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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인권’에 역대급 예산 쏟는 정부, ‘가족 송금’은 수사해놓고 나 몰라라(2024. 11. 18 06:00)
- 2024. 11. 18 06:00 사회
- 경찰, 지난해부터 ‘북한 가족 송금’ 탈북민들 수사 “인도적 지원은 면책해야” 지적에도 재판은 계속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으로,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기본적 책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통일 독트린’이라는 남북통일 구상을 발표했다. 구체적 방법으로는 ‘북한 주민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인도적 지원’,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의 역할을 통일 역량에 반영’을 제시했다. 통일부는 통일 독트린에 맞춰 내년도 예산을 편성했다. 북한 인권 개선 사업은 올해의 2배인 124억원, 북한인권센터 건립에는 106억원을 책정했다. 탈북민 정착기본금은 1인당 1000만원에서 1500만원으로 늘렸다. 그런데 최근 기자가 만난 한 탈북민은 “윤석열 정부가 탈북민, 북한 인권을 위해 무슨 정책을 편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오히려 “정부는 탈북민을 탄압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이 이전 정부에서 수사하지 않았던 ‘북한 가족 송금’을 지난해부터 갑자기 수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탈북민들이 가난에 시달리는 북한 가족을 돕기 위해 돈을 보내는 ‘북한 가족 송금’을 단순히 형식적 법으로 재단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국회 등에서 나왔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 10월 1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제기돼 (안보수사대에서) 수사하지 않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러 탈북민이 이미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설 수밖에 없는 탈북민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가족 소식 알려면 브로커 통할 수밖에 “북한의 ‘북’ 자만 떠올려도 눈물이 나요. 북한에 있는 가족들 때문에요. 늙은 부모가 울면서 도와달라고 영상을 보내오면 일이 손에 잡히겠어요? 돈을 안 보내면 밤잠을 못 자요. 여기 사람들은 자기 부모 다 같은 땅에 살고 굶지도 않잖아요. 여기서 웃고 떠들고 살아도 가슴이 타서 재가 남아요, 재가.” 지난 10월 21일 기자와 만난 50대 탈북민 여성 A씨가 말했다. A씨는 2007년 한국에 들어와 18년째 살고 있는데 지난해 7월 갑자기 경찰에서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수사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탈북민들은 한국에 들어오면 브로커부터 찾는다고 한다. 먹고살기 어려운 북한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고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을 주고받고 싶지만 정식 경로가 없어 중국, 북한의 브로커들이 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은 A씨가 외국환 업무 등록을 하지 않은 채 탈북민들 돈을 받아 브로커 쪽 계좌로 보내준 게 법 위반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월 14일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식’에서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으로,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기본적 책무”라고 말했다. 검찰도 이 논리를 내세워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에서 문재인 정부 인사들을 수사했다. 그러나 경찰은 한국 국민인 탈북민이 북한 주민인 가족에게 돈을 보낸 것은 ‘외국환 거래’라 미등록이면 처벌해야 한다며 수사에 나섰다. A씨는 벌금 1000만원 약식명령을 받자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북한에 살던 어린 시절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꿨던 A씨는 ‘출신성분’ 때문에 모두 포기했다고 했다. A씨의 친척이 해방 이후 남쪽으로 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반동분자라는 이유로 A씨 가족도 북한에서 반동분자로 분류됐다. 가난과 탄압을 피할 수 없었다. 탈북 후 한국으로 온 A씨는 밤낮없이 식당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모은 돈으로 자녀를 비롯해 다른 가족 몇 명을 한국으로 데려왔고, 북한에 남은 부모와 가족들에게는 브로커를 통해 돈을 보냈다. 그러면서 중간에서 다른 탈북민의 돈을 전달해주는 일도 하게 됐다. 북한이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한 다음 날인 지난 10월 16일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전망대에서 북한의 선전마을이 뿌옇게 보인다. 김창길 기자 송금 과정엔 위험이 뒤따르지만 A씨는 탈북민들이 송금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감자나 콩을 심어도 싹이 나기도 전에 다 파먹으니까 나질 않는 거예요. 농사를 지으면 하룻밤 깜빡하면 금세 다 없어져요. 오죽하면 군대가 농장 밭을 지키겠어요? 겨울엔 먹을 게 없으면 남의 집 감자를 도둑질할 정도니까요.” 세 살배기 딸을 북한에 두고 온 탈북민, 80세 넘은 부모의 건강을 걱정하는 탈북민이 A씨에게 소식을 좀 알아봐 달라고 연락해왔다. A씨의 동생들은 송금 문제로 북한 보위부 조사를 받았고 소식이 끊겼다. 이마저도 브로커 같은 선이 없으면 정보를 듣지 못한다. A씨가 말했다. “(돈을 전달하면서) 저는 단 1전도 뗀 게 없어요. 정부도 이날 이때까지 몇 년 동안 돈을 보냈지만 한 번도 잡은 적이 없어요. 정말 문제가 있으면 정부에서 그동안 왜 가만히 뒀겠어요? 먹고살라고 조금씩 보내주는 건데 그걸 문제 삼으면 어떡하나요. 탈북민들은 북한 가족이 어떻게 될까봐 여기서도 떠들지 못하고 조심히 사는데요.” 휴민트 역할 탈북민도 송금 수사 대상 탈북민 부부인 주수연(45)·황지성씨(45)는 지난해 4월 경찰에게 갑작스러운 압수수색을 당했다. 경찰이 내민 압수수색 영장엔 주씨가 북한 가족 송금에 관여했다는 내용뿐 아니라 북한과의 연계 혐의도 적혀 있었다. 경찰은 영장에 “대금의 정확한 전달을 위해 북한 내 공범이 수수료 일부를 반국가단체 구성원에게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고, 외화벌이 사업이나 국내 탈북민 정보수집을 위해 반국가단체 구성원이 브로커로 활동하거나 공모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향후 불법과 탈법적인 자금 거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커 수사가 필요하다”고 썼다. 주씨는 지난 9월 약식기소돼 벌금형을 받았고, 조만간 정식재판을 청구할 예정이다. 지난 11월 2일 기자와 만난 주씨 부부는 윤석열 정부 경찰의 송금 수사에 강한 분노를 표했다. 그 배경엔 이들 부부가 중국, 북한의 브로커들과 교류하면서 북한 가족들의 생계 지원, 소식 전달을 넘어 탈북민들의 탈북을 돕는 역할을 해왔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주씨는 “갈 곳이 없을 때 나를 받아준 게 고마워서 이 땅에 해되는 짓을 안 하고 애국하며 살았다”며 “그런데 경찰이 증거도 없이 우리를 간첩으로 몬 것”이라고 했다. 황씨는 구출한 탈북민 중에는 인신매매로 팔려 갔던 여성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이다. “제가 데려온 (북한) 사람이 2000명이 넘어요. 작년에 입국한 탈북민의 절반은 우리 가족이 입국시켰어요. 중국에 팔려 가 있는 사람들을 돈 지불하고 구출했단 말이에요. 왜 우리 조선 여성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마음에 한 사람이라도 빼 오자고 시작한 일이었어요. 이런 아픔을 정부가 알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엉뚱한 수사만 하는 거예요. 탈북민 정책이라는 게 밑바닥에서 고생하면서 비참한 삶을 겪은 사람들의 말을 들어서 만들어야죠. 정착금 올려주겠다고요? 아래는 탄압하면서 북한 인권을 이야기할 무슨 자격이 있나요? 내 부모한테 내가 돈을 보내는데 대통령이라도 보내지 말라고 할 자격이 있는 건가요?” 지난 10월 14일 한 시민이 출입이 통제된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내 자유의 다리를 바라보고 있다. 김창길 기자 주씨 부부는 브로커들 사이에 오가는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해 한국 정보기관에 넘겨주는 일종의 ‘휴민트’(정보원) 역할도 수행했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 수사로 정보를 주고받던 선들이 끊어지고 있다고 했다. 황씨가 말했다. “북한의 물가 같은 것은 초보적인 정보예요. 탈북민들이 수집하는 거죠. 내가 거기 가서 장 볼 일이 있나요? 왜 알아보겠어요? 탈북민 송금이라는 게 부모·형제의 생계도 있지만 대북 휴민트로 정보기관이 많이 이용합니다. 총칼 없는 전쟁 시대에 이런 휴민트를 죽인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죠. 나라에 충성한 결과가 수사라니 정말 분하고 억울하고…. 경찰이 통장 내역을 다 파헤치고 15년간 구축한 인맥을 다 파괴해버렸어요. 토사구팽이잖아요. 결국 정권을 연장하는 구실이 필요한 거 아닌가 싶어요. 만약 우리가 간첩으로 밝혀졌다면 보수 정부 들어서 숨어있던 간첩을 잡았다고 자랑했을 거 아니냔 말이죠. 웃기는 일입니다.” 이들 부부는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네 명을 잡는 실마리를 제공해 정부로부터 포상금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탈북민들의 북한 가족 송금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통일부는 탈북민 지원과 북한 인권 증진을 연일 강조하면서도 경찰의 송금 수사는 방관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수사·재판에서) 인도적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외국환거래법은 합법적인 금융 거래가 제도화된 나라와의 관계를 상정한 것이고, 그게 안 되는 나라(북한)와 상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제도 개선은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지만 현행 제도하에서 유연하게 운용할 필요는 있다”고 했다. 처벌 사례 없어 법원 태도도 오락가락 북한 가족 송금을 처벌한 사례는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판사마다 사건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탈북민 A씨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북부지법 판사는 현 경찰과 통일부의 자료, 과거 정부의 합법화 추진 등을 추가로 검토해보기로 했다. 반면 D씨 사건을 심리하는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판사는 “이게 대체 무슨 사건인데 변호인들이 많이 붙냐”, “최대한 조용히 처리해야 맞는 것 아니냐”며 심리를 서둘러 종결하자고 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이탈주민 법률지원위원회가 공익소송으로 이 사건들을 수임해 무료 변론하고 있다. 탈북민들이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 가족에게 소액의 돈을 보낸 것이 외국환거래법상 ‘등록하지 않고 외국환 거래를 업으로 한 것’에 해당하는지, 북한에 돈을 보낸 행위가 외국환 거래인지가 재판 쟁점이다. 탈북민 측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를 근거로 외국환 거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A씨 사건의 경우 탈북민들이 A씨 계좌로 입금한 액수만 확인될 뿐, 실제 북한으로 넘어간 돈이 얼마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검찰은 재판에서 “금액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외국환 거래를 업으로 한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앞서 경찰의 송금 수사는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넘겨받는 과정에서 실적 쌓기를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찰청 안보수사국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외국환 업무를 업으로 등록하지 않고 수수료를 챙기는 것은 현행 실정법 위반이기 때문에 (기소된 탈북민들에 대한) 사법처리 절차는 그대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족 송금 명목으로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해 탈북민이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런 고소·고발이 들어오면 수사는 이뤄질 수 있다”며 “(안보수사대에서는) 인도적 목적 등을 고려해 단순히 돈을 보낸 사실만으로 인지수사를 하기보다는 안보에 직접 관련이 있는 중요사범 위주로 수사할 계획”이라고 했다. 북한 가족에게 돈 보내면 범죄?…탈북민 “이게 말이 되냐”[주간경향]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우리는 이를 몇 배로 응징할 것입니다. ‘전쟁이냐 평화냐’의 협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것은 북한 정권이지, 북한 주민은 아닙니다. 정부는 탈북민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1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말이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7130900051
- 국제질서 흔드는 북한군 파병…김정은의 승부수인가, 자충수인가(2024. 10. 28 09:48)
- 2024. 10. 28 09:48 정치
- 한국과 대결 피하고 파병 가능성…미 대선 염두 전략적 선택일 수도 한국 정부 대책의 실효성 문제…한반도 영향 분석 뒤 대응 나서야 북한이 지난 6월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을 수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연합뉴스 한반도 내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한 북한의 움직임이 국제사회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북한군이 러시아로 ‘파병’됐다는 정황이 확인됐다. 시기, 방식, 기대 효과 등이 모두 계산된 모양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주장한 ‘두 국가론’, 지난 6월 북한이 러시아와 체결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 북한의 ‘사회주의헌법 개정’ 등과도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일련의 사건들은 북한이 단순히 군사적 의미를 넘어 외교, 경제, 국제질서 등을 고려한 북한판 대전략(Grand Strategy)을 가동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북한은 러시아 파병을 통해 국제사회가 참여하는 ‘거대한 체스판’ 위로 단박에 올라섰다. ‘고립의 탈피’는 ‘진영화’를 통해 가능하다는 국제사회 작동원리를 이용했다. 경제 제재, 하노이 회담 실패, 한국의 정권 교체, 외교적 고립 등을 거친 김 위원장은 ‘러시아’와의 연대를 통해 존재감을 확보했다. 북한 독재 정권 존속을 목적으로 한 ‘진영화’가 열강이 대거 휘말릴 수 있는 국제전 가능성을 연 것이다. 당장 후방지원을 담당해 온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와 미국은 대응에 나서야 할 상황이다. 한국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더 이상 남 일이 아닌 게 됐다. 이로써 북한을 고립시켜 힘으로 억제한다는 윤석열 정부 정책에도 구멍이 뚫렸다. 북한군 3000명은 누구인가 “북한 특수부대원이 러시아군에 현재까지 약 3000명 파병됐고, 오는 12월까지 파병 규모가 총 1만여명이 될 것이다.” 지난 10월 23일 조태용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 참석해 밝힌 정보다. 같은 날 북한군 파병을 두고 ‘조사 중’이라는 미국 정부의 태도도 ‘증거가 있다’로 바뀌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직접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병력이 러시아에 있다는 증거가 있다”고 확인했다. 다만 파병 목적을 두고는 “두고 봐야 한다. 이는 우리가 가려내야 할(sort out) 문제”라고 답했다. 신중한 미국 정부 측 속내와 별개로 파병과 전투 참여를 구분하는 오스틴 장관의 접근에는 일리가 있다. 군사전문가인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제전략연구실장은 “일반적으로 파병은 역할에 따라 크게 2~3개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며 “하나는 대표적으로 떠올리는 전투병이고, 또 다른 하나는 후방에서 유지보수 등을 담당하는 지원군 역할”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은 러시아에 다양한 무기를 지원했는데 이중에는 ‘북한판 이스칸데르’라고 불리는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도 포함돼 있다. 이를 운용하기 위한 일부 기술 인력 역시 러시아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 역시 넓게 보아 파병 개념에 속한다. 이들 외에도 북한군이 러시아에 이미 파병돼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지난해 러시아 내 소식통으로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인민군 공병국(건설여단) 병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들이 후방에서 전쟁 지원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줄을 서서 러시아 보급품을 받고 있다고 공개한 영상./우크라이나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 X(구 트위터) 갈무리 결국 조 국정원장이 밝힌 북한군 3000명이 무엇을 하는 부대냐에 따라 파병의 성격도 달라질 수 있다. 이는 북한이 직접 전투에 참전해 국제문제를 일으킬 것인가와도 직결된다. 국회에서 나온 정보에 따르면 파병된 북한군은 ‘폭풍군단’으로 불리는 특수작전군 예하 11군단이다. 일반 부대에 비해 가볍게 무장해 기동력을 살린 ‘경보병여단’이 주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역할은 후방에 침투해 교란작전을 펼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이들 역할에 더욱 의문부호가 붙는다는 점이다. 조 위원은 “북한이 파병했다는 특수부대의 주 임무는 후방 침투 및 교란인데 러시아어도 못하는 병사들이 후방에 침투해서 무슨 역할을 하겠느냐”며 “이들을 전방에 배치하더라도 북한에서 훈련받은 이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제대로 싸울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전투에 투입될 경우 포로로 붙잡히거나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데 그게 오히려 러시아, 북한 모두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보는 분석도 나온다. 두 실장은 “전쟁 패러다임이 바뀐 만큼 러시아에 투입됐다고 알려진 3000명의 역할은 전선에 바로 투입되는 것이 아닌, 이후 들어올 본대를 위한 사전 준비 병력에 가까울 것”이라며 “크게 러시아군과 협력해 전투를 이끌 지휘부와 러시아군에게 군사작전에 필요한 표준화된 전시교육을 받고 향후 북한군 본대를 교육할 선발대로 구성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북한군은 드론 운용, 대드론 방어 체계 등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인데 이대로 전선에 투입되면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 선발대가 이를 북한군에 교육할 수 있을 정도로 숙지하고, 임무 수행이 가능할지 검증하는 데만 올해가 다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분석을 종합하면,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을 즉시 전력으로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전쟁 양상이 화력, 공습 등으로 비중이 옮겨지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실제로 국정원도 북한군 1만여명 파병이 완료되는 시점을 올해 12월로 예측했다. ‘파병’이 아닌 파병 ‘시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 대선을 10여일 앞두고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공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의미다. 북한군 파병은 무엇을 노렸나 올해 북한은 주요 국면마다 정부와 전문가들 예측을 벗어났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10월 7~8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한국식 ‘국회’) 결과다. 애초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북한이 대대적으로 헌법을 개정하고 발표할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최고인민회의가 종료된 후에도 헌법 개정과 관련한 북한의 특별한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대신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남측과 연결되는 도로·철도 등을 끊고 요새화 작업만 진행했다. “한국과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다”는 김 위원장 발언이 ‘실질적 조치’로 나타난 것이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7차 핵실험과 같은 대규모 도발이 진행될 것이란 예측 역시 빗나가고 있다. 이는 이른바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과 그 대응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북한은 지난 10월 11일 ‘외무성 중대성명’으로 “한국이 지난 (10월) 3일과 9일에 이어 10일에도 심야시간을 노려 무인기를 평양시 중구역 상공에 침범시켜 수많은 반공화국 정치모략 선동 삐라를 살포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10월 15일에는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명의의 담화에서 “명백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고, 10월 19일에는 노동신문을 통해 ‘무인기 잔해’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위협 발언의 수위는 계속 올라갔다. 하지만 “군사적 수단의 침범행위가 ‘또다시’ 발견, 확정될 때”라는 전제가 붙었다. 당장 보복할 것처럼 열을 올렸지만 실상 발언의 방점은 ‘재발을 방지하라’는 요구에 찍혀 있었다. 러시아 독립 언론기관이라고 주장하는 ‘아스트라’는 지난 10월 22일(현지시간) 텔레그램 채널에 북한군으로 보이는 군인들이 건물 외부에 서 있는 모습을 촬영해 게시했다.(왼쪽)/아스트라(ASTRA) 텔레그램 채널 갈무리. CNN은 지난 10월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문화부 소속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를 통해 입수한 러시아가 파병된 북한 군인에게 군복과 군화 등 보급품을 원활하게 지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한글 설문지를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문화부 소속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 제공. 북한이 한국과의 직접 대결을 피하고 선택한 것은 러시아 파병인 것으로 기정사실화 됐다. 지난 10월 24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북한군 파병과 관련해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부인하지 않았다. 하루 뒤인 25일에는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그러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국제법적 규범에 부합되는 행동일 것”이라는 김정규 북한 외무성 러시아 담당 부상의 발언을 실었다. 이로써 국면은 파병을 ‘했나, 안 했나’에서 ‘왜 했는가’로 전환됐다. 북한은 파병이라는 전략 변화를 통해 국제질서 변화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북한과 한·미동맹 사이에 형성된 전선을 러시아를 포함한 지역 전선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러시아 파병을 통해 가장 얻고자 하는 것은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같은 확고한 군사동맹”이라며 “북한 정예군이 파병될수록 유사시 러시아 역시 이에 상응하는 지원 및 협력을 해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북한을 상대로 했던 한·미동맹이 이제 북·러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러 밀착이 파생할 국제질서 변화에 주목하는 것은 두 실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파병으로 인해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득은 ‘안보우산 확약’, 쉽게 말해 러시아의 확장억제 제공”이라며 “이는 북한이 사실상 핵을 보유했음에도 미국의 압박을 받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안보의 장기적·질적 강화를 위해 정예 전력이 러시아로 빠져나가는 등의 단기적·양적 약화를 감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의 이러한 선택을 단순히 ‘도박’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 문제와 엮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북한은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당선을 바랄 만한 이유가 있다. 트럼프 후보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입장은 ‘조건 없는 빠른 종전’이다. 이 경우 이미 점령당한 우크라이나 영토의 일부 혹은 전부가 러시아로 귀속된 채 전쟁이 끝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군 파병은 중동과 유럽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의 동아시아 정책도 실패한 것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대신해 대선에 나선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에겐 악재가 나타난 셈이다. 북한 파병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시종일관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 역시 이와 연관 지어볼 수 있다. 두 실장은 “미국 정부는 지금 전략적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며 “북한 파병과 관련한 명확한 확인과 후속 조치는 결국 미국 대선이 끝나야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만큼 주요 강국들 역시 해당 기조를 따라가고 있다. 차기 미국 정부의 입장을 알 수 없다는 점, 상관도 없는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 국제사회 ‘진영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 판단이다. 실제로 이를 벗어나 파병된 북한군에 대한 공격 의사까지 밝히고 있는 나라는 10월 25일 기준, 딱 두 나라밖에 없다. 전쟁 당사자 우크라이나 그리고 한국이다. 북한군 파병, 정부가 막을 수는 있나 “북한군 파병 문제와 관련해 전 세계에서 나오는 이야기 중 95%가 우크라이나발이고, 나머지 5%가 용산발이다.” 지난 10월 23일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급한 것은 이해되지만 미국이나 나토조차 파병 규모, 목적을 두고 신중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먼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도 검토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왜 정부가 앞장서서 전쟁에 휘말리겠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정부는 미국과 나토가 북한 파병을 확인하기 전인 지난 10월 22일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의를 열었다. 이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정부는 북한의 전투병력 파병에 따른 러·북 군사 협력의 진전 추이에 따라 단계적인 대응조치를 실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공격용 무기 지원’ 가능성이 여기서 나왔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지난 10월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등 현안에 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군 파병은 중·장기적으로 한국 안보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 문제는 정부 대책의 적확성·실효성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과 북한군 파병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해당 조치가 북한 외에 러시아라는 새로운 적대국을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반면 한국이 언제, 어느 정도 규모의 무기를 지원할 때 북한군 파병이 ‘왜’ 멈추는지는 알 수가 없다. 정부 역시 ‘살상무기 지원’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억제력을 발휘하는지 설명한 바 없다. 무기 지원에 사용할 예산, 지원에 따른 안보 공백 등이 검토된 것인지 역시 확실치 않다. 게다가 해당 조치는 사실상의 참전이다. 정부가 국회 동의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인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한 군사 전문가는 “그냥 NSC에 소수가 모여서 ‘그럼 우리 이렇게 한 번 해볼까요’하고 발표한 수준 아니냐”며 “윤 대통령까지 ‘살상 무기’ 지원을 말할 정도면 왜 우리가 전쟁에 개입해야 하고, 어떻게 억제력을 발휘할 것인지 정도는 논리적 설명이 가능해야 하는데 아무런 근거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발언만 보면 이제 한국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당사자다”고 덧붙였다. 대책의 실효성이 비판 받는 것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정부는 인천 강화군 등 북한 접경지역에 울려 퍼지는 대남 확성기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지역 주민들은 지난 10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장을 찾아 어려움을 호소했다. 국민들이 일상에서 겪는 문제도 해결 못하는 상황에서 러시아로 파병된 북한군을 억제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수의 군사·북한 관련 전문가들은 “이 문제는 북한 전문가가 아닌 국내 정치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라”고 답변했다. 안보 문제를 넘어선 정치 문제가 엮여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 전문가들은 해당 문제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설명한다. 이준한 인천대 정외과 교수는 “정치학에는 랠리 이팩트(rally effect)라는 것이 있는데 외부 위협이 발생하면 정치지도자를 중심으로 국민이 결집하는 현상이다”며 “김건희 여사 문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이 불거진 상황에서 정부가 지지층을 묶고, 내부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북한 문제에 강경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 업체 리서치뷰의 안일원 대표는 “2030 남성층을 중심으로 안보 문제에 대해 보수적 경향을 보이는 만큼 북한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지지율 추가 하락은 막을 수 있다”면서도 “이미 북한과 정부를 적대적 공생 관계로 인식하는 국민이 많은 상황에서 북한군 파병 문제가 민생 악화, 김건희 여사 문제, 한동훈 대표와의 갈등 문제까지 덮을 수 있을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대남 확성기 등의 일상 문제,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한 안보 불안 등에 지친 국민은 주구장창 북한 문제만 붙잡고 키우는 정부에 반감만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보 문제의 국내 정치화는 정부가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북한을 힘으로 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줄곧 피력해왔다. 그사이 북한은 ‘진영화’를 선택하며 남북 대립을 별개의 국가, 진영 간 대결로 변모시켰다. 상황은 변했다. 정부가 말해 온 고립과 억제에도 구멍이 뚫렸다. 반성과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정부가 내세운 것은 사실상의 ‘전쟁’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0월 24일 “저와 대한민국이 이를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을 재확인했다. 홍 위원은 “아직 미국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도 정해지지 않았고, 차기 정부의 입장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북·러동맹이 앞으로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부터 면밀히 분석한 뒤 대응에 나서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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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폭파(2024. 10. 15 13:15)
- 2024. 10. 15 13:15 정치
- 10월 15일 오전 인천 옹진군 대연평도에서 해병대원이 해안선 수색정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10월 15일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합참은 이날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북한은 오늘 정오께 경의선 및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군사분계선(MDL) 이북 일부 구간을 폭파했다”며 “우리 군은 감시 및 경계태세 강화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북한군 총참모부는 지난 10월 9일 보도문을 통해 “9일부터 대한민국과 연결된 우리 측 지역의 도로와 철길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견고한 방어축성물들로 요새화하는 공사를 진행되게 된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같은 날 유엔사-북한군 통신선을 통해 보낸 통지문에서도 “우리 측은 10월 9일부터 남쪽 국경선 일대에 우리 측 지역에서 대한민국과 연결됐던 동·서부의 도로와 철길을 완전히 끊어버리기 위한 공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지난 10월 14일 정례브리핑에서 “도로에 가림막을 설치해 놓고 그 뒤에서 도로를 폭파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는 것이 식별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남북 육로 단절을 위해 도로 주변 지뢰 매설과 가로등 제거, 철로 제거, 인접 부속 건물 철거 등을 진행해왔다. 남북 연결 육로에는 철도 및 도로인 동해선과 경의선, 화살머리고지 및 공동경비구역(JSA) 통로 등이 있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11월 경의선 도로 인근에 나뭇잎 지뢰를 살포했고 같은 해 12월 동해선에 지뢰를 매설했다. 올해 3월에는 동해선 도로 펜스, 4월엔 경의선 도로 가로등을 철거했다. 이어 5월에는 동해선 철도 레일 및 침목을 제거했고 6월에 동해선 도로 가로등을 철거다. 또 7월엔 경의선 철도 레일 및 침목을 제거한 뒤 8월엔 경의선 열차 보관소를 해체했다. 김명수 합참의장은 지난 10월 10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합동참모본부 국정감사에서 “경의선과 동해선은 (지난) 8월에 차단됐다”며 “이런 움직임은 사전에 감시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 김일성·김정일 부정하는 김정은 ‘두 국가론’…북한 헌법 개정 될까(2024. 10. 14 06:00)
- 2024. 10. 14 06:00 정치
- 김정은 ‘두 국가론’ 강조하면서도 헌법 개정 회의에는 불참 헌법개정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 안 돼…소폭 수정보충한 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월 7일 창립 60주년을 맞이한 김정은국방종합대학을 축하 방문하고 연설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8일 보도했다./연합뉴스 북한이 ‘조용한’ 헌법(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개정을 했다. ‘통일’ 문구 삭제, ‘영토’ 명기 등을 할 것이란 정부 예측과 달리 노동 연령과 선거 나이 등에서 소폭의 수정보충(북한식 ‘개정’ 표현)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6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등에 참석해 ‘큰소리’ 친 것과 다르다. 김 위원장은 “헌법에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간주하도록 한다”고 말해 왔다. 김 위원장의 의지는 지난 10월 7~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한국식 ‘국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재확인됐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의 10월 8일자 보도에 따르면 최고인민회의가 열린 10월 7일, 김 위원장은 김정은국방종합대학을 찾았다. 이곳에서 “우리가 남녘해방이라는 소리도 많이 했고, 무력통일이라는 말도 했지만 지금은 전혀 이에 관심이 없으며 두 개 국가를 선언하면서부터는 더더욱 그 나라를 의식하지도 않는다”며 “대한민국을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두 국가론’은 여전히 강조하면서도 이를 위한 헌법 개정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모순된 행보는 ‘두 국가론’을 둘러싼 북한의 복잡한 속내를 드러낸다. 당장 김 위원장의 ‘두 국가론’은 김일성·김정일이 ‘온갖 노고’와 ‘심혈’을 다 바쳤다는 과업부터 부정해야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나라의 통일을 민족지상의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그 실현을 위하여 온갖 로고와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 북한 헌법 ‘서문’에 박혀 있는 내용이다(<북한법령집>(상권), 국가정보원, 2024). 김 위원장의 모든 권력은 김일성·김정일의 혈통이란 단순한 사실에서 나왔다. 북한은 지난 10월 7~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 회의를 열어 사회주의헌법 일부 내용을 수정보충(개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헌법은 개정됐나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 9월 19일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사’에서 남긴 말이다. 임 전 실장의 발언은 김 위원장의 ‘두 국가론’을 추종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본래 ‘두 국가론’은 북한보다 한국의 통일 방안에 더 가깝다. 1980년대 이후 북한은 ‘1민족 1국가 2제도 2지방정부’라는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기본으로 했다. 이를 ‘적화통일’ 시도로 본 한국은 ‘1민족 2국가 2제도 2지방정부’라는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주장했다. ‘선평화정착, 후통일논의’가 기본틀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임 전 실장 생각과 달리 김 위원장의 ‘두 국가론’은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가 아닌 과거 동독이 제시한 ‘적대적 2국가론’에 가깝다는 점이다. 이 경우 통일의 기본단계인 남북 간 화해 협력·평화 공존부터 요원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임 전 실장 발언을 두고 “상황에도 맞지 않고, 현실성도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한국에서 ‘두 국가론’이 비판받는 것처럼 북한 역시 ‘두 국가’로의 전진이 쉬운 것은 아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이번 헌법 개정 상황이다. 결과를 두고 크게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통일’ 문구 삭제 등의 헌법 개정이 있었지만 북한이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만약 개정을 했음에도 공개하지 않았다면 서해 국경선 문제 때문일 것”이라며 “북한의 서해 국경선은 우리의 북방한계선(NLL)과 겹칠 가능성이 높은데 이 경우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다.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것은 ‘한국과 더 마주 서고 싶지 않다’는 김 위원장 뜻과는 다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둘째는 대대적인 헌법 개정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를 방증하는 정황이 있다. 북한은 지난 10월 9일 남측과 연결되는 도로·철도를 끊고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요새화 공사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북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명의의 보도문이 조선중앙통신에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북한은 이 보도문에서 “우리 공화국의 ‘주권행사 영역’과 ‘대한민국 영토’를 철저히 분리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군사적 조치를 취한다는 것을 공포한다”고 했다. 적어도 북한 헌법에 영토조항이 신설됐다면 ‘공화국 주권행사 영역’과 같은 모호한 표현이 사용되기는 어렵다. 최고인민회의 결정 사항이라는 점 역시 ‘대대적 헌법 개정은 없었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고인민회의는 당 전원회의 등과 달리 북한 주민들이 직접 영향을 받는 입법 활동”이라며 “만약 중폭 이상의 헌법 개정이 이뤄졌다면 김 위원장이 직접 참석하고, 취지를 설명하는 시정연설 등을 진행하는 것이 통상적인데 이 과정이 없었다”고 말했다. 양 총장 역시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결정 사항은 아무리 민감한 사안이라도 최대한 요약해서 보도해왔다”며 “헌법 개정이 보류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 10월 7일 창립 60주년을 맞이한 김정은국방종합대학을 축하방문하고 연설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8일 보도했다./연합뉴스 헌법 개정을 하기에는 ‘시기’가 좋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가 있다. 대외 환경 변화를 앞두고 북한이 불확실한 ‘도박’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홍 위원은 “2019년 선출한 북한의 14기 대의원은 원래 올해 3월 임기가 끝나야 하는데 연장된 상황”이라며 “미국 대선 결과를 보고 필요하면 내년 초 15기 대의원을 구성해 헌법 개정을 하는 것이 정치적 선전 효과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북한의 헌법 개정 여부는 정확한 사실관계는 확인되지 않고, 불확실성만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무엇을 했든 북한이 ‘조용하다’는 것이다. 헌법에서 ‘통일’ 문구 삭제, ‘영토’ 명기 등은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큰소리’ 쳐온 사안들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헌법을 개정 ‘했냐’, ‘하지 않았냐’가 아닌 ‘왜 조용할 수밖에 없는가’이다. 북한은 왜 조용한가 북한의 헌법 개정이 지향하는 것은 ‘두 국가론’이다. 이는 곧 ‘생존전략’이다. 북한은 한국과 얽힌 민족적 특수관계를 ‘위협’으로 판단한다. 특히 안보와 외교적 측면에서의 갈등이 두드러진다. 실제로 북한의 핵무장에 맞서 미국의 핵전력과 한국의 재래식 전력이 결합한 ‘통합억제’ 구상이 본격화됐다. 북·미관계 정상화, 유엔 제재 해제 등 외교적 측면에서도 ‘당사자’를 주장하는 한국 입장을 배제하기 어렵다. 북한은 차라리 한국과 별개의 국가로 인식되면 생존을 위협하는 변수를 하나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이러한 상황을 두고 ‘방어적 두 국가론’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전략은 김 위원장 발언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한국을) 의식하는 것조차 소름이 끼치고 그 인간들과는 마주 서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핵 사용과 관련해서는 “적들이 우리 국가를 반대하는 무력사용을 기도한다면” 같은 가정을 붙인다. 이를 좀 더 정제된 표현으로 설명할 땐 ‘영토 평정’이라는 단어를 쓴다. ‘상대가 나의 영토를 공격했을 때 방어를 넘어 상대 영토까지 점령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일부 언론, 전문가들이 이를 ‘국토 완정’과 구분 없이 쓰며 객관적 상황 파악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과거 김일성 주석이 사용한 ‘국토 완정’은 ‘적화통일’을 의미하는데 김 위원장은 이를 사용한 적이 없다. 일각의 주장처럼 두 단어의 의미가 같다면 북한은 ‘적화통일’을 추진하면서 헌법에선 ‘통일’을 삭제하고, 별개의 두 국가임을 주장하는 것이 된다. 이는 논리적 모순이다. 두 국가론을 북한의 ‘생존전략’으로 볼 때 김 위원장이 집착하는 헌법 개정의 필요성도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또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 개정을 하지 않았더라도 북한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점 역시 알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왜 조용한가’이다. 답은 두 국가론이 안착하는 데 필요한 정지작업들에서 추론해볼 수 있다. 첫째는 김일성이 북한 체제에 도입한 이른바 ‘민족주의적 공산주의’를 어떻게 넘을 것이냐다. 조 위원은 “김일성이 만든 주체사상의 핵심이 조국 해방, 조국 통일이고 이 체제 안에서 김정일·김정은의 권력승계가 안정적으로 이뤄졌다”며 “이제 와서 김정은이 민족, 통일을 버리겠다고 하면 조국해방전쟁이라고 선전한 6·25전쟁은 뭐라고 설명할 것이고,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활동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김정은이 하려는 것은 북한 체제를 만든 김일성의 무덤을 파묘해 버리겠다는 것인데 북한 내 반체제 세력만 키우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헌법 개정을 했든 안 했든 북한의 침묵은 주민들이 납득할 설명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9일 싱가포르 오차드호텔에서 열린 제47회 싱가포르 렉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둘째는 현상 변경 추진으로 인한 주변국과의 관계다. 국제사회는 70여 년 동안 남북한의 민족적 특수관계 위에 외교정책을 설정하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이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를 말하는 것은 안착된 구조의 변경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미다. 특히 북한의 시도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양안 문제 때문이다. 잔더빈(詹德斌) 상해대외경제무역대학 교수(전 환구시보 한국 특파원)는 “대만도 ‘두 국가론’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중국은 한반도 상황에 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며 “북한이 한국을 적대국으로 선언하고 통일정책을 변경하면 ‘남북한의 관계 개선과 대화를 통한 상호 신뢰 구축,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지지한다’는 중국 입장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별개의 국가가 된 북한과 한국 사이에 분쟁이 발생해도 제3자인 중국이 함부로 개입하거나 중재에 나서지 못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두 국가론이 오히려 외교적 고립을 심화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두 국가론은 비단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정부도 전략적으로 북한의 두 국가론에 어떻게든 대응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통일 정책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에 나온 ‘8·15 경축사’ 이후 이른바 ‘자유의 북진’이라고 불린다. 당시 윤 대통령은 “자유가 박탈된 동토의 왕국, 빈곤과 기아로 고통받는 북녘땅으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확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해당 주장은 남북이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아닌 상호 인정하는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임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국가 간 관계에서 해당 발언은 내정간섭이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시도만으로 민족적 특수성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인이기에 잘 보이지 않는 현실이 있다. “북한이 남한을 국가로 지칭하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지 않나. 국제사회 대부분이 북한과 남한을 서로 다른 두 나라로 인식해서 각각 대사급 수교 관계를 맺고 있다.” 잔더빈 교수의 말이다.
- “북한 가족 먹고살라고 보낸 돈이 범죄라니?”(2024. 07. 15 06:00)
- 2024. 07. 15 06:00 사회
- ‘북한 가족 송금’ 수사·기소에 탈북민들 동요 “대북 전단 방치하는 윤 정부, 돈은 왜 막나” 2022년 7월 19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견학이 재개된 가운데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3초소에서 바라본 북한 기정동 마을에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우리는 이를 몇 배로 응징할 것입니다. ‘전쟁이냐 평화냐’의 협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것은 북한 정권이지, 북한 주민은 아닙니다. 정부는 탈북민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1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말이다.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북한 주민과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은 포용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정부는 탈북민 보호·지원을 강화한다며 올해 처음 7월 14일을 국가기념일인 ‘북한이탈주민의 날’로 지정했다. 정부는 북한 인권 개선도 강조해왔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은 동요하고 있다. 최근 경찰이 ‘북한 가족 송금’을 수사하면서 여러 탈북민이 수사·기소 대상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 분단 속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에 넘어온 탈북민들은 가족 송금 수사가 자신들을 다시 벼랑으로 내몬다고 호소한다. 탈북민 A씨는 “가족의 생존을 위해 돈을 보내는 게 범죄라면, 가족이 살아 있는 한 나는 계속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른 탈북민 B씨는 “자유를 찾아 한국에 왔는데 가족에게 돈 보내는 것을 수사하다니 이게 과연 자유가 맞느냐”고 했다. 경색된 남북관계 속 가슴 타는 탈북민들 50대인 A씨는 1998년 북한에 가족을 둔 채 탈북한 뒤 한국에서 10년째 사는 탈북민이다. 남한과 북한, A씨와 가족의 몸은 멀리 떨어져 있다.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 하지만 가족의 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이 연을 잇게 해주는 것이 바로 ‘송금’이다. A씨는 탈북한 이래로 줄곧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조금씩 돈을 보냈다. 지난 6월 26일 기자와 만난 A씨는 “‘나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고 탈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돈 벌어서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는 생각으로 탈북을 한다”며 “나도 가족들이 굶고 있는 것을 보면서 탈북했기 때문에 매해 분기마다, 반년마다 송금했다”고 말했다. 그런 A씨는 지난해 갑자기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경찰은 A씨가 2021년 송금 과정에서 두 달간 탈북민들 돈을 모아 중국 지인을 통해 환전한 것을 문제 삼았다. 이른바 ‘환치기’라는 것이다. A씨는 처음에는 ‘이재명(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이 대북 송금 건으로 문제 되니까 탈북민들도 건드리나 보다, 이러다 말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경찰은 송금 브로커들과 A씨를 외환거래법 위반죄의 공모 혐의로 엮었고, 검찰은 최근 A씨에게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약식명령 청구서에는 한국과 외국 간의 금전거래를 업으로 하려면 정부에 등록해야 하는데 등록하지 않고 송금한 게 범죄라고 적혀 있었다. A씨는 도저히 범죄로 인정할 수 없다며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A씨는 “이게 말이 되느냐. 너무나 억울하다”고 했다. 그의 말은 어떤 뜻일까. 2018년 8월 26일 2박3일간의 상봉 행사를 마친 북측 이산가족이 금강산 호텔에서 북측으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한 후 눈물을 훔치며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탈북민들의 북한 가족 송금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현행법 잣대만 들이대기 어려운 맥락이 있다. 북한 송금은 2000년대 초중반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1990년대 말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탈북민들이 대거 남한으로 넘어왔다. 탈북민들은 북한에 남은 가족에게 연락하고 돈을 보낼 방법을 찾았다. 합법적인 방법은 없다. 북한엔 한국과 같은 일반 은행이 없고, 북한 가족들은 은행 계좌가 없다.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르면 물품은 통일부 장관 승인을 받아 남북 간에 주고받을 수 있지만 돈은 명시적 규정이 없다. 물품도 ‘남북교류’라는 게 가능할 때의 이야기다. 남북 갈등으로 교류가 단절된 상황에서는 어느 것도 오가기 쉽지 않다. 그래서 탈북민과 북한 가족을 연결하는 ‘브로커’가 생겼다. 북한 송금 구조를 잘 아는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송금은 3~4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먼저 북한의 가족으로부터 ‘돈을 보내 달라’는 연락이 온다. 국경 지역에 거주하면 직접 전화가 오기도 한다. 그러면 브로커가 알려준 한국 계좌번호로 돈을 보낸다. 돈을 받은 한국 브로커는 중국 브로커에게 보낸다. 중국 브로커는 중국과 북한을 오가는 밀수 브로커에게 돈을 전달한다. 중국 위안화로 환전한 돈을 밀수 브로커가 북한으로 갖고 들어가고 북한 내의 또 다른 브로커에게 준다. 이 브로커가 최종적으로 가족에게 돈을 전달한다. 이 네트워크는 은밀히 이뤄지지만 상당히 활성화돼 있다고 한다. 이를 가리켜 최희 인하대 다문화융합연구소 연구위원은 ‘로드 뱅크(Road Bank)’라고 지칭했다. 은행이라는 형체 없이 돈이 브로커를 통해 국경을 넘어 북한 가족에게 건너간다는 의미다. 송금액은 적게는 50만원, 많게는 400만원가량으로 대체로 소액이다. 많은 돈을 보내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하고, 송금액의 30~50%는 브로커가 수수료로 뗀다. 브로커들이 중간에서 돈을 가로챌 위험도 있다. 완전하게 돈이 전달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브로커는 북한 가족이 돈을 받은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 보낸다. 많은 수수료를 떼이면서까지 탈북민들이 송금하는 것은 북한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서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 미안함도 얽히고설켜 있다. 브로커는 돈을 전달하면서 탈북민과 가족의 안부를 서로에게 알려주고 생활을 돌봐주기도 한다. 가족 구성원 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2017~2023년 북한인권정보센터가 실시한 ‘북한이탈주민 경제사회통합 실태조사’에서 응답자 400명 중 매년 평균 60% 이상이 “국내 입국 이후 한 번이라도 송금해본 적이 있다”고 답변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2022년엔 응답자의 66.2%가 송금을 해봤다고 답했다. 2022년 7월 19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견학이 재개된 가운데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 송금 문제로 졸지에 피고인이 된 A씨는 조만간 재판에 나가야 한다. A씨의 말이다.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제가 그걸 몰랐어요. 엄마가 아프다고 해서 돈을 보냈는데 동생이 엄마 죽음을 숨긴 거예요.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말하면 제가 돈을 안 보낼까 봐요. 이게 우리 가족에만 생긴 일이 아니에요. 하도 돈에 대해 각박하다 보니 탈북민 가족들에게 이런 일이 많아요.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됐는데 엄마 죽음 갖고 장난친 건가 싶어 분하고 속상해서…. 돈을 한동안 안 보내고 연락을 끊었다가 가족, 형제들이 굶어 죽을까 봐 다시 연락을 했어요. 제가 돈을 안 보내니 굶어 죽기 직전이더라고요. 북한은 장사할 능력이 없고 권력이 없는 사람들은 앉은 자리에서 굶어 죽어야 해요. 그걸 보면서 어쩌겠어요. 다시 돈을 보내야죠. 탈북민들에게 송금은 생존이 걸린 문제예요.” “자유 찾아 남한 왔는데, 이게 자유인가” 송금 문제로 수사대상이 된 것은 A씨 뿐만이 아니다. 지난 4월 말 경찰 안보수사대 관계자 8명이 압수수색을 한다며 B씨의 사업장에 갑자기 들이닥쳤다. 50대인 B씨는 2003년 임신 6개월인 아내와 함께 탈북해 20년 넘게 한국에서 산 탈북민이다. 경찰은 B씨의 몸을 수색하고 휴대전화를 가져갔다. 사무실과 집도 구석구석 뒤졌다. 압수수색 영장에 적인 죄명은 외국환거래법 위반. 경찰은 B씨의 아내가 B씨 통장으로 탈북민들에게 돈을 받아 송금 브로커에게 보내준 것을 문제 삼았다. 지난 7월 9일 기자와 만난 B씨는 북한에서 굶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을 만큼 생활이 괜찮았지만 “자유를 찾아서”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나 스스로만 열심히 살면 북한에서 왔든, 어디서 왔든 따지지 않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독재국가(북한)에서 일해봤지만 거기는 해봤자 대가가 없잖아요. 그런데 여기(한국)는 아니죠. 일할 게 없나요, 뭐가 없나요? 여기는 정말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B씨는 계절이 바뀌는 것을 모를 정도로 주말, 명절 가리지 않고 일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사는 장인·장모에게 돈을 조금씩 보냈다. 브로커를 통해 장인·장모가 어떻게 지내는지, 건강은 괜찮은지 등의 소식을 전달받았다. 이제 B씨는 한국에 완전히 정착했다. 하지만 경찰의 압수수색 후 그는 한국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고 했다. 2018년 7월 7일 중국 단둥에서 바라본 압록강 건너 북한 남신의주 지역. 이준헌 기자 B씨의 말이다. “(압수수색은) 너무 황당한 일이었어요. 이게 과연 자유인가 싶더라고요. 탈북자들이 돈 조금 보내는 게 대한민국 안보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경찰 안보수사대가 이런 수사나 하려고 있는 곳인지 참…. 뒤지다 보면 간첩 같은 것 하나 나오겠지, 이런 식인 것 같은데 지금 시대에 이렇게 간첩잡이를 하는 게 발전된 나라입니까? 나는 일밖에 모르고 살았고, 앞만 보면서 살아왔는데 내가 무슨 간첩이 되나요? 북한 사람들 돈 보내는 거, 정말 어렵게 간병하고 건설 노가다(막노동)해서 보냅니다. 수수료가 아깝지만 그래도 그 돈을 보내야 가족들이 사니까 보내는 거라고요. 도둑질, 강도질을 한 것도 아니고 이런 일로 안보수사대가 수사하는 게 말이 되나요? 정말 모욕적인 일입니다.” 그간 정부는 사실상 송금을 묵인해왔다. 이 때문에 A씨와 B씨 모두 송금 문제로 처벌될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그동안 국가정보원이나 경찰이 송금 문제를 알면서도 탈북민들에게 처벌 가능성을 알려준 적도, 제지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경찰이 브로커만 잡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결국 브로커 없이는 송금할 수 없어서 브로커를 잡으면 송금 길은 막히게 된다. A씨가 말했다. “가족에게 생활비를 보냈다고 탈북민은 죄인이 됐어요. 우리는 독 안에 든 쥐예요. 북한 가족들은 돈을 보내라고 난리고, 여기(한국)에서는 돈을 보냈다고 난리고, 어떡하라는 건가요? 안 되는 거였으면 처음부터 완전히 막든지, 아니면 합법적인 방법을 만들든지…. 무슨 대책을 만들고 나서 죄를 따지든지 해야죠. 문제는 다시 이 죄를 안 짓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거예요. 저는 제 죄를 씻기도 전에 또 동생한테 돈을 보내야 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또 죄를 지을 수밖에 없어요. 북한에 가족이 있는 한….” 국민의힘 당원이었다는 B씨는 이런 일이 보수를 표방하는 윤석열 정부에서 벌어진 것에 더욱 화가 난다고 했다. B씨가 말했다. “왜 국민의힘 정권에 들어와서 이런 수사를 하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단 말이죠. 민주당 정권을 왜 안 좋게 봤냐면, 한국에서 북한에 물자를 주면 일반 북한 주민들은 보지도 못하거든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탈북자들 돈 들어오는 것을 엄청나게 막으려고 합니다. 정권이 무너질까 봐요. 그런 상황에서 송금을 막는 것은 오히려 국민의힘이 북한하고 공조하는 역할이 되는 거예요. 국민의힘은 통일을 바라는 게 맞나요?” 오세훈 서울시장, 반기문 전 유엔(UN)사무총장, 김영호 통일부 장관 등이 지난 7월 11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2024 북한인권 서울포럼’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송금 수사를 하는 정부가 최근 국내 일부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방치하는 것도 비판했다. “북한 인권을 위해서 삐라(대북 전단)를 보낸다는데 제가 보기엔 도움 안 됩니다. 북한 주민들이 삐라를 받지도 못하고, 삐라를 받는다 한들 그걸 가져가서 볼 수 없는 사회니까요. 북한을 자극해서 남북관계가 긴장돼야 정치적으로 이득이니까 그러는 것으로밖에 안 보여요. 오히려 변화는 북한 주민에게 가는 돈이 만듭니다. 돈은 사람의 정신을 바꿔놓잖아요.” 법의 사각지대, 입법 방치 속 범죄 수사로 탈북민의 북한 가족 송금을 합법화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1년 이명박 정부가 친족관계에 있는 남북한 주민 간에 생계유지비, 의료비 등 목적으로 돈을 지급·수령하는 것은 통일부 장관 승인 없이도 가능하다는 내용의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인도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송금의 법적 근거를 만들려고 한 것이다. 개정안은 18·19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박근혜·문재인 정부 땐 별다른 논의가 없었다. 정부가 단속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명시적으로 합법화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송금은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탈북민들이 동요한 이유는 이전 정부가 합법화까지 하려고 한 송금을 수사기관이 나서 수사·기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금 수사는 극으로 치닫는 남북 갈등 국면에서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가자 실적쌓기를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 8월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가족들이 만나 손을 꼭 잡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통일법을 연구해온 한명섭 변호사가 말했다. “가족 간에 생계비를 인도적으로 보내는 것은 처벌할 가치가 없죠. 탈북자들이 개인적으로 돈을 보낼 방법이 없으니까 브로커를 찾는 것이고요. 합법적인 방법이 있는데도 불법적으로 한다면 처벌해야겠지만 합법적인 방법이 없습니다. 또 처벌하려면 사전에 계도를 해야 했습니다. 쭉 있던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정부가 가만히 있었다면 직무유기이고요. 앞으로 낱낱이 다 찾아서 처벌할 것인가요? 아니면 합법적인 길을 열어줄 것인가요?” 하태경 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1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북한 내 탈북자 가족들은 국내 입국 탈북자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대부분 친한파”라며 “(송금 수사는) 사실상 김정은 정권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희 연구위원은 송금을 가족 간의 교류비용이자 통일비용으로 분석한다. 최 연구위원의 말이다. “송금의 사회적 의미는 커요. 이주민들은 수시로 전화를 하고 돈도 마음대로 보낼 수 있죠. 그런데 탈북자들은 그게 가능하지 않아요.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전화를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부모가 아파도, 마지막에 숨을 거두는 것조차 가서 볼 수가 없죠. 남북관계 때문에요. 최소한의 교류는 있어야 하는데, 송금은 ‘내가 돈을 지불할게, 나에게 전화해줘’ 방식의 교류비용으로 작용합니다. 또 한국에서 탈북민들이 북한 주민에게 직접 송금을 한다는 점에서 탈북민이 먼저 통일비용을 지불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정부가 북한에 주는 돈과 달리 더 와닿는 지원을 하는 셈이죠.” 탈북민을 이산가족으로 보고 ‘인권’의 관점에서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탈북민은 자발적으로 가족을 떠났기 때문에 이산가족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 속에서 생존을 위해, 억압적인 정치체제를 견디지 못해 탈북한 점을 고려하면 탈북민도 이산가족이라는 것이다. 남북이산가족법도 남북 이산가족을 “이산의 사유와 경위를 불문하고, 남한과 북한으로 흩어져 있는 8촌 이내의 친척·인척 및 배우자 또는 배우자였던 자”로 정의해 탈북민을 이산가족에서 배제하지 않는다. 안제노·이상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원은 지난해 9월 보고서에서 “국가는 이산가족의 일원인 북한이탈주민들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이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지원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이어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은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고, 서신과 영상을 교환하고 만나는 것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라며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보편적 인권 과제”라고 했다. 임순희 북한인권정보센터 총괄본부장은 “북한이탈주민도 또 다른 이산가족인데, 어떤 이산가족은 국가가 만나거나 서신 교환을 지원하는 반면 왜 북한이탈주민은 송금으로 처벌받아야 하는지 생각해볼 문제”라며 “송금은 국가 안보적 측면이 아니라 가족 생계를 위해 보내는 것이고, 북한 주민들에게 한국이 잘사는 곳이라는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도 있기 때문에 막아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이탈주민 법률지원위원회는 A씨 사건을 공익소송으로 무료 변론하기로 했다. 변호인단 중 한 명인 박원연 변호사는 “20여년 넘게 많은 탈북민이 송금을 해왔는데 지난해, 올해 들어 집중적으로 수사와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며 “가족과 연락하고 정을 나눌 수 있는 권리는 기본적 인권이라는 점에서 탈북민들의 가족 송금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북한 당국 측에 돈이 들어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송금 문제는 인권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 북한 탄도미사일 공중폭발···“극초음속 시험 추정”(2024. 06. 26 16:14)
- 2024. 06. 26 16:14 정치
- 합동참모본부는 26일 북한이 동해상으로 미상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합참은 이날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북한은 오늘(26일) 오전 5시 30분께 평양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미상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추정되며, 한미 정보당국에서 추가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이날 발사한 미사일은 1발로 250여㎞를 비행하다가 원산 동쪽 해상에서 공중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군은 북한이 고체 연료 극초음속 탄도미사일의 성능 개량을 위해 시험 발사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으로 추정한다. 앞서 북한은 지난 1월과 4월 신형 중장거리 고체연료 극초음속 탄도미사일(IRBM·사거리 3000∼5500㎞)의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하강 단계에서 음속의 5배 이상 속도를 내기에 요격이 쉽지 않다. 북한의 이날 탄도미사일 발사는 지난달 30일 이후 약 한 달 만이다.
- 북한의 헤어질 결심…적대적 두 국가 체제는 무엇을 바꾸나(2024. 04. 08 06:00)
- 2024. 04. 08 06:00 정치
- 남북기본합의서 폐기 가능성…영토 분쟁 소지에 핵 억제력도 잃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월 15일 항공육전병부대(공수부대)들의 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TV가 16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한국사회가 4·10 총선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남북관계도 변화를 향해 달음박질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이 일관되게 외치는 것은 남한과의 결별이다. 보수 정권 시기 반복된 일시적 단절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한반도 질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밝힌 ‘적대적 두 국가’ 체제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이를 위해 북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겨졌던 ‘선결 조건’을 해결하는 중이다. ‘한민족’, ‘평화통일’이라는 뿌리 깊은 인식의 삭제다. 북한 정권에는 김일성 시대부터 강조해온 두 가지 역사적 소명이 있다. 하나는 ‘사회주의 강국 건설’, 또 다른 하나는 ‘조국통일’이다. 김일성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 원칙에 합의했다. 북한은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 1993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5차 회의에서 제시한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 대단결 10대 강령’을 묶어 조국통일 3대 헌장으로 삼았다. 이는 곧 김일성의 통일 관련 유훈이 된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김일성의 의지를 담아 평양에 세운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꼴불견”이라며 철거했다. ‘적대적 두 국가’로의 관계 전환을 위해 김일성의 권위에까지 도전하는 모양새다. 북한이 일시적·감정적 결별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방증하는 대표적 사례다. 이제 북한은 한반도 내 두 국가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가장 상징적인 걸림돌도 치울 모양새다. “남과 북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특수관계”라고 정의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이른바 ‘남북기본합의서(1991)’의 폐기다. 지난 3월 28일 통일부는 “북한이 제14기 최고인민회의를 추가로 개최하고 헌법 개정뿐 아니라 남북기본합의서를 폐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이러한 움직임은 논리적 일관성을 갖는다. 민족 부정→평화통일 포기→두 국가 체제로의 전환이라는 순차적 움직임이다. 그렇다면, 궁금한 것은 그다음 상황이다. 두 국가 체제의 한반도는 과거와 무엇이 다른가이다. 상황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사회 일각에는 남과 북은 이미 사실상의 두 국가 체제 아니냐는 인식이 있다. 이는 남북이 별개 국가로 갈라지더라도 지금과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란 기대를 내포한다. 유사한 맥락에서 남북기본합의서 폐기도 평가절하하는 시각이 많다. 이미 합의서는 실질적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1년 남북이 유엔에 동시가입함으로써 국제법적으로 남북은 별도의 독립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각자 표결권을 갖고. 대사를 파견하는 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사실상 남북은 이미 정치적 적대국임을 선언하고 있다”며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나 금강산국제관광국을 없애는 등 남북기본합의서를 유명무실화하는 실질적 조치를 끝내고 최종 폐기 선언만 남은 셈”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2일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포-16나’형의 첫 시험발사를 현지 지도했다고 조선중앙TV가 3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문제는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가 명시적인 국가 대 국가 간 관계로 전환돼도 정말 현재와 아무런 차이가 없느냐는 점이다. 당장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남북관계는 커다란 모순에 직면한다. 민족관계라는 특수성은 그동안 국가 간 관계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상황을 용인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북한과의 관계에서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실상 굉장히 특수한 경우였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것이 영토의 정의다.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조항은 남북을 국가 간 관계로 치환할 때 그 즉시 분쟁 소지를 갖는다. 국경선의 확정 부분도 유사하다. 1953년 정전협정에서 육상경계선은 설정됐지만 해양경계선이 분명히 설정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해양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한 부분은 계속 논란을 만들어 왔다. 명시적 합의가 없었음에도 NLL이 용인됐던 것 역시 민족적 특수관계에 기반한다. 국가 간 관계로 전환 시 분명히 확정해야 할 사항이다. 결국 ‘남과 북이 사실상 별개’인 것과 ‘남과 북이 명시적 별개’인 것은 같은 의미일 수 없다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기존 헌법에는 없던 영토 조항을 헌법에 새로 삽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이는 대한민국 영토에 대한 권리 주장이라기보다 실효적 지배지역에 대한 주권을 명확히 하는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헌법에 영토 조항을 명시하지 않는 국가도 많은데 (북한이) 굳이 이러한 조항을 삽입하는 것은 남북을 국가 대 국가 관계로 명확히 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새 헌법에 영토 조항을 어떻게 삽입하느냐에 따라 한반도가 국제법적 영토분쟁지역이 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한반도 내 두 국가 체제로의 전환은 무력 충돌 가능성 측면에서도 종전과 다른 상황을 만든다. 북한이 추진하는 ‘통일 조항 삭제’ 작업을 꼼꼼히 살펴보면 특징이 있다. 일관되게 평화통일 원칙만 삭제하고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말해 온 대남 적화통일 노선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평화통일, 또 다른 하나는 전쟁에 의한 통일이다”라며 “이중 김정은이 포기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을 전제로 한 평화통일이지 유사시 전쟁을 통한 통일까지 포기하겠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이들이 혼동하는 것이 지금 북한이 말하는 두 국가론이 평화적인 질서하의 두 국가를 의미하는 줄 아는데 전쟁관계의 두 국가다”라고 덧붙였다. 통일부 당국자 역시 “김 위원장의 언급을 볼 때 헌법 개정은 통일 조항 삭제, 적대국 관계, 영토조항 추가 등이 반영될 것으로 보이며 ‘무력통일 조항’이 추가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무력충돌 가능성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을 겨냥한 핵무기의 실질적 사용과도 관계된다.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는 것은 맞나 남북을 막론하고 통일에 관한 논의는 ‘외세 간섭 없는 평화통일’에 맞춰져 왔다. 크고 작은 분쟁 속에서도 남북 정권 어디도 이를 부정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문제는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화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통일정책이 외교적·군사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북한이 배치한 무기들은 한반도 내의 억제력을 담보한다. 즉 유사시 북한을 타격할 수 있는 미군을 포함한 각종 전략 자산을 핵무기로 억제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같은 민족에게 핵을 겨누는 행위가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평화통일의 유훈을 어기는 것이 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북한은 민족 개념 탈피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이다. 홍 위원은 “북한이 한반도 문제에 관한 억제력을 갖기 위해서는 미국에 유사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신호를 줄 수 있어야 한다”라며 “북한으로선 한민족이라는 개념을 탈피하는 것이 한국을 공격할 수 있다는 가장 확실한 신호”라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역시 “민족적 특수관계를 탈피한 상태의 북한은 한국을 겨냥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한 셈”이라며 “전쟁 초반에 선제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해 주도권을 잡겠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했는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동족·민족 개념부터 없앨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는 다음 단계인 외교 협상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미 미국 정치권을 중심으로 북핵 문제의 현실적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는 ‘비핵화’가 아닌 ‘핵 군축’이 핵심이다. 조 위원은 “바이든이든 트럼프든 미국은 북한과 핵 문제와 관련한 협상을 할 생각이 있다고 봐야 한다”라며 “이미 유럽, 중동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에 북핵은 반드시 관리해야 할 현실”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기조가 한국 정부의 ‘비핵화’ 원칙과 전면 배치된다는 점이다. 홍 위원은 “북한으로서는 핵보유국 승인과 군축협상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에서 비핵화를 주장하는 한국이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며 “결국 통일을 포기하고 적대 국가 관계로 전환해 한국을 당사국에서 배제해 버리는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양 교수는 “이대로 가면 한반도 문제에 있어 한국이 패싱(무시)되고, 미국과 북한의 협상 결과에 우리 운명을 맡기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남북관계의 전환은 북한의 외교적 무대를 넓힌다기보다 한국의 개입 가능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의미다. ‘그렇게 보이는 것’과 ‘그런 것’은 유사해 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다. 한반도 내 두 국가 체제의 확립은 기존 남북관계와 유사해 보이지만 분명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전문가들 역시 현재 상황에 대해서만큼은 “남북관계가 지금까지는 없던, 처음 보는 상황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 맞다”고 입을 모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1일 ‘3·1절 기념사’에서 “우리의 통일 노력이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이 되고 등불이 돼야 한다”며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역사적·헌법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헌법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조항을 재확인한 것에 가깝다. 문제는 통일이 한쪽의 말만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간 관계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에 이를 막을 전략과 의지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조 위원은 “북한의 통일 포기는 주민이 아닌 정권의 포기에 가깝다”며 “차라리 정부에서 평화통일 공세를 강하게 추진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 교수 역시 “북한이 헌법에 적대적 두 국가를 명시하기 전에 대화와 교류협력을 재기해볼 필요가 있다”며 “과거 사례를 보면 남북이 대결할 때는 북한이 주도권을 잡고, 대화할 땐 한국이 주도권을 잡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 [신간]북한은 왜 두음법칙을 안 쓸까(2024. 02. 21 05:30)
- 2024. 02. 21 05:30 문화/과학
-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이타가키 류타 지음·고영진, 임경화 옮김·푸른역사·3만원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해온 일본인 학자가 언어학자 김수경을 소개한다. 로동당(노동당), 력사(역사), 리론(이론) 등의 북한 말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김수경은 이런 북한 철자법의 기초가 된 ‘조선어 철자법’의 초안을 만든 사람이다. 두음법칙을 폐지하는 게 언어생활에 더 유익하다는 형태주의 이론을 주장했다. 김수경은 해방 직후부터 1960년대까지 북한 언어학의 모든 분야에서 활약한 언어학자, 언어정책의 설계자였다. 책은 김수경의 학문사를 개인사와 맞물려 서술한다. 저자는 과거 경북 상주 지역에 초점을 두고 식민지 조선의 사회 변화 실태를 살핀 연구로 주목을 받았다. 주류 연구와 정반대로 마을과 개인, 지방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로 국가, 제국, 세계사적 사건을 연결지었기 때문이다. 이번 책에서도 김수경 개인사를 북한사, 한반도사, 세계사로 확장하는 시도를 했다. 책에 대한 일본 학계의 평가를 보면 뜨끔한 구석도 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본국(한국)에서도 나온 적 없을 정도로 충실한 자료 섭렵과 검증으로 집필한 대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알고 보면 반할 매화 이종묵 지음·태학사·2만2000원 조선시대 꽃과 나무의 문화사에서 매화는 가장 중심에 있다. 엄동설한을 뚫고 꽃을 피우고, 매력적인 향을 뿜는 매화는 사군자의 맨 첫 자리를 차지한다. 이 책은 조선시대 문사들이 시와 산문을 통해 남긴, 매화를 사랑하고 즐겼던 이야기를 모았다. 매화를 키우는 다양한 방법부터 벗들을 불러 한겨울에 피운 매화꽃을 함께 감상하는 매화음, 매화를 벗으로 삼는 것도 모자라 아내로 삼은 마니아들부터 조선의 5대 명품 매화까지 조선 선비들의 매화 문화사가 운치 있는 매화 그림과 함께 담겼다. 망가지기 쉬운 영혼들 에리카 산체스 지음·장상미 옮김·동녘·1만7000원 유색인 여성, 양극성 장애 당사자로서 살아온 삶과 생존, 회복에 관한 수필이다. 미국에서 이민자 2세대 유색인 여성으로서 겪는 고통 속에서도 삶을 재건하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저자는 특히 유색인 여성 작가의 책을 읽으며 힘을 얻었다고 말한다. 생태시민을 위한 동물지리와 환경 이야기 한준호 외 지음·롤러코스터·1만7600원 6명의 지리 교사가 동물과 환경을 주제로 쓴 책이다. 기후변화 시대를 동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주목해야 할 동물 18종을 골랐다. 지리적 관점에서 이들의 역사와 생태, 현재의 모습을 살펴보고 생태계 안에서 인간과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태양을 만드는 사람들 나용수 지음·계단·2만8000원 핵융합의 역사를 소개하는 책이다. 1부에서 핵융합의 원리를, 2부에서 핵융합 장치인 ‘토카막’을 만들고 완성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3·4부에서 토카막의 발전 과정과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의 난제를 들여다본다. 한국 핵융합 연구의 역사도 짚어본다.
- 신간
- [박성진의 국방 B컷](1)북한군은 왜 해안포를 3400회나 개방했나(2024. 02. 16 16:00)
- 2024. 02. 16 16:00 정치
- 2018년 9월 19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의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문(9·19 군사합의문) 교환을 지켜보며 손뼉을 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연초부터 ‘한반도 위기설’이 거론되고 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2월 당 중앙위 8기 9차 전원회의에서 남조선을 동족이 아닌 적대적 교전 국가로 규정한 데 이어 ‘대한민국 초토화’까지 언급하면서부터다. 군 고위 관계자들은 국지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남북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져 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국민은 긴장 완화와 남북 간 평화적 공존을 원하고 있다. 국민의 희망과 달리 남북 간 대립이 격화된 데는 2018년 체결했던 9·19 군사합의 폐기가 큰 몫을 하고 있다. 6개 항목의 22개 조항으로 돼 있는 남북 군사합의서는 우발적 무력충돌이 전면전으로 번지지 않도록 남북 간 땅·바다·하늘의 완충구역을 설정하고 적대행위를 중단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담고 있다. 9·19 합의가 폐기된 것은 한국군이 지난해 11월 21일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구실로 9·19 합의 가운데 ‘공중 적대행위 금지구역(비행금지구역)’ 조항의 효력 정지를 발표한 것이 빌미가 됐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자체가 9·19 합의 위반은 아니다. 북한은 남측의 조치 하루 뒤 9·19 군사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했다. 지난 1월에는 합참이 9·19 합의에 따른 지상·해상의 적대행위 중지 구역(완충구역)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남북 간 긴장과 북한의 무력 위협의 강도는 갈수록 높아져 가고 있다. ■북 해안포 개방의 의미 현 정부는 북한의 해안포 개방을 북이 9·19 합의를 지키지 않은 대표적 사례로 거론했다. 군 당국은 북측이 9·19 합의 체결 이후 백령도·연평도 등 남측 서북 도서를 겨냥해 북한 섬과 인근 내륙 해안에 배치된 포문을 지난 5년간 총 약 3400회 개방했다고 밝혔다. 숫자로 보면 엄청나게 많은 횟수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북한이 매일 3~4회 (해안) 포문 폐쇄 의무조항을 위반해온 셈”이라며 “그런데도 (우리는) 9·19 합의를 신줏단지 모시듯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9·19 합의에는 해상 분야와 관련해 “서해 완충수역(초도~덕적도)에서는 포 사격·해상 기동 훈련을 중지한다. 해안포와 함포의 포구 포신 덮개를 설치하고 포문 폐쇄 조치를 한다(제1조 제2항)”고 명시돼 있다. 신 장관은 “포문 개방은 공격을 하기 위한 전 단계의 위협 조치”라고 말했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해안포 개방에 대해 “적대적 의도가 없다”면서 시설물 관리 차원으로 해석했다. 해안지역에 설치된 포의 특성상 습기 제거나 환기 등 시설물 관리 차원으로 봤다. 북한군 포병은 굴속에 포를 숨겨놓고 공격할 때 이를 노출하는 이른바 ‘갱도 포병’이다. 굴속에 포를 숨기는 방식이어서 그만큼 습기에 취약하다. 이를 놓고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권에서 군이 북한의 해안포 공개 의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합의 위반에 ‘면죄부’를 줬다고 주장한다. 반면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은 ‘전략·전술적 관리’를 해왔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해안포 포문 폐쇄 조치를 합의 원칙으로 하되, 시설물 관리를 위한 것일지라도 포문 개방 사례를 모아 주기적으로 9·19 합의 위반사항으로 북한에 전달해 부담을 주는 것도 하나의 전술적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해안포 개방이 적대적 의도를 지닌 의도적 군사합의 위반인지를 따지려면 해안포 ‘포신’의 노출 여부가 중요하다. 이를 놓고 문재인 정부 청와대 안보실 관계자 A씨는 “북한군이 남측을 위협하는 차원에서였다면 포문 개방뿐만 아니라 포신을 노출한 것도 관측이 됐어야 하지만 그런 사례는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해안포 개방이 단순한 시설물 관리 차원이었기에 전략적 측면에서 합의 위반 사실을 통보하고 포문 폐쇄 이행을 촉구했을 뿐 이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 예비역 장성 B씨는 “현 정부가 북한의 해안포 개방을 집중적으로 내세우면서 9·19 군사합의를 비난하는 것은 전체 맥락을 숨기고, 9·19 합의를 폐기하기 위한 핑계로 삼은 ‘대국민 호도’”라고 말했다. ■부메랑이 된 소극적 9·19 홍보 9·19 합의는 남북 모두에 해당하는 조치로, 이명박 정부 당시 작성했던 ‘남북군비통제 추진계획서’에 기반해 만들어졌다. 한국이 북한보다 감시정찰능력이 월등하다는 측면에서 비행금지 조처는 북한군에 더 큰 제약이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육군 대장) 출신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8년 당시 군 당국은 비행금지구역 설정 이후 남북 감시정찰능력 변화를 평가하면서, 사람 시력으로 치면 우리는 1.5에서 1.4로, 북한은 0.4에서 0.1이 된다고 평가했다”며 “9·19 군사합의로 우리뿐만 아니라 북한의 감시정찰능력도 제한받는데, 우리는 여전히 북한을 다 들여다볼 수 있지만 북한은 아예 깜깜이가 됐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서해 해안포 규모에서도 북측이 남측보다 4배나 많다. 9·19 합의에 따라 서해 해상 기동훈련을 제한받는 함정은 북한이 6배 더 많았다. 서해 북한 해군 전력의 80% 이상이 훈련을 못 하게 된 반면 한국 해군 훈련 구역은 덕적도 이남이라 합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사항을 종합해보면 일종의 군비통제안이었던 9·19 군사합의는 북한에 불리한 측면이 많았다. 국방부 대북정책관으로 당시 합의를 주도했던 김도균 전 수방사령관은 “북한 군부는 내부적으로 군사합의를 반대했지만, 김정은 위원장 지시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며 “김 위원장이 직접 합의한 9·19 군사합의가 북한에 훨씬 불리하다는 점을 우리가 홍보할 수 없었던 것은 자칫 북한의 반발을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9·19 남북 군사합의서’ 대국민 홍보는 거의 최악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다. 남북 군사합의서가 담고 있는 6개 항목의 하나하나는 모두 국방부의 백브리핑이나 군 고위관계자 및 실무자들의 자세한 배경 설명이 요구되는 사안들이었음에도 제대로 된 설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남북 최전방 감시초소(GP) 폭파·철거 과정에서는 군 정보당국의 사전 판단과 달리 북측 GP가 지하요새화된 시설이 아닌 정황이 드러났다. 북측 GP 시설의 상당 부분이 참호 형식으로 연결됐다는 점에서 군 정보당국이 북측 GP의 시설 역량을 과대평가한 게 아니냐는 논란도 불거졌다. 당시 국방부는 마치 양계장 닭들에게 모이를 뿌리듯 ‘남북 군사합의’ 보도자료와 해설자료를 기자들에게 돌렸다. 이어 한두 차례 질의응답을 한 게 전부여서 “군이 북한에 양보한 것을 숨겼다”는 불필요한 억측이 계속됐다. 여기에는 군사작전에 일부 제약을 받게 된 합참 작전부서 장군들의 반발도 한몫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극적 설명은 정권이 바뀌면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9·19 군사합의서가 한국군의 손발을 묶어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왜곡된 프레임이 국민에게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한국군에 유리한 측면의 9·19 군사합의안을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탓이다.
- 박성진의 국방 B컷
- 한국은 진짜 북한과 헤어질 결심인가(2024. 02. 02 17:35)
- 2024. 02. 02 17:35 정치
- 남북, 강 대 강 발언 수위 높여…진짜 문제는 ‘2국 체제’ 전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57차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자고 일어나면 북한발 미사일 발사와 전쟁 위협 소식이다.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안보가 강화됐는지, 되레 악화했는지 판단이 어려울 정도다. 외신은 이러한 혼란에 근거를 더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월 25일(현지시간) 복수의 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김(정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대남) 정책을 적대적 노선으로 변경했다”며 “앞으로 몇 달 안에 한국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치명적인 군사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분석대로면 내일 한반도가 전쟁상태에 돌입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한국 정부 역시 발언 수위를 높이며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57차 중앙통합방위회의’를 열고, “연초부터 북한 정권은 미사일 발사, 서해상 포격 등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 선제 사용을 법제화한 비이성적인 집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정권은 오로지 세습 전체주의 정권 유지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의 지적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북한의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정권세습과 폐쇄적 경제운영은 분명 ‘시대착오적’이다.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동시에 이해가 어려운 측면도 존재한다. 윤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도발’, ‘핵 선제 사용’ 등의 군사적 대치 상황으로 정의하고 북한 정권의 특징은 ‘비이성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런 북한을 상대로 자극적인 ‘강 대 강’ 발언만 쏟아내고 있다. 마치 외국에 거주하는 평론가가 한반도 긴장 상황을 설명하는 듯한 여유다. ‘핵을 보유한 비이성적 국가’와 전쟁을 전제로 한 입씨름을 반복하는 상황은 ‘누가 이성적인가’에 대한 의문을 만든다. 이는 ‘속 시원하게 지르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인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다. ■북한은 ‘2국 체제’를 노리나 얼핏 보면, 늘상 있는 도발과 위협이다. 정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남북은 각종 무기로 서로를 겨냥해왔다. 이러한 정전 상태가 70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이제 ‘북한이 공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정도로 한국사회가 불안을 느끼는 경우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 남북관계가 ‘도발’과 ‘화해’의 순환구조 위에 있다는 믿음이다. 그럼에도 조금씩 변해온 것은 있다. ‘확인’, ‘재확인’ 과정을 거쳐왔던 통일원칙에 대한 합의가 서서히 허물어지는 과정이다. 실제로 연초부터 시작된 북한의 도발은 하나의 대원칙 아래 시작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6~30일 평양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열린 당 중앙위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장구한 북남관계를 돌이켜보면서 우리 당이 내린 총적인 결론”이라며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통일 노선과 극명하게 상반되는 ‘흡수 통일’, ‘체제 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쉽게 말해 한반도 내에 별도의 국가체제, 즉 2국 체제 확립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통상적인 위협 같지만 단순하지 않다. 지금껏 북한은 위협을 하면서도 민족통일 대원칙은 일관되게 ‘1민족 1국가 연방제통일’과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입각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는 유사시 하나의 민족 문제로 통일에 관한 주변국의 개입을 배제할 근거가 된다. 문제는 2국 체제로의 전환이 전혀 다른 국면을 만든다는 점이다. 이는 북한 영토에 대한 배타적 주권과 외교권 확립을 의미한다. 적어도 한반도 북부 문제에 있어서 북한과 주변국은 한국과 관계없이 상호 외교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일본은 과거부터 ‘납북자’ 문제를 빌미로 북한과 독자적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미국은 한국을 염두에 둔 북·미관계 접근을 지향하지만 올해 미국 대통령선거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운영 모토가 ‘ABT(Anything But Trump·트럼프만 아니면 된다)’였다면 정확히 반대 상황도 가능하다. 한국을 뺀 독자적인 북·미관계 수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른바 ‘코리아 패싱’의 최종 진화 형태다. 북한이 지난해 12월 23~2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9차 정치국 확대회의를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5일 보도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과의 완전한 결별, 이득일까? 문제는 북한의 ‘2국 체제’ 전환 움직임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입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순히 ‘통일을 하지 않아도 좋다’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안보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문제를 만든다. 이스라엘-하마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례는 전쟁에 대한 새로운 양태를 정립하고 있다. 국제전으로 번질 것으로 예상했던 전쟁이 배타적으로 치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핵의 존재는 국제전으로의 확전 요인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두 전쟁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작동 중이다.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러시아, 이스라엘의 핵전쟁 위협이 국제사회의 물리적 개입을 차단해 사실상 양자대결 구도로 만들었다. 이는 유사시 동맹국의 개입이 제때 작동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 연결된다. 특히 천안함 피격이나 연평도 포격과 같은 제한전 상황이 문제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을 상대로 반격은 어느 정도까지 용인되고, 미국은 어느 규모의 제한전부터 개입할 것인지 모두 알 수 없다. 게다가 남북관계가 민족적 특수성을 벗어나 ‘2국가 체제’로 전환되면 한반도 내 분쟁은 주권국 간 대결이 된다. 국제사회가 제때, 빠르게 개입할 수 없다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상호 비난 외에 뚜렷한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를 틈타 북한은 한반도 내 ‘2국가 체제’ 확립으로 전략을 변화시킨 모양새다. 그럼에도 국내 정치는 북한 문제를 필요할 때 쓰는 ‘꽃놀이패’ 정도로만 인식하는 분위기다. 이미 4월 총선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북한이 소환되고 있다. 윤 대통령부터 “중요한 정치 일정이 있는 해에는 (북한이) 늘 사회 교란과 심리전 그리고 도발을 감행해 왔다”며 “올해도 접경지 도발, 무인기 침투, 가짜뉴스, 사이버 공격, 후방 교란 등 선거 개입을 위한 여러 도발이 예상되고 있다”고 말했다. 해묵은 ‘북풍’ 논쟁이 한창인 와중에 남북관계는 종전과 다른 변곡점을 향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궁극적으로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한반도에서 2개의 국가가 적대적으로 대치하는 상황의 인정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외교·안보적 측면에서 이러한 상황이 정말 한국에 이득일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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