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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아세안] (43) 투자 바람에 춤추는 아세안 데이터센터
[가깝고도 먼 아세안] (43) 투자 바람에 춤추는 아세안 데이터센터(2024. 12. 27 15:40)
2024. 12. 27 15:40 국제
구글말레이시아 데이터센터 착공식 / 구글말레이시아 X 최근 아세안 지역의 디지털 경제가 성장하며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핀테크와 전자상거래, 영상 콘텐츠 등 다양한 분야의 디지털 경제가 확대되면서 아세안이 디지털 경제 허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아세안 경제 발전으로 중산층 증가와 통신 인프라 확충이 동시에 벌어지면서 스마트폰 보급률도 빠르게 늘고 있다. 디지털 친화적인 젊은 인구도 풍부하니 디지털 산업 확산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2024년 11월 발표된 구글의 디지털 경제보고서(E-conomy SEA 2024)에 따르면 2024년 아세안 지역 디지털 경제 규모는 2640억달러(약 385조원)로 예측됐다. 이는 전년 대비 15% 늘어난 것으로 3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이다. 2030년에는 1조달러(약 1439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데 6년 만에 275% 가 성장하는 셈이다. 이러한 급성장은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와 투자 열풍으로 연결되고 있다. 그간 아세안 지역 데이터센터는 정치·사회적으로 안정적이고 정보기술(IT) 인프라가 잘 갖춰진 싱가포르에 집중됐다. 하지만 데이터센터에 소비되는 전력량이 급증하자 2019년 싱가포르 정부는 신규 데이터센터 개발 중단을 선언한다. 2022년 다시 데이터센터 개발 재개를 허용했지만,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의무화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2024년 기준 싱가포르 전체 사용 전력의 7%를 데이터센터가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30년에는 그 비율이 12%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측돼 싱가포르 정부의 고민이 깊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에 투자 몰려 이로 인해 최근 신규 데이터센터 투자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로 몰리고 있다. 인구 2억8000만의 거대 시장 인도네시아에는 고젝(배달·교통), 토코페디아(전자상거래), 트래블로카(여행), 오보(결제) 등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 이상 기업가치를 지닌 디지털 유니콘 기업이 계속 탄생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도네시아인은 2억명이 넘어 데이터 소비와 클라우드 서비스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2020년 6월 구글은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발하는 인도네시아에 여러 데이터센터 운영을 시작했다. 2021년 12월 아마존 역시 50억달러(약 7조2000억원)를 투자해 2026년까지 클라우드 서비스 인프라를 강화하고 2만4700개의 직·간접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운영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4년 4월 인도네시아에 17억달러를 투자해 향후 4년간 클라우드 서비스와 인공지능(AI) 인프라를 확장하기로 발표했다. 아세안 국가별 데이터센터 투자현황 /각사 홈페이지·외신종합 말레이시아에 데이터센터 투자가 급증하는 이유는 인도네시아와는 다르다. 인도네시아가 자체적으로 데이터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거대 시장이라면,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의 보완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다. 싱가포르의 높은 임대료와 인건비, 전기료와 비교해 말레이시아는 매력적인 경쟁력을 갖췄다. 글로벌 부동산 종합 서비스 업체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2023년 11월 보고서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산업용 전력 요금은 1킬로와트시(KWh)당 약 0.1달러다. 이에 반해 싱가포르는 0.27달러로 말레이시아보다 2배 이상 비싸다. 해당 보고서의 데이터센터 건립을 위한 ‘지역별 토지비용지수’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1㎡당 1만1573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비쌌다. 하지만 싱가포르와 국경을 접하는 말레이시아의 조호르바루는 624달러로 싱가포르의 5% 수준이다. 이처럼 싱가포르에 인접해 있으면서 비용 측면에서 경쟁력이 있는 말레이시아에 데이터센터 투자가 물밀 듯 몰려들고 있다. 2023년 3월 아마존은 62억달러(약 9조원)를 투자해 말레이시아에 2037년까지 클라우드 서비스 인프라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 사업의 하나로 2024년 8월에는 여러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이 데이터센터들이 향후 5만개 이상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해 5월 마이크로소프트는 말레이시아의 클라우드 및 인공지능 인프라에 향후 4년간 22억달러(약 3조2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에 질세라 구글도 2024년 5월에 20억달러(2조9000억원)를 투자해 말레이시아에 첫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시설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2023년 12월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던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은 말레이시아를 AI 분야 세계 20위 국가로 발전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AI 연구를 위한 센터 설립을 지원하고 슈퍼컴퓨터 구축 사업에 동참키로 했다. 말레이시아에 데이터센터 투자가 몰리는 이유는 비용 절감 외에도 정부 정책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마이 디지털(My Digital·My는 말레이시아 약자와 ‘나의’란 뜻을 모두 의미)’ 계획을 통해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인프라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2025년까지 디지털 경제가 국내총생산(GDP)의 25.5%를 차지하도록 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2024년 12월에는 국립 AI 사무국(NAIO)을 출범해 정부 차원의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NAIO는 AI 산업의 지역 허브가 되기 위한 전략 수립 등 AI 분야 전반을 담당하는 지휘소 역할을 한다. 또 말레이시아는 국제전기통신연합이 매년 발표하는 정보통신 발전지수에서 2023년 세계 15위를 기록했다. 싱가포르 4위, 한국 8위, 일본 14위에 이어 아시아에서 4번째로 높은 순위다. 이는 말레이시아가 디지털 경제에서 선두 주자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평가받는다. 2024년 6월 글로벌 금융기관인 CGS 인터내셔널의 <내비게이팅 아세안>에 따르면 2028년 말레이시아 데이터센터 용량은 3221㎿(메가와트)로 인도네시아(1519㎿)와 싱가포르(1445㎿) 두 나라를 합친 것보다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만간 말레이시아가 싱가포르를 제치고 아세안 데이터센터의 새로운 허브가 되는 것이다. 한국 기업, 전략적 접근 필요 아세안 디지털 경제를 뒷받침할 허브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떠오르는 상황이 한국 기업에도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LG CNS와 LG전자, LG에너지솔루션 등 LG그룹 계열 3사는 공동으로 3억달러(약 4377억원) 규모의 인도네시아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 국내외 다양한 데이터센터 수주 경험이 풍부한 LG CNS는 2023년 9월 인도네시아 현지 기업인 시나르마스 그룹과 합작 법인을 설립해 인도네시아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LG전자는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열을 최소한의 에너지만 사용해 냉각시키는 초대형 냉방기 ‘칠러’를 개발해 공급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데이터센터에 전력이 차단돼도 데이터를 보호하고 화재 확산을 방지하는 특허 기술을 공급한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아세안 디지털 경제를 뒷받침할 데이터센터 투자 열풍이 한국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친환경 기술 협력과 에너지 효율화를 통해 아세안 디지털 경제 인프라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해야만 한다. 이는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글로벌 추세기도 하다. 2025년 새해에도 아세안 데이터센터 시장은 지속적인 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며 한국 기업들이 이를 활용할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가깝고도 먼 아세안
[박수현의 바닷속 풍경](55)남미와 남극 사이 드레이크해협-바람이 일으키는 풍랑, 파도
[박수현의 바닷속 풍경](55)남미와 남극 사이 드레이크해협-바람이 일으키는 풍랑, 파도(2024. 10. 09 06:00)
2024. 10. 09 06:00 문화/과학
2020년 남극에 갔을 때 거칠기로 유명한 남빙양의 드레이크해협에서 붉게 칠한 배 한 척을 만났다. 사납게 날뛰기 시작하던 파도는 하얗게 부서지며 큰 소리와 함께 배로 뛰어들었다. 거친 바다와 싸우는 뱃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 인생이 거친 바다를 지나는 항해와 같은 것이 아닐까. 파도는 해안에 가까워질수록 높아진다. 수심이 낮은 해안으로 파도가 오면 아래쪽은 바닥과의 마찰 때문에 속도가 느려지는데 위쪽은 이보다 더 빠르다. 파도의 봉우리는 앞으로 넘어지고 넘어진 봉우리들이 겹친다. 파도를 보면 물결이 해안 쪽으로 전진하는 것 같지만 사실 바닷물은 그 자리에서 원운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줄의 양쪽 끝을 잡고 흔들면 줄은 그 자리에 있고 진동만 전달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파도에도 나이가 있다. 날카로운 형체에 거친 모양이 뚜렷하면 그것은 젊은 파도다. 가까운 곳에 있는 폭풍 때문에 생긴 것이다. 해안을 향해서 일정한 간격으로 진입하고, 진행 방향 전체에 걸쳐 마루가 높은 둥근 물결이면 그것은 먼 곳에서 온 파도다.
박수현의 바닷속 풍경
[정태겸의 풍경](64) 경북 청도 운문사-바람은 목련을 흔들고, 북소리는 봄을 부르고
[정태겸의 풍경](64) 경북 청도 운문사-바람은 목련을 흔들고, 북소리는 봄을 부르고(2024. 04. 10 06:00)
2024. 04. 10 06:00 문화/과학
10여 년 만에 경북 청도 운문사를 찾았다. 생각보다 봄볕이 포근하고, 제법 따스한 날이었다. 숱하게 많은 사찰을 다녔는데, 운문사를 참 좋아한다. 이처럼 단정하고 잘 가꾼 정원이 돋보이는 곳은 드물다. 무엇보다 운문사의 새벽은 감동이다. 이 시대에 이처럼 간절한 소리가 전율이 일도록 하는 의식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감동적이다. 오죽하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운문사의 새벽예불을 극찬했을까. 아직도 오래전의 그 새벽이 눈과 귀에 선하다. 운문사 경내를 돌아다닐 때 북소리가 울렸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지만, 저녁이 찾아왔음을 알리는 신호다. 스님 둘이 나란히 서서 번갈아 가며 북을 쳤다. 꽃을 좇아 절 안으로 들어와 있던 모두가 걸음을 멈추고 북을 울리는 현란한 몸동작에 빠져들었다. 마침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목련 가지를 흔들었다. 그제야 하얀 꽃의 존재가 드러났다. 북소리의 장단에 맞추듯 목련의 우아한 꽃잎이 살랑거렸다. 마치 춤을 추는 듯, 이 봄날의 축제가 시작됐음을 알렸다. 하루가 저물기 전 햇살은 여전히 포근하고, 하루의 끝을 알리는 북소리는 심장 박동처럼 울려 퍼졌다. 시나브로 봄이다.
정태겸의 풍경
되살아난 정권심판 바람…전문가 예측 판세도 뒤집혔다
되살아난 정권심판 바람…전문가 예측 판세도 뒤집혔다(2024. 03. 25 06:00)
2024. 03. 25 06:00 정치
8명 중 5명 “민주 승” 되살아난 ‘尹 심판 바람’…민주↑·국힘↓ 추세 뚜렷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올라오는 공표여론조사 데이터를 가공해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MBC·박종희 서울대 교수팀의 ‘여론M’ 2024년 총선 코너. 여론조사 결과를 총합한 우세 지역은 각 정당 색깔로 표시된다./ 여론M 캡처 정당별 공천이 마무리되고 대진표가 확정되면서 여론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결과는 제각각이다. 주로 한 선거구의 조사 결과만 다루는 언론보도만으로는 전체 결과를 알기 어렵다. 전체추세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선관위가 운영하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된다. ‘여론조사 결과보기’ 항목에서 언론이 보도하고 있는 전체 공표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볼 수 있다. 여심위는 쏟아지는 각종 여론조사는 주간 단위로 요약해 보여주는 ‘한눈에 보는 주간 선거여론조사’도 매주 화요일마다 업데이트하고 있다. 총선 판세 예측, 어느 자료를 보면 될까 한계는 있다. 여심위에 등록된 자료의 세부 데이터는 통상 언론 공표를 한 뒤 24시간이 지나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실시간으로 해당 여론조사 결과를 보려면 여론조사를 의뢰한 언론사에서 해당 뉴스를 참고해야 한다. 여심위 자료는 여론조사 결과별로 돼 있어 전체를 보려면 이 자료들을 다시 가공해야 한다. 간단히 확인할 방법도 있다. MBC와 서울대 박종희 교수팀이 수년 전부터 진행해온 프로젝트 ‘여론M’ 사이트에 들어가면 여심위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지도를 선거구별로 재구성한 실시간 현황판을 볼 수 있다. 여론M은 3회 이상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된 지역을 바탕으로 추세를 보여준다. 3월 21일 오전 11시 기준 전국 254개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앞서는 곳은 7군데, 국민의힘은 1군데, 경합지역은 15군데다. 사실 아직 한 번도 여론조사를 하지 않은 지역구가 많다. 왜일까. 결론이 정해진 곳이 많기 때문이다. 과학적 여론조사가 시작된 1987년 이후에 지지 성향이 바뀐 적이 별로 없는 곳은 굳이 조사할 필요가 없다. ‘비용 대비 효과’ 때문에 언론사 의뢰 공표 여론조사는 중복되더라도 격전지 여론조사로 집중된다. 역설적으로 여론조사를 다 하지 않더라도 판세를 추론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론M 현황판의 공란에서 어느 쪽이 당선될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이번 총선 승자는 정치평론가나 선거컨설턴트는 어떻게 예측할까. 언론보도를 보고 감으로? 지난 3월 13일 국회에서 ‘22대 총선 전망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를 주최한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는 ‘민주 142석, 국민의힘 141석, 조국혁신당 10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녹색정의당 1석, 진보당 1석’을 전망했다. 그러나 1주일 뒤, 김 대표는 예측을 바꿨다. ‘민주당 과반 승’이다. 이유는 경기도에서 판세 변화다. 김 대표는 “지역구별로 하나하나 더해 내놓은 수치다. 역대 선거 결과를 전제로 하고 현재 여론조사와 후보들 경쟁력을 더해 내린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애초 그가 내놓은 이번 선거의 전망은 ‘과반 정당 없는 계가(計家) 바둑’이었다. 대국이 끝난 후 서로 얻은 집(家)을 계산(計)해봐야 승부가 결정된다는 전망이었다. 그게 3월 하순으로 넘어가면서 바뀌었다. “민심의 밑바닥엔 윤석열 정권심판이라는 용암류가 항상 흐르고 있었다고 봤다. 이게 바깥으로 분출되냐 마냐의 문제인데,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의 자진 사퇴, 이종섭 호주대사의 공수처 소환으로 다시 탄력을 받은 정권심판론이 확산하면서 수도권 민심, 특히 경기 판세를 바꿨다. 바람이 분 것이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31 대 73’이 총선의 기본 출발 구도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28석)과 제주(3석)를 더하면 31석인 반면 국민의힘은 대구·경북(25석)과 부산·울산·경남(40석), 거기에 강원도(8석)를 더한 73석을 거의 석권한다는 전제가 출발점이다. 민주당이 기본 30~40석을 지고 시작하는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충청과 수도권에서 모두 65~70%를 이겨야 한다. 당연히 쉬운 것은 아니다.” 최 소장은 지난해 12월 말 낸 <이기는 정치학>에서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이기긴 쉽지 않은 조건이라고 주장했는데 최근 방향을 수정했다. 조국혁신당의 등장으로 국면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지층을 나눠보면 크게 친명과 친문, 호남 3대 축으로 돼 있다. 이른바 ‘비명횡사’ 공천으로 2월에 지지율이 하락하다 3월 초·중순이 되면서 조국혁신당의 등장으로 ‘비조지민’(비례는 조국혁신당·지역구는 민주당) 현상이 나타났다. 조국혁신당을 적극 지지하면서 민주당을 소극지지했던 사람들에게 선택지가 나타나면서 사실상 연합군의 형세를 가지게 됐다.” 3월 21일 그가 내놓은 전망예측치는 민주당 142석, 국민의힘 136석이다. 아직 판단 유보조항이 남아 있지만 민주당이 이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심의 방향이 다시 정권심판론으로 기울게 하는데 대통령실 리스크에 더해 조국혁신당의 ‘선전’이 결정적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는 대부분 정치평론가·선거컨설턴트들의 생각이 모인다.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고문은 “조국혁신당은 확신에 찬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설령 네거티브 이슈가 나오더라도 지지율이 쉽게 빠지지 않을 것”이라며 “투표일이 임박하면 거대 양당 위주로 쏠림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비례투표에서 조국혁신당을 찍겠다는 사람은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주간경향은 정치평론가·선거컨설턴트·여론조사 회사 대표 등 8인의 전문가에게 예측 판세를 물었다. 3명의 평론가가 국민의힘 승리를 예측했고, 5명의 평론가가 민주당의 승리를 예측했다. 그러나 의석수에서 20석 이상 큰 차이를 예상하는 경우는 처음엔 국민의힘 대승을 예측한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밖에 없었다(민주당 117·국민의힘 167). 3월 21일 오후 6시 기사 마감 시점을 두고 전문가들이 알려온 ‘수정치’에서는 전반적으로 민주당 예상 의석수가 올라갔다. ‘과반 정당 없는 계가 바둑’을 주장하던 김능구 대표도 이날 오후 경기도 판세변화에 기인한 민주당 과반을 예측하는 수정치를 보내왔다. ARS 여론조사, 야당 지지자 편향 있다? “지금 여론조사를 믿지 않는다.” 김장수 장산정책연구소장의 말이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 138석, 국민의힘 145석으로 국민의힘이 이길 것을 예측했다. 그는 선거제도와 스윙보터(부동층) 연구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여론조사 전문가다. 김 소장은 “지난 대선 막판에 여의도연구원은 윤석열 후보가 12% 앞설 것이라는 예측을 담은 최종보고서를 냈다. 민주당 정책기관인 민주연구원이 따로 반박하지 않은 걸 보면 비슷한 결과치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당이나 비공표 여론조사를 하면서 ARS를 썼는데 ARS 자체가 ‘친야편향(bias)’이 강한 것이다. 지난 대선에는 윤석열 후보가 야당이었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정확도가 높았던 대선 결과 예측에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은 지난 대선이 처음이었다. 그는 ‘불평불만이 강한 야당 성향’이 ARS 여론조사 응답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지역구 여론조사 500 샘플(표본오차±4.4%포인트) 대부분이 ARS로 이뤄지는데, 지난 대선 이후 정권이 바뀌어 야당이 된 민주당 지지층이 지속해서 적극 응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예측은? ‘국민의힘이 과반 가까이 차지하는 1당’이 되리라는 것이다. “데이터를 여러 차례 검증해봐도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이기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박신용철 더체인지플랜 연구위원의 말이다. 그는 “투표일 1주일 앞두고 최종표심을 결정하는 중도층이 30~40%에 달한다”라며 “반윤·반명 정서 모두 각 당 지지층에게는 통할지 모르지만 결국 승패를 가를 중도층을 다 잡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는 “데이터만 놓고 보면 결국 승패는 약 40개의 승부처 결과에 따라 갈라지는데 여기서 양당이 차지하는 의석수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하지만 지금은 대진표가 짜인 초기라서 어느 누가 얼마만큼 가져가리라 판단하기엔 조금 이른 시기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과거 총선은 ‘여론조사의 무덤’으로 불렸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실시한 출구조사 조차 승자 예측에 실패한 사례가 빈번했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총선은 지역구가 많으니 표본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무엇보다 결과 예측이 어려워진 가장 큰 요인은 사전투표율이 높아지면서 출구조사 결과에 어떻게 반영할까를 두고 벌어진 딜레마적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사전투표 시행 초기엔 조작 의혹 등을 주장하는 보수층이 소극적으로 응한 반면, 최근 몇 년 사이에 보수층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출구조사 가중치 부여에 난점이 조성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경험치가 덜 쌓여 아직은 정확도가 떨어지지만, 자료가 축적되면 보다 정교한 분석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 대표에 따르면 판세 예측에서 최근 가장 주목을 받는 지표는 아파트값과 지지 정당의 상관관계다. 아파트값이 높은 지역일수록 국민의힘 득표율이 높아지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선거별로 양당 지지율과 아파트값을 회귀 분석해보면 2016년 총선까지만 하더라도 약한 상관관계였는데 지난 2020년 총선에는 상당히 높아졌다. 서울은 여전히 아파트 선거구도다. 국민의힘이 그런 이슈를 잘 선점해왔는데 곧 시행되는 노후주택 특별법 적용대상이 강남과 수도권 1기 신도시를 포함한 200만~300만 세대다. 정부나 국민의힘은 그런 이슈들이 서울 수도권 고가 아파트단지에 작동될 것을 알기 때문에 드라이브를 거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큰 표 차로 승리할 것이라는 판세 예측을 유지하고 있는 엄경영 소장은 “현재 지역구 여론조사 결과에도 강성 민주당 지지층 표심이 과다 반영되고 있어 실제 뚜껑을 열면 민주당이 이긴 걸로 조사된 지역구에서도 ‘이변’이 속출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비례투표 의향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조국혁신당도 “4050을 투표장에 견인하는 효과는 있지만 2030 표심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일부 민주당 지역구에서 투표율 상승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크게는 비례대표 의석을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나눠 가지는 효과 이상의 시너지는 내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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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에 다시 ‘한국 바람’ 불까(2023. 12. 19 07:00)
2023. 12. 19 07:00 스포츠
주춤했던 미국 무대 도전, 증가세로 전환 2024년 25명 이상 활동 ‘파리올림픽도 기대’ ‘2019년 15승, 2020년 7승, 2021년 7승, 2022년 4승, 2023년 5승….’ 최근 5년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거둔 한국선수들의 연도별 우승 횟수다. 박인비, 박성현, 고진영, 김세영 등 ‘올해의 선수상’을 휩쓴 주축선수들을 중심으로 2015, 2017, 2019년에 각각 15승씩 합작하는 등 LPGA 투어를 호령했던 한국선수들은 공교롭게 코로나19 대유행을 기점으로 선수공급이 줄어들며 침체기로 빠졌다. 2024년에는 그러나 확실한 상승세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지난해 4승에서 올해 5승으로 늘었다고 해서 단순하게 ‘바닥을 찍었다’는 게 아니다. 최근 수년간 주춤했던 한국선수들의 미국 무대 도전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우선 새 얼굴이 대거 가세한다. 지난 12월 6일 미국 앨라배마주 모빌의 로버트 트렌트 존스 골프장에서 끝난 2023 LPGA 투어 Q시리즈에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강자들인 이소미, 성유진, 임진희가 합격해 내년 시즌 풀시드를 획득했다. 이소미가 12월 6일 미국 앨라배마주 모빌의 매그놀리아 그로브 골프 코스에서 열린 LPGA Q 스쿨 6라운드에서 네 번째 티샷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국내 투어 5승을 거둔 이소미는 6일 동안 치러진 LPGA Q시리즈에서 2위를 차지했다. 올 시즌 2승을 비롯해 통산 3승의 성유진이 공동 7위, 올해 국내 최강자(4승) 임진희는 공동 17위로 합격선(20위)을 넘었다. 공동 45위로 1, 2부 투어 병행카드를 얻은 홍정민은 현실적으로 내년에 LPGA를 주무대로 뛰긴 어렵지만 일단 미국 활동의 발판을 마련했다. 여기에 LPGA 2부 투어(엡손 투어) 상금 10위 진입으로 내년 풀시드를 받은 전지원과 강민지가 합류하고, 올해 성적 부진으로 다시 Q시리즈를 치러 자격을 획득한 루키 장효준도 가세해 선수층을 두텁게 했다. LPGA 투어 Q시리즈는 한국선수들의 미국행 관문이다. 박세리가 1997년 Q스쿨 수석합격을 거쳐 LPGA 투어에 입성한 뒤 통산 25승을 거둔 스타로 발돋움했다. Q시리즈로 명칭과 선발방식이 바뀐 2019년 이후 이정은6(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한국 LPGA 골퍼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6이 붙음), 안나린, 유해란이 수석합격의 기쁨을 누렸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전성기를 이끈 한국선수들은 대부분 Q시리즈를 거쳐 LPGA 투어에 연착륙했다. LPGA로 직행 3명 ‘2019년 이후 최다’ 이번에 KLPGA 투어에서 LPGA 투어로 직행하는 합격자 3명은 2019년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해외 진출을 꺼리던 분위기에서 다시 도전과 경쟁심을 키우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내년엔 올해보다 더 많은 선수가 LPGA를 노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 5승을 합작한 기존 선수들은 저마다 의미 있는 수확을 하며 새 시즌의 희망을 키웠다. 고진영은 HSBC 여자 월드챔피언십(2월)과 코그니전트 파운더스컵(5월)에서 시즌 2승을 거두며 7년 연속 우승(통산 15승) 행진을 이어갔다. 비록 세계 1위에서 내려오긴 했지만, 손목 부상으로 1승밖에 올리지 못했던 2022년 말의 불안감을 완전히 씻어낸 부활의 시즌이었다. 유해란은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10월)에서 데뷔 시즌 첫 우승을 달성했다. 김효주도 볼룬티어스 오브 아메리카 클래식(10월)에서 우승컵을 들고 3년 연속 우승(통산 6승)을 이뤘다. 유해란은 첫 우승을 계기로 KLPGA 투어에 이어 LPGA 투어에서도 신인왕의 꿈을 이뤘다. 한국선수가 LPGA 투어 신인왕 계보를 다시 잇게 됐다는 사실은 의미가 매우 크다. 한국은 1997년 박세리 이후 김미현, 한희원, 안시현, 이선화, 신지애, 서희경, 유소연, 김세영, 전인지, 박성현, 고진영, 이정은6에 이어 14번째 LPGA 신인왕을 배출했다. 2015년 김세영부터 2019년 이정은6까지 5년 연속 신인왕을 차지한 이후 태국선수들에게 밀렸던 한국이 신인왕을 되찾은 것은 신인 강호의 수급이 제대로 이뤄지기 시작한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LPGA 투어 16년차 베테랑 양희영은 시즌 최종전인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상금 200만달러(약 26억원)를 거머쥐는 ‘대박’을 터뜨렸다. 2019년 혼다 LPGA 타일랜드(2월) 이후 4년 9개월 만에 통산 5번째 우승컵을 든 양희영은 2년 연속 4승에 묶일 뻔한 한국선수들의 체증을 뚫었다. 지난해 전인지의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제패 이후 올해 메이저 대회 우승이 없어 아쉬워하던 한국 팬들은 양희영이 최고상금이 걸린 메이저급 대회를 제패하고 단숨에 상금랭킹 2위(316만5834달러)로 뛰어오르자 환호했다. 양희영의 우승으로 한국선수들은 1988년 구옥희 이후 LPGA 통산 210승을 기록했다. 25명 이상의 한국선수들이 2024 LPGA 투어에서 뛰게 된다. 기존 선수들이 저력을 지키고, 영파워가 대거 가세하는 2024시즌은 2010년대의 영광을 되살리는 출발점이 되리라는 기대를 낳고 있다. 파리올림픽 세계 15위 이내면 최대 4명 참가 2024 파리올림픽은 한국여자골프 선수들 사이에 선의의 경쟁을 끌어낼 좋은 자극제다. 골프가 100여 년 만에 정식종목으로 부활한 2016 리우올림픽에서 박인비가 금메달을 따낸 이후 올림픽 출전은 모든 선수에게 꼭 이루고픈 꿈이 됐다. 남녀 60명이 겨루는 올림픽 골프에는 내년 6월까지 세계랭킹에 따라 각국당 2명씩 대표로 출전할 수 있다. 강자들의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세계 15위 이내 선수들이 있다면, 2명을 추가해 최대 4명까지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2023시즌을 모두 마친 현재 한국은 고진영(6위), 김효주(7위), 신지애(15위)가 올림픽 출전이 가능한 랭킹에 올라 있다. 양희영(16위), 유해란(30위), 박민지(32위), 이예원(34위), 최혜진(35위) 등이 뒤따르고 있다. 내년 상반기 동안 우리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거듭한다면 2016 리우올림픽과 2020 도쿄올림픽에 연속 4명씩 출전했던 한국여자골프의 위세를 다시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베테랑 신지애의 활약은 특히 눈에 띈다. LPGA 투어에서 통산 11승(메이저 2승)을 거두고 일본으로 무대를 옮겨 뛰고 있는 신지애는 올해 호주에서 1승, 일본에서 2승을 거두며 전 세계 프로통산 64승을 거뒀다. US여자오픈 2위, AIG 여자오픈 3위 등 메이저대회에서도 빼어난 성적을 거둬 세계 15위까지 치솟았다. 양희영도 시즌 최종전 우승을 발판삼아 16위로 뛰어 2016 리우올림픽 이후 8년 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노리고 있다. 양희영은 당시 1타차로 4위에 그쳐 아쉽게 메달을 따지 못했다. 2024년 상반기에 LPGA 투어에서 우승한다면 세계랭킹은 금세 끌어올릴 수 있다. 세계랭킹 포인트가 많이 반영되는 메이저대회를 제패한다면 금상첨화다. 일본, 한국 투어에서 뛰는 다른 선수들도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다면 판도를 뒤집을 기회가 남아 있다. 신지애, 양희영뿐 아니라 유해란, 박민지 등 국가대표 후보군에 근접한 강자들은 하나같이 2024년 파리올림픽 출전을 새해 목표로 삼아 동계 강훈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제 바닥은 충분히 다졌다. 2024년 LPGA 투어에서 들려올 한국선수들의 승전보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주간 舌전]“당내 문제에 대통령 언급 바람직 안 해”
[주간 舌전]“당내 문제에 대통령 언급 바람직 안 해”(2023. 11. 21 07:00)
2023. 11. 21 07:00 정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박민규 선임기자 “당무에 개입하지 않고 있는 대통령을 당내 문제와 관련해 언급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1월 16일 이렇게 말했다. 김 대표의 발언은 전날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 측으로부터)‘소신껏 끝까지 당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거침없이 하라’는 신호가 왔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으로 읽힌다. 이날 김 대표는 “당 내부 문제는 당의 공식기구가 있다”며 “당 지도부가 공식기구와 당내 구성원들과 잘 협의해 총선 준비를 하고, 당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시스템이고, 그것이 잘 작동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향한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 요구에 대해선 “당대표의 처신은 당대표가 알아서 결단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인 위원장이 친윤석열계(친윤) 중진 의원 등을 겨냥해 “시간을 좀 주면 (불출마 및 험지 출마에 대한)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며 “100% 확신한다”고 말한 데 이어 윤심까지 들고나오자 국민의힘 내부에선 날 선 반응이 나온다. 친윤 핵심으로 불리는 장제원 의원은 “저는 눈치 안 보고 산다. 권력자가 아무리 뭐라 해도 제 할 말 하고 산다”며 “제 알량한 정치 인생을 연장하면서 서울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병민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윤심 논란을 두고 “혁신위가 혁신의 전권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만큼 그 일 잘했으면 좋겠다고 응원하는 메시지를 낸 게 아닌가 싶다”고 일축했다.
바람 좋은 바다는 다 외국 투자사가 ‘찜’(2023. 08. 04 11:21)
2023. 08. 04 11:21 사회
ㆍ해상풍력, 29개 관련법 등 까다로운 인허가 ㆍ국민연금 등 공적 기관 재생에너지 투자 선도를 제주 탐라 해상풍력단지 전경 /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 5월 25일 발표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세계 에너지 투자 2023’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에너지 투자액 2조8000억달러 중 청정에너지 분야에 1조7000억달러가 투자될 전망이다. 전력망과 에너지 저장장치, 히트펌프, 핵발전 투자도 증가하고 있지만 가장 주된 투자처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다. 연간 3800억달러(약 495조원)가 투자되는 태양광, 2250억달러의 풍력을 포함해 올해 전체 재생에너지 투자는 전년에 비해 10% 증가한 6500억달러로 예상된다. 태양광 신규 투자는 올해 처음 석유 투자 규모를 앞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IEA의 파티 비롤 전무이사는 “청정에너지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는 화석연료에서 멀어지고 있는 투자 동향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면서 “화석연료에 1달러를 투자할 때마다 약 1.7달러가 청정에너지에 투자되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이 비율은 1 대 1이었다”고 말했다. 국내 에너지 투자는 이런 흐름과 역행하고 있다. 지난 6월 22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이 발표한 ‘2022 화석연료금융 백서’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와 화석연료 투자의 누적 규모가 약 2.6배 벌어지는 사이 국내에선 같은 기간 재생에너지(30조2000억원)보다 석탄의 누적 투자액(31조1000억원)이 더 컸다. 국내 해상풍력 외국 자본이 주도 당분간 이런 추세는 크게 변하지 않을 전망이다. 현 정부 들어 태양광은 범죄시되고 있다. 풍력은 인허가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상풍력 발전사업허가는 400% 증가를 보였던 2021년(22건)에 비해 2022년(16건) 오히려 13% 감소했다. 해상풍력은 최대 10개 부처에서 집행하는 29가지 법률에 따른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개발사가 풍황을 조사해 입지를 선정한 후 발전사업허가를 받고, 공유수면점용·사용허가, 실시계획 승인, 공사계획 인가 등의 과정을 거쳐 진행된다. 인허가 취득에 필요한 시간은 정부가 추산한 통계로만 최소 68개월이다. 인허가를 받았다고 끝이 아니다. 어민들의 반대를 넘어야 한다. 해상풍력 업계 관계자는 “인허가를 모두 받고, 정책적인 지원이 결정된 상태에서도 실제 착공에 들어가면 어민들이 훼방을 놓거나 민원을 넣어서 공사를 못 하게 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사업의 불확실성이 크다 보니 리스크에 민감한 국내 투자자들은 해상풍력 투자에 소극적이다. 그나마 진행되는 해상풍력 개발은 외국 자본이 좌지우지한다. 특히 입지 선정과 허가권 획득 전까지의 초기단계에 맥쿼리그룹 등 해외 금융기관들이 대다수를 점하고 있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은 “해상풍력 사업은 허가를 하나씩 받을 때마다 가치가 많이 높아지는데 이렇게 허가를 받을 때마다 가치를 높여 팔아 수익을 얻은 후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재생에너지 사업 경험이 많아 리스크 평가와 사업성 분석을 잘하는 해외 개발사, 투자자들이 초기 단계에 들어와 기본적으로 좋은 지역은 이미 다 선점한 정도”라고 말했다. 일례로 울산 먼바다에서 1~1.6GW 규모의 부유식 해상풍력 사업이 여럿 진행 중이다. 프랑스 전력회사(ENGIE)와 스페인 전력회사(EDPR), 노르웨이 해양에너지 시추 전문업체 아커솔루션스의 자회사 아커오프쇼어윈드 등 3개사가 합작한 오션윈즈를 비롯해 노르웨이 국영기업 에퀴노르와 덴마크 에너지 인프라 펀드 운용사 CIP 등 해외 개발사와 투자자들이 들어왔다. 국내기업과 합작 형태로 추진하는 사례가 많은데 CIP는 국내 최대 재생에너지 사업자인 SK E&S와 함께 합작법인 ‘전남해상풍력’을 세우고 전남 신안군에서 1단계 99㎿ 규모의 해상풍력 사업을 벌이고 있다. 1단계 사업이 올해 초 착공했고, 각각 400㎿인 2~3단계 사업도 진행 중이다. 해외업체는 유럽과 북미, 대만 등의 지역에서 투자 경험이 많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업체는 후발주자로 경험이 제한적이라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가중치 변동과 같은 정책 변화도 불안요소가 된다. 지난 4월 7일 정부가 해상풍력발전 사업 추진 과정에서 국산 부품을 50% 이상 사용할 때 REC 가중치를 주는 규정을 삭제하면서 경제성이 불투명해진 사업이 재검토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군 작전성 검토를 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조은별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입지 선정을 위한 조사와 허가를 받는 과정에 모두 돈이 들어가는데 나중에 군 작전성 검토에서 안 된다고 하면 그 비용이 다 매몰 비용이 된다”면서 “환경부가 조류의 이동경로 정보를 구축하기로 한 것처럼 군 레이더 설치 지역 정보도 안보상 전체 공개는 어렵더라도 대안을 마련해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는 REC 가중치 변동이나 군 작전성 검토와 같은 다양한 불안요소가 해소돼야 대규모 해상풍력 추진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완공 예정인 대만의 윈린 해상풍력의 경우, 해상에서 100m 길이 하부구조물 시공 중에 문제가 발생해 공사기간이 3년 지연돼 손실금액이 수조원에 이르러 국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이렇게 리스크가 큰 환경이라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국내기업에 대한 지원과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탈석탄 선언에 맞는 행동해야 국내 공적 기관이나 금융기관이 재생에너지 투자에 소홀하다 보니 개발사 입장에서도 해외 개발사와 투자자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 연구원은 “초기 시장을 형성하고 경험과 지식을 얻기 위해 해외 기업과 투자자의 도움을 빌리는 건 나쁘지 않다고 본다”면서 “재생에너지 발전 수익이 해외로 유출되는 게 우려된다면 우리 개발사가 들어갈 수 있게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하는데 그게 없다”고 말했다. 국내 투자의 큰 손인 국민연금을 비롯해 공적 금융기관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태한 연구원은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 기관이 재생에너지 투자의 위험도를 낮춰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자금이 들어오려면 리스크 수준을 어느 정도 맞춰줘야 한다. 해상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프로세스가 길어 다른 에너지보다 리스크가 높다. 그래서 해외에서도 녹색은행이나 녹색금융공사에서 리스크를 안고 가는 형태로 마중물이 돼준다. 똑같이 자금을 대도 문제가 생기면 민간이 먼저 투자금을 회수하고, 자신은 후순위로 가져가는 형태로 위험도를 낮추거나 보증을 해줄 수 있다. 국내 공적 기관은 그런 역할이 소홀하기 때문에 민간투자도 들어오기 어려운 구조다.” 석탄 산업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고, 재생에너지에 투자해야 할 때지만 탈석탄 선언 2년 3개월을 맞은 국민연금의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연금은 탈석탄 선언을 하면서 석탄 투자 제한 기준을 마련해 시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용역보고서가 나온 지 1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기금운용위원회 회의 석상에 단 한 번도 안건으로 오르지 못했다. 어떤 기업을 석탄 기업으로 볼 것이냐는 기준에서 용역보고서는 크게 총매출의 30%가 석탄 관련 산업에서 나올 경우와 50%에서 나올 경우 석탄 기업으로 보자는 두 가지 안을 제안했다. 30% 안에 산자부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한전이 대규모 적자를 채권 발행으로 메우는 상황도 무관치 않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석탄발전소를 운영하는 (한전 자회사인) 에너지 공기업들에 국민연금이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만 해도 한전이 조달하는 금리가 올라갈 수 있다”면서 “산자부, 한전과 논의하고 있는데 이견이 좁혀져야 (기금운용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2016년 1월부터 전체 매출액이나 전력 생산량의 30% 이상을 석탄에서 얻는 기업을 석탄 기업으로 분류해 투자를 회수했고, 2017년에는 한국전력에 더 이상 투자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유럽 최대 연기금인 네덜란드 연기금도 같은 기준으로 2021년 2월 한전 주식을 전량 매각했다. 국민연금은 이런 움직임에 가장 뒤늦게 동참했는데 여전히 기준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김태한 연구원은 이를 ‘직무유기’라고 봤다. “연금이 독립성이 있다면 봐야 할 것은 특정 정권의 이슈가 아니다. 연금이 중장기적으로 수익을 잘 창출하느냐, 지속가능하게 운영돼 연금을 잘 돌려받을 수 있게 하느냐이다. 해외 연기금이 석탄 투자를 하지 않는 건 기후변화의 문제보다 석탄 산업이 수익률 측면에서 좋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고려하지 않아야 할 이슈를 고려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재생에너지 투자 규모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어떤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지를 공개하면 투자 전략을 공개하는 것과 같아 해당 기업 주가가 국민연금의 전략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채권이나 주식과 달리 대체투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투자 전략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궁색한 해명이다. 한수연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상대적으로 모범적인 미국의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과 비교해 국민연금을 비판했다. “캘퍼스는 화석연료에 투자하는 1달러당 3.75달러를 재생에너지 혹은 에너지 전환에 투자한다. 전환(발전) 분야에 투자하는 것을 제외하면 캘퍼스의 청정에너지 대 화석연료 투자 비율은 2.5 대 1 정도이며, 재생에너지 투자 비율을 향후 더 적극적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해외 연기금이 석탄을 넘어 화석연료 전반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고 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고 있는 반면, 국민연금은 탈석탄 선언 2년이 지나도록 석탄 투자 제한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이 재생에너지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데이터조차 구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바람 타고 온 농약에 ‘탈락’···결과만 보는 친환경 인증(2023. 07. 14 11:20)
2023. 07. 14 11:20 경제
ㆍ비의도적 오염 가능성에도 농약 검출량에만 초점 친환경 농업 지속가능성 낮춰 유기농 농사를 짓는 최요왕 농부가 7월 12일 경기도 양평 양서면 두물머리의 밭에서 양배추를 살펴 보고 있다. / 주영재 기자 경기도 양평 양서면 두물머리는 농사를 짓기 좋은 곳이다. 두물(남한강과 북한강)이 하나로 합쳐지는 곳이라 물이 풍부하고, 지력이 좋다. 겨울에도 채소 농사를 짓기 편하다. 상온을 유지하는 지하수를 하우스 난방에 활용할 수 있어서다. 이곳과 북한강 건너편의 조안면에서 딸기 체험농장을 자주 볼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농부 최요왕씨는 이곳을 터전 삼아 20년째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다. 노지와 하우스를 합해 약 1700평의 땅에서 딸기, 양파, 무, 감자, 애호박, 멜론 등을 번갈아 가며 키운다. 질소를 땅에 공급하는 녹비작물인 콩은 3년에 한 번씩 심는다. 돌려짓기(윤작)는 유기농 인증에 필요한 농법의 하나다. 그의 양배추밭엔 나비가 자주 찾는다. 아침이면 양배추 잎 뒤에 알을 낳기 위해 찾아온 나비로 북적일 정도다. 나비도 무농약 양배추 잎이 안전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속가능성에 초점 두고 안전성 봐야 유기농을 하는 논밭엔 농약을 쓰지 않아 온갖 생물이 모여든다. 잡초와 병해충 관리가 어려워 농사가 쉽지 않다. 하지만 유기농업이 확대될수록 오염된 땅은 회복되고, 생태계가 살아날 수 있다. 유기농업을 하는 이들은 대개 이런 철학을 품고 시작한다. 현재의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는 그러나 유기농이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노력을 평가하는 대신, 농약 검출 결과에만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환경오염이 일반화된 상황에서는 농부 자신이 농약을 쓰지 않아도 농작물에서 잔류농약이 검출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이웃 농가에서 농약을 칠 때 바람을 타고 유입되거나 땅이나 농업용수가 농약에 오염된 경우도 있고 인증기관에서 샘플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오염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DDT와 같이 장기간 잔류하는 농약은 수십 년 전 사용이 금지됐지만,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의도치 않게 농약이 검출되더라도 인증이 취소될 수 있다. 유기농을 하는 농부들이 늘 잔류농약 검사 결과에 가슴을 졸이는 까닭이다. 최요왕씨도 해마다 열 번 가깝게 검사를 받는다. 인증 갱신을 위해서다. 학교 급식에 들어갈 때도 검사 결과를 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자신의 밭 옆에 새로 들어선 주말농장에서 과수 재배를 하고 있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바람이 자주 부는 방향에 있어 그들이 농약을 치면 바람을 타고 넘어올 가능성이 있어서다. 그래서 주말농장과 인접한 자신의 노지와 하우스를 따로 인증받았다. 평소처럼 묶어놨다간 자칫 노지에서 농약이 검출되기라도 하면 하우스도 함께 유기농 인증을 취소당하기 때문이다. 인증 비용이 배로 들지만 고육지책이었다. 주변 유기농 농가에서 비산 농약이 검출돼 인증이 취소당하는 사례를 여럿 봤기 때문이다. 친환경농어업법 시행규칙은 “바람에 의한 흩날림, 농업용수로 인한 오염 등 불가항력적인 요인으로 합성농약 성분이 식품위생법 제7조 제1항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정해 고시하는 농약 잔류허용기준 이하로 검출된 경우”에도 시정조치 명령에 이어 인증취소까지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9년 7월 이전에는 비의도적인 경우를 전제로 식약청의 농약잔류허용기준(MRL·잔류 농약을 평생 매일 먹어도 건강에 이상이 없는 수준)의 20분의 1 이하인 경우 인증을 유지하고, 일반 농산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에는 그러나 이 규정이 삭제되고 불검출이 원칙이 됐다. 농민이 친환경 농업을 위해 어떤 노력을 쏟아부었더라도 검출 여부 한 방에 과정은 모두 무시된다는 점에서 ‘결과 중심의 인증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친환경농산물 인증농가 수는 2020년 5만9249호에서 2022년 5만722호로 감소했고, 인증면적은 같은 기간 8만1827㏊에서 7만124㏊로 줄었다. 친환경농산물 인증취소 건수는 2020년 1473건, 2021년 2067건, 2022년 2299건으로 늘었다. 2022년 인증취소 건수 중 농약 사용 기준 위반이 1978건으로 86.03%에 달했다. 농약을 의도적으로 사용한 경우도 있지만, 비산이나 토양·물 오염으로 인해 농약이 검출된 사례도 적지 않다고 추정된다. 잔류농약 검사 위주로 운영되는 인증제도가 유기농업 축소의 가장 큰 이유라고 최씨는 말한다. “기존에 오염됐던 땅에 유기농업을 확산시켜 오염도를 낮추고 생태계가 살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전성(농약 검출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면 지속가능성(유기농업의 확산)을 보장하기 어려워지죠. 지금 인증제도는 티끌 하나 없는 백지상태를 원합니다. 유기농업을 하면서 순백까지는 아니어도 거의 하얀 상태로는 만들었는데 티 하나 생긴 것 때문에 전체를 못 하게 하니 그 입지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는 거죠.” 인증취소, “인생이 부정당한 느낌” 유기농 인증 심사는 오염 물질의 불검출이 아니라 오염을 최소화하려는 실천과 생산과정을 중심에 둬야 한다고 유기농 농민들은 입을 모은다. Codex 국제식품규격위원회(식품에 관한 국제기준을 개발하는 정부 간 기구)도 “유기농업 실천이 일상적인 환경오염으로 인한 잔여 물질이 전혀 없도록 보장할 수는 없다. 유기농업 실천의 목적은 공기, 흙, 물의 오염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유기농 먹거리 생산·가공·라벨링·마케팅을 위한 가이드라인’(1999년)에서 밝히고 있다. 실제 미국과 유럽의 경우 검출 여부보다 과정에 중심을 두고 평가한다. 농약이 나와도 일정 기준 이하(미국은 MRL 20분의 1 이하·유럽연합은 일반 농산물 기준 단, 이탈리아는 불검출)는 용인한다. 잔류농약 검사도 우리처럼 전수조사가 아닌 샘플링 방식을 택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잔류농약 검사도 생산자가 의도적으로 위반했다는 확고한 의심이 가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한다. 같은 유기농산물이라고 해도 잔류허용기준이 있는 나라의 수입 유기농산물과 비교해 불검출을 요구하는 국내 유기농산물은 인증제도의 동등성 측면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셈이다. 유병덕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장은 현재의 인증제도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도록 농업인에게 짐을 지운 꼴이라고 평가했다. “선진국·후진국을 막론하고 생산자가 노력한 만큼 인증을 주는 것이지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성과를 요구하진 않는다. 옆 밭에서 뿌린 농약이 날아들었다고 마치 유기농업을 한 사람이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여론이 형성된다. 지리산 흙을 파고 검사해도 중금속이 나온다. 유기농을 한다고 농약이 하나도 검출되지 않아야 한다는 건 거짓의 명제이고, 참의 명제는 유기농을 하면 농약이 훨씬 덜 검출된다이다.” 인증이 취소될 경우 생산물은 대부분 폐기된다. 다시 인증을 받기까지 최소 3년이 걸린다. 경제적 타격도 문제지만, 자부심이 무너지는 심리적 타격이 더 두렵다. 경북 상주에서 20년 넘게 포도, 토마토, 벼 등을 유기농으로 재배해온 농부 김하동씨( 친환경인증제도를 혁신하는 사람들 대표)는 지난해 알 수 없는 원인으로 농약이 검출돼 인증취소 통보를 받았다. 다행히 시료의 포장방법이나 채취 방식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문제 제기가 받아들여졌고, 재심사 후 농약이 검출되지 않아 구제를 받았다. “사람이 먹을 것을 짓는 일이고, 또 자연에 해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유기농을 시작했다. 유기농을 하는 많은 분이 갖고 있는 철학이다. 그런데 농약이 검출되면 주변 농부와 소비자와의 관계에서 신뢰를 잃게 된다. 인생 전체를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마을에서는 믿지 못할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농부가 농약과 비료를 전혀 쓰지 않아도 이미 오염됐거나 오염될 소지가 있는 환경이 됐는데 이런 상황에서 농약이 검출됐다는 이유만으로 인증을 취소하는 제도는 말이 안 된다.” 유기농 농부들은 지금의 인증제도는 자기 잘못도 없이 늘 불안감 속에서 농사를 짓도록 만드는 제도, 농부의 인권을 침해하는 제도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농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점도 또 다른 문제로 지적된다. 유 소장은 “잔류농약 검사에 의존하는 방법을 폐지해야 한다. 그리고 검출될 경우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먼저 관심을 기울이고, 생산자가 일으킨 문제라고 입증된 게 아니라면 생산자를 무죄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 역시 잘못된 인증제도의 피해자라고 했다. “미국이건 유럽이건 약간의 잔류농약이 검출돼도 그것이 생산자의 책임이 아니라면 유기농 인증마크를 떼지 않는다. 그곳 소비자 인식이 낮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참과 거짓을 합리적으로 구별하는 인증제도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유기농 생산자들도 내 농산물에서 농약이 검출되면 어떡하냐는 불안감이나 두려움 없이 자신만만하게 유기농을 할 수 있고,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토양과 수질이 개선되고, 생태계가 건강해진다. 건강한 농산물·축산물을 구매할 기회가 많아져 소비자들도 유리하다.” 인증제도, 결과 아닌 과정 중심으로 바꿔야 친환경농어업법은 ‘친환경 농어업’을 “생물의 다양성을 증진하고, 토양에서의 생물적 순환과 활동을 촉진하며, 농어업생태계를 건강하게 보전하기 위해 합성농약, 화학비료, 항생제 및 항균제 등 화학자재를 사용하지 아니하거나 사용을 최소화한 건강한 환경에서 농산물·수산물·축산물·임산물을 생산하는 산업”이라고 정의한다. 법상 친환경농산물의 핵심은 농약 불검출이 아니라 농약 불사용에 있다. 하지만 시행규칙에서는 농약 검출 여부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고 있다. 시행규칙이 법의 취지와 맞지 않다면 인증기준을 명확히 법에 담거나 시행규칙을 바꿔야 한다. 하승수 변호사(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법은 합성농약 불사용 혹은 최소화인데, 시행규칙은 불검출이어서 상충한다. 법률에 맞게 시행규칙을 개정해야 한다. 법률에서 ‘환경이 전반적으로 오염돼 있는 현실을 감안해 합성농약을 사용하지 아니하는 행위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합성농약 검출 여부를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으로 기준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관련 법 개정안이 신정훈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논의 중이다. 정부도 인증제도의 문제점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시행규칙 개정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이정석 농림축산식품부 친환경농업과 과장은 “2019년 7월 이전 비의도적 오염으로 농약이 나올 경우 MRL의 20분의 1까지는 인증을 유지해주는 규정이 있었다가 삭제되고 불검출로 바뀌었다. 시행규칙을 개정해 비슷한 규정을 다시 살릴 계획이다. 다만 어느 수준에서 허용할지는 생산자·소비자 단체와 계속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행규칙 개정안은 오는 7월 말 공개돼 입법예고·규제심사 단계 등을 거쳐 올해 연말쯤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최동근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은 소비자 인식 개선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행규칙 개정은 정부가 일정 정도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본다. 핵심은 농약을 치지 않았는데 비의도적으로 오염된 농가를 어떻게 보호하고 지지할 것이냐이다. 소비자들은 유기농산물은 농약 ‘0’이라고 인식한다. 이런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단체와 정부가 함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신간]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外(2023. 03. 31 11:22)
2023. 03. 31 11:22 문화/과학
ㆍ아홉 번째 4월, 수천 번의 다짐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유가영 지음·다른·1만2000원 식판이 기울어 있던 그날 아침. 그는 살았고, 친구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변했다. 도서관 사서가 되려던 그에게 책 읽기는 너무 힘든 일이 됐다. 마음이 고장 난 자신을 용납할 수 없어 자해를 시작했다. 대학에 간 뒤엔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들어갔다. 이겨내려는 노력은 내려놓지 않았다. 과거 도움받았던 스쿨닥터의 마음건강센터에서 인턴을 하며 씨랜드 유족을 만났다. 친구들과 ‘운디드 힐러’라는 단체를 만들어 인형극을 준비했다. 산불 피해지역 할머니들을 위한 사랑방도 운영했다. 아홉 번째 4월, 아직도 문득문득 그날의 후회가 덮쳐온다. 사람들이 두렵고 세상에 혼자인 것만 같다. 그럼에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에, 그들을 돕는 좋은 사람들도 있기에 다시 힘을 내 일어선다. ‘세월호 생존 학생이 청년이 되어 쓴’ 이 책이 바로 그 증거다.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이규식 지음·후마니타스·1만7000원 중증 뇌병변 장애인이자 활동가인 이규식의 삶을 구술로 정리했다. 집과 재활원과 공동체에 갇혀 지냈던 그는 노들야학을 만나면서 투쟁가로 변했다. 인생은 다이내믹해도 시종일관 담담하다. 지하철 리프트에서 앞으로 고꾸라져 정신을 잃은 사고에도 ‘어! 나 안 죽었네?’ 하고, 지하철을 타려고 할 때 남들이 “사람이 먼저 타야지” 해도 ‘나도 사람인데…’를 되뇔 뿐이다. 장애인들이 왜 지하철 선로에 쇠사슬로 몸을 묶었는지, 왜 탈시설을 외치는지, 그들이 겪는 차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내 머릿속 미술관 임현균 지음·지식의날개·1만8800원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에서 이삭을 줍는 이는 몇 명이고, 등장인물은 모두 몇 명일까. 우리가 생각한 그림과 실제 그림의 차이는 명확하다. ‘과학 하는 미술가’인 저자가 뇌과학을 통해 명화를 더 쉽게 이해하도록 이끈다. ▲감정 문해력 수업 유승민 지음·웨일북·1만7000원 눈치를 본다는 건 주눅 드는 느낌이지만, 눈치가 빠르다는 건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자 같다. 인지언어학자가 언어에 부가된 눈짓, 손짓, 암묵적 지식 등을 통해 맥락, 뉘앙스, 상황, 감정을 읽어내는 법을 전한다.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 이강용 지음·클·1만8000원 손이 모자라지만 손을 잡아 안심시켜주고(1부 ‘손’), 늘 땀에 젖어 있는 의료진들(2부 ‘등’). 7년간 ‘레벨 원(가장 위급한 단계)’을 외치며 가장 가까이서 일한 간호사가 사진과 글로 전하는 응급의료 현장 이야기.
신간
[정봉석의 북미 환경편지](8)평화롭던 캐나다에 거친 바람이 분다(2022. 07. 08 14:23)
2022. 07. 08 14:23 국제
캐나다에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탄생을 기념하는 공휴일이 있다. 1837년 즉위 후 64년간 영국 여왕으로 재임했던 빅토리아 여왕은 당시 캐나다의 직접적인 통치자였다. 그 당시 생긴 빅토리아 공휴일이 15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물론 현재 캐나다는 독립국이지만 과거 영국 통치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영연방국가 중 하나다. 명목상이긴 하지만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캐나다의 공식적인 수장으로 아직 존재한다. 캐나다의 실질적인 지도자는 의회 의원 총선에서 뽑힌 총리로, 입헌군주제와 의원내각제를 통해 국가를 운영한다. 여왕이 영국 버킹엄과 윈저에 거처하는 관계로 여왕을 대변할 총독을 임명해 캐나다로 보낸다.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2020년 여왕의 손자 해리 왕자가 캐나다 총독으로 임명될지가 지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물론 상징적인 존재이고 실권이 없는 총독이지만 캐나다와 영국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이곳 역사의 잔재다. 지난 5월 21일 캐나다 토론토를 덮친 강풍으로 인해 나무가 쓰러졌다. / 정봉석 제공 빅토리아 공휴일은 여왕의 탄생일 직전의 월요일로 지정돼 있다. 이날을 전후해 캐나다인들은 긴 연휴를 즐긴다. 올해 연휴의 시작이었던 5월 21일 토요일은 날씨도 맑고 좋아 많은 사람이 주변 공원을 찾아 5월의 자연을 즐겼다. 나도 주말의 여유를 즐기며 산책을 했다. 갑자기 주변 모든 휴대전화에서 경고문자가 울렸다. 평소 경고문자를 잘 보내지 않는 이곳에서─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할 때도 보내지 않았다─다가오는 날씨 변화를 경고하는 긴급 재난 예보 문자였다. 허리케인이나 태풍 같은 재난이 거의 없는 토론토에서 의외의 경보였다. 주변 날씨는 여전히 맑고 화창했다. 단지 남서쪽 멀리서 성벽처럼 보이는 검은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곧 폭우와 번개를 동반한 강풍이 휘몰아쳤다. 성인 주먹만 한 우박이 쏟아져 내렸다. 평소와 다른 강풍의 위력에 아파트 창문의 흔들림과 압력 차이를 실감했다. 전기도 끊기고, 토요일 오후 내내 암흑 속 집에서 고립됐다. 폭풍우 데레초 캐나다 환경부는 폭풍우가 발생했을 때 온타리오와 퀘벡 지역에 휴대전화와 텔레비전, 라디오를 통해 비상경보를 발령한다. 폭풍우와 관련한 경보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기상학자들은 이 사건을 역사적인 데레초(derecho)라고 지칭하며 가장 강력한 폭풍우 중 하나로 설명했다. 이름도 생소한 데레초는 직선 폭풍, 즉 지면을 휩쓰는 바람의 벽을 뜻한다. 토네이도가 회오리바람을 뜻하지만 데레초는 성벽처럼 직선의 전선을 이루는 바람으로 국지적으로는 태풍이나 허리케인과 맞먹는 위력을 가진다. 특히 이번 데레초는 많은 인구가 모여 있는 퀘벡시·윈저 회랑─북동부의 퀘벡시와 남서부의 온타리오주 윈저 사이 1150㎞에 걸쳐 펼쳐져 있는 캐나다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으로 캐나다 인구의 약 절반인 1800만명 넘는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캐나다의 4대 대도시 중 3곳(토론토·몬트리올·오타와)을 포함한다─에 영향을 미쳐 피해를 키웠다. 이번 강풍은 지난 5월 21일 낮에 약 1시간가량 지속됐다. 풍속은 키치너에서 최대 시속 약 132㎞,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서는 시속 120㎞에 달했다. 피해 지역의 가옥들이 뒤틀리거나 전봇대가 넘어져 전선이 늘어지고, 뿌리째 뽑힌 나무와 파손된 건물 잔해가 도로를 막아 차량 통행이 마비됐다. 온타리오와 퀘벡에서 1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대다수는 갑작스러운 바람에 쓰러진 나무에 깔려 희생됐다. 온타리오 전역에서 전신주 800개가 파손돼 전력망에 타격을 입혔다. 특히 187개의 전신주가 손상된 오타와에 재난 피해가 집중됐다. 이는 1998년의 기록적인 눈폭풍 재난 피해 규모보다 더 컸다. 온타리오에서는 15만여명이, 퀘벡에서는 약 14만명이 전기를 사용하지 못했다. 정전으로 휴교도 잇따랐다. 전력 부족을 겪고 있는 오타와-칼튼 교육청은 안전을 이유로 지난 5월 24일 모든 학교와 보육센터를 폐쇄했다. 광역토론토에서도 이날 더럼 지역의 8개 학교와 토론토의 1개 학교가 정전으로 휴교했다. 거세지는 바람 노아(NOAA·미국 국립해양대기청)는 올해 대서양의 허리케인 시즌이 평균 이상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발표했다. 그렇게 되면 2016년부터 2022년까지 7년 연속으로 정상 시즌을 뛰어넘는다. 노아의 과학자들은 이번 시즌의 허리케인이 평균 이상일 확률을 65%로 예상했다. 6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진행되는 올해 시즌에는 최대 시속 63㎞ 이상의 열대성 폭풍이 14~21개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중 6~10개는 최대 시속 119㎞ 이상의 허리케인급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이 가운데 3~6개는 3등급 이상인 최대 시속 179㎞ 이상의 중대 허리케인일 것이라 경고하면서 이에 따른 대비를 요청했다. 첫 시작은 미국 플로리다였다. 지난 6월 4일 알렉스로 명명된 첫 번째 폭풍우가 발생했다. 시속 97㎞의 바람을 지닌 2등급 허리케인으로 플로리다 남부 전역에 홍수를 일으켰다. 마이애미에 있는 미국 국립기상청(National Weather Service)에 따르면 남부 플로리다의 일부 지역에 305㎜ 이상의 비를 내렸다. 토요일 수백편의 항공편이 취소되거나 지연되며 남부 플로리다 지역의 교통이 마비됐다. 평상의 허리케인 시즌과 다른 극단적인 날씨는 기후온난화와 관련이 깊다. 지구온난화에 따라 대기에 존재하는 수분의 양이 증가하면서 지구의 물 순환 사이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증발하는 물의 양과 다시 비의 형태로 대지에 돌아오는 물의 양이 증가하면서, 더 많은 강우량을 가진 폭우의 가능성을 높인다. 증발이 증가한 대지는 더 건조되고, 단단해진 땅의 특성으로 비가 왔을 때 물을 흘려보내 폭우와 함께 대규모 홍수의 위험을 높인다. 노아의 과학자들은 이미 2020년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서 기후 변화가 허리케인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1979~2017년 열대성 폭풍의 위성 이미지를 분석하면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강도 증가를 확인했고, 이는 지구온난화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예상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 결과에 따르면 3등급 이상의 열대성 폭풍이 10년당 약 8%씩 증가한다. 그들의 예측대로 열대성 폭풍의 증가세는 계속 유지되고 있으며, 올해 역시 평균 이상의 허리케인 시즌이 예상된다. 물론 기후온난화가 폭풍우에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지구온난화로 뜨거워진 대기는 폭염, 가뭄, 산불의 위험을 높인다. 최근 미국 국립기상청은 미국 남서부에 화씨 100도(섭씨 38도)가 넘는 폭염을 예상하며 지역 주민들의 대비를 경고했다. 다시 더워지는 캐나다 밴쿠버는 지난해 기록적이었던 열돔현상과 산불의 악몽을 되뇌게 만든다.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으며 상승한 해수면은 인구가 밀집된 해변 도시에 바닷물 범람에 의한 피해 가능성을 높인다. 특히 몰디브처럼 해발고도가 낮은 섬나라들은 지구온난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구라는 냄비 안의 물 온도가 끓어오르고 있다. 급변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물가 상승, 에너지 대란에 가려져 냄비 속 물의 온도 변화엔 사람들이 둔감해져 버렸다. 끓는 물 속의 죽어가는 개구리는 점차 우리의 모습이 돼가는 중이다. 탈출할 기회는 남아 있다. 냄비의 뚜껑이 아직 열려 있기 때문이다.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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