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옵션
닫기
범위
전체
제목
본문
기자명
연재명
이슈명
태그
기간
전체
최근 1일
최근 1주
최근 1개월
최근 1년
직접입력
~
정렬
정확도순
최신순
오래된순

주간경향(총 24 건 검색)

홍콩보안법 1년, 빛 잃은 ‘동방의 진주’(2021. 07. 19 10:37)
2021. 07. 19 10:37 국제
ㆍ야권과 민주진영 와해… “미래 없다” 탈홍콩 줄이어 “신문이 폐간되고, 시위가 금지됐다. 민주진영 활동가와 정치인은 체포되거나 망명했다. 수만명의 시민이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나고 있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이자 홍콩 주권반환 24주년 기념일인 7월 1일 홍콩에서 경찰 의장대가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와 홍콩기를 게양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외신이 바라본 2021년 홍콩의 모습이다. ‘동방의 진주’로 불렸던 도시는 지난 1년간 빠르게 빛을 잃었다. 동서양의 정치·경제·문화가 교차된 중국 속의 또 다른 중국이었던 홍콩은 이제 자유로운 도시의 매력을 잃고 중국의 여느 한 도시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난해 중국이 밀어붙인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이 가져온 변화다. 떠나려는 이들은 홍콩이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이 알던 그 도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홍콩에 미래가 없다며 또 다른 기회의 땅을 찾아 떠나고 있다. 숨 가쁘게 돌아간 홍콩의 1년 홍콩의 대표적 반중매체 빈과일보가 폐간한 6월 24일 홍콩 시내 가판대에 마지막 신문을 사려는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 AFP연합뉴스 지난해 6월 30일 홍콩보안법이 시행된 이후 1년 동안 홍콩의 시계는 숨 가쁘게 돌아갔다. 지난해 5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통과된 홍콩보안법은 홍콩 내 반중국 활동을 처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가 분열과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의 파괴력은 생각보다 컸다. 1년 동안 117명이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고, 64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우산혁명’으로 불리는 2014년 민주화 시위를 이끌었던 조슈아 웡(黃之鋒)과 아그네스 차우(周庭), 대표적 반중매체인 빈과일보 사주 지미 라이(黎智英) 등 홍콩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들이 모두 보안법의 족쇄에 갇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홍콩의 야권과 민주진영은 사실상 와해됐다. 지난해 11월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채택한 입법회 의원 자격요건에 관한 결정을 근거로 홍콩 정부는 야당 의원 4명의 의원직을 박탈했고, 의원 15명이 이에 항의해 동반 사퇴하면서 홍콩 입법회에는 친중 성향 의원들만 남게 됐다. 또 올해 들어 홍콩 정부가 구의원에게까지 충성 서약을 의무화하는 조례안을 밀어붙이자 범야권의 구의원 190여명이 의원직을 사퇴했다. 야당인 신민주동맹은 보안법 시행 1년을 앞둔 지난달 26일 당을 아예 해산해 버렸다. 민주진영 단체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홍콩프리프레스 등 현지 언론은 지난달 이후에만 진보변호사그룹과 진보교사동맹 등 최소 8개의 홍콩 범민주진영 단체가 자진 해산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에서는 집회·시위와 언론의 자유도 사라졌다. 1990년부터 매년 빅토리아파크에서 열리던 ‘6·4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추모집회가 경찰의 원천 봉쇄로 올해 처음 열리지 못했다. 매년 7월 1일 홍콩 주권반환일을 기념해 열리던 가두행진과 집회도 올해는 볼 수 없었다. 대표적 반중매체 빈과일보가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한 압수수색과 관련자 체포, 자산 동결 등 대대적 압박에 직면해 지난 6월 24일 폐간한 것은 홍콩에서 언론 자유의 종말을 고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인식된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달 홍콩보안법 1년을 맞아 낸 보고서에서 “보안법 시행 1년 만에 홍콩의 자유사회가 해체됐다”며 “중국은 홍콩인들이 오랫동안 누려온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 정보 접근권, 학문적 자유 같은 시민권과 정치적 권리를 체계적으로 지워버렸다”고 지적했다. 홍콩의 대표적 반중매체 빈과일보의 한 기자가 6월 24일 신문사 앞에서 폐간 전 마지막으로 인쇄된 신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중국화의 완결판’ 선거제 개편 홍콩보안법이 홍콩의 중국화를 알리는 서막이었다면 올해 3월 중국 전인대에서 통과된 홍콩 선거제 개편안은 그 완결판으로 볼 수 있다. 지난 5월 홍콩 입법회에서 최종 확정된 선거제 개편안은 ‘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린다’는 원칙에 기반을 둔 것이다. 홍콩 행정장관 선거인단 구성을 친중 인사에 유리하게 바꿨고, 모든 공직 선거 후보자에 대해 사전 심사를 거쳐 출마 자격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입법회 의석수를 70석에서 90석으로 늘리면서도 주민이 직접 선거를 통해 뽑는 지역구 의석은 35석에서 20석으로 줄였다. 민주진영의 의회 진출을 막고, 중국 정부의 홍콩에 대한 직접적 통제력을 높이려는 조치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이자 홍콩 주권반환 24주년 기념일인 7월 1일 홍콩 도심 침사추이 거리에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와 홍콩기가 함께 내걸려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이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중국 정부는 최근 홍콩보안법 시행에 앞장선 존 리(李家超) 전 보안장관을 홍콩 정부 2인자인 정무부총리에 임명하고, 그가 공직 선거 후보자 자격심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도록 했다. 리 부총리는 자격 심사와 관련해 “모든 후보가 홍콩 기본법과 홍콩 정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며 “과거의 모든 행동을 포함해 충성 맹세의 진실성을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행적 등을 이유로 민주진영 인사들의 출마가 제한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오는 9월 행정장관 선거인단 선거와 12월 입법회 선거, 내년 3월 행정장관 선거로 이어지는 정치 일정을 거쳐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을 만들겠다는 중국의 밑그림과 홍콩의 중국화는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 전망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7월 1일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공산당 창당 100주년 경축대회에서 “홍콩·마카오특별행정구에 대한 중앙 정부의 전면 관리와 통치를 실현하고 국가 안전을 수호하는 법률 제도를 통해 전반적인 사회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와 고도 자치 방침을 관철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양제’보다는 ‘일국’에 방점을 찍고 홍콩에 대한 전면 통치 의지를 드러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홍콩보안법 제정과 올해 선거제 개편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조치를 2014년 우산혁명과 2019년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반대 시위 등 잇단 소요사태에 따른 안정화 조치라고 강조한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최근 빈과일보 폐간 사태 등으로 서방의 비판이 커지자 “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사회는 정상 궤도를 찾았고, 동방의 진주는 더욱 빛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하지만 홍콩인들이 느끼는 보안법 이후 홍콩의 모습은 사뭇 달라보인다. 보안법 시행 이후 이민 문호를 넓힌 영국과 캐나다 등지로 떠나려는 홍콩인들이 줄을 잇고 있다. 홍콩에 거주하는 브리튼 루스 베니는 “지난 1년간 적어도 20명의 주변 사람이 정치적 변화로 인해 홍콩을 떠났다”며 “2047년이 갑자기 일찍 찾아왔고, 이곳은 더 이상 우리가 살던 도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말했다. 2047년은 중국이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 주권을 반환받으며 일국양제와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50년의 기간이 도래하는 시점이다.
[취재 후]홍콩보안법의 위력
[취재 후]홍콩보안법의 위력(2020. 08. 21 15:22)
2020. 08. 21 15:22 국제
홍콩보안법이 시행된 지난 7월 1일, 홍콩에 사는 다큐멘터리 감독 에이미로부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홍콩의 청년 정치인들이 홍콩을 탈출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붙잡히기 전에 떠나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 소식을 듣고 나는 잠시 울었다. 요즘 나는 몹시 나쁜 시나리오의 영화 속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이하늬 기자 한 달 뒤인 8월 1일, 홍콩 보안당국은 보안법을 피해 해외로 망명한 6명에 대해 지명수배를 내렸습니다. 지명수배 전단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수배된 이들의 얼굴이 너무 앳되었기 때문입니다. 수배된 6명 중에는 10대도 있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지난 6월에 이어 다시 홍콩 상황에 대한 기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계기입니다. 지명수배된 6명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섭외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홍콩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만큼 이들 역시 너무 바빴습니다. 우산혁명을 이끌고 데모시스토당 주석을 역임한 네이선 로는 “인터뷰를 요청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긴 뒤 좀처럼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즈음 “지금까지 답을 못해 미안하다. 인터뷰 답을 바로 보내겠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홍콩독립연맹’ 창립자 웨인 찬과는 연락이 잘 되다가 갑자기 뚝 끊겼습니다. 메시지를 아예 읽지 않았고,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에도 접속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수배자 중 한명인 홍 라우에게 물어보니 “나 역시 웨인 찬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빈과일보 사주 지미 라이와 우산혁명의 주역 중 한명인 아그네스 차우가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함께 기사를 준비하던 동료들과 걱정했습니다. “설마 중국 공안에 잡혀간 건 아니겠지?” “영국에 있는데 설마….” 설마를 연발하면서도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이른바 ‘금서’를 판매하던 홍콩 퉁뤄완 서점 관계자 중 한명이 태국 파파야에서 실종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웨인 찬에게 연락이 올까, 관련된 기사가 외신에 뜰까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했습니다. 그러다 깨달았습니다. 이게 홍콩보안법의 위력이구나. 나와 연락을 주고받던 사람이 어느 날 돌연 사라질 수 있다는 것.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이런 생각을 하게 만다는 것. 다행히 웨인 찬과는 연락이 닿아 걱정에서 해방됐지만, 이 취재 후기를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홍콩의 누군가는 이런 걱정을 하고 있을 겁니다. 많은 이들이 홍콩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합니다.
취재 후
[표지 이야기]홍콩보안법 불똥, 한국경제로 튈까(2020. 06. 05 16:49)
2020. 06. 05 16:49 경제
ㆍ미·중 갈등이 불러올 충격은… 수출시장은 큰 영향 없지만 금융시장은 대비해야 홍콩보안법 제정 이후 미국과 중국이 저강도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29일(현지시간) 관세·투자·무역·비자와 관련해 미국이 홍콩에 부여했던 특별지위를 박탈하는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밝혔지만, 시기를 못 박지는 않았다. 양국이 한발 물러서 실효성 있는 카드를 고르는 모양새지만 소규모 공방은 계속됐다. 중국이 미국 항공사의 중국취항 재개를 허용하지 않자 미국은 6월 3일 중국 항공사 여객기의 미국 운항을 막기로 하면서 맞불을 놨다. 미국 상무부는 6월 5일부터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광학기술 등 기술기업 18곳을 포함한 33개 중국 기업·기관에 대한 제재를 발효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확대 개편하는 구상을 밝히며 반중 세력 결집에도 나섰다. 한국 수출에 미칠 타격 크지 않아 중국은 미국과의 1단계 무역 합의 이행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중국은 향후 2년간 320억 달러의 농산물을 포함해 미국산 상품·서비스 수입을 2017년 대비 2000억 달러 더 늘리기로 했다. 중국은 무역 합의를 성실히 이행 중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산 농산물 수입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 수요에 적합한 수준의 구매를 진행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쳐 향후 수입 규모가 합의 수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미·중 갈등은 패권 다툼이라는 점에서 장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미·중 갈등이 불러올 경제 충격을 다양한 시나리오를 짜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1992년부터 홍콩에 부여해온 특별지위를 박탈하면 중계무역과 금융허브로서의 홍콩의 위상 추락은 불가피하다. 홍콩은 전체 교역 중 약 89%가 재수출에 해당하는 중계무역의 거점이다. 특별지위를 잃게 되면 홍콩을 거쳐 미국으로 향하는 품목에 대한 관세는 기존 1.6%에서 중국 본토와 마찬가지인 최대 25%로 뛰게 된다. 이 경우 홍콩을 경유해 무관세 혜택과 낮은 법인세라는 이점을 누린 수출국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지난해 중국 수출의 12%(대미 수출의 77%)가 미국의 관세를 피할 수 있는 홍콩을 거쳐갔다는 점에서 중국이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 포위 전략의 핵심 협력국인 대만이 받을 타격도 크다. 대만은 홍콩을 경유한 중국행 재수출 비중이 중국·한국보다 높다. 경제적 측면만 고려하면 미국이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을 선택할 동기는 크지 않다. 미국도 무관세나 비자 등에서 누린 혜택을 잃게 되면 최대 무역흑자 지역인 홍콩시장으로의 접근이 어려워질 수 있다. 중국이 해외 자금의 60%를 홍콩에서 조달하지만, 그 자금의 대다수는 유럽과 일본, 미국계라는 점에서 금융 제재도 쉽지 않다. 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관세·무역 측면에서 실효적인 조치가 많지 않다”면서 “투자를 보더라도 미국 자본의 홍콩 유입을 막는다면 결국 월가의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연주 신영증권 중국전략 담당 애널리스트는 “미국도 현재 무관세로 홍콩을 경유해 아시아 지역에 수출하는데 홍콩은 달러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큰 혜택을 보고 있다”면서 “미국이 홍콩에 특별지위를 부과한 것은 그만큼 미국이 수혜를 받기 때문이었는데 그걸 포기하는 선택은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제재로 홍콩을 중계무역 거점으로 활용하기 어려워지면 단기적으로 한국의 수출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홍콩을 거쳐 미국으로 재수출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1.7% 정도에 불과하다. 지난해 한국에서 홍콩으로 간 수출품목 중 70%(222억 달러·금액 기준)를 차지한 반도체가 입을 타격도 크지 않다. 홍콩으로 간 한국산 반도체의 90% 이상은 미국이 아닌 중국으로 재수출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중국으로의 반도체·정보통신 분야 수출품은 사실상 무관세라는 점에서 중국 직수출로 전환해도 거래선 전환 비용만 늘 뿐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히려 홍콩을 경유한 중국의 대미 수출길이 막히면 석유화학, 가전, 의료·정밀, 광학기기, 철강 제품, 플라스틱 등 수출 경합도가 높은 분야에서 우리 기업이 이익을 볼 가능성도 있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시장 내에서 한·중 간 경합도가 높은 산업, 특히 자동차 부품 산업 같은 경우 중국 제재로 한국의 수출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화웨이 등 첨단기술 관련한 제재는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 허브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개미들, ELS 대규모 손실 가능성 고려해야 다만 전문가들은 홍콩 특별지위 박탈 시 금융시장이 큰 타격을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중 간 갈등 격화로 홍콩 증시가 폭락하고 홍콩달러와 위안화 가치가 하락하면 그 여파는 위안화와 동조 경향이 강한 한국을 비롯한 주변 아시아 국가의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홍콩의 달러화 페그제 붕괴가 가장 큰 위험 요인이다. 홍콩은 1983년부터 홍콩달러의 가치를 달러화에 연동하는 페그제를 채택해 왔다. 홍콩의 중앙은행격인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달러·홍콩달러 환율이 페그제 상단인 7.85홍콩달러 선에 근접하면 개입해 홍콩달러를 달러당 7.75~7.85홍콩달러로 유지해왔다. 페그제는 환율 안정을 가져와 홍콩이 국제무역과 국제금융의 중심지로 부상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87년 블랙 먼데이, 2001년 9·11 테러, 2009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등 숱한 충격에도 홍콩 경제를 지켜냈다. 페그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풍부한 외환보유액을 갖춰야 하고, 자본이동이 자유로워야 한다. 홍콩의 외환보유액은 우리보다 조금 많은 4400억 달러 내외로 추정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나 파운드화의 유로존 이탈을 비롯해 과거의 페그제는 대부분 실패했지만, 홍콩의 달러 페그제는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며 “막대한 달러를 보유해 홍콩달러를 계속 미국달러로 바꿔주면서 환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중 갈등 격화와 홍콩 제재의 수준에 따라 이런 안정성이 무너지는 순간이 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페그제 붕괴 위기가 가시화할 경우 홍콩 증시가 폭락하면서 홍콩주가지수와 연동된 국내 증시의 손해가 커질 수 있다. 홍콩H지수를 기초로 한 주가연계증권(ELS) 잔액은 지난달 5월 31일 기준 약 29조원에 이른다. 2018년 초고점에 발행된 상품들의 경우 지수가 7000대까지 떨어지면 원금손실구간(녹인·knock in)에 들어가는데 현재 지수는 10000대 내외를 유지하고 있어 아직 여유가 있다. 하지만 규모가 큰 만큼 독일 국채 금리연계 상품인 DLS 사태와 같은 투자자 손실을 막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김소영 교수는 “홍콩H지수와 연계된 ELS는 독일 국채 연계 상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중적으로 팔린 상품이다”면서 “홍콩 증시가 기준선 이하로 폭락하면 폭락한 만큼 손해를 입는 구조인데 리스크를 알고 투자한 상품이라 투자자 보호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홍콩의 친중파 시위대가 5월 30일(현지시간) 미국의 홍콩 영사관 주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꼭두각시와 그를 비난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 AFP연합뉴스
표지 이야기
[표지 이야기]"중국 정부의 국가보안법 제정 논란"(2020. 06. 05 16:48)
2020. 06. 05 16:48 국제
ㆍ장정아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장이 말하는 홍콩 사회 전망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범죄인인도개정법안(송환법)을 막아낸 홍콩 시민은 국가보안법 철회를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장정아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장(중어중국학과 교수)에게 홍콩 국가보안법의 의미와 전망을 들었다. 인터뷰는 e메일과 전화로 이뤄졌다. -중국 정부가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왜 지금인가. “2003년 7월에 국가보안법 제정 반대를 위한 시위행진이 있었다. 홍콩 시민 50만 명이 참여했는데 중국 정부의 예상을 뛰어넘는 대규모 시위였다. 시위를 통해 홍콩 시민은 법 제정을 막아냈다. 2003년 시위는 홍콩 시민사회를 형성한 중요한 사건이자 ‘성공’ 사례로 남았다. 시위를 계기로 홍콩 시민사회는 네트워크와 조직을 갖추게 됐다. 반면 중국 정부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홍콩에 좀 더 강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중국 정부와 홍콩의 친정부파 의원들은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추진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에 지난해 송환법 이슈가 터졌다. 중국 정부는 다시 한 번 홍콩 통제의 필요성을 체감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가 전인대(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법 제정을 결정하는, 예상치 못한 방법까지 동원한 이유다. -이런 방식으로 법 제정이 가능한가. “국가안전(보안) 관련 법은 홍콩이 자체 입법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홍콩 기본법 제23조에 명시돼 있다. 홍콩이 자체적으로 홍콩 의회를 통해 입법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다른 법 조항을 내세워 국가보안법을 추진한다. 기본법 제18조다. 기본법 제18조에 따르면 부칙3을 제외하고는 중국 전국의 성(省) 법률을 홍콩에 적용하지 않게 돼 있다. 달리 말하면 부칙3에 있는 중앙정부의 ‘전국성 법률’은 홍콩에 적용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기본법 제18조 3항은 ‘전인대 상무위가 부칙3의 법률을 증감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중국 정부는 전인대가 부칙3에 법률조항을 추가하기로 결정하고 상무위가 제정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중국 정부 말대로 법적 문제는 없는 건가. “논란의 소지가 있다. 중국이 근거로 내세운 기본법 제18조 3항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부칙3에 포함되는 법률은 국방, 외교, 그리고 홍콩 자치범위가 아닌 법률에 한한다’는 이 조항을 근거로 홍콩변호사협회를 비롯한 상당수 법학자는 중국 정부의 방식이 기본법 위반이라고 본다. ‘중국 전인대가 제정하는 방식은 매우 특수한 경우’에만 해당되는데 이번 국가보안법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홍콩 시민은 사실상 일국양제가 끝났다고 말한다. “이번 보안법은 중국 국가 기관이나 지방 정부, 홍콩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테러활동’ 처벌도 가능하다. 정부는 그간 홍콩 시위대의 행동을 ‘테러활동’으로 규정해왔다. 비판 통로를 봉쇄한 셈인데 홍콩 시민의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보안법이 시행되면 중국의 국가안전 관련 기관들이 홍콩에 직접 기구를 설치할 수 있다. 법 집행도 가능하다. 홍콩 반환 후 홍콩에 보장된 ‘고도 자치’의 핵심은 홍콩이 최종 심판권을 가진다는 데 있다. 그런데 중국 기관이 홍콩에 기구를 설치하고 법을 집행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중국 본토의 법체계를 홍콩에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본토의 체계가 홍콩의 법체계와 인권 기준과 충돌할 수도 있다. 두 체계가 부딪쳤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답을 하지 않는다.” -이미 중국은 홍콩에 대한 통제 수위를 높여오지 않았나. “2014년 우산운동 이후 홍콩에 대한 ‘통제’ 흐름은 전방위적으로 이어져 왔다. 2016년에는 의회 의원선서를 조금 다른 형식으로 했다는 이유로, 선거에서 선출된 의원 6명의 자격이 박탈된 일이 있었다. 이미 선출된 의원의 자격을 박탈한 것은 처음이다. 선거 후보자에 대한 사상검증도 정도가 심해졌다. 홍콩 독립에 대한 생각을 밝히도록 요구하고 원하는 수준의 답변을 하지 않으면 후보 자격도 주지 않는다.” -앞으로 홍콩 시위는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보나. “홍콩 시민이 최근 1년 시위과정에서 많은 일을 겪으면서 중국에 대한 반감과 분노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이런 반발심은 특히 홍콩 청년층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체포 위험도 감수하면서 계속 시위에 나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작년처럼 200만 명이 나오기는 불가능하다. 이미 대규모 체포와 기소·수감 위험이 현실로 다가온 상황에서 수백만 명 규모의 집회는 더 이상 어려울 것이다. 나오려는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집회·시위 현장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작년처럼 가족 단위, 노인과 아이들이 많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홍콩 시민운동도 동력을 잃는 것 아닌가. “홍콩에는 꼭 중국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다시 영국 식민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전 관념에서 벗어나 지역에서 주민들과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가려는 사람들도 있다. 지역 자치와 자결을 통해 일상의 변화를 이끌어가겠다는 취지의 시민운동이다. 지난 몇 년간 축적된 지역 커뮤니티의 경험은 ‘민간의 힘’을 만들어냈고, 지난해 시위부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거주지역 길거리에 포스트잇과 포스터를 붙이며 지역 주민들에게 시위를 알리는 활동을 해왔다. 운동이 꼭 ‘중심부’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정부 건물을 포위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 이웃에서 평생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인식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비록 주류는 아니지만 지난 몇 년 사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중국과 홍콩의 관계와 같은 거시적 정치를 내 손으로 바꾸기 어렵다면 일상 속에서 변화를 만들어 나가자’는 인식이 생겨났다. 하지만 최근에 정부 통제가 강화되고 보안법까지 추진되면서 이런 일상적 운동은 진행하기 어렵게 됐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홍콩은 국제도시다. 홍콩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른 국가와 사회와도 관련이 있다는 의미다. 홍콩인은 지금도 결코 완전한 자유나 민주를 누리지 못하지만, 현재 누리고 있는 정도의 자유나 민주·인권도 침해를 받는다면, 그것은 다른 사회에서도 언제든지 자유와 민주·인권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침해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시민은 서로 무관하다 여기지 말고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홍콩의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만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포함해 어떤 나라에서든 시민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보안법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 보안법의 역사와 문제점에 대해서도 다시 성찰해보고 국가와 시민, 보안과 인권의 관계에 대해 토론하자고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중국과 홍콩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여러 사회의 시민이 함께 논의하는 중요한 장(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이 게릴라식 시위를 벌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장정아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장(중어중국학과 교수)
표지 이야기
[언더그라운드 넷]태국 국제공항 보안요원 폭행사건의 진실(2019. 02. 11 15:54)
2019. 02. 11 15:54 사회
‘안에서 새는 바가지, 태국에서도 샘.’ 지난 1월 26일 태국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 출국장에서 벌어진 사건을 두고 한 누리꾼이 관련 CCTV 영상을 소개하며 붙인 제목이다. gif 형식으로 캡처된 동영상을 보면, 한 한국인 여성이 태국 공항의 여성 보안요원을 주먹으로 때린다. 이 사건은 국내에서도 보도됐다. 태국 소셜미디어(SNS)와 지역매체가 보도한 영상을 소개했다. 대부분 여성의 폭행에 초점을 맞춰 해당 여성은 태국 돈 1000바트(약 3만5000원)의 벌금을 물었다는 보도다. 앞서 누리꾼이 단 제목은 이 사건을 전형적인 ‘갑질 프레임’으로 보는 것이다. 공항 보안이 엄격한 미국 같은 나라라면 끽소리도 못했을 한국 여성이 태국이라고 함부로 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다. 태국 공항 폭행 갑질녀 등으로 보도된 CCTV 영상. / 뽐뿌 캡처 그러나 문제의 영상뿐 아니라 전후 사정이 알려지면서 이 여성의 행동이 갑질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느냐는 추론이 나왔다. 실제 해당 여성은 폭행 전 지속적으로 손으로 X 표시를 하며 자신의 몸에 손대면 안 된다는 표시를 하고 있었다. 진실은 무엇일까. “뉴스가 오보입니다. 저 여자분 지적장애인이었구요, (관광) 일정 동안 약을 안 드셔서 마지막 날 발작증상이 나서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지난 1월 말 태국 현지 교민의 SNS에 댓글을 단 교민 박모씨의 글이다. 그는 자신이 해당 여성 팀의 가이드를 맡았다며 “보안대에서 나와 공항 1층 경찰서에서도 ‘일반인이 아니니 합의를 하라’는 권고를 받아 내가 직접 합의를 주선했다”고 밝혔다. 장애인일 것이라는 누리꾼의 추측이 맞았다. 남는 문제. “폭행사건까지 이어질 정도로 상태가 안 좋다면 애초에 관광을 가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영상만으로 지적장애인인지, 아니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약을 끊고 발작이 심해졌다면 인솔자가 좀 더 세심한 배려를 했어야 하는 것이 맞다.” 한국장애인학회장을 맡고 있는 최복천 전북대 재활학과 교수의 말이다. 그는 “혼자 출입국 심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국제공항이라도 인솔자가 먼저 나가 상황을 보여준다든지, 보안요원에게 상황을 고지하는 등의 조치가 아쉽다넷면서 “이번 건에서 정작 무서운 건 앞뒤를 다 잘라 폭행부분만 보여주며 갑질녀 등으로 매도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태국 공항 폭행사건의 진실은? 어쨌든 갑질녀 폭행 등으로 성급하게 결론낼 일은 아닌 듯하다.
언더그라운드 넷
국내 ‘네트워크 보안’은 안전한가(2018. 12. 10 15:38)
2018. 12. 10 15:38 경제
ㆍ미국의 화웨이 통신장비 사용 금지 계기로 우리도 인식 전환 필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요 동맹국들에 “화웨이 통신장비를 쓰지 마라”고 요구하면서 5G 이동통신의 상용화를 앞두고 네트워크 보안 문제가 글로벌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과는 자국의 첩보와 도·감청 정보까지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파이브 아이즈(다섯 개의 눈)’에 속하는 영국, 캐나다 등도 화웨이 장비 사용 금지를 천명했다. 국내에서는 LG유플러스가 4G에 이어 5G에서도 화웨이 장비 도입을 선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2016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가전전시회 ‘CES 아시아’에 설치된 화웨이 부스 앞으로 한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 상하이 |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앞장서서 화웨이를 배척하는 배경으로는 미·중 무역분쟁이나 양국 간 패권경쟁 문제가 언급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네트워크 보안 문제가 단지 미국과 중국의 다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미국 역시 중국만큼이나 다른 국가를 감시할 가능성과 역량이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뒤떨어진 국내 통신장비 검수능력을 개선하는 등 네트워크 보안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중국을 불신하는 미국 화웨이는 5G기술 구현을 위한 전세계 필수특허의 10%, 5G 표준기술 특허의 23%를 각각 소유한 IT기업이다. 적어도 5G에서는 세계적인 강자의 자리에 올랐다. 게다가 장비의 가격도 경쟁사들에 비해 저렴하다. 통신망 관리에 필요한 각종 소프트웨어나 서비스 지원 수준도 우수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상식적으로만 생각하면 화웨이의 5G 장비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미국은 화웨이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화웨이뿐만이 아니다. 트럼프는 지난 8월 미국의 2019년 국방수권법안에 중국 업체의 통신장비나 서비스를 쓰지 못하도록 명시했다. 이들 중국 기업이 수집한 정보가 중국 정부에 넘어간다고 보고 있는 트럼프다. 여기에는 화웨이 말고도 ZTE 등과 같은 중국의 다른 IT기업들이 모두 포함된다. 화웨이를 넘어 중국을 불신하는 트럼프의 태도가 트럼프 개인의 성향 문제나 일시적인 양국 간 무역분쟁에서 비롯됐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미국이 통신장비 보안 문제에서 공개적으로 화웨이를 언급하기 시작한 건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 의회는 당시 보고서를 통해 화웨이 통신장비가 자국의 보안 및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이 보고서를 경청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당시는 4G LTE 서비스가 막 상용화되는 시점이었는데, 업계에서 ‘미국이 화웨이 장비 사용을 못하도록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밝혔다. 오바마는 트럼프보다 화웨이에 대한 경계심을 입밖에 덜 냈을 뿐이다.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가인 피터 W 싱어가 2015년 출간한 소설 <유령함대>는 미국과 중국의 세계대전을 그리고 있다. 중국의 사이버 공격에 미국의 최신무기가 무력화된다는 게 책의 주된 흐름 중 하나다. 저자는 평소 “트럼프를 싫어한다”고 밝혀왔다. 트럼프와 관계없이 미국과 미국 국민들은 중국산 통신장비가 불러올 수 있는 여러 안보위협이 실체적이라고 본다는 뜻이다. 중국에 보다 강경한 미 정치인들은 “중국산 스마트폰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화웨이가 실제로 중국 정부의 스파이 노릇을 했는지, 화웨이의 장비에 스파이 기기나 소프트웨어가 들어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이를 입증할 객관적인 자료나 정보가 공개된 적도 없다. 화웨이가 억울해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화웨이 스스로 이 같은 의심을 자초한 측면 역시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보안업계 관계자는 “화웨이 창립자인 런정페이 회장은 중국 인민군 장교 출신이고, 화웨이는 회사의 지배·소유구조나 이사회 구성 및 운영 등 회사 경영과 관련된 핵심 정보를 철저하게 감추고 있다”며 “중국 정부로부터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 성장한 화웨이를 중국 정부와 동일하게 놓고 보는 게 무리가 아니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미국은 화웨이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12월 4일 미국의 요청으로 벤쿠버에 머물던 화웨이의 멍완저우 글로벌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체포했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멍완저우 CFO는 화웨이 런정페이 창업주의 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1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 부에노스아이레스|신화연합뉴스 ‘빅브라더’ 원조는 미국 ‘빅브라더’는 정보 권력을 쥔 거대한 감시자를 뜻하는 말이다.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경계는 중국의 ‘글로벌 빅브라더화’를 막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원조 빅브라더는 바로 미국이다. 이는 미국 국가안보국(NAS)의 내부고발자였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2013년부터 미국의 글로벌 감시체계로 의심되는 ‘프리즘 프로젝트’를 비롯해 미 정부의 다양한 첩보활동 실태를 폭로하면서 입증됐다. 스노든의 폭로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IT기업인 구글도 포함됐다. 스노든은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의 글로벌 IT기업이 NAS의 관리 하에 있으며, 구글은 수집한 전세계의 가입자 개인정보를 NAS 요청에 따라 미 정부에 넘기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글로벌 온라인 검색 시장을 장악한 구글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장을 장악한 페이스북이 전세계 수십억 명의 사용자로부터 수집하는 정보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스노든의 폭로에 따르면 구글과 페이스북 등 미국의 기업들이야말로 미국 정부의 스파이인 셈이다. 구글과 미국은 펄쩍 뛰었지만 국내 사례만 봐도 의혹을 갖기엔 충분하다. 구글은 2013년 사용자들의 개인 위치정보를 무단 수집한 사실이 드러나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페이스북은 가입자들의 개인정보를 무단 수집하고, 이 정보들이 해킹되거나 이용되는 걸 방치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화웨이의 통신장비처럼 미국의 통신장비 역시 온전히 믿기 어렵다는 견해도 많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예컨대 국내에서 유통되는 스마트폰 대부분에 미국 A사의 칩셋이 쓰인다”며 “이 칩셋이 보안상 안전한지, 정보 수집의 우려는 없는지 등 역시 검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빅브라더 우려만 봤을 때는 중국이나 미국이나 매한가지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화웨이 논란을 계기로 낙후된 국내 ‘공급망 보안’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네트워크망부터 관련 통신장비나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보안 수준을 점검하고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LG유플러스의 경우 5G에서 화웨이 장비를 채택키로 한 뒤 논란이 일자 “외국의 전문업체에 장비의 신뢰도 검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에는 장비 검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기관이나 업체가 없다는 뜻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경우 1970년대부터 이미 공급망 보안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국가 차원에서 검증과 방어 능력을 키워왔다”며 “국내 기술 수준은 출발도 늦었을뿐더러 정부 차원의 지원이나 투자도 많지 않아 큰 발전을 못이루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밝혔다.
[IT 칼럼]보안사고에 대처하는 전혀 다른 두 자세(2017. 06. 20 10:16)
2017. 06. 20 10:16 문화/과학
한 웹호스팅 서비스 회사가 보안 대응을 소홀히하다가 파산에 직면했다. 주인공은 ‘인터넷나야나’라는 회사로 6월 10일 새벽 1시 해커의 공격으로 인해 150여대 서버에 저장된 데이터가 암호화되어 이 회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서비스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범죄자들은 암호화된 데이터를 풀어줄 테니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데이터를 인질로 잡아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는 전형적인 ‘랜섬웨어’ 공격이다. 이 회사의 운영 취약점을 공략해 관리자 권한을 취득한 범죄자들은 50억원을 요구했다. 황칠홍 인터넷나야나 대표는 회사 공지사항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해커와 협상 중이라는 내용을 꾸준히 공개했다. 초기 50억원이 18억원으로 내려왔고, 최종적으로 13억원에 타협이 이뤄졌다. 협상 후 랜섬웨어에 감염된 150여대 서버에 대한 복구작업에 돌입하고 있다. 6월 9일 강원도 전방지역 야산에서 발견된 무인기. / 합참 제공, 경향자료 사진 해커의 금전적인 요구에 응한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해커에게 굴복한 만큼 한국은 해커들의 놀이터로 전락해 수익을 목적으로 한 랜섬웨어 공격이 급속도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보안업계 관계자는 “아주 나쁜 선례를 남겼다”며 “이제 더 많은 해커들이 한국 사이트들을 공격해서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킹 범죄를 일으킨 이를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합의된 금액을 바로 현찰로 주는 것도 아니고 비트코인으로 변환해서 지불하므로 추적도 불가능하다. 돈을 주고 타협했으니 이후 유사한 공격과 대응이 반복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다. 반면, 이용하는 고객들을 위해서는 다른 대안이 없지 않았느냐는 의견도 나온다. 150여대 서버를 이용하는 3400여곳의 이용업체들에게 타협하지 말라는 건 서비스를 접으라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황 대표는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현금자산은 4억원가량이라고 밝혔다. 그 후 회사 지분을 넘기면서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안 대응 잘못으로 하루 아침에 회사가 풍전등화에 내몰렸다. 이 사건과 대응방안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논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책임자로서 모든 것을 내놓은 대표이사의 태도만은 비난할 수 없을 것 같다. 또 다른 보안사고도 있었다. 6월 9일 강원도 인제 야산에서 북한군 무인기를 주민이 발견, 군에 신고한 것이다. 합동참모본부는 이 무인기가 경북 성주에 설치 중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 기지를 촬영했다고 밝혔다. 군사분계선에서 무려 270여㎞나 떨어진 곳까지 와서 촬영하고 돌아가다가 예기치 않은 원인으로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메모리에는 200~300장의 사진이 남아있었고, 사드 포대가 담긴 게 10여장이라는 내용도 알려졌다. 그런데 그 이후 진행상황은 어떤가. 북한의 무인기가 넘어오는 것도 감시하지 못한 상황이 왜 발생한 것인지에 대한 답변은 없다. 그 무인기가 내려와서 찍고 올라갈 동안 발견한 군은 없었다. 합동본부가 발표를 했지만 군에서 책임을 지고 누군가 옷을 벗는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를 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허울뿐인 말인가? 민간기업은 보안 취약점을 제대로 패치하지 않고 대응하지 못했다가 돈도 잃고 사업체도 남의 손에 넘기고 있다. 어쩌면 매일 매일 전쟁을 치르는 건 군이 아니라 민간기업인지도 모르겠다. 뚫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이들에게 생명과 재산과 안녕을 맡길 수 있을까.
IT칼럼
[베이징의 속살]지하철-보안검색대 통과해야 승차할 수 있어요(2017. 03. 06 17:50)
2017. 03. 06 17:50 국제
가지고 있는 짐을 보안검색대 검정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놓고 X-레이 검사를 받고, 검색대원의 금속탐지기도 거쳐야 한다. 가방에 있는 생수 등 액체류는 꺼내 검사받는다. 지독한 만성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있는 베이징에서 지하철은 무척 유용한 교통수단이다. 출퇴근시간에는 지하철을 타야만 겨우 약속시간을 맞출 수 있다. 물론 사람이 많아 지하철 몇 대를 보내야 하는 일은 있지만 말이다. 베이징 동북쪽에 있는 집 근처의 14호선 푸통(阜通)역이나 14호선과 15호선 환승역인 왕징(望京)역을 자주 이용한다. 세계 지하철이 거의 표준화되다시피 해 어느 도시든 비슷한 풍경이지만, 중국의 지하철은 보안검색대를 지나쳐야 한다는 게 특징이다. 가지고 있는 짐을 보안검색대 검정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놓고 X-레이 검사를 받고, 검색대원의 금속탐지기도 거쳐야 한다. 가방에 있는 생수 등 액체류는 꺼내 검사받는다. 역마다 방식이 좀 다른데, 액체검사기가 설치된 역에서는 물병만 따로 추가 검사를 받으면 되고, 설치가 안 된 역에서는 검색대원 앞에서 한 모금 마셔 ‘독극물’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면 된다. 처음엔 다 마셔야 하는 줄 알고 서서 꿀꺽꿀꺽 넘기느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검색대원을 당황시키기도 한 적이 있다. 유동인구가 많으니 혹시 모를 테러 등 위협에 대비해 보안검색을 강화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출퇴근시간에는 영 귀찮다. 검색을 받기 위해 늘어선 줄이 승강장 줄보다 더 길기 때문이다.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 지하철 안전요원이 확성기를 들고 질서 유지를 당부하고 있다. / 베이징지하철공사 지난해 말 기준으로 베이징의 지하철은 공항철도를 포함해 전체 19개 노선, 288개 역이 있다. 총길이는 574㎞에 달한다. 서울 지하철 1~9호선의 총거리는 330여㎞다. 베이징 지하철 ‘맏형’격으로, 베이징의 동서를 잇는 1호선은 1965년 착공해 4년 만에 완공됐다. 지하철의 시작은 서울은 물론 워싱턴, 홍콩, 싱가포르 등 주요 도시보다도 빨랐다. 그러나 그해 11월 전력시스템 문제로 화재가 발생해 3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발생해 체면을 구겼다. 저우언라이 당시 총리는 군대까지 동원해 지하철 관리에 나섰지만 이후에도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1976년 9월 마오쩌둥 주석이 사망해 추모행사가 열린 날은 지하철이 전일 운행 중단됐다. 마오 주석이 사망한 후에 베이징 지하철 운영권이 군대에서 교통부로 환원됐다. 1호선 연장선인 8통(八通)선과 내부순환선인 2호선이 뒤를 이어 개통된 후 곧바로 13호선이 생겼다. 베이징시는 2000년대 초반에 이미 2015년까지 554㎞ 달하는 17개 지하철 노선을 만들어 시내를 거미줄처럼 연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13호선이 먼저 생긴 이유는 베이징의 첫 지상 경전철이었기 때문이다. 2002년 9월 베이징 서쪽에 있는 2호선 시즈먼(西直門)역까지 노선이 우선 개통됐다. 당시 1·2호선과 13호선의 운영회사가 달라 환승체계가 복잡했다. 2호선에서 13호선으로 환승하려면 개찰구를 나와서 13호선 표를 새로 산 후에야 탑승이 가능했다. 환승통로도 따로 없었다. 때문에 시즈먼역은 가장 짜증나고 번거로운 역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이후 5위안짜리(약 831원) 환승표인 ‘롄표(連票)’가 생기면서 사정이 좀 나아졌고, 2006년 교통카드 이카퉁이 만들어지면서 매번 표를 사야 하는 불편함이 사라졌다. 2014년 베이징 지하철 평일 이용객 수가 1000만명을 넘어섰고, 2015년 누적 이용승객 수는 32억50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4월 29일에는 표를 구매해 개찰구 통과한 승객 기준으로 최다 이용객 수 기록을 세웠다. 일주일 정도 이어지는 노동절 연휴를 맞아 승객들이 급증하면서 이날 이용객 수는 1289만4300명을 넘어서며 ‘베이징 시민의 발’로서의 역할을 입증했다.
베이징의 속살
[주목! 이 사람]보안관찰 거부하는 하영옥씨 “인권침해 방치 참을 수 없어요”
[주목! 이 사람]보안관찰 거부하는 하영옥씨 “인권침해 방치 참을 수 없어요”(2016. 11. 22 17:47)
2016. 11. 22 17:47 사회
“잘 지내시죠? 기자님, 아직도 에 계시죠?”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다. 그런데 주저하는 목소리다. “…사실 제가 보안관찰 대상이거든요. 14년을 아무 일 없이 살았는데, 지난 5월에 정기 신고를 하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저는 받을 의사가 없었거든요. 그랬더니 그걸로 불법이니 처벌하겠다고 합니다. 형사 말로는 구인영장이 발부돼서 강제집행을 하겠다고 하네요.” / 정용인 기자 하영옥씨.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2012년 5월 9일 심야 경기도 일산의 한 카페에서였다. 오후 11시 넘어 시작한 인터뷰는 다음날 새벽 2시 가까이 되어서야 끝났다. 일부 보수매체에서는 ‘국회에 진출한 주사파’의 배후인물이라고 그의 이름을 박아 대서특필했다. 기자가 밤늦게 그를 만난 건 그의 생업 때문이었다. 과거 ‘민혁당’의 핵심인물로 복역한 그가 출옥한 뒤 선택한 것은 정치나 사회운동이 아니라 학원강사였다. 말하자면 당시 보수매체들이 생트집을 잡은 것이었다. 인터뷰를 기점으로 ‘하영옥 배후설’은 잦아들었다. 하씨는 지난 5월 경찰서 형사와 주고 받은 문자를 보내줬다. “-평일에는 매일 학원에 출근하시나요? 출퇴근시간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누구신지요” -“하 선생님 아니세요?” “맞습니다만” -“일산서 박○○입니다.” 하씨는 자신이 왜 2003년 출옥한 후 14년 동안 보안관찰을 거부해 왔는지를 밝혔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하는 제도입니다. 3개월에 한 번씩 교우관계, 가족관계, 경제활동을 서면보고하도록 돼 있어요. 내 입장에서는 너무 모욕적이라서. 다른 피보안관찰자와 회합통신한 일이 있다면 그 내용은 또 뭐며, 여행을 갔다면 어디를 갔다고 또 신고를 해야 하니….” 역시 보안관찰 처분 대상인 최기영씨가 제도의 부당성에 대해 보충설명했다. 최씨는 이른바 ‘일심회’ 사건으로 복역 후 출소했다. “보안관찰 대상자는 3개월에 한 번씩 정식신고를 해야 합니다. 또 부정기신고도 있는데, 거주지 이전을 하거나 국외에 나가면 보안관찰 담당자에게 신고를 해야 하고, 신고하지 않으면 경고장이 서면이나 문자로 날아오고, 찾아오기도 합니다.” 최씨에 따르면 관련법에는 보안관찰 대상자를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으로 3년 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문제는 기한 없이 갱신된다는 것이다. 즉 언제까지 이 굴레를 달고 살아야 하는지 본인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최씨는 말을 이어갔다. “정기보고서 작성 서식을 보면 처음에 전향 여부를 묻는 것이 있습니다. 만약 전향했다면 대상자에서 제외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것이 헌법적 권리인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봤기 때문에 거부해 왔습니다.” 보안관찰제도가 ‘위헌적 요소가 상당하다’는 것에 하주희 민변 변호사도 동의한다. “몇 번 헌법재판소에 위헌신청을 냈는데, 안 되더라고요. 인권위에서도 작년에 관련 조사를 해서 자료를 축적한 것으로 압니다만 아직까지 권고가 나오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헌법적 권리에 위배된다면 법을 만드는 국회가 먼저 나서야겠지요.” 하 변호사는 정확한 보안관찰 대상자 숫자는 법무부가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파악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영옥씨는 16일 결국 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받고 나온 하씨는 “설혹 벌금이나 노역형이 나오더라도 맞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인간으로서 이런 인권침해가 방치되고 있다는 것을 참을 수 없어요.” 하씨의 ‘투쟁’을 주목하는 이유다.
주목! 이 사람
[특집| ‘이석기 사건’ 판결 이후]국보법, ‘내란보안법’으로 진화(2014. 02. 25 16:04)
2014. 02. 25 16:04 정치
ㆍ앞으로 내란음모 기소 남발 가능성… 다음 타깃 야권으로 확산 우려 2월 17일 수원지법 110호 법정에 소위 ‘RO모임’ 내란음모사건 선고공판이 열렸다. 평소 공판에는 법정 내에 4~5명의 경위들이 앉아 있었던 것과 달리 이날은 30여명의 경위와 법원 직원들이 법정에 들어와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내란음모에 있어서만큼은 무죄를 확신했다. 선고 다음날 만난 오병윤 통합진보당 원내대표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국가보안법이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니까 유죄가 나올 수도 있지만 최소한 내란음모 부분만큼은 무죄가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17일 법정에 온 통합진보당 당원들과 피의자 가족들의 얼굴 표정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이전 공판과 마찬가지로 넥타이를 매지 않은 채 짙은 감색 양복을 입고 나온 이석기 의원도 지지자들에게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선고에서 재판부는 1시간 가까이를 ‘북한의 위험성’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한 재판 참가자는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의 희망섞인 분위기는 점점 사라져 갔다”고 말했다. “이런 식이면 국가보안법 쓸 필요없다” 선고가 끝나자 이 의원과 지지자들의 얼굴에는 낙담한 기색이 완연했다. 한 피고인의 부인은 결과가 믿기지 않는 듯 울다가 쓰러지기도 했고, 재판부에 “정치법원 부끄럽지도 않으냐”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다. 지난 3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법에서 열린 내란음모 사건 결심공판에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미소를 짓고 있다. / 김기남 기자 내란음모 유죄 판결을 두고 일각에서는 국가보안법이 ‘내란보안법’으로 진화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국가보안법을 쓸 필요조차 없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 집행위원장을 지내는 등 시민사회 활동가 중에서는 국가보안법 사건을 다룬 경험이 제일 많은 인사 중 하나다. 그는 이번 내란음모사건과 기존 국가보안법 사건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며 향후 내란음모 기소가 남발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기존의 방식대로 사건이 진행됐다면 검찰에서 미리 이적단체 혐의로 기소했을 것이다.  그런데 검찰에서 이적단체로 기소하지 않아도 법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조직의 실체가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앞으로 국가보안법을 쓸 필요 없이 내란음모로 기소해도 된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도 비슷한 의견이다. 홍 교수는 “이런 식이라면 그동안의 국가보안법 사건은 왜 내란음모로 기소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라며 “미래를 본다면 (국보법 사건들이) 죄다 내란음모가 성립되는 황당한 상황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17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내란음모 사건 선고공판이 끝난 후 이석기 의원 등을 태운 법무부 호송버스가 법정을 나가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재판부의 판결문에 따르면 RO의 존재 여부가 내란음모 유죄 판결의 가장 중요한 근거 중 하나다. 또한 RO의 존재를 뒷받침해주는 것은 제보자 이모씨의 증언 내용과 지난해 5월 ‘합정동 모임’(소위 ‘RO모임’) 녹취록이다.  변호인은 내란음모가 구체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봤지만, 재판부는 “회합에서 폭동의 세부적인 계획에까지 이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논의된 폭동의 실현 가능성과 그 실질적 위협성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봤다.  또한 변호인단은 재판 내내 제보자 이씨의 증언과 녹취록의 신빙성을 문제삼았지만, 재판부는 변호인단 주장의 대부분을 배척했다. 제보자 오락가락 진술 법원서 인정 변호인단은 재판 내내 제보자 이씨의 진술이 오락가락했음에도 재판부가 받아들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제보자 이씨는 2003년 RO에 가입했다고 진술했는데 나중에 이를 2004년으로 바꿨다.  원래는 다른 인물을 총책으로 지목했다가 이석기 의원이 총책이라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국정원 직원과 사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금품을 수수했다는 내용도 재판 도중 드러났다.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은 20일 국회 발언에서 “김용판 재판에서는 권은희 과장의 일관된 진술을 배척하더니, 이석기 의원의 재판에서는 (국정원으로부터) 돈까지 받은 제보자의 오락가락 진술을 입맛에 맞게 인용했다”며 유죄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씨 증언의 신빙성을 의문시하는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하며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실의 주요 부분에 대해서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확신에 찬 자세로 진술에 임하고 변호인들의 집중적인 반대심문에도 거침없이 답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합정동 모임’이 비밀리에 이뤄졌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한 진보단체 활동가는 “조직의 활동에 필요하면 비공개 모임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비공개 모임 자체가 내란의 근거가 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판결문에 RO 조직원으로 등장하는 임미숙 통합진보당 수원시위원장도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를 한다. “행사는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질 수 있다. 보안수칙을 갖는 것은 어느 정당이나 마찬가지다. 특정 문화가 있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현재 국정원은 추가적인 ‘내란음모’ 혐의자들의 사법처리를 준비하고 있다. 국정원이 말한 추가 사법처리 예상자들은 이미 소환조사를 마친 9명 및 임미숙 수원시위원장 등 판결문에 등장하는 사람들로 보인다.  합정동 모임 참가자들 중 이미 국정원이 수사한 인물로는 홍성규 진보당 대변인, 우위영 이석기 의원 보좌관 등이 있다. 홍 대변인은 “언론에 언급되는 것을 보니 우려했던 일들이 벌어지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이번 내란음모사건이 진보당 이외에 야권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청호 부산 금정구의원은 “다음에는 정의당이 내란음모나 국가보안법의 타깃이 될 수 있다”며 그 이유로 “정의당 안에도 민주노동당 출신인 NL(자주파) 세력이 있기 때문에 국정원에서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구의원은 원래 통합진보당 내 국민참여당계로 불렸던 인물로 현재는 무소속이다. 국정원, 10여명 추가 사법처리 검토 이 구의원은 ‘경기동부연합’으로 통칭되는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비민주성과 친북한적인 성향을 지적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내란음모 유죄를 모두 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나도 그렇지만 참여계 내에서도 내란을 일으킬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내란음모로 처벌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박래군 소장은 통합진보당 측도 ‘이미지 쇄신’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불신이 있기 때문에 (당국에서도) 쉽게 노리고 들어오는 면이 있다. 국민들 사이에 북한 추종세력이라고 낙인찍힌 부분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 스스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소 북한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도 무조건 회피만 할 것이 아니라 정리된 입장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 박 소장의 진단이다. 오병윤 의원도 당에 씌워진 종북 이미지를 벗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했다. 그는 “남북이 더욱 더 화해·협력으로 가는 사이가 된다면 그런 인식들도 없어져갈 것”이라며 “남과 북이 협력으로 갈 수 있도록 평화통일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란음모 피의자 홍순석 부인 “남편이 북한찬양을 한 걸 본 적이 없어요” 1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사옥씨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내란음모사건 1심 선고가 내려진 17일, 박사옥씨(41)가 집에 돌아오자 7살짜리 딸은 엄마에게 “왜 혼자 왔냐”고 물었다. 박씨는 딸에게 “아빠 일이 아직 다 안 끝났대”라며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박씨는 내란음모사건 피의자 홍순석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49)의 부인이다. 박씨는 홍 부위원장과 사이에 12살, 7살 난 두 딸을 두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큰딸에게는 남편 일을 숨길 수 없었지만,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둘째에게는 “아빠가 멀리 돈 벌러 갔다”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혹여라도 막내가 알게 될까, 집안에서 컴퓨터도 쓰지 못하게 막을 정도였다. 그런다고 애들이 모를 리 없었다. “국정원에서 압수수색 들어왔을 때 애들이 현장을 다 봤어요. 어느날은 갑자기 작은 애가 ‘혹시 아빠 잡아간 사람들 경찰 아냐?’라고 묻는데 가슴이 철렁했어요. 제가 정확히 알려주지 않아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는 눈치로 알고 있었던 거죠.” 박씨의 작은딸은 3월에 있을 자신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아빠가 올 것이라고 아직도 기대하고 있다. 선고 전날인 16일 박사옥씨는 오랜만에 집안 대청소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 시작한 청소는 해가 진 뒤에야 끝났다. 지난해 8월 28일 남편이 국정원에 의해 체포된 지 6개월 만이었다. “내일이 되면 혹시 남편이 감옥에서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가 나고 국가보안법 혐의는 집행유예가 되지 않을까 기대를 했는데….” 이튿날 박씨와 다른 피의자 가족들은 약간의 희망을 안고 수원지법을 찾았다. 석방된 남편과 바로 만나게 하려고 자녀들을 데려온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희망은 희망일 뿐이었다.  홍 위원장은 징역 6년에 자격정지 6년을 선고받았고, 다른 피의자들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선고가 끝난 이후 박씨는 한동안 방청석에 그냥 앉아 있었다고 한다. “지난 5개월 동안 김정운 판사가 재판을 공정히 진행했다고 생각했는데, 판결 내용은 그동안 봤던 그 판사가 아닌 거예요. 검사의 주장을 다 받아들일 거라면 왜 수십 번이나 재판을 했을까. 암담하면서도 억울한 생각뿐이었어요.” 내란음모사건을 유죄로 이끈 결정적 기여자인 제보자 이아무개씨는 홍순석 부위원장의 대학 후배다. 여성단체를 운영 중인 박사옥씨도 종종 남편과 함께 있는 이씨를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남편과 절친이었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프락치’가 되는 상황에서 저도 모르게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활동을 하다 보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마련인데 저도 모르게 ‘저 사람도 혹시?’라는 의심이 어쩔 수 없이 드는 때가 있어요. 과연 앞으로 사람을 믿고 살아갈 수 있을는지….” 판결문에 따르면 홍 부위원장은 제보자 이씨 등과 함께 세포 모임을 하며 주체사상을 학습했고, 북한을 찬양하는 발언을 수차례 했다. 박씨는 물론 판결문보다는 남편을 믿는다고 말했다. “저는 지금도 남편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아요. 그동안 남편이 그런(북한 찬양) 행동을 한 걸 본 적이 없으니까요. 제 남편은 전쟁 반대 평화운동을 해왔던 사람인데 무장투쟁을 언급했다는 식으로 나오는 게 황당할 따름이죠.” 그래도 박씨는 한가닥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한때 남편의 ‘동지’였던 제보자 이씨의 마음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선고가 끝나고 나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과연 이씨는 이 결과를 듣고 다리를 쭉 뻗고 잘 수 있을까. 지금 결과를 보고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일말의 양심이 그에게 남아 있다면 2심에서는 진실을 밝혀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어요.”
특집
이전1 2 3 다음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