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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정치 발전 위해 선거제도 개혁 꼭 실현”
“풀뿌리 정치 발전 위해 선거제도 개혁 꼭 실현”(2024. 04. 22 06:00)
2024. 04. 22 06:00 정치
TK 대표하는 유일한 야권 당선인, 임미애 인터뷰 임미애 더불어민주연합 제22대 국회의원 당선인이 4월 15일 국회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4·10 총선에서 경북 의성의 한 ‘농민 가족’이 ‘두 개의 선거’를 치렀다. 남편인 김현권 전 의원(더불어민주당 후보)은 경북 구미을 지역구에서 낙선했다. 아내인 임미애 후보(비례정당 더불어민주연합)는 13번으로 겨우 턱걸이 당선했다. 비례투표 개표 결과 더불어민주연합은 14석을 확보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군의원·도의원 등으로 풀뿌리 정치를 해온 임 후보는 경력만으로 독특하다. 이번 당선 역시 진기한 기록을 낳았다. 22대 국회에서 대구·경북(TK)을 대표하는 유일한 야권 당선인이다. 그리고 22대 국회를 통틀어 유일한 농민 출신 의원이 됐다. 18대 국회 강기갑 의원(민주노동당)과 20대 국회 김현권 의원(민주당) 이후 농민 출신으로 국회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지난 4월 15일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 앞에서 인터뷰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일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국회 행정안전위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했다. 22대 국회에서 풀뿌리 정치의 발전을 위한 선거제도 개혁을 꼭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번 선거에서 남편이 낙선했다. “집안 분위기가 좀 ‘이상해졌다’. 농담 삼아 ‘둘이 같이 다니지 말자’고 한다. 만나는 분들이 한 명은 축하하고, 한 명은 위로를 해야 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사실 ‘정치인 임미애’가 여기까지 온 데에는 남편의 역할이 컸다. 내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흔들릴 때 남편이 중심을 잘 잡아줬다. 남편은 배우자이자 동료 정치인이다.” -선거 승률로 보면 누가 더 높나. “내가 더 높다. 나는 군의원·도의원 선거에서 바로 당선됐고, 2022년 경북도지사 선거에서만 낙선했다. 남편은 2004년·2012년(의성), 2020년(구미을) 총선에 이어 네 번째 낙선이다. (옆에서 보면) 남편은 ‘좋은 정치인’이다.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아 한 번도 일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이 있다.” 이 부분에서 임 당선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김 전 의원이 민주당으로서는 가장 험지인 TK에서 매번 떨어질 때마다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의 입장도 오죽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임 당선인이 총선 이후 바쁜 일정을 보내는 탓에 인터뷰 섭외가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김 전 의원에게 전화했더니 “인터뷰 문의는 부인에게 직접 전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당선인의 표현처럼 ‘정치인 임미애’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한 답변이었다. 민주당 TK 후보들은 이번 총선에서도 고전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25석을 모두 석권했다. 20대 국회에서 비례대표 의원으로 활동한 김 전 의원은 민주당 후보로서는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33.36%)을 얻었다. -TK에서 민주당의 성적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난 총선보다 민주당 TK 후보의 득표율이 더 떨어졌다. 민주당이 이번 총선의 압승에 취해 있을 것이 아니라 TK·PK(부산·경남)의 표가 무엇을 의미하느냐 분석해봐야 한다. 나는 (2027년 대선에서)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길 바란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고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쓴소리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귀를 열어놓고 들어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이재명 대표에게 경북지역 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잘못 알려졌다. 한 중진 의원에게 사석에서 지역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전했을 뿐이다. 그 중진 의원에게서 ‘당대표는 전국 선거를 지휘해야 하는 역할이 따로 있다’는 답을 듣고 충분히 공감했다. 건의도 아니었는데, 이야기가 이상하게 기사를 통해 흘러나왔다.” “지난 총선보다 민주당 TK 후보의 득표율이 더 떨어졌다. 민주당이 이번 총선의 압승에 취해 있을 것이 아니라 TK·PK의 표가 무엇을 의미하느냐 분석해봐야 한다.” -2년 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어떻게 TK 선거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보나. “대선 승리로 가는 디딤돌을 놔야 한다. 2022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패배한 0.73%포인트가 약 24만 표다. TK에서 24만 표를 더 얻으려면 30%의 득표율을 기록해야 한다. 지금 지역에 25명의 민주당 출신 기초의원이 있는데 2026년 지방 선거에서는 ‘골목 정치인’을 더 많이 당선시켜 대선을 앞두고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국회에 들어가면 선거제도 개혁에 앞장서려고 한다. 첫째로는 기초의원 3인 이상 선거구를 늘려 지방자치가 충분히 구현되도록 하고 싶다. 광역의원 선거에서는 대구와 광주 등에서 무투표 당선이 50%를 훨씬 넘어간다. 한계를 드러낸 거다. 전체 지역은 힘들더라도 경북·전남 같은 광역의원 선거에서 시범적으로 정당명부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도록 해야 한다.” -농민 출신의 유일한 당선인인데 선거제도 개혁까지 하려면 힘들겠다. “선거제도 개혁 때문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로 가려고 한다. 농업은 내가 물론 전문가다. 전문 보좌인력을 둬서 농업도 챙길 것이다. 하지만 내가 ‘TK 대표선수’로 왔는데 농업 직능으로 제한된 일만 할 수는 없다.” 임미애 더불어민주연합 제22대 국회의원 당선인이 4월 15일 국회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기 위해 우산을 쓰고 입장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농업 관련 최대 이슈였는데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로 결국 입법화되지 못했다.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해 입법화해야 한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정부가 쌀값을 유지하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미리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깊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강제수매법’이라고 몰아세우는데 그렇지 않다. 억지에 불과하다. 윤 대통령이 여러 번의 거부권 중 처음으로 행사한 법인데, 농민들은 ‘우리를 우습게 여긴다’고 이야기한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또 행사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4월 18일 국회 농해수위에서는 야당 의원들이 여당의 불참 속에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21대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것으로 의결했다. -이번 선거 운동 초반에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86세대 운동권 청산론’을 내세웠다. 이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이제 갓 국회에 입성해 초선 의원이 되는데, 운동권 청산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 위원장은 이번 총선에서 얻은 것이 하나도 없다. 원래 지는 선거에서도 얻는 것이 있다. 나는 2022년 경북도지사 선거에서 졌지만 ‘정치인 임미애’로서 얻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말도 안 되는 운동권 청산론과 이·조 심판론을 내세웠다.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났다. 미래지향적 메시지도 보여주지 못한 가장 어리석은 선거를 한 거다.” -같이 학생운동을 했던 86세대 운동권들은 이미 민주당 안에서 중진이 됐다. 바깥에서 봤을 때 이들의 정치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나. “2020년 민주당이 180석을 확보했을 때 정치 개혁 이슈를 주도적으로 던졌어야 했다. (다음 총선에서) 의석을 손해 보더라도 선거제도 개혁을 우선으로 해야 했다. 그런데 거대 양당이 싸우기만 했고 미래지향적인 정치를 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검찰개혁이 쟁점이 됐다. 그때 민주당은 여당이었다. 조금만 내려놓았더라면 민주당이 국민에게서 훨씬 더 많은 신뢰를 얻었을 것이다.” -2015년 문재인 당대표 시절 김상곤 혁신위에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혁신위원으로 함께 일했다. 이번에 조국혁신당의 약진으로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에서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이번 총선에서 윤석열 정부 심판 민심이 이렇게 거셀 줄 몰랐다. TK에서는 ‘정치인 임미애’를 위해 ‘1·3번 몰방 투표’를 많이 이야기했다. 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TK의 대표성 문제였다. 만약 내가 떨어졌다면 지역 지지자를 바라볼 면목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당에서 안정권에 배정했다. 당에서는 걱정했지만 나 자신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조국 대표와 혁신위 시절 처음 알았나. “남편(김현권 전 의원)과 조국 대표가 같은 대학 같은 학번이어서 친분이 있었다. 의성에서 풀뿌리 정치를 할 때 직접 와서 강연도 해주었다.” -한때 민주당에서 ‘조국의 강을 건너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유권자들은 이번 총선 심판을 ‘조국 리스크’에 내린 것이 아니라 검찰권력의 무분별한 횡포에 내렸다.” -향후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건 당 지도부에서 결정할 일이다. 다만 조국혁신당이 쇄빙선의 역할을 한다고 했는데, 민주당이 쇄빙선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특검과 같은 국민의 요구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임 당선인은 지금도 경북 의성에서 축산업을 하고 있다. 새끼 낳는 어미 소 40마리와 송아지 등 모두 60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 옛날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했던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졌다. -국회에 입성하면 ‘소는 누가 키우나?’ “남편이 키운다.” -소 농사는 누가 더 잘하나. “내가 더 잘한다. 송아지를 낳고 나면 잘 관찰해야 한다. 아무래도 내가 남편보다는 관찰력이 더 좋다. 조금만 아프면 찾아내 치료하기 때문에 폐사율이 낮다. 그런데 솟값이 떨어져서 요즘 걱정이다.” 임 당선인은 한때 서울에서 살았지만 서울 지리를 잘 몰라 다음 약속 장소와의 이동에 걸리는 시간을 기자에게 물어보았다. 노란 우산을 펼치며 솟값 걱정을 하더니, 인터뷰 장소를 떠났다.
선거제 개편,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2023. 09. 08 11:24)
2023. 09. 08 11:24 정치
ㆍ여야 모두 역시나 ‘퇴행’ 중…전문가 참여 기구 설치해야 지난 4월 선거제도 개선과 관련해 국회 전원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 박민규 선임기자 선거제 개편의 목표는 ‘비례성 증진’이다. 비례성을 강화한 바람직한 선거제를 모색하기 위해 지난 3월에는 19년 만에 국회 전원위원회 회의를 열었다. 지난 5월에는 선거제 개편에 관해 500여명의 시민을 모집해 공론조사를 실시했다. 총선을 7개월 앞둔 지금, 국회에서 전개되는 선거제 개편 논의는 ‘비례성 증진’이라는 당초 목표와 멀어져 있다. 국민의힘이 ‘병립형 회귀’를 고수하는 가운데, 여야의 협상 테이블에는 ‘‘병립형 회귀’냐 ‘위성정당 재현’이냐’와 같은 퇴행의 선택지들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지난 9월 1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각각 의원총회를 열고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고 전국을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중부(충청, 대구·경북, 강원), 남부(호남, 부산·울산·경남, 제주) 등 3개로 나눈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비례대표 선출방식이나 비례대표 의석수 등과 관련해서는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비례대표 선출방식으로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를 주장한다. 정개특위 안건으로 올라와 있지는 않지만, 김기현 대표 등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현재 300석인 의원 정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은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고 비례대표 정수를 늘리자고 주장한다. ‘병립형 회귀’는 퇴행 국민의힘은 ‘병립형 회귀’를 주장하면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할 경우, 다시 위성정당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구분한 뒤, 정당득표율은 비례대표 의원 선출에만 적용하는 방안이다. 정당 득표율이 10%면, 현재 비례의석 47석 중 10%인 4.7석(반올림 5석)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2016년 총선까지 적용됐고 2019년 선거제 개편으로 폐지됐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이 전체 의석수에 반영되지 않아 비례성이 떨어지고,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어렵게 해 양당정치를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총의석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대안으로 제시돼왔고, 2020년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됐다. 연동형에서는 정당이 지역구에서 정당 득표율만큼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거나 초과 확보했다면 이를 비례대표 의석을 통해 조정한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에 한해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결과와 일부 연동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됐다. 이마저도 당시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이 비례전용 위성정당을 창당하면서 선거제도 개편의 취지는 무색해졌다. 경실련 분석에 따르면, 위성정당을 창당하지 않았다면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 의석수는 6석, 15석이었다. 양당은 위성정당 창당으로 각각 17석 19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 출현을 막기 위해서는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20년 장제원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은 ‘병립형’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2020년 의원 전원 명의로 헌법재판소에 ‘준연동형 비례제’에 대해 위헌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지난 7월 20일 헌법재판소는 이를 기각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기존 병립형 선거제도보다 선거 비례성을 향상시킨 제도”이며 “헌법을 위배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헌재의 결정이 나오자,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폐지 당론에 따라 21대 국회에서 무더기로 발의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폐지 법안을 모두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지난 7월 3일 여야 '2+2 선거제 개편 협의체’가 발족했다. / 성동훈 기자 거대 양당에는 이득?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이 ‘병립형 회귀’에 민주당도 결국 합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병립형’이 거대 양당에 이익인 만큼 민주당도 ‘병립형 회귀’에 타협할 수 있다는 우려다. 김찬휘 선거제도개혁연대 대표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21대 총선에서 정의당·국민의당·열린민주당의 득표율은 21.9%였으나 세 당의 의석수는 4%에 불과했다. 김 대표는 “위성정당이 없었다면 3당은 비례의석 26석을 가져가야 했고, 47석이 다 준연동형인 지금의 경우라면 34석을 가져야 했다. 그런데 겨우 11석을 얻었다”라며 “그런데 이를 병립형으로 바꾸게 되면 10석으로 더 줄어든다”라고 말했다. 거대 양당의 입장에서 보면 병립형이 위성정당보다 더 이득이라는 분석이다. 전국단위가 아닌 ‘권역별 병립형’이 되면 거대 양당은 더 유리해진다. 김찬휘 대표는 “비례대표제 인원만 보장되면 권역별이 비례성도 증진하면서 지역갈등도 해소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원 수는 크게 늘리지 않고 이를 3개의 권역으로 나눠버리면 소수 정당의 진입장벽은 더 높아진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계산상 편의를 위해 비례대표 의석수를 48석으로 상정하면 전국단위 병립형 비례대표제라면 4% 득표 정당에 2석(1.92석)이 배정된다. 그런데 3개 권역으로 나누고 각 권역에 16석을 배정하면, 진입장벽이 높아져 6% 이상을 얻어야 1석을 확보할 수 있다. 김찬휘 대표는 “21대 총선에 적용하면 권역별 병립형의 경우 3개의 정당의 의석수는 10석 이하로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준연동형’이 유지될 경우 다시 ‘위성정당 재현’이 우려되는 만큼 민주당으로서는 손해 볼 것 없는 ‘병립형’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찬휘 대표는 “(민주당이 병립형으로 회귀한다면) 2020년 위성정당을 만들 때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비판하며 “민주당은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얻으면 개혁이 증진될 거라고 했지만 3년이 흐른 지금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증명됐다. 민주당은 병립형에 타협하지 말고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만들더라도 다른 진보정당들과 연정하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병립형 회귀’와 ‘준연동형 폐지’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측 관계자는 “지난번 의총에서 보니 당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또 우리 주장대로 준연동형으로 유지된다고 해도 국민의힘에서 위성정당을 만들 문제가 있다”라며 “협의가 하나로 모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에서도 서영교 의원, 김종민 의원이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을 발의한 바 있다. 공론조사 결과와 어긋나 양당의 논의는 지난 5월 시민 500여명이 참여한 공론조사 결과와도 어긋난다. 정개특위는 선거제 개편 공론화를 위해 시민참여단을 모집했고, 시민참여단은 지난 5월 발제, 패널토의, 토론, 전문가 질의응답 등 숙의 토론을 진행했다. 지난 8월 29일 2024정치개혁공동행동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5월 국회에서 실시한 시민 공론조사 결과에서 병립형보다 비례성이 개선된 제도개혁방안을 지지한 의견이 52%였고, 병립형은 41%에 불과했다”라며 “만약 거대 양당이 공론조사 결과를 무시한다면 이는 약 11억원의 예산을 들인 공론조사 실시의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공론조사 결과 비례대표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지지도가 대폭 증가했지만, 이에 대한 논의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국회의원 정수를 10% 감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례대표를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은 숙의 전보다 43%포인트 증가한 70%를 기록했고, 의원 정수 확대 역시 찬성 의견이 20%나 늘었다. 경실련은 “국민의힘은 국회의원 수 축소를 주장했다. 국민 공론조사 결과와 정면 배치되는 제안이다. 이를 견제해야 할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핑계삼아 의석수 확대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며 양당을 비판했다. 선거제 개편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양당 원내수석부대표와 정개특위 간사로 이뤄진 ‘2+2 협의체’에서 논의돼왔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선거제 개편이 양당의 ‘밀실야합’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거대 양당만 참여하고 정의당 등 소수 정당은 소외되면서 선거제 개편이 다가오는 양당의 수싸움으로만 전개될 수 있다는 우려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9월 1일 자신의 SNS에 “이번 선거법 개정의 핵심은 비례성 강화다. 그래서 비례대표 수와 연동률이 핵심 쟁점인데 그 이야기는 빠졌다. 그렇다면 몸통 없이 다리부터 그렸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그려진 몸통은 가리고 발표한 것인가”라며 “선거법 개정을 논의해야 할 정개특위는 개점휴업 상태로 만들고 철저히 밀실 양당 협상으로 진행된 그 내막을 도무지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밀실 협상의 과정은 알 수 없으나, 양당이 혹여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를 추진한다면 이는 분명한 선거제도의 개악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선거제도 개편을 이해당사자인 국회의원에게 맡기지 말고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기구를 설치해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의 제도를 통해 당선된 현역 의원들이 자기 자신을 선출하는 선거제를 왜곡되지 않게 개혁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신당 성공 여부 선거제 개편에 달렸다(2023. 08. 11 15:10)
2023. 08. 11 15:10 정치
ㆍ농민당 비롯, 6개 신당 추진 중…원내·외 소수정당도 촉각 내년 총선을 앞두고 창당러시를 보이고 있는 신당들은 얼마나 파괴력을 가지게 될까. 사진은 지난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이화동 한 담벼락에 대선 출마자들의 선거후보 벽보가 붙어 있는 모습 / 한수빈 기자 “당연히 내년 총선에서 후보를 내야지요. 원래는 비례 중심으로 하려 했는데 중간에 이야기하다 보니 전국 후보를 내는 것이 맞지 않냐, 그런 이야기가 나와서 의견을 취합 중입니다.” 8월 7일 기자와 통화한 한국농민당(가칭·이하 농민당) 창당준비위원회 김진범 사무총장의 말이다. 농민당은 지난 3월 30일 중앙당 창당준비위원회가 발족했다. 5월에 중앙선관위에 결성신고를 했고, 전남과 경북에 이어 지난 7월 4일 대전에서 대전광역시 시당 창당발기인대회를 열었다. 농민당이 선거철을 앞두고 ‘고만고만하게 추진되는’ 원외신당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농민당 측이 제공한 ‘창당준비위원회 진행현황’ 문서에 따르면 “홀대받는 농업·농촌을 지키기 위해 농민당을 만들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농민단체·농민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대두됐다고 한다. 2014년부터 농민단체 전임 임원들을 중심으로 창당을 추진했으나 당시엔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마침내 올해 2월 사무실과 상근 사무총장을 두는 등 조직을 정비해 정당을 등록하기에 이르렀다. 대전에서 열린 창준위 행사에는 강기갑 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이영호 전 17대 국회의원 등이 참여해 축사를 했다. 박영준 대표나 김진범 사무총장의 이력서를 보면 한농연(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등 농업단체 활동경력이 눈에 띈다. 농민단체들이 농업문제 단일이슈 정당을 추진하는 셈이다. 현행 선거법상 정당의 창당은 중앙당창당준비위원회 결성신고→시·도당 등록신청→중앙당 등록신청의 순으로 이뤄진다. 선거법상 한국에서 지역정당은 허용되지 않는다. 창당 때 5개 이상의 시·도당이 있어야 하며, 각 시·도당의 당원은 ‘주소지가 당해 시·도당 관할구역 안에 있는’ 1000명 이상의 명부를 내야 한다. 말하자면 전국정당만 가능하다. 농민당의 경우 9월까지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고 10월 말을 목표로 창당할 계획이다. 대부분 11~12월 시점을 목표로 중앙선관위의 ‘창당준비위원회 현황’을 보면 현재 창당을 준비하는 곳은 농민당만이 아니다. 세종신당, 페미니즘당, 한반도미래당, 한국의희망, 국민주권당 등 6개 창준위가 활동 중이다. 창당 완료 목표일을 보면 양향자 의원이 주도하고 있는 한국의희망은 12월 28일, 국민주권당이 내년 1월 10일이다. 대부분 11~12월 시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부터 시작해 내년 2월까지 정치권의 요동이 변화무쌍할 것이다. 말씀하신 공천학살부터 시작해 별의별 이합집산이 다 나타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의 말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기존 거대양당에서 개혁을 명분으로 하는 ‘공천학살’이 신당 추진이 힘을 받는 모멘텀이 되지 않겠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계속되는 그의 말이다. “정의당을 기준으로 본다면 뚜렷한 가치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휩쓸려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박 전 의원은 김종대 전 의원과 함께 당내 의견그룹인 대안신당모임의 고문이다. 그는 내년 총선을 포함, 정의당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본다. “현재의 정의당으로 어렵다, 안 된다는 것을 당내에서는 부정하는 사람들이 없다. 당 바깥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양당에 대해 공히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정치를 하는데 국민이 환멸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국민이 정의당을 실행정당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정당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정의당을 넘어서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정치 어젠다 공급을 민주노동당에서 정의당으로 이어지는 왼쪽에서 해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내년 총선에서 목표가 “양당 바깥에 새로운 정치 주체를 만들어 새로운 정치적 충격을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요한 것은 가치·비전·정체성은 씨앗처럼 작고 단단하게 갖고, 정치는 열매처럼 크게 풍성하게 하는 것인데 현재의 정의당은 반대다. 지역구는 심상정 한명, 비례 4~5석, 그것도 민주당 지지자 교차투표로 먹고사는 이 정당을 언제까지 할 것이냐. 새로 당을 만들더라도 (민주·국민의힘 양당의) ‘공천탈락자 떳다방’처럼 할 순 없으니, 일종의 가치연합적인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최대연합을 하자는 것이다. 양당체제를 일단 깨놓고 정치지형 설계는 그다음 고민하면 되는데 우리끼리 뭐를 하겠다, 우리만이 대한민국 제3세력이다, 라고 고집한다면 누가 그걸 알아주겠나.” 7월 30일 여의도 카페 ‘하우스’에서 열린 새진추(새로운 시민참여진보정당 추진을 위한 제안모임) 토론회에 참여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위선희 새진추 대변인 페이스북 먼저 정의당 떠난 ‘새로운진보’ “민주당보다 노무현답게, 정의당보다 노회찬답게” 지난 7월 7일 ‘새로운시민참여진보정당 추진을 위한 정의당 전·현직 당직자 탈당자 일동’의 탈당 기자회견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동안 바깥에서 현 정의당에서 가장 먼저 이탈할 것으로 예견됐던 것은 조성주·장혜영·류호정 공동운영위원장이 주도하고 있는 ‘세번째 권력’이었다(주간경향 1528호, “거대 양당 이탈한 ‘메인무대’ 책임질 새 정당 필요하다” 조성주 세번째 권력 공동운영위원장 인터뷰 참조). 그런데 먼저 떨어져 나온 쪽은 당내 페미니즘 이슈 등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온 ‘새로운진보’였다. “지금 시대의 위험성과 윤석열 정부의 역주행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국가비전을 급진적이고 진보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이후의 고민, 다시 말해 복지국가를 전면적으로 실행해야 정치의 민주화를 넘어 자본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런 방향에서 노회찬 전 대표는 현실주의 행보를 했다. 타협과 협상이 정치의 미덕이라는 것을 알았고, 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유연할 줄 알았다. 그것을 따르겠다는 말이다.” 탈당선언문에서 노무현과 노회찬을 거론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내놓은 정혜연 새로운진보 운영위원의 말이다. 그는 “새로운진보가 민주당 중심성을 버리지 못한다”는 비판에 대해 “지역선거에서는 민주당을 찍으면서도 비례에서는 민주노동당·정의당을 찍던 10%의 유권자들이 한국사회를 진보하게 하고 더 개혁하게 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라며 “민주당 편이 아니라 민주당이 잘못하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제 역할을 못 하니 그런 유권자들이 투표에 안 나오고 실망해 정치참여를 그만두는 것이다. 나는 진보정치가 시민들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가 등장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진보정치에 실망해 등을 돌린 30대나 20대 유권자들에게 우리가 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임팩트 정당이 되겠다고 하는 것도 우리 지지가 커지면 범진보진영이 그 방향으로 가게 되리라는 뜻이다.” 당내 의견그룹 ‘새로운진보’가 정의당에서 탈당하며 내건 공식 이름은 ‘새로운시민참여진보정당추진을 위한 제안모임’(약칭 새진추)이다. 정호진 새진추 운영위원장은 정의당이 진보정당으로서 수명을 다했기 때문에 새로운 당을 추진하게 된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음식솜씨 없는 식당이 간판을 바꾼다고 하루아침에 손님이 구름떼처럼 모이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동안 몇 차례 혁신의 기회가 있었지만 다 시기를 놓쳐버렸다. 이정미 대표 체제에서 재창당 결론을 내면서 정의당 이름까지 바꾸는 방안도 고려하겠다고 했는데 당명 바꾸고 일부세력 규합한다고 해서 정의당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는 “진보정치를 낡았다고 비판하는 분들을 정의당이 안고 가고 있는데 사실상 그것은 해당행위다”라며 “강력한 경고도 부족한 마당에 자정 능력마저 상실한 것이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진보가 아닌 중원의 길을 가겠다’면서도 아직 당내에 머무르고 있는 세번째 권력 측과 정의당 지도부를 겨냥한 비판으로 보인다. 금태섭 새로운당, 인물영입 답보? 내년 총선을 겨냥한 신당 중 제일 여론의 주목을 받는 그룹은 금태섭 전 의원 등이 주도하고 있는 새로운정당추진위원회, 약칭 ‘새로운당’이다. 7월 13일 새로운당은 정책 파트 총괄책임자로 경제노동전문가 한지원씨를 영입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7월 3일에는 당 이름을 확정하고 당 집행위원장으로 정호희 전 민주노총 대변인을 임명했다. 새로운당은 매주 월·수·금 논평을 내지만 두 사람의 영입 소식만 있을 뿐, 그후 한 달 가까이 새로운 인물이 합류했다는 소식이 없다. 7월 4일 일부 매체에서 국민의힘 쪽에서 정태근 전 의원, 정의당의 박원석 전 의원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신당 합류에 합의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박 전 의원은 “금태섭 당에 함께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곽대중 새로운당 대변인에게 물었다. 지난 7월 4일 대전에서 열린 한국농민당(가칭) 대전광역시 당 창당준비위 발기인 대회에서 강기갑 전 민주노동당 의원(가운데 흰 도포)을 포함한 참석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한국농민당 제공 -논평을 내는 것을 보면 국민의힘보다 민주당 비판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아무래도 여권보다는 야권에서 내홍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해서인가. “논평을 내는 입장에서 민주당 비판을 더 많이 낸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논평을 작성할 때 비판의 무게중심을 국민의힘 70%, 민주당 30%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비판은 많지만 국민의힘 관련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 비판이 국민의힘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힘이 정당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한다고 생각하나. 국민의힘 쪽 분들은 왜 민주당 비판을 안 하고 이쪽만 비판하냐고 한다. 내심 7 대 3이라고 했지만, 기계적으로 정해놓은 건 아니고 이슈에 따라 대응한다.” -새로운당 인선 발표를 보면 과거 ‘비민주당 좌파성향’ 진보인사로 쏠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집행위원장이나 정책 담당은 외부적으로 알려야 하니 발표했지만 다른 단위까지 오픈할 필요성은 현재 없어 발표하지 않았을 뿐이다. 국민의힘이나 보수 쪽에 있던 분들도 여럿 결합했다. 전체 진용은 9월 말로 예정된 발기인대회 때 공개할 예정이다.” -박원석·정태근 전 의원의 새로운당 결합 논란이 있었는데. “일요모임이라고 친분이 있는 사람끼리 만나는 정치모임이 있었다. 그걸 외부에서 다른 취지 모임으로 오해했다. 논란이 벌어진 후 금태섭 전 의원도 나와버렸고, 박 전 의원도 안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후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금태섭 새로운당 창당추진위원장은 여러 차례 “내년 총선에서 새로운당의 목표는 수도권 30석”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행 선거제도라면 이 제도는 비례 빼고 지역구 30석을 의미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달성 가능할 목표일까. 곽 대변인은 “비례와 지역구를 나눠 기준을 잡는 것은 아니고 양당 기득권 정치의 문제점을 극복하려면 신당이 전체의석의 10%는 차지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선거제 개편 따라 바뀔 신당 ‘총선전략’ 지금 추진 중인 여러 신당을 비롯해 원내·원외 소수정당들이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건 현재 국회에서 추진되는 선거제 개정 방향이다. 지난 총선 때 치러진 제도는 준연동형으로 지역구 253석에 비례 47석이었다. 준연동형 제도는 비례의석 중 30석에 적용됐고, 비례 17석은 병립형, 즉 기존에 치러진 방식처럼 정당투표를 득표율 퍼센티지(%)로 나눠 배분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처음 준연동형 제도가 도입될 당시 제도의 수혜자는 정의당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지역구보다 비례당선인의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이 선거제를 패스트트랙으로 띄우는 데 정의당을 비롯한 3당이 동의한 이유다. 정의당 내적으로는 이 제도로 인해 비례 10번대 중반까지 당선될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에 류호정·장혜영 의원과 같은 청년할당을 비례 앞순위로 배치했다. 그런데 당시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 이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위성정당을 창당하며 계획이 어그러졌다. 비례후보를 내지 않은 대신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의 비례 독식을 막고자 뒤늦게 당시 여권인 더불어민주당도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급조해 선거를 치렀다. 결국 준연동형 제도 도입 취지는 무산되고 비례마저 거대 두 정당이 독차지하고 말았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선거제도 개편은 지난 선거의 문제점을 방지할 수 있을까. 8월 8일, 민주당이 ‘지역구를 240석으로 줄이고 권역별 연동형 비례로 60석을 뽑는 안’을 선거제 협상안으로 확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런데 이것이 민주당의 공식당론인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현행 선거제도의 최대 허점으로 지목돼온 위성정당 문제를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도 없다. 정개특위에 참여하는 민주당 측 일부 의원들의 주장이지 당론으로 합의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당 의원들의 시각이다. “240/60 연동형을 1안으로 하되, 협상 상황에 따라 지역구 225/광역을 포함한 75석 병립형 비례를 대안으로 제시하자는 안”(김종민 의원)도 제시된다. 여기에 국민의힘 측은 “비례대표를 줄여 전체 의원 정수를 10% 줄이는 안”을 내놓고 있다. 만약 선거제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위성정당 방지 조항이 없는” 현행 준연동형 비례선거제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럴 경우 어떻게 될까. 일단 국민의힘은 “지난 21대 총선 당시 현 준연동형 선거제도가 자신들과 합의 없이 만들어진 제도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다시 비례위성정당을 추진할 수 있다. 반면 정치적 책임의 공은 민주당에 돌아간다. 설사 지난 선거제도로 치러진다고 하더라도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 경우 정치적 도덕적 비난을 떠안게 된다. 결국 법 개정으로 위성정당 방지 조항을 삽입하든 아니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당 차원으로 선언하는 방법 이외의 길은 없다. 이때도 지난 총선 당시 열린민주당과 같은 방식의 비례정당이 추진된다면 민주당으로선 손을 쓸 도리가 없다. 일각에서 ‘조국 없는 조국신당’(주간경향 1535호, ‘민주당·호남발로 집중되는 신당 추진’ 기사 참조)이나 검찰개혁신당의 등장을 점치는 이유다. 결국 내년 총선이 선거제 개편없이 ‘민주당 비례위성정당이 없는 조건의 준연동형 비례제’로 치러진다면 정치공학적으로 계산해보면 지난 총선 당시 ‘더불어시민당 17석+열린민주당 3석=20석’의 비례를 두고 여러 신당과 원내·외 소수정당들이 각축을 벌이는 형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준연동형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가게 되면 민주당 쪽에서는 더불어시민당과 같은 위성정당은 절대 아니고 플랫폼 같은 것을 다 여는 범민주연대를 하자는 식의 제안이 나올 수 있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는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김찬휘 녹색당 대표의 말이다. 그는 내년 총선에서 현행 비례대표 할당 하한선인 3%를 돌파하기 위해 각 소수정당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한 가운데 한시적으로 비례연합정당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제대로 된 준연동형으로 선거를 치러본 적이 없으니 유권자 선택이 어떠하리라고 예측하는 것은 무리다.” 전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지낸 하승수 변호사의 말이다. 지난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했지만, 기득권 거대양당이 위성정당이라는 편법을 동원해 제도를 ‘유린’했으므로 제대로 된 준연동형 선거제도로 치러진 선거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는 “국회에서 선거제 개편 논의를 이대로 놔두면 준연동형을 폐기하고 여야합의로 과거의 제도, 병립형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라며 “신당을 하겠다는 사람들이라면 밤샘농성을 해서라도 준연동형 사수·제도개혁에 나서야 하는데 선거제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인지 움직임이 거의 없다”라고 덧붙였다. 새로운당은 양평고속도로, 저출산, 양극화, 권력형 비리 등 정치권에서 논쟁이 되는 현안에 집권여당인 국민의힘과 과거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양쪽 모두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새로운당이 자신의 주장을 담아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포스터 / 새로운당 인스타그램 선거제 문제를 천착해온 최재한 균형사회플랫폼 대표는 “선거제 개편 논의는 정치개혁특위보다 양당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가 OK 사인을 내면 밀실에서 적절히 욕먹지 않는 범위 내에서 타협하는 것이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힘은 현행 제도가 자신들이 만든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명분 싸움에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제도로 치러지면 위성정당을 또 만들 가능성도 있다”라며 “반면 민주당은 위성정당을 다시 만들 명분이 없기 때문에 아예 개혁블록이든, 세대블록이든 외부의 독자정당이 만들어지면 연합하는 방식으로 가려 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역 240명 대 비례 60명 연동제 안은 현재 선거제도보다 비례의원 비중은 높지만 비례전문정당과 같은 소수정당에만 유리하며, 위성정당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다”며 “기존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소수정당을 돌봐주는 ‘자선형 선거제도’로 가다 보니 국민을 설득하지 못했고, 지역구와 비례를 동일비율로 하는 독일식 연동형 취지도 살리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는 국민의힘 측이 주장하는 비례 축소를 통한 국회의원 정수 10% 감축안에 대해서도 “일을 제대로 하려면 상호견제 해야 하는데 지역구 활동하는 일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지금의 행태가 이어진다면 500명으로 늘려도 망한다”라며 “‘국회의원들이 일을 안 하니 숫자를 늘리면 뭐하나, 일을 안 하는 놈은 벌줘야 한다’라고 하는데, 국민도 숫자가 핵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역구 의원 수를 225명으로 줄이고 비례를 75명으로 늘리되, 75명 비례 중 30명을 권역별로 뽑는 병립형 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유권자들이 비례대표에 부정적인 것은 자신이 뽑은 의원이 아니기 때문인데, 권역별 비례의원, 예컨대 박주민 의원이 서울 은평을 지역구가 아니라 서울시 서부광역 국회의원으로 출마해 뽑혀 의정활동을 한다면 내가 뽑은 의원이 아니라는 의식도 사라지리라는 주장이다. 신당 현실적 선택은 ‘몸값 불리기’일까 선거제 변화와 상관없이 내년 선거에서 신당들의 파괴력은 제한적일 것이며, 양당 기득권 강화로 귀결되리라는 전망도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보수 쪽의 경우 신당이 파괴력이 있으려면 차기 주자에다 영남 보수·2030 남성의 일정한 지지율 등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유승민이나 이준석 등은 그런 조건에서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민주당 계열 역시 40대 층에서 특정 지지율과 호남과 586, 2030 여성의 지지가 필요한데 지금 거론되는 신당 추진세력 중 그 조건을 충족하는 그룹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신당을 추진하는 세력을 보면 ‘신당의 길’에 올인하기보다 ‘몸값 높이기’ 또는 기존 정당과 대통합 내지는 재결합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며 “특히 총선이 임박할수록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은 총선승리를 위해 중도 확장을 추구하는데 그때 신당세력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 신당을 추진하는 세력은 이쪽저쪽 모두에 가능성을 열어놓고 몸집 불리기를 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신당이 동력이 생기려면 기존 양당에서 공천상황이 빨리 진행돼야 하는데, 아마 이런 것 때문에라도 양당이 공천을 최대한 미룰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의 경우 당헌·당규상 총선기획단을 6개월 전에 만들어야 하니 공식적으로 10월 14일까지 해야 하는데, 본격적으로 실무에 들어가려면 두세 달은 족히 걸린다. 결국 공천이 탄력을 받으려면 내년 1월에서 2월은 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 전까지 신당이 뭔가 의미 있는 동력을 확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과연 그럴까. 지켜볼 일이다.
선거제 개편, 여야 6월까지 합의할까(2023. 04. 28 10:56)
2023. 04. 28 10:56 정치
ㆍ5월부터 논의 본격화…국회의장 ‘의지’ 불구 곳곳 난관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이 국회 전원위원회 이후 선거제 개편안 도출방법 등을 주제로 4월 24일 국회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 연합 “국회 본회의 열릴 때 의장석에 앉아 꼼꼼히 따져보니까 본회의의 발언 기회가 지지 세력을 결집하는 선전장으로 쓰이고 있어요. 그러니까 서로 어느 의원이 발언을 시작하면 동시에 고성과 야유가 쏟아지기 시작해요.” 4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거버넌스전략포럼’에 참석한 김진표 국회의장의 회고다. 선거제도와 공천제도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열린 이날 행사에서 김 의장의 ‘축사’는 의례적인 경치사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는 5선 국회의원이다. 햇수로 20년을 정치 밥을 먹은 인사다. 그는 선거제 개편을 두고 지난 4월 10일부터 나흘간 열린 국회 전원위원회가 “모처럼 경청과 소통의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국회의원 100분이 참석해 발언했는데 토론에 참여한 거의 모든 의원이 현재 선거제도로는 안 된다는 데는 공감했고, 큰 개편의 방향도 다 공감했어요. 대충 합의된 것은 비례성, 대표성, 그다음에 지방소멸, 이 세 가지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선거제도를 고칠 수 있다는 강한 희망이 있습니다.” “선거제도, 이번엔 고칠 수 있다” 김 의장은 한 표만 이기면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잘못된 선거제도, 특히 “대도시에서 한 구청장 아래에서 2명 또는 3명씩 국회의원을 뽑아 구의원 시의원 활동과 구분되지 않는” 이런 선거제도는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의장이 지적하는 문제는 현행 소선구제의 단점을 말한다. 이 소선구제의 단점은 지난 4월 22일 열린 국회사무처 주최 ‘국회의원과 MZ세대의 맞장토론’ 행사에서도 토론자로 참여한 여야의 세 의원(이탄희 민주당·허은하 국민의힘·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거론한 문제다. 소선구제는 간단히 말해 투표자의 51%를 확보하면 게임이 끝난다. 최대 49%의 사표가 발생한다. 투표율이 100%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유권자까지 포함하면 현실적으로 20~30% 정도의 유효투표만 확보하면 된다. 당선되지 않은 경쟁자나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에게 당선자는 자신의 뜻을 대의한 사람이 아니다. 이른바 대표성의 위기다. 비례성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탄희 의원은 “현 21대 국회는 오부남 국회라는 말을 듣는다”라고 말했다. 오부남, 풀어 설명하면 ‘50대 부자 남성’이 다수인 국회라는 뜻이다. 이 의원이 제시한 통계에 따르면 초선의원의 평균연령이 55세이고, 남성의원 비율이 82%다. 평균재산은 23억원이 넘는데, 대한민국 평균재산의 두 배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지난 2월 2일 이탄희 의원은 10명의 동료의원과 함께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안은 현행 국회의원 정수(300인)는 유지하되, 지역구 253석을 비례식 4·5인 선거구를 기본으로 하고,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농촌·산촌·어촌은 예외적으로 1인 선거구를 둘 수 있는 것으로 바꾸자는 내용이다. 이 안은 또 현행 47석의 비례의석은 권역별로 나눠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을 포함한 지방을 5개 권역으로 나눠 비례의석의 수도권 쏠림을 방지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의원 등이 제출한 안은 일정규모 이상의 도시는 중대선거구로, 농촌 지역은 소선구제로 치르자는 복합선거구제로 수렴될 수 있다. 이 의원이 제출한 안에 서명한 의원은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다. 기자는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 개편 검토 발언을 계기로 당시까지 여야 의원들이 제출한 10여 개의 ‘공직선거법 개정안’들을 검토하는 기사를 썼다. 개정안을 검토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개정 발의 의원들의 소속당에서 합종연횡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특히 민주당과 국민의힘, 원내 거대 양당 사이의 ‘크로스오버’가 거의 없었다. 그 뒤 상황은 바뀌었을까. 민주당 의원발 개정안만 ‘각축’ 1월 12일 이후 발의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55개. 이중 앞서 언급한 이탄희 안처럼 선거제도의 대폭 손질을 염두에 두고 있는 안은 거의 없다.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해 국민의힘 의원들이 주도적으로 발의한 안은 딱 하나, 1월 19일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 등 10명의 의원이 발의한 선거법 개정안이다. 안의 취지는 지난 선거에서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지난 총선에서 의석수 확보를 위한 비례대표 추천 전담 정당이 양산되는 등의 도입 취지와 다른 부작용이 발생했으니 비례의석 전부를 준연동형 이전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환원하자는 내용이다. 이 안에 서명한 의원 10명은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앞서 언급한 이탄희 안이나 김성원 안이 각 당의 대표 입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영배 의원실에서 나흘간 100인 국회의원 전원위원회에서 여야 의원이 발언한 내용을 분석한 표를 보면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한 의원은 29명, 소선구제를 거론한 의원은 26명이다. 나머지 45명은 이와 관련한 구체적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정당별로 보면 더 특이하다. 국민의힘 의원 중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분석되는 의원은 15명으로, 소선구제를 선호하는 의원(6명)보다 더 많다. 거꾸로 민주당의 경우 중대선거구제 주장 의원(12명)보다 소선구제 유지를 주장하는 의원(16명)이 더 많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포함한 현행 선거구제 개정안은 압도적으로 민주당이 제출한 경우가 많은데, 정작 민주당 의원들의 선호는 소선구제가 많다. 반면 선거법 개정에 비교적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은 중대선거구제 선호가 더 많다. 그렇다면 중구난방, 백가쟁명식으로 진행된 전원위원회가 이후 여야 합의로 선거제 개혁으로 나아갈 순 있을까. 일단 전원위원회를 소집한 김진표 의장은 적극적이다. 5월 중 세 차례에 걸친 공론위원회를 거친 뒤 각 정당이 참여해 구성한 전원위 소위를 만들어 늦어도 6월 중에는 여야가 합의한 선거제 개정안을 도출해 낸다는 목표다. 선거제선거제에 따른 선거구 확정의 법정 시한은 1년 전이다. 내년 22대 총선이 4월 10일에 치러지므로 전원위원회가 열렸던 지난 4월 10일 전까지 확정했어야 한다. 시한은 일단 넘겼다. 법정 시한이 지켜지지 않는 건, 그간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관련 전문가들이나 정치권 주변 인사들은 6월까지 여야가 선거제 합의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김 의장의 ‘바람’은 종전의 관행에 비춰보면 실현되기 어렵다고 본다. “최종 결정은 빨라도 최소 내년 1월까지 간다. 여야 정당 모두 그때까지 가서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구도를 만든 다음 세트업에 들어간다. 과거 사례를 보면 빠르면 선거 두 달 전, 늦으면 선거 한 달 전에서야 확정된 적도 있다. 누구에게 유리할지 불확실하니 샅바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회의장이 제시한 로드맵은 역대적으로 다 틀려왔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의 말이다. 채 교수에 따르면 선거제도 확정에 따른 선거구제 조정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논의하는 선거제 개편안에 따라 이미 변경될 선거구가 다 나와 있기 때문이다. 일단 선거제가 확정되면 선거구 획정은 약 2~3주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따라서 핵심은 다시 선거제도 개편 문제다. 김성순 시사평론가는 선거제 개혁 가능성에 “안 된다. 이대로 갈 것이다”라고 단언한다. 정치권 출신인 그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의 가장 큰 문제가 “쉽게 말해 ‘인싸들’의 천국이 돼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뭐를 했냐가 중요하지 않고 예를 들어 유튜브 스타 같은 사람이 나오면 당선될 수 있다. 이미 알려진 전·현직 의원들이 유리해지기 때문에 신인들의 길을 막아버린다. ‘현장’에서 보면 이를테면 지상파 라디오에 자주 출연하는 박지원 전 국정원장 같은 사람들에게 종신 국회의원직의 길이 열린다.” “선거제도 개혁 만능론은 틀렸다” 선거제 개편에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왔던 경실련·범사련과 같은 진보·보수 시민단체도 전원위 이후 공론위원회→여야 소위원회를 통한 선거제 개정 방식에 비판적이다. 서휘원 경실련 선거제도개혁본부 팀장은 “애초 정개특위 논의 안건은 지난 선거에서 문제가 됐던 준연동형 선거제도를 악용해 위성정당 설립이란 편법으로 비례를 독식한 여야 거대정당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였는데 이 문제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라며 “전원위가 열리면서 심도 있는 토론을 기대했는데 그에 대한 토론도 이뤄지지 않아 선거제 개혁 방향성이 상실됐다”고 비판했다. 보수·중도성향 시민단체 연합체인 범사련 이갑산 회장은 “지난 선거 때 국회의원들이 만든 준연동형 비례 선거제도가 비례위성정당이라는 말도 안 되는 편법을 동원해 유권자의 권리를 유린한 것이 아닌가”라며 “근본적으로 선수를 뛰는 사람들이 룰을 만드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미 선거제 개혁에 실패한 의원들에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외부의 선거제도 연구전문가나 시민단체들이 ‘게임의 룰’을 만드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4월 22일 국회의원-MZ세대 토론회 사회를 맡은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에 따르면 이 회장의 주장엔 선례가 있다. 정치권 외부에 선거제도 개혁 작업을 맡겨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뉴질랜드의 사례가 그런 경우다. 채진원 교수는 “선거제도만 바꾸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과도한 환상”이라고 덧붙였다. “현행 소선구제가 사표가 많다고 이야기하는데 장점은 권력의 집중에 따라 안정성과 혁신성을 주는 것이다. 한쪽만 봐서 이게 나쁜 제도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선택은 국민이 하는 것이다. 양당제냐 다당제냐 문제도 마찬가지다. 다당제를 하면 안 싸울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원인에 대한 진단이 잘못됐다. 선거제도 이전에 공천문제로 싸우고 정치문화가 도덕적인 선악의 이분법으로 귀결돼 싸우는 것이지 다당제가 아니어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다당제가 아니어도 토론문화가 좋고 연합공천 문화가 있으면 제도의 운용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현재의 선거제도개혁 논의가 예컨대 ‘양당제는 악이고 다당제는 선’이라는 이분법 논리에 근거해 마치 다당제가 이뤄지면 모든 개혁이 연이어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입증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의원정수나 비례의원 확대 문제도 마찬가지다. 의원정수가 적어서, 비례가 없어서 우리나라 정치가 이렇게 문제가 있는지를 먼저 입증해야 한다. 비례대표 의원 수를 늘리면 성공이라는 도식을 제시하는데 먼저 물어봐야 하는 것이 비례대표를 제대로 공천했느냐다. 시쳇말로 줄 세워 ‘끼리끼리 패밀리’로 다 해먹은 건 다 아는 문제 아니냐. 공천방식을 바꿔야지 양당정치가 문제라는 모호한 말로 국민을 설득하려고 하니 달라지는 게 없는 것이다.” 거버넌스전략포럼 토론회에 참석한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의 시각도 비슷하다. “선거구제를 바꾸면 정치가 정상화될 수 있다고 하는데 불편한 진실을 말씀드리겠다. 2020년 총선 전에 패스트트랙으로 개정된 선거법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다. 그때 그 제도를 도입하면서 당시 개정을 주도한 민주당이 어떻게 설명했나. 많은 정당이 참여해 다양성이 보장되고 정치가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됐나. 묻고 싶은 것은 그 당시 소선구제로 만들어진 양당제였냐는 점이다. 다들 기억하는 것처럼 다섯 개 정당이 있었다. 미래통합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다당제를 우리가 경험하지 않았나.” 그는 이렇게 단언했다. “국회가 지금 이야기하는 이 선거제 개정을 완성한다고 대한민국 정치가 정상화된다면 내가 교수직을 내려놓겠다. 절대 될 리 없다.” 의원 선출방식을 바꾼다고 정치가 정상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전원위원회를 통해 대표성, 비례성, 지방소멸 대처 등의 원칙적 방향을 확립했다고 하지만 이 원칙 또는 대의는 추상적이다. 구체적인 제도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될 수 있다. 앞으로 논의과정에서 여러 갈래의 조합이 가능하지만 긴 논의 끝에 개정이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지난 1월 이후 기자가 접촉한 정치권 인사들이 이야기 끝에 내비치는 속내다). 다만 한 가지 확인되는 원칙은 있다. 적어도 지난 선거처럼 위성정당이라는 편법의 등장 가능성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두 개의 위성정당 방지법이 올라와 있다. 모두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이다. 강민정·이탄희 안은 지역구 후보자를 추천한 정당의 기호와 명칭을 정당명부 비례대표 투표용지에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민주당에 복당한 민형배 의원은 지역구 의석수 50% 이상 후보자를 추천한 정당의 경우, 비례대표 의석수 50% 추천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둘 다 현실적으로 원내 의석을 장악한 거대 양당의 경우 비례대표 공천을 일정 수준까지 강제하도록 해 위성정당 창당을 어렵게 하는 법안이다.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이 제안한 위성정당 방지법도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위성정당 방지법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내년 선거를 치를 수도 있다. 하지만 법이 확정되면 역시 법의 허점을 이용해 위성정당을 만들어내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 예컨대 지난 총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강성지지그룹이 만든 비례정당인 열린민주당을 위성정당으로 본다면 이 경우까지 해당 방지법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정관용 교수는 “이런 형태의 정당까지 막는 법을 만든다면 위헌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선거법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내리는 결론”이라고 말했다. 위성정당 방지 가능할까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지난 선거가 선거제도라는 ‘룰’에 대한 여야 합의 없이 패스트트랙으로 치러진 최초의 선거가 아니냐는 지적에 “1987년 민주화 이후 1988년 선거의 경우도 당시 노태우의 집권 민주정의당과 김대중의 평화민주당(평민당)이 소선구제 도입을 강행 처리해 치러진 선거”라며 “당시 대선에서 2위를 기록했던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은 소선구제 도입에 소극적이었는데 선거구제 개편 결정에 불참했고, 그래서 제도 개편으로 가장 덕을 본 것이 평민당이었다”라고 말했다.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이때 확정된 대통령 직선제와 소선구제라는 선거제도의 큰 틀이 지난 35년간 한국사회에서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거버넌스전략포럼 토론회에 참석한 김영배 의원은 “87년 당시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3000달러였는데, 지금은 3만달러가 넘어 10배 이상 경제가 성장했다”라며 “지난 35년간 국회의원 선거를 9번 치렀는데 경제가 10배 성장한 만큼 민주주의도 굴곡을 거쳤지만 엄청난 수준으로 성장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급속한 성장에 걸맞게 빠른 결정과 집행이 가능한 대통령·행정부 주도의 삼권분립 시스템을 바꿔 정당과 시민 중심의 삼권분립·헌정구조로 진화해 나가야 한다는 ‘당위’론이다. “개인적으로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15년, 의원으로서 12년 국회에 있었다. 20년 만의 전원위원회 개최는 역사적 변화라고 생각한다.” 거버넌스전략포럼 토론회에 참가한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의 소회다. “국회가 대화와 토론의 전당인데 솔직히 그동안 토론이 없었다. 공격과 반격만 있고 야유와 고함, 당리당략에 근거한 토론만 했다. 국회의원이 되고 12년 만에 열린 이번 전원위원회를 통해 제대로 된 토론을 봤다.” 토론에서 여야 의원들이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모두 인식하고 있는 만큼 의미 있는 결과가 도출되리라는 전망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조 의원을 비롯해 여야 의원 133명이 참여한 ‘초당적 정치개혁모임’은 지난 4월 1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원위에 나온 안을 정리해 합의 가능한 안을 도출해 내겠다”라면서 “국민 대상으로 선거제도 개편을 공론화하고 5월 말이나 늦어도 6월 중에는 선거제도개혁 단일안을 도출해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일단 뭔가 결과물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지는 높은 상황이다. 지켜볼 일이다.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18)선거제, 뜨겁게 논의한 만큼 바뀐다(2023. 02. 24 11:16)
2023. 02. 24 11:16 정치
과연 이번 국회에서 선거제 개혁이 이뤄질 수 있을까. 최근 선거제 개편을 둘러싸고 여러 논의가 있지만, 공론장의 주요 화두로는 좀체 부상하지 못하고 있다. 말 그대로 정치인들과 전문가들만의 논의에 그치고 있다. 지난 2월 1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2024 정치개혁공동행동 선거제 개혁 촉구 기자회견에서 정의당 이은주 원내대표가 선거개혁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좀 엉뚱한 얘기일 수 있지만,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더 퍼스트 슬램덩크>(슬램덩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12월에 개봉한 극장판 <슬램덩크>는 2월 22일 기준 누적관객수 330만명을 돌파했다. 국내에서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가운데 역대 2위의 흥행성적을 기록 중이다. 흥행 요인 중 하나는 한 사람이 여러 번 보는 ‘N차 관람’이었다. <슬램덩크>는 어떻게 이런 흥행 공식을 쓸 수 있었을까. 첫 번째 이유로 만화는 농구의 룰을 독자들에게 쉽게 안내했다. 극장판의 경우 러닝타임의 한계로 일일이 농구의 룰을 설명하진 못했지만, 만화에선 농구를 처음 시작하는 ‘풋내기’ 강백호를 통해 독자들이 농구의 룰을 하나씩 배워나갈 수 있었다. 또 한 가지의 비결은 감정 이입이 가능한 등장인물들의 서사다. 대부분의 인물(서태웅은 제외)이 농구를 절실히 해야 하는 나름의 사연이 있고, 경기마다 이를 투영해 극적인 승부를 벌였다. 선거제 개혁이 가능한 조건 역시 마찬가지다. 우선 새로 바꿀 선거의 룰을 국민에게 친절히 안내할 필요가 있다. 선거제란 절차적 민주주의의 핵심이기 때문에 국민이 제대로 이해한 상태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일례로 최근 논의되는 안 중 하나인 ‘지역엔 대선거구제를 도입하고 비례대표를 조정의석으로 활용하는 개편안’이 정말로 도입되려면 이 제도를 명확히 이해하는 사람이 최소한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은 돼야 한다. 지금은 과연 몇%나 될까. 두 번째 조건은 감정 이입이다. 국민이 선거제 개혁에 공감하는 수준을 넘어 정치의 영역에서 어떻게든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선거제가 바뀌어야 한다’는 감정 이입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선거제 개혁을 통해 무엇을 달성할 것인지, 어떤 변화를 추동하려고 하는지를 잘 제시해야 한다. 정리하면 뜨겁게 논의한 만큼 충분히 공론화한 만큼 선거제 개혁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지금의 논쟁은 전혀 뜨겁지 않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가동되고 있고, 여야를 가로질러 국회의원 150명이나 참여하는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을 결성했으나, 실상은 국회 내 논의조차 답보 상태다. 최근 보도를 보면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로 인해 당내 논의조차 해보지 않았고, 민주당 역시 법안으로 발의된 복수의 선거제 개편안에 대한 당내 이해 수준이 높지 않다고 한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폐지하는 법안들만 발의한 상태이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대선거구제나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 다양한 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이렇게 동상이몽의 상황에서 국회 내 논의조차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태에서 복수의 개혁안을 확정해 3월 국회 전원위원회를 개최하고, 4월 10일 법정시한까지 선거제 개편을 완수할 수 있을까. 오히려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이런 일정으로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의 룰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또한 어떻게 해야 선거제 개혁을 제대로 공론화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 하나씩 답해보려 한다. 제도가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다 우선 오래된 논쟁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과연 제도의 변화가 의도했던 결과를 담보할 수 있을까. ‘정책과 딜레마’라는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붙잡고 있던 의문이다. 의도가 선한 정책이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듯이 선거제 개혁도 마찬가지다. 선거제만 바꾸면 한국 정치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한국 정치의 여러 문제를 선거제와 어떻게든 결부시켜야 한다. 지금의 선거제도에서 제기되는 중요한 문제는 어려운 말로 ‘비례성의 훼손’, 쉬운 표현으론 ‘죽은 표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죽은 표란 선거에 반영되지 못하는 투표를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선거는 작은 선거구에서 1등으로 득표한 한명만 당선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그 외의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들의 의사는 선거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 문제는 지역 일당체제의 지속과도 관련이 있다. 여전한 지역감정과 소선거구제의 영향으로 많은 지역에서 ‘공천’이 ‘당선 확정’과 사실상 동의어였다. 이렇게 되면 정치의 영역에서 건전한 경쟁이 사라진다. 현재의 소선거구제가 여러 정당이 존립할 기반을 막는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화 이후 소선거구제하에서 3개의 정당 이상이 국회 교섭단체(20개 의석 이상)를 구성한 적이 여러 번 있지만, 대부분 대선후보가 정당의 간판 얼굴이었다. 그나마 계급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제3세력으로 존재감을 키웠는데, 결정적인 이유는 2004년 총선부터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선거의 룰을 바꿔 ‘비례성 강화’와 ‘다당제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게 지금까지의 선거제를 개혁하려는 주된 취지였다. 이는 지난번 20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대 국회는 야 4당(더불어민주당·민주평화당·바른미래당·정의당)이 주도한 선거제 개편안을 통과시켰지만, 당시 선거제 개편에 반대했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에 이어 더불어민주당마저 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위성정당’ 창당에 나서면서 선거제에 대한 회의감만 키운 꼴이 됐다. 그렇다면 이번 국회에선 위성정당을 방지하는 방식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것이 정답일까. 아니면 윤석열 대통령이 운을 띄운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것이 비례성을 강화하는 방법일까. 문제는 제도 개편만으로 의도했던 결과를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다른 정책과 마찬가지로 선거제 역시 방안마다 장단점이 있고, 어떤 효과가 클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일본과 대만에선 중선거구제가 다당제의 기반이 되기보다는 파벌 정치와 양당제를 강화하는 기반이 된 사례가 있다. 20대 국회의 선거제 개편부터 복기해야 국내에선 지난 20대 국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이후에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며 제도 해킹에 나섰지만, 심판을 받기보다 오히려 위성정당을 통한 의석수 확보에 성공했다. 이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고, 국민적 공감대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책 의제는 제대로 된 논의가 축적된 만큼 현실과 정합성을 가지고 사회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데, 선거제야말로 축적된 논의만큼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한 건 20대 국회의 선거제 개편 과정과 위성정당을 통한 선거에 대한 복기와 성찰이다. 당시 복수의 선거제 개혁안에서 어떻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의견이 모아졌는지, 또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왜 위성정당 사태로 귀결됐는지 치열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성찰이 눈에 띈다. 그는 시사주간지 ‘시사IN’과의 인터뷰(김종민 의원, ‘20대 정개특위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다’, 2023. 2. 8)에서 기존의 연동형 비례대표제(지역구 225석·권역별 비례 75석)가 준연동형(지역구 253석·비례 47석 유지)으로 축소될 때도 이를 공론화하길 주저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걸 논쟁하는 순간, 당시 자유한국당이 트집을 잡거나 공격할 것을 우려했다. 그러면 선거법 개정안이 정쟁의 테이블에 오르게 되고, 국민이 피곤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합의된 거니까 ‘그냥 가자’고 한 거다. 숙제를 미뤄놓은 거다”라고 복기했다. 당시 대국민 공론화는 물론, 국회 내 공론화조차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제도 해킹에 나섰던 주체들도 복기와 성찰이 필요하다. 첫 위성정당 시도였던 미래한국당을 만들었던 주체들, 그 수혜를 입어 현재 국민의힘 비례대표가 된 국회의원들, 더불어시민당을 만든 주체들과 수혜를 입은 현재 더불어민주당과 시대전환, 기본소득당의 국회의원들부터 복기와 성찰을 해야 한다. 새로운 제도가 순기능을 발휘하려면 과거 역기능이 발휘된 사례들부터 살펴봐야 한다. 위성정당을 통해 국회에 진출한 이가 상당수이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선거제 개혁에 대한 동의를 얻어내는 일도 중요하다. 제대로 공론화하기 위한 방안 결국 선거제 개혁은 제대로 공론화한 만큼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제대로 공론화할 수 있을까. 첫째로 선거법 개편 일정을 바꿔 현실적인 일정을 짤 필요가 있다. 현재 법으로 정해진 선거법 개정 법정시한은 4월 10일이다. 한 달 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이 기간에 복수의 안을 정개특위가 도출하고, 국회 전원위원회를 개최한 다음에 안을 확정한다면 다시 한 번 위성정당과 같은 사례가 나올 수 있다. 국민이 바뀐 선거제를 제대로 이해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실무상 선거 1년 전에 선거법이 확정되는 게 적합하다는 주장도 타당하지만, 정말 선거제를 개편하려고 한다면 이런 벼락치기식의 일정으로 할 순 없다. 3월에 복수안을 도출한 후 4월부터 8월까지 충분히 공론화를 한 다음에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게 그나마 현실적인 안이다. 여기에 4월과 8월, 두 차례 대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해 각 선거제 개편안을 국민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해볼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해야 정치권이 공론화에 얼마만큼 성공했는지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선거제 개편을 제대로 공론화하려면 이번 선거를 통해 어떤 문제를 해결할지도 분명히 해야 한다. 여러 학자가 선거제 개편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목표(이를테면 기후위기 대응)를 결부시킨다고 우려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시대적 과제에 왜 정치권이 응답하지 않는지를 묻고 따져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확대든,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이든,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 도입이든 새롭게 바뀐 선거제도에서는 기존의 비례성 훼손 지역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한다. 그곳에서 당선된 이들이 불평등과 기후위기, 저출생과 고령화, 지방소멸뿐 아니라 구체적 복지 의제들을 주도했으면 한다. 다시 말해 각 의제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다수 출현해 정치권의 의제 논쟁, 정책 담론을 주도해야 한다. 이런 사례가 축적돼야 선거제 개편에 대한 효능감을 얻을 수 있다. 결국 제도 자체가 변화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제도를 둘러싼 논의와 제도를 선용하려는 의지가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번 선거제 개혁은 어떤 경우에 해당할까.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
하승수 “개혁 효과 확실한 안이 선거제 논의 중심 돼야”(2023. 01. 13 11:36)
2023. 01. 13 11:36 정치
ㆍ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인터뷰 “국민 대 기득권 의원 간의 싸움”.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선거제 개혁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승자독식, 지역주의, 정치 양극화를 강화하는 현행 선거제도하에서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은 기득권 현역의원들이다. 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 유권자의 표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선출되면서 민생, 불평등, 기후위기, 남북관계 등 국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는 뒷전이 된다. 사진/서성일 기자 하승수 대표는 선거제 개혁이 성공하려면 개혁의 명분과 효과가 확실한 안이 논의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제안한 단순 중대선거구제는 선거제 개혁안으로 부적합하다. 단순 중대선거구제처럼 개혁의 효과가 불분명한 제도를 내세우면 기득권이 선거제 개혁에 반대하기가 너무 쉽다. 국민은 선거제 개혁한다고 뭐가 바뀌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 대표는 ‘표의 등가성’, ‘지역주의 극복’, ‘공천 개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선거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 검토’를 제안했다. “먼저 용어정리부터 정확히 해야 한다. 지금은 선거제도 개혁을 실질적인 방향으로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대선거구제라는 용어는 적절하지 않다. ‘중선거구제’와 ‘대선거구제’를 나눠볼 필요가 있다. 중선거구제는 한 지역에서 2~4명을 선출하는 일종의 단순 중선거구제라고 볼 수 있다. 대선거구제는 5명 이상을 뽑는 제도다. 후보 중심으로 치르는 단순 지역구 선거에서 5등, 6등, 7등을 당선되게 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대선거구제는 사실상 비례대표제와 연결된다.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에서 실시하는 대선거구제는 1개 선거구에서 많은 수의 의원을 뽑되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는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말한 ‘중대선거구제’는 단순 중선거구제로 유럽 다수의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대선거구제와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단순 중선거구제는 선거제 개혁 방향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얘긴가. “단점이 많다. 단순 중선거구제는 지방선거 기초의회에서 경험해봤다. 2인 선거구의 경우 수도권에서는 양당의 나눠 먹기, 영·호남에서는 일당 독식이 그대로 나타났다. 3인 선거구도 이와 비슷했다. 4인 선거구 정도 돼야 하는데 국회의원선거에 적용하면 선거구 4개를 합쳐야 한다. 선거 구역이 너무 넓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선거비용도 많이 든다. 금권선거, 파벌정치 같은 부작용 또한 우려된다. 후보 중심 선거이기 때문에 정당의 기능이 약화될 우려도 있다.” -선거제 개혁의 대원칙이 있다면. “첫째는 표의 가치가 선거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 등가성·비례성 보장이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거대 양당 중심의 기득권 구조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한 표의 가치가 똑같이 보장된다면 자연스럽게 다당제 구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정책경쟁이 가능한 정치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다. 두 번째로는 지역주의를 깨야 한다. 대구·경북에서도 민주당이 정당 득표율만큼 의석을 가져가고 호남에서도 국민의힘이 표를 얻은 만큼 의석수를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는 정당 공천개혁이다. 특정 지역에서 공천받으면 당선이 보장되는 구조에서 공천권은 계속 문제가 돼왔다. 유권자들이 정당의 공천권 행사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 -‘개방명부형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어떤 제도인가. “가령 10명을 선출하는 대선거구가 있다면, 각 정당이 그 선거구에서 얻은 득표율대로 일단 의석을 배분한다. 단순하게 생각해 30%를 얻은 정당은 3석을 배분받는다. 투표용지에서 유권자들이 정당뿐만 아니라 후보까지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유권자의 선택을 당선자 결정에 반영하는 방식(개방명부형)이다.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에서 택하고 있다. 표의 등가성이 보장되고 정책 중심, 정당 중심의 선거를 가능케 해 정책으로 경쟁하는 다당제 구조 정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개방명부형 방식을 채택하면, 유권자의 선택권이 확대되고 정당의 공천개혁에도 도움이 된다.” -이들 나라의 정치는 어떤가? “상당히 안정돼 있다. 선거제를 바탕으로 다당제 구조가 정착됐기 때문이다. 흔히 다당제에서 정치 불안이 심할 거라고 착각한다. 실제로는 정치세력 간의 경쟁과 협력이 적절하게 조화돼 경쟁할 때 경쟁하고 협력할 때 협력하는 식으로 다당제일 때 정치구조가 훨씬 안정된다.” -박주민 의원이 ‘개방명부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공직선거법 일부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가을 박주민 의원실에서 연락이 와서 같이 법안을 만들었다. 17개 광역시도를 기본권역으로 하되, 인구·면적이 크면 시·도를 여러 개의 권역으로 나눈다. 그리고 권역마다 6~11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방안이다. 지역구 253석을 30~40개의 권역(대선거구)에서 선출하고 비례대표 47석은 표의 등가성을 더 확실하게 보장하는 조정의석으로 전환한다. 단순 중선거구제의 단점으로 4명을 선출하게 되면 선거 구역이 너무 넓어지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대선거구제도 같은 문제가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이 안은 비례대표제와 결합돼 정당지지도대로 의석수를 배분해야 한다. 정당 중심의 선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단순 중선거구제 선거와는 많이 다르다. 정당지지도에 따라 한 선거구에서 6~11명을 선출하게 되면 대구·경북에서 민주당이 의석을 가져갈 수 있고 호남에서도 국민의힘의 원내 진입이 가능해진다. 또 조정의석으로 한 번 더 표의 등가성을 조정하기 때문에 소수정당도 득표율만큼 의석을 보장받을 수 있다. 앞서 말한 개방형 명부를 채택하고 있어서 지금처럼 당 지도부가 함부로 공천하기도 어렵다. 낙하산 공천이나 부패정치인을 공천하면 당 지지율 자체가 떨어져 선거 결과에 미치는 나쁜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유권자가 누가 국회의원이 될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당 지도부의 공천권을 지금보다 훨씬 약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지난 1월 9일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가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과거에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대안으로 많이 생각했다. “독일은 지역구는 소선거구제로 하면서 16개 주별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하고 있다. 표의 등가성이 보장된다.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지배하기가 어렵다. 그런 점에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또 독일은 후보 공천도 전 당원 투표로 하기 때문에 내리꽂기 공천을 할 수가 없다. 좋은 제도지만, 한국 정치에 도입하기에는 의석수 문제가 장벽이 된다. 독일은 비례대표 의석을 충분히 가지고 있어서 지역구에서 생기는 승자독식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비례대표 의석수(47석)로는 비례성을 보장하기가 너무 어렵다. 300석 내에서 지역구 의원 수를 줄이거나 비례대표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야 하지만 둘 다 어렵다. 지난 총선 이전에는 의석수 확대와 관련해 전국을 돌며 강연했다. 특권은 없애고 의석은 늘리자고 계속 설득을 해봐도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너무 강했다. 300석을 유지하면서 선거제 개혁을 할 수 있는 방안이 뭘까 고민했다. 대선거구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300석을 가지고도 세 가지 원칙을 충족시키는 방안이라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점진적인 선거제도 개혁이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위성정당 출현 등 되레 후퇴했다. 이번에도 그럴 우려는 없나. “대선거구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위성정당을 방지하는 제도다. 조정의석 47명의 명단을 따로 내는 게 아니다. 석패율제와 비슷한데 권역별로 나온 후보 중에 아깝게 떨어진 사람들 47명을 조정의석으로 구제해주는 제도다. 지금처럼 비례대표 명단이 따로 없다. 위성정당은 명단이 2개 있을 때만 가능하다. 위성정당 자체가 불가능한 제도다. 선거제도는 워낙 중요해 헌법과도 같다고 이야기한다. 위성정당 출현이 준 교훈은 ‘어설픈 제도를 도입해선 안 되고 명확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이다. 선거제도만큼은 절충해 잘된 사례가 거의 없다. 이탈리아는 1990년대 이후 계속해서 선거제도를 바꾸고 있다. 한번 잘못 손을 댔다가 계속해서 손질을 가해야 하는 악순환 상황에 빠진 셈이다. 자칫 잘못해서 절충하면 제도개혁의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에 협소한 지지, 광범위한 비판에 직면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당시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결과는 어떤가.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 제도가 됐다. 조금씩 찔끔 손보는 식으로 가다가는 선거제도가 한국 정치를 미로에 빠뜨려버릴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 발언 이후, 국민의힘 내에서도 찬반 논란이 나왔다. “2020년 총선 직후, 국민의힘에서 과거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지금 논의에는 유효하지 않다고 본다. 현재 국민의힘은 당론이 없다. 윤 대통령이 제안한 단순 중선거구제 중심으로 논의를 하게 되면 선거제 개혁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선거제 개혁은 어떤 식이든 현직에 있는 기득권 의원들에게는 도움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 중선거구제처럼 제도개혁의 효과가 불분명한 제도를 내세우면 기득권들이 선거제 개혁에 반대하기가 너무 쉽다. 제도개혁의 목표나 원칙을 확실하게 정하고 거기에 부합하는 제도를 설계해야 하는 이유다. 최소한 기득권 의원들이 자기 밥그릇 때문에 반대하고 싶지만, 명분상 반대하기 힘든 제도를 도입하려고 해야지 제도개혁을 추동하는 힘이 생긴다. 결국 선거제 개혁은 ‘국민의힘 대 민주당의 싸움’이 아니라 ‘국민 대 기득권 의원 간의 싸움’이다. 현행 선거제도로 이득을 보고 있는 기득권 의원과 피해를 보고 있는 국민 사이에 전선이 생겨야 한다. 제도개혁의 효과가 확실치 않은 제도를 논의하면 이런 구도가 안 생긴다. 국민은 선거제 개혁한다고 뭐가 바뀌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상은 선거제도 개혁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민생, 불평등, 기후위기, 남북관계 등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다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 제안을 비판하면서 신중론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은 그동안 얘기해왔던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면 된다. 사실 민주당은 이미 자기 정당의 선거제도 개혁방안을 내놨어야 한다. 작년 대선 직전에 의원총회를 열어서 만장일치로 선거제도 개혁을 약속했다. 작년 8월 전국 대의원 대회에서도 90%가 넘는 찬성률로 선거제도 개혁을 결의했다. 이후에 진전된 게 없다. 심지어 민주당이 주장하는 선거제도 개혁방안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도 않다. 개별 의원들이 발의한 개별적인 법률만 있을 뿐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오는 3월까지 선거제 개혁을 마무리짓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선거제 개혁이 잘될까. “김진표 의장이 국회 정개특위에 2월까지 복수의 안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우선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안, 즉 선거제도 개혁의 효과가 확실한 안이 복수의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게 1차 관건이다. 국민과 시민사회가 지지할 수 있는 안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그래야 기득권 의원들의 반발로 선거제도 개혁이 지지부진해지더라도 국민 여론을 통해 밀어붙일 수가 있다. 복수의 안이 대충 절충하고 타협해 만든, 지지할 만한 안이 아닐 경우 국민의 관심이 이어지기 어렵다. 결국 선거제도 개혁의 효과가 확실한, 그리고 정말 지지할 만한 안이 포함되느냐가 핵심이다.”
표지 이야기
민주당 선거제도 개혁 약속 지켜질까(2022. 10. 21 11:08)
2022. 10. 21 11:08 정치
ㆍ전당대회 결의안 발표 후 김두관·이상민 의원 등 발의 “김대중, 노무현, 허대만의 꿈.” 지난 10월 5일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은 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발제를 맡은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선거제도 개혁을 꿈꿨던 민주당의 정치인들을 소개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최고지도자로서 확실한 신념이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6월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이야기하며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에 선거제도 개혁의 화두를 던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고 명확하게 밝혔다.” 지난 3월 28일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소수 정당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다당제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하승수 대표는 지난 8월 22일 세상을 떠난 고(故) 허대만 전 경북도당위원장이 지난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SNS에 남긴 글도 소개했다. 허 전 위원장은 거대양당의 ‘공천 나눠먹기’로 무투표 당선자가 500명에 달하는 사실을 짚은 기사를 공유하고 “선거제도가 문제다. 현행 선거제도는 지역구도를 강화할 뿐이다. 개인의 결단과 희생으로 극복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허 전 위원장은 1995년 전국 최연소로 제2대 포항시의회 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고, 지역주의의 벽에 부딪혀 번번이 낙선하면서도 포항에서 꾸준한 정치활동을 해왔다. 하승수 대표는 “선거제도 개혁은 당을 떠나 진정성 있는 정치인이라면 자기의 숙명적인 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중대선거구제 도입 추진 민주당을 상징하는 정치인들이 누차 ‘선거제도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지만, 민주당은 이들의 뜻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다. 선거제도 개혁은 선언적 수준에 그치거나 그나마 선거를 앞두고 후퇴했다. 20대 대선을 앞둔 지난 2월 27일, 민주당은 국회에서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다당제와 정치개혁을 찬성하는 정치세력은 모두 함께하자”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결의문에는 위성정당을 방지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지방선거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도입 입법 추진 등 비례성을 강화한 선거제도 개혁 공약이 담겨 있었다. 이를 이행할 구체적인 안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지방선거에서 중대선거구제 전환은 제한적 수준에 머물렀다. 일부 지역에서는 2인 선거구제가 오히려 늘었다. 2020년에는 총선을 앞두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으나 당시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하자 더불어민주당도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해 비판을 받았다. 21대 총선 결과 거대 양당구도는 더 심화됐다. 지난 8월 28일 열린 전당대회를 전후해 민주당에서 선거제도 개혁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지난 7월 17일 이재명 의원은 당대표에 출마하면서 “비례민주주의 강화, 위성정당 금지, 국민소환제, 의원특권 제한, 기초의원 광역화 등 정치교체를 위한 정치개혁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8월 28일 열린 전당대회에 93.72%의 찬성률로 통과된 ‘국민통합 정치교체 결의안’에는 내년 4월까지 선거법을 개정하고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는 제도 개혁을 마무리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내년이 선거가 없는 해인 만큼 2024년 총선 전 선거제도 개혁을 할 적기라는 판단이다. 민주당의 선거제도 개혁 약속이 이번에는 지켜질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은 10월 국정감사가 끝나는 대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에서 선거법 개정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 당내 공론화 및 의견수렴 기구를 설치할 예정이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당대표와 지도부에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한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 공론화 및 의견수렴 단위를 가동하자고 요청했다”며 “돌아보면 늘 선거를 앞두고 정개특위를 구성했는데 민감한 문제, 쟁점이 많은 문제는 합의를 못 하고 작은 사안들만 합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치를 바꾸기 위해 과감하게 우리의 기득권을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지를 포함한 논의에 접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정치개혁법 법안 발의도 이어졌다. 지난 9월 1일 김두관 의원은 ‘허대만법’이라고 불리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국회 의석을 6개 권역별로 인구비례에 따라 나눈 뒤, 정당득표율에 따라 비례의석을 배분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이 골자다. 비례성 원칙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면 영호남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독점하다시피 하는 지역주의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10월 4일에는 이상민 의원이 국회의원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비례대표제 확대를 뼈대로 하는 정치개혁 법안들을 대표 발의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에는 현행 소선거구제를 4~5인 중대선거구제로 바꾸고, 비례대표 의원수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 253석인 지역구 국회의원을 127석으로 줄이고, 47석인 비례대표 의석은 173석으로 늘린다.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비례성을 강화하면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이 쉬워질 전망이다. 이 외에도 이상민 의원은 풀뿌리 지역정당 및 온라인플랫폼 정당을 창당할 수 있도록 한 정당법 개정안, 원내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현행 20석에서 10석으로 낮춘 국회법 개정안, 정당 국고보조금 배정에서 소수 정당 배분 비율을 확대한 정치자금법 개정안 등을 함께 발의했다. 이상민 의원은 “민주당은 호남을, 국민의힘은 영남을 지역적 근거로 패권을 갖고 독과점을 유지하고 있었다. 거대양당이 상대방의 실책으로 반사적 이익을 얻는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해왔는데 정치에도 경쟁의 원리가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은 대답 없는 메아리 관건은 이를 실천할 ‘원내 제1정당’ 더불어민주당의 의지다. 하승수 대표는 “선거제도 개혁을 하겠다는 민주당의 전략이 안 보인다. 이미 지난 2월부터 선거제도 개혁을 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어떤 전략으로 어떤 내용으로 할지, 또 국민의힘과는 어떻게 협상할지에 대한 전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관후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제출된 법안들의 실천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정개특위나 시민사회와도 교감 없이 발의했다. 동료 의원을 설득해야 하고 양당 지도부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실천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두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현행 선거제도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온 영남권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당 지도부의 실천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권태흥 대구시당 정치개혁특별위원장(대구시당 지역위원장)은 토론회에서 “국회에서 최대 다수 의석을 갖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이 정치적 수사를 넘어 절박하게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실천하고 있는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하다”며 “지역주의 타파와 정치개혁에 당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국민에게 수없이 정치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시대적 소명을 실현하지 못한 정당, 무책임하고 무능한 진보와 개혁 세력에게 국민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이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으려면 여론을 통한 동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하승수 대표는 “선거제도 개혁에 부정적인 국민의힘을 압박하기 위해서는 국민 여론이 필요하다. 그런 틀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큰 전략이다. 정치개혁범국민협의회 같은 범국민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관후 연구원은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대선 이후 지지율 반등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유권자들이 정치인에 대해 가장 크게 실망하는 원인 중 하나가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몰두하는 것이다”라며 “누가 먼저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치개혁 이슈를 선점할지가 지지율 상승에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은 그 부분을 가장 크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표지 이야기]미국 선거제도는 바뀔 수 있을까(2020. 11. 13 15:10)
2020. 11. 13 15:10 국제
ㆍ지지율과 선거 결과 불일치 발생… 제도 바꿀 헌법 개정 쉽지 않아 “투표는 끝났지만, 선거는 끝나지 않았다.” 말장난 같지만 현재 미국의 정치 상황을 잘 설명한 표현이다. 지난 11월 3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대통령선거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승리가 확정적이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복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트럼프 측은 바이든이 승리한 일부 경합 주를 중심으로 대선 불복 소송에 나섰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선거검표원들이 대선용 우편투표 용지를 검수하고 있다. / AFP 연합뉴스 미국 대선이 복잡한 이유 중 하나는 특유의 선거인단제도 때문이다. 대통령 직선제에 익숙한 사람들 눈에 선거인단제도는 ‘비민주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국민주권’이나 ‘표의 등가성’ 원칙에는 위배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선거제도 역사와 배경을 보면 잘못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선거인단제도가 유지돼 왔음에도 미국 대통령선거는 당일 밤 혹은 이튿날 아침에 승패가 결정됐다. 선거 불복이 현실화된 이번 선거가 특이하다는 것이다. 간접선거 미국 연방헌법 제2조1항은 대통령 선출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각 주에서 뽑힌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 방식으로 연방대통령이 선출된다. 총 50개주에 배분된 선거인단 수는 연방의회 하원의원 의석수와 상원의원 의석수를 합친 숫자다. 상원의원은 모든 주가 2명씩으로 같다. 이에 따라 상원의원은 총 100명이다. 반면 하원의원 의석수는 인구수 비례에 따른다. 즉 인구가 많은 주는 하원의원 의석수도 많아진다. 미국 하원의원은 총 435명이다. 여기에 예외가 한가지 있다. 수도인 워싱턴이다. 50개주에 속하지 않고 ‘연방직할시’로 운영된다. 대통령선거에서만 특별히 3명의 선거인단을 부여받았다. 계산해보면 최종적으로 꾸려지는 선거인단 수는 총 538명이다. 미국 연방헌법에 따라 선거인단 총수의 과반수를 획득하면 대통령에 당선된다. 과반 270명이라는 이른바 ‘매직넘버’는 이렇게 나오게 된다. 문제는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 방식을 택하다 보니 민심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지지율과 선거 결과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미국 역사에는 이런 경우가 총 네 번 있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대 트럼프의 대통령선거다. 힐러리는 트럼프보다 약 300만표를 더 받았지만 선거에서 졌다. 선거인단 확보에서 뒤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애초에 왜 간접선거를 택했을까.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규모가 작은 주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타협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선거인단 방식을 택하면 인구가 적어도 주의 독립성과 영향력을 지킬 수 있다. 단순 인구비례로 뽑지 않는 우리나라의 지역구 선거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통신망이 발달하지 않아 미국 헌법이 만들어질 당시 국민 전체가 참여하는 대통령 선출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는 점도 고려됐다. 또 의회가 대통령을 선출하지 못하도록 해 대통령을 독립기관으로 만들려는 의도도 반영됐다. 연방의회의 의원은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인단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독립된 선거인단제도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대안이었다. 이에 따라 선거날 유권자는 대통령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다는 선거인단에게 투표한다. 이렇게 선출된 선거인단은 올해 기준 12월 14일 최종적으로 대통령을 결정하는 투표를 한다. 승자독식 방식 미국의 48개주는 선거인단이 그 주에서 유권자의 표를 가장 많이 획득한 대통령 후보에게 모두 투표하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승자독식 방식’이다. 하지만 이는 강제사항이 아니다. 메인주와 네브래스카주 등 2개주는 선거인단 2명을 최다 득표한 대통령 후보에게 준다. 나머지는 각각의 하원 선거구에서 승리한 대통령 후보가 선거인단 1명씩을 가져간다. 이번 선거에서 바이든은 전통적인 공화당 성향 지역인 네브래스카주에서 선거인단 1명을, 트럼프는 메인주에서 1명을 획득했다. 승자독식 방식의 문제는 과도한 사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과반을 넘으면 나머지 49.9%의 의사는 무시될 수 있다. 이는 유권자의 투표 참여율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또 사회 내 유색인종, 제3정당 같은 소수자들의 의사도 소외시킨다. 이들은 투표를 통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기 어렵다. 김지윤 정치학 박사는 저서 <선거는 어떻게 대중을 유혹하는가>에서 미국 선거제도가 바뀔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미국은 연방국가로서 주의 의사와 국민의 의사를 동시에 존중하는 간접선거제도의 장점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한계도 있다. 선거제도를 바꾸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미국의 헌법 개정은 먼저 상·하원 양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의원들이 수정헌법안에 찬성해야 발의된다. 이를 통과하면 4분의 3이 넘는 주에서 비준해야 비로소 수정헌법이 통과된다. 50개주 중에서 38개주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조건이다. 문제는 주마다 입장이 다르다는 것이다. 각 주에 배분되는 선거인단 수는 인구수를 고려한 하원의원 의석수로 규모가 결정되지만, 그 규모가 비례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주의 유권자 수는 와이오밍주의 유권자 수보다 약 55.6배 많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주의 선거인단은 55명, 와이오밍주는 3명으로 18배 차이다. 즉 와이오밍주 유권자들이 과대대표되고 캘리포니아주 유권자들은 과소대표된다. 선거인단이 과대대표된 주들은 인구수에 정확히 비례하는 수정헌법안에 찬성할 이유가 없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는 것은 코로나19로 폭증한 사전투표다. 특히 우편투표를 두고 주마다 규정이 다른 것이 논란이다. 하지만 이는 ‘간접선거’, ‘승자독식 방식’과 같은 선거인단제도와는 다른 얘기다. 미국이 선거인단제도를 계속 운영할 것으로 보는 이유다.
표지 이야기
[표지 이야기]소수정당들 선거제 개편 덕 볼까(2020. 01. 03 15:59)
2020. 01. 03 15:59 정치
ㆍ원내교섭단체까지 꿈꾸는 정의당… 녹색당·노동당 등 원내 진입 주목 원내·외 소수정당들의 21대 총선 전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청년’이다. 이병길 정의당 전략본부장은 “딸랑 청년 하나만 후보로 내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정의당 원팀’으로 다수가 출마할 수 있도록 비례대표 공간을 열어주는 한편, 지역에서도 각자의 콘셉트로 청년들이 후보로 나설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창현 민중당 대변인도 “민중당은 이미 청년민중당이라는 이름으로 자체조직을 갖추고 독자적인 정치활동을 해왔다”며 “조국 사태 이후 불평등이 사회적 쟁점이 된 만큼 ‘구의역 김군의 친구들’을 중심으로 청년 비정규직 문제를 이슈화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녹색당 ‘2030 여성출마 프로젝트’ 출마자들이 “평균연령 55.5세 아저씨 국회 바꾸자”를 주제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권호욱 기자 현재 1단계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한 녹색당은 김혜미(26·사회복지사), 성지수(29·연극인), 정다연(30·전직 기자), 고은영(35·제주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김기홍(37·성소수자 인권활동가) 등 청년층을 비례후보로 선정했다. 역시 비례 1단계 후보로 선출된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50)만 유일하게 2030세대가 아닌 셈이다. 그동안 원내 비교섭단체에 머무르던 소수정당·원외정당으로 머무르던 이들 정당이 이번 선거제 개편의 덕을 볼 수 있을까. 연동형비례제 도입은 이들 정당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오던 사항이었다. 정의당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목표” 선거제 개편안이 통과되면서 가장 많이 주목받는 쪽은 정의당이다. 당면한 목표는 20석 이상, 원내교섭단체를 만드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하고 현실 가능한 수준에 와 있다.” 이병길 본부장의 말이다. 청년전략과 함께 정의당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호남의 가능성이다. 이 본부장은 “2018년 지방선거부터 정당지지율만 보면 정의당이 호남에서 ‘제1야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물론 민주당과 격차는 크지만, 호남에서 민주당을 뛰어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남이 과거 안철수에게도 기회를 줬고, 자유한국당 의원도 두 명을 당선시켰는데, 이번에 호남은 진보야당 정의당을 밀어보는 게 어떠냐’는 논리를 펼 계획이다. 원내교섭단체와 관련해서는 “원내교섭단체 자체를 브랜드화할 계획”이라고 그는 말했다. 교섭단체가 되면 상임위 및 특별위 의원 선임, 본회의 및 위원회에서 발언권뿐 아니라 의사일정 변경 동의, 국무위원 출석요구, 의안수정 동의 등의 권한도 생긴다. 이 본부장은 “교섭단체가 돼서 원내 지위가 달라지면 그동안 지체되어온 법안 통과 등 상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정의당 지지 유권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역구에서는 경기 고양에 출마하는 심상정 당 대표와 박원석 전 의원, 전남 목포에서 출마할 예정인 윤소하 의원, 경기 안양 동안을의 추혜선 의원, 경남 창원성산 여영국 의원 등이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정의당은 지난 총선에 이어 이번 선거에도 비례후보나 선거인단 등을 외부에 열어 경쟁력 있는 유력 후보들을 영입한다는 방침이다. 참여정부 출신으로 유명 군사평론가였던 김종대 의원의 발탁 케이스가 대표적이다. 정의당은 진성당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당 밖 인사의 당직 참여나 후보참여는 불가능하다. 정의당은 ‘무지개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대표를 정책배심원단으로 참여시켜 비례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흥행’을 노리고 있다. 조직 대중에 기반을 둔 민중당 역시 이번 총선에서 약진이 예상된다. 신창현 대변인은 “현재의 민중당 지지율과 변경된 선거제도를 바탕으로 시뮬레이션해보면 민중당은 비례 3석을 포함해 4석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나온다”고 말한다. 현재 김종훈 의원(울산 동구) 소속이 민중당이다. 신 대변인은 “현재 비례의석이 주어지는 전체 투표수의 3%는 약 76만 표인데, 민중당은 100만 표 득표전략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민주노총 조직원을 비롯해 전농 등 대중단체 회원들을 최대한 조직하면 100만 표는 달성 불가능한 숫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 조직원만 100만 명인데, 전체를 다 포괄하지 못하더라도 ‘민주노총당’ 등 정치세력화를 고민하는 민주노총과 공동 전략을 펴면 소속 조직원 상당수의 지지를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과거 선거에서 민중당 지지 입장을 표방해온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조직 대중이 전국적으로 움직이면 ‘의외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녹색당, 이번엔 원내 진출할 수 있을까 바뀐 선거제도로 계산했을 때 실제 정당투표로 100만 표를 얻으면 약 5~6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민중당은 지역구에서는 전남 순천에 출마할 김선동 전 의원, 경기도 의정부을의 김재연 전 의원, 경기 성남 중원 김미희 전 의원 등도 판세에 따라 국회 진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당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선거법과 검찰개혁법안 처리를 위해 국회 본청 앞에서 34일간 농성을 한 정의당이 지난해 12월 31일 농성 해단식이 끝난 뒤 총선승리를 기원하며 만세를 부르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선거제도 개편에 따라 녹색당이 원내 진출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21대 총선의 관전포인트다. 2012년 창당한 녹색당은 그동안 두 차례의 총선(2012·2016년)에서 당선자를 내는 데 실패해 원외에 머물러왔다. 하승수 운영위원장은 “비록 이번 선거제 개편이 불완전한 형태로 이뤄졌지만 준연동형비례제의 틀을 갖고 있는 만큼 녹색당은 비례대표를 중심으로 선거를 치른다는 전략”이라고 밝혔다. 녹색당은 지난해 12월 14일 1차 비례후보 선정으로 일찌감치 후보를 결정한 상태다. 비례 정당투표 위주로 선거전략을 마련하고 있지만 ‘전략지역구’도 선정해 “숫자와 관련없이 필요한 대로 낸다”는 방침이다. 원외 소수정당들이 정당해산을 당하지 않고 현재의 당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녹색당 덕분이다. 종전 정당법은 선거에서 2%를 못 받은 정당의 등록을 취소하고, 향후 4년 동안 동일한 당명을 쓰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2012년 0.48%로 정당등록이 취소된 녹색당은 이 조항에 대한 위헌소송을 냈고, 2014년 승소해 녹색당이라는 이름을 계속 쓸 수 있게 되었다(이 기간에 녹색당은 ‘녹색당 더하기’라는 당명으로 활동했다). 보수우파 진영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세력의 꾸준한 지지를 받고 있는 우리공화당의 원내 진출이 점쳐지고 있다. 우리공화당은 이미 20대 국회에서도 2명의 의원(홍문종·조원진 공동대표)이 소속된 원내 정당이다. 패스트트랙 국면에서 준연동형비례제 도입·공수처 설치를 ‘문재인 좌파독재권력의 정권연장 음모’로 규정하며 전면 거부투쟁을 벌였지만, 바뀐 선거제도의 실제적 수혜자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기 의정부을이 지역구인 홍문종 대표나 대구 달서병이 지역구였던 조원진 대표 모두 지역구 대신 비례 상위후보로 출마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공화당 전략기획단장을 겸임하고 있는 박태우 사무총장은 “보수를 표방하는 정당은 많지만 우리공화당만이 유일하게 투쟁하는 보수, 정통보수정당”이라며 “당연히 다가올 총선에서는 현재 2석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이나 다른 보수정당들과 연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연대 문제 등을 논의하기에는 이르다”며 “선거에 대한 본격대응이나 전략수립은 1월 중순 정도나 되어야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MB계 중심의 중도 보수세력 정치세력화 시도’로 주목받았던 국민통합연대는 “당을 만들진 않을 것”이라고 한발 물러선 상태다. 이상용 대변인은 “국민통합연대는 중도보수 통합에 역점을 두고 사회원로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대통합을 호소하기 위해 만든 시민단체”라며 “MB 최측근 인사인 이재오 전 장관 참여로 오해를 받고 있지만, 이 전 장관을 제외하곤 언론인·교수 등 공동대표 인사 중 MB와 관련된 인사는 없다”고 말했다. 국민통합연대는 자유한국당과 새로운 보수당 등 보수진영에 통합 압력을 넣기 위해, 우선 중도 보수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을 모아 공동보조를 맞출 계획이다. 태극기부대 등 박근혜 지지·탄핵 반대세력과는 일정한 선을 긋고 있다. 이 대변인은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실정으로 경제·안보가 위기에 빠졌고, 국회도 일방적 운영으로 대의제가 파탄 났다는 것”이라며 “탄핵은 이미 역사가 되었으니 거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우리의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노동당(대표 현린), 우리미래당(우리미래)(대표 오태양·김소희), 기본소득당(대표 용혜인) 등도 이번 총선에서 주목해볼 만한 원외 정당이다. 원내 비례 진출 확실시되는 우리공화당 노동당 총선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나도원 부대표는 “노동권과 생존권, 정치개혁의 세 가지 테마를 ‘노동당표 진보정책’으로 잡아 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동당은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중대재해 처벌, 5대 공공(주택·교육·의료·교통·통신) 무상 정책 등을 대표정책으로 내세울 계획이다. 노동당에서 독립해 현재 창준위를 결성한 기본소득당은 기본소득을 당명에 삽입하는 등 정책정당을 표방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창당 당시 당명 도용 논란으로 주목을 받은 우리미래당은 이번 총선이 창당 후 치르는 첫 번째 총선이다. 유애림 기획국장은 “현재도 당직자는 평균연령 20~30대가 맡고 있는 젊은 정당”이라며 “이번 총선이 우리 정체성을 홍보할 수 있는 가장 큰 기회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구에도 후보를 가급적이면 많은 후보를 출마시킬 계획이지만 현재 소셜미디어(SNS)로 비례후보자 선거를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선거제 개편 후 소수정당의 난립을 걱정하고 있지만, 실제 3% 봉쇄조항 때문에 원내 진출은 쉽지 않다. 2004년 1인 2표제 도입 후 엄밀한 의미에서 원외에서 원내로 들어간 경우는 민주노동당을 제외하고는 하나도 없었다.” 하승수 녹색당 운영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이번 선거제 개편 국면에서 비례민주주의연대라는 단체를 이끌며 연동형비례제 도입 논의에 앞장서왔다. 원외 소수정당 앞을 가로막는 장벽은 그뿐만이 아니다. 비례후보의 연설·대담, 광고가 아닌 공보물 배포 제한 등 연동형비례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비례후보의 선거 홍보활동을 가로막는 규정은 개정되지 않았다. 정당등록 취소에 이어 2016년 위헌판결을 받은 후보등록 시 1500만원 공탁 관련 규정도 이후 국회에서 대체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하 위원장은 “선거법은 바뀌었지만 비례대표제가 효과를 얻으려면 더 많은 장벽이 무너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표지 이야기
패스트트랙 선거제도의 운명은(2019. 05. 20 11:20)
2019. 05. 20 11:20 정치
ㆍ의원들 운명 좌우할 선거 룰 놓고 신임 원내대표들 간 샅바싸움 치열할 듯 의외의 결과였다.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선거. 미리 자리를 뜬 김관영 전 원내대표는 따라붙는 방송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기들이 이렇게까지 했는데 자유한국당 가겠어.” 이어 의원총회장을 나서는 김성식 의원. 낙선자다. 얼굴이 굳어 있다. 곁엔 아무도 없다. 이어 나서는 유승민 의원 역시 심각한 표정이다.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왼쪽)가 5월 16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실을 방문 이야기하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 원내대표 선거 전날, 기자가 연락해본 바른미래당 인사들은 말을 아꼈다. 한 의원은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말했다. 승부는 일찌감치 갈렸다. 의원수(24명)의 과반이 넘으면 개표를 중단한다. 개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신환 의원이 13표를 받았다. 오신환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끌려가는 야당이 되지 않겠다”고 했다. “힘이 있는 강한 야당, 대안을 제시하는 야당이 되겠다”고도 했다. 4당 원내대표 선거 결과는 ‘반란’ “바른미래당의 이번 원내대표 선거 결과는 사실상 손학규 대표에 대한 불신임 선거였다.” 김현성 시사평론가의 말이다. 안철수계가 하나가 돼 김성식 의원을 밀어준 것도 아니었고, 안철수계의 다수가 비례대표이다 보니 과거 국민의당 지역구 의원들에 대한 영향력도 없었다는 것이다. “오 신임 원내대표가 정견발표에서 손 대표의 결단을 촉구했는데, 손 대표로서는 손 털고 내려오느냐, 버티느냐만 남았다.” 어떤 규모의 선거든 남는 것은 개인의 의도와 무관한 선택의 결과에 대한 의미다. 지난해 12월 당선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부터 올해 5월에 교체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유성엽 민주평화당, 그리고 바른미래당까지 모두 원내사령탑이 교체됐다. 정의당은 지난해 8월부터 윤소하 의원이 원내대표를 맡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현재의 원내대표들이 내년 총선까지 진두지휘한다. 정의당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정당 원내대표 선거 결과의 공통분모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반란’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대표적인 ‘비박’ 김학용 의원을 누르고 원내대표가 됐다. 이인영 원내대표 당선과 관련, 한 민주당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해찬 당대표만으로는 내년 선거를 치르지 못한다는 뜻이다. 만약 대통령 지지율이 집권 초반 때처럼 70%에 육박했다면 이 의원이 고개라도 내밀 수 있었겠나.” 당내 비주류 민평련계 인사로 분류되던 이 의원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체제로 총선 돌파가 어렵다”는 민주당 내 주류의 정세 판단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황주홍 의원 대신 유성엽 의원이 당선된 민평당의 경우도 주류에 대한 반란으로 해석된다. 한 민평당 인사의 말이다. “아직도 자신을 대권주자로 생각하는 정동영 대표에 대해 더 이상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뜻 아니겠나.” 정작 관심이 가는 것은 이후의 각 당 행보다. 오신환 대표는 5월 15일 정견발표에서 이렇게 말했다. “패스트트랙 상정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이미 패스트트랙은 국회법 절차에 따라 태워졌다. 우리 당에서 누가 원내대표가 돼도 그것을 거스를 수 없다. 다만 공수처장, 차장검사, 수사관을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는 백혜련 안은 통과되어선 안 된다.” 막판에 동시 상정된 권은희 안을 중심으로 여권과 협상하겠다는 것이다. 각 당 의원들이 더 관심을 갖는 것은 사법개혁보다 선거제도 개혁이다. 어떤 제도가 들어서느냐에 따라 내년 선거의 룰이 달라진다. 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5월 7일 보도자료를 내고 현재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연동형 비례제)의 189조 3항의 산식(算式)에 20대 총선 결과를 적용해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민주당은 128석에서 124석으로, 한국당은 114석에서 112석으로, 바른미래당은 28석에서 15석으로, 민주평화당은 14석에서 13석으로 줄어드는 반면, 정의당은 6석에서 18석으로 의석수가 크게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정당 지지도가 높은 정의당과 같은 소수 정당만 이득을 보는 제도라는 것이다. 석패율제를 적용해도 민주당은 대구·경북권에서 1석을 얻는 데 비해 자유한국당은 호남에서 1석도 못 건져, 애초 법 개정 취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안이라는 주장이다. “그건 자기들 이해관계에 따라 자의적으로 만든 시뮬레이션 결과이고….” 민주당에 있다가 현재는 야권으로 옮긴 고참 국회 관계자의 말이다. “대한민국 정당사에 선거에서 60%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은 정당은 없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제 개편의 핵심 취지는 ‘40% 지지로 과반수를 차지하는 정당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김재원 의원은 시뮬레이션 결과 정의당 의석수가 12석 늘어난 것이 불로소득이라고 표현하던데, 그게 불로소득이 맞나. 다시 말해 어떤 것이 ‘정상’이고, ‘민의’를 더 충실히 대변하는 것인가.” 자유한국당은 여야 4당의 연동형 비례선거법 개정안에 맞서 아예 비례대표를 축소하고 지역구를 늘리는 안을 내놓고 있다. 유성엽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는 5월 14일 문희상 국회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완전한 연동형 비례제로 가기 위해서는 세비를 인하하는 대신 의원정수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향후 패스트트랙으로 상정된 선거법 개정협상에서 난항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유 대표의 ‘의원정수 확대’ 주장과 관련해 앞서 민평당 인사는 이런 풀이를 내놓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문제가 절실하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당장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이미 이전 선거에서 한 차례 조정되었던 유 대표의 지역구 재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김현성 평론가는 “실제 의원정수를 현 300명으로 유지하면서 비례를 늘리는 것은 20석 이상의 지역구만 없어지는 것이 되는 게 아니다”라며 “인근 지역구까지 약 80여석 지역구도 동시에 통합되거나 조정되는 등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 현직 의원 중 100여석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실제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 논의를 할 때는 여야를 막론하고 많은 동요가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국회 관계자는 유성엽 민평당 원내대표의 ‘의원정수 확대 주장’을 향후 정국에서 캐스팅보트가 자신들(민평당)이라는 것을 천명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패스트트랙 상정에는 정족수 3분의 2가 필요하지만 일단 상정된 이후 국회 본회의에서는 과반으로 통과된다. 즉 패스트트랙 상정까지는 바른미래당의 역할이 필요하지만 일단 상정된 후에는 여권과 민평당 등의 연대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 상정된 개정안으로 타격받는 것은 민주당 지역구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말하고 추진하는데 당이 반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니냐.” 캐스팅보트는 어느 당이? 현재 사개특위, 정개특위의 시한은 오는 6월까지다. 법 개정안 논의를 위해서는 기한 연장이 불가피하지만 자유한국당이 쉽게 동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민주당 인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패스트트랙으로 올라갔다는 것은 무엇인가. 특별위원회 논의와 상관없이 그냥 본회의에 상정된 안을 가지고 투표하면 된다. 배째라는 식으로 자유한국당은 본회의를 거부할 수 있지만 내심 고민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결론내렸다. “결국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진실의 순간’은 온다. 가까운 시일 내는 아닐 것이다. 결국 선거법 처리시한에 맞출 것이다. 그때는 올해 말이나 내년 2월 정도이지 않겠나.” 그 국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잡기 위한 신임 원내대표들의 샅바싸움이 올해 하반기 내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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