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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겸의 풍경](58)경북 봉화 청량산 청량사-‘청량산인’ 퇴계가 사랑한 가을 산(2023. 12. 07 07:00)
- 2023. 12. 07 07:00 문화/과학
- 가을이면 꼭 가보고 싶었던 산이 있다. 경북 봉화의 청량산. 대한민국에서 오지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역이어서 쉽사리 발걸음을 옮길 용기를 내기가 어려웠다. 여행이라는 게 그렇다. 좀처럼 마음 내기 어려운 먼 곳이어도 한번 다녀오면 자꾸만 갈 일이 생긴다. 그토록 가을마다 가고 싶었던 그곳에 다녀올 일이 종종 만들어졌다. 시기도 딱 좋았다. 단풍이 절정에 달하는 때. 그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다행히 이틀의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청량산은 퇴계 이황이 사랑했던 봉화의 절경이다. 오죽하면 퇴계는 도산서원에서 15㎞를 걸어 청량산에 올랐다. 스스로를 ‘청량산인’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가 도산서원에서 출발해 청량산을 오르던 길은 이제 ‘예던길’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가 됐다. 청량산에서도 청량사는 절정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다. 첩첩이 늘어선 산자락 가운데에 쏙 박혀 있는데, 절의 가람 배치가 매우 묘하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부처의 세계로 다가가는 방식을 택한 다른 사찰과 달리 이곳은 산의 생김새를 따라 물음표처럼 전각을 배치해 두었다. 보통의 산사를 상상한 사람이라면 생각지도 못한 풍광에 깜짝 놀라게 된다. 그 독특한 산 한복판이 가을로 물들었다. 파란 하늘과 반짝이는 단풍의 빛깔. 모두가 입을 모아 “우와!”를 외친다. 퇴계가 사랑했던 이 산에서 나의 마음도 함께 물들어가고 있었다.
- 정태겸의 풍경
- [정태겸의 풍경](36)경북 봉화 - 낙동강의 아침(2022. 11. 04 11:16)
- 2022. 11. 04 11:16 문화/과학
-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강원도 태백의 황지연에서 출발한 낙동강의 물줄기가 비로소 강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곳 경북 봉화. 청량산을 끼고 내달리는 물줄기는 봄가을 아침이면 물안개를 피워올린다. 당초 목적지는 ‘범바위’라 불리는 낙동강 인근의 명소. 굳이 그곳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언덕배기를 오르는 길 곁의 절벽 아래로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우뚝우뚝 솟아오른 산은 봉우리가 너울댔고, 골짜기 사이로 내달리던 강은 차가운 새벽 공기에 짙은 물안개를 뿜어냈다. 낙동강 줄기 그대로 하얀 구름이 함께 흘러가는 듯했다. 소백산 줄기를 따라 굽이치는 산맥은 너울대는 물안개를 품속으로 끌어안았다. 태양이 솟아오를 때쯤 물안개의 춤사위가 격해졌다. 서서히 형체가 옅어질수록 하얀 실타래는 펄럭이며 바람에 흩날렸다. 고요한 봉화의 아침을 낙동강의 물안개가 깨우고 있었다.
- 정태겸의 풍경
- [길에서 만난 사람]한국의 오지, 어진 옛 마을 봉화(2012. 09. 11 12:11)
- 2012. 09. 11 12:11 문화/과학
- 정감록 비결에서 일컫기를 봉화는 한국 십승지(十勝地) 중의 한 곳으로 ‘예로부터 산이 깊고 물이 풍부하여 세상을 등지고 숨어 살기 좋은 고을’이라 전하고 있다. 그 산골로 길잡음을 하면서 최씨 할아버지를 만날 작정은 애당초 없었다. 수년 전 정월 어느날 다녀온 봉화읍 닭실마을을 다시 둘러보고, 바래미마을과 황전마을 등 봉화읍을 에둘러 오래된 옛 마을 풍경들을 기웃거릴 셈이었다. 그리고 만산고택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그저 오랜만에 땀을 좀 흘리며 청량산에 올라 그대로의 맑고 청정한 기운을 얻고 산길을 내려올 작정이었다. 가을 기운이 완연한 바래미마을 풍경. 500년 역사 정갈하게 남아있는 닭실마을 오지 중의 오지, 두메 중 두메였던 봉화가 몇 년 사이 그나마 길이 수월해지는 바람에 두어 발짝 가까워진 셈이다. 몇 해 전에 후배와 함께 도보여행 삼아 맨발로 걸어도 좋을 듯한 봉화의 산길과 숲길을 걸은 적이 있었다. 봄바람이 제법 살랑대고 사과꽃이 필 무렵이었으니, 어느 늦은 봄쯤이었을 게다. 하지만 이번 여정은 그저 봉화읍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옛 마을 두어 곳을 기웃거릴 작정이다. 터벅터벅 걸으며 오래된 옛 마을의 풍경을 돌아보고 그 터에서 사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마치 고향집에 온 듯한 따스한 기운이 들게 마련이다. 길의 첫걸음은 봉화 5일장이 열리는 봉화읍내 장터. 이름이 초가집인 장터 바로 앞 식당에서 요기를 하고 제일 먼저 봉화읍의 왼쪽에 자리한 닭실마을로 향한다. 닭실은 전통한옥의 아름다움과 영남 선비의 고고함이 배어 있는 마을로 약 500년 전에 뿌리를 내린 마을이다. 마을의 터잡이가 이곳이 마치 닭이 알을 품은 형상이어서 닭실이라고 이름 지은 곳이다. 말소리가 나는 대로 치면 달실이라 부른다. 한자로는 유곡(酉谷)이라 적는데 지형이 ‘금계포란형’의 명당이라 여기는 것이다. 를 살피면 이 봉화의 유곡을 경주의 양동, 안동의 내앞, 풍산의 하회와 함께 삼남지역 4대 길지로 손꼽았다. 마을의 들머리로 들려면 다리를 건너는데, 기와지붕이 나란히 하늘을 받치고 있는 품과 마을 앞뜰의 푸르른 들판이 넉넉한 품세를 지닌 양반마을의 풍모를 세우기에 모자람이 없던 터이다. 그래 얼마 전 큰 태풍을 두 개나 맞으며 많은 생채기를 얻은 타 지역과 달리 닭실의 들녘은 별다를 것 없이 편안하다. 경북 북부의 전형적인 양반가옥이라는 충재 권벌의 종택이 마을의 중심이다. 종택을 둘러보고 종택 옆으로 자리한 정자 청암정까지 올라본다. 커다란 거북바위 위에 누각을 짓고 바위 둘레에 물을 끌어들여 넘치지도 않을 듯한 못을 두었다. 정자에 올라 잠시 숨을 돌리니 마음이 느긋해지고 아늑해진다. 독립운동의 역사가 살아있는 바래미마을 닭실을 돌아나와 내성천으로 길을 잡는다. 닭실마을에서 마을길 논길 지나 내성천 물길 건너면 석천계곡 물길이 이어진다. 물길을 따라 20여분 남짓을 오르다보면 멀리 정자가 나타난다. 충재 선생의 큰아들 권동보가 세운 석천정이 깊은 숲에 고즈넉이 자리를 하고 있다. 석천계곡 일대와 닭실마을은 사적 및 명승으로 지정돼 있다. 다시 봉화읍으로 나와 해저리의 바래미(海底·바다 밑이라는 의미)마을로 길을 잡는다. 하상(河床)보다 낮은 바다였다는 의미의 ‘바래미’ 또는 ‘해저’라 불리는 마을이다. 주목할 점은 바래미마을은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가 살아있는 마을이다. 무궁화 나무들이 심어진 마을 입구로 들어 5분 남짓을 걸으니 남호구택이 나타난다. 남호구택은 일제 때 경상도의 명망 높은 부호인 남호 김래식 선생이 살던 집이다. 독립운동의 역사가 살아있는 마을로 알려진 해저리의 바래미마을. 선생은 상해임시정부의 군자금으로 전 재산을 저당하고 대부까지 받아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제공했다고 전해진다. 또 바로 이웃한 만회고택은 조선 말기 문신인 만회 김건수 선생이 학문을 위해 건립한 전통와가다. 이 만회고택은 1919년 3·1운동 직후에 이곳 출신인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 선생을 중심으로 유생들이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한 독립청원서를 작성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워낭소리 울려 퍼지던 그때 그 옛 마을 바래미마을을 벗어나 상운면으로 길을 잡는다. 상운면에는 영화 촬영지가 자리하고 있다. 정감록 비결에서 일컫기를 봉화는 한국 십승지(十勝地) 중의 한 곳으로 ‘예로부터 산이 깊고 물이 풍부하여 세상을 등지고 숨어 살기 좋은 고을’이라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외진 곳으로 태백준령의 험난한 협곡과 울창한 수목의 지형 덕에 그만큼 번잡스러움 없이 지내기가 좋은 터라는 뜻이다. 영화 의 최원균 할아버지는 늙은 일소가 떠난 그 자리를 아직도 지키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 마을은 영화 의 주요 촬영장이었던 곳이다. 영화는 산골의 노인 부부와 그들이 키우는 나이 먹은 일소의 인연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40년을 살며 주인에게 순종하고 살았던 어진 일소와 부지런한 농사꾼 최원균 할아버지(봉화군 상운면)가 이곳에서 평생을 인연을 맺고 함께 살아온 이야기가 그 줄거리다. 부지런하고 어진 농투성이 최씨 할아버지의 동반자였던 늙은 일소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었다. 아직도 워낭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그 들판. 오랫동안 함께 살며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40년의 동반자가 떠난 그 자리를 아직도 늙은 아비가 홀로 앉아 있다. 할아버지는 소가 곁을 떠난 후 뒷산에 소의 무덤을 따로 써 놓았다. 오가며 할아버지의 안부를 묻는 동리 사람들과 가끔 워낭소리의 여운을 잊지 못한 이들이 간혹 산길을 돌아 이곳을 찾아오는 이유다. 어쩌면 이 사람뿐 아니라 미미한 축생들도 그 터의 온화한 품성을 타고난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땅에서 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에 대한 존중과 예의. 온화한 그 마을의 터에서 사람들은 어쩌면 평상심을 찾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함께 오래 살면서 어질고 부지런했던 늙은 일소의 워낭소리가 아직도 이명처럼 들리는 이유일 것이다. 청량산의 12 봉우리가 연꽃잎처럼 둘러싸고 있어 기도 효험이 좋다고 알려진 청량사는 불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해질 무렵 일정을 마무리하고 춘양면 만산고택에서 하루를 묵는다. 이튿날 햇귀가 오르는 시간에 맞추어 청량산에 오를 셈이다. 청량산은 퇴계 이황 선생이 중국의 무이산에 비유하여 ‘조선의 무이산’이라 칭하며 주자학의 성지로 칭송하던 명산이다. 아침 안개가 걷히는 숲길을 따라 오르면 맑고 청량한 산의 기운이 온몸을 감싸 안는다. 청량산은 이름 그대로 산의 기운이 맑고 청량해 많은 불자들이 찾는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고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12 봉우리(육육봉)가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어 기도의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또 청량사를 지나 정상 청량산 하늘다리까지 오르는 길은 전국의 산악인들이 손꼽는 최고의 산행 코스이다. 봉화군과 안동의 경계에 위치한 청량산은 높이 870m로, 태백산맥의 줄기인 중앙산맥에 솟아 있다. 청량사를 지나 하늘다리까지 오르면 발 아래로 낙동강이 흐르는데, 수려한 산세와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청량산에는 신선이 내려와서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대, 선녀가 유희를 즐겼다는 선녀봉, 최치원이 마시고 정신이 맑아졌다는 총명수와 감로수 등의 약수가 있으며, 27개의 사찰과 암자 터가 숨어 있다. 글·사진|이강 leeghang@tistory.com
- 길에서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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