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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공정수당, 양극화 해소 마중물 될까(2022. 01. 21 15:22)
2022. 01. 21 15:22 정치
ㆍ“한참 덜 받는 걸 조금 개선한 수준”…비정규직 ‘입구 규제’ 없인 땜질 처방 불과 올해 대선과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뒤 치러진 대선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노동 공약’이다. 5년 전 대선후보들은 양극화 해소라는 촛불 민심의 목소리에 호응하려고 전향적인 노동 공약을 제시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신경제 비전선포식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대표적인 것이 ‘최저임금 1만원’이다. 문 대통령과 유승민(바른정당)·심상정(정의당) 후보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고 했고, 홍준표(자유한국당)·안철수(국민의당) 후보는 대통령 임기(2022) 안에 1만원까지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핵심 요인인 비정규직 문제를 두고도 다양한 해법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출산·육아·휴직에 따른 결원 등 예외적 경우에만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을 허용하는 ‘사용사유 제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사용자의 비정규직 사용을 ‘입구’부터 규제하려는 것으로, 노동계가 줄곧 요구해온 내용이었다. 당시 문 대통령뿐 아니라 유승민·심상정 후보도 사용사유 제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5년 전과 달리 이번엔 노동 공약이 핵심 이슈로 떠오르지 않고 있다. 대선 투표일이 한 달 반가량 앞으로 다가왔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아직 종합적인 노동 정책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이 후보가 거듭 언급하고 있는 ‘비정규직 공정수당’이 그나마 유일한 쟁점으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찬반 엇갈리는 정치권 경기도가 지난해부터 전국 최초로 도입한 비정규직 공정수당은 경기도와 공공기관이 직접고용한 기간제 노동자에게 근로계약 종료 시 일한 기간에 따라 기본급의 5~10%를 추가수당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이 후보는 지난 1월 9일 페이스북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안정·저임금의 중복차별에 시달리고, 임금 격차로 인한 일자리 양극화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며 “이 중복차별 구조를 공공 영역에서부터 시정하기 위해 경기도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근무 기간이 짧을수록 더 많은 수당을 지급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공정수당이 공공을 넘어 민간까지 확대될 수 있도록 국회, 기업, 노동자들과 함께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심 후보도 1월 6일 1호 공약으로 ‘신노동법’을 발표하면서 비정규직 평등수당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기업이 일시적 업무가 아닌 고용에서 단기로 노동자를 고용하고 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계약종료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후보 공약과 비슷한 취지다. 국민의힘은 “이 후보는 대한민국을 ‘수당 공화국’으로 만들 셈인가”라며 비정규직 공정수당 공약을 비판했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황규환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비정규직 차별을 개선하자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비정규직의 임금을 무조건 정규직과 맞춰주자는 발상은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도 없을 뿐더러 너무나도 단편적인 접근”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찬반이 엇갈리지만 비정규직 공정수당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고착화하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전문가들의 평가는 눈여겨볼 만하다. 문제는 비정규직 공정수당을 받을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범위가 좁은 데다 격차를 해소하기엔 수당 액수도 크지 않다는 점이다. 비정규직 사용의 입구 규제 없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강화하는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경기연구원이 2020년 작성한 ‘경기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 불안정성 보상 도입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2019년 현재 경기도 기간제 노동자들의 임금은 월평균 212만원이다. 공무원 평균보다 월 318만원이 낮고, 무기계약직 1호봉(가군)에 비해서도 월 36만원이 낮다. 기본급이 낮은 데다 명절휴가비·복지포인트 등 복리후생수당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기간제 노동자 기본급의 5~10%를 고용불안정의 보상 명목으로 지급했다. 6개월 기간제는 98만8000원, 1년 기간제는 129만1000원이었다. 월 기준으로 하면 각각 16만5000원, 10만8000원이다. 경기도는 “2021년 1월 첫 시행 후, 같은해 11월 말 기준으로 도 소속 기간제 노동자 734명, 공공기관 소속 기간제 노동자 912명 등 총 1646명에게 9억4000만원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올해에는 총 2085명에게 25억400만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여전히 정규직보다 낮은 임금 다른 지방자치단체 중 비정규직 공정수당 도입을 준비하는 곳도 있다. 경상남도는 비정규직 임금 실태조사, 연구용역 등을 거친 뒤 2025년부터 기간제 노동자에게 추가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경기도는 비정규직 공정수당 제도를 준비하면서 프랑스, 스페인 등 해외 사례를 참고했다. 경기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프랑스는 기간제 노동자의 근로계약이 끝나면 사용자가 총임금의 10%에 이르는 계약종료 수당을 지급한다. 스페인에선 비정규직 노동자를 일정 기간 고용한 다음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고 근로계약을 종료하면 노동자에게 근속기간 1년당 12일의 급여에 해당하는 금액을 퇴직수당으로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수도권 시민 2000명을 상대로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얼마를 금전적으로 보상하는 것이 공정한지’를 물은 결과, 비정규직 급여의 8.6%라는 응답이 나왔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해외 사례, 설문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기간제 노동자 기본급의 5~10%를 공정수당 금액으로 설정했다. 이 후보는 페이스북에 “고용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상식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라고 적었다. 월 10만원대의 비정규직 공정수당을 지급한다고 해도 정규직과 기간제 노동자의 임금 격차는 여전하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성명서를 내고 “공정수당은 비정규직이 더 받는 것이 아니라 한참 덜 받는 상태를 조금 개선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고용불안 해소 명목으로 추가 보상하는 방안도 의미가 있지만 기본적 임금과 수당에서부터 차별 없이 지급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프랑스는 업종별 단체협약에 따라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정규직이든 기간제 노동자이든 임금이 같다. 이런 전제 위에서 기간제 노동자가 계약종료 시 총임금의 10%를 더 받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사용자가 인건비 절감을 위해 기간제 노동자를 쓸 유인이 낮아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공정수당이 실질적 의미를 가지려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전제돼야 하는데 한국에선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이 종종 언급하는 호주의 임시직 추가수당(Casual Loading) 역시 경기도의 비정규직 공정수당과 세부 내용이 다르다. 호주 정부기관인 공정근로 옴부즈맨(Fair Work Ombudsman)은 홈페이지에 “통상적으로 21세 이상의 고용인은 최소 시간당 20.33달러, 유급휴가를 가지 않으면 시간당 25.41달러를 받아야 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유급휴가를 가지 않으면’이 호출노동과 같은 임시직 노동자를 지칭하며 이들은 고용 불안정의 대가로 정규직 최저시급보다 약 25%를 더 받는다. 경기도의 비정규직 공정수당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기본급이 추가수당 계산 시 기준선이지만 호주의 임시직 추가수당은 정규직 시급이 기준선이다. 한국과 달리 호주의 임시직 추가수당을 민간 부문까지 적용할 수 있는 건 산업별 단체협약(Award)에 기업이 이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에 있는 법무법인 ‘H&H’의 홍경일 대표변호사는 “호주 노동법상 고용주는 단체협약을 지켜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임시직 추가수당 지급은 고용주의 법적인 의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정규직 공정수당보다 적용 범위가 넓고 비정규직이 받는 임금도 더 많은 호주의 임시직 추가수당조차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호주노총이 2018년 낸 보고서에 이 점이 잘 드러난다. 보고서 제목이 ‘임시직 추가수당의 신화’였다. 호주노총이 2018년 발표한 ‘임시직 추가수당의 신화’ 보고서 표지 보고서를 보면 호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임시직 노동자 비율(2016년 기준 25.1%)이 가장 높은 국가다. 보고서는 “임시직 노동자는 고용이 불안정하고 유급휴가·휴일을 누릴 수 없기 때문에 추가수당을 더 받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의 임시직 노동자들은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홍경일 대표변호사는 “임시직 노동자의 시급 자체는 정규직보다 높지만 매주 정해진 노동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정규직에 비해 평균 임금은 낮은 편”이라며 “최근 임시직 노동자가 12개월 이상 일하면 고용주가 풀타임(전일제)이나 파트타임으로의 전환을 제안해야 한다는 법이 새로 (호주에) 생겼다”고 설명했다. 한정적인 수당 적용 범위 현재로선 비정규직 공정수당의 혜택을 받을 수 가능성이 있는 이들은 공공부문이 ‘직접고용’한 기간제 노동자다. 사용자가 필요한 노동력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다른 기업이 고용한 노동자를 쓰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 연구용역을 통해 실시한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를 보면 간접고용 노동자 수는 약 350만명이다. 규모는 2017년 기준 전체 임금노동자의 약 17.4%에 달한다. 자영업자로 분류해 노동관계법 밖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규모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21년 플랫폼 종사자 규모와 근무실태’ 결과를 보면 플랫폼 노동자는 약 66만명이었다. 이들 역시 비정규직 공정수당 적용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이미 한국사회에서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보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격차가 더 벌어지기 시작했다. 특수고용직과 플랫폼 노동이 증가하며 기업들의 노동법 회피 전략이 발전하는 상황에서 노동 정책은 밑바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플랫폼 노동·특수고용직에 노동법을 전면 적용해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간접고용 비정규직에 원청 사용자 책임을 부여하는 바탕을 깔지 않고 만든 다른 정책들은 모래 위에 쌓은 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사라진 비정규직 입구 규제 이 후보는 지난해 12월 30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 해소’에 무게중심을 두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과거처럼 특정 장소·시간에 모여서 일한 시간의 대가를 지급하는 방식의 보상에서 앞으로는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특정 장소·시간에 모이지 않고도 낸 성과에 보수를 지급하는 체계로 신속하게 바뀔 것 같다”며 “이렇게 되면 정규직이라는 의미가 더 없어질 수 있는 만큼 그런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드는 것만이 정의인가. 그 생각도 교정할 필요 있다고 생각한다”며 “비정규직 일자리 노임 단가가 더 높은 방향으로 가면 정규직 전환 압박도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직까지 비정규직 공정수당이 비정규직 입구 규제를 대체할 정도로 강력한 대안이라고 보긴 어렵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보면 2021년 8월 기준 비정규직은 806만6000명으로, 사상 처음 800만명을 돌파했다. 2017년 대선 당시 복수의 후보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공약으로 제시한 비정규직 입구 규제의 필요성이 5년 사이 되레 더 커진 셈이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공정수당 도입에 그치지 말고 단체협약 효력 확장, 비정규직 입구 규제 등 종합적인 그림을 내놔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비정규직 공정수당은 땜질에 그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최근 일자리 공약을 발표한 이 후보는 1월 안에 비정규직 공정수당뿐 아니라 다양한 정책 패키지를 담은 노동 공약을 발표할 예정이다. ‘사이다’와 ‘실용주의자’ 사이를 오가는 이 후보가 발표할 노동 공약 내용이 ‘노동이 사라진 대선’이라는 불명예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노사정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12)비정규직 철폐 외친 기륭전자 노동자들(2021. 08. 20 14:41)
2021. 08. 20 14:41 사회
ㆍ10년 전투가 남긴 건 ‘승리’ 아닌 ‘연대’ 1966년 외국인투자기업으로 설립된 ‘기륭전자’는 디지털 셋톱박스와 디지털 라디오 등을 만드는 회사다. 2005년까지는 연매출 1600억원, 당기순이익 60억원에 달했던 중견제조업체였지만, 2010년 최동열 대표이사 취임을 전후해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대표이사의 업무상 배임과 비위행위로 점차 기울다가 2014년 상장 폐지된 뒤 사실상 폐업에 이르렀다. 2008년 기륭전자 앞 천막에서 단식농성 중인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모습. / 김창길 기자 위성수신 라디오 개발에 돌입한 2002년 초, 기륭전자는 구로공단에서 가장 먼저 생산공정에 파견직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후 구로공단 내 대부분 사업장이 파견업체를 통해 충원했다. 제조업체 상당수가 지방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추세였던 시기라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불안정한 파견직 일자리를 찾았다. 2002년 여름 50~60명 정도였던 생산직 규모는 가을에 접어들면서 100여명으로 늘었다. 일감이 늘면 파견직을 더 뽑고, 일감이 줄면 파견직으로 내보내는 방식으로 정규직은 줄이고 비정규직은 늘렸다. ‘문자 받지 말고 내일 보자’ 기륭전자의 노무관리 방식은 유독 야비한 측면이 있었다. 노동자들의 기본급이 크게 차이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1등급 정규직, 2등급 계약직, 3등급 파견직으로 나누고 상여금을 차등 지급했다. 정규직 중 업무가 느리거나 서툰 해고 대상자에게 관리직을 맡겨 업무 압박을 주고 내몰았다. 노동자를 기계부품 취급을 하고 모욕적인 대우를 서슴지 않았다. 잡담을 했다고 해고,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고했다. 오죽하면 일과를 마치고 헤어지면서 문자 받지 말고 내일 보자는 게 인사였을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 분위기는 각박했고, 노동자들은 동료를 경쟁상대로만 보았다. 3일을 버티는 신규 파견직원은 거의 없었고, 3일 출근을 하고 나서야 동료들이 말을 걸어올 지경이었다고 한다. 드물게 정규직과 계약직, 파견직 노동자가 모두 함께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비정규직 차별 철폐’가 아닌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싸웠던 기륭전자분회가 결성된 날은 2005년 7월 5일이다. 오전 10시 쉬는 시간 10분 동안, 200여명의 노동자가 조합가입서를 썼다. 인간답게 일하겠다는 열망이 보여준 쾌거다. 노조를 만들고 한달도 지나지 않아 회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2010년 11월 정규직 복직 합의까지 1895일을 싸우고, 2년 6개월의 복직 대기기간을 보낸 후 2013년 5월 2일 정규직으로 첫 출근을 했지만 회사는 일을 시키지 않았다. 2013년 12월 30일 도망치듯 이사를 가버린 회사에서 조합원들은 다시 358일의 철야농성을 또 해야 했다. 안 해본 싸움이 없다 기륭전자의 싸움은 크게 두가지 노동문제를 드러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하나는 노동조합 결성 후부터 노사합의를 이룬 1895일의 싸움인데, 이때는 비정규직과 간접고용의 문제를 주요 의제로 삼고 싸웠다. 다른 하나는 2010년 11월 1일 합의 이후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난 먹튀 자본과의 싸움이다. 물론 투기자본이 이득을 취하고 철수하려면 정리해고, 도급화(비정규직화)가 주로 사용되므로 완벽하게 다른 문제로 보기도 어렵다. 2013년 야밤에 기습 폐업해 버린 구로공단 기륭전자의 사무실을 해고노동자들이 지키고 있다. 2014년 10월 촬영된 사진이다. 농성 281일째라는 숫자가 보인다. / 권호욱 기자 기륭분회는 안 해본 싸움이 없다. 단식, 공장 점거 파업, 회사 옥상 점거, 고공농성, 오체투지, 미국원정투쟁까지…. 지리멸렬한 교섭과 회사 측의 판 뒤집기에 대응하기 위한 생존방식은 투쟁밖에 없다는 듯이, 열심히 싸웠다. 2008년 3월, ‘기륭여성비정규직 승리를 위한 공대위’가 꾸려졌다. 그해 5월 1일 노동조합 조합원 4명이 서울광장 조명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서울 남부지역 시민사회단체, 유가협과 민족민주열사 추모사업연대회, 인권단체연석회의와 민교협·민변과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싸웠다. 같은해 5월 26일 구로역 앞에서 고공농성이 또 시작됐다. 연일 촛불집회가 열렸고 투쟁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스크린쿼터문화연대, 민변, 민교협, 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관계자들이 촛불집회에 함께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묵묵부답이었다. 2013년 11월 20일 기륭전자 복직 노조원들이 사회적 합의 실행을 요구하며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 김기남 기자 6월 11일, 10명의 조합원이 집단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그중 3명의 노동자는 철조망을 걷고 공장 1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문제 해결이 되지 않으면 살아 내려오지 않겠다고 했다. 정치권을 압박하자는 공대위의 움직임도 효과가 없었다. 7월 22일에는 13명의 여성 국회의원이 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공동행동에 나섰지만 역시 회사는 무시로 일관했다. 그러는 와중에 암투병 중이던 권명희 조합원이 사망했다. 1000일 투쟁이 끝나고 기륭분회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에 결합한다. 이후 모든 비정규직을 위한 발걸음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기륭분회 조합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 건립과 운영에 참여하면서 여전히 비정규직 철폐투쟁에서 활약 중이다. 연대라는 희망 인간은 타인과 연결되고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서로 다른 배경에서 성장했고 어쩌면 다른 관점과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타인을 만나 배우고 의존하면서 연결되기를 희망한다. “노동자 투쟁은 많이 지고 가끔 이긴다. 그러므로 한 전투의 승패가 아니라 그 전투가 사람을 남기고 단결을 남기고 연대를 남겼는가를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기륭전자 노동조합의 여정을 담은, 기륭전자분회 투쟁 10주년 평가 자료집 표지에 적힌 문구다. 전투라는 말이 주는 긴장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실 그들의 10년은 전쟁 같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서로를 돌아봐 주지 못했던 동료들은 노조를 만들면서 10년 투쟁을 함께 겪은 동지가 됐고, 촛불시민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거칠게 쉰 목소리를 들었으며, 예술가들은 노동자들의 움직임과 마음의 소리를 다양한 작업으로 재현해냈다. 상급 조직에 아쉽기도 했을 테고, 이탈한 조합원의 빈자리는 헛헛했을 것이다. 아쉬움과 부족함을 감당하며 이들은 다른 비정규직과 여전히 함께 싸우고 있다. 우리가 미처 몰랐거나 알고 싶지 않았을 장면들이 그냥 흘러가게 두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덥석 참여한 기획이 오늘로 끝난다. 여전히 자기 앞의 싸움을 돌파하며 희망과 좌절 사이를 뒤척일 많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보내며.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 이번 호로 마칩니다.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
신한카드, 비정규직 임금 차별(2020. 11. 20 14:29)
2020. 11. 20 14:29 경제
ㆍ서울지방노동위 미지급금 지급 판정… 회사 측은 재심 요청 ‘윤리경영’을 내세우는 신한카드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차별하다 시정판정을 받았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9월 28일 신한카드 측에 차별적 처우로 계약직 노동자 A씨에게 지급하지 않은 1776만원을 지급하고, 사내 규칙을 개선하라고 판정했다. 차별적 규칙 개선까지 명령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판결로 꼽힌다. 하지만 신한카드는 판정에 불복해 지난 6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요청했다. 신한카드의 '윤리 경영' 소개 / 신한카드 홈페이지 갈무리 차별받았는지 알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 A씨는 2018년 3월 6일부터 신한카드 발급실 소속 계약직 노동자로 일했다. 2년을 하루 앞둔 지난 3월 5일, 신한카드 측은 A씨에게 ‘계약 만료’를 이유로 퇴사를 통보했다. 2년을 초과해 근무하면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라 정규직이 되기 때문이다. 내심 무기계약직 전환을 기대했던 A씨는 구제를 받기 위해 노무사를 찾았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동안 A씨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정규직과 차별 대우를 받았다는 것이다. A씨가 담당한 업무는 생성된 카드를 안내장과 함께 배송 봉투에 넣는 이른바 ‘봉입’업무였다. A씨는 “카드를 발급하는 제조공정이라는 점에서 정규직이 담당하는 업무와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노위의 판단도 “본질적 차이가 없다”였다. 하지만 신한카드 측은 정규직에게 지급하는 명절상여금, 기여급, 목표인센티브 등을 모두 지급하지 않았다. 신한카드 측은 계약직에게는 매달 명절상여금에 준하는 상여금을 지급했다며 이는 ‘계약직 직원 운영규칙’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지노위의 판단은 신한카드 측과 달랐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A씨의 기본급이 매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노위는 “신한카드 측이 지급한 상여금은 최저임금에 맞추기 위한 것일 뿐 정규직이 받는 명절상여금과는 다르다”고 판정했다. 또 신한카드 측이 차별 근거로 제시한 계약직 직원 운영규칙 제12조 “계약직 급여는 기본급, 상여, 기타 수당 등으로 구성된다”는 내용을 60일 이내에 개선하라고 명령했다. 지노위의 판정으로 신한카드 발급실 소속 계약직 노동자 33명은 재직 기간에 따라 최대 1776만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향후 입사하는 계약직 노동자들도 명절상여금 등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이번 판정 전에 계약 종료로 퇴사한 노동자들이다. 앞서 신한카드 측은 A씨의 무기계약직 전환 요구를 거절하며 지난 3년간 퇴사한 계약직 노동자의 명단을 공개했다. 계약직 노동자 중 A씨처럼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보이려는 의도였다. 윤수황 노무사가 신한카드의 비정규직 임금차별을 설명하고 있다. / 김찬호 기자 이 문서에 따르면 퇴직한 총 24명의 계약직 노동자들도 최대 1776만원씩을 더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을 누가 찾아낼 것이냐가 문제다. 기간제법 제15조의3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장관은 A씨를 제외한 또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가 있는지 조사해 신한카드 측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A씨를 대리하는 윤수황 노무사는 “누군가 24명에 대해 제보를 하지 않는 이상 이들을 구제하기란 쉽지 않다”며 “시정명령을 해도 신한카드는 1억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고 버티면 된다”고 말했다. 현행 기간제법은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아도 형사처벌 없이 과태료만 부과한다. 신한카드는 재심신청 “차별이 아니라 차이” 신한카드는 지노위 결정에 불복해 중노위에 재심을 요청했다. 신한카드 측은 “제조공정도 세분화하면 다양하다. A씨와 정규직 노동자는 동일노동을 한 것이 아니다”며 “사내 규칙도 차별이 아니라 차이를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심에도 불복하면 3심제로 진행되는 법정 다툼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A씨는 “당장 생활고를 겪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늘 불안하다”고 말했다. 재심 등으로 시간을 끌다 합의해도 신한카드는 손해 볼 것이 없다. 윤 노무사는 “합의는 양 당사자 간의 양보이기 때문에 배상금은 무조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시간은 기업 편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재심이 진행되는 동안 퇴사한 24명의 임금 미지불에 대한 소멸시효 3년이 순차적으로 도달하게 된다. A씨의 경우 분쟁 당사자로 소멸시효가 정지되지만, 나머지 24명은 신한카드 측에 소송을 제기해야 소멸시효가 정지된다. 하지만 미지급된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노동자들은 손써보지도 못하고 돈을 잃게 된 상황이다. 법률사무소 정의 정지웅 변호사는 “신한카드는 앞으로 계속 불복하며 판결 확정을 지연시킬 것”이라며 “신한카드가 정말 윤리경영을 한다면 이들 24명에게 사정을 알리고,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게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한카드 측은 “재심이 진행 중이고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별도의 조치는 없다”고 말했다. “인권모독만이 차별은 아니다”  올해 접수된 차별시정요구는 10월 기준 총 164건이다. 차별시정제도는 5인 이상 사업장에서 발생한 모든 임금·노동환경 차별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접수 사례는 제도 시행 초기인 2008년 1966건을 정점으로 현재는 100건 안팎으로 줄었다. 노동건강연대 유성규 노무사는 “차별을 당해도 신고할 수 없는 제도의 문제가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신분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퇴사했거나 퇴사할 각오가 아니면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 노무사는 “이미 퇴사를 했더라도 질지도 모르는 싸움을 시작하기는 힘들다”며 “비슷한 업계에서 다시 일할 수도 있는데 차별시정요구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마저도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별 당사자가 아니어도 시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제도뿐만 아니라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이조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선임간사는 “비정규직이라고 임금, 노동환경 차별을 당연시하면 안 된다”며 “한국사회가 직장 내 괴롭힘이나 인권문제는 주요하게 다루지만, 임금·노동환경의 차별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 선임간사는 “노동자 개인의 인식전환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동일노동·동일임금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재 후]정규직 기사와 비정규직 기사의 온도차
[취재 후]정규직 기사와 비정규직 기사의 온도차(2020. 09. 24 16:42)
2020. 09. 24 16:42 사회
정규직. 실무노동용어사전은 정규직 노동자를 “사용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여 사업장 내에서 전일제(full-time)로 근무하면서 근로계약기간의 정함이 없이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되는 근로자”라고 설명합니다. 정규직 노동자를 다룬 기사는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습니다. 정규직 해고 이야기는 더욱 그렇습니다. 기사 밑에는 댓글도 많이 달리는 편인데 대부분 날이 서 있습니다. 나아가 노동조합에 가입한 정규직 노동자 다룬 기사 댓글창에는 종종 노동자에 대한 성토의 장이 열립니다. 지난호에 쓴 ‘쉬워진 해고, 단지 코로나 때문인가’ 기사를 두고도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그런데 비정규직의 노동과 해고를 다룬 기사와는 온도차가 있습니다. 일터에서 밀려나는 비정규직 이야기는 정규직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비정규직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에 한국 노동시장에 안착한 고용형태입니다. 물론 그 전에도 임시 일자리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비정규직’이 보편화되지는 않았습니다. 외환위기 상황에서 기업은 비정규직을 서둘러 도입했고 순식간에 확산됐지요. 이후 비정규직은 한국사회의 뉴노멀이 됐습니다. 불안정 고용은 보편적인 고용형태로 자리 잡게 된 겁니다. 쉽게 해고되고 순식간에 밀려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가 됐습니다. 사람의 관심은 희소성을 가진 재화입니다. 대중은 익숙한 이야기에 관심을 나눠주지 않습니다. 반면에 정규직 이야기는 어떨까요. 한국노동연구원이 정규직·노동조합 있음, 300명 이상 사업장 재직, 이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일자리를 ‘사회적으로 괜찮은 일자리’로 정하고 얼마나 될까 조사를 해봤습니다. 결과는 7.6%였습니다. 7.6%의 이야기, 더군다나 해고 이야기는 슬프지만 희소가치가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사회적으로 괜찮은 일자리는 더 줄어들 테고 어쩌면 이들의 희소가치는 더 치솟을지 모르겠습니다. 노동계는 코로나19 이후를 걱정합니다. 외환위기라는 재난 상황에서 비정규직이 노동시장을 점령했듯 코로나19라는 재난이 노동환경을 더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지요. 코로나19라는 재난을 틈타 눈엣가시 같은 노조를 솎아내려는 기업들이 눈에 띕니다. 흑자 폐업을 하는 외국 자본도 있고, 퇴사를 가장한 대규모 해고를 유도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이들이 행태를 용인하고 난 뒤 맞이할 한국사회의 ‘뉴노멀’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취재 후
[주목! 이 사람]양한웅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대표 “비정규직 사라지는 그날까지”
[주목! 이 사람]양한웅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대표 “비정규직 사라지는 그날까지”(2020. 04. 24 15:43)
2020. 04. 24 15:43 사회
코로나19 여파로 고용 충격이 커지고 있다. 고용안전망 사각지대에 있는 일용직과 임시직은 속절없이 일터에서 밀려나고 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 상당수는 생존을 걱정한다. 생계 위협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멀리 퍼지지 못한다. 이들은 노동계 내부에서도 주류에 속하지 않는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질라라비>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질라라비는 ‘해방자’를 뜻하는 순우리말로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권리를 세상에 알리고 연구한 결과를 공유하는 공간이다. 2002년에 창간해 2020년 4월, 200호를 발간했다. 고단한 여정이었다. 책 디자인은 회원들이 품앗이로 돌아가며 작업했고, 철폐연대 연구소 연구원들과 뜻이 맞는 정책 전문가들이 보내준 원고를 받아 지면을 꾸렸다. 강윤중 기자 “‘기적’이라고 부르기엔 좀 그렇지만 그만큼 힘든 일이었어요. 한국노동운동 역사에서 기관지가 이렇게 오래 발간된 건 처음일 겁니다.” 양한웅(61)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대표가 풀어놓은 <질라라비>의 사연은 애틋했다. “출판사에 지급해야 할 제작비가 1년 동안 밀린 적이 있었어요. 사정을 아는 출판사 선생님이 고맙게도 마냥 기다려줬지요. 그러다가 도저히 계산이 안 나오면 후원 행사를 열어서 갚고. 그렇게 책을 만들어왔습니다.” 형편이 여의치 않은데 왜 인쇄매체를 고집할까. 그는 “온라인으로 가야 하나 많이 고민했어요. 철폐연대 상근 활동비도 넉넉히 주지 못하는 형편에 큰 비용이 들어가는 <질라라비>를 계속 오프라인 잡지로 내야 하나. 거의 포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질라라비>는 무게감 있는 기록물로 남아야 한다’는 바람을 떨쳐내지 못하겠더라고요. 근근이 버티는 사이에 회원도 늘고. 십시일반으로 도와줘서 잡지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양 대표는 한국통신 노동자 출신으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집중해온 노동운동가다.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으며 10년 동안 KTX 투쟁을 이끌기도 했다. “2001년, 그때는 비정규직이라는 단어 자체도 생소하던 시절인데 한국통신(KT) 계약직 노동자들 8000명이 해고됐어요. 계약직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섰는데. 정말 처절하게 투쟁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데 숙연한 감정이 들더군요. 그들의 투쟁을 목도한 뒤에 ‘나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비정규직의 권리를 찾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지만 야속하게도 한국사회는 더 많은 비정규직을 쏟아내고 있다. 전과 달리 지금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스며들었다. “학교나 기업, 공공기관 비정규직들은 그래도 노동권을 보장받아 목소리를 낼 수 있지요. 하지만 그 밖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들은 취약한 노동환경에 그냥 노출돼 있어요. 노동권이 없는데 그 사실조차 인지 못 하는 형편이지요.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빈부격차 문제의 해소는 불가능합니다. 비정규직은 고용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차별의 문제예요. 더 많은 노동자가 적극적으로 노동권을 주장하고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아, 물론 <질라라비>는 비정규직이 사라지는 날까지 펴낼 겁니다.”
주목! 이 사람
[표지 이야기]“방송 비정규직 문제, 한 발이라도 나아가길”(2020. 02. 28 14:16)
2020. 02. 28 14:16 사회
ㆍ고 이재학 PD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대리한 이용우 변호사 이용우 변호사(45)는 직장 내 불공정 관행을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 ‘직장갑질119’의 법률스태프다. CJB 청주방송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던 고 이재학 PD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대리했다. / 권호욱 선임기자 2018년 5월 이 PD가 직장갑질119 e메일로 고충을 털어놨다. 메일 답변으로만 넘어갈 사건이 아니었다. 이 변호사는 이 PD를 직접 만나 구체적인 근무실태를 묻고 관련 자료를 받았다. 노동자 지위를 확인하는 소송을 해보면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이 PD도 ‘무늬만 프리랜서’ 문제에 대한 선례를 남기려는 의지가 컸다. 그렇게 공익소송은 시작됐다. 1년 반이 지난 뒤, 재판부는 패소 판결을 내렸고 이 PD는 세상을 등졌다. 이 변호사는 유족이 선임한 진상조사위원 3인 중 한 명으로 진상조사에 참여한다. 지난 2월 24일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만난 그는 “개인적인 명예회복과 권리구제뿐 아니라 청주방송 비정규직 실태를 파악, 개선방안을 도출하고 관계기관에 법제도적 개선까지 요구하고자 한다”며 “방송현장의 비정규직 문제해결에 한 발짝이라도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학 PD와 상담하면서 무엇이 가장 문제라고 봤나. “14년 이상을 한 사업장에만 전속돼 근무했다. 노동자성 징표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 하나가 의미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 알아본 바로는 이 PD 업무량이 정규직 피디들이 수행하는 것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통상적인 연출이나 조연출 본연의 업무 이외에 계약 관련 행정업무까지 수행했다. 회사에 종속된 노동자가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반적인 노동자와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지역 민영방송 실태가 대체로 이렇다. PD뿐만 아니라 작가 등 다른 직군 프리랜서들의 종속성도 서울보다는 더 강하다.” -재판 과정은 어땠나. 사측은 이 PD와는 정반대의 주장을 내놨다고 했는데. “사측은 고인이 알아서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했지 회사에서 관여한 바 없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노동자성 징표의 핵심적인 지점인데 정반대의 이야기를 했다. 재판할 때마다 이 PD가 방청을 했다. 자신이 14년 넘게 온몸으로 증언하는 부분인데 180도 다른 이야기가 반복되니 재판 끝날 때마다 엄청 힘들어했다. 그때마다 나는 ‘소송은 자기가 이기려고 별 이야기를 다 한다. 증거서류가 많으니까 인정받을 수 있다’고 다독이곤 했다.” CJB 청주방송·언론노조·유족·시민단체 등 4자 대표가 2월 27일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에 합의하며 서명한 합의서. -이 PD가 정규직처럼 일했다고 진술서를 쓴 동료들이 사측의 압박을 받았다고도 밝혔다. “소송 중반에 오래 같이 근무한 동료들의 구체적인 근무실태 진술이 매우 중요하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 PD에게 어렵더라도 한번 상의를 해보라고 했고, 3명이 나서서 써주겠다고 했다. 어떤 업무를 어떻게 진행했고, 회사가 어떻게 관여하고 지휘·감독했는지 매우 상세하게 써줬다. 진술서를 내자마자 3명에 대해 회사가 집중 마크를 했다. 그중 한 명은 번복진술서를 썼다. 판사는 진술서를 작성한 이들이 법정에 증인으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반대로 회사 간부들이 쓴 진술서는 증인이 안 나와도 인정됐다. 동료들에 대한 압박은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의 일이다. 모두 법 위반이다. 형사책임도 물을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지 않으면 형사고발까지 고려하고 있다.” -법원 판결을 두고 “방송현장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한 판결”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유가 뭔가. “판결문을 보면 CP(책임피디)·PD· AD(조연출) 등 방송현장 종사자들을 나열한다. CP와 PD는 정규직, AD는 프리랜서가 일반적이라는 전제에서 논의를 전개한다. 조연출은 통상 프리랜서인데, 고인이 조연출 업무를 주로 했다는 전제하에서 판단을 이어간다. 조연출이 설령 프리랜서라 불려도 진짜 프리랜서인지 실질 노동자인지 가리자는 소송이었는데 그렇게 흘러갔다. 더구나 조연출이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틀렸다. 주된 업무는 연출이었다. ‘조연출이었는데, 조연출은 통상 프리랜서다, 그래서 프리랜서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몇 가지만 종합해봐도 프리랜서’라는 건 틀린 내용이다. 조연출은 업무 범위도 특정되지 않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건데 방송현장을 너무 몰랐다.” -이 PD와 함께 소송을 진행한 당사자로서 마음이 많이 무거울 것 같다. “이 PD와 재판 끝나고 술 한잔하면서 친해졌다. 동료들도 모두 높이 평가하고, 나 역시 사람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득문득 밥을 먹다가, 날씨 좋은 날 햇볕을 쬐다가, 운전하고 가다가 문득문득 PD가 선하게 떠오른다. 판결문을 받은 날 서로 의기투합해 바로 항소장을 냈고, 며칠 뒤 이 PD님이 떠나셨다. 한편으로는 소송에 좀 더 힘을 쏟았으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다. 하지만 이 사건은 구조적 문제가 바탕에 깔려 있고 책임져야 할 당사자들이 따로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이미 소송 승패소 문제를 넘어섰다. 회사가 자기 보호할 상황이 아니다. 크게 보고 털 것은 털고 가는 게 장기적으로도 훨씬 좋다. 회사가 결단을 내리고 대승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도 인생이나 변호사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 -방송계에서 문제가 터져나올 때마다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그때뿐이었다. 확실한 변화를 위해선 뭐가 필요하다고 보나. “말만 프리랜서지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분들이 너무 많다. 기본적으로 주무부처·관계기관에서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치밀하게 관리·감독을 해줘야 한다. 몇 차례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진전되는 게 없고 잘 바뀌지 않더라. 강도 높은 대책이 필요하고 법제도도 개선돼야 한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진전을 만들어야 한다. 반드시 만들 것이다.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간다면 고인의 유지를 조금이나마 받들 수 있지 않을까.”
표지 이야기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을지로위원회는 거간꾼이다”(2019. 10. 14 16:30)
2019. 10. 14 16:30 경제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해고자 200여명이 공사 본사 점거농성을 한 지 한 달이 넘었다. 노동자들은 ‘요금수납원에 대한 용역계약이 불법파견에 해당하며, 수납원들을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을 따르라고 도로공사에 요구했다. 그러나 공사는 해고자 1500명 중 승소한 노동자 등 499명만 직접고용을 하겠다고 맞섰다. 톨게이트 투쟁으로 문재인 정부 지지층인 노동계의 이탈이 이어졌다. 노동존중을 표방하는 정부가 노동탄압을 한다는 이유에서다. 조국 사태로 진보진영이 분열되는 상황에서 지지세력의 추가 이탈은 정부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사진/이상훈기자 교착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중재에 나섰다. 속전속결. 을지로위원회가 중재에 나선 지 3주 만에 ‘1심 판결이라도 법원에서 직접고용하라고 확정된 노동자는 직접고용하고 소송이 진행 중인 노동자는 기간제로 고용, 향후 판결을 지켜보자’는 내용의 중재안을 내놓았다. 이어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을 제외한 도로공사 노사는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의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다. ‘반쪽 합의서’에 서명하지 않은 노동자들은 투쟁을 이어간다. 이 같은 을지로위원회의 중재를 두고 노동계 내부에서는 강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노동자 ‘갈라치기’로 투쟁 불씨를 꺼뜨렸다는 것이다. 노동계가 을을 지킨다는 을지로위원회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0월 8일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을 만나 그의 생각을 들었다. -을지로위원회 중재안을 어떻게 보나. “공식적으로 중재안의 모든 내용이 공개된 건 아니지만 예상 가능하다.(인터뷰는 을지로위원회의 중재·합의안이 언론에 공개되기 전에 진행됐다) 1심 판결을 받은 사람은 직접고용하고, 소송 중인 사람은 일단 기간제로 가라는 내용일 것이다. 단일대오를 해산시키고 투쟁 노동자들을 갈라치는 게 그들의 방식이니까. 도로공사의 안보다는 나은 듯 보이지만 끝내는 분열을 부르는 안이다. 을지로위원회에는 노조의 습성을 잘 아는 이들이 많다. 그들이 중재안을 던지면 내부적으로 논쟁이 벌어진다. 그 다음은? 투쟁 열기는 가라앉고 정리된다.” -정부가 직접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 노동계의 일관된 요구였는데. “도로공사는 공공기관이고 이강래 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한 민주당 인사다. 문제가 생기면 청와대나 고용노동부가 직접 풀면 된다. 조성재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도 이 사안을 잘 아는 전문가다. 그런데도 정부는 을지로위원회라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아시다시피 을지로위원회는 정식 교섭대상이 아니다. 이들은 중재안을 던질 뿐 이후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민주당이 야당 시절에는 을지로위원회가 ‘을’을 지킨다며 개입해서 중재한다는 명분이 있지만 지금은 여당 아닌가. 스스로 갑이 된 상황에서 같은 여당 사람을 상대로 ‘중재’를 한다는 게 난센스다.” -페이스북에 을지로위원회를 겨냥해 자본과 노동 사이를 오가는 ‘거간꾼’이라고 했다. “정치인의 현장활동 자체를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톨게이트 노동자 문제에서 을지로위원회의 개입은 시기와 의도 모두 적절하지 않다. 지금 노동자들은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지금 한 발 양보하라는 건 노동자에게 벼랑 끝으로 떨어지라는 얘기다. 을지로위원회의 중재안은 대법원 판결을 파훼한다. 대법원은 같은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에게 같은 권리를 보장하라고 했는데, 이걸 1심 판결 대상인지 여부로 갈라치고 있다. 정치는 법이 미처 돌보지 못한 사각지대를 보듬어줘야 하는데 이들의 정치는 현행법만큼도 못하다.” -교착상태에서 을지로위원회마저 배척하면 통로가 막히는 것 아닌가. “먼저 을지로위원회가 왜 왔는지 생각해보라. 당초 도로공사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면서 또 시민사회 지지여론이 확산됐다. 가뜩이나 조국 정국으로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지 않나. 여기에 톨게이트 문제를 그냥 뒀다가는 나중에 감당 안 될 거 같으니 급한대로 을지로위원회를 보낸 거다. 노동자를 위해서가 아니다. 총선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노동계의 한 표가 아쉬워서 움직인 것이다. 그나마 정부가 직접 움직이면 정치 선배인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의 체면이 구겨지니까 모양새 좋게 만들기 위해 을지로위원회가 중재카드를 들고 온 것이다. 을지로위원회는 정부가 쥐고 있는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을지로위원회가 떠나면 다른 통로가 열린다.” -노동계 안에서도 을지로위원회를 보는 시각이 다양하다. “사실이다. 개별 사안에 따라서는 을지로위원회가 성과를 낸 것도 분명 있다. 때문에 노동계 안에도 친을지로위원회 노조도 존재한다. 을지로위원회에 속한 의원들 중에서는 노동운동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민주당이라는 당론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적당한 중재안으로 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몰라도 기울어진 근본적인 구조와 시스템을 바꾸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을지로위원회 소속 중진 의원들은 현재 비정규직 시스템을 만드는 데 일조한 이들이다. 참여정부 시절 기간제법, 파견법 개악이 이뤄졌을 때 환경노동위 활동을 했던 의원들이 지금 을지로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했을 때 악법을 통과시켜 지금의 ‘을’들을 양산한 장본인이다. 당시 의원들이 개인적으로는 해당 법안들을 통과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노동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니 법이 통과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았을 테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어떻게 행동했나. 정부의 정책방향과 당론에 따라 개악법을 통과시켰다. 그런 세력이 이제는 중재를 한다며 자본과 노동 사이를 오가면서 노동계를 분열시키고 타협을 종용하고 있다. 이들은 중재에 앞서 자기 반성부터 해야 한다.” -검찰개혁이 화두다. 노동계는 어떻게 보고 있나. “온나라가 검찰개혁을 얘기하는데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도로공사 불법파견이 드러났고 판결이 났으면 검찰이 수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수사를 안하면 조국 장관이 강제수사를 지시해서라도 검찰을 움직이도록 하는 게 맞다. 그게 노동존중 사회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이다. 산업 현장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지 않는 사용자들로 인해 노동자들이 죽어나간다.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위반은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적발돼도 검찰은 기소하지 않는다. 이런 폐단을 막을 수 있는 부당노동행위 특별수사대, 산업안전 기업범죄 수사대가 필요하다. 이런 대안들을 개혁안에 올려놓고 고민했다면 검찰개혁의 진정성을 인정하겠다. 하지만 그들의 개혁에는 노동이 없다. 노동환경에 대한 개악만 예고하고 있다.”
[표지 이야기]방송계 - 밤샘 촬영 관행, 비정규직에 전가 우려(2018. 05. 28 14:04)
2018. 05. 28 14:04 사회
ㆍ제작 현장 프리랜서들 ‘근로자성’ 인정 못받으면 부담 고스란히 떠안아야 130~150시간. 한국 드라마 제작 현장의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이다. 밤샘 촬영, 하루 20시간에 이르는 노동은 드라마 제작진에게 ‘보편적’ 일상이라 할 만큼 근무환경이 열악하다. 오죽하면 ‘생방송 드라마’라는 말이 나왔을까. 한류의 첨병이자 가장 대중적이고 화려한 문화 장르인 드라마의 외피 뒤에 처참한 현실이 숨겨진 셈이다. 이 같은 살인적 노동강도는 제작인력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드는 사고로 수차례 이어졌다. 고 이한빛 pd를 추모하는 플래시몹. / 이준헌 기자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은 드라마 제작과 같은 방송 현장에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부터 사업장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적용된다고 하지만 당장 올 7월부터는 68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없다. 현재의 노동시간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댜. 방송사의 메인 상품인 미니시리즈 드라마는 회당 67분 분량으로 주당 2회 방송된다. 68시간 노동시간에 맞추려면 1회를 제작하기도 빠듯한 수준이다. 이 때문에 방송사와 제작사 등 관계자들은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교대근무가 가능하도록 촬영팀을 늘리고 제작인력 확대, 사전제작 비율 제고 등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원론적인 수준의 이야기다. 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일반업종과 비교할 때 노동시간의 격차가 심한 데다, 장기간 굳어진 관행이라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범법을 할지, 방송사고를 낼지 사이에서 고민해야 할 것 같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소속 직원들의 노동시간도 문제지만 실상 제작 현장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계약직 프리랜서들의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방송사나 외주제작사, 협력업체 등 드라마 제작과정의 위계구조에서 해당 업체의 정규직들은 근로기준법의 적용대상이 되지만 프리랜서인 대부분의 인력들은 그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고용노동부는 드라마 제작 현장의 노동실태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들의 ‘근로자성’ 여부에 대해 판단할 계획이다.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아무리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더라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방송 제작 현장의 비인간적인 환경을 지적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고 이한빛 PD의 유지를 이어 방송 제작환경 개선을 위해 설립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한솔 이사는 “방송 제작 현장에서 초장시간 노동을 떠받쳐 온 수많은 비정규직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부담은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드라마 촬영 중인 스태프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방송계에서는 제작 관행의 변화와 함께 드라마의 분량과 횟수를 줄이는 근본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연간 방송되는 드라마는 130여편으로 해외에 비해 월등히 많다. 주 1회씩 방송되는 외국과 달리 국내에선 주 2회(미니시리즈 기준)가 정착돼 있고 방송시간도 더 길다. 늘어나는 방송 분량은 더 높은 제작비, 더 많은 노동시간과 직결된다. 올 초 지상파 3사 드라마 책임자들은 회당 드라마 방송시간을 60분으로 맞추는 등 장기적으로 줄여 나가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따른 드라마 산업 위축 우려도 나오고 있다. SBS 김영섭 드라마본부장은 “드라마 제작환경의 근본적인 변화와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일괄적인 규제 대신 다양한 형태의 탄력근무제도 도입, 광고정책 개선 등을 통해 드라마 산업이 활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보완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표지 이야기
검찰이 비정규직 양산 앞장서나(2018. 01. 02 18:46)
2018. 01. 02 18:46 사회
ㆍ올해 기간제 사무원 450명 뽑기로… 기존 무기계약직 처우개선도 미진 은 1231호(2017년 6월 20일 발간)에서 “검찰청 무기계약직 ‘뜻밖이네요’” 기사를 통해 대검찰청 및 산하 지방검찰청 등에 근무 중인 ‘근로자’ 신분의 무기계약직 및 기간제근로자들의 업무 과중과 처우 문제에 대해 보도했다. 당시 대검은 “사무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지금 대검에서 약속했던대로 사무원들에 대한 처우개선이 이뤄졌을까. 확인 결과 처우에 있어서는 소폭 개선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사무원들 업무 과다의 원인이었던 감사실 ‘겸방’이나 민원실 근무 등은 여전히 개선이 안 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더 큰 문제는 “비정규직을 줄이겠다”는 문재인 정부 철학과는 달리 대검에서 올해에만 450명의 기간제 사무원을 뽑기로 했다는 점이다. 공무원들이 검찰 내 근무강도가 높은 수사검사실 근무를 기피하면서 생기는 업무공백 문제를 기간제 사무원들로 메우려 한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오른쪽 두 번째)이 2017년 7월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기본급·수당 ‘찔끔’ 인상 검찰에는 공무원 신분인 검사, 수사관, 관리운영직 이외에도 이들의 업무를 분담하거나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근로자 신분의 무기계약직과 기간제직이 근무 중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들을 통칭 ‘사무원’으로 부른다. 1년 단위로 단기 고용되는 기간제 사무원 중 2년의 근무기한을 넘기면 내부 평가와 심의를 거쳐 무기계약직 사무원으로 전환된다. 대검은 무기계약직의 경우 기본적으로 ‘정규직 근로자’라서 처우 등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무기계약직 업무의 상당 부분이 공무원인 관리운영직과 유사한 데 비해 급여는 큰 차이를 보이는 게 문제였다. 예컨대 관리운영직은 직급보조비나 급식비, 연가보상비, 성과상여금, 명절수당 등 각종 수당을 받지만 무기계약직은 명절수당을 제외하곤 별다른 상여가 없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대원칙과도 맞지 않는다. 이 이 같은 문제를 보도한 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확인 결과 2018년부터 무기계약직에 대해 월 4만원의 가족수당이 신설됐고, 기본급도 전년 대비 3.5% 인상돼 공무원 임금인상률(2.6%)보다 높았다. 성과상여금이 나온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아직 공식화된 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가족수당 신설 등이 이뤄지긴 했지만 ‘유의미한’ 처우개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무기계약직 사무원들의 입장이다. 가족수당만 해도 미혼이면서 만 60세 미만 부모와 같은 주민등록거주지에 살아야 하는 등 조건이 달려 있어 모든 무기계약직이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임금인상률이 공무원보다 높은 건 맞지만 기본급 자체가 높지 않고, 2017년 공무원 임금인상률이 3.5%인 점을 감안하면 이 역시 큰 폭의 처우개선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검사실 두 곳의 업무를 한 사무원이 보조하는 ‘겸방’ 문제나 민원실 근무 문제의 경우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이는 대검이 내부 공문을 통해 근절을 지시한 사항이기도 하다. 검찰이 내부적으로 아직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않은 가운데 2018년 1월 말에 있을 인사에서 이 문제가 개선될지 주목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공공부문 무기계약직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2017년 7월 20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에서도 무기계약직 처우개선 방안으로 ‘명칭 부여’, ‘정원관리’, ‘인사제도 마련’ 등이 들어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대검이 내부적으로 밝힌 2018년도 무기계약직 처우개선 방안에는 이 같은 조치들이 들어 있지 않다. 검찰 내 무기계약직 문제는 비단 검찰 조직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인상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중앙·지방행정기관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으로 분류되지만 실상은 보조적 인력 내지는 임시적 인력으로 규정돼 있다”며 “최일선에서 공무를 수행하지만 조직 내에서 권한과 역할을 제대로 부여받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정규직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2018년에 450명 규모의 기간제 사무보조원을 뽑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정부 방침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2017년 9급 검찰공무원 채용규모(360여명)보다도 많은 숫자다. 이 확보한 내부문건을 보면 대검은 2018년 검사실 사무보조원 450명 중 225명을 2월 1일자로 조기채용하고, 나머지 225명을 9월 1일자로 채용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10월에는 통합민원센터 상담원 60명을 채용한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검찰이 2018년에만 ‘신규로’ 450명의 기간제근로자를 채용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 기준 대검찰청 기간제근로자는 102명이다. 기간제근로자들이 통상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맺고 1년 추가 연장이 가능한 점을 감안하면 2018년 채용규모는 기존 기간제근로자들의 계약 만료에 따른 결원 보충 및 신규 채용분이 혼재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기직 대우보다 더 열악한 기간제 검찰청 내 기간제근로자의 경우 일당 5만6000원의 급여 수준으로 무기계약직보다 처우가 더 열악하다. 반면 검사실에서 기간제근로자들이 하는 업무는 본래 ‘실무관’으로 불리는 관리운영직 공무원들의 업무와 큰 차이가 없다. 공무원 직제개편으로 관리운영직이 없어지면서 생기는 검사실의 업무공백을 이들 기간제 사무보조원들이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도 문제를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관리운영직이 감소하면서 생기는 업무공백 문제를 인사를 통해 자체적으로 해결해보려는 시도도 해봤지만 내부 반발 등에 부딪혀 좌절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확보한 대검 공문을 보면 대검은 2017년 5월 내부적으로 “검찰수사관 수사력 강화를 위해 7급(검찰·마약수사) 승진 시 8·9급 수사경력 반영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적용 시기는 2018년 하반기 인사부터였다. 표면적인 이유는 ‘수사력 강화’였지만 8·9급 수사관들이 수사검사실을 사실상 의무적으로 거치도록 하면서 관리운영직 감소에 따른 업무공백 문제를 풀어보려 했다는 게 검찰 내부의 해석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시행도 못해보고 좌초됐다. 대검 사무국장의 고·지검 국·과장 간담회, 전국 지방청 인사담당자 및 수사관 인사 워크숍 등을 거치면서 해당 수사관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수사검사실 업무강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수사관들 중 일부는 수사검사실 근무를 기피하는 게 사실”이라며 “이를 강제적으로 하려 했다면 당연히 반발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2018년에 대규모 기간제 사무보조원 채용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검찰청의 한 무기계약직 사무원은 “공무원 인사를 통해 업무공백 문제가 해결이 안되니 기간제 채용에 나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처우가 더 열악한 기간제 사무원만 늘어나는 데다, 기존 무기계약직들의 처우개선 등에 쓸 여력도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의 엄진령 노무사(부회장)는 “공공기관 기간제근로자의 경우 노조 결성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워 처우개선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대검이 450명의 기간제근로자 채용에 나서는 것은 ‘비정규직을 줄이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와도 상반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은 검찰 내 무기계약직 처우개선 문제와 대규모 기간제근로자 채용에 대한 검찰의 입장을 듣기 위해 대검에 서면을 통해 질의했지만 대검은 “답변자료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며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한국지엠, 비정규직 또 집단해고(2018. 01. 02 18:29)
2018. 01. 02 18:29 사회
ㆍ2017년 연말까지 창원공장 86명, 부평공장 69명 해고 통고… 해마다 되풀이 해가 바뀌는 연말연시는 해고에 대비해야 하는 시기다. 한국지엠의 생산공장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어김없이 집단해고 바람은 밀어닥쳤다. 원청업체인 한국지엠이 사내 하청업체와 계약을 갱신하는 시기는 대부분 연말을 기준으로 잡혀 있다. 원청이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의 근로계약도 바로 종료된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한국지엠의 겨울 해고사태로, 경영위기 극복을 내걸고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부터 해고 위협에 몰아넣는 한국 사회의 고용 불안정 문제가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가 내걸고 있는 노동정책 기조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여기선 적용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국지엠에서 두드러진 모습은 하청 소속 비정규직이 맡던 공정을 정규직에게 넘기는 ‘인소싱(insourcing)’이다. 2017년 말까지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은 비정규직은 86명, 부평공장에서는 69명에 달했다. 2016년에 이어 2017년에도 한국지엠의 하청 계약 해지가 집중된 창원공장에는 8개 하청업체에서 약 700명의 비정규직이 생산공정 일부를 담당한다. 이 가운데 3개 업체 비정규직 38명은 2017년 말을 기준으로 해고하겠다는 해고 예고통보를 받았고, 48명은 공정을 바꾼다는 이유로 대기발령 조치를 내려 공장 출입금지를 당한 실정이다. 2017년 11월 13일 한국지엠 창원공장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비정규직 노조와 원청 관리직들이 대치하고 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 창원비정규직지회 제공 불법파견 판정 불구 정규직 전환 외면 문제는 한국지엠을 비롯한 완성차 생산업계의 자사 공장 내 생산공정 도급은 파견법을 위반한 불법파견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기아차에서의 판결과 유사하게 한국지엠 비정규직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대법원은 2013년 불법파견에 대한 형사책임으로 벌금 700만원을 확정했고, 2016년 근로자지위확인소 대표소송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씨가 2010년 대법원에서 정규직 판정을 받은 뒤 제조업 사내하청은 정규직이라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지엠은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는 대신 경영상의 위기를 들며 연말연시 집중해고를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지엠이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경영상의 문제만 보면 생산인력을 감축하려는 시도 자체를 인정할 여지는 있다. 한국지엠은 2016년 영업손실 5311억원을 포함해 3년 동안 약 2조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17년에도 5000억원 안팎의 영업손실을 입을 전망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년 연속 집단해고 사태가 벌어진 창원공장만 놓고 보면 상황은 다르다. 한국지엠 측에서도 경차 생산라인 중심인 창원공장에서는 2017년 초반 품질문제로 미국 수출이 차질을 빚어 수출실적이 당초 예상보다 줄어들기는 했지만, 현재는 국내 경차 수요와 미국 수출 수요 모두가 회복됐기 때문에 생산물량 확보는 충분하다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창원공장에서는 공정을 개선하기 위해 바꾸는 과정에서 회사가 더 나은 경영을 위해 (하청업체) 도급계약 해지를 선택한 것”이라며 “스파크 등 창원공장에서 생산하는 경차의 수요는 회복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비정규직 노조는 한국지엠에서 반복되는 해고사태의 배경에는 경영상의 문제보다는 글로벌 기업인 지엠이 한국지엠의 이윤을 가져가는 방식에서 생기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2002년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글로벌 지엠이 세금감면과 토지 무상임대 등의 특혜성 조치를 받았지만 그 뒤로도 오히려 한국지엠으로부터 4년간 5.3%의 금리를 적용해 4400억원에 달하는 금융비용을 가져감에 따라 한국지엠의 재무구조가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노조 관계자는 “글로벌 지엠에서 전 세계적인 물량 조정으로 한국지엠을 하청기지화하는 대신, 지속가능한 발전 전망은 제시하지 않고 오히려 물량을 줄이고 있어 가동률은 점점 더 떨어지고 철수설까지 나돌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2013년 군산공장에서 1000명을 집단해고하는 등 비정규직을 우선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해고에 합의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는 2016년에도 사내하청업체 중 4개 업체에 계약 해지를 통보해 이들 업체 소속 노동자 369명이 그해 말부로 해고 예보통지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한국지엠의 집단해고를 비판하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비정규직노조 조합원이 아닌 264명 중 대다수는 새 계약을 맺은 4개 하청업체에 신규채용됐고, 고용승계를 요구한 노조 조합원 105명의 요구에 사측이 합의하면서 대규모 해고사태는 막았다. 비정규직노조인 금속노조 창원비정규직지회는 당시에도 계약 해지된 하청업체가 비정규직노조 조합원 150여명 중 3분의 2가 모인 곳이고, 이번 사태에서도 비정규직 조합원이 밀집되어 있는 생산라인과 하청업체를 중심으로 계약 해지와 대기발령에 들어갔다는 점에 의혹을 제기한다. 생산 및 경영상의 이유보다는 노조 무력화를 위해 해고 위협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사측이 노조를 무력화하고 와해하려는 행위는 부당노동행위일 수 있기 때문에 고용노동부에서도 한국지엠 창원공장의 부당해고 논란이 일자 12월 11일부터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해당 업체와 도급계약을 해지한 것은 법으로 보장된 계약의 권리를 회사가 정당하게 행사한 것일 뿐이므로 부당노동행위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근로감독에도 성실히 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근로감독으로 당국이 개입함에 따라 일단은 한국지엠 내부에서 추가적인 해고 통보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생산물량이 확보되고 가동률이 비교적 높은 창원공장에 비해 오히려 사정이 나쁜 군산공장과 부평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여차하면 또다시 해고 바람이 밀어닥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다. 특히 하청업체에 아웃소싱했던 생산라인을 정규직이 담당하게 돌리는 ‘인소싱’ 과정에서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절차에 정규직 노조가 합의했다는 점도 비정규직의 불안을 더 깊게 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길어져 생산물량이 줄어들면 사정이 나쁜 공장을 중심으로 정규직에게까지 고용 불안정 문제가 미칠 수 있다는 걱정이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지엠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조가 모두 가입해 있는 상급연맹인 금속노조는 이미 대의원대회에서 정규직 노조(한국지엠지부)가 사측의 인소싱 결정에 합의해줘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조의 입장과는 완전히 상반된 행보를 보인 셈이 됐다. 금속노조의 한 관계자는 “비정규직 노조는 과거 1000여명에 달하는 해고사태로 힘이 부족한 상황에서, 역시 내부 상황이 복잡한 정규직 노조의 도움까지 기대할 수 없게 되는 위기를 맞고 있다”며 “한국지엠은 노동자와 가족들만 해도 30만명을 헤아리는 거대 제조기업이어서 사회적 파급력도 적잖은 만큼 한쪽에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노노갈등 대신 총고용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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