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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선거법 개정, 공론화를 통해 결정하자(2017. 11. 06 15:10)
- 2017. 11. 06 15:10 오피니언
-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끝나자 정부에서는 이를 민주주의의 승리로 규정하였다. 이어서 대선 공약에서 언급했던 탈핵 로드맵도 발표했다. 이런 모습은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참여정부 시절 중저준위 방사성페기물 처분장 부지를 선정하기 위해 3000억원 이상의 막대한 지원금을 내걸고 주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찬성률이 가장 높게 나오는 지역으로 부지를 선정한다는 발표를 했다. 치열한 경합 끝에 경주가 최종적으로 결정되자 정부는 이를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두 정부 모두 정치적으로 부담이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민주주의라는 방편을 이용한 것이다. 물론 차이도 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주민투표를 실시해서 형식적으로는 민주적인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민주주의가 지원금에 좌우됐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숙의민주주의의 한 형태인 공론조사를 활용했기 때문에 적어도 민주주의가 다른 의도로 이용되었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물론 공론화 방식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거나 양자택일 방식을 선택한 것은 처음부터 문제로 지적되었다. 현 정부에서 발표한 탈핵 로드맵 역시 탈핵을 주장했던 측에서 보면 너무 느리고 의지가 없는 것으로 비쳐지고, 이에 반대하는 측에서 보면 국가경쟁력을 훼손시키는 무모한 처사로 비쳐진다. 다양한 이유로 공론화에 대한 비판들이 존재하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가 앞으로 어떤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차분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핵심은 사회-기술시스템의 전환과 민주주의의 관계일 것이다. 탈핵은 단순히 핵발전소 개수를 줄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사회-기술시스템 전체의 전환을 지향한다. 즉, 사람과 자연이 모두 공생할 수 있는 사회-기술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기능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아마도 사회 전체 구성원이 장기간에 걸쳐서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틀을 만들고, 이를 계속 보완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즉, 민주주의가 진정성 있게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서 사회-기술시스템의 전환이 지속되도록 하는 중요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내년 6·4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 일정을 논의해 달라고 주문했다. 옳은 주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실질적 양당제 체제하의 국회의원들에게 이 말이 제대로 먹힐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시민들이 다시 촛불을 들고 국회의원들을 압박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동시에 선거법 개정을 공론화 방식으로 결정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어떨까? 다양한 집단들의 민의가 정확하게 반영되고, 사회-기술시스템의 전환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선거제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공론화 방식으로 결정해보자는 것이다. 국민들이 자신들의 의견이 충실히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공론조사, 합의회의, 시민배심제도 등 우리에게 적합한 방식을 고르면 된다. 공론화도 자꾸 해보면 더 잘할 수 있다. 공론화를 통해 선거법을 개정하고, 개편된 선거를 통해 민주적인 의회가 만들어진다면 우리 사회-기술시스템은 좀 더 지속가능해지지 않을까?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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