원으로 무려 50% 가까이 올랐다. 6~8월은 휘발유와 경유 성수기여서 앞으로 더 오를 여지가 많다. 기름값이 뛰자 소비량은 쪼그라들었다. 비용 부담 때문에 차량 이용을 줄인 데 따른 결과다. 지난 4월 국내 휘발유·경유 합계 소비량은 1735만5000배럴이었다. 한 달 전인 3월보다 5.8% 줄었고, 코로나19로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던 지난해 4월(2124만7000배럴)과 비교하면 18.3%나 급감했다. 육류 가격도 크게 올랐다. 정부가 최근 할당관세 0%를 적용키로 한 수입 돼지고기(삼겹살)의 경우 지난 5월 27일 기준 100g당 1434원으로, 1년 전(1310원)보다 9.5% 올랐다. 수입 쇠고기(갈비) 가격은 100g당 4345원으로 1년 전(2469원)보다 무려 76.0%나 올랐다. 지난 4월 기준 농축수산물 수입가격지수는 118.4로, 1년 전보다 32.7% 상승했다. 외식 물가도 고공행진 중이다. 김치찌개 가격(4월, 서울 기준)은 7154원으로, 1년 전(6769원)보다 5.7% 상승했다. 같은 기준 냉면 가격은 1년 새 9.5% 오른 평균 1만192원으로, 처음으로 1만원을 넘어섰다. 자장면 가격은 14.1% 오르며 6000원을 넘었고, 칼국수 가격도 10.8% 상승하며 8000원을 돌파했다. 가격판을 갈아치우는 식당들이 속출하면서 무섭게 치솟는 물가 상승세의 위력을 실감한다는 소비자들이 많다. 장 보기도, 점심 한끼 하러 나가기도 겁난다는 볼멘소리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외식과 생필품 가격 인상에 따른 비용 부담은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에 집중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8∼2019년과 이후인 2020∼2021년의 체감물가 변화를 소득분위별로 살펴본 결과, 체감물가 상승률이 소득 하위 20%인 1분위에서 2.7%로 가장 높았다. 2분위 2.4%, 3분위 2.2%, 4분위 2.1%, 5분위 1.9% 순이어서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체감물가 상승률은 낮았다. 저소득층일수록 소비지출에서 생필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물가상승에 따른 충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올해 1분기 식료품·비주류 음료 지출액이 전체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소득별로 보면 5분위 13.2%, 4분위 14.8%, 3분위 15.7%, 2분위 16.7%, 1분위 21.7% 등으로 소득이 낮을수록 비중이 컸다. 고물가 공포, 꼭짓점 어디일까 물가 안정을 책임지는 한국은행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4.5%로 제시했다. 지난 2월 발표한 기존 전망치(3.1%)보다 1.4%포인트나 높였다. 이대로라면 14년 만에 가장 높은 물가 수준에 도달한다. 한은은 올해 평균 원유 가격 추정치가 80달러 중반(2월 전망 당시)에서 102달러로 높아졌고, 유엔 통계상 국제식량 가격이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평균 60%나 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당분간 5% 이상의 높은 물가상승률과 내년 초에도 4%, 3%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물가 추이를 가늠할 때 흔히 기대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전망 값)율을 따진다. 시장의 심리에 주목한 것인데,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높으면 임금이나 제품 가격의 인상 등에 영향을 줘 물가상승 압력을 다시 키우게 된다. 한국은행이 지난 5월 24일 발표한 ‘5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3%로 집계됐다. 4월(3.1%)보다 0.2%포인트 올랐을 뿐 아니라 2012년 10월(3.3%) 이후 9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지난 2월 27일 서울 종로구에서 재한 러시아인 주최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집회에서 우크라이나 국기 뒤로 전쟁 중단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겹쳐 보인다. / 연합뉴스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높아지면 임금 인상 필요성과 요구도 커진다. 임금 상승은 기업의 인건비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이는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에 반영돼 물가를 더 밀어 올리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한은에 따르면 기대인플레이션율이 1%포인트 높아지면 임금도 1%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윤종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가계와 기업의 불안을 제어해주는 노력과 정책이 필요하다. 기대인플레이션이 확대되고 실질임금이 떨어지면 임금 인상 요인이 생기면서 물가상승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며 “한은 총재가 5월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 이후 기자회견에서 핵심 요약 마무리 발언을 하고, 시중 은행장들과의 금융협의회에서 금리 인상 배경 등을 소상히 설명한 점은 이러한 시장의 불확실성을 완화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올 하반기 물가 상승률이 6% 수준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 본다. 6%대 물가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1월(6.8%) 이후 약 24년 만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대외 여건을 고려하면 당분간 최소 5%대 물가 상승률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데다, 1년 전 물가가 2% 초중반대에 그쳤던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6%대 상승률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물가 대응, 우려되는 부작용은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30일 소상공인, 자영업자 손실보상 등을 위한 62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재가하면서 “물가가 오르면 실질소득이 줄어든다. 새 정부는 가용수단을 총동원해 생활물가 안정에 총력을 다해달라”고 했다. 막대한 유동성이 풀리면 물가를 더 자극할 것이란 안팎의 우려를 염두에 둔 언급이었다. ‘추경 때문에 물가 상승 우려가 있다’는 취재진 지적에는 “그럼 추경 안 합니까”라고도 했다. 같은 날 정부는 생활·밥상 물가 안정을 위한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를 내놨다. 당장 엇박자 행보라는 지적이 나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연합뉴스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한은의 추가 금리 인상만큼 효율적인 수단이 없다. 부작용 우려가 적지 않다는 점이 부담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중립금리 수준으로 기준금리가 수렴하도록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중립금리란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세) 압력이 없는 잠재성장률 수준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이론적 금리 수준을 말한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세차례 더 올려 2.50%까지 높이리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기준금리 인상은 은행 등 금융기관의 조달비용의 상승으로 이어져 대출금리에 영향을 준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빚투(빚으로 투자) 대출에 나선 차주와 자영업자, 다중채무자(3곳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 등 취약계층의 이자 상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미 올해 3월 말 기준 가계대출은 모두 1752조7000억원에 이른다. 현재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전체 잔액 중 변동금리 대출은 전체의 77% 정도다. 단순 계산해 대출금리가 기준금리와 마찬가지로 0.25%포인트 오를 경우 대출자의 이자 부담은 3조3739억원(1752조7000억원×77%×0.25%)이나 불어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변동금리 대출자들은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소득 감소에 더해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까지 추가되면서 비용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 연합뉴스 기준금리를 인상하더라도 단기간에 물가 안정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기준금리 인상이 물가 안정에는 효율적인 수단이지만, 본격적인 효과를 보기까지는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린다”며 “우크라이나 사태와 중국의 봉쇄 등 글로벌 경제 여건이 진정되지 않는 한 금리 인상 효과는 연말 또는 내년 초에나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의 물가 불안은 공급 측면에서 기인한 것이어서 중앙은행의 긴축 정책만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면서 “민간부채 규모를 감안했을 때 이자율이 높아지면 한계 차주의 파산이나 민간소비 위축 등이 나타날 수 있는 점도 중앙은행 운신의 폭을 좁히는 요인”이라고 했다. 물가 대응뿐 아니라 미국의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반론 또한 만만치 않게 나오는 배경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지금의 고물가 현상은 수요 측 요인이 아니라 비용과 생산 등 대외 요인에 기인한다. 기준금리 인상이 물가는 안정시키지 못하면서 경기만 둔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5월 수출입 통계를 보면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21.3% 증가한 615억2000만달러, 수입은 32.0% 증가한 632억2000만달러를 각각 기록해 무역수지 적자가 17억1000만달러에 달했다. 전월 대비 전산업(4월) 생산은 0.7%, 소매판매액은 0.2%, 설비투자는 7.5% 각각 줄었다. 생산, 소비, 투자가 모두 감소하는 ‘트리플 감소’는 2020년 2월 이후 26개월 만이다. 가계의 비용 부담 완화 차원에서 정부가 찍어 누르고 있는 공공요금의 인상 예고도 당국의 고민을 키운다. 지난 4월 인상된 가스요금은 오는 7월과 10월에, 전기요금은 10월에 각각 추가 인상을 예고했다. 물가 상승 압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공요금 인상 억제에 주력한 정부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 관계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물가와 비슷한 수준을 맞추기 위해 수입규제 완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선진국과 한국의 물가 차이가 1% 안팎으로 줄어드는 등 물가 관리의 선진화를 이뤄냈다”며 “이른바 ‘물가 동조화’ 개념인데, 그럼에도 선진국과 한국의 물가 항목에서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 바로 공공요금이다. 물가 상승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정부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선진국에 비해 우리의 공공요금 수준은 현저히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 사이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구매 비용 증가로 적자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다. 한전은 지난 1분기 연결 기준 7조786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적자로, 지난해 연간 적자액(5조8601억원)보다 2조원 가까이 많은 수치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전기요금을 계속 누르기만 하면 결국 국민 부담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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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때와 닮았다? 윤 정부의 물가 대응책은(2022. 06. 03 11:24)
2022. 06. 03 11:24 경제
ㆍMB의 가격 통제와 달리 ‘원가 절감’에 주력 ㆍ유통구조 개선은 과거 방식과 유사한 사례 “물가는 민생안정에 가장 중요한 과제다. 새 정부는 가용수단을 총동원해 국민의 생활물가 안정에 총력을 다해주길 바란다.”(윤석열 대통령, 2022년 5월 30일) 2008년 3월 3일 이명박 대통령이 첫 국무회의를 열기 전 국무위원들과 직접 차를 타서 마시고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장바구니 물가를 잡기 위한 특별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서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민생과 관련한 장바구니 물가는 잡을 수 있지 않겠는가. 장바구니 물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의 특별대책이 필요하다”(이명박 전 대통령, 2008년 3월 3일) 14년 만의 ‘물가와의 전쟁’이다. 정부 출범 초 ‘고삐 풀린 물가 잡기’가 최우선 국정과제로 주어진 것도 그때와 닮았고, ‘물가를 잡을 특별대책’을 곧바로 내놓은 것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MB 정부 물가 대응, 어땠나 이명박(MB) 정부가 출범한 2008년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3.6%였다. 한 달 후 3월엔 3.9%, 4월엔 4.1%, 5월엔 4.9%, 7월엔 5.9%까지 치솟았다. 지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돌발 변수가 추가됐지만, 당시에도 고유가와 곡물가격 급등이 국내 물가 상승의 주범이었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130달러 안팎까지 뛰어올랐다. 미국의 경기침체에 따른 세계 경제 둔화 등 글로벌 경제 여건도 나빴다. 국내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경유의 전국 평균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휘발유를 앞지른 것도 MB 정부 때였다. MB 정부는 가격 통제에 적극적이었다. 고물가로 여론이 나빠지자 MB 정부는 서민생활과 밀접한 52개 품목을 선정해 집중적으로 관리했다. 이른바 ‘MB 물가지수’였다. 쌀, 밀가루, 라면, 빵, 쇠고기 등 식료품은 물론 소주, 휘발유 등이 포함됐다.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MB 물가지수’ 품목들의 5년간 물가 상승률은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6배에 달했다. MB 물가지수는 약발이 먹히지 않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비슷한 형태로 부활했다. 지난 2월부터 매주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햄버거와 치킨 등 12개 외식 품목 가격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외식가격 공표제를 시행했다. 효과가 전혀 없다는 안팎의 비판에 직면하면서 3개월 만에 폐지했다. MB 정부는 공공요금 억제에도 드라이브를 걸었다. MB는 취임 직후 첫 국무회의에서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공공요금을 억제토록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대중교통요금이나 공공요금에 관해서는 (인상 억제를) 한번 고려해볼 만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한전은 MB 정부 5년간 적자에 허덕여야 했다. MB 정부는 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를 돌파했을 때는 공정거래위원회까지 앞세워 기업들의 가격 인상을 막으려 했다. MB의 “기름값이 묘하다”라는 언급 이후에는 정유업계에서 한동안 휘발유·경윳값을 내리고, 통신업계도 통신비를 인하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3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회의에서 “가용수단을 총동원해 국민의 생활물가 안정에 총력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수출을 독려하기 위한 고환율 정책은 MB 정부의 대표적인 실패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전문가들의 “(원자재 가격 급등 등) 외부적인 물가상승 압력이 커 고환율 정책을 쓰면 수입물가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국민생활이 어려워진다”(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경고에도, MB 정부 경제팀은 수출 중심의 성장에 방점을 찍고 고환율 정책을 고수했다. 여당인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런 인위적 환율 상승 때문에 석 달간 원유 수입에 무려 2조원이 추가로 들어갔다. 단기 부양책에 집착하는 구시대적 경제정책으로 국민 부담만 가중시켰다”고 강만수 경제팀을 비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 MB 정부 경제팀은 수출 중심 성장의 고환율 정책을 고수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까지 더해지면서 물가가 더 폭등했다”며 “친기업 정서가 강한 현 정부에서는 과거 정부의 실패를 거울삼아 시장의 신뢰를 잃지 않도록 적극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원가 절감’에 방점 14년 후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물가 대응은 어떨까. 현 정부가 지난 5월 30일 발표한 민생안정 대책은 직접적인 가격 통제에 나섰던 MB 정부의 대응 방식과 달리 원자재 가격 상승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원가 절감에 방점을 찍었다. 식용유·돼지고기 등 주요 식품 원료 7종에 대해 연말까지 할당관세 0%를 적용한다. 수입 커피와 코코아 원두에 붙는 부가가치세(10%)도 내년까지 한시적으로 면제해 원가를 약 9% 낮춘다. 김치, 된장, 고추장, 간장, 젓갈류, 두부 등은 내년까지 부가세를 면제한다. 정부는 할당관세 확대와 부가세 면제 조치로 약 6000억원 규모의 세수 감소를 예상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가를 강제로 끌어내릴 방법이 없고 만약에 그렇게 하면 경제에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1%포인트가량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물가 인하 추정치에서도 보듯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밀의 경우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 수입하는 국내 식품업체들이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이미 무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부가세를 별도로 환급받고 있는 제조업체들도 많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에 강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만큼 부가세를 면제한다고 하더라도 소비자가 최종적으로 먹는 커피값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취약계층에 대한 현금성 재정 지출로 급한 불을 끄고, 향후 수요자 측 물가상승 압력 상승과 자산 양극화 심화 등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집값 안정에 주력하는 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물가 안정을 도모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현 정부의 물가 대응과 MB 정부의 방식이 유사한 사례도 제법 눈에 띈다. MB 정부는 곡물, 농업용 원자재, 석유제품 등 80여개 품목에 대한 할당관세를 조기에 인하한 바 있다. 출범 첫해인 2008년에 유류세를 인하하고,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유가 환급금이나 유가 보조금을 지급했다. 현 정부가 유통구조 개선을 강조한 것도 MB 정부 때와 비슷한 대응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5월 31일 국무회의에서 “중장기적으로는 유통구조, 경쟁의 강화를 통해 구조적으로 가격을 안정시키는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MB도 당시 “생활과 직접 관련되는 물품은 유통구조만 바꿔도 (가격이 인하)된다”면서 정유사 공급단가의 주 단위 공개, 석유제품별 실제 판매가격의 실시간 공개 등 석유제품 시장 유통구조 개선을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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