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총 5 건 검색)
- [표지 이야기]“복지국가는 시장경제와 잘 어울려”(2019. 11. 18 14:57)
- 2019. 11. 18 14:57 사회
- ㆍ에로 수오미넨 주한 핀란드 대사, 노르딕 사회 모델에 강한 믿음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의 핀란드는 독일과 러시아 같은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독립과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 나라다. 20세기 초 좌우 대립으로 내전을 겪었고, 중반기에는 짧은 시간 동안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격히 이행했다. 우리와 역사적으로 비슷한 점이 있지만 다른 점도 있다. 진영 갈등이 여전히 첨예한 한국과 달리 타협과 합의의 정신으로 손꼽히는 복지국가를 일궜다. 사진/이준헌 기자 지난 11월 11일 서울 광화문 핀란드대사관에서 만난 에로 수오미넨 주한 핀란드 대사(64)는 복지국가와 시장경제의 조화 그리고 합의 문화의 밑바탕에 사회적 신뢰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 대다수가 노조에 가입하고, 노동계가 정치에 깊이 관여하는 구조가 평화로운 노사관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수오미넨 대사는 부의 불평등 악순환을 막기 위한 교육의 역할도 강조했다. -북유럽 국가들을 두고 자본주의 국가보다 사회주의 국가에 가깝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북유럽 국가들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말을 종종 듣긴 하지만 사실과 상당히 다르다. 오히려 기업가 정신이나 기업 친화적 환경이라는 측면에서 북유럽 국가들은 각종 지표에서 상위권에 위치한다. 세금을 많이 거둔다고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긴 어렵다. 다만 세금으로 보편적 건강보험 같은 제도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려는 복지국가라고 할 수 있다.” -부의 불평등의 악순환을 어떻게 막을 수 있나. “핀란드의 지니계수는 상당히 낮다. 소득에 있어서 상당히 평등한 국가라는 의미다. 사람들은 이웃이 얼마나 버는지 궁금해하는데 얼마의 세금을 매기는지, 사람들이 얼마나 버는지를 모두 공개한다. 이는 불평등을 경계하게 해준다. 불평등이 낮을수록 경제에 좋다. 가정 배경에 상관없이 교육에서 공평한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 할아버지는 고아라서 학교에 갈 수 없었다. 하지만 1950년대 복지국가가 처음 태동하면서 능력 있는 모든 사람에게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열렸다. 세금으로 이룬 교육과 인프라로 슈퍼셀 같은 매우 성공적인 회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많은 세금을 내고, 그만큼 사회가 돌려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핀란드도 커다란 위기를 겪었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나. “위기가 동시에 일어났다. 무역거래가 많은 이웃인 러시아가 어려웠고, 유럽도 위기였다. (핀란드의 대표기업인) 노키아에도 큰 타격이 왔다. 다행히 노키아는 휴대폰 제조에서 네트워크 사업으로 옮길 정도로 유연성이 있었고, 축적된 연구개발로 다양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다. 기술자들이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에 맞게 특허를 재설계해 창업할 수 있었다. 수출의 상당 부분이 투자재라 경기침체에서 회복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꽤 잘 극복했다.” -핀란드 실업률이 7.4% 정도로 꽤 높은데 성장률은 2.3%로 준수했다. “실업률이 높은 것은 IT·조선·자동차 산업에서 숙련 노동자의 수요가 높지만 공급이 이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분야의 인력을 교육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새로운 직업에 맞는 교육을 하는 게 늘 가능한 것은 아니다. 특히 IT는 전문분야다. 그래서 우린 한국의 개발자들과 하드웨어 기술자들이 핀란드에 와서 일하길 희망한다.” -핀란드의 경제적 성공에 고용의 유연안정성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일정 부분 동의한다. 아시다시피 핀란드의 노조가입률은 매우 높다. 대다수 사람들이 노조에 가입되어 있다는 건 그만큼 노조가 상당히 중도적이라는 뜻이다. 노조에 대한 불신은 없다. 나도 외무부 노동조합 소속이다. 북유럽 국가에선 노동조합이 정치 시스템에 매우 잘 통합되어 있다. 예를 들어 현재 핀란드 총리 역시 과거 노동조합 위원장 출신이고, 스웨덴 총리도 전 노조위원장 출신이다. 고용주 외에 누구든 노조원이 될 수 있다. 군대에도, 경찰에도, 의사들도 노동조합이 있다. 물론 노조원이 되지 않을 자유도 있다. 하지만 노조에 가입하면 이점이 있다. 고용주와 분쟁이 있을 때 언제든 노조에서 법률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미국 대선 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은 노동자의 경영 참가를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핀란드에선 노동자들이 기업 이사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이는 노조를 상당히 온건하게 만든다. 기업 이사회에 참여해 기업의 실제 상황과 활동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활동이 어려움에 처하는 건 결코 노조의 이해에 부합하지 않는다. 일자리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파업을 할 수 있다. 현재 핀란드 우체국 노조가 파업하고 있지만 상당히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선 정치와 권력기관에 대한 불신이 크다. “신뢰를 구축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핀란드는 1917~1918년 내전을 겪었다. 당시 선거에서 가장 큰 승리를 거둔 곳은 사회민주당이었지만 내전에 패한 후 그들은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다른 정치 세력을 배제하지 않고 끌어들여 함께 정부를 구성했다. 그 이후 핀란드 역대 정부가 모두 연립정부였다. 3개의 큰 정당이 있다면, 대개 2개의 정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한다. 신뢰와 통합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책임을 지우고 함께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극단적이 될 수 없고, 실용적인 선택과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선 부동산과 교육을 통해 부가 세습되고 있다. “핀란드에서는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시행한다. 학위를 가진 부모의 자녀가 학위를 갖는 경우가 많지만 기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얼마나 열의가 있고, 열심히 하는지가 중요하다. 학생에 대한 주거지원도 하고 있다. 학업은 더 이상 돈의 문제가 아니다. 핀란드는 수출과 혁신에 기반을 둔 작은 나라다. 개인의 능력을 개발하도록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동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한국도 대학 무상교육을 시행하려면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겠지만, 이것이 사회에 지적인 부를 가져온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핀란드에서 진행했던 기본소득 실험은 어떻게 평가하나? “2017년부터 2년간 200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기업가 정신을 활성화하고, 노동시장 참여를 촉진하는지, 복지 시스템을 간소화할 수 있을지 알아보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의 일할 의욕을 줄이는 경우가 있었다. 기본소득은 해결책의 하나가 될 수 있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다른 방식의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본주의 미래를 말한다면. “시장경제는 사회안전망, 법의 지배와 표현의 자유, 신뢰, 규제와 함께 가야 한다. 지금까지는 자본주의가 가장 효과적인 생산방식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200년 전의 그것과 다르듯이, 더 나은 새로운 경제 모델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린 북유럽 사회 모델, 복지국가에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고 시장경제와 잘 어울릴 것이라고 본다. 안정적 경제성장이라는 측면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할 필요도 있다. 핀란드 정부는 2035년까지 탄소중립 사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건 핀란드 산업협회가 정부에 야심 찬 탄소 감축 목표를 세우라고 상당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혁신과 성장을 위해 이런 방식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표지 이야기
- [칼럼]진보정부와 시장경제(2017. 12. 26 18:59)
- 2017. 12. 26 18:59 오피니언
- 세 번째 진보정부인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200여일이 지났다. 진보정부와 시장경제 사이에는 언제나 긴장이 발생한다. 모든 진보정부는 기본적으로 시장 기능이 불완전하다고 믿으며 시장에 개입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진보정부는 시장경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낯설고, 시장은 어떤 변화를 직면하게 될지 불안하다. 박복영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 문재인 정부는 시장경제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을까? 이런 철학적 문제에 정부가 입장을 밝히기를 기대할 수는 없고, 다만 여러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서 그 입장을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몇 달을 지켜본 나의 판단은 이렇다. 이번 정부는 시장경제 바깥의 개입으로는 불충분하고, 시장 내에 일부분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시장 바깥의 개입은 무엇이며, 시장 내의 개입은 무엇인가? 바깥의 개입은 사후 개입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시장경제가 작동한 후 나타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입이다.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세금을 인상하거나 저소득층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반면 시장 내 개입이란 수익 추구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 자체에 개입하는 것이다. 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전자에 비해 시장기능에 대한 신뢰도가 더 낮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문재인 정부도 복지를 확충하며 시장 바깥의 개입을 크게 늘리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 포용적 금융, 산업경쟁력을 고려한 기업구조조정 등의 정책을 보면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회적 경제란 이윤 추구 외에 약자나 환경 보호와 같은 다른 사회적 가치도 고려하면서 기업을 경영하라는 것이다. 포용적 금융이란 금융기관 역시 약자를 포용하는 방식으로 대출을 하라는 의미다. 부실기업을 정리할 때도 기업의 회생 가능성만 보지 말고 산업 전반의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라는 것이다. 경제 양극화와 물질주의가 심화되는 마당에 적절한 방책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접근에 기댄다면 진보정부 5년이 별다른 성과 없이 흘러갈 위험이 크다. 진보의 일부는 최초의 진보정부인 김대중 정부가 소위 신자유주의에 경도되고, 뒤이은 노무현 정부는 복지는 확대했지만 시경경제 그 자체를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불평등이 나타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진보는 시장 바깥의 개입에 멈추지 말고 시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장에 다른 사회적 가치도 같이 고려하라는 것은 우리 실정에 너무 앞서간 과제이다. 하나의 화살로 두 과녁을 맞추라는 것과 같다. 소화불량에 걸린 부처나 공무원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끝날 것이다. 기업이나 금융기관은 사회적 공기인 양 시늉하며 적당히 정권의 눈치를 볼 수도 있다. 부실기업은 산업경쟁력 유지라는 명목에 갇혀 누구도 처리를 미룬 채 부실만 키울 가능성이 크다. 두 과녁보다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한 과녁만 겨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장이 과잉작동해서 문제가 아니라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큰 문제다. 기울어지고 닫힌 운동장을 평평하고 열린 운동장으로 만드는 제도적 개선이야말로 진보정부의 최대 개혁이 될 것이다. 한국의 보수에게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 칼럼
- [세계]‘아랍 사회주의’ 이집트 시장경제 바람(2010. 07. 14 14:37)
- 2010. 07. 14 14:37 국제
- ㆍ29년째 독재 장기집권으로 인한 ‘정체’ 탈피 위해 변화 조짐 지난 5월 오사마 살레 투자청장이 이끄는 이집트 투자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했다. 투자사절단은 포스코와 삼성, STX, LG 등 한국 기업과 접촉해 이집트 투자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리고 2008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홍해 연안 수에즈경제구역(SEZ) 개발과 관련해 인천경제자유구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지난 6월 말 이집트투자청(GAFI)은 한국 기자단을 카이로에 초청, 기업지배구조 컨퍼런스를 참관하게 하고 기업 설립 절차를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간소화한 ‘원 스톱 숍’을 보여 줬다. SEZ에 취재진을 데려가 사실상 투자유치·운영 등 서비스를 총괄하고 있는 중국 쪽 관리자들과 만나게 했다. 이집트가 ‘차세대 성장동력’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는 홍해 바닷가 자파라나의 거대한 풍력발전 플랜트도 견학 코스의 일부였다. 7월 4일 알제리를 방문한 이집트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가운데). | AP연합뉴스 투자 유치를 위해 외국 기자단을 불러 홍보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며, 이번 행사도 특별히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눈길을 끈 부분이 있다면 ‘이집트가 한다’라는 것이었다. 이집트는 중동 정세의 지렛대이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의 중재자이며, 호스니 무바라크라는 독재자가 1981년 이래로 29년째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 나라다. 오랜 역사 못잖은 국제적 영향력을 발휘해 왔고, 유엔 사무총장(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전 총장)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총장)과 아랍연맹 사무총장(암르 무사 현 총장)을 배출했다. 관광수입 의존 제조업 낙후 그러나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이집트는 수십년 동안 정체를 거듭해 왔다. GAFI 초청으로 이뤄진 지난 6월 카이로 방문에서 맞닥뜨린 이집트의 모습은 조금 생소했다. 이집트가 투자 유치에 적극 나섰다? 가말 압델 나세르 초대 대통령 이래로 ‘아랍 사회주의’를 표방해 온 이집트가 시장경제로 옮겨 가고 있다? ‘어차피 사람들은 피라미드를 보러 온다’는 듯한 태도로 관광 인프라 투자마저 게을리하던 이집트가 ‘원 스톱 숍’을 자랑하는 모습은 어색해 보이기까지 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IAEA 사무총장이 6월 25일 경찰의 고문 수사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한 군중에게 둘러싸여 손을 흔들고 있다. | AP연합뉴스 이집트에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이유는 분명하다. 이제 82세가 된 무바라크가 노쇠해졌다는 것, 미국조차 29년째 계엄통치를 이어가는 무바라크 독재정권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 어떤 방식으로든 ‘포스트 무바라크’ 체제로 옮겨가면서 국민들의 저항을 누그러뜨릴 온건 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집트에 가장 큰 위기 의식을 불어 넣은 것은 최대 맹방이던 미국이다. 조지 W 부시 정권은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중동 민주화 구상’을 내세웠으며, 이집트에도 미온적이나마 개혁을 종용했다. 압박에 밀린 무바라크는 2005년 ‘사상 첫 다당제 대선’을 실시했다. 물론 선거는 공정하지 않았다. 야당 지도자인 아이만 누르는 극도로 탄압을 받았고, 선거 부정에 대한 고발과 저항이 줄을 이었다. 이 와중에 무바라크는 88.6%의 지지율로 당선돼 ‘5기 집권’을 이어갈 수 있었다. 비록 형식적인 선거였다고는 하지만 국민적인 저항의 분위기, 무슬림형제단 등 이슬람 조직의 부상은 정권에 경각심을 심어 줬다. 성공의 열쇠는 ‘정치’ 이집트는 관광 수입과 미국 원조에 크게 의존하면서 제조업이 낙후돼 사실상 이렇다 할 공장이 없었다. 아랍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관행 때문에 민간 부문이 취약하고, 공공 부문 효율성이 매우 떨어졌으며, 부패도 심했다. 경제는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무바라크는 저항을 누르기 위해 국민들의 큰 불만거리인 경제 문제에서 개혁을 약속했다. 핵심은 일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대선 1년 전에 임명된 아흐마드 나지프 총리가 중심이 되어 민영화, 외국투자 유치, 관세 인하 등 사업을 추진했다. SEZ도, GAFI의 홍보전도 모두 이런 정치적·경제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집트는 인구 8000만명의 커다란 내수시장, 중동·아프리카·아시아의 교차점이라는 입지, 저렴한 노동력 등 발전 요인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슬들을 꿰어 보배로 만들어야 할 정부의 효율성, 투명성, 신뢰도는 낮다. 이집트가 후진적인 정치에 발목이 잡혀 이번에도 성장의 기회를 놓치고 말지는 내년 대선에 달려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아들 가말. | AP연합뉴스 무바라크가 아들 가말(46)에게 권력을 물려주려고 준비한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가말 지지도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모하메드 엘바라데이도 내년의 대권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나름대로 돌풍을 일으킨 아이만 누르도 다시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젊은 유권자들은 “모두 다 싫다”라고 입을 모았다. 카이로에서 만난 아비르(24)는 “무바라크도 싫지만 엘바라데이는 친미파인 데다 외국에 오래 머물러 있어 국내 사정을 잘 모른다”면서 “지지할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타미르(26)는 “가말이 집권하면 안정을 유지하면서도 개혁 속도를 좀 더 빠르게 하지 않을까”하고 기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는 아무도 찍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젊은 유권자 메이(26)는 가말 무바라크에게 기대하고 있었다. “가말은 이집트의 문제, 이집트의 정치 현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또한 개혁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고, 실행에 옮길 능력이 있다.” 아비르, 타미르, 메이는 모두 무바라크 집권기에 태어나 그 이외의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 이들에게는 선택지가 별로 없어 보였다. 늙은 무바라크의 시대가 좀 더 계속되거나 젊은 무바라크의 시대로 이어지는 두 가지 길 외에 현실적으로 민주적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막혀 있는 탓이다. 메이가 ‘개혁의 적임자’로 믿고 있는 가말은 적어도 아버지와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카이로에서는 경찰관 2명이 인터넷 카페에서 칼레드 사이드라는 28세 남성을 체포한 뒤 살해했다. 사이드는 경찰이 단속으로 입수한 마약을 나눠 갖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경찰들에게 보복 살해됐다. 미국과 유럽이 이 사건을 문제 삼자 가말은 지난 7일 “범인들을 철저히 조사해 정의를 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말이 인권을 옹호하려는 마음이 있는지, 돈줄인 우방들에 밉보이지 않으려는 것 뿐인지는 알 수 없다. 미래를 점치기엔 이집트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 [요즘 이 책]시장경제 아래서는 자유도 평화도 없다(2009. 07. 09)
- 2009. 07. 09 문화/과학
- 거대한 전환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도서출판 길 자본주의 아니면 공산주의, 친미 아니면 친북이라는 이분법적 흑백논리 만이 자리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폴라니의 영역을 확보해 내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인간과 자연환경의 운명이 순전히 시장 메커니즘 하나에 좌우된다면, 결국 사회는 폐허가 될 것이다.” 2008학년도 서울대입시 논술시험에 제시된 칼 폴라니의 경고다. 그의 책 (도서출판 길)을 홍기빈(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드디어’ 번역, 출간됐다. 1991년 같은 책이 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됐지만, 얼마 후 절판됐다. 서울대 입시생들은 이 책의 번역본조차 읽지 못한 상태에서 논술시험을 치러야만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우리 사회의 학문적 깊이와 개방성, 나아가 예지력의 증거일까, 아니면 대학입시 제도의 총체적 모순에 대한 유력한 반증일까. 각설하고, 시장만능주의에 기초한 신자유주의의 위기, 나아가 현실자본주의의 실패가 우리 사회에 폴라니를 불러왔다. 입시용이 아니라 이번엔 제대로다. 바야흐로 ‘대안으로서의 폴라니 시대’다. 21세기 우리 사회에서 시장은 완전무결한 하나의 신화다. 시장에 반대하는 이는 빨갱이일 뿐이다. 그런데 저자는 시장을 부정한다. 그렇다고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다. 그는 “22세 이후로는 마르크스주의에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 저자의 정확한 입장은 ‘자기조정 시장경제’라는 신화를 부정하는 데 있다. 그에게 시장경제란 ‘전혀 도달할 수 없는 적나라한 유토피아’일 뿐이다. 시장에 의해 조정되는 경제란 우리 시대 이전의 그 어떤 때에도, 심지어 원리 차원에서조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교환을 통해 이익과 이윤을 얻는다는 동기가 인간의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적도 없었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과 화폐를 단지 상품으로만 보고 ‘시장’에 맡겨둔다면, 결국 인간의 자유와 이상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비극만 낳고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장경제 아래서는 자유도 평화도 제도화될 수 없었다. 그 체제가 목표로 삼는 것은 이윤과 물질적 안녕을 창출하는 것이었지 평화와 자유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20세기 초 파시즘, 붉은 혁명, 1·2차 세계대전, 대공황의 시대를 함께 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무엇이 인류를 이토록 고통스럽게 하는 것일까였다. 결론은 영국의 산업혁명, 그리고 그로 인해 나타난 자기조정 시장경제의 출현이 기원이었다. “오늘날 자기조정 시장경제라는 신화는 실질적으로 사망했다.”(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발문) 시장경제라는 것을 구상하겠다는 유토피아적 사고방식은 전 지구적으로 힘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어떤 경제와 어떤 사회를 구성해야 할까. 폴라니의 대답은 자유다. 전체주의도 아니고, 하이에크류의 자유주의도 아니다. 공산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니다. 개인의 자유와 인간의 영혼은 분리할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는 본연의 모습이다. 그래서 자유다. 사회라는 실체와 거기에 담겨 있는 인간의 자유와 가치를 분명히 하고, 국가와 시장을 인간의 존엄에 복무할 수 있는 기능적 제도로 자리매김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기능적 민주주의’다. 저자는 국가와 시장이 아닌 사회 속의 노동조합, 지자체, 소비자·생산자 조합 등 다양한 인간 집단 사이의 내부적 의사소통과 연대를 강조한다. 이들 사이의 대화와 이해, 관계망은 핵심요소다. 자본주의 아니면 공산주의, 친미 아니면 친북이라는 이분법적 흑백논리만 자리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폴라니의 영역을 확보해내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폴라니의 책이 처음 출간됐던 1944년 당시가 그랬다. 프랑스에서도 1983년에야 이 책이 번역됐다. 바른 길은 늘 더딘 법이다. 자본주의 말고는, 시장 유토피아 말고는, 신자유주의 말고는, 어떠한 상상력도 갖지 못하는 우리 사회야말로 을 읽어야 한다.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의 제안대로 ‘폴라니를 새로 읽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작은 생각들이 모여 대안이 된다. 최재천 cjc4u@naver.com
- 최재천의 책갈피
- [그때 그장면]북한, 시장경제 혁명적 수용(2007. 07. 17)
- 2007. 07. 17 정치
- 7·1경제관리개선조치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는 오랜 가뭄과 풍수해 등으로 수백만 명이 굶어죽는 참사가 벌어졌다. 북한 주민들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직장에서 빼낸 물건이나 배급받은 생필품까지 암시장에 내다팔았다. 당시 북한의 국영상점, 장마당(시장) 같은 공식적인 경제 부문은 완전히 기능을 상실했고, 오직 암시장만 존재했다. 암시장에서 형성되는 물건 가격은 북한 정부가 공시한 가격의 수십~수백 배에 달했다. 북한은 2002년 여름 음성적으로 자리 잡은 시장경제 요소를 공식적으로 수용하는 혁명적인 정책를 발표했는데, 그것이 7·1경제관리개선조치다. 7·1조치는 ▲임금 및 물가 현실화 ▲환율인상 및 배급제의 단계적 축소 ▲사회보장 축소 ▲기업의 자율권 확대 ▲인센티브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사진은 2002년 7월 북한 아낙네들이 함경북도 나선시의 한 협동농장에서 공동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북한이 7·1조치를 단행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주민들의 평균 생활이 뚜렷하게 윤택해졌다는 자료는 나오지 않는다. 시장경제와 계획경제가 어정쩡하게 동거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경제 요소를 부분적으로 도입했지만 주민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공급이 뒤따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북한의 ‘절름발이 경제’가 언제쯤 정상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까.
- 그때 그장면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