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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깝고도 먼 아세안](17)바이든 베트남행 선물 보따리엔(2023. 08. 25 10:54)
- 2023. 08. 25 10:54 국제
- 지난 3월 서맨사 파워 미국 국제개발처 사무총장은 전기 오토바이를 타고 베트남 하노이 거리를 누비며 방문 마지막 날을 시작했다. / USAID 9월 초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베트남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줄다리기가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8월 8일 미국 뉴멕시코에서 열린 2024 대통령선거 정치기금모금 행사 연설에서 바이든은 “베트남을 방문할 것”이라며 “앞으로 몇 주, 몇 달 안에 방문이 이뤄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는 베트남 정부에 회담 일정에 대한 결단을 에둘러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까지 베트남 정부는 어떠한 공식적인 언급도 없지만, 세계 주요 언론은 바이든의 방문 가능성 기사를 일제히 쏟아냈다. 지난 8월 18일에는 미국의 정치 전문 일간지 폴리티코가 익명의 정부 핵심 관계자 3명의 말을 인용해 “바이든이 9월 중순 베트남과 외교 관계를 전략적 관계로 격상하는 협정에 서명하러 간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수년 전부터 베트남에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포괄적 전략’ 관계로 격상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하지만 미국과 베트남이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하는 중국의 경제적·군사적 보복을 피하고자 베트남 정부는 이를 완곡하게 거절하는 중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 9월 베트남 방문 관측 예상되는 바이든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날짜는 9월 11일이다. 바이든은 9월 9일부터 10일까지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데 행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베트남으로 갈 것으로 관측된다. 바이든은 9월 5일부터 7일까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아세안 정상회담에는 불참하고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을 대신 보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아세안 국가 정상들과의 회담 일정은 포기하면서도 베트남에는 가는 셈이다. 그만큼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베트남 공들이기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최초의 싱크탱크인 랜드코퍼레이션(Rand Corporation)의 수석 국방연구원인 데릭 그로스먼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기 직전 중국 시진핑 주석이 베트남을 먼저 방문하거나 최소한 리창 총리를 하노이로 보낼 수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포스팅했다. 중국은 미국이 베트남에 쏟아낼 선물 보따리보다 더 큰 선물을 제안해 베트남과 미국이 가까워지는 사태를 막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상황은 2021년 8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베트남이 마비 상태가 됐을 때 해리스 미 부통령이 코로나19 백신과 각종 지원 물품을 직접 수송해갔을 때와 중첩된다. 당시 주베트남 중국대사가 해리스 미 부통령 도착 2시간 전에 베트남 판 민 찡 총리를 만나 미국 백신의 2배 분량을 지원해주겠다며 베트남이 미국과 가까워지는 것을 막아보려고 했다. 물론 베트남 총리는 중국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폴리티코는 바이든의 선물 보따리는 베트남 반도체 생산 및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지원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7월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베트남 방문 중 연설에서 ‘미국 반도체 지원법’ 예산 중 5억달러는 아시아 지역에 쓰여야 한다며 베트남에서 반도체 패키징과 테스트를 하고 있는 인텔과 올해 10월 시범 생산 목표로 베트남 북부 박닌 지역에 공장을 짓고 있는 앰코 테크놀로지를 언급했다. 이는 미국 내에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는 기업에 지원하는 예산을 베트남에 생산 시설을 갖춘 미국 반도체 기업에도 사용하겠다는 뜻이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지난 7월 20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셀렉스 전기 스쿠터를 둘러보고 있다. / Tuoi Tre 전기 오토바이 사업 대대적 지원 가능성 이외에도 전기 오토바이 사업에 대한 미국의 대대적 지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는 지난 3월 서맨사 파워 미국국제개발처장이 베트남 하노이 방문 일정 마지막 날 베트남 전기 오토바이 스타트업인 닷바이크(Dat Bike)를 방문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단순히 회사를 방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닷바이크의 CEO가 직접 운전하는 오토바이 뒤에 타고 하노이 시내를 주행했다. 이에 더해 7월에는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해 셀렉스 모터스(Selex Motors)라는 또 다른 전기 오토바이 스타트업을 방문했다. 이 둘의 베트남 전기 오토바이 스타트업 방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국제개발처(USAID)는 전 세계 도움이 필요한 국가에 인프라 사업이나 교육, 복지 등 각 분야에 걸쳐 원조를 해주는 부처다. 2023년 확정된 USAID의 예산은 495억9000만달러(약 67조억원)를 쓴다. 한편 옐런 장관의 재무부는 미국 예산을 다루는 곳이다. 예산을 마련하고 예산을 쓰는 곳의 수장들이 연달아 베트남 전기 오토바이 업체를 방문했다는 것은 미국이 베트남 전기 오토바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겠다는 의미로 해석해볼 수 있다. 베트남의 하노이와 호찌민은 주요 도시 공기 오염 순위에서 항상 상위권일 정도로 심각하다. 주범은 자동차 4대 분량의 배기가스를 뿜어내는 오토바이. 특히 오래된 오토바이일수록 오염 물질 배출량이 더 많다. 등록된 오토바이만 6500만 대인 ‘오토바이 왕국’ 베트남은 2억6000만 대 이상의 자동차가 배기가스를 뿜어내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이에 하노이시 당국은 2030년부터 오토바이의 도심 진입을 금지하는 고육책을 내놨으나, 대중교통 수단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법규라는 강한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베트남과 외교 관계 개선에 대한 보답으로 전기 오토바이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금을 쏟아낸다면 전기 오토바이 구매 보조금 지급 및 도심 전역 전기 오토바이 충전소 구축, 배터리 교체 시설 설치, 전기 충전 요금 인하 등의 다양한 지원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실제로 지원할 투자는 언급된 것 이상으로 더 많아 보인다. 지난 3월 애플, 메타, 아마존, 보잉, 록히드마틴, 스페이스X 등 IT·방산을 비롯한 등 다양한 분야의 52개 미국 기업이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단을 구성해 베트남을 방문했다. 이들 기업이 아직 투자에 착수하지 않고 있는 것은 베트남이 미국과 외교관계를 격상하면 투자를 하겠다는 조건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을 선두로 한 일본, 중국, 대만 등 아시아 기업들의 투자금이 베트남의 경제성장을 이끌어왔다. 2020년 8월 베트남-EU FTA 발효로 유럽계 자금도 베트남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미국 기업들의 투자는 아직 미비하다. 미국계 투자금마저 대대적으로 들어온다면 베트남 경제성장에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중 갈등 속에서 베트남은 국운 상승의 호기를 맞이하고 있다.
- 가깝고도 먼 아세안
- ‘반독점 혁명’ 칼 뽑은 바이든(2023. 01. 27 14:55)
- 2023. 01. 27 14:55 국제
- ㆍ빅테크 규제론자 3인 앞세워 ‘기업결합 가이드라인’ 개정 ㆍ미 의회엔 반독점법 개혁·빅테크 규제안 등 계류 중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빅테크 기업에 대한 반독점 정책은 이전의 정부, 공화당은 물론이고 오바마 정부와도 차별화된 행보를 보이는 지점이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집권한 오바마 정부 당시 테크기업은 혁신의 상징이었다.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인수를 비롯해 빅테크 기업들이 잠재적 경쟁자 인수를 통해 지배력을 키웠지만, 정부는 별다른 규제를 하지 않았다. 2010년부터 2019년 사이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승인한 테크기업 인수·합병은 600건에 이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이와 달리 바이든 정부는 초기부터 빅테크 규제에 나섰다. 반독점법 집행을 양분하는 연방거래위원회(FTC)와 법무부 반독점국의 인사를 보면 방향이 명확하다. 예일대 로스쿨 재학 중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이라는 논문을 발표(2017)해 주목받은 리나 칸이 2021년 6월 FTC 위원장으로, ‘구글의 적’으로 불리던 변호사 조너선 캔터가 7월에 법무부 반독점국장으로 임명됐다. 국가경제위원회 기술·경쟁정책 특별자문으로 영입된 팀 우까지 포함하면, 대표적 빅테크 규제론자 3인이 모두 요직을 맡았다. 이런 행보는 단순히 ‘빅테크의 문제가 심각하니 규제하자’가 아니라 ‘반독점법은 무엇을 규제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반독점법의 규제 대상은 독점 혹은 대기업 자체가 아니다. 구글이 검색엔진 시장 대부분을 장악해도 그 자체를 규제하지는 않는다. 반독점법 위반의 판단 기준은 경쟁 사업자 수, 시장 집중도 같은 구조적 요소가 아니라 ‘소비자 후생’이다. 보수진영의 대표적 법률가 로버트 보크는 1978년에 펴낸 에서 “반독점법의 유일한 목적은 소비자 후생”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연방대법원도 채택하고 반독점법 실무를 지배하는 법리가 된다. 아마존이 시장을 지배해도 소비자가 최저가로 물건을 살 수 있으면 그만이고, 소상공인 피해나 가혹한 노동조건 등은 다른 정책으로 해결할 문제라는 논리다. 소비자 후생의 법리로는 빅테크를 규제하기 어렵다. ‘네트워크 효과’에 기반을 둔 플랫폼 기업은 사용자를 모을수록 가격을 내리거나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빅테크의 시장점유율이 독점에 가까워지고 천문학적 규모로 성장해도, 소비자 가격에 영향이 없는 한 반독점법 위반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향력이 커진 빅테크는 여러 문제점을 드러낸다. 빅테크가 수집하는 광범위한 개인정보는 결국 사람들을 조종하고 기업의 이윤을 높이는 데 사용된다. 러시아 정부가 페이스북을 통해 2016년 대선에 개입한 사례, 가짜뉴스가 넘치는 유튜브는 규제되지 않는 빅테크가 민주정에 미치는 해악을 실증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기존 법리에 대한 도전이 등장했다. 칸의 논문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은 제목부터 보크의 책에 대한 도전이다. 칸은 시장을 독점해도 가격에 영향이 없으면 괜찮다는 논리는 빅테크에 적합하지 않고, 가격이 낮아졌다는 이유로 아마존을 규제하지 않으면 그 지배력은 더욱 커지고 소상공인, 저임금 노동자가 플랫폼에 종속돼 생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팀 우 역시 2018년 11월 펴낸 저서 (The Curse of Bigness·큰 것의 저주)에서 패전국 독일, 일본의 역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독점기업과 정치권력의 결탁은 악영향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반독점법’ 목적은 ‘소비자 후생’ 이들은 1916년부터 1939년까지 대법관을 지낸 루이스 브랜다이스의 사상을 이어받았기에 ‘신(新)브랜다이스주의자’로 불린다. 브랜다이스는 기업에 힘이 집중되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는 생각으로 20세기 초반 독점기업의 대명사인 록펠러, J. P. 모건 등에 맞서 ‘민중의 변호사’로 불렸다. 21세기에 등장한 그의 후예들 역시 빅테크가 가진 통제하기 어려운 힘을 문제 삼는다. 독점기업의 힘은 입법이나 규제 자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에 이르기 때문에, 개별적 행태 규제를 넘어 인수·합병이나 사업영역을 제한하고 필요하면 기업을 분할하는 등 구조적 조치를 통해 독점기업 자체를 약화시키는 것 외에는 실효적 해결책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독점기업은 결국 민주주의 체제를 해치므로 소비자 후생은 반독점 규제를 포기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칸은 로스쿨 교수 시절 뉴욕타임스의 IT 전문 팟캐스트에 나와 “빅테크 독점의 문제는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정치적 시민으로서 직면해야 할 문제”라고 했는데, 이 발언은 이들의 사고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바이든 정부는 이런 토대 위에서 반독점법의 규제 대상을 재정의하기 위한 조치를 다방면에서 시도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7월 ‘경쟁 촉진을 위한 행정명령’을 발령했다. 행정명령으로 할 수 있는 정책은 의회 입법을 기다리지 않고 시행하겠다는 적극적 행보로 이해됐다. 이에 따라 FTC와 법무부 반독점국은 2022년 1월 인수·합병에 대한 반독점 규제를 강화하는 ‘수평적 기업결합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발표했다. 주된 대상이 빅테크 기업이었음은 물론이다. “빅테크 독점은 정치적 시민의 문제” 의회 역시 반독점법 개혁과 빅테크 규제를 추진 중이다. ‘미국의 혁신과 온라인 선택권 보장법안’이 2021년 6월 하원 법사위, 2022년 1월 상원 법사위를 통과했다. 이에 따르면 자사 플랫폼에서 자사의 상품·용역을 우선 취급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이에 따라 아마존이 자체 브랜드 제품을, 구글이 유튜브 검색 결과를 상단에 노출할 수 없다. 애플의 폐쇄적 앱스토어 정책 또한 수정이 불가피하다. 경쟁 촉진을 이유로 빅테크의 사업모델 자체를 건드리는 적극적 조치라 할 수 있다. 한편 큰 기대와 달리 눈에 띄는 실적을 내지 못하던 FTC의 경우, 작년 12월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합병을 금지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이 주목된다. 최근 가장 큰 규모의 테크기업 인수·합병에 FTC가 제동을 걸지 않으면 정책 방향의 일관성을 해치고 다른 작은 규모의 기업결합에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게 된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번 인수·합병으로 게임 사용자에게 더 낮은 가격에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는 전통적 시각의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향후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된다. 빅테크 규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 또한 생각해볼 문제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빅테크 규제에 찬성 입장을 밝힌 응답자들이 그로 인해 아마존 프라임의 무료배송이 제한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은 것만으로도 절반 이상은 생각을 바꾸었다고 한다. 소비자 후생이 아니라 빅테크의 힘을 문제 삼는 논리가 정치적 동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지난해 11월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투어 예매를 진행했는데, 예매 사이트인 티켓마스터에 접속이 폭주해 결국 티켓 판매 자체가 취소되고 의회 청문회가 열릴 정도로 파문이 일었다. 티켓마스터는 콘서트 기획사인 라이브네이션과 수직계열화돼 티켓 예매의 약 80%를 차지하는 독점기업이라, 단순한 운영 실수가 아니라 독점의 폐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 사건에 대해 칸은 “내가 했던 어떤 조치보다 하룻밤 사이에 더 많은 반독점 세력을 만들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빅테크의 폐해와 규제가 유권자들의 향후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미국 정부와 빅테크의 싸움이 단기간에 끝날 리 없다. 의회에 계류 중인 반독점 법안이 최종 입법으로 완수될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민주당 의원이라고 모두 빅테크 규제에 적극적이지는 않다. 공화당이 빅테크 규제에 일단 우호적인 건, 트럼프를 소셜미디어에서 퇴출시킨 것처럼 보수의 주장을 억압하는 진보성향 빅테크 기업을 적대시하는 정치적 계산에 기인한다. 소비자 후생을 반독점의 법리로 선언했고, 압도적 보수 우위를 굳힌 연방대법원이 새로운 반독점 규제를 어떻게 판단할지도 미지수다. 20세기 중반 보수진영이 소비자 후생을 내세운 혁명으로 반독점법을 지배하게 됐다면, 바이든 정부는 빅테크를 상대로 반독점법을 재정의하려는 싸움을 시작했다. 이런 시도가 성공한다면 ‘바이든 정부의 반독점 혁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점기업의 행동이 아니라 그 자체를 약화시켜 경쟁을 촉진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신브랜다이스주의자들의 공격과 자신들이 이룩한 제국을 지키기 위한 빅테크의 역습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역사의 한순간을 지켜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표지 이야기
- 미국발 인플레이션, 바이든 삼켜버리나(2022. 07. 01 14:51)
- 2022. 07. 01 14:51 국제
-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스페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9일(현지시간) 마드리드 이페마 컨벤션센터에서 아시아 태평양 파트너 4개국 정상,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가운데)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고물가를 잡기 위한 전 세계적 고금리 정책에 따른 자산가격 조정 국면이기 때문에 우리 경제정책 당국이라고 해서 근본적인 해법을 내기는 어렵다.” 국내 ‘물가 상승’에 대한 대응책을 묻는 질문에 지난 6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은 대답이다. 복잡한 단어를 사용해 말했지만 핵심은 단순하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진행 중이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플레이션 장기화 전망이 고개를 들면서 자산시장 전반이 침체되고 있다. 당장 영향을 받은 것은 실물경제에 선행하는 주식시장이다. 6월 30일 기준, 미국 S&P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가 연초 고점 대비 20% 넘게 내렸다. 한국 시장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3000포인트를 넘나들던 코스피가 2300포인트대로 떨어졌고, 1000포인트를 넘던 코스닥 지수도 700포인트대로 빠졌다. 특히 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뒤 이틀 동안 코스닥 지수는 10% 가깝게 폭락했다. 반면 개별 주식 종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 내다 파는 ‘공매도’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4월, 코스피 기준 3.91%로 낮아진 공매도 거래 비중이 3개월 연속 오름세를 보이며 6월에는 월평균 5%를 넘겼다. 주식시장이 인플레이션의 ‘직격탄’을 맞은 건 미국이 물가 상승의 주요 대안으로 ‘금리 인상’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41년 만에 최고치인 8.6%를 기록했다. 미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며 물가 방어에 나섰다. 금리 상승은 두가지 측면에서 주식시장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다. 우선 기업이 운영이나 투자를 위한 자금조달에 필요한 비용이 늘어난다. 이로 인해 성장을 위해 투자가 필요한 기술주가 일반적으로 큰 영향을 받는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이나 코스닥 시장이 금리 인상에 취약한 건 이 때문이다. 또 투자심리가 나빠진다. 금리가 올라가면 상대적으로 위험한 주식시장에 굳이 투자할 이유가 없다. 이윤을 보장하는 은행 예금을 선호하게 된다. 보다 거시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간접적 영향도 있다.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적 차원의 환율 문제다. 미국 금리가 상승하면 달러 수요가 올라간다. 인플레이션으로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은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를 높인다. 이러한 상황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는 사례로 확인할 수 있다. 6월 말 기준,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에 육박하고 있다. 같은 시기,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4477억달러로 연초 대비 154억달러 정도 감소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국제금융 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올해 1~5월 외국인 증권투자자금은 약 95억달러 순유출됐다. 지난 6월 17일, 6년여 만에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도 50%선이 무너졌다.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했던 외국인 자금이 달러화를 인출해 빠져나갔다는 뜻이다. 인플레이션→미국발 금리 상승→환율 상승→주식 등 자본시장 위축의 구조적 연결성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 연쇄효과는 경기둔화 혹은 침체다. 인플레이션이 꺾일 때까지 이런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만약 경기침체를 외부충격 없이 오직 시장 내부의 조정만으로 버틴다면 그 끝이 언제일지조차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주목받는 것이 ‘외부충격’, 즉 국제정치의 향방이다. 푸틴플레이션과 미국의 딜레마 이번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시장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물가 상승의 근원이라는 주장이 있다. 반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상황이 인플레이션을 불렀다는 이른바 ‘푸틴플레이션’(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인플레이션을 합친 용어)을 지적하는 주장도 있다. 현재는 두 측면 모두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이 각각 자본시장과 국제정치에 있다는 점에서 대응 방법은 차이를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7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하기 위해 공군 1호기에 탑승하고 있다. /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미국은 지난 5월 발생한 CPI 지수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아직까지 해당 조치로 인한 가시적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미국 소비자들이 향후 경기회복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지를 나타내는 소비자신뢰지수와 소비자심리지수가 모두 악화일로다. 이는 자본시장의 내부 조치만으로 문제에 접근했을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악순환이다.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금리를 인상하면 소비자 심리가 얼어붙고, 실제 소비가 위축되면서 경기침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금리 인상 외에도 시장에 인플레이션 둔화를 확신시켜줄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 결국 ‘유가 인하’가 핵심이다. 5월 미국 CPI 지수의 세부 항목을 뜯어보면, 에너지 관련 상승이 34.6%로 가장 높다. 원유가격을 잡지 않으면, CPI 지수가 쉽게 내려갈 수 없다는 의미다. 문제는 국제유가가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공급 우려에 휩싸여 있다는 점이다. 원유 생산량의 빅3는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다. 2050년 탄소 배출 제로 정책을 목표로 하는 미국의 민주당 정부는 원유 생산을 위한 인프라 확대에 소극적이다. 그렇다면 사우디 혹은 러시아를 통해 원유 공급량을 늘려야 한다. 여기서 미국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사우디에 바라는 것이 ‘인권’이냐, ‘원유’냐 사우디 왕가의 실권자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18년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영사관에서 발생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사건의 배후로 지목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사우디의 인권 상황을 비판하며 “사우디 왕족 가문이 대가를 치르게 하고 그들을 왕따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인권, 민주주의 가치 등을 강조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정적인 셈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원유 생산을 늘릴 수 있는 국가는 사우디가 거의 유일하다. 이 때문에 오는 7월,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방문 일정에 사우디가 포함된 것을 두고 관계개선을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논란이 일자 바이든 대통령은 “내가 해온 것과 같은 방식으로 (카슈끄지 문제를) 다룰 것”이라며 “나는 MBS(무함마드 왕세자 약칭)를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오는 11월이면 미국 중간선거(대통령 임기 중간에 있는 상·하원 선거)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30% 후반에 머물러 있다. 지지율 하락 원인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야기하는 ‘경제문제’가 첫 손에 꼽힌다. 특히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지난 6월 11일(현지시간) 미국의 휘발유 평균가격이 사상 최초로 1갤런당 5달러를 돌파했다. 특별한 조치가 없다면 중간선거뿐만 아니라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도 장담할 수 없다. 사우디의 조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미묘한 정황은 또 발견된다. 사우디와 이란은 각각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를 이끄는 대표 국가다. 두 국가는 중동의 패권을 놓고 앙금이 깊다. 사우디는 이란 제재 해제를 의미하는 핵 합의 복원(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이 달가울 리 없다. 그런데 묘한 상황이 연출됐다. 미국이 추진해온 이란 핵 합의 복원이 계속해서 교착 상태에 빠지고 있다. 지난 6월 28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이란과 미국의 협상도 결론 없이 끝났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은 러시아가 주축인 신흥경제 5개국 모임 ‘브릭스(BRICS)’에 가입 신청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의든, 타의든 사우디와의 관계개선을 고려해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 6월 30일 코스피는 2350선으로 내렸고, 원/달러 환율은 1300원을 돌파했다. / 연합뉴스 러시아 잡으려다 ‘신냉전’ 시작하나 원유 증산 측면에서 미국에 더욱 큰 난관은 러시아다. 사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없었다면 물가 상승 문제는 연착륙했을지도 모른다. 즉 전쟁을 끝내야 현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중재할 수 없을 만큼 점점 더 깊이 연루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는 나토 회원국과 러시아, 중국의 대립 구도를 보다 선명하게 만들었다. 나토는 2010년 이후 12년 만에 ‘전략개념’을 재정립하며 중국과 러시아를 각각 언급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우리의 이익과 안보, 가치에 도전한다”고 했고, 러시아는 “동맹의 안보와 유럽·대서양의 평화·안정에 가장 중대하고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나토와 러시아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나토를 위협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중국을 추가한 셈이다. 이러한 움직임에도 러시아가 실질적 타격을 입었다는 정황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의 자금줄을 옭아매려고 했다. 이를 위해 러시아 재정 수입의 45% 가까이 차지하는 석유 및 가스 수출을 제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8일 러시아에서 원유, 천연가스, 석탄 및 기타 관련 제품을 수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산 원유의 공급 축소가 오히려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지난 6월 30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서 표시한 유가정보 / 연합뉴스 러시아는 공급 축소로 원유가격이 폭등하자 자국산 원유를 덤핑된 가격으로 내다 팔기 시작했다. 브렌트, 서부 텍사스(WTI), 두바이산보다 배럴당 30달러 이상 싼값에 팔았지만 폭등한 원유가격 덕분에 손해를 보지 않았다. 해당 물량은 중국, 인도, 브라질 등 러시아와 가까운 브릭스(BRICS) 국가들이 수입했다. 실제로 인도는 지난달 하루 평균 약 80만배럴의 석유를 수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인도는 러시아산 석유를 사들여 정제한 뒤 유럽과 미국에 재판매한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데이터분석업체인 CEIC의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의 경상수지는 올해 1~5월 기준, 1103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322억달러보다 3배가량 커진 규모다. 미국은 뒤늦게 제재를 강화하고 나섰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가격상한제 합의를 이끌었다. 러시아산 원유에 일정 가격 이상으로 입찰하지 않는 방식의 제재다. 구체적인 시행안은 유럽연합(EU)이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유럽연합 내부에서도 각각의 이해관계가 달라 언제, 어떤 제재안을 도출해낼지 알 수 없다. 반면 러시아는 탄탄한 재정을 과시 중이다. 러시아 재무부에 따르면 러시아산 원유의 가격은 1배럴당 87.49달러(약 11만3000원)로 한 달 전보다 20% 가까이 상승했다. 브렌트유 가격은 지난 6월 29일 기준 1배럴당 약 113달러였다. 격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는 러시아산 원유의 수요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다. 루블화의 가치 역시 같은날 기준 1달러당 51.92루블로 강세를 보였다. 전쟁 초 루블화는 1달러당 110루블을 넘나들 정도로 불안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대리전’을 벌이는 중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를 방문하면서도 우크라이나는 방문하지 않는다. 미국이 전쟁을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이, 흔들리는 것은 러시아나 중국이 아닌 미국의 우방국이다. 인도, 튀르키예 사례는 한국에 무엇을 말하나 인도는 미국이 추진하는 대(對)중국 견제의 핵심이다. 미국·일본·호주와 함께 4개국 안보 협의체인 쿼드 회원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인도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미국과 다른 계산을 하고 있다. 스스로 러시아산 원유 수출의 ‘뒷문’이 됐다. 이러한 인도의 행보에는 지정학적 위치를 이용한 자신감이 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을 남중국해 안에 가둬야 한다. 이때 인도는 중국이 인도양으로 빠져나오는 길을 봉쇄하는 ‘린치핀(핵심축)’이다.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해도 미국의 제재를 받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이 있다. 인도가 브릭스 회원국이라는 점 역시 운신의 폭을 넓힌다. 브릭스 역시 경제안보로 협력을 확대하고 있는 만큼 미국이 인도의 행보를 제재할 명분도 마땅치 않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6월 28일(현지시간)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지지한다는 양해각서에 서명한 뒤 안 린데 스웨덴 외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 마드리드 | AP연합뉴스 튀르키예 역시 비슷한 사례다. 나토 정상회의에서 튀르키예는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반대했다. 튀르키예 내부의 분리독립 세력인 쿠르드족을 지원한다는 이유다. 새 회원국 가입 시 만장일치 찬성이 필요한 나토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설득에 나섰다. 윤 대통령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의 면담 연기도 이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튀르키예는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찬성했다. 대신 양국에 쿠르드노동자당(PKK)과 페토(FETO·펫훌라흐 귈렌 테러조직) 관련자의 송환을 요청했다. 또 미국에는 F-16 전투기의 현대화 및 추가 도입을 요구했다. 인도와 튀르키예는 미국의 필요를 이용해 원하는 바를 얻어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27일 나토 참석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정상들) 얼굴이나 익히고 간단한 현안들이나 좀 서로 확인하고 다음에 다시 또 보자는 그런 정도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실상 윤 대통령은 나토가 중·러 견제를 발표하는 자리에 함께 서 있게 됐다. ‘얼굴을 익히는 자리’가 아니라 ‘신냉전’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무대에 참석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얻어냈을까. 한국의 5월 물가상승률은 5.4%로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6월에는 6%대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한 ‘경제고통지수’는 5월 기준으로 21년 만에 최고 수준인 8.4를 기록했다. 기름값은 2000원대에서 좀처럼 내릴 기미가 안 보인다. 원·달러 환율은 6월 29일 기준 1299원을 기록했다. 인플레이션을 두고 “방법이 없다”던 대통령과 달리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말했다. 이왕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겠다면 환율방어를 위한 외교적 대책이라도 모색해야 할 시기다.
- [김윤우의 유쾌한 반란]바이든의 2022 최저임금 인상(2021. 06. 04 15:42)
- 2021. 06. 04 15:42 경제
- 역사적으로 1970년대는 그레이트 인플레이션(Great Inflation)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플레이션 문제가 심각했던 시기이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으로 재정지출도 엄청났다. 이 시기 오일쇼크도 2차례 있었다. 통화팽창도 엄청났다. 이런 여러 요인과 함께 미국의 임금인상도 상당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연합뉴스 경제학자들과 재무부, 연준의 관리들은 일반 시민에게 책임을 돌렸다. 즉 물가인상은 임금인상 탓으로 돌려졌다. 1968년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은 “경제학자 대부분은 만약 미국이 현 수준의 실업률을 좀더 서서히 낮추었더라면 물가상승률은 지금보다 훨씬 낮았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했고, 1970년 닉슨 미국 대통령은 “노동자는 과거의 생계비 상승률을 보상받고 미래의 상승분까지 따라잡기 위해 높은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제품가격 역시 과거의 원가 상승과 미래의 상승분까지 예상하여 뛰어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레이트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던 1980년 2월, 같은 해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율환산 시 18%로 나타나자, 카터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미국경제가 위기에 처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자 미국 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는 6개월간의 임금·물가동결 등을 내용으로 하는 임금 및 물가 통제 정책을 채택할 것을 주장하기까지 했다. 역사적으로 매우 뿌리 깊은 이 아이디어의 유래는 로마시대이다. 3세기 이후 화폐 가치 하락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었는데, 285년 취임한 디오클레티안 로마황제는 301년 선포한 그의 법전에서 세세한 물가와 임금 목록을 포함하는 등 임금 및 물가 통제제도를 확립했다. 근로자들이 임금동결을 피해 직장을 옮기자 이직을 금지하는 칙령을 반포하기까지 했다. 금화에 은과 구리를 섞어 생긴 화폐 가치 하락이 마치 임금인상 때문에 발생했다는 듯이. 임금인상이 공공의 적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1981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실시했다. 그는 노동조합을 강압적으로 대했고 임금을 통제했다. 이 무렵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통화공급량 증가 속도를 낮추는 시도를 했다. 1981년 9월부터 미국 연준의 정책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해 물가상승률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저유가 시대가 시작된 1980년대 중반 물가는 잡혔다고 선언됐다. 베트남 전쟁도 끝났고, 유가도, 통화공급도 안정됐지만, 가장 큰 공은 임금인상을 막은 것이라고 분석됐다. 즉 그 성과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몫이었고, 그 이후로 미국의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2020년 당선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중산층의 복원을 내걸고 “대담한 경제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강력한 재정정책을 집행 중인 그는 최근 미국 연방 최저임금을 내년 3월부터 시간당 10.95달러에서 15달러로 37% 인상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2014년 2월 12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소득주도성장론’을 내세워 7.25달러에서 10.1달러로 올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이후 오랜만의 대폭 인상이다. 한국의 2018년 최저임금 인상률 16.5%의 2배를 넘는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 시절보다 더 커진 인플레이션 우려 속에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물가인상의 원인이라는 덤터기를 쓸지 몰라서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2022년 최저임금 인상이 물가안정 속에 시행돼 ‘임금인상은 곧 물가상승’이라는 고정관념을 흔드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김윤우는 서울중앙지법·의정부지법 판사, 아시아신탁 준법감시인을 역임했다. 지금은 법무법인 유준의 구성원 변호사이고, 중소기업진흥공단 법인회생 컨설턴트 등으로 활동 중이다.
- 김윤우의 유쾌한 반란
- ‘바이든의 100일’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2021. 05. 21 13:35)
- 2021. 05. 21 13:35 국제
- 사람들은 의외로 숫자에 집착한다. 특히 사람의 관심을 끄는 숫자는 ‘10’으로 나눠떨어지는 수다. 아기의 ‘백일잔치’가 그렇고, 연인과 축하하는 ‘100일’, ‘500일’. ‘1000일’ 따위의 기념일이 그렇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28일(현지시간) 워싱턴 의회에서 취임 100일 기념 연설을 했다. / AP연합뉴스 정치권에도 ‘100일’을 중시하는 전통이 있는데, 지도자의 첫 100일 업적을 따져보는 관습이 그렇다. ‘대통령의 100일’은 ‘연인의 100일’에 가까운데, 이 시기가 새 대통령의 ‘허니문’ 기간과 겹쳐서만은 아니다. 현대의 분권화된 정치제도에서 100일은 실질적 성과를 파악하기에는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다. 물론 신임 대통령은 국민의 높은 기대와 신선한 이미지를 활용해 개혁과제를 빠르게 진척시킬 수 있고, 이때만큼은 야당도 순순히 협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때 보인 역량이 임기 내내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고, 약속했던 개혁을 중간에 걷어차고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따라서 ‘취임 100일’은 정책의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하고 호응을 얻는 기간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세계 정치사에 ‘100일’의 의미를 극적으로 새긴 지도자로 ‘100일 천하’의 나폴레옹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들 수 있다. 루스벨트는 경제대공황의 파국이 깊던 1933년에 당선돼 100일 만에 구제, 임금, 주거, 일자리, 물가, 금융, 산업과 관련한 법을 76개나 통과시키며 뉴딜의 토대를 다졌다. 그 이후 ‘대통령의 100일’은 신임 지도자의 초반 업적을 가늠하는 높디높은 기준이 됐다. 루스벨트와 비교될 운명의 바이든 이후 어떤 미국 대통령도 루스벨트와 견줄 만한 100일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꼭 후임들이 무능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루스벨트의 놀라운 성과는 경제공황이라는 특수 상황이 절체절명의 위기감과 결합해 탄생한 결과였다. 이 점은 루스벨트가 측근과 나눈 대화에도 드러난다. “대통령께서 임기를 마칠 때, 역사상 가장 훌륭한 지도자 아니면 최악의 지도자, 둘 중 하나로 기록될 것입니다.” “실패하면 최악의 대통령이 아니라 마지막 대통령이 되겠지요.” 다행히 그는 워싱턴·링컨과 더불어 가장 존경받는 미국 대통령이 됐지만, 후임들에게는 ‘취임 100일’이라는 기대가 큰 부담으로 남았다. 케네디는 1961년 취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모든 것을 취임 100일까지 해낼 수 없을 것이고, 1000일 이내에도 불가능할 것이며, 현 정부 임기는 물론 생이 다할 때까지 완수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함께 시작합시다.” 트럼프는 100일이 코앞에 다가오자 “내가 100일이라는 터무니없는 기준에 맞춰 수많은 업적을 낸다 해도 언론은 씹어대기만 하겠지!”라는 트윗을 날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6일(현지시간) 루이지애나주에서 ‘미국 일자리 계획’ 예산 통과를 촉구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이 4월 29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애초부터 그는 루스벨트와 비교될 팔자였는데, 코로나19 대유행이 남긴 경제적·사회적 상처가 대공황에 비견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임자가 남긴 정치적 혼란도 한몫했다. ‘바이든의 100일’은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할까? 단기간의 성적은 훌륭하다. 무엇보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효과적으로 통제했고, 1조9000억달러(약 2140조원)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마련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의 개혁성과는 구체적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새 정부는 경기부양의 혜택을 빈곤층, 아동, 여성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에 필요한 재원을 부유층 증세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다수가 타격을 입었지만, 그중 자녀를 양육하는 여성은 이중으로 고통받고 있다. 바이든의 100일 동안 일자리가 1500만개 이상 늘고 실업률은 6%대로 떨어졌지만, 여성들의 일터 복귀는 매우 더디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한 채 집에 머무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학교와 유치원을 빠르게 열도록 조처하는 동시에 무상교육 확대 방안을 내놓았다. ‘미국가족계획’을 통해 자녀가 있는 가정에 대한 세액공제와 재정지원을 늘리고, 현재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의 13년 무상교육에 4년을 추가할 계획이다. 유치원 등원 이전의 3~4세 아동들에게 2년간의 프리스쿨을 국가가 보장하고, 2년제 직업 전문대(커뮤니티칼리지) 교육도 무상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저소득층 자녀 1명당 6세 이하는 300달러, 6세 이상은 250달러를 매달 지급하기로 했다. 또한 소득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방계약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10.95달러(팁 받는 노동자는 7.65달러)에서 15달러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동계는 “전국 노동자들의 승리”라며 반기고 있다. ‘100일’ 기준의 한계를 넘어 바이든의 최고 업적은 코로나19로부터 시민의 목숨과 건강을 지켜낸 것이다. 취임 당시 20만명에 가까웠던 하루 확진자 수는 100일을 전후해 5만명대로, 사망자는 4000명대에서 900명대로 줄었다. 백신도 2억회 넘게 접종해 미국을 접종 모범국으로 만들었다. 취임 당시 “100일 이내에 백신 1억회를 접종하겠다”던 약속을 두 배로 지킨 셈이다. 바이든의 개혁적 성과는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트럼프에게 ‘졸린 조’로 놀림 받던 그는 민주당 지지자들에게조차 ‘진보 개혁가’로서 뚜렷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큰 기대와 희망 속에서 집권했지만, 미흡한 개혁으로 트럼프에게 백악관을 넘긴 오바마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이유가 컸다. 앞으로 바이든이 풀어가야 할 숙제가 만만찮다. 취임 이후 50%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지지율은 트럼프 이후 미국사회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양극화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대외적으로는 파리기후협약과 세계보건기구(WHO)에 복귀하는 등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미얀마 군부 학살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력충돌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등 뚜렷한 한계도 드러내고 있다. 역시 ‘100일’은 성급한 기준으로 보인다. 객관적 평가를 위해서는 ‘취임 100일 후’보다 ‘퇴임 100일 전’이 바람직한 지표가 될 듯하다.
- [언더그라운드 넷]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2021. 01. 22 15:43)
- 2021. 01. 22 15:43 국제
- “미국 현지시간 2021년 1월 20일 수요일 아침 8시 전국 텔레비전 비상방송 예정. 시청하던 모든 텔레비전 방송이 중단되고 비상방송이 나가게 될 겁니다.” 1월 19일, 한 단톡방에 올라온 글이다. 1월 20일은 미국 46대 대통령 조 바이든의 취임식이 열리는 날이다. 글에서는 정확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워싱턴을 기준으로 보면 오전 8시는 한국시간으로 오후 10시다. 당연히 방송중단 같은 것은 없었다. 비록 코로나19 국면이어서 군중이 운집하진 않았지만, 취임식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유튜브 캡처 문제는 저 “방송중단 후 바이든 취임식은 열리지 않을 것”이 한 개인의 망상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집단 공유되는 망상이었다는 점이다. 21만명 구독자를 확보한 <박상후의 문명개화>라는 유튜브 채널이 1월 18일 내놓은 주장에 따르면 “트럼프는 사실상의 전시 대통령이며, 미국 전역에서 인터넷, 방송 통신이 차단되고 있다”며 “트럼프 진영은 비상방송시스템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한다. 여러 채널이 내놓은 ‘주장’에 따르면 바이든 측이 매수한 국내외 좌파언론이 감춘 ‘진실’은 스펙터클하다. 낸시 팰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이 체포돼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됐고, 민주당에 협조한 공화당 의원의 3분의 1도 체포돼 반역죄로 수감됐다는 것이다. 사태가 벌어진 것은 미국만이 아니다. 혹한기 훈련을 빌미로 캐나다에 머무르던 중국군을 비롯한 캐나다와 멕시코의 국경지대에 25만명의 ‘중공군’이 대기하고 있다가 취임식 당일 국경을 밀고 들어갈 계획이었는데, ‘미국 민주당 반역세력’들이 체포되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한편 캐나다 쪽에서는 5만명의 중국인민해방군이 국경을 넘어서다가 트럼프 우주방위군이 쏜 빔 무기를 맞고 5만명이 즉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인민해방군 주둔을 허용했던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는 체포됐고, 이밖에도 메르켈 독일총리도 체포되는 등 전 세계적 격변이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캐나다 중국인민해방군 이야기는 어떻게 나왔을까. 실제 캐나다에서 중국군이 참여한 혹한기 훈련 이야기는 있었던 모양이다. 뉴스를 검색하면 캐나다의 보수파 정당이 이 사안을 두고 트뤼도 총리를 공격하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그 보도도 지난해 12월 중순에 집중돼 있다. 트럼프의 우주방위군 빔무기로 5만명 사살과 같은 이야기는 사실을 가공한 일부 트럼프 지지자들의 망상으로 보인다. “지금은 역사가 바뀌는 중입니다. (중략) 그리고 이 전쟁은 트럼프 대통령이 큐를 포함한 그의 팀과 함께 지난 수년 동안 기획된 것입니다. 훗날 이 상황은 수백권의 책과 수십편의 영화로도 만들어질 것입니다.” 한 한국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주장이다. 책이나 영화화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건 인지부조화 음모론에 따른 집단적 망상이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나를 보여주는 대표적 실례로 기록될 것이란 사실이다.
- 언더그라운드 넷
- [특집]바이든의 미국, 해결해야 할 과제(2021. 01. 22 15:43)
- 2021. 01. 22 15:43 국제
- ㆍ국익 우선주의, 백신 정치, 사회 통합, 의회 민주주의 복원 등 난제 많아 46대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승리했다. 하지만 순조로운 정권 이양 절차는 밟지 못했다. 대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불복, 법정 소송 그리고 미국 민주주의 역사 초유의 연방의회 의사당 난입을 목도했다. 미국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은 채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월 14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 퀸극장에서 ‘미국 구조 계획’이라 이름 붙인 1조900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안을 발표하고 있다. / 윌밍턴 | AFP연합뉴스 트럼피즘 망령 언제든 부활 가능 바이든 행정부는 첫 번째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로 대표되는 미국 국익 우선주의를 어떻게 포용하고 정책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놓여 있다. 지난 4년 동안 미국 우선주의는 트럼프라는 인물을 통해 왜곡 반영됐다. 비록 그 결말이 초라해지고 우스워졌지만 지난 대선에서 7500만명이 여전히 트럼프에 지지를 표했다. 미국 우선주의의 동력이 근본적인 사회·경제적 모순과 문제점에 기인한다는 의미다. 미국인 가구는 2000년 이후 절대적 소득이 증가하지 않았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오히려 줄어들었다. 반면 빈부격차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1945~1963년생)는 안정적인 직장생활과 연금 등으로 편안한 노후생활을 즐기고 있는 반면 그들의 자녀나 손주인 20~30대는 제조업 기반 붕괴와 자동화로 인한 불완전한 고용, 질 높은 일자리의 부족, 공교육의 질 저하로 인한 경쟁력 약화 등으로 경제적 불안정 상태를 맞이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의 주요 도시와 비교해도 낙후된 도로, 교량, 지하철, 공항 등 사회 인프라 시설은 미국을 최고 선진국으로 믿었던 미국인들에겐 충격으로 다가왔다. 트럼프는 이러한 이들의 경제적 불안과 불만을 중국이라는 신흥 강대국과 미국 내에 들어와 있는 수많은 이민자에게 적대적 화살을 돌림으로써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이제 트럼프는 권좌에서는 물러났지만, 트럼프 지지 근간이 됐던 미국 우선주의(MAGA)는 이러한 사회·경제적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계속 바이든 정부를 공격할 것이다. 트럼피즘의 망령은 언제든 부활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도 연방 정부 조달에서 미국산 제품 비중을 높이는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행정명령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우선주의가 미국민에게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일정 부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두 번째 문제는 백신정치의 성공 여부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100일 안인 4월 말까지 미국인구의 3분의 1인 1억명에게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전 국민이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행정명령을 내리고, 모든 학교가 4월 30일까지 대면수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백신정치가 약속대로 지켜진다면 국민의 지지는 상승할 것이다. 다만 현재 백신 공급과 접종에 있어서 여러 행정의 효율성 문제가 노출되는 것을 볼 때, 취임 후 100일 동안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코로나19로 인해 위축된 경제 회복을 위해 미국인과 가계에 추가적인 1조9000억달러의 경제적 지원(경기 부양 자금, 학자금 융자 탕감)을 하기로 했는데 이를 통해 경제가 회복된다면 바이든 행정부의 지지율은 오를 것이다. 세번째 문제는 사회통합의 여부다. 정치의 양극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로 대표되는 인종갈등의 심화는 지난 4년 트럼프 정부가 남긴 폐해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부통령인 해리스를 임명하고, 내각을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물론 내각 구성이나 정책 방향 전환만으로 사회통합이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전임 오바마 대통령 재임 8년은 변화에 대한 많은 기대가 있었지만, 기대만큼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오히려 인종갈등은 미국의 근본적인 모순이며 쉽게 해결될 수 없음을 확인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경찰개혁 등 사회통합을 위한 여러 정책 대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하지만 극렬한 트럼프 지지자들은 집권 4년 내내 바이든 정부를 향해 크고 작은 테러와 위협을 가할 것이다. 이들을 최대한 소수화하고, 분리해내는 것이 바이든 정부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네번째는 의회 민주주의의 복원이다. 지난 4년간 미국 정치는 트위터 정치, 거리의 정치로 비이성과 가짜뉴스가 판을 쳤다. 이제 토론과 질서의 정치로 의회 민주주의 작동이 온전해질 것을 기대한다. 민주당은 상원과 하원을 장악해 바이든 행정부의 국정운영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됐다. 다만 상원과 하원에서 근소한 의석수로 앞서고 있기에 공화당 내에 온건주의자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국제사회에서의 미국 위상회복도 마지막으로,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위상회복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유럽 등 동맹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일소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 등 에너지 정책 등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것이며, 국제적인 협력을 이끌어내려 할 것이다. 대중·대북관계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외교적인 수단을 사용하면서 불필요한 충돌이나 예측 불가한 일들은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급격한 관계 개선이나 해법 또한 쉽게 도출되지도 않을 전망이다. 미국의 정치와 사회가 바이든의 당선으로 더 이상의 파국을 모면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4년 동안 헤쳐나갈 험로와 역경도 만만치 않다. 뿌리 깊은 정치·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모순은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바이든 행정부가 1년간 의회와의 허니문과 상·하원 장악이라는 우호적인 환경 속에 백신정국을 헤쳐나가길 바란다. 그래서 미국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미국 민주주의 복원과 사회적 통합의 전기를 마련해주기를 기대한다.
- 특집
- [특집]바이든 시대 맞이한 중국의 복잡한 심경(2021. 01. 22 15:39)
- 2021. 01. 22 15:39 국제
- ㆍ미중관계 트럼프 때와는 달라져도 세계패권 경쟁 구도는 필연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 이후 단기적으로는 미중관계에 완충기가 올 것이고, 그동안 희망을 가질 수 있지만 환상은 갖지 마라. 그러나 장기적으로 미중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중국의 부상은 필연적이며 따라서 미국과의 경쟁도 필연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 4년은 중국의 ‘제14차 5개년 규획’ 비전과 겹치게 되는데 이 기간이 향후 미중관계 향방의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2013년 12월 4일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왼쪽)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 AP연합뉴스 중국의 싱크탱크인 중국사회과학원 미국연구소 위안정(袁征) 부소장이 1월 19일 베이징 최대 일간지 신징바오(新京報)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이든 시대에 대한 전망이다. 미중관계가 트럼프 대통령 때와는 달라지겠지만 그렇다고 바이든 대통령이라고 해서 크게 기대를 걸 필요도 없다는 시니컬한 반응이다. 이 같은 전망이 바이든 대통령 취임을 대하는 중국의 기본적인 기조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바이든 당선에 대해 보인 입장도 “서로의 의사를 존중해가면서 대화를 통해 협력하고 경쟁하자”는 것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취한 각종 대중국 제재가 원점으로 돌아가거나 오바마 행정부 시절처럼 돌아가리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는다. 바이든 대통령이라고 해서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와 ‘중국을 미국의 적’으로 보는 시각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간파하고 있다. 중국 언론 바이든과의 인연 조명 미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지난해 11월 8일 즈음 ‘봉황망’ 등의 중국매체들이 일제히 베이징의 ‘바이든 식당(拜登餐?)’으로 불리는 ‘야오지차오간(姚記炒肝)’을 찾아 바이든 당선자와 중국과의 인연을 회상하면서 바이든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던 장면이 기억났다. 베이징의 톈안먼 북쪽 오래된 후퉁(胡同) ‘난뤄구샹(南?鼓巷)’에 있는 이 작은 식당은 베이징의 전통음식 차오깐(炒肝)과 짜장면 등을 파는 전형적인 서민식당이다. 바이든이 부통령 시절 이곳에 와서 짜장면 등을 먹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지난 5년은 중국으로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갈등의 수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상원의원 시절부터 4차례나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친중(親中)성향 바이든 대통령 당선은 미중관계의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게 할 법했다. 중국의 그런 기대감이 수많은 중국인이 자발적으로 이 식당을 찾게 했을 것이다. 중국 매체들은 2011년 당시 중국을 방문한 바이든 부통령을 맞아 5일간 직접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이 밀착 접대했다는 인연도 끄집어내면서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했다. 2012년 후계 승계를 앞두고 미국 방문길에 나선 시 부주석을 맞이한 것은 바이든 부통령이었다. 두 지도자의 오랜 인연은 미중 양국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바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어졌다. 국가주석이자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등극한 시 주석은 덩샤오핑 이래의 외교기조였던 ‘도광양회(韜光養晦·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를 폐기하고 G2 경제대국 위상에 걸맞은 ‘신형대국관계’를 미국에 요구하고 나섰다. 신형대국관계란 미국과 러시아 일본 등 ‘대국’들이 서로의 핵심이익을 존중하면서 평화로운 국제질서를 함께 만들어가자는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의미한다. 초강대국 미국이 이끄는 국제질서에서 벗어나 중국을 미국과 대등한 ‘초강대국’으로 인정, 양극체제로 바꾸자는 주장인 것이다. 중국의 신형대국관계 요구에 침묵으로 무시하던 미국의 태도는 시진핑-오바마 간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극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오바마는 중국 측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 G2로 성장한 중국의 달라진 위상을 인정하고 국제사회에 기여할 것을 요구했다. 중국의 <제14차 5개년 규획> 주목 시 주석은 중국의 대외적 위상 극대화에 성공한 데 이어 국내적으로도 중국공산당 당장(黨章·당헌)을 바꾸면서 ‘시황제’로 불릴 정도로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최고지도자의 위상 강화에 몰두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시대의 ‘신형대국관계’를 무시한 채 임기 내내 중국을 몰아붙이면서 ‘광인전략’으로 대중갈등을 지속적으로 조성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시 주석의 호칭을 국가주석이 아닌 ‘(중국공산당) 총서기’라고 부르면서 중국을 자극해왔다. 시 주석의 ‘중국몽’은 궁극적으로는 ‘중화민족의 부흥’과 세계 초강대국으로의 발돋움이다. 이 중국몽 실현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초강대국 미국과의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게 중국의 딜레마였다. 우리가 바이든 시대에 대비한 중국의 움직임 중에서 눈여겨볼 것은 ‘14·5규획’이다. 오는 3월 초 열릴 예정인 ‘전국인민대표회의’에 회부해 심의·확정될 <제14차 5개년 규획(2021-2025)>은 시 주석이 ‘13·5규획’을 통해 제시한 ‘전면적 샤오캉(小康) 사회건설’에 이은 ‘전면적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건설’이라는 야심 찬 계획이다. 이와 관련한 중국 지인(익명 당부)은 “중국은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든 간에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는 미국의 이익과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독자적인 발전전략에 따라 대응하게 될 것”이라며 “당분간은 상생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조를 내세우겠지만 결국 충돌을 불사하고 중국의 길을 가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로 이 중국의 ‘14·5규획’과 ‘2035년 장기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달려가는 첫 5년이 바이든의 4년과 겹치게 되면서 경쟁이 불가피하다. ‘14·5규획’의 핵심은 미국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을 정도의 경제와 산업 인프라 구축이기 때문에 바이든 시대 초반에는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미 맞춤식 ‘도광양회’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기조’를 버리지 않을 것이고, 미국주도의 세계패권도 바꿀 가능성은 없다. 다만 중국은 과거보다 다소 약화된 미국의 국력과 민낯이 드러난 미국식 민주주의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때와는 판이한 평화적이고 유화적인 방식으로 동맹과 파트너십을 극대화하고 활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십년지기’ 미국과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세계패권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구도가 펼쳐지면서 미중관계의 불확실성이 보다 확대될 것이다. 문제는 의외로 중국에 있다는 시각도 있다. 2022년 드러날 수밖에 없는 시 주석의 후계구도가 변수가 될 수 있다.
- 특집
- 바이든 행정부 앞날 달린 상원 결선투표(2021. 01. 04 15:44)
- 2021. 01. 04 15:44 국제
- 미국 조지아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 2명을 뽑는 결선투표가 1월 5일 열린다. 이 선거는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2명을 뽑는 미니 선거지만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의 승리로 판가름 난 대선 2라운드로 불릴 정도로 의미가 크다. 1월 20일 바이든 당선자의 취임과 함께 여당 등극을 앞둔 민주당이 상원까지 차지하느냐, 야당이 되는 공화당 차지가 되느냐가 이 선거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백악관과 하원을 장악했지만, 상원 다수당을 공화당에 내줄 경우 국정운영 동력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취임 초기 바이든 행정부의 순항 여부가 이 선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대로 퇴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으로선 상원까지 내줄 경우 지난 4년간 쌓은 업적을 지키기 어려울 뿐더러 국정 견제 능력도 상실한다. 미국 조지아주 유권자들이 2020년 12월 29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연방 상원의원 결선투표를 하고 있다. / 애틀랜타|EPA연합뉴스 임기 6년인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선거가 돌아온 3분의 1에 더해 공석이 된 35석을 두고 치러진 2020년 11월 상원의원 선거는 절묘한 결과를 남겼다. 2018년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을 탈환한 민주당은 이 선거에서 상원까지 석권을 노렸지만 일단 실패했다. 조지아에 쏠린 눈 민주당 차지였던 12자리가 선거를 치렀고, 공화당 차지였던 자리가 23자리였다. 현재 상원 의석수가 공화당 53석, 민주당 45석, 민주당 성향 무소속 2석이므로 민주당으로선 4자리만 뺏어오면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1석을 공화당에 내줬고, 2석을 가져왔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1석밖에 추가하지 못한 것이다. 이로써 1월 6일 출범하는 117대 연방의회 상원 의석은 공화당 50석, 민주당 48석이 됐다. 2석이 걸린 조지아는 승자를 가리지 못했다. 2석 모두 과반수 득표 후보가 나오지 않아 주법에 따라 결선투표에 넘겨졌다. 민주당이 결선투표에서 2석 모두 이긴다면 민주당과 공화당은 상원 의석수가 50 대 50으로 같아진다. 하지만 상원의장은 부통령이 당연직으로 맡는다. 양당의 의석수가 같을 경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자가 의장을 맡게 돼 민주당이 주도권을 쥔다. 반대로 공화당은 2석 가운데 1석만 이겨도 상원을 장악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조지아는 공화당 우세 지역이다. 2000년 이후 조지아에서 민주당 후보가 상원의원에 당선된 적이 한 번도 없다. 민주당 후보가 주지사 등 주의 선출직에 당선된 경우도 2006년 이후 없다. 이번은 분위기가 다르다. 바이든 당선자는 이번 대선에서 애틀랜타 등 대도시 유권자 지지에 힘입어 49.5%를 득표했다. 49.3%를 얻은 트럼프 대통령을 1만2000여표 차로 앞질렀다. 민주당 대선후보가 조지아에서 이긴 경우는 1992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마지막이었다. 미국 조지아주 연방 상원의원 결선투표에서 공화당 현역 상원의원 2명에게 도전장을 던진 민주당 존 오소프(오른쪽)·라파엘 워녹 후보 / 스톤크레스트|EPA연합뉴스 현역인 공화당 데이비드 퍼듀 의원은 지난봄 코로나19로 미국 증시가 폭락하기 전 보유 주식을 내다 판 사실이 드러나 구설에 올랐다. 사업가 출신인 켈리 레플러 의원은 2019년 말 사퇴한 조지 아이작슨 상원의원 후임으로 지명돼 잔여 임기를 채웠지만, 극우 음모론을 마다하지 않는 등 철저히 트럼프 대통령의 ‘코드’에 맞췄다. 이에 맞선 민주당 존 오소프 후보는 2020년 7월 작고한 전설적인 흑인 민권운동가 출신 존 루이스 하원의원 인턴으로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명문 조지타운대를 나온 엘리트이자 국제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제작자이기도 한 그는 33세로 당선되면 최근 40년 사이 최연소 상원의원이 된다. 흑인 목사인 라파엘 워녹 후보는 의료보험 확대, 투표권 보장 등 시민사회 활동에 투신했다가 정계 진출을 노리는 케이스다. 미국 선거에서 판세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는 지지율과 선거자금, 투표율 등이다. 여론조사에서 양당 후보들은 초박빙 양상이다. 정치분석 매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가 집계한 여론조사 평균을 보면 오소프는 49.3%, 퍼듀는 48.5%다. 워녹은 49.8%, 레플러는 48.0%다. 민주당 후보들이 근소하게 앞서고는 있지만, 오차범위 내여서 통계적으로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상황이다. 달아오른 대선 2라운드 선거자금 모금액은 민주당 후보들이 훌쩍 앞섰다. 오소프 후보는 지난 두 달간 1억670만달러(약 1161억5300만원)를 모금해 상원의원 선거 역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워녹 후보 역시 1억340만달러를 모금했다. 공화당 두 후보가 모은 자금은 총 1억7100만달러였다. 선거자금에 여유가 있을수록 주요 선거운동 수단인 텔레비전 광고를 많이 할 수 있다. 투표 열기도 뜨겁다. 233만여명이 사전투표에 참가했다. 2008년 조지아 상원의원 결선투표 총투표수를 이미 넘어섰다. 한국에서 재보선 투표율이 일반 선거보다 낮듯이 미국에서도 재보선이나 결선투표는 일반 선거보다 투표율이 낮은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선거는 지난 11월 대선 사전투표 추세와 비슷할 정도로 높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와 해리스 부통령 당선자 등 신·구 권력이 총출동해 유권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조지아 상원의원 결선투표일인 1월 5일은 공교롭게도 연방의회가 각주 대선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보고받고 최종 승자를 승인하는 회의를 열기 하루 전이다. 차기 미 상원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된 다음 바이든 당선자가 46대 대통령으로 최종 확정되는 것이다. 의회 사정에 밝은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민주당 관계자들은 공화당이 강한 조지아에서 2석 모두 승리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보면서도 이번엔 다를지 모른다는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미 의회는 하원이든 상원이든 다수당이 상임위원장을 모두 맡는 승자독식 구조다. 상원은 법률 및 예산 심의·의결권뿐 아니라 장·차관을 비롯한 행정부 고위직 및 연방판사에 대한 인준 권한도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민주당에 내주기는 했지만, 상원을 계속 장악함으로써 국정 장악을 위한 최소한의 지렛대를 쥘 수 있었다. 만약 민주당이 상원 장악에 실패한다면 바이든 당선자는 새 행정부 고위직 인준 과정에서 깐깐한 인사검증을 각오해야 한다. 공화당은 상원을 장악할 경우 코로나19 대응 및 경제활성화, 기후변화 대응, 인종 정의 확립 등 바이든 당선자가 내세운 주요 국정과제에 대해서도 검증과 견제를 벼르고 있다. 미 대선에 쏠렸던 시선이 조지아에 다시 쏠린 이유다.
- [김경미의 바이든시대 한국의 전략](3)‘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 그룹을 주목하라(2021. 01. 04 15:40)
- 2021. 01. 04 15:40 국제
- 1월 20일이면 바이든 당선자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다. 지난 대선과 함께 선거를 치렀던 상·하원도 1월 3일 새로운 임기를 시작한다. 바이든은 이번에 8100만여표(51.4%)를 얻었다. 트럼프는 7400만여표(46.9%)를 얻었다. 2016년 선거보다 1100만여표를 더 얻고도 진 것이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들이 여전히 다수의 유권자로 존재하고 있다. 놓쳐서는 안 되는 현실이다. 의회 또한 마찬가지다. 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222석, 공화당은 211석을 얻었다. 민주당은 기존의 232석에 비해 10석을 잃었다. 반트럼프 정서 물결 속에 치러진 선거였음을 돌아볼 때, 형식에서는 이겼지만, 내용에서 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미국 하원의원. 그는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DSA)’ 그룹이 배출한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 AP연합뉴스 민주당 내 주류와 진보 그룹 간 갈등 현재까지 상원 총 100석 중 공화당이 50석, 민주당이 48석을 확보했다. 1월 5일 조지아주 결선투표 2석 중 공화당이 1석이라도 이기면 51 대 49로 공화당에 다수당 지위가 넘어간다. 이는 공화당이 입법부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각종 개혁 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석 모두 민주당이 차지하면 양쪽 50석 동석으로, 헌법상 당연직 상원의장 지위를 겸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조지아 선거에 총력을 쏟아붓는 이유다. 결과가 어떠하든 민주당은 대선과 의회 선거 모두에서 압도적 다수를 얻지 못했다.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선 공화당의 협력을 끌어내야 한다. 1월 조지아 상원의원 선거로 인해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면 그건 선택이 아닌 필수다. 대선 당시 내세웠던 진보적인 공약을 일정 부분 양보해야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 경우 샌더스와 AOC(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로 대표되는 민주당 진보 그룹의 반대와 압박이 무척 거셀 수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내 주류와 진보 그룹 간의 갈등은 대선 이후 주류 그룹이 진보 그룹의 급진적인 정책 때문에 하원의석을 이전보다 더 잃었다며, 진보 그룹에 선거결과의 책임을 돌리면서 이미 시작됐다. 바이든은 밖으로는 공화당을 상대해야 하는 과제와 안으로는 민주당의 진보파와 주류 그룹 간에 화학적 결합을 만들어가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바이든을 선택한 유권자들은 공화당 지지자였지만 트럼프는 아니라고 생각한 사람, 민주당 지지자면서 중도성향의 사람, 더욱 진보적인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 등일 것으로 분석된다. 이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 바이든은 방향키를 잡고 가야 한다. 바이든이 누구의 손을 잡고 갈 것인지, 그것이 민주당 정부의 성공으로 귀결될 것인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더 절박하게 사람들을 조직하고, 표를 모으는 그룹에, 그래서 2022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승리를 가져오게 할 그룹에 변화의 축이 기울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점에서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DSA)’ 그룹을 주목해야 한다. 2015년까지만 해도 5000명 조금 넘는 회원수를 가지고 있던 DSA는 2016년 샌더스 대선 경선을 거치며 3만명, 2018년 AOC 당선 후 5만명, 2020년 12월 현재 8만5000여명의 회원을 확보하며,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대학 캠퍼스는 물론 고등학교에서도 DSA 지부가 만들어지고 있고, 15개의 주 정부에 민주당 진보 코커스를 두고 있다. 그들은 돈을 모금하는 데도 성과를 보인다. DSA가 배출한 대표적인 정치인인 AOC는 116회기 미연방 하원의원 후원금 모금에서 상위 6위를 차지했다. 하원 전체로는 6위, 민주당에서는 3위였다. 민주당 1위가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였으니, 초선 하원의원으로서는 대단한 성과다. 더 주목할 점은 AOC가 모금한 돈이 모두 소액 후원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기업의 정치활동위원회(PAC)나 정치 로비 단체의 후원금을 거부하고, 시민에게서만 정치 후원금을 받은 결과다. 분명한 비전을 가진 정치 그룹과 그들의 도전에 응답한 시민, 이 둘의 결합이 기성 정치인들의 힘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통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을 바꿀 정치 생태계 꿈꿔 DSA의 도전은 AOC에 그치지 않는다. 2018년 그와 함께 하원의원에 당선된 매사추세츠주 첫 흑인 여성 의원 아이아나 프레슬리, 소말리아 난민 출신 무슬림 일한 오마, 팔레스타인계 무슬림 러시다 털리브 모두 재입성에 성공했다. 뉴욕 16선거구의 자말 보먼은 무려 16선의 하원 외교위원장인 엘리엇 엥겔을 당내 경선에서 이기며 의회에 입성했다. 주 의회 선거에서는 30명 이상의 DSA 회원들이 당선되었다. 이들의 도전이 2016년 샌더스 민주당 경선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을 볼 때, 실로 빠르고 놀라운 성과다. 이들은 한두명의 스타 정치인을 배출하는 것에 안주하지 않는다. 민주당을 넘어 미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정치생태계를 만드는 데, 또 이를 해낼 리더와 지지 그룹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조직의 존재 이유를 둔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이들이 조직과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핵심적인 이유는 인종문제, 빈곤문제, 기후위기, 소수자 인권 등 미국사회 변화를 이끌 핵심 이슈를 그 누구보다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의 성공은 민주당 진보파·보수파 모두에게 절실한 과제다. 바이든의 실패는 곧 또 다른 트럼프를 불러올 수 있다. 트럼프가 얻은 7400만여표는 다음 대선에도 실체적 힘을 발휘할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성공 여부는 DSA 그룹에도 큰 정치적 도전이다. 목소리만 큰 트러블 메이커로 인식되고 말 것인가, 정부 여당의 한 축을 담당하며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주체로 자리매김할 것인가. 응원하든 비판하든, 이들을 주목하는 모든 이가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위 과제와 별개로 DSA 그룹이 한국 정치 키즈들에게 던지는 함의는 간단하다. 변화를 이끌고 싶다면 조직해야 한다. 1인 1표, 민주주의의 원리는 간단하다. 그 1표를 모아 큰 변화의 원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엔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미국을 꿈꾸는 미국의 밀레니얼은 DSA를 통해 그 실험을 하고 있고, 하나씩 견고한 둑을 무너뜨리고 있다. 한국의 밀레니얼은 어떤가? 지향하고 있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적 힘을 모으고 있는가. 있다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보자. 없다면 머리를 맞대보자. 단일한 조직일 필요는 없다. 서로가 만나 거대한 흐름을 만들면 된다. 어쩌면 그 힘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따로 또 함께, 용기와 연대를 가지고. ※시리즈 연재를 마칩니다. 김경미는 평화네트워크, 정치발전소, 서울시, 청와대 등을 두루 거쳤다. 우리 사회 정치리더들을 발굴·육성하기 위해 로시님과 함께 정치 플랫폼인 섀도우캐비닛을 창업해 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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