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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를 끄고 인생을 켜라! 숙명여대 서영숙 교수의 TV 안보기 운동
- 2008. 06. 27 화제
- 통계적으로, 현대인은 하루 세 시간을 TV 보는 데 할애한다. 하루의 8분의 1이다. 여든까지 산다면 10년이다. 세상 등지는 순간을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내게 10년이 더 주어진다면’ 후회한들 소용없다.‘TV=시간’이라는 당연한 공식 ‘TV 안 보기’라는 말은 진부하다. 현대인의 TV 시청 시간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TV는 바보상자’라는 말도 구식이다. 다양한 채널, 그중에는 유익한 프로그램도 없지 않다. 뉴스는 세상사의 다이제스트다. 다큐멘터리는 때로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참신한 창이 된다. 하루의 스트레스를 ‘무장해제’시켜주는 예능 프로그램의 고마움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TV 한번 꺼보라”고 권유하는 숙명여자대학교 아동복지학과 서영숙 교수(54)의 속내에는 삶에 대한, 조금 더 진중한 배려가 있다. “하루 세 시간, 여든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자그마치 10년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TV를 보는 셈이죠. 하루하루 일상적으로 볼 때는 끔찍하지 않지만, 일생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시간을 쓰고 있는 셈입니다. 저도 보육 전공이라, 아이를 둔 어머니들이 조금 더 절제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운동하고 있습니다(웃음).” 올해로 15년째다. 지난 2004년 결성된 TV 안 보기 시민모임(cafe.daum.net/notvweek)의 회원수는 현재 4천 명이 넘는다.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4일까지는 제5차 전국 TV 안 보는 주간이었다. 전국의 회원들과 유아원이 동참했다. 성과는 가시적이다. 지난 2006년 한 방송사의 조사에 따르면 50가구 중 한 가구 꼴로 TV를 껐다. “처음에 TV 안 보기라고 하면 ‘그게 뭐야? TV를 왜 안 봐’라고 되묻는 분들이 많았어요. 낯설고 엉뚱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제는 동감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 맞아, TV 좀 줄여야지’ 생각하면서 ‘하고 싶은데 어렵다’며 문의를 하는 분들이 많죠. 그런 인식의 변화만으로도 성과라고 봐요.” 단 일주일이라도 TV를 끄고 생활하는 건 일종의 체험이다. 오랜 습관에 대한 도전이다. 아이들의 적응은 오히려 빠른 셈이다. 금방 다른 놀거리를 찾아낸다. 문제는 어른들이다. TV가 빠진 여유시간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몰라 갈팡질팡한다. 시간이 없다고 투덜대고 쫓기는 일상이 막막해 울상이지만, 막상 시간이 주어지면 TV나 켜는 게 현대 일상의 아이러니다. “남는 시간을 채우는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마음으로 뭘 원하고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이루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를 먼저 만드는 거죠. TV를 끄면 10년이 생깁니다. 그동안 뭘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게 첫 번째입니다.” 일단, ‘TV=시간’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TV를 껐을 때 주어지는 10년, 그 여유를 무엇으로 채울지를 고민하는 과정이 ‘TV 안 보기 운동’의 핵심이다. 사소한 결단, 과감한 실천이 10년이라는 인생의 덤을 담보할 수도 있다. 그래도 TV는 육아의 든든한 지원군인데 하루 종일 아이에게 눈을 뗄 틈이 없는 아기 엄마에게 TV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친정엄마도 옆집 순이 엄마도 대신 아기를 봐줄 수 없는 평일 오후, 24시간 만화영화를 방영하는 케이블 채널은 잠시나마 아기를 맡겨놓을 수 있는 쉽고 빠른 선택이다. TV가 선사하는 자유는 달콤하다. “TV가 아이를 쉽게 키우게 해줬습니다. 하지만 귀한 것을 얻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기 쉬워요. 부모 대신 TV의 보살핌을 받은 아이는 부모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부모의 말에 순종하기도 어렵습니다. 스스로 걸어 다닐 수 있게 되면, 필요할 때만 부르는 부모가 되기 쉬워요.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 부모여야 하는데, 지금은 TV나 컴퓨터가 돌보고 있는 셈입니다.” 15년 전 TV부터 시작한 운동이지만, 지금은 통칭 ‘이-미디어(E-Media)’를 포괄하는 운동으로 확장됐다. 화면으로 접하는 모든 매체, 즉 컴퓨터, 인터넷, 휴대전화 등에 대한 관심을 갖고 추진하는 운동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TV를 멀리하는 사람이라도, 불필요한 인터넷 서핑과 휴대전화 사용량을 생각하면 TV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미디어 총량을 보면 엄청나죠. 그래서 하루 정도는 인터넷 사용을 절제하자는 ‘인터넷 휴(休) 데이’도 있고 ‘이-미디어 다이어트 데이’도 있습니다. ‘안 보기’라고 하면 전부 끄자는 얘기로 생각하시는데, 저도 TV 굉장히 좋아해요(웃음). 하지만 우리가 너무 무의식적으로 필요 이상의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말자, 절제하자는 겁니다.” 아동복지학과 수업시간, 서영숙 교수는 학생들에게 이런 토론을 제안한 적이 있다. 주제는 ‘유아기 컴퓨터 사용 찬반’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유아기 컴퓨터 사용은 대세’라는 의견을 내놨다. 토론은 컴퓨터 사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정하되, 어떻게 하면 그 사용량을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방향으로 흘렀다. 유아에게 컴퓨터 사용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성장에 필수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대세’이기 때문이었다. ‘다들 사용하는데, 우리 아이만 안 쓰게 할 수 없다’는 거다. 친구들과의 대화에도, 사회 정서 발달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컴퓨터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컴퓨터가 아니면 안 되는가, 그건 아닙니다. 놀이를 하고, 운동을 해도 충분하죠. 컴퓨터든 TV든, 없으면 불편하기도 하겠지만 육아에 필수요소는 아니라는 거죠.”전지현을 모른다고 무식한 건 아냐 서영숙 교수는 TV 안 보기 시민모임의 오유정 간사(30)의 예를 들었다. 지금은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는 오유정 간사는 어릴 때부터 TV가 없었다. 대화를 할 때 전지현이 누군지 몰라 다른 친구들을 당황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유명한 배우도 모르고, ‘전지현이 누구니?’라고 묻기도 했대요. 친구들이 처음에는 너무 한심하게 쳐다보더래요(웃음). 하지만 친구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다 보니, 아이들 그룹에서는 모두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들어주는 아이가 한 명 생긴 셈이었어요. 그룹의 리스너 역할을 한 거죠. 그러다 신문에 전지현씨가 나오면 읽고 감을 잡을 수 있고. 그런 식으로 관계를 형성한 거죠.” TV를 멀리함으로써 ‘전지현’으로부터도 멀어졌지만, 오유정 간사에겐 책과 음악이 있었다. 또래 집단에선 ‘전지현은 모르지만 박학다식한, 백과사전 같은 친구’가 됐다. TV를 멀리한 시간을 스스로 채운 오유정 간사의 책과 음악 덕에 ‘특별한 친구’가 됐다. TV와 컴퓨터는 대세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따를지 말지는 선택의 문제다. 아직 취향이 형성되기 이전의 아이들은 부모의 영향이 지대하다. “되도록 TV를 보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좋겠지만, 그게 너무 힘들다면 아이와 함께 보는 게 좋아요. 끼고 앉아서 대화 하면서, 프로그램의 의미를 말해주는 거죠. 집안일 때문에 도저히 시간을 내기 어렵다면 아이가 좀 컸을 때 집안일을 맡겨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설거지할 거리를 주고, 청소도 놀이처럼 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죠. 집이 꼭 완벽하게 깨끗할 필요 있나요(웃음). 집이 너무 깨끗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일단 애하고 놀고, 남는 시간에 일하는 거죠. 하루 세 시간은 의외로 길어요.” TV 안 보기 운동에 참여한 주부들은 ‘세 시간의 위력’에 놀란다. TV 앞에서 죽어가던 시간은 ‘여유’로 되살아난다. 일단 집안이 조용해지고, 밤이 길어진다. 남는 시간에 TV 대신 엄마 아빠와 시간을 보낸 아이들은 정서적 안정을 찾는다. 일찍 잠자리에 들기 시작한다. “회원들은 ‘밤이 이렇게 길 줄 몰랐다’ ‘시간이 정말 많이 남는다’고 얘기해요. 애하고 놀아도 남는 시간이 있다고. 부부 금슬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죠(웃음).”바쁜 아빠 눈에 눈물이 핑 아빠가 퇴근했다. 엄마는 아이들을 잠시 TV에 맡기고 집안일에 열중이었다. 지친 아빠를 맞이하는 건 따스한 아내의 미소와 아이들의 포옹이 아니다. ‘힐끗’ 던지는 시선, ‘아빠 오셨어요?’가 전부다. 지친 아빠 눈엔 섭섭한 눈물이 핑, 돈다. “아이들이 TV를 안 보고 있을 때는 아빠를 너무 기다린대요. 딩동, 하고 벨이 울리면 ‘아빠다!’ 하고 달려가 안기죠.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아이고 내 새끼’ 하고 눈물이 핑 돌더래요. 행복의 눈물이죠, 이 경우는(웃음).” TV를 끄기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달려와서 인사하고, 다시 TV 앞으로 가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예뻐지자, 아내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집안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아내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아이들과 놀 생각에 남편의 귀가가 빨라지니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 ‘남편도 다정다감한 남자였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TV 안 보기 주간’에 달라지기 시작한 한 가정의 풍경이다. “‘TV 안 보기 주간’에 참여한 가정을 인터뷰도 하고, 질문지도 돌리고 합니다. 대화 시간이 늘어나고, 부부 사이가 좋아진다고 합니다. 백발백중이에요(웃음). 남편은 아이 키우는 게 힘들다는 걸 알게 되니까 협조적이 되고, 아내는 또 고마워하고. 아이들은 엄마, 아빠랑 노는 게 좋아서 처음에는 늦게까지 자지 않으려고 하지만 정서적 만족이 생기면 유순해지고, 말도 잘 듣게 되고, 잠도 편안하게 잘 자는 거죠.” 부부 사이에는 은근한 경쟁심리도 작용한다. ‘보지 말자’는 약속을 누가 먼저 깨는가가 새롭고 유쾌한 화두가 된다. 약속을 어기지 않기 위해, 혹은 지지 않기 위해 부인은 책을 잡고, 남편은 라디오를 듣는다. “안 보던 책을 처음에 잡기가 어렵지, 가까이 하다 보면 ‘책이 책을 부르는 경지’에 이르거든요(웃음).”일단 일주일만 참아보면 해보기 전엔 모른다. ‘하루에 세 시간 절약’이라는 말은 표어처럼 들릴 수도 있다. 서영숙 교수도 처음엔 생소했다. TV를 안 보고 살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을 여러 사람과 같이하는 일종의 ‘캠페인’으로 발전시킨다는 발상은 낯설었다. 계기는 책 한 권이었다. 지난 1992년 미국 전역에서 ‘TV 안 보기 주간’을 운영한 마리 윈(Marie Winn)의 「TV를 끄자」를 번역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 책을 번역할 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가 1994년이니까 당시 사회적 분위기는 아직,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를 한다고 하면 ‘데모’라고 생각했어요. ‘운동’이라고 하면 ‘운동권’의 데모지, 이런 식으로 같이 모여서 뭘 하자고 제안하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었죠(웃음).” 마리 윈의 책에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례로 가득했다. 언론사에 보도 자료를 보내는 방법과 예문을 비롯해 TV를 안 보는 대신 할 수 있는 놀이들, 일주일 동안 TV 안 보기 운동을 시도할 경우의 요일별 지침까지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었다. “TV에게 빼앗긴 것 중에 가장 아까운 시간은 바로 운동시간이에요. 어머니들의 경우에는 아이와 놀아줄 시간을 빼앗기는 거죠. 본인이 개발할 수 있는 취미나 소질 등도 고스란히 TV에 넘겨준 셈이기도 하고요.” 서영숙 교수의 TV 안 보기 주간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중독’ 수준은 아니더라도, 가족 각자가 규칙적으로 시청하는 프로그램은 있게 마련이다. “토론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데, ‘안 보기 주간’ 동안은 아쉬웠죠. 그리고 언니가 지금 같이 살고 있는데, 정말 TV를 즐겨 보는 분이세요. 하지만 동생이 이런 운동을 하니 일주일만 참아보자고 했더니, 협조해주셨죠. 그 일주일을 참았더니 그동안 봐왔던 드라마 하나가 끝나 있더래요(웃음).” 일주일을 참자, 더 이상 보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다. 대신 붓글씨를 썼다. TV 때문에 미뤄뒀던 취미생활이 다시 찾아왔다. 시간과 여유를 찾으니, 글씨도 좋아졌다. “그 시간에 운동을 하면 건강을 찾을 수 있고, 일주일을 참고 나면 보람을 느낄 수도 있고, 전기를 또 그만큼 아낄 수 있으니 절약이기도 하고, 남는 시간을 어떻게 가족과 보낼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면 창의력도 필요하겠죠(웃음)?” ‘TV는 곧 시간’이라는 것을 전제로,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등식이 다시 성립할 수 있다. ‘TV=건강, 보람, 절약, 창의력’ 가족 간의 행복과 사랑까지. 80년 인생 중 10년을 할애하는 TV를 7일 동안 꺼보는 체험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다. 그래도 TV를 참을 수 없다면 1 가려서 본다. 2 자녀와 같이 본다. 3 모든 광고 방송은 소리를 죽인다. 4 방송 내용에 대해 아이와 대화를 나눈다. 5 연령에 맞는 내용을 보도록 하라. 6 TV를 자녀 돌보기용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7 2세 미만 자녀를 둔 가정은 TV를 끈다. 8 일주일 단위로 시청 프로그램을 미리 정한다. 그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켜고 끝나면 바로 끈다.TV 안 보기 시민 모임이란? TV 안 보기 시민 모임은 2005년 1월 18일에 결성된 순수 시민 단체로 무절제한 TV 시청을 줄이고 운동과 독서, 가족 간의 대화, 문화 활동 등의 시간을 늘려 자신의 발전과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비영리, 비정치적 단체입니다. ■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홍태식(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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