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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열의 세계는 창업 중](17)스페인이 ‘스타트업 허브’로 뜬 비결은?(2022. 06. 10 14:05)
2022. 06. 10 14:05 국제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익스플로러(Startup Explore)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스페인은 스타트업 투자 규모에서 영국과 독일, 프랑스에 이어 유럽 4위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설립한 범유럽 스타트업 플랫폼 ‘스타트업 유럽 파트너십(SEP)’은 2019년 발간한 정기 연구 보고서에서 스페인이 스케일업(scale-up·고성장 벤처기업) 측면에서 유럽 5위에 속한다고 보고했다. ‘초기 단계의 장벽’을 허물고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할 후보자가 많다는 의미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의 모습 / Photo by Square Lab on Unsplash 스페인은 유럽연합의 다른 국가에 비해 물가가 저렴하다. 언어의 동질성이 높아 중남미 진출에 용이한 나라이기도 하다. 바르셀로나는 세계 2위의 스마트시티에 속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2020년 발간 자료에 따르면 바르셀로나는 창업하고 싶은 유럽 내 도시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스페인은 외국인 투자가 스타트업 투자의 절반을 차지한다. 열정의 나라 스페인은 경제 규모도 작지 않다. 유럽연합에서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4번째로 크다. 저렴한 물가와 중남미와의 연결성 스페인이 스타트업 허브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저렴한 물가다. 엑스패티스탄(Expatistan)이 발표하는 유럽 도시별 생계지수 순위를 보면 마드리드(55위)와 바르셀로나(53위)는 런던(4위)이나 베를린(32위) 등 유럽 주요 도시보다 생활비가 저렴하다. 대형 정보통신기술(IT) 이벤트도 강점이다. 세계 최대 모바일 콘퍼런스인 MWC(바르셀로나)를 비롯해 4YFN(바르셀로나)과 South Summit(마드리드) 등 스타트업 전문 대형 전시행사가 매년 열린다. 내국인(51.8%), 외국인(48.2%) 비율로 외국인 투자가 절반을 차지할 만큼 외국인 투자도 활발하다. 또한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도 용이하다. 스페인이 언어와 사회, 문화, 역사적인 부분에서 중남미와 유대관계가 깊어 중남미 시장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창업 클러스터로는 바르셀로나 테크시티가 있다. 바르셀로나를 국제적 기술 허브로 만들기 위해 설립한 민간협회로 700여개의 회원 및 협력기관이 있다. 국내외 기업과 투자가, 기관과의 네트워킹을 주선한다. 국내외 스타트업 행사를 열고, 코워킹(공유오피스) 사무공간도 제공한다. 또한 세계 7곳에 있는 구글캠퍼스 중 하나로, 런던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마드리드 구글캠퍼스는 일반인 대상 코워킹 사무공간, 창업 설명회 및 강연을 무료로 제공한다. 2017년에만 모두 317개의 스타트업이 구글캠퍼스를 통해 투자유치에 성공했고, 3000여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 효과를 거뒀다. 투자는 지난 4년간 급증했다. 스타트업 통계 사이트 ‘Observatorio de startups’에 따르면 초기 스타트업에 들어가는 투자금이 2018년 약 5억1000만유로에서 2021년 30억8400만유로(약 4조1630억원)로 급증했다. 스페인 정부 통계를 보면 보수적으로 잡아 2020년에 약 7150개의 스타트업이 활동했는데 불과 1년 만에 투자금이 거의 두 배로 불어났다. 투자가 성장을 가속화하는 형국이다. 두 허브 도시인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에만 국한되지 않고 발렌시아, 빌바오, 말라가와 같은 도시도 번성하고 있다. 가장 많은 스타트업 투자가 이뤄지는 산업은 모빌리티/물류, 건강 및 웰빙, 핀테크/보험, 생산성-비즈니스, 관광, 전자 상거래, 소프트웨어 및 사이버 보안 등이다.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곳으로 렛고(letgo), 공유자동차 서비스 케이비티(Cabity), 배달 서비스인 글로보(Glovo) 등 B2C(기업과 소비자 간의 거래를 중심으로 하는) 기업이 있다. 특히 중고 온라인 판매 플랫폼인 렛고는 2018년 최대 투자기업으로 4억3000만유로를 유치했다. 창업 진흥법 제정이 한몫 주요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가)로는 스페인 및 중남미 지역 최대 통신사인 텔레포니카 회사가 운영하는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웨이라(Wayra)가 있다. 스페인, 독일, 영국 등 10개 국가에서 운영 중이다. 성장 가능성이 큰 스타트업을 선정해 공유오피스, 멘토링, 금융조달 등을 지원한다. 사업성이 높은 업체를 선정해 외부 투자기관과의 투자매칭 프로그램도 지원한다. 마드리드 구글캠퍼스의 협력사인 시드로켓(SeedRocket)도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정부는 혁신 프로젝트에 1만유로의 자금 지원, 신생 스타트업에 투자한 엔젤 투자자에게 20% 세금 감면 혜택(단 5만유로 미만)을 지원한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창업문화 발전과 일자리 창출 등을 목적으로 2013년 이후 창업 진흥법을 시행하고 있다. 창업 후 최대 30개월간 사회보장세 면제, 기업 활동으로 부채 발생 시 개인 자산 보호, 기업 설립 절차 간소화, 만 18세 이상 외국인 대상 창업비자 발급 등을 내용으로 한다. 창업 진출 기업을 위해 스페인 투자진흥청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라이징 스타트업 스페인(Rising Startups Spain)도 있다. 스페인 설계·조달·시공(EPC)업체인 엔사(ENSA)는 40세 미만의 창업자가 설립한 지 2년 미만인 초기단계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융자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요 스타트업 콘퍼런스로는 매년 바르셀로나의 MWC 행사 기간 중 열리는 스타트업 육성 이벤트 ‘4YFN’을 들 수 있다. 지난 2월 8회째를 맞았다. 투자를 받으려는 스타트업들의 피칭(투자유치) 세션이 풍부해 새로운 시장 흐름을 파악하기 용이하다. 대표적인 유니콘으로 배달서비스 업체 글로보(Glovo), 테슬라를 퇴사한 엔지니어가 창업한 전기차 및 주택용 충전기 개발업체 윌박스(Wallbox)가 있다. 유학 시절 은행을 통한 송금의 불편함을 해결하고자 결제 핀테크 기업 플라이와이어(Flywire)를 만들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시킨 뒤 엑시트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온라인 패션 아웃렛 매장인 프리발리아(Privalia)도 유명하다. 온라인 패션 매장의 이용 빈도가 늘어나면서 창업 이후 7차례에 걸쳐 2억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패션 아웃렛 시장 업계 1위로 약 3000만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유명 패션 브랜드 상품을 파격적인 세일가로 판매한다. 스페인 최초의 온라인 여행사인 이드림스(eDreams)도 있다. 44개국 1600만명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온라인 유통시장에서 비행기 티켓, 호텔 예약 등 여행상품 매출의 비중이 높다.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전규열의 세계는 창업 중
[톡톡TV] 막내를 향한 배려
[톡톡TV] 막내를 향한 배려(2019. 03. 25 15:28)
2019. 03. 25 15:28 문화/과학
귀가 따갑도록 “아따, 행님요”를 외치던 배정남의 눈이 슬며시 풀리기 시작했다. 그런 배정남을 바라보는 차승원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분이 오셨네, 오셨어.” 유해진은 “체력을 한 번에 확 쓰지 말고 나눠 써라”고 조언하면서도 눈가에 안쓰러운 감정이 한가득이다. 결국 배정남에게 휴식을 권하는 형님들, 그리고 형님들의 권유를 마다않고 넙죽 받는 배정남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이 훈훈해졌다. tvN 제공 나영석 PD의 신작 tvN <스페인 하숙>은 새로움보다 익숙함이 앞선 프로그램이다. 차승원, 유해진의 조합은 <삼시세끼>를 떠올리게 하고 낯선 곳을 찾는 이들에게 밥을 먹인다는 콘셉트는 <윤식당>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심지어 스페인은 <윤식당>의 두 번째 시즌을 촬영한 곳이다. 나영석 PD 자신도 “‘삼시세끼’+‘윤식당’이라는 댓글을 읽었는데 아주 다르다고 말하기 힘들다”고 고백했다. 나 PD의 말마따나 차승원, 유해진을 우주정거장에 데리고 간다고 해도 그들이 쉽게 변할 캐릭터도 아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구성에 제작진이 회심의 카드로 투입한 배정남은 예상대로 ‘예능 만렙’의 재기를 보였다.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행님요”를 속사포처럼 쏟아내지만 탄탄한 근육질 몸매와 달리 ‘연비’가 좋지 않은 것은 의외의 반전이다. 마늘 몇 개를 빻은 뒤 ‘당 떨어진’ 표정으로 눈이 풀려버리고 아침식사를 치우며 힘들다고 한숨을 내쉰다. 멘붕 속에서도 길을 찾고 할배들의 수발을 들던 <꽃보다 할배>의 이서진이나 누나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갖은 구박을 받았던 <꽃보다 누나>의 이승기, 시키는 건 꾸역꾸역 다했던 <삼시세끼>의 옥택연, 손호준, 윤균상과는 확연히 차별화됐다. 영화 <극한직업> 속 인기 대사를 표절하자면 지금까지 이런 막내는 없었다. <스페인 하숙>의 묘미는 단순히 배정남의 반전매력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를 배려하는 형님들의 모습에서 이제까지 우리 사회가 갓 입사한 막내에게 행했던 무언의 압력이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읽힌다. 막내는 회식 자리에서 선배들 컵의 물을 따르고 부지런히 수저를 챙기며 삼겹살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는 게 일종의 의무였다. 업무를 마쳐도 상사가 퇴근하지 않으면 눈치를 봐야 했고 집에 가고 싶어도 원치 않는 술자리에 끌려가곤 했다. 어쩌다 피곤에 절어 책상 앞에서 졸기라도 하면 “빠져가지고…”라는 힐난을 듣기 일쑤였다. <스페인 하숙>의 선배 차승원과 유해진은 촌스러운 구습에서 벗어나 막내를 하나의 성숙한 인격체로 대한다. 충분한 휴식시간을 보장하면 집중력 있게 자신의 일을 해내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아늑한 잠자리, 맛깔난 밥 한 끼만큼 따뜻한 선배들의 배려이자 자세다. 어디를 가나 세대 간 갈등이 첨예한 시기다. 직장마다 ‘요즘 애들’이라 불리는 90년대생들이 속속 입사하는 지금, 막내를 향한 차승원과 유해진의 배려를 선배들이 먼저 익힐 것을 권한다. 군기 잡기보다 후배들을 보듬는 선배가 훨씬 멋있어 보이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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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가르시아 로르카의 -쓸쓸하고 매혹적인 스페인 순례 가이드북(2018. 01. 08 17:09)
2018. 01. 08 17:09 문화/과학
만약 지금 순례하는 마음으로 스페인 어딘가로 떠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비록 1918년, 정확히 100년 전에 출간된 책이긴 해도, 당장 로르카의 여행 산문집 <인상과 풍경>을 읽기 바란다. “독자들이여, 볼품없는 이 책이 지금 그대들의 손에 놓여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 서문까지만 읽기를!” 야심만만하다. 이렇게 단호하게 쓰는 서문도 달리 찾기 어렵다. 어디 한 번 보자, 하는 결연함마저 느껴진다. 과연 이 책을 덮고 말 것인가, 정녕?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단호한 서문을 쓴 자, 그가 겨우 스무 살 청년이라는 점이다. 스페인 남부, 푸엔테 바케로스에서 1898년에 태어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그가 1918년에 쓴 여행 산문집 <인상과 풍경>의 서문이다. 스무 살 청년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문까지만’ 읽으라고 했지만,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빛나는 감성으로 채워진 서문 그 자체도 매혹적이지만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는 첫머리 ‘명상’의 첫 구절을 읽는 순간, 아 이 책은 결국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읽어 보자. 스무살 청년 시인이 쓴 여행 산문집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힌 도시에 불안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어디에선가 아련하게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에는 짙은 우수가 배어나고, 이제 도시가 바로 눈앞에 있건만 가슴속으로 피로가 몰려든다. 아빌라, 사모라, 그리고 팔렌시아…. 이곳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지상의 신비로운 빛과 그림자의 향연을 펼치는 햇빛에서조차 끝없는 쓸쓸함이 느껴진다.” 여행에도 역사가 있다. 여행지는 늘 새롭게 발견된다. 유럽에 한하여 보건대, 지중해가 오랫동안 그들의 여행지였다. 온화한 기후, 시원한 바람, 강렬한 햇빛. 그러나 19세기 초, 그들은 북구로 떠돌아 다녔고, 19세기 중엽에는 알프스를 오르기 시작했다. 근대적 시민의 문화적 감수성이 차디찬 바다와 험준한 산악을 동경했던 것이다. 근래 우리의 여행 풍속 역시 사회·문화적 이유가 안개처럼 깔려 있다. 80년대 후반, 여행 자유화 이후 동남아로, 유럽으로, 미주로 여행을 떠났다. 동남아의 풍물시장을 떠돌아 다녔고, 유럽의 여러 나라를 며칠 동안 가로질렀으며,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러 다녔다. 그랬는데 이즈막에는 페루에 가고 히말라야에 가고 산티아고에 간다. 거기까지 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고, 그곳에 가서도 안락하고 편안한 여행보다는 스스로의 몸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걷는다. 여행이라기보다는 순례에 가깝다. 떠들썩한 골프여행이며 맛기행도 재미있지만 이렇게 남미의 산정이나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걷는 것은 여행이라기보다는 순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행산문집 만약 지금 그런 마음으로 스페인 어딘가로 떠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비록 1918년, 정확히 100년 전에 출간된 책이긴 해도, 당장 로르카의 여행 산문집 <인상과 풍경>을 읽기 바란다. 아무 데나 펼쳐도 곧바로 밑줄을 긋게 되는, 깊은 한숨이 문장 사이사이로 배어나오는 글이다. 로르카는 ‘카스티야의 황혼’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미 밤이 왔는데도 안개는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자리를 뜨지 못하고 대지 위를 배회한다. 지평선 위로 한 줄기 하얀빛이 일자 어둠이 내려앉은 세상이 순간 희미하게 드러난다. 홀로 추위에 떨던 백양나무는 연초록빛 거울 같은 도랑물 위에 떠오른 자신의 그림자를 처량하게 바라보고 있다.” 어떤가. 눈앞에 카스티야의 늑대와 개의 시간이 어렴풋하게 보이지 않는가. 어차피 스페인 여행에 대한 실용적인 정보는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교통, 숙박, 맛집 정보들. 그런데 스페인의 역사와 스페인의 문화. 아니 더 정확히 말하여 스페인 남부지방, 즉 카스티야의 눈물과 안달루시아의 한숨은 무엇으로 헤아려 볼 것인가. <인상과 풍경>이 참으로 쓸쓸하고도 매혹적인 순례의 가이드북이 된다. 로르카는 고향 인근의 그라나다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엄격한 단어로 구성된 법률의 세계를 그는 오래 견디지 못했다. 그는 엄정한 언어보다는 자유로운 언어를 추구하였다. 곧 시와 예술이 그의 십자가가 되었다. 이 무렵, 그는 스승인 마르틴 베루에타 교수와 함께 카스티야, 안달루시아, 갈리시아 일대를 여행하면서 이 산문집을 발표하게 된다. 발표 직후 로르카는 스페인 예술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빛나는 감성, 매혹적인 문장, 깊고 깊은 쓸쓸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산문집은 20세기 초엽 스페인의 불안한 정서를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후 시를 발표하면서 마드리드로 진출한 젊은 시인 로르카는 산문시의 대가 라몬 히메네스, 화가 살바도르 달리, 초현주의 영화 감독 루이스 부뉴엘과 친구가 되었다. 로르카는 <칸테 혼도의 시>, <노래들>, <뉴욕에 있는 시인> 등의 시집과 <대중> <피의 결혼식> 등의 희곡으로 금세 마드리드와 파리와 뉴욕의 스타가 되었다. 그는 현대도시를 사랑하였고 현대도시의 비루한 눈물과 속절없는 풍경을 사랑하였다. 스페인 내전 때 체포돼 38살에 요절 그러는 중에 스페인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 발생했다. 1936년 2월 19일에 터진 스페인 내전이다. 이 내전에 구미의 여러 나라 지식인들, 어니스트 헤밍웨이, 앙드레 말로, 시몬 베이유, 조지 오웰 같은 작가들이 인민전선을 지지하며 참여하였고 그 예술적 결실로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등이 만들어졌다. 프랑코 파시즘이 이끄는 군홧발에 의해 5만여명이 법적 절차가 생략된 채 처형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상황에서 달리·피카소·카잘스·부뉴엘 같은 예술가들은 그들만의 방식대로 저항하였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프랑코 치하에서는 물론 이 정권을 지지하는 나라에서는 절대 공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와중에 로르카는 1936년 7월에 마드리드를 떠나 고향 그라나다로 피신하였다가 한 달쯤 지난 후에 체포되었다. 8월 19일 새벽 4시 스페인 그라나다 비스나르 언덕. 사흘 전 정부군에 체포된 38살의 시인은 올리브 나무 밑에 세워졌다. 정부군 장교가 신속하게 싸늘한 명령을 내린다. 거총한 병사들, 장전 후, 방아쇠를 당긴다. 스무 살 청년은 자신의 짧은 생애를 예감이라도 했던 것일까. <인상과 풍경>은 슬픈 인상, 애틋한 풍경의 연속이다. ‘이 책은 안달루시아 문학의 쓸쓸한 정원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이라고 로르카는 서문에서 썼다. 그러나 애틋함 사이로 반짝거리는 눈물의 통찰이 있다. 번역자의 해설도 충실하고 스페인의 지명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주석도 꼼꼼하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서문! 로르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 서문까지만’ 읽으라고 했지만, 누구도 다음과 같은 서문을 읽고 책을 덮지는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을 보고, 또 모든 것을 느껴야 한다. 영원한 세계에 이르면 우리는 끝없는 축복을 얻게 된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존중한다면 우리 모두는 꿈에 그리던 세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 꿈꾸어야 한다. 끔꾸지 못하는 자여! 가엾은 자여, 그대는 결코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
[터치스크린]스페인판
[터치스크린]스페인(2016. 02. 15 17:23)
2016. 02. 15 17:23 문화/과학
제목 살인의 늪 (La isla minima) 제작연도 2014년 제작국 스페인 러닝타임 105분 장르 범죄, 미스터리 감독 알베르토 로드리게즈 출연 라울 아레발로, 하비에르 구티에레즈, 네레아 바로스 개봉 2016년 2월 11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1980년 스페인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매인 10대 소녀 두 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형사 ‘페트로(라울 아레발로 분)’와 ‘후안(하비에르 구티에레즈 분)’이 파견돼 온다. 말이 파견이지 각자 연루된 사건으로 좌천되다시피 떠밀려와 팀을 이룬 두 사람은 어서 사건을 마무리하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마을 전체를 둘러싼 냉랭한 기운과 실종자의 부모조차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한 미심쩍은 모습은 두 남자의 잠자고 있던 수사본능을 자극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잔인하게 훼손된 두 소녀의 시신이 발견되고 두 사람은 이전과 다른 사명감으로 사건에 적극적으로 다가서지만 이내 또 다른 희생자들의 흔적이 드러난다. 설상가상으로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두 사람의 골은 점점 깊어만 간다. 한국과 닮은 국가를 꼽을 때 자주 언급되는 나라 중 하나가 스페인이다. 외형적으로는 둘 다 반도 상에 위치해 있고, 국토의 넓이, 경제규모도 비슷하다. 또 오랜 군부독재를 겪은 뒤 힘겹게 민주화를 이룬 모양새나 난국적 경제위기를 겪어낸 역사도 유사하다. 그래서 꽤나 잔잔하고 섬세하게 전개되는 이 작품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이국적 풍경이나 인물들의 낯선 갈등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으로 적잖은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입사는 ‘스페인판 ’이란 문구를 메인카피로 내세웠다. 상이한 성격의 형사 두 명이 합심해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엽기적 살인사건을 뒤쫓는 형태도 그렇지만 작품 전반에 흐르는 축축하고 나른한 기운에도 불구하고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탄탄한 전개가 닮아 있다. 영화는 범죄 스릴러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작품을 지탱하는 갈등은 단순히 연쇄살인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소극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는 1980년대 스페인의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에서 파생된 사회적 분위기는 자못 심란하고, 어두운 과거사를 지닌 채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두 형사의 인간적 고뇌도 가볍지만은 않다. 이 모든 요소들은 어느 것 하나 이질적으로 도드라지지 않으면서도 극 전체에 균등하게 용해되어 이전의 형태와는 다른 새롭고 독특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이런 작지만 끊임없는 공명은 결말 부분에 난데없이 등장하는 가벼운 반전의 여운을 증폭시켜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국내에는 낯선 두 배우 라울 아레발로와 하비에르 구티에레즈의 깊이 있고 절제된 연기가 큰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부감으로 촬영되어 영화의 오프닝과 사이사이 인서트로 사용된 장면들은 꽤나 인상적이다. 마치 전지전능한 절대자의 시선을 대변하듯 까마득한 허공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지상의 풍경 자체는 평온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땅 위에서 펼쳐지는 습하고 답답한 사건과 대비를 이루어 몽환적이고 서늘한 기운을 극대화한다. 연출을 맡은 알베르토 로드리게즈 감독은 2000년 란 작품으로 데뷔한 이후 범작 이상의 평가를 받는 작품들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이나 와 국내에도 개봉했던 등 대부분의 작품들이 범죄 스릴러 경향을 띠고 있다는 특색도 흥미롭다. 은 스페인의 아카데미 상이라 불리는 고야 영화제에서 작품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을 비롯해 10개 부문을 수상하고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는 이슈를 낳으며 세계 관객들의 꾸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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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아틀레티코 ‘스페인 신계’를 넘어서다(2014. 05. 26 17:54)
2014. 05. 26 17:54 스포츠
아틀레티코의 2013~2014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신계로 불리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양강 구도를 깼기 때문이다. 스페인 프로축구에서 ‘신계’가 무너졌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5월 1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캄프 누에서 열린 2013~2014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38라운드에서 바르셀로나와 1-1로 비겨 이번 시즌 우승을 확정지었다. 적지에서 0-1로 뒤진 후반 4분 중앙수비수 디에구 고딘(28)이 짜릿한 동점골을 터뜨려 승점 1점을 더한 아틀레티코는 승점 90점을 기록해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이상 승점 87)를 따돌리고 통산 10번째 프리메라리가 정상에 올랐다. 18년 만의 짜릿한 우승이었다. 아틀레티코의 이번 우승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스페인에서 신계로 불리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양강 구도를 깼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0년을 돌아봤을 때 프리메라리가 우승은 레알 마드리드(3회)와 바르셀로나(6회)의 차지였다. 다른 팀이 우승을 차지한 것은 2003~2004시즌 발렌시아의 깜짝 우승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여름 이적시장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투자규모를 살펴보면 두 팀의 양강구도는 당연한 얘기다. 스페인 방송국 ‘프라임 타임 스포츠’의 발표에 따르면 2013~2014시즌을 앞두고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각각 1억8300만 유로(약 2631억원)와 5700만 유로(약 820억원)를 썼다. 프리메라리가 20개 팀의 전체 이적료 지출액 3억8800만 유로(약 5820억원)에서 두 팀이 차지하는 비율이 62%에 달한다. 다른 팀들이 덤빌래야 덤빌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아틀레티코의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이 우승컵을 들어올린 뒤 “오늘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고 자화자찬한 게 어쩌면 당연할 지경이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5월 18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시즌 우승을 확정지은 뒤 선수단이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을 헹가래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시메오네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12년만 해도 이런 결과를 예상한 이는 드물었다. 한때 강등 후보로까지 손꼽혔던 터. 그는 선수단에 우승을 향한 DNA를 심었다. 현역 시절 데이비드 베컴을 막기 위해 침을 뱉은 일화로 유명한 그는 아틀레티코 선수 11명을 자신의 분신으로 만들었다. 거칠기 짝이 없는 시메오네 축구의 지향점은 전원 수비. 흔히 골잡이도 수비에 가담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상 그러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아틀레티코가 자랑하는 골잡이 디에구 코스타는 경기당 파울 1.8개를 기록해 팀내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철저히 수비에 가담했다. 최전방부터 적극적인 몸싸움과 태클로 상대를 괴롭히니 수비는 절로 탄탄해졌다. 시메오네가 부임하기 전 17경기에서 27골을 내줬던 아틀레티코 수비는 이후 9경기에서는 단 2골만을 내주는 통곡의 벽이 됐다. 이번 시즌에는 리그 최저 실점인 38경기에서 26실점으로 경기당 1골도 내주지 않았다. 우승 비결은 짠물 축구 흔히 화려한 축구는 구름 관중을 모으고 탄탄한 수비는 우승컵을 가져온다고 한다. 아틀레티코가 딱 그랬다. 시메오네 감독이 부임한 첫해 유로파리그에서 12연승을 달린 끝에 우승컵을 들어올리더니 다음 시즌에는 17년 만에 코파델레이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시즌 마지막 고비인 신계를 넘은 비결도 짠물 수비에 있었다. 화려한 개인기를 가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와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철저히 봉쇄하는 것은 기본, 아예 하프라인을 넘으면 거칠게 압박하면서 괴롭혔다. 송종국 MBC 해설위원은 “아틀레티코는 호날두와 메시 등 세계 최정상급 골잡이를 막아내는 교과서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긴다. 수비만 잘해선 이길 수 없다. 아틀레티코도 신계에 속한 두 팀과 비견할 수는 없지만 많은 골을 넣었다. 단, 골을 넣는 방식이 달랐다. 시메오네는 선수들이 골을 넣을 때도 실리를 찾았다. 축구통계전문 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에 따르면 아틀레티코의 시즌 볼 점유율은 47%에 불과했다. 점유율 축구의 상징인 바르셀로나(67.7%)나 레알 마드리드(58.8%)와 비교하면 공을 잡는 시간이 짧았다는 얘기다. 대신 확률이 높은 공격으로 승전가를 불렀다. 속공의 힘이다. 아틀레티코는 빠른 공수 전환으로 상대 수비가 자리를 잡기 전에 골문을 공략했다. 때로는 측면 수비까지 과감하게 공격에 가담해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슈팅 기회를 만든다. 속공으로 얻어낸 골이 이번 시즌에만 8골. 페널티킥 득점(6골)도 대부분이 속공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아틀레티코의 또 다른 무기는 선수들의 약속된 움직임에서 나오는 프리킥과 코너킥 등의 세트피스 플레이다. 아틀레티코는 이번 시즌 세트피스로만 18골을 터뜨렸다. 팀 전체 득점인 77골에서 23%가 세트피스로 나왔다. 우승이 걸렸던 18일 바르셀로나전 득점도 세트피스 상황이었다. 0-1로 뒤진 후반 4분 중앙수비수 고딘이 가비가 올린 코너킥을 헤딩골로 만들었다. 여기에 이번 시즌 제2의 드로그바로 각광받은 코스타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이번 시즌 슈팅(평균 3.1개)을 아꼈지만 27골을 넣었다. 만약 후반기 부상으로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호날두(31골)에게 넘긴 득점왕도 그의 몫이 될 수 있었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과 스페인이 코스타 차출을 놓고 다툰 배경이기도 하다. 성공의 그림자 성공에는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아틀레티코도 그렇다. 현지 언론은 아틀레티코의 성공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그 속살을 살펴보면 상처투성이라고 말한다. 우승을 노리는 과정에서 재정에 큰 손실을 입은 탓이다. 지난 1월 바르셀로나대학 조세 마리아 게이 교수는 아틀레티코의 총부채가 5억 유로(약 6991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단순히 부채가 많으면 차근차근 갚아나가겠지만, 수입의 90%가 인건비로 나가는 게 문제다. 스페인 정부가 세금 1억 유로(약 1398억원)를 유예해주지 않았다면 당장 파산했을 것이라는 게 게이 교수의 견해다. 전례도 있다. 꼭 10년 전인 2003~2004시즌 신계를 무너뜨렸던 또 다른 우승팀 발렌시아가 이후 재정 파탄을 견디지 못한 끝에 싱가포르 출신의 갑부 피터 림의 손에 넘어갔다. 아틀레티코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올 여름 초일류로 거듭난 선수들을 내보내는 수밖에 없다. 아틀레티코 선수 7명이 프리메라리가 사무국이 선정한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렸기에 이적료 수입을 올릴 적기이기도 하다. 특히 코스타는 이미 첼시와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결국 올 여름에 스페인 축구의 향방이 걸린 셈이다. 스페인 팬들은 과거 페르난도 토레스(첼시)·세르히오 아구에로(맨체스터 시티)·라다멜 팔카오(AS모나코) 등의 특급 골잡이들을 매시즌 팔았지만 그 공백을 훌륭히 메웠던 아틀레티코의 마법이 재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신간]스페인은 건축이다 外
[신간]스페인은 건축이다 外(2014. 03. 31 17:10)
2014. 03. 31 17:10 문화/과학
스페인은 건축이다 김희곤 지음·오브제·1만6000원 스페인 각 지역의 건축물을 건축 전문가인 지은이가 설명한 책이다. 마드리드의 스페인 광장, 마요르 광장, 부엔 레티로 공원, 카스티야라만차 지역의 톨레도 대성당, 알카사르, 아라훼스, 안달라루시아의 알람브라 궁전 등 스페인의 유명한 건축물들이 사진과 함께 소개된다. 죽음을 넘어서 정병설 지음·민음사·1만5000원 조선의 천주교 수용과정은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현상을 보였다. 독학을 통한 신앙 학습과 대규모의 장기적 박해와 순교, 이후의 폭발적인 성장과정을 신유박해 때 죽은 순교자 이순이를 통해서 분석하고 있다.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이명원 지음·새움·1만3000원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이명원이 노무현 정부 때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벌어졌던 사건과 사고를 다룬 글들을 모은 책이다.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사태, 가족 동반자살, 청년실업, 노인 문제 등의 사회적 이슈를 다뤘다. 유학원이 알려주지 않는 진실 강태호 지음·고려원북스·1만5000원 지은이는 유학업계가 도떼기시장이 되어버렸다고 비판한다. 박리다매식 유학시장의 관행이 깊어져 과거처럼 교육적인 마인드를 가진 ‘유학 장인’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유학임에도 학생과 학부모들이 일부 ‘나쁜 유학원’의 물질적·정신적 희생양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신간
[스포츠]브라질 골목축구 소년 스페인 대표에 뽑힐까(2013. 10. 22 15:04)
2013. 10. 22 15:04 스포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골잡이인 코스타가 세계 축구계의 샛별로 떠오르고 있다. 브라질에는 ‘골목에서 축구공을 갖고 노는 아이들이 웬만한 나라의 국가대표보다 잘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자국 산업이 붕괴돼 축구가 유일한 성공의 길이 됐다는 자조적인 표현이지만, 때로는 이게 진실인 경우도 있다. 16살까지 골목에서 공을 차던 소년이었던 디에고 코스타(25·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그 주인공이다. 9월 24일 디에고 코스타가 스페인 라리가 오사수나 전에서 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골잡이 가뭄 스페인 대표팀도 주목 코스타는 올해 스페인에서 가장 주목받는 축구선수다. 화끈한 득점 행진이 그 배경이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자랑하는 골잡이인 코스타는 지난 10월 6일 2013~2014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셀타 비고와의 홈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프리메라리가에서만 어느새 10골(8경기·10월 18일 현재)을 넣으며 당당히 득점 선두다. 코스타의 활약에 힘입어 개막 8연승을 달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에 골득실에 뒤진 2위를 달리고 있다. 세계 축구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코스타가 주목받는 것은 독특한 이력도 한몫을 한다. 브라질 라가르토 출생인 코스타는 16살 때까지 정식으로 축구를 배운 적이 없다. 동네에서 공을 차며 놀다 상파울루에 있는 바르셀로나 EP에서 축구의 기본부터 다시 배운 게 축구선수로의 첫 시작이다. 코스타는 “나는 축구를 거리에서만 했다. 상파울루에 가기 전까지 프로의 세계를 몰랐다”며 “축구에서 기초가 중요한 것을 그때야 알게 됐다”고 떠올렸다. 골목에서 보낸 시간이 허송세월은 아니었다. 다른 선수가 예측할 수 없는 유려한 발재간과 창의적인 드리블로 코스타를 단순히 골만 넣는 선수가 아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독특함이 비센테 델 보스케 스페인 감독의 눈길을 끌었고, 스페인 대표팀 발탁까지 추진하게 만들었다. 델 보스케 감독은 “코스타가 스페인에서 뛸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스페인이 브라질 골목에서 공을 차던 소년이 기존 국가대표 선수들보다 낫다고 판단한 셈이다. 델 보스케 감독이 코스타의 발탁을 추진한 것은 자국 골잡이들의 부상과 부진이 원인이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안긴 페르난도 토레스(첼시)는 전성기의 기량을 잃었고, 다비드 비야(아틀레티코 마드리드)도 한 차례 부상을 겪은 뒤 내리막을 걷고 있다. 페르난도 요렌테(유벤투스)와 로베르토 솔다도(토트넘)는 델 보스케 감독이 바라는 수준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스페인은 유로 2012 정상에 오르긴 했지만 골잡이가 아닌 미드필더 세스크 파브레가스(바르셀로나)를 최전방에 배치하는 제로톱, 또는 폴스나인(가짜 9번) 전술을 써야 했을 만큼 골잡이에 대한 갈증이 심한 상태다. 세계로 퍼져나가는 브라질의 힘 마침 FIFA도 ‘이중국적 선수의 국가대표 이동’ 요건을 완화했다. 종전에는 A매치에서 뛴 선수는 이중국적을 얻더라도 국가대표로 뛸 수 없었지만, 국제 공식경기에 소집되거나 출전하지 않았다면 이동이 가능하도록 개정했다. 코스타는 3월 브라질 국가대표로 발탁돼 이탈리아와 러시아를 상대로 평가전 2경기에 교체출전했지만 국제대회가 아니어서 스페인 대표로 뛰는 게 가능하다. 10월 6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홈구장에서 열린 셀타 비고 전에서 디에고 코스타(왼쪽)가 드리블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7월 코스타가 스페인 이중국적을 취득한 사실을 확인한 델 보스케 감독은 9월 FIFA에 코스타가 스페인 소속으로 뛸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코스타 역시 10월 7일 스페인 일간지 ‘마르카’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나는 브라질에서 태어났지만 스페인에서 모든 것을 주고받았다. 이미 결단을 내렸고 절차만 남았을 뿐”이라고 말해 스페인으로 기우는 듯한 의중을 내비쳤다. 그러나 코스타가 스페인 유니폼을 입을 수 있을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최근 루이스 스콜라리 브라질 감독이 “11월 A매치에서는 코스타를 발탁할 계획이 있다”며 코스타의 스페인 대표팀 행에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브라질 현지에서도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앞두고 우승의 최대 라이벌인 스페인에 선수를 빼앗길 수는 없다며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와 관련해 FIFA는 11월 코스타의 소속을 놓고 공식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코스타의 운명도 여기서 결정된다. 한국에서도 귀화 선수가 나올까? 코스타는 혈통이 아닌 축구실력으로 스페인의 귀화 요청을 받았다. 비슷한 사례는 많다. 매년 브라질에서 배출되는 선수들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 다양한 유니폼을 입고 국가대항전에 나선다. 2008년 스페인에 유럽축구선수권 우승컵을 안긴 마르코스 세냐도 브라질 출신이다. 2006년 스페인에 귀화한 그는 놀라운 활동량과 수비력으로 스페인의 공격축구를 뒷받침했다. 포르투갈에 유로 2004 준우승, 2006 독일 월드컵 4강을 안긴 데쿠도 빼놓을 수 없다. 포르투갈 유니폼을 입은 데쿠는 조국 브라질과 가진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터뜨리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지난 9월 한국을 찾았던 크로아티아 대표팀에도 브라질 출신 선수가 있었다. 공격수 에두아르두 다 실바다. 압도적 기량으로 크로아티아 축구계의 귀화 요청을 받은 에두아르두는 2004년부터 대표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메멧 아우렐리우(터키), 아마우리(이탈리아)도 브라질에서 이루지 못한 국가대표의 꿈을 유럽에서 이뤘다. 한국에서도 브라질 선수 귀화를 추진한 적이 있다. 지난해 초 최강희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K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에닝요의 특별 귀화를 추진했으나 대한체육회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 전에도 모따 등 브라질 출신 K리그 정상급 골잡이들의 귀화가 거론됐지만 반대 여론을 넘지 못했다. 일본이 1989년 루이 라모스를 귀화시킨 것을 시작으로 브라질 출신만 4명을 받아들인 것과 비교된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유럽은 순수 혈통에 대한 개념이 희박해 단일민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드물다. 귀화 선수를 대표팀에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이유”라며 “한국은 아직 국가대표가 나라를 대표한다는 인식이 강해 당분간 귀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와인기행]스페인의 새 별 ‘리베라 델 두에로’(2013. 10. 08 16:17)
2013. 10. 08 16:17 문화/과학
이곳의 와인 역사는 수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부터였다. 리오하가 전통과 오랜 역사를 가진 스페인의 대표 와인 생산지라면,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는 최근에 새롭게 떠오르는 별과 같은 곳이다. 리베라 델 두에로를 세계의 와인 애호가들에게 각인시킨 것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베가 시실리아(Vega Sicilia), 핑구스(Pingus)와 같은 전설적인 와인들이었다. 마드리드에서 서쪽으로 140㎞ 내륙의 두에로 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완전한 대륙성 기후대다. 두에로 강은 포르투갈의 유명한 포트와인 산지인 오포르토항을 통해 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간다. 여름철 한낮 기온이 35도 이상까지 올라가지만 밤에는 12도까지 떨어진다.  높은 일교차 때문에 포도 완숙이 천천히 진행되어 당도가 높으면서도 풍부한 산도와 강건한 타닌을 함유하고 있는 포도를 생산할 수 있다. 또 해발 800m 이상의 고원지대로 여름에 강우량이 적고, 석회암·모래·점토·백악질 등 토양이 다양한 것도 리베라 델 두에로 특유의 강건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요인들이다. 아로칼 와이너리의 포도원 풍경. 이곳에서 수확한 틴토 피노 토착 품종으로 명품 와인 막시모를 생산한다. 이곳의 와인 역사는 수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였다. 원래 이곳은 대부분 사탕무와 일반 농작물을 재배한 평범한 농촌이었다. 그러나 이곳 토양이 와인에 이상적인 테루아임을 뒤늦게 깨닫게 된 토착 농민과 투자자들이 프랑스의 양조기술과 품종을 도입하고 새롭게 포도원을 조성하여 이곳 와인을 세계적인 명품 와인으로 탈바꿈시키는 기적을 일구어냈다.  이 기적의 중심에는 프랑스 품종에 눌려 거의 멸종위기까지 갔던 이 지역의 토착 품종인 틴토 피노(Tinto Fino·스페인의 대표 포도 품종 템프라니요의 변종)의 재발견이 있다. 독특한 이곳 테루아의 영향으로 지나치게 야성적인 포도 향을 가진 이 품종은 한때 싸구려 와인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새로운 재배법과 장기 숙성기술을 통해 명품 와인을 만드는 품종으로 다시 태어났다. 토착 품종 ‘틴토 피노’의 재발견 틴토 피노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는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베가 시실리아 와인이다. 스페인의 전설적인 와이너리가 된 베가 시실리아는 1864년 돈 엘로이 레칸다가 보르도에서 카베르네 소비뇽, 멜롯, 말백을 가져오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이 품종들을 틴토 피노와 함께 심어 최상의 품질의 와인을 만들었다. 그 후 와이너리를 인수한 루이 헤레로가 1915년 틴토 피노를 주품종으로 일부 프랑스 품종을 배합하고, 10년 이상 장기 숙성하여 지금의 전설적인 우니코(Unico) 와인을 만들었다. 아로칼 와이너리에서 시음한 와인들. 맨 오른쪽이 수령 70년 이상된 틴토 피노 품종으로 만든 톱브랜드 막시모다. 이 와인은 상업성을 배제한 장인정신이 만들어낸 하나의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 판매하지 않고 유럽의 상류층이나 친지들에게 우정의 선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 와인은 1929년 바르셀로나 와인전시회에서 1917, 1918년 빈티지가 최고상을 수상했다. 1981년엔 영국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결혼식 때 만찬주로 사용되면서 최고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얼마 전 필자는 우니코 1973, 1986, 2002년산과 빈티지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리제르바 에스페샬(최고 빈티지 3~4개를 배합하여 만든 와인)을 시음했다. 진한 벽돌색의 체리 빛과 헤이즐넛, 초콜릿, 바닐라 향에 균형 잡힌 적정한 산도와 알코올의 풍미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비단결 같은 타닌의 우아함과 지속성에 감탄했다. 필자는 리베로 델 두에로에 기적을 가져온 다양한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그 중 하나가 1996년 스위스의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설립한 아바디아 레투에르타(Abadia Retuerta) 와이너리다.  12세기에 건설된 수도원과 함께 700ha에 달하는 광활한 포도원을 매입하여 유럽에서 가장 현대적인 와이너리로 재건하였다. 특히 대형 와인 발효탱크로 포도즙을 운반하는 시스템은 마치 조선소의 시설처럼 방문객들을 압도하였다. 자연적인 온도 조절에 맡긴 지하 저장 셀라는 중세 수도원에서 이용해왔던 전통적인 숙성방법을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세 수도원 숙성방법, 지하 저장 셀라 대규모의 투자를 통한 대형 와이너리 못지않게 이곳에는 리베라를 빛내고 있는 소규모의 가족 중심 와이너리도 많다. 아란다 데 두에로 북쪽 해발 830m에 위치한 구미엘 데 메르카도 마을에 있는 아로칼(Arrocal) 와이너리는 33ha의 소규모 포도원으로,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3대가 함께 가장 전형적인 명품 리베라 와인을 생산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포도 재배에만 전념하다 1999년부터 양조를 시작한 아로칼 와이너리는 6종류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스위스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운영하고 있는 아바디아 레투에르타 와이너리의 대형 발효 탱크 시설이 마치 조선소 시설 같다. 흥미로운 것은 할아버지가 심은 포도로 만든 최고급 와인인 막시모(Maximo)와 안헬(Angel), 그리고 아버지가 심은 포도로 만든 아로칼 셀렉시온 레드와인이다. 톱 브랜드인 막시모 2005년산은 100% 틴토 피노로 70년 이상 된 포도나무에서 수작업으로 수확하여 1년에 2000병만 생산하는 귀한 와인이다.  12개월 동안 프랑스 오크에 숙성한 후 새로운 오크통에 옮겨 다시 14개월 동안 숙성시키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의 테루아를 닮아, 블랙체리 빛깔에 스파이시하고 스모키한 향과 풍부한 과일 향이 일품이다. 또 농축된 풀보디임에도 신선함과 적절한 산도, 벨벳 같은 부드러운 풍미가 살아 있었다. 리베라 델 두에로의 전형적인 명품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아로칼 와이너리의 장남 호드리고 칼보 아로요. 시음을 마치고 와이너리를 안내해준 오너의 장남인 호드리고 칼보 아로요에게 왜 아직도 결혼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와인을 만드는 일은 전형적인 농부의 일인데 누가 농부한테 시집오려고 하겠느냐”며 웃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와 천둥소리를 들으며 작별인사를 하였는데, 필자가 떠난 후 아마도 그들은 그날 우박을 걱정했을 것이다. 필자가 방문했던 여러 와이너리 중 테루아와 포도나무가 주는 교훈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곳이 10대에 걸쳐 운영하고 있는 디아즈 바요 와이너리이다. 작렬하는 태양, 풀 한 포기 살 수 없는 버려진 땅, 백악(Chalk)질의 자갈 위에서도 건강하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포도나무를 보는 순간 누구나 ‘이렇게 척박한 토양에서 어떻게 포도나무가 자랄 수 있으며 그 포도로 질 좋은 와인이 탄생할 수 있을까?’라고 궁금해 할 것이다. 필자는 언제부턴가 그 이유를 ‘다음 세대를 위한 자기희생’이라는 우리의 인생에 비유하곤 하였다. 척박한 토양에서 자란 포도나무는 영양분을 찾아 더욱 더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린다. 가까스로 흡수한 미량의 수분과 무기질을 오로지 다음 세대를 창조할 열매에 보낸다. 자신은 무성한 잎과 많은 가지를 만들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치면서. 그래서 양질의 와인은 앙상한 포도나무 가지에서 나오고, 세계적인 와인 산지는 대부분 사막성 기후대에 있는지도 모른다. 글·사진|송점종 j-j-song@hanmail.net
와인기행
[와인기행]스페인 대표 와인산지, 리오하의 도전과 혁신(2013. 09. 17 15:29)
2013. 09. 17 15:29 문화/과학
리오하와인은 보통 15~20년, 심지어 40년 이상 숙성시켜 출하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다. 스페인을 유난히 사랑하고 와인애호가였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즐겨 마셨던 와인이 리오하 알타(Rioja Alta)다. 이 와인의 생산지인 리오하의 주도 로그로뇨에 도착한 날이 7월 한여름의 토요일이었는데, 도시는 온통 타파스(스페인 전통음식) 음식축제로 골목마다 인파가 넘쳐흘렀다. 리오하의 엘시에고에 있는 마르케스 데 리스칼 와이너리의 프랭크 O 게리가 설계한 ‘와인시티’의 현란한 모습. 와인셀러, 호텔, 온천, 레스토랑 등이 있다. 보르도가 프랑스의 와인을 대표한다면 리오하는 스페인 와인을 대표하는 와인 산지다. 마드리드에서 북쪽 336㎞에 위치, 피레네 산맥을 두고 프랑스 접경에 가까운 리오하 지방은 실제로 보르도의 양조기술을 도입해 한때 스페인의 최고급 와인 생산지로 명성을 떨쳤다. 로마 정복 이전부터 오랜 와인 역사를 가지고 있는 리오하는 1991년 스페인 최초로 품질등급(DOC)제도를 획득하였다. 리오하의 와인은 1년 동안 오크에서 숙성하는 ‘리오하’, 2년 이상 숙성 기간 중 1년 이상 오크통에서 숙성한 ‘크리안자’(Crianza), 3년 숙성 기간 중 최소 1년은 오크통에서 숙성한 ‘리오하 리제르바’(Rioja Reserva), 그리고 2년은 오크통, 다시 3년 이상 병에서 숙성한 최고급 ‘리오하 그랑 리제르바’(Rioja Gran Reserva) 등급으로 나뉜다. 스페인의 대표 품종인 템프라니요가 60% 이상을 차지하고, 그밖에 가르나차, 마수엘로, 그라치아노와 화이트 와인 품종으로 비우라, 말바시아, 그리고 카베르네 쇼비뇽과 같은 일부 국제 품종을 재배한다. 1년에 3억4000만병 이상을 생산하는 리오하는 크게 세 개의 와인 생산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구세계의 전형을 보여주는 리오하 알타(Rioja Alta), 바스크 지역으로 풀 보디와 높은 산도의 와인을 생산하는 알라베사(Alavesa), 그리고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산도가 떨어지고 알코올 도수가 높은 바하(Baja) 지역이다.  파코 가르시아 와이너리가 생산한 와인 레이블. 마치 현대미술작품과 같은 강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리오하 와인은 보통 15~20년, 심지어 40년 이상 숙성시켜 출하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다. 그러나 오크통에서의 오랜 숙성방식은 자칫하면 와인을 카라멜·커피나 견과류 향 대신 고무와 석유 냄새로 변질시킬 수 있고, 그만큼 생산비가 높다. 또한 척박한 토양에 따른 품질 저하와 전통에 지나치게 안주했던 오늘날의 리오하는 옛날의 영광을 아쉬워하고 있는 형편이다. 신세대가 선호하는 새 와인 개발 필자는 리오하 전통 와인의 기반 위에 현대인이 좋아하는 새로운 와인을 만들겠다는 파코 가르시아(Paco Garcia)와 메드라노 이라주(Medrano Irazu) 와이너리를 찾았다. 특히 로그로뇨 남동쪽 17㎞에 위치한 파코 가르시아 와이너리의 젊은 오너 후안 바우티스타 가르시아는 최근 유럽에서 와인 소비가 급감하고 있는 원인을 분석하고 소비자, 특히 신세대가 선호하는 새로운 와인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그의 꿈을 실현하고 있었다. 풀 보디에 섬세하고 우아하며 드라이하고 복합적인 풍미를 가진 전통적으로 좋은 와인을 구세대가 선호한다면, 신세대가 좋아하는 모던 와인은 과일향이 풍부하고 가볍지만 살아 있는 풍미와 그들의 시선을 잡을 수 있는 이미지가 있는 와인이라고 확신하였다. 신세대가 좋아하는 와인을 개발하고 있는 파코 가르시아의 젊은 오너 후안 바우티스타 가르시아.그는 지금까지 규격화된 전통 양조방식을 탈피하고, 그 해의 작황과 품종, 그리고 테루아에 따라 매년 다른 방법으로 와인을 만들었다. 와인 레이블도 아버지와 자신의 핸드프린트를 사용하여 마치 현대미술작품 같은 이미지를 구현하였다. 또한 아버지가 만든 구세대 와인을 통해 전통과 혁신의 두 제품을 차별화시켰다. 그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 써 있는 ‘Nothing is wrong if it feels good’(느낌이 좋으면 문제될 게 없지)이라는 문구를 보니 혁신을 추구하고 있는 젊은 와인메이커의 끝없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개발한 와인 중 6개월 동안 오크통에서 숙성한 ‘세이스’(Seis), 1년을 프랑스 오크통에서 숙성한 ‘P.G 크리안자’(P.G Crianza)를 시음한 후, 아버지의 와인이라고 할 수 있는 16개월 동안 프랑스 새 오크통에서 숙성한 ‘뷰티풀 싱스 크리안자’(Beautiful Things Crianza)를 시음하였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고전적인 아버지 와인에 더 매료되었지만 ‘세이스’나 ‘P.G 크리안자’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와인 맛이었다. 특히 루비색을 띤 ‘Seis’는 신선한 딸기와 제비꽃 향이 베이스가 되어 과일과 꽃의 풍미가 유감없이 발현되었다. 리오하 여행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두 곳이 있는데, 12세기에 건설된 알라베사에 있는 라구아르디아(Laguardia)와 2006년에 완성된 엘시에고에 있는 와인시티다. 라구아르디아는 작은 성곽마을로 네 곳의 출입구를 제외하고는 성벽으로 완벽하게 둘러싸여 있다. 이 마을이 다른 중세 도시와 구분되는 특징은 13세기의 모습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고, 도시 전체를 거미줄처럼 연결해주는 지하터널이 있다는 점이다. 이 지하터널은 당시 방어 목적으로 건설되었으나 지금은 와인셀러와 시음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와인셀라로 이용되는 13세기 지하 터널 필자는 언덕 위에 있는 고색창연한 성곽마을 라구아르디아의 변함없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 10여년 전 산 세바스찬과 빌바오 방문길에 하룻밤 묵었을 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늦은 밤 마치 중세로의 시간여행을 하는 것처럼 희미한 가로등에 비치는 작은 식당, 와인 바와 예쁜 가게가 늘어서 있는 좁은 석조 길을 따라 거닐면서 느꼈던 감동! 리오하 와인의 혁신과 새로운 도전의 또 다른 모델은 1858년에 설립된 마르케스 데 리스칼(Marquis de Riscal) 와이너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적한 와인마을 엘시에고 근교에 감각적인 색깔의 지붕이 강렬한 태양에 반사되고 있는 건축물이 있다. 이 건물은 마르케스 데 리스칼이 2000년에 새로운 와인산업의 부흥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의 하나로, 우여곡절 끝에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금세기 최고의 건축가 프랭크 O 게리(Frank O Gehry)가 설계한 와이너리다. 와인셀러, 호화 호텔, 와인 스파와 최고급 레스토랑으로 이루어진 와인시티는 와인 병의 개념을 건물에 도입하였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티타늄 판으로 건물 외관을 장식한 데 비해, 이 건물은 와인 색깔인 핑크색, 와인을 싸고 있는 그물망인 황금색, 와인 병 캡슐인 은빛을 형상화한 지붕을 덧씌워 그 현란함을 극대화하였다. 물론 와인시티 프로젝트에는 우아하면서도 누구나 마시기 쉬운 새로운 와인을 만든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에 와이너리 설계를 망설였던 게리가 와이너리 측이 1929년산의 게리와 출생연도가 같은 와인 한 병을 선물하자 이에 감동하여 수락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리오하 알라베사 지역의 포도원 전경. 멀리 보이는 산이 칸타브리아 산맥이다. 전통의 기반 위에 새로운 창조정신을 통해 리오하 와인의 옛 영광을 되찾겠다는 젊은 와인메이커들과 마르케스 데 리스칼 와이너리의 노력이 얼마나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와인은 분명 인류 역사와 함께 발전하였고 앞으로도 그 진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헤밍웨이가 리오하 와인을 즐겨 마시며 집필했던 소설 (The sun also rises)의 제목처럼. 글·사진|송점종 j-j-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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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스크린]스페인 근·현대사의 처연한 상처
[터치스크린]스페인 근·현대사의 처연한 상처(2012. 08. 13 15:32)
2012. 08. 13 15:32 문화/과학
오드 제목 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  영문제목 Balada Triste The Last Circus  출연 카를로스 아레세스, 안토니오 드 라 토레  제작국가 프랑스, 스페인  등급 18세 관람가  상영시간 107분  개봉일 2012년 8월 9일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의 를 보고 꽤 오랫동안 슬픈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위악적이고 파괴적인 이야기는 내전 이후의 스페인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정치적 우화로서 관객의 마음에 깊은 자국을 남긴다. 한국 관객에게는 더 다양하고 깊은 감정으로 다가올 영화다. 가 보여주는 스페인 근·현대사의 차갑고 처연한 상처들은 한국전쟁과 독재정권을 통과하면서 형성된 우리의 현실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 때는 스페인 내전. 서커스 광대인 아버지가 엉겁결에 공화국군에 들어가 싸우다가 프랑코 측에 생포되고 어린 하비에는 홀로 남는다. 아버지는 하비에에게 ‘웃긴 광대’ 대신 ‘슬픈 광대’가 될 것(서커스의 광대극은 웃긴 광대에게 구박을 당하는 슬픈 광대의 콤비 쇼다)과 늘 마음 속에 복수심을 품고 살라는 말을 남긴다. 세월이 흘러 슬픈 광대가 된 하비에. 재능 있는 웃긴 광대 세르지오는 극단의 스타지만 성격이 흉포하다. 하비에는 세르지오의 연인 나탈리아에게 마음을 뺏긴다. 나탈리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탈리아는 거의 매일 같이 세르지오에게 구타를 당하면서도 그를 떠나지 못한다. 이 세 사람은 질투와 집착, 파괴를 반복하며 끝내 파국으로 치닫는다. 역사적 사실관계들이 이야기와 영향을 주고받지만 정확한 시간대가 표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략 스페인 내전 말기인 1930년대 말부터 1973년까지의 상황을 배경으로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극 중 블랑코 총리의 암살로 미루어 1973년임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리얼리즘의 전통 위에 구축된 정교한 이야기라기보다 정치적 우화로서의 성격이 짙다.  종종 조도로프스키의 나 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디테일한 사실 묘사보다는 작위적인 생략과 표현이 주를 이룬다. 어쩌면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간결한 표현은 ‘와 의 중간지점’이 될 것이다. 와의 비교는 유의미한 지점이다. 이야기만 두고 볼 때 는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와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 서커스라는 배경도 그렇지만 영화 속의 슬픈 광대-아버지의 관계가 의 주요 갈등요소인 마더 콤플렉스를 명백하게 연상시킨다. 의 주인공은 어머니를 극복함으로써 저주를 이겨낸다. 그러나 의 주인공은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한다. 이때의 아버지란 결국 프랑코 쿠데타에 의해 희생되었던 공화국 세력을 대변한다. 슬픈 광대는 그 유지를 이어받은 좌파 그룹을, 웃긴 광대는 프랑코 정권으로부터 기원한 우파 그룹을, 나탈리아는 그 사이에서 생존을 위한 처신을 고민하는 민중으로 대입될 수 있다. 나탈리아는 슬픈 광대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결국 매일 밤 함께 자고 싶은 건 웃긴 광대다. 그렇게 매번 속고 구타당하고 유린당하면서 번번이 웃긴 광대에게 돌아가고 마는 나탈리아의 모습을 보며 슬픈 광대는 ‘미쳐버린다’. 그것은 어쩌면 1987년 ‘항쟁’씩이나 해놓고 결국 노태우를 당선시키는 이 땅의 민중들을 바라보며 누군가 느꼈을 좌절을 닮아 있다. 슬픈 광대는 괴물이 된다. 극 후반부 블랑코 총리 암살 직후 테러를 저지른 젊은이들에게 슬픈 광대가 내뱉는 대사는 그래서 기억에 남을 만하다. “너희들은 어느 극단에서 왔니?” 의 클라이맥스가 ‘전몰자 계곡’을 배경으로 펼쳐진다는 건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전몰자 계곡은 내전 종료 후 프랑코가 공화국군과 프랑코군을 가리지 않고 그 시신을 매장한 사회통합의 거짓 상징물이다. 그 위에서 슬픈 광대와 웃긴 광대가 나탈리아를 가운데 두고 다툰다. 나는 그 결말이 해피엔딩이기를 바랐고, 지금도 바라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괴물이 된 세상에 해피엔딩이란 가능하지 않다. 허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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