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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깝고도 먼 아세안](44) 교통사고와의 전쟁…베트남, ‘벌금 폭탄’(2025. 01. 10 15:30)
- 2025. 01. 10 15:30 국제
- 정지선을 넘으면 벌금을 물기 때문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신호를 기다리는 베트남 호찌민시 차들 / 유영국 제공 2025년 1월 1일, 베트남 정부는 교통법규 위반에 대한 벌금을 대폭 강화했다. 벌금은 기존 벌금액의 2~5배로 늘었고, 일부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최대 50배까지 증폭됐다. 오토바이와 자동차 교통범칙금이 분리됐는데 오토바이 신호 위반을 하면 기존 100만동(약 5만5000원)이던 벌금이 6배나 뛰어오른 600만동(약 34만원)이 됐다. 자동차 운전자가 신호위반을 하면 2000만동(약 115만원)이 부과된다. 베트남 정부는 교통법규 질서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보이며 교통법규 위반 신고포상제도도 함께 실시했다. 일명 ‘교통 파파라치 제도’가 시행되는 것인데 교통법규 위반 정보를 제공한 개인 또는 단체에 과태료의 10%, 1건당 최대 500만동(약 27만원)까지 포상금을 지급한다. 베트남 일반 노동자 급여가 약 30만원이니 신호위반 한 번 하면 한 달 급여가 없어지는 셈이다. 과도한 벌금이라는 아우성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항간에는 ‘세수가 부족한 베트남 정부가 벌금 징수를 통해 국가 재원을 확보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의 이러한 강경책은 교통사고율 감소와 교통법규 준수를 통한 사회질서 개선에 대한 강력한 의지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도로교통사고 사망자 급증 베트남은 2023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한 ‘인구 10만명당 도로교통사고 사망률이 대폭 개선된 모범 사례 국가’였다. WHO의 ‘2023년 세계 도로 교통안전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베트남의 도로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인구 10만명당 25.4명이다. 그러던 것이 2021년 17.7명으로 10년 만에 43.5%나 줄었다. WHO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교통사고 사망자의 21%가 스쿠터, 오토바이 사고에서 나오고 특히 동남아, 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 사망 사고가 집중되고 있다. WHO는 베트남의 사망자 수 감소를 여러 나라에 공유하며 우수 사례로 극찬했다. 오는 2월 18일 모로코에서 열릴 제4차 세계 도로 안전장관 회의(Global Ministerial Conference on Road Safety)에서 베트남은 WHO와 함께 오토바이 운전자를 위한 교통안전 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렇게 도로교통 안전 우수국가를 향해가고 있던 베트남의 도로교통사고 사망률은 지난해 10년 전으로 되돌려졌다. 2022년 도로교통사고 1만1448건, 사망자 6364명에서 2024년 도로교통사고 2만1532건, 사망자 9954명으로 악화했다. 2025년 1월 1일부터 베트남 정부가 벌금을 대폭 인상한 것은 바로 최근 급격하게 증가한 교통사고 때문이다. 베트남 정부가 2016년, 2020년에 교통범칙금을 대폭 인상한 이후 교통사고가 급격히 줄었다. 그런데도 최근 들어 급증하는 도로교통사고 사망률에 베트남 정부는 한 달 급여 수준의 벌금 부과라는 극약 처방을 꺼내 든 것이다. 강력한 벌금 정책이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이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교통 인프라 확충이 함께 진행돼야만 한다. 여전히 베트남에는 제대로 기능을 못 하는 고장 난 신호등이 많기 때문이다. 2025년 1월 6일 국회에서 시민들의 불만 및 청원을 검토한 쩐 꽝 프엉 국회부의장은 “시민들에게 부당한 벌금이 부과되지 않도록 교통 신호 시스템을 점검하고 신뢰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트남 도시교통 전문가인 응우옌 쑤언 투이 박사는 2023년 4월 호찌민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베트남의 교통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고, 신호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사고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대도시에는 지하철, 도로, 보도 등의 공공영역 공사로 인해 교통 혼잡이 증가해 교통사고 발생률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벌금을 강화하더라도 교통 인프라 개선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민들이 여전히 불편한 도로 환경과 혼잡한 교통 상황에서 위반을 저지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쩐 탄 만 국회의장 역시 “강력한 벌금 규정이 초기에 구현되기 어려울 수 있어서 시민들에게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 베트남 도로교통환경부와 교통통신대학이 공동으로 발간한 논문 ‘베트남 교통사고 분석’에 따르면 오토바이 운전자와 보행자의 잘못된 습관이 교통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베트남 국가교통안전위원회 역시 최근 ‘자동차 급증’과 ‘운전자 보행자의 교통안전교육 부족’을 교통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2023년 7월 꾸앗 비엣 훙 국가교통안전위원회 부위원장은 베트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잘못된 차선 진입 때문에 차량 흐름이 막히고 이동 속도가 느려지면서 사고 발생이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강력한 벌금으로 시민 경각심을 심어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울러 교통안전 의식 전환을 위한 교육 역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트남 정부가 교통사고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한국 사례를 공부해볼 필요가 있다. 1980~1990년대 한국 역시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나라로 악명이 자자했다. 음주운전, 신호위반, 과속이 만연해 교통사고가 빈번했다. 이에 한국 정부 역시 교통법을 개정하고 단속을 강화하고 벌금을 높였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교통문화 개선을 급속도로 변화시킨 것은 처벌이 아닌 국민 인식 변화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행사를 준비하면서 교통질서 준수가 국격을 드높이고 국가 이미지를 개선한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교통법규를 준수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교통질서를 지키는 것이 나라를 위한 일이라 여겼다. 애국심으로 대한민국 교통질서는 빠르게 개선돼갔다. 여기에 더해 대한민국 운전자들이 정지선을 적극적으로 지키기 시작한 계기는 1996년 MBC 예능프로그램에서 시작된 ‘이경규의 양심냉장고’ 덕분이었다. 차량정지선을 지키면 냉장고를 선물하는 이 프로그램은 전 국민이 정지선 준수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베트남 사람들의 애국심은 세계에서 두 번째라면 서러워할 정도다. 베트남 정부는 2022년까지 베트남이 WHO에서 평가한 도로교통안전 우수국이었다가 2023~2024년 교통사고가 급증하는 바람에 10년간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는 것을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나의 교통위반이 베트남 국격을 떨어뜨린다는 인식이 형성되면 자발적으로 교통법규를 준수할 것이다.
- 가깝고도 먼 아세안
- ‘문제’ 있지만 ‘불공정’ 아니다?…축협·홍명보의 원영적 사고(2024. 09. 30 06:00)
- 2024. 09. 30 06:00 스포츠
- 국회 문체위 현안질의 출석…홍 감독 선임 문제 공회전 거듭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앞)과 홍명보 남자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9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했다./연합뉴스 “불공정하다거나 특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력강화위원장을 교체하면서 임명장이라든지 행정적 절차가 없었다는 걸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홍명보 한국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9월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질의에 출석해 한 말들이다. 해당 발언들을 연결하면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는 있지만 ‘불공정’이나 ‘특혜’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엄연히 존재하는 절차적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지에 관해서도 설명이 필요하다. 이날 국회에는 홍 감독뿐만 아니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KFA) 회장, 이임생 KFA 기술총괄이사, 정해성 전 KFA 전력강화위원장 등도 출석했다. 모두 홍 감독 선임 과정에 크든 작든 개입한 인물들이다. 홍 감독을 포함해 이들 중 이를 명확하게 설명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월드컵에서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홍 감독), ‘역사가 평가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정 회장), ‘좋은 잔디에서 경기를 보여줄 수 있게 도와달라’(이 기술총괄이사)는 식의 동문서답만 이어졌다. 국회에서 확인된 한국 축구 현실 이날 현안 질의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 25분까지 진행됐다. 점심시간을 포함해 장장 10시간 넘게 질의가 이어졌지만 홍 감독 선임을 둘러싼 문제는 공회전만 거듭했다. 절차상 문제를 지적하면 ‘문제없다고 생각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식이었다. 결론은 낼 수 없었지만 이 과정에서 두 가지가 분명해졌다. 하나는 ‘KFA 조직의 허술함’이다. 이날 현안질의에서 때아닌 ‘빵집’이 주목을 받았다. 이 기술총괄이사가 지난 7월 5일 밤 11시, 홍 감독을 그의 집 근처 빵집 같은 데서 만나 감독직을 제안했다고 밝히면서다. 그는 밤늦은 시각 홍 감독과 단둘이 빵집에서 만나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이끌 한국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을 확정했다는 설명을 거리낌 없이 했다. “홍명보 감독님이 알고 지내시는 지인이라 문을 열 수 있었다”라는 부연설명까지 덧붙였다. 언제, 어디서, 누가 한국 축구를 이끌 감독을 선임하든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KFA의 아마추어식 운영 행태를 잘 보여준다. 또 다른 하나는 축구인들의 ‘위기감 부재’다. 모든 스포츠의 기본은 ‘공정한 경쟁’이다. 승부조작이나 선수 선발 관련 비리가 종목의 흥망과 직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홍 감독은 지난 7월 13일 대표팀 감독으로 공식 부임했다. 이후 2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그를 둘러싼 ‘공정성’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그때마다 홍 감독은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겠다”고 답했다. 공정성에 대한 여론의 우려를 결과로 덮을 수 있다는 인식이다. 그런데 한국 인기 스포츠들의 부침을 보면, 국제대회 성적과는 관계가 없는 경우가 더 많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는 국제대회 부진을 딛고 올해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야구팬들을 떠나게 한 판정의 공정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 등을 발 빠르게 도입하며 몰입도를 키운 결과다. 한국 축구는 프로야구와 정확히 반대로 가는 중이다. 축구 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이 시작된 지 2개월이 넘었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 해임 시점부터 계산하면 장장 7개월째다. 이제 선수들의 경기력보다 홍 감독의 전술, 경기 종료 후 결과에 대한 변명이 더 관심을 받는 상황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누리꾼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조차 “감독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 지겹다”, “대표팀 경기 직관부터 보이콧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온다. 홍 감독이나 정 회장이 한국 축구를 위한다면 미래의 불확실한 결과나 말할 때가 아니라는 의미다. 공정성 문제와 봉사하는 마음 홍 감독이 인정한 절차 문제는 지난 6월 21일 개최된 ‘제10차 전력강화위원회’와 6월 30일 열린 ‘온라인 회의’ 사이에서 발생했다. 온라인 회의는 국회 현안질의 과정에서 ‘제11차 전력강화위원회’로 불렸지만 사실 해당 회의에 차수를 붙일 수 있는지부터 애매하다. 실제로 KFA가 지난 7월 22일 홈페이지에 밝힌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설명 드립니다’에서는 ‘제10차 전력강화위원회’ 이후 열린 회의에 따로 11차라는 차수를 붙이지 않았다. 두 시기 사이에는 정해성 위원장의 돌발 사퇴(6월 28일)가 있었다. 위원장 부재 상황에서 열린 온라인 회의에는 기존 10명의 위원 중 단 5명만이 참여했다. 이를 정상적 전력강회위원회로 인정하면 정당성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럼에도 해당 온라인 회의가 어떤 전력강화위원회 회의보다 중대한 결정을 했다는 점이다. KFA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 이 기술총괄이사에게 감독 추천과 관련한 절차 진행 ‘위임’이 참여 위원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이 기술총괄이사가 지난 7월 5일 ‘빵집 면담’으로 홍 감독을 최종 감독 후보로 결정했다. 결국 홍 감독 선임 과정이 정당했느냐는 해당 온라인 회의의 성격과 이날 결정한 사안이 절차를 지킨 것이냐를 따져봐야 한다. KFA는 의원들에게 해당 온라인 회의를 제11차 전력강화위원회 회의라고 알렸다. 뒤에 해당 회의가 정상적이었는지 쟁점이 되자 ‘실수’라고 말이 바뀌었다. 사유가 어떻든 온라인 회의는 정상적인 전력강회위원회 회의가 아니란 것이 확인된다. 축구 국가대표팀 운영규정 제12조의 1항에 따르면 “각급 대표팀 감독 및 코치진은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또는 기술발전위원회의 추천으로 이사회가 선임한다”고 나온다. 이에 따라 일개 온라인 회의는 홍 감독 추천을 결정할 수 없다. 이로 인해 권한 ‘위임’ 이야기가 나온다. 제10차 회의에서 최종 후보 3명이 추려졌고, 정해성 위원장에게 최종 후보를 추천할 전권이 ‘위임’됐다. 하지만 정 위원장이 돌연 사퇴한다. 온라인 회의는 해당 전권을 이 총괄이사에게 ‘재위임’했다. KFA의 감독 선임 과정 설명 자료는 당시 상황을 “참석 위원 전원은 이임생 기술총괄이사에게 감독 추천과 관련한 절차의 진행을 ‘위임’하는 데 동의”라고 적었다. 대한축구협회(KFA)가 지난 7월 22일 공개한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설명 드립니다’는 제목의 설명문. 해당 설명문에는 제11차 전력강회위원회라는 단어가 없다. 대신 온라인 회의에서 ‘이임생 기술총괄이사에게 위임’이라는 내용이 나온다./KFA 홈페이지 갈무리 이를 두고 강유정·양문석 의원 등은 “기술총괄이사가 전력강화위원회 업무를 겸임하는 것은 정관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KFA는 언론을 통해 “이 이사는 전력강화위원장 자리를 이어받는 게 아니라 감독 선임 최종 업무를 ‘대신’한 것”이라고 설명을 바꾼다. 지난 7월, KFA가 밝힌 자료에 명시된 ‘위임’이 ‘대신’으로 용어가 바뀐 것이다. 이 기술총괄이사가 위원장 업무를 위임했든 대신했든 그가 업무를 겸임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게다가 이 기술총괄이사는 정 위원장이 위임받은 권한을 그대로 이어받아 사용했다. 이는 권한의 ‘재위임’이다.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사후 정당화하려다 보니 사용하는 단어만 자꾸 바뀐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KFA는 바뀔 수 있을까 문화체육관광부는 오는 10월 2일 해당 문제 등을 포함해 KFA의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한 중간감사 결과를 발표한다. 감사 결과가 정 회장이나 홍 감독 사퇴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감독 거취 문제는 축구협회가 결정해야 할 사항”이라며 선을 그었다. 홍 감독은 사퇴할 의사가 없다. 그의 발언을 살펴보면 선임 과정의 문제와 자신의 감독직 수행은 별개라는 인식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실제로 그는 국회에 출석해 “나는 전력강화위원회에서 1순위로 올려놨기 때문에 감독직을 받았다. (온라인 회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즉 자신은 감독 후보 1순위라는 KFA 제안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응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KFA 관계자들의 독단과 프로축구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소속팀 울산 HD를 떠날 만큼 투철한 홍 감독의 일방적 ‘봉사정신’에 축구팬들은 지쳐간다.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울려 퍼지는 “홍명보 나가, 정몽규 나가”라는 구호는 이들의 심정을 보여준다. 분노의 단계적 과정은 그 끝을 ‘무관심’이라고 밝히고 있다. 관객 없는 스포츠는 존재할 수 없다. 정 회장, 홍 감독 등이 정말 한국 축구를 위한다면 “사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오늘을 생각한다] ○○적 사고, 파리에 두고 올 것들(2024. 08. 16 16:00)
- 2024. 08. 16 16:00 오피니언
-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2024 파리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의 호성적만큼이나 화제가 된 것은 젊은 선수들의 사고방식이다. “괜찮아. 다 나보다 못 쏴.”(김예지), “나도 부족하지만 남도 별거 아니야.”(반효진),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진짜 잘하는 줄 알고 잘할 수 있었다.”(오상욱) ‘○○적 사고’로 명명된 선수들의 어록은 세대를 아우르는 밈이 되어 한국인들을 열광시켰다. ‘○○적 사고’의 원형을 만든 건 아이돌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이다. 앞사람이 빵을 다 사가는 바람에 갓 나온 빵을 사게 됐다고 기뻐하는 장원영의 모습은 ‘원영적 사고’라는 초긍정의 밈을 만들어냈다. ‘○○적 사고’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세상을 자기한테 맞추는 능력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의지로서 상황을 낙관하는 믿음을 갖는 능력, 즉 자기기만 능력이다. ‘○○적 사고’의 주인공들의 마음 한구석에도 비관적 사고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마음의 국회에서는 언제나 다양한 사고가 경합을 펼친다. 위 선수들의 특별한 능력은 솟아오르는 비관적 사고를 제압하고 낙관을 지배적 사고로 채택하는 능력이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러한 정신의 드라마를 쓰는 능력이 무의식이 아는 것을 억누르는 자아의 노력으로부터 생겨난다고 설명했다. 무의식이 아는 것, 엄습해오는 불안을 억누르는 노력이다. “자기기만의 위력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둘러봐야 할 것은 모두가 ‘○○적 사고’로 무장하길 요구하는 세계 그 자체이다. 자기기만은 가혹한 현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쿠션이다. 모두가 자기기만의 방탄복을 둘러야 하는 세계는 좋은 세계일까.” 심리학자 스타레크와 키팅은 수영선수들을 상대로 한 실험에서 자기기만 능력과 성취의 상관관계를 증명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긍정적 사고로 자기를 속이는 경향이 높은 수영선수들이 큰 시합에서 일관되게 더 좋은 기록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연구에서 스포츠 이외의 분야에서도 자기기만 능력과 성취 사이에 연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자기기만의 위력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둘러봐야 할 것은 모두가 ‘○○적 사고’로 무장하길 요구하는 세계 그 자체이다. 자기기만은 가혹한 현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쿠션이다. 모두가 자기기만의 방탄복을 둘러야 하는 세계는 좋은 세계일까. 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세계와 아이돌그룹 멤버 장원영의 세계의 공통점은 개인의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 가혹한 경쟁의 무대라는 점이다. 이런 처지에 놓인 개인이 본인의 상황을 비관한다면 무한한 노력이 불가능하다. 어떤 식으로든 상황을 낙관할 때 의심 없는 무제한의 노력이 가능하다.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은 본능적으로 극한의 자기기만이라는 외피를 두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최고의 선수들이 펼쳐낸 정신의 드라마는 감동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로 보게 되는 드라마는 사후에 인정받은 승자의 정신세계다. 이러한 생존 편향은 승자의 드라마를 실재보다 과장되게 묘사하며 패자의 노력을 덧없는 것으로 만든다. 2등 선수나 예선탈락 선수의 의지가 1등 선수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근거는 오직 1등 선수의 정신 속에만 있다. ‘○○적 사고’에 대한 열광은 좀처럼 식지 않는 한국인의 자기계발 열풍과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 오늘을 생각한다
- ‘사도광산’ 알리려 세계유산 동의?…얼빠진 외교부의 ‘원영적 사고’(2024. 08. 12 06:00)
- 2024. 08. 12 06:00 정치
- 2015년 군함도 이어 올 사도광산서도 똑같은 일 불확실한 약속 믿고 동의했다 사후 정당화에 급급 일본 니가타현 니가타항에 지난 7월 28일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알리는 신문이 게시돼 있다./연합뉴스 “한국 정부는 왜 동의했나”, “정부가 2015년 사례에서 배운 것은 무엇인가”, “기대와 결과가 다른 점은 어떻게 봐야 하나”, “후속 조치의 불완전성은 언제,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 궁극적으로 “똑같은 방식에 계속 당하는 것은 의지의 문제인가, 능력의 문제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지난 7월 27일 알려진 ‘사실’에 관한 것이다. 이날 일본 니가타현에 있는 외딴섬이 경사를 맞았다.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과거에는 ‘귀양지’로 활용됐던 곳이 세계문화유산을 배출했다. 빛나는 ‘금광’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숱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어두운 곳. 사도섬 내 ‘사도광산’이다. 일본이 맞이한 경사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자타공인 ‘한국’이다. 과거에는 수탈 대상이었고, 현재는 일본이 국제사회로 나아가는 데 디딤돌 역할을 한다. 피해자의 역설 때문이다. 식민지배를 당한 한국의 지지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보증서다. 출범 이후 지속해서 일본에 양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윤석열 정부는 해당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전범기업이 조선인을 강제동원한 문제를 ‘제3자 변제 방식’으로 해결한 것이 시작이었다. 국민에 대한 설득이나 합의는 없었다. 이번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한국이 동의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2015년 하시마(군함도)에 이어 2024년에도 같은 일이 발생했다. 군함도와 사도광산은 일본인들만의 유적이 아니다. 이곳에서 죽은 조선인들의 역사도 담겨 있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에 강제동원한 조선인 명부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정부는 사도광산에서 죽은 조선인 희생자는 밝히지도 못하면서 일본인이 과거 영광을 추억하는 곳에 ‘세계문화유산’이란 명패를 달아줬다. 게다가 이는 어떻게든 정치에 ‘애국심’이라는 미학적 요소를 섞으려고 하는 일본 극우세력 망상에 조력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상가 미시마 유키오, ‘아름다운 나라, 일본’이라는 수사를 앞세운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살아 있었다면 윤석열 정부의 ‘통 큰 결정’에 감사했을 것이란 의미다. 그런데도 책임 있는 정부 인사 중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외교 실패’라고 인정하는 이는 없다. 오히려 외교부가 지난 7월 27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한국 정부가 굉장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설명한다.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무슨 대단한 것을 얻었든 조선인이 강제로 끌려가 죽은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적어도 한국 외교부가 이를 두고 “한·일관계 개선의 흐름을 계속 이어 나가길 기대한다”는 덕담을 할 상황은 아니었다. 불확실한 약속 사도광산은 세계유산위원회 21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결정됐다. 동의한 회원국에는 한국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외교부의 공식 설명은 주요 논점을 교묘하게 비껴간다. 사도광산 논란의 핵심은 ‘왜 한국이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에 동의했는가’이다. 그런데 외교부 설명은 ‘일본이 이런 약속을 했다’ 등에 집중된다. 이마저도 세계유산위원회에 참석한 카노 다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의 ‘발언’이 근거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해석과 전시 전략 및 시설을 개발할 것이며, 사도광산의 모든 노동자 특히 한국인 노동자를 진심으로 추모한다. 위원회 권고를 이행함에 있어 일본 정부는 그동안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채택된 모든 관련 결정과 이에 관한 일본의 약속을 명심할(bearing in mind) 것이며, 앞으로도 한국과 긴밀한 협의하에 해석과 전시 전략 및 시설을 계속 개선하고자 노력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사도광산 내 한국인 노동자들의 가혹한 노동환경을 소개하는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전시장 전경 /외교부 제공 발언은 미래의 불확실한 약속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개발할 것, 명심할 것, 노력할 것’ 등이다. 9년 전 군함도 때와 똑 닮은 말의 향연이다. 한국 외교부 공식 보도자료에 따르면 그는 “일본은 약속 이행 의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한국인’ 노동자들이 처했던 가혹한 노동환경과 그들의 고난을 기리기 위한 새로운 전시물을 사도광산 현장에 설치했고, 향후 사도광산 노동자들을 위한 추도식을 매년 사도섬에서 개최한다”고도 했다. 일본 정부가 설치했다는 자료는 사도광산에서 2㎞ 정도 떨어진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있다. 실제로 노동자들이 사도광산으로 오게 된 과정, 규모 등에 대한 설명이 전시돼 있다. 현재 공터인 한국인 노동자 기숙사 터에는 안내판을 설치하고, 안내자료 등을 통해 해당 장소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그런데 일본 대사의 발언으로 소개된 내용, 전시물 모두 문제투성이다. 우선, 카노 다케히로 대사의 발언으로 소개된 “한국인 노동자들이 처했던 가혹한 노동환경”이라는 부분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외교부로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해당 발언의 원문(국회 사무처 번역)은 “모든 노동자가 처했던 가혹한 노동환경”이었다. 외교부가 이 내용을 보도자료로 발표하면서 ‘모든’을 ‘한국인’으로 바꿨다.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한국인이라고 지칭한 것이 아닌)모든 노동자가 맞다”면서도 “해당 발언 이전에 사도광산의 ‘모든 노동자, 특히 한국인’ 노동자를 진심으로 추모한다고 했기 때문에 그 뒤에 나오는 문장 속 ‘모든 노동자’ 역시 이를 지칭하는 것으로 봤다. 그래서 해당 문장을 요약하며 ‘모든’ 대신 ‘한국인’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부로 변형한 것처럼 지적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외교적 발언에 사용된 모든 단어는 의도를 갖는다. 특히 민감한 강제동원 문제를 두고 한 일본 대사의 발언을 요약하기 위해 ‘모든’을 ‘한국인’으로 특정했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는지 외교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말 그대로 요약을 했는데 글자수는 오히려 늘었다. 전시물은 더욱 문제다. 조선인 노동자가 사도광산에 오게 된 것은 조선총독부 관여하에 ‘모집’, ‘관 알선’이 있었고, 1944년 9월부터는 ‘징용’됐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강제동원’ 용어의 부재를 넘어 이는 사실관계 왜곡이다. 학계에서는 이미 1939년 2월부터 조선인 강제동원이 있었음을 증언 및 후속 연구로 밝히고 있다. 게다가 사도광산으로 강제동원 한 조선인 명부를 인정하지도, 내놓지 않는 일본 정부가 1944년 9월부터는 사도광산에 ‘징용’한 조선인이 있었다는 것을 어디서, 어떻게 확인한 것인지 의문이다. 이는 결국 해당 전시물 문구를 작성하며 참고한 자료가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전시물 문구를 감상만 하고 있을게 아니라 면밀히 따져봐야 했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이 설명만으론 ‘그래서 왜 동의했다는 것인지’가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대로면 ‘강제동원’ 문구가 빠진 전시물 하나 얻자고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한 꼴이 된다. 외교부에 지난 8월 6일 연락했다. 정부의 입장을 최대한 이해해보기 위해 미리 질문을 전달했다. 관계자의 답변이 왔다. 사후 정당화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지난 7월 28일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물이 있는 새로운 전시 공간이 공개됐다.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더욱 힘든 노동에 종사했음을 보여주는 전시물들이 붙어 있다./연합뉴스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근원적 의문인 ‘왜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했는가’이다. 외교부 답변은 “한국이 동의한 이유는 7월 27일자 보도자료 1항에 분명하게 나와 있으니 참조해 달라”는 것이다. 해당 내용은 “우리 정부는 ‘전체 역사’를 사도광산 ‘현장에’ 반영하라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권고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을 일본이 성실히 이행할 것과 이를 위한 선제적 조치를 취할 것을 ‘전제’로 등재 결정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덕지덕지 붙은 수사를 빼면, 일본을 믿고 동의했다는 것이다. 군함도 때와는 무엇이 다른지 물었다. 이에 대해 “2015년에 비해 나아진 점은 일본의 구체적인 이행조치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이미 이행을 시작했다”고 답했다. 이는 앞서 지적한 전시물, 추모식을 일컫는다. 전시물의 경우 ‘강제동원’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전시된 내용을 보면 누구나 강제성을 인지할 수 있다고 본다”며 “특히, 탈출했다가 붙잡혀서 감금됐다는 부분도 있는데 강제성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이카와 박물관 전시를 통해 이미 확보된 강제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도록 한 것”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강제동원 역사가 ‘전시물을 보고 각자 알아서 추론’할 일인지와는 별개로 이미 ‘확보된 강제성’이라는 발언은 한 번 짚어봐야 한다. 마치 한국 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설계한 대전략(Grand Strategy)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유도하는 엉성한 추론을 따라가야 한다. 외교부는 2015년 군함도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당시 일본 대표의 발언을 통해 “(조선인이) 강제로 노역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본다. 이를 2024년 카노 다케히로 일본 대표의 “약속을 명심하겠다”는 발언과 연결했다. 직접적으로 강제동원이란 말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말한 것과 다름없다는 추론이다. “사도광산 관련해서는 일본이 강제동원을 인정한 표현이 어디에도 없지 않느냐”는 물음에 외교부는 “(2015년에) 1차로 확보하고, (2024년에) 2차로 또 부분적으로 확보한 것이지 이 과정에서 포기하거나 누락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확보된 강제성’의 의미를 이해해볼 수 있다. 즉 2015년 군함도로 ‘강제성’ 인정을 확보했으니 2024년에는 사도광산으로 ‘강제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게 했다’는 논리다. 군함도와 사도광산에는 모두 강제동원이 있었다. 그렇다면 ‘인정’과 ‘설명’은 별개의 유적 각각에 모두 필요하다. 이와 달리 외교부는 두 사례를 모아 보니 일본은 ‘강제성도 인정’하고(2015년 군함도), ‘후속 조치’도 한 것(2024년 사도광산)이란 논리다. 해당 방식 대로면 세상에 긍정하지 못할 것이 없다. 외교부식 ‘원영적 사고, 럭키비키’다. 외교부의 설명은 같은 날 공개된 정보로 곧 ‘사후 정당화’임이 드러났다. 지난 8월 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받은 답변서에 따르면 “전시 내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강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전시 문안을 일본 측에 요구했으나 최종적으로 일본이 수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외교부 역시 사도광산 설명에 ‘강제노동’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길 원했으나 거절당하고, 어떻게든 수습을 했다는 의미다. 이로 인해 결국,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일본이 강제성을 인정하고 명시하지도 않는데 대체 왜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했느냐”다. 지난 7월 31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부정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규탄 시위/연합뉴스 왜 동의했나 애초에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한국 정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국과의 ‘충분한 대화’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등재가 연기 혹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 해석도 있었다. 하지만 외교부는 “사실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답변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다면 표결을 했을 것이고 일본이 표결에서 승리하면 등재, 한국이 승리하면 금년(올해)은 보류되고 내년에 재상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 한국 정부가 동의한 것과 관련해 묘한 설명을 하나 붙였다. “표결을 하면 승패와 관계없이 사도광산의 역사는 관심받지 못하고 묻힐 것이다. 일본이 투표에서 이겨서 등재했다면 전체역사 설명 조치를 지금 합의한 것과 같이 하지 않을 것이다. 즉 일본이 이러한 조치를 하는 것은 우리가 등재에 동의해 주었기 때문이고, 자력으로 투표에서 이겼으면 그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금년과 내년에 두 번 연속 표결에서 이긴다고 가정하면, 사도광산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지 않게 되고 그 역사는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는 내용이다. 해당 답변을 차근차근 뜯어보면 윤석열 정부가 굉장히 독특한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표결을 했다면 승패와 관계없이 사도광산 역사가 관심받지 못하고 묻힐 것’이란 말이다. 국가 간 분쟁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부른다. 대표적 사례가 ‘독도 문제’다. 일본은 지속적으로 독도 영유권 문제를 제기하고, 한국은 일관되게 대응하지 않는다. 양국 간 인식 차이로 인한 분쟁은 곧바로 국제사회 쟁점이 되고 사안에 대한 유불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한·일이 사도광산 내 강제동원 문제를 두고 격돌하는 쪽과 전시관에 ‘강제동원’ 문구도 없는 설명판 하나를 걸어두는 쪽 중 어디가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을지는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둘째,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가 부결되면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지 않고, 그 역사가 알려지지 않을 것’이란 말이다. 뒤집으면 ‘사도광산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했다’는 말이다. 이 논리대로면 일본 내 강제동원 관련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앞으로 한국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세계문화유산은 ‘특정 소재지와 상관없이 모든 인류에게 속하는 보편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발굴 및 보호, 보존해야 할 대상’이다. 외교부 설명처럼 억울한 역사를 알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의미다. 지금껏 방문해 본 세계문화유산 중 노동착취로 건설됐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곳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해당 인식이 얼마나 독특한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정부 기대와 달리 사도광산 내 강제동원을 알리는 일본의 태도는 군함도 때를 연상케 한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전과 후가 다르다. 외교부 역시 이를 알고 있다. “당장 이행이 미비한 설비 부분(임시로 설치된 전시 패널, 기숙사 안내판)은 조만간 개선돼야 하며, 일본에 촉구 중이다. 전시 내용과 문구는 이제 막 협의가 끝난 부분이니만큼 상당기간이 지나야 개선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본 내에서도 ‘전시 내용이 강제노동이나 다름없다’는 불만도 있는 만큼(8월 3일자 산케이 신문 사설), 섣불리 건드릴 문제는 아니다. 자칫 개선하려고 했다가 후퇴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즉 논란이 된 전시 내용과 문구는 당분간 개선이 없을 것이고, 일본 언론 중 내용에 불만을 제기하는 곳도 있는 만큼 일본에 개선 건의를 할지 말지도 모르겠다는 의미다. 이로 인해 돌고 돌아 다시 같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대체 이럴 거면 왜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했느냐’다.
- 특집
- 전주 폭발 사고 20대 “몸 곳곳에 흉터…앞으로 어떻게 사나 막막”(2024. 08. 12 06:00)
- 2024. 08. 12 06:00 사회
- 지난 5월 전주리싸이클링타운 폭발 사고로 5명 사상 “본래 업무 아닌 일 시켜, 안전관리자 못 봤다” 증언 전주리싸이클링타운 폭발 사고로 피해를 입은 A씨(26)가 지난 8월 4일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리 기자 산재 사고는 순간이지만 노동자의 피해는 오랫동안 지속한다. A씨(26)의 경우가 그렇다. A씨는 지난 5월 2일 오후 6시42분 전북 전주시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인 ‘전주리싸이클링타운’에서 메탄가스 폭발 사고가 났을 때 현장에 있었다. 사고로 A씨를 포함해 4명의 노동자가 다쳤고, 1명이 사망했다. 이곳은 ‘지하 처리장’이다. 폭발 사고가 난 곳도 지하 1층이었다. 지난 8월 4일 오후 대전시의 한 병원에서 기자와 만난 A씨는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전주리싸이클링타운에서 A씨는 실험실 업무를 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는 음식물 파쇄, 유기물 분해, 건조 등의 과정을 거친다. A씨는 소화조에서 시료를 가져와 질소와 인 등이 얼마나 함유돼있는지를 측정해 공정이 잘 되고 있는지, 음식물 투입량이 적절한지를 확인하는 업무 담당이었다. A씨는 올해 들어 빈번하게 다른 업무에 동원됐다고 말했다. 회사는 A씨가 실험실 업무를 하고 있으면 불러 나무 자르기나 청소, 다른 노동자 보조를 시켰다. A씨가 ‘하던 일을 끝내고 가겠다’며 싫은 기색을 내비쳤지만 나이가 어린 축인 A씨의 말은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엔 일주일의 절반을 실험실 업무, 절반은 다른 업무를 할 정도였다. 사고 당일에도 팀장으로부터 ‘작업을 좀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고 갑작스럽게 지하 1층으로 갔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하는 것인지 설명은 없었다. 그래서 이 작업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안전을 위해 무엇을 신경 써야 하는지도 예상치 못했다. A씨는 “폭발이 나고 본능적으로 계단을 통해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다리에서부터 얼굴까지 불이 붙었다”고 했다. A씨는 얼굴, 팔, 등, 배, 다리 등 몸 전체에 화상을 입었다. 지난 6월 26일 전주시청 앞에서 전주리싸이클링타운 공동대책위원회가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 지원 다 해준다던 회사, 이젠 연락 없어”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메탄가스가 발생하는데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폭발로 이어진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은 음폐수의 과도한 투입, 환기시설 미비 등 회사가 안전을 확보하지 않아 발생한 산재 사고라고 본다. 이들은 또 전주리싸이클링타운 시설이 전주시 소유이고 시설 운영의 주요 결정사항이 전주시 허가를 통해 이뤄졌을 것이라며 운영사인 성우건설 외에 전주시장도 형사책임 대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가 1명 이상 사망하거나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면 안전보건 체계를 구축하지 않은 사업주뿐 아니라 원청기업의 경영책임자까지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A씨는 지난 3개월간 매일 레이저 치료와 소독을 반복하면서 “너무 아파서 죽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얼굴을 포함해 몸 곳곳에 흉터가 남았고 햇볕도 제대로 쬘 수 없다. 언제까지 치료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다. A씨는 사고 때 생각을 안 하려고 하다가도 불쑥불쑥 생각이 나고, 트라우마 때문에 나중에 가스레인지를 켤 수 있을지도 걱정된다고 했다. 그는 “나아도 나은 것 같지가 않다. 앞으로 살날이 많은데 막막하고 힘들다”고 했다. A씨에게 전주리싸이클링타운은 대학 졸업 후 취직한 첫 직장이었다. 성우건설 측은 사고 직후 “본인들이 애사심이라든지, 사명감 때문에 작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A씨는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회사가 피해에 대해 다 지원해 줄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연락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전주시든, 회사든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 같은데 피해자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완치될 수 있게끔 해줘야 한다”고 했다. 기자는 성우건설에 여러 차례 전화 등으로 연락했지만 책임있는 관계자와 통화하지 못했다. 시민에 감춰진 쓰레기장…노동자 안전과 고용 방치음식물, 플라스틱·캔·유리병, 비닐, 오·폐수…. 우리는 매일 쓰레기를 만들고 버린다. 쓰레기를 종량제 봉투에 담거나 분리 배출해 집 바깥 정해진 위치에 갖다 놓는다. 환경미...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2408121036001 지하로 가는 쓰레기 처리장…노동환경도 지하화된다그저 도심 속 공원의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푸른 잔디가 깔려 있고 잘 관리된 나무가 곳곳에 있었다.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놀고 유아차를 끈 여성은 유유히 산책했다. 지난 7월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2408120600011
- 경찰 “시청역 사고 원인은 운전 미숙···엑셀 반복해서 밟았다”(2024. 08. 01 11:16)
- 2024. 08. 01 11:16 사회
- 류재혁 서울 남대문경찰서장이 1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시청역 사고 수사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를 수사해온 경찰이 운전자의 운전조작 미숙으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류재혁 서울 남대문경찰서장은 1일 브리핑에서 “피의자는 차량 결함으로 인한 사고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으나 피의자의 주장과 달리 운전 조작 미숙으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류 서장은 “국과수 감정 결과 가속장치·제동장치에서 기계적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고 사고기록장치(EDR) 또한 정상적으로 기록되고 있었다”며 “EDR 분석에 따르면 제동 페달(브레이크)은 사고 발생 5.0초 전부터 사고 발생 시(0.0초)까지 작동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폐쇄회로(CC)TV 영상과 목격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서도 충돌 직후 잠시 보조 제동 등이 점멸하는 것 외에 주행 중에는 제동 등이 점등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운전자 차모씨가 사고 당시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액셀)을 밟은 것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류 서장은 “액셀의 변위량은 최대 99%에서 0%까지로 피의자가 (액셀을) ‘밟았다 뗐다’를 반복한 것으로 기록됐다”며 “사고 당시 피의자가 신었던 오른쪽 신발 바닥에서 확인된 정형 문양이 액셀과 상호 일치한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고 덧붙였다. 류 서장은 “피의자는 주차장 출구 약 7∼8m 전에 이르러 ‘우두두’하는 소리와 함께 ‘브레이크가 딱딱해져 밟히지 않았다’며 차량 결함으로 인한 사고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차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업무상 과실치사상)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차씨는 지난 7월 30일 구속됐다. 차씨는 지난 7월 1일 저녁 서울 시청역 인근 웨스틴조선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빠져나오다가 가속해 인도로 돌진했다. 이 사고로 9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 [신간]사고는 왜 불평등하게 일어날까(2024. 07. 10 06:00)
- 2024. 07. 10 06:00 문화/과학
- 사고는 없다 제시 싱어 지음·김승진 옮김·위즈덤하우스·2만3000원 한 세기 동안 벌어진 사고를 탐구하며 사고의 증가가 구조적 불평등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 역작이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교통사고, 산업재해, 재난 등을 통해 ‘사고’라는 말이 어떤 죽음과 손상을 감추고 그것이 반복되게 만드는지 밝혀낸다. 이를 위해 과실, 조건, 위험, 규모, 낙인, 인종주의, 돈, 비난, 예방, 책무라는 10가지 키워드를 연결한 뒤 촘촘하고 풍성한 논의로 확장해 나간다. 논의는 무너진 시스템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 예방 가능한 비극에서 벗어나는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한국에서 반복되는 재난에 무기력감을 느끼는 이들과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싶지 않은 이들, 위험 사회의 불안을 비난이나 낙인으로 해소하지 않으려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추천사에서 “때때로 우리는 세계에 대해 생각하던 방식을 바꿔놓는 책을 만난다. 이제까지 ‘사고’라는 단어를 별 문제의식 없이 써왔던 것을 반성하게 된다”고 소개했다.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 앨리스 웡 지음·김승진 옮김·오월의봄·2만7000원 장애인권 활동가인 앨리스 웡의 첫 단독 작품이다. 활동가의 삶을 꿈꾸지 않았던 저자가 그 길로 들어서게 된 무수한 계기를 이야기한다. 이야기는 ‘모범적 소수자의 서사’를 벗어난다. 음식과 대중문화, 소셜미디어에 대한 애정, 코로나19 팬데믹, 돌봄, 미래 등 여러 화두를 거침없이 던진다. 저자가 던진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탁월하면서도 난삽하고, 진중하면서도 호쾌한 삶의 지혜를 경험하게 된다. 또 일상을 조직하는 힘이 어떻게 운동이 되며, 그 운동이 어떻게 다시 삶을 바꿔내는지도. 학교를 바꾼 인권 선언 공현, 진냥 지음·교육공동체벗·1만4000원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 배경과 역사, 사회에 미친 파장을 일목요연하게 살피는 책이다.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인 두 저자는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교사에게 왜 필요한지, 학생인권조례가 비제정 지역에 끼친 영향 등을 짚으며 조례를 둘러싼 오해와 질문에 답한다. 교도소의 정신과 의사 노무라 도시아키 지음·송경원 옮김·지금이책·1만6800원 교정시설에서 수많은 환자를 돌봤던 정신과 의사의 회고록이자 교도소 의사로서 마주한 범죄와 질병, 격리와 보호, 가해와 피해 그 경계에 얽힌 이야기다.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로부터 격리된, 담장 너머 또 하나의 의료현장을 드러내며 애써 외면해온 그늘진 이면에 한 발짝 다가가게 해준다. 작은 도시 봉급 생활자 조여름 지음·미디어창비·1만6800원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직장생활에 안주하자니 미래가 막막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자니 겁이 나는 30대 중반을 넘어선 애매한 나이. 저자는 더는 물러날 곳이 없을 것만 같던 생활 끝에 우리나라 곳곳의 작은 지역을 옮겨 다니며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간다.
- 신간
- [주간 舌전] 인사는 인사고, 수사는 수사(2024. 05. 20 06:00)
- 2024. 05. 20 06:00 정치
- 이원석 검찰총장/성동훈 기자 “어제 단행된 검사장 인사는….”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5월 1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전날 발표된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두고 이렇게 말하며 약 7초간 침묵했다. 이어 입을 뗀 이 총장은 “제가 이에 대해서 더 말씀드리지 않겠다”며 말을 끝맺었다. 5월 13일 검찰 인사를 두고는 검찰총장과의 조율 없이 대통령실이 결정했다는 의혹이 나온다. 특히 이번 인사는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을 수사하던 수사팀 중심으로 진행돼 논란이다. 이 총장은 “인사는 인사고, 수사는 수사”라며 “어느 검사장이 오더라도 수사팀과 뜻을 모아서 일체의 다른 고려 없이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라서만 원칙대로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야당은 비판을 쏟아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월 15일 “22대 국회가 되면 여러 특검법이 재가동될 가능성이 있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적절히 방어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 아니었을까”라며 “(이 총장이) 침묵했을 때 표정 등 굉장히 불만이 많다는 걸 알 수 있고, 멘트도 지금 오는 사람들이 마음에 안 들고 사실상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걸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총장이 수사 지시를 했는데 안 되면 쓸 수 있는 방법이 인사권인데 난 그게 없다. 완전히 패싱 당했다고 이야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 역시 “이 총장이 상당한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또 표현은 않겠지만 배신감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며 “(김 여사) 소환조사 얘기가 나오니까 수족을 다 잘라내고 모든 수사진을 교체한 것”이라고 말했다.
- [시네프리뷰]악마와의 토크쇼-심야 토크쇼 생중계 중 벌어진 끔찍한 사고(2024. 05. 08 06:00)
- 2024. 05. 08 06:00 연예
- 돌이켜 보면 <블레어 위치> 이후 신생 하위 장르-파운드 푸티지-에서 더 이상의 혁신은 나오기 힘들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 이 코너에서 이 장르 작품들을 리뷰하면서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찬란 돌이켜 보면 1970년대는 뭔가 불온한 기운이 감도는 때였다(어린 시절 기억을 곱씹어보면 낙엽이 뒹구는 우중충한 가을 오후 풍경이 왠지 먼저 떠오른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그 뭔가 불길하고 칙칙한 1970년대 분위기를 제대로 살린 공포 영화다. 잭 델로이는 심야 토크쇼 <나잇 아울스(night owls)>의 진행자다. 영화에서 실제 경쟁 프로그램으로 언급되기도 하는데, 2019년 세상을 떠난 자니 카슨이 진행하던 장수 심야 좌담 <투나잇 쇼>를 떠올리면 될 듯싶다. 한국판으로는 <주병진 쇼>나 <자니윤 쇼>처럼 화제의 명사를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가끔은 가수가 나와 노래도 부르고 콩트도 하고 그런. 델로이의 고민은 <나잇 아울스>가 경쟁 프로그램에 밀려 만년 2위에 그친다는 것이다. 부인이 폐암으로 죽고 프로그램에 복귀했는데 여전히 성적은 신통치 않다. 만년 2위 심야 토크쇼의 핼러윈 특집 1977년 10월 31일, 델로이와 제작진은 회심의 특집프로그램을 마련한다. 핼러윈 특집이다. 출연진은 영매 크리스투, 그리고 그의 속임수를 ‘폭로’할 현직 마술사 카마이클 헤이, 여기에 곧 출간할 신간 <악마와의 대화>(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를 쓴 초심리학 박사 준과 ‘리글씨(Mr. Wriggle)’라는 악마가 빙의된 소녀 릴리. 원래는 재즈 가수 한 명도 출연해 이 심야 쇼에서 마무리 공연을 할 예정이었는데 어떤 ‘사고’로 그 가수는 출연하지 못했다. 영화는 “전 국민을 경악케 했던 생방송 사고의 마스터 필름과 미공개 영상을 입수해 공개한다”며 시작한다. 그렇다. 이 영화는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1998) 이후 공포 영화의 하위 장르로 확립된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장르 영화다. 어떤 파국적인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을 기록한 영상자료를 뒤늦게 발견 내지는 공개한다는 것이 이야기의 얼개다. 다큐멘터리 형식을 띠지만 당연하게도 실제 사건은 아니고 창작한 내용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 지상파에서 방영된 영상의 무편집본인 것처럼 능청을 떤다. 아,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1970년대라는 점을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1980년대 한국 꼬꼬마들의 TV 채널 선택권이 KBS1·2, MBC밖에 없었던 것처럼 미국도 1970년대 후반까지 CBS, NBC, ABC 등 지상파가 채널을 장악하고 있었다. 자니 카슨의 <투나잇 쇼>는 NBC의 간판 프로그램이었고, 델로이의 <나잇 아울스>는 같은 시간대 가상의 방송국 UBC에서 방영 중이었다. 영화의 절정부는 소녀 릴리가 악마 리글씨에 빙의된 모습을 보여주면서부터다. 회의주의자 카마이클 헤이가 프로그램의 제작진과 준 박사, 릴리가 짜고 청중과 시청자를 기만하고 있다며 제작진에게 최면을 걸어 온몸에서 벌레가 튀어나오는 환각을 보여준 뒤다. 릴리/리글씨는 괴력을 발휘해 스튜디오를 공포에 몰아넣는다. 결국 결코 방영돼서는 안 됐을 파국이 벌어진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가능성 영화의 각본이나 연출은 영리하다. 시청률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제작진의 초조함, 재계약을 앞둔 진행자 델로이의 강박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서브플롯이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카메라에 눈을 맞추는 주인공의 어색한 행동은 코미디이기도 하면서 이 모든 것은 연출에 불과하다는 ‘소격효과(낯설게 하기)’를 뒤집어 관객이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여기에 1970년대 특유의 불온한 공기와 분위기를 영화는 공포 장르라는 프레임으로 훌륭하게 포착해놨다. 돌이켜 보면 <블레어 위치> 이후 이 신생 하위 장르-파운드 푸티지-에서 더 이상의 혁신은 나오기 힘들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 그동안 이 코너에서 이 장르 작품들을 리뷰하면서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마 장르 내에서는 오랫동안 기억되고 언급될 작품이 나온 것 같다. 제목: 악마와의 토크쇼(Late Night with the Devil) 제작연도: 2024 제작국: 오스트레일리아, 아랍에미리트 상영시간: 93분 장르: 파운드 푸티지 감독: 캐머런 케언즈, 콜린 케언즈 출연: 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 잉그리트 토렐리, 로라 고든, 조지나 헤이그, 페이샬 바지, 이안 블리스, 리스 오테리 개봉: 2024년 5월 8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 찬란, ㈜에이유앤씨 배급: ㈜올랄라스토리 공동제공: 소지섭, 51k 영화 속 회의주의 마술사의 실제 모델은 /제임스 랜디 교육재단 영화에서는 마술사 카마이클 헤이의 경력은 스쳐 지나가듯 언급된다. “워렌 부부에게 아미티빌의 귀신들린 집을 같이 검증하자고 제안했으나 워렌 부부가 나오지 않았다.” 흥미로운 대목이다. 영화 <아미티빌의 저주>(1979)의 모델이 된 ‘흉가’는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 서포크 카운티에 진짜로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호기심으로 내비게이션을 찍고 다녀온 방문 인증 사진 같은 것이 꽤 나온다. 원작 소설과 영화의 성공으로 어쨌든 사람 살 데는 아닌 듯싶은데, 지금도 멀쩡하게 사는 가족이 있다고 한다. 워렌 부부는 앞서 이 코너에서 리뷰한 <컨저링>, <애나벨> 시리즈의 실제 주인공이다. 미국 코네티컷에 있는 부부 집 지하실에는 실제 오컬트박물관이 있다. 영화처럼 험상궂은 인상은 아닌, 다소 귀여워 보이는 ‘진짜 애나벨’ 인형이 “절대로 열어보면 안 된다”는 경고문과 함께 유리상자 안에 얌전히 앉아 있다. 그렇다면 초능력자나 영매들의 사기를 폭로하는 마술사도 실존 인물일까. 아마 회의주의(skepticism) 운동의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카마이클 헤이가 누구를 모델로 했는지 바로 눈치챘을 것이다. 제임스 랜디. 실제 영화가 주로 참고했을 자니 카슨의 <투나잇 쇼>에 자주 출연했다. 1984년 한국을 찾아 전국에 ‘숟가락 구부리기’ 열풍을 일으킨 초능력자 유리 겔러와 앙숙이었다. 겔러가 어떻게 관중을 기만하고 사기를 치는지 폭로한 <유리 겔러에 관한 진실>(1982)이라는 책도 썼다. 겔러와 랜디의 ‘충돌’은 <투나잇 쇼>에서 절정에 달했다. <투나잇 쇼> 측은 겔러의 출연을 앞두고 랜디의 충고를 받아 겔러가 쓸 소품을 자체적으로 준비하고, 겔러와 그의 조수들이 붙어 있지 않도록 했다. 그러자 겔러는 컨디션 난조를 호소하며 초능력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폭로가 계속되자 겔러는 1991년 랜디와 그가 이끄는 회의주의단체에 1500만달러짜리 소송을 걸었다가 패소했고, 1995년에는 소송비용을 물어내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랜디는 2020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세.
- 시네프리뷰
- [편집실에서]아찔한 ‘방송사고’(2024. 01. 31 05:30)
- 2024. 01. 31 05:30 오피니언
- 권재현 편집장 방송 프로그램에는 대본이 있습니다. 이를 매개로 사전에 손발을 맞추고 배우들은 연기를 펼치지요. 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리포트는 말할 것도 없고, 패널을 초대해 앵커와 주고받는 대담이나 인터뷰도 사전 질문지를 토대로 이뤄집니다. 생방송일수록 대본의 중요성은 더 커집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들어갔다간 자칫 방송사고가 날 확률이 커지니까요. 그렇다고 너무 티를 내선 안 됩니다. 짜인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생방송이 무슨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겠습니까. 각본을 따르면서도 즉흥적으로 하는 것처럼 비치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생방송의 핵심입니다. 이른바 ‘약속대련’입니다. 약속대련보다 ‘자유대련’을 중시하는 앵커들이 있습니다. 방송의 특성상 대본을 깡그리 내팽개칠 순 없겠지만, 이들은 예정에 없던 질문을 던지거나 순서를 바꾸는 방식으로 생방송의 묘미를 극대화합니다. 관행이나 업계의 방식보다 대중의 알권리나 생방송의 묘미에 더 무게중심을 두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요. 갑작스러운 추가 질문에 당황한 패널들은 생방송 도중 진땀을 흘리고, 그럴수록 시청자나 청취자들은 쾌감을 느낍니다. 앵커들은 상종가를 치지만, 졸지에 ‘먹잇감’이 되고만 패널들은 분루를 삼키게 마련입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패널로 출연했던 한 라디오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앵커가 대본에도 없는 돌발질문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자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온갖 머리를 굴려봤지만 마땅한 답변이 떠오르질 않더군요. 별수 있습니까. “좀더 알아보겠습니다”란 말로 얼버무리고 말았지요. 굴욕도 그런 굴욕이 없었습니다.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공동목표로 시작한 일이지만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면 방청객들 앞에서 공개 망신을 당한 패널로선 앵커가 곱게 보일 리 없습니다. 반격을 꾀하지 않으리란 법도 없지요. 급기야 패널도 각본을 무시하고 돌출발언을 하기 시작하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프로그램은 길을 잃고 저만치 산으로 가버립니다. ‘각본 없는 드라마’에 잠시 환호할 순 있겠지만, 출연진 간의 자존심 경쟁에 본래의 기획 취지는 사라지고 ‘막장’만 남은 프로그램을 보는 대중의 마음 또한 당혹스러움을 넘어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뭐든지 정도껏 해야지요. 본말이 전도돼서야 되겠습니까. 한편인 줄 알았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한판 세게 붙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약속대련’으로 보입니다. 한때 크게 유행했던 모 이동통신사의 광고 카피 “쇼를 하라, 쇼”도 떠오르고요. 앞으로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관중 앞에서 서로 때리는 척만 하자고 약속하고선 한 대씩 뺨을 주고받던 두 연기자가 생각보다 매운 상대의 손맛을 보고는 발끈해 실제 난투극을 벌이는 사태와 같은 상황으로 이어지지 말란 법도 없지 않겠습니까. 어디까지가 실제상황이고, 어디까지나 퍼포먼스인지, 대본은 어느 수위로까지 쓰여 있는지, 연출 감독은 누구인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리얼 생방송’ 프로그램이 시작됐습니다.
- 편집실에서편집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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