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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글라데시에서의 5박 6일, 나눔의 기록 정영숙
- 2008. 05. 14 연예
- 탤런트 정영숙은 올해로 연기 생활 40년을 맞았다. 데뷔 초, 연기에 소질이 없었던 정영숙은 지금까지 연기자로 살 수 있었던 것에 늘 감사한다. 그리고 그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한다. 얼마 전 다녀온 방글라데시 봉사활동도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생의 한순간’으로 기억된다.월드비전과 맺은 소중한 인연 지난 3월 31일, 정영숙(61)은 방글라데시를 방문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www.worldvision.or.kr)의 친선대사 자격으로 5박 6일 동안 봉사활동을 다녀온 것. 영화 촬영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짬을 낼 정도로 그는 봉사활동에 열성이다. “월드비전이 참 귀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동참할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함께해요. 지구 상에는 어려운 곳이 너무 많아요. 그런 곳을 한번 방문하면 우리가 얼마나 풍요롭게 살고 있는지 알게 되죠.” 정영숙과 월드비전의 인연은 1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989년 그는 월드비전의 후원회 위원으로 위촉됐다. 2년 후 월드비전 친선대사가 된 그는 김혜자, 박상원, 이영애, 한혜진 등 여러 월드비전 친선대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봉사활동에 동참한 연예인이기도 하다. “한번은 월드비전을 통해 아프리카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도저히 촬영 스케줄을 뺄 수가 없었어요. 때마침 (김)혜자 언니가 딸하고 같이 유럽 여행을 가려고 하다 계획을 수정해 에티오피아를 다녀왔어요. 에피오피아에 다녀온 뒤 혜자 언니가 충격을 많이 받았고, 봉사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고 해요. 나도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이 말라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뒤로 봉사를 더 열심히 하게 됐고요.” 소말리아, 모잠비크, 짐바브웨, 미얀마, 에티오피아, 인도…. 지금까지 그가 직접 방문해 나눔의 손길을 내민 곳들이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후에는 현지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지난 2003년에는 이라크로 의료봉사를 다녀왔고, 북한에도 갔다 왔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갈 때는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어요. 특히 아들이 무척이나 걱정을 하면서 가지 말라고 만류하더라고요. 북한에 가려고 할 적에는 어머니가 엄청 반대하셨어요. 어머니가 이북 출신이라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네가 북한 사람들을 잘 몰라서 그렇다’며 ‘북한 가면 인연을 끊겠다’고까지 하셨어요.” 이젠 가족 모두가 그에게 적응이 된 상태라며 웃었다. 으레 봉사를 가려니 하고 생각한다고. 아마 가족들이 포기했다고 하는 편이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방글라데시에서 꽃피운 희망 방글라데시 푸바돌라 지역은 월드비전한국이 2년 전부터 지원하고 있는 곳이다. 월드비전은 이곳에서 재봉 기술을 가르치고, 여성들이 글을 읽고 간단한 셈을 할 수 있게 도와주며, 모자보건 교육에도 적극적이다. 정영숙은 방글라데시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직접 가보니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방글라데시에는 곳곳에 웅덩이가 있어요. 지대가 낮아서 조금만 땅을 파도 물이 고이는 거예요. 그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빨래나 목욕할 때도 써요. 월드비전 사무실에서 커피를 끓이는데 보니까 물이 빨갛고 찌꺼기가 있더라고요. ‘이게 그 웅덩이 물이구나’ 생각하니까 마시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들을 돕기 위해 갔는데 그 물을 못 먹는다는 게 말이 되나요. 그 순간 내가 얼마나 간사한지 알게 됐고, ‘아직 멀었다’는 생각에 깊이 반성했어요.” 방글라데시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다. 전쟁을 치렀고 농업 중심 국가라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무리 어려워도 그들처럼 맨발로 지내진 않았고, 집 안에 가구 하나 정도는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현재 방글라데시 푸바돌라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신발도 없고 집에 가구 한 점조차 없는 집이 대부분이다. 그는 그렇게 극한 상황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목숨이 참 모진 것임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도 예전에 문맹이 참 많았잖아요. 방글라데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예요. 특히 여자들이 배운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하죠. 월드비전은 그곳에서 재봉 기술도 가르치고 미용 기술도 가르쳐요. 그곳 아이들의 영양 상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안 좋아요. 그걸 극복하게 하는 방법으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모임을 만들었어요. 그 모임 회원들에게 집에서 가져온 재료로 영양죽 만드는 법을 가르쳐요. 단순히 무언가를 주기보다는 그렇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거예요.” 정영숙은 방글라데시 여성들에게 배움의 힘을 강조했다. ‘나는 못 먹어도 자식은 가르쳐야 한다’고 외치던 우리네 어머니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했다. 그의 말을 들은 방글라데시 여성들의 입가에 살포시 미소가 자리했다. 정영숙은 그들에게도 ‘희망’이 생겼음을 느꼈다.나눌수록 커지는 나눔의 법칙 정영숙은 이번 방글라데시 봉사 기간 동안 총 8명의 결연아동을 방문했다. 결연 아동의 집을 직접 방문해 결연 아동과 그의 가족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아이에게 선물도 전달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결연을 맺은 아동도 만났다. 이번 방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다. 그와 결연을 맺은 아동은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4시간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그가 봉사활동을 한 푸바돌라와는 정반대 지역이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 아이와 만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이와 만나는 걸 포기하고 있었는데, 극적으로 수도 다카에서 만났지 뭐예요. 직접 보니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이런저런 선물을 챙겨주고, 아이 언니가 재봉 기술을 배웠다고 해서 재봉틀도 사줬어요. 원래는 수도 다카까지 와준 게 너무 고마워서 그 경비를 주고 싶었는데 돈을 주는 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재봉틀을 사줬어요. 그곳에서는 1백 달러만 있으면 재봉틀을 살 수 있어요. 우리에게는 적은 돈일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 재봉틀은 그 집의 생계수단이 될 테니까요.” 한두 번 혹은 아주 가끔 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10년 넘게 꾸준히 봉사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정영숙이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그가 이렇게 봉사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나도 살면서 어려운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이렇게 잘 지내고 있으니 감사할 뿐이죠. 내가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은 나눔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는 귀한 일을 하는 월드비전의 나눔에 동참하게 된 것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사람이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나눔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다른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됐어요. 흔히들 도움을 주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도움을 준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이 다시 돌아오거든요. 그게 바로 나눔의 법칙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나누면 나눌수록 세상은 더 살기 좋아진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데뷔 40년 된 연기자의 소박한 바람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 준혁(김명민 분)의 어머니로 등장했던 정영숙은 그 뒤로 드라마시티에 출연했다. “드라마시티 같은 경우는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시간이 없으면 못하는 거예요. 마침 쉬고 있었기에 좋은 작품을 세 편이나 할 수 있었어요. 드라마시티는 한 편에 기승전결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에 연기자에게 아주 큰 매력이 있죠. 그런데 없어져서 아쉬운 마음이 커요.” 그가 현재 촬영 중인 영화는 오는 6월 개봉 예정인 고은아, 채민서 주연의 공포 영화 ‘외톨이’다. ‘외톨이’는 천사같이 밝고 사랑스러웠던 수나가 가장 친한 친구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이상 증세를 보이게 되고, 그 와중에 밝혀지는 한 가족의 숨겨진 슬픈 이야기를 다룬 작품. 영화 속에서 정영숙은 아들과 아들의 여자친구 사이를 갈라놓는 악한 어머니 역할을 맡았다. 1968년 TBC 공채 탤런트 6기로 데뷔했으니 정영숙이 연기 생활을 한 지도 벌써 40년이 됐다. 그가 돌이켜보는 연기자로서의 삶이 궁금했다. “나는 참 행운아예요. ‘추격자’라는 반공 드라마에서 군인 역할을 맡아 단역으로 데뷔했는데 그때 확 떴거든요.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주어진 것만 할 줄 알았지, 연기자로서 재능 같은 건 전혀 없는 사람이었어요. 정말 딱딱한 군인 역할이었으니까 인기를 얻었지, 안 그랬으면 유명해지지 못했을 거예요. 반공 드라마로 시작해서 사랑을 나누는 젊은 여인, 나이가 들면서는 엄마 역할을 했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연기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요.” 40년 동안 그가 안 해본 역할은 거의 없다. 연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정영숙이라는 단 하나의 인생만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연기자가 돼서 이렇게 수많은 인생을 살 수 있는 걸 복으로 생각한다. 다양한 역할을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고 딱히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예상 밖의 대답을 들려주었다. “나는 항상 내 삶에 최선을 다하고 살았고,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내 자식들이 볼 때 ‘엄마는 최선을 다하는 배우였다’고 여길 만큼만 됐으면 좋겠어요.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이고 싶으니까요. 더 큰 욕심은 없어요.” 인터뷰 말미, 그는 「레이디경향」 독자들에게 봉사활동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봉사를 특별한 사람만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하죠. 나도 한때 그랬으니까요. ‘내가 뭐가 잘났다고 남을 돕고 그러나’ 하는 생각에 봉사하는 게 쑥스러웠고, ‘우리나라에도 못 사는 사람이 많은데 왜 다른 나라 사람을 도와주어야 하나’하고 의문을 갖기도 했어요. 하지만 봉사를 하면서 깨달은 점은 지금 내게 주어진 여건 속에서 나눠야 한다는 거예요. 한겨울 거리를 지나다 자선냄비가 보이면 천원짜리 한 장을 쑥 밀어 넣듯이 말이에요. 나눔은 거창한 게 아니라 동참하는 데 의의가 있으니까요.” 정영숙은 예순을 넘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고왔다. 문득, 그가 ‘나눔을 실천하는 고운 마음을 지녔기에 나이를 먹지 않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나눔을 실천하는 그는 꽃보다 더 아름다웠다. ■글 / 김민정 기자 ■사진 / 원상희 ■사진 제공 /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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