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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대장동 아닌 ‘성남FC’였을까(2022. 12. 30 14:55)
- 2022. 12. 30 14:55 정치
- ㆍ급선회한 검찰…이재명 1월 중순 출두 승부수 “대통령 가족에 대한 수사는 언제 하는지도 관심을 가져주기 바랍니다.” 지난해 12월 29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검찰 인권침해 수사의 문제점과 제도적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 들어가고 나오면서 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의 발언이다. 이날 기자들의 관심은 이 대표가 언제 검찰에 조사받으러 나갈지에 쏠렸다. 이 대표는 쏟아지는 다른 질문엔 거의 답하지 않았다. 특유의 화법이다. 위 언급은 모두 1월 첫째 주 출석, 또는 1월 5~6일 출석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주최로 검찰 인권침해 수사의 문제점과 제도적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지난해 12월 29일 국회에서 열리기 전 이재명 당대표와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현재로서 정해진 건 1월 중순 이 대표가 직접 출석한다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팩트’가 틀린 질문에 답변하는 대신 자신의 수사일정만 관심을 가지지 말고 대통령 가족 수사에 대한 관심도 가져달라고 쏘아붙인 셈이다. “여러분 이재명을 지키자고 말씀하십니까. 왜 이재명을 지킵니까. 제가 여러분을 지켜야지요. 우리가 함께 우리를 지켜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재명을 죽인다고 그들의 무능과 무책임함이 가려지겠습니까.” 전날(12월 28일) 광주 송정매일시장에서 한 이 대표의 발언이다. 송정매일시장이 있는 광주 광산구가 지역구인 민형배 의원(무소속)은 이날 페이스북에 ‘사이다 이재명’이 돌아왔다고 글을 남겼다. 본격적인 반격의 시작일까. 사이다 이재명의 귀환? “왜 대장동이 아니라 성남FC였을까.” 여의도 민주당 주변 정치권에서 설왕설래가 계속되는 주제다. “처음에는 대선자금을 받아썼다고 1년, (이후) 6개월 동안은 이재명을 아주 부도덕한 사람으로 만들어놓고 고작 소환한 내용은 성남FC 후원 의혹”이라며 12월 26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우상호 의원은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고 단언했다. 그동안 이 대표를 나쁜 사람, 돈을 많이 받아먹은 사람으로 만들어놓고 정작 이게 과연 문제가 되는 사안인가를 두고 지루한 법리 논쟁만 계속될 성남FC 후원 건으로 소환하는 건, 여론플레이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정치검사들의 야비한 수법이라는 주장이다. 우 의원은 “(성남FC 건에 대한 최종적인 법률판단은) 2024년 총선 지나서야 판결이 날 것”이라며 “정치적으로 다 써먹고 못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닌 게 아니라 여의도 정가에서는 성남FC 건과 관련해 뒷말이 무성하다. 지자체장 또는 지자체가 시와 관련된 행사에 관내 기업들의 협찬을 받는 대신 관련 부지제공 등의 ‘편의’를 봐주는 것은 일상적인 일인데 만약 관내 기업의 성남FC 후원을 두고 이걸 ‘3자 뇌물 제공’과 같은 것으로 건다면 “현 지자체 중 안 걸릴 지자체가 없을 것”이라는 항변이다. “대부분의 지자체엔 ‘기관장협의회’라는 회의체가 있다. 검사나 지역 경찰서장, 지자체장, 관변단체장들의 모임이다. 지역 주재청의 검사는 항상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검사들이 참석하기 때문에 내용을 잘 안다. 그래서 거기를 건드렸다고 본다. 핸들링하기 쉬우니까.” 박신용철 더 체인지플랜 선임연구위원의 말이다. “FC 같은 것에 지자체가 관심을 갖는 건 명목은 생활스포츠 육성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조직관리다. 특히 정치인들이 배드민턴, 조기축구회 같은 걸 좋아한다. 조직화돼 있고, 생활스포츠 조직을 지원하면 바로 표로 성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축구를 하는 인원도 많다. 종합해보면 검찰이 가장 공격하기 쉬운 타깃을 잡은 셈이다. 대장동으로 이재명을 잡으려고 했지만 정황증거 발언밖에 없다. 아무래도 지자체장이나 기관을 잡으면 원하는 대로 줄줄 털기가 쉬우니까.” 결국 FC를 상대적으로 수사하기 쉬운 ‘약한 고리’로 본 검찰의 공격이라는 분석이다. 이재명 측 대응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지역정치인의 말이다. “지자체장으로서는 항상 그런 유혹을 받는다. 예컨대 동네에 있는 어느 컴퓨터 회사가 자기 회사 앞에 비보호 좌회전 신호등을 설치해달라고 한다. 당연히 지자체장으로선 ‘민원’을 업적으로 이으려 한다. 예컨대 ‘대신 관내 보육원에 중고 수거 컴퓨터 16대를 기증하면 안 되냐’는 식이다. 당연히 회사에서는 100대도 가능하다고 답한다. 문제가 안 되게 경찰에 민원을 넣어 경찰이 해주고 마무리할 수 있다. 명목상 시가 개입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건 안 걸리는 줄 아나. 이것도 3자 뇌물이다.” 이 인사에 따르면 그런 것을 검토해 ‘수비’하는 게 보좌하는 비서진이나 측근 그룹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 문제가 되는 여러 사안을 보면 너무 무모하게 일을 벌였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프로필만 그럴듯할 뿐 실전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이 많다. 일을 배운 적 없으니 대충 그렇게 밀어붙여도 된다고 착각하고 있다가 된통 당하고 있는 듯하다.” 대장동, 성남FC 의혹 등을 다룬 책 <맞짱>을 펴낸 김경율 회계사는 “정상적인 광고수익이라면 2015년에서 2018년 이외의 기간들, 예컨대 2019년부터 2021년 기간에도 집행된 것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으로 재임한 기간에만 광고 집행이 이뤄졌다는 의혹이다. 김 회계사는 “광고유치를 위해 어떤 노력도 했다는 흔적이 안 보이는 성남FC 직원들이 돈을 받아간다. 그중에는 현금으로 받아간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 회계사는 “대장동의 경우는 검찰이 많은 것을 준비해 옴짝달싹 못 하게 한 상태에서 해야 하니 지금 당장 소환조사를 하지 않지만, 이것은 혐의 확정이라고 해야 할까, 수사를 마무리하는 차원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검찰이 프레임을 잘 잡고 가는 건 맞는 것 같다.” 김성순 시사평론가의 말이다. “정진상·김용 건과 관련해 이재명의 소환은 참고인 소환이다. 반면 성남FC는 그냥 ‘소환’이다. 사건의 진상을 잘 모르고 있는 대다수의 ‘중도’ 국민에게는 ‘이재명이 뭐 잘못해서 끌려가나 봐’라는 인상을 준다. 지금 민주당이 전국을 돌고 있는 것도 ‘소환 안 받으려고 도망다니는 것’이라는 프레임의 덫을 검찰이 쳐놓았다고 본다. 민주당은 거기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고.” 검찰 프레임, 민주당은 벗어날 수 있을까 엄경영 시대전환연구소 소장은 정치일정에 맞춰 검찰이 적절한 카드를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지난 국정감사 종합감사 첫날 민주당 압수수색을 하지 않았나. 이번에도 연말 연초에 저런 카드를 쓰면 여론을 출렁이게 할 수 있으니 시기를 조절하고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1월 초에 이재명이 검찰에 출두하면 이태원 국정조사가 무력화된다.” 그런데 검찰이 이런 의도를 갖고 있다면 민주당 측도 훤히 간파하고 있지 않을까. “당연히 알고 있다. 국회 일정을 보면 1월 10일부터 1월 말까지 공백이 있다. 아마도 1월 10일 임시국회를 소집하면 2월에는 자동으로 국회가 열리니 그사이에 공백을 메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대응을 할 수는 있는데 문제는 명분이 밀린다는 점이다. 예컨대 장외투쟁으로 배수진을 치면 중도 공략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가면 총선에서 과반은 뺏길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민주당으로선 어떻게 해야 할까. 엄 소장은 “결집의 함정에서 벗어나서 노동·외교·복지정책 등 국가현안에 대한 확장중심으로 근본적인 정책전환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100% 경선룰로 시끄럽지만 여당은 다이내믹하다. 반면 야당은 이재명 말고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대해서는 이재명 당대표의 책임도 있다. 경쟁자들에게 공간을 내줘야 한다. 결국 리더십 문제다. 리더십과 주요 정책현안이 연결돼 있다. 다양성을 통해 민주당 몸집을 키워야 한다. 지금은 너무 꽉 쥐고 본인 의지대로 끌고 가려고 하는 상황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검찰이 놓은 프레임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연초 여의도 정가의 관전 포인트다.
- [골목 내시경]성남 모란장-도심 속 5일마다 열리는 흥겨운 장마당(2022. 05. 13 14:17)
- 2022. 05. 13 14:17 사회
- 4일과 9일에는 장이 열린다.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 모란장으로 알려진 전통시장의 장날이다. 지하철 8호선과 수인·분당선 모란역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장을 보러온 이들로 붐빈다. 돌아가는 이들은 손에 가득 무엇인가를 사들고 가고, 장을 향하는 이들은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는 꽃들의 여왕이다. 하나 모란장의 이름은 평양 출신의 어느 재향군인이 고향인 모란봉에서 이름을 따 재향군인을 위한 공동체 모란 개척단과 시장을 만든 데서 유래했단다. 1962년부터의 일이니 모란장의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은 편이다. 그렇다 해도 오일장이 사라져 가는 추세에서 모란장의 위세는 지금도 여전하다. 4일과 9일 경기도 성남 모란장이 열리는 날이면 인근 골목부터 인파로 가득하다. 모란장은 몇차례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길바닥에 난장을 펼치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한구역에 정비된 모습으로 장을 연다. 평일에는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장날에는 공터에 길이 만들어져 골목길이 생기고 좌판이 들어선다. 모란시장 입구에 ‘골목형 전통시장’이란 현수막이 눈에 띄니, 한나절 생겼다 사라지는 길목도 골목으로 인정되는 시절이다. 전철역에서 내려 모란장으로 향하는 골목길은 초입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장터는 저 멀리 자리 잡고 있지만, 이곳까지 번져 골목길 곳곳에 좌판이 보인다. 이 골목에 전을 펼치는 노점들은 장날이 아닐 때도 종종 판을 벌인다고 한다. 먹을거리에 채소며 나물, 반찬과 주전부리를 비롯해 옷가지도 널려 있다. 참기름보다 비싼 들기름? 역에서 가까이 있는 장으로 향하는 골목의 이름은 기름골목. 40여곳의 기름가게가 진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참기름과 들기름, 피마자유와 낙화생유는 물론이고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동백기름이며 고추씨기름도 볼 수 있다. 기름가게가 왜 이리 많냐고 묻자 “이 골목 기름 짜는 기술이 좋다. 입소문 나면서 가게들이 한둘 늘어선 것이 지금처럼 됐다”라고 가게주인은 말했다. 값을 흥정하던 손님이 한마디 퉁을 놓는다. “세상에 들기름이 참기름보다 비싸다는 게 말이 되냐. 내가 살다가 처음 본다. 내년엔 밭에다 들깨나 잔뜩 심어야겠다”라고 하자 상인은 “들기름 비싸진 지가 언제 적인데 그러느냐. 지금 가격도 내린 것이다. 앞으로도 이대로 갈 것 같다”라고 답한다. 들깨를 심겠다는 언약이 내년 봄까지도 살아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들깨 값은 당분간 내릴 사정이 아니라는 게 기름집 주인의 명백한 전망이다. 참깨는 수입산이 넉넉해 중국산 참깨로 짠 참기름 8000원, 인도산 참깨로 짠 것은 7000원이다. 그밖에 나이지리아산 참깨도 들어온다고 했다. 중국산 들깨로 짠 기름은 1만2000원이다. 국산은 그때그때 시세가 요동친단다. 귀천은 늘 바뀌는 일이고, 높고 낮음을 못 박아 가늠하는 것은 편견일 수 있다. 어제 장바닥과 주막집 뒷방을 굴러다니던 신세가 오늘 고귀해질 줄 누가 알겠는가. 모란장은 1962년부터 열려 60년의 역사를 지녔다. 좁은 골목길 사람과 사람 사이를 용케 피하면서 수레 하나가 굴러간다. 기름집 앞에서 보온병을 열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차를 탄다. 가게 주인과 손님에게 커피를 전해주고 장부에 잔 수를 기록한다. 굴러다니는 찻집 길 다방 손수레의 모습이다. 얼마나 파냐고 묻자 “장날이면 100~200잔은 쉽게 판다. 장이 끝날 때쯤 한꺼번에 계산한다”고 했다. 그도 장날 대목을 단단히 보는 중이다. 오래전부터 들려온 “뻥이요!” 모란장으로 들어서면 장터 어귀에서 뻥튀기 노점을 만날 수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장마당을 지켜온 증인이다 싶은 “뻥이요!” 소리를 듣게 된다. 폭음이 터지자 쌀 튀밥도 아닌 둥굴레 뿌리들이 튀어나왔다. 잘 볶아진 둥굴레를 살피던 아주머니는 “가족들 먹으려고 가락시장에서 국산으로 사다가 집에서 볶아 보려 했는데, 연기 나고 난리가 났다. 옛날처럼 마당에 가마솥 놓고 볶지 않을 바엔 여기가 최고다”라고 한다. 그 옆 노인은 “가루 내서 미숫가루 만들려고 서리태 콩 튀기러 왔다”라는데 아침 출근하는 자식의 요기를 위한 것이란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이들의 표정은 거의 비슷해 자식과 가족을 위해 무엇인가를 주섬주섬 싸들고 와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기름솥에서 막 튀겨낸 도넛이며 꽈배기에 사로잡혀 가던 길을 멈춘 남편에게 “그렇게 먹고 싶으면 먹어라. 먹어”라고 채근하지만, 그의 살찐 몸을 흘겨보는 아내의 눈길이 아파 사내는 줄곧 머뭇거린다. 상인은 약을 올리듯 꽈배기에 설탕을 버무려 좌판에 이리저리 굴려 냄새를 피우고, 남자는 더욱 눈을 떼지 못한다. 장마당 대부분은 먹을거리와 반찬거리로 가득 차 있다. 즉석에서 김을 구워 파는 좌판 앞에서 사내가 “홀아비 반찬은 구운 김이 최고”라며 맛을 보고 엄지를 든다. 그는 김 두톳을 산다. 과일가게 주인은 동료에게 방울토마토를 잘 보이는 곳에 놓으라고 얘기한다. “요즘 토마토가 제철이다. 손님들은 짭잘이를 주로 찾는데 방울토마토도 맛있다”라고 한다. 상품 하나 놓는데도 전략과 전술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한나절 반짝 골목길이 생기고 골목을 따라 장이 펼쳐진다. 세상은 온통 쓸모 있는 것들이 주인으로 행세하지만, 가끔 모자라고 알 수 없는 것들도 한귀퉁이를 차지한다. ‘투르말린’이라는 낯선 이름의 금속이 박힌 반지. 뭔가 복잡하게 생겼지만 허술한 기기를 손가락에 갖다 대면 ‘삐’ 소리가 나고 상인은 손님의 간이 나쁜지 폐가 안 좋은지를 즉석에서 판별한다. “허리가 안 좋고 아프지 않나?”라고 묻자 그렇다는 손님에게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고 한 달 보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한다. 가격을 묻고서 남편이 머뭇거리자 아내가 돈 걱정하지 말라고 애써 권한다. 남자는 슬그머니 반지를 빼어놓고 일어선다. 신장이 안 좋다는 아내의 손가락에 낀 반지 값만 치르며 분주하게 뒤돌아서서 장을 보러 나선다. 자기보다 더 귀한 자신의 사람. 우리는 누군가에게 다 귀하고 소중한 사람일 텐데 가끔 그것을 잊고 산다. 모란역에서 모란장 사이에 기름집 40여곳이 있는 기름골목이 있다. 장마당 한편은 온통 꽃천지다. 모란장의 꽃 시장은 이름이 났다고 한다. 난이며 선인장이며 구근식물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1000원만 깎자”는 손님 말에 주인은 “안 판다”고 단호히 선을 긋는다. 색이 곱다며 알덩이뿌리를 자꾸만 만지는 손님에게 “예쁘면 사가라”고 하자 “같은 게 있다”는 말에 “그럼 욕심이에요. 꽃 욕심도 부질없으니 그냥 가시라”고 답한다. 주인은 파는 일에만 사로잡혀 있지 않고, 손님은 구경도 일이라 한가롭게 시장마당을 거닌다. 대부분의 손님은 주인이 부르는 가격에 수긍하는 형국이라 흥정의 칼바람은 이 바닥에서 별로 보이지 않는다. “꽃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도 고와요. 모진 사람 못 봤고 다 여리고 좋은 사람뿐이더라”라는 게 야생화를 팔던 상인의 말이다. “천엽 하고 거시기가 만원이다. 거기다가 국수 한그릇씩 먹으면 된다.” 먹거리 장터 앞에서 중년의 일행이 뭘 먹을까 골라 셈을 따지고 있다. 거시기는 아마도 탁주이거나 소주가 아닐까 싶다. 먹는 것도 장마당의 큰일 중 하나라 모란장 먹거리 장터는 판이 크다. 장마당의 4분의 1은 차지하고 있는 듯, 한편은 온통 먹을거리 좌판이 펼쳐져 있다. 늙수그레한 이들은 대개 요기도 되고 얼큰히 취할 거리를 찾는데, 손님 중엔 갓 스물 어린 축에 속하는 이들도 있어 튀김이며 군것질거리를 고르고 있다. 이가 부실한 이는 국수를 술술 삼키고, 건장한 이는 요즘 철에 맛이 들은 열무비빔밥을 꼭꼭 씹어 먹는다. 국밥을 앞에 둔 이들은 대개 반주를 하느라 소주병이 보이고 여럿이 모인 자리엔 막걸리병을 흔드는 일이 흔하다. 장마당 한편으로 널찍한 장막이 쳐 있다. 장단 가락이 흘러나오는 곳은 각설이 상설공연장. 각설이가 구성지게 ‘불효자는 웁니다’를 부르고 막을 가득 채운 불효자들과 불효자를 둔 부모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간간이 엿가락을 파는 각설이 동료들이 오가며 “사주세요. 만원” 외치자 불효자들은 순순히 지갑을 연다. “세상에 공짜 구경이 없는 법인데, 저렇게 열심히 부르는데 어찌 입 닦을 수 있나”라는 것이 엿 한뭉치를 건네받은 손님의 이야기다. 공연장은 상설인 듯 장막은 붙박이로 쳐져 있고, 공연을 보러 장날을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정오를 지나서인지 장터는 시들해지는데 그래도 손님들은 줄을 잇는다. “예전만 못하다. 정비되기 전에는 진짜 장돌뱅이들이 많았다. 지금은 근처 상인들이 자리를 펴는 곳도 많다”라는 것이 모란장 20년 경력의 장꾼 이야기다. 이곳에도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어서 아무나 자리를 펴고 장사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아마도 밀려난 이들은 기름골목 근처에 눈치를 보며 전을 펼치지 않나 싶다. 모란장 인근 골목길도 노점으로 장이 열린다. “사러 나온 게 아닌 놀러 나온 것” 모란장에서 오명을 날리던 가축시장은 사라졌다. 모란장에서 가끔 볼 수 있다는 시골 잡종 강아지를 파는 이들도 눈에 띄지 않는다. 오늘의 모란장은 깔끔해졌으나 장터의 다양함과 난장 분위기는 사라졌다. 어쩌면 그저 그런 전통시장 한곳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기대는 그렇지 않아보인다. 비닐봉지 여럿을 들고 귀가하던 노인은 “장 구경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장바닥을 헤매고 다니다 보면 살 것도 있고 볼 것도 있다. 가끔 치밀어 오는, 사는 게 지겹다는 생각도 사라진다”라고 했다. 무엇인가 잔뜩 사들고 “뭐 사러나온 게 아니라 놀러 나온 것이다”라고 강변하는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도시 한복판에서 열리는 오일장은 새롭고 위태롭다. 어느 시골의 장터가 아니라 주변에 쭉쭉 올라선 아파트에 포위된 난감한 공터에서 열리는 장날은 그래도 장바닥 인생들이 축제를 벌이는 날인 듯싶다. 별달리 살 것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향수를 되새기기 위해, 혹은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평범함이 지겨워서 장을 찾는 이들도 있다. 필요한 것이야 대형마트 한곳만 들러도 차고 넘치게 구할 수 있겠지만, 야바위처럼 사람을 홀리는 것은 장마당이 제맛이다. 어떤 때 상인이 물건을 팔기보다 손님을 위로하는 일도 볼 수 있다. 손님은 장사꾼에게 힘내라고 용기를 준다. 서로의 사연을 몰라도 모두가 힘든 세상에서 잘 살 수 있기를 바라며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 기대서서 5일마다 축제를 여는 곳이 모란장 골목시장과 장마당이다. 사는 게 답답하게 여겨지고, 세상사 복잡할 때 그곳을 찾아 살아서 퍼덕이는 활기를 맛볼 수 있다.
- 골목 내시경
- 왜, 성남·천안·용인·청주가 승부처일까(2022. 04. 18 13:33)
- 2022. 04. 18 13:33 정치
- ㆍ지난 지방선거 민주당 압승 후 이번 대선서 바뀐 도시들 “아직도 한국의 선거는 막걸리·고무신 선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3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거버넌스센터·주민주권자치분권혁신후보연대 주최 ‘지방선거캠페인 토론회’에 참석한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의 말이다. 왜 그렇게 보는 걸까. “입후보자들의 공약을 보면 너무 민원 중심이다. 지방행정 민원 대부분이 부동산 관계 민원이다. 민원을 수용하겠다는 공약이 선거 때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당선 후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해보려는 연구나 조사도 없다.” 이번 지방선거는 박빙의 승부를 보인 지난 대선의 연장선에서 치러지게 될까. 3월 7일 경기도 안양시 평촌중앙공원에서 열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기 안양 유세장을 찾은 시민들이 연설을 듣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여촌야도, 여전히 유효할까 한국 정치에서 오래된 속설 중 하나가 여촌야도(與村野都)였다. 지방 내지 시골 유권자들은 여당을 찍고 도시지역에서는 야당을 찍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재의, 5월 9일까지 남은 기간의 법적 여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대략 여촌야도에서 여는 보수성향당, 유신시대의 공화당에서 현재의 국민의힘까지 이어져온 ‘집권정당’들을 지칭하고, 야당은 현재는 집권당이지만 곧 야당으로 돌아갈 진보개혁성향의 민주당 계열의 정당을 일컫는 것으로 보면 된다. 두차례의 정권교체 결과 여촌야도(與村野都) 구도가 많이 약해졌다. 1987년 이후 초창기에는 지역변수가, 2000년대 이후에는 세대구도가 뚜렷해졌다. 그렇다면 2018년 지방선거 이후 민심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40여일 남은 지방선거에서 언론은 서울시장·경기도지사처럼 수도권에서 누가 공천을 받고 누구와 대진표가 짜일 것이냐와 같은 정치적 공방에 주목한다. 모두 지난 대선에 이은 중앙정치의 대리전 내지는 연장전으로 이번 지방선거가 치러질 것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움직인다. 그런데 ‘대도시 민심’이라는 프레임으로 읽으면 전혀 다른 승부처가 떠오른다. 경기도와 충청도라는 광의의 수도권 민심이다. 주간경향은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 24곳에서 2018년 지방선거 1·2위 표 격차와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당선인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표 격차를 비교·분석했다(표 참조). 수치가 보여주는 지난 지방선거 결과의 의미와 이번 대선 결과를 대입해 유추할 수 있는 6·1지방선거의 전망은 다음과 같다. 1)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 24곳 중 22곳에서 승리했다.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다시 실시된 1991년 이래 초유의 결과였다. 민주당의 대승은 국민의힘(2018년 지방선거 당시는 미래통합당)으로선 대패를 뜻한다. 당시 미래통합당이 승리를 거둔 곳은 대구, 포항 두군데밖에 없었다. 2) 2018년 선거 당시 그 전 지방선거, 2014년 선거 때 현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으로부터 민주당이 지방권력을 빼앗아온 곳은 울산, 용인, 창원, 청주, 남양주, 평택, 안양의 일곱군데였다. 여기에다 울산, 창원 등 전통적으로 현 국민의힘이 강세를 보여온 지역에서도 민주당 지방권력이 만들어진 것 역시 초유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국민의힘 후보가 승리한 이번 대선 결과와 비교한다면? 3) 이들 일곱개 대도시의 이번 대선 투표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이재명이 윤석열 당선인보다 앞선 결과를 보인 곳은 남양주, 평택, 안양시 등 세군데였다. 경북 울산이나 경남 창원은 원래대로 돌아갔으며, 용인은 약간 열세를 보였다. 4) 윤석열 지지세가 지속된다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시장이 탄생한 곳 중 울산, 용인, 창원, 청주는 민주당으로서는 불리한 구도에서 이번 지방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된다. 5) 대선 투표를 기준으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도시 접전지는 성남(75표차), 천안(476표차), 용인(3078표차), 청주(8443표차), 평택(9402표차)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중 성남과 평택은 이재명 후보가 더 많은 표를 받았다. 결론은 이렇다. 서울·경기도 광역단체장만 승부처가 아니다. 대도시 기준으로 재편해보면 성남, 천안, 용인, 청주도 최대 승부처로 꼽힌다. 2018년 지방선거 때 압도적인 표차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던 이들 지역에서, 이번 대선 민심이 극적으로 뒤집힌 이유는 뭘까. 표차 4년 만에 뒤바뀐 까닭은 경기도 성남은 2006년 이대엽 시장을 마지막으로 이재명 시장(재선)에서 은수미 현 시장까지 민주당 시장이 3선을 기록했다. 은수미 시장은 이번 지방선거에 불출마 선언을 한 상태다. 은수미 후보가 시장이 될 때 표차는 12만표였으나 이번 대선에서 그 표차는 불과 75표 차이(0.01%포인트)로 줄어들었다. 왜일까. 지역인사들의 설명에 따르면 과거 역대선거에서 분당은 서울 강남권과 조응해 국민의힘 계열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았고, 구시가지(본 시가지) 쪽은 주로 민주당 쪽에 투표했다. 구시가지에 호남 출신 인구가 많았고, 분당 등에는 영남-강남권에서 이사를 온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백찬홍 성남사회단체연대회의 전 대표는 “지난 총선까지는 분당이 지역구인 이재명 전 지사가 인기몰이하면서 분당에서도 민주당 표가 나름 나왔지만 이번 대선에서 분당은 완전히 국민의힘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지방선거에 민주당 쪽에서 경쟁력이 센 후보가 나오지 않는 한 성남시장도 국민의힘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지역시민사회에서는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1기 신도시 건설지역이었던 분당에 이어 동판교·서판교 등 판교신도시 지역에 ‘거의 강남급으로 비싼 아파트들’이 많이 지어지면서 성남의 보수색이 강해졌다는 분석이다. “예전 같으면 기흥구·처인구·수지 지구는 민주당이 지는 구도였을 것이다. 수지는 부동산 민심 때문에 여전히 민주당에 조금 불리한데, 처인구에는 하이닉스가 들어오면서 신규 아파트촌(村)이 형성돼 그나마 민주당에 조금 유리한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출마설이 나돌았던 현근택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용인경전철 주민소송단 대표로 풀뿌리 경력을 쌓았지만, 이번에는 용인시에서 출마하지 않는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백군기 현 시장은 전임 정찬민 시장을 제치고 당선됐다. 당시 표차는 6만1013표. 이번 대선에서는 3078표 차로 결과가 뒤집혔다. 수치를 뜯어보면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백군기 시장 득표수보다 이재명 후보는 약 7만표를 더 얻었다. 그런데 상대방인 국민의힘 측은 약 14만표를 더 획득해 역전시켰다. 이유가 무엇일까. 현 변호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정당 지지가 엎어진 건 용인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용인은 수원처럼 민주당이 항상 이기는 동네가 아니다. 과거 선거결과를 보면 민주당 한 번, 국민의힘 한 번 식으로 항상 바뀌었다. 유권자들이 정권의 흐름에 민감하다는 이야기다.” 극적인 사례는 또 있다. 충북 청주다. 2018년 한범덕 현 시장이 당선될 때 표차는 10만8700여표 차였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2018년 지방선거 때보다 3만2000여표를 더 얻었다. 윤석열 당선인은 이번 선거에서 2018년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가 받은 표(10만4654표)보다 15만여표가 늘어난 득표(25만4237표)를 해 전체적으로 8443표를 앞섰다. 이건 왜일까. 김영식 서원대 교수는 “일단 청주의 경우는 부동산 급등으로 조정지역에 포함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 또 지역사회에 대학이 많은데 20대 남성이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 현상의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조정지역에 선정되고 아파트값이 올라가면서 중산층 이하는 상대적 박탈감이 큰데, 유권자들은 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현 정부의 부정적 이미지가 아직 남아 있으니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충남 천안의 경우 서울·부산처럼 2021년 보궐선거를 치렀다. 민주당 소속 시장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확정받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소속인 박상돈 현 시장이 보궐로 당선돼 이번 지방선거에서 재선 도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전 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조사를 주장했던 오수균 천안아산경실련 집행위원장(전 강동대학교 창업경영학과 교수)은 “지방에서 정권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새로 바뀐 정권이 시스템을 보완해나가는 게 그나마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각 정당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잡은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신규 아파트단지들 표심의 향방은 한가지 궁금한 건 ‘부동산 계급투표’의 실재 여부다. 지난 대선 직후, SNS 등에서는 윤석열 후보 지지율과 아파트 평수·가격 사이의 상관관계 그래프가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확실히 그래프는 우상향 곡선으로 수렴하는 경향성을 보였다. 그러나 “서울 강남 3구의 자가소유비율은 40% 남짓에 불과한데 강남에서 투표한 사람의 60%는 자기 집의 소유가 아니라고 추론할 수 있기 때문에 ‘부동산 계급투표 성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결론 내기는 성급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한국사회의 부동산 문제에 천착해온 남기업 토지+자유 연구소 소장은 “지난 대선에서 노골적인 자산투표 흐름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부동산 자산소유와 특정후보 투표의 상관관계가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대선 출구조사에서 주택소유 여부도 물었는데 1주택 소유자 중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 비율이 47%나 나왔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흔히 이번 대선 평가에서 문재인 정부가 섣부른 부동산 정책으로 대중의 집 소유 욕망을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해 진 선거라고 분석하는데, 그 욕망도 뜯어보면 주거안정성 욕구와 시세차익 욕구로 나눌 수 있다. 시세차익이 줄어들면 주거안정성 욕구가 커지는데, 이 욕구는 존중받아야 한다. 반면 불로소득-시세차익 욕구까지 존중하기 시작하면 시장경제가 버텨낼 수 없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면 시세차익이 덜 발생하도록 시장을 유도하는 데 실패했다고 보는 게 맞다.” 앞으로 보다 정교한 진단과 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 표지 이야기
- 노동자의 범위 넓힌 성남시(2021. 12. 03 15:13)
- 2021. 12. 03 15:13 사회
- 지난 12월 1일 경기 수정구의 한 상점가에서 만난 배달노동자 안준우씨(47). 오전 11시쯤 되자 휴대전화가 정신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4~5개의 ‘콜’이 동시에 떴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안씨는 코로나19로 인해 업무량이 더 많아졌다고 했다. 점심시간대(오전 11~2시)의 경우 1000개 수준이었던 콜이 2000개까지 늘었다. 배달이 많을 때는 동시에 100개까지 콜이 울릴 때도 있다고 했다. 그는 하루에 12시간씩 일한다. 차들로 꽉 막힌 도로를 누비고, 정신없이 움직이는 안씨와 같은 배달노동자들은 늘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안씨는 “가을에는 낙엽, 겨울에는 빙판을 밟고 미끄러지기도 한다”면서 “어두운 주택가에서 앞을 잘 살피지 못해 넘어지는 일도 있다. 주변에서 일하는 배달노동자들이 자잘한 사고를 겪는 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경기 성남시 수정구의 한 상점가에서 지난 12월 1일 만난 안준우씨가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 김태희 기자 안씨는 지난해 큰 사고를 겪었다. 오토바이를 타다 미끄러운 맨홀 뚜껑 위에서 넘어지는 사고로 갈비뼈 3개와 쇄골이 부러졌다. 6개월간 일을 쉬어야만 했고 그동안 수입은 없었다. 그는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안씨는 “만약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으면 아직도 치료비와 생활비에 허덕이고 있었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날 이후로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다른 배달노동자들에게도 가입을 권유하고 있다”면서 “성남시는 보험료의 90%를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에 비용에 대한 부담도 덜한 편”이라고 말했다. 병가비 지원 없었으면 아찔할 뻔 박은영씨(가명·59)는 성남 하대원동에서 9평 남짓의 작은 식당을 혼자 운영 중이다. 박씨 혼자만 일하는 외벌이 가정이라 가게 문을 잠시라도 닫는다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월세와 전기세 등 매월 꼬박꼬박 나가고 있는 약 120만원의 고정비 역시 박씨가 가게 문을 닫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8년간 홀로 식당을 운영한 박씨는 지난달 교통사고를 당해 15일간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다. 보험이 없는 1인 자영업자인 탓에 치료비와 생계비 부담을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성남시로부터 병가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박씨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게 빠듯한 상황인데, 성남시의 유급병가비 지원이 없었다면 입원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성남시 지원 덕분에 무사히 치료를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안준우씨의 휴대전화에 콜 알림이 뜨고 있다. / 김태희 기자 전국 최초의 사회안전망 3종 사업 배달노동자 안씨와 자영업자 박씨는 모두 성남시 ‘노동취약계층 사회안전망 지원사업’(이하 사회안전망 구축 3종 사업)의 수혜자다. 노동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성남시가 만든 이 지원사업은 특수고용직 산재보험료, 노동취약계층 유급병가비, 플랫폼노동자 상해보험 등 3가지다. 서울시와 경기도 등 다른 지자체에서 각각의 지원사업을 운영한 경우는 있었지만, 3가지 사업을 동시에 지원하는 경우는 성남시가 전국 최초다. 기초지자체만 놓고 보면 성남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산재보험료와 상해보험료를 지원하고 있다. 특수고용직 산재보험료 지원사업은 노동자가 부담하는 산재보험료(1인당 평균 1만940원)의 90%를 성남시가 대신 납부한다. 올해 2억3650만원의 예산이 편성됐으며, 내년에는 4억7300만원으로 확대된다. 성남시에 거주하거나 성남시내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특수고용노동자를 대상으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보험설계사, 건설기계운전자, 학습지교사, 골프장 캐디, 택배원 등이 혜택을 받는다. 올해 들어 1차 지원(7월 19일~8월 13일)을 통해 136명이 혜택을 봤고, 2차 지원(10월 18일~11월 12일)에는 973명이 신청해 현재 심사를 받고 있다. 노동취약계층 유급병가 지원사업은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 있는 시민이 질병이나 부상으로 의료기관에 입원하는 경우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생계비를 준다. 성남시 생활임금을 적용해 1일 8만4000원, 연간 최대 13일 기간 내에서 생계비를 지원한다. 특수고용직, 단시간 일용직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등으로, 중위소득 120% 이하이면서 재산이 2억5700만원 이하인 성남시 거주자면 받을 수 있다. 지난 11월 25일 사업 시작 이후 현재까지 11명이 신청했으며, 현재 3명(총 243만6000원)이 지원받았다. 플랫폼노동자 상해보험 지원사업은 성남시가 보험사와 계약을 체결해 상해를 입은 플랫폼노동자에게 보험금 지급한다. 산재보험 가입률은 낮지만 교통사고와 골절상을 포함해 업무상 재해위험에 노출된 배달노동자, 퀵서비스 기사, 대리운전기사 등이 지원을 받는다. 성남시는 12월 중 보험사와 단체상해보험(연간 2억4600만원)을 계약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플랫폼노동자 5000여명이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상해보험 보장 범위는 상해사망·후유장애 2500만원, 정신질환 위로금 100만원, 화상진단금·수술비 20만원, 골절 진단비·수술비 15만원 등이다. 성남시는 사회안전망 구축 3종 사업 외에도 노동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지원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우선 내년부터 건설현장 일용노동자를 위한 ‘파상풍 예방접종’ 사업을 시행한다. 또 업무 특성상 프리랜서나 파견근로자 형태로 근무하는 사례가 많은 IT 노동자들의 어려움도 파악해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성남시가 이런 사업을 하게 된 배경에는 노동취약계층이 겪는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보자는 뜻이 담겨 있다. 성남시가 실시한 ‘플랫폼노동자 실태조사’를 보면 이들의 경우 제도적인 공백 탓에 사회보험에 제대로 가입하지 못하거나, 사고를 당하고도 일을 계속해야 하는 등의 부당함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결과에서 성남지역 플랫폼노동자 규모는 1만명으로 추산된다. 배달노동자 58.4%가 사고를 경험한 적이 있었지만, 산재보험 가입률은 14.9%에 그쳤다. 보험이 없다 보니 치료비 자부담 분도 자연스럽게 많아졌다. 배달노동자 본인 치료비 부담률은 84.4%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퀵서비스 기사도 59.2%가 사고를 경험했지만, 산재보험 가입률은 20.4%였고 본인 치료비 부담률은 75.3%였다. 박은영씨가 성남시 중원구에 있는 자신의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다. / 김태희 기자 ‘성남시 10인 미만 영세업체 노동실태조사’에서도 10인 미만 영세업체 노동자들은 산재보험 및 고용보험 등의 가입률이 낮아 산업재해로부터 취약한 상태였다. 10인 미만 영세업체 노동자 중 3년간 업무로 인해 아프거나 사고를 당한 경험은 18.4%였지만, 이들 중 치료를 위해 업무를 중단하지 못한 비율은 76.2%에 달했다. 중단하지 못한 이유로는 ‘유급병가가 없어서’(63.3%)가 가장 많았다.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사회보험과 같은 기본적인 권리보장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장별 사회보험 가입률을 보면 5~9인 사업장의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가입률은 각각 64.1%, 66.3%, 72.1%였다. 1~4인 사업장의 경우 각각 43.5%, 45.4%, 50.0%로, 모든 분야에서 약 20%포인트 떨어졌다. 모든 일이 노동이란 전제로 권익 확대 정부와 다른 지자체들은 그동안 ‘노동’ 관련 대책과 정책을 수없이 발표하고 시행해왔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근로자에 한정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전통적인 사무실과 공장, 매장 등 공간과 근로 형태에 따라 지원 대상을 별도로 분류해왔다. 성남시의 정책은 이러한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새로운 노동자’를 위한 것이다. 근로 공간과 시간, 형태를 떠나 ‘모든 일’이 ‘노동’이라는 전제가 바탕이 된다. 고용 여부나 직종에 상관없이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동자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안전망 구축 3종 사업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프리랜서와 플랫폼노동자에 대한 선제 지원의 목적도 있다. 성남시 관계자는 “현재 프리랜서와 플랫폼노동자들은 근로형태상 법적인 보호를 받기 어렵다”면서 “중앙정부의 입법 과정과 제도 시행에는 많은 절차와 시간이 소요되는데, 현장의 상황은 이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지자체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성남시에서 시행하는 이런 정책은 모두 ‘일하는 시민을 위한 성남시 조례’를 근거로 이뤄진다.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된 이 조례는 전국 최초로 노동의 대상을 ‘노동관계법상 근로자’가 아닌 ‘일하는 시민’으로 확대했다. 상위법이 없고 개념 자체를 새로 정립해야 하다 보니 조례를 준비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성남시는 2018년부터 노동포럼과 전문가 포럼을 실시하는 한편 노동자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통해 현장의 요구들을 담아냈으며, 연구 용역도 수차례 진행했다. 은수미 성남시장이 일하는 시민을 위한 성남시 조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성남시 제공 이렇게 만들어진 ‘일하는 시민’이라는 개념은 “노동관계법에 따른 근로자를 비롯해 고용상의 지위 또는 계약의 형태에 상관없이 일터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으로 정의됐다. 제조업 중심에서 디지털 중심으로 시대가 바뀌면서 새로운 형태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등장하고 있으니, 단순히 고용계약의 형태로 제약을 두지 말자는 의미다. 조례로 정하는 노동자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성남시는 다양한 형태로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었다. 조례는 불공정한 계약관계 방지에 관한 내용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조례 적용 대상이 기존의 근로자에서 일하는 시민으로 확장되면서 통상적인 ‘근로계약’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계약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일하는 시민 지원기금’을 설치하고 시장이 위원장을 맡는 기금 운용 심의위원회도 두도록 했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상황이나 급변하는 고용 노동 등 긴급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미리 마련해 신속하게 대응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성남시 관계자는 “성남시는 지난 2016년 기초지자체 중 처음으로 노동과를 신설한 이후 노동자 권익실현을 위한 다양한 노동정책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조례 제정을 계기로 중장기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체계적이고 폭넓은 노동정책을 수행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성남시정에 반영된 은수미 시장의 노동관 일하는 시민을 위한 성남시 조례에는 지난 40년간 노동운동을 해온 은수미 성남시장의 노동관이 반영돼 있다. 은 시장은 1984년 서울 구로의 한 봉제공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다가 잠깐 졸아 바늘이 손톱을 관통하는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당시 그에게 돌아온 건 ‘옷감에 피가 묻어 망쳤다’는 작업반장의 질책뿐이었다. 동료 노동자들을 향한 숱한 인권 유린도 지켜봐야만 했다. 그는 그렇게 인권과 노동권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은 시장은 한국노동연구원에 재직하던 2010년 이 조례의 기본 틀을 구상했다. 은 시장은 “연구원에서 일하면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다수의 노동자를 만났고 그들의 어려움을 들어왔다”면서 “그때는 비정규직 사회안전망 구축이 핵심 쟁점이었는데, 지금의 문제도 다르지 않다. 결국은 노동자들을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은 시장은 시장으로 당선된 이후 조례를 만들면서 시대상 변화를 어떻게 반영할지에 주력했다. ‘일하는 시민’이라는 개념은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그는 “제조업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세상이 바뀌었고, 이로 인해 사람이 사는 모습도 달라졌다”면서 “제조업 시대의 고용계약은 사장과 노동자 사이의 계약이었다면, 디지털 시대의 고용계약에는 플랫폼이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의 체계로는 특정하기 힘든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새로 등장한 이 관계를 해석하기 위해선 ‘일하는 시민’이라는 개념이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은 시장은 해외 사례를 들며 한국사회가 아직까지 플랫폼노동자에 대한 문제에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이미 ‘긱워커’라는 이름으로 플랫폼노동자에 대한 문제가 1980~1990년대에 공론화됐지만, 한국은 최근 들어서야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며 “한국은 아직 이들의 고용에 제도적 근거를 만드는 것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은 시장은 영화 <설국열차>에 등장하는 ‘꼬리칸’을 우리 사회 노동취약계층의 현실에 비유한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한국사회의 단면과 비슷하다고 했다. 은 시장은 “위기상황에 놓인 시민들의 현실은 영화 속 극단적인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부족하지만 노동문제에 헌신했던 사람으로서 최소한 성남에서만큼은 ‘일하는 시민’들이 소외받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동수당의 사례처럼 전국적으로 확산돼 국가 정책으로 반영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동자의 권익 확대를 위한 지자체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은 시장은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사업자에게 의무를 강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누가 사업자인지 경계 자체도 모호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자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직접 하면 된다. 사업자하고는 소통하고 문제 해결에는 지자체가 직접 개입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매년 산재로 2000여명이 목숨을 잃고 있는데 모든 관리·감독을 고용노동부에서 홀로 감당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은 시장은 산업재해 문제를 예로 들며 노동문제에 대한 지자체의 관리·감독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권한을 나누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위탁하고 협업하자는 것인데 사실 잘 이뤄지지 않아 안타깝다”며 “지휘관리는 정부가 하되 노동현장을 잘 아는 지자체에 사무를 위탁하면 지금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기획 시리즈-대선주자 릴레이 정책 검증](5) 이재명 성남시장… 이재명과 손가혁, ‘경선 이변’ 가능할까(2017. 02. 21 15:02)
- 2017. 02. 21 15:02 정치
- 이재명 성남시장은 대선후보로서 보기 드문 인물이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비주류에 속하는 이 시장은 현직 기초단체장으로는 처음으로 유력 후보의 반열에 올랐다. 여러 대통령 후보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달변가이기도 하다. 그를 유력 대선주자로 만들어준 힘은 촛불민심이다. 촛불민심이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20일, 의 대선주자 호감도 조사에서 이 시장은 31.4%로 1위를 차지했다. 비호감도에서는 제일 낮은 38.5%를 기록했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는 종종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비견된다. 이 시장은 스스로를 트럼프 대통령보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주자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 비유한다. 에세이집 에서도 이 시장은 “나는 성공한 대한민국의 샌더스가 되려 한다”고 말했다. 이 시장의 강점은 SNS다. 이 시장 본인이 하루에 수 건에서 많으면 10여 건을 SNS에 직접 올린다. 중앙정부에서 청년배당, 공공산후조리원 등 성남시 복지정책에 제동을 걸 때마다 그는 SNS에 곧바로 의견을 올렸다. 그가 대선후보로 뜨기 전부터 이 시장의 지지자들은 그의 SNS 글을 보며 이 시장에게 ‘사이다’라는 별명을 붙였다. 다년간의 SNS 활동은 이 시장에게 “무엇을 시작하든 끝장을 보는 사람”( 소개글)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했다. 이태경 토지정의연대 사무처장은 그의 리더십을 “단호한 정의로움”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나는 대한민국의 샌더스 되려 한다” 최근 이 시장이 SNS에 자주 올리는 글의 주제는 기본소득이다. 1월 23일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도 그는 기본소득을 언급했고 과의 인터뷰에서는 기본소득을 “핵심 정책”이라고 말했다. 30세 미만과 65세 이상에게 연 100만원, 전 국민에게 연 30만원을 준다는 것이 핵심이다. 전자는 생애주기별 기본소득, 후자는 전 국민 기본소득이라 불린다. 이 시장의 기본소득 정책의 원형은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이다. 성남시는 만 24세 이하 청년들에게 월 50만원 상당의 지역화폐(상품권)를 지급한다. 43조원이라는 재원에 대해 이 시장은 예산 낭비를 근절하고 부자(슈퍼리치) 증세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복지정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이 돈으로 노인 기초연금이나 어린이집 등 사회적으로 시급한 분야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시장은 기본소득은 복지정책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가처분 소득을 높이는 경제정책이라고 설명한다. 기본소득은 그가 내세우는 ‘뉴딜 성장’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1월 15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손가락혁명군 출정식에서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시장이 언급하는 슈퍼리치는 주로 재벌 대기업이다. 그는 기자에게 재벌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상 여부가 “나와 문재인 후보의 대척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1월 12일 이 시장은 문 전 대표를 향해 재벌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상 여부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촉구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공개 질의했다. 또한 문 전 대표를 향해 재벌개혁 정책에 대한 공개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재벌개혁과 더불어 이 시장은 노동권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법인세 인상을 통해 복지를 확충하고, 기업 내부에서는 노동3권 강화로 불법·장시간 노동을 근절하겠다는 게 이 시장의 구상이다. 인터뷰에서도 이 시장은 일자리 확충과 임금 상승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노동3권을 권장하고 지원·육성하겠다는 말도 했다. 이 시장이 노동문제에 천착하는 배경에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있다. 는 그가 만 12세 때 고무공장에 위장취업을 했다가 기계에 손가락을 다친 사연으로 시작한다. 구체적으로 이 시장은 상시·지속적인 업무를 하는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최저 시급을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안을 주장하고 있다. 2월 14일 SBS 에서는 여러 장관 중 노동부 장관이 제일 중요하다며,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사면시켜서 노동부 장관을 시켰으면 한다”고도 말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 수사로 촉발된 검찰개혁에 대해서도 이 시장은 검사장 직선제를 주장하고 있다. 이 시장은 현재 검찰의 문제점으로 권력자들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는 점을 꼽았다. 인사권이 정치권력에 종속돼 있기 때문에 검찰이 권력을 감시하지 못하고 반대로 권력의 사유물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교육감 직선제를 참고하면 검사장 직선제도 충분히 시행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어색하겠지만 교육감 직선제처럼 시간이 흐르면 익숙한 제도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대연정론은 부패세력에게 구조신호 같아 이 시장의 정책들이 말만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다. 이 시장의 성남시정에 대한 각계의 호평은 그의 말에 현실성을 더해준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그는 4년 전보다 4% 더 높은 지지율을 받았다. 보수성향이 강한 분당구에서도 50% 이상 득표했다. 한국매니페스토본부 등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행정자치부에서도 성남시를 3년 연속 재정상태 우수단체로 선정했다. 오히려 이 시장의 발목을 잡는 것은 그 자신이다. 이 시장의 ‘끝장’과 ‘단호함’은 가끔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지난해 1월에는 배우 김부선씨와 SNS에서 설전을 벌였다. 12월에는 가천대를 비하하는 듯한 글을 올려 비판을 받았다. 이 시장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지방선거에서 이 시장을 괴롭혔던 친형과의 다툼과 철거민 논란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그는 “나를 공격하는 적이 오히려 좋은 자극이 된다”며 언론 인터뷰와 책, SNS를 통해 적극 해명에 나서고 있다. 말이 거칠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인격수양이 부족했다”는 말도 했다. 문재인, 안희정 등 다른 야권 주자를 향한 공격도 결과적으로 상처만 남겼다. 이 시장의 경쟁자인 안희정 충남지사는 대연정론을 제기했다. 개혁과제에 동의한다면 새누리당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안 지사의 의견은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 논란을 부추겼다. 이에 이 시장은 2월 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안 지사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그는 대연정론에 대해 “민주당의 정체성을 저버리고, 친일독재 부패세력에 탄핵이 되더라도 살 길이 있다는 구조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며 “청산대상과 함께 정권을 운영하겠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마침 이 시장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안 지사는 상승하는 시점이었다. 여기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가 결과적으로 악재가 됐다. 반 전 총장의 사퇴 이후인 2월 2일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반기문 지지층 중 이 시장을 지지하겠다는 의견은 3.4%에 그친 반면, 문 전 대표와 안 지사를 지지하겠다는 의견은 각각 11.1%, 7.6%로 나왔다. 2월 들어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이 시장은 문 전 대표는 물론 안희정 지사, 안철수 의원 등에게도 뒤처지는 5~8%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1월 여론조사와 비교하면 야권 지지층의 이탈이 눈에 띈다. 그럼에도 이 시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론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제가 이길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한다. 그는 믿는 것은 ‘손가락혁명군’으로 대표되는 소수 열성 지지자들이다. 1월 15일 광주 서구에서 열린 손가락혁명군 출정식에는 이 시장의 지지자 700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2010년 이 시장의 성남시장 당선 이후부터 계속된 SNS 행보를 통해 만들어진 지지층이라는 점에서 결집력은 강하다. 이 시장은 기자에게 “문 전 대표보다 제가 열성 지지자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와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가 참여하는 민주당 경선은 다르다. 열성을 갖고 행동하는 소수가 결판을 내는 게임이다. 그래서 경선에 이변이 많고, 대세는 없다”고 말했다.
- [숫자로 보는 정치-10.9%]이재명 성남시장 지지율(2016. 11. 22 17:41)
- 2016. 11. 22 17:41 정치
- ㆍ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 문재인 반기문 이어 3위, 안철수 4위로 밀어내 이재명 성남시장이 대권주자 ‘넘버3’에 진입했다. 그동안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순이었다. 하지만 이 시장은 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10.9%로 3위를 차지했다. 문 전 대표가 22.1%로 1위를 유지했고, 반 총장이 18.1%로 2위를 지키고 있다. 그동안 3위를 차지했던 안 전 대표는 8.1%로 4위로 밀려났다. 알앤써치와 데일리안이 11월 13일부터 14일까지 1135명(무선 자동응답)에게 이틀 동안 차기 대권주자에 대해 물은 결과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5.5%,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4.4%, 안희정 충남도지사 3.8%,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3.6%,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3.0%로 뒤를 이었다. 지지후보가 없다고 밝힌 응답자는 14.6%였다. 이전까지 다른 3위권(야권 2위권) 주자들 그룹에 속해 있던 이 시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비약적인 상승을 기록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최대 수혜자가 된 것이다. 이 시장은 알앤써치와 데일리안이 10월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 동안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겨우 5.3%를 얻어 5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불과 20일 사이에 대권주자 지지율의 ‘마의 벽’인 10%를 돌파했다. 10월 말 조사에서 24.6%를 차지했던 문 전 대표는 22.1%로 약간 내려앉았다. 반 총장 역시 10월 말 조사에서 21.2%였으나 18.1%로 줄어들었다. 안 전 대표는 8.5%에서 8.1%로 떨어졌지만 거의 비슷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었다. 박 시장은 10월 말 조사에서 7.6%의 지지율을 기록했으나 11월 중순 조사에서는 5.5%로 줄어들었다. 이재명 시장은 사태 초기 국면에서부터 대통령 퇴진 같은 선명한 노선을 견지했다. 야권 대권주자 중에는 가장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최순실 관련 의혹이 하나둘 사실로 드러나고, 박근혜 대통령이 불충분한 사과를 늘어놓으면서 이 시장의 선명한 입장이 오히려 빛을 발하게 됐다. 이 시장의 인기는 20~40대에서 두드러졌다. 19세 이상 20대는 19.2%, 30대는 14.9%, 40대는 12.7%의 지지율을 보였다. 특히 19세 이상 20대에서는 문 전 대표의 25.0%와 큰 차이가 없는 수치를 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반면 30대에서는 이 시장이 선전했음에도 문 전 대표의 절반에 불과한 지지율을 나타냈다. 지역별로 보면 이 시장은 수도권 지역에서 강했다. 서울·경기·인천 지역에서는 1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야권에서는 전통적으로 강경파의 몫이 10% 정도 있었다”면서 “예전에는 진보정당의 몫이었고, 한때는 강경으로 분류됐던 문재인 전 대표의 몫이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문 전 대표가 중도 성향으로 다가가면서 좌측에 공백이 생겼고 이를 이 시장이 차지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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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 격전지-경기 성남 중원구]‘제2의 호남’서 치열한 접전지로(2016. 01. 26 10:16)
- 2016. 01. 26 10:16 정치
- ㆍ통진당 해산 뒤 김미희 전 의원 의원직 상실… 현역 의원은 새누리당 신상진 의원 한때 경기도 성남은 ‘제2의 호남’이라 불릴 정도로 호남 출신 주민이 많은 곳이었다. 특히 중원구와 수정구가 있는 구시가지 지역은 분당구와 달리 그 특색이 강했다. 영남과 서울 출신 비율이 높고 상대적으로 중산층 이미지가 강한 분당구에 비해 중원구와 수정구는 호남 출신 인구 비율이 높아 야권 지지성향도 높게 나타나던 곳이었다. 분당에서 새누리당 의석이 나오면 중원과 수정에서 야권 의석이 나오는 식이었다. 그러나 타 지역에서 유입된 인구의 비중이 차츰 높아지고, 출신지역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도 차츰 약해지면서 최근 선거에서는 성남시 전체가 여야 간 접전이 벌어지는 곳으로 바뀌어 왔다. 특히 중원구는 가장 치열한 접전지다. 성남 중원구는 전통적으로는 야권 지지성향이 강한 선거구였지만 현역 의원은 새누리당 신상진 의원이다. 통합진보당 해산에 따라 이 지역 19대 국회의원이던 김미희 전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한 뒤 치러진 지난해 4월의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것이다. 신 의원의 지난 총선 도전 결과만 봐도 중원구가 얼마나 여야가 팽팽히 맞서는 곳인지 알 수 있다. 신 의원은 과거 재·보선에서 두 번 당선된 것을 포함해 이 지역에서 3선을 했다. 17대 총선에서는 낙선했지만 재·보선에서 승리했고, 이어진 18대 총선에서도 당선됐다. 그러나 19대 총선에서는 다시 낙선한 뒤 재·보선에서 또 한 번 국회 진출에 성공했다.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인 모란시장이 있는 모란시장네거리 주변. / 김태훈 기자 더민주, 은수미·조성준 등 경쟁 성남이 중원·수정·분당구로 분구된 이후 치러진 15대부터 17대까지 중원구는 옛 민주당·열린우리당 등 현 야권 계열 정당이 줄곧 의석을 차지한 곳이었으나 점차 여야가 격전을 벌이는 곳으로 바뀌어 온 것이다. 20대 총선 역시 신 의원 측으로서는 당선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치르는 선거이고, 야권은 분열이 진행 중이라는 점도 여권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 현장에서는 아직도 전통적 야권 지지층의 목소리가 높다는 점 때문에 쉽게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의 은수미 의원(비례대표)은 중원구에서 20대 총선 출마의사를 밝힌 야권 예비후보들 가운데 가장 유력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은 의원과 함께 가장 유력한 인물인 정환석 더민주 성남중원지역위원장은 국민의당으로 옮길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민주에서는 은 의원 외에도 중원구에서 15·16대 의원을 지낸 조성준 예비후보와 검사 출신 변호사 안성욱 예비후보, 시 의원 사퇴 후 출마의사를 밝힌 박윤희 예비후보 등이 당내 경선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김미희 전 의원과 국민의당에서 총선 도전의사를 밝힌 윤은숙 전 경기도의원 등을 더하면 야권에서는 당내 경선부터 단일화 협상까지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미희 전 의원의 경우 단독으로 출마해 당선을 바라보기는 어렵지만 옛 민주노동당에서 통합진보당으로 이어지는 고정 지지층의 비율이 중원구에서 10%대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야권후보 단일화 협상의 주요한 이슈가 될 수 있다. 중원구의 지역 유권자들 가운데서는 대체로 개별 예비후보의 인물보다는 여당이냐 야당이냐를 보고 투표한다는 목소리가 우세했다. 신상진 의원의 출마로 가닥이 잡힌 새누리당에 비해 적잖은 예비후보들이 난립한 야권에서도 단일화가 성공한다면 대등한 승부가 가능한 것으로 예측됐다. 상대원2동에서 만난 주부 허인옥씨(56)는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누가 나오는지도 잘 모르는데, 그래도 투표는 할 것”이라며 “야당 후보 중에서 제일 (당선)될 만한 사람으로 찍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최형규씨(38)도 “새누리당을 찍기 싫어서 야당 쪽 후보를 찍을 생각이긴 한데, 은수미·정환석 말고는 다들 별로 못 들어본 사람이더라”며 “(야권이) 갈라져서 제각각 다들 후보를 낸다면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도 찍어야겠다”고 말했다. 전통시장인 모란시장 상인들의 의견은 지역을 잘 알고 있는 여당 의원을 지지한다는 쪽과 서민층에 가까운 야권 후보를 지지한다는 쪽으로 갈렸다. 장이 서지 않은 날이라 비교적 손님이 적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풀어놓는 상인들이 많았다. 건강원을 운영하는 김모씨(60)는 “성남 사람들은 예전부터 지역 개발이 잘 안 되고 소외받았다는 인식이 있어서 야당을 많이 찍었다”며 “나도 예전에는 야당만 찍었는데, 지금 의원 하는 신상진 그 사람이 지역구 일은 잘하는 것 같아서 찍어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 박모씨(57)는 “우리집 어르신들은 연세 들면서 여당이 낫다고 바뀌시던데, 난 아직은 그다지 여당이 잘하는지 모르겠다”며 “야당이 쪼개지는 게 꼴보기는 싫은데, 그렇다고 서민들이랑은 거리가 먼 여당 찍긴 더 싫어서 되든 안 되든 (야권 후보에게) 한 표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후보 단일화 협상이 주요한 이슈 지난해 4월의 보궐선거는 평일에 치러져 투표율이 낮은 상황에서 고령층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은 신 의원이 55.9%의 득표율로 당선했다. 하지만 중원구의 유권자 가운데는 지역 내의 성남일반산단이나 가까운 판교테크노밸리 등으로 출퇴근하는 20~40대 노동자의 비율도 높아 이들이 얼마나 투표에 참여해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지난해 재·보선과 다른 양상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 퇴근시간대 공단 주변에서 만난 40대 노동자 이모씨는 “투표 당일에도 출근할 가능성이 높아 투표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투표하려고 한다”며 “아직 어느 쪽을 찍을지 마음은 못 정했는데, 비정규직 월급이나 고용에 대해 더 신경쓰는 사람이 있으면 찍고 싶다”고 말했다. 과거보다는 덜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야권 지지층의 잠재적인 표의 규모가 크다는 특성 때문에 각 예비후보 진영은 다른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신상진 의원은 높은 인지도와 지역 친화성을 강조하며 크고 작은 현안을 직접 챙기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신 의원은 “지역에서 커온 정치인이니만큼 중앙정치보다는 지역문제 해결에 누구보다도 앞장선다는 자세로 유권자들께 다가가고 있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는 무엇보다 후보 단일화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여러 측면의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 은수미 의원은 보다 전문성이 있는 이력을 강조하며 생활에 밀접한 정책과 공약으로 접근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은 의원은 “노동문제 전문가로 활동한 이력 외에도 19대 국회에서 서민생활에 필요한 법안들을 챙겨왔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며 “아직 당내 경선을 거쳐야 해 후보 단일화에 관해 구체적인 방안이 서 있는 건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고 차차 준비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희 전 의원도 “지역의 민심이 요구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야권의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원희복의 인물탐구]이재명 성남시장…기득권과 싸우는 다윗인가 영리한 포퓰리스트인가(2016. 01. 26 10:09)
- 2016. 01. 26 10:09 정치
-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장 중 이재명 경기도 성남시장만큼 세간의 주목을 받는 사람도 없다. 그는 지난 20일 중앙정부와 경기도의 반대를 무릅쓰고 청년배당·무상교복·산후조리지원 등 3대 복지사업을 강행했다. 정부는 성남시를 사회보장기본법 위반으로 대법원에 제소하고, 성남시는 헌법재판소에 대통령을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을 제기했다. 일개 기초자치단체가 중앙정부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전례가 드물고, 실익도 없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무리 성남시의 재정력지수(자치단체 스스로 운영할 수 있는 재정능력)가 높아도 중앙정부가 직무감사·직제 허용 등의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예산 낭비 줄이면 복지 늘어나” “우리는 감사를 거의 매일 받는다. 우리는 그렇게 훈련돼 있다. 작년까지 260여건의 감사를 받았다. 감사 일수가 임기 중 921일이었고, 지금은 1000일이 넘지 않나 싶다. 그것을 근무일로 따져 보니 4일 중 3일은 감사를 받은 것으로 나왔다. 다른 기초자치단체는 거의 받지 않는 전면 특별감사도 두 번이나 받았다.” 지난 21일 시장실에서 만난 그는 밑에 있는 공무원이 얼마나 피곤하겠느냐는 질문에 “시장 잘못 만나서 그렇지, 시민들에게 칭찬을 받는다”면서 “대신 직원들에게 해외연수 등 다른 사기진작책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옆에 있던 한 직원은 ‘직원들은 도지사 표창보다 시장 표창을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시장 표창 상품이 콘도 이용권 등 더 알차기 때문’이라고 거들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기득권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있어 자신은 고 노무현 대통령보다 더 원리주의자라고 말했다. / 이상훈 선임기자 이 시장은 2010년 당선되자마자 시 재정의 ‘모라토리엄(파산)’ 선언을 하려 했다. 당시 모든 언론이 그의 행동을 주목했다. 그러나 우리 자치단체가 발행한 지방채는 사실상 중앙정부가 보증해 외국처럼 자치단체 파산사태는 벌어지지 않는다. ‘영리한 언론 플레이’였다. 어쨌든 이 시장은 빚더미 성남시 재정을 정상화시켰다. 그리고 행정자치부 재정평가 3년 연속 우수평가인 ‘가’ 등급을 받았다. 지금은 한푼의 지방채 발행도 안 하고 시 재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는 “7300억원인 비공식 부채를 5~6년 동안 갚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3년 만에 갚아지더라”면서 “공공 살림은 허투루 쓰는 게 많다. 거기서 이권 챙기는 사람도 많고. 그것만 끊어버리면 된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정부도 4대강, 자원비리, 방위비 낭비만 안 하면 복지예산을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단행한 청년배당에 대해 논란이 많다. 차별 없이 주는 것은 포퓰리즘이라는 것이다. 이 시장은 이에 대해 “청년배당은 미래가 없는 청년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65세 이상 노인 전원에게 20만원씩 준다는 약속, 삼성 이건희 회장에게도 20만원 주기로 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 약속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일률 지급은 관리경비를 절감하고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유럽에서 이미 새로운 복지모델로 도입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남시의 한 인사는 “작은 도서관 하나 세우는 예산에 불과한 194억원으로 이렇게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는 3대 복지사업을 시행한 성남시장은 매우 영리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기자는 ‘영리함도 있지만 중앙정부와 맞서는 용기가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역 자치단체 차원에서 청년배당 사업을 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너무 좌고우면, 이를테면 ‘너무 간을 보는’ 데 비해 이 시장은 과감하게 한 발 앞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무상교복 사업은 어린 시절 교복을 입어보지 못한 아픔에 대한 일종의 보상 아닌가’라고 질문하자 이 시장은 잠시 당황하는 듯 싶더니 곧 웃었다. 그리고 그는 “그런 것도 조금 있다. 사실은 (허허) 내가 교복을 못 입어 봤다. 친구들이 교복 입고 학교 갈 때 나는 작업복 입고 반대로 출근했다. 교복 입은 것이 너무 부러워 대학 입학해서 교복 사 입고 사진 찍었다”고 말했다. 잔인한 질문에 솔직한 답변이었다. 가난한 유년, 검정고시 거쳐 사시 합격 그는 1964년 경북 안동의 산골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산꼭대기에서 산전을 일구며 살았다. 화전이 힘들어진 그의 아버지는 일자리를 찾아 성남으로 올라왔다. 아버지는 시장에서 청소를 했고, 어머니는 시장 화장실에서 소변 10원·대변 20원씩 돈 받는 일을 했다. 7남매(5남2녀) 9식구가 반지하 단칸방에서 생활했다. 이 시장이 중앙정부와 맞서는 ‘힘든 싸움’을 이겨내는 바탕은 지독히 힘들었던 이런 과거가 밑바탕이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그는 죽음의 문턱에 선 처절함을 경험했다. “사실 이런 말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자살을 두 번이나 시도했다. 야구 글러브 공장에 다닐 때 프레스에 왼쪽 팔목 뼈 하나가 잘려나가 장애인이 됐다. 그런데도 공장 선배에게 두들겨맞고, 찬 도시락을 먹으며 공장을 다녔다. 열일곱 살 사춘기일 때 장애인이라는 사실과 희망 없는 현실에 나는 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연탄불이 꺼져 실패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자살을 시도했다가 자형이 구해 살아났다. 이후 나는 ‘죽을 힘으로 살기로 작정’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잠을 쫓기 위해 바늘로 찌르고 아카시아 나무에 몸을 비비고, 책상에 압정을 뿌려놓고 공부했다고 한다. 그런 처절한 공부 끝에 그는 1년 만에 중학교 검정고시,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중앙대 법대)에 월급까지 받는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그리고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판·검사가 돼 이젠 정말 잘 먹고 잘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다짐에 ‘재’를 뿌린 사건과 사람이 있었다. 사건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이다. 그는 “무지했던 10대 공장노동자일 때 나는 광주시민을 폭도라고 얘기하고 다녔다”면서 “대학에 진학해 광주의 진실을 알고 속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의 운명을 바꾼 사람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는 사법연수원 시절 노 변호사의 강연을 듣고 ‘사회운동에 나서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는 1989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활동하는 한편, 사실상 고향인 성남에서 시민운동에 나섰다. 그는 “전국 최초로 주민이 발의한 시립의료원 조례가 시의회에서 47초 만에 날치기 폐기되는 것에 항의하다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수배됐던 적이 있다”면서 “교회 지하에서 시장이 돼 직접 시립의료원을 만들기로 결심한 날짜가 바로 2004년 3월 28일 오후 5시다”라고 말했다. 그는 2006년 성남시장 선거에서 낙선했다가 2010년에 당선됐다. 그리고 약속대로(중간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2013년 11월, 그는 성남시장으로서 시립의료원 기공식 버튼을 눌렀다. 2017년 하반기에 준공되는 성남시립의료원은 지난해 메르스 사태 때 삼성의료원에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던 음압병상을 32개나 갖추고 있다. 그는 2014년 시장에 재선됐다. 지난해 12월 20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부터)과 함께 ‘박근혜 정부 복지 후퇴 저지 토크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고전 연구가로 을 쓴 김재욱 작가는 그를 삼국지에 나오는 하후돈(夏候惇)에 비유했다. 김재욱 작가는 “조조의 부하였던 하후돈은 제갈공명과 싸움에서 왼쪽 눈에 화살을 맞자 손으로 화살을 뽑고, 딸려나온 눈알을 입으로 씹으며 전투를 계속했던 맹장”이라며 “나중에 하남의 수령에 임명됐을 때 가뭄을 막는 행정능력을 발휘했을 뿐 아니라 청렴함과 검소함으로 이름이 높았다”고 말했다. 용맹함과 행정능력, 청렴함 등이 하후돈을 닮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자는 그에게서 진나라 재상 이사(李斯)가 생각난다. 시골에서 태어나 뜻을 세우고, 치밀한 노력 끝에 진시왕을 도와 중국을 통일한 인물이다. 성남시에 사는 한 인사는 “사정기관 관계자를 만나 보면 본인은 물론 가족 비리 여부까지 눈에 불을 켜고 체크하는데, 걸리는 것이 없다”고 전했다. 사실 ‘검찰정치’라는 말이 나오는 요즘, 많은 민원과 이권에 휩싸여 있는 시장이 자기관리하기는 쉽지 않다. 가족에 대해 그는 “큰형은 왼발이 잘리는 산업재해를 당한 건설노동자이고, 누님은 요양보호사, 작은형님은 가구공장 페인트칠을 하다가 요즘은 청소일을 하고, 막내 역시 청소노동자”라며 “여동생도 청소일을 하다 작년 새벽에 화장실에서 뇌출혈로 죽었다”고 말했다.(그는 이 대목에서 잠시 목이 메이고 눈이 충혈됐다) 유일하게 셋째형이 대학을 나와 회계사로 있지만 형제 대부분 힘들게 산다. 야당 정치인도 취업 부탁을 하거나 시험에 떨어진 자식을 구제해 달라고 요구하는 요즘, 시장이면 고생하는 형제들에게 조금 편안하게 밥 한 끼 먹을 직장을 챙겨줄 수 있지 않았을까. “대통령 할 수 있으면 해, 안 되니 못하는 것” 한 측근은 “지난해 여동생이 새벽 화장실 청소 도중 뇌출혈로 죽었을 때 ‘내가 그냥 변호사만 했으면 너를 이렇게 죽게 하지 않았을 텐데’라며 통곡했다”면서 “시장이기 때문에 오히려 어렵게 사는 동생을 도와주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족보다 자신의 정치적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냉혈적’이다. 그는 지난해 4월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야권 차기 지도자 4명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더니 다른 여론조사에서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지금도 꾸준히 2~4%의 지지율이 나온다. 이는 기초자치단체장으로선 유일할 뿐만 아니라 광역단체장 중에서도 야권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 다음이다. 그는 이런 지지율을 순전히 팟캐스트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뉴미디어로 이뤄냈다. 그는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를 직접 한다. ‘좋아요’도 반드시 자신이 누른다. 그는 제일 편리하게 주민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SNS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가 SNS에 매달리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는 “SNS는 보수언론의 허위보도, 왜곡조작에 해명하고 싸울 유일한 보호수단”이라면서 “그래서 죽기 살기로 한다. SNS는 내가 살기 위한 수단이다”라고 강조했다. 대권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솔직히 “시장은 하나의 수단이고, 시민단체 활동도 하나의 수단이다”라면서 “대통령, 할 수 있으면 해야지, 안 되니 못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저 놈 대통령을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2~3% 생겨났다. 하지만 (대권은) 주마가편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하늘과 민심의 문제다”라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맡을 수 있게 공부도 하고, 많은 사람의 얘기를 듣고, 더 시대 흐름을 읽겠다.… 하지만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며 마지막 말끝을 흐렸다. 왜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 사회 기득권 처제가 너무 강고하다. 그들이 볼 때 나는 너무 과격하고, 급진적이고, 너무 원론적이다. 그래서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고 고백했다. 그가 맞서는 상대는 단순히 보건복지부나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었다. 기초적 정의조차 없고 힘이 진리가 되어버린 사회, 즉 굴절된 기득권 체제 전부였다. 바로 고 노무현 대통령이 온몸으로 항거했던 그 상대다. ‘삶의 방식이나 정치 스타일이 노무현과 비슷하다’는 말에 그는 한 발 더 앞서 나간다. “거의 비슷한데, 오히려 내가 더 근본주의자다. 경제문제에 대해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자였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이렇게 가면 나라가 망한다. 현재와 같이 노동자를 쥐어짜고 기업·재벌 중심으로 경제가 움직이면 한순간에 경제가 망한다. 최대한 기회균등을 이뤄내야 한다.” 스스로 ‘노무현보다 더 심각한 근본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의외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돼서도 이뤄내지 못했던 것이 지독한 ‘기득권 체제 극복’이다. 하지만 이 시장은 조금 달라 보인다. 그는 젊지만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정확히 꿰고 있다. 그는 ‘바보 노무현’보다 영리하고 치밀해 보인다. 무엇보다 그는 죽음을 미리 겪고 그 바탕에서 싸움하는 법을 체득했다. 의미 있는 싸움판이 기대된다.
- 원희복의 인물탐구
- [광복 70년 역사르포](16) 광주대단지 사건-옛 성남출장소… 정부수립 후 최초 도시빈민 투쟁(2015. 06. 08 16:30)
- 2015. 06. 08 16:30 사회
- 인구 100만명에 육박하는 경기도 성남시는 분당으로 알려진 신도시가 중심이지만, 과거에는 수정로 숫골사거리가 도심이었다. 아래층에 이마트 성남점, 위에는 고급 아파트가 들어선 신세계 쉐던주상복합 자리가 바로 옛 성남시청이 있던 곳이다. 이곳은 1964년 경기도 광주시 성남시출장소가 들어선 이후 성남시청이 여수동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지역행정의 중심이었다. 이 일대에 있는 성남 시민회관, 시립 도서관, 방송국 등이 이곳이 과거 도시의 중심이었다는 점을 알려준다. 성남은 분당신도시가 들어서기 이전에 이미 신도시로 계획된 도시다. 하지만 이곳 지형을 가만히 살펴보면 좀 이상하다. 과거 성남시청 자리에 들어선 신세계 쉐던주상복합은 가파른 언덕 중간에 들어서 있다. 바로 옆 블록은 연립주택 등이 가파른 언덕으로 이어져 있다. 이마트 앞쪽 신흥동 쪽도 역시 가파른 고개로 이어져 있다. 평평한 분지가 아닌, 구불구불한 언덕과 고개가 계속된 곳에 도시 중심이 들어선 것이다. 게다가 언덕 넘어 얼마 안 가서 바로 단대천이라는 하천이 흐르고 있다(현재 이 하천은 복개돼 있다). 비탈에 20평 단위로 규격화된 집이 빽빽히 들어서 있고, 골목도 대개 바둑판처럼 돼 있다는 점에서 이곳이 규격화된 신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의문은 이렇게 꾸불꾸불한 언덕과 하천이 있는 곳에 어떻게 신도시를 세울 생각을 했을까 하는 점이다. 1960년대 급격한 산업화로 누적된 도시빈민 문제가 바로 이곳에서 폭발했다. 이곳은 1971년 8월 10일 이른바 ‘8·10 광주대단지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광주대단지 사건이란 경기도 광주시(현 성남시) 주민 5만여명이 시위에 가담, 무력으로 시청을 점령하고 방화한 사건을 말한다. 44년 전 성남시출장소 앞으로 돌아가 보자. 44년 전 광주대단지 사건 때 시위대에 의해 불탄 옛 경기도 성남시출장소 자리에는 지금 고급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주민 5만여명이 시위, 시청 점령 “10일 오전 9시부터 모이기 시작한 주민들은 11시께 1만여명이 광장과 출장소 주변 빈터, 길 등을 메웠다. 20대 청년 등 30여명은 몽둥이를 들고 있었고, 주민들의 가슴에는 ‘살인적인 불하가격 결사 반대한다’는 리본이 달렸으며, 수십개의 플래카드를 든 군중은 오전 11시 양(택상 서울) 시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오전 11시 폭우 속에서 양 시장을 기다리던 주민들은 ‘우리를 또 속였다’ ‘시장이 시간을 어겼다’며 흥분, 10여명이 시 사업소로 몰려가자 수십명이 뒤따랐다. 몰려가던 군중의 일부가 출장소 앞에 세워둔… 지프를 부수어 개울에 쳐넣었다. 11시40분 난동자들은 다시 성남시출장소로 몰려가… 책상을 부수고 서류를 불태워 본관 내부가 몽땅 타버렸다. 난동자들은 또 성남출장소… 반트럭을 불태워 개울에 처박았다.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차 2대도 접근을 못하고 되돌아 갔으며, 경찰도 병력이 적어 손을 쓸 수 없었다.…”(경향신문 1971.8.11) 8·10 광주대단지 사건의 원인부터 따져보자. 급속한 공업·산업·도시화로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로 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1960년대 말부터 거대한 도시빈민 주거지가 생겨났다. 이들은 서울의 청계천변과 창신동, 용두동, 봉천동 등에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생활하면서 여러 도시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서울시는 이들을 집단으로 이주시킬 장소로 당시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에 350만평의 땅(광주대단지)을 마련했다. 그리고 1969년 9월 1일부터 20평의 땅을 분양해 이곳에 철거민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신도시에 철거민을 이주시킬 계획이었으니 언덕이 많은 값싼 부지를 마련한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철거민이 이주할 당시 이곳은 상·하수도 시설은 물론, 공중화장실마저 변변하게 마련돼 있지 않았다. 철거민들은 대충 언덕배기에 천막이나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하지만 입주권 즉 딱지가 전매되고, 이 딱지를 얻기 위해 각지에서 단대천 주변에 천막을 치는 등 부동산 투기가 만연했다. 마침 1971년 4월 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개발붐이 확대되면서 사람들은 이 딱지를 사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였다. 이렇게 성남시에 몰린 인구는 1971년에 14만~16만명까지 늘었다. 당시 성남시민들이 시영버스를 빼앗아 시위를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시 철거민들 강제 집단 이주 그동안 수수방관하던 정부는 입주권 위조, 철거비리 등이 만연하자 7월 14일 입주권 전매를 금지시키고, 토지 분양가를 2배로 인상했다. 불하한 토지에 취득세까지 부과했다. 입주한 주민들은 분노했다. 게다가 정부는 이곳에 48개 공장을 입주시켜 자족도시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말뿐이었다. 1971년 4월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공장 건설도 시들해져 버렸다. 몇몇 공장이 입주했지만 수십만명의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했다. 일거리를 찾지 못한 도시빈민들은 심각한 도시문제를 일으켰다. 당시 대책위원장을 맡은 전성천 목사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한 일의 중요한 부분은 굶어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치우는 일인데, 하루에 몇 구의 시체를 치우기도 했다고 한다.(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재개발의 그늘-철거, 2002.3.24) 이런 가운데 정부는 전매한 땅에 집을 짓지 않으면 불하를 무효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분양권 전매자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철거 이주민들은 자신들의 우선권이 무시되고, 외지인의 투기판이 되는 것을 막아달라고 요구했다. 특히 일자리 등 약속했던 생계수단 마련 요구를 묵살한 것에 분노했다. 결국 8월 10일 성남출장소가 불에 타고 인근 파출소까지 파괴됐다. 광주대단지 사건 때 시위대에 의해 점령된 광주경찰서 성남지서는 현재 수정경찰서로 규모가 커져 있다. 경찰서 넘어 태평고개는 당시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던 곳이다. “낮 12시10분께 난동자 30여명이 성남지서에 몰려가 몽둥이로 유리창을 부순 후 지서 안에 있던 경찰차를 길로 끌어내 불태웠다. 오후 1시께 10대, 20대 청소년 50여명이 시영버스를 뺏어 타고 지붕에 올라가 탄리천길을 달려 ‘서울로 가자’며 수진리고개를 넘으려다 되돌아와 거리를 돌았다… 오후 3시반쯤 경찰이 최루탄을 쏘아 난동자들을 길에서 언덕 위로 몰자 500여명으로 줄어든 난동자들은 언덕 위에서 돌을 던지고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5시반까지 대치했다.…”(경향신문 1971.8.11) 정부가 주민들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이 소요사태는 6시간 만에 끝났다. 간간이 주민들의 시위가 이어졌지만 12일 완전히 평정을 되찾았다. 당시 김종필 총리는 “행정부에 전적으로 잘못이 있음을 반성하고 있다”면서 “주민에게 한 약속은 모두 이행토록 지시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경찰과 주민 100여명이 부상했고, 주민 22명이 구속됐다. ‘선입주 후개발’ 무리한 정책 드러나 이 광주대단지 사건은 정부 수립 이후 최초, 당시로서는 최대의 소요사건이었다. 당시 언론은 ‘난동’ ‘폭동’ 으로, 정부와 재판부는 ‘광주대단지 집단난동사건’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봉기’, ‘항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재야에서는 정부가 신속히 사과하고,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도시빈민의 승리’로 평가하기도 한다. 실제 당시 서울대 법대생들은 이 사건에 대해 “이제 민중은 과거의 체념과 좌절을 딛고 민중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 시작하였다”고 평가했다.(송건호전집 1, 한길사, 2002) 이 사건의 발생 원인을 놓고 지금도 치열하게 학문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011년 8월 ‘8·10 광주대단지 사건’ 40주년을 맞아 성남지역 언론사대표자협의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는 “이 사건이 한국의 도시정책, 빈민운동, 지역사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면서 “그것은 2009년 1월 용산참사에 이르기까지 지난 40여년 동안 무허가 정착지의 철거·정비과정, 무분별한 도시 재개발정책 시행에 맞서 주거와 생활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도시주민들이 ‘저항의 첫 포문을 연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이 사건을 ‘8·10 광주대단지 항거’라고 표현했다. 언덕에 20평 주택이 빽빽히 들어선 형태의 성남 구도심은 과거 정부의 무능한 신도시 정책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학중앙연구원 임미리 박사는 이 사건의 투쟁 주체와 결과를 중심으로 이를 재평가한다. 임 박사는 “정권의 즉각적인 항복을 이끌어냈기 때문에 붙여진 ‘성공’이라는 평가는 재평가돼야 한다”면서 “전매입주자 중에는 결코 도시하층민으로 분류될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즉 광주대단지 사건을 처음 기획하고 주도한 인물은 도시빈민이 아니라, 부동산 전매업자였고, 정부의 혜택 역시 이들 전매업자에게 맞춰져 있을 뿐 도시빈민에게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의 재해석’ 기억과 전망, 여름호, 2012) 실제 정부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투기꾼인 전매자들의 토지불하 가격 인하 요구만 수용됐을 뿐, 판자촌 세입자나 초기 철거민에 대한 일자리 등 생계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김동춘 교수도 “빈민 주거문제는 빈민 생활문제와 결부되어 있는데 후자 대책이 없는 ‘선입주 후개발’의 논리에 입각한 무리한 대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고 이런 지적에 공감했다. 1971년 8월 10일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해 학술적으로 다양한 해석과 평가가 이뤄지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이 사건은 도시빈민, 철거민, 도시 재개발, 부동산 투기 등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노출시킨 사건이었다. 물론 이런 문제에 대처하는 정부의 무능함 역시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다. 문제는 지금도 그러한 정부의 무능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성남 구도심은 많이 변한 듯하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언덕과 고개, 좁은 골목에 20평으로 구획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도시구조는 아직 그대로이다. 정부의 무능과 투기꾼이 만들어놓은 ‘괴물 신도시’의 잔재는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 광복 70년 역사르포
- 새정치연합 비례대표 의원직 사퇴 후 성남 중원 재·보선 출마 선언 ‘골수 운동권’ 은수미의 새로운 도전(2015. 01. 12 16:37)
- 2015. 01. 12 16:37 정치
- 어떤 이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다. 또 어떤 이는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혀를 찼다. 어떤 보장도 받은 게 없다.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앞으로 어떤 폭풍우가 몰아칠지 그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하늘이 으르렁대고, 물결이 넘실대는 저 바닷속으로 그가 걸어들어갔다. 가야 할 길을 가는 것처럼, 운명인 것처럼. “저는 국회의원으로서 쌍용자동차 해고자 등 소수의 문제지만 공익을 위해 지난 2년 7개월 동안 일해왔습니다. 하지만 몇몇 정치인들로부터 쌍용차공장이 있는 경기 평택의 지역정치인이었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역정치를 하면 공익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인지, 지역정치와 공익활동을 함께 할 수는 없는 것인지 그 답을 찾기 위해 지역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비례대표)이 오는 4월 29일에 치러지는 경기 성남 중원의 재·보선에 출마하기 위해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이 지역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따라 김미희 전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한 지역이다. 은수미 의원이 1월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과 인터뷰하고 있다. | 권순철 기자 지난해 11월 지역위원장 경선에서 패배 비례대표 의원이 임기를 1년 이상 남겨놓고 재·보선에 출마하기 위해 의원직을 던져버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더구나 그에게 새정치연합 후보 자리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그가 지역구 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당내 경선과 새누리당 후보와의 본선 등 두 개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하지만 은 의원의 표정에서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의기양양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가 겪은 고난에 비하면 앞으로 가야 할 길은 가시밭길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른바 ‘골수 운동권’(PD계열)이었다. 서울대 사회학과 82학번인 그는 당시 백태웅씨와 함께 서울대 학생회를 이끌었다. 1983년 시위를 하다 제적된 뒤 노동현장으로 가서 위장취업했다. 서울 구로공단의 한 봉제공장에서 미싱 보조사로 일하면서 노조를 조직하려다 적발됐다. 그는 끝까지 위장취업에 대한 반성문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6개월간 감방생활을 해야만 했다. “위장취업한 학생들은 금방 표시가 납니다.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 마디가 두툼하면 위장취업 가능성이 많습니다. 볼펜으로 글을 많이 쓴 사람들은 일반 노동자들과 다릅니다. 저도 그랬고요.” 하지만 그것은 고통의 시작에 불과했다. 1992년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사노맹’(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정부는 사노맹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박노해·백태웅씨 등 간부 수십 명을 검거·구속했다. 그의 이름도 구속자 명단 맨 위에 있었다. 그는 조 실장(조명혜)으로 불리며 사노맹 중앙위원 겸 정책실장으로 활동했다. 박노해·백태웅씨에 이어 ‘넘버 3’였다. 검거된 후 공안당국으로부터 온갖 고문을 당했다. 6년간의 복역기간 중 4년 6개월 동안 창문도 없는 독방에서 지냈다. 당시 걸린 결핵성 종양으로 소장과 대장 사이를 50㎝나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어도 감옥 담장 밖으로 나가서 죽자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따로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1.5평(4.9㎡) 독방에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에 따라 몸을 흔들며 막춤을 췄어요.” 그는 1997년 사면·복권을 받고 서울대에 복학했다. 석사와 박사를 마치고 국책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에 들어간 게 2005년. 노동연구원에서의 직장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그가 노동전문가로 알려지면서 비정규직 등 노동문제에 대해 언론의 기고 요청과 정치권 등에서 특강 요청이 쇄도했다. ‘은수미’라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그의 주장은 정부와 정반대가 돼버렸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자는 비정규직법 개정 논의가 당시에도 논란이 됐었다. 정부는 “비정규직법을 고치지 않으면 100만명이 해고된다”며 국회에 으름장을 놨다. 그때 그는 국책기관 연구원 이름을 걸고 “비정규직 연장은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할 뿐”이라며 반대했다. 그는 “노동3권을 헌법에서 빼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던 박기성 노동연구원장으로부터 ‘대외활동 금지령’까지 받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남윤인순·유은혜의원(왼쪽부터)이 2014년 7월 24일 국회 본청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전략공천 필요한 곳” 당내서도 곤혹 그가 국회의원이 된 데는 약간의 운도 따랐다. 당시 민주통합당 일각에서는 총선 공천과 관련해 한명숙 대표, 이미경 사무총장 등 이대 라인이 독주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져나왔다. 그래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에서는 여성 노동·경제전문가로서 이대 출신이 아닌 사람을 비례대표 후보로 찾고 있었다. 그가 그 조건에 딱 맞았다. 그는 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3번을 받아 무난히 국회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는 국회 환경노동위원으로서, 당내 ‘을지로위원회’ 위원으로서 맹활약했다. 지금까지 쌍용차, 남양유업, 씨앤앰 농성장 등 수백여 곳의 현장을 찾았다. 씨앤엠에서는 직접 고공농성장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몸을 사리지 않는 의정활동으로 국회의원에게 주는 각종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현실정치의 벽은 높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새정치연합 성남 중원 지역위원장 경선에 나섰지만 정환석 현 지역위원장에게 패했다. 당내에서도 그의 지역구 도전 선택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어느 때보다 치열한 승부가 예상되는 성남 중원 재·보선에 중량감 있는 정치인을 내세워야 하는데 먼저 ‘의원직 사퇴’로 배수진을 치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진보정당 지지자들이 많기 때문에 옛 통합진보당 출신 후보가 나올 공산이 크다. 의사협회장 출신인 새누리당 신상진 전 의원도 이 지역에서 재선하는 등 만만치 않다. 여기에다 제3신당도 이 지역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래저래 새정치연합이 쉽게 승리할 수 없는 지역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새정치연합의 새 지도부가 출범하고 첫 시험대인 4월 재·보선은 결코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선거”라며 “새정치연합으로서는 상대 후보가 누가 나오는지 지켜보고 있다가 상대를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전략공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은 의원은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다. 그는 “새 지도부가 여론조사 등 합리적인 결과를 갖고 공천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지역에 사무실을 냈고 조만간 이사도 계획하고 있다. 진정성을 앞세워 지역민들의 마음을 얻으면 이변을 연출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정치는 ‘움직이는 생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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