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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세월호를 이야기합니다(2024. 04. 17 06:00)
2024. 04. 17 06:00 오피니언
홍진수 주간경향 편집장 이번 호 표지 이야기를 어느 기사로 할지 고민했습니다. 주간경향 기사 마감일 오전에는 최종 결과가 나오는 총선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이달 16일에 10주기를 맞는 세월호 이야기를 할지 한참 생각했습니다. 결국 한동안은 전국민적 관심사로 자리할 총선을 선택했습니다. 대신 제가 쓰는 이 글에서는 세월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벌써 10년입니다. 아직도 그날, 2014년 4월 16일 점심때 제가 누구와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납니다. 회사 근처 김치찌갯집에서 회사 선배와 “세월호란 배에 사고가 났는데 전원 구조라 다행이다”라는 이야기를 했고, 점심을 먹다가 전원 구조가 오보라는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그때의 그 당혹감이 머릿속에 지금도 어렴풋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습니다. 아시다시피 세월호 참사는 진행 중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많은 사람의 인생이 사라지거나 바뀌었습니다. 강산도 변한다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유가족의 상처는 여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4월이 오면 다시 세월호를 이야기합니다. 주간경향은 이번 호에서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센터장을 만났습니다. 유 센터장은 유가족과 생존자 등을 제외하고는 가장 가까이에서 세월호 사건을 바라본 사람으로 꼽힙니다. 유 센터장은 인권활동가로 일하다 세월호 참사가 나자 진도로 내려갔습니다. 세월호 작가 기록단의 일원으로 2015년부터 세월호 기록을 담은 5권의 책을 냈습니다. 10주기를 기록해 달라는 가족협의회의 요청으로 2022년부터 유족, 생존자, 관련자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최근 <520번의 금요일>,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 등을 출간했습니다. 유가족이 경험한 혐오와 편견, 분명히 존재했지만 드러내지 못했던 가족들 간의 갈등 등을 솔직하게 담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적 재난과 참사를 기록하고 연구하다 올 초 재난피해자권리센터를 설립했습니다. 센터는 따로 떨어져 있는 재난피해자들을 연결하고, 혐오에 노출되기 쉬운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4월 16일 열리는 세월호 10주기 기억식에서 공연되는 ‘4160인 합창’ 연습 현장도 다녀왔습니다. 세월호 유족과 시민 등 4160명이 현장 참여와 녹화영상으로 ‘가만히 있으라’, ‘네버엔딩 스토리’, ‘화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잊지 않을게’,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등 6곡을 함께 부릅니다. 선곡과 노래 순서에 의미가 없을 수 없겠지요. 참사 순간의 비통함과 슬픔, 참사 이후 그리움과 회상, 아픔과 고통, 진상 규명의 의지, 기억 그리고 연대와 치유 등이 노래에 담겨 흐릅니다. 한국사회는 아직도 세월호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했습니다. 외면하고 덮어버리려는 노력이 되레 더 컸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세월호를 말할 때면 감정이 요동칩니다. 내년 이맘때 올해보다는 더 담담하게 세월호를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실에서편집실에서
세월호 10주기 4160인 시민합창 울린다(2024. 04. 15 06:00)
2024. 04. 15 06:00 사회
추모 무대 <세월의 울림>…‘가만히 있으라’ 등 6곡 메들리 지난 4월 6일 경기 안산 단원구청 대강당에서 진행한 ‘4160인 시민합창’ 전체연습에서 한 시민이 악보를 살펴보고 있다. 정희완 기자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4160인 시민합창단’이 꾸려졌다. 합창단은 오는 4월 16일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열리는 10주기 기억식에서 무대에 오른다. 합창의 제목은 <세월의 울림>이다. 참사를 추모하는 의미가 깃든 6곡(약 12분)을 메들리로 엮었다. 곡의 순서와 노랫말은 지난 10년의 세월을 관통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생한 사건과 감정, 정서가 함축돼 있다. <세월의 울림>은 침몰하는 세월호 선내에서 방송된 ‘가만히 있으라’로 시작한다. 그리움과 아픔을 표현한 ‘네버엔딩 스토리’와 ‘화인(火印)’, 진상규명의 의지를 다지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로 이어진다. ‘잊지 않을게’로 기억을 약속하고, 연대의 뜻을 담은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로 마무리한다. ■이제 4월은 옛날의 4월이 아니다 본 공연에 앞서 지난 4월 6일 경기 안산 단원구청 대강당에서 2차 전체 사전연습이 진행됐다(1차 연습은 지난 3월 31일 진행). 시민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손에 악보를 든 채 지휘자 박미리씨(48)의 말에 집중했다. 박씨는 이번 합창을 총괄하는 연출감독을 맡았다. 2015년부터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으로 구성된 ‘416합창단’의 지휘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호흡을 다 써서 부른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호흡이 짧아지면 짧아지는 대로, 그렇게 표현을 하면 훨씬 아름다워요. 호흡을 이었다가 빼고, 이렇게 하면 밀고당기는 느낌이 있어요. 다시 해보겠습니다.” 노랫소리가 강당을 꽉 채웠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등 4성부 합창이다. 박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보통 허밍은 둥글게 감싸주고 위로하면서 안아주는 느낌을 주고 싶을 때 들어갑니다. 세게 ‘아~’ 할 필요가 없어요. 테너가 허밍을 너무 세게 하면 소프라노 소리를 잡아먹게 됩니다. 소리를 내되 질감을 다르게 하면 됩니다.” 지난 4월 6일 경기 안산 단원구청 대강당에서 ‘4160인 시민합창’ 전체연습을 하고 있다. 정희완 기자 10주기 기억식 현장에 참석해 노래를 부르는 시민은 706명이다. 무대 맨 앞에 서는 416합창단 소속 33명도 포함한다. 지난해 9주기 때 구성된 시민합창단 304명보다 2배 이상 많다. 이에 따라 중앙무대에 더해 양쪽에 날개 모양으로 추가 무대를 설치해 합창단이 약 2000개의 객석을 에워싸는 구조가 된다. 나머지 시민들은 영상을 통해 참여한다. 노래, 수어, 악기연주, 율동 등을 촬영해 주최 측에 사전에 제출하면, 이를 기억식 현장에서 화면에 띄우는 방식이다. <세월의 울림>의 첫 번째 곡은 ‘가만히 있으라’이다. 가수 이승환씨가 작사·작곡해 2015년에 발표한 노래이다. 참사 당시 세월호가 기우는 상황에서 선내에 방송된 “가만히 있으라”는 내용을 담아 참사의 참혹함과 어른들의 책임을 표현했다. 참사 사망자 304명 가운데 250명이 단원고 학생들이다. 공연은 현재 단원고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영상을 통해 이 곡을 부르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현장에 참석한 청소년들이 이어받는다. 연습 중에 박미리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악보에 쉼표 보이시죠? 여기서 확 줄어들어야 해요. 그래야 가사 전달이 잘됩니다. 마지막에 반주가 다 빠지고 ‘가만히 있으라’ 목소리만 남게 됩니다. 객석에서 보면 조용하게 들릴 거예요. 그 울림을 상상하고 부르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곡은 그룹 부활의 ‘네버엔딩 스토리’이다. 멜로디와 가사에 짙은 그리움이 배 있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이라는 후렴구로 유명하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노래를 통해 목소리를 낸 첫 번째 곡이라는 점에도 의미가 있다. 참사 발생 이후 유가족들은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 등을 촉구하며 단식과 행진, 삭발 등을 했다. 2014년 12월 유가족들은 연대해준 시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리에서 이 곡을 불렀다고 한다. 2015년에는 뮤직비디오가 제작되기도 했다. 지난 4월 6일 경기 안산 단원구청 대강당에서 진행한 ‘4160인 시민합창’ 전체연습에서 지휘자 박미리씨가 시민들에게 곡을 설명하고 있다. 정희완 기자 세 번째로 ‘화인’이 이어진다. 도종환 시인의 추모시에 가수 백자씨가 멜로디를 입혔다. 화인의 사전적 의미는 ‘쇠붙이로 만들어 불에 달궈 찍는 도장’이다. 가슴속에 새겨진, 평생 지울 수 없는 비통함을 그린 곡이다. 가사처럼 유가족들에게 4월은 더 이상 어느 따뜻한 봄날의 4월이 아닐 것이다. 2015년 참사 500일 추모제 때 유가족과 시민들이 함께 불렀다. 당시는 세월호가 인양되기 전이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가 네 번째로 들어간다. 2016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탄핵 촛불집회 때 많이 울려 퍼진 노래다. 민중음악가 윤민석씨가 만들었다. 다른 곡에 비해 멜로디가 경쾌하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등 노랫말에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향한 의지가 담겼다. 합창에서는 어린이들의 목소리로 곡을 시작한다. 박미리씨는 “세월호 이야기를 노래를 통해 아이들과 같은 자리에서 나눌 수 있다는 건 세월호 부모님들의 10년간 싸움의 큰 성과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은 행동이 큰 울림으로 이날 합창연습에는 416합창단 소속 유가족 7명도 함께했다. 단장인 최순화씨(고 이창현 학생 어머니)는 인사말을 통해 “4160인 합창을 처음 시작한다고 했을 때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노래를 하게 될까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고 막막했다”라며 “하지만 많은 분이 힘을 합하고 노력해서 곡이 완성되는 것 같다”라고 했다. 이어 “제목이 <세월의 울림>인데, 이 노래를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울림이 되고, 세월호를 기억하는 모든 분에게 감동을 주는 큰 울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6일 경기 안산 단원구청 대강당에서 진행한 ‘4160인 시민합창’ 전체연습에서 한 어린이기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부르고 있다(사진 위). 지난 4월 6일 경기 안산 단원구청 대강당에서 진행한 ‘4160인 시민합창’ 전체연습에서 홍기헌씨가 노랫말을 수어로 표현하고 있다. /정희완 기자 다섯 번째 곡은 기억하겠다는 약속과 다짐을 담은 ‘잊지 않을게’다. 마찬가지로 윤민석씨가 작사·작곡했다. 세월호 추모곡 가운데 가장 많이 불린 노래다. 10주기 기억식 현장에서는 객석에 있는 시민들이 먼저 부르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기억식 프로그램 안내 소책자에 가사도 실을 예정이다. 시민들이 첼로와 바이올린 등을 연주하는 영상도 함께 나온다. 마지막으로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를 합창한다. 정희성 시인의 시에 멜로디를 얹은 곡이다. 연대를 통해 슬픔과 아픔을 나누고 치유로 나아간다는 뜻이 읽힌다. 국내 재난참사 유가족들은 지난해 12월 ‘재난참사피해자연대’를 공식 발족했다. 세월호를 비롯해 삼풍백화점, 씨랜드 화재, 인천 인현동 화재, 대구지하철, 가습기 살균제, 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 스텔라데이지호 등 8개 참사 유가족들이 참여했다. “우리가 겪은 참사를 누군가는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한 사회를 위해 나아가고자 한다”는 게 연대체의 기본 정신이다. 시민들의 연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날 연습에 나온 수어 참가자 홍기헌씨(51)는 “10년 전에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한 적이 있다. 당시 한 어르신이 오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알고 보니 단원고 학생의 외할머니였다. 가짜뉴스나 악성 댓글이 많은데 이 서명운동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이렇게 작은 행동도 피해 유족분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돼 이번 합창에도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충북 괴산에 거주하는 박성수씨(54)는 아내, 자녀 2명과 함께 왔다. 박씨 부부는 “10주기에는 추모 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합창단을 신청했다”라고 했다. 이어 “사실 집에서 연습을 하지 못했다. 반주를 듣기만 해도 울컥했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많은 사람과 함께하니 제대로 부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제주에 거주하는 청소년 20여 명은 지난 4월 9일부터 자전거로 안산까지 이동한 뒤 합창에 합류한다. 이번 합창은 연습 과정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지난 2~3월 연습기간 동안 32개 단체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주최 측에서 강사를 파견했다. 여기에 유가족들도 동행했다. ‘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에서 합창 실무를 담당하는 진수경씨는 “유가족은 시민에게 힘을 받고, 시민은 유가족에게 힘을 주는 자리였다”라며 “시민합창단은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많은 시민이 모인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0주기가 끝이 아니라 생명이 존중되고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4월 6일 경기 안산 단원구청 대강당에서 진행한 ‘4160인 시민합창’ 전체연습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 최순화씨가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정희완 기자 ■10주기 이후에도… 최순화씨는 이날 연습이 끝난 이후 주간경향과 만난 자리에서 첫 곡인 ‘가만히 있으라’를 언급했다. “가만히 있으라가 없었다면 이렇게 참사도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또 세월호를 기억하고 추모하려는 시민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압력이 지금도 있다는 게 속상하고 화도 납니다.” 최씨는 10주기를 계기로 많은 행사가 개최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다만 10주기 이후의 시간이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번 10주기로 세월호 참사가 끝났다고 생각할까 봐서요. 4월만이 아니라 다른 때에도 4월처럼 관심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문제이잖아요. 참사가 던지는 질문과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연구하고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최씨가 말을 이어갔다. “세월호와 관련해 여전히 숙제가 많이 남아 있잖아요. 이런 숙제를 푸는 게 또 우리 부모들의 숙제입니다. 10주기 이후 내년, 후년에도 운동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죠.” 이번 시민합창은 10주기 이후에도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또 하나의 기록이자 기억의 매개로 남을 듯하다.
“우린 10년 싸운 세월호 가족에게 빚졌다”(2024. 04. 15 06:00)
2024. 04. 15 06:00 사회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장 인터뷰 지난 4월 6일 서울 중구 충무로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사무실에서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장을 만났다. 유 센터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유가족들의 곁에 머문 ‘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의 일원으로, 세월호 10주기 공식 기록집 <520번의 금요일>을 포함해 5권의 기록물 발간에 참여했다. 이효상 기자 2014년 4월 16일의 참사 이후, 세월호는 하나의 사회운동이었다. 시민들은 아침에 집을 나선 가족이 무사히 집에 돌아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종전까지 빠르게 ‘수습’해야 할 일이던 ‘재난’은, 사회가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해 진상을 규명하고 애도해야 할 대상이 됐다. 이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참사 이전까지 평범한 이웃이었던 희생자·생존자의 가족들이다. 그들은 단식과 삭발, 삼보일배와 100일을 넘는 농성도 마다하지 않고 사회의 맨 앞줄에서 ‘안전사회건설’을 촉구해왔다. 이들은 “지겹다”, “뭘 밝혀냈냐”고 말하는 사람들의 몫까지 대신해 싸웠다. “내가 먼저 당했으니 당신들은 당하지 말라”(책 <520번의 금요일> 중 준영 엄마 임영애씨의 말)는 마음이었다. 이들이 앞장서 싸우는 대신 국가에 재난의 수습을 일임했다면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교훈도 얻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10년간 세월호 가족들의 싸움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이다. 기록단은 참사 직후부터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가족들의 곁을 찾아 10년을 머물렀다. 역사는 길어지고, 기억은 희미해진 세월호의 10년을 어림할 수 있는 이들이 있다면, 기록단은 거기에 속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기록단의 일원인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센터장을 지난 4월 6일 서울 중구 충무로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사무실에서 만났다. 세월호 참사 이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인권운동가였던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각종 재난의 피해자들을 연결하고 진상규명, 재발방지 등 피해자들의 마땅한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가가 됐다. 그는 “이태원 참사 직후에 이태원 유가족분들은 사실 세월호 가족들과 거리를 두려 했다. 9년을 싸웠는데 진상규명이 안 됐다고 봤으니까, 우리는 다른 길로 싸워야지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이태원 참사 이후 1년 6개월이 지났는데, 지금 이태원 유가족들은 ‘우리가 걸어온 시간은 세월호 가족들이 먼저 간 길에 발걸음을 포개면서 온 거다’라고 말씀하신다. 세월호 가족들은 운동을 만들었다. 다른 재난 참사의 피해자들이 또다시 목소리를 낼 때, 어떻게 하면 과오를 줄이고, 어떻게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지, 그 나침반 역할을 세월호 가족들이 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이전보다 안전해졌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가 재난에 더 신경 쓰고, 안전 문제에 대해 더 예민한 사회가 됐다고 본다. 세월호 가족들은 진상을 밝혀야 할 일이라는 걸 알렸다. 그렇게 특별법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세월호 참사는 기존에 발생한 한국사회의 재난과는 달랐던 것 같다. “기존의 재난·참사는 사회적인 애도나 전국적인 관심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세월호 참사는 전국적 애도 속에서 정부나 국회 등 다양한 공적 기관이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하고 배분한 사건이다. 재난에 대해서는 처음으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과 피해자 범주가 확장된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권위주의 정부에서 재난은 수습의 대상이었다. 시민은 정부의 재난수습을 선전하고, 이의 수용을 설득·계도하는 책무를 맡았다(유해정 논문 ‘정치적 애도를 통한 삶의 재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에서 시민은 구조, 교통정리, 헌혈 등 자원봉사를 통해 처음으로 재난에 참여했다.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에 이르러 ‘애도하는 시민’이 등장했지만, 추모 행렬은 한 달을 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는 달랐다. 시민들은 진도 팽목항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노란 리본을 달고, 촛불집회에 참여하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이 흐름에 구심점이 된 것은 피해자의 가족들이었다. -기록단이 올해 3월에 세월호 참사 10주기 공식 기록집 <520번의 금요일>을 펴냈다. 책을 읽고 나니 세월호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책임자 처벌만이 아니라 안전사회 건설을 요구했고, ‘안전’을 사회의 열쇳말로 만들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가족협의회(사단법인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의 활동을 정리해봤더니 참여하거나 주도했던 행사가 1년에 600~700건에 달했다. 가족협의회에 참여하는 200여 가정의 뜻을 모으는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겠나. ‘이렇게 감정 표출하면 안 될 텐데’ 싶을 정도로 회의 때는 서로 치열하게 싸웠다. 또 끝나면 같이 밥 먹으러 갔다. 가족협의회에서 모두가 평등한 한 표를 갖고, 치고받고 싸우면서 결론을 다듬어서 내놓는다. 부모 한 분 한 분이 위대하고 존경스럽지만, 전체가 모여서 논의하고 결정하고 실수를 만회하는 경험을 만들어 온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더 존경스럽다. 어떤 집단이 이렇게 10년을 할 수 있을까.” -<520번의 금요일>에서 ‘조직’과 ‘갈등’을 다룬 장을 썼다(이 책은 12개의 장을 6명의 작가가 나눠 썼다). 가족협의회 입장에서는 드러내기 쉽지 않은 이야기들인데 쓰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가족협의회가 2022년 봄에 10주기를 앞두고 그동안의 기록을 정리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객관적이고 솔직한 백서를 써달라’고 했다. 호성 엄마 정부자님이 ‘평범한 엄마가 10년을 최선을 다해서 싸웠으니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싶다. 원치 않지만 누군가는 이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우리의 부족하고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줘야, 우리 같은 시행착오를 덜 겪지 않겠느냐. 그러면 우리 백서는 의미가 있는 거다’라고 말씀하셨다. 솔직하게 쓰려고 했다.” 세월호 가족들은 참사 직후 무엇을 믿을 수 있었을까. 언론은 ‘전원 구조’라는 희대의 오보를 냈다. 정부는 세월호 뱃머리가 서서히 물에 잠기는 걸 손 놓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있지도 않은 ‘에어포켓’을 거론하면서 배에 공기를 불어 넣었고, 현장엔 단 2대의 헬기만 떠 있는데도 121대의 헬기가 구조 작업에 투입됐다고 선전했다. 세월호 가족들은 정부가 또 뭘 숨길지 몰라 2015년 8월 진도군 동거차도에 인양 작업을 감시할 천막을 쳤다. 배를 타고 가 낭떠러지를 끼고 산을 올라야 도착하는 천막을 가족들은 1주일씩 돌아가며 3년 넘게 지켰다. 가족들이 가만히 있었는데 저절로 이뤄진 건 없었다. 가족들이 청와대 항의 방문을 하고 나서야 박근혜 대통령 면담이 이뤄졌고, 국회에서 56시간을 대기하고 나서야 국회 국정조사 계획서가 통과됐다. 전국에서 650만명의 서명을 받고, 46일을 단식하고, 100일 넘게 광화문광장 노숙농성을 벌인 끝에 특별법이 겨우 통과됐다. 외부의 환경과 싸우는 동시에 가족들은 내부의 갈등도 조정해야 했다. 대리기사 폭행 사건처럼 가족들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힌 사건도 있었고, 정부가 조장한 갈등도 있었다. 정부는 2015년 배·보상 기준을 발표하면서 배·보상 신청자에게는 5000만원의 국비 위로금을 추가 지급하기로 했다. 대신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받았다. 이는 가족들이 최대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쪽과 현실적으로 먼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별법들 이외에 세월호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세월호 이전보다 안전해졌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가 재난에 더 신경 쓰고, 안전 문제에 대해 더 예민한 사회가 됐다고 본다. 세월호가 처음을 만든 것들도 많다. 재난이라는 건 그전까지 빨리 딛고 일어서는 것이었는데, 진상을 밝혀야 할 일이라는 걸 알렸다. 그렇게 특별법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피해 회복의 범주도 넓어졌다. 과거에는 보상금으로 보상이 끝난다고 생각했는데, 신체로 나타나는 정신적 고통도 치료가 필요하다는 걸 처음으로 알렸다. 좌초된 배를 3년에 걸쳐 인양한 것도 거의 없던 일이고, 그 배를 보존한 것도 처음이다. 법원에서는 드물게 재난에 대한 국가 책임이 인정됐고, 기무사의 유가족 사찰 등 국가 폭력도 드러냈다. 그렇게 받은 국가배상금을 피해자들이 한 가정당 500만원씩 3억원을 모아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한 기금으로 모은 것도 처음이다. 국회 농성도, 청와대가 있던 청운동에 진입해 농성을 벌인 것도 처음이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논의될 때 정부·여당의 가장 큰 반대 논거는 세월호였다. ‘세월호를 9번에 걸쳐서 조사했는데 새로운 진상이 밝혀진 게 있었느냐?’는 얘기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사회적 애도가 왜 크지 않냐고 묻는다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피로감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국가 차원에서 9번 진상규명을 시도했고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했다. ‘밝혀진 게 없지 않으냐’고 말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진상규명을 빼놓고 세월호가 많은 것을 바꿨지만, 진상규명이 너무나 주된 이슈였기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처럼 인식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진상규명이라는 것이 ‘위법하냐, 위법하지 않느냐’만을 가리는 조사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도 세월호를 계기로 알게 됐다. 법 위반만 없으면 검찰은 기소할 수 없고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된다. 그러나 재난·참사가 일어나는 데는 구조의 문제, 행정상의 공백, 문화적 측면이 모두 작용한다. 이제는 가족분들 사이에서도 ‘법적인 부분만 따져선 안 됐던 거구나, 제도를 바꾸고 구조를 바꾸고 관행을 바꿔야 했던 부분이구나’라는 걸 이해하고 인정하는 분들이 늘고 있다. 책임을 묻는 것도 사법적 책임만큼이나 정치적 책임이나 도덕적 책임도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9번의 조사가 밝혀낸 사실은 분명히 있다. 국가가 희생자들을 구조하지 않았다는 것.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지만, 4월 19일에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바다에 잠긴 선내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조 실패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진 정부 관계자는 가장 먼저 사고 해역에 도착했던 해경 123정장 1명에 불과하다. -기존 진상규명에 대해 아쉬움은 없나. “저는 다 실패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조사에 관해서는 두 가지 얘기를 하고 싶다. 하나는 9번을 조사했다고 하지만 증인들은 모두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불출석했고, 증거는 대통령기록물 등으로 지정돼 접근할 수 없다. 손발 묶어놓고 조사하라고 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조사위원회 구성에 대한 아쉬움이다. 여야가 각자 몫을 추천하다 보니 위원들 일부는 각 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법적·구조적·문화적 문제를 모두 다루기에는 구성이 법률 전문가들 중심이었다. 실무 조사관들도 각 부처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머잖아 복귀할 조직을 철저히 조사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겠느냐.” 2014년 4월 17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부근 해상에서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 해경과 해군은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이날 선내 진입은 실패했다. 김영민 기자 -10주기가 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의 수명이 긴 까닭은 뭐라고 보나.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하나는 ‘봤다’라는 점이다. 무기력하게 서서히 침몰하는 걸 시민들이 모두 바라봤다. 두 번째는 부모들이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싸웠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이 나서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부모들은 10년간 후퇴하지 않고, 필요한 모든 자리에서 가장 맨 앞으로 나가 싸웠다. 전태일 열사도 사후 몇십 년간 이소선 여사가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아가셨기에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용균씨도 김미숙 어머님이 모든 산재 현장을 찾아가시기 때문에 산재 문제를 알리는 이름으로 여전히 기억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그렇게 싸울 수 있었을까. “참담하고 슬프지만 어린 자녀들이 희생됐고, 그 수도 너무 많았다. 어떤 때는 매일 농성을 해야 한다. 희생자 가족이 많으니 내가 못 나갈 때 누군가 나가 줄 사람이 있었다. 슬프지만 그게 동력이 됐다. 이태원도 너무 참담하지만, 희생자가 세 자릿수였기에 대신 싸워줄 가족들이 있었다. 이건 희생자가 적으면 길게 싸우기도 어렵고, 사회변화를 요구하기도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떻게 모든 피해자분이 재난이 날 때마다 이렇게 싸울 수 있겠나.” -<520번의 금요일>을 보면 가족분들을 도왔던 시민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 그런데도 지난 10년을 떠올리면 기억에 남아 있는 건 가족들을 향한 혐오 발언이었다. “사람들이 재난 피해자들을 혐오하고 모욕하는 건 그 사람의 개인적인 판단도 있겠지만, 정치인이나 정부 등 마이크를 쥐고 있는 사람들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한다. 언론에는 그런 내용이 보도되니까 그게 여론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피해자들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해왔다. ‘가족들은 이렇게 열심히 싸우는데 눈물 닦으라고 가제 수건 챙겨준 게 뭐라고’, ‘같이 굶고, 울어준 게 뭐라고’ 이런 식이다. 혐오의 목소리는 크게 들리지만, 사실 실체는 없다. 곁을 지키며 따뜻한 말을 보태는 사람들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 가족들이 10년을 버틴 건 만났던 수많은 시민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는 10년 동안 부모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봤다. 안산에 생명안전추모공원 건설을 추진할 때인데 안산 시민들이 너무 반대하니까 시민들 마음을 돌리려고 노인정, 마을회관을 시민들이 선물로 보내준 양파를 들고 찾아다녔다. 한 어머니가 어떤 할머니께 양파를 드렸는데, 그 할머니가 ‘우리 동네에 납골당 들이려고 했냐’며 양파를 이 어머니 뒤통수에 던져버렸다. 어머니가 양파를 다시 할머니 손에 꼭 쥐여주면서 ‘할머니, 저는 욕해도 되는데 이거 드시고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라고 하더라. 경이로웠다.” -가족분들이 10·29 이태원 참사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세월호 가족분들이 좌절한 국면 중 하나였다. 당시 사참위(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진상조사에 대해 이렇다 할 입장을 못 내고 정리한 직후였는데,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고 가족들이 완전히 꺾였다. 8년 동안 정말 잘 안 울던 부모님들이 이태원 얘기만 하면 울었다. 가족들은 세월호 이후 이만큼밖에 못 이룬 게 속상하지만 사회는 바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청년들이 죽는 걸 보면서 가족들이 ‘사회도 못 바꿨구나’, ‘슬퍼하고 애도해 줬던 얼굴들이 떠올라서 고개를 들 수 없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도 ‘놀러 가다 죽었다’는 혐오의 말이 나왔다. 그래도 그 말이 나올 때까지 시간은 걸렸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에서는 하루 이틀 만에 쏟아졌다. ‘더 잘 싸웠어야 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10년이 끝이 아니다. 앞으로 또 바꿔 나가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시민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재난으로 인해 고통받은 피해자와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안전해지고, 누구든 재난에 맞닥뜨렸을 때 조금이라도 빨리 피해를 회복하고 다양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됐다. 우리 사회는 가족들이 어렵게 한 발 한 발 내디뎌서 온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공로와 기여에 감사하기보다는 마치 특혜를 받으려고 했던 사람들처럼 매도하거나 ‘피해자가 왜 저래’ 하는 시선으로 쳐다본다. 사회나 정부가 지켜주지 못한 사람들인데, 문제를 어떻게 고치면 좋을까 고민하기보다 세상을 바꿔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한다. 피해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피해자가 그만 싸웠으면 좋겠다. 왜 피해자가 삼보일배하고 머리를 깎고….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는 가족들이 바란 건 진상을 알고 싶은 것 하나였다. 이태원 참사 가족들도 진상을 조사하는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고 1년 반을 내달리고, 지금도 집에 못 돌아가고 있다. 매번 진상규명 특별법을 만들 것이 아니라 상설로 조사기구를 만들어서 전문적으로 조사해 통합적인 재발 방지 대책이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가족들이 요구하는 게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이다. 기본법에 피해 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한 제도를 담을 수 있다. 그렇게 조사 인력들의 경험치를 축적하고, 피해자 지원을 조력하는 전문가들도 양성해야 한다. 이런 제도화가 없다면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피해자들 모두가 나와서 싸우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신간] ‘모래 뺏기 놀이’ 세월호 복기(2024. 04. 10 06:00)
2024. 04. 10 06:00 문화/과학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지음·진실의힘·3만5000원 “승객의 생명을 걸고 하는 모래 뺏기 놀이와 같았다.” 2016년 <세월호, 그날의 기록>을 쓴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기록팀)은 세월호 참사를 ‘모래 뺏기 놀이’에 비유했다. 수백 명이 타는 배를 가운데 두고 모래를 빼내듯,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장치들을 하나씩 무력화했기 때문이다. 청해진해운은 18년 된 낡은 배를 일본에서 들여와 서류를 조작하고, 무리하게 증·개축했다. 운항할 때마다 해야 하는 복원성 계산, 화물량 확인, 고박 상태 검사는 배 바깥에서 흘수선만 확인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무리하게 증·개축한 배는 조타 장비의 작은 고장을 견디지 못하고, 오른쪽으로 빠르게 선회하면서 왼쪽으로 과도하게 기울어졌다. 부실하게 묶어 놓은 화물이 한데 쏠리면서 복원성을 상실했다. 기관실 각 구역을 열어놓고 운항하던 선원들은 그 상태를 방치하고 빠져나가 침수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해경지휘부는 구조에 나선 해경 123정에 사진·영상 송출, 보고 요구를 끊임없이 하면서 현장에 혼선을 줬다. 123정이 대공 스피커로 대피만 독려했더라도 현장의 구조 세력의 도움을 받아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었다. 기록팀은 2017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침몰 원인 조사, 수사와 재판기록, 해외 전문기관의 조사 자료 등 지난 10년간 쌓인 자료를 새로운 관점으로 검토·분석했다. 국가 차원의 조사가 진행될수록 오히려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열망과 의지가 흐려지는 걸 보면서 다시 고통의 기록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봤다.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잠수함 충돌설을 붙들고 있던 사참위의 기우제식 조사, 형사처벌을 진상규명의 목표로 삼았던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참사를 낱낱이 복기하려는 용기를 새로운 희망의 시작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포주공아파트 박철수 지음·마티·2만5000원 <한국주택 유전자>를 쓴 저자의 유작이다. 한국 아파트단지의 원형인 마포주공아파트의 시작과 끝을 파헤친다. 단지 내 인프라를 입주자가 부담하는 방식, 임대가 아닌 분양, 30년 후 재개발 등 한국 아파트단지의 특징은 모두 마포주공에서 시작됐다. 로봇 드림 사라 바론 지음·놀·1만9800원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등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의 원작 그래픽 노블이다. 개와 로봇 사이를 스쳐 간 찰나의 계절, 함께한 기억이 남긴 찬란한 순간들을 코끝 찡하게 그려냈다. 대사 없이, 오로지 선과 면만으로 뭉클함을 자아낸다. 사이렌과 비상구 오유신 지음·이매진·1만6800원 학교 폭력을 겪은 학생이 교사가 돼 학교를 돌아본다. 성희롱 피해 교사, 초등학교 청소 실무사, 고등학생일 때 임신한 청소년 부모, 성인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를 진단받은 새내기 교사까지 학교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돌봄과 교육, 노동의 문제를 다룬다.
신간
[특별기고]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의 진실’(2022. 04. 18 13:32)
2022. 04. 18 13:32 사회
ㆍ현 정부 진상규명 완수 못 해…차기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 세월호 참사 8주기를 맞았다. 세월호 참사는 구할 수 있었던 304명이 국가의 잘못으로 희생된 대참사였다. 많은 이들이 나도 잠재적 피해자일 수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절대로 잊지 말자고 다짐하고, 피해자들과 더불어 세월호 참사의 진실과 책임소재를 밝혀 사회를 보다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행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를 반정부 활동으로 규정한 박근혜 정부가 국가공권력 을 동원해 피해자와 시민을 매도하고 탄압했고, 결국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그 후 5년이 지났다. ‘촛불 정부’를 표방하고 세월호 진상규명을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한 달 남았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어디까지 밝혀졌고, 대한민국은 그로부터 무엇을 배운 걸까? 4.16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지난 4월 6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생명안전사회 건설을 촉구하는 서한을 인수위 측에 전달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촛불로 연 진실규명의 역사적 기회 “촛불도, 새로운 대한민국의 다짐도 세월호로부터 시작됐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히 정치인 개인의 특별한 소신이라기보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동의했던 많은 시민의 공통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수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은 압도적 다수 시민의 요구로 이뤄졌고, 여기에 당 시 여당(새누리당)의 일부도 초정파적으로 동참했기에 문재인 정부 출범 전후에는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에 벌어진 국가폭력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 중심의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 일 시적이나마 초정파적 동의가 이뤄져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진상규명 등에 우호적인 환경만 조성된 건 아니었다. 세월호와 관련된 기록들은 박근혜 정부 말기 상당수가 파기됐다. 그나마 남은 기록은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에 의해 대통령 기록물로 봉인된 상태였다.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되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없이는 최소 30년간 열어볼 수 없다. 정치적 장애물도 만만치 않았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이전 정부의 ‘적폐 청산’ 과정에 당시 여당과 지지자들은 정 치적 저항을 본격화했다. 진상규명 활동에 나선 피해자들과 시민들을 향한 당시 여당 지지자들 혹은 소위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비난, 혐오 발언, 직접적 폭력이 계속됐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 진상규명 노력이 ‘반정부 운동’으로 규정되고 탄압당했다면, 문재인 정부에 와서는 ‘특권 추구’ 라는 정치적 비난에 직면하곤 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과정, 당선 후 피해자들과의 면담 그리고 매년 참사 기억식 메시지 등을 통해 진상규명을 거듭 약속했다. 실제로도 많은 조사와 수사가 진행됐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나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등 전담특별기구를 통한 조사뿐 만 아니라 국정원, 군 기무사, 해양수산부, 문화체육관광부, 사법부 등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불법부당행위 여부를 밝히기 위한 자체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철저한 조사가 이뤄졌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국정원에 대해서는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조사가 배제되고 자체 TF 에 의해 불투명하게 조사가 이뤄졌다. 이 자체조사는 국정원이 세월호 피해자와 시민들의 정보를 수집한 행위는 불법으로 볼 수 없고 처벌도 할수 없다는 입장에 따라 이뤄졌다. 이러한 소극적 해석은 수사에도 이어졌다. 검찰은 국정원과 기무사의 사찰행위가 “유가족들의 구체적 권리를 현실적으로 방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고 대다수 사찰행위를 무혐의 처리했다. 정보수집을 지시한 청와대 인사들도 기소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자신의 세월호 부실감사에 대한 자체감사를 진행하지 않았고 징계나 수사의뢰도 없었다. 검찰 특별수사단도 “혐의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검찰은 검찰과거사위원회를 외부인사 중심으로 구성했지만 세월호 관련 청와대의 수사개입 등을 조사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검찰 특별수사단의 재수사에서 이들 쟁점은 무혐의로 결론지어졌다. 경찰도 이전 정부의 직접적인 물리력 사용에 의한 인권침해에 대해 외부인사 중심의 조사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세월호 관련 사안은 다루지 않았다. 문대통령은 계엄령 문건을 작성한 기무사에 대한 수사지시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안 권력기구와 수사기구 그리고 입법으로 설립된 사참위 등 특별조사기구의 자율에 맡기는 입장을 견지했다. 결과적으로 권력기구의 기득권을 깨고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진실을 성역 없이 드러내고 책임을 규명하는 데 큰 한계를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 재조사가 직면한 성역 사참위가 출범했지만 정부 권력기구들이 사참위와의 정보공유와 조사에 제대로 협조 하지 않았다. 이에 항의해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 등이 청와대 농성에 돌입하자 뒤늦게 대통령과 국정원장,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등이 국정원 및 군의 세월호 관련 정보에 사참위가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정원장의 특조위 조사 협조 약속 이후에도 국정원은 ‘세월호’ 단일 키워드로 검색된 문건에 한해서 만 목록을 작성하고, 이 목록의 공개를 거부하다가 여론의 압박을 받은 후 68 만개의 목록에 대한 사참위의 방문열람을 허용하고 있다. 목록을 검토한 후 사참위가 요구한 정보에 대해서도 내부 TF 의 검토를 거쳐 상당량을 비식별 처리하거나 비공개한 후 제한적으로만 방문열람 형태로 공개하고 있다. 국가안보, 출처 보호 등의 명목으로 비공개 된 문건만 12만건에 이른다. 뒤늦게 정보공개를 약속한 군 역시 선박 위치를 추적하는 해군전술지휘통제체계(KNTDS)의 열람을 허용했으나, 표시된 데이터에 대한 사참위의 검증은 거부하고 있다. 사참위가 수사권을 가지지 못한 것도 한계점이다. 피해자와 시민이 수사권을 보유하지 않은 사참위를 대신해 전면 재수사를 진행할 특별수사단의 구성을 촉구한 끝에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했다. 윤석열 당선인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당시인 2019년 말의 일이다. ‘백서를 쓰는 심 정으로’ 전면 재수사하겠다고 약속한 검찰 특별수사단은 1년여 수사 끝에 검찰수사 외압 의혹을 비롯해 대부분의 사안에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끝내 가로막힌 대통령 기록물 조사 대통령 기록물로 봉인된 세월호 기록의 공개를 국회에 요구하겠다던 문 대통령의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10만 국민동의 국회청원을 통해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국회에 청원한 결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결의안 발의가 이뤄진 상태지만, 아직 상임 위에 계류된 채 통과를 위한 논의는 멈춘 상태다. 야당(국민의힘)은 이 결의안을 반대해왔다. 그 결과 세월호 참 사 당시 청와대 중심의 재난대응 컨트롤 타워에 대한 조사와 진단이 종합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지금도 베일에 싸여 있다. 결론적으로 8년이 지났지만 진실은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성역도 깨지지 않았다. 사참위의 활동 기한이 몇개월 더 남아 있지만, 여전히 발생 원인, 당일 컨트롤 타워가 작동하지 않았던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고, 참사 이후 피해자들과 시민들에게 가해졌던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서도 일부만 조사됐을 뿐이다. 남은 몇개월 동안 아직 남은 숱한 성역에 대한 조사가 완수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검찰 특별수사단이 대부분의 의혹에 대해 무혐의와 불기소로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 그나마 몇 몇 해경지도부를 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해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법원의 소극적 법해석과 검찰의 의지 부족으로 유죄를 확정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아 직까지도 참사 당일 구조하지 않은 책임에 관해서는 구조 세력의 말단 해경 123정장 외에는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일어난 국가폭력이 다른 사 건 수사과정에서 일부 드러나 재판에 넘겨졌지만 전방위로 자행된 국가폭력의 진상이 온전히 밝혀지지도, 사찰과 공작을 지시한 공권력 남용의 책임자들이 응분의 처벌을 받지도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그렇다고 진상규명 작업이 무의미했던 건 결코 아니다. 최소한 우리는 참사 당일 국민을 구하는 일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진실을 가리고 피해자들을 핍박하는 일에는 총동원돼 거대한 힘을 드러낸 국가를 보았다. 세월호 참사와 이후 과정 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드러난 나를 지키는 국가의 부재, 그 ‘없음’을 확인하고 그 의미를 사회적으로 공유해 대책을 합의 하는 일은 아직 완수되지 못한 진상규명·책임자 처벌만큼 중요할 수 있다. 지난 8년동안 진상규명 작업이 겪어온 제약만큼이나 이 참사의 의미와 대책에 대한 사회적 토론 역시 지체돼왔다. 윤석열, 세월호 피해자에게 사과할까? 문제는 이런 과정이 윤석열 당선인의 집권 이후에 가능할지 여부다. 다시 여당이 된 국민의힘과 윤 당선인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시민들의 노력을 반정부 활동으로 간주해 외면하거나 핍박하고 사참위 등을 ‘세금도둑’으로 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있다. 이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윤 당선인이 대통령 취임 뒤 반드시 할 일 중 하나는 세월호 참사와 그후의 국가폭력에 대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피해자와 국민 앞에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일이다. 국가폭력에 대한 사과는 세월호 참사에 관해 윤 당선인이 대통령으로서 풀어야 할 첫 번 째 매듭이다. 이 사과를 통해 정부와 여당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관련 활동에 대해 정치적으로 보복하거나 피해자들이나 시민들을 매도하고 핍박하는 일을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점도 분명히 약속해야 한다. 특히 대선 기간에 혐오를 선거전략에 활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윤 당선인 스스로 세월호 피해자들에 대한 혐오를 용납하지 않을 것을 확약해야 한다. 이것이 윤 당선인이 풀어야 할 두 번째 매듭이다. 윤 당선인이 풀어야 할 세 번째 매듭은 세월호 참사의 성역 없는 진상규명과 피해자들의 회복과 치유가 온전히 이뤄지도록 정부, 여당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는 일이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정부가 보유한 기록을 모두 공개할 것을 약속하고, 봉인된 세월호 참사 관련 대통령 기록 물, 국정원 등 국가기구가 아직 공개하지 않은 기록 등을 공개해야 한다. 독립적인 조사 기구인 사참위 조사 활동 결과보고서의 제안과 권고를 수용·이행하 고, 사참위가 다루지 못하거나 충분 하게 조사하지 못한 과제들을 피해자들과 상의해 정부 차원의 대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렌즈로 본 세상]세월호 ‘기억공간’ 새로운 시작(2021. 08. 02 11:28)
2021. 08. 02 11:28 사회
서울 광화문광장 한켠에 자리했던 ‘세월호 기억공간’이 서울시의회에 마련된 임시장소로 옮겨졌습니다. 2014년 7월,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단식 농성장이 처음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지 7년여 만에 광화문광장을 떠난 것입니다. 지난 27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가족협의회 유가족들과 시민 자원봉사자들이 기억공간 내 물품을 서울시의회에 마련된 임시공간으로 직접 옮겼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사진 앞에서 유족과 자원봉사자들은 짧은 묵념을 한 뒤 사진액자들을 조심스럽게 노란 상자에 담았습니다. 사진액자 등 기억공간 내 물품들은 서울시의회 1층 전시관으로 옮겨 보관·전시하고 기억공간 목조건축물은 유가족과 시공사가 직접 해체해 안산 가족협의회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절대로 잊지 않을게. 꼭 기억할게. 다 기억할게. 아무도 외롭지 않게”라고 쓴 4·16 세월호 참사 온라인기억관 추모객의 글이 뇌리를 떠나지 않은 하루였습니다.
렌즈로 본 세상
[만화로 본 세상]홀-세월호 의인 김동수씨 그날의 기억 이미지(2020. 06. 05 16:49)
2020. 06. 05 16:49 문화/과학
충격적 사건을 만화로 재현한다는 것, 그것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도 너무나 많이 미디어에 노출돼 모두가 보았고, 알고 있다고 믿는 어떤 사건을 말이다. 9·11 테러 때 남편을 잃은 알리사 토레스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그래픽 노블 <미국 미망인(American Widow)>(알리사 토레스 글, 최성윤 그림, Random house, 2008. 국내 미번역)을 펴냈다. 토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9·11은 너무나 시각적인 사건이었어요. 글로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어요. 그 이미지들을 어떻게든 해야만 했어요.” 월드트레이드 센터가 불타는 모습이 어떻게든 해야만 했던 이미지였다. 그를 뒤덮어버린 그 이미지를 제어할 방법이 바로 그날을 그리는 것, 그 이후 자신의 삶을 그리는 것이었다. 김홍모 작가가 딜리헙에 연재하고 있는 <홀>도 같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로 구출되기 직전까지 스무 명이 넘는 단원고 학생들을 소방호스로 건져내 ‘파란 바지의 의인’으로 불리는 김동수씨의 증언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 이 글은 <홀>과 같은 작품을 읽는 것의 의미를 새겨보려 한다. 참사 유가족 토레스나 참사 생존자 김동수씨 모두, ‘그날의 기억-이미지’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이는 대중에게도 마찬가지인데, 의미는 사뭇 다르다. 미디어를 통해 반복 재생산되고 대중에게 각인된 이미지, 그것은 참사의 스펙터클을 중심에 두고 있다. 사건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기능하며 역설적으로 사건의 실체와 맥락을 가린다. 불타오르는 건물과 침몰하는 배로 각인된 이미지가 너무 커서 사건이 발생한 경위와 사건 속에서 스러져간 사람들, 사건 이후 생존자들의 삶이 가려진다. 김동수씨에게 그 이미지는 그의 기억, 구체적인 대상들과 감각에 직결된 것이다. 그것은 세월호 선체 내부의 홀로 그를 빨아들인다. 그가 더 구하지 못하고 나와야 했던 그 홀,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라고 외치던 아이들이 남아 있던 그 홀. 거의 직각으로 기울어져 있던 선박에서 그 홀은 낭떠러지 아래 거대한 웅덩이였고, 김동수씨는 낭떠러지 위에서 소방호스로 사람들을 건져내고 있었다. 그가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온몸을 기울였을 그 낭떠러지 아래 공간, 그 홀과 거기 남겨진 사람들. 김동수씨에게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이었고, 그들을 구하지 못한 자신을 미워하는 일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그것은 국가가 할 일이었음에도 그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해를 하고야 만다. <홀>의 1화와 10화에는 동일한 구도의 그림이 있다. 기울어진 세월호의 이미지로 떨어져 내리는 김동수씨다. 세월호 내부의 홀, 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듯이 그는 세월호의 기억-이미지로, 반복적으로 떨어진다. 파란 상의의 그가, 또 노란 상의를 입은 그가 떨어진다. 6년 내내 그가 떨어질 때, 가족과 생존자들이 그의 곁에서 그를 잡아주었지만 떨어지는 일만큼은 반복된다. 이 이미지를 어떻게든 하기 위해, 김홍모 작가의 <홀>은 이미지의 전후, 이미지 너머를 그려낸다. 김동수씨가 떨어지는 그곳으로 독자들을 부르기 위해, 그래서 함께 다시 올라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며, 따라서 재현-이미지를 경유해야만 한다. 참사를 가리는 참사 이미지의 마력에 저항해 그 이미지를 김동수씨가 보는 것처럼 보기 위해서다. 김 작가는 만화라는 매체를 소방호스 삼아 홀에서 한 의인을, 그처럼 괴로워하는 생존자들을 건져내려 하고 있다. 이 작업에 더 많은 사람의 눈길이 필요한 이유다. 김홍모 작가의 <홀> 중 한 장면 / 딜리헙
만화로 본 세상
[표지 이야기]세월호 관련 혐오표현, 누가 어떻게 퍼뜨렸나(2020. 04. 10 15:09)
2020. 04. 10 15:09 사회
벚꽃이 흩날리면 마음이 먼저 주저앉는다. 어느덧 6년째다. 김광배씨(53)는 “해마다 벚꽃이 보이면 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기념일 반응’으로 불리는 증상이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김건우 군의 아버지다. 그는 4월 16일이 다가오면 매번 우울감·불안을 겪는다.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설치된 세월호 추모 조형물 뒤로 해가 지고 있다. / 서성일 기자 경기 안산 단원고에는 4월이면 벚꽃이 늘 만개했다. 2014년 4월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우리 아이들이 2014년에 반별로 벚꽃나무 아래서 찍은 사진이 있는데, 사진이 자꾸 떠올라 벚꽃을 제대로 보기가 어렵다”고 했다. 올해는 벚꽃이 예년보다 14일이나 빨리 피었다. 보채듯 찾아온 봄기운은 불청객이었다. 벚꽃이 필 때마다 그의 속이 문드러지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사무처장이다. 해마다 4월 16일 전후로 쏟아지는 ‘혐오’에 대처해야 한다. 유족들은 벚꽃과 함께 “지겹다”, “돈이 그렇게 좋으냐”는 등의 혐오표현을 마주한다. 그는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김씨의 예상은 꼭 들어맞았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 6주기와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겹쳤다. 6주기를 앞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세월호 참사를 ‘해상 교통사고’라고 빗댄 보수 유튜버가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차명진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자는 방송토론회에서 세월호 혐오발언을 해 당 윤리위원회에 제소됐다. <주간경향>이 단독 입수한 연구보고서 ‘재난 피해자 명예훼손 등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을 보면 주요 정치적 변곡점마다 세월호 혐오표현은 얼굴을 드러냈다. 이 보고서는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연구팀에게 용역을 맡겨 제작했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지난 3월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6주기 추모의 달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 전면 재수사,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고 있다. 기자회견에 앞서 유족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이슈마다 등장한 혐오표현 혐오표현이란 소수자를 향한 편견·차별을 확산하고 조장하는 행위나 소수자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모욕·위협을 하는 표현을 뜻한다. 연구팀은 세월호 혐오표현 33개를 추린 뒤 종합일간지 10개사, 방송 8개사, 인터넷 언론 7개사 기사를 검색했다. 기간은 2014년 4월 16일에서 2019년 6월 30일 사이였다. 혐오표현을 포함한 기사는 총 5727건이었다. 긍정·중립·부정 보도를 모두 아우른 수치다. 혐오표현을 비판한 기사도 집계됐다는 의미다. 유족과 희생자를 겨냥한 혐오표현이 담긴 기사가 각각 3030건과 1448건으로 가장 많았다. 보고서는 “특정 시점마다 세월호 혐오표현이 특정 정치세력의 의해 나온다는 점에서 다른 혐오표현과 차이가 있다”고 했다. 보통 혐오표현은 오랜 억압의 전통 속에서 사회적 편견이 맞물려 표출된다. 2014년 4월 22~23일과 2019년 4월 16~17일에 혐오표현을 포함한 기사가 급격히 늘어났다. 박근혜 정부 책임론이 거세게 불거진 세월호 참사 일주일 뒤와 세월호 참사 5주기인 시점이다. 2014년 4월 22~23일에는 ‘종북’·‘빨갱이’ 등 혐오표현을 담은 기사가 190건에 달했다. 2019년 4월 16~17일에는 ‘지겹다’는 혐오표현이 담긴 기사가 160건을 넘었다. 차명진 전 의원과 정진석 미래통합당 의원이 각각 “찜 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 처먹는다”, “세월호 그만 좀 우려먹으라 하세요”라는 혐오발언을 한 시기였다. 세월호 혐오표현인 ‘교통사고’가 포함된 기사량이 늘어난 시기도 눈에 띈다. 연구팀은 교통사고를 ‘사건의 부인과 축소’ 혐오표현으로 규정했다. 교통사고가 포함된 세월호 기사는 2014년 7~8월(52건), 2018년 1월(16건)에 크게 늘어났다. 2014년 7~8월에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싸고 갈등이 심화됐던 시기다. 2018년 1월에는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활동 방해 수사가 한참 진행 중이었다. 발화자(發話者)는 주로 안상수·이완구·주호영·홍문종 등 현 미래통합당 계열의 보수정당 의원이었다. 보고서는 “보수정당 의원들이 협상력 극대화를 위해 혐오표현을 이용했다”고 봤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추세를 읽을 수 있다. 중앙대 사회학과 석사 졸업생 강태수씨와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지난해 쓴 논문 <세월호 ‘노란 리본’과-일베의 ‘폭식 투쟁’ 공감과 혐오의 전형과 그 비전형적 생활세계>는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 베스트(일베)’를 분석했다. 일베에서는 주요 정치적 국면마다 세월호 관련 게시글 빈도가 늘어났다. 일베는 세월호 혐오표현의 주요 확산지 중 하나다. 논문은 이전 달과 비교해 세월호 게시글이 많이 증가한 시점으로 2015년 4월과 2016년 4월, 2016년 12월을 꼽았다. 2015년 4월은 세월호 1주기였다. 2016년 4월은 20대 총선과 세월호 주기가 맞물린 시기였다. 2016년 12월은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이 불거진 시점이었다. 논문은 “일베 유저는 세월호 참사가 우파 진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슈가 발생한 시점에 세월호 참사에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이익 챙긴 언론 혐오표현의 주된 전달자는 언론이었다. 언론은 혐오표현을 정제하지 않고 보도해 클릭수 장사를 하거나 정파적 입장을 강화했다. ‘어묵·오뎅’은 피해자를 증오하고 조롱하는 반인륜적 세월호 혐오표현이다. 연구팀이 재판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세월호 참사 당일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쓰인 혐오표현이다. 2015년 1월 27일 20대 남성이 일베에 관련 게시물을 올리며 논란이 커졌다. 세월호 혐오표현 중 가장 많은 수치인 903건이 보도됐다. MBN은 150차례나 보도했다. 게시물을 올린 피의자의 수사·재판 과정과 어머니의 사과가 보도되면서 혐오표현이 반복해 등장했다. “세월호 생존 학생 모욕 사진 논란, 어묵 들고 하는 말이… 충격”(MBN, 2015년 1월 27일), “단원고 일베 논란 ‘친구 먹었다’ 충격적 사진의 정체는?”(<서울신문> 2015년 1월 27일), “일베 어묵 피의자, 어머니 공개 사과… 왜?”(<서울신문> 2015년 8월 1일)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수원 4·16연대와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가 지난 4월 8일 오전 경기도 수원역 문화광장에서 ‘4·16 표지석’ 설치식을 하고 있다. / 수원 4·16연대 제공. 자극적인 제목은 조회수 증가와 수익 증대로 이어진다. 연구팀은 “기사 대부분이 황색 저널리즘 형태의 선정적인 제목을 달고 있었다. 기사가 지나치게 반복 노출돼 혐오표현 각인 효과를 부른 측면도 있다”고 했다. 언론이 정파적 이익을 대변하는 과정에서 혐오표현을 부추긴 사례도 나왔다. ‘대입특례’는 당초 중립적인 표현이었지만 언론의 보도태도로 인해 혐오표현이 된 사례다. 대입특례 이슈는 세월호 혐오표현 중 유일하게 방송보도가 신문보도보다 많았다. KBS(15건)와 SBS(14건) 보도량이 많았는데, 문제의 보도는 MBC에서 나왔다. MBC는 2015년 1월 6일 대입특례를 유족들이 요구한 것처럼 보도했다. 유족들은 ‘악의적 보도’라며 반발했다. 연구팀은 “가치중립적인 단어인 ‘대입특례’는 언론에 의해 확산되는 과정에서 단원고 학생들과 유가족들이 피해자가 되어버린 이례적 사례”라고 분석했다. MBC는 연구팀이 추린 33개 세월호 혐오표현을 39건의 보도에서 다뤘다. 이중 37건(94.9%)을 단순 인용 보도했다. 혐오표현을 비판적 분석 없이 단순 인용 보도하면 혐오표현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는다. MBC는 세월호 피해자를 부정적 보도 태도로 다루기도 했다. MBC(44건)는 <조선일보>(147건), TV조선(111건) 다음으로 부정적 보도 건수가 많았다. “혐오표현 세부 규제해야” 보고서에는 검·경이 수사한 세월호 혐오표현 사건 210건을 추려 분석한 결과도 담겼다. 수사 중인 사건과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사건 모두 포함됐다. 혐오표현 발화자는 정치인이나 언론인이 아닌 일반 시민이다. 발화자를 보면 10대(47명)와 20대(64명)가 각각 22.3%와 30.4%로 가장 많았다. 세월호 혐오표현이 상당수 온라인 공간에서 나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혐오표현 피해 대상은 주로 유가족(159건·75.7%)과 참사 희생자(48건·22.9%)였다. 반인륜적인 증오 표현(65건·31%), 모욕(60·28.6%)이 많았다. 연구팀은 “혐오 강도가 낮으면 불기소나 기소유예가 돼 재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각한 혐오표현이 담긴 사례만 남았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019년 12월 24일 오전 서울 중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입구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50차 전원위원회의에 출석하려는 김기수 비상임위원을 막고 있다.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임명된 김기수 비상임위원은 프리덤뉴스 대표이자 변호사로 ‘세월호 유가족 대리기사 폭행 사건’에서 세월호 유가족 등을 고발한 대리기사 쪽 무료 변론을 맡았다. 프리덤뉴스는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라고 보도했던 매체다. / 김창길 기자 보고서는 세월호 혐오표현의 확산에는 ‘정치적 동기’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결론지었다. 온라인에서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혐오표현보다 정치적 동기에서 나오는 세월호 혐오표현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취지다. 연구팀은 “참사 당일부터 세월호 혐오표현은 온라인 공간에서 극단적인 반인륜인 증오표현의 형태로 발화됐다. 억압되고 소외된 청소년층이 혐오표현의 주요 발화자로 가세했고, 세월호 혐오표현의 발생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세월호 혐오표현의 생성·확산은 정치적 원인이 크다. 보수세력은 세월호 참사를 정쟁의 대상, 정치적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혐오표현을 의도적·조직적으로 생성·확산했다”고 봤다. 연구팀은 언론에 구체적인 혐오표현 보도준칙을 제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사회적 재난 및 혐오표현에 대한 보도지침 합의’로 개별 언론사의 자체 보도준칙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정부 차원의 혐오표현 규제는 세분화해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혐오표현은 국가가 나서서 단호하게 규제해야 하는데, 지금은 뚜렷한 움직임이 없다”며 “규제 방식을 다양하게 하면서 혐오표현의 수준별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자율 규제를 유도하는 방식, 행정지도를 하는 방식, 구체적 양형기준으로 제한하는 방식, 기소나 구속 기준에 혐오표현을 넣는 방식 등 층층이 단계적으로 치밀하게 구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유족에 덧씌우려던 ‘종북’ 프레임은 효과없었다” 세월호 유족을 향한 혐오표현은 종류에 따라 시민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대부분의 시민은 세월호 유족을 ‘빨갱이’로 지칭해 ‘종북’ 프레임에 가두려는 혐오표현에 동의하지 않았다. 반면 보상과 자원 배분을 둘러싼 혐오표현에는 상대적으로 동의하는 응답자가 많았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연구팀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에게 세월호 혐오표현에 관해 물은 결과다. 설문조사는 2019년 11월 13일부터 9일 동안 웹 설문을 이용해 진행됐다. 설문조사는 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는 ±3.1%포인트다. 이념 편견을 조장하거나 모욕적이고 반인륜적 증오표현에는 동의율이 낮았다. ‘정부 탓하는 유가족들은 종북·빨갱이·선동꾼’이라는 혐오표현에 동의율은 6.2%에 그쳤다. ‘유족충·미개한 유족’(5.9%), ‘가난한 집 애들이다’(3.3%), ‘세월호 희생자를 물만두·어묵탕·오뎅 등에 비유’(3.1%) 등 반인륜적이거나 모욕적인 표현에 대한 동의율도 낮았다. 반인륜적 표현들은 응답자들의 인지율 역시 대체로 낮았다. 이에 반해 보상과 자원 배분에 관련된 혐오표현인 ‘천안함 유족보다 세월호 유족이 특혜를 받았다’에는 동의하는 응답자 비율(32.3%)은 상대적으로 높았다. ‘세월호특별법은 특혜법이다’(23.1%),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세금도둑, 돈잔치, 전리품 잔치하는 곳’(16.6%), ‘유가족들이 돈을 더 받으려고 집회한다’(14.7%) 등이 뒤를 이었다. 연구팀은 세월호 혐오표현 동의율이 높은 집단으로 ‘60세 이상’, ‘미래통합당(옛 자유한국당) 지지자’, ‘자영업자’와 보수 성향 응답자라고 했다. 연구팀은 “당시 집권 세력이나 추종자들이 종북 프레임을 유포했으나 시민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며 “보상·자원 배분을 둘러싼 경제·공정 이슈 혐오표현 인지율이 높은 것은 한국사회가 공정한 경쟁과 분배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한 현실을 반영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20대와 60대가 세월호 혐오표현을 표현의 자유로 볼 수 있다는 취지로 응답한 점도 눈에 띈다. 연구진이 중립 의견이 3점인 척도(점수가 낮을수록 동의하는 응답자 비율이 높음)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세월호 혐오표현이 표현의 자유’라는 의견에 20대(3.44점)와 60대(3.47점)는 30대(3.73점)나 40대(3.84점), 50대(3.71점)에 비해 동의하는 편이었다. 60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세월호 혐오표현을 접했다는 응답(20.4%)이 40대(15.4%)나 50대(18.4%)에 비해 높은 점도 특징이었다. 미래통합당 지지자 중에서 ‘세월호 혐오표현은 표현의 자유’라고 응답한 비율은 44.9%에 달했다. 미래통합당 지지자의 47.4%는 ‘세월호 혐오표현을 담은 언론 보도나 기사 내용에 동의했다’고 답했다. ‘주변 지인들에게 세월호 혐오표현이 담긴 보도를 전달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33.8%였다. 응답자 중 61%는 ‘문제가 있는 표현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고 답했다. ‘동의하는 내용이어서 널리 알리고 싶었다’는 응답도 25.5%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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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복의 인물탐구]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대표 장훈 “생명안전기본법 제정하라”(2020. 04. 10 15:08)
2020. 04. 10 15:08 사회
원래 ‘추모의 달’은 6월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잔인한 달’로 통하던 4월이 추모의 달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때문일 것이다. 경기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단을 태운 세월호가 인천항을 떠나 진도 앞 동거차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모두 304명이 사망·실종된 세월호 참사는 잔인한 4월의 극치였다. 경기도는 4월 한 달을 추모의 달로 정해 본청과 모든 사업소에 노란색 세월호기를 게양하고 있다. 그 사건 이후 6년이 흘렀다. 눈앞에서 아이들의 죽음을 바라본 국민은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증거조작, 그리고 ‘사라진 7시간’에 대한 논란을 제기하고, 이는 결국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세월호 진실규명을 공약한 정부가 새로 들어섰지만 유족들은 올 4월 16일에도 노란 리본을 달고 광화문광장에 서 있을 것이다.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장훈 대표(50)는 아직 ‘진실’과 ‘분노’에 목말라 있는 것 같다. 4월 6일 장훈 대표를 만났다. 안산에서 ‘세월호 참사 6주기 기억식’ -세월호 6주기다. 4월 18일까지 추도기간으로 정했는데 어떤 행사가 진행되나.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행사가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4월 12일 사고해역인 진도 앞 동거차도에 가는 행사가 있고, 15일 서울에서 차량 615대가 참가하는 노란 차량 행진이 벌어진다. 노란 차량 행진의 한 팀은 안산에서 여의도 국회 앞을 거쳐 광화문광장으로, 다른 한 팀은 안산에서 서초동 검찰청을 거쳐 광화문광장에 합류한다. 16일 본 추도식은 안산에서 ‘세월호 참사 6주기 기억식’으로 가질 것이다. 예년에는 문화제도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많이 축소했고, 추도식도 가족 위주 몇 사람만 참석할 예정이다.” -노란 차량 행진이 국회와 검찰을 거친다는 것은 국회와 검찰에 대한 항의 표시 아닌가. 검찰 세월호참사특별수사단(검찰특수단)은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해경 지휘부 11명을 기소했고,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해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수사에 항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검찰특수단의 11명 기소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당초 우리는 침몰 원인에서 구조 방기, 증거조작, 유족 폄훼까지 모두 87명을 고소·고발했다. 그런데 검찰은 구조하지 않은 부문인 해경 수뇌부 11명만 기소했다. 세월호 참사 수사에 개입해 진실규명을 방해하고,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를 능멸한 정치인들은 아무도 기소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총선 때문인 것 같다.” -유족들이 87명을 고소·고발했는데 검찰은 그동안 아무런 수사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11명을 기소했다. 윤석열 검찰이 조국 과잉수사로 비난을 받으니까 검찰특수단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지못해 11명을 기소한 것이다. 검찰을 방문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항의인가. 검찰특수단이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밝혀줄 것이라 보는가. “맞다. 우리 유족들도 윤석열 검찰의 그런 측면을 우려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원인을 검찰특수단의 수사로 밝히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의도적으로 침몰한 것을 밝혀내려면 당시 선원의 진술이 중요하다. 그러나 선원들은 일률적으로 ‘기계적 결함’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기계적 결함은 전문적 분야라 검찰이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세월호를 너무 늦게 인양해 증거가 사라졌다.” -그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가리기 위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사참위)가 지금 가동 중이지 않은가. 사참위에서는 진실규명에 성과가 있는가. “코로나19 때문에 침몰 원인에 대한 조사가 늦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모의실험이 필요한데 외국에 나가서 하는 것은 막혔고, 국내 실험만 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침몰 원인을 밝히는 것은 민감한 부문이다. 사참위 이전에 조사했던 선체조사위에서도 침몰의 내부요인과 외부요인을 놓고 의견충돌이 심했다. 선체조사위는 외부요인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명시했다.”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장훈 대표를 비롯한 회원들이 3월 19일 광화문광장에서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시민 21대 총선 행동계획 발표 및 공천반대 후보 1차 명단 공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선체를 인양해 외부흔적을 모두 조사했는데도 잠수함 충돌설·고의침몰설 등 외부요인설이 유효하다고 보는가. 사참위에서도 선박 전문가나 과학자 대부분 침몰의 외부요인을 부정하지 않았나. 문재인 정부도 음모론과 같은 외부요인설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우리 유족들이 전문가가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조사위원 모두가 침몰 원인에서 외부요인을 삭제하면 우리 유족들이 편하다. 전문가들이 침몰은 내부요인이 가장 높고, 외부요인이 없음을 유족들에게 설득시키면 된다. 그런데 그런 설득이 없다.” “외부요인 없음을 유족들에게 설득해야” -국정조사는 물론 검찰수사와 오랜 재판, 감사원 감사와 세월호특조위, 선체조사위 등에서 선박 전문가·과학자는 대부분 ‘외부요인은 없다’고 일관되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런데 일부 비전문가들이 계속 외부요인설을 주장하는 것은 유족 때문이라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우리 유족들 때문이 아니다. 전문가의 80%는 세월호 침몰에 외력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안다. 나머지 20% 전문가들이 ‘이게 맞다’고 해주면 가족들도 이해할 것이다.” 세월호 유족대표를 만나 억울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 괜히 진실논쟁이 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 잠수함 침몰설에서 고의침몰설까지 갖가지 억측이 난무했다. 선박·과학자 대부분 배의 결함에 의한 침몰로 고의침몰 요인은 없다는 것에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인사들이 여전히 비과학적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다. 과거 선체조사위에서 이 문제로 싸웠고, 현재 사참위도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 배경에는 바로 유족의 강력한 주장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족대표를 만나보니 외부요인설에 매달리지 않는 분위기다. 장훈 대표도 “유족들은 구조 태만과 증거조작, 기무사의 불법사찰, 박근혜의 사라진 7시간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구조 태만으로 처벌된 사람은 처음 사고현장으로 달려갔지만 ‘배 안에 있는 학생들에게 나오라’고 하지 않은 123정장이 유일하다. 123정장의 죄목은 업무상과실치사가 적용됐고, 7년을 구형받고 항소심에서 3년이 확정됐다. 123정장 사례는 공무원이 업무상과실치사로 처벌받은 첫 사례이긴 하다. 이번 검찰특수단은 전 해경청장 등 11명을 바로 123정장 공동정범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업무상과실치사는 공소시효가 7년으로 내년이면 공소시효가 완성돼 더 이상 처벌도 불가능하다. 올해 연말이 시한인 사참위가 진실을 규명하고, 해경관계자를 처벌하려면 공소시효가 빠듯하다. 그래서 장 대표는 “죽을지 뻔히 알면서 그대로 놔둔 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구조하지 못한 공무원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처벌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최근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세월호 관련 TF를 만들어 적극 대응하라’고 지시를 한 기무사 영관급 장교 2명에게 징역 1년~1년 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기무사는 세월호 유족들의 학력과 정당 가입 여부, 정치성향까지 조사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직무 권한을 넘어 부하들에게 세월호 유족들 동향을 파악하게 했고, 이들의 지위와 역할, 범행 전반의 지배력을 고려하면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이미 기무사 소강원 참모장(육군 소장)도 실형이 선고됐다. 당시 기무사가 작성한 세월호 문건에는 ‘세월호 피해자 대책위가 종북세력’이라고 돼 있다. 이에 장 대표는 “우리가 김일성·김정일 만세라도 불렀나, 우리가 왜 종북세력인가”라며 “사건 초기 우리를 도와주는 시민·사회단체 중에는 진보단체를 비롯해 여러 단체가 있었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농수산물시장에서 채소를 판매하던 사람으로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진보단체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는 “세월호 유족들 중에서 박근혜에게 투표한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면서 “그런 사람들 나중에 자기 손목을 끊고 싶다고 절규했다”고 전했다. “사참위 기간 연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음모론 등 침몰 원인보다 증거조작과 보안사 용공 조작, 세월호특조위 조사 방해, 궁극적으로 박근혜의 7시간 규명에 전력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요구하기로 했다. 법안에는 피해자 유족들을 두 번 죽이는, 유족을 혐오하고 능멸을 방지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또 이번 4·15총선 출마자들에게 ‘대통령 7시간 기록물’ 공개 서명을 받고 있다. 국가기록원에 봉인된 문서도 국회의원 3분의 2가 서명하면 풀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다시는 이런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 숨진 학생들이 바라는 것 아닐까. 국회에 요구하는 사안은 법과 제도개선은 뭐가 있나. “기존 피해자지원법의 유효 기간이 짧다. 피해자에 대한 트라우마 치유가 2024년이면 끝난다. 부모세대는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형제나 특히 그 참혹한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는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 또 2차 피해자인 민간잠수사와 진도 어민의 피해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현재 가동 중인 사참위가 올 12월이면 끝난다는 점이다. 연말까지 종합보고서가 나오기 쉽지 않아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모두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4·16생명안전공원 건설을 비롯한 추모·기억 공간 사업은 잘 진행되고 있나. 유족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됐나. “안산 화랑유원지 안에 추모비·기념관·공원 등을 갖춘 추모시설(2만3000㎡)이 들어선다. 문화·편의시설을 갖춘 새로운 개념의 문화공원이다. 예산 495억원도 확보했고, 현재 설계 공모절차가 진행 중이다. 내년 착공해 1년 정도 공사해 2022년 완공할 예정이다. 그 부분은 잘 진행되고 있다. 유족들 의견도 잘 반영됐다.” 마지막으로 기억하기 어려운 아들 얘기를 꺼냈다. 2학년 8반 장준형 군이 살아 있었으면 지금쯤 군대를 갔다온 청년이 됐을 것이다. 장 대표는 “준형이는 어머니 없는 한부모 가정의 3남1녀 장남이었다”면서 “동생을 챙기며 친구 사이에서도 책임감과 의협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아들 준형이는 가톨릭대에 진학해 신부가 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자친구를 사귀어야 하기 때문에 신부 대신 가톨릭대 간호학과에 진학하고 싶어했다고 했다. 그는 아들 얘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에 대해 전부 다 알고, 책임을 지우고 싶다. 왜 학생을 구하지 않았는지, 왜 진실을 감추려 했는지, 왜 세월호 죽음을 모독했는지 따지는 것이다. 돈 때문에? 지금 이러는 것 우리 돈 써 가면서 하는 것이다. 그런 오해 좀 하지 않았으면… 우리 아이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희복의 인물탐구
[시네프리뷰]악몽-장르영화 코드로 번역된 세월호 비극(2020. 03. 06 14:32)
2020. 03. 06 14:32 문화/과학
제목 악몽 영제 The Nightmare 제작연도 2018 감독 송정우 출연 오지호, 차지헌, 지성원 외 상영시간 100분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개봉 2020년 3월 12일 스톰픽쳐스코리아 트라우마다. 세월호가 남긴 상처. 벌써 6년이다.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부모들 인생이 그날을 기점으로 달라질지 누가 알았을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도 할퀴었다. 그해 가을 초입의 한밤중, 청와대 앞 주민센터 주차장에 세워진 임시천막에서 만난 한 아버지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좋은 꿈이 아니다. 악몽이다. 위로의 한마디라도 듣고 싶었던 부모들을 두고, 대통령은 꼭꼭 숨었다. 현실과 꿈이 뒤집히는 이야기 구조 외동딸을 둔 부부. 유치원에 다니는 딸의 하원은 아빠의 몫이다. 바르게 인사하는 아이에게 유치원 교사는 노란 풍선을 선물로 줬다. 아이는 풍선에 ‘삐삐’라는 이름을 붙인다. 업어달라는 딸을 위해 앉는 순간 풍선은 하늘로 날아간다. 상심한 아이는 투정을 부린다. 아빠 미워. 레고 마니아인 딸은 아빠에게 영화 다 만들면 말레이시아에 있는 레고랜드로 놀러가자고 한다. “그러마”라고 했지만, 일단 영화의 성공이 중요하다. 아빠는 영화감독이다. 그리고 장면의 전환. 엄마가 울부짖는다. 유리창 너머 나무관이 불에 탄다. 화장장이다. 아이, 예림이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면서. 아이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부재의 기억은 너무나 크다. 초콜릿 한 조각에서도 아이가 떠오른다. 엄마는 못 먹게 했는데, 아이는 벌써 다섯 개나 먹었다. 부부를 이어주는 끈이 끊어지자 불신이 파고든다. 맞벌이 부인 옆을 맴도는 원어민 강사가 눈에 거슬린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감독은 꿈속에서 등에 뱀 문신을 한 여인을 만난다. 그가 꾸는 악몽은 그 뱀 문신 여인 옆에서 깨어나거나, 그녀가 그를 떠나는 꿈이다. 시나리오는 안 나왔는데 캐스팅부터 한다. 무의식적으로 감독은 그 뱀 문신 여인을 찾고 있다. 그리고 오디션 맨 끝에 찾아오는 그 여인. 그리고 일탈. 영화 속 꿈과 현실의 경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느 순간 뒤집힌다. 딸을 둔 영화감독 부부는 그가 찍는 영화 속 가상 부부다. 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도 그가 쓴 각본의 내용이었고. 뱀 문신을 한 여인은 알고 보니 그의 실제 부인이었다. 감독이 쓴 영화 <악몽>의 시나리오를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은 투자사는 영화사 대표를 압박해 죽은 딸이 귀신으로 되살아오는 이야기로 변경하자고 제안한다. 의외로 감독은 순순히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변경된 시나리오를 읽은 영화사 대표는 “신이 들린 모양”이라며 “영화의 엔딩이 압권이었다”라고 반색한다. 영화의 스토리는 열린 결말이다. 앞서 언급한 뫼비우스의 띠처럼 꿈과 현실의 경계는 무너지고 어느 방면으로 이야기를 정리해도 앞뒤가 들어맞도록 맞춰놨다. 영화 속 감독이 숨겨놓은 코드 그런데 감독이 영화에 숨겨놓은 코드가 있다. 세월호의 비극이다. 아이의 부재라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는 부모들의 시간은 2014년 4월 16일에 멈춰버렸다. 끊임없이 그날, 정확히 말하면 그날 이전으로 돌아가 곱씹어 후회한다. 그날 이후의 삶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악몽이, 지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갈 수밖에 없다. 슬픔을 뒤로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안산 단원고를 중심으로 남은 응어리를 제외하고 슬로모션으로 움직이던 세상은 어느덧 정상 속도로 돌아왔다. 세월호의 비극이 남긴 생채기는 변주되어 장르영화의 코드로 번역된다. 말하자면 감독이 바치는 진혼곡이다. 정리해보자면 영화 앞에서 차마 묘사할 수 없었던 그날 오후 벌어졌던 ‘비극’은 아이를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원망은 투사된다. 아버지의 일을 방해하는 사건은 그날 오전 11시쯤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부터 시작된다. 낮잠 때문이었을까. 그를 덮친 수마(睡魔)는 ‘서큐버스’로 의인화된다.(휴대폰에 여인의 이름은 ‘수’로 저장되어 있다) 감독이 숨겨놓은 세월호 코드는 꿈속에서 아이와 재회하는 배경인 하늘 위로 비상하는 고래CG로 드러난다.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석정현 작가의 ‘얘들아 보고 있지?’라는 작품을. 광화문 세월호 촛불 위로 비상하는 고래그림(실제 2016년 겨울, 박근혜 탄핵 광화문 촛불시위 때 이 장면을 재현한 적 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뒤집히는 이야기 구조가 난해하게 보일 수 있지만, 장르적 전통 속에서는 1950년대 <환상특급(Twilight Zone)>이나 해머 프로덕션의 에피소드들부터 구축된 익숙한 이야기 구조다. 영화사 대표의 입을 빌려 “끝내주는 엔딩”이라고 했으니 과연 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떨까. 그건 앞으로 영화를 볼 관객들을 위해 남겨두기로 하자. 배우에게 캐릭터란 스톰픽쳐스코리아 몇 주 전 봉준호 감독의 영화작법에 대한 기사에서도 언급했지만, 실제 감독들에겐 영화 속 캐릭터들이 자기가 진통을 겪어 낳은 새끼들처럼 보일 것이다. 그건 배우도 마찬가지다. 배우 장국영은 만우절에 투신자살로 세상을 마감했다. 기묘하게도 그의 마지막은 그의 유작이 된 영화 <이도공간>(2002)의 엔딩장면과 겹친다. 영화 속 캐릭터에 너무 몰입하다 보니 우울증이 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풍문이 돌았다. 2대 조커로 이제는 영화사에 남은 히스 레저의 선택도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히스 레저의 사인은 의사의 잘못된 처방으로 인한 약물 오용이었다. 조커에 심취한 나머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조커라는 캐릭터에 몰두했고, 그가 그 배역을 좋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배역 때문에 우울증이 심화된 것은 아니다. 영화 속 배역은 엄밀히 말해 그 배우의 자기 인생은 아니다. 그러나 배역의 ‘아우라’는 평생 그를 따라다닌다. 특히 성공한 영화는 더욱더. 평생 14살 소녀 도로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주디 갈랜드가 그랬고, <엑소시스트>의 악령 들린 소녀 리건 역의 린다 블레어가 그랬다. <악몽>에서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 오지호의 열연이다.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니 TV드라마를 포함해 벌써 42편에 출연한 중견배우가 되었다. 기억나는 영화는 <연예의 맛>(2015)과 같은 로맨스 코미디물 속 캐릭터인데, 그동안 알지 못했던 배우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는 것도 영화가 주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시네프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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