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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후보 직격 인터뷰]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 2012. 11. 06 17:37 화제
- ㆍ노련한 정치 9단, 주부의 마음을 헤아리다 서울 서교동 한 갤러리에서 만난 박근혜 대선 후보는 어떠한 질문에도 지체 없이 답을 돌려주었다. 특히 주부들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묻어나는 답변은 정치 9단의 내공을 실감케 했다. 정작 여성 월간지를 언제 읽어보았는지는 묻지 못한 것이 지금 이 순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인터뷰가 있던 지난 10월 13일은 대권에 도전한 빅3 후보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날이었다. 2012 과학기술나눔마라톤대회에서 두 후보를 만난 소감에 대해 묻자 박근혜(60) 후보는 “앞으로 그런 일이 종종 있지 않겠느냐”라는 짧은 답을 미소와 함께 건넸다. 수년간 다져온 몸 튼튼, 마음 단단 정치인 체질 ‘대세론’의 순풍을 타고 일찌감치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의 꿈을 향해 뛰기 시작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비교적 여유 있는 행보로 대선에서 레이스에 임하고 있다. 위기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선거의 여왕’의 승부수는 이번 대선 최대의 관전 포인트다. Q 자기 관리가 철저하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체력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A 요즘은 시간이 없어서 못합니다만, 한때 테니스와 탁구를 좋아했고 더 젊었을 때는 수영, 배드민턴 등을 했어요. 그런 게 쌓여서 지금의 제 체력이 되지 않았나 싶네요. 음식은 골고루 먹고, 특히 현미밥을 즐겨먹어요. 아침은 꼭 챙겨 먹고요. 선거 때 주로 차 안에서 김밥이나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다 보면, 흔들리지 않는 곳에 편하게 앉아서 밥만 먹을 수 있어도 그게 보양식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마음을 다스리는 비법이라고 하면 어려서부터 워낙 많은 일을 겪고 자라 내공이 쌓여서 그런지 마인드 컨트롤이 자동적으로 됩니다. 이런 생각도 해요. ‘만약 신이 있다면, 평생 한 사람에게 주는 고통의 총량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힘겨운 일이 생기면 어려울 때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편안히 하고, 되도록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Q 주말이나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A 여유가 있을 때는 주로 독서나 단전호흡같이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시간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재미없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까지 건강한 삶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비결 가운데 하나죠. 또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거나, 트위터에 올라온 글도 읽고, 제 생각을 올리고 하는 일에도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에요. 저도 나름 이공계 출신이라(웃음). 우리 정치인들 중에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제가 제일 먼저 만들었고,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빨리 시작했어요. 싸이월드 일촌들도 많고 ‘트친’, ‘페친’도 많아서 올라온 멘션들 읽고 저도 몇 줄 올리다 보면 시간이 휙 지나가기도 합니다. Q 조카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시다고요. 조카가 가장 사랑스러울 때는 언제인가요? A 조카가 태어나서 저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쳤을 때,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어요. 조카가 크면서 여러 가지 재롱을 부린 것도 기억이 납니다. 그림을 하나 그렸는데, 거기 어울리지도 않는 장소에 엉뚱하게 강아지 한 마리를 그려놨기에 왜 거기에 그렸냐고 했더니, “그건 제 맘이에요”라고 해서 웃은 적이 있어요. 생일에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나면, 케이크가 없을 때도, 허공에 대고 “후후후~” 하며 촛불을 끄는 척하기도 해요. 운명과도 같았던 정계 입문 박근혜 후보에게 ‘인생에서의 모험’은 언제였느냐고 물었더니 비상대책위원회를 맡아서 당의 색깔을 바꿀 정도로 과감한 결단을 내렸던 시기를 이야기했다. 이에 ‘소소한 일탈’을 말하는 것이라고 바로잡자 그제야 웃음을 터뜨리며 “노래방에 많이 갔었지요”라며 답했다. 노래방에 ‘한창’ 다닐 때 애창곡은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였다고. Q 정치 인생 중 들은 가장 황당했던 루머가 있다면요? A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애를 낳아서 그 애가 서른 살이라는 그런 허황된 네거티브가 있더라고요. 말도 안 되죠. Q 학창 시절 친구들과는 가끔 만나시나요? 그분들을 만나면 자신의 삶과 비교도 하게 될 텐데, 그땐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궁금합니다. A 사실 거의 만나지 못해요. 특히 정치를 시작하고 나서는 개인 시간이 없어서 더 어렵습니다. 얼마 전에 성심여고 동창회가 있어서 다녀왔는데, 다들 평범하게 사는 모습이 참 좋아 보이더라고요.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부럽기도 했고요. 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원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겠죠. 평범한 삶은 아니지만, 나라를 위해 모든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결혼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으셨나요? A 20대 시절 부모님 살아 계실 때였죠. 그 뒤에는 그런 거를 어렴풋하게나마 생각하고 할 상황이 아니었어요. Q 초등학교에 청와대에 들어가서 평생 공적인 삶을 사셨는데, 다시 태어난다면? A 평범하게(웃음), 정치인 아닌 삶을…. Q 인생의 갈림길에서 정치인의 삶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A 솔직히 저 자신이 선택하고 말고 할 것이 없었습니다. 모든 게 한꺼번에 몰려왔기 때문이죠. 처음으로 인생의 갈림길에 섰던 때는 아무래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인 것 같아요.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었는데,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고 정신없이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공부를 중단해야 했고, 어머니의 빈자리를 메워서 5년 동안 퍼스트레이디로 살아야 했지요. 모든 것이 국민과 관련된 자리라서 저 자신의 인생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면서 평범한 서민의 삶으로 돌아가 살다가 IMF 사태 때 국가 부도 위기를 보면서 정치 입문을 결심했습니다. Q 한 개인의 삶으로 봤을 때는 젊었을 때 큰 불행을 겪으신 건데, 그 아픔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A 그때는 내가 미치지 않고 사는 게 신기한 일이다, 라고 할 정도로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럴 때는 두 가지 길이 있는 거 같아요. 자포자기해서 아예 쓰러져버리는 것과 고통을 딛고 일어나 뭔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목표를 세워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요. 당시에 제가 책을 엄청 많이 읽고 고전을 찾아 읽으면서 마음 다스리기를 했어요. 그림 하나를 보더라도 예를 들어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를 보면서 멋있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거친 파도에도 굳건하게 서 있는 바위처럼, 나도 저렇게 살 거야(웃음)’라고 마음 다지기를 많이 하니까 그게 마음의 근육이 되더라고요. Q 그런 일련의 사건이 박 후보님께 남긴 흔적이나 트라우마는 없을까요? 인상이 차갑다거나 성격이 폐쇄적일 거라는 편견이 있기도 한대요. A 사실은 그런 게 저에 대한 낙인찍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건 있죠. 세상에 나와서 경험이 너무 없으면 순진한 마음에 모두가 자기 마음 같은 줄 알고 속아 넘어가기도 하고 뒤통수도 맞고 그러잖아요. 생각지도 못한 아픔과 배신이란 것을 겪고 나면 매사에 신중하게 되죠. 그렇다고 의심을 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을 덜커덕 믿진 않아요. 왜냐면 경험이 쌓였으니까요. 그게 신중한 거지, 폐쇄적인 건 아니지요. Q 예전에 어머님께서는 ‘청와대 내의 야당’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대통령께 쓴소리를 많이 하셨다는데, 곁에서 그런 조언을 해주는 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A 다른 후보들은 부부가 뛰고 계시죠(웃음). 그것도 좋은 일이죠. 남편이 못 가면 부인이 가고 그런 것도 좋은데, 저는 지역구 선거 때도 혼자 다 했어요. 더 많이 뛰고 더 많이 가면서요(웃음). 국민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다 “저는 가족이 없지만… 가족을 행복하게 지켜드리고 싶다.” 박 후보는 이렇게 말했지만, 자신의 인생이 희생이나 포기와는 거리가 멀다고 못을 박았다. ‘나의 행복과 나라를 위한 행복은 따로 있지 않다’라는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다고 했다. ‘개인적인’이라는 토를 굳이 달지 않으면, 어떠한 질문의 답이든 정치와 국민으로 향했던 이유였다. Q 대권 도전에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정치생활을 하면서 저같이 여러 국민을 전국적으로 다니면서 만난 사람도 없을 거예요. 당이 큰 위기를 겪을 때 제가 전면에 나서서 국민께 호소를 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저를 믿어주시고 저희 당을 살려주시는 과정을 보면서 정말 감사했어요. 그렇게 국민과 만나서 껴안기도 하고 마주 보고 얘기도 나누면서 감동적인 순간들이 대단히 많았거든요. 그 마음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정치 인생 마치기 전에 국민께 반드시 보답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어요. 또 제가 따로 가족이 없잖아요. 어머니, 아버지도 젊었을 때 갑자기 돌아가셨고요. 제 마음 한구석에는 오순도순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이 소중하게 담겨져 있어요. 놀이터 같은 곳에서 가족들을 만나면 그 행복을 지켜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Q 박 후보님께서 독재적인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고 표현하는 이들도 더러 있습니다. A 정치를 하는 데 유연하고 부드러운 것도 필요하지만 강한 것도 필요해요. 그게 없으면 어떤 것 하나도 제대로 못해낼 겁니다. 국민의 공감대를 얻어서 소신껏 결정한 일이 있다면 그대로 밀고 나가서 결론을 봐야지 주변에서 바꾸자고 한다고 해서 흔들린다면 무엇 하나 제대로 될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럼 국민도 믿을 수 없을 거고요. 저는 그런 식으로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보거든요.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이 저를 공격하더라도 강하게 소신대로 가는 게 옳다는 거죠. 그걸 가지고 고집이나 불통이라고 한다면, 정말 그런 식으로는 정치권에서는 해낼 수 있는 일이 없을 거예요. Q 도대체 ‘수첩’에는 어떤 내용들을 그렇게 빼곡히 적으시는 겁니까? 그 내용은 별도로 저장·관리를 하시는지요? A 제 수첩 안에는 민생 현장에서 국민들로부터 들었던 애로사항이나 고충 같은 것과 정책적인 내용들, 제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많이 적혀 있습니다. 국민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런 수첩이 꼭 필요해요. 그냥 한 번 적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녁에 다시 정리해서 담당자들에게 개선할 수 있는지 챙기도록 부탁합니다. Q 여성 정치인으로서 한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A 2004년에 제가 당 대표를 맡고 있을 때, 한 여성 당직자가 야근을 해야 하는데 어린이집에 두고 온 딸을 돌볼 사람이 없어 여기저기 다급하게 전화를 돌리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어요. 다음날, 저는 회의에서 어린이집 설립을 공식적으로 제안했는데, 당사에 공간이 없고 투자 대비 효과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저는 그때 이렇게 얘기했어요. “어린이집 하나 없는 정당에서 무슨 보육정책을 논합니까?” 그렇게 해서 2004년 7월 1일, 우리나라 정당 사상 최초로 당사 안에 ‘신나는 어린이집’이 문을 열게 됐습니다. 한 번씩 거기를 가면 아이들이 저를 고모라고 부르면서 함께 놀았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Q 일부에서는 박 후보님께서 결혼과 출산의 경험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여성 유권자들과의 공감이 부족하지 않겠나, 하는 우려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아울러 우리나라 여성들, 특히 주부들에게 가장 절실한 정책이나 변화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A 그런 식이면 남성 정치인들은 아예 여성과 공감이 전혀 없지 않을까요?(웃음) 중요한 것은 경험의 유무가 아니라 얼마나 그 사안에 대해 절실한 마음과 진정성을 갖고 하려는 의지가 있느냐, 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여성으로서 너무나 많은 짐이 우리나라 여성들의 두 어깨를 누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여러 가지 여건은 제대로 구비돼 있지 않은데 여성이 해야 할 일, 여성에게 요구하는 일들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저는 여성의 행복을 위해 임신부터 양육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와 환경을 만들 겁니다. 우선 여성의 임신과 육아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임신기부터 출산 이후까지 종합적인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실시해서 엄마들이 마음 편하게 출산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며, 아빠의 달을 도입해서 아빠도 출산과 양육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또 획일적이 아닌 여성들이 원하고 바라는 보육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를 맞춤형 보육 시스템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가령 전업주부이신 분들도 아이들을 잠깐 맡길 수 있도록 하고, 파트타임으로 일하시는 분들도 이용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으로 전환할 계획입니다. Q 최근 주부들은 뉴스 보기가 겁난다고 합니다. 성폭력 등의 강력 범죄가 잇따르고 있는데요.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어떤 대책을 가지고 계신가요? A 제가 당 대표를 하던 2005년 4월 국회 대표 연설에서 성범죄자들에게 전자발찌를 채우는 ‘전자발찌법안’을 처음으로 제안했습니다. 당시 성범죄자들의 인권 보호를 이유로 반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동이나 여성에 대한 성폭력 범죄만큼은 철저하게 예방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통과시켰습니다. 전자발찌법안이 시행된 이후 성폭력 재범률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그런데 이 제도를 도입하기 이전의 성범죄자에게는 전자발찌를 채울 수 없기 때문에 끔찍한 일이 다시 발생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도 도입 이전의 성범죄자에 대해서도 전자발찌 착용을 확대하고, 신상공개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산돼 있는 정부의 성폭력범에 대한 관리 체계를 일원화하는 것도 시급해요. 그래서 성폭력범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통합·관리하고, 각 부처의 역할 분담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동 성폭력의 주 대상이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는 맞벌이 부부나 저소득층 자녀들입니다. 이 아이들에 대한 특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방과 후 어린이 돌봄 서비스와 가정 내 아이 돌보미 파견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약속드렸는데, 반드시 실천하겠습니다. Q ‘박근혜의 국민행복캠프’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박 후보님께서 생각하시는 행복 또한 남다를 듯합니다. A 저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거움을 느낄 때 행복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행복한 국민이 만드는 것이 국가경쟁력이죠.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어떻게 당하겠어요? 그 사람은 실력이 좋아지지 말라고 해도 좋아집니다. 그런 국민들이 만드는 가치 창출의 합이 GDP가 되어야 합니다. 금융, 부동산 등으로 거품을 만들고, 그것을 합해서 GDP라고 하니까 이 GDP의 크기가 국민 행복과 연결이 안 되는 것이죠. 지금은 창의성이 요구되는 시대인데, 우리 국민은 신명이 나지 않으면 잘 안 되는 국민이에요. 신명이 나고, 재미가 있을 때 창의성이 나오는데, 그게 우리 국민성과도 맞습니다. 국가는 그렇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죠. 그게 제일 중요한 할 일입니다. 쓸데없는 규제도 없어야 하고, 법도 공정하게 누구나 지켜야 하며, 한 번 결정한 것은 신뢰가 가도록 지켜야 하고요. 이 모든 것이 국민을 행복하게 하고, 국가경쟁력이 높아지게 하는 굉장히 중요한 인프라겠죠.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 이주석, 종합여성지 공동취재단>
- 대처 리더십과 엄마 리더십 맞대결! 박근혜 전 대표와 한명숙 전 총리
- 2007. 04. 17 화제
- 각계에서 ‘여풍당당’이 두드러지지만 올해 대권 경쟁에서도 여풍이 강하게 분다. 최근 미국의 「타임지」가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의 대결구도를 올해 세계 정치권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이슈로 선정할 만큼 주목받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해 열린우리당이 대권주자로 은근히 띄우는 한명숙 전 총리, 그리고 최근 대권 도전을 선언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물론 강금실 전 장관까지 거론되어 정계에서는 ‘언니들의 전쟁’이란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이 가운데 최고의 라이벌은 박근혜 전 대표와 한명숙 전 총리. 박근혜 대표는 최근 측근인 이혜훈 의원이 개최한 대처리즘 토론회에 참석하는 등 ‘철의 여인 대처’를 벤치마킹해 눈길을 끌고 있다. 또 총리에서 물러나 열린우리당에 복귀하자마자 열렬한 환영을 받은 한명숙 전 총리는 열린우리당 의원들로부터 ‘(분열된 가족을 아우르는) 통합과 소통의 엄마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라며 대권 선언 요구를 받기도 했다. 강력한 대처 리더십과 온화한 엄마 리더십을 내세우는 두 여성 정치인.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고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여성 대통령이 나올 수 있을까. 그리고 여성 유권자들은 여성 후보를 지지할까. 너무나 닮고 너무나 다른 두 사람 박근혜 대표와 한명숙 전 총리는 소속 정당은 물론 과거사(?)나 성향, 그리고 환경도 판이하게 다르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로 22세부터 돌아가신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 대표는 ‘수첩 공주’란 별명처럼 공주의 삶을 누렸다. 물론 부모님이 모두 흉탄에 돌아가시는 등 불행을 겪었으나 초등학교 때부터 청와대에서 생활한 그는 항상 주목받는 삶이었다. 반면 한명숙 전 총리는 이화여대 재학 시절부터 박정희 대통령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을 하며 투옥되기도 했다. 결혼하고도 남편이 13년간 감옥 생활을 해서 아들도 늦둥이를 낳았다. 여성계의 대모로 불리며 과거에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남성우월주의와 싸워 가족법 개정, 호주제 폐지 등에도 앞장섰다. 항상 숨어서 토론하고 투쟁하는 삶이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또 놀랄 만큼 비슷하다. ‘진흙탕의 개싸움’으로 표현될 만큼 살벌한 정치판에 몸담았으면서도 여성성을 잃지 않고 또 그 어떤 고난의 순간에도 침착한 태도를 보이며 항상 우아한 미소를 짓는다. 젊은 시절, 감옥에 들어가면서 마치 극장에 가듯 온화한 웃음을 지어 보이던 한명숙 전 총리의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고 지난해 테러를 당해 얼굴에 상처를 입고도 전혀 흥분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하도 악수를 많이 해 손목에 보호붕대를 하고도 늘 생글생글 웃는 박근혜 전 대표의 모습은 여성의 힘을 보여 줬다. 말 그대로 ‘외유내강’이란 말을 가장 온몸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이들이 두 여성 리더다. 그렇다면 이들이 정말 대한민국호를 책임질 수 있을까. 여성의 시대라는 21세기에 걸맞은 진정한 리더일까. 우선 이들이 주장하는 각자의 리더십을 알아보자. 지난 3월 12일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은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위기의 대한민국! 대처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의 주제는 ‘대처리즘’이지만 그러나 이날의 주인공은 박 전 대표였다. 토론회를 주관한 이혜훈 의원은 물론이고 이날 참석자들은 “박근혜의 정책과 대처리즘은 일맥상통한다”는 일명 ‘근혜이즘’ 전파에 목소리를 높였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은 “대처라는 위대한 리더십이 제2의 영국 번영을 가능하게 했듯이, 제2의 지도자 제2의 리더십을 모색하는 자리가 바로 이 자리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옳은 것은 끝까지 옳다고 말하고 어떤 위협이나 도전에도 굴하지 않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필요하다”며 “그런 사람이 누구이겠냐”고 반문하자 좌중에선 “박근혜요!”라는 답이 터졌다. 이혜훈 의원은 토론회를 주관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경제학을 전공한 적도 없고 CEO 실무경험도 없었던 대처가 영국기업의 CEO도 고치지 못했던 영국경제의 중병을 고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규명해보고 싶다. 연약하다고 인식되고 있는 여성이, 그것도 군대를 간 적도 없는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여성이 포클랜드 전쟁을 불과 3주 만에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지 규명하고 싶다.”대처수상과 선덕여왕의 리더십 겸비 박근혜 전 대표는 전부터 ‘한국의 대처가 되겠다’고 천명했다. 지난 1월 3일 새해 인사회에서 “영국의 대처 총리가 영국병을 치유해 새 도약을 했듯이 나도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중병을 고치겠다”며 “2004년 ‘탄핵 역풍’에서 당을 살린 그 각오로 위기의 나라를 구해내겠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도 다시 한번 대처 리더십을 강조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처 총리가 등장했던 영국의 상황과 비슷하다. 대처의 원칙은 작은 정부와 감세였다. 그리고 법치와 엄정한 공권력의 확립이었다. 대처리즘의 핵심은 바로 그것이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을 다시 살리려면 그런 리더십이 필요하다. 공공 부분을 과감하게 구조조정하고 작은 정부 큰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감세와 규제 철폐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법질서와 국가 기강을 무너뜨리는 집단 이기주의에 대해서 어떤 타협도 없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박근혜 대표를 영국의 수상 대처가 아니라 우리나라 여왕에 비교하는 이들도 있다. 역사학자 가운데 몇몇은 박 전 대표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여성의 신분으로 지존의 자리에 올라 ‘신뢰’와 ‘원칙’의 용인술을 구사한 인물로 신라시대 중기의 선덕여왕과 매우 흡사하다고 주장한다. 고전연구가 신동준씨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은 재위 16년 동안 안팎으로 커다란 위기에 처한 신라를 구해내 마침내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아놓았다는 점에서 학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신라의 전 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는 김춘추와 김유신 등이 모두 그녀의 치세하에서 입신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선덕여왕이 김춘추와 김유신을 중용한 기본철학이 바로 ‘신뢰’와 ‘원칙’ 이었다. 선덕여왕의 리더십을 두고 「삼국사기」는 ‘관인명민(寬仁明敏)’으로 규정해놓았다. 이는 너그럽고 인자하면서도 현명하다는 뜻이다. 선덕여왕의 ‘관인명민’한 리더십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소위 ‘지기삼사(知幾三事)’의 고사에 잘 나타나 있다. 이는 선덕여왕이 재위 당시 당나라에서 보낸 족자를 보고 이내 3가지 기미(機微)를 알아차린 것을 말한다. 모란꽃에 벌과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꽃에 향기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옥문지(玉門池)에 개구리가 울자 백제 군사가 여근곡(女根谷)에 쳐들어온 것을 알았고, 임종 전에 본인이 언제 죽을지를 미리 알고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당부한 것 등이 그것이다. 이는 물론 설화이기는 하나 그녀의 ‘관인명민’에 대해 당시 사람들이 크게 공감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박 전 대표 역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관인명민’하다는 칭송을 받고 있다. 원래 ‘관인명민’은 무사무욕(無私無欲)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사욕(私欲)이 앞서는 사람은 인색한 까닭에 결코 관인(寬仁)할 수 없다. ‘관인’하지 못한 사람은 작은 이익에 집착하는 까닭에 암우(暗愚)할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의 ‘무사무욕’한 행보는 그의 에세이집인 「결국 한 줌, 결국 한 줌」의 다음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세상은 결코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 나그네로 하여금 모든 것을 초연하게 바라보게 한다. 모든 만남은 이별로서 끝이 나고 모든 소유는 상실로서 끝이 난다. 이승은 영혼을 닦는 유일한 도장이라고나 할까….” 물론 대처 리더십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김상조 한성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처가 집권했던 당시 영국의 국민들과 달리 우리 국민들은 현실에 대한 불만과 변화 욕구가 끓어 넘치고 있다”며 “지금 우리에게는 대처 전 수상처럼 위에서 국민을 이끄는 지도자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끓어오르는 욕구를 조정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교수는 또 “정부와 관료가 정보를 독점했던 과거 박정희 시대처럼 지도자가 국민을 이끌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소통과 통합의 엄마 리더십 요즘 퇴임식은 유난히 쓸쓸하다. 조용히 치르거나 주인공도 소리없이 빨리 사라지는 게 예의다. 하지만 한명숙 전 총리의 퇴임식과 열린우리당의 복귀는 떠들썩한 금의환향 분위기였다. 지난 10개월 간 총리직을 수행하고 당에 돌아오는 한의원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당사 마당에 연단을 마련하고 그 주위에 꽃과 폭죽을 든 당직자들이 모여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의원을 기다렸다. 이들의 머리 위에는 ‘새로운 시작, 해피韓 당 복귀! 한명숙 총리님 사랑합니다’라는 당직자 일동 명의의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이날 당사는 축제 무드에 휩싸인 듯 보였다. 한 당직자는 혼잣말로 “전임 총리 때와 사뭇 다르다”고 중얼거렸다. 한 전 총리가 탄 차량이 당사에 들어서자마자 박수를 치며 환영했고 3선 중진인 이미경 의원은 “미국에는 힐러리, 프랑스에는 루아얄, 그리고 한국에는 한명숙의 시대가 열리기를 바란다”면서 “그동안 여성 후보는 박근혜 후보밖에 없었는데 우리 한명숙 후보는 어떤가”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영춘 최고위원도 “한총리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총리가 일을 열심히 하고 국민에게 위안과 희망이 되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며 “너무 겸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더 자신의 역할을 크게 설정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한 전 총리는 “앞으로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서) 깊게 열심히 고민하고 (주변에 있는 여러 사람과 함께) 협의하겠다”고 화답했다. 또 “정치인의 자리로 돌아가는 만큼 이제부터는 열심히 그런 행보에 대해 고민해봐야겠다”고 전하기도 했다.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 전 총리의 지지율은 매우 낮아 대략 1~3% 수준에 머물고 있음에도 당 일각에서는 한의원을 차기 대선전에 출전시키려 하고 있다. 그의 정치적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본 까닭이다. 한의원의 트레이드마크는 소통의 리더십, 그리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다. 그는 이것을 무기로 해 총리 시절 각종 국정현안을 원만히 풀어왔다는 평을 들었다. 당정, 당청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오기도 했다. 대립의 정치에 지친 국민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것. 그는 또 주어진 업무와 관련해 ‘일을 잘한다’는 평가도 얻고 있다. 작년 한의원이 총리로 발탁됐을 때 총리실 주변에는 “과연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의 소리가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이런 우려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런 한의원이 대선가도에 진입할 경우 범여권 내 대선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게 열린우리당의 판단이다. 당은 한의원의 등장으로 범여권의 대권 경쟁이 가속화되는 동시에, 이에 힘입어 한나라당에 크게 못 미치는 흥행성적이 올라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1일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한명숙 총리를 주목한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총리가 가진 화합과 통합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한총리는 현재의 대선 판에서 어떤 후보도 갖고 있지 않은 장점과 덕목을 갖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민의원은 “지금 여론조사를 보면 차기 대통령은 계층통합, 지역통합, 세대통합 등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굉장히 많다”며 “거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한명숙 총리를 국민들이 연상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당원들의 열렬한 환영에 고무되어 3월 11일엔 동교동 사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했다. 오전 11시에 시작된 면담은 당초 정오 전에 끝날 계획이었으나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김 전 대통령이 예정에 없던 오찬을 함께하자고 제안해서다. 한 전 총리는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범여권의 흩어진 힘을 어떻게 모을지에 관심이 있다”면서 “당분간 구상을 하면서 역할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박근혜 전 대표와 맞상대로서 한명숙 후보 띄우기에 여념이 없다. 의원들은 기자들과 만나서 “개혁과 통합의 이미지를 두루 갖춘 분으로 ‘킹 메이커’보다는 대권 후보로서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칭찬을 늘어놓고 한 전 총리의 측근은 “한 전 총리는 이미 대선 후보 경쟁에 뛰어들 마음의 준비를 끝낸 상태”라고 전하면서 “대권 캠프도 곧 조직하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형, 때로는 단호한 어머니상으로 접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들 여성 후보들이 과연 여성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현실은 핑크빛만이 아니다. 한국여성 유권자연맹이 지난 3월 14일 개최한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와 유권자들의 의식변화를 위한 대토론회’에서는 “여성 유권자라고 해서 여성 정치인을 뽑지도 않을뿐더러 미디어가 여성 정치인의 능력보다는 여성성을 부각시켜 여성 정치인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김형준 교수는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은 20세기적 발상”이라고 주장했고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도 “특히 박 전 대표의 경우 여성 정치인이 아니라 스타 정치인으로 신세대들은 생각하므로 여성의 틀에 묶이지 말고 참신하고 유능한 정치지도자의 이미지 구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물론 여성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하기도 전에 이들이 넘어야 할 산은 더욱더 크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경선은 물론 박정희 전대통령의 유신 망령을 극복해야 하고, 한명숙 전 총리는 산산조각 난 열린우리당이나 통합신당과의 조율, 그리고 콘텐츠나 개성이 없다는 약점을 극복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건국 사상 최초, 아니 단군 이래로 가장 많고 유능한 여성 후보들이 대권 도전에 뛰어든 것은 막강한 한국 여성들의 파워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유인경 기자 ■사진 / 민영주·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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