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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머니’ 스포츠 워싱?…비난만 할 수 없는 이유
‘오일머니’ 스포츠 워싱?…비난만 할 수 없는 이유(2024. 01. 29 05:30)
2024. 01. 29 05:30 스포츠
국제대회 잇단 개최·프로구단과 선수 흡수 탈석유 시대 사회·경제구조 다각화 일환 시각도 프랑스 프로축구 파리 생제르맹(PSG)을 떠나 사우디아라비아 프로축구 알힐랄로 이적하는 네이마르(왼쪽)가 지난해 8월 1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알힐랄 유니폼을 들고 미소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카타르는 2022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을 개최했고, 현재 아시아축구 국가대항전 아시안컵을 치르고 있다. 2023년에는 세계유도선수권대회를 열었고, 올 여름에는 세계 아티스틱 수영 챔피언십도 개최한다. 2027년 세계 농구 월드컵도 아랍 국가 최초로 연다. 2030년 아시안게임 개최지도 카타르다. 카타르 사람들은 육상, 농구, 핸드볼, 배구, 크리켓, 수영 등을 즐긴다. 카타르 자본은 프랑스 최고 축구단 파리 생제르맹도 소유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프로축구리그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알 나스르), 카림 벤제마(알 이티하드), 네이마르(알 힐랄) 등 글로벌 스타들이 뛰고 있다. 연봉은 2500억원 안팎이다. 사우디는 2022년 ‘LIV 골프대회’를 창설했고, 지난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로부터 자발적 합병을 받아냈다. 2027년 아시안컵, 2034년 아시안게임도 사우디에서 열린다. 2034년 월드컵 개최지도 사우디로 굳어졌다. 올 여름에는 세계 최대 규모로 ‘e스포츠 월드컵’을 개최할 예정이다. #아랍에미리트(UAE)는 2018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했다. 맨시티는 2022~2023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프리미어리그,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을 싹쓸이했다. UAE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스포츠는 축구다. 모토스포츠, 크리켓, 배드민턴, 사이클, 승마, 골프, 아이스하키, 스쿼시, 탁구 대회도 자주 열린다. 지난해 아부다비에서는 미국프로농구(NBA) 프리시즌 경기도 벌어졌다. 석유 의존 탈피, 생존 위한 과제로 펑펑 터지는 기름과 가스 덕분에 편안하게 살아온 산유국들이 왜 스포츠에 적극적으로 투자할까. 일단 저유가 시대, 궁극적으로 석유 고갈 등에 대한 걱정이 지배적이다. 석유, 가스 등 천연자원에 의존한 경제 구조를 다각화해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게 생존을 위한 당면과제인 셈이다. 서남아시아 국가들은 풍부한 자금력을 앞세워 차세대 세계 중심이 될 수 있는 길을 국가 차원에서 모색 중이다. UAE는 서남아시아국가 중 가장 먼저 국제화에 나섰다. 두바이는 현재 세계 항공교통의 허브이자 세계적인 관광도시다. UAE는 카타르월드컵 특수도 누렸다. 카타르와 UAE 간 비행시간은 45분이다. 항공편도 하루 30회 안팎이다. 월드컵은 카타르에서 보고 숙박, 여행은 두바이에서 하는 관광객이 많았다. UAE는 음주가 가능하고 남녀 차별이 거의 없으며 제도적 규제도 유연하다. UAE는 2018년 석유·가스 산업 의존도가 26%였다. 그게 2020년에 17%로 줄었다. 무역업, 금융업, 제조업, 건설업 비중은 조금씩 늘었다. 탈석유 경제, 스마트시티를 추구하는 아랍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6년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 계획으로 석유산업 의존도를 낮추고 민간 경제를 육성하는 게 핵심이다. 비전 2030은 ‘활기찬 사회’, ‘번영하는 경제’, ‘진취적인 국가’ 등 3대 영역으로 구성됐다. 3대 영역을 아우르는 게 스포츠다. 사우디는 무려 780조원 규모로 국부펀드(PIF)를 조성해 운영 중이다. 이 돈으로 LIV 골프를 개최했고, 다양한 국제대회 유치, 축구 스타 영입, 축구단 인수 등도 했다. 스포츠를 정권 안정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이슈페이퍼에서 ‘스포츠 산업에 진심인 아랍’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이철규 스태츠퍼폼 한국지사장은 “아랍이 스포츠에 투자하는 가장 큰 배경은 정권 안정”이라며 “자국민 처우개선 등에 정부 지출이 크게 늘면서 이전 형태로는 체제를 지속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사우디의 평균연령은 30.8세(한국 43.2세)다. 20세 이하 인구는 33.4%(한국 16%)다. UAE 평균연령은 38.4세, 20세 이하 인구는 18.6%다. 아랍청년여론조사, 사우디아라비아 가치여론조사 등에 따르면, 젊은 세대는 종교, 가족, 공동체, 민족이라는 전통적 가치 대신 탈전통, 탈민족주의, 탈종파주의를 중시한다. 그동안 부족주의 네트워크 안에서 강력하게 작동한 기득권 연줄 문화(와스타)로는 젊은 층을 잡기 힘든 상황이다. 개방·진보에 스포츠 이벤트 활용 카타르는 사우디, UAE와 비교해 기술 근거 산업에 집중한다. IBM은 수도 도하에 핀테크, 스포츠테크 등 기술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혁신센터를 설립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도 도하에 아랍본부를 두고 있다. 정부는 카타르국립은행. 카타르스타즈리그, 베인 미디어 그룹과 함께 카타르 스포츠텍(Qatar SportsTech)을 설립했다. 마이크로소프트 국제스포츠혁신센터(GSIC)와 손잡고 덴마크 기반 세계 최대 테크 스타트업 네트워크인 ‘스타트업 부트캠프(Startup Bootcamp)’와 연계해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고 있다. 이철규 지사장은 “스타트업들은 타스무(TASMU)라는 국가디지털화 프로그램 스포츠 부문을 활용해 사업성을 검증받고 세계 진출도 꾀한다”고 말했다. 현재 서남아시아가 직면한 또 다른 문제는 비만이다. 남녀 성인 비만율을 보면, 카타르는 남성 33.46%, 여성 44.60%다. 사우디는 남성 31.73%, 여성 43.74%다. UAE는 남성 28.44%, 여성 42.46%다. 세계 20위 안에 들어가는 비만국이다. UAE는 지난해 ‘국가 스포츠 전략 2031’을 수립해 국민이 한 가지 이상 운동을 하도록 목표를 설정했다. UAE는 2013년 세계 비만율 5위까지 오르자 파격적인 비만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청소년부를 스포츠부로 변경하기도 했다. 비만 문제, 자국민 의무 고용 정책에서 비롯된 안일한 근무 태도 등을 해결하는 데 스포츠만 한 게 없다. 또 높은 실업률 등으로 다소 무기력한 젊은 층에 국제 수준에 부합하는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그에 맞는 산업, 교육, 문화 인프라를 갖출 필요성도 있다.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이 대규모 이벤트를 유치하면 서방 언론은 ‘스포츠 워싱(Sports Washing)’이라고 비판한다. 스포츠 워싱은 좋지 않은 국가 이미지를 대형 이벤트 개최 등을 통해 세탁한다는 뜻이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서남아시아의 스포츠 투자에도 ‘스포츠 워싱’ 꼬리표가 어쩔 수 없이 붙는다”면서도 “보수적 사회 성향, 높은 비만율과 실업률, 석유 고갈 위기 속에서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으로 국가 정책을 바꾸는 데도 스포츠가 활용되고 있다. 스포츠 워싱이라고만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취재 후]이제 대중은 스포츠의 ‘의미’를 묻는다
[취재 후]이제 대중은 스포츠의 ‘의미’를 묻는다(2021. 08. 20 14:42)
2021. 08. 20 14:42 스포츠
2020 도쿄올림픽 기간 우리는 지고서도, 메달을 따지 못했는데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선수들을 접했습니다. 이때 “행복하다”는 속된 말로 ‘정신승리’가 아닌 최선을 다한 이만이 내보일 수 있는 충족감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중은 이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습니다. 국가별 메달 종합 순위를 덜 찾아보게 된 것도 이번 올림픽에서 포착된 사회적 변화입니다. 한국 대표팀은 ‘종합 16위’라는 등수가 아닌 그들이 매순간 보여준 끈질긴 투혼, 집념, 감동적인 서사로 기억됩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이 같은 변화는 스포츠계 성폭력과 학교폭력, 가혹행위 등 온갖 부조리가 수면 위로 끌어올려진 지난 수년간 한국사회가 거친 뼈아픈 ‘반성’의 결과입니다. 엘리트 위주로, 오로지 메달을 위해 선수를 육성해온 그간의 스포츠 시스템이 이러한 부조리를 오래도록 용인해온 주범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시스템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메달의 의미’를 따져묻고,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즐길 줄 아는 대중의 탄생이라고 감히 정의 내려봅니다. 스포츠를 직접 하는 것에 대한 관심까지도 고양된 지금, 이를 어떻게 더 건강한 동력으로 이어갈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때입니다. 배구를 배우고 싶어도 같이할 동료, 가르쳐줄 선생님, 네트가 설치된 체육관이 없다면 다시 배구를 ‘보는’ 관중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스포츠 클럽은 학원이나 과외와 비슷한 사교육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스포츠 입문에 장벽이 큰 상황입니다. 엘리트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의 전환에는 이해관계가 맞물립니다. 현직 엘리트 선수나 지도자로서는 소위 ‘밥줄’을 비롯해 국가를 대표한다는 명예를 일정 부분 내려놔야 합니다. 메달이라는 상징적 목표가 사라졌을 때 훌륭한 스포츠인이 더 많이 탄생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입니다. 전환을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새로운 스포츠 관행을 시도해보는 자체가 훨씬 중요합니다. 최근 스포츠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모든 국민의 ‘스포츠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시행은 내년 2월부터입니다. 이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지역사회에서 ‘풀뿌리 스포츠’로서의 생활체육이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남은 기간 새 법이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게끔 물을 듬뿍 주는 일만 남았습니다.
취재 후
올림픽 그 이후 한국 스포츠에 남겨진 ‘고차방정식’(2021. 08. 13 14:58)
2021. 08. 13 14:58 스포츠
코로나19 논란 속에 진행된 2020 도쿄올림픽이 지난 8월 8일 폐막했다. 총 17일간 진행된 대회에서 한국은 20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종합순위 16위를 기록했다. 종목별 선전과 부진은 각각의 종목이 갖는 세계적 위상 변화를 확인하게 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발견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경기 외적인 측면에 있었다. 시민은 더이상 메달 색깔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러한 변화를 두고 “선수들 간 경쟁이 중심이 되는 엘리트체육에서 국민 누구나 즐기는 생활체육으로 변모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주간경향은 지난 8월 10일 도쿄올림픽의 특징을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 체육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했다. ‘결과보다 과정이 존중되는 올림픽’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 같았던 이들은 오히려 ‘위기’를 말했다.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이 선순환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구조에 대한 지적은 이들의 고민이 하루 이틀 사이에 정리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이날 토론회의 사회는 박병률 주간경향 편집장이 맡았다. 토론자로는 김재현 한국체육지도자연맹 이사장, 이배영 종로구청 역도감독(2004 아테네올림픽 은메달), 김주영 용인대 무도스포츠학과 교수(복싱감독), 김언호 동국대 체육학과 교수, 김동화 충남대 체육학과 교수(2002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인교돈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도쿄올림픽 태권도 동메달)가 참여했다. 화상회의로 진행된 토론은 밤 10시를 훌쩍 넘기고서야 끝이 났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이배영 종로구청 역도감독 / 경향신문 자료사진 -도쿄올림픽은 그동안 익숙했던 올림픽과 달랐다는 평가가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무엇이라고 보나. 김재현 “가장 큰 변화는 메달을 못 따도 국민이 최선을 다한 선수에게 열광적인 응원을 보냈다는 것이다. 4위를 해도 주인공이 되는 올림픽이었다. 특히 김연경 선수를 중심으로 한 배구대표팀, 스포츠클라이밍의 서채현, 높이뛰기의 우상혁, 유도의 윤현지, 다이빙 우하람 선수 등은 큰 응원을 받았다. 하지만 팬들 수준이 성숙했다는 것과 별개로 국가대표 선수들의 성적에는 물음이 남을 수밖에 없다. 성적만 놓고 보면 1976 몬트리올올림픽 때 19위를 한 이후로 최악이다. 도쿄올림픽 16위라는 성적은 엘리트체육의 미래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졌다. 일본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부진을 겪은 후 정부 차원에서 엘리트체육을 양성했다. 엘리트체육이 부진을 겪을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엘리트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중심이 이동한 것처럼 보이는데. 김언호 “공공스포츠 클럽이라는 것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면서 추진된 것인데 전국 시군구에 총 229개가 있다. 그런데 이 229개 가지고 국민 몇프로 정도가 혜택을 보겠나. 손에 꼽을 정도다. 정책적으로 공공스포츠 클럽 활성화를 추진하지만 축구, 농구, 야구 등의 인기 종목 외에 자생력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봅슬레이, 육상 같은 종목은 애초에 클럽 활성화가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치권이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 중 하나를 딱 선점해 ‘이거 아니면 틀렸다’는 식의 흑백논리로 간다.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은 함께 키워나가야 한다. 한쪽으로만 몰아가면 문제가 생긴다. 도쿄올림픽을 두고 한 체육회 관계자는 ‘망했다’고 말하더라. 엘리트, 생활체육 모두를 지원할 수 있는 이중구조를 만들어야 했는데 생활체육 쪽으로 기울다 보니 올림픽에서 16등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고민해봐야 하는 사안들이다.” 지난 8월 10일 도쿄올림픽의 의미에 관한 화상 대담회에 참석한 전현직 국가대표와 체육 전문가들 / 화상회의 화면 갈무리 -선수만 좋은 일에 왜 재정지원을 하느냐, 사교육을 통해 각자 알아서 하라는 의견도 있다. 이배영 “인터넷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더라. 야구가 메달 따면 우리가 뭐가 좋냐? 선수들 연금이 다 우리 지갑에서 나간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이 올림픽을 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희망을 느끼고 하는 정서적 가치는 이득으로 잘 인식되지 않는다. 스포츠를 통한 정서적 혜택을 누리지만 이 가치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활체육과의 연관성도 있다. 엘리트체육은 앞에서 끌어주며 길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생활체육만 한다고 했을 때 그 길을 찾기 어렵다. 사실 올림픽 시작 전에 이미 성적이 목표치 이하로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지원이 줄어들고 있는데 성적이 잘 나올 수 없는 것 아닌가. 올림픽 중계를 보며 우리나라 선수 못하라고 하는 국민은 없다. 금메달 따기를 응원하면서 동시에 메달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어딘가 모순이 있다.” 김동화 “그런 것은 생활체육이 자리 잡은 국가에서 가능하다. 유럽이나 일본의 체조 클럽이 200개 정도 있다면 우리나라는 10개 정도 있는 수준이다. 일본의 경우 협회가 클럽에서 돈을 받아 엘리트를 키우는 게 가능할 정도다. 생활체육이 엘리트를 키워내는 구조는 환경적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힘들다. 이걸 구조적으로 만들려면 20~30년이 걸린다.” 김언호 동국대 체육학과 교수.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태권도 스포츠과학 총괄을 맡았다. 당시 금메달을 획득한 김소희 선수(왼쪽)와 함께 찍은 사진 / 김언호 제공 -재정지원은 왜 줄어드는 것인가. 개선할 방법이 있나. 김언호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만 하려고 해서 그렇다. 예를 들면, 외국은 기부 문화가 잘돼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기부조차 문제가 되는 분위기다. 누군가 스포츠에 기부하면 정치색을 띠게 된다. 최순실 사태 이후 기업과 스포츠가 연결되는 것이 나쁜짓을 하는 것처럼 돼 버렸다.” 김재현 “스포츠 저변 확대 및 안정적인 엘리트 선수 육성 구조로 가기 위해서는 협회장이 후원을 이끌어낼 능력이 있거나 스포츠마케팅을 통한 차별화된 스폰서십 프로그램 통해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양궁은 대기업이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구조가 이루어지고 있어 안정적인 예산으로 협회가 계획성 있게 운영될 수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등 정부, 지자체, 기업이 함께 비인기 스포츠 종목의 시설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이때 지역에서 중소기업의 기부 등을 이끌어내 활성화되면 더욱 좋다. 기업은 ROI(투자대비 광고효과)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스포츠단체나 시설 확충을 위해 투자나 기부한 기업을 대상으로 세금혜택 등을 준다든지 했으면 좋겠다. 스포츠 시설들이 지역의 특성에 맞게 만들어지면 엘리트 선수들뿐만 아니라 초중고교 선수들도 이용하고 주민들도 맘껏 이용할 수 있다.” 김동화 “기업의 기부나 스폰서뿐만 아니라 하나 더 중요한 부분을 말하고 싶다. 선수들을 위축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지도자의 성폭력, 배구계의 학교폭력 등 여러 문제가 제기됐다. 그런데 이런 일이 터지면 마치 체육계 전체의 문제처럼 과도하게 부각된다. 이러한 정서적 문제에 대한 개선도 함께 필요하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인교돈 태권도 국가대표 / 연합뉴스 -올림픽에서 격투기 종목들이 약세를 보였는데 엘리트체육의 위기라고 보나. 김주영 “대한민국 투기 종목에는 세계랭킹 1위 선수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 하지만 많은 국제대회 출전에 따른 전략 노출과 부상으로 올림픽에서 계속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려운 구조다. 실제로 유도나 태권도에는 올림픽에 2~3번 이상 출전한 선수들도 있다. 은퇴를 앞둔 나이에 국제대회에 계속 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태권도 이대훈 선수나 유도 안바울 선수가 은퇴하면 뒤를 이을 재목이 있을까? 결국 인프라 문제다. 복싱도 과거에는 세계챔피언도 많이 배출하고,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러다 엘리트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가장 먼저 변모했다. 경기도에서는 소년체전 선발전에서 약 60% 이상이 체육관 출신 학생이 선발되고 있다. 생활체육 활성화를 통해 엘리트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정부 차원에서 영재를 발굴하고 성장시켜야 메달리스트를 키워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복싱은 지자체가 소속 실업팀을 운영하는 구조인데 전국체육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가 비슷한 시기에 열리면 세계선수권을 포기하고 전국체전을 우선순위로 준비해야 한다. 이런 구조적 문제들이 해결돼야 한다.” -체조는 어떤가. 새로운 스타가 나오지 않았나. 김동화 “금메달도 나오고 동메달도 나왔다. 실제 내용을 보면 실력도 좋았지만 상당히 운이 따라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체조도 저변이 상당히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가 신체적 조건에서 외국 선수들에 비해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은 압도적 훈련량으로 이를 극복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선수촌에서 훈련량을 함부로 늘릴 수 없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성적이 더 좋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김주영 용인대 무도스포츠학과 교수. 복싱 감독 / 김주영 제공 -현역 선수 입장에서는 어떤가. 반드시 메달을 따야 한다고 생각하나. 인교돈 “우선 격투기 종목 같은 경우 상대에게 중점을 두고 훈련을 해야 하는 종목인데 코로나19 장기화로 아시아권 선수들은 시합을 거의 못 뛰었다. 이번에 태권도는 유럽에서 다수 메달이 나왔다. 유럽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시합을 강행해 실전 경험을 많이 쌓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담 갖지 말고 뛰라고 하는데 사실, 부담감은 있다. 올림픽이라는 무게가 무겁다. 긴장이 될 수밖에 없고 메달 성적이 저조하다 보니 이다빈 선수의 경우 많은 부담을 느끼면서 뛰었던 것 같다.” -역도도 이번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배영 “역도가 약화된 것은 결국 재정적 지원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장미란 선수나 내가 뛰었던 베이징올림픽 때는 국가대표 상비군 제도가 있었다. 그런데 재정 문제로 상비군이 없어졌고 실업팀을 못 가는 선수는 역도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됐다. 상비군이 없어지면서 전체 전력 약화로 이어졌다. 이제 역도는 숨은 진주 찾기를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쩌다 숨은 진주가 나와 메달을 따주는 것이 아니라면 베이징올림픽 때처럼 시스템으로 인해 여러 선수가 메달을 따는 상황은 보기 힘들지 않나 생각한다.” 김재현 한국체육지도자연맹 이사장 / 김재현 제공 -엘리트체육에서 메달을 따고 붐이 일어도 한 6개월 지나면 사그라들지 않았나. 그래서 생활체육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김언호 “우리나라에서 엘리트 체육이 붐을 만드는 것은 축구, 농구, 야구 정도다. 인기도 있고, 프로 스포츠도 있으니까. 나머지는 엘리트체육이 붐을 만든다고까지 보기는 어렵다. 사실 엘리트체육은 생활체육에 ‘경쟁’을 더한 것이다. 이 경쟁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엘리트체육 나름대로 장점이 있고, 생활체육도 장점이 있다. 같이 개발하는 것이 맞고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생활체육이 보편적이고 비용도 덜 든다고 하는데 자생을 못 하는 종목들은 어떡할 것인가. 예를 들어, 카바디 같은 종목들이다. 많은 종목이 자생력이 없는 상황이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동화 충남대 체육학과 교수 / 경향신문 자료사진 -자칫 인기 스포츠 몇개를 제외하면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이배영 “학습권 부분에 대해 한마디하고 싶다. 정책적으로 학교수업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만들어진다. 운동도 학습이다. 공부할 사람은 공부하게 하고, 운동하고 싶은 사람은 운동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학습권을 지켜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식이 많다면 좋겠지만 그것 때문에 당장 필요하고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운동 학습권은 지켜지고 있는 것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탁구의 신유빈 선수를 보라. 운동을 제한 없이 하기 위해 학교를 포기하지 않나. 이제 운동에 뜻이 있는 학생 선수들은 학교를 포기하는 상황에 내몰릴 것이다. 정부 정책이 누군가에게 불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 김주영 “최근 몇 년간 초등학생 장래희망 순위에 운동선수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자 교육부가 이 친구들 꿈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학생이 시합을 다녀오니 팀이 해체됐거나 본인의 학교성적과 출결사항 문제로 시합에 출전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또 학습권이 침해된다며 주중에는 공부하고, 주말리그를 만들라고 한다. 결국, 학생선수는 멀티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탁구신동 신유빈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운동선수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게 검정고시를 통과하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선례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정책은 현실은 외면한 채 선진국의 외형만 따라가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20 도쿄올림픽 높이뛰기 국가대표 우상혁 선수(위), 다이빙 국가대표 우하람 선수 / 연합뉴스 -엘리트 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라서 그런 게 아닐까. 김재현 “우리나라는 과거에는 스포츠로 국위선양을 했고, 2002 한일월드컵 이후로는 스포츠를 산업적 관점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기업이 광고 이상의 도구로 스포츠를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보고 투자를 했는데 지난 정부 문제와 대기업이 엮이면서 스포츠에 대한 후원은 위축되고 녹록지 않은 상황이 됐다. 대한체육회 예산이 약 4000억원이다. 많은 예산 같지만 엘리트 선수 발굴 및 육성, 생활체육 활성화 등 스포츠의 다양한 현장에 예산이 지원된다고 했을 때 아직 부족하다. 교육부 전체 예산 중 초중고 체육 예산으로 배정된 것은 0.04%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스포츠 영재를 발견하겠다는 것인가.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대한체육회가 함께 국민의 건강과 스포츠발전을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머리를 맞대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금은 과도기라기보다 ‘혁신과 변화’를 절실하게 만들어야 할 시기다.” -앞으로 올림픽은 어떻게 바뀔 것으로 보나. 김동화 “2024 파리올림픽에서는 브레이크 댄스가 종목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잘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정식 종목인 스케이트보드는 사교육도 가능하다. 그런데 전통 스포츠는 사교육만으로 어려운 것이 많다. 재미 문제도 있다. 태권도 같은 경우 너무 재미가 없게 운영됐다. 유도도 대부분 연장전인 골든 스코어로 갔다. 이러다 전통 스포츠들은 다 퇴출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이게 바람직한가. 전통 스포츠를 지키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도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한다. 이번에 체조 종목 중 트램펄린을 해설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규정도 간단하고 1분 안에 경기가 끝나더라. 점수도 바로 나오고. IOC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재미없는 종목들을 버리고 이런 흥미위주 종목을 더욱 챙기게 될 것이다. 이대로라면 전통 종목들의 장래는 어둡다.” -종목별 향후 대응도 궁금하다. 역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배영 “상비군 제도가 절실하다. 전국체전에 대학부가 없는 상황이다. 역도는 하루아침에 잘하거나 상대방이 못한다고 이기는 종목이 아니다. 본인 기량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오랜 기간 훈련해야 한다. 선수를 육성할 환경을 만들어주고. 상비군 시스템을 도입해 중간다리를 놔줘야 한다.” -복싱은 어떤가. 김주영 “무엇보다 선수 인프라가 확충돼야 한다. 그 후에 투기 종목은 학연, 지연 등에 얽매이는 관행을 끊어야 한다. 특정학교 출신이 협회와 심판부를 장악하는 현상이 반복된다면 진짜 유능한 선수가 국가대표를 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과거 올림픽 메달리스트보다 유튜브나 SNS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흡수하는 지금 선수들이 기량적인 면에서는 더 우수하다고 생각한다. 협회의 투명한 선수선발과 정상적인 지원만 있다면 충분히 올림픽 메달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선수가 외국 선수들에 비해 체격이 열악한데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기술강화도 필요하지만, 강인한 훈련을 통한 정신력이 무엇보다 강조돼야 한다. 유도경기처럼 연장전까지 가는 상황은 스포츠 과학만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체조는 성과를 계속 이어가야 하는데. 김동화 “파리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기 쉽지 않을 수 있다. 계속 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장기 계획을 좀 세웠으면 한다. 선투자 후결과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획을 잘 짜야 한다. 현재 엘리트체육 이미지가 너무 부정적이다. 이를 긍정적으로 전환해 인프라 확대를 이끌어야 한다. 또 아무리 좋은 인재가 있어도 이에 걸맞은 좋은 지도자가 없으면 훌륭한 선수를 키워내지 못한다. 지도자들 사기가 바닥이다. 이를 개선할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태권도는 어떤가. 김언호 “태권도는 10명 정도의 코칭스태프로 구성된다. 각자 전담하는 것을 좀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전력분석전문가나 체력만 담당하는 코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명의 코치가 있는데 실질적으로 운동 가르치는 사람은 2~3명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감독과 친분 있는 사람으로 구성되면 안 된다.” -현역선수 입장에서는 어떤가. 인교돈 “저희가 예상치 못한 선수들과 경기를 하게 됐을 때 바로 대처할 수 있게 전력분석이 강화됐으면 좋겠다. 올림픽에서 분석한 상대는 못 올라오고 전혀 모르는 선수들이 올라왔다. 그런 부분에서 변수가 생겼다.”
표지 이야기
국가대표가 된 ‘동네 고수’? 공공스포츠클럽이 그리는 꿈(2021. 08. 13 14:58)
2021. 08. 13 14:58 스포츠
ㆍ전문 지도자 배치돼 안정적 선수 육성 가능… 자립 위한 재정적·행정적 지원 절실 “힘 빼고 쳐야 해요. 치는 순간에 힘이 들어가면 안 돼요.”, “하나, 둘, 그렇지.”, “자세가 밑으로 앉으면 안 된다고 그랬죠. 무릎은 가만히 놔두고 스윙만 한다고 생각해야 해요.” 탁구공이 탁구대와 라켓에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낸다. 소리가 끊기는 사이엔 강사의 지도가 더해진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의 강습생은 젊은 강사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들었다. 지난 8월 11일 오후 찾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용인스포츠클럽에선 탁구 수업이 한창이었다. 수업은 거리 두기를 위해 탁구대당 2명씩 인원을 제한하고, 사이에 탁구대 한개씩 비우고 진행됐다. 서울 광진구스포츠클럽 회원들이 배구 수업을 받고 있다. / 광진구스포츠클럽 제공 이 스포츠클럽이 둥지로 삼는 곳은 용인시국민체육센터이다. 샤워실과 탈의실, 탁구대를 비롯해 농구와 배드민턴, 댄스, 체조 수업이 가능한 다목적 체육관을 갖추고 있다. 탁구 수업을 듣는 김선자씨(41)가 배드민턴 수업을 마친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귀갓길에 나섰다. 김씨네 4인 가족 모두 이곳 회원이다. 김씨는 “아이들은 뛰놀아야 한다는 생각에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면서 “탁구도 가르치고 싶은데 아직은 활동성이 더 높은 배드민턴이 좋아보인다”고 말했다. 탁구를 시작한 지 6년째인 그는 스포츠클럽의 코치진이 최고 수준이라면서 “스포츠이다 보니 이겨야 더 재밌는데, 선수 출신 교사가 이길 수 있는 비법을 콕콕 짚어 잘 가르쳐준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2020년 1월 문을 연 용인스포츠클럽은 공공스포츠클럽이다. 공공스포츠클럽은 지역 체육시설을 거점으로 다세대, 다계층, 다연령의 회원들이 참여하고, 전문 지도자가 다양한 종목·수준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비영리 사단법인 형태의 스포츠클럽이다. 3~5년간 4억~9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아 저렴하면서도, 양질의 스포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공공스포츠클럽은 지역 중심의 생활체육 저변을 확대하고, 전문선수 발굴과 은퇴선수 등 체육인의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대한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가 중심이 돼 2013년부터 진행한 사업이다. 지난 7월 21일 기준 전국의 공공스츠포클럽 수는 201개이다. 최소 5개 종목을 운영하는 대도시형(68개), 3개 종목을 제공하는 중소도시형(49개), 1개 종목을 제공하는 학교연계형(84개)으로 나뉜다.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 선순환 기대 국가가 아마추어 선수를 육성해 국가대표로 선발한 후 병영식 선수촌에서 훈련시키는 ‘국가 아마추어리즘’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코로나19 등 외부 요인이 겹치면서 선수촌에서의 합숙훈련이 어려워진 면도 있다. 재능있는 선수를 발굴하는 1차 통로였던 학교 운동부도 쇠락하고 있다. 성적 지상주의라는 압박감에 선수들은 지치고, 폭행, 성추행 등 사건사고가 빈발하면서 학부모도, 학교도 운동부를 꺼린다. 학령인구가 줄고, 스포츠 사교육 등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진 것도 원인이다. 엘리트체육의 기반이 흔들리고, 생활체육의 토대는 아직 넓지 않다. 공공스포츠클럽은 이런 난맥상을 해결할 방안으로 주목받는다. 이지현 용인스포츠클럽 사무국장은 특히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의 선순환이라는 장점을 강조했다. 대회 성적이나 교장의 성향에 따라 존폐가 결정되는 학교 운동부와 달리 공공스포츠클럽에는 정규 지도자가 지속적으로 배치돼 전문선수를 안정적으로 육성할 수 있다. 이 사무국장은 “여러 종목을 함께하면서 전문선수를 키울 수 있고, 지도자를 배양할 수도 있다”면서 “다양한 학교에서 선수가 오다 보니 서로 간의 경쟁과 자기개발 측면에서 더 유리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종헌 광진구스포츠클럽 사무국장은 학교 체육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인재를 육성할 방법은 스포츠클럽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학교 체육도, 기존의 폐쇄적인 동호인 클럽도 대안이 아닌 상황에서 스포츠 과외라는 사교육으로 흘러가게 둘 순 없다”면서 “생활체육에 뿌리를 두고, 거기서 꿈나무를 발견해 자연적으로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스포츠클럽의 의무와 책임이다”고 말했다. 일선의 지도자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다. 여러 사람과 어울리면서 즐기면서 운동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봤다. 세종시 공공스포츠클럽에서 농구를 지도하는 김민정 코치(22)는 “학교 운동부에선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고, 성적을 내야 지도자도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면서 “이런 압박감 탓에 인권문제가 터지기도 하는데 스포츠클럽에선 아이들이 즐기면서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생활체육에서 두각을 나타낼 경우 엘리트 과정으로 연계되는 과정도 잘돼 있다. 박상운 용인스포츠클럽 배드민턴 코치(32)는 “가르치는 학생이 배드민턴에 소질이 있고, 자신도 전문선수가 되고 싶어한다면 학부모 상담을 거쳐 배드민턴부가 있는 학교에 전학할 수 있도록 추천해준다”고 설명했다. 김 코치는 클럽에서 취미로 운동선수를 하다 전문선수로 넘어가 입상하는 사례도 자주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남원 거점스포츠클럽에선 복싱 선수단을 운영하면서 청소년국가대표를 배출하기도 했다. 경기도 용인스포츠클럽에서 탁구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 주영재 기자 지역의 구심점으로 지역 사회 통합에 기여 공공스포츠클럽은 지역 소모임과 커뮤니티 활동이 이뤄지는 지역의 구심이 될 수 있다. 특히 노년층이 건강을 유지하고, 고립에서 벗어나게 하는 장점이 크다. 이종헌 사무국장은 “하루 쉬면 왜 쉬냐고 항의할 정도로 노인분들이 열심히 참여하는데 이분들에게 스포츠 활동은 건강을 증진하는 수단이자 사람을 만나고, 친해지면서 긍정적인 사회관계를 쌓는 기회가 된다”고 설명했다. 고령화 시대로 인한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도 있다. 이런 사회 통합 기능을 높이려면 다목적 체육시설이 더 많이 필요하다. 지금은 에어로빅, 수영, 야구 등 개별 종목별로 시설이 운영되는데 다목적 종합 체육관에 여러 시설을 두면 가족이 함께 운동할 수 있다. 이종헌 사무국장은 “지금은 아빠는 아빠대로 조기축구회에 가고, 엄마는 엄마대로 에어로빅 학원에 가고, 아이는 자기네끼리 농구를 하는 상황”이라면서 “개별 종목 위주에서 장소 위주로 스포츠 참여가 이뤄져야 가족 간, 계층 간 소통이 이뤄지고, 지역의 문화적 구심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별로 회비를 내는 방식을 벗어나 연간 회비로 클럽의 소속감과 활동 수준을 높이는 것도 제안했다. 그는 “독일의 경우 상견례나 모임 등 모든 동네 행사가 스포츠클럽에서 이뤄지고 있다”면서 “우리처럼 프로그램별 회비를 내는 게 아니라 클럽 회원으로 등록해 연간 회비를 내면 모든 시설과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네마다 이런 체육관을 확보하면 좋겠지만 도심에선 이렇게 쓸 땅이 많지 않다. 그래서 초중등학교의 체육시설을 지역에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종헌 사무국장은 “학교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주민에게 의무적으로 개방하도록 해야 한다”며 “관리 책임을 지는 교육청과 교장이 꺼리지만 방과 후엔 책임 소재를 스포츠클럽이 지게 하는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8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스포츠클럽법 제정안에 학교 체육 시설 개방에 관한 조항이 있지만 의무조항은 아니다. 문체부 관계자는 “스포츠클럽법 시행을 위한 기본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교육부와 협의해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운영 위기, 자립 위한 지원 필요 공공스포츠클럽 사업은 기초지자체 한곳당 공공스포츠클럽 한곳을 만드는 것으로 올해 말까지 모두 229개를 채우면 끝난다. 그 이후엔 스포츠클럽법이 도입한 지정스포츠클럽이 공공스포츠클럽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스포츠클럽법은 스포츠클럽을 중심으로 생활체육 생태계의 저변을 넓히고 스포츠 복지를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마련됐는데 동호회, 등록스포츠클럽, 지정스포츠클럽으로의 단계적 성장을 예정하고 있다. 동호회가 요건을 갖추면 지자체에 스포츠클럽으로 등록하고, 정부 지원사업 공모에 응모해 선정되면 지정스포츠클럽이 돼 정부 지원을 받는 방식이다. 2019년 공공스포츠클럽으로 선정된 광진구 스포츠클럽이나 용인스포츠클럽의 경우 내년 상반기에 지원이 종료된다. 지원금을 받는 동안 재정적 자립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으라는 취지인데 한창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회원수를 늘려야 할 때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여닫기를 반복하면서 두 스포츠클럽 모두 제대로 운영한 기간은 3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코로나19로 공공스포츠클럽이 지자체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체육관이 폐쇄되거나 백신접종센터 등으로 이용되면서 공간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광진구 공공스포츠클럽은 임시방편으로 민간 시설을 임대해 시니어 당구교실을 열고, 한강 윈드서핑장을 이용해 수상스포츠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한기범 농구교실과 함께 실외 농구장에서 청소년 농구교실도 열어 꽤 호응을 얻었는데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거리 두기 4단계가 되면서 전면 중단됐다. 용인스포츠클럽도 탁구, 배드민턴 프로그램은 재개했지만 농구 프로그램은 할 수 없다. 자립을 위해선 재정적·행정적 지원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종헌 사무국장은 “3년 지원 기간 회원을 늘리고, 프로그램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그 기회가 코로나19 때문에 날아갔다”면서 “지자체 체육시설을 위탁 운영하면서 수익의 절반을 사용료로 내는데 이 부담만 줄여도 흑자는 아니어도 충분히 운영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행히 내년 6월 시행되는 스포츠클럽법에 공공 체육시설 사용료의 전부 또는 일부를 감면할 수 있다는 규정이 들어갔다. 문체부 관계자는 “사업 기간 3개월 연장 외에 추가 지원은 어렵다”면서 “공공스포츠클럽 운영이 끝난 이후에는 지정스포츠클럽이 돼 지원을 받을 수 있어 내년이 되면 사정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지원이 어렵다면, 대부분 지역 체육회가 맡는 지자체의 스포츠사업에 공공스포츠클럽이 지원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지현 사무국장은 “교육청이 하는 초등스포츠클럽 사업이나, 경기도의 경기스포츠클럽 사업에 지원해 운영할 수 있게 됐는데 이렇게 사업으로 지원하면 훨씬 여유 있게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표지 이야기
[만화로 본 세상]스포츠의 본질은 ‘함께하는 것’(2021. 08. 13 14:57)
2021. 08. 13 14:57 문화/과학
ㆍNHK <애니메이션×패럴림픽: 당신의 영웅은 누구입니까> “도쿄 비장애인 올림픽 중계방송을 여기서 마칩니다.” 지난 8월 8일, KBS 이재후 아나운서는 도쿄올림픽 폐막식 중계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해 주목받았다. 8월 24일부터 9월 5일까지 진행될 도쿄 패럴림픽을 환기하며 쓴 말이다. 패럴림픽은 신체장애인 선수들이 참여하는 올림픽으로 출발했고, 올림픽은 ‘비장애인’ 중심이 맞다.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주목받은 건 이 사회가 철저히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인간의 기본값으로 놓고 사는 일이 너무 익숙해 이렇게 콕 집어 한 번 불리기만 해도 비장애인들은 깜짝 놀란다. NHK 의 시각장애인 유도편의 한 장면 / NHK 홈페이지 갈무리 패럴림픽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부상으로 장애를 얻은 퇴역 군인과 시민을 위한 재활프로그램에서 출발했다. 패럴림픽이라는 이름도 하반신 마비를 뜻하는 ‘paraplegic’과 ‘Olympic’의 합성어다. 시간이 흐르면서 참여하는 장애인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졌고, 장애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더해져 지금은 ‘para(나란한)’와 ‘Olympic(올림픽)’의 합성어로 설명된다. 패럴림픽은 88 서울올림픽부터 올림픽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란히 진행된다. 그러나 패럴림픽을 ‘비장애인 올림픽’의 부수적 이벤트처럼 보는 시선은 여전하다. 올림픽 폐막을 보도한 지상파 3사 뉴스 중 패럴림픽 개최를 언급한 방송은 KBS가 유일했다. 이재후 아나운서의 폐막식 마지막 멘트가 화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한국보다 장애인이 살기에 나은 나라인 일본도 패럴림픽은 올림픽만큼의 관심을 끌기 힘들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과 인식개선을 끌어내기 위해 애니메이션이란 카드를 꺼냈다. <내일의 죠>(치바 테츠야), <캡틴 츠바사>(다카하시 요이치) 등 크게 인기를 끈 스포츠만화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유명 만화들과 협업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패럴림픽 12종목을 소개하는 5분 분량의 작품 12편을 공개했다. 비장애인과 견줘도 손색없는 경기력을 강조하는 작품에서는 장애 차별구조의 바탕을 이루는 능력주의가 읽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러나 대다수는 각각의 종목이 갖는 고유의 재미를 전달하려 애쓴다. 어떤 종목이든, 그것이 비장애인 올림픽이든 장애인 올림픽이든, 스포츠는 즐거움을 준다. 신체를 활용하는 쾌감, 내 한계에 도전할 때의 성취감, 승부를 겨룰 때의 박진감 같은 것이다. 시각장애인 유도편은 이를 잘 보여준다. 주로 스포츠만화를 사실감 있게 그려온 가와이 가쓰토시가 원안을 구성했다. 주인공은 유도선수로 활동하다 시력을 거의 잃고 시각장애인 유도에 참여하게 된다(실제 이런 사례가 많다고 한다). 비장애인 유도는 서로 멀리 떨어져 시작한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유도는 상대방의 소맷귀와 가슴 깃을 붙잡은 채로 시작한다. 손에 잡힌 부위에 대한 감각을 바탕으로 거기에 연결된 나머지 신체의 움직임을 예측하며 경기한다. 주인공은 시각장애인 유도에 적응해가면서 유도가 서로 몸을 부딪치는 ‘상대’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경기임을 새삼 깨닫는다. 스포츠의 본질은 경쟁이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다.
만화로 본 세상
[방구석 극장전]국위선양 너머 스포츠의 가치
[방구석 극장전]국위선양 너머 스포츠의 가치(2021. 08. 13 14:57)
2021. 08. 13 14:57 문화/과학
말 많던 2020 도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1년 연기 후 결국 무산될 것으로 점쳤지만, 걸린 게 많은 IOC와 일본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결국 관중 없이 치러졌다. 코로나19 비상사태가 확산됐음에도 큰 사건사고는 없었지만, 일본의 정치적 편의를 봐준 것인지 히로시마 피폭 헌화나 욱일기 도안 은근슬쩍 사용 등 ‘정치와의 분리’ 약속은 상당 부분 훼손됐다. 폐막식의 아이누 전통음악 연출도 러시아와 북방영토 문제 환기가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다. 반면 군부 쿠데타가 진행 중인 미얀마의 민주화와 인권은 언급되지 못했다. 올림픽이 출발 정신보다는 강대국의 국위 과시와 스폰서 이해관계에 더 충실하다는 자조가 확인된 셈이다. 넷플릭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과도한 국가주의, 속칭 ‘국뽕’ 자극에 활용된다는 비판을 들어온 한국의 올림픽 열풍은 이번에는 달랐다. 순위 경쟁보다는 젊은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 인간승리에 박수를 보냈고 아쉬운 패배에도 호응이 인색하지 않았다.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몰된 동시에 준비가 부족했던 모 방송사 개막식 중계 논란은 오히려 지구촌 상식을 넓히는 계기로 작용했고, 이번 올림픽 여자배구 8강에서 맞붙은 터키 산불재해 관련 묘목 기부 캠페인은 흐뭇한 풍경을 연출했다. 윗선은 몰라도 국민 대부분의 인식은 이제 합리적 근대에 도달한 셈이다. 넷플릭스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단편 다큐멘터리 중에는 국가주의나 상업성에 얽매이지 않는 스포츠 소재 작품이 적지 않다. <로레나, 샌들의 마라토너>는 멕시코 치와와주 울창한 숲속에 사는 원주민 소녀 로레나와 그 가족 이야기다. 온 가족이 육상선수인 로레나는 자국은 물론 해외에도 알려진 익스트림 마라토너다. 수백㎞ 산길 완주 코스를 그는 전통의상 치마 차림에 샌들을 신고 달린다. 정상급 선수이기에 러닝화 스폰서가 붙지만 로레나는 맨발에 샌들이 오히려 편하다며 신지 않는다. 시합이 끝나면 그는 고향의 계곡과 언덕을 뛰며 자급자족하는 전통적 삶에 흠뻑 빠진다. 달리기란 로레나와 가족에겐 자아실현의 일부일 뿐이다. <작전명 서핑>은 퇴역군인들이 치유 프로그램으로 서핑을 배우는 과정을 담는다. 지난 20년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전쟁 사상자는 수치로는 과거 베트남전쟁에 비해 적지만 후유증은 그를 능가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인한 이혼이나 사건사고가 엄청나 큰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군부대가 있는 도시는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정도다. 상이군인들이 중력에서 자유로운 서핑에 도전하는 순간만큼은 일상을 옥죄던 피해의식에서 해방된다. 비장애인보다 몇 배 더 힘든 과정이기에 부정적 생각에 빠질 틈이 없다. 스포츠의 순기능이 엘리트 체육이 아니라 장애인 재활에서 발견되는 순간이다. 도쿄올림픽은 끝났지만 8월 24일부터 패럴림픽이 열린다. 올림픽 폐막식 생중계 중 KBS 아나운서가 ‘비장애인 올림픽의 종료’를 언급할 만큼 더딘 것 같지만 우리 사회 의식 수준은 올라가고 있다. 올림픽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스포츠 정신의 순기능과 감동만은 여전히 ‘살아 있다’.
방구석 극장전
[김재현의 생각있는 스타톡](13)‘국제도핑검사관’ 박주희 국제스포츠전략위 사무총장 “올림픽 국대처럼 난 스포츠 행정의 국가대표”(2021. 08. 02 11:27)
2021. 08. 02 11:27 스포츠
국제스포츠대회에는 선수들만 뛰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행정가도 참여한다. 모든 국제스포츠대회에는 선수들의 금지약물 복용 여부를 가리는 도핑검사를 엄격하게 시행한다. ‘국내 1호’ 국제도핑검사관인 박주희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 사무총장이 하는 일이다. 그가 스포츠 행정의 ‘국가대표’라 불리는 이유다.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15년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국내에서 열린 수많은 국제대회가 그의 손을 거쳐갔다. 박 사무총장은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위원이기도 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한국출신의 ‘아시아 여성 스포츠지도자’로 언급되는 그를 만났다.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있는 소관 재단법인으로 국제스포츠와 관련된 전반적인 것을 다룬다. 특히 올림픽,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스포츠기구와 대한체육회, 장애인체육회, 한국도핑방지위원회 등 국내기구 사이에서 플랫폼 역할을 한다. 민간 스포츠 외교 기관이라고 보면 된다.” -국제스포츠 행정 쪽에 첫발을 뗐을 때 굉장히 떨렸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 스포츠 도핑이 처음 들어왔을 때 도핑검사관 자격을 취득했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가 발족하면서 거기에 직원으로 채용돼 운 좋게 활동을 시작했다. 2008년에 제1회 비치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국제도핑검사관 프로그램이 도입됐다. 거기에 참여할 기회가 생기면서 국제무대에 진출하게 됐다. 항상 느끼는 것이 스포츠 행정의 국가대표라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태극기를 달고 올림픽이나 여러 국제대회에 나가는 것처럼 행정하는 사람들도 국제대회에 갔을 때 그 분야의 국가대표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2008년 대회에 처음 나갔을 때 너무 가슴이 뛰었다. 국제사회가 단순히 개인 박주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한 스포츠 행정가로서 나를 보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스포츠 행정가라고 하면 조금 모호하다. 어떤 분야인가. “전반적으로 대회운영에 관련된 것들이다. 나는 스포츠 도핑이라는 분야로 조직위나 국제무대에서 전문성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 -국제스포츠 무대에서 도핑검사관으로 활동하면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뛰고 있는 선수들을 보면 어떤 감정이 드나. “우리나라를 대표해 뭔가 한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는 할 수 없다. 나 같은 경우는 선수들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만나고 접하다 보니까 그들이 얼마나 노력했고, 거기까지 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는지 알고 있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있나 자꾸 찾아보게 된다. 그 현장에서 같이 만났을 때는 동질감이 생기다 보니까 애국가만 들어도 막 눈물이 흐르고 태극기만 봐도, 김치만 먹어도 눈물이 난다. 함께 뭘 할 수 있다는 것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 -체육학과를 나왔다. 다소 생소한 도핑검사관이라는 길을 걷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1999년 세계도핑방지기구(WADA)가 설립되면서 도핑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됐다. 한국에서도 KADA가 설립되면 검사관 양성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많은 이슈였다. 당시에는 검사관들을 각 연맹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나는 석사로 특수 체육을 전공했다. 휠체어 농구와 관련된 업무들을 하고 국제 등급 분류도 같이하고 있었다. 그쪽에서 볼 때 도핑이 생소하고 우리 연맹에서도 여러 활동을 하면서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나를) 추천을 해줬다. 그래서 검사관이라는 것에 대해 교육을 받게 됐고 자격을 획득하게 됐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에 국제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필요했고 그래서 내가 응시를 하게 돼 채용됐다. WADA, IOC, 국제스포츠연맹 등과 소통을 하면서 국내에 있는 도핑과 관련된 이슈를 다루게 됐다. 또 국내에서 개최된 다양한 국제대회에서 도핑을 담당하는 업무들을 하게 됐다.” -14~15년 전 도핑 분야에 처음 일했을 때는 낯설었겠다. “처음 KADA에 입사했을 때는 전국체전에서도 도핑검사관 수가 많지 않았다. 지금은 충분히 양성이 돼 있지만 그때는 우리 직원들이 직접 현장에 많이 나갔다. 협회나 연맹 측에서도 도핑검사라는 게 너무 생소하고 마치 잡아간다는 느낌이 있어서 되게 부정적으로 많이 봤다. 그러나 지금은 교육도 잘돼 있고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분야라고 생각해준다. 이제는 도핑검사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했다.” -소변검사, 혈액검사 외에도 다른 도핑검사가 있나. “현재는 소변검사랑 혈액검사를 통해 검출한다. 향후에는 유전자와 관련된 여러 방법이 논의되고 있다.” -도핑검사의 절차는 어떻게 되나. “도핑검사관들이 실제로 현장에서 선수를 만나 혈액이나 소변을 채취한다. WADA에서 인정한 검사실에서만 검사할 수 있다. 한국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도핑 컨트롤 센터가 있다. 혈액샘플, 소변샘플을 10년 동안 보관한다. 지금 음성이어도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다시 꺼내 분석할 수도 있다. 도핑은 선수들은 항상 앞선 기술로 가고 있고 이 기술을 도핑검사가 쫓아가고 있어 지금은 밝힐 수 없지만 언젠가는 밝혀낼 수 있다. 2014년 소치 올림픽 때 김연아 선수가 은메달을 땄다. 지금 러시아 도핑 스캔들 때문에 그때 샘플을 다 꺼내 재분석하고 있다. 그 결과가 조만간 나온다(결과에 따라 메달 색깔이 달라질 수도 있다).” -도핑은 선수 개인뿐 아니라 국가의 이미지까지 훼손되는 아주 중대한 문제다. 국가적인 이미지가 훼손된 사례가 있나.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러시아 도핑이다. 러시아 선수들은 도쿄 올림픽뿐만 아니라 내년 월드컵 등 큰 대회에서 자국의 국기를 사용할 수 없다. 올림픽에서는 러시아 출신의 올림픽 선수라는 개인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다. 도핑검사 때는 소변이나 혈액을 바꿔치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선수들은 검사관이나 ‘샤프롱’이라 불리는 동반인이 보는 앞에서 옷을 다 벗고 소변을 받는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라고 물어볼 수 있지만 샘플을 바꿔치기를 한다거나, 조작을 엄격하게 막기 위해서다. 검사는 대회기간뿐 아니라 평소 훈련장이나 자택에서 이뤄진다. 중국 수영선수인 쑨양은 집에 직접 찾아가 샘플을 채집하려고 했던 일도 있다. 그렇게 찾아가도 쌍둥이인 선수들은 알아보기 힘드니까 샘플을 바꿔치기하기도 한다. 우리가 상상 못 하는 일이 실제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자주 검출되는 약물이 있는지. “아무래도 ‘스테로이드’, 특정약이 모든 선수에게 좋거나 경기력 향상에 영향력을 주는 게 아니다. 종목마다 특성이 있어 힘을 줘야 하는 종목은 스테로이드 등을 복용한다. 유도, 태권도, 복싱 같은 체중에 민감한 종목은 이뇨제라고 해서 보통 여성들이 다이어트할 때 많이 복용하는 약을 도핑한다. 숨을 많이 참아야 하는 종목 같은 경우, 오랫동안 흔들림 없어야 하기 때문에 그에 관련된 약물들도 있다.” -도핑의 국제적인 흐름은 어떻게 바뀌고 있나. “예전에 도핑하면 단순히 검사해 적발하는 거라고 했다. 이제는 그 단계를 다 넘어갔다. KADA도 내가 근무할 시절에는 10명 정도밖에 없는 작은 조직이었다. 지금은 3~4배가 넘는 인원들이 비장애인, 장애인 스포츠 할 것 없이 아마추어, 프로스포츠까지 다 관장하고 있다. 과거에는 종이를 썼지만 지금은 검사에 대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페이퍼리스’로 운영하고 있다. 2020 도쿄 하계올림픽에서는 처음으로 노트탭을 통해 현장에서 자료를 입력하고, 이를 통해 공유된 정보를 인공지능(AI)으로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다.” -유승민 IOC 위원과 함께 최근 <한 권으로 읽는 국제 스포츠 이야기>라는 책을 출간했다. “유 위원과 같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 거의 두달 가까이 선수촌에서 협업을 하면서 활동했다. 그리고 자원봉사를 하는 우리 학생들과 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분을 만났는데 국제스포츠에 대해 단편적인 정보는 전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만한 게 없었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우리가 한번 정리해보자’고 하면서 책을 내게 됐다.”
김재현의 생각있는 스타톡
‘아재 스포츠’ MLB, ‘개쩌는 야구’로 변신(2021. 04. 09 11:40)
2021. 04. 09 11:40 스포츠
지난 2017년 미국 ‘스포츠비즈니스저널’은 북미 프로스포츠의 주 시청 연령대를 분석했다. 2000년부터 2016년까지 16년 동안의 변화를 추적했다. 변화 양상은 극적이었다. 메이저리그의 ‘평균 시청 연령’은 52세에서 57세로 늘었다. 북미 아이스하키 리그는 33세에서 무려 49세로 높아졌다. 미국프로풋볼(NFL) 역시 44세에서 50세로 높아졌다. 스포츠는 ‘아재’들의 몫이었다. 그나마 미국 프로농구(NBA)의 43세가 낮은 편이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류현진(왼쪽)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김하성/AP연합뉴스 Z세대에게는 ‘하품 나는’ 스포츠 젊은 층의 이탈은 더욱 극적이었다. 13~17세 시청자 중 NBA를 가장 좋아한다고 답한 비율은 57%였지만 메이저리그를 좋아한다고 답한 비율은 겨우 4%밖에 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의 적은 ‘고령화’다. 메이저리그로 대표되는 야구는 ‘아재들의 스포츠’가 됐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이들이 느긋하게 ‘파크’라고 불리는 야구장에 앉아 ‘한적함’을 즐기는 스포츠다. 멈춰 있는 시간이 많은데다, ‘점잖은’ 스포츠다. 흰색 유니폼을 위아래로 갖춰입고, ‘허리띠’를 매고 플레이하는 요상한 종목이다. ‘순수함’과 ‘깨끗함’을 추구하는 바람에 유니폼에는 광고도 붙지 않는다. 야구는 게다가 ‘스타킹’까지 신는다. ‘예의범절’의 스포츠라고 스스로를 추켜세우지만, Z세대가 보기에는 ‘하품 나는’ 지루한 스포츠다. 화려한 NBA와 많은 점에서 차이가 난다. NBA 스타들은 ‘힙합 뮤지션’에 가깝다. 빠른 움직임과 화려한 퍼포먼스가 힙합 뮤직과 잘 어울린다. 유니폼을 벗고 사복을 입은 NBA 선수들은 ‘금붙이’로 화려하게 치장한다. 야구선수들은 여전히 이동 때 ‘양복’을 고집하는 팀들이 많다. 메이저리그도 이제 바뀌기 시작했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아재 스포츠’에서 벗어나 Z세대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 지상 과제가 됐다. ‘멋있고 감동적인 야구’가 아니라 ‘개쩌는 야구’, ‘오지고 지리는 야구’, ‘찢는 야구’를 추구하는 중이다. 메이저리그는 2021시즌 개막을 앞두고 ‘개막 기념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아재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웅장한 클래식음악 대신 뉴욕에서 잘 나가는 힙합 뮤지션 NAS의 ‘스파이시(Spicy)’라는 곡에 야구 영상을 입혔다. NAS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만들어진 영상이다. 스파이시는 요즘 말로 하자면 ‘완전 찢어버리는’에 가깝다. 영상에 등장하는 선수들은 더 이상 전쟁에 나서는 장수를 닮지 않았다. 래퍼처럼 웃고, 래퍼처럼 움직인다. 금목걸이가 찰랑이고, 화려하게 장식된 스파이크를 신었다. 영상 속에서 조지 스프링어는 홈런을 때린 뒤 ‘개쩌는’ 표정으로 방망이를 툭 집어 던진다. 오랫동안 메이저리그에서 금기시됐던 ‘빠던(빠따 던지기의 줄임말)’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에서 ‘빠던’은 투수들을 무시하고, 야구라는 종목에 대한 존중을 저버리는 행동으로 평가됐다. 빠던을 하고 나면 다음 타석에서 투수가 몸쪽 깊숙이 위협구를 던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졌다. 힙합 음악과 야구 영상의 조합 2015년 토론토와 텍사스가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만났을 때다. 2승 2패로 맞선 5차전, 3-3 동점에서 토론토 호세 바티스타가 결승 스리런 홈런을 때렸고, 1루로 걸어나가며 화려한 ‘빠던’을 선보였다. 빠던의 복수는 이듬해 5월 ‘잊지 않고’ 이뤄졌다. 바티스타는 텍사스전에서 사실상 고의에 가까운 사구를 맞았고, 이를 갚으러 2루에서 거친 슬라이딩을 하다 텍사스 2루수 루그네드 오도어와 충돌했다. 오도어는 기다렸다는 듯이 오른 주먹을 바티스타의 왼 얼굴에 꽂았다. 이제 ‘빠던’은 금지가 아니라 되레 장려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ESPN은 2016년 ‘빠던’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야구의 ‘빠던’을 소개했다. 화려한 ‘빠던’이 야구의 재미를 살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메이저리그는 2018년 포스트시즌 공식 예고 영상에서 화려한 빠던을 모았다. 점잖은 야구의 대표격이었던 켄 그리피 주니어는 마지막 장면에 등장해 “선수들이 즐기게 내버려 두자(Let the kids play)”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그는 이후 더욱 본격적으로 야구의 고루함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2019년 포스트시즌 공식 영상의 주제는 ‘시끄러운 야구(We Play Loud)’였다. 메이저리그 초창기 흑백영상에 요즘 스타들의 활약상을 합성했다. 빠던과 화려한 세리머니가 강조됐다. 2021시즌 NAS의 ‘스파이시’를 배경으로 한 영상 역시 이런 움직임의 일환이다. 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메이저리그는 2021시즌 유명 가수이자 배우인 닉 조너스와도 파트너십을 맺었다. 조나스는 이번 시즌 동안 메이저리그의 홍보대사 역할을 맡는다. ‘이곳이 천국(#ThisIsHeaven)’이라는 주제로 SNS를 비롯해 여러 미디어를 통해 ‘개쩌는 야구’의 매력을 알린다. 젊은 팬 끌기 위한 생존 몸부림 힙합 뮤지션 릴 웨인도 메이저리그와 협업 파트너다. 웨인은 메이저리그 전통의 응원곡인 ‘나를 야구장에 데려다 주오(Take me out to the ballgame)’를 힙합 스타일로 편곡해 메이저리그 경기 영상에 얹었다. 영상 속에서 선수들은 빠른 템포 속에 ‘빠던’을 하고, ‘힙스러운’ 동작을 이어간다. 웨인은 트위터 팔로워 3500만, 인스타그램 팔로워 1320만인 세계적인 인플루언서로 ‘완전 찢어버리는 야구’를 널리 알린다. 메이저리그의 ‘개쩌는 야구’, ‘완전 찢어버리는 야구’를 위한 노력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포브스가 ESPN이 시청률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코로나19 때문에 외부 활동이 줄어들면서 18~34세 그룹의 메이저리그 시청률은 전년 대비 69% 늘었는데 상당 부분 히스패닉 시청자들의 증가 덕분이다. 거꾸로 12~17세 사이 연령대에서 ‘확실한 스포츠팬’이라고 대답한 비율은 10년 전 42%에서, 지난해 34%로 줄어들었다. Z세대 전문가인 마크 빌 룻거대학 교수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Z세대는 3시간이나 앉아 뭔가를 계속 보는 일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빌 교수는 “야구는 물론이고, NFL 결승인 슈퍼볼, 아카데미 시상식 등이 모두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메이저리그는 살아남기 위해 ‘개쩌는 야구’, ‘완전 찢어버리는 야구’를 향한다. 이제 프로스포츠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야구의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야구라는 종목의 스타일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김재현의 생각있는 스타톡](5) 전설의 천하장사 이태현 용인대 무도스포츠산업학과 교수(2021. 01. 29 17:13)
2021. 01. 29 17:13 스포츠
ㆍ“앞으로 삶의 목표도 ‘씨름’ 두 글자” 이태현 용인대 무도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씨름판을 호령하던 ‘전설’이다. 630경기 472승 158패(승률 74.9%)로 역대 최다 전적, 최다승과 천하장사 3회, 백두장사 20회 등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은퇴 후 학자, 씨름 홍보대사, 씨름 해설위원으로 바쁘게 살고 있다. 민족 고유의 스포츠인 씨름이 남북화해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이 교수는 “우리가 먼저 화합을 만들어내면 그것이 곧 세계적인 씨름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김재현의 생각 있는 스타톡이 이 교수를 만나 씨름을 세계화하고 싶은 그의 ‘꿈’을 들어봤다. -씨름 홍보대사, 씨름 해설위원, 용인대 교수, 씨름부 선수지도 등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게 나에게는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하나의 덩어리가 되고, 결국 그 꼭짓점은 씨름이 되더라. 나의 앞으로의 삶의 목표는 아마도 ‘씨름’ 이 두글자가 아닐까 싶다.” -씨름은 한반도의 ‘전통 스포츠’다. 남북교류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남북이 갈라지기 전에는 같은 씨름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 맞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북한은 옷을 입고 우리는 팬티만 입고, 샅바의 방법도 우리는 타이트하게 북한은 느슨하게, 씨름장이 우리는 모래, 북한은 매트다. 하나의 씨름으로 만들고 싶다. 우리가 같은 민족인데 휴전선으로 나뉘었다는 이유만으로 왜 다른 씨름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먼저 화합을 해서 (씨름을 하나로) 만들어낸다면 그것이 곧 세계적인 씨름이 되지 않을까 싶다. 대표자들이 만나서 합의를 하면 좋겠다. 씨름은 과거부터 승자를 만들어 누군가를 짓밟는 것이 아니고 마을 간에 불화가 있을 때, 일종의 화합을 위한 행위로 사용했다. 농경 시절에 어느 쪽에 물을 먼저 댈지, 어느 쪽 품앗이를 먼저 할지 결정하고자 할 때 마을의 대표가 나와 이긴 팀부터 돕고, 음식을 대접해 잔치를 열었다. 그래서 씨름은 우승과 화합, 먹거리가 따른다. 우리도 남북의 거리가 이렇게 떨어져 있을 때, 씨름이라는 매체를 통해 풍성하게 음식을 가져다 놓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리는 함께하는 화합의 장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남북이 서로 몸을 맞대면 잘 소통되는 것 같다. “맨살을 맞대며 하는 운동은 씨름이 유일하다. 그러다 보니 씨름하는 선수들은 성격이 굉장히 온순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2019년 전통 민속 씨름이 남북 공동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 등재 의미는 무엇인가. “이제는 씨름이 우리만의 잔치가 아닌 전 세계인들이 함께 배우면서 보존해 후대에 알릴 의무가 생겼다는 거다.” -씨름이 유네스코 등재될 때 현장에 있었다. 느낌은 어땠는가. “북한이 먼저 유네스코에 독자적으로 씨름을 등재하려다가 실패했다. 이후 남북이 공동으로 자료를 보충해 등재를 시도했는데, 솔직히 확률이 반반이었다고 한다. 씨름이 유네스코에 등재가 됐다고 발표되는 순간 남북뿐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전 세계인들이 기립박수를 쳤다. 그때 기뻐도 눈물이 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온몸에 닭살이 돋으며 말도 못 하겠더라. ‘드디어 우리가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냈다’는 의미는 ‘세계 진출을 할 수 있는 기본(바닥)을 다졌다’라는 의미다. 그날 유네스코 행사에 참석했던 북측 대표자 두사람이 나에게 와서 ‘실례지만 뭐하나 물어봐도 됩니까?’라고 묻더라. 큰 질문일 줄 알았는데 몇㎏인지 물었다. 내 몸무게를 듣고는 ‘대단하다’며 놀라워했다. 이처럼 개인적인 것을 물어볼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우리가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막상 대화하다 보니 별것 아니었는데 왜 여태까지 벽을 갖고 있었나 싶더라.” -씨름을 세계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첫 번째는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경기규칙을 좀 더 다듬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것을 가지고 세계에 보급해야 하는데 씨름인들만으로는 힘들다. 국가나 기업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도움을 받게 되면 헌신적으로 알리고 세계인들을 한데 묶어 함께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씨름인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선수들을 초청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 “일단 소주 한잔해야 할 것 같다(웃음). 그래야 많은 생각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집에 초대해 그냥 내 삶을 보여주고 싶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면 그들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까 싶다. 국밥 한그릇 먹고 에버랜드 갔다가, 민속촌도 가고 내가 사는 용인을 보여주고 그러면서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인 얘기 좀 해보자. 씨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아버지 친구분의 아들이 씨름을 했다. 감독이 나를 딱 보더니 우유랑 빵을 준다고 ‘내일부터 나와’ 했다(웃음). 내 고향이 김천인데 구미까지 아침마다 1시간씩 버스를 타고 통학했다.” -씨름이 적성에 맞았나. “초등학교 때까지는 너무 힘들어 씨름의 묘미를 몰랐다. 의성중학교 3학년 말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고등학교 선배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바른길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씨름에 대한 묘미를 찾고, 목표가 생겼다. 제일 좋은 건 내가 노력한 만큼의 보답이 왔다는 거다. 씨름이 고마웠다.” -현역시절에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이었나. “(웃음)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운동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한겨울에 뛰다가 목이 너무 말라 내리는 눈을 넘어지면서 한움큼 잡고 입안에 넣고 뛰기도 했다. 순간적으로 ‘이 산에서 떨어지면 한 일주일 쉬겠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한창 동계훈련할 땐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운동을 했다. 가장 힘든 시기는 고등학교에서 프로로 전향할 때였다. 고교 졸업 이후에 대학 진학이냐, 실업 프로팀에 취업하는가를 놓고 고민했다. 내가 수능 1세대였는데, (입시에) 떨어졌다.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거였다. 그때가 제일 정서적으로 힘들었다. (그래도) 그다음에 재수했는데 역시 공부를 하니까 거기에 맞는 성적이 나오더라.” -스무 번이 넘도록 ‘장사’ 자리에 올랐다. 자신에게 ‘장사’는 어떤 의미인가. “20대 때 청바지와 가죽점퍼가 트레이드 마크였다. 천하장사를 하고 나서도 그렇게 입고 다녔다. 그러니까 어른들이 ‘천하장사가 맨날 이렇게 입고 다니냐’고 했다. 내가 씨름의 대표라고 했다. 또 지나가다가 더워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천하장사가 어디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냐’는 거다. 어릴 때는 ‘아니, 더워서 아이스크림 먹고 있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순간 씨름에 연륜이 쌓이고 장사를 여러 번 하면서 사람들한테 호응과 관심을 받고 나서부터는 행동을 조심하게 됐다. 길가에 침도 못 뱉겠더라. (내가 하는) 행동들이 씨름 전체의 이미지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거다. 장사라는 것이, 노력해 얻은 대가도 있지만, 거기에 따른 책임감도 분명 가지고 있다. 나는 (그 책임감을) 잘 이끌어가는 선수가 좋은 선수라고 생각한다.” -국내의 씨름 부흥을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관중이 있어야 스포츠가 살아난다. 그러려면 모래 위에서 희로애락이 나와야 한다. 이겼을 때 즐거움을, 패배했을 때의 슬픔을 모래 위에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한판 지더라도 나의 기쁨을 만들기 위해 더 파이팅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경기력은 후배들이 노력해 많이 올라왔는데, 아직까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은 좀 부족한 것 같다. 이만기·강호동 선배들 보면 모래 위에서 텀블링을 하고 고함을 지르고 한다. 이겼다고 환호를 하면 사람들이 같이 좋아해 주고, 졌을 때 모래를 치면 아이고 소리도 난다. 이런 게 나왔을 때 (관중과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그게 조금 더 가미가 된다면, 진짜 대형 스타가 나올 것 같다.” - 선수 시절에 별명이 ‘황태자’였고, 최고 미남이지 않았나. “지금 선수들 너무 잘 생겼다. 내가 봐도 부럽다.” -스포츠에는 ‘홈어드밴티지’가 있다. 씨름도 그런가? “씨름은 반대다(웃음). 씨름은 집(고향)에 가면 팬들이 많으면 웅성웅성하고, 기대감이 커진다. 축구, 야구, 농구 같은 구기종목은 시간 파트가 나뉘어 있기 때문에 장시간 보여줄 수 있는데, 씨름은 단 1초에 끝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구미에서 시합할 때, 내가 듣기에는 (관중의) 90%가 이태현을 외쳤다. 그러면 들어갈 때 기분은 정말 좋다. 그런데 한판 이기고 경기장에 들어오면, 가슴이 벌렁벌렁 뛴다. 이런 홈어드밴티지가 개인적으로는 부담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역대 상금 랭킹 1위인데? “지금 남은 건 없다(웃음). 보통 상금을 타면 팀 회식을 했다. 시합 끝나고 고기를 먹고, 뒤풀이로 호프집에 가서 맥주와 폭탄주 마셨다. 그날 저녁은 기분 좋아 쐈다. 1994년에 첫 장사 때 1500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동네잔치부터 모교 찾아가고, 주위 인사도 하고 밥을 수십 번 샀다. 심지어 기념품도 만들었다. 그러니까 천몇백만원 적자가 났다. 94년 추석부터 95년 추석까지 9연승을 했다. 아버지께서 ‘대현아, 이제 밥 못 사겠다’고 하셨다(웃음).” -예전 선수들은 막대한 수입을 올리면 많이 베풀었던 것 같다. “씨름은 상대가 있어야 실력을 키울 수 있다. 혼자 연습을 하는 건 한계가 있다. 기술 훈련은 동료가 있고, 팀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서로 큰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감사를 표현할 정도만 이뤄진다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김재현의 생각있는 스타톡
[방구석 극장전]차별에 도전하는 여성 스포츠 다큐(2021. 01. 22 15:40)
2021. 01. 22 15:40 문화/과학
스포츠 다큐멘터리는 인간의 신체 능력 한계를 극복하거나 초월하는 지점에서 고전 영웅 신화에 가깝다. 다큐지만 ‘휴먼드라마’적 측면이 부각되는 건 인간 본성이 ‘무적의 챔피언’보다는 ‘무명의 도전자’에 심정적으로 기우는 것에 기인한다. 개인의 육체적 능력이나 기술을 넘어 차별을 극복하는 사회적 의미가 더해질 때 공감대와 감동은 극대화된다. ‘나는 스모선수입니다’ 포스터 / 넷플릭스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는 늘 우리 주변을 배회한다. 하지만 어떤 변화건 그저 이뤄지는 경우는 없다. ‘나는 관대하다’는 유행어가 거짓인 것처럼 의문을 품은 소수의 각성과 희생을 통해 변화는 더디게 이뤄져 왔다. 한국사회 곳곳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여성들의 권리투쟁 또한 마찬가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단편 다큐 <나는 스모선수입니다>의 주역은 일본 여성 스모선수 곤 히요리다. 그는 기량을 인정받지만 스모계에서 여성 선수는 학창시절 취미 활동에만 그친다. 심지어 예전에는 스모의 링인 ‘도효’에 여성의 몸이 닿으면 부정탄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소개하며 곤 히요리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여성 스모선수 전성기가 스무 살이라는 말에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은 신체 능력 절정은 20대 중후반이지만 어차피 프로로 갈 수 없기에 스무 살이라는 것이다. 대학에서 성 평등에 대해 공부하며 그는 벽을 깨트리고 싶어한다. 곤 히요리는 여성 스모가 인기를 얻으면 금기가 힘을 잃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려면 실적을 내야 한다. 영화의 백미는 그 증명을 위해 출전한 2018년 세계 스모 선수권대회다. 그가 결승에서 머리 두개는 큰 러시아 선수와 겨루는 순간은 압권이다. ‘마의 스무 살’을 돌파해 스모를 계속할 것을 다짐하며 ‘전통’으로 포장된 편견에 맞선 투쟁은 계속된다. <레이디스 퍼스트: 내일을 향해 쏴라>의 주인공 디피카 쿠마리는 열여덟 살에 세계 여성양궁 랭킹 1위에 올랐다. 인도에서도 가장 빈곤한 지방 출신인 그는 열여덟 살이 되면 조혼해 일생 집안에 갇히는 ‘예정된 미래’를 탈출하고자 열두 살에 양궁교실 문을 두드리고 크게 성공한다. 하지만 올림픽 메달은 번번이 실패한다. 친구 하나 못 사귀고 연습에 매진하지만 ‘한국 같은 엘리트 스포츠 강국형 선수관리’를 받지 못하는 그는 마지막 벽 앞에 번번이 좌절한다. 선수단 출국 현장에서 선수들은 이코노미석, 인솔 관료와 정치인은 비즈니스석에 타는 장면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디피카 쿠마리는 말한다. ‘레이디스 퍼스트’는 왜 교육이나 스포츠에서는 의외냐고. 차별을 깨뜨리기 위해 실적주의를 이용하지만 그건 양날의 칼이다. 체계 개선보다 패배한 선수를 비난하는 게 쉽기 때문이다. 그는 후배들에게 의지드립이 아닌 ‘노력을 옳은 방법으로’ 하길 주문하며 오랜만에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13억 인도를 포함 31억 개발도상국에서 올림픽 여자 금메달 배출이 전무하다는 자막이 화면에 새겨진다. 아직도 세상에는 꼭꼭 가둬놓고 안 시켜줘서 못하는 게 너무나 많다.
방구석 극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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