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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총 15 건 검색)

[박수현의 바닷속 풍경](55)남미와 남극 사이 드레이크해협-바람이 일으키는 풍랑, 파도
[박수현의 바닷속 풍경](55)남미와 남극 사이 드레이크해협-바람이 일으키는 풍랑, 파도(2024. 10. 09 06:00)
2024. 10. 09 06:00 문화/과학
2020년 남극에 갔을 때 거칠기로 유명한 남빙양의 드레이크해협에서 붉게 칠한 배 한 척을 만났다. 사납게 날뛰기 시작하던 파도는 하얗게 부서지며 큰 소리와 함께 배로 뛰어들었다. 거친 바다와 싸우는 뱃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 인생이 거친 바다를 지나는 항해와 같은 것이 아닐까. 파도는 해안에 가까워질수록 높아진다. 수심이 낮은 해안으로 파도가 오면 아래쪽은 바닥과의 마찰 때문에 속도가 느려지는데 위쪽은 이보다 더 빠르다. 파도의 봉우리는 앞으로 넘어지고 넘어진 봉우리들이 겹친다. 파도를 보면 물결이 해안 쪽으로 전진하는 것 같지만 사실 바닷물은 그 자리에서 원운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줄의 양쪽 끝을 잡고 흔들면 줄은 그 자리에 있고 진동만 전달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파도에도 나이가 있다. 날카로운 형체에 거친 모양이 뚜렷하면 그것은 젊은 파도다. 가까운 곳에 있는 폭풍 때문에 생긴 것이다. 해안을 향해서 일정한 간격으로 진입하고, 진행 방향 전체에 걸쳐 마루가 높은 둥근 물결이면 그것은 먼 곳에서 온 파도다.
박수현의 바닷속 풍경
[신간]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外(2023. 03. 31 11:22)
2023. 03. 31 11:22 문화/과학
ㆍ아홉 번째 4월, 수천 번의 다짐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유가영 지음·다른·1만2000원 식판이 기울어 있던 그날 아침. 그는 살았고, 친구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변했다. 도서관 사서가 되려던 그에게 책 읽기는 너무 힘든 일이 됐다. 마음이 고장 난 자신을 용납할 수 없어 자해를 시작했다. 대학에 간 뒤엔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들어갔다. 이겨내려는 노력은 내려놓지 않았다. 과거 도움받았던 스쿨닥터의 마음건강센터에서 인턴을 하며 씨랜드 유족을 만났다. 친구들과 ‘운디드 힐러’라는 단체를 만들어 인형극을 준비했다. 산불 피해지역 할머니들을 위한 사랑방도 운영했다. 아홉 번째 4월, 아직도 문득문득 그날의 후회가 덮쳐온다. 사람들이 두렵고 세상에 혼자인 것만 같다. 그럼에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에, 그들을 돕는 좋은 사람들도 있기에 다시 힘을 내 일어선다. ‘세월호 생존 학생이 청년이 되어 쓴’ 이 책이 바로 그 증거다.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이규식 지음·후마니타스·1만7000원 중증 뇌병변 장애인이자 활동가인 이규식의 삶을 구술로 정리했다. 집과 재활원과 공동체에 갇혀 지냈던 그는 노들야학을 만나면서 투쟁가로 변했다. 인생은 다이내믹해도 시종일관 담담하다. 지하철 리프트에서 앞으로 고꾸라져 정신을 잃은 사고에도 ‘어! 나 안 죽었네?’ 하고, 지하철을 타려고 할 때 남들이 “사람이 먼저 타야지” 해도 ‘나도 사람인데…’를 되뇔 뿐이다. 장애인들이 왜 지하철 선로에 쇠사슬로 몸을 묶었는지, 왜 탈시설을 외치는지, 그들이 겪는 차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내 머릿속 미술관 임현균 지음·지식의날개·1만8800원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에서 이삭을 줍는 이는 몇 명이고, 등장인물은 모두 몇 명일까. 우리가 생각한 그림과 실제 그림의 차이는 명확하다. ‘과학 하는 미술가’인 저자가 뇌과학을 통해 명화를 더 쉽게 이해하도록 이끈다. ▲감정 문해력 수업 유승민 지음·웨일북·1만7000원 눈치를 본다는 건 주눅 드는 느낌이지만, 눈치가 빠르다는 건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자 같다. 인지언어학자가 언어에 부가된 눈짓, 손짓, 암묵적 지식 등을 통해 맥락, 뉘앙스, 상황, 감정을 읽어내는 법을 전한다.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 이강용 지음·클·1만8000원 손이 모자라지만 손을 잡아 안심시켜주고(1부 ‘손’), 늘 땀에 젖어 있는 의료진들(2부 ‘등’). 7년간 ‘레벨 원(가장 위급한 단계)’을 외치며 가장 가까이서 일한 간호사가 사진과 글로 전하는 응급의료 현장 이야기.
신간
[정봉석의 북미 환경편지](8)평화롭던 캐나다에 거친 바람이 분다(2022. 07. 08 14:23)
2022. 07. 08 14:23 국제
캐나다에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탄생을 기념하는 공휴일이 있다. 1837년 즉위 후 64년간 영국 여왕으로 재임했던 빅토리아 여왕은 당시 캐나다의 직접적인 통치자였다. 그 당시 생긴 빅토리아 공휴일이 15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물론 현재 캐나다는 독립국이지만 과거 영국 통치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영연방국가 중 하나다. 명목상이긴 하지만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캐나다의 공식적인 수장으로 아직 존재한다. 캐나다의 실질적인 지도자는 의회 의원 총선에서 뽑힌 총리로, 입헌군주제와 의원내각제를 통해 국가를 운영한다. 여왕이 영국 버킹엄과 윈저에 거처하는 관계로 여왕을 대변할 총독을 임명해 캐나다로 보낸다.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2020년 여왕의 손자 해리 왕자가 캐나다 총독으로 임명될지가 지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물론 상징적인 존재이고 실권이 없는 총독이지만 캐나다와 영국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이곳 역사의 잔재다. 지난 5월 21일 캐나다 토론토를 덮친 강풍으로 인해 나무가 쓰러졌다. / 정봉석 제공 빅토리아 공휴일은 여왕의 탄생일 직전의 월요일로 지정돼 있다. 이날을 전후해 캐나다인들은 긴 연휴를 즐긴다. 올해 연휴의 시작이었던 5월 21일 토요일은 날씨도 맑고 좋아 많은 사람이 주변 공원을 찾아 5월의 자연을 즐겼다. 나도 주말의 여유를 즐기며 산책을 했다. 갑자기 주변 모든 휴대전화에서 경고문자가 울렸다. 평소 경고문자를 잘 보내지 않는 이곳에서─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할 때도 보내지 않았다─다가오는 날씨 변화를 경고하는 긴급 재난 예보 문자였다. 허리케인이나 태풍 같은 재난이 거의 없는 토론토에서 의외의 경보였다. 주변 날씨는 여전히 맑고 화창했다. 단지 남서쪽 멀리서 성벽처럼 보이는 검은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곧 폭우와 번개를 동반한 강풍이 휘몰아쳤다. 성인 주먹만 한 우박이 쏟아져 내렸다. 평소와 다른 강풍의 위력에 아파트 창문의 흔들림과 압력 차이를 실감했다. 전기도 끊기고, 토요일 오후 내내 암흑 속 집에서 고립됐다. 폭풍우 데레초 캐나다 환경부는 폭풍우가 발생했을 때 온타리오와 퀘벡 지역에 휴대전화와 텔레비전, 라디오를 통해 비상경보를 발령한다. 폭풍우와 관련한 경보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기상학자들은 이 사건을 역사적인 데레초(derecho)라고 지칭하며 가장 강력한 폭풍우 중 하나로 설명했다. 이름도 생소한 데레초는 직선 폭풍, 즉 지면을 휩쓰는 바람의 벽을 뜻한다. 토네이도가 회오리바람을 뜻하지만 데레초는 성벽처럼 직선의 전선을 이루는 바람으로 국지적으로는 태풍이나 허리케인과 맞먹는 위력을 가진다. 특히 이번 데레초는 많은 인구가 모여 있는 퀘벡시·윈저 회랑─북동부의 퀘벡시와 남서부의 온타리오주 윈저 사이 1150㎞에 걸쳐 펼쳐져 있는 캐나다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으로 캐나다 인구의 약 절반인 1800만명 넘는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캐나다의 4대 대도시 중 3곳(토론토·몬트리올·오타와)을 포함한다─에 영향을 미쳐 피해를 키웠다. 이번 강풍은 지난 5월 21일 낮에 약 1시간가량 지속됐다. 풍속은 키치너에서 최대 시속 약 132㎞,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서는 시속 120㎞에 달했다. 피해 지역의 가옥들이 뒤틀리거나 전봇대가 넘어져 전선이 늘어지고, 뿌리째 뽑힌 나무와 파손된 건물 잔해가 도로를 막아 차량 통행이 마비됐다. 온타리오와 퀘벡에서 1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대다수는 갑작스러운 바람에 쓰러진 나무에 깔려 희생됐다. 온타리오 전역에서 전신주 800개가 파손돼 전력망에 타격을 입혔다. 특히 187개의 전신주가 손상된 오타와에 재난 피해가 집중됐다. 이는 1998년의 기록적인 눈폭풍 재난 피해 규모보다 더 컸다. 온타리오에서는 15만여명이, 퀘벡에서는 약 14만명이 전기를 사용하지 못했다. 정전으로 휴교도 잇따랐다. 전력 부족을 겪고 있는 오타와-칼튼 교육청은 안전을 이유로 지난 5월 24일 모든 학교와 보육센터를 폐쇄했다. 광역토론토에서도 이날 더럼 지역의 8개 학교와 토론토의 1개 학교가 정전으로 휴교했다. 거세지는 바람 노아(NOAA·미국 국립해양대기청)는 올해 대서양의 허리케인 시즌이 평균 이상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발표했다. 그렇게 되면 2016년부터 2022년까지 7년 연속으로 정상 시즌을 뛰어넘는다. 노아의 과학자들은 이번 시즌의 허리케인이 평균 이상일 확률을 65%로 예상했다. 6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진행되는 올해 시즌에는 최대 시속 63㎞ 이상의 열대성 폭풍이 14~21개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중 6~10개는 최대 시속 119㎞ 이상의 허리케인급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이 가운데 3~6개는 3등급 이상인 최대 시속 179㎞ 이상의 중대 허리케인일 것이라 경고하면서 이에 따른 대비를 요청했다. 첫 시작은 미국 플로리다였다. 지난 6월 4일 알렉스로 명명된 첫 번째 폭풍우가 발생했다. 시속 97㎞의 바람을 지닌 2등급 허리케인으로 플로리다 남부 전역에 홍수를 일으켰다. 마이애미에 있는 미국 국립기상청(National Weather Service)에 따르면 남부 플로리다의 일부 지역에 305㎜ 이상의 비를 내렸다. 토요일 수백편의 항공편이 취소되거나 지연되며 남부 플로리다 지역의 교통이 마비됐다. 평상의 허리케인 시즌과 다른 극단적인 날씨는 기후온난화와 관련이 깊다. 지구온난화에 따라 대기에 존재하는 수분의 양이 증가하면서 지구의 물 순환 사이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증발하는 물의 양과 다시 비의 형태로 대지에 돌아오는 물의 양이 증가하면서, 더 많은 강우량을 가진 폭우의 가능성을 높인다. 증발이 증가한 대지는 더 건조되고, 단단해진 땅의 특성으로 비가 왔을 때 물을 흘려보내 폭우와 함께 대규모 홍수의 위험을 높인다. 노아의 과학자들은 이미 2020년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서 기후 변화가 허리케인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1979~2017년 열대성 폭풍의 위성 이미지를 분석하면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강도 증가를 확인했고, 이는 지구온난화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예상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 결과에 따르면 3등급 이상의 열대성 폭풍이 10년당 약 8%씩 증가한다. 그들의 예측대로 열대성 폭풍의 증가세는 계속 유지되고 있으며, 올해 역시 평균 이상의 허리케인 시즌이 예상된다. 물론 기후온난화가 폭풍우에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지구온난화로 뜨거워진 대기는 폭염, 가뭄, 산불의 위험을 높인다. 최근 미국 국립기상청은 미국 남서부에 화씨 100도(섭씨 38도)가 넘는 폭염을 예상하며 지역 주민들의 대비를 경고했다. 다시 더워지는 캐나다 밴쿠버는 지난해 기록적이었던 열돔현상과 산불의 악몽을 되뇌게 만든다.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으며 상승한 해수면은 인구가 밀집된 해변 도시에 바닷물 범람에 의한 피해 가능성을 높인다. 특히 몰디브처럼 해발고도가 낮은 섬나라들은 지구온난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구라는 냄비 안의 물 온도가 끓어오르고 있다. 급변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물가 상승, 에너지 대란에 가려져 냄비 속 물의 온도 변화엔 사람들이 둔감해져 버렸다. 끓는 물 속의 죽어가는 개구리는 점차 우리의 모습이 돼가는 중이다. 탈출할 기회는 남아 있다. 냄비의 뚜껑이 아직 열려 있기 때문이다.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
[렌즈로 본 세상]어떤 바람이 조각보를 이어줄까(2021. 06. 18 15:21)
2021. 06. 18 15:21 정치
6·15 남북공동선언 21주년인 지난 6월 15일, 이름에 걸맞게 임진각 평화누리 바람의 언덕엔 비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깃발에 달린 조각난 천들은 바람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설치작가 최문수의 깃발작품 ‘그날의 흔적’이다. 찢긴 조각보를 잇듯이 남과 북을 평화로 잇고 싶다는 작가의 염원이 담겼다. 언덕 너머는 통일대교다. 전남 목포가 시발점인 1번 국도는 통일대교를 건너 신의주를 향해 뻗어보지만, 남북출입사무소의 통문은 5년째 닫혀 있다. 폭파된 개성의 남북연락사무소도 1년이 넘게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조각난 남북관계는 어떤 바람이 불어야 이어질까?
렌즈로 본 세상
[내 인생의 노래]김광석의
[내 인생의 노래]김광석의 (2019. 02. 18 15:31)
2019. 02. 18 15:31 문화/과학
ㆍ가는 곳으로 경쾌하게 방황하고 싶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 길 그 길에 서 있네 몇 해 전, 3개월 비자를 끊어 훌쩍 네팔로 떠났다. 10년째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직후였다. 갑작스런 퇴사에 많은 이들이 이유를 물었지만 답을 찾지 못해 어물어물 넘겼다. 사실 나 자신도 이유를 잘 몰랐다. 이러다 정년퇴직도 하겠구나 싶을 만큼 적성에 꼭 맞는 일이었고, 만족감도 꽤 높은 편이었으므로.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의 나’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이 컸던 듯하다. 경력이 쌓이면서 일은 점점 더 편해졌지만, 이러다간 영영 발전도 없을 듯했다. 살다 보면 길을 잃어야 할 때가 있고 지금이 그때라고, 놓고 싶지 않은 이 순간 탁 내려놓아야 한다고 직감적으로 판단했다. 무작정 떠난 여행지에서 제일 좋았던 건 알람시계 없이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었다. 막상 일을 그만두고 나니 아침마다 ‘남들 출근하는데 나는 노는구나’ 싶어 약간 불안했는데, 여행지에선 맘 편히 스스로에게 게으름을 허락할 수 있었다. 이 곳에서 난 ‘백수’가 아니고 ‘여행자’니까. 느지막이 눈을 떠 침대에서 조금 더 빈둥거리다가 일어나 커튼을 착 걷으면 눈앞에 안나푸르나가 펼쳐졌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설산을 찬찬히 눈에 담으며 찻물 끓이는 소리와 함께 들었던 노래가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여기까지 와서 히말라야 트레킹 한 번 안 하느냐고 다른 여행자들이 의아해했지만, 그냥 네팔 백수처럼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놀았다. 꼭 해야 할 일도,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도 없으니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그날 하고 싶은 걸 정했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지도를 펼치면서, 해질녘 페와 호숫가를 산책하면서, 오지로 향하는 덜컹이는 버스 안에서 이 노래를 들었다. 낯선 곳에서의 긴 체류는 때로 외로움을 불러왔지만,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이 노래를 틀면 전주에 흘러나오는 마라카스와 봉고 소리에 신기하게도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이 곡은 단연 내 생애 가장 많이 들은 노래다. 1990년대 중반 김건모, 신승훈, 서태지 같은 가수들이 인기를 휩쓸던 틈에서 김광석의 우울하고도 청량한 목소리는 단번에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어나’,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같은 명곡들이 담긴 김광석 4집 중에서도 나는 특히 이 노래를 아꼈다. 길 떠나는 이의 설렘과 두려움, 그리움을 담은 노랫말은 묘하게 쓸쓸하면서도 희망적이었다. 김광석의 맑은 목소리와 어우러진 경쾌한 연주가 온통 불투명한 것 투성이였던 10대의 불안을 잠재우는 것 같아 좋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몇 년째 알람시계에 맞추어 하루를 시작하는 성실한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이 노래를 즐겨 듣는다. 아침을 상쾌하게 시작하고 싶을 때, 어디로든 떠나고 싶을 때, 새로운 선택을 눈앞에 두고 망설여질 때 이 노래는 나를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데려다줄 것만 같다. 삶은 계속 흔들릴 테고, 그때마다 나는 헤맬 것이다. 길을 잃고 찾아가기를 반복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이라면, 이 노랫말처럼 ‘바람에 내 몸 맡기며’ 경쾌하게 방황하고 싶다.
내 인생의 노래
[내 인생의 노래]이소라의
[내 인생의 노래]이소라의 (2018. 05. 14 13:53)
2018. 05. 14 13:53 문화/과학
ㆍ외로이 혼자 아파하는 이들을 위해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일산 호수공원을 뛰다가 이 노래를 처음 들었다. 노래가 끝난 후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펑펑 울었다. 2005년 1월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20대의 끝을 지나던 때였다. 20대의 나는 외톨이었고 어디에서든 주변만 서성였다. 법대 동기들은 모두 사법시험을 준비했지만 나는 사회학과 대학원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취업을 했다. 그러나 함께 공부하기로 했던 애인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며 떠나버렸다.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채 방황했다. 공부 계획을 포기하고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는 심정으로 뒤늦게 사법시험에 매달렸다. 잊기 위해 선택한 몸부림이었다. 다행히 이 노래를 처음 들을 즈음에는 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입소를 위해 일산으로 이사한 터였다.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었지만 나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이 노래를 처음 듣는 순간 울음이 터진 건 그래서였다. 십수 년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이 노래를 들었다. 오늘 아침에도 이 노래를 들으며 출근했다. 이전만큼 슬프지는 않다. 그러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음은 가라앉는다. 지금도 명랑한 정신으로는 글이 써지지 않을 것 같아 맥주 캔을 땄다. 울적해지는 걸 알면서도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이유는 ‘세상에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작은 위로를 얻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인권/공익 변호사’라는 근사한 타이틀을 걸치고 일하고 있다.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격려를 받는 일이 허다한데도 흉이 되어버린 상처 때문에 여전히 나는 부족하고 못난 사람처럼 느껴진다. 예전처럼 사람을 믿지 못하고 세상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다. 이전보다 조금 더 어둡고 비관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깟 사랑 하나에도 나는 이렇게 휘청거렸다. 상처 입은 나는 상처 때문에 오랫동안 힘들어 했지만, 상처를 입힌 사람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간다는 사실이, 본인의 잘못을 쉬이 잊어버린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았다. 나와 무관하기에 세상은 어제와 다를 바 없이 돌아갔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사실이 못내 야속했다. 그러다가 나의 의뢰인들과 활동하며 만난 사람들이 떠올랐다.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 산재로 몸이 망가진 노동자들, 빨간펜 학습지교사, 쌍차 노동자들, 유성기업 노동자들. 굴뚝에 오른 파인텍 노동자 홍기탁, 박준호. 고공농성이 길어질수록 그들의 소식은 잘 들리지 않는다. 상처가 곪고 터져 더 큰 상처를 간직한 사람들, 외로이 혼자 아파하는 사람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과 이 노래를 듣고 싶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 간다
내 인생의 노래
우여곡절 평창올림픽, 평화의 바람이 분다(2018. 02. 06 10:55)
2018. 02. 06 10:55 스포츠
이번 평창올림픽의 의미는 ‘평화’에 있다. 북한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단절됐던 남과 북은 대화의 통로를 열었다. 남북 간 물꼬가 트이면서 남북교류가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졌다. 지난 1일 저녁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북한 선수단 본진이 강원도 땅을 밟았다. 이날 평창선수촌과 강릉선수촌도 동시에 문을 열었다. 개막식은 9일이지만 이미 올림픽은 시작됐고, 한반도는 완연한 올림픽 시즌에 접어들었다. 온 나라가 들썩이던 ‘88서울올림픽’과 견주어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말도 있지만, 누가 뭐래도 올림픽은 지구촌 최대 축제 가운데 하나다. 사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대한민국이 2전3기 끝에 개최권을 따낸 귀한 올림픽이다. 2003년 첫 올림픽 유치 도전에서 우리는 2차 투표에서 밴쿠버(2010년 동계올림픽)에 밀려 개최권을 내줬다. 두 번째 도전인 2007년에도 뒷심 부족으로 러시아 소치(2014년 동계올림픽)에 기회를 넘겼다. 그리고 2011년 7월 7일 새벽 0시18분(한국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강원도 평창은 경쟁도시인 안시(프랑스)와 뮌헨(독일)을 제치고 2018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 언론은 앞다퉈 낭보를 전했고, 동계올림픽 유치를 그 해 10대 뉴스로 꼽았다. 세계 4대 스포츠 경기(하계ㆍ동계올림픽,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월드컵)를 모두 개최한 나라는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 등 다섯 국가뿐이라는 사실에 고무됐다. 올림픽 특수로 인해 64조원의 경제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선수촌, 개막 전이지만 올림픽은 이미 시작됐다. / 이석우 기자 5G 첫 상용화 ICT 올림픽 하지만 7년 동안 개최 준비를 하면서 올림픽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해졌다. 그동안 최악으로 치달았던 남북관계는 올림픽 공동개최 이슈와 맞물려 여러 잡음을 낳았다. 무엇보다 스포츠 행사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그만큼의 편익을 챙길 수 있는, ‘남는 장사’가 되겠느냐는 우려가 나왔다. 부대시설과 경기장 건설 등 평창올림픽 준비를 하는 동안 강원도 지역에 투입된 예산만 13조7000억원에 달한다. 평창올림픽 13개 경기장 가운데 대회 이후 강원도가 관리할 경기장은 모두 7곳으로, 활용도를 감안해 따져보면 사후관리비용을 지방자치단체에서 감당하기가 버겁다. 정부가 올림픽 인프라를 활용한 동계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국제행사 유치방안을 서둘러 내놓고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번 평창올림픽이 지닌 의미는 작지 않다. 먼저 ‘5G’(5세대 이동통신)를 필두로 한 ‘ICT 올림픽’이라는 타이틀은 평창올림픽의 매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특효약이다. 5G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처음 상용화되는데, LTE보다 20배 이상 빠르고 처리용량도 100배 많다. 5G를 통해 시청자들은 초고화질(UHD) 방송과 360도 VR영상을 볼 수 있다. 봅슬레이는 선수 시점으로 경기를 관람할 수 있고, 피겨스케이팅 경기 장면을 멈춘 뒤 360도로 돌려가며 감상할 수 있다. 싱크뷰와 타임 슬라이스 기능 덕분에 가능해진 서비스다. 증강현실(AR)로 이뤄지는 길 안내와 29개 언어를 실시간으로 번역해주는 통ㆍ번역앱 역시 ICT 올림픽을 가능케 하는 기술 가운데 하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최정호 평창ICT올림픽추진팀장은 “ICT가 올림픽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관객들에게 보여드리고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실제 체험을 통해 기술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 66% “평창올림픽이 평화에 기여”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선수단이 1일 강원도 양양 국제공항을 통해 입경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무엇보다 이번 평창올림픽의 의미는 ‘평화’에 있다. 북한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단절됐던 남과 북은 대화의 통로를 열었다. 남북 간 물꼬가 트이면서 남북교류가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졌다. 일단 스포츠를 통해 남북 간 해빙모드를 만들고 이산가족 상봉처럼 인도주의적 행사를 통해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게 정부의 전략이다. 물론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두고 부침도 적지 않았다. 남북대화가 20여일 만에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양측의 말이 겉돌기도 했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을 놓고 국내 여론이 갈리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잠시 흔들리기도 했다. 북한의 예의 그 일방통보식 결정도 여전했다. 북한의 돌발행동이 구설에 오를 때마다 평화 올림픽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평창올림픽이 평화의 문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민병욱) 미디어연구센터가 20세 이상 성인남녀 1074명을 대상으로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설문조사(마켓링크 진행, 응답률 15.3% 포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0%포인트)를 한 결과 응답자의 66%가 평창올림픽이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답했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에 대해서는 61%가 긍정적이라고 답했고, 응답자의 53%가 ‘올림픽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될 것’이라고 답했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로 올림픽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은 높아졌다. 흥행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우리 정부에 북한은 ‘평화’라는 명분과 ‘흥행’이라는 실리를 다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카드이기도 하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일단 북한은 올림픽 무대에 올랐다. 남은 과제는 올림픽을 지렛대 삼아 남북교류를 이어가고 궁극적으로는 북핵문제 해결에 이를 수 있는냐 여부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평창올림픽은 체육교류의 장인 동시에 국제외교무대이기도 하다. 미국을 비롯해 북한도 고위급 대표단을 보내는 만큼 다양한 외교적 접촉이 일어날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북·미 간 입장차를 줄이고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장원의 사이언스 or 픽션!]황사, 중국에 전기차 바람이 불게하다
[고장원의 사이언스 or 픽션!]황사, 중국에 전기차 바람이 불게하다(2016. 05. 16 15:51)
2016. 05. 16 15:51 문화/과학
전기차 시장의 확대는 고용효과가 높은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고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노동시장 한파를 초래할 것이다. 대기의 질이 나아지는 만큼 사람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올해도 어김없이 황사가 봄철 한국인의 건강을 위협한다. 황사 발생일수는 해마다 느는 추세다. 발생일수가 1980년대의 연간 평균 3.9일에서 2000년대에는 10여일로 늘어난 해도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문제 해결을 위해 각기 100억원과 900억원을 지원한다지만, 정작 발원지인 중국은 그동안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외려 자국 경제성장에 황사가 발목을 잡을까 우려해 왔다. 눈앞의 산업적 욕망 때문에 해마다 늘어나는 황사일수에 눈감는다면 나중에는 과연 어찌 될까? 이와 관련하여 제럴드 허드(Gerald Heard)의 단편소설 (1944)는 참고할 만한 황망한 미래를 보여준다. 여기서는 기후변화로 지구가 흙먼지를 잔뜩 품은 희뿌연 안개로 뒤덮이자 사람들의 생활양식·문화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변해간다. 흙투성이 지붕덮개 아래 지하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그림과 글 같은 시각정보는 무용지물이 되고, 대신 구어(口語)로 된 스토리텔링이 지식전승과 예술을 좌우한다. 구어적 즉흥성이 강조되는 이 미래사회에서 인류문명은 과거의 영광을 잃고 옹색하게 쭈그러든다. 사실 대기오염은 선진국들의 산업구조가 중공업 위주로 개편되던 1950~60년대부터 영미권 과학소설의 주요한 소재로 떠올랐다. 당시 작품들은 무분별한 산업 개발로 스모그가 심해져 외출할 때마다 방진마스크를 써야 하는 근미래를 예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니, 재작년 국내 출간된 프레데릭 폴과 C M 콘블루스의 과학소설 (1952)이 그러한 초기 예들 중 하나다. 문제는 중국발(發) 황사가 SF의 사고실험이 아니라 당장 코앞에 닥친 현실이라는 점이다. 프레데릭 폴과 C M 콘블루스의 과학소설 의 책 표지. 황사에 포함된 미세먼지와 중금속 황사는 삼국시대 기록에도 나오는 자연현상으로, 원래 주성분이 알칼리성이라 바다 건너 날아오는 분진의 양이 적당하면 산성비를 중화시켜줘서 도리어 토양에 이롭다고 한다. 북유럽에서는 산성화를 막고자 일부러 농토에다 알칼리 성분의 흙을 뿌렸다. 황사가 골칫덩이가 된 것은 몽골과 북중국 사막지대에서 일어난 이 모래바람이 산업화가 많이 진행된 중국 내륙을 지나며 인체에 해로운 미세먼지와 중금속을 잔뜩 품게 되면서부터다. 예를 들어 미세먼지에 섞인 납은 오래 노출되면 신경장애를 유발한다. 중국의 대규모 공업단지와 엄청난 인구가 소비하는 화석연료 및 차량 배기가스 외에 ‘황사능’까지 거론하는 이도 있다. 황사능은 중국 정부가 핵실험을 벌인 사막에서 날아든 방사성 잔여물질을 뜻하는 속어다. 매년 일시적이기는 하나 황사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피해는 만만치 않다. 국민 건강에 끼치는 해악은 기본이고, 사람들의 야외활동을 기피하게 만들어 일상생활까지 제약한다. 그 결과 쇼핑과 문화산업은 물론이고 관광레저와 아웃도어 패션시장까지 위축시킨다. 어디 그뿐인가. 정밀기계와 장치산업 분야의 기업들은 불량률이 증가하고 생산성이 떨어진다. 특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장에는 쥐약이다. 항공산업도 죽을 맛이다. 10㎛ 이하의 초미세입자는 햇빛을 산란시키거나 흡수하는 통에 시야가 나빠져 비행기 운항이 지연 또는 결항될 수 있다. 그 바람에 항공사들이 여객기 엔진과 동체를 세척하는 주기가 전보다 짧아졌다고 한다. 황사가 국내 산업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미 2006년 전경련의 보고서 ‘우리나라에 미치는 황사 영향 최소화 방안’에서 분석된 바 있다. 흥미롭게도 보고서는 황사 덕에 뜻밖의 특수를 누리는 상품군도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황사가 심한 철에는 마스크가 10배, 공기청정기와 선글라스, 스카프 등의 매출이 각각 70%, 25%, 19.7%씩 일시적으로 오른다. 과학적 근거가 증명되지 않았으나 돼지고기와 녹차, 클로렐라, 미역, 마늘 같은 이른바 ‘건강식품군’의 소비량도 잠시 두드러진다. 미온적이었던 중국 정부의 태도 변화 현재로서는 황사 해결의 근본대책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이제까지 중국 정부가 미온적이었던 탓이 가장 크다. 한·중·일 환경장관회의(TEMM)가 열리고 민·관 합동으로 황사 발원지인 북중국과 몽골에 산림을 조성하는 사업이 산발적으로 이뤄지지만 발생범위에 비추어볼 때 조족지혈이다. 쓰나미를 손바닥으로 막는 격이랄까. 몸이 단 쪽은 외려 주변국들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와 일본의 정부, 민간기업, 그리고 NGO들이 나서 몽골 사막에 나무를 심어 왔다.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다. 매년 서울시의 4배만큼 사막화가 진행되는 판에 찔끔찔끔 나무를 심은들 홍보성 면피효과는 거둘지 몰라도 근본대책이 되기 어렵다. 지난 수천년간 지속된 기후현상을 최근에 유해성분이 포함되었다 해서 당장 어찌 근절시킬 수 있으랴. 한편으로는 중국 정부의 소극대응을 탓하기에 앞서 황사를 공급하는 사막(혹은 사막화)지역이 한반도의 약 20배나 된다는 현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중국 영토의 무려 15%다. 설상가상으로 그 배후지인 몽골의 광활한 사막까지 합산해보라. 몽골은 국토의 90%가 언제든 사막이 되기 쉬운 조건인 데다 실제로 약 80%가 웬만큼 사막화된 상태다. 당장 돈 한 푼 나오지 않는 메마른 땅에 환경개선만을 위해 천문학적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방풍림을 조성하기란 어느 나라 정부든 쉬운 선택이 아니리라. 해마다 황사일수가 꾸준히 늘면 베이징은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앞서 예로 든 소설들에서처럼 누구든 사시사철 마스크 없이는 도저히 거리를 나다닐 수 없는 시대가 찾아올지 누가 알겠는가. 그때에도 끼를 숨길 수 없는 패션니스트들은 마스크에다 이런저런 치장을 하고 셀카 사진을 SNS에 올리는 데 열을 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리되면 미용업계의 주식시장 테마주 판도가 바뀌리라. 주거문화는 어떨까. 주기적으로 인공강우를 농경지가 아니라 오히려 혼잡한 도심에 내리게 하고, 어지간한 미세먼지는 다 막아내는 밀폐형 방진설계가 아파트와 주택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지나 않을까? 허나 이런 식의 대응은 죄다 미봉책에 불과하다. 뿅 망치로 이 구멍 저 구멍에서 머리 내미는 두더지를 그때그때 후려갈기는 짓과 같다. 다행히 최근 중국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한 두 가지 변화가 엿보인다. 하나는 민의에 의해, 다른 하나는 산업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중국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여론을 모아 정부의 정책방향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일견 당연한 정공법이나 산업적 이해에 따라 친환경 정책을 택하게 된 결과는 아이러니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월 1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행사에서 BYD가 하이브리드 SUV 차량을 선보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먼저 정공법을 보자. 작년 초 중국에서는 아나운서 출신의 한 여성이 황사문제에 정면 대응하여 화제를 모았다. 중국 CCTV 아나운서 차이징(柴靜)은 자기 뱃속의 딸이 뇌종양 판정을 받자 그 이유를 베이징 시내의 지독한 스모그에서 찾았다. 방송사를 사직한 그녀는 1년 동안 자비 100만 위안(약 1억7500만원)을 들여 중국 각지와 해외 현장을 취재했고, 그 성과를 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유튜브에 공개했다. 2015년 2월 28일 공개된 그녀의 다큐멘터리는 단 하루 만에 1억1700만번 조회되고 10만개의 댓글이 달렸다. 언론인이라기보다 아이 엄마의 시선에서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는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환경부처 장관이 호의적으로 반응했고, 유력 언론들도 대기오염 해소를 위한 강력대책을 촉구했다. 그러나 3월 둘째 주가 되어도 사회적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중국 정부는 차이징의 다큐멘터리를 인터넷에서 볼 수 없게 차단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릴 만큼 당혹해했다. 이보다 불과 한 달 앞서서는 베이징 서쪽 산시성의 한 마을을 방문한 리커창(李克强) 총리에게 한 여중생이 ‘스모그를 줄여 중국을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의 편지를 건넸다. 한 달 뒤 리 총리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노라고 친필로 답장을 썼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세상을 진정으로 바꾸자면 제2·제3의 차이징이 꾸준히 필요함을 일깨운다. 어찌 계란으로 바위를 한 번에 깨뜨리랴. 이들의 염원이 사회 전반의 공감을 얻자 결국 정부를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소위 ‘스모그와의 전쟁’을 선포한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GDP 단위기준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보다 40~45% 수준으로 줄이고, 청정에너지 비중은 15% 늘리기로 했다. 특히 수도권의 형편없는 대기 질 개선에 향후 6년간 42조 위안(7300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철밥통이자 출세의 지름길로 여겨지는 공산당 간부들에게도 생태환경을 파괴하는 정책을 추진 시 기록에 남겨 평생 책임을 묻는 ‘종신책임제’를 적용하겠다는 의지까지 내비쳤다. 중국, 2020년까지 전기차 500만대 생산 두 번째 변화는 그 파장이 보기보다 미묘하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전기차를 500만대 생산하고, 충전소 1만2000곳(충전기 480만대)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이는 악성 미세먼지의 주범 중 하나인 차량 배기가스를 줄이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자국 기업을 선두로 끌어올리려는 복안이 한데 맞아떨어진 결과다. 이를 위해 전기차 구매보조금을 최대 약 1900만원까지 지급하고 지방정부도 전기차 의무구매 비율을 기존의 30%에서 50%로 확대하도록 권했다. 이러한 기조는 2015년 시진핑 주석이 상하이자동차를 방문해 “전기차야말로 중국이 자동차 대국에서 강국으로 가는 필수 코스”라고 강조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내연기관 자동차시장에서 경쟁하는 한 후발주자로서는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테스트베드 삼아 전기차 사업에 일찍 뛰어든다면 내일의 세계 자동차업계는 중국 기업들이 선도할 수 있으리라는 속내인 것이다. 환경에도 도움이 되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다. 국민에게 면이 서는 동시에 기업도 살려 국부를 늘리는 일 아닌가. 실제로 중국의 전기차 판매는 2015년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며 연간 시장규모 20만대를 돌파했고, 덕분에 중국 토종기업 BYD가 세계 1위 전기차 생산업체로 부상했다. 전기차 분야에서 앞선 기술력을 자랑하는 테슬라모터스가 중국에 생산기지 건설을 검토하는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 황사로 시작한 이야기의 결말이 의외라 생각되는가? 그렇지 않다. 뭐든 동전의 양면이 있는 법이니. 중국의 전기차 생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 우리 국민이 황사(더 정확히는 미세먼지)로 겪는 고통은 많이 완화되겠지만 국내 자동차업계에는 비상이 걸린다. 그동안 우리 자동차업계는 독일과 미국 같은 메이저 자동차 생산업체들처럼 차세대기술로 떠오른 전기차 개발보다는 공해를 뿜어내는 재래식 자동차 시장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테슬라 같은 일개 사업자가 아니라 중국 시장이 움직인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2016년 6월 출시 예정인 현대자동차의 전기차는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130~180㎞지만 테슬라의 최신형은 346㎞다.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도 한국의 전기차 기술 경쟁력은 미국의 40%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이제라도 국내 기업들이 정신 차리고 서두르면 어떻게든 쫓아갈지 모르나 우리나라 정부와 국민이 염두에 두어야 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차세대 자동차산업은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기존의 자동차는 대규모 장치산업의 산물이다. 복잡한 내연기관과 수많은 부품을 생산·조립하려면 대규모 공장은 물론이고 숙련된 수많은 직원들과 협력업체들에 의존해야 한다. 반면 전기차는 배터리와 모터, 차체, 그리고 운영시스템이 전부라 생산방식이 단순하다. 알기 쉽게 테슬라의 예를 들면 시가총액은 제너럴 모터스의 2분의 1이지만 직원 수는 30분의 1에 불과하다. 전기차시장의 확대는 고용효과가 높은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고,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노동시장 한파를 초래할 것이다. 대기의 질이 나아지는 만큼 사람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매년 노사분규가 일 때마다 자동차 기업의 귀족노조 운운하는 언론의 수식어도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워질지 모른다. 그때가 되면 황사가 불던 시절이 그나마 나았다고 회고하는 이들이 있을까?
[인터뷰ㅣ여야 총선 사령탑에게 듣는다]“박근혜 바람이 국민의 바람 이길 수 없다”
[인터뷰ㅣ여야 총선 사령탑에게 듣는다]“박근혜 바람이 국민의 바람 이길 수 없다”(2012. 04. 03 19:04)
2012. 04. 03 19:04 정치
ㆍ박선숙 민주통합당 선대위 선거대책본부장 박선숙 민주통합당 선대위 선거대책본부장은 민주통합당의 총선 야전사령관을 맡아 총선 후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다. 야권연대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자신은 “(야권연대) 협상 대표인 내가 지역구에 출마하는 것은 도의적으로 맞지 않다”면서 포기해 신선한 감동을 줬다. 3월 29일 오전 인터뷰 약속 시간은 계속 미뤄졌다. 이날 이혜훈 새누리당 선대위 종합상황실장이 “(새누리당) 승산 지역이 70곳, 야권이 선전하면 190석을 가져갈 것”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반박 브리핑이 갑자기 잡혔기 때문이다. 그를 만나 총선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들어봤다. 사무총장에 이어 선대위 선거대책본부장까지 맡았다. 총선 불출마 선언 후 궂은 일만 하는 것 같다. “내가 뒤치다꺼리 전문이다.”(웃음) 이혜훈 새누리당 종합상황실장이 야권이 190석을 가져간다고 하던데. “3월 24일부터 26일까지 조사된 내용을 종합해보면 민주통합당이 우세한 지역이 38곳, 경합우세 지역이 21곳, 경합열세가 18곳, 열세가 87곳, 혼전이 45곳이다. 백중세 지역을 다 이겨도 104석이다. 민주통합당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혜훈 의원이 상당히 해볼 만하다는 내용을 발표했다가 불과 나흘 만에 터무니없는 결과를 발표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총선 후보들은 모두 밑바닥 민심은 여전히 정권심판론이 강하다고 하지만, 야권 지지율은 급반등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뭔가. “MB 심판에 대한 여론은 상당히 단단하다. 이번 총선을 정권심판론으로 끌고 가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국민이다. 다만 그 표가 우리 후보에게 오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을 심판하고 싶어도, 민주당이 미운 것이다. 18대 국회에서 민주통합당이 제대로 막은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 데서 오는 실망감이 크다. 민주통합당에 대한 기대감도 높지 않다. 마음이 아프지만 요즘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다.” 4·11 총선을 어떤 이슈로 끌고 가려고 하나. “반값등록금이다. 국민의 최대 관심은 민생이다. 19대 국회가 민생 문제에 대해 어떤 답을 낼 수 있는지 국민들이 주목하고 있다. 그것을 상징하는 게 반값등록금이다. 19대 국회가 국민에게 몇 가지 약속을 해야 된다. 반값등록금, 일자리 대책, 노령연금 등의 부분에 대해 19대 국회가 열리면 바로 처리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박근혜 비대위원장도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도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해야만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런데 그분은 그 말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 진심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4·11 총선에서도 색깔론에 대해 고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문제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색깔론과 남북관계를 들고 나오는 것은 역시 낡은 세력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북 관계에서 긴장이 고조되면 국민들의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깊다.” 색깔론 공세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총론적으로 효과가 없을 것이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결과가 보여줬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전국을 돌면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선거의 여왕’ 자리를 내놓은 것 아닌가. 박근혜 바람의 한계다. 박 바람은 국민의 바람을 이길 수 없다. 다만 이번 선거가 대선과 가까이 있어서 새누리당 보수층이 총결집한 것이 우리에겐 어려운 일이다.” 박근혜 위원장 대항마로 문재인 이사장이 거론된다. “본인의 결심이 가장 중요하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시대에 그분이 져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 야권에는 문재인 이사장과 함께 책임을 나눌 수 있는 (대권) 주자가 여당보다 많다.” 야권연대 협상을 이끌어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인가. “경선지역을 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우리가 전략지역으로 정한 곳이 모두 경선지역이 됐다. 야권연대 협상 과정에서 우리의 목표와 상충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야권단일화 후보 경선 때문에 백혜련 후보 등 3명의 전략 후보를 잃었다. 어렵게 모시고 온 분들이었고, 그 지역에서 출마하면 이길 수 있는 후보라는 점에서 우리는 의석 3개를 내놓은 것이다.” 서울 도봉갑 인재근 후보의 야권단일화 경선 여부가 마지막 쟁점이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우리 입장에서 인재근 여사는 상징성이 있는 전략공천 1호다. 당으로서 그분에게 경선을 해달라고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논의가 필요했다. 인 후보가 ‘(경선이) 필요하면 해야지 어떻게 하느냐’는 말을 해줘서 고마웠다.” 19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아쉬움은 없나. “없다. 청와대(청와대 대변인)와 부처(환경부 차관)에서도 일했는데, 국회라는 곳이 어느 곳보다 힘들었다. 정부는 나에게 주어진 집행의 책임과 권한이 분명한데, 국회는 다르다. 입법기관 혼자서(국회의원 개개인이라는 의미) 청와대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일을 해야 한다. 국회의원에게 무한의 책임이 있다. 내가 못한 일은 19대 국회로 넘겨주려고 한다.” 18대 국회에서 다양한 사안을 파헤쳤다. 해결하지 못해서 안타까운 사안이 있나. “민간인 사찰 문제다. 2009년부터 문제제기를 했다. 아직 최종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몸통은 대통령과 대통령 주변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결심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19대 국회에서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정리한 내용을 전달할 것이다. 이것은 한국판 워터게이트다.” 18대 국회와 이명박 정부를 평가한다면. “18대 국회는 사상 최악의 몸싸움 국회였고, 난장판 국회였다. 그 원인이 여야 똑같다고 하면 섭섭하다. 너무 과도한 힘을 가진 다수파가 모든 것을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에 문제가 시작됐다. 힘이 없는 우리는 MB악법, 부자감세, 4대강 사업, 미디어법 등을 넋 놓고 통과시켜줄 수 없어서 몸싸움에 들어간 것이다. 우리도 치유할 수 없는 깊은 내상을 입었다. 이명박 정부가 잘못한 과오 중 하나는 공무원과 정부부처를 망가뜨린 것이다. 노동부가 대기업 편에 서고, 환경부가 환경보호가 아니라 4대강 사업을 합법화하는 부처가 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중소기업을 위해 만들어진 곳인데,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렇게 만들었다. 정부를 이렇게 망가뜨리면 복구하는 데 사람이 상하게 된다. 정말 중요한 잘못이다.”
[정치]국회에 쇄신 바람이 또 불었습니다(2011. 05. 11 16:10)
2011. 05. 11 16:10 정치
ㆍ여야 소장파 중심 변화 요구… 계파중심에서 제목소리 낼지 미지수 국회에서 ‘쇄신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은 ‘새로운 한나라’(가칭) 모임을 만들었다. 당내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민주당 비주류 의원들은 ‘민주희망 쇄신연대’(쇄신연대)의 성격을 정권 교체를 위한 모임으로 규정하고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당내 상황에 따라 목표는 다르지만 내년 총선과 대선에 대비한다는 점은 같다. 여야에서 쇄신 목소리가 나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니고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이번엔 다르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당 안팎에서 거론된다. 5월 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원내대표ㆍ정책위의장 경선에서 당선이 확정된 황우여(왼쪽)ㆍ이주영 의원이 기뻐하고 있다. 한나라당 쇄신파는 이들을 지지했다. |연합뉴스 한나라당의 경우 초·재선 의원들이 절박함을 느끼고 있다. 이들은 서울·경기 지역 민심 이반이 예상외로 심각하다는 것을 피부로 체감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패배 이후 수평적 당·청 관계 수립과 쇄신을 주장했지만 흐지부지됐다. 그 결과물이 4·27 재·보선의 패배였다. 소장파를 중심으로 반성과 혁신 없이 안주하면 내년 총선은 어렵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의원 40여명 모여 ‘새로운 한나라’ 5월 6일 한나라당 원내대표 선거가 끝난 후 정태근·김성식·정두언 의원 등 초·재선 의원 중심으로 33명의 의원이 모여 ‘새로운 한나라’(가칭)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민본 21’ ‘통합과 실용’ 등 흩어져 있던 쇄신파의 목소리를 하나로 묶었다. ‘새로운 한나라’는 모임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한나라당 원내대표 선거 과정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입지를 넓혔다. 이들은 이재오계로 꼽히는 안경률-진영(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 후보 대신 중립을 표방한 황우여-이주영 후보를 지지했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선거를 앞두고 당내 상황이 예상 밖으로 흐르자, 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쇄신파의 영향력이 예상보다 컸음을 알 수 있다. 특정 후보 지원에 대해서는 의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다. 모임을 주도했던 정태근 의원은 “의원들 사이에서 특정 후보가 (원내대표가) 되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나왔다. 다만 어떤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에 비해 김성식 의원은 “이번 원내대표 선거는 재·보선 이후 의원들의 첫 번째 정치적 투표다. 우리들은 관성이 아닌 변화를 선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의 지지를 받은 황우여 의원은 원내대표 선거에서 2차 결선투표까지 가는 경합 끝에 승리를 거뒀다. 한나라당 쇄신파가 실세인 이재오계를 누른 셈이다. 한나라당 내 역학구도에 쇄신파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황 원내대표는 157명이 참석한 2차 투표에서 90표를 획득해 64표를 얻은 안경률 의원을 제쳤다. 3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민주희망 쇄신연대 주최 ‘2012 정권교체의 길 통합이냐, 연대냐’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나라당 쇄신파는 이후 비상대책위 구성과 전당대회 준비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낼 계획이다. 모임에 참여한 의원들은 비대위원장에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내세우는 것으로 중지를 모았다. 정태근 의원은 “비대위원장 후보에 대해 초·재선 의원들의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며 “비대위 구성과 역할 등 내용에 대해서 우리들의 생각이 많이 받아들여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전당대회에 ‘전당원 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파의 영향력을 없애기 위해서다. 전당원 투표제가 실시되면 계파의 조직적인 지원과 지도부의 낙점이 약해지게 마련이다.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의원들이 과거의 공천 파동, 공천 학살, 이런 트라우마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그 이야기는 특정인을 의식하는 것”이라며 “(상향식 공천을 하게 되면) 의원들이 국민들, 당원들 눈치만 보면 된다. 상향식 공천은 한나라당 의원 94%가 찬성했기 때문에 의총에서 당연히 채택된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한나라에 참여한 이종혁 한나라당 의원도 “한나라당은 이제 계파를 초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전당원 투표제가 되면 계파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며 “이번 전대를 통해 당이 창당 수준까지 가지 않으면 내년 총선과 대선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쇄신연대’ 향후 계획 모색 민주당 쇄신파의 입지는 한나라당에 비해 좋은 편이었다. 2010년 6월 16일 민주당 비주류 의원들이 ‘민주당 쇄신연대’(쇄신연대)를 출범하면서 ▲전당원 투표제 도입 ▲지도체제 개편 ▲당권·대권 분리 등을 위한 당헌·당규 전면 개정 등을 요구했다. 쇄신연대는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당대회를 통해 쇄신연대 소속의 정동영·천정배·박주선·조배숙 의원이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어 당 지도부에 대거 입성했다. 이들의 당내 입지가 자리를 잡은 셈이다. 하지만 4·27 재·보선에서 손학규 대표의 위상이 부쩍 커지면서 쇄신연대는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5월 3일 쇄신연대는 8인 집행부 회의를 열어, 쇄신연대의 향후 계획을 이야기했다. 이 자리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쇄신연대를 지속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당내 개혁이 어느 정도 이뤄졌으니 발전적 해체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손학규 대표 체제에 대한 견제론도 대두됐다. 5월 4일 한·EU FTA 처리 과정에서 지도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천정배 최고위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당내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강화해야 한다”면서 “(민주당의) 정체성을 뚜렷이 하면서 확고한 야권통합의 길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5월 11일 민주당 쇄신연대는 전체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방향을 정할 계획이다. 5월 13일 열리는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어떤 영향력을 보여줄지도 관전 포인트다. 민주당 쇄신연대는 당내 개혁에서 정치 개혁으로 외연을 확장한 셈이다. 국회에서는 쇄신의 목소리가 높아도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이 당내 소수파라는 점이다. 이들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대세에 막혀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당에서 계파의 힘이 막강하다는 것도 쇄신파의 입지를 좁게 한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쇄신파의 역할은 중요하지만, 기존 계파 중심의 당에서 그들이 제대로 목소리를 낼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원내대표 선거 결과에서 보듯 쇄신파의 입지는 총선과 대선이 다가올수록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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