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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아세안] (37) 중국의 부채 함정에 빠진 라오스
[가깝고도 먼 아세안] (37) 중국의 부채 함정에 빠진 라오스(2024. 09. 06 16:00)
2024. 09. 06 16:00 국제
라오스 고속철/라오스 고속철역 홈페이지 미국의 경제전문지 ‘시이오월드 매거진(CEOWORLD Magazine)’이 지난 5월 6일 세계은행 자료를 바탕으로 ‘2024년 중국에 가장 많은 빚을 진 국가’ 순위를 발표했다. 상위 20개 국가 대부분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빈곤 국가들이 차지했다. 이중 세계적으로 가장 큰 우려를 사고 있는 라오스는 105억달러(약 14조원)라는 국내총생산(GDP)액만큼의 채무를 지고 있는데, 그중 절반이 중국에 진 빚이다. 라오스는 2015년부터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주요 프로젝트로는 메콩강 유역의 수력발전 사업과 중국 국경까지 연결하는 고속도로 사업 등이다. 특히 2021년 12월 개통된 중국-라오스 간 414㎞의 고속철도는 라오스의 중요한 물류망을 구축한 프로젝트로 기록되고 있다. 이에 더해 지난 7월 19일에는 라오스에서 태국 방콕까지 철도가 개통되면서 중국-라오스-태국-말레이시아가 철도로 연결됐다. 내륙 국가인 라오스로서는 중국과 말레이시아 해안까지 연결되는 물류망이 확보되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제조 기반 시설이 거의 없는 라오스가 중국으로 수출할 수 있는 것은 농산물과 일부 천연자원에 불과하다. 반대로 각종 중국산 저렴한 공산품과 농산물이 라오스를 장악하면서 중국으로의 경제적 종속이 심해지고 있다. 중국 경제에 종속된 라오스 미국 윌리엄앤드메리대학의 ‘에이드데이터(AidData) 연구소’가 중국의 해외 대출과 보조금을 추적해 내놓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국-라오스 고속철 사업에는 59억달러(약 7조9000억원)가 투입됐다. 철도 사업은 중국과 라오스가 함께 투자해 ‘7 대 3’으로 지분을 나눠 갖는데, 라오스는 부담해야 할 자금 대부분을 중국수출입은행에서 빌려 충당했다. 라오스는 중국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면서 국가채무가 2배로 늘어났다. 메콩강에 수력발전소를 짓는 프로젝트에 55억달러, 중국과 라오스 북부를 연결하는 176.3㎞ 도로 건설에 38억달러, 경제특구 및 산업단지 개발에 12억달러 등이 투입됐다. 대체로 중국 자본으로 짓고, 중국 국영 기업이 운영하다 50년 후에 라오스에 돌려주는 방식이다. 문제는 중국 자본을 빌려 국가 인프라를 확충하고 국가 이익도 창출한다는 취지로 일대일로에 참여했지만, 라오스는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0~2023년 라오스가 중국에 지불을 연기한 채무액은 20억달러(2조7000억원)에 달한다. 무리한 일대일로 사업 참여로 인해 국가 채무가 늘어나고 외환보유액이 줄어들자 라오스 환율은 하염없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세계은행이 2024년 4월 홈페이지에 게재한 ‘라오스 국가 개요’에 따르면 “라오스 통화 ‘킵’은 2023년 1월에서 2024년 2월 사이 미국 달러 대비 23% 하락했으며, 이는 2024년 2월에 25%에 달한 높은 인플레이션을 촉진하는 요인이 됐다”. 2022년 1월 1일 기준 ‘미국 1달러=라오스 1만1200킵’이던 것이 2024년 9월 1일 현재 2만2170킵으로 2년 8개월 만에 100% 가까이 폭등했다. 환율이 폭등하자 라오스 환율 기준으로 갚아야 할 채무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라오스는 빚 구덩이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라오스가 채무를 갚지 못하면 중국과 공동 투자한 수력발전댐, 고속도로, 철도는 고스란히 중국의 소유가 된다. 라오스는 이미 2020년 9월 라오스 국영 송전 전력회사(EDLT·Électricité du Laos Transmission Company Limited)의 지분 90%를 중국 남방전력망공사에 넘겼다. 라오스가 감당할 수 없는 23개의 수력 발전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55억달러의 채무를 일부 감당하기 위해 매각한 것이다. 이제 중국이 마음먹고 전력 공급을 안 하면 라오스 국가 전체가 멈추게 된다. 라오스가 중국에 종속된 것이다. 중국의 부채 함정 외교 인도 뉴델리 정책연구센터의 브라마 첼라니는 교수는 이를 두고 중국의 ‘부채 함정 외교’라고 명명했다. 중국이 저개발국가에 자금을 제공하며 인프라 사업을 제안해 공동 개발에 나서는데 대체로 수익이 나지 않아 해당 국가들의 채무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빚 갚을 길이 없는 해당 국가들은 결국 인프라 사업 소유권을 중국에 넘기게 된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구,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구,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처럼 중국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했다가 빚만 지고 국가 인프라를 빼앗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다른 문제는 중국이 각 국가에 제안한 인프라 사업들이 해당 국가에는 도움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중국에 군사·안보적으로 필요해서 제안하는 것으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구,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구 모두 미국이 중국을 해상 봉쇄했을 때 중국의 해외 해군기지 역할을 위해 진행된 프로젝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라오스 철도 사업 역시 라오스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중국 자원 수입량의 80%를 차지하는 믈라카해협이 미국으로부터 봉쇄당했을 때 말레이시아-태국-라오스-중국으로 연계되는 육로 운송망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중국의 부채 함정에 빠진 국가는 정치적으로도 중국에 종속된다. 라오스에 이어 아세안에서 두 번째로 중국에 채무가 많은 캄보디아는 2012년 아세안 의장국 시절 중국 편에 서서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공동 성명을 채택하지 못하게 막았다. 이는 아세안 역사상 처음으로 공동 성명이 채택되지 않은 사건으로 기록됐다. 2016년 아세안 의장국이었던 라오스 역시 베트남과 필리핀이 제안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무효로 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 판결 내용을 아세안 공동 성명에 포함하지 못하게 막았다. 물론 중국이 인프라 투자를 제안한 저개발국가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그만큼 중국은 큰 위험을 떠안기 때문에 채무에 대한 이자가 높고, 이를 감당하지 못한 국가들의 인프라 사업을 대신 운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중국은 유럽 물류의 허브로 떠오른 그리스 피레우스 항구 사례나 아프리카 케냐의 물류 개선과 관광 활성화를 일으킨 동아프리카 고속철도 사업을 일대일로 성공 사례로 내밀기도 한다. 하지만 수익을 내기 어려운 인프라 사업을 제안하고, 갚을 수 없는 규모의 채무를 짊어지게 해서 결국 중국으로 소유권이 넘어가는 이런 방식이 ‘신식민지 정책’임을 경고한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2018년 6월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가난한 나라에 큰돈을 빌려줄 때 그 프로젝트가 중국 자신들의 것이 될 것을 이미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이를 겸허히 수용해야 하지 않을까.
가깝고도 먼 아세안
[박이대승의 소수관점](25)부채감으로 유지되는 사회(2023. 04. 21 13:55)
2023. 04. 21 13:55 사회
한국사회에서 정의의 첫 번째 의미는 ‘가해자의 죗값을 받아내는 것’이다. 이 과정은 가해자-피해자 도식과 복수극의 형식을 따라 실현된다(‘박이대승의 소수관점’ 16회와 24회 참고). 여기에는 ‘피해자를 위한 정의’를 주장하는 제3자가 개입하는데, 이들을 움직이는 힘은 부채감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부채감은 말 그대로 ‘내가 타인에게 빚지고 있다’는 감정이고, 이는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이어진다. 부채감은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일반적인 감정 중 하나지만, 문화권마다 형태가 다르다. 예컨대 한국의 부모 자식 관계는 늘 눈물을 동반할 정도로 절절한데, 이들은 끊임없이 서로에게 미안해한다. 미안함은 부채감의 일종이다. 이들의 사랑은 부채감으로 유지되고, 서로에 대한 의무도 부채감에서 나온다. 이러한 의무는 책임감이 부과하는 의무와 미묘하게 다르다. 책임은 상호 간의 약속에 기초한 제한된 의무를 부과하는 반면, 부채감에서 나오는 의무에는 제한이 없다. 한국의 가족은 서로에게 한없이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고, 이는 한없이 받아야 한다는 감정과 쌍을 이룬다. 이런 식의 사랑은 종종 불행과 고통으로 이어진다. 죽은 자와 피해자에 대한 강력한 부채감은 한국사회의 독특성 중 하나다.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회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대략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선배 투사들의 피와 땀 덕분이니 우리 역시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당시 선배들은 새내기답지 않은 진지한 발언이라고 칭찬해주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이런 논리라면,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풍요는 앞선 물리학자들의 노고 덕분이니 우리 모두 열심히 물리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앞선 세대의 희생이 현세대에게 의무를 부과한다는 믿음은 많은 사람이 공유하지만, 결코 합리적이지는 않다. 죽은 자의 의지를 어떻게 해석할지, 산 자에게 어떤 의무를 부과할지는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어쨌든 이런 부채감이 한국 현대사를 이끌어온 가장 강력한 동력임은 분명하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기본적으로 ‘열사 투쟁’의 형식으로 전진해왔다. 1980년대 한국의 반독재 투사들은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갈망보다는 5·18에 대한 부채감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혁명은 삼색기를 든 마리안이 이끌고, 한국의 민주화 투쟁은 먼저 간 열사의 유언이 이끈다. 세상 어디에서나 민주주의의 발전은 시민의 저항과 희생을 요구하고, 희생은 살아 있는 자에게 부채감을 남긴다. 하지만 희생자의 한(恨)을 풀어주는 것이 사회운동의 목표가 되는 곳은 드물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은 근대 정치 일반에 적용할 수 있지만,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는 명령이 정치적 이념과 가치를 압도하는 건 분명 한국적 현상이다. 죽은 자의 정신을 좇는 정치, 부채감에 의존하는 정치는 이념과 가치에 기초한 정치와 전혀 다른 역사를 만든다. 최근 10년간의 한국 정치를 돌아보자. 노인 세대의 상당수가 ‘흉탄에 스러져간 박정희·육영수’에 대한 부채감으로 박근혜를 지지했다. 이른바 ‘검찰개혁’이라는 집단적 요구가 태어난 배경에는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대중의 부채감이 있다. 정의당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노회찬의 이름을 소환하는 것은 정의당 지지자의 부채감을 악용하기 위해서다. 조국 가족을 방어하려는 대중의 집단적 의지도 이른바 ‘지못미’에서 비롯한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의 기원과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감정이 발생하는 순간, 부채 관계와 부채감도 곧바로 탄생한다. 한국사회와 정치를 움직이는 거대한 감정의 덩어리 중 가장 강력한 것들은 대부분 부채감과 결합돼 있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한국에서 대규모 참사나 사회적 폭력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뉘고, 가해자에게 죗값을 받기 위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이 복수극의 주인공은 가해자와 피해자만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를 목격한 제3자들은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을 공유한다. 이는 피해자에 대한 부채감의 일종이다. 기억하겠다는 약속의 반복은 그러한 미안함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 자신과 피해자의 부채 관계를 청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이러한 부채 관계는 가해자를 통해 매개된다. 제3자가 피해자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은 가해자의 죗값을 받아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안함을 공유하는 제3자들은 가해자를 지목하고, 그를 처벌하기 위해 거대한 집단 의지를 형성한다. 이런 식으로 정의에 대한 대중의 요구는 거의 예외 없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로 수렴한다. 피해자와 제3자의 부채 관계는 시민과 시민 사이의 관계가 아니다. 시민적 연대는 ‘당신이 자유롭지 못하면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자유와 평등의 원리에 기초한다. 시민의 공동체에서 제3자는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아니라 시민적 의무에 따라 피해자와 연대한다. 시민의 안전과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공동체의 존재 이유이고, 이러한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은 모든 시민의 의무다. 한국사회는 공동체-시민 관계가 아니라 가해자-피해자-제3자의 연쇄적 부채 관계를 통해 피해자를 보호하려 한다. 이런 식의 보호는 그러나 전적으로 제3자의 부채감에 의존한다. 부채감은 때때로 상상을 초월한 힘을 발휘하지만, 때로는 허망한 흔적만 남기도 한다. 지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일반적 감정은 ‘박근혜 탄핵으로 우리는 할 일을 다했다’는 정도 아닌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아무리 강력한 처벌을 받아도 피해자가 잃은 것을 온전히 되찾을 수는 없다. 죗값을 완전히 치르기란 불가능하다. 그에 비해 제3자의 부채감은 상대적으로 가볍다. 피해자가 어떤 상태에 있든, 가해자가 이미 강력한 처벌을 받았거나 더 이상의 처벌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면,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도 흐릿해진다. 결국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은 가해자 처벌을 위한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기간뿐이다. 부채감에서 삶의 동력을 찾는 개인이 행복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부채감에서 변화의 동력을 찾는 사회와 정치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도 힘들다. 한국의 민주화와 정의를 실현해온 힘은 부채감에서 나왔지만, 이제 그 결과물이 과연 온전한 민주주의와 정의인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고통스럽고 혼란한 9년이 흘렀다. 한국은 지금 무기력한 평온함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지금이야말로 정치와 사회의 급진적 변화를 기획해야 할 때가 아닐까.
박이대승의 소수관점
양극화 부채질하는 정부의 부자 감세(2022. 08. 12 13:33)
2022. 08. 12 13:33 경제
ㆍ경기둔화·인플레이션·금리 인상 겹치면서 계층 간 양극화 커져… “세제개편 땐 더 악화” 30대 초반의 직장인 윤희정씨(가명)는 최근 1개월 유급휴가를 다녀왔다. 3년을 근속한 후 받은 꿀맛 같은 재충전 시간이다. 캐나다 로키산맥 트래킹에 이어 쿠바여행까지 다녀왔다. 희정씨는 “한 달이란 기간을 쉬어본 적은 처음이라 이 시간을 잘 활용해야겠다는 기대감이 컸다”면서 “자연을 좋아해 짧은 휴가로 다녀오기 어려운 곳들, 도시와 단절된 곳들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팀원들의 배려로 휴가 동안 업무와는 철저히 단절될 수 있었다. 충분히 쉬니 복귀할 때도 마음이 가볍다. “휴가가 끝났다는 아쉬움보다 얼른 가서 팀원들이 진 짐을 내려주고 싶은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고 했다. 서비스연맹 유통분과 소속 마트노동자들이 8월 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희정씨는 “길게 쉬면 생각하는 것도 바뀌고, 자신의 일하는 방식을 돌아보고 회사에 없던 애정도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와 함께 열심히 일한 시간을 마무리할 때 짧든 길든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면 기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리프레시(재충전) 휴가가 정착되는 건 인재 영입을 위한 방편인 면이 크다”고 말했다. 희정씨가 일하는 ICT 분야의 대기업들은 3~5년 단위로 한 달의 유급휴가를 주는 곳이 많다. 최근에는 차별화를 위해 국내외 휴양지에서 일할 수 있는 ‘워케이션’을 제공하는 곳도 많다. 일례로 네이버는 지난 7월 4일부터 매주 직원 10명을 추첨해 강원도 춘천에서 4박5일간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7월부터 국내 워케이션을 허용한 네이버의 관계사 라인플러스는 올해 원격근무지를 일본, 대만, 태국, 싱가포르 등으로 확대했다. IT기업만이 아니라 CJ ENM이나 한화생명 같은 대기업도 워케이션을 도입했다. 의무휴업 폐지, 노동자·소상공인 위협 희정씨는 재충전 휴가, 쉴 권리를 보장하는 문화가 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소규모 사업장으로도 퍼지길 희망했다.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정부는 현재 주 최대 12시간인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1개월 단위로 관리해 약 52시간(12시간×4.345주)의 총량만 지키면 되는 방향으로 주 52시간 근무제 개편을 검토 중이다. 이런 방향으로 근무시간이 조정되면 주 6일 동안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은 주 60시간 이상 일하다 숨지면 과로사로 인정하는데, 정부가 과로사 기준을 넘겨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셈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7월 21일 “국가가 국민의 일할 자유, 경제적 자유를 제약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갖고 있는 ‘시간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며 정부 안(案)을 지지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추진도 노동자의 쉴 권리를 위협한다. 대형마트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자정부터 오전 10시)은 골목 상권을 보호하고, 종사자들의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오랜 사회적 논의를 거쳐 2012년 시행됐다. 이후 유통 대기업들은 의무휴업 등의 영업규제로 쿠팡을 비롯한 온라인 업체와의 경쟁이 어렵다며 제도 폐지를 요구했다. 새 정부는 이에 호응해 지난 8월 4일 규제 개혁을 공언하며 신설한 규제심판회의의 첫 회의를 열고 대형마트의 월 2회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 폐지를 논의했다. 마트 노동자, 소상공인들은 제도 폐지 움직임을 부정적으로 본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매장 직원인 이정민씨(가명)는 “휴일엔 손님이 많아 쉬겠다고 말하기 부담스러운데, 의무적으로 쉬는 날엔 눈치 보지 않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서 “의무휴업 폐지를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 대표들이나 정부 관계자들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의견은 듣지도 않고 책상머리에서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김호연씨는 “우리 가게는 큰 차이가 없지만 대형마트에 인접한 곳에서 일하는 지인의 정육점은 대형마트가 문을 닫지 않은 일요일 매출이 150만원 정도라면, 문을 닫은 날은 200만원을 넘는다”면서 “한 달 100만원이면 소상공인에게는 큰돈”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대형마트는 차를 끌고 가 한 번에 쇼핑하고 가버리니 대형마트 근처 지상엔 다니는 사람이 없다”면서 “작은 과일가게나 식품점들이 살아야 거리에 유동인구도 많아지고 손님도 늘기 때문에 소상공인을 위해 문을 한 번씩 닫아주는 게 좋다”고 했다. 그는 “대형마트가 문을 닫는 주에는 미리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장을 보는 사람이 많아 일요일 의무휴업을 해도 매출에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면서 “직원들이 휴일에 쉴 수 있으면 평일에 더 열심히 일하고, 손님 응대도 잘할 테니 차라리 그게(의무휴업을 유지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온라인 마켓의 비중이 커진 현실을 감안한다면 의무휴업제를 온라인 플랫폼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코스트코 노동자 약 1만명이 소속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마트노조)은 지난 8월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가 의무휴업 폐지를 논의하면서 노동자 건강권·휴식권 문제를 배제하고 있다”며 “의무휴업을 폐지할 게 아니라 쿠팡, 식자재마트, 이케아 등 유통산업 전반으로 영업 제한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도, 개인도 양극화 심해진다 쉴 권리의 격차는 우리 사회 양극화의 한 단면이다. 경기둔화와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이 겹치면서 기업 간·계층 간 양극화는 커지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2분기 매출 35조9999억원, 영업이익 2조9798억원으로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KB,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상반기 순이익 추정치는 역대 최대치인 9조2086억원으로 추정된다. 기업 실적이 좋은 수출기업과 ICT 분야 대기업들은 휴양지 원격근무 등 파격적인 복지 혜택을 늘리고 있다. 반면 고용의 대다수(1754만명·81.3%)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매출은 2019년 대비 2020년 0.7% 늘었을 뿐이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조 분야의 대기업들은 이미 고도로 로봇화·자동화돼 있어 코로나19 시기에도 상대적으로 타격이 작았고, 원격근무를 지원할 여력에서도 차이가 나면서 양극화를 더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기업 양극화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원인(대기업의 갑질과 중소기업의 허약한 경쟁력)과 단기적 원인(코로나19 위기)이 겹친데다 기후위기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산업 전환까지 겹쳐 매우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면서 “각각에 대해 서로 다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공정거래 이슈이고, 두 번째는 안전망의 이슈, 세 번째는 구조조정의 문제로, 공정거래 규제를 보다 철저히 하고 혁신적이지만 단기적인 유동성 위기에 빠진 중소기업은 아낌없이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층 간의 빈부격차도 더 커지고 있다. 소득격차보다 자산격차가 양극화를 키우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16일 발표한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한 지니계수는 2019년 0.404에서 2020년 0.405로 소폭 상승했다. 지니계수는 소득불평등 정도를 0과 1 사이에서 나타내는 지표로,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다는 의미다. 처분가능소득을 기준으로 한 지니계수는 2020년 0.339에서 2021년 0.331로 개선 양상을 보였다. 지난 정부에서 기초연금 확대, 기초생활보장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재난지원금·소상공인 지원금 등 시장소득 격차를 줄이는 재정정책을 편 결과이다. 하지만 저금리·양적완화에 따른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자산격차는 크게 확대됐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부채에서 자산을 뺀 순자산 기준 지니계수는 2017년 0.584에서 2020년 0.602까지 상승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공평한 분배를 실현하고, 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추구하는 게 정부 재정이 해야 할 주된 역할이다. 전(前) 정부의 조세재정정책은 가처분소득 측면에선 개선을 이뤘지만, 자산에서의 불평등은 여전히 확대됐다”고 말했다. 전방위 부자 감세 택한 정부 기업 간·계층 간 양극화는 새 정부가 대기업·대자산가 위주로 큰 폭의 감세를 추진하면서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지난 7월 21일 발표한 ‘2022 세제개편안’에서 과세표준 3000억원을 초과하는 초대형 법인에 적용하던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춘다고 밝혔다. 2021년 기준 전체 법인 수의 0.01%인 103개 대기업이 여기 해당한다. 유호림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경실련 재정세제위원장)는 이들 기업이 내는 법인세가 감세로 약 4조1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는 상속세도 인하했다. 가업승계제도 적용대상 중견기업의 범위를 매출액 4000억원 미만에서 1조원 미만으로 확대하고, 상속공제 한도는 현행 500억원에서 최고 1000억원으로 높였다. 가업승계 증여세 특례한도는 100억원에서 최대 1000억원으로 확대했다. 유 교수는 “과세특례 적용 한도액을 10배 인상한 사례는 금번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 개편 이외에는 대한민국 세제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면서 “부의 무상이전이자 결과적으로 기회균등이라는 헌법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라 막무가내로 풀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해외 자회사 유보소득의 국내 유입을 유도하기 위해 해외 자회사로부터 국내 모회사가 배당금을 수취하는 경우, 그 배당금 수익을 국내 모회사의 소득금액에 합산하지 않도록 개정했다. 적용대상이 되는 해외 자회사의 범위도 지분율 기준 현행 25%에서 10%로 인하해 적용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정부는 외국에 유보된 해외 자회사의 재원이 100조원 이상으로 이 돈이 국내로 송금되면 경기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기대 효과를 개편의 이유로 들었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그 혜택은 국내 모회사를 지배하는 대주주(재벌의 경우 재벌일가)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유 교수는 “배당금을 국내로 송금할 때 한국에서 과세하지 않으니 일단 재정수입이 줄고, 두 번째로 세금을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빼주니 국내 모회사 주주들의 배당이익이 굉장히 높아진다”면서 “해외 자회사를 가진 기업의 대부분이 재벌기업이라는 점에서 이중과세를 빼준다는 합리적 근거를 대고 있지만, 사실은 재벌기업의 핵심 주주들, 재벌일가와 그 방계의 조세 부담을 크게 줄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해외 자회사를 이용한 조세 회피 우려도 나온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런 정책이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를 국내로 되돌려 일자리를 늘리려는 리쇼어링 정책과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벌·고액 자산가를 위한 ‘맞춤형 감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감몰아주기 증여의제와 관련해 법인 단위로 증여이익을 산출하는 방식을 사업부문별로 계산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수출목적의 국내 거래는 증여이익 계산에서 빼줬다. 국내 상장주식의 양도소득세 대상이 되는 ‘대주주’ 기준도 완화해 지분율 요건을 삭제하고, 보유 금액 기준은 종목당 1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확대했다. 부동산세제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종합부동산세 과세기준을 주택 수에서 가액기준으로 바꿔 다주택자 중과세를 없앴고 세율도 낮췄다. 2023년부터 주택분 종부세 기본 공제 금액은 현행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오른다. 재산세의 경우 1세대 1주택자 공정시장가액비율을 현행 60%에서 45%로 낮췄다. 재산세, 종부세 등 보유세의 완화는 다주택 보유자가 집을 팔 유인을 줄일 것으로 보인다. 이강훈 참여연대 부집행위원(변호사)는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이 서울의 경우 2022년 12.9로 과거 평균(8.6)보다 크게 뛴 상태”라면서 “세제 감면과 규제완화가 주택시장의 안전성, 국민의 부담 가능성 측면에서 바람직한 정책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유호림 교수는 “총액기준을 가액기준으로 바꾼 건 정부가 부동산 임대업을 장려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양두구육’ 세제개편안 정부는 서민·중산층의 세 부담을 완화하고 중소기업을 지원한다고 했지만 이는 구색맞추기에 가깝다. 근로소득세 과세표준 구간 조정에 따른 감면세액은 약 2조3000억원이지만 대상자인 중저소득 근로자가 약 1800만명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1인당 감세액은 약 12만6000원 수준에 불과하다. 연봉 2000만~5000만원 근로자의 식대 비과세 한도를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늘렸는데 이로 인한 혜택은 연간 22만원 정도다. 협력업체의 임금 수준을 높이기 위해 유지·강화해야 할 투자상생협력세제는 일몰 폐지됐다. 정세은 교수는 “상위 100대 기업 법인세 감세의 이익이 대주주에 집중되고, 상장주식 양도차익 과세 대상의 대주주 범위를 줄여주는 것은 최상위 주식 부자들에게 유리한 세제 결정”이라면서 “이번 세제개편안은 보통 부자도 아닌 최상위 부자를 위한 감세”라고 규정했다. 정 교수는 이번 세제개편안이 명분은 물론 실리도 놓쳤다고 평가했다. “부자 감세라는 점에서 명분도 없지만, 법인세를 인하한다고 해서 투자가 느는 것도, 투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고용이 느는 것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실리도 놓쳤다. 최근의 투자는 로봇화·자동화 투자이기 때문에 투자가 자연히 고용을 늘린다고 하기 어렵다.” 장기적으로 보면 양극화를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 정 교수는 “부자들의 늘어난 소득이 자산으로 축적되고, 자산에서 소득이 더 발생하므로 다시 소득양극화를 자극할 것”이라면서 “저소득층 내에서 저임금 경쟁이 일어나 저소득층 소득감소가 일어나고 부동산에서 더 높은 불로소득이 기대된다면 고소득, 고자산 계층의 부동산 투기와 그로 인한 부동산 가격상승, 임대료 상승 등의 악순환이 지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7월 27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세제개편안 평가와 제언 토론회에서 유호림 경실련 재정세제위원장(왼쪽 세 번째)이 새정부 세제개편안에 대한 평가 및 제언을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부자들이 덜 낸 세금, 결국 서민 부담으로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세제를 합리적으로 재편”한다고 밝혔다. 세계적 흐름은 증세에 가깝다. 각국은 인플레이션 극복을 위해 유동성 회수를 목적으로 한 통화정책을 펴면서 동시에 경기침체와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증세를 추진 중이다. 대자산가와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이른바 ‘슈퍼리치세’나 에너지 위기 속에서 떼돈을 번 석유화학기업을 대상으로 ‘횡재세’ 도입이 검토되고, 법인세율 인상도 논의된다. 예컨대 미국 상원은 지난 8월 6일(현지시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투자와 부자 증세 등의 내용을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켰다.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에 3690억달러(약 479조원), 처방약 가격을 낮추기 위한 전(全)국민건강보험에 640억달러를 투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재원 마련을 위해 대기업에 최소 15%의 법인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영국도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악화된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해 2023년부터 현행 19%인 법인세율을 25%로 인상하기로 했다. 대신 타격을 입은 실업자와 자영업자에게는 재정지출을 통해 평균 소득의 80%를 계속 보전해주기로 했다. 유호림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코로나19 위기상황을 4단계(위기·봉쇄·전환·포스트코로나)로 구분하고 전환과 포스트코로나 단계에서는 타격을 입은 경제 주체들, 즉 자영업자와 저소득자 계층에 재정지출을 늘리고 그에 필요한 재원을 증세로 조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면서 “지금 우린 경제적 타격을 입은 계층에는 그다지 큰 혜택을 주지 않고 증세 대상인 자산가와 고소득자에는 엄청난 감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대착오적인 낙수효과에 기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낙수효과는 감세로 투자와 고용을 늘리면 성장률이 높아지고, 세수가 확충되면서 재정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가설이다. 강 교수는 “선순환 논리가 시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서 부자 감세 기조를 유지하면서 정부가 재정준칙 등 재정건전성을 강화할 경우 조세정책의 재분배 기능과 경제 안정화 기능이 약화되고, 그 결과로 양극화가 심화되면 성장잠재력도 약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감세로 인한 세수 감소는 보수 정부가 강조하는 재정안전성도 해칠 수 있다. 과거 MB 정부는 법인세율을 22%로 인하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약 4년간 26조7000억원에 달하는 법인세를 감면했다. 같은 기간 기업 투자는 약 23조원으로 직전 4년간(2005~2008년)의 투자총액보다 10조원 이상 줄었다. 낙수효과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고, 기업 사내유보금만 2009년 약 72조원에서 2011년 약 165조원으로 늘었다. 2012년 이후엔 세수가 줄어 2014년 약 11조원의 결손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는 부족한 세수와 재정적자를 보전하려 담배소비세와 주민세를 인상하는 대대적인 서민 증세를 단행했다.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안으로 5년간 누적 60조원 정도의 세수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강병구 교수는 “정부가 지출 구조조정으로 재정을 효율화하는 방식으로 재원을 확보한다고 하지만 지출 구조조정으로 재원을 확보하는 건 한계가 있고, 경제성장으로 인한 자연세수 증가분을 언급했는데 최근 경제전망치가 하향조정되면서 그것도 상당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고 말했다. 김태일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건 맞지만 윤 정부가 감세를 하면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자는 기조라는 점에서 재정운용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지상주의 벗어나 해결책 고민해야 전 세계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정부가 손을 떼면 공공성이 흔들린다는 걸 목격했다. 공공보건 인프라가 부족하면 간호사가 과로로 죽고, 상하수도 예산을 줄이면 폭우로 침수 피해를 겪는다. 부자 감세로 인한 복지지출 감소는 서민의 삶을 위협한다. 이미 정부는 노인일자리 제공 같은 복지 부문의 정부 지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정부가 주택 공급 속도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도심 복합사업에서 공공에만 부여하던 용적률 상향과 토지 수용 등 도시 건축 특혜를 민간에도 적용하면 개발이익이 건설사나 리츠(부동산투자신탁) 등 민간사업자로 집중될 수 있다. 용산 정비창 부지에 계획하던 공공주택 공급을 줄이는 대신 초고층 빌딩을 세우면 주거빈곤 문제의 해결은 한층 더 멀어진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지 않는 부동산 개발을 장려하면서 민간업자에게 이익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호림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전에 자유주의 경제학과 관련된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자유주의 경제학의 핵심 주장이 이익은 사유화하고, 비용은 사회화하는 것”이라면서 “이 방향으로 세제를 개편하고 부동산 정책을 펴는 건 공공성의 위기이자, 정부 역할을 민간에 넘기는 정부의 위기”라고 평가했다. 점차 가시화하는 탄소장벽과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세제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김태일 교수는 “법인세 인하는 사실 초대기업만 상당한 이득을 보는 구조로, 굳이 법인세를 낮출 거면 하청기업과의 상생이나 탄소중립을 위한 노력과 연계해서 혜택을 제공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탄소세와 같은 새로운 세제 도입도 논의할 시점이 됐다. 탄소 배출에 가격을 매겨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그 재원을 에너지전환과 취약계층에 지원하는 내용이다. 강병구 교수는 “탄소세 도입과 배출권거래제 활성화와 같은 세제 정책으로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면서 “탄소세로 확보한 세원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재원으로 일부 쓰고, 한편으로 세수의 역진적 성격을 완화하는 탄소배당금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극화도 세제로 풀어야 할 과제다. 강 교수는 “우리 사회의 고질인 대·중소기업 간 격차 해소를 위해 대기업에 대규모 감세를 제공해 주주와 대기업 노동자에게 이익을 집중시키기보다 적정한 수준에서 과세하고 그 재원을 중소기업과 그곳에서 종사하는 근로자 지원에 활용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말했다.
표지 이야기
[우정이야기]조선 화가들이 부채에 그린 그림(2021. 05. 21 13:35)
2021. 05. 21 13:35 경제
아직 5월인데 무더위가 시작된 것만 같다. 에어컨을 청소하고 부채를 꺼낼 때가 된 것이다. 여기저기서 받은 부채 몇개를 가지고 있는데, 인기 있는 캐릭터를 그려넣은 쥘부채와 한문이 담긴 둥글부채 그리고 지난해 회사 노동조합에서 나눠준 ‘요술접이식 부채’ 등이 있다. 요술접이식 부채는 처음 접한 물건인데, 원형의 부채 테두리에 탄성이 있는 와이어를 넣어 휴대할 때 둥글게 접어 작은 원형 주머니에 쏙 넣어 다니도록 만든 것이다. ‘기명절지도’를 담은 우표 / 우정사업본부 제공 날이 더워지면 부채를 나누는 게 전통적인 풍습이었나 보다. “여름 생색은 부채요, 겨울 생색은 달력이라(鄕中生色 夏扇冬曆).” ‘레이디경향’ 2005년 6월호 기사에서 김순옥 당시 정동 경향갤러리 부관장은 이 말을 소개하며 단오에 부채를 선물하는 고유의 풍습이 조선 말까지 내려왔다고 알려준다. 이른바 ‘단오 부채’다. 영·호남 지방관들이 부채를 만들어 임금에게 진상하면 궁중에서는 이를 대신과 관리들에게 하사하고, 신하들은 다시 부채를 가족과 친구, 친지 등에게 나눠주면서 건강한 여름나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예술가들은 커다란 부채에 함께 그림을 그려넣거나 글씨를 써넣곤 했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박래현, 삼중통역자> 전시 때 여성 미술가 우향 박래현(1920~1976)이 평생에 걸쳐 내놓은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그중에도 부채가 있었다. 박래현과 남편 운보 김기창을 포함해 천경자, 노수현, 김은호 등 10명의 작가가 선면(부채의 거죽)을 조각조각 채워낸 ‘십명가서화합벽’(1974년)이었다. 우정사업본부는 여름을 맞아 부채에 그린 그림인 ‘선면화’를 주제로 기념 우표 84만장을 5월 17일 발행했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화가들이 우리나라 대표 공예품인 부채에 그린 그림을 우표에 담아낸 것이다. ‘정양사도’는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정선이 금강산 정양사에서 바라본 일만이천봉의 풍경을 산수화로 표현한 작품이다. 뾰족뾰족한 암산과 부드러운 토산이 정양사 지붕을 넘어 병풍처럼 펼쳐진 모습을 담았다. ‘송하관폭도’는 소나무 아래 앉아 폭포를 바라보는 선비를 그린 이인상의 작품이다. 바위 중앙에 뿌리를 내리고 폭포수를 향해 구부러진 노송의 생명력이 폭포의 장쾌한 물소리와 어우러진다. ‘서원아집도’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풍속화가 김홍도의 작품으로 중국 북송의 문인들이 황제의 부마인 왕선의 정원에 모인 모습을 담았다. 소동파, 이공린 같은 인물이 저마다 동작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 흥미롭다. ‘매화도’는 꽃 그림으로 유명한 신명연의 작품이다. 반원형의 부채 모양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백매화와 홍매화 줄기를 먹과 엷은 색으로 그렸다. 담백한 멋을 지향한 신명연의 화풍을 잘 드러내는 것으로 평가된다. ‘기명절지도’는 근대 서화가 이도영이 쏘가리와 주전자를 그리고, 고희동이 옥수수와 수박을 그린 데 더해 스승 안중식이 글을 쓴 작품이다. 윗면을 살짝 베어내 붉은 살과 씨가 드러난 수박이 싱그럽다. 올해 단오는 6월 14인데 벌써 부채를 꺼낼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을 보면 더위가 이르긴 이른 모양이다.
우정이야기
[재무제표로 본 기업의 속살]부채 합산총액 36조원, 두 기업이 합치면(2020. 12. 04 14:24)
2020. 12. 04 14:24 경제
아시아나항공의 존폐가 아시아나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1988년 설립 이후 종업원 9031명(2020년 9월 기준)을 둔 매출(2019년 12월 연결 기준) 약 7조원의 대형항공사가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에 12월 1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양사 여객기들이 주기되어 있다. / 연합뉴스 부실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거대한 빚(부채비율 2309%)입니다. 2020년 3분기 단기차입금만도 2조5647억원이며, 그동안의 누적손실을 알 수 있는 결손금은 1조4000억원, 당기순손실도 6238억원입니다. 영업활동현금흐름까지 -1944억원으로 돌아섰으니, 말 그대로 돌아오는 빚은 많은데 갚을 현금은 현저히 부족한 ‘유동성 위기’입니다.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만 코로나19가 결정적입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은 HDC 현대산업개발로 매각될 예정이었습니다. 팬데믹 이후 현대산업개발은 계약을 포기합니다. ‘매각결렬’은 더 심각한 상황을 낳습니다. 2조원의 유상증자가 무산되고, 부채비율을 300%까지 낮출 수 있었던 재무구조 개선 기회가 ‘없던 일’이 되었으니까요.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노후 항공기 처분, 무급휴직, 희망퇴직의 혹독한 구조조정 중인 아시아나 입장에서는 마지막 카드가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한달 만에 대안을 꺼내 듭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입니다. 새로운 인수자를 찾는 게 아니라 아예 지정(?)했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낀 걸까요? 더욱이 대한항공 역시 2020년 3분기 기준 부채비율 693%로 유동성 부채가 5조4000억원에 이르는 상황입니다. 대한항공의 경영권 분쟁은 아직 완결된 상황이 아닙니다. 이건 누가 뭐라고 해도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아시아나 인수)을 돕는 구조입니다. 이게 올바른 판단인가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좀처럼 쉽게 결론이 나기 어렵습니다. 더 걱정스러운 부분은 아시아나항공 회생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시아나 색동날개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앞으로 회생이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고, 대한항공과 이해타산이 깊은 이들의 목소리만 높습니다. 아시아나항공 2020년 3분기 검토보고서(맨위)와 분기보고서 우선 인수를 표명한 대한항공이 아시아나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기업실사를 몇개월 하고 나서도 인수합병(M&A) 후 합병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턱대고 대한항공이 이런 중대한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객관적인 시각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최근 몇년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항공사가 겪고 있으나, 특별히 아시아나항공이 직면한 현실은 검토보고서의 ‘강조사항’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내외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해외여행이 금지되었습니다. 10% 내외의 운항률, 즉 비행기 10대 중 9대가 쉬고 있습니다. 종속회사인 에어부산㈜ 및 에어서울㈜ 역시 2019년 한·일 갈등과 미·중 무역분쟁 등의 여파로 여객 및 화물 운송영업에 부진을 겪고 있습니다. 2020년 3분기 에어부산의 영업손실액은 1323억원이며, 에어서울은 모기업인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100억원을 차입할 지경입니다. 합병으로 탄생할 초대형 항공사가 짊어져야 할 짐과 시장에 미칠 영향력에 대한 냉정한 점검도 필요합니다. 합치면 자산규모 40조원의 항공사로서 합병 시너지를 단기간에 내기는 힘들 것입니다. 겹치는 항공노선을 줄이고, 중복투자된 항공기뿐만 아니라 동일한 역할을 하는 계열사까지 효율적이지 못한 부분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난제입니다. 기회가 아주 없었을까? 자산관리가 제일 어렵습니다. 유형자산 중에 항공기 가치만 따져봐도 리스를 포함해 대한항공이 12조원, 아시아나 3조원입니다. 아시아나항공만도 여객기 70대, 화물기 12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2개 회사 합산 부채총계는 약 36조원입니다. 이중에 1년 안에 갚아야 할 유동부채만 약 13조원이 넘습니다. 자산 효율성을 ‘극대화’한다지만, 부채는 한곳에 모았다고 알아서 빚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향후 환율 및 유가,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 여부 등의 대외 변수 등이 합병된 항공사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은 국제선 점유율 16%, 국내선 2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한항공과 합치면 국내여객 45%, 국제여객 4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갖지만, 현재 상황은 점유율이 높은 게 오히려 더 안 좋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지속되면서 여전히 중국 등을 포함한 55여개 국가가 입국금지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고, 99개국은 특별입국절차 시행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항공사에 지금의 영업환경은 최악입니다. 코로나19가 사라진 이후 전 세계 항공사들과의 경쟁에는 ‘규모’가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만, 지금은 오히려 다운사이징이 생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난 몇 년 사이 대형항공사들이 어려워진 원인 중에 하나도 국내외로 저비용(LCC) 항공사가 등장한 것입니다. 기존 대형항공사들이 LCC 항공사들과의 가격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해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입니다. 최근 아시아나항공은 3000억원 전환사채 발행, 금호리조트 매각 추진 등의 공시를 냈습니다. 지난 11월 3일에는 자본을 줄이는 3분 1 무상 감자결정까지 발표합니다. 대주주 금호산업㈜를 비롯한 기존 주주 지분을 확 줄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투자자인 주주들의 고통분담을 통해 아시아나를 살리자는 취지입니다. 다소 아쉬운 부분은 ‘2016~2017년 영업흑자를 냈을 때 지금과 같은 조치를 취했으면 어땠을까?’입니다. 재무제표상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위기는 2015년부터 출발합니다. 유동성사채 등 1조원에 달하는 부채가 발생하며, 금융비용이 영업비용보다 높아지는 계기가 됩니다. 2016년 계열사 금호터미널의 매각 과정도 아시아나항공이 부채를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아깝겠지만 우량 자산이나 계열사를 매각해 재무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대주주인 금호산업이 더 책임감을 갖고 선제적으로 나섰어야 합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대한민국 항공산업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채권자로서 산업은행은 대한항공도 아시아나항공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선택지가 별로 없는 상황이기에 양사의 합병 ‘불가피’론을 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살린다고 당장은 말하지만 ‘누구만’ 살아남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재무제표로 본 기업의 속살
[표지 이야기]소득도 부채도 가장 많은 40대(2020. 10. 23 15:02)
2020. 10. 23 15:02 경제
ㆍ버는 돈도 많지만 쓰는 돈도 많아… 생산과 소비에서 가장 왕성한 세대 취업 연령이 늦어지면서 가정을 꾸리는 시기가 늦어지고, 비혼 인구도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40대의 다수는 회사에서 허리 역할을 하는 직장인이자 가정에서는 부모의 역할을 한다. 40대는 버는 돈도 많지만 쓰는 돈도 많다. 생산과 소비에서 어떤 연령대에 비해서도 왕성한 활동을 한다는 의미이다. 한 시민이 9월 22일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실제 통계청 자료를 보면 40대 가구주의 평균 소득은 7425만원으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다. 가구주가 아닌 개인으로 보더라도 40대의 평균 소득은 2018년 기준 월 평균 360만원을 넘어 가장 많다. 카드 결제액도 많다.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가 제공한 ‘연령별 월평균 카드 이용액’ 자료에 따르면 올해 마흔셋인 1977년생이 월 101만원으로 가장 많다. 직장 생활을 10년 이상 하면서 신입직원 땐 밤을 새우던 일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능력과 요령이 늘었기 때문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40대는 가장 생산성이 높은 연령대”라면서 “회사에서 경력직을 뽑더라도 과장·차장을 데려가지 대리급을 데려가진 않는다”고 말했다. 생산성은 가장 높지만 호봉제로 인해 정규직 취업 상태인 50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득은 낮다. 초·중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교육비를 대거나 내 집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빚을 지는 경우도 많다. 40대의 부채와 원리금 상환액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은 이유이다. 김 교수는 “한 마디로 플러스(소득)도 마이너스(부채)도 가장 큰 세대”라고 설명했다. 40대는 본격적으로 자산을 불리는 시기이다. 당연히 관련한 정보·지식 습득에 관심이 많다. 증권사 앱과 부동산 앱 이용자 통계를 봐도 40대의 이용이 활발하다. 출판시장에서 문학 작품을 주로 소비하는 20대에 비해 40대는 자기계발서, 경제·경영서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높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많이 산 물건을 보면 사무용 기기 구매가 상대적으로 많다. G마켓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가 많아지면서 20~30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직장인 비율이 높은 40대의 특성상 재택근무, 홈오피스 관련한 노트북, 모니터 구매량이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40대의 경제생활,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을 정리했다.
표지 이야기
왜곡된 공시가격, 자산 양극화 부채(2019. 12. 16 15:10)
2019. 12. 16 15:10 경제
ㆍ시세 절반에도 못 미쳐 부동산에 돈 몰리고 기업들은 보유세 절감 시세를 반영하지 못하는 ‘공시가격제도’를 부동산 가격 폭등의 한 원인으로 꼽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2월 5일 경실련과 함께 ‘공시가격 조작’으로 재벌·건물주 등 상류층에게 80조원에 달하는 절세 특혜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한국감정원과 국토부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한 정동영 의원(민주평화당)이 “한국사회 불평등의 80%가 자산불평등·부동산 불평등이고 그 뿌리에 부동산 공시가격제도의 왜곡과 통계조작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 것은 이런 시각을 대표한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가운데)와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왼쪽) 등이 12월 5일 ‘공시지가 조작’ 관련자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해 서초동 서울지방검찰청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실련은 앞서 12월 3일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말 국내 땅값이 1경1545조원이고 공시지가의 현실화율(시세반영률)은 43%라고 주장했다. 국토부가 주장하는 현실화율인 64.8%와는 큰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12월 3, 4일 두 번에 걸쳐 설명자료를 내 한국은행 대차대조표의 토지자산총액은 2016년 7146조원에서 지난해 말 8222조원으로 1076조원 증가했다며 경실련 주장을 반박했다. 국토부는 정동영 의원실에 1월에 공개토론회를 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낮은 현실화율과 고무줄 공시가격 국토부는 한국은행 통계에 기대고, 경실련은 토지·주택 표본조사의 결과로 추정하고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한쪽이 무조건 옳다고 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경실련의 통계가 신빙성을 갖고 있다고 봤다. 고 원장은 “LH공사가 토지수용 보상을 할 때 감정평가사들이 실제 거래 가격을 조사해 제시한 시세 보상을 따르는데 그 보상 비율이 공시지가의 1.8배”라며 “공시지가가 시세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는 경실련의 주장은 어느 정도 근거 있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공시가격제도는 토지에 적용되는 부동산 가격인 공시지가와 주택에 적용되는 공시가격으로 나뉜다. 1990년 처음 공시지가 조사가 시작된 후 2005년 종합부동산세가 도입되면서 주택에 대해서 토지와 건물을 통합해 평가하는 공시가격이 도입됐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재산세뿐 아니라 상속세·증여세·종부세 등 각종 조세와 개발부담금과 건강보험료 등 60여 개의 다양한 행정 목적에 활용된다. 공시가격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실질적인 증세나 감세가 이뤄질 수 있다. 공시가격과 관련해 그간 시세반영률이 낮고, 부동산 유형별·지역별·가격대별 불균형이 크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가 올해 처음으로 공개한 부동산 공시가격의 유형별 시세반영률을 보면 시세반영률이 가장 높은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조차 시세의 68.1%에 불과했고, 단독주택은 53%에 그쳤다. 특히 시세가 급등한 서울 한남동·청담동의 고가 단독주택의 경우 시세반영률이 20~30%대에 불과해 건물과 토지가격을 합산한 주택 공시가격이 해당 주택의 공시지가보다 낮게 책정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현행법상 공시가격 산정·고시 권한은 정부가 행사하지만 실무의 경우 공동주택과 표준단독주택은 감정원, 표준지는 한국감정평가사협회, 개별 단독주택과 개별토지는 지자체가 제각각 산정하면서 형평성 문제가 더 불거지는 측면도 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공시지가 조사의 정확성 확보를 위해 한국감정원이나 감정평가사에만 의존해선 안 되고 일선에서 거래를 자주 접하는 공인중개사를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권일 팀장은 “감정평가사가 대표적인 땅(표준지)을 정해서 그 땅의 움직임을 통해 주변가격을 추론하는 형태인데 정확성을 기하려면 땅의 표본수를 늘려야 한다”며 “요즘처럼 부동산 시장이 활발하게 움직이면 현실적으로 빠르게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공인중개사와의 협업을 더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공인중개사 스스로 수수료 수익을 위해 시장을 교란하는 면도 있어서 제제와 보상 체계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종완 원장 역시 비슷한 제안을 했다. 한국감정원의 경우 이와 달리 정부 주도로 전국적으로 일원화된 가격 조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제도 변화보다 조사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김 국장은 “공시지가 조사 예산이 투입되는 과정 자체가 불투명해 수의계약으로 진행하는지, 경쟁으로 이뤄지는지도 알 수 없고 감정평가사가 현장에서 조사한 내역서도 알 수 없다”며 “정부가 주장하는 현실화율 64%를 그대로 믿기 어려운 것도 시세가 얼마이며 그래서 어느 정도의 공시가격이 적정한지 자료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시지가 현실화, 보유세 강화해야” 특히 법인이 소유한 비업무용 토지의 공시지가가 낮게 산정돼 부동산 재벌, 대기업의 세 부담이 낮다는 문제가 지적된다. 일례로 경실련 조사에 따르면 평당 4억4000만원에 매각된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의 경우 공시지가가 평당 1억9000만원에 불과하다. 고종완 원장은 “대기업 소유 토지의 공시지가가 상대적으로 낮다 보니 세금을 낮추기 위해 기업들이 지가산정위원회의 이의신청 절차를 거쳐 합법의 외피를 쓴 특혜를 추구하고 있다는 논란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법인의 경우 공시지가가 낮게 정해지는 상가·사무실·공장 등 별도합산토지 비율이 높다 보니 세금 부담도 낮다. 지난 12월 11일 정동영 의원이 국세청에서 제출받은 ‘종합부동산세 100분위’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종부세를 내는 법인 보유 부동산 자산의 평균 규모가 개인의 13배에 달하지만 보유 부동산 규모 대비 종부세 비율은 3배 수준에 그쳤다. 특히 상위 1%만 보면 법인 부동산이 개인의 50배인데 세급납부비율은 1.7배에 그쳤다. 김 국장은 정부가 기업들에 막대한 부동산 보유세 절감효과를 주는 공시지가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국장은 “상위 100개 법인이 전체 토지의 75%를 보유하고 그중에서도 최상위 1% 재벌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토지 소유가 증가했다”면서 “아파트값이 오르는 건 건물값이 올라서가 아니라 땅값이 올랐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재벌들의 부동산 투기가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종성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교수는 공시지가를 현실화해 보유세를 높이고 대신 양도소득세와 취·등록세 등 거래 관련 세금을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지금 취·등록세와 양도소득세가 높아 매물이 나오지 않고 집값이 오르고 있다”며 “거래세를 낮추면서 보유세를 높이면 부동산 가격 안정과 불로소득 환수 측면에서 모두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재벌 기업들이 보유한 토지의 공시지가를 높이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봤다. 토지는 공급 탄력성(가격 변화에 따른 공급량 변화)이 제로라 세금을 늘려도 경제적으로 왜곡 효과가 없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재벌들은 생산적 투자보다 부동산 수익이 높으면 당연히 부동산에 투자하게 된다”며 “부동산에서 얻을 수 있는 불로소득의 기대 수익을 낮추는 구조를 만들지 않고 이런저런 규제를 한다고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창수의 ‘나라살림을 제대로 바꾸는 법’]부채비율 40% 마지노선에 걸린 확장재정(2019. 05. 31 15:06)
2019. 05. 31 15:06 경제
모든 정책은 시기적 특성이 있다.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내수경기 침체도 좋지 않다. 단점만 있는 정책도 없고 장점만 있는 정책도 없다. “국가채무비율 40%를 국가재정운용의 마지노선으로 관리하겠다.” “국가채무비율 40% 관리의 근거는 무엇인가?” 지난 5월 16일 내년도 국가재정의 그림을 그리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오간 기재부 장관과 대통령의 대화다. 정부가 내년도 확장재정을 이야기하면서도 재정건전성을 위해 한계를 설정하며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데 대한 대통령의 압박인 셈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5월 8일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정부는 확장재정을 예고하면서 국가채무비율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당초 예산안 39.4%, 추경 이후 39.5%로 소폭 늘어날 예정이다. 청와대와 여권은 현재의 경기침체 국면을 극복하고 내수경기를 진작해야 한다며 국가지출규모 확대를 주장한다. 반면 기재부는 국가채무비율을 GDP 대비 40%를 넘기는 것은 좋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채무 및 부채 상황은 어느 수준일까? 현재 우리나라 국가부채비율은 비슷한 경제수준의 국가와 비교하면 매우 안정적인 수준이다. GDP 대비 39%비율의 국가채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11%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체코, 멕시코, 스위스를 제외하고는 한국은 가장 낮은 국가군에 포함된다. 가장 심한 일본의 경우에는 233%를 넘어서고 있다. 모든 정책은 시기적 특성이 있다.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내수경기 침체도 좋지 않다. 단점만 있는 정책도 없고 장점만 있는 정책도 없다. 적절한 수준만큼 국가부채의 규모를 늘리는 것이 가장 좋다. 국가의 재정건전성을 걱정하고 고려하는 것은 좋으나 불필요한 과장이나 우려는 불필요하다.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국가채무, 국가부채는 물론 국가채무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채무의 경우에도 2017년 기준 순대외채권은 4657억 달러다, 갚아야 할 돈보다 받을 돈이 두 배에 이른다. 그런데 갚을 돈만 이야기하고 걱정해 적절한 투자를 못한다면, 어찌 보면 어리석다고 볼 수도 있다. 현재 재정상황을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언론은 2018년 정부지출 429조원 규모를 슈퍼예산, 2019년은 ‘사상 최초’ 470조원이라고 자극적인 언어로 표현하는데, 2018년은 슈퍼예산이 아니라 사실상 긴축재정, 2019년은 겨우 긴축만 면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옳다. 현재의 재정상태를 정치적·정파적 고려 없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2017년 초과세수 23조원, 2018년 초과세수 25조원이다. 정부가 의도했던 예산보다 23조원, 25조원의 세금을 초과로 걷었다는 것은 그만큼 민간의 자금을 위축시키면서 재정지출의 여력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결국 초과로 징수한 자금만큼은 지출해야 하는데 2017년 추경규모 11조원, 2018년 추경규모는 4조원, 그리고 2019년 추경규모는 6조7000억원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추경 규모는 물론이고 그 이상의 재정지출의 여력은 있다. 정책은 타이밍이다.
정창수의 ‘나라살림을 제대로 바꾸는 법’
[표지이야기]수면부채가 폭식을 부르고 비만을 낳는다(2017. 11. 21 15:36)
2017. 11. 21 15:36 사회
ㆍ많은 연구결과에서 나타나… ㆍ대사질환과 심혈관계 질환의 요인 될 수도 전날 잠을 충분히 못 자서 그런가 유난히 출출하다. 마음속에서는 ‘이러면 안돼’라는 소리가 들리지만 야식을 배달시켜 먹고 후식으로 냉장고에 있던 아이스크림까지 밥숟가락으로 실컷 먹었다. 이 시점에 와서야 ‘아차’ 싶다. 배가 부르니 이대로 잠들고 싶지만 그냥 잠들면 속이 부대껴 푹 잠들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배가 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려니 수면시간이 절대적으로 모자랄 것이 걱정된다. 직장인 이모씨(30)의 이런 고민은 누구나 겪어봤을 만한 일이다. 그럼 이 문제의 진짜 주범은 누구일까. 지난해 2월 미국 시카고대 의대 내분비·당뇨·대사 연구실의 에린 핸론 박사와 연구진은 범인을 추적할 실마리가 될 만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4일간은 매일 8시간30분씩 침대에 누울 수 있었고, 다른 4일간은 4시간30분씩만 침대에 있는 것이 허용됐다. 자연히 침대에 머무르는 시간을 짧게 제한 받았을 때 수면시간도 짧아졌다. 그 결과 짧아진 수면시간에 반비례해 늘어난 것은 음식 섭취량이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잠이 모자랄 때 식욕을 채우는 보상작용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 2-AG의 혈중 수치도 높아진 사실을 확인했다. “잠이 모자라면 몸에서 배고픔을 불러일으키는 활동이 이뤄지고, 그에 따라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식탐을 즐기게 되는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 위험도 커진다”는 것이 핸론 박사의 설명이었다. 늘 가시지 않는 허기와 식탐의 주범이 수면부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수면클리닉 의료진이 수면장애 환자에게 수면다원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 서울아산병원 제공 잠이 부족하면 보상심리로 식탐 커져 사실 잠이 모자라면 비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상당히 나와 있다. 이 점에서 최근 발표된 질병관리본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2016년)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남성 비만율이 42.3%로 처음으로 40%대로 올라서며 성인 비만유병률은 34.8%로 전년(33.2%)보다 상승했다. 비만 이외의 만성질환 중 특히 수면부족과 관련이 있는 고혈압과 고콜레스테롤혈증 등의 유병률도 증가했다. 30세 이상 고혈압 유병률은 29.1%로 최근 10년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콜레스테롤혈증과 당뇨병 유병률도 19.9%와 11.3%로 각각 전년보다 2.0%포인트, 1.3%포인트 높아졌다. 비만을 비롯한 이들 대사질환과 심혈관계 질환은 수면 외에도 식생활과 신체활동 같은 다른 요인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수면부채가 부르는 장기적 폐해와의 관련성을 부정하기도 쉽지 않다.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박상민 서울대 의대 교수팀이 수면시간과 비만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수면시간이 짧은 집단일수록 체지방이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수면시간과 고혈압 유병률의 관련성을 연구한 박은옥 제주대 간호대학 교수도 “지난 수십 년간 수면시간은 점점 짧아졌고, 같은 기간 고혈압 유병률은 점점 증가했다”며 “연구 결과 그간 고혈압 관련 요인으로 덜 주목 받았던 수면시간이 유의한 변수로 나타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미 쌓인 수면부채가 더 많은 수면부채를 부르는 악순환이 나타날 소지가 있다는 데 있다. 수면이 부족할수록 만족감을 느끼는 데 관련된 세로토닌 호르몬의 혈중 수치가 낮아지고, 이는 다시 폭식 등 비만을 부르는 습관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폭식으로 일시적으로 높아진 세로토닌 수치는 그만큼 빨리 떨어져 다시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황을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비만인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비율이 높다고 알려진 대표적인 수면장애 증상인 수면무호흡증도 위험성이 높다. 비만이 아니더라도 이미 수면부채가 상당히 쌓여 수면무호흡증 같은 수면장애로 나타나면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 코를 심하게 골다 갑자기 호흡을 멈추는 무호흡증이 일어나면 아무리 오랜 시간 자고 일어나도 피곤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수면부채의 누적으로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코르티솔 호르몬이 증가해 심장박동수가 평소보다 빨라지고, 혈압도 높아진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이런 수면장애 때문에 수명까지 짧아지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해 고려대병원 연구팀이 수면장애 환자 381명의 염색체를 분석한 결과, 체내의 노화시계로 불리며 남은 수명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진 염색체의 끝 부분 ‘텔로미어’가 짧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부채의 위험성을 알게 되더라도 문제는 남아있다. 당장 대처할 방법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수면시간이 짧아진 현실은 개인적인 습관 탓도 있지만 충분한 수면시간을 보장하기 힘든 구조적인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해 수면부채 개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는 미국 스탠퍼드대 수면생체리듬연구소(SCN)의 니시노 세이지 소장은 저서 에서 짧은 수면시간밖에 주어지지 않더라도 최대한 수면부채를 발생시키지 않는 방법들을 소개했다. 니시노 소장과 SCN의 연구 결과 잠이 필요하게 만드는 피로와 스트레스 등의 ‘수면 압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해소하는 시간대는 잠든 직후 90분 동안이다. 그러므로 이 시간대에 최대한 중점적으로 양질의 잠을 잘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수면부채 인지해도 대처 쉽지 않아 초기 90분 동안의 수면을 ‘꿀잠’으로 이끌 수 있으려면 체온을 조절하고 뇌를 자극하는 활동을 줄이는 방법이 필요하다. 체온조절은 수면에 들어간 신체는 안쪽 깊은 곳의 심부 온도와 피부 표면 온도의 온도차가 가장 줄어든다는 점에 주목해, 취침 90분 전 따뜻한 물로 목욕이나 족욕을 한 뒤 차츰 수면상태의 체온상태와 가까워지게 유지하는 방법이다. 뇌를 자극하는 상황과 스트레스를 피하라는 방법도 그 자체로서는 새로울 것이 없다. 지루하게 느껴지는 책을 보거나 단조로운 숫자 세기를 반복하는 등의 상황이 잠을 부른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침대 위에서까지 스마트폰이나 TV를 보는 것은 양질의 수면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히려 스마트기기를 활용해 보다 적극적으로 수면을 유도하는 방법도 속속 나오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인기 영상 콘텐츠 공급업체인 ‘넷플릭스’를 본뜬 ‘냅플릭스(Napflix)’ 서비스를 들 수 있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있는 영상들 중에서 지루함을 극대화시킨 영상만 따로 모아놓은 곳이다. 아무리 해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떼어놓을 수 없어 불면과 수면부채로 이어지는 사람들에게는 ‘이열치열’ 격인 방법이다.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면 고전적인 잠들기 방법인 ‘양 세기’ 영상을 포함해, 매우 천천히 진행되는 일본의 다도 영상 등 얼핏 봐도 지루하게 보이는 영상들로 가득 차 있다. 니시노 소장도 “문제라고 지적되는 스마트폰의 청색 계열 불빛이 그 자체로 불면을 부르기보다는 스마트폰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뇌를 자극한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견 효과를 기대할 법하다. 수면부채가 더욱 심각해져 수면장애 수준까지 이르렀다면 하루 빨리 병원에서 전문적인 진료를 받는 것이 급선무다. 수면장애를 유발하는 원인은 불규칙한 근무시간과 생활습관 같은 외부적 요인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과로, 불안 등 심리적인 요인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원인을 먼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전문가들은 정확한 진단 없이 수면제를 복용하거나 임의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이향운 이대목동병원 수면센터장은 “수면장애는 내과·신경과 질환과 관련되어 치매나 뇌졸중 같은 합병증을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신경과, 정신건강의학과, 이비인후과, 내과 등 관련 진료과의 통합적인 진료와 치료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표지 이야기
집값 들썩이자 가계부채 치솟아
집값 들썩이자 가계부채 치솟아(2017. 06. 13 11:31)
2017. 06. 13 11:31 경제
ㆍ은행권 5월 가계대출 증가액 6조원… 8월 중 나올 종합대책 주목 강남 재건축단지에서 시작된 아파트값 상승세가 서울 전역과 수도권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가계부채 증가세도 가팔라지고 있다. 가계빚(가계신용)은 올해 1분기 말 현재 1360조원까지 치솟은 상태다. 6월 15일 미국의 금리인상이 유력해지면서 역대 최대 규모인 가계부채 관리에 빨간 불이 켜졌다. 미국이 이달 중 기준금리를 올리게 되면 우리나라와 기준금리가 1.25%로 같아진다. 미국이 하반기 한 차례만 금리를 더 올려도 기준금리 역전현상이 벌어지는데, 외국인 자본유출 우려와 함께 대출금리의 지속적 상승으로 가계빚이 경제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이런 와중에 부동산시장마저 들썩이고 있다. 8월 중 나올 가계부채 종합대책이 문재인 정부의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호황이 부른 가계빚 증가세 부동산시장 호황은 가계빚 증가세를 부채질한다. 지난해 11·3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다소 주춤했던 가계대출 증가세가 다시 가팔라지고 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5월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6조원(주택금융공사 양도분 포함)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 4월 4조6000억원에 비해 증가폭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관망세를 보였던 주택시장이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다시 들썩이면서 가계빚 역시 크게 늘어난 것이다. 5월 중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KEB하나·우리·농협)의 가계대출 증가액만 따져봐도 3조994억원으로 전달(1조4610억원)의 2.1배에 달했다. 이 같은 증가세를 견인한 것은 분양시장이다. 아파트 집단대출의 영향이 컸다. 지난달 5대 시중은행의 집단대출 증가액은 1조2935억원으로 전체 가계대출 증가액의 43%를 차지했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가계부채 증가세도 가팔라지고 있다./연합뉴스 문제는 최근 신규분양 물량이 쏟아지며 집단대출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부동산 114 집계를 보면 통상 분양시장의 ‘비수기’로 꼽히는 6~8월 중에만 전국에서 총 7만1087가구가 분양될 예정이다. 6월만 해도 전년 동기 대비 20.3%가 증가한 4만1282가구의 분양이 이뤄진다. 여기에 오는 7월부터 내년 2월까지 월 평균 3만8899가구가 입주하는 등 하반기 ‘물량 폭탄’이 예고되면서 아파트 잔금대출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1차 처방은 일단 ‘돈줄 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출 기준을 강화해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는 한편 부동산시장의 안정 역시 꾀하겠다는 것이다. 가장 유력한 카드는 박근혜 정부 당시 빗장을 풀어놓은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초이노믹스(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경제정책)’ 이전으로 다시 조이는 것이다. 현재 각각 70%와 60%(수도권 아파트 기준) 수준인 LTV와 DTI의 효력이 7월로 종료되는 가운데 이를 규제완화 이전인 50% 수준으로 환원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당초 정부가 예고했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제도 정비로 시행에 시일이 걸리는 상황에서 금융규제 공백기간 동안 LTV·DTI 규제로 급한 불을 끌 것이라는 관측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4일 “DSR 종합시스템이 만들어지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현행 제도 내에서 어떻게 조절할지 논의하고 있다”며 LTV·DTI 강화를 시사했다. 당초 LTV·DTI 규제 강화에 신중론을 보였던 금융당국의 기류 변화도 감지된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7월 말 종료되는 LTV·DTI 행정지도와 관련해 최근 주택시장 및 가계대출 동향을 반영한 새로운 행정지도 방향을 가능한 한 빨리 결정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 정부에서 LTV·DTI 강화 등의 금융규제는 가계부채 대책이라기보다는 주거 안정을 위한 ‘부동산대책’에 가까웠다. LTV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DTI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도입된 주택담보대출 규제다. 가계의 대출 상환능력 심사를 위해 마련된 기준이지만 집값을 띄우거나 잡는 데 쓰였다. 박근혜 정부 당시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한 LTV·DTI 규제완화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저금리 장기화 등의 요인으로 가계의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170%까지 치솟으며 LTV와 DTI 같은 금융규제의 목표 역시 일차적으로 가계빚을 잡는 데 초점이 맞춰지게 됐다.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 때와 달리 집값 상승으로 인한 주거문제와 가계부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숙제에 직면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 앞에 놓인 ‘집값 트라우마’ 앞서 ‘부동산과의 전쟁’을 벌였던 참여정부 5년간 서울의 아파트값은 78.9% 폭등했다. 임기 초반 투기과열지구 지정 확대부터 종합부동산세 도입, 양도세 중과세,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분양가 상한제, LTV·DTI 규제 등 그 어느 정부보다 강도 높은 정책을 쏟아냈지만 집값을 잡는 데 실패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재임 중 “부동산정책 빼고는 꿀릴 게 없다”는 말로 부동산정책 실패를 자인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출범하자마자 집값 급등에 직면했다. 부동산 문제에 관한 한 ‘참여정부 트라우마’가 작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과도한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급증으로 규제에 나서야 하지만, 규제 일변도였던 참여정부 부동산정책이 실패했던 학습효과가 새 정부에 각인된 이상 적극적인 시장 개입도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참여정부가 부동산시장 과열을 잡는 마지막 카드로 내놓은 것이 LTV·DTI 강화와 같은 금융규제였다. LTV·DTI는 이번에도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타 역할을 할 전망이다. ‘가계빚 주범’으로 지목됐던 집단대출에 대한 DTI 적용 여부도 주목된다. 다만 최근 부동산시장 과열이 서울과 수도권 등 일부 지역에만 국한된 만큼 주택 실수요자들이 타격을 받지 않도록 일률 규제보다 투기수요를 잡는 ‘핀셋 처방’을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새 정부가 임기 초반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강화를 통해 강도 높은 규제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참여정부 당시 종부세가 거센 조세저항을 부르는 등 임기 내내 정권의 발목을 잡았다는 점에서 현재로선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역시 인사청문회에서 “종합부동산세 강화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고강도 규제를 내놓는 데 대한 정부의 부담감도 존재한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누르기 위해선 대출규제뿐만 아니라 세제·부동산정책 등 복합적인 규제가 필요하지만, 자칫 어렵게 살아난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최근의 경기회복세가 상당 부분 부동산시장의 호황에 기대고 있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가 쓸 수 있는 경기부양 카드 중 가장 손쉬운 방법은 부동산시장을 띄우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부동산시장 호황이 가계빚이라는 불안한 기반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연합뉴스 가계빚과 경기부양 딜레마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1%로 잠정 집계됐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며 6분기 만에 0% 성장률을 벗어난 것이다. 이 같은 경기회복은 부동산시장의 호황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4분기 -1.2%를 기록했던 건설투자 증가율은 올해 1분기 6.8%로 뛰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부동산시장 열기가 이어지며 주택과 토목·건설 모두가 증가한 것이다. GDP에 대한 성장 기여도 역시 건설투자 부문이 가장 높았다. 이 같은 경기 반등을 긍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를 “기형적이고 취약한 성장”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성장률 1.1%의 전부가 건설투자(기여도 1.1%포인트)에 기인한 반면, 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민간소비 기여도는 0.2%에 불과해 아직은 경기회복을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향후 수출경기 호조가 이어진다면 시차를 두고 내수부문이 살아나며 전체 경제상황이 본격적인 경기회복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겠지만, 수출에 문제가 생기거나 건설투자가 성장력을 잃어버릴 경우 경제상황이 다시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수출과 부동산시장이 모두 휘청거릴 경우 미미하게나마 살아난 경제성장 동력도 꺼질수 있다는 전망이다. 주 실장은 “현재 경제성장의 상당 부분이 건설투자에 의존하는 불안한 성장구조가 지속되고 있지만, 부동산경기에 의존적인 민간·건축경기의 호조에 기대 경기회복을 도모할 경우의 부작용을 새 정부가 유념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쓸 수 있는 경기부양 카드 중 가장 손쉬운 방법은 부동산시장을 띄우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경기침체 속에 부동산시장이 ‘나홀로 호황’을 보인 이유다. 특히 수출부진이 몇 년째 계속되며 건설경기에 의존한 부양책이 이어졌다. 지난해 건설투자의 성장기여율 비중은 38%로 2013∼2015년 평균(18%)의 2배에 달했다. 성장기여율이란 성장기여도를 100으로 봤을 때 해당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문제는 이 같은 부동산시장 호황이 올해 15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계부채라는 위태로운 기반 위에 있다는 점이다. 원로 경제학자인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지난 2월 한국경제학회의 에 게재한 논문에서 이런 부동산시장 상황을 ‘폰지게임(Ponzi Game)’에 비유했다. 폰지게임이란 고배당을 미끼로 투자금을 조달한 뒤 만기가 되면 제3자에게서 새로 받은 투자금으로 앞의 투자금을 갚는 투자 사기 수법을 말한다. 이 교수는 “지난 50여년간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정부가 꺼내든 카드는 부동산시장 부양책이었고, 그때마다 주택가격은 수직상승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게 됐다”면서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에서 주택과 관련해 벌어지고 있는 폰지게임은 언젠가 그 끝자락에 이르게 되고, 이 단계에 이르면 정부가 아무리 부동산시장을 떠받치려고 발버둥친다 해도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 되어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새 정부도 이 점을 모르지 않는다. 참여정부 당시 종부세 도입의 산파 역할을 했던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은 2011년 펴낸 라는 책에서 “건설업으로 경기 부양을 하는 것은 끊기 어려운 마약”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이 오래된 ‘마약’을 끊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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