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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물 전성시대]과
[장르물 전성시대]과 (2019. 11. 18 14:55)
2019. 11. 18 14:55 문화/과학
ㆍ부조리한 전쟁, 진짜 적은 누구인가? “고향에 돌아와 입을 다물 수도 있었죠. 베트남의 일을 침묵할 수도 있었고요. 하지만 이 나라를 진짜 위협하는 걸 널리 알리려 마음먹었습니다. 우린 마을을 구한다며 파괴를 정당화했지요. 미국이 도덕성을 잃는 것을 보았고요. 우린 움직이는 건 죄다 쐈고 동양인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미국을 봤습니다.… 누구보고 베트남에 가서 마지막으로 죽으라 요구하겠습니까? (정치인들의) 실수로 말미암아 죽게 될 최후의 1인이 되라고 말입니다.”(미 해군대위 존 케리, 1971년 미국 상원 외교 분과 증언) 조 홀드먼의 한국어판 표지 / 황금가지 세계패권국가라면 얼핏 근사하게 들리지만 그 나라 젊은이들은 그에 맞는 대가를 치른다. 로마제국이 그 위상을 지키려 끝없이 크고 작은 전쟁을 일으켰듯, 적어도 1·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젊은이들은 국민복지와 무관한 정부·정권의 이익을 위해 지구촌 곳곳에서 빈발하는 국지전에 병사로 투입됐다.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아끼지 않고 돌격하는 병사의 모습은 감동적이지만, 국익에 이바지한다는 선전공작에 넘어가 정작 자신들을 경원시하는 타국의 전장에서 총부리를 겨누는 병사는 위선적인 시스템의 총알받이일 뿐이다. 존 케리의 증언에는 바로 그런 회한이 짙게 깔려 있다. 베트남전쟁에서 훈장을 여러 개 받았지만 그 부조리함에 깊은 회의를 느낀 그는 귀국 후 반전운동의 대변자가 되었다.(케리는 훗날 미국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되며 조지 부시의 이라크전쟁 계획에 반대했다.) 2017년 미국 공영방송국(P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베트남전쟁 10부작> (2017)은 외세가 경솔하게 개입한 부조리한 전쟁에서 피아를 구분 못 하고 혼란에 빠진 미군 병사들을 온정적 시선으로 그린다. 이보다 앞서 미국 SF계에도 존 케리 같은 이가 있었다. <영원한 전쟁>(The Forever War)(1974)의 작가 조 홀드먼은 베트남전쟁에서 중상을 입고 퇴역한 뒤 자신이 참전한 전쟁이 얼마나 거짓과 사기로 가득한 소모전이었는지 실제 참전병사의 시각에서 회고한다. 대신 과학소설답게 무대가 외계행성으로, 베트콩이 외계인 병사로 바뀌었을 뿐이다. 특히 끝도 없이 이어지는 전쟁의 늪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만델라 병장이 전쟁의 진실과 마주하는 결말은 가혹하기 짝이 없다. 상대론적 시간 팽창 효과로 인해 지구시간으로 무려 1143년 동안 엄청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한 전쟁의 발발원인은 실은 세력 확장을 위해 외계탐사에 나선 지구우주선들의 사고를 외계인 탓으로 덮어씌운 데서 비롯된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일 때 미군은 50만 명이나 주둔했고, 끝내 5만여 명이 죽었다. 미국의 진짜 속내는 공산주의 세력의 남하 저지에 있었지만 겉으로는 북베트남군이 미군함정을 기습했다고 우긴 통킹만 사건을 직접적인 군사개입 명분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소설의 설정과 많이 중첩된다. 군산복합체의 얼굴마담인 지구정부는 경기순환(수요증대)을 위해 주기적으로 전쟁이 필요했고, 호전적 이미지로 포장된 외계종족(북베트남)은 대중을 상대로 기만적인 선전을 펼치기 위한 좋은 빌미였다. 그로 인해 국민의 세금이 군산복합체라는 밑 빠진 독에 합법적으로 한도 끝도 없이 퍼부어졌다. 돈만 헛되이 날린 것이 아니다. 자원했건, 징집당했건 간에 무슨 성격의 전쟁인지 전혀 모른 채 전장에서 숨져간 젊은이들은 누가 책임질까. 베트남 사람만 200만 명이 죽었다. 다큐멘터리에서나 과학소설에서나 베트남전쟁은 잊히지 않는 미국의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장르물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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