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총 20 건 검색)
- [단독]대통령 비판했으니 빠져라?…보훈부판 ‘블랙리스트’ 의혹(2024. 04. 08 06:00)
- 2024. 04. 08 06:00 사회
- 보훈부, 국외 독립운동사적지 전문가 갑자기 사업 배제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2023 국가보훈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발언하고 있는 김동우 작가/국가보훈부 유튜브 갈무리 국가보훈부가 윤석열 대통령의 역사인식을 비판한 전문가를 별다른 설명도 없이 관련 사업에서 제외했다. 국외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다니며 현장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김동우 작가가 당사자다. 김 작가는 지난 3월 1일 공개된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에게 우리 공군의 모태가 된 미국 캘리포니아 윌로우스 비행장 터 보존을 부탁하자 ‘너무 비싸면 못 산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후 2022~2023년 두 해 연속 강사로 참여했던 ‘국외 보훈사적지 탐방’에서 배제됐다. “독립운동사적지? 비싸면 못 사고” 무심한 윤 대통령 목소리 못 잊어[주간 경향] 개인의 기억은 ‘기록’을 통해 집단의 역사가 된다. 휘발성 강한 기억을 누구나 언제든 다시 볼 수 있게 붙잡아 두는 것이 기록의 역할이다. 기록이 없다면 역사도...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403011000011 김 작가 배제는 보훈부의 결정 사항으로 알려졌다. 국외 보훈사적지 탐방은 경쟁입찰을 통한 외주 방식으로 진행한다. 보훈부 관계자는 최종 탐방 사업자로 선정된 업체 측이 김 작가 참여를 추천하자 “언론에 공개적으로 대통령을 질타한 부분 때문에 난처하다. 빼고 가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정부기관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기업에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대통령을 비판한 전문가를 콕 집어 정부 관련 업무에서 배제한 것은 ‘블랙리스트’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훈부는 해당 사안에 대한 질의에 지난 4월 4일 “지역과 연계된 인물들을 스토리텔러(강사)로 선정해 탐방 프로그램 현장성을 살린 결과”라고 답했다. 대통령 심기 경호하는 국가기관? 2023 국가보훈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김동우 작가의 발언을 듣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국가보훈부 유튜브 갈무리 보훈부는 만 19세 이상~34세 이하 대한민국 청년을 대상으로 국외에 있는 보훈사적지 탐방 사업을 하고 있다. 순국선열의 희생과 공헌이 서려 있는 장소를 돌아보고 보훈의식을 함양한다는 것이 보훈부가 밝힌 목적이다. 1인당 100만원 정도의 참가비를 받고 나머지 비용 대부분은 세금으로 충당한다. 참가자들은 탐방기간 보훈사적지를 알리는 영상(쇼츠) 제작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이를 돕기 위해 전문가도 함께한다. 김 작가는 2년 동안 총 4차례 전문가로 해당 사업 등에 참여했다. 2022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2023년에는 중국 동북 3성 탐방 등에 동행했다. 올해 탐방지 하와이 역시 김 작가가 동행 할 것이 유력해 보였다. 최종 사업자로 선정된 업체와 탐방 세부계획을 세운 것이 김 작가였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와 관련해 전문성이 있었다. 2017년부터 인도, 일본, 멕시코, 쿠바, 미국, 중국 등 10여개국을 돌며 국외에 있는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다녔다. 한 줄 기록으로만 남아 있던 사적지를 재발견했고,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곳을 사진, 글로 기록했다. 그 결과가 <뭉우리돌의 바다>, <뭉우리돌의 들녘>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책이다. 그의 노력이 알려지며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기도 했다. 정부 역시 김 작가의 전문성, 노력 등을 인정해 각종 상을 수여했다. 2022년에는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특히 2020년에는 보훈부의 전신인 국가보훈처가 보훈문화상을 수여했다. 미국 하와이 오아후 섬 호놀룰루 합성협회 터 /김동우 작가 하와이 역시 예외가 아니다. 김 작가는 하와이에 있는 독립운동사적지를 촬영한 사진으로 2022년 별도의 전시회를 열었다. 올해 보훈사적지 탐방 사업에 지원한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김 작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업자로 선정된 업체 역시 김 작가의 도움을 받았다. 탐방 사업 경쟁에 참여한 한 업체 관계자는 “이번 하와이 탐방 사업에 총 5개 기업이 참여했고, 이중 4개 기업이 김 작가와 함께 하와이로 가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참가자들의 평가도 좋았다. 국외 보훈사적지 탐방에 참여한 A씨는 지난 4월 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동우 작가는 국외 보훈사적지 탐방에 앞서 참가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며 “강사 중에서도 가장 친화력이 좋아 저뿐만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도 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문성 측면에서도 현지에서 직접 취재한 독립운동사를 이야기해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미국 하와이 빅아일랜드 코나에 방치된 한 한인무덤./김동우 작가 보훈부판 블랙리스트 있나? 업체의 요청, 참가자들의 호평이 있었음에도 김 작가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업에서 배제됐다. 참가자 모집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 3월 26일에야 김 작가는 자신이 빠져야 한다는 사실을 업체 관계자로부터 전해 들었다. 보훈부가 추진한 탐방에 강사로 여러 차례 참여했지만, 보훈부는 김 작가에게 별다른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질의에 보훈부는 서면으로 답변했다. 김 작가가 배제된 이유를 묻는 말에 “하와이 보훈사적지 탐방의 경우, 해당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현지 전문가(2인)와 국내 역사학 전공 전문가(1인)를 선정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현지 전문가가 누구인지도 밝혔다. 문제는 사업을 기획하며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현지 전문가를 섭외하자고 제안한 사람도 김 작가였다는 점이다. 보훈부가 현지 전문가라고 밝힌 사람 역시 김 작가가 업체 측에 추천한 인물이었다. 애초에 하와이 탐방사업은 김 작가를 배제하면 설명이 어려운 사업이었다. 김 작가 배제를 통보하며 ‘대통령 비판 사안을 언급했느냐’는 질문에는 “담당자가 질의에 언급된 내용과 같이 설명한 바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김 작가는 업계 관계자로부터 자신의 배제 사유를 들었다. 이 관계자는 김 작가에게 “경향신문을 포함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을 비판했기 때문에 데려가기 어렵다고 하더라. 문제 인터뷰가 총 두 건이라고 하던데. 마지막 회의를 하면서 한 번 더 그걸 강조했다”고 답했다. 2024 국외 보훈사적지 탐방 홍보 포스터(왼쪽), 탐방 프로그램을 설명에는 전문 스토리텔러(강사)로 전문가 1명만 이름이 올라있다./국가보훈부 블로그 갈무리 올해 6월 30일 출발하는 하와이 탐방은 총 110명의 참가자를 모집한다. 관광이 아닌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이 목표임에도 이들에게 하와이 사적지를 설명할 전문 강사는 1명이 배정됐다. 취재가 시작된 후 보훈부는 현지 전문가 2명을 이미 섭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홍보 포스터에는 해당 내용이 나와 있지 않다. 김 작가를 배제할 만큼 현지 전문가가 독립운동 관련 지식을 갖추고 있는지, 110명의 참가자에게 제대로 정보 전달을 할 수 있는지도 미지수다. 김 작가는 열정적으로 준비했던 계획이 취소됐다. 대통령에게 국외 독립운동사적지를 보존해 달라고 부탁 한 번 한 것치곤 그 대가가 너무나 컸다. 사실상 ‘블랙리스트’에 오른 만큼 당분간 보훈부와의 협업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김 작가는 “대통령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 정부 관련 일은 할 수 없는 시대로 회귀한 것 같아 씁쓸하다”며 “무엇보다 보훈부가 대통령 심기 경호에 나서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 “마켓컬리 블랙리스트, 명백한 범죄입니다”(2021. 03. 12 16:09)
- 2021. 03. 12 16:09 사회
- ㆍ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마켓컬리 고발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블랙리스트가 무슨 문제야? 별사람 다 오는데 당연히 걸러내야지.” 일용직 노동자 블랙리스트를 운용한 마켓컬리 고발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누군가는 마켓컬리의 행위에 경악했지만 어떤 이는 ‘블랙’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마켓컬리가 법을 어긴 것도 아니지 않으냐”고 되묻는 이들도 있었다. 마켓컬리를 근기법 위반으로 고발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왼쪽부터 권오성 소장, 오민규 실장, 이영주 위원 / 김기남 기자 노동문제연구소 해방은 마켓컬리의 행위를 중대 범죄라고 본다. 지난 3월 8일에는 주식회사 컬리와 김슬아 대표를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여차하면 헌법소원도 불사할 참이다. 이들은 왜 마켓컬리와 싸우기로 마음먹었나. 마켓컬리 블랙리스트는 왜 불법인가. 권오성 소장(성신여대 교수·변호사)과 오민규 연구실장, 이영주 연구위원에게 물었다. 인터뷰는 지난 3월 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마켓컬리를 왜 고발했나. 권오성(이하 권) 범죄를 저질러 고발한 것이다. 컬리는 5개 넘는 채용 대행업체로부터 일용직 노동자 정보를 취합해 명단을 작성했다. 그리고 다시 대행업체와 명단을 공유하고 리스트에 있는 사람은 채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컬리는 이 리스트를 왜 만들었나. 그들 해명처럼 단순히 근무 평가를 하기 위해서? 아니다. 특정 노동자를 업무에서 배제하려고 만들었다. 일터에서 밀어내려고, 해고하려고. 그런 짓을 ‘취업 방해’라고 한다. 컬리는 노동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운용했다. 근기법 위반이고, 헌법에서 보장하는 근로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블랙리스트 기사를 보는데 정말 화가 나더라. 특히 컬리가 ‘법 위반은 아니다’라고 해명하는 데 분노했다. 노동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로서, 또 변호사로서 두고 볼 수 없었다. *근로기준법 제40조·제107조는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명부를 작성하거나 통신하여서는 안 된다. 취업 방해 금지의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민규(이하 오) 사실 블랙리스트 사건은 흔치 않아 근기법 제40조 위반 사례가 별로 없다. 현실에서 사문화 되다시피한 조문이다. 그래서 불법이라는 인식을 못한다. 일용직 노동자와 관련해서는 그런 인식이 더 강하다. 아예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용직은 일용직이니까 블랙리스트는 그냥 만들어 돌릴 수 있다는 인식이 상식처럼 자리 잡았다. 우리가 컬리를 고발하니까 ‘뭐가 문제인데’라는 반응이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그 상식이 틀렸다. 정확히 말하면 상식으로 오분류된 악습이다. 이번 마켓컬리 블랙리스트는 범죄다. 노동자 보호를 위해 정한 최소의 기준이자 최저의 기준, 근기법을 어긴 파렴치한 범죄다. 처벌도 처벌이지만 이번에 우리 사회에 잘못 퍼진 상식을, 뒤집힌 상식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이영주(이하 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분 중에는 영문도 모른 채 일을 못 하게 된 분들도 있다. 별안간 해고된 건데, 노동법상 절차적 보호를 전혀 받지 못했다. 모든 노동자는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우리가 ‘마켓컬리는 법을 위반했다’고 하니까 ‘상식적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이 어디 있냐’고 반응하는 사람이 있는 게 그들에게는 ‘당신의 상식이 잘못된 것’이라고 알려줘야 한다. 오 고발뿐만 아니라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마켓컬리 블랙리스트 문제를 더 알릴 생각이다. 플랫폼 자본의 혁신에 가려진 민낯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컬리와 같은 기업은 수많은 일용직 노동자들로 돌아가는 구조인데 그 안에 있던 노동자들이 ‘아, 이게 문제였구나’ 인식하고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곪았던 부분은 금세 드러날 것이다. 모래 위에 쌓은 탑은 무너지는 게 맞다. 벌써 많은 분이 일용직 노동자들이 제보를 해오고 있다. 고맙다고 메시지를 보내는 분들도 많고. -비난은 받을 수 있어도 법적으로는 문제없다는 게 컬리 입장인데. 권 현행법은 ‘누구든지’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명단을 만들면 처벌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취업 방해 행위는 목적범이다. 취업 방해라는 목적을 갖고 행하면 결과가 발생하지 않아도 범죄가 성립된다. 1989년 근기법을 개정하면서 이런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용자’에서 ‘누구든지’로 확대했고, 죄 성립범위가 넓어졌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업 방해 행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법을 만든 덕분이다. 노 전 대통령은 왜 법을 강화했을까. 블랙리스트가 노동이 설 자리를 없애는 중대 범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는 보통 노조 조합원을 솎아낼 목적으로 쓰인다. 컬리는 근무 평가를 위한 명단이라고 하지만 향후 노조가 생기면 노조 탄압에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 플랫폼 업계에 이런 블랙리스트가 자리 잡으면 이쪽 업계 노조는 아예 싹이 잘릴 수 있다. 노동자의 정보를 모아 공유하는 행위 자체가 위험한 일이다. 권오성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소장,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이영주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위원. (사진 왼쪽부터) -컬리 측이 일용직 노동자의 ‘근무태도 불량’을 내세워서 블랙리스트 비판 여론에 대응하고 있는데. 이 노동자의 근무태도는 쟁점이 아니다. 이번 문제의 핵심은 컬리가 일용직 노동자의 개인정보가 담긴 리스트를 작성해 대행업체와 공유했고 취업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특히 블랙리스트 고발 기사(‘마켓컬리 블랙리스트 진짜였다’ 주간경향 1418호 참고)에서 언급한 노동자는 이번 고발과 무관하다. 설사 노동자의 근태가 불량했다고 해도 컬리의 불법행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우리는 개별 노동자의 권리 구제를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다. 블랙리스트가 공공연히 운용되는 물류센터 일용직의 노동 환경에 문제의식을 느껴 고발한 것이다. 공익 고발이다. 권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인권감수성을 지닌 기업이기 때문에 기사에 나온 한명의 사례, 그 노동자의 근태를 들먹이며 이번 사태를 방어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블랙이라고 이름 붙이고 제3자와 공유해 취업을 못 하게 해놓고 ‘이건 사용자로서 권한이고 저 사람은 근태가 안 좋으니 우리 조치는 정당하다’라고 항변하는 기업이 있다면 그런 기업은 우리 사회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개인정보도 인권이다. 개인정보에 대한 인권감수성이 없는 기업이 고객 개인정보는 어떻게 다룰지 우려스럽다. 개인정보 관리 실태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사업장에 매일 별사람이 다 오기 때문에 솎아낼 필요가 있다고도 한다. 권 그렇게 일용직 리스크가 크다면 정규직을 쓰는 게 맞지 않나. 컬리처럼 매일 상시 인력이 필요한 기업에서 왜 일용직을 쓸까. 일용직을 써서 얻는 게 더 많기 때문이다. 일용직을 쓰면 고정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해고도 용이하다. 일용직 덕분에 컬리는 조직을 슬림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득을 계속 누리고 싶다면 일용직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컬리는 리스크는 피하고 이윤은 챙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블랙리스트다. 사람에게 ‘블랙’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혐오와 배제, 차별 행위다. 혐오로 성장하는 기업이 컬리다. -코로나19로 일자리 없는데 그나마 컬리같은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어주지 않느냐. 비판하지 말라는 여론도 있다. 권 일자리의 양만큼 질도 중요하다. 목마르다고 소금물을 계속 먹으면 죽는다. 이 예컨대 컬리가 더 나쁜 노동환경을 만들어 다른 경쟁업체보다 앞서가고 해당 경쟁업체가 도태됐다고 치자. 그러면 시장 점유율이 높아진 컬리는 그 덕에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일자리를 전보다 많이 만들어줬으니 노동환경 악화는 또 눈감아줘야 하나. 그렇게 눈감을수록 더 나쁜 일자리가 양산된다. 악순환이다. 오 나쁜 일자리가 늘어나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지금 보고 있지 않나. 산재가 증가하고 사망자도 늘어난다. 요즘도 물류센터에서 배송현장에서 사람이 죽고 있다. 그 책임은 누가 지게 될까. 사망한 노동자와 유족이 나눠 진다. 불상사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사회가 지불한다. 애초에 나쁜 일자리를 만든 기업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않는다. 책임은커녕 그에 따른 모든 비용을 사회에 전가하는 구조다. -블랙리스트가 공공연히 운용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권 집단적 의사표현, 흔히 콜렉티브 보이스라고 한다. 이런 의사표현을 할 통로가 닫히게 된다. 아니 컬리는 이미 닫혔다. 노동자가 불만이 있을 때 택할 수 있는 옵션은 두개다. 떠나거나 고치거나. 고치려는 목소리가 콜렉티브 보이스인데 블랙리스트는 그 목소리를 아예 지워버린다. 목소리 내면 블랙처리 된다. 남는 방법은 떠나는 것뿐이다. ‘불만 있으면 떠나라’는 건데 이건 사람을 일회용품 취급하겠다는 뜻과 같다. 일반 기업은 상용직을 통해 숙련노동 비율을 높이고 기업가치를 높인다. 일용직은 불안해 안 쓴다. 컬리 말처럼 일용직은 누가 올지 모르니까. 자칫 손해볼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용직을 쓴다는 건 ‘우리는 숙련이라는 기업가치가 필요 없는 기업이다’라는 의미다. 숙련노동 대신 일일 알바에게 최저임금을 주고 굴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마음에 안 들면 블랙 만들어 솎아 버리고. 컬리 블랙리스트에 한국사회의 취약한 노동현실이 다 녹아 있다. 그래서 싸우려고 한다. 이번 고발건이 불기소되면 항고할 것이고, 그래도 안 되면 재항고, 재정신청, 헌법소원까지 다 할 생각이다. 근로기준법이 규범력을 회복할 때까지 싸울 것이다.
- 마켓컬리 ‘블랙리스트’ 진짜였다(2021. 03. 05 13:57)
- 2021. 03. 05 13:57 경제
- 마켓컬리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일용직 노동자들을 관리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블랙리스트는 일용직 노동자를 현장에서 솎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됐다. 마켓컬리가 ‘블랙’ 처리할 노동자를 골라 협력업체(채용대행업체)에 전달하면 대행업체가 리스트에 오른 노동자에게 일감을 주지 않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5개 이상 대행업체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일용직 노동자들의 개인정보를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켓컬리 측은 사용자로서 근태 불량 노동자와 계약을 중단하기 위해 이뤄진 작업이라는 입장이지만 블랙리스트 노동자들은 부당한 ‘찍어내기’ 해고라며 맞서고 있다. 사업장 내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보복성 해고를 했다는 주장이다. 마켓컬리 소개 영상 발췌 블랙리스트 운용은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하거나 통신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근로기준법 제40조(취업방해의 금지) 위반 소지가 있는 행위다. ‘노동자 솎아내기’ 위한 블랙리스트 김소희씨(가명·29)는 2019년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마켓컬리 물류센터에서 일했다. 김씨는 일용직 노동자로 알바몬과 같은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일을 구했다. 냉장·냉동센터에서 주문 상품을 분류하고 포장하는 업무를 주로 맡았다. 김씨는 작업장에서 사측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업무 처리가 미숙한 노동자는 바로 현장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일 못 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면 근무지원을 해도 업무를 배정받지 못한다. 김씨는 성실한 노동자로 인정받아 1년 6개월 동안 장기근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 1월 6일, 일감이 끊겼다. 김씨가 마켓컬리 블랙리스트에 오르면서다. 숙련 노동자인 김씨는 왜 블랙 처리됐을까. 김씨는 지난해 12월 두 차례 조퇴를 한 이력이 있다. 첫 조퇴는 두통에 따른 것으로 조퇴사유서를 작성해 제출했고 두 번째 조퇴는 코로나19 선별검사를 받기 위한 조퇴였다. 두 차례 조퇴를 제외하고 근무기간 동안 특이사항은 없었다. 주문 물량이 몰린 연말에 조퇴했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마켓컬리 블랙리스트 단체 카톡방 김씨는 조퇴는 핑계일 뿐 사측의 보복성 해고라고 주장한다. 김씨는 지난해 8월 마켓컬리 관리자 갑질과 성희롱 전력 등을 문제 삼아 본사 법무팀에 내부고발한 이력이 있다. 마켓컬리는 김씨가 내부고발한 내용을 일부 인정했고, 당시 부당하게 무더기 ‘블랙’ 처리했던 노동자들을 현장에 복직시켰다. 내부고발건 이후 김씨는 마켓컬리 현장관리자들의 눈 밖에 났다. 김씨는 “나는 관리자들의 폭언과 욕설, 성희롱 전력, 소개팅 요구와 같은 비위 내역을 알고 있는 ‘고인 물’ 직원”이라며 “눈엣가시여서 벼르고 있다가 ‘조퇴’라는 명분이 생기자마자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최소한 확인된 블랙리스트 일용직만 50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현장 업무에서 배제된 일용직 노동자의 개인정보(성명·주민등록번호·연락처 등)를 기입한 블랙리스트는 마켓컬리 직원과 대행업체 담당자들이 모인 단체 카톡방을 통해 공유됐다. 카톡방에서는 ‘블랙’이라는 표현이 문제될 수 있으니 ‘수신거부자’라는 표현을 쓰라는 지시도 내려졌다. 이에 대해 마켓컬리 측은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적은 없다. 다만 지난 2월 물류센터 현장에서 블랙리스트를 운용했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곧바로 중단하라는 지침을 내렸다”며 “인력관리를 본사에서 직접 한 것은 지난해 10월부터다. 그 이전 시기의 블랙리스트 운용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씨의 해고와 관련해서는 “현장에서 타 직원들과 갈등으로 분위기를 흐리고 업무지시 불이행과 무단이탈을 했기 때문에 업무배당을 하지 않은 것일 뿐 부당해고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마켓컬리 물류센터 관계자 대화 재구성 마켓컬리 “블랙리스트 작성, 법 위반 아냐” 마켓컬리는 설사 블랙리스트를 운용했더라도 도의적으로 비난받을 수준의 행위일 뿐 법 위반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블랙리스트를 쿠팡 등 타 물류업체와 공유해 해당 노동자들의 취업을 제한했다면 위법 행위가 맞지만, 사용자로서 운용했기 때문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켓컬리의 주장처럼 이제껏 근로기준법 제40조(취업방해의 금지)는 주로 다른 사업장의 취업제한을 한 경우에 적용돼왔다. 예컨대 대형 건설사(원청)가 노동자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하청업체로의 취업을 제한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렇다고 마켓컬리의 행위가 법 위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근기법에서 중요한 것은 취업을 방해한다는 행위 그 자체”라며 “누구든 어떤 사업장이든 노동자의 취업을 방해하는 행위는 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특히 장기적으로 꾸준히 업무에 임했던 마켓컬리 일용직 노동자의 경우 취업 방해가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법문을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직장 내 괴롭힘의 측면에서도 블랙리스트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 정병욱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는 힘의 우위에 있는 사측이 블랙리스트로 보이지 않는 압박을 가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인격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본다. 정 변호사는 “블랙 처리는 노동자에 대한 일종의 징계인데 징계 사유도 통보하지 않고 징계한다는 것은 사용자의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라며 “법률상 명예권과 노동권에 대한 침해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마켓컬리 내 일용직 노동자들은 부당한 일을 겪어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다. 블랙 처리를 당해 일감이 끓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출근 확정문자를 받고 도착한 물류센터 현장에서 이유 없이 ‘탈락’해 돌아가도 항의하지 못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일터에서 밀려나도 따질 수 없다. 채용 절차가 불투명하고 기준이 없기 때문에 노동청 등 관련 기관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정확한 해고 사유를 언급하지 않는다. 나아가 해고 처리된 노동자들이 내부고발자 도움 없이는 노동청에 신고도 할 수 없는 환경이다”(서울지방노동위원회 접수된 마켓컬리 일용직 부당해고 구제신청서 발췌) 마켓컬리와 채용대행업체가 공유한 블랙리스트 최근 마켓컬리 일용직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작업 현장에 쥐가 출몰하는 등 위생 문제로 인해 노동환경이 더 악화됐다는 불평이 나오고 있지만,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내부 문제의 공론화는 블랙 처리 대상’이라는 사실이 노동자 사이에서 암묵적인 룰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내부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쥐가 자주 출몰하는 곳은 1센터(B1층 D동) C존과 D존 지역으로 상품을 갉아 먹고 배설물을 뿌려 놓는 통에 사측이 휴식시간 물류센터 내 취식 금지 등의 별도의 조치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쥐 때문에)노동자들이 매일 청소하고 확인 사진을 찍어 올린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마켓컬리 측은 위생 문제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마켓컬리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물류센터는 실내온도가 낮기 때문에 쥐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무엇보다 쥐가 상품을 건드리면 회사 입장에서도 손실이 크기 때문에 바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며 “지난해에는 전문업체 세스코를 통해 방역했고, 올해도 다른 전문업체가 정기적으로 살균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 운용이 가능한 이유 마켓컬리가 공공연히 블랙리스트를 운용할 수 있는 배경은 마르지 않는 ‘인력저수지’에 있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와 영세 사업자들이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시장에 몰린다. 노동력 공급이 꾸준히 이뤄지기 때문에 노동환경을 개선할 필요성이 떨어진다. 노동환경에 문제를 제기하는 ‘고인 물’은 비워내면 그만이다. 빈자리는 지시에 잘 따르는 ‘신입’을 채워넣는다.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 문제를 연구해온 김혜진 쿠팡발코로나19피해자지원대책위원회 상임 활동가는 “일용직 노동자의 업무 배당과 관련해 최소한의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사측이 임의대로 사람을 뽑고 자를 수 있는 것”이라며 “사측이 해고 명분으로 내세우는 업무지시 불이행 역시 내용이 불투명해 노동자가 이의 제기를 하거나 구제를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주영 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는 “블랙리스트 운용은 물론 직장 내 괴롭힘 정황이 있는 사업장은 특별근로감독 대상”이라며 “노동자가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감독 청원을 할 수 있는 만큼 언론과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마켓컬리 일용직 노동자 2명은 지난달 마켓컬리를 상대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내 절차가 진행 중이다. 고용노동부 서울동부지청도 마켓컬리 일용직 부당해고 등 4명의 진정건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 [해외문화 산책]블랙리스트 뚫고 빛을 본 (2020. 02. 14 15:48)
- 2020. 02. 14 15:48 문화/과학
- 비영어권 작품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한국 사회의 암울한 현실을 외국인의 눈으로 다시 돌아보게 했다. 영국 BBC와 가디언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한국의 독특한 주거구조인 반지하에 주목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예술인을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됐던 블랙리스트에 봉 감독의 이름이 올랐던 사실을 언급했다. BBC는 2월 10일 ‘서울의 반지하에 사는 진짜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반지하 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기사에 소개된 오기철씨(31)의 반지하 주택에는 빛이 거의 들지 않는다. 여름에는 습기와 곰팡이와 싸워야 한다. 사막의 극한기후에도 살아남는 다육식물도 오씨의 집에서는 살아남지 못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창문으로 그의 집을 들여다볼 수 있고, 10대 청소년들이 그 앞에서 침을 뱉기도 한다. 오씨는 “한국에서는 좋은 차와 집을 갖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반지하는 가난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이 2월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받은 트로피를 바라보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에서 인권변호사 송우석 역을 연기한 배우 송강호 / NEW BBC는 반지하를 영어 ‘Banjiha’로 표현했다. 영국의 주거형태와 일 대 일로 대응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반지하는 남북 갈등에서 비롯된 역사적 산물이다. 1968년 북한의 청와대 습격 사건으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1970년 건축법을 개정했다. 국가 비상사태 시 모든 신축 저층 아파트의 지하를 벙커로 사용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 공간을 거주지로 임대하는 것이 불법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주택난이 심해지고 정부는 주택을 충분하게 공급할 여력이 안 되자 반지하 임대를 묵인했다. 1984년 주택법이 개정돼 반지하 주택 건설 요건이 완화되면서 반지하 주택은 더욱 늘어났다. 여기에 IMF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반지하는 빈곤층·미취업 청년 등에게 새로운 주거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반지하에 사는 이들의 계급상승 욕구를 그린 <기생충>은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계속 있었더라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워싱턴포스트는 칼럼을 통해 <기생충>의 아카데미 성취를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신문은 이전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봉 감독은 물론 배우 송강호와 영화 제작을 지원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까지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등 이념 성향이 다른 예술인들을 전방위로 탄압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는 1만 명에 달하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 봉 감독의 <살인의 추억>은 경찰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영화, <괴물>은 반미주의 영화, <설국열차>는 시장경제 자체를 부정하고 저항을 부추기는 영화로 평가됐다. 신문은 송강호는 201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변호인>에 출연한 후 압박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캐스팅 제안이 끊긴 것을 말한다. 이 부회장은 사임 압력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블랙리스트가 계속 존재했다면 <기생충>이 결코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도 블랙리스트는 2016년 대중에 공개됐고,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정부를 세우는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 해외문화 산책
- 문화계, 블랙리스트 이후 정말 달라졌나(2019. 05. 31 15:07)
- 2019. 05. 31 15:07 문화/과학
-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영화감독은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자 봉 감독이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이력이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봉 감독은 2년 전 한 외신 인터뷰에서 블랙리스트로 인한 타격에 대해 “많은 한국의 예술인들이 악몽 같은 몇 년 동안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토로한 바 있다. 국제무대에서 업적을 이룬 봉 감독은 블랙리스트 사태의 트라우마를 잘 극복한 경우지만 아직도 현장에는 상흔을 호소하는 예술인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가 조사 결과와 함께 제도개선 권고안을 발표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문화예술계에서 실질적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2017년 9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의 대국민 활동보고 회견에서 진상조사소위원장 조영선 변호사가 조사 경과를 보고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보수정권,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의 작동원리는 ‘검열과 배제’의 원칙에 충실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봉 감독을 비롯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영화인들은 대부분 세월호 시국선언 명단 등에 이름을 올린 인사들로, 통째로 지원 배제 명단에 포함됐다. 그러나 실질적 배제는 교묘하게 이뤄졌다. 황금종려상 봉준호 감독 트라우마 극복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지난 2월 발간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를 보면 영상자료원은 2015년 청와대의 주도에 따라 “2015·2016 한·불 수교 130주년 행사’와 관련해 프랑스 파리 ‘포럼데지마주’ 기획에서 봉준호 감독 등에 대한 초청 배제”를 실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타국과의 문화교류 행사였음에도 항공료 등의 지원대상에서 배제시키는 등 불이익을 가했던 것이다. 이듬해인 2016년 11월 봉 감독이 프랑스 정부가 전세계 문화예술계 공헌자들에게 수여하는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를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권의 입김에 따라 국내 영화인의 해외 진출과 평가 기회도 막혔던 셈이다. 봉 감독처럼 나름의 입지를 다진 예술인이 아닌 경우에는 블랙리스트가 작동하던 기간 동안 닥친 혹독한 위기는 사태가 지나간 현재까지도 삶에 영향을 미쳤다. 2014년 2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주관하는 ‘현장 예술인 교육지원사업’은 지원단체 모집 공고까지 나가고도 갑작스레 사업이 폐지됐다. 당시 지원사업을 신청한 한 단체 소속 예술인 김모씨(32)에겐 이 사업 폐지가 앞으로 맞닥뜨릴 경제적 위기의 시발점과도 같았다. 사정이 열악한 현장 예술인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시행되던 사업이 갑자기 흐지부지된 데다 정권이 바뀌고도 다시 재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청서를 냈던 2014년에서 4년이 지난 작년에야 우리 단체가 지원사업에 선정됐다는 걸 다시 확인할 수 있었어요. 왜 그동안 사업이 엎어진 채 재개되지 않았는지도 그때야 알았죠.” 김씨는 이 시기를 시작으로 문화예술계에 정부와 청와대의 영향력이 계속 미치고 있던 2016년까지 공연은 물론 부수적인 일감까지 뚝 떨어진 혹독한 기간을 보냈다. 그런데도 그동안은 어떤 힘이 작용했는지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이유는 뒤늦게 밝혀졌다. 진상조사위의 백서를 통해 “서울연극협회 등 좌성향 단체가 선정되자 관련 사업 자체를 폐지할 계획을 세웠고…, 비판 언론 및 진보진영에서 배경에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철저하게 입단속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단체 선정까지는 당초 취지대로 진행되던 사업이 당국에서 ‘좌성향’으로 분류한 단체들 위주로 선정됐다는 이유로 갑작스레 좌초하고 말았다. 심지어 김씨가 소속됐던 단체는 이전까지는 성향이 분류되어 있지 않아서 관계자가 청와대로 성향에 대한 판단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방적인 ‘좌파’ 낙인찍기에 영문도 모르고 사업에서 배제된 이들 단체는 이후에도 지속적인 불이익을 당했다. 김씨는 “어떤 실제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정부가 시행하는 사업에 지원했다가 이런 일을 겪었다는 걸 알고 나서 트라우마가 뭔지 몸소 알게 됐다”며 “아직도 비슷한 이유로 그때 당했던 일들에 대해서는 아예 말도 꺼내지 않으려는 예술계 동료들이 많다”고 말했다. 문제는 예술인복지재단의 해당 사업 자체는 정부가 바뀐 지금도 재개되지 않고 있는 등 피해자 명예회복·보상이나 제도개선 측면에서는 아직까지 문화예술 당국이 공언한 과제 이행 속도가 느리다는 비판이 나오는 데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제도개선 권고 이행현황 보고서’를 보면 진상조사위가 지난해 5월 발표한 권고안의 85개 과제 중 문체부가 이행 완료했다고 밝힌 과제는 올해 4월 말 기준 46건에 달한다. 절반 이상의 과제를 수행한 것이다. 청와대·문체부·산하기관 수직 구조 여전 그러나 블랙리스트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모인 현장 예술인들의 시각은 다르다. 5월 20일 열린 블랙리스트 후속조치 및 제도개선과제 이행 현황점검 예술현장 토론회에 참석한 각 분야 예술인들은 문체부나 산하기관의 조직개편과 블랙리스트 책임자 처벌에 대해서는 비교적 진척된 바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재발 방지대책의 핵심인 민·관 협치 과제나 사업 수행 과정에 있어서 정부 내 수직적 결정구조를 수평적으로 바꾸는 과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왔다. 가장 근본이 되는 ‘헌법 개정을 통한 표현의 자유 및 문화기본권 확대 권고’만 놓고 보면 문체부의 역할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여서 장기과제로 분류된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 명예회복과 피해보상 같은 가장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과제까지도 1년이 지나는 동안 여전히 문체부는 ‘검토 중’인 사안으로 두고 있다. 민간부문과의 협치를 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를 공공기관 운영법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 기관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역시 ‘검토 중’이다. 청와대에서 문체부, 그리고 산하기관으로 이어지는 수직 구조는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진 배경이지만 아직도 손대지 못한 구조적 문제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제도개선팀장으로 활동했던 김소연 연극평론가는 핵심적인 과제부터 해결되지 않은 채 미뤄두기만 하는 상황 때문에 세부적인 과제들 역시 지지부진하다고 지적했다. 김 평론가는 “문체부에서 국정 홍보 기능을 분리하는 것부터가 국가 문화정책의 정체성 차원의 문제여서 시급한 과제지만 부처 단독 추진이 어렵다고 장기과제로 미뤄두고 있다”며 “현행 장르별 조직체계 역시 산하기관에 대한 위계적 전달체계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과제들도 시급히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체부로서는 이미 이행한 과제만 놓고 봤을 때는 권고안에 나온 내용들을 충실하게 이행한 결과 해결됐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남은 과제들 역시 민간위원들이 참여하는 이행협치추진단을 통해 경과를 점검하면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현장과의 시각차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그런 다른 견해까지 이행협치추진단을 통해 함께 논의하고 있어 점차 진척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행협치추진단에 민간위원으로 참여 중인 이양구 극작가는 권고 이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로 볼 때 정부 차원의 사태 종결 의지가 있는지에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 작가는 “충북지역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에 대해 국가가 배상하라는 판결이 올해 1월 나왔음에도 2월에 국가가 항소했고, 예술 현장에서는 항소 포기를 요구하지만 여전히 항소는 진행 중이며, 반대로 피해배상에 대한 논의는 없다”고 비판했다.
- [포커스]4대강 블랙리스트 국정원이 외주용역했나(2017. 11. 28 10:36)
- 2017. 11. 28 10:36 사회
- ㆍ환경정보평가원 4대강 반대행위 인명사전 지원·발간 시기 겹쳐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블랙리스트도 있을 것이다.” 환경단체 및 4대강 반대운동을 벌였던 인사들이 공통된 증언이다. 구체적인 정황을 담은 증언도 있다. “건설기술연구원에 근무하던 모 박사의 아는 지인이 청와대 회의에 다녀왔다가 모 박사에게 건넨 말이 ‘조심해라. 리스트에 당신 이름이 올라 있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지난 8월에 들었다.” 4대강 반대운동을 했던 이철재 에코큐레이터의 전언이다. 서울에서 파견된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회유·협박을 받은 사실을 증언했던 충남 부여의 백신기 농민의 증언도 비슷하다. “국토해양부 고위관리를 역임한 충북 지역 모 군수와 사석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MB정부 시절 자신이 본 ‘4대강 블랙리스트’에 대해 언급했다. 이 인사는 나에게 ‘다행히도 당신 이름은 아직 리스트에 올라 있지 않으니 (행동에) 자중하라’고 말을 건넸었다”고 백씨는 말했다. 2010년 1월 19일 국토부 4대강살리기 추진본부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공사 상황을 체크해보고 있다. / 이명박 대통령기념재단 “4대강 블랙리스트 봤다” 쏟아지는 증언들 그런데 실제 그런 리스트가 대외적으로 공개된 적이 있다. ‘4대강·국책사업 반대행위 단체 및 인명사전’이다. 이 리스트는 ‘국책사업 반대행위 조사위원회’라는 단체가 책자의 형태로 지난 2012년 3월 15일 발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 실제 보도들을 보면 이 책자 발간 직후인 3월 16일, 해당 단체는 기자회견을 열어 명단을 발표한 것으로 되어 있다. 국책사업반대행위조사위원회가 2012년 3월 15일 발간한 「4대강·국책사업 반대행위 단체 및 인명사전」 은 진선미 의원실의 제보를 통해 해당 책자를 입수할 수 있었다. 책자에 따르면 이 책은 7명이 공동저술한 것으로 되어 있다. 명단을 찬찬히 살펴보면 특징이 있다. 특정 지역, 구체적으로 전북지역을 연고로 하는 뉴라이트 인사들이 명단 작성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 국책사업 반대행위 조사위원회 위원장이자 이 프로젝트를 수행한 환경정보평가원 선임 공동대표를 맡은 것으로 되어 있는 심용식 전주삼성병원 원장은 전북 자유주의포럼 대표를 역임했다. 역시 선임 조사위원을 맡은 것으로 되어 있는 송호열 전 서원대 지리교육학과 교수는 이른바 ‘뉴라이트 대안교과서’를 펴냈던 교과서포럼의 멤버였는데, 그 역시 전북지방 명문 ㅈ고 출신이다. 여기에 조사위원에 환경정보평가원 상임이사를 맡은 것으로 되어 있는 허현준 전 청와대 행정관(현재 구속 중)은 전북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이 접촉한 당사자들은 ‘특정지역 연고’를 부인했다. 11월 23일 기자와 통화한 심용식 대표는 “언급된 사람들은 뉴라이트 운동을 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가 만난 사람이지, 서로 고향이 어딘지 묻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모든 사람들이 특정 지역 연고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시 이 책의 저자이자 단체의 사무처장인 최성호씨와 환경부 등록단체 명부에 대표로 올라 있는 남동환 큐즈코리아 이사장은 대구 출신이다. 책은 ‘4대강 및 정부 국책사업’에 대한 반대행위자를 ‘주요행위자(주동자)’와 ‘단순행위자’로 구분해 기술해놓고 있다. 기준은 총 5회 이상 반복적으로 반대행위에 참여했는지 여부로 나뉜다. 책에 따르면 4대강의 경우 ‘주요행위자’는 단체(12개 단체)를 제외하고 총 50명인데, 정치인이 23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 학계인사(14명), 사회인사(13명) 순이다. 책은 주요행위자 명단을 기재한 뒤 이름(분야), 소속(직위)과 함께 반대행위(주장 및 활동)를 나열하는 순서로 기술되어 있다. 발언 내용은 대부분 언론에 보도된 내용으로, 책의 저자들은 “언론진흥재단, 네이버뉴스, 뉴스라이브러리 검색과 10대 일간지 조사, 기사 내용을 중심으로 반대행위자를 조사”하는 등의 방법으로 조사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실제 진선미 의원실과 의 검증 결과, 책에 언급된 발언 등은 대부분 언론 보도 내용을 옮겨놓은 것이었다. 국책사업 반대행위 조사위원회가 2012년 3월 16일 발표한 4대강 반대 주요행위자 명단 단체 : 12개 단체 운하반대교수모임, 대한하천학회, 민주당 4대강사업 저지 특별위원회, 4대강 죽이기 사업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환경정의,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불교환경연대, 참여연대, 환경과공해연구회, 시민환경연구소 인사 : 50명 ① 정치인 (※ 당시 직위): 23명 강기갑(국회의원), 김두관(경남도지사), 김상희(국회의원), 김성순(국회의원), 김진애(국회의원), 노회찬(진보신당 공동대표), 박원순(서울시장), 손학규(국회의원), 신학용(국회의원), 유시민(국민참여당 공동대표), 유원일(국회의원), 이미경(국회의원), 이용섭(국회의원), 이재정(정당인), 이정희(국회의원), 정범구(국회의원), 정세균(국회의원), 주승용(국회의원), 천정배(국회의원), 최규성(국회의원), 최문순(강원도지사), 최철국(국회의원), 홍희덕(국회의원) ② 학계 : 14명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김정욱(서울대 명예교수), 김좌관(부산가톨릭대 교수), 박재현(인제대 교수), 박창근(관동대 교수),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 안병욱(가톨릭대 교수), 윤순진(서울대 교수), 윤제용(서울대 교수), 이상돈(중앙대 교수), 이시재(가톨릭대 교수), 이정전(서울대 명예교수), 이준구(서울대 교수), 최영찬(서울대 교수) ③ 사회인사 : 13명 명진(승려), 문규현(신부), 문정현(신부), 박평수(고양환경운동연합), 서재철(녹색연합), 수경(승려), 염형철(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이환문(진주환경운동연합), 장동빈(수원환경운동연합), 지관(승려), 지율(승려), 최수영(부산환경운동연합), 최열(환경재단 대표) “책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저자들 책의 저자로 되어 있는 7명은 모두 발간 주체로 되어 있는 국책사업 반대행위 조사위원회와 환경정보평가원에 직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저술에 참여한 사람은 소수인 것으로 보인다. 이 접촉한 저자들 중 일부는 “책 저술에 참여하지 않았다”거나 아예 “그런 단체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자료를 취합하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파트타임 모집공고를 내면 지원자들이 몰려온다. 자료를 주고 검색요령을 알려준 뒤 뺄 것은 빼고 넣을 것은 넣었다. 국정원이 넘겨준 자료는 없었고, 명단에 기재된 자료는 다 내가 시켜서 찾아 하나하나 확인한 것이다.” 7명의 저자 중 1명으로 기술되어 있는 최성호 환경정보평가원 사무처장의 말이다. 자신이 주도해 책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파트타임 알바’를 동원해 최 처장이 주도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설명이다. 대학 91학번으로 총학생회 집행부를 맡는 등 “학생운동 전력이 있다”는 최 처장은 “4대강 인명사전보다는 정부 국책사업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는 일부 인사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대학시절부터 가져왔으며, 그것을 정리해볼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그 아르바이트 고용을 비롯한 제작비용은 어떻게 마련했을까. 지난 10월 23일, 국정원이 발표한 ‘보수단체·기업체 금전지원 주선(매칭)사업’ 조사 발표에서 이 단체의 이름이 나온다. 2009년 청와대 정무수석실 시민사회비서관의 요청에 따라 국정원은 ‘좌파의 국정 방해와 종북 책동에 맞서 싸울 대항마로서 보수단체 역할 강화’를 위한 보수단체 육성방안을 마련해 실행에 옮겼는데, 2011년도에 삼성과 연결시킨 7개 단체와 4개 인터넷매체 중 하나로 환경정보평가원이 거론되고 있다. 단체들은 기부금을, 인터넷 매체들은 광고를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사실은 국정원이 2011년 12월 13일 작성한 ‘보수단체·기업체 추가 매칭 추진 결과’ 제하 보고서류에 기술되어 있다고 국정원은 명시하고 있다. 이 해 전체 43개 보수단체에 전경련을 비롯한 18개 기업이 ‘매칭’ 형태로 지원한 금액은 총 36억원이다. 평균 산술적으로 나눠보면 단체별로 8000만~9000만원 정도 지원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4대강 반대단체 인사들이 존재 여부를 확신하고 있는 ‘4대강 반대 국정원 블랙리스트’는 국정원이 우파단체를 통해 외주용역한 것일까. 심 대표와 최 사무처장은 “국정원이나 삼성으로부터 일절 지원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최 사무처장의 말이다. “오래된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DB화 사업과 관련해 행안부 민간단체 협력 지원을 몇 차례 받았고, 기자회견 등은 자체 회비 등을 모아 충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자체적으로 모이는 회비는 월 100만원 정도여서 당시 공릉동에 위치한 사무실 임대료도 마련 못하는 형편이라, 부족분은 허현준 상임이사가 끌어왔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이 4대강 반대 인명록이 작성된 시기는 허현준 상임이사가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당시 직책은 시대정신 사무처장이었다. 다시 최 처장의 말이다. “허 이사가 청와대에 들어간 뒤 오히려 단체활동은 더 위축되었다. 청와대 행정관이 되면서 단체 지원은 사실상 끊겼다. 사단법인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비용을 몇 년째 못내고 있어 말소하겠다는 연락을 얼마 전에 받았다.” ‘국정원이나 삼성이 지원을 했다면 단체활동이 이렇게 위축될 수 있겠느냐’는 반론이다. “숨은 진짜 실력자는 따로 있다” 행안부의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 관리정보시스템’에서 ‘환경정보평가원’을 검색해보면 2012년 6월 8일에 환경부 지구환경협력과에 등록한 단체로 나온다. 다시 행안부 비영리 민간단체 협력과의 지원내역을 살펴보면 2013년도에 ‘인터넷 백과사전 환경정보 오류 및 편향성 조사사업’의 명목으로 3700만원의 보조금을 받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평가보고서에 실린 이 사업의 시행 시기는 2013년 5월에서 10월로 박근혜 정부 출범 뒤 진행된 사업이다. 명단이 발표된 것이 2012년 3월이므로 사업은 2011년 하반기 이후에 착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단체가 주장하는 행안부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금은 이 4대강 반대행위자 인명사전 사업과 관련이 없다. 앞서 국정원 문건에서 환경정보평가원이 거론된 시기는 2011년 12월이었다. 시기적으로 겹친다. 최 사무처장은 “몇몇 기업의 후원을 받았지만 적어도 삼성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단체 측 주장대로 국정원이나 삼성의 지원금이 단체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국정원이 언급한 매칭지원금은 어디에 쓰였을까. 활동을 보도한 우파 매체들? 당시 발간 사실을 보도한 매체들을 체크해보면 뉴데일리, 코나스넷, 뉴스파인더, 데일리NK, 월간조선 등이다. 실제 뉴스파인더는 위 국정원 문건에서 국정원이 주선해 삼성 광고를 받은 4개 매체 중 하나로 거론되어 있다. 이 접촉한 이 문건에 저자로 명기된 인사들의 반응은 천지차이였다. 환경부에 단체 대표로 등록되어 있는 남동환 큐즈과학코리아 이사장은 “단체 이름을 처음 듣는다”며 “나는 뉴라이트나 운동권 출신도 아니며 허현준씨 등과는 과거 효선·미선 사건 때 국토순례 활동을 격려한 관계로 2~3차례 만난 게 전부”라고 말했다. 역시 저자로 등록되어 있는 한 저자는 “이름뿐인 명목상 단체였다. 당시 허현준의 시대정신 쪽에서 사실상 주도한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자리에 와달라고 하면 나갔을 뿐 실제 일은 그쪽(시대정신)에서 다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주선해 삼성이 지원했다는 국정원 발표와 관련해 이 인사는 “그때 그런 낌새(국정원 개입)가 없진 않았는데 그것이 진짜 사실일 줄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2012년 발표 기자회견에서 기자 질의응답 등을 주도한 심용식 대표는 11월 23일 과 통화에서 “4대강 사업과 같은 국책사업에 대한 평가는 당대가 아니라 후대에 더 정확히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한 기록을 남겨둬야 한다는 것이 당시 사업을 진행했던 취지라고 모인 자리에서 발언한 것이 기억난다”면서도 “좌파든 우파든 진짜 실력자는 뒤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라며 자신은 사업을 주도한 사람이 아니라고 강조했다.(심 대표는 기사가 나간 후 기자와 통화에서 “선임 대표로 이름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토론이나 자문에서 총괄하는 역할을 했던 것은 맞으며, 다만 돈관계는 확실히 모르겠다는 취지로 한 말”이라며 “국정원이 당시 지원을 했다면 내가 모를 위치가 아니었다”라고 덧붙였다.) 국정원 측은 11월 17일 에 “발표한 내용을 제외하고 어떤 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는 것이 현재 입장”이라고 통보했다. 삼성 관계자도 “현재까지 그 사안과 관련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원세훈 원장의 발언을 보더라도 가장 많이 언급된 4대강 사업과 관련한 국정원의 역할을 규명한 것은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적폐 규명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 중 하나”라며 “4대강 블랙리스트 및 국정원이 4대강 사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는 의혹은 다소 시일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규명되어야 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주요행위자’ 중 한 명으로 언급된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국정원의 치명적인 일탈과 범죄행위가 드러난 이상 국정원 개혁위원회가 MB 국정원에 대한 조사를 더 늦춰서는 안 된다”며 “인명사전에 명시된 단체와 인사들, 그리고 4대강 사업의 저지를 위해 활동해온 여러 단위들과 협의하여, 국정원 개혁위의 조사 촉구 국민 청원운동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정원 메인서버에 ‘4대강’ 키워드 넣고 조사 안했다 지난 2015년 2월 9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한 항소심 선고 공판를 받기 위해 법원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강윤중 기자“우리가 나서도 직접 한다는 건 표시 안 나게 하라는 말이다. 영산강만 해도 (4대강사업을 하면) 천지가 개벽되는데 무엇 때문에 반대하느냐.” (2011.7.15. ‘全부서장 회의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과 지시 강조 녹취록) 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가 지난 8월 29일 정리한 ‘원세훈의 대국민 여론조작, 반드시 처벌해야’ 문건에 나오는 원 전 국정원장의 발언이다. 은 지난 9월 국정원 개혁위원회와 적폐청산TF가 정리한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15개 국정원 관련 의혹 규명과제에서 왜 ‘4대강사업’이 빠졌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기사를 썼다. 실제 주간경향의 과거 취재와 보도에서도 국정원 직원들의 4대강 부지 민간인 협박 사례와 홍보사업에서 국정원 개입 사실이 밝혀져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4대강 사업을 하면 지원을 해주겠다’는 환경재단의 국정원 일지도 기사에서는 언급했다. 4대강사업은 국정원 과거 적폐 중 핵심 규명대상이라는 것은 앞서 인용한 ‘원세훈 말씀’을 공개한 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의 입장도 같다. 민주당 적폐청산위는 앞서의 문건에 실린 분석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원세훈의 지시는 단순히 ‘4대강사업 정보 수집’ 차원이 아닌, 실질적 지휘와 실행의 전위부대 역할이었다”고 밝히며 4대강 관리, 활성화 대책, 홍보 등 4대강 공사 진행부터 완공까지 컨트롤타워를 국정원이 해왔음이 원세훈 원장의 지시를 통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적폐청산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원 원장의 발언을 분류해보면 선거 개입, 노조와 시민단체 개입, 언론공작 등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4대강 관련 지시말씀”이라며 “단순히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복명(復命) 형식으로 이뤄졌으므로 관련한 수많은 공작활동이 수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11월 23일, 중앙일보는 “‘류경식당 집단탈주’ 공작 정보도 들여다봤다”는 제목의 보도를 냈다. ‘국정원 메인서버 까기의 불법성 탐구’ 등의 부제가 붙어 있는 이 보도의 주장은 취재에 비춰보면 사실이 아니다. 국정원 개혁위원회의 보도자료와 의 취재를 종합해보면 프로세스는 이렇게 진행됐다. 국정원 개혁위원회가 선정한 15개 조사사건을 바탕으로 키워드를 제시하는 것은 다시 국정원 직원들과 파견검사들로 구성된 적폐청산TF다. 키워드 조사의뢰는 공문을 통해 이뤄진다. 공문을 바탕으로 메인서버에 접근 가능한 전산요원이 키워드를 입력, 그 결과물을 산출한다. 이때 적폐청산TF로 회신되는 것은 제목과 날짜, 주요내용 100자 정도가 정리된 엑셀파일이다. 엑셀파일에 나열된 제목만도 수만 건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추명호 전 국장의 경우 130만건의 결과물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개혁위는 이 리스트를 보고 적폐청산TF에 다시 공문을 띄우면 PDF 형태로 보고서가 적폐청산TF로 전달되는데, 그 문건을 보고 적폐청산TF가 다시 재정리해 문건을 올린다. 이 문건을 심의해 추가정리를 요구하거나 국정원 개혁위 자료로 발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외부인력으로 구성된 개혁위원회의 국정원 메인서버 접근은 사실상 이중·삼중으로 봉쇄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5개 조사사건 중에는 이명박 정부 시기 시행된 ‘4대강사업’ 내지 ‘한반도 대운하사업’ 공작과 관련한 키워드는 국정원 개혁위가 제시한 적이 없다. 국정원 발표자료에서 언급된 4대강은 다른 키워드를 넣고 검색한 결과에서 부분적으로 그 실체가 일부 드러난 것일 뿐이다. 실제 4대강을 키워드로 넣어 검색하면 추명호 전 국장의 130만건을 훨씬 추월하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추정된다.
- 특집
- [렌즈로 본 세상]블랙리스트 PD의 항의(2017. 10. 17 15:16)
- 2017. 10. 17 15:16 사회
- 10월 11일 오후 ‘김장겸 MBC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개인 라이브 방송을 해 징계를 받은 김민식 PD(왼쪽)가 방문진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입장하는 최기화 MBC 기획본부 본부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방문진은 방통위 검사감독권 수용 및 자료제출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17회 정기이사회를 열고 구야권 측 이사 3명이 퇴장한 가운데 “방통위 검사감독권에 의한 자료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 다만 통상적 범위 내 자료 요청에만 적극 협력하겠다”고 결의했다.
- 렌즈로 본 세상
- [렌즈로 본 세상]블랙리스트 마음은 블랙리스트가 안다(2017. 09. 18 18:27)
- 2017. 09. 18 18:27 사회
- 국정원 개혁위원회가 발표한 ‘국정원이 퇴출 압박을 한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에 이명박 정권 시절부터 올라 있었던 방송인 김제동씨가 9월 13일 MBC의 파업 현장에 참석,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있다. 국정원 개혁위의 발표 이후 첫 공식석상인 이 자리에서 김제동씨는 국정원 직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 행사에 참석하지 말라”는 제안을 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집에 돌아온 후 공황장애 증상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 렌즈로 본 세상
- [MBC의 몰락 10년사](7) ‘MBC 블랙리스트’ 이렇게 만들어졌다(2017. 08. 21 16:48)
- 2017. 08. 21 16:48 사회
- 세월호가, 4대강이, 노동문제가 PD수첩에서 다룰 수 없는 아이템이 되어갔지만 변변히 저항할 수 없었다. 저항하면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적히고, 그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얼마 전 비제작부서로 쫓겨난 MBC 기자들은 일제히 ‘새로운 친구를 만나보세요’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받았다. 새로운 친구로 등장한 주인공들은 황당하게도 MBC 김장겸 사장, 최기화 기획본부장, 오정환 보도본부장 등 MBC 내 주요 경영진들이었다. 현재 MBC 분위기에서 이들이 갑자기 친구 신청을 할 리가 만무한 상황.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이들이 모두 휴대전화를 일제히 교체했다는 것. 교체하면서 앱을 새로 깔면 이들의 전화번호가 저장된 휴대전화로 문제의 메시지가 뜬다고 한다. 만약 이 추측이 정확하다면 주요 경영진들은 같은 날 손 붙잡고 함께 휴대전화를 바꿨다는 것이데, 경영진 주변 행정부서에서도 비슷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들이 6개월 전에 새로 받은 휴대전화를 갑자기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이 이상한 현상이 매일 폭로되고 있는 MBC의 불법행위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으로 100여명을 불법 징계하고 200여명을 유배 보낸 MBC 경영진에 대한 사법처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그런 와중에 최근에는 MBC에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는 강력한 증거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카메라기자 성향분석표’, ‘요주의인물 성향’이라는 블랙리스트 내부작성 문서를 공개했다. MBC 권혁용 영상카메라기자회장이 65명에 대해 4개 등급으로 분류하여 성향을 분석, 주시하며 불이익을 준 것에 대한 입수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블랙리스트 종용한 방송문화진흥회 블랙리스트. 이 무시무시한 단어에서 블랙은 사악하다는 뜻이다. 사악한 사람들의 리스트라는 것인데, 어원에 의하면 절대왕조 시절 영국의 한 왕이 처음으로 썼다고 한다. 블랙리스트건 살생부건 절대권력자들이 자신의 정적을 처리하기 위해 고안한 전근대적인 폭력이고 당연히 현행 헌법이나 법률에서는 금지하는 불법행위다. 그런 단어가 지금 21세기 대명천지 공영방송 MBC에서 횡행하고 있다. MBC 카메라기자들 65명에 대한 성향을 등급으로 표시하고 경영진에 대한 충성도, 노동조합에 대한 태도 등을 꼼꼼하게 기록한 블랙리스트가 공개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MBC의 이사회격인 방송문화진흥회의 고영주 이사장과 이사들의 녹취록이 공개되었다. 그는 올해 2월 MBC 사장을 뽑는 자리에서 ‘언론노조 소속의 구성원들을 제작과 보도에서 배제하라’고 시종일관 요구했다. 녹취록을 보면 그와 김광동·유의선 이사는 언론노조 소속의 기자와 PD들에 대해 ‘올바른 프로그램을 만들 리 없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고, 언론노조 소속 구성원 전체를 매도하고 있다. 사실상의 블랙리스트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방문진 이사들 역시 사법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블랙리스트는 리스트의 존재만으로는 증명될 수가 없다. 블랙리스트를 만들라는 부패한 권력의 지시, 지시를 충실하게 이행하는 중간관리자, 블랙리스트의 존재와 피해자를 방관, 혹은 방조하는 이해당사자들에 의해 완성이 된다. 이런 총체적인 시스템이 있어야 블랙리스트는 제대로 작동된다. 불행하게도 MBC에는 이런 시스템이 있었던 것 같다. MBC 노동조합은 2012년 유례가 없는 170일 파업을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파업의 목적이었던 공정방송에 대한 전망이 사라졌던 시점부터 경영진들의 탄압은 교묘해져갔고, 노동조합이 저항할 무기는 별로 없었다. MBC 구성원들의 저항은 유예되었고 중간간부들은 윗선의 명령이라며 과거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을 실행했다. 표창원의 섭외가, 안철수의 인터뷰가 박근혜 탄핵촛불 촬영분이 다큐멘터리에서 사라지는 검열이 일상화되었지만 파열음 하나 나지 않았다. PD들이 캐스팅하고자 하는 아나운서의 출연이 이유 없이 불허되었지만 나서서 항의할 수 없었다. 세월호가, 4대강이, 노동문제가 PD수첩에서 다룰 수 없는 아이템이 되어갔지만 변변히 저항할 수 없었다. 저항하면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적히고, 그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 한마디로 내쫓긴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이미 주위에는 아나운서가 송출업무를, PD가 스케이트장 관리를, 기자가 드라마 홍보를 하는 비현실적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부당한 경영진 요구 실행한 중간관리자 그래도 경영진은 불안했다. 대부분의 내부 구성원이 언론노조 소속이었다. 쫓겨난 사람들을 대신하기 위해, 또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너 아니어도 프로그램, 뉴스 할 사람 많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채용과정에서 지역을 보기도 한다’는 경력사원을 부지런히 뽑았다. 신입사원 공채는 사실상 폐지했다. 그렇게 경영진은 블랙리스트가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MBC 경영진은 블랙리스트를 실질적으로 실행할 중간관리자들에게 관대했다. 지난 5년간 동료들이 해고와 징계와 유배생활을 전전할 때 ‘평범한’ 중간관리자들에게는 동료들보다 1000만원 이상 많은 연봉과 수당, 각종 선물과 해외연수, 그리고 승진이 주어졌다. 간부를 하려면 전향서가 필요했다. 부장 이상의 보직을 맡으면 발령 즉시 노동조합에서 자동 탈퇴하는 시스템이 있는데도 경영진은 굳이 보직을 맡은 이가 직접 작성한 노동조합 탈퇴서를 요구했고, 그 탈퇴서를 노동조합에 제출해야 했다. 강을 건너면서 다리를 불태우라는 의미였을까. 사실상의 부당노동행위임에도 누구 하나 노동조합에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중간관리자가 되면 경영진의 부당한 요구라도 실행하는 영혼 없는 관리자로 전락했다. 동료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은 경영진의 부당한 오더 프로그램 요구에는 경영진 탓을 하면서 조직 보호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아이템 검열에도 저항하면 ‘유배당할 수 있고, 경력사원들이 대신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니 받아들이라’는 부탁을 했는데, 부탁이 아니라 협박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부당한 징계와 해고가 계속되는데도 문제제기하는 중간간부는 아무도 없었다. 자기의 처지를 풍자한 웹툰을 개인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젊은 예능 PD를 해고해도, ‘기자·PD들을 동의 없이 경인지사 등 업무와 관계없는 곳으로 보내지 말라’는 법원의 판결을 계속 무시해도 국·부장들은 외면했다. 사장들은 유난히 확대간부회의를 좋아했고, 때때로 함께 외유(外遊)를 즐겼다. 노동조합의 피케팅과 소송이 있었을 뿐 회사 내부 시스템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MBC 수뇌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행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오죽하면 지난 2월, 대통령 탄핵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을 때조차도 그들은 MBC 사장을 뽑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언론노조 구성원, 올바른 가치관이 없는 사람은 앵커·기자·PD에서 배제’하라는 아무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만용은 꼼짝없이 증거가 되어 그들을 심판하게 되었다. MBC 정상화를 앞당길 수도 있는 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 앞에 나는 전혀 즐겁지 않다. MBC가 범죄의 현장이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처참하다.
- MBC의 몰락 10년사
- [MBC의 몰락 10년사](6) MBC 블랙리스트가 가능했던 이유는?(2017. 08. 14 16:10)
- 2017. 08. 14 16:10 사회
- 관리·감독 기능이 있는 공적 기구의 기능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파업과 해고, 징계가 계속되는 가운데 ‘MBC 사태는 노사 양측 간의 갈등일 뿐이고, 언론자유와는 관계가 없다’는 식으로 회피했다. 지난 8일 밝혀진 MBC판 블랙리스트는 충격적이었다. 문건에 의하면 65명의 카메라기자들의 성향을 충성도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누고 개인 한 명 한 명을 ‘충성’, ‘회유 가능’, ‘회색분자’, ‘강성이고 격리가 필요한 전복세력’이라는 표현으로 분류했다. 이 문건에 등장한 카메라기자들은 “우리가 등급으로 나누는 고깃덩어리였느냐”며 절규했다. MBC 블랙리스트 사건은 그동안 MBC 사측이 언론인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문건의 사실 여부는 검찰의 수사로 밝혀질 문제지만, 사실 블랙리스트 존재에 대해서는 소문이 파다했다. MBC 구성원들은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경영진의 폭압적인 관리체계를 생각하면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MBC 사측은 김재철·안광한·김장겸 사장을 거치는 동안 10명을 해고했고, 110명을 징계했으며, 157명을 ‘유배’시키는 등 꼼꼼한 폭력을 자행했다. 그들은 각종 승진·전출·인사고과를 통해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성원들에게 모욕을 주었는데, 이 모든 행위들은 정리된 블랙리스트가 없다면 불가능할 일이었다. 폭로된 블랙리스트는 일종의 마지막 퍼즐 같았다. MBC 경영진은 지금까지 90여건에 달하는 소송에서 법원으로부터 각종 징계와 인사조치들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멈추지 않고 부당노동행위를 계속했다. 독재시대에도 찾아볼 수 없었던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들은 ‘반바지는 입지 말라’는 복장의무, 업무 위치까지도 강제 보고하라는 인사관리를 도입했고, 드디어 블랙리스트까지 폭로되었다. 언론사 MBC가 최악의 노동탄압 현장이 된 것이다. 10년 전까지 가장 공신력 있는 언론사였던 MBC가 어떻게 블랙리스트로 인간을 분류하고, 근거도 없이 해고를 하는 인권 유린의 현장이 될 수 있었을까.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영상카메라기자들이 8월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MBC가 카메라기자들의 성향을 분류해 문건을 만든 것에 대해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관계자 처벌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MBC 사태의 공범자들 권력자들은 MBC에서 벌어진 희대의 언론자유 침해사태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했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언론의 자유는 침해할 수도 없고, 침해할 이유도 없습니다”라는 식의 답변을 반복했다. 그들은 MBC에서 멀쩡한 사장이 쫓겨나가고, 최고의 자리에 있던 김미화·신경민 등 진행자들이 마이크를 빼앗겼으며, 4대강을 비롯한 정부 정책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프로그램이 불방되는 객관적 사실을 무시했고, 그런 태도로 사실상의 가해자가 되었다. 권력자들에게 질문하는 언론은 없었고, 그들의 일방적 진술만 국민들에게 전달되었다. 관리·감독 기능이 있는 공적 기구의 기능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파업과 해고, 징계가 계속되는 가운데 “MBC 사태는 노사 양측 간의 갈등일 뿐이고, 언론자유와는 관계가 없다”는 식으로 회피했다. “최승호 PD, 박성제 기자 등을 근거 없이 해고했다”고 스스로 발언한 ‘백종문(현재 MBC 부사장) 녹취록’이 세상에 공개되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판사 출신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눈치를 보는 데 급급했다. “(2심까지 해고 무효가 되었지만)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 MBC 노사문제에 개입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논의조차 거부했다. MBC의 이사회 격인 방송문화진흥회와 새누리당 국회의원들도 여기에 가세했는데, 방송사 임원이 법인카드를 써가면서 가진 회동에서의 발언을 “사적인 대화일 뿐”이라며 역시 논의를 거부했다. 언론인을 근거 없이 해고했다는데, 그 사건이 언론의 자유와는 무관하다는 그들의 뻔뻔한 논리 앞에 해고자들은 무력했고 MBC 경영진은 미소를 지었다. 또 다른 공범자들의 주장은 “보수정권만 그런 게 아니라 진보정권 때도 그랬다”는 것이었다. 찬찬히 따져보면 역시 거짓말이다. 비교적 MBC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나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도 여기에 가담했다. 정작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공영방송 종사자들의 언론자유를 침해했는지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다. 국제기관들의 언론자유지수가 보수정부 9년 사이 두 배 넘게 악화되었다는 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MBC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아끼던 황우석 박사의 불법 난자 매매와 논문 부정행위를 밝혔고, 참여정부의 한·미 FTA, 부동산 정책, 고위공직자의 재산 등에 대해서 치밀하게 검증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공범자들은 언론인에게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들의 기술을 이렇게 정의했다. “MBC에서 언론 탄압이 일어난 적이 없고, 일어났다 해도 그것은 노사관계일 뿐이며, 이런 갈등은 진보정권 시절에도 있었다”는 거대한 거짓말. 지금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합창을 하고 있는 궤변은 이렇게 완성이 되었다. 거래는 계속된다 한때 MBC의 위기를 극복할 기회가 있었다. 2012년 당시 MBC의 170일 파업은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의 불방이 6개월간 계속되면서 집권당인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 후보에게도 큰 부담이 되었다. 박근혜 후보는 “파업이 해고사태에까지 이르게 돼 안타깝다”는 공개적인 메시지를 냈고, 파업을 하는 노동조합 집행부와 ‘MBC 정상화’에 대해 합의를 했다. 이 합의를 근거로 노동조합은 대통령 선거를 5개월 앞두고 긴 파업을 풀었다. 당시 MBC 김재철 사장과 임원들은 멘붕에 빠졌다. 정상화란 그들의 퇴진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경영진이 그냥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일단 MBC 뉴스는 박근혜 후보와 박빙으로 경쟁하던 안철수와 문재인에 대한 대형 오보를 만들었다. 안철수의 박사 논문 표절, 노무현 NLL 녹취록 보도 등이었다. 불공정보도가 횡행했다. 실질적 책임자는 당시 김장겸 정치부장, 현 MBC 사장이었다. 결국 ‘MBC 정상화’ 약속은 사라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했고 불공정보도의 과실은 달콤했다. 선거 당시 임원이었던 안광한·권재홍·김장겸 등은 이후 사장, 부사장, 보도본부장 등으로 영전했다. 경영진은 무서울 게 없었다. 자기들을 한때 위기로 몰아넣었던 강력한 노동조합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월급사장이어서 임기만 마치면 자연인이 되는 경영진들이 후배들에게 해고와 징계의 칼날을 마구 휘두르고,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심지어 암 투병 중인 해고자를 외면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근혜 권력은 탄핵되었지만 아직도 그 일부가 잔존해 있는 상황이다. 수많은 MBC 구성원들이 김장겸 퇴진을 외치며 제작 거부에 나섰다. 이런 와중에도 MBC 뉴스 책임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탈원전정책, 고소득자 증세 등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무조건 까라’는 오더를 경제부 기자들에게 남발했고, 자유한국당은 블랙리스트 사태가 문재인 정부의 언론 장악 음모라는 창의적(?)인 발상의 역정을 내고 있다. ‘공범자들’ 사이의 거래는 계속되고 있다. *참고문헌 스탠리 코언 지음, 조효제 옮김, 창비.
- MBC의 몰락 10년사
이전1
2
다음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