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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정치권 의지 부족에 차별금지법 계류 중”(2022. 05. 20 15:42)
- 2022. 05. 20 15:42 정치
- 2007년 국회에 처음 발의된 뒤 15년째 표류하고 있는 법안이 있다.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를 포함한 시민사회는 정치권이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법 제정을 미루는 걸 막기 위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활동가는 40일 넘게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시민들이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문자를 의원들에게 보내는 운동도 이어지고 있다. 트랜스젠더 방송인 하리수씨는 지난 5월 11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를 만나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사진 / 우철훈 선임기자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지만 이 법이 적용되는 영역, 국가인권위원회 시정권고 수용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 등 세부적 쟁점에 대한 논의는 국회에서 본격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18일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를 만나 차별금지법의 구체적 내용, 향후 정치권이 논의해야 할 쟁점 등을 물었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앞장서온 홍 교수는 소수자 인권, 혐오표현·차별 등의 이슈에 꾸준히 천착해온 연구자다. -국회에 계류 중인 4개 법안(박주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 이상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 권인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안’, 장혜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의 명칭을 보니 크게 차별금지법과 평등법 등으로 나뉜다. “법안의 1차적 목적이 차별금지이니 차별금지법이 가장 직관적인 명칭이긴 하다. 평등법이란 명칭은 차별금지를 통해 지향하려는 가치인 평등을 강조하는 것이다. 국민에게 무언가를 금지해서 해결한다는 느낌을 주기보다 법 취지를 보여주는 데 방점을 찍으려면 후자가 적당한 명칭이라고 본다. 다만 어떤 명칭을 쓸지는 전략적 판단의 영역이다.” -인권위가 2020년 발표한 차별금지법 시안을 보면 이 법은 고용,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기관의 교육과 직업훈련, 행정·사법 절차와 서비스의 제공·이용 등 4가지 영역만 규율하고 있다. “헌법은 모든 영역에서의 차별금지를 규정하고 있지만 차별금지법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혹자는 이 4가지 영역을 공공 영역이라고 하는데 고용,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기관의 교육 등은 주로 사적 영역이다. 그래서 ‘공공성이 있는 사적 영역’이라고 보는 게 맞다. 차별금지법의 핵심은 이 사적 영역에서의 자유를 일부 제한하는 것이다. 중요한 전환이다. 예를 들어 음식점 입구에 ‘무슬림 손님은 받지 않는다’고 써붙여 놓으면 이렇게 장사해도 된다는 신호를 주기 때문에 제한 조치가 불가피하다. 사적 주체도 이 영역에선 협조를 해야 한다. 종교, 가족 등의 영역은 빠져 있어 부족하다고 여기는 분들도 있는데 꼭 그렇게만 볼 건 아니다. 4가지 영역에서 차별이 개선되면 다른 영역의 차별도 개선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에서 여성 목사 안수가 형식적으로나마 허용되는 흐름이 생긴 건 법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이 직접 적용되지 않는 영역은 이렇게 간접적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다. 회색지대도 있다. 종교기관이 대학을 만들었을 땐 당연히 법 적용을 받지만 종교 내부의 교육기관은 어떻게 되는지, 재화·용역의 영역에서 ‘1 대 1’로 하는 지극히 사적인 거래까지 적용할 건지 등에 대해선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동네 탁구 동아리 같은 ‘단체’를 규율하는 조항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다. 만약 모든 동아리가 무슬림은 회원으로 받지 않는다고 할 경우 가게에서 무슬림 손님을 받지 않는 것보다 파급력이 더 클 수 있다. 취미생활은 준필수영역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쟁점들을 속히 논의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해 답답한 상황이다.” -인권위 시안을 보면 차별 유형 중 하나인 ‘괴롭힘’의 세부내용에 혐오표현도 포함돼 있다. 모든 혐오표현이 법 적용 대상인가. “우선 차별의 개념으로 접근해보자. 법은 차별 개념으로 직접차별, 간접차별, 성희롱, 괴롭힘 등을 열거하고 있다. 직접차별 조문만 있으면 나머지는 해석을 통해 차별의 일종으로 규정할 수 있다. 다만 국제적으로 차별의 개념이 넓어지다 보니 확대된 차별 유형을 입법으로 반영하는 흐름이 있다. 인권위 결정례가 쌓인 부분은 해석의 영역에 두지 말고 조문화하는 게 깔끔하다. 다음으로 혐오표현의 관점에서 접근해보면 광화문에서 ‘반동성애’를 외치는 건 혐오표현이지만 이 법의 적용 대상은 아니다. 고용 등 4가지 영역에서 혐오표현을 하면 차별의 하나로 간주되면서 이 법의 적용 영역으로 들어온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가 무슬림 직원에게 ‘무슬림은 다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했다면 직접적 불이익은 아니다. 하지만 해당 직원을 괴롭힌 것이니 차별로 보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현행 인권위법으로도 규율할 순 있지만 명시적 조문이 없다 보니 한계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혐오표현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차별금지법만으로는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 같다. “법을 집행하려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면이 있다. 일반적인 혐오표현은 차별금지법이 아닌 별도 입법을 통해 규제하는 게 맞다. 차별금지법에 그간 차별이라는 말로 포섭하기 어려웠지만 마땅히 근절해야 할 괴롭힘 같은 영역을 담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혐오표현은 차별과 연결돼 있긴 하지만 차별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차별금지법에 다 끼워넣는 건 법의 일관성·체계성 면에서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 대부분의 나라도 혐오표현은 별도의 법으로 다루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종걸 공동대표(오른쪽)와 미류 책임집행위원이 지난 4월 11일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기존 인권위법과 차별금지법은 어떻게 다른가. “구제 차원에서 보면 인권위가 시정권고를 하는 것은 같다. 현재 권고 단계에서 많은 기관이 수용도 하지만 최종적으로 강제하려면 소송절차가 있어야 한다. 소송이 빈번해지는 게 좋진 않지만 (차별 피해자들이)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은 늘 열려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행위자들한테 ‘소송 가면 질 수 있으니 인권위 말을 듣자’는 동기부여가 생긴다. 기존 인권위법과 달리 차별금지법에는 가중적 손배배상, 입증책임 전환, 차별 피해자에 대한 소송 지원 등의 장치가 있다. 소송 지원은 권고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차별 피해자에게 소송 관련 재정 지원을 하는 것이다. 권고를 수용하도록 압박하는 효과가 있다.” -차별금지법에 있는 보완장치들을 강력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나. “대단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차별금지법은 인권위법보다 더 강한 계기를 제공할 뿐이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지금 보이는 반응은 과도한 걱정이자 너무 ‘오버’하는 측면이 있다. 실제 법이 제정된다 해도 특별히 많이 바뀌진 않는다. 소송 지원이야 말 그대로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고, ‘손해액의 3~5배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가중적 손해배상도 손해가 인정돼야 의미가 있다. 노키즈존 운영, ‘첫 손님이 여성이면 재수가 없다’며 승차거부를 한 택시기사 등의 차별로 인한 손해 입증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울러 법원은 차별과 관련된 손해배상 인정에 인색하다. 다만 차별금지법이 법원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재판부가 왜 불법이냐고 물어올 때 조직법의 성격이 강한 인권위법을 언급하면 다소 궁색한 면이 있다.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왜 불법인지 좀더 명확해질 수 있다.” -차별금지법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차별시정 의무도 규정돼 있다.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차별금지 노력을 하려고 할 때 힘을 받을 순 있다. 법률적 근거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법무부에 인권국이 있는데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차별금지국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만들어질 여지가 생긴다. 지자체에서 관련 조례를 만드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4가지 법안이 큰 차이가 있나. “대동소이한 편이다. 다만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는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30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는 내용 등이 더 들어가 있다.” -국회에서 아직 차별금지법 공청회 일정조차 잡지 않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의 열쇠를 누가 쥐고 있다고 보나. “결국 열쇠는 167석을 갖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쥐고 있다. 왜 차별금지법 제정이 안 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예전에는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랬다고 답했지만 이젠 틀린 답이 됐다. 정치권이 법을 제정하려는 의지가 부족해 그렇다. 절박하게 입법 필요성을 느낀다면 세부적 쟁점을 궁금해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정치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최근 갤럽, 리얼미터 등의 여론조사 결과만 봐도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비율이 더 높게 나오지 않나. 여기까지 분위기를 끌고 온 건 정치권이 아닌 시민사회의 힘이다. 이렇게 차린 밥상에 정치권이 숟가락 하나 올려놓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사회적 합의를 핑계 대는 건 더 이상 말이 안 된다. 정치전략상으로 볼 때도 민주당이 차별금지법에 미온적인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전에 노무현 정부 때 국가보안법을 건드리려다 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는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그런 상황도 아니다. 중도는 ‘이런 법 정도는 있어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 민주당의 왼쪽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절실한 과제로 보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이 두 그룹의 지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 표지 이야기
- [유인경이만난사람]이경숙 숙명여대 총장(2006. 05. 23)
- 2006. 05. 23 사회
- “학생들이 붙여준 별명이 최고의 찬사” 100주년 맞은 숙대 맏언니… ‘진실과 정직’으로 전 세계에 꿈을 팔다 준비된 총장, CEO 총장, 언니 총장, 춤추는 총장….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은 별명도 많다. 숙대는 올해 100주년을 맞은데다 이 총장은 직선제 총장으로는 유일하게 4선 연임되어 매스컴의 집중조명을 받고 있다. 정부의 각종 압력에 시달리고 때론 학생들에게 감금당하거나 엉뚱한 이들이 차 앞에 드러눕기도 하는 등 다른 대학 총장들이 수난을 당하는 요즘, 이경숙 총장은 ‘혼자만 행복해서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문이라도 발표해야 할 정도다. 100주년 기념행사 준비를 체크하고 하루 3, 4건의 인터뷰가 이어져 피곤하고 지겨울 텐데 “우리 숙대에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고 제대로 알릴 수 있어 즐겁다”며 미소짓는다. 1994년. 처음 취임했을 때 이경숙 총장은 지금처럼 웃을 수 없었다. 총장 취임식을 마치고 집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을 때 책상에 놓인 선물(?)은 7억8000만 원짜리 세금고지서. 고지서 선물은 줄줄이 이어져 2억3000만 원의 연체료, 3000만 원 벌과금 등이 기다렸다는 듯 날아왔다. 회사 같으면 부지런히 물건이라도 만들어 돈을 벌 텐데 학교재산이라곤 순진한 여대생들과 공원용지로 묶인 학교 부지뿐. 1906년 고종황제의 순헌황귀비가 여성교육을 위해 용동궁 부지에 설립한 숙대는 왕립학교이긴 하지만 왕정이 사라진 후엔 오히려 주인없는 학교로 붕 떠 있었다. 그리고 12년이 흘렀다. 이경숙 총장은 여전히 총장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학교는 엄청나게 변했다. 일단 캠퍼스 부지가 2배, 교사 연면적이 3배나 늘어났다. 재학생 수는 1995년 당시 7917명에서 1만2750명으로, 교원 수도 211명에서 523명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2006년 5월 현재 940억 원의 발전기금을 모금했다.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대학 총장들은 학교 발전기금 모금이 또 다른 역할이자 능력이다. 삼성 등 대기업에서 후원도 받고 동창들에게 읍소를 하기도 한다. 총장의 폭탄주 한잔이 몇억 원짜리란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술 한잔도 못 마시고 골프도 안 하는 이 총장이 맨 정신으로 끌어온 이 돈은 그래서 더욱 값지다. “만약 술 마시면서 모금했다면 액수가 좀더 늘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맑은 정신으로 꿈을 팔았어요. 달라질 숙명여대나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 비전을 이야기하고 보람을 느끼게 해드리면 다들 도와주시더군요. 사람들은 누구나 이기적인 본능만큼 공익에 대한 갈망이 있거든요. 경제적 여유가 있고 어딘가 누군가를 위해 뭔가 하고 싶은데 잘 모르는 이들에게 좋은 곳에 쓰시라고 알려드리면 기꺼이 동참하셨죠. 물론 폭탄주 한 번에 해결될 일을 저는 맨정신이니까 여러 번, 자주 만나야 했지만 그래서 더 확고한 정이 들고 믿음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꿈팔기’의 첫 시작은 취임 이듬해인 1995년 2월 22일. 그날을 제2 창학 선언일로 정해 목표시점인 2006년을 뜻하는 발기인 2006명으로 출범했다. 빚뿐인 학교에서 행사준비에만 3억 원이 들어간다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날 이 총장은 2500명의 참석자들로부터 62억 원의 기금 약정을 받았다. 행사장에서 그는 100주년을 맞는 2006년까지 1000억 원을 모금하겠다, 우선 동문들이 등록금(당시 150만 원)만 한 번씩 더 내주면 30억 원이 된다, 그걸 종잣돈으로 학교발전의 초석을 다지겠다고 했다. 그리고 국유지, 공원부지 등으로 묶여 7개 부처가 얽힌 학교 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백 명의 공무원을 만났고 해외출장 중에도 국제전화를 걸어 부탁해 캠퍼스 옆의 토지 1만2000평을 학교용지로 용도전환했다. 진심어린 그의 설명과 부탁에 다들 감동해 돈도 내고 문제도 해결해주었다. 한국인들에게만 꿈을 판 게 아니다. 숙명여대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루와 결연을 맺어 2006년부터 ‘르 코르동블루 호스피탈리티 MBA’란 전문 경영학 석사과정을 개설했다. “진실과 정직은 세계 모든 이들에게 통한답니다. 르 코르동블루에선 한국 진출을 추진하며 시장조사를 하고 있었고 숙대에 대해서도 철저히 분석을 했더군요. 몇 번 만나면서 앙리 3세가 만든 르 코르동블루나 조선왕조가 세운 숙대는 공통점이 많고 분위기도 비슷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우리도 최선을 다해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죠. 처음엔 우리에게 120만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었는데 250만 달러를 투자했어요. 민간단체가 아니라 학교를 선택한 그들에게도 공익마인드가 있는 거죠.” ‘준비된 총장’의 ‘숙대는 내 운명’ 꿈을 팔아 돈을 벌고 학교를 발전시키느라 정작 그는 과로로 쓰러져 두 번이나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940억 원을 끌어 모았지만 단 1원도 자신의 지갑에 넣지 못하고 캠퍼스를 2배 규모로 키웠지만 자기 명의로 된 땅이 아닌데 뭣 때문에 그토록 스스로를 혹사시켰을까. “어릴 때부터 맡은 일은 최선을 다 하고 책임을 다 해야 한다고 교육받아서 취임 당시의 약속을 지키려고 했고요. 또 숙명여대로부터 받은 게 너무 많아 보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죠.” 이경숙 총장은 경기여고 3학년 때 숙명여대 주최 학력경시대회에서 1등을 했다. 전액 장학금에다 유학도 보내준다는 조건, 또 당시 선생님이 ‘교수가 되려면 서울법대에 가는 것보다 숙대에서 빛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해 숙대를 선택했다. 입학과 졸업을 수석으로 한 그는 학창시절부터 ‘넌 총장감이다’란 말을 들으며 공부했고 유학도 떠났다. 1969년, 미국 캔사스 대학교로 유학을 떠날 때는 당시 총장까지 공항에 나와 전송을 해줄 정도였다. 그야말로 ‘숙대는 내 운명’이었다. 하지만 이 총장이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늘어난 학교 재산과 그에게 쏟아지는 찬사가 아니다. 학교에서 그를 믿고 따르는 교직원과 학생들이다. “각종 동아리들이 행사 때 와달라고 티켓을 갖고 와요. 자기들 곁에 당연히 총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나봐요. 또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교정을 걷다가 저를 보면 ‘총장님~’ 하고 불러요. 그래서 ‘왜?’라고 물으면 ‘그냥 불러보고 싶어서요’라면서 씨익 웃어요. 자기들딴에는 그저 반갑고 좋았나봐요. 그렇게 허물없이 불러주고 자기들이 먹던 과자를 서슴없이 총장인 제게 줄 수 있는 관계를 형성했다는 게 참 기쁘고 보람있어요. 언젠가 SBS에서 취재와서 ‘총장님은 어떤 분이냐’고 질문했더니 학생들이 ‘우리 식구 같고 언니 같은 분이에요’라고 해서 제 별명이 ‘총장 언니’가 되었죠. 그 어떤 찬사보다 고마웠어요.” 5분 간격으로 태어난 쌍둥이도 세대차이를 느낀다는 요즘, 환갑이 넘은 할머니 총장이 40년 연하의 여대생들과 어떻게 교감을 나눌까. 그는 의사소통의 핵심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경청’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상대가 말하는 그대로를 듣고 이해하는 것, 잘 들어주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데 남의 말을 자기식으로 해석하고 충고하려 하기 때문에 항상 의사소통이 되지 않고 갈등이 생기지요. 나와 의견이 다르면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이해하면서 합일점을 찾는 과정에서 또 다른 시너지 효과가 나오거든요. 눈높이를 맞추고, 있는 그대로의 말을 들어주는 것,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훈련을 하면 됩니다.” 그의 또 다른 별명인 ‘춤추는 총장’도 ‘소통’의 한 표현이다. 해마다 어버이날 무렵엔 숙대에 학생을 보내준 부모님들을 초대해 ‘청파은혜제’란 사은제를 열고 성년제까지 겸하는데 고마움과 축하의 마음에서 선보인 것이 최신 유행춤이었다. 뻘쭘하게 노래만 부르는 게 심심할 것 같아 체육과 학생을 초빙해서 교무위원회가 끝나면 50대 이상의 교수들이 마카레나춤부터 ‘싸이’의 챔피언에 이르기까지 한 달 정도를 열심히 연습했다. 아무리 성실히 연습하고 청바지에 선글라스까지 준비해도 막상 무대에 올라 음악만 나오면 리듬과 동작이 다 틀려 그게 더 재미있어 화제를 모았다. 스승의 날에도 학생들에게 돈을 줘서 케이크나 꽃을 갖고 모교 선생님들을 찾아가 감사의 마음을 전하게 하는 것도 이 총장의 아이디어다. 학교에서 영어 단어 몇 마디, 책 몇 페이지 더 익히는 것보다 인성을 키우고 섬길 줄 아는 마음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이 총장이 가장 열정에 차서 설명하는 것은 ‘리더십 교육’이다. 이 총장은 5년 전부터 교양과정부터 리더십 훈련을 시킨다. 말하고 듣고 쓰기 훈련과 더불어 ‘섬김의 리더십‘을 익혀 21세기의 리더를 키우겠다는 것이 교육의 주요 목표란다. “우리 숙대의 리더는 과거 서열 중심의 군림하고 지배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섬김의 리더십이에요. 스스로를 존중하면 자아존중감과 자신감이 생겨 남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지거든요. 따뜻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의 핵심이기도 하지요.” 일단 숙대에 들어오면 누구나 리더십 교육을 받는다. 자기가 리더라는 확신을 심게 하고 자기관리, 자기존중감을 키워주는 훈련을 받는다. 또 자기사명서를 쓰게 해서 내가 누구이며, 왜 사는가, 이 세상을 위해 내가 할 일은 뭔가 성찰하게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하지만 학생들의 사랑을 받는다 해도 학생들이 총장을 뽑지는 않는다. 교수 등 교직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이 총장은 섬김의 리더십과 더불어 투명성을 강조했다. 모든 학교 비용은 물론 회의 내용을 학교 인트라넷에 올려 공개했다. 감출수록 오해와 억측만 무성할 뿐이기에 정보를 공유한 것이다. 그래서 12년이나 총장을 한 그에게 정년도 2년밖에 안 남은 그에게 또 16대 총장을 맡겨 100주년 기념행사를 치르게 했다. 매일 아침, 학교 배지를 가슴에 달면서 숙명여대와 학생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을 재확인한다는 이경숙 총장이 도대체 숙대를 떠나서는 어떻게 살지 은근히 걱정됐다. 정년 후에 하고 싶은 일을 묻는 질문에도 그의 답은 한결같았다. “지금은 100주년 행사를 무사히 치러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근데 우리 숙대생들 참 착하고 예쁘죠? 인성교육을 잘 받아서인지 취업한 직장에서 그렇게 칭찬들을 하더군요….” 아무래도 이 총장 퇴직 후엔 숙명여대 안에 자그마한 집을 하나 마련해줘야 할 것 같다.
- 유인경이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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