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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미국사 뒤집어보기](2) 농업노동자의 아버지 세사르 차베스
[손호철의 미국사 뒤집어보기](2) 농업노동자의 아버지 세사르 차베스(2025. 01. 10 15:30)
2025. 01. 10 15:30 국제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의 안창호 동상 옆에 설치돼 있는 멕시코계 노동운동가 세사르 차베스 동상/ 손호철 제공 “농민들은 한 자루의 감자와 같다.” 농민들이 자기 농지에 매달려 일하는 노동과정의 고립 때문에 한 공장에 모여 일하는 노동자들과 달리 감자처럼 한 자루에 모아놓아도 단결하지 못하고 각각 분리돼 있을 뿐이라는 카를 마르크스의 비판적 평가다. 그러나 중국혁명 등 여러 농민혁명이 보여주듯이 그의 평가는 틀렸다는 지적이 많다. 캘리포니아 등 미국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유럽과 아시아 등 소농 위주의 많은 나라와 달리 미국은 안창호가 일했던 리버사이드의 오렌지농장처럼 대농장들이다. 과거 남부의 대농장은 대부분 목화를 생산했고, 아프리카 노예에 의존했다. 대농장들은 노예해방 후에는 농업노동자에 의존하고 있다. 농업도 공장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을 택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캘리포니아 등 대농장의 노동자들은 멕시코계 등 스페인어권의 히스패닉계와 필리핀계 같은 ‘유색인종’ 이주노동자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그런 만큼 열악한 노동조건에도 불구하고 권리의식은 취약하고 이들의 조직화, 농업노동자 노동조합 건설은 꿈꾸지 못한 어려운 과제였다. ‘농업노동자 진군’ 부조서 동학 농민 떠올라 2021년 1월 막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집무실이 공개됐다. 책상 위 가족사진 뒤에 작은 흉상이 놓여 있었다. 멕시코계 노동운동가 세사르 차베스(Cesar Chavez·1927~1993)의 흉상이다. 그는 농업노동자 노조의 건설이라는 어려운 과업을 이룬 전설적 지도자다. 우리는 아프리카계 민권지도자 마틴 루서 킹은 잘 알고 있지만, 세사르 차베스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하지만 그는 ‘멕시코계의 마틴 루서 킹’이다. 특히 히스패닉계가 인구의 20%로 아프리카계(13%)를 넘어서 미국 최대의 소수민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2014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차베스의 생일인 3월 31일을 연방 공휴일로 선포했다. 차베스 무덤 뒤에 새겨진 농업노동자 파업 부조는 한국의 동학농민들을 연상시킨다./ 손호철 제공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북으로 200㎞를 달려 베이커스필드 근처에 가면 역사적 유적이 나타난다. ‘세사르 차베스 국립기념물(National Monument)’이다. 그가 말년을 보낸 농장을 기념물로 만든 것이다. 기념물로 들어가자 아름다운 정원에 묘지가 나타났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답게 나무 십자가 앞에 차베스 부부가 누워 있다. 그 뒤에는 작은 벽 분수 위에 부조가 눈길을 끈다. 차베스를 따라 피켓을 들고 진군하는 농업노동자들의 모습이다. 그 모습이 전북 정읍에 조각된 동학농민군의 진군 모습과 빼닮았다. 갑자기 차베스가 전봉준처럼 보였다. 농업노동자의 처참한 생활을 고발하는 사진들. ‘비미국적 꿈’이라는 제목이 가슴을 후빈다. / 손호철 제공 ‘비미국적(Un-American) 꿈’. 전시관에 들어가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단어다. ‘대부분 유색인종인 이주농업노동자는 커뮤니티로부터 고립된 캠프에 살며 일해야 했고, 농장을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초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기 힘들었으며 인종주의와 멸시 속에 살아야 했다.’ 이주농업노동자의 삶을 압축한 표현이다. 게다가 지독한 가난이 따라다녔다. 전시관에 만들어 놓은 초라한 숙소 모형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캘리포니아 농업노동자의 처절한 삶을 그린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표현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 분노의 포도가 하나 가득 가지가 휘게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온 차베스 역시 대공황으로 경영하던 농장이 망한 뒤 이주농업노동자가 된 부모를 따라 여기저기 옮겨 다녀야 했다. 잦은 전학 때문에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다. 허드레 노동현장을 전전하던 그는 현실탈출을 위해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커뮤니티 서비스 조직(CSO)에서 일하던 그는 1962년 노동운동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는 농업중심지인 중부 캘리포니아 델라노로 이사해 실업수당으로 버티며 농업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오랜 노력 끝에 그는 1964년 자신의 집을 사무실로 해서 전국농업노동자협회(NFWA)를 출범시켰다. 1965년 장미재배노동자들의 부탁으로 파업을 주도해 3일 만에 임금인상을 관철했다. 명성을 얻은 그는 역사적인 델라노 포도 파업에 뛰어들었다. 그가 이끄는 NFWA는 이 파업을 원래 시작했던 농업노동자조직위원회(AWOC)와 통합해 통합농업노동자들(UFW)이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조합원이 7만명으로 늘어났다. 5년간 계속된 투쟁에서 그는 주 정부가 있는 새크라멘토까지 항의 행진도 하고 캘리포니아산 포도 불매운동을 벌이는 등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다. 그는 간디를 따라 비폭력운동을 주장했다. 매우 종교적이었던 그는 기도회를 열고 서양에서는 드물게 단식투쟁을 통해 여론에 호소했다. 그 결과 임금인상, 작업조건 개선뿐 아니라 포도 포장지에 노동조합의 승인을 받았다는 표시를 하도록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전국적인 인물로 성장했고,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에까지 등장했다. 우리가 먹고 있는 캘리포니아산 수입 오렌지에는 이들 이주농업노동자와 차베스의 눈물이 묻어 있는 것이다. 정신혁명을 강조한 차베스의 지나치게 종교적 측면은 주로 사회운동과 갈등을 일으켰다./ 손호철 제공 ‘만국의 노동자 단결’은 이상론일까 전시관에는 1965년 델라노 포도 파업을 주도하는 젊은 차베스의 사진이 우리를 맞는다. 지도자들의 소개를 보니 차베스뿐만이 아니라 AWOC의 레리 이투리옹 같은 필리핀계 농민노동자 지도자들도 포함돼 있어 투쟁이 ‘소수민족 연합투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65년 역사적인 포도 노동자 파업을 주도한 세사르 차베스 사진 / 손호철 제공 전시관에 들어가면 파업 시위하는 농업노동자 사진이 맞이한다./ 손호철 제공 “우리 혁명은 정신과 가슴의 혁명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기고 있다.” 멕시코계답게 노동운동가로는 특이하게 신앙심이 강하고 종교적 투쟁에 크게 의존한 만큼 그의 ‘정신혁명론’이 크게 쓰여 있다. 이 같은 경향은 말년에 그를 ‘주류운동’으로부터 고립시켰다. 그는 자신과 다른 견해를 용납하지 않는 권위주의적 리더라는 한계도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좌파’를 ‘미국 공산당의 프락치’라는 근거 없는 죄명을 씌워서 숙청해버렸다. FBI에 따르면 미국 공산당이 UFW에 침투했다는 증거는 없다. 미국의 농업노동자 중 40%는 멕시코 등에서 밀입국한 불법노동자들이다. 그는 이들을 투쟁을 약화시키는 ‘적’으로 간주함으로써 인권단체들과 갈등해야 했다. 차베스 같은 지도자가 외국인 노동자를 적으로 간주해 이들을 고용하지 말라는 시위를 벌인 민주노총 건설노조 같은 편협한 시각을 가졌다니 충격적인 일이다. 기념관을 떠나며 나는 물었다. 국경을 넘은 노동자들의 연대는 불가능하고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라는 마르크스의 호소는 낭만적 이상론에 불과한 것인가?
손호철의 미국사 뒤집어보기
캐나다도 그린란드도 미국 땅? 트럼프의 ‘계산된 도발’
캐나다도 그린란드도 미국 땅? 트럼프의 ‘계산된 도발’(2025. 01. 06 06:00)
2025. 01. 06 06:00 국제
“캐나다는 미의 51번째 주” “그린란드 매입” 등 동맹국에 선 넘은 도발 협상력 키우려는 전략 관측…NYT “팽창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 성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2월 22일(현지시간) 미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터닝포인트 USA’ 주최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특유의 허풍일까, 계산된 도발일까. 오는 1월 20일 백악관 입성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남의 땅 눈독 들이기’가 선을 넘고 있다. 그는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州)’로 칭하는가 하면, 파나마 정부를 향해선 25년 전 운영권을 넘긴 파나마운하를 환수하겠다고 위협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덴마크령인 그린란드가 미국에 편입돼야 한다며 상대 의사와는 무관한 매입 주장까지 펼쳤다. 취임 전부터 타국에 대한 주권 침해에 해당하는 발언을 연이어 내놓으며 동맹국까지 도발하고 있다. ■트럼프, 또 남의 땅에 눈독…선 넘는 도발 트럼프는 지난해 12월 1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를 ‘주지사’라고 칭하는 등 캐나다 국민감정을 건드렸다. 그는 이어 12월 25일에도 재차 SNS에 글을 올려 “캐나다가 우리의 51번째 주가 된다면 세금은 60% 이상 감면되고, 기업들은 규모가 즉시 두 배가 될 것이며, 세계 어느 나라보다 군사적으로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또 자신이 캐나다 아이스하키 전설인 웨인 그레츠키를 만나 캐나다 총리 출마를 권유했다며 “그 자리는 곧 ‘캐나다 주지사’로 알려지게 될 것”이라고 도발했다. 트럼프는 캐나다 국민이 그레츠키를 총리로 만들기 위한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뜬금없는 주장까지 내놨다. 트럼프의 연이은 도발은 양국이 관세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던 와중 노골적으로 상대를 자극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캐나다 주권을 무시하고 동맹국 정상을 주지사로 낮춰 부르는 도 넘는 ‘조롱’에 미국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상대국의 분노를 부르는 트럼프의 도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12월 21~22일에는 파나마 정부가 미국에 ‘통행료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며 파나마운하를 되찾겠다고 주장했고, 덴마크령인 그린란드를 미국이 사겠다는 의향도 재차 밝혔다. 그는 파나마 정부의 거센 항의에도 자신의 SNS에 미국 국기가 나부끼는 운하 사진을 게시하며 “미국 운하(United States Canal)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그린란드에 대해선 “국가 안보와 전 세계의 자유를 위해 미국의 그린란드 소유권과 지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그는 “그린란드 주민들이 미국에 오기를 원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트럼프가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집권 1기인 2019년에도 그린란드를 미국이 사겠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했다가 덴마크의 거센 반발을 사며 외교 갈등을 빚었다. 다시 시작된 그의 도발에 무테 에게데 그린란드 총리는 성명을 내고 “그린란드는 우리의 것이고, 매물이 아니다”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덴마크 정부도 그린란드를 팔 생각이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실현 가능성 없는데…트럼프 왜 이러나 아무리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라고 할지라도 타국 영토를 강제로 빼앗는 것은 전쟁을 벌이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현실적으로 미국이 파나마운하의 운영권을 돌려받기도 쉽지 않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트럼프가 이렇듯 특유의 허풍과 위협을 계속하는 것은 상대국을 흔들어 협상력을 키우기 위한 계산된 전략이란 분석이 나온다. 파나마운하 통행료 인하나 캐나다·덴마크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방위비 분담금 인상, 미국으로 오는 불법 이민자 및 마약류 차단 조치 등 미국의 상업적·안보적 이익을 끌어내기 위한 ‘협상용 도발’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단순한 엄포는 아닐 수도 있다는 해석도 있다. 상업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인 트럼프는 철저하게 ‘거래’의 관점에서 외교 문제에 접근해왔다.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고 판단하면 미국이 오랫동안 고수해온 가치나 동맹도 개의치 않겠다는 행보를 보여왔다. 다른 나라의 주권을 불가침 영역으로 여기지 않는 듯한 태도를 내비친 적도 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당시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신 그를 “천재적”이라고 추켜세웠다. 특히 트럼프의 그린란드 매입 발언은 과장된 수사나 농담이 아니며 향후 심각한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가 집권 1기에 이어 또다시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인 것은 안보 및 상업적 차원의 계산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북극권의 전략적 요충지인 그린란드를 선점해 중국 및 러시아와의 ‘북극 패권 경쟁’에서 승기를 잡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기후변화로 그린란드의 80%를 덮은 얼음이 빠르게 녹으면서 그 안에 매장된 희토류를 눈독 들이는 국가가 많아졌고, 그린란드를 지나는 북극 항로 개척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열강이 자원 개발에 협력하자며 그린란드에 앞다퉈 구애에 나선 이유다. 그린란드에는 전기차 제조에 필수적인 희토류 50종 중 43종 이상이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린란드를 미국이 소유하거나 적어도 통제 아래 둔다면, 중국 희토류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진영 인사들이 최근 몇 주간 그린란드를 실질적으로 획득하거나 통제할 방안을 비공식적으로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이런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가 전통적인 고립주의와 달리 군사력을 토대로 타국 영토를 탐내는 팽창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 성격을 띤다고 짚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의 이런 사고관이 ‘미국 우선주의’라는 구호를 먼저 썼던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재임 1913~1921)의 외교 정책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윌슨은 유럽에서 발생한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에서 미국을 벗어나게 하겠다며 ‘고립주의’를 표방했으나, 중남미 국가들에 대해선 개입주의 성향을 보였다. 트럼프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손을 떼려는 것처럼 유럽에선 전쟁을 피하며 고립주의 기조를 보이되, 미국 주변에선 확장주의적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손호철의 미국사 뒤집어보기] (1) 안창호가 세운 미주 최초의 코리아타운
[손호철의 미국사 뒤집어보기] (1) 안창호가 세운 미주 최초의 코리아타운(2024. 12. 27 15:40)
2024. 12. 27 15:40 국제
트럼프 주의로 상징되는 격동을 겪고 있는 미국. 그 뿌리를 찾아서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가 2024년 말 두 달간 2만9000㎞를 달려 답사한 ‘미국사 뒤집어보기’를 연재한다.(편집자 주) 리버사이드. 미국 남캘리포니아의 중심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동쪽으로 100㎞쯤 떨어진 작은 도시다. 나는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내려 렌터카를 찾자마자 2시간을 달려 리버사이드로 향했다. 중심가에는 아프리카계 민권운동의 대부인 마틴 루서 킹, 멕시코계 노동운동의 대부인 세사르 차베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길 건너편에도 비폭력저항 운동의 정신적 지주인 인도의 간디 동상이 눈에 띄었다. 세계적인 이들 운동가 사이에 친숙한 중년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 옆에는 반갑게도 한글이 보였다. ‘도산 안창호 기념공원’. 동상의 주인공은 안창호(1878~1938)였다. 우리 독립운동가가 킹 목사, 차베스, 간디와 어깨를 나란히 하다니! 리버사이드 중심가에 있는 ‘도산 안창호 기념공원’ / 손호철 제공 안창호 동상 옆에 있는 마틴 루서 킹 동상 / 손호철 제공 한 말의 격동 속에 ‘민족 대이주’, ‘코리아 디아스포라’가 시작됐다. 그중 한 곳이 미국이다. 1903년 1월 13일 인천에서 갤릭호에 몸을 실은 121명의 젊은이가 사탕수수노동자로 하와이에 도착했다. 공식적인 첫 미국 이민이다. ‘기회의 땅’ 미국을 찾는 한인은 계속 늘어나 미국 내 한인은 미국 인구국이 집계한 합법적 인구만 2017년 기준 19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서울특별시 나성구’라는 별명을 가진 로스앤젤레스에는 23만명이 살고 있고, 거대한 코리아타운이 있다. 이보다 앞서 최초의 코리아타운은 로스앤젤레스가 아니고 리버사이드에 세워졌고, 이를 주도한 사람이 독립운동가 안창호였다. 평안도에서 태어난 도산은 1894년 서울로 이사해 영어를 배우고 기독교를 믿기 시작했다. 서재필의 독립협회에서도 활동했다. 1902년 결혼한 도산은 서양을 배우기 위해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왔다. 우여곡절 끝에 오렌지농장으로 돈이 넘쳐나고 일자리가 많았던 리버사이드에 왔다. 여기에 정착한 그는 이곳에 많은 한인을 불러들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일본 영사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하와이 한인들을 불러올 수 있도록 조치했다. “정직이 우리의 무기다.” 도산은 일본 노동자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일본 노무 관리관의 훼방에도 한인들이 이곳에 자리 잡는 길은 성실하게 일해 백인농장주들의 신임을 얻는 것으로 판단했다. “오렌지 하나도 정성껏 따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다.” 그는 솔선수범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다른 한인들도 사명감을 가지고 그의 말을 따랐다. 그의 전략은 맞아떨어져 백인농장주들은 한인을 대거 고용하기 시작했고, 한인 노동자들을 전담할 한인노동국도 만들었다. 리버사이드 오렌지농장에서 일하는 도산 안창호 사진이 샌프란시스코한인회관의 파차파 캠프 전시회에 전시 중이다. /손호철 제공 ‘도산 안창호 기념공원’에 오렌지를 따는 도산의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 손호철 제공 작업복 차림으로 오렌지를 가득 따는 도산의 사진이 누구보다 솔선수범한 그의 리더십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도산 안창호 기념공원’에 있는 그의 동상 옆에는 오렌지를 따는 그의 모습 등을 새긴 동판이 있다. “아니 왜 오렌지 따는 작업복 차림의 안창호가 아니라 양복을 입은 동상을 만들었지요?” 한인 미주 이민사와 안창호 연구의 권위자로 공원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 리버사이드의 장태한 교수의 답변이 충격적이다. “원래 작업복으로 하려고 했는데 한국 정부가 양복으로 하라고 해서.” 한심한 관료주의라니! 다행인 것은 장 교수 주도로 미주교포들이 모금해 동상을 오렌지 따는 안창호 동상으로 바꾸기로 했다는 것이다. 1905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세운 미주 최초의 코리아타운인 파차파 캠프 안내표지 / 손호철 제공 이번 답사를 위해 사전 조사를 하기 전에는 ‘실력양성론’ 등의 문제점 등 때문에 개인적으로 안창호를 아주 높게 평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전 조사와 답사를 통해 그를 다시 평가하게 됐다. 과연 우리 독립운동가 중에 안창호처럼 직접 노동자로 일하며 대중을 조직하고 운동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노동 현장에 위장 취업해 노동운동을 조직했던 조선공산당 핵심 등 좌파운동가들을 제외하면 없을 것이다. 교민들이 낸 애국헌금을 가지고 사치스럽게 생활했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이승만은 말할 것도 없고 김구 등 임시정부 지도부 대부분도 안창호와는 달랐다. “여기가 최초의 코리아타운인 파차파 캠프입니다.” 장 교수는 나를 ‘도산 안창호 기념공원’으로부터 2㎞ 떨어진 한적한 곳으로 안내했다. 세월이 100년 이상 지난 만큼 코리아타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리버사이드시 문화관심장소 파차파 캠프’라는 팻말이 역사를 증언해주고 있었다. 팻말을 보고 있자니 조국을 잃고 태평양의 파도를 넘어 이곳에 와 자리 잡아 고된 농장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오렌지 따는 것이 나라를 되찾는 것이라 생각했고, 어렵게 번 돈을 조국 독립운동에 기꺼이 내놓았던 옛 선조들의 체취가 느껴져 울컥했다. ‘도산 안창호 기념공원’에 대해 설명하는 장태한 UC 리버사이드대학 교수 /손호철 제공 이곳은 원래 유니온 퍼시픽 철도직원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일종의 판잣집 동네로 철도에 가까워 매우 시끄러웠고, 1층 목조건물이 20여 채 있었다고 한다. 주목할 것은 파차파캠프가 가족중심의 공동체였으며 자치와 민주주의 교육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술, 도박, 아편 금지’ 등 엄격한 규율을 정하고 위반하는 사람에게는 벌금을 내게 했고, 자치를 했다. “이 캠프는 ‘민주주의 한인공동체’로, 우리 역사에서 최초의 민주공화주의의 실험장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 교수의 평가다. 미주이민 1세대로 리버사이드에 왔다가 27세에 사망한 김태석의 묘 / 손호철 제공 ‘김태석의 묘, 1898-1925’. 장 교수가 안내한 가까운 공동묘지에도 낯익은 한글이 나타났다. 리버사이드 이민 1세대의 묘지였다. 격동의 19세기 말에 한반도에서 태어나 20세기 초 어린 나이에 태평양을 건너 리버사이드로 온 그는 오렌지 농장에서 고생하다가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이곳 먼 이국땅에 묻히고 만 것이다. 리버사이드 코리아타운이라는 첫 답사를 끝내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문득 떠오른 것이 비극적인 도산의 이후 삶이다. 그는 1919년 임시정부 설립 움직임이 생기자 가족들은 미국에 남겨두고 혼자 성금을 모아 중국 상하이로 떠났다. 임시정부 내무총장 등으로 활동하던 그는 1924년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를 기다린 것은 ‘빨갱이’, 정확히 표현해 ‘볼쉐비스트’라는 투서였다. 그는 결국 추방당하고 만다. 이후 상하이에서 일제에 잡혀 와 투옥됐고, 병보석으로 풀려나 세상을 떠나야 했다. 투서의 배후와 관련해 연구자들은 이승만이 미주 한인사회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안창호 등을 평소 모함했다는 사실, 이승만이 평소 안창호·박용만·김규식을 공산주의자라고 미국 정보기관에 통고했다고 자랑하곤 했다는, 이승만과 함께 활동했던 한 구미위원회 위원의 증언에 주목한다. 한국 정치의 비극인 ‘정적 빨갱이 만들기의 원조’가 바로 미국이고, 안창호가 그 첫 피해자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나는 씁쓸하게 리버사이드를 떠났다.
손호철의 미국사 뒤집어보기
[신간] 쿼바디스, 미국 민주주의
[신간] 쿼바디스, 미국 민주주의(2024. 11. 06 06:00)
2024. 11. 06 06:00 문화/과학
병든 민주주의, 미국은 왜 위태로운가 토마 스네가로프, 로맹 위레 지음·권지현 옮김·서해문집·1만8800원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고, 미국은 민주주의의 나라라고 하는데 미국 대선 국면에선 혐오, 비방, 폭력 등 내부 갈등이 극대화한다. 이를테면, 4년 전 미 대선 이후 의회에서의 폭력 사태 같은 일들. 프랑스 저널리스트인 토마 스네가로프와 역사학자인 로맹 위레는 미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한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기원과 발전, 위기의 경로를 ‘결정적 순간’ 여섯 가지를 꼽아 설명한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구상한 미국의 민주주의는 무엇이며, 이는 유럽의 제국주의와는 어떻게 조응했는지, 또 미국이 힘 있는 국가로서 세계적인 권위를 획득하기까지 고립과 확장의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작용했는지 설명한다. 베트남 전쟁,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는 동안 미국 민주주의가 어떻게 변화, 혹은 위기를 맞았는지 정리한다. 특히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문헌 자료와 지도, 그래픽 등을 풍부하게 넣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한국은 미국과 다른 역사를 써왔지만, 현재 ‘민주주의의 위기’를 들여다보는 것은 필요한 일일 것이다.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김도미 지음·동아시아·1만7000원 사회활동가인 김도미가 암 경험자로서 쓴 에세이. 암 투병기나 극복기가 아니다. 한국사회의 ‘환자 역할’에 대한 불만 사항을 쓴다. 김도미는 암 경험자를 둘러싼 근거 없는 항암 정보와 ‘절대 안정’이라는 신화가 오히려 암 경험자의 건강을 위협하고 사회 복귀를 가로막는다고 말한다. 김도미는 암 경험자들이 박탈당한 자유에 대해 말한다. 그는 환자를 지나치게 통제하고 죄책감을 강요하는 암 치유 문화를 비판하며 “몸에 대한 윤리는 나를 잘 돌보는 데에도 있지만 나를 즐겁게 하는 데에도 있다”고 역설한다. 기존 의료·복지제도가 환자들을 과열된 암 치유 문화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한다.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유홍준 지음·창비·2만2000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의 산문집이다. 인생의 한 장면을 회고한 글들, 문화재와 관련한 이야기들, 백남준·신영복·홍세화·김민기 등 예술가와 스승, 벗에 관해 쓴 글들을 모았다. 글쓰기 조언을 담은 ‘문장수업’을 부록으로 실었다. 관조하는 삶 한병철 지음·전대호 옮김·김영사·1만6800원 재독 철학자인 한병철은 현대사회에서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삶’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그로 인한 인간 행위는 인간성과 자연을 훼손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무기력한 상태와는 다른, ‘무위’가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창조적인 삶의 태도라고 역설한다. 눈치 없는 평론가 서정민갑 지음·오월의봄·1만7200원 자신을 ‘대중음악의견가’로 칭하는 서정민갑이 20여 년간 음악을 듣고 쓰는 노동과 생활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 권력이든 민중음악이든, 그는 ‘눈치 보지 않고’ 의견을 낸다. 평론의 기준, 내용, 형식, 역할 등 대중음악평론가로서의 ‘직업관’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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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해의 경제망원경](33) 강한 달러와 미국의 지역경제
[서중해의 경제망원경](33) 강한 달러와 미국의 지역경제(2024. 08. 16 16:00)
2024. 08. 16 16:00 경제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J. D. 밴스 상원의원(오하이오)이 지난 7월 30일(현지시간) 네바다주 리노에서 유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3년 3월 8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정례회의에서 공화당 J. D. 밴스 상원의원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오하이오주를 대표하는 초선이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15일 이번 대통령선거의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그를 지명했다. 밴스 상원의원의 질문은 통상적인 현안이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여서 짧은 시간의 문답으로는 다루기 어려운 것이었다. 동료 공화당 의원들도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질문 내용은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러스트벨트 지역이 공화당을 지지하는 경제적 이유를 보여준다. 조금 길지만 밴스 상원의원의 질문을 보자. “애팔래치아 역사와 자원의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지난 80년 가까이 국제경제에서 가장 큰 특권 중 하나인 강한 달러의 혜택을 누렸습니다. 달러는 세계 기축통화로서 역할을 해왔습니다. (···) 이는 분명히 미국인의 구매력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우리는 더 저렴한 수입품을 즐기고, 미국인들은 해외여행을 할 때 저렴한 비용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생산자들에게는 대가가 따릅니다. 어떤 면에서는 기축통화 지위가 미국 소비자에게는 막대한 보조금이지만 미국 생산자에게는 막대한 세금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경제를 보면 금융 엔지니어와 다양한 컨설턴트는 많지만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 기축통화 지위와 통화에 대한 통제력 부족이 아마도 그것을 초래한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이에 대한 의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준비 통화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요?” 강달러, 소비자는 보조금 생산자는 세금 앞선 인용문의 애팔래치아는 밴스 상원의원이 태어나고 자란 오하이오를 포함한 러스트벨트 지역을 의미한다. 질문의 요지는 기축통화로서 달러와 지역경제의 성쇠다. 질문에는 사실관계에 대한 오류가 있다. 오류는 달러가 항상 강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교역 상대국의 물가를 반영한 환율, 즉 실질 실효환율을 보면 지난 30년간 처음 10년(1994~2002) 동안에는 달러가 강세였다. 그 이후 2008년까지는 약세를, 그리고 최근 10년은 강세를 이어오고 있다. 사실관계에서 약간의 오류가 있긴 하지만, 밴스 상원의원의 발언은 미국경제가 처한 상황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을 잘 보여준다. 위의 인용문이 시사하는 바를 국내적 측면과 국제적 측면으로 나눠서 검토해 보자. 국내적 측면에서 주목할 부분은 “소비자에게는 보조금이지만 생산자에게는 세금”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밴스 상원의원의 출신 지역인 오하이오주와 같이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강했던 지역의 현실을 대변한다. 제조업의 생산과 소비에서 미국 제품 대신 더 저렴한 중국산을 수입하게 되면 해당 지역의 제조업은 타격을 입는다. 강한 달러는 소비자들이 더 값싸게 외국 물건을 구매할 수 있게 해 소비자에게는 일종의 보조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생산자는 외국에서 들어온 더 싼 제품과 경쟁해야 하기에 생산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논리는 해당 지역의 관점에서 보면 맞는 말이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기술혁신을 선도하는 캘리포니아의 경우는 강한 달러가 세계적인 기술 기업들의 성장과 활동을 저해하지 않는다. 이들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소비자들이 선망하고 구매한다. 오히려 강한 달러는 이들 기업과 이들 지역에 더 많은 부를 가져다준다. 한 국가경제 안에서 지역은 각 지역의 입지 우위에 따라 특화산업을 갖게 된다. 지역이 어떤 산업에 특화하고 있는가가 지역의 소득수준을 결정한다. 밴스 상원의원처럼 지역의 성쇠를 달러 가치에 결부시키면 지역 쇠퇴의 근본적인 원인을 호도하게 된다. 지역경제의 쇠퇴에는 주력 산업의 진화과정에서의 정체, 낙후된 인프라와 지역의 교육 시스템 문제, 특히 지식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대학이 제대로 역할을 못 하는 경우, 인구 고령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또 지역경제 성장에는 주력 산업의 혁신과 경제 인프라 개선, 대학의 선도적 역할, 적절한 정책, 인구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환율의 변동은 단기적으로는 경제에 호황과 불황, 즉 변동을 초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의 기초체력과 경쟁력이 환율을 결정한다. 한 국가 내에서 지역경제의 성쇠는 이런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다. 지역이 어떤 산업을 성장엔진으로 가지는가가 지역의 소득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어떤 산업 특화했는지가 지역 소득 결정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2023년 미국의 일인당 국내총생산(GDP)은 평균 6만6813달러다. 세계금융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가 있는 뉴욕주의 일인당 GDP는 전체 평균보다 36% 많은 9만730달러다. 정보통신 기술혁신의 원천지인 캘리포니아는 평균보다 24% 많은 8만2975달러다. 러스트벨트 지역의 하나인 오하이오주는 전체 평균보다 12% 적은 5만9241달러다. 뉴욕주의 일인당 GDP는 오하이오주보다 1.5배 많다. 미국의 지역 간 소득 격차는 산업구성의 차이로 상당 부분 설명된다. 환율은 부차적이다. 자원 부국이 자원 수출로 경제 호황을 누리지만 환율이 고평가돼 제조업이 쇠퇴하고 경기 침체를 겪는 현상을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이라고 한다. 밴스 상원의원은 질문에서 이 현상을 ‘자원의 저주’로 표현했다. 하지만 경제학적으로 두 개념은 엄밀하게 구분된다. 밴스 상원의원은 쇠락한 공업지대의 백인 하층민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회고록으로 2016년 출판한 <힐빌리의 노래>는 이들의 삶을 그렸다.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밴스 상원의원의 정치적 행보는 이들 지역주민의 이해를 대변한다. 경제구조의 고도화 과정에서 탈락한 지역민들은 종종 실패 구실을 타자에게로 전가한다. 이민자들에게 원인을 돌리는 것이다.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뺏어간다고 여긴다. 인종 갈등의 근저에는 경제적 어려움이 놓여 있다. 밴스 상원의원의 질문에 파월 의장은 정면 대응을 피한다. 원칙적인 답변을 내놓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달러 위상에 대한 확신을 표명했다. 이들의 짧은 질의응답은 세계 금융 시스템의 본질을 배경으로 한다. 달러 패권은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이 사안은 다음 칼럼에서 다룰 것이다.
서중해의 경제 망원경
미국 대선 ‘변곡점’…한국 부담만 늘어나나
미국 대선 ‘변곡점’…한국 부담만 늘어나나(2024. 07. 29 06:00)
2024. 07. 29 06:00 정치
바이든 사퇴로 한국 외교·안보 전략도 변곡점 한국, 누가 되든 ‘현상유지’에만 추가비용 들 듯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겸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 7월 24일 흑인 여대생 클럽 ‘제타 파이 베타’가 주최한 행사에 참여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 대통령선거지만 미국만의 선거는 아니다.’ 한국시간으로 지난 7월 22일 새벽 전해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재선 도전 포기’ 속보는 해당 명제가 모순이 아님을 보여준다. ‘세계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적합한지와 별개로 ‘미국 대통령이 누구냐’는 진영화·파편화된 국제질서에서도 여전히 최고의 관심거리다. 특히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에 편승한 일부 국가들에는 생존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유럽의 우크라이나, 중동의 이스라엘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한국이다. 실제로 한국이 직면한 안보 환경을 ‘종속변수(Dependent Variable)’로 놓으면 북한은 ‘상수(Constant)’, 미국 행정부는 ‘독립변수(Independent Variable)’가 된다. 과거 대북 ‘협상력’을 또 다른 ‘독립변수’로 만든 정부도 있었지만, 적어도 윤석열 정부에선 미국 외의 독립변수는 보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한국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누구이고, 어떤 한반도 정책을 쓰느냐’에 따라 생존 환경이 달라진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로 미국 대선에 변곡점이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한국 외교·안보 전략에도 중대한 변곡점이 생겼다는 의미다. 바이든 대통령이 비운 대선후보 자리는 그의 러닝메이트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채울 것이 확실시된다. 오는 8월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는 해리스 부통령의 대선후보 추인식이 될 전망이다. 이미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공화당 후보로 나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일부 미국 언론 등을 중심으로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미국 대선은 아직도 100여 일 가까이 남았다는 점이다. 석 달 전, 바이든 대통령의 중도하차를 확신한 사람은 없었다. 또 간접선거와 승자독식 방식의 미국 대선에서는 전체 여론과 선거 승자가 같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새롭게 형성된 대선후보 간 대결 구도가 낯설지가 않다는 점도 짚어봐야 한다. 2016년 미국 대선도 ‘최초의 여성 대통령’과 ‘백인 남성 트럼프’의 대결이었다. 결과는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패배였다. 생존을 위한 다른 ‘독립변수’가 없는 한국은 해당 상황을 보다 냉정한 시각으로 지켜봐야 한다. 역전인가, 균형인가 올해 미국 대선이 주목받는 것은 이른바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s)’로 분류될 수 있는 여건에서 치러지기 때문이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에 따르면 특정 선거가 중대 선거로 인식되기 위해선 ‘두 후보 간 선명한 입장 차이’가 주요 요건이 된다. 미국 사회는 이미 노동, 이민, 성소수자 등 사회문화 현상에 대한 집단 간 입장차가 뚜렷하다. 각각의 현안을 두고 진보, 보수 정치 진영 역시 한 가지 입장을 정하고 대립하고 있다. 이를 이른바 ‘문화 전쟁(culture war)’이라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벌여온 대결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해리스 부통령도 자유로울 수 없다. 문제는 인도, 자메이카계 다문화 가정의 흑인 여성인 해리스 부통령의 ‘정체성’이 51 대 49로 판가름 나는 구도의 선거에서 장점이 될 수 있는가이다. 양극화된 사회에서 치러지는 전국단위 선거는 지지층을 최대한 결집하고, 상대방 지지층의 1%를 빼앗아오는 것으로 승패가 결정된다. 민주당의 2016년 패배와 2020년 승리 역시 해당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즉 바이든 대통령은 공화당 지지층의 결집을 와해할 만한 요소를 갖고 있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하상응 서강대 정외과 교수는 “고령의 백인 남성 이미지를 가진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당이 여성, 성소수자, 인종소수자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기에 적당했다”며 “민주당이 승리하기 위해선 다양성, 형평성, 포괄성(diversity, equity, inclusion: DEI)에 기반한 정체성 정치가 가져오는 역풍을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24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재선 불출마 결정에 대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문제는 바이든 대통령의 중도사퇴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는 점이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해리스 부통령의 부상과 함께 ‘정체성’ 정치는 다시 시작됐다. 이는 자연히 지지층 결집을 불렀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이 이를 방증한다. 동시에 이는 서서히 반대쪽 진영의 결집도 부른다. 이들은 소수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주류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논리로 무장한다. 양 진영이 결집한 상태에서 치러진 전국단위 선거의 결과는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한 2016년 대선이다. 선거 공학적으로 불리한 정체성 정치를 탈피하기 위해 해리스 부통령 역시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공식 석상에서 ‘여성’, ‘흑인’을 강조하기보다 ‘전직검사(해리스 부통령) 대 범죄인(트럼프 전 대통령)’의 구도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주류 언론, 민주당 지지층은 여전히 정체성 정치에 더욱 관심을 갖고 홍보하고 있다. 서 교수는 “지금 나오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는 해리스가 선거에서 우위를 점했다가 아닌, 이제야 트럼프와 지지율이 비슷해졌다로 해석해야 한다”며 “결국 승부처인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등 중·서부 3개 경합주에서 승리해야 하는데 백인, 노동자 계층 등과 접점이 없는 해리스가 이들을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하 교수 역시 “해리스 부통령이 승리하기 위해선 바이든 정부가 지난 4년간 추진해온 백인 및 중산층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을 얼마나 잘 계승하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은 양 진영의 대외전략이 일치하는 역설을 만든다는 점이다. 민주당, 공화당 할 것 없이 보다 강경한 ‘미국 우선주의’의 확립이다. 부담 늘어나는 한국 민주당 정권의 연장 가능성이 녹록지 않은 상황은 한국의 부담을 키운다. 이는 실상 ‘민주당의 동맹’과 ‘공화당의 고립’이 같은 방향을 지향하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가 요구가 바이든의 동맹 간 ‘경제협력 강화’로 치환되는 식이다. 이는 모두 미국으로 자본이 흘러가는 방향이다. 바이든 행정부 출신인 해리스 부통령 역시 외교·안보정책이 크게 다를 수 없다. 그가 당선되면 중국에 대한 과학·기술 공여 금지와 동맹 간 공급망 재편이 지속될 전망이다. 선거가 어려워질수록 동맹을 향한 기여 요구가 커질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도 한반도 문제에 있어선 바이든 대통령과 같이 사실상 “입장 없음”이 유지될 전망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7월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월터 E.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공동취재기자단 오히려 한반도 문제의 현상 변화 측면에선 트럼프의 복귀가 나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7월 18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북한 김정은과 잘 지냈다. 많은 핵무기를 가진 누군가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가 재집권하면 나는 그(김정은)와 잘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 간 개인적 친분을 전제로 한 발언이지만 이를 북·미, 남북·미 대화로 풀어낼 수 있느냐는 한국 정부의 해결 의지, 역량에 달렸다. 이를 두고 미국을 방문 중인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미국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이야기는 트럼프와 김정은 간의 또 다른 정상회담과 같은 인게이지먼트(관여)가 가능할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고 평가절하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도 분명히 있음에도 그의 발언에 대한 대비는 하고 있지 않는다는 의미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해리스 부통령이든, 트럼프 전 대통령이든 한반도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작다. 어느 쪽이 당선되든 안보를 미국에 편승한 상황에서 한국의 부담은 늘어날 전망이다. 결국 ‘문제해결’이 아닌 ‘현상유지’에도 추가 비용이 드는 셈이다.
[서중해의 경제망원경](32) 미국 예외주의는 지속할 수 있을까
[서중해의 경제망원경](32) 미국 예외주의는 지속할 수 있을까(2024. 07. 26 16:00)
2024. 07. 26 16:00 경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7월 22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 선거대책본부에서 발언하던 도중 활짝 웃고 있다. AP 연합뉴스 올해 7월 들어 미국의 대통령선거 관련 뉴스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총격을 당했지만 살아남았고, 민주당은 후보를 조 바이든 대통령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으로 교체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이민과 낙태, 기후변화 대응, 총기 규제, 사회보장 등에서 서로 대립하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강경한 입장과 미국 제조업을 부흥하기 위한 산업정책, 통상정책은 대체로 궤를 같이한다. 다만 트럼프가 재선되면 미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 중심의 외교정책을 더 강하게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정부가 시행한 정책을 뒤집을 수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관세 폭탄을 예고한 상태다. 혼란스러운 미국의 대선 과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질서를 선도해온 미국의 국제정치 리더십이 쇠퇴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국내정치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립각을 세우지만, 보호주의 무역을 추진하고 미국 내 산업 육성을 우선시하는 데에서는 양당이 거의 같은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미국의 지배에 의한 세계 평화)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로운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 “혼란스러운 대선, 미 국제 리더십 쇠퇴 방증” 선진국 정치·경제 지형에서 미국이 두드러진 점은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정당이 없고 경제적으로는 소득재분배에 기반을 둔 복지국가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드러진다고 한 것은 유럽 선진국에 비교할 때 그렇다는 얘기다. 유럽 선진국에는 영국의 노동당이나 독일의 사회민주당 등 사회주의적 가치를 표방하는 정당이 있고 정권을 잡기도 한다. 반면 미국에서는 1901년 창당된 미국사회당이 1972년에 해체됐다. 자신을 민주사회주의자라고 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201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최종 지명을 받지는 못했다. 민주당·공화당 양당에 경합할 정도의 사회주의 정당은 미국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또 앞선 칼럼(곱씹어볼 스웨덴의 인구정책 실험)에서 보았듯 스웨덴이 선도한 복지국가 모델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유럽국가가 실행하고 있다. 미국은 1930년대 뉴딜정책이 가장 사회주의적이라고 할 정도로 국가가 경제에 깊이 관여했지만, 그 이후의 경제 정책은 복지국가와는 거리가 멀다. 정치·경제 지형에서 미국이 유럽과 다르다는 사실을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라 부르기도 한다. 독일의 경제학자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는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는가>라는 저서를 1906년에 출판했다. 좀바르트는 책을 통해 미국 노동자들은 경제적으로 독일 노동자에 비해 훨씬 더 윤택하게 잘살고 있고, 여러 인종으로 구분된 사회 구성은 노동자의 계급의식 발달을 약화시켰다고 주장했다. 1976년 이 책의 영어번역이 출판되자 학계에서는 미국 예외주의에 대한 논의가 다시 촉발됐다. 미국은 봉건주의라는 과거 역사가 없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 나선 초기 이민자들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계급 운동이나 사회주의 운동이 약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경제적 요인으로는 미국이 서부 등 변경 개척으로 새로운 기회를 계속 만들어나갈 수 있어 노동자 계급을 포함한 사회의 하위계층도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 있었고, 소득분배에 기반을 둔 복지국가 정책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극단의 시대>에서 냉전 시기에 미국의 정체성은 ‘사실상 공산주의의 정반대로 정의됐다’고 했다. 이런 배경에서는 정치적 가치로서 사회주의와 사회주의적 정책은 수용될 수 없었다. 미국 예외주의가 가능했던, 그리고 여전히 가능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는 ‘달러의 힘’이다. 미국의 달러는 국제 경제 거래에서 기축통화의 역할을 하고 있고, 국제 경제 관계에서는 준비통화의 역할을 맡고 있다. 1870년대에 경제 규모에서 미국이 영국을 능가했지만, 1940년대 초까지만 해도 영국의 파운드화는 국제 거래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브레턴우즈 체제가 정착하면서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로 영국의 파운드화를 대체했다. 준비통화로서 미국 달러는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국제거래에서 기축통화로 자리하고 있다. 유로와 엔화 그리고 중국 위안화가 있지만, 달러에 비하면 비중이 작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4년 1분기 세계 외환보유액은 12조3500억달러에 달한다. 이들 보유액의 54.8%는 미국 달러다. 18.3%는 유로로, 5.3%는 일본 엔화로, 4.6%는 영국 파운드화로, 그리고 2.0%는 중국 위안화로 구성돼 있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3조2200억달러로 세계 최대 규모다. 중국은 외환보유액의 약 60%는 달러로, 20%는 유로로, 나머지는 엔화 등으로 보유한다. 중국은 2조달러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2조달러 중 약 8000억달러는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로 갖고 있다. “달러의 힘, 미국 예외주의 가능하게 만들어” 미국이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견디면서도 고소득과 고소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이 달러를 발행하고, 교역상대국은 수지 흑자를 달러 자산 외환보유고 형태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불균형을 교정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고려할 수 있다. 교역 상대국이 환율을 절상하고 미국 제품을 더 많이 구매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미국 경제가 더 강해져서 세계 경제에 더 압도적인 위상을 차지해 달러가 계속 가장 강력한 기축통화와 준비통화로 역할을 하는 것이 두 번째다. 교역상대국의 환율 절상은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지만, 두 번째 옵션은 기대하기가 어렵다. 세계 경제에서 미국 경제의 위상은 지속해서 하락해왔고 현상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미국의 역할을 대체할 나라가 등장하긴 어렵긴 하다. 그러나 시간은 걸리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유로와 위안화 등 다른 통화들이 미국 달러의 위상을 잠식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배경에서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한다는 트럼프 선거 캠프의 구호는 공허하게 들린다. 마찬가지로 현재 바이든 정부의 정책 기조는 궁색해 보인다. 미국이 잘나가던 시기에 견지해온 세계 경제를 키우면서 미국 경제를 강화한다는 글로벌리즘(세계화)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미국이 선도해온 팍스 아메리카나가 저물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미국 대통령선거 이후의 세계는 누가 당선되든 각자도생의 각축장이 될 것이다. 더 큰 혼란에 대비해야 한다.
서중해의 경제 망원경
미국의 대중국 정책 논쟁이 말해주는 것들
미국의 대중국 정책 논쟁이 말해주는 것들(2024. 07. 08 06:00)
2024. 07. 08 06:00 국제
언론 기고에 반박·재반박 이어지면서 논쟁 달아올라 민주·공화 진영 방법론은 달라도 ‘중국 견제’엔 한 뜻 매슈 포틴저 전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이 7월 2일(현지시간) 워싱턴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에서 미국의 대중 정책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김유진 특파원 ‘중국과의 경쟁을 관리하는 것이 미국에도 이익이다.’ vs ‘중국에 싸워 이기는 것이 미국에 이익이 된다.’ 최근 미국 워싱턴 외교가를 달군 대(對)중국 정책 논쟁을 요약하면 이렇다. 발단은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5·6월호에 실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기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을 지낸 매슈 포틴저와 마이크 갤러거 전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공화당)의 기고문이었다. 워싱턴 정가에서 대중 매파로 손꼽히는 두 사람은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을 관리해서는 안 된다. 승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과의 대화를 통해 ‘데탕트(긴장 완화)’를 추구하는 것이 미국과 글로벌 안보에 오히려 해가 된다고도 주장했다. 그러자 바이든 행정부 전직 당국자 등이 중국의 ‘레짐 체인지(정권교체)’를 목표로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반박 기고를 실었다. 이어서 포틴저·갤러거도 다시 재반박 기고를 보내면서 논쟁이 달아올랐다. 이번 논쟁은 민주당과 공화당 진영 간에 대중국 접근의 구체적인 방법론이나 궁극적 목표를 놓고는 견해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하지만 동시에 미 정치권과 외교안보 서클이 ‘중국 견제’에는 한마음 한뜻이라는 점도 보다 명확해졌다. ■미·중 갈등 ‘승리’가 목표라는 공화당 논쟁에 불을 지핀 기고를 공동 집필한 포틴저 전 부보좌관은 지난 7월 2일(현지시간)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 연설에서도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다. 포틴저는 첨단 반도체 장비 등에 대한 수출통제 조치를 “현명한 행보”라면서도 대화를 중시하는 바이든의 정책은 결국 중국과의 데탕트를 목표로 하고 있고, 이는 “(미국이) 약하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중국의) 공세적 행동을 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나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말기 미국의 대소련 강경 노선이 오히려 “냉전의 평화적 종식”을 가져왔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대리전(proxy war)’을 전개하고 있고 시진핑 중국주석이 추구하는 것은 (갈등의) 교착상태(stalemate)가 아니다”라면서 중국을 이기려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과의 경쟁 승리를 위해서는 기고문에서 밝힌 대로 미국이 군사적·경제적으로 강력한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이를 위해 국방비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틴저·갤러거의 주장은 시 주석이 대만을 침공할 결심을 이미 끝냈으며 인도·태평양 지역은 물론 글로벌 차원에서도 미국의 헤게모니를 대체하려 할 것이라는 식의 매우 강경한 가정 위에 기초하고 있다. 포틴저는 연설에서 최근 남중국해 세컨드 토머스 암초(필리핀명 아융인·중국명 런아이자오) 주변에서 중국과 필리핀 선박 및 해경 간 충돌이 발생한 것에 대해 “대만 공격에 대비한 리허설”이라고도 주장했다. 외부로부터의 시 주석 체제 변화를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결코 그렇지 않다”면서도 중국 공산당의 미래가 지속가능한지 여부 등을 포함한 체제의 내부 붕괴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중국의 의도와 실제로 대만을 침공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치권과 학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매슈 포틴저 전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 /워싱턴|김유진 특파원 ■고강도 대중 견제 속 ‘갈등 관리’ 중시하는 민주당 그런데 민주당 역시 중국의 대만 침공을 억제하고, 핵무력을 포함한 군사력을 비약적으로 증강할 수 있는 이중용도 첨단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차단해야 한다는 ‘대전제’는 공유하고 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기술 통제나 대중 관세 관련 정책을 보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보다 훨씬 더 촘촘하게 중국을 견제하려는 시도가 담겨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전기차 25→100%, 전기차 배터리와 부품 7.5→25%, 태양전지와 반도체 25→50% 등으로 대폭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고율 관세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은 물론이고, 핵심 산업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서는 더 강력한 ‘관세 폭탄’을 부과한 것이다. 다만 갈등이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중국과의 소통 채널을 열어두면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고, 특히 동맹, 파트너 국가들과 공동으로 중국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이다. 포틴저·갤러거의 기고에 대한 반박문도 이런 입장과 궤를 같이한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중국·대만 담당 선임 국장을 지낸 러시 도시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반박문에서 긴장 고조로 인한 충돌 위험을 줄이려면 “대면 회동을 통해 오판 위험을 빠르게 줄이고, 미국이 취할 조치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중국 정찰풍선 사태로 긴장이 고조된 이후 미국이 국무·재무·상무 장관을 잇달아 중국에 보내 대화 복원에 노력을 기울인 것도 그 연장선이었다. 미·중 정상은 지난해 11월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단절된 군사 부문 대화도 복원했다. ■어찌 됐든 대중 강경론은 초당적 지지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대중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불거진 것은 공화당 진영의 공세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공화당은 아프가니스탄 철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발발 등을 현 민주당 정부의 ‘외교 실패’ 사례로 집중 공격하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의 리더십이 약화됐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대중국 정책을 두고도 ‘유약하다’고 비판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표면적으로 양당의 대중 정책 구상이 지니는 차이점이 부각되기보다는 중국을 미국의 최대 안보 도전으로 보고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보는 시각아 초당적 공감대를 얻고 있다. 특히 대중 강경 드라이브를 주도하는 미 의회의 움직임을 눈여겨봐야 한다. 갤러거 전 위원장이 이끈 하원 중국특위의 정책 권고는 물론이고 의회 차원의 대중 견제 입법은 발의된 법안만 376개(한국무역협회 추산)에 달하고 있다. 틱톡 금지법이 포함된 안보 패키지는 미 하원에서 찬성 360표, 반대 58표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했다. 해당 법률은 상원도 찬성 79표, 반대 18표로 통과했다. 미 의회의 강경 기류는 중국을 바라보는 미 정치권의 시각을 그대로 반영하는 동시에 앞으로 미국의 대중국 기조의 방향과 내용 등을 가늠하게 한다. 대선에서 어느 쪽이 국정운영의 열쇠를 쥐더라도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의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리 피벗 빨라질까···미국 물가둔화에 시장 ‘들썩’
금리 피벗 빨라질까···미국 물가둔화에 시장 ‘들썩’(2024. 06. 17 06:00)
2024. 06. 17 06:00 경제
“G7 중 미국·일본 제외 기준금리 인하, 한국은 빠르면 4분기 가능” “일각선 선제 조치 주장, 환율·물가·가계부채 등 고차함수 풀어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지난 6월 12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뒤 연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 동결 방침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요 국가들이 금리를 내리면서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서고 있다. 남미 신흥국부터 유럽과 캐나다 등의 선진국도 기준금리 인하에 시동을 걸었다.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어서다. 세계 금리 방향의 키를 가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올해 4분기 전후로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끈적거리는 물가가 잡힐 것으로 예상되면서 피벗 확산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연준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하가 빠르면 4분기에 시작되거나, 물가 상황에 따라 내년 초에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 물가가 ‘파월의 입’ 보다 강했다 연준은 지난 6월 12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5.25∼5.50%로 동결했다. 한국(3.50%)보다 2.00%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연준 위원들은 향후 금리 수준을 예상한 점도표를 통해 올해 기준금리 인하 예상 횟수를 기존 3번에서 1번으로 줄였다. 시장은 회의에 앞서 발표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예상보다 낮게 나온 것에 주목했다. 이날 발표된 미국의 5월 CPI는 전년 동기 대비 3.3% 올라 4월(3.4%)보다 상승률이 낮아졌다. 연준이 중시하는 주거비·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서비스 물가를 나타내는 슈퍼코어 물가상승률도 전월 대비 0.04% 하락해 2021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연준이 서비스물가가 둔화해야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고 강조해온 만큼 피벗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달성했다.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으로 미국 주식시장은 사상 최고치로 마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연준이 이번 FOMC 회의에서 연내 1차례 금리 인하를 시사하면서도 2차례 인하 가능성도 열어놨다”고 평가했다. 시장금리로 연준의 기준금리를 전망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준의 9월 금리 인하 확률이 6월 11일 46.8%에서 12일 62.0%로 높아졌다. 연내 2회 내릴 확률도 절반을 넘어선 62%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빨리 둔화한다면 언제든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 시장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다만 시점이 언제인지에 대해선 답변을 피했다. 미국보다 앞서 기준금리를 올린 한국은행은 올해 4분기 이후에나 금리 인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여전히 피벗에 신중하다. 원·달러 환율이 1370원대를 맴도는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면 상방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 계속되는 이스라엘-이란 사태와 오는 11월 미국 대선,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의 약진 등으로 환율을 자극하는 변수가 대기 중이다. 고환율로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 인플레이션이 또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금리 인하를 단행한 유럽에서도 미국과의 금리 격차 확대로 유로화 가치가 절하돼 물가가 다시 오를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은이 금리 인하에 나서더라도 유럽 등의 상황을 봐가며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농수산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 수준이 높은 것도 고민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2월(3.1%)과 3월(3.1%) 3%대를 유지하다가 4월(2.9%) 석 달 만에 2%대로 내려왔다. 하지만 과일을 비롯한 농축수산물이 10.6%나 치솟는 등 2%대 안착을 확신할 수 없다. 주춤했던 가계대출도 다시 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5월 가계대출은 주택 거래 증가와 함께 6조원가량 불었다. 지난해 10월(6조7000억원)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량이다. 한은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2.5%로 올려잡으면서, 금리 인하의 명분을 제시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이런 불안 요소를 고려하면 내달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다시 현 수준(3.50%)에서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5월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6월 12일 한은 창립 74주년 기념식에서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현재의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물가 시기의 마지막 구간(라스트 마일)에서 성급히 금리를 낮췄다가 물가 안정기 진입 자체가 흔들릴 위험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이날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라는 아우구스투스 로마 황제의 원칙을 거론하며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마지막 구간에 접어든 지금, 상충관계를 고려한 섬세하고 균형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섣부른 통화 완화 기조로의 선회 이후 인플레이션이 재차 불안해져 다시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 감수해야 할 정책 비용은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왔던 주요국들은 최근 통화정책을 ‘긴축’에서 ‘완화’로 전환하고 있다. 경기가 더 악화하기 전 선제 금리 인하에 나선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6월 6일 기준금리를 연 4.50%에서 연 4.25%로 인하했다. 독일, 프랑스 등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20개국에 적용된다. 금리 인상을 시작한 2022년 7월 이후 1년 11개월 만의 방향 전환이다. 이로 인해 미국(기준금리 5.25∼5.50%)과 금리 차는 1.00∼1.25%포인트로 확대됐다. 유로존의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2년 연말 10%를 넘겼다가 지난해 10월부터 2%대에 머물면서 목표치인 2.0%에 근접했다. 유럽은 변동금리 비중이 높고, 가계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커 고금리에 따른 타격이 크다. 통화정책이 소비 심리에 미치는 시차를 고려할 때 먼저 금리 인하에 나서야 하반기 경기 반등을 기대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다만 ECB는 올해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모두 상향 조정해 추가 금리 인하까지는 다소 오래 걸릴 수 있음을 예고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금리 인하에 따른 통화 약세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지만 유로존은 더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전날에는 캐나다 중앙은행인 캐나다은행이 기준금리를 기존 5.00%에서 4.75%로 인하했다. 주요 7개국(G7) 중 캐나다가 처음이다. 앞서 스위스와 스웨덴도 각각 지난 3월과 5월에 금리를 내렸다. 금리를 내리면 자본이 빠져나갈 위험이 큰 멕시코 등의 신흥국도 저성장 탈피를 위해 공격적 금리 인하에 나섰다. 영국은 올해 7월 총선이 끝난 후 금리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국도 올해 2월 인민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 격인 대출우대금리(LPR)를 연 4.20%에서 3.95%로 0.25%포인트 내렸다.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일본은 적절한 시기를 재고 있다. ■KDI 금리인하 군불, 내수 활성화는 미지수 일각에선 한국도 선제 금리 인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내수 경기가 악화하는 가운데 자영업자와 중·소상공인의 폐업이 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군불을 때고 있다. KDI는 지난 6월 11일 발표한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높은 수출 증가세에 따라 경기가 다소 개선되고 있으나 내수는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며 “가계와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이 지속 상승하는 등 고금리 기조가 내수 부진의 주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KDI는 지난 5월에도 보고서를 통해 선제적 금리 인하를 주장했다. 고금리가 장기화할 경우 경기회복 불씨가 꺼질 수 있어 미국 금리 인하와 관계없이 내려야 한다고 본다. 관가 안팎에서는 유럽 등에서 금리 피벗이 확산하자, KDI가 재정 여력이 부족한 기획재정부를 대신해 금리 인하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금리 인하 시기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경기침체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금융 부실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 전 선제적으로 먼저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에 환율 상승 우려 속 섣부른 금리 인하가 내수 회복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맞선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등의 다른 국가에 비해 한국은 금리 인상 시기에 충분히 금리를 올리지 않아 (금리를 내리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며 “금리를 내린다고 해도 영끌해 집을 산 이들이 소비를 늘릴 가능성이 없어 실질적인 내수 진작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시장금리에 이미 한 차례 기준금리 인하(0.25%포인트) 기대가 반영돼 하반기 대출·예금 금리 하락 폭이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영끌족’과 자영업자 등 대출 부담이 큰 금융 소비자들이 연내에도 고금리 긴축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다. 최근 한 달 사이 ECB 기준금리 인하 기대 등으로 시장금리가 약세를 보이면서 주요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도 대체로 떨어졌다.
[시네프리뷰]바튼 아카데미-텅 빈 학교서 특별한 우정…미국판 ‘응칠’
[시네프리뷰]바튼 아카데미-텅 빈 학교서 특별한 우정…미국판 ‘응칠’(2024. 02. 21 05:30)
2024. 02. 21 05:30 연예
영화가 시작되면 등급 표시와 영화사 로고부터 1970년대에 사용되던 형태로 삽입된다. 놀라운 것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한 정도가 아닌, 실제 1970년대 작품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유니버설 픽쳐스 마치 10월의 마지막 날이면 가수 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이, 봄이면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이 라디오 신청곡으로 쇄도하는 것처럼, 특정 시간이나 계절이면 그때마다 반복해 소환되며 더 오랜 생명력을 얻는 창작물들이 있다. 연말연시 역시 다양한 형태로 창작물의 소재가 된다. 국내에는 소개조차 되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매해 연말이면 성탄절을 소재로 한 수십 편의 (대부분 TV를 위한) 영화가 만들어진다. 성탄절과 송년의 시기를 포함하는 일명 ‘홀리데이 무비(Holiday Movie)’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나 홀로 집에>(Home Alone·1990)가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한동안 성탄절이면 텔레비전 단골 메뉴로 지겹도록 방영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프랭크 카프라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주연의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1946)을 최고의 홀리데이 무비로 꼽는다. 이유는? 역시 TV에서 가장 많이 방영됐기 때문이다. 당시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최고 스타 제임스 스튜어트의 배우 복귀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큰 화제가 됐다. 그러나 정작 극장 흥행에 있어 그리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다. 저작권 보호 시한인 28년이 지난 1974년, 판권을 가지고 있던 리퍼블릭 픽처스가 저작권 연장에 실패함으로써 이 작품은 어디서나 자유롭게 상영·방영할 수 있게 됐다. 사실상 공짜가 돼버린 이 영화는 성탄절이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작품이 됐다. 고전적 현대영화가 만들어내는 박애와 품위 <바튼 아카데미>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모처럼 잘 만들어진 최신 홀리데이 무비를 만났다는 것. 그러나 이런 단순한 좁은 틀 안에 가둬둘 수 없는 비범한 작품이다. 1970년, 기숙학교 바튼 아카데미. 겨울방학과 연말을 맞이해 대부분의 교직원과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간다.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갈 곳이 없는 학생들은 학교에 남게 되고, 이들을 관리하기 위해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기로 소문난 역사 교사 폴 허넘(폴 지아마티 분)과 얼마 전 베트남전에서 금지옥엽 외동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진 주방장 메리 램(더바인 조이 랜돌프 분)이 이들과 함께 머물게 된다. 영화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등급 표시와 영화사 로고부터 1970년대에 사용되던 형태로 삽입했다. 이후 과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놀라운 건 단순히 과거를 재현한 정도가 아닌, 문득문득 실제 1970년대 작품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든다는 점이다. 인물의 성격, 관계의 설정, 이야기의 전개나 마지막에 전달되는 훈훈한 교훈까지 마치 고전영화 한 편을 뒤늦게 발견한 듯한 푸근함을 영화 내내 경험할 수 있다. 따뜻한 연출로 빚어낸 배우들의 연기 호흡 이는 단순히 외형적인 기교가 아니다. 물론 과거의 풍경을 최대한 되살리기 위한 로케이션과 미술, 의상에 많은 공을 들이긴 했다. 하지만 이에 앞서 감독은 “스스로 나 자신을 1970년에 영화를 만들고 있는 감독이라고 속이며 영화를 만들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당시의 정서와 영화 문법을 최대한 답습하고자 노력했다. 감독 알렉산더 페인은 늘 사람들 사이의 상호관계와 이해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대부분 작품이 범작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지만, 특히 <일렉션>(1999)과 <사이드웨이>(2005), <네브래스카>(2013) 등의 작품은 꼭 챙겨보길 추천한다. 어쩔 수 없이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언급해야만 하는 영화다. 주연을 맡은 세 배우의 개별적인 역량은 물론이고, 함께 만들어내는 시너지가 대단하다. 특별히 <사이드웨이> 이후 알렉산더 페인과 두 번째 호흡을 맞춘 폴 지아마티의 연기는 일생일대의 호연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는 3월 10일 개최 예정인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폴 지아마티), 여우조연상(더바인 조이 랜돌프), 각본상, 편집상 등 5개 부문의 후보로 지명됐다. 개인적으로 감독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여우조연상은 더바인 조이 랜돌프의 수상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제목: 바튼 아카데미(The Holdovers) 제작연도: 2023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33분 장르: 드라마, 코미디 감독: 알렉산더 페인 출연: 폴 지아마티, 더바인 조이 랜돌프, 도미닉 세사 개봉: 2024년 2월 21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체리 주빌리’ 아이스크림 이름이 아니다! https://ediblesiliconvalley.ediblecommunities.com ‘현장학습’을 핑계로 보스턴에 1박2일의 나들이를 나섰던 세 사람은 마지막 날 저녁, 근사한 식당에 모여 짧은 일탈을 마무리한다. 옆 테이블에서 웨이터가 화려한 퍼포먼스를 벌이는 걸 보고 음식 이름을 묻자, 웨이트리스가 답한다. “체리 주빌리(Cherries Jubilee)예요.” 뜻밖에도 익숙한 이름이다. 서른한 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돌려가며 파는 매장에 가면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몇몇 품목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름이 원래 고급 디저트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주빌리는 축제, 축전, 환희 등 여러 뜻이 있지만 몇 해마다 돌아오는 기념일의 의미도 있다. 기록에 의하면 체리 주빌리가 세상에 첫선을 보인 것은 1897년 프랑스 태생의 전설적 요리사인 오귀스트 에스코피에(Auguste Escoffier·1846~1935)에 의해서라고 한다. 오귀스트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현대 프랑스 요리의 새로운 장을 연 인물로 평가된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요리사로서는 최초로 국가가 존경을 표하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당시 영국 런던에 머물며 주방장 일을 하고 있던 오귀스트는 때마침 맞이한 빅토리아 여왕의 ‘다이아몬드 주빌리’(즉위 60주년)를 축하하기 위해 여왕이 좋아하는 체리를 이용한 새로운 음식을 고안하게 된다. 접시에 체리와 키르슈(Kirsch·체리 증류 브랜디)를 담고 당시 유행하던 플랑베(flambe·재료에 알코올을 첨가해 화염을 폭발시키는 요리 절차) 기술로 완성했다. 처음에는 아이스크림이 없었지만, 이후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곁들이는 것이 굳어져 지금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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