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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출신 허유정의 작심 발언 “병들지 않은 아이돌이 없다”[아이돌 그 후]
걸그룹 출신 허유정의 작심 발언 “병들지 않은 아이돌이 없다”[아이돌 그 후]
2023. 11. 22 06:58 화제
걸그룹 ‘단발머리’의 멤버 허유정은 중앙대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에서 콘텐츠 전공을 하는 동시에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걸그룹 단발머리 활동 시절(오른쪽) 그룹 크레용팝의 동생 그룹 ‘단발머리’ 멤버로 활동했던 허유정. 그는 YG 연습생으로 블랙핑크 멤버들과 합숙 생활을 해봤고 실제 걸그룹으로 데뷔도 해본 터라 누구보다 깊숙한 아이돌 실상을 알고 있다. 중앙대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에서 콘텐츠를 전공하고 있으며 <K팝 아이돌 연습생의 연습 환경 개선 방안 연구> 논문을 위해 300명의 아이돌과 연습생을 조사했다. ■ 아이돌 육성 시스템, 아이들을 병들게 한다 허유정은 연구를 위해 한 기획사 신인 개발팀에 들어가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연구하기도 했다. 그는 아이돌을 그만두었지만 누구보다 아이돌에 진심인 콘텐츠 전문가다. “우리나라 엔터 시스템은 갑질 시스템입니다. 아이돌은 어린 청소년기에 너무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어요. 기획사에 밉보이면 계약을 풀어주지 않으니 갑질이나 성추행 같은 부당한 취급을 당해도 쉽게 반박하지 못해요.” 그는 회사가 갑이고 아이돌은 전적으로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아이돌 계약은 노예 계약이나 다름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연습생 생활이 필수인 우리나라에서 생긴 어쩔 수 없는 계약이지만 아이돌 계약은 보통 7년이에요. 사실 아이돌 수명은 짧잖아요. 이 황금 같은 시기에 계약서 한 장으로 한 회사에 올인하며 메어있어야 해요. 부당한 대우를 참고 견뎌야 하죠.” 전시 기획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허유정. 아이돌은 무조건 말라야 하고 핸드폰이 없어야 하고 밤새도록 연습해야 성공한다. 인권을 담보로 한 성공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허유정은 한때 신인 개발팀에 자진 입사해 아이돌 육성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신인 개발팀은 무조건 아이돌에게 살 빼라고 압박을 하죠. 이미 마른 친구들한테 빼라고 하니 무리한 다이어트를 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렇다고 다이어트 식단을 짜주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굶겨요. 제가 인터뷰했던 아이돌 중에는 위염은 기본이고 원형 탈모,생리불순, 골다공증, 피부묘기증… 병이 없는 아이돌이 없었어요.” 치열하게 연습해야 BTS, 블랙핑크처럼 성공할 수 있다. 사실이다. 그러나 청소년기 아이들이 꿈을 향해 열심히 가겠다는 의지로 인해 인권 유린의 현장이 정당화될 수 없다. “보통 연습실은 지하에 있다 보니 성장기 아이들이 햇볕을 못 받아요. 뼈 나이 측정해보면 노인 수준이에요. 제가 신인 개발팀에 있을 때 아이들에게 밥 먹고 나면 햇볕 아래에서 산책 좀 하자고 늘 잔소리를 했지만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이상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요.” 그는 아이돌 그룹을 육성하면서 기본적인 생활과 체계적인 교육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회사는 아이돌을 키울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허유정은 전시 기획자로도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LG 사이언스 파크 컬처 위크 전시를 담당했다. 허유정 제공 ■ 다시 돌아가도 아이돌은 되지 않겠다 2014년 허유정은 걸그룹 단발머리로 데뷔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활동 8개월 만에 해체를 겪어야 했다. 앨범을 낼 수도 없고 또 계약으로 인해 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자, 그는 공부로 눈을 돌렸다. “남들보다 늦게 공부를 시작하다 보니 간절함이 남달랐던 것 같아요. 다행히 성적이 좋아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조기 졸업했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죠.” 대학원 학비 역시 학과 조교 업무를 보는 것으로 등록금을 충당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가수 태연의 3집 프로모션 전시를 공동 기획했다. 이를 계기로 ‘소우주 컴퍼니’라는 회사를 차려 대표 겸 디렉터로 야무지게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LG 사이언스 파크 컬처 위크 전시를 담당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면 아이돌을 하겠냐고 물었다. 그는 [아이돌 그 후] 인터뷰이 중 가장 단호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다시 돌아가면 안 해요. 저는 슈퍼스타의 그릇이 아니었나 봐요. 열심히 했기에 후회는 없고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허유정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건강한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연구원이 되고 싶다. 그는 아이돌에 대한 미련은 없으나 건강한 육성 시스템 만들기에는 미련이 아직 남아 보인다.
안철수 “일회용컵 규제 유예” 발언···서울환경연합 “비과학적 근거”
안철수 “일회용컵 규제 유예” 발언···서울환경연합 “비과학적 근거”
2022. 03. 29 17:42 화제
안철수 위원장의 ‘일회용컵 규제’ 유예 발언에 대해 서울환경연합은 ‘비과학적 근거’라고 반박했다.“안철수 위원장의 일회용컵 규제 유예 발언은 비과학적이다.” 사단법인 서울환경연합은 29일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겸 코로나비상대응특위 위원장의 알회용컵 규제 유예 발언에 대해 반박 논평을 냈다. 안철수 위원장은 28일 “코로나19 시국에 대처하는 정부 모습을 보면 안일함을 넘어 무책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때까지는 일회용 컵 규제를 유예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 2021년 전국 폐기물 배출량이 종이류는 25%, 플라스틱류는 19%, 발포수지류는 14%, 비닐류는 9% 증가했다. 따라서 일회용 컵 사용을 규제할 필요성이 부각되는 시점이다. 서울환경연합은 안 위원장이 규제 이유로 내세운 ‘코로나19 방역’은 일회용컵 규제와 실질적으로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코로나 시대에 다회용기 사용과 코로나 감염 위험은 전혀 관련이 없으며, 충분히 안전하다고 보는 것이 과학적인 접근이라는 설명이다. 2020년 6월 전 세계 공중보건 및 식품 안전 분야의 과학자, 의사 등 전문가 115명은 ‘코로나 시대의 다회용품 사용은 안전하다’는 취지의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성명서의 요지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물체 표면을 접촉하여 전파되기보다는 비말 흡입으로 확산되며, 물체 표면을 통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 가능성은 일회용품과 다회용품이 비슷하고, 다회용품은 쉽게 세척할 수 있어 안전하다는 것이다. 국내 일회용 컵은 회수나 재활용 비율이 턱없이 낮은 것도 사실이다. 프랜차이즈 매장에서는 매년 28억여 개의 일회용 컵이 사용되나 회수되는 비율은 5% 정도로 추정되며, 나머지 95%는 소각·매립되고 있다. 특히 플라스틱 컵은 토양 및 해양 오염은 물론 생산과 폐기 과정에서 막대한 탄소를 배출한다. 서울환경연합은 “기후위기 시대에 코로나 팬데믹 2년을 보내고서야 일회용품 문제 해결을 위한 규제를 시도한 것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앞으로 쓰레기 대란을 피하려면 지금보다 일회용품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며 “안 위원장이 중요한 환경정책을 비과학적인 근거로 하루아침에 역주행 하려들기 전에, 계속 늘어갈 폐기물에 대한 부담을 어찌 감당할지 곰곰이 따져보길 바란다”고 우려를 표했다.
‘청문회 헤로인’ 권은희 수사과장의 소신 발언
‘청문회 헤로인’ 권은희 수사과장의 소신 발언
2013. 08. 27 17:53 화제
지난 8월 19일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국정조사 청문회가 열리는 동안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를 평정하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이가 있다. 바로 댓글 사건 초동 수사를 담당했던 권은희(39) 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다. 그는 국회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해 새누리당 의원들의 거센 공세에 맞서 당당하게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사건 당시 서울경찰청으로부터 정치 개입 의혹 댓글을 찾기 위한 키워드를 줄여달라는 강압적인 요청을 받았고, 윗선이 흔들렸기 때문에 수사에만 집중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는 것. 또한 그는 지난 1차 청문회에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권 수사과장에게 전화를 건 것은 격려 차원이었다”라는 발언에 대해 “거짓말이다”라고 밝히며 “경찰의 중간 수사 발표가 대선에 영향을 끼치기 위한 부정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녀의 소신 있는 모습에 시민들과 각계 전문가들은 물론 일선 경찰들의 응원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 이날 송파경찰서 홈페이지는 수백 개의 응원 글로 접속 장애가 발생했고 경찰서로 꽃바구니 등 선물을 보낸 시민들도 있었다. 사법고시 43회 합격자인 권 수사과장은 지난 2005년 여성 최초로 경찰에 경정으로 특별채용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사법고시 합격자로 경찰이 된 것은 고시 준비 시절 경찰과의 일화가 계기가 됐다고. 그녀는 8년 전 한 인터뷰를 통해 “사법시험 2차를 준비하던 2001년 휴대전화가 고장이 나 나흘간 집과 연락이 되지 않았는데, 광주에 사시는 아버님이 걱정이 돼 저를 찾아 신림동 고시촌을 헤매다가 경찰관과 함께 원룸을 방문해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당시 아버님을 도와준 경찰에 큰 감동을 받은 것이 경찰 입문의 계기가 됐습니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한편 이날 청문회에서는 국회의원들의 황당 질문이 속출했다.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은 권 수사과장에게 “지금도 마음속에 이 나라의 대통령이 문재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죠?”라고 물어 빈축을 샀다. 그녀는 “지금 김태흠 의원의 말씀은 헌법이 금지하는 십자가 밟기 질문이다”라고 응수했다. ‘십자가 밟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가 기독교 신자들이 신앙을 포기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십자가 밟기를 강요한 일을 의미한다. 우리 헌법 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해 충성 선서나 십자가 밟기 등을 금지하고 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독도는 한국에!’ 발언에 이어 ‘반(反)원전 선언’으로 방송 퇴출당한 日배우 야마모토 타로
2012. 03. 07 18:40 화제
1991년 데뷔한 야마모토 타로는 50여 편의 드라마와 4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일본 영화 ‘배틀 로얄’, ‘GO’뿐만 아니라 장동건과의 동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마이웨이’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배우다. 출연 작품 수가 말해주듯 야마모토의 배우 인생은 탄탄대로였고, 방송·영화계에서는 ‘약방의 감초’로 통했다. 탄탄한 연기력과 호감 가는 외모, 강단과 카리스마를 가진 그는 CF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까지 섭렵하며 TV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야마모토가 하루아침에 방송에서 사라졌다. 그는 왜 자취를 감추었을까. 팬티 한 장으로 전국을 평정하다 일요일 저녁 8시, 온 가족의 시선이 TV에 머무르는 건 한국과 일본의 가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야마모토 타로(山本太郞, 38)는 지난 1991년 오디션 프로그램 ‘고교생 댄스대회’로 데뷔했다. 몸에 딱 붙는 삼각 수영 팬티에 노란색 수영 모자를 쓴 모습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방송에서는 주다스 프리스트의 노래 ‘페인킬러’가 흐르는 가운데 떡 벌어진 어깨를 흔들며 연신 보디빌딩 포즈를 취하는 야마모토의 모습이 전해졌고 안방극장은 바로 웃음바다가 되었다. “저보다 춤도 잘 못 추고 재미도 없는 고등학생들이 TV에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도 우리 반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난리가 났죠. 제가 나가겠다고 하니까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서 좀 섭섭했어요. 제가 더 재미있다는 자부심도 있었고요. 그래서 오디션에 응모했죠.” 생애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지만 그는 주눅 들지 않고 맘껏 청춘을 발산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야마모토는 스타가 되어 있었다. 단 한 번의 방송 출연이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이다. 그건 ‘스타’의 시작이었지만 ‘일상의 붕괴’이기도 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저속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했다”라는 항의 전화가 빗발치자 결국 교장실에 불려가 “방송이냐, 학생이냐. 양자택일 하라”라는 협박과 회유를 받았다. 일부 학생들로부터는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방송 데뷔 후부터 그의 인생은 터부와의 충돌? 아니, 공존이었던 셈이다 그의 ‘팬티 활약’은 예능 다큐로 이어졌다. 그는 곧바로 시청률 20%를 자랑하던 ‘세계 우루룽(글썽글썽) 체재기’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야마모토는 중요 부위만 살짝 가리고 사는 뉴기니의 다니족 마을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다니족 족장에게 “공부시켜주십시오”라며 지어 보이는 시원스러운 웃음, “다시 태어나면 다니족으로 태어나겠습니다”라는 서비스 정신까지…. 이 방송을 통해 그는 예의 바르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유쾌한 청년이란 이미지를 얻었다. 뉴기니 원주민과 온몸으로 대화하는 친화력 또한 그의 치명적인 매력으로 자리 잡았다. 코믹 몸짱 고교생에서 배우로 거듭나기까지 “처음 연기할 때는 대본도 외우지 않고 현장에 갔어요. 그 현장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온몸으로 느꼈죠. 대본도 외우지 않은 저 때문에 감독, 카메라맨, 다른 배우들, 그 밖의 모든 스태프가 저 하나만을 바라보며 기다려야 한다는 걸요.” 철부지 고교생은 이후 몇 편의 드라마 출연을 통해 연기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이즈츠 카즈유키(井筒和幸, 대표작 ‘박치기’) 감독을 통해 배우로서의 깨달음을 얻었다. 1 야마모토 타로를 예의 바르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유쾌한 청년의 이미지로 각인시킨 ‘세계 우루룽 체재기’의 한 장면. 2 그는 반원전운동가로서 자신의 소신을 피력한 책 「독무대-탈원전 싸우는 배우의 진실」도 펴냈다. “2003년 ‘겟업(Get up)’ 촬영 때였어요. NG를 많이 내긴 했지만 유독 저에게만 칭찬을 하지 않는 거예요. 다른 배우들의 좋은 점은 말해주면서 말이에요. 저한테는 ‘타로군! 음, 안 되겠어. 문제가 많아’라고 하셨어요. 마지막 대사 하나만 남았는데도 그런 소리를 들은 거죠. 눈앞이 캄캄하고 마음이 초조했어요.” “배 타러 갑니다. 참치 잡으러요.” 이것이 그의 마지막 대사였다. 그렇게 안 되던 마지막 대사가 감독의 채근 덕분에 좋게 마무리됐다. 그리고 야마모토는 2003년 블루리본(1950년 창설된 일본 영화상으로 각 신문사 영화 담당 기자들이 뽑는다)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감독님이 저를 긴장시키기 위해서 술수를 쓰신 거였어요. 덕분에 연기 공부를 톡톡히 했죠.” 그 후 그는 ‘배틀 로얄’의 후카사쿠 킨지(深作欣二, 대표작 ‘카마타행진곡’) 감독을 만나 액션 영화의 표현력을 배웠다. 표정부터 손짓까지 하나하나 천천히 가르쳐주는 감독이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야마모토에게 후카사쿠 감독은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작품을 통해 만난 두 사람은 어느덧 야마모토 집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목욕도 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이즈츠 감독과 후카사쿠 감독 밑에서 연기하는 재미에 푹 빠진 그는 ‘역도산’(2006), ‘오로치’(2008), ‘카이지’(2009) 등에서 맛깔 나는 조연 연기를 펼쳤다. 그는 주연에 연연하지 않았다. 작품을 살리는 데 필요한 역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은 결과 약방의 감초 같은 배우로 우뚝 섰다. 3·11 이후, 반(反)원전 선언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역사상 최대 지진인 강도 9의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이튿날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헬기로 바닷물을 투하하는 영상이 공개되었다. 멜트다운(원자로의 냉각장치가 정지되어 우라늄이 용해되며 원자로의 노심부가 녹아버리는 것)이란 단어가 신문 지면을 메웠다. “설마 했어요. 안전하다고 믿었거든요. 적어도 안전하다고 배웠거든요.” 일본인의 심정을, 나아가 원자력 발전의 혜택을 누리는 국가에 살고 있는 국민의 심정을 대신하는 말이다. “근데, 그게 아니었어요. 언제 또 지진이 발생할지 몰라요. 그래서 저는 내일도 모레도 살아남기 위해 반원전 선언을 했어요.” 원전사고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배우 중 가장 먼저 반(反)원전을 피력한 인물이 야마모토다. “배우가 아니었다면 원전에 반대한다고 말하기가 더 쉬웠겠죠. 그런데 제가 몸담고 있는 방송 세계는 전력회사가 최대 스폰서예요. 전력회사, 건설회사, 전기업계, 은행, 방송국 등 거대한 이윤 관계가 성립된 세계에서 원전에 반대한다는 사실은 방송계 전체를 적으로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원전 반대를 선언할 때 이미 그는 방송계 퇴출을 예상했다. 실제로 반원전 선언 후 드라마 출연이 취소되었다. 영화나 연극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지만 매일이다시피 요청이 오던 TV 출연 요청은 뚝 끊겼다. 수입은 10분의 1로 줄었고, 그런 상태로는 연애도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원전에 반대해서 배역이 취소되거나 광고에서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스폰서에게 불이익을 가져올 발언을 해서 일이 없어지는 건 당연한 거예요.” 배우 생명보다 중요한 건강과 목숨 그는 배우 생명에 지장이 될 줄 알면서도 왜 원전에 반대한 것일까? “생명과 관련된 문제잖아요. 누군가 소리를 내서 말해야 합니다. 전 좋은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그런데 그 좋은 배우란 게 하루아침에 될 수는 없어요. 저는 60, 70세까지 살아서 분위기 좋고 연기도 완벽하게 소화하는 배우가 될 거예요. 하지만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이 제 꿈을 방해해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꿈을요.” 야마모토에 따르면 배우의 생명 유지를 위한 전제는 생물학적 생명이다. 때문에 그는 “원전의 위험에서 눈을 떼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반원전을 선언한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비난도 끊이질 않는다. 그중에서도 ‘반일극좌테러리스트’는 야마모토가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단어보다 과격한 말이었다. “매국노’, ‘(너의) 조국으로 돌아가라”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그 어떤 말을 들어도 좋으니 제발 원자력 발전만큼은 포기해달라는 게 그의 진심 어린 충고다. 현재 후쿠시마는 원전으로부터 반경 20km권 내는 출입 금지 상태다. 원전 작업원이나 정부 요인 외에는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 언제 출입이 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100년 후? 200년 후? 아니 1,000년 후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20km권 밖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도 다니고 어른들은 회사도 다닌다. 정부는 실내에서 생활하면 피폭량을 줄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방사능 관련 이야기를 간단히 해보자. 모든 사람들은 1년 평균 2.4밀리시버트(m㏜)의 자연 방사능에 노출된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때는 연간 5밀리시버트에 노출되는 지역의 주민을 모두 강제 이주시켰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강제 이주 기준이 체르노빌의 네 배나 되는 20밀리시버트다. 즉 20밀리시버트에 노출된 지역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얘기다. “후쿠시마에 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방사능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니까요. 돈 많은 사람들이야 이사를 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아요. 방사능을 실감하지 못하고 거기서 먹고 자고 일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독도는 한국에! 열정으로 따지면 한국 것 야마모토와 같은 마음으로 반원전운동을 펼치는 이들이 이어지고 있다. 야마모토 타로를 ‘독도의 한국 영유권 주장 배우’로 아는 사람도 적지 않다. 2008년 “독도는 한국에 주는 게 좋다”라는 그의 발언은 일본에서 적잖은 파문을 낳았다. 워낙 재일동포 역을 여러 번 했던 그였기에 독도의 한국 영유권 주장 이후에 그는 ‘자이니치(재일동포)’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일본 정부는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질적으론 한국이 기지를 세우고 사람이 살고 있어요. 또 한국 사람들은 독도를 자기네 땅으로 알고 전 세계에 그렇게 주장하고 교육도 하고 있지요. 반면 일본은 독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고 독도에 대해 그렇게 강한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아요. 열정이랄까, 그런 감정 면에서 보면 한국에 뒤지죠.” 지난해 말 개봉한 우리나라 영화 ‘마이웨이’에서도 야마모토를 만날 수 있었다. 강제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장동건, 오다기리 조가 출연한 대작에서 그는 한국인을 차별하는 악질 일본군 노다 역을 맡았다. 그와 관련해 “한국에 가서 돌 맞는 거 아니죠?” 하며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보인다. “한국이 저한테 맞는 것 같아요. 따뜻하고 좋아요. 김치도 안 질리고요. 영화 촬영할 때는 의견이 맞지 않아 싸우고 난리도 아닌데 같이 밥 먹고 나면 금세 사이가 좋아져요. 가슴에 담아두는 일도 없고요. 그래서 좋아요.” 영화 ‘마이웨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오다기리 조의 사인사건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오다기리 조가 부산의 한 음식점에 들어가서 사인 요청을 받고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일본의 여가수 코다쿠미의 이름을 적은 것. 이것이 알려진 후 그는 공식석상에서 “악의는 없었다”라며 죄송하다는 뜻을 전했다. “오다기리씨가 부끄럼이 많은 성격이거든요. 수줍음이 많아서 사인을 요청받고 자신의 이름을 쓰기가 민망해서 그랬을 거예요. 저도 예전에 ‘마이클 잭슨’이라고 사인한 적이 있어요. 그냥 자기 이름 석 자를 멋들어지게 쓰는 게 좀 쑥스러울 때가 있거든요. 오다기리씨도 비슷한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심려를 끼친 건 분명 잘못한 일이라며 실수한 친구를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달라고 한다. 이참에 장동건 얘기도 좀 들어볼까? “장동건씨는 완벽한 스타죠. 스타 중에 스타예요. 영화 촬영 내내 혹독한 추위와 함께했어요. 주조연급 배우들은 그나마 난로 옆에서 몸을 녹일 수 있었지만 엑스트라에겐 그럴 만한 장소가 없었어요. 그때 장동건씨가 나서서 같은 배우니까 동등하게 대해줘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 모습을 보니까 반하게 되더라고요.” 야마모토의 차기작은 동성애자의 일상을 다룬 영화 ‘에덴(Eden)’이다. 그는 주연인 신주쿠 게이 클럽의 점장 역을 맡았다. “성은 네 가지가 아닐까요? 여자, 남자, 여자인데 마음은 남자, 남자인데 마음은 여자 이렇게 네 가지요. 남녀만으론 나눌 수 없어요. 이 두 가지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소수자들의 다양성이 인정받는 사회가 살기 좋은 세상이지요. 편견은 마음속에 있어요. 남에 대한 편견이 자기 자신까지 구속하죠. 다양성을 인정받다 보면 자기 자신도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돼요. 좀 더 관대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흙냄새, 땀냄새 나는 배우로 평생 연기하고파 반원전 선언 후, 수입은 10분의 1로 줄었지만 일은 20배로 늘었다. 전국 각지의 반원전 시위와 집회를 찾아가 의사 표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엔 「독무대-탈원전 싸우는 배우의 진실」이란 책도 펴냈다. 배우로서, 반원전운동가로서 자신의 소신을 피력한 책이다. 그는 “안녕하세요? 저는 야마모토입니다”라고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일본에서 일어난 원전사고는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원전은 우라늄 발굴부터 폐쇄까지 방사능의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한국의 높은 기술력을 살려서 지속 가능한 다른 에너지를 찾아주세요.” 반원전 선언 후 정치권의 유혹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배우에 대한 애착이 더 크다. “흙냄새 나는 인물에 애착을 느껴요. 평범한 역은 그 역이 잘 어울리는 다른 배우가 하면 돼요. 전 흙냄새, 땀냄새 풍기는 캐릭터를 앞으로도 연기하고 싶어요. 반원전운동을 통해 만난 사람들, 거기서 배운 것도 언젠가는 연기를 통해 승화시켜야죠.” 그는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 잭 니콜슨을 좋아한다. ‘배틀 로얄’의 돌아온 승자, 한일 합작 영화 ‘밤을 걸고’의 목숨 건 고물 절도단 아파치족 재일동포 청년, ‘레인 오브 라이트(Rain of Light, 히라키노아메)’의 잔혹한 혁명가 등 굵직한 배역을 소화해온 배우 야마모토 타로. 반원전운동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 그가 머지않아 잭 니콜슨 못지않은 신들린 연기를 보여주리라 기대한다. <■글 / 김민정(「레이디경향」 일본 통신원) ■사진 / 최이삭(프리랜서)>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첫 기소 사례 만든 보노짓 후세인 교수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첫 기소 사례 만든 보노짓 후세인 교수
2009. 10. 14 16:48 화제
ㆍ잠들어 있던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에 경종을 울리다 여름이 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가을바람이 열기로 부풀었던 여름의 기억들을 하나 둘 지워나간다. 모두 부지런히 새 계절을 맞는 10월, 인도 출신 보노짓 후세인(28)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지난여름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잊지 못한다. 아마 그의 인생에서 가장 모욕적이었던 순간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지난여름, 그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1. 7월 10일 밤 9시, 부천으로 가는 52번 버스 안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보노짓 후세인 교수(28)가 경기도 부천에서 서울의 구로역 근처로 이사를하던 날이었다. 이삿짐을 옮겨주러 찾아온 한국인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탔다. 친구와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아레나(ARENA: 새로운 대안을 위한 아시아 네트워크)’의 회의 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뒤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워! 더러운 XX야”. 뒤를 돌아본 그에게 한 남자가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검은 양복을 갖춰 입은, 회사원으로 보이는 3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이 개XX야, 냄새 나. 너, 어디서 왔어?”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그이지만 양복을 입은 그 사내가 자신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놀란 표정의 후세인 교수를 보고 그 사내가 영어로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묻더니 연신 “You Arab! Arab!”을 반복했다. 함께 있던 친구가 사내에게 항의하자 이번에는 욕설이 친구에게로 향했다. “조선X, 아랍 놈이랑 같이 있으니까 좋냐?” 참다못한 친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내의 양복 깃을 잡고 버스 기사에게 경찰서에 데려다달라고 요청했다. 실랑이가 벌어지던 10여 분 동안 버스 안에 있던 사람 중 누구도 그 상황을 말리려 하지 않았다. 앞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40대 여성 승객 한 명만이 사내를 말리고 증인이 되어주겠다며 경찰서에 따라나섰다. #2. 30분 후 부천 경찰서, 계남지구대 버스에서 내려 경찰서까지 가는 동안에도 사내와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겨우 도착한 경찰서에서 경찰들은 사내의 말을 먼저 들었다. 몇 분 후 경찰서에 도착한 다른 경찰들에게 맨 처음 사건을 들은 경찰이 사건 경위를 전달했다. 사내가 했던 말이 주를 이뤘다. 세 사람은 다시 경찰차를 타고 부천 중부경찰서 관할인 계남지구대로 향했다. 지구대에서 세 사람의 신분증 검사가 이루어졌다. 후세인 교수는 법무부가 발급한 외국인등록증과 성공회대에서 발급한 연구교수 신분증을 보여줬다. 신분증을 본 경찰 한 명이 “네가 교수야?”라며 다시 신분증을 가지고 어디론가 갔다가 1시간 만에 돌아왔다. 경찰은 1982년생인 그가 교수라는 사실을 좀처럼 믿지 않는 듯했다. 지구대에서 경찰은 사내와 후세인 교수의 친구에게는 존댓말을 썼지만 후세인 교수에게는 반말을 했다. 합의를 권고한 경찰에게 후세인 교수와 친구는 합의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했다. 지구대에서 진술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에도 사내는 두 사람을 쫓아다니며 괴롭혔지만 경찰은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밤 11시가 넘어서 부천 중부경찰서로 돌아온 세 사람은 다시 조사를 받았다. 날이 지나 새벽 2가 넘어서야 후세인 교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내가 먼저 조사를 받고 경찰서를 떠난 후였다. #3. 8월 중순, 인천지검 부천지청 형사2부 조사실 명백한 모욕행위라고 판단한 후세인 교수와 친구는 함께 사내를 모욕혐의로 고소했다. 사내도 맞고소를 했지만 상대는 후세인 교수뿐이었다. 사건이 있은 지 한 달 후 두 사람은 사건을 맡은 담당검사 앞에서 다시 만났다. 한 달 전 그에게 욕을 퍼붓던 사내는 자신의 실수였다며 매우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그에게 사과했다. 후세인 교수 역시 사내를 처벌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고소를 취하하지는 않았다. 결국 8월 말 부천지청은 사내를 모욕혐의로 약식기소했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기소 사례로 만든 첫 번째 사건’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이어졌다. 인종주의, 이제 다 함께 이야기해야 할 때 “왜 고소를 취하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그는 “그러면 아무 기록도 남지 않을 테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인종차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라고 답했다. 인도 델리대학교에서 현대사를 공부하고 2007년, 성공회대학교가 마련한 ‘아시아 시민사회 지도자 교육지원 사업’으로 대학원 프로그램에 초청받아 한국 생활을 시작한 지 2년, 그동안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은 피부로 느껴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 사건은 이제껏 겪어온 여러 사건에 비해 훨씬 심각했다. “저뿐만 아니라 함께 있던 친구도 여성으로서 심한 모욕을 당한 사건이었어요.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과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 친구가 욕설을 들어야 했던 건 참을 수 없었죠. 아마 제가 남자친구와 함께 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건 분명히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성차별적인 사건이에요.” 그는 버스 안에서의 사건뿐 아니라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더욱 큰 실망감을 느껴야 했다. 법무부와 대학교에서 보장하는 신분증을 제시했음에도 경찰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불법 체류자’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외국인, 그 중에서도 유색인을 대하는 그들의 기본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 “한국말은 잘 모르지만 존댓말과 반말은 구분할 줄 알아요. 그 사내와 제 친구에겐 존댓말을 하던 경찰이 제게는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더라고요. 물론 그분들이 저보다는 어른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존댓말을 하고 저에게만 반말을 했다는 건 명백한 차별적 대우였어요.”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기소 사례를 만든 첫 번째 사건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지만 사실상 우리나라에는 아직 인종차별을 규제하는 법이 없다. 검찰에서도 이번 사건을 두고 인종차별적 발언 여부와 관계 없이 모욕 혐의로 기소한 것이라고 확대해석을 피하고 있는 중이다. 후세인 교수 역시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는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인종차별을 예방하고 규제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인 120만 명 시대, 외국인 이주민들과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외국인, 그 중 특정 지역민을 향한 한국인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길을 다니다 보면 특히 동남아시아인들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차별을 느껴요. 저를 그렇게 보는 사람들도 많고요. ‘동남아시아인=공장 노동자’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있죠. 제가 동남아시아인처럼 보인다는 게 기분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인들이건, 공장 노동자이건 똑같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한국에 인종주의가 만연해 있음에도 문제는 아무도 그것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얘기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에요. 한국엔 120만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고 또 외국인 가족을 가진 사람들,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해요. 아무런 노력 없이 인종주의가 해소되지는 않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한국의 현실을 인정하고 다 함께 얘기해보자는 의미에서 생각해주셨으면 해요.” 미국,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대한 교육도 필요 후세인 교수가 처음 한국에서 공부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한국은 따뜻하고 친절한 나라였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모두 그와 친해지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오가며 만나는 동네 아이들도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있었음을 알게 된 건 1년 후 대학원 프로그램을 마치고 리서치를 위해 활동 반경을 넓히면서부터다. “학교 앞 온수역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제가 자리에 앉자마자 옆에 앉아 있던 분이 일어나시더군요.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나 보다 했는데 그분은 종로까지 서서 가셨어요. 만원 지하철 안에서도 제 옆자리는 항상 비어 있어요. 왜 그런가 궁금해서 한번은 한국 친구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어요. 그 친구가 말하기를 ‘동남아인에게선 특이한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냄새는 생리적인 것인 동시에 사회적인 문제예요. 누구나 운동을 하거나 일을 하고 땀을 흘리면 냄새가 날 수 있어요. 외국인들은 모두 냄새가 난다는 건 그야말로 편견이죠.” 직접적인 인종차별적 시선과 모욕을 느끼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길을 가다 보면 “개XX야, 저리 가”라는 욕설이 들려온다. 이런 인종차별을 당하는 경우는 딱 두 가지다. 혼자일 때, 그리고 한국 사람과 있되 그 사람이 여자일 때다. 여전히 많은 한국 사람이 인종차별뿐 아니라 성차별에 얽매여 있다는 방증이다. “이번 사건이 보도되면서 많은 한국 분에게서 응원과 격려의 메일을 받았어요. 힘내라고 위로해주시는 분들도 많았고, 미안하다며 대신 사과해주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한국 사람들의 그런 따뜻한 마음을 알기에 현실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인터넷에 뜬 제 기사에 달린 악성 댓글을 보고 어떤 분이 ‘온라인에서 악성 댓글을 쓰는 사람은 대부분 초등학생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메일을 보내셨어요. 그 아이들이 크면 어른이 될 텐데, 그렇다면 더 큰일이죠.” 인종주의는 태생적인 것이 아니다. 학습하고 사회화되며 습득되는 것이다. 무조건 ‘한국이 최고다’라고 가르치는 건 이러한 인종주의의 씨앗을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외국인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배워요. 우선은 부모님들이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인식하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부모라면 아이에게 피부색에 상관없이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도 한국 사람과 동등하다는 생각을 심어주겠어요.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는데 한국인이 최고임을 강조하는 교육 시스템은 자칫 한국 사람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은 열등하다는 의식을 심어줄 수 있죠. 미국이나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다른 나라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교육도 좀 더 확대시켰으면 해요. 무지는 두려움을 키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인종주의에 갇히지 않도록 인종과 인권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해요.” 후세인 교수에게 “이번 사건으로 한국이 싫어지지 않았느냐”고 묻자 “더 나쁜 감정을 가지게 된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한국 음식과 계절을 사랑하는 이 인도인 교수는 앞으로 자신에게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한국에 머물며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고 한다. 한순간에 인종주의라는 거대한 인식을 없애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의 작음 외침이 서서히, 조금씩 변화를 일으켜 그가 오랫동안 한국에 머물 수 있길 바란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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