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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프리뷰]아나운서 살인사건-살인마에게 쫓기는 3명의 여성들(2019. 06. 17 10:21)
- 2019. 06. 17 10:21 문화/과학
- 영화는 전형적인 파운드 푸티지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밀하게 장르적 규칙성을 따르고 있는 영화도 아니다. 이제는 B급을 넘어 C급, Z급임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표방하는 ‘쌈마이 영화’에 가깝다. 제목 아나운서 살인사건 감독 오인천 주연 김보령, 윤주, 조은, 노이서, 이정원, 김종철 장르 추적 공포 스릴러 상영시간 82분 제작/제공 영화맞춤제작소 공동제공 웨스트센텀시네마 배급 블리트필름 개봉일 2019년 6월 13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맞춤제작소 벌써 8편이나 장편을 찍은 다작 감독인데도 이번 <아나운서 살인사건>을 통해 그의 영화세계에 처음 입문했다. 오인천 감독. 영화를 본 첫 감상은 “뭐야 이게”였다. ‘쌈마이스러운’ 폭발 장면이라든가 국어책을 읽는 듯한 ‘발연기’ 같은 것 말이다.(사담을 하자면 이종철 편집장을 ‘연기’한 익스트림무비의 김종철 대표는 필자의 20년 지인이다. 그가 배우로 나오는 영화는 개인적으로 처음 봤다.) 그리고 구멍이 숭숭 뚫려 보이는 시나리오. 이 아나운서들은 도대체 연쇄살인마 안보령이 보낸 휴대폰의 발신 확인을 왜 하려 하지 않는가. 적어도 ‘발신제한표시’가 뜨는 장면이라도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초등학교에서 살인마에게 쫓기던 여성 아나운서들과 기자는 한꺼번에 정신을 잃었다가 교실에서 몸에 폭탄이 장착된 채로 비슷한 시간에 정신을 차리는데, 도대체 어떤 마법을 이 연쇄살인마가 썼길래 3명이 동시에 정신을 잃고 또 깨어나게 되는 건지…. 또 인트로이자 엔딩 장면. 비슷한 자리를 뱅뱅 도는 택시에서 아나운서들이 반발을 하자 ‘놀랐지!’ 하는 식으로 얼굴을 들이대는 ‘하회탈’은 도대체 뭔지…. 그리고 그 장면에 이질적으로 삽입돼 있는 날카로운 금속음(아마 낫 같은 것을 다른 금속과 마찰시키는 소리인 듯한데)은 도대체 또 무슨 농간인지…. 눈에 띄는 전작들의 변주 궁금증을 안고 그의 전작들을 감상했다. 오호라. 변주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전작 <야경: 죽음의 택시>(2017)와 연결되어 있다. 비슷한 설정의 변주다. ‘하회탈’ 남성은 이 전작의 살인마다. 그렇다면 스크린 밖에서 이런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아나운서들이 탄 택시는 재수없게도 38번 국도의 진짜 연쇄살인마가 운영하는 택시였고, 그는 이 아나운서들의 탈출에 협조할 생각이 없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번 영화의 폭탄 연쇄 여성 살인마 안보령과 ‘하회탈’은 한패였다. 3명의 여성이 정신을 잃은 사이, 그들을 한 교실로 끌고 들어가 몸에 폭탄을 장치하는 것을 도운 것도 그 ‘하회탈’일 수 있다. 가만. 그렇다면 영화 가운데 흑백으로 찍은 장면은 또 뭔가. 전작들처럼 계속 찍기를 강요당하는 촬영조수(영화감독 오인천이다)가 배제된 이 흑백 시퀀스는? 때때로 묶여 있는 여성들의 내면의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이 장면들은 도대체? 영화는 전형적인 파운드 푸티지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밀하게 장르적 규칙성을 따르고 있는 영화도 아니다. 이제는 B급을 넘어 C급, Z급임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표방하는 ‘쌈마이 영화’에 가깝다. 아울러 영화는 컬트적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감독의 작품세계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의 전작에서 변주되어 재조립되는 요소들이 눈에 뜨일 것이다. 단독 특종 욕심에 집착하며 경찰 신고를 끊임없이 미루는 주인공들, 공중파에서 밀려나 유튜브로 갈 수밖에 없는 프리랜서 언론인들, 나이와 소속사에 따른 암묵적 서열경쟁…. 확실히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곳곳에서 번뜩이는 설정들. 컬트를 넘어선 영화의 가능성 과거 영화라는 예술, 또는 제3의 언어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전세계 인류에게 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어느 정도 유효성은 있다. 봉준호 감독은 지극히 한국적인 자신의 영화가 과연 세계 사람들에게 통할까 걱정했었다. 칸에서 그가 확인한 것은 자신이 그리고 있는 반지하의 삶과 비슷한 삶의 형태가 영국 런던에도, 중국 홍콩에도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젊은 독립영화 감독이 큰 꿈을 꾸기엔 억누르고 있는 현실의 무게가 너무 크다. 의도된 것이지만 카메라를 들고 목소리로 출연하는 영화 속 촬영자(감독)는 자신의 사수로부터, ‘클라이언트’로부터 끊임없이 지시를 받고 망설이고, 공포를 느끼고 도망친다. 지난해 화제를 모은 일본 독립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One Cut of the Dead)>(2018·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에서 카메라를 계속 돌리라고 다그치는 영화 속 히구라시 감독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나마 <카메라를…>은 지난해 일본의 ‘히트상품 30선’에 뽑혔다. 장르영화 팬 커뮤니티를 넘어 오 감독의 작품에 눈도장을 찍은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주목한다. 자기가 좋아서 특수효과 장비를 직접 만들어 <고무인간의 최후(Bad Taste)> 같은 영화를 찍던 뉴질랜드의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 시리즈 연출로 세계적 거장이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소수의 장르영화 팬들은 처음부터 그 가능성을 눈치챘기에 저 괴상한 컬트영화를 사랑했지만 말이다. <월하의 공동묘지> 재해석한 <월하> 영화 의 포스터 / 영화맞춤제작소 <아나운서 살인사건>에 이어 바로 찾아본 영화는 <월하>였다. 권철휘 감독이 연출한 한국고전 공포영화 <월하의 공동묘지>(1967)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즉 영화의 시작과 엔딩에 나오는 ‘기생월향지묘’라고 적힌 묘비가 실제로 발견되었고, 한 일본 클라이언트의 의뢰로 경기 파주의 어느 숲속에 있는 그 묘비를 찾으러 떠나는 사람들의 여정이 담긴 필름, 정확히 말하면 SD카드 속 동영상이 발견된다는 ‘파운드 푸티지’물이다. 작고한 권철휘 감독은 생전 인터뷰에서 저 영화의 구상을 위해 공동묘지에서 며칠 밤을 샜다는 에피소드를 전하는데, 그 장소는 망우리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에 와서 <월하의 공동묘지>를 다시 보면 한국 공포영화의 클리셰 대부분을 담고 있다. 인트로에서 일자리를 잃은 변사는 늑대인간의 몰골이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열정의 제국(愛の亡靈)>(1978)에서도 써먹은 수백 년 전통의 ‘인력거 괴담’이 택시 괴담으로 변주돼 1960년대의 액자 스토리로 들어간다. 파운드 푸티지물로 재번역된 이 이야기는 <월하의 공동묘지>의 형식을 영리하게 재해석한다. 왜 난데없는 ‘광산업으로 성공한’ 일본인 클라이언트가 등장하는지는 원작을 보면 유추 가능하다. 미쳐가는 흥신소 남자가 ‘기생월향지묘’ 묘비 앞에서 내뱉는 광란의 대사는 <월하의 공동묘지>에서 여동생의 묘비를 돌로 박고 떠나며 황해가 남긴 한 맺힌 울부짖음과 대비된다. 볼 만한 작품이다. 권철휘의 작품은 고맙게도 영상자료원이 유튜브에 올려뒀고, 오 감독의 <월하>는 IPTV 등으로 서비스되고 있으니 언제 어디서나 감상할 수 있다.
- 시네프리뷰
- [시네프리뷰]리지-참혹한 살인사건에 투영된 현대 여성문제(2019. 01. 14 12:54)
- 2019. 01. 14 12:54 문화/과학
- 영화 속에는 자연스럽게 당시의 사회상인 가부장제나 남성우월주의 등의 문제들이 녹아 있는데 이는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다양한 이슈들과도 연결된다. 제목 리지 (Lizzie) 제작연도 2018년 제작국 미국 러닝타임 105분 장르 범죄, 드라마 감독 크레이그 윌리엄 맥닐 출연 클로에 세비니, 크리스틴 스튜어트, 제이미 쉐리던 개봉 2019년 1월 10일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씨네라인월드/팝엔터테인먼트 자신만의 세계에 파묻혀 있기를 좋아하는 리지 보든(클로에 세비니 분)은 최근 들어 평소 좋지 않았던 아버지 앤드류 보든(제이미 쉐리던 분)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어 심기가 불편하다. 보수적인 아버지의 눈에는 발작적 간질을 앓고 있음에도 정숙하지 못하게 바깥으로 나도는 리지의 일거수일투족이 마음에 들지 않고, 리지의 입장에서는 두 딸을 믿지 못해 결국 새어머니와 그녀의 친척까지 끌어들여가며 재산과 유산 관리까지 맡기려는 아버지의 독단이 섭섭하기 이를 데 없다. 이즈음 보든 집안에는 새로운 하녀 브리짓(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이 들어온다. 가난한 신분으로 식모 일을 하러 왔지만 예쁜 외모에 차분한 성격의 브리짓은 침착하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고 그녀의 착실한 모습에 리지는 호감을 갖는다. 서로의 아쉬움을 다독여주며 신뢰를 쌓아가던 두 사람의 관계는 언제부턴가 단순한 호의나 우정 이상의 감정으로 발전해 나간다. 최근 영화들의 대세에 편승하듯 <리지>는 실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이다. 실제 사건이 워낙 악명 높은 범죄사건인지라 그 유명세만으로도 영화화는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사건의 많은 부분이 미스터리로 묻혀버린 데다 당시 용의자는 무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부담 역시 동반할 수밖에 없다. 섬세한 연출력으로 녹여낸 사회적 메시지 영화 <리지>는 ‘크레이그 윌리엄 맥닐’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데뷔작 <보이>(The Boy·2015)는 외진 산골 모텔에서 아버지와 외롭게 살며 자신을 버린 어머니와 만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10대 소년의 잔인한 성장기를 그린 작품이었다. 초반을 압도하는 차분한 호흡과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후반을 향하며 다소 상투적으로 흐르는 전개와 설정이 아쉬웠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두 번째 작품인 <리지> 역시 전작과 많은 부분에서 유사점이 목격된다. 대상을 쫓는 차분한 호흡과 냉철한 시선이 그렇고, 욕망을 이루기 위해 주변인들의 희생조차 마다하지 않는 주인공들의 절박함이 그렇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밀고 나가는 밀도 있는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 한결 성숙해진 느낌이다. 리지 보든의 실화는 표면적으로 역사상 가장 극악무도한 범죄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지만 맥닐 감독은 철저히 가해자의 입장에서 감정을 조율해 간다. 영화 속에는 자연스럽게 당시의 사회상인 가부장제나 남성 우월주의 등의 문제들이 녹아 있는데 이는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다양한 이슈들과도 연결된다. 무책임한 남성들의 폭력과 억압에 대항해 삶의 주체로서의 자아를 확립하려는 리지의 행보는 작품 속에 단순한 범죄드라마 이상의 감정을 자아내며 뚜렷한 메시지를 품은 여성영화로서의 가치를 부여하게 만든다. 그래서 음울하고 고전적인 분위기의 미국 오리지널 포스터에 반해 두 주연배우의 얼굴을 강조해 밝게 뽑아낸 국내 포스터는 작품의 주제를 적극 반영하면서도 국내 관객들의 호기심을 끄는 데도 현명한 포석이었다고 판단된다. 개성과 매력이 뚜렷한 두 배우의 협연 영화의 묵직한 분위기를 고취시키는 두 주연배우들의 독특한 만남도 이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화제 중 하나다. 리지 보든을 연기한 클로에 세비니의 행보는 데뷔 때부터 파격적이었다. 1995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였던 래리 클락 감독의 <키즈>에서 파격적인 노출도 마다하지 않으며 그녀가 감당했던 역할은 인생의 첫 번째 섹스로 인해 에이즈에 걸리는 10대 소녀 역이었다. 이후 꾸준히 왕성한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지만 출연작 리스트에 아트하우스 영화만 들어차 있는 그녀의 취향은 ‘이러기도 쉽지 않겠다’ 싶어 신기할 정도다. 차라리 그녀가 공격적으로 활약한 영역은 할리우드보다 뉴욕 패션계라고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남다른 감각과 멋진 스타일을 지닌 그녀는 오랜 기간 패션 연예계의 셀럽, 잇걸로 더 큰 주목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본의 아니게 리지와 아버지 사이의 갈등을 확대시키는 하녀 브리짓 역은 최근 활동의 영역을 크게 확장하고 있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맡아 호흡을 맞춘다. 인간과 뱀파이어의 사랑을 다뤄 크게 성공하며 영어덜트 소설 영화화에 포문을 연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벨라’ 역을 통해 벼락스타로 등극한 그녀는 최근 들어 저예산 독립영화들에서 더 많은 활약을 하며 클로에 세비니와 유사한 행보를 걷고 있다. 전설이 된 도끼살인 용의자 189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폴 리버에서 대부호인 앤드류 보든이 재혼한 아내와 함께 도끼로 얼굴을 가격당해 살해되는 잔혹한 사건이 벌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거된 용의자는 충격적이게도 피해자의 딸 ‘리지 앤드류 보든’(사진)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고 결국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얻어낸다. 하지만 사건은 이후에도 심각하게 보도되며 대중들에게 노출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의혹은 증폭되어만 갔다. 지금까지도 역사상 가장 참혹한 살인사건 중 하나로 언급되며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대중의 호기심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까지 해석되고 있을 정도다. 아직까지 수많은 관련 보도와 저서가 발행되고 있으며 사건을 재구성하고 해석하는 르포 프로그램들과 영상물이 만들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그녀의 이름을 전면에 내건 메탈 록그룹이 있을 정도다. 영상물로 가장 유명한 작품은 1975년 TV용 영화로 만들어진 <리지 보든의 전설>이다. 이전까지 전설처럼 떠돌던 사건을 진지하게 극화한 첫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2014년에는 TV용 영화로 공개된 <리지 보든 툭 언 액스>가 나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는 <아담스 패밀리> 등을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 친숙한 아역 출신 배우 크리스티나 리치가 리지 보든 역을 맡아 나쁘지 않은 반응을 이끌어내 다음해 시리즈물로 확장된 <리지 보든 연대기>로까지 이어졌다. 유명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한 에피소드에도 리지 보든은 등장했으며, 2013년 제작된 B급 영화 <리지 보든의 복수>에서는 혼령에 씐 그녀의 후손이 친구들을 살해한다는 황당한 설정을 보여준다.
- 시네프리뷰
- [‘엄마, 숨이 안 쉬어져’](46) ‘가습기 살인사건’의 진짜 범인은 삼성이다(2017. 07. 24 17:44)
- 2017. 07. 24 17:44 사회
-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 직전에 삼성이 홈플러스를 테스코에 매각했다고 해서 책임이 없어질까요? 당연히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삼성이 이 참사에 관련이 없는 것으로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입니다. 2017년 7월 3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삼성물산 본사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홈플러스PB 가습기살균제 판매의 책임이 삼성에게 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1997년 삼성그룹의 삼성물산은 대구에 홈플러스 매장을 처음으로 개설합니다. 이어 1999년 영국 테스코(TESCO)와 반반씩 투자해 삼성TESCO를 설립합니다. 테스코는 영국에서 가장 큰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여러 나라에서도 유통업을 하는 세계적인 기업이죠. 이후 삼성의 홈플러스는 전국에 매장을 141개까지 확대하고 매출액 11조원을 올리며 국내 2위의 유통회사로 급성장합니다. 삼성TESCO의 홈플러스는 2005년부터 2011년까지 7년간 홈플러스 PB(자체 브랜드)인 ‘가습기청정제’라는 이름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 30만개를 판매합니다. 삼성TESCO의 홈플러스가 판매한 가습기청정제는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롯데마트의 PB 와이즐렉과 같은 PHMG라는 이름의 살균제 성분을 사용했습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살균 성분을 사용한 제품의 피해자가 가장 많고 사망자도 가장 많습니다. 자체 브랜드 만들어 30만개나 판매 2011년 삼성은 돌연 TESCO에 홈플러스의 지분을 매각합니다. 테스코는 법인명을 삼성TESCO에서 홈플러스로 변경합니다. 2011년 8월 31일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죠. 시기적으로 볼 때 삼성이 홈플러스를 매각한 배경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과의 관련성이 의심되는 대목인데, 아직 이 부분에 대해 밝혀진 내용이 없습니다. 2015년 TESCO는 7조2000억원에 홈플러스를 MBK파트너스라는 기업에 매각하고 한국을 떠납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알려졌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나몰라라 하고 검찰 역시 손을 대지 않고 있는 시기에 이 사건의 주요 다국적기업이 슬그머니 발을 뺀 것입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7년여가 돼가는 사이에 삼성은 단 한 번도 이 참사와의 관련성이 언론에 제기된 바 없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2016년 3월 피해자들과 환경보건시민센터가 10여개의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들을 연속적으로 검찰에 고발할 때, 홈플러스의 책임기업으로 삼성 임원 6명과 테스코의 임원 22명을 검찰에 고발했지만 검찰은 이들에 대해서 전혀 수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담당하는 환경부는 사건 발생 5년이 지난 2016년 6월쯤에야 전체 피해자를 조사하는 연구용역을 한국환경보건학회에 의뢰합니다. 연구 결과는 2017년 5월 26일 학회의 학술대회 자리에서 발표되었죠. 가습기 살균제 제품 사용자는 350만~400만명으로 추산되고, 제품 사용 후 건강피해 경험자는 40만~50만명이며, 제품 사용 후 건강이상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피해자는 30만~50만명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삼성은 소비자와 국민에 사과해야 하지만 환경부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내부 참고자료로만 이용한다’고 하네요. 환경부는 여전히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데 소홀하고 관심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지난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에 문재인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대책 마련과 재발 방지, 그리고 피해자를 직접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환경부는 여전히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쉬쉬하며 진상규명과는 거리가 먼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환경보건학회의 연구 결과에는 제품 구매자들에 대한 조사도 있었습니다. 제품 구매자들의 89.9%가 홈플러스,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할인마트에서 구입했다고 조사됐습니다. 그리고 여러 제품의 중복 사용을 포함한 조사에서 삼성TESCO가 홈플러스를 운영할 때 판매했던 홈플러스의 ‘가습기청정제’ 제품을 구매한 사용자가 전체의 23.3%에 이르렀습니다. 이와 같은 환경부의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삼성이 판매한 홈플러스 가습기 살균제의 전체 사용자를 추산해보면 80만~90만명에 이릅니다. 홈플러스 제품을 사용한 후에 병원 치료를 받은 피해자는 7만~11만명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신고된 피해자는 실제 피해규모의 1∼2%에 불과하죠. 피해자 고발 불구 검찰은 수사 안 해 삼성이 TESCO와 함께 홈플러스를 운영하던 2005년부터 2011년 사이에 삼성은 2001년부터 판매된 옥시싹싹이나 2003년부터 판매된 롯데마트 PB 가습기 살균제 상품을 성분까지 동일하게 카피해서 ‘가습기청정제’라는 이름의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30만개나 판매했습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 직전에 삼성이 홈플러스를 테스코에 매각했다고 해서 책임이 없어질까요? 당연히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삼성이 이 참사에 관련이 없는 것으로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특징 중 하나가 국내 대기업들이 대거 연루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SK그룹의 SK케미칼, 롯데그룹의 롯데마트, 신세계그룹의 이마트, LG그룹, GS그룹 등입니다. 여기에 삼성그룹의 삼성물산이 그동안 비켜나 있었지만 밝힌대로 깊숙이 관여했고 책임이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검찰은 집단사망사건으로서 삼성과 테스코를 수사하고, 공정거래위원회는 관련사항을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 삼성은 소비자와 국민에게 사과하고, 자체적인 피해조사를 실시해 피해대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2017년 7월 3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삼성물산 본사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홈플러스PB 가습기살균제 판매의 책임이 삼성에게 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가습기살균제 Q&A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구글코리아 사장 존 리 7월 19일 오후 1시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역삼역 바로 옆에 있는 ‘강남파이낸스센터’ 앞에 일군의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이들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어 펼쳐든 것은 몇 장의 현수막이었는데 ‘구글코리아는 살인자 존 리를 해임하라’, ‘Go to jail, John Lee’라는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한 사람이 펼쳐들 수 있는 작은 현수막에는 ‘제2의 옥시를 막자’, ‘가습기 사태 방관한 존 리, 구속 수사하라’, ‘억울하게 죽어간 우리 아이 살려내라’는 말들이 적혀 있습니다. 강남파이낸스센터에는 구글코리아가 입주해 있습니다. 구글코리아는 IT강국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구글코리아의 CEO가 존 리(John Lee·미국 국적·한글 이름 리존청)라는 인물인데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자입니다. 그는 2005년 6월 1일부터 2010년 5월 10일까지 5년여 동안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RB)의 대표이사를 지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바로 존 리가 옥시RB를 책임지는 CEO를 지낸 바로 이 기간에 가장 많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이 판매되었고 피해자도 가장 많이 발생했습니다. 형사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이야기인데,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제품에 ‘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광고문구를 사용하는 데 대해 옥시 내부에서 이의가 제기되었지만 사장인 존 리는 계속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만약 이때라도 존 리가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문제가 안 생기는지 점검하도록 했다면 피해자를 상당히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2016년 5월 법원이 존 리의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7월 검찰이 그를 불구속 기소했고 11월 징역 10년을 구형했습니다. 그러나 2017년 초 법원은 1심 판결에서 그와 외국인 임원에 대한 수사 미진을 이유로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무죄가 나온 것입 니다. 이에 검찰이 항소했고 7월 26일 항소심 판결이 나옵니다. 2016년 8월 말 국회에서 열린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존 리는 증인으로 채택되었지만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옥시RB가 자체적으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의 독성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서울대 교수 등을 통해 동물실험 결과를 조작하고 증거를 없애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옥시RB 및 RB 본사 등의 여러 외국인 직원들이 증인으로 채택되었지만 이들도 존 리와 같이 청문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와 국민, 그리고 피해자들을 우롱했다는 지적이 쏟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들은 구글코리아 사장 존 리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핵심 인물이라고 지적합니다. 참사의 핵심 주범이자 살인자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피해자들은 존 리를 감옥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피해자들은 가습기 살균제 형사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가 존 리를 엄벌하고 법정구속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최소한 검찰의 1심 구형량인 징역 10년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또한 피해자들은 구글코리아가 존 리를 CEO에서 해임해야 한다고 기자회견에서 주장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특징 중 하나는 유럽계 다국적기업들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많이 제품을 팔고 피해자도 가장 많은 옥시RB는 영국계 레킷벤키저이고, 삼성과 함께 가습기 살균제 PB 상품을 만들어 판 홈플러스는 영국계 테스코였으며, 119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판 헨켈은 ‘홈피파’로 유명한 독일 기업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세퓨의 원료를 공급한 것은 덴마크의 케톡스였고, 알약 제품인 엔위드 완제품이 수입된 나라는 아일랜드였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검찰의 수사 미비로 이들 유럽계 다국적기업의 어떤 외국인 임원들도 책임지지 않고 있고 법원의 단죄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강남파이낸스센터’ 앞의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존 리와 같은 핵심 책임자인 외국인 CEO를 단죄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다국적기업이 수많은 소비자를 죽게 하고 다치게 했어도 아무런 죗값을 물지 않아도 되는 ‘호갱’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수천 수만명의 영유아와 산모 등을 죽이거나 아프게 하고도 책임지지 않는 파렴치한 다국적기업의 외국인 사장을 단죄하지 않고 IT산업계의 대표적인 기업인 구글코리아의 CEO로 놔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 ‘엄마, 숨이 안 쉬어져’
- [북리뷰]여자 형사의 살인사건 수사(2017. 06. 19 15:37)
- 2017. 06. 19 15:37 문화/과학
- 하버 스트리트 앤 클리브스 저·윤소영 역·구픽·1만4000원 아가사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 이후 많은 여성 탐정과 형사가 등장했다. 여전히 남성에 비하면 부족하다. 여성이라는 점을 활용하여 사건을 풀어가는 유형도 간혹 있지만 새러 패러츠키의 VI 워쇼스키, 기리노 나쓰오의 무라노 미로,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의 프레셔스 라모츠웨 등 여탐정/형사 캐릭터의 다수는 남자들의 세계에서 절대 밀리지 않고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만들어냈다. 영국 작가 앤 클리브스의 베라도 마찬가지다. 1986년 데뷔한 앤 클리브스는 1999년 베라 스탠호프를 처음 소설에 등장시켰다. “범죄소설 분야에서 강하고 그럴 듯한 여성 주인공이 드물다는 걸 깨달았다. 현실적이고 살아 움직이는 여성 캐릭터를 원했고 그래서 베라 스탠호프를 만들었다.” 는 영국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져 7시즌까지 이어졌다. 베라 스탠호프는 사냥개 같은 형사다. 부하이자 파트너인 조 애쉬워스는 그녀를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개’라고 생각한다. 단서를 잡으면 절대 놓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맹렬하게 달려가는 끈질긴 형사. 하지만 베라가 비정하고 고집불통인 것만은 아니다. “얼음처럼 냉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가끔 증인과 마음이 통하면 그 사람을 돕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하곤 했다. 동정의 대상은 주로 서툴고 경멸받는 외톨이들이었다…. 베라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 퍽퍽했던 어린 시절은 베라를 강인하지만 온정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다. 베라 스탠호프 시리즈의 6번째 작품 는 뉴캐슬의 전철에서 70대 노인이 살해당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하버 스트리트의 작은 호텔에서 일했던 마가렛은 일처리가 확실하고, 성당을 다니며 봉사활동에도 열심인 우아한 여성이었다. 부유한 집 외동딸이었지만 반대를 무릅쓰고 폴란드 남자와 결혼했다가 금방 헤어진 후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하버 스트리트에서 살아왔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녀의 비밀이 하나 둘 밝혀지고,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한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외관만 본다면 너무나 평화롭고 안온한 하버 스트리트에도 수많은 비밀이 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도 차마 말할 수 없는 비밀들. 는 전통적인 구성의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든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을 것 같은 이가 살해당하면서 평화로운 작은 마을의 비밀이 하나둘 밝혀진다. 무고해 보이던 이웃이 하나 둘 용의자로 떠오른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범인은 의외의 인물이다. 미스 마플이 등장하여 사건을 풀어가도 어색하지 않을 것 풍경의 이지만 사냥개 같은 베라 스탠호프가 나오면서 전체적인 톤이 변한다. 베라는 영리하게 수사팀을 이끈다. 가정적이면서도 끈기 있는 조와 야망에 불타는 홀리 등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독단적으로 좌충우돌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하면서도 원활하게 팀을 이끌면서 중심을 잡아간다.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대단히 유려하고, 모든 이들의 복잡한 마음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수사 자체보다 그들이 느끼는 마음의 풍경이 더 흥미로울 정도로. 를 보면 알게 된다. 범죄는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어느 순간 변질되면서 본색을 드러내는 것임을.
- 북리뷰
- [터치스크린]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재벌가 며느리 살인사건의 진실(2016. 06. 14 09:58)
- 2016. 06. 14 09:58 문화/과학
- 제목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제작연도 2016년 제작국 한국 러닝타임 120분 장르 액션, 모험 감독 권종관 출연 김명민, 김상호, 성동일, 김영애, 김향기 개봉 2016년 6월 16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과거 표창까지 받았던 모범경찰 최필재(김명민 분)는 억울하게 퇴직한 후 지금은 호형호제지간인 변호사 김판수(성동일 분)가 운영하는 초라한 사무실에서 브로커 노릇을 하고 있다. 경찰생활에서 키워온 순발력과 직감, 인맥으로 끊임없이 사건을 물어오는 놀라운 영업능력을 발휘하는 필재지만 내심 그를 지탱하는 것은 자신을 나락으로 내몬 동료형사 용수(박혁권 분)에 대한 복수심뿐이다. 어느 날 ‘대해제철 며느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구형받고 복역 중인 권순태(김상호 분)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필재는 이제는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진 당시의 사건에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는 것과 무엇보다 당시 수사담당자가 용수였음을 알게 되면서 다시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영화 는 최근 관객들이 선호하는 한국영화의 요소들을 얄미울 정도로 고루 지니고 있다. 살인사건의 범죄 미스터리를 기본으로 깔고 있지만 코미디와 액션으로 재미를 확장하고, 주제 면에서는 최근 사회적으로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가진 자의 갑질 횡포를 건드린다. 보고 있노라면 결말까지 지루하지 않게 시간이 흐르는데, 문득문득 앞서 성공한 몇 편의 작품들에 대한 기시감이 발동된다.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된 딸바보 아버지, 가진 자의 철옹성을 뚫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평범한 사람들의 분투 등등…. 제작진의 의도가 무엇이든 특정 작품들을 노골적으로 떠올리게 된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또 과연 가당키나 할까 싶은 장면들도 눈에 띄는데, 보편성과 현실성을 떠나 최소한의 고정관념을 벗어나니 작품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그러면서도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아내는 힘은 적절히 매력을 분배한 캐릭터들의 배치와 이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배우들의 호연에서 비롯된다. 모처럼 어깨에서 힘을 뺀 김명민은 망가지고, 평소 고만고만한 비슷한 배역에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던 김상호는 에너지를 쏟아내 이전과 다른 그만의 연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성동일, 김영애, 김향기, 김뢰하, 박혁권 역시 경중은 다르지만 각자의 자리를 충분히 매력적으로 소화해내고 있다. 애초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캐릭터에 중점을 둔 감독의 노력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S 다이어리」, 「새드 무비」 등 코미디와 멜로 감성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10여년 만에 복귀한 권종관 감독은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영남제분 여대생 살인사건’, ‘익산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같은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고 한다. 갈수록 주변의 불합리하고 불행한 사건들을 남의 일로 외면하며 살아가는 데 익숙해지는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 작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무거운 이야기지만 무겁지 않게 풀어나가는 것도 그에겐 중요한 과제였다. 결론적으로 그의 작심은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룬 듯하다. 과정은 다소 산만할지언정 충분히 전하고자 하는 주제의 감정과 가치를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힘은 넉넉하고 따뜻하다. 최근 한국영화의 두드러진 경향처럼 이 작품 역시 성공 여부에 따라 속편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영화의 속편이야 환영이지만 제발 소재가 될 만한 씁쓸한 사건들은 잦아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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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치스크린]폭스캐처-20년 전 실화에 근거한 살인사건(2015. 01. 27 11:12)
- 2015. 01. 27 11:12 문화/과학
- 그린나래미디어(주) 제목 폭스캐처 (Foxcatcher) 제작연도 2014년 제작국 미국 러닝타임 134분 장르 드라마 감독 베넷 밀러 출연 채닝 테이텀, 스티브 카렐, 마크 러팔로 개봉 2015년 2월 5일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 잠시 동안 삶을 지탱하는 성취의 영광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지고 더 크게 그 자리를 메우는 결핍의 공허함은 삶의 무게를 버겁게 만든다. 하지만 포기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살아가야 하므로 애써 힘을 모아 두꺼운 안개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안개 너머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이전보다 더한 고통이 가득한 격투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해도 선택의 여지는 없다. 부모의 이혼으로 어려서부터 형 데이비드 슐츠(마크 러팔로 분)를 의지해오며 성장한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는 유망한 레슬링 선수다. 끈끈한 형제애는 그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반면 언제나 형의 뛰어난 재능 뒤에 상대적으로 묻히는 자신의 능력과 평가에 대한 열등감은 꾸준히 그를 괴롭힌다. 어느 날, 막강한 재력가이자 레슬링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후원을 자처하는 존 듀폰에게 연락을 받은 것을 계기로 마크의 삶은 조금씩 깊은 나락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데뷔작부터 꾸준히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를 만들어온 베넷 밀러 감독은 이번 세 번째 작품의 소재로 1996년 벌어진 일명 ‘존 듀폰 사건’을 선택했다. 가난한 레슬러 형제와 재벌 후원가 사이에서 벌어진 총기살인은 사건 그 자체가 갖는 흥미로움에 비해 내막은 베일 속에 묻힌 채 종결되어 더욱 유명해진 사건이기도 하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의 틈새를 상상력으로 채우는 것이 무엇보다 즐거운 작업”이라고 고백하는 감독에겐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욱 매력적인 소재였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남다른 안목으로 캐스팅한 배우의 장점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밀러 감독은 스타 제조기로도 유명하다. 엄밀히 말해 오스카(아카데미 시상식 트로피) 제조기란 말이 맞는 말이다. 장편 극영화 데뷔작인 로 이젠 고인이 된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고, 두 번째 작품 에서는 브래드 피트와 요나 힐을 연기상 후보에 올렸다. 이번 작품 역시 극중 ‘존 E 듀폰’ 역의 스티브 카렐과 ‘데이비드 슐츠’ 역을 소화한 마크 러팔로를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게 해 세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전까지 코미디 배우로 이미지가 강한 스티브 카렐의 연기 변신은 단연 화제다. 매부리코에 숱 없는 머리로 전혀 다른 사람을 만들어낸 뛰어난 분장의 힘도 무시할 수 없었겠지만, 알 수 없는 불안과 외로움을 고스란히 드러낸 그의 내면연기는 파격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 시절 레슬링 선수를 지냈던 마크 러팔로 역시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실감나는 경기 장면을 소화한다. 여기에 자신만의 전매특허인 온화하면서도 섬세한 감성연기를 더해 눈길을 끈다. 밀러 감독의 독특한 재능들은 회를 거듭할수록 뛰어난 기교와 완성도로 발전되어가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개성과 심리는 한층 입체적으로 재단되었고, 극의 전개 역시 다양한 템포로 능수능란하게 조율되어 궁극의 몰입을 유도해낸다. 이를 증명하듯 작품 는 작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어내고 2월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감독상, 각본상을 비롯한 5개 부문 후보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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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치스크린]살인사건 수사 ‘대국민 사기극’(2010. 10. 26 17:37)
- 2010. 10. 26 17:37 문화/과학
- 제목: 부당거래(不當去來) 제작연도: 2010년 러닝타임: 119분 장르: 범죄, 액션 감독: 류승완 출연: 황정민, 류승범, 유해진, 천호진, 조영진 개봉: 2010년 10월 28일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희대의 미성년 연쇄살인사건으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힌다. 연이은 범인 검거 실패로 민심은 분노하고 경찰에 대한 불신으로 술렁이는데 설상가상으로 가장 유력했던 용의자가 어이없게 죽어버림으로써 사건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결국 경찰청은 사건을 조작해서라도 종결짓기를 결심하고 광역수사대 최철기(황정민 분)를 해결사로 선택한다. 경찰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매번 승진 대상에서 밀려나고 최근엔 뇌물수수 의혹까지 받아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한 철기에겐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는 건달 출신으로 최근 온갖 비리를 통해 급성장한 해동건설 장석구(유해진 분)의 꼬투리를 잡아 범인으로 내세울 인물을 포섭하게 만들고 사건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탄탄대로를 걸어오던 검사 주양(류승범 분)은 최근 자신과 공생하던 태경그룹 김 회장(조영진 분)을 입찰비리로 구속시킨 최철기의 뒤를 캐던 중 그의 배후에 강한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다. 때마침 연쇄살인사건 수사의 마무리가 주양에게 맡겨지고, 생존과 이득을 위해 서로 속고 속이기를 반복하는 이들의 암투는 걷잡을 수 없이 얽혀간다. 연출을 맡은 류승완은 이제 한국영화시장에 있어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몇 안 되는 중견감독들 중 하나가 되었다. 2000년 당시로서는 드물게 저예산 독립영화 를 전국 개봉하고 흥행적으로나 비평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경쾌한 데뷔식을 치른 그는 말 그대로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액션영화 전문 감독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꾸준히 작품활동을 펼쳤고 전반적으로 흥행에도 성공했지만, 아쉽게도 자신만의 개성이라 할 만한 안정된 작품 색을 찾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완성도라는 부분에 있어서도 그리 신뢰를 주는 감독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 는 이전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다. 감독 류승완의 작품계보에 있어 분명한 전환점을 부여하는 작품이 되었다. 영화 는 다양한 장르의 색이 적절히 어울렸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풍미를 지닌 작품이다. 시작과 함께 돌출되는 아동 연쇄살인이라는 소재는 최근 범죄수사물에 심취한 관객들에게 잠시나마 추리수사물의 기대와 흥분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나 중심인물들이 하나 둘 등장하고 본격적인 음모가 펼쳐지기 시작하면서 이내 범죄 스릴러의 본색을 드러낸 영화는 좀처럼 예상하기 힘든 결말에 이르러서는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사회드라마로서의 힘까지 발휘한다.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국가적 사기극이라는 소재부터가 이제까지 선보였던 범죄사기극과는 규모를 달리해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지만 상당히 민감한 사안임이 분명하다. 더구나 그 중심에 절대적 신뢰의 대상이 되어야만 할 경찰과 검찰이 서있다는 설정은 꽤나 위험한 발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행히 영화가 수용할 수 있는 허용범위 안에서 충분히 납득할 만한 전개를 통해 사건을 펼쳐 보이는데, 다소 복잡할 수 있는 사건과 인물관계를 명쾌하게 분석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낸 각본의 재치가 눈에 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극의 가치를 드높이고 있는 핵심은 표면적 사건보다 하나하나의 등장인물 모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행동의 당위성에 있다. 뚜렷한 선과 악의 구분보다는 결국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인물들의 갈등은 험난하고 각박한 사회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관객들에게 동질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를 가능케 한 데는 당연히 배우들의 연기가 한몫을 하는데, 과거 자신들의 이미지를 벗어낸 황정민, 류승범의 콤비플레이는 그의 팬들이 아니더라도 만족할 만한 볼거리다. 결국 영화 는 장르영화의 재미와 본분을 잃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 2010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투영하는 데도 성공하고 있다. 최고까지는 아니더라도 두루두루 만족을 주는 작품이 되었다. 아울러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던 감독 류승완의 진일보는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장점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최원균
- [사회]‘이태원 살인사건’ 미해결로 끝나나(2009. 09. 03 13:57)
- 2009. 09. 03 13:57 사회
- ㆍ미국 국적 소년 두 명의 충동 범죄… 공소시효 3년 남기고 영화화 억울하게 목숨을 빼앗긴 고 조중필씨.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고 있을까. 사진은 대학 시절의 조중필씨 모습.둘 중 하나는 살인범임이 확실하지만 둘 다 무죄로 풀려난 이상한 사건. 12년 전 서울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발생한 홍익대생 고 조중필씨(당시 23세) 살해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이 9월10일 개봉된다. 이를 계기로 조중필씨 살해사건을 되새겨 봤다. 1997년 4월3일 밤 10시경. 홍익대 휴학생 조중필씨는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다 주려고 서울 이태원동에 갔다가 소변이 마려웠다. 동갑내기 여자친구 김 모씨는 근처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고, 중필씨는 급히 화장실을 찾았다. 감자튀김을 먹으며 기다리다가 시간이 돼도 중필씨가 나오지 않자 화장실 쪽을 바라보던 김씨는 한 남자가 입을 손으로 막은 채 뛰쳐나오는 것을 봤다. 이어 남자종업원이 화장실을 들여다보다가 역시 입을 막고 뛰쳐나왔다. 김씨는 화장실로 향했다. 중필씨가 피투성이인 채로 소변기 옆 귀퉁이에 머리를 박고 쓰러져 있었다. 김씨는 중필씨를 흔들며 119를 불러달라고 외쳤다. 119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중필씨는 이미 맥박이나 호흡이 정지돼 있었고 동공도 확대돼 있었다. 사망한 것이다. 중필씨는 오른쪽 목 부위 세 곳, 가슴 부위 두 곳, 왼쪽 목 부위 네 곳 등 무려 아홉 군데나 칼에 찔린 상태였다. 휴학생 조중필씨 난자 당해 사망 이날 그 햄버거 가게 건물 4층에는 미국 국적의 10대 남녀 20여 명이 술과 콜라 등을 마시고 있었다. 밤 10시경, 이들 중 브라이언 리(가명, 당시 18세)가 랜디와 함께 1층 햄버거 가게로 내려와 햄버거를 먹었다. 이어 제이미 패터슨(가명, 당시 18세), 제이슨 등 다른 친구들도 내려와 옆자리에서 햄버거를 주문해 먹었다. 이때 패터슨은 자신의 접히는 휴대용 칼을 꺼내 햄버거를 반으로 잘랐다. 패터슨(또는 리)이 화장실로 들어가는 중필씨를 봤다. 패터슨(또는 리)은 “내가 뭔가 보여줄 테니 따라와라”고 말했고 둘이 화장실에 들어간 지 얼마 안돼 조씨는 변을 당했다. 당시 화장실에는 세 사람밖에 없었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죽었으니 적어도 남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살인범이다. 패터슨은 멕시코계 미국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리는 미국에서 태어난 재미교포다. 사건 이튿날인 4월4일 용산 미8군 헌병대에 제보 전화가 걸려 왔다. 패터슨이 이태원의 햄버거 가게에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내용이었다. 헌병대로부터 제보를 전달받은 미군범죄수사대의 한 수사관이 햄버거 가게에 가보니 한국 경찰이 진을 친 상태였다. 수사반장을 불러달라고 했더니 고참인 김낙권 형사(현재 서울 용산경찰서 강력1팀장)가 나왔고, 미군범죄수사대 수사관은 제보 내용을 전했다. 김낙권 팀장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미군범죄수사대의 도움을 받아 미8군 용산기지 내 드래곤호텔에서 잠복한 채 기다렸더니 패터슨이 나타났어요. 바로 검거해 1층 화장실로 데리고 갔죠. 마침 화장실에 누군가 있어서 그가 나간 후 화장실 문을 잠근 채 몸 전체를 수색하고 호송해 미군범죄수사대로 데리고 갔어요. 미군범죄수사대는 사건 당시 패터슨, 리와 함께 햄버거 가게 건물에 있던 그들의 친구들을 불러 조사한 결과 등을 토대로 패터슨을 살인범으로 지목했어요. 우리에게 신병을 인도할 때도 그런 의견을 진술서와 함께 전달했고, 우리도 미군범죄수사대와 같은 판단을 했어요.” 미군범죄수사대 살인범 패터슨 지목 미군범죄수사대가 패터슨을 살인범으로 판단한 배경은 당시 미군범죄수사대 반장으로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 토마스 반즈가 1999년 SBS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다. 반즈는 이 인터뷰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패터슨의 친구 랜디는 사건 직후 패터슨으로부터 자기가 살인을 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미군범죄수사대에서 증언했습니다. 리는 상의 오른쪽 가슴과 어깨 및 등 뒤, 신발 등에 스프레이로 뿌린 듯한 핏자국이 있었던 반면에 패터슨은 머리부터 발 끝, 양손까지 피투성이었어요. 또 조씨를 살해한 수법은 미국 갱단인 ‘노르테14’가 사용하는 난폭한 공격 수법과 같은데 실제 패터슨의 문신, 옷차림, 사진에서 보이는 손가락 3개로 만드는 표시는 모두 ‘노르테14’ 표시입니다. 패터슨은 이를 내 앞에서 시인했고, 친구들에게도 ‘노르테14’ 단원이라고 얘기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나는 지금도 패터슨이 범인임을 확신합니다.” 또 4층에 있던 멕큐라는 이름의 친구는 “리가 피묻은 셔츠를 입고 테이블로 와서 ‘우리가 어떤 친구의 목을 칼로 찔렀다’며 깔깔 웃더니 ‘그저 재미로 그랬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네가 사람을 죽였지’ 하고 소리를 쳤더니 리는 ‘나는 아니야’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죽은 자는 있으나 죽인 자는 밝히지 못했다. 사진은 1997년 4월 현장검증에서 범행 당시를 재연하고 있는 용의자 패터슨. 사건 직후 패터슨은 친구 존을 만나 바지를 바꿔 입고, 둘 중 하나가 범행에 사용한 휴대용 칼을 하수구에 버렸다. 피묻은 셔츠는 불태웠다. 드래곤호텔 뒤편 벤치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집으로 가서 피묻은 신발을 바꿔 신고 이튿날 드래곤호텔 보관함에 피묻은 바지, 양말, 셔츠 2벌 등을 넣었다. 한편 리는 4월8일 검찰에 자수했다. 6일 패터슨이 TV에 나오는 것을 본 아버지가 잠든 아들을 깨워 묻자 사정을 털어놓았고, 이튿날 아버지와 함께 변호사를 만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이때 경찰은 리를 쫓고 있었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검사로서 리를 살인죄, 패터슨을 증거인멸 등 혐의로 각각 기소한 박재오 변호사의 말이다. “잠복형사들로부터 리가 아버지와 함께 서초동의 한 변호사사무실에 들어가 있는데 어떻게 할지를 묻는 전화가 걸려 왔어요. 리가 만나고 있는 변호사는 검찰청을 그만둔 지 얼마 안 된 선배였어요. 제가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거기에 리가 있느냐. 경찰들이 밖에 있다. 어떻게 할 거냐’고 했더니 당황한 선배가 당신이 직접 리를 검찰청에 자수시키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자수 형태가 된 거예요.” 그런데 리와 패터슨 두 사람은 수사기관에서 법정에 이르기까지 줄곧 상대방이 살인자이고 자신은 목격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반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김낙권 팀장은 “피의자 심문을 할 때 미국 시민권자 대표들이 참석했는데, 리와 패터슨이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떠들고 장난을 쳤을 정도로 불량한 태도를 보였다”며 “특히 패터슨은 노련한 거짓말쟁이로 보였다”고 회상했다. 김 팀장은 또 “나중에 둘을 대질심문할 때 서로 상대방이 범인이라면서도 서로의 몸을 껴안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전했다. 반면에 박재오 변호사는 “패터슨은 맨 처음 봤을 때 비쩍 마른 게 정말 불쌍한 친구로 보였으며, 검찰청에서 조사받을 때도 얌전했지만 리는 수사받는 태도가 굉장히 거칠었다”고 기억했다. 박재오 당시 검사는 리를 살인범으로 지목했다. 근거는 조씨 시신에 대한 서울대 법의학교실의 부검 결과와 거짓말탐지기 결과, 친구 제이슨의 진술이었다. 4월5일 부검을 실시한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의 소견에 따르면 칼에 찔린 목의 상처가 위에서 아래로 향하고 있고, 그 가운데 두 번 깊게 찌른 공격으로 목 가운데에까지 관통하면서 혈관이 잘려 치명적이었으며, 피해자의 방어흔(가격을 당한 피해자가 이를 막다가 생기는 상처)도 없는 것으로 보아 상대는 피해자보다 키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 짧은 시간에 ‘묻지마’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피의자는 정신이상자이거나 환각상태일 것으로 추정했다. 박재오 변호사는 “재판이 끝날 때 패터슨의 키가 176㎝까지 자랐지만 검찰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패터슨의 키는 167㎝에 53㎏이었다”면서 “반면에 리는 183㎝에 105㎏의 거구였다”고 말했다. 사건 당시 조중필씨의 키는 176㎝였다. 거짓말탐지기 결과도 리에게 불리하게 나왔다. 리는 거짓말, 패터슨은 진실을 말하는 것으로 나온 것이다. 또 사건이 일어난 날 함께 있은 제이슨이라는 친구는 검찰 조사에서 “마지막으로 리가 칼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어떤 남자가 화장실에 들어가자 리가 패터슨에게 ‘뭔가 보여주겠다. 따라와라’고 말하면서 둘이서 화장실로 가는 것을 봤다”고 진술서에 썼다. 그러나 같은 날 리와의 대질심문에서는 “분명히 누군가 그 말을 하는 것을 들었으나 누가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고 번복했다. 살인자·목격자 “상대방이 범인” 공방 조중필씨 살해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의 포스터.박재오 변호사는 부검 결과 살인범이 환각상태에서 범행했을 가능성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리가 자수 형식으로 긴급체포된 날 저녁 서울지검 마약부에서 리의 집 앞에 대기하고 있었어요. 리에게 보내지는 인형 몸 속에 마리화나(대마초)가 숨겨 있는 것을 세관에서 발견하고 지검 마약과에 연락했기 때문이죠. 마약부가 리의 집을 수색해 마리화나를 압수했는데 마침 리가 긴급체포되는 바람에 마리화나에 대해선 기소되지 않았어요. 리는 패터슨을 비롯해 이태원을 근거로 노는 미 군속 아이들에게 마리화나를 팔아왔던 거예요.” 결국 박재오 검사는 4월26일 리를 살인혐의, 패터슨은 증거인멸 등 혐의로 각각 구속기소했다. 법정에서는 박재오 검사와 리 측 변호사 간의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다. 리는 1997년 10월2일 서울지법과 1998년 1월26일 서울고법에서 살인죄가 각각 인정돼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1998년 4월24일 리에게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려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패터슨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스러워 리가 단독범행을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1998년 9월30일 서울고법은 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리는 풀려났다. 그리고 1999년 9월3일 재상고심에서 대법원은 리에 대해 무죄확정판결을 내렸다. 한편 패터슨은 1998년 1월26일 서울고법에서 증거인멸 등 혐의로 징역 장기 1년6월 단기 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그해 8월15일 8·15특사로 풀려났다. 리가 무죄로 석방되자 조중필씨 가족은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재수사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패터슨은 검찰이 출국정지 조치를 제때 연장하지 않는 바람에 미국으로 달아났다. 검찰은 패터슨을 출국금지하고 수사해 오다 1999년 8월 인사 이동 과정에서 사흘 동안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았고, 그 틈을 타 패터슨이 미국으로 출국, 사실상 수사가 중단된 것이다. 당시 검사와 경찰 진범 지목 엇갈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이들의 견해는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박재오 변호사는 “나는 지금도 리가 범인이라고 확신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당시 대법원의 논리는 검사가 리가 범인인 것을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 증명해야 하는데 못했다는 것으로, 리가 범인일 가능성이 많지만 다른 점을 판단하면 패터슨도 범인일 수 있기 때문에 무죄 판결을 내린다는 것이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설령 패터슨을 기소한다고 해도 대법원의 무죄판결 논리라면 패터슨에게도 역시 무죄가 선고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 사건은 그가 2000년 검사직을 그만두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최선을 다한 이 사건으로 스트레스가 컸던 데다 그런 논리로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나는 게 정의가 아닌데 내가 검사생활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고 말했다. 반면에 패터슨을 진범으로 확신한다는 김낙권 팀장은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당시 박 검사가 미웠다”면서 “검사로서 넓게 보고 경찰과 미군범죄수사대 의견도 듣고 기소했으면 이 같은 일이 없었을 텐데 너무 부검의의 말만 듣고 피상적으로 기소한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것이 죽은 이가 있고, 둘 가운데 한 사람이 죽인 것은 확실한데 죽인 자가 밝혀지지 않은 기이한 사건의 전말이다. 살인죄 공소시효는 15년. 아직 3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그러나 패터슨은 해외에 있고, 리는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더 이상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살인죄로 처벌받을 수 없다.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연출한 홍기선 감독 “유가족 상처 건드릴까 염려스러워” 조중필씨 살해 사건을 영화로 만든 이유는. “2005년에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조씨와 관련된 사이트를 보게 됐다. 미해결된 사건이 미묘했다. 당시 한·미행정협정과 같은 미국문제를 영화로 만들어 볼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이례적으로 미군이 신병을 바로 한국경찰에 넘기며 협조한 사건이었다. 내가 이 사건에서 주목한 것은 한국인의 피가 섞인 미국 국적의 아이들이 보인 문화적 정체성이었다. 재미로 사람을 죽인 것이다. 이들의 모습은 현재 미국문화와 한국문화가 혼재된 한국의 모습을 대변하기도 한다.” 검사를 주인공으로 세운 배경은 무엇인가.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을 많이 한 끝에 갈등하는 검사에 맞추기로 했다. 실제 박재오 변호사를 만나보니 의협심이 강한 분으로 느껴졌다. 또 주류검사라기보다 조직과 충돌하는 아웃사이더 검사 이미지를 지닌 것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용의자들을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나. “난 범인을 밝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사건의 의미, 두 사람을 다 풀어주게 된 과정, 그 아이들의 문화적 미묘성 등에 초점을 맞추는 데 주력했다. 사실 걱정이 앞선다. 피의자이던 두 사람 모두 어딘가에 살아 있고, 그동안 어떻게 변해 있을지도 모르는데 누군가에겐 큰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유가족에게도 도움은 되지 않은 채 괜히 상처만 더 건드리는 게 아닌지 염려스럽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조중필씨 사건은 나 말고도 영화하는 사람들이 영화 소재로 많이 관심을 보였다. 희한한 것은 일단 영화작업에 들어가니까 지난해 말부터 제작비 마련부터 캐스팅까지 모든 게 술술 풀려가는 느낌이었다는 점이다. 꼭 누가 도와주는 것 같았다.” 조중필씨 누나 조문옥씨 “영화 계기로 재수사 이루어지길” 조중필씨가 끔찍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유가족의 가슴에 조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특히 아버지 조송전씨(69)와 어머니 이복수씨(66)에게 지난 12년은 단 하루도 마음 편히 다리를 뻗고 잠을 이룰 수 없던 고통의 나날이었다. 잔혹한 살인범을 눈앞에 두고도 결국 죗값을 치르게 하지 못했다는 원통함과 억울하게 목숨을 빼앗긴 외아들의 한을 제대로 풀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진 지 오래다. 8월27일 자택에서 만난 조중필씨의 셋째누나 문옥씨(38)는 12년 전 사건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쏟았다. 문옥씨는 “동생이 그렇게 죽은 것도 견딜 수 없는 일이었는데 둘 중 한 사람이 분명 살인범임에도 둘 다 풀려난 상황을 지켜보면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감이 생긴 것은 물론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정말 원망스러웠다”고 토로했다. 조중필씨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가 곧 개봉되는데, 심경이 어떻습니까. “2년 전에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가 저희 가족을 찾아왔어요. 영화 제작을 위해 가족의 동의를 구하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영화가 나온다고 사건이 해결되는 게 아닌 데다 간신히 추스르고 있는 상처만 더 덧날 것 같아 반대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허락하자고 하셨어요. 이나 처럼 실화를 담은 영화를 통해 국민들이 그 사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 경우가 있다고요. 더구나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두 사건과 달리 우리 중필이 사건은 둘 중 한 사람이 확실한 범인이잖아요. 어머니는 혹시 이 영화를 통해 검찰이 재수사를 할지도 모른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계세요.” 사건이 일어난 1997년 4월8일 동생의 죽음, 어떻게 전달받았나요. “직장에서 회식한 후 밤 10시 넘어서 퇴근해 집에 있었어요. 그런데 11시 넘어 순천향병원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며 부모님이 부랴부랴 나가셨어요. 30분 후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중필이가 죽었다고요. 남은 식구들도 정신없이 병원으로 갔어요.” 살인범으로 기소된 브라이언 리(가명)는 대법원에서 동생을 살해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고, 제이미 패터슨(가명)은 검찰이 출국 금지를 연장하지 못한 사이 미국으로 출국했습니다. 그때의 심경은 어땠습니까. “중필이의 장례식을 치른 이튿날 새벽에 살인용의자가 검거됐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그런데 용의자가 검찰로 송치된 후 우리 가족은 둘 중 하나가 살인범이 분명하니까 둘 다 살인죄로 기소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박재오 검사는 리가 살인범이 확실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런 줄 알았어요. 하지만 리는 살인범으로 기소된 후 1년6개월 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거예요. 우리는 다시 패터슨을 살인범으로 고소했지만 패터슨은 미국으로 도망갔잖아요. 그 순간 검사도 법원도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었어요. 다 짜고 하는 것 같았고요. 사법부에 대한 불신감이 생긴 것은 물론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원망스러웠어요.” 박 검사가 원망스럽겠네요. “원망하는 마음이 있어요. 애초에 둘 다 살인죄로 기소했으면 이런 어이없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동생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어려서부터 모범생이었어요. 대학에 다니면서도 꼬박 장학금을 받았으니까요. 전자나 전파 쪽에 관심이 많아 전공을 그쪽으로 했고, 졸업 후 유학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요. 학자가 꿈이었죠. 부모님께도 효자여서 대학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해 모은 돈으로 어머니께 오디오 세트를 사 드리기도 했어요. 그걸로 좋아하시는 트로트음악 들으시라고요.” 사건과 관련해 누구보다 부모님의 충격이 크셨겠지요. “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어머니를 원망하곤 했어요. 동생이 강원도 화천으로 자대배치된 지 한 달도 안 돼 축구하다가 인대를 다쳐 국군수도병원에서 의가사제대를 한 것이거든요. 그때 아버지의 뜻과 달리 어머니가 의가사제대를 고집하셨어요. 동생이 그리 돼 속상하니까 아버지는 어머니를 향해 분풀이를 하셨어요. 의가사제대만 안 했어도 이런 비극은 없었지 않았겠나 하는 마음이었던 거예요. 부모님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생이 쓰던 방과 소지품, 사진액자를 그대로 두었어요. 지금은 대부분 소각하고 일부만 남겨 두었어요.” 공소시효가 3년 남았는데요. 시간이 흐르는 게 안타깝겠네요. “영화를 계기로 재수사가 이루어지길 바라요. 정말 어머니의 바람대로 검찰에 의협심 강한 검사가 있어 이 영화 개봉을 계기로 우리 중필이의 목숨을 빼앗은 살인범을 지금이라도 잡아 죗값을 치르게 해줄 순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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