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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의 ‘제로 코로나’ 시험대에 서다(2022. 12. 02 11:09)
- 2022. 12. 02 11:09 국제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도해온 ‘제로 코로나’ 정책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주요 도시와 대학에서 1989년 톈안먼광장 시위 이후 가장 광범위한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다. 11월 27일 중국 베이징 칭화대에서 학생들이 백지를 들고 봉쇄 해제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AP연합뉴스 발단은 지난 11월 24일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아파트 화재다. 화재로 10명이 사망하고 9명이 다쳤다. 진화와 대피의 지체 이유가 우루무치에서 석 달째 진행 중인 봉쇄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봉쇄에 지친 중국인들의 분노에 불이 붙었다. 우루무치 당국은 화재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어 봉쇄와 화재사건 사이의 연관성을 부인했으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소방차가 화재현장에 충분히 근접하지 못해 소방차의 물줄기가 불길에 닿지 못하는 영상이 퍼졌다. 일부 SNS 사용자들은 아파트 문이 밖에서 잠겨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1월 26일 상하이 우루무치중루에서 수천명의 시민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11월 24일 우루무치에서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빈다”는 손팻말과 촛불을 들고 코로나19 봉쇄 해제를 요구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한발 더 나아가 “시진핑 퇴진”, “공산당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도 외쳤다.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 후 반정부 시위 폭발 시위는 베이징, 난징, 광저우 등 주요 도시로 확대됐다. 시민들은 검열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흰 종이를 들고 “봉쇄 대신 자유를 원한다”, “노비 말고 공민이 돼야 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시 주석 모교인 칭화대와 베이징대를 포함해 50여개 대학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칭화대에서는 학생 수백명이 국가와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면서 “봉쇄는 그만,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고 외쳤다. 시위 참가자들은 당국의 검열에 항의하는 동시에 당국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백지를 들고 있다. 백지 이미지는 SNS에서도 공유되며 이번 시위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강력한 언론 통제와 감시가 일상화된 중국에서 이처럼 공산당과 시 주석의 퇴진을 정면으로 요구하는 시위는 이례적이다. 로이터통신은 “(우루무치) 화재로 인해 10년 전 시진핑 주석 집권 이래 전례가 없는 시민 불복종에 불이 붙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시위의 배경에는 중국이 2020년 이후 3년째 지속 중인 제로 코로나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해 철저한 봉쇄 정책을 펼쳤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코로나19 백신의 개발 이전까지는 상대적으로 매우 효과적인 전략으로 평가됐다. 미국과 영국 등 서구 선진국들에서 엄청난 수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할 동안 중국은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며 선방했다. 시 주석은 전 세계에서 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던 2020년 9월 8일 사실상 코로나19 종식 선언을 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집계에 따르면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는 100만명이 넘는 반면 중국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는 1만5000여명 수준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의 낮은 확진자 비율은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식 권위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증거로 여겨지기도 했다. 11월 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봉쇄 해제 요구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백지를 들고 있다./AP연합뉴스 중국 경직된 체제, 정부 대응에 딜레마로 서구 사회가 백신 접종률을 높이면서 일상을 회복하는 동안에도 중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했다. 강력한 봉쇄에는 시민의 불편과 경제적 타격이라는 비용이 뒤따랐다. 3년째 이어지고 있는 봉쇄에 대한 시민의 누적된 불만과 경제적 타격에 따른 높은 청년 실업률은 이번 시위가 주요 대도시와 대학에서 확산한 주요 이유로 꼽힌다. 중국은 코로나19 취약계층인 고령층의 백신 접종률이 낮다. 인구 대비 의료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로 코로나 정책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지난 11월 28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지금 중국의 문제는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 증거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독재 정부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썼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1월 29일 정례브리핑에서 “(제로 코로나 정책은) 과학적으로 올바르며, 효과적이라는 것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중국 체제의 경직성은 시위 대응과 관련해 중국 정부에 커다란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정부 앞에는 시위에 강경하게 대응하거나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지하거나 하는 2가지 선택지가 있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완화할 경우에는 시 주석의 코로나19 방역 성공 신화에 균열이 갈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할 수 있다. 반대로 시위를 강경 진압할 경우 체제에 대한 시민의 불만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 정교한 감시와 통제 기술을 구축해온 중국 당국이 시민의 반발을 효과적으로 잠재운다 하더라도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할 경우 시진핑 3기 시대 중국의 경제성장은 지체될 수밖에 없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지금 당장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기하더라도 긍정적인 효과는 2024년에나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당국은 ‘당근’과 ‘채찍’을 모두 내밀고 있다. 11월 30일 청여우첸 국가질병통제국 감독1국장은 “장기간의 봉쇄는 정상적 생산과 생활 질서에 큰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불안감을 유발하고 생활고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은 시정하고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애플 아이폰 생산기지가 있는 정저우시의 봉쇄가 5일 만에 풀렸다. 베이징과 광저우도 단계적 완화 조치에 들어갔다. 시위에 대해서는 강경대응 방침을 천명했다. 중국 공산당 중앙정법위원회는 “법에 따라 적대 세력의 침투 및 파괴 활동, 사회질서를 교란하는 위법·범죄 행위를 단호히 타격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시위가 발생한 주요 도시 시민을 상대로 인스타그램, 트위터, 텔레그램 등 해외 SNS가 설치돼 있는지 휴대전화를 검사하는가 하면 일부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조사도 시작했다. 11월 30일 장쩌민 전 주석의 서거가 시 주석에게 또 다른 딜레마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장 전 주석 시절 중국은 자본가 계급의 공산당 입당을 허용하는 등 경제적 자유의 폭을 넓히면서 고속성장을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장 전 주석 시절) 정치활동은 철저하게 통제됐으나 인권 변호사, 상업적인 언론 매체, 전투적인 반정부 활동가, 자유주의 성향 지식인들의 공적 토론 등은 어느 정도 허용됐다”면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 시진핑 3연임 ‘대관식’ 열린다(2022. 10. 07 14:00)
- 2022. 10. 07 14:00 국제
- 중국 공산당이 오는 10월 16일부터 제20차 전국인민대표대회(당대회)를 개최한다. 5년에 한 번 최고 지도부를 개편하는 중대한 정치행사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이전 지도자들의 10년 집권 관례를 깨고 이번 당대회를 통해 장기집권의 길에 들어선다. 2012년 제18차 당대회에서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뒤 2017년 연임한 시 주석은 이번 당대회에서 공산당 총서기에 재선임되면 최소 15년을 집권한다. 일각에서는 시 주석이 제20차 당대회에서 ‘인민 영수’라는 칭호를 부여받아 사실상 종신집권의 길을 열게 되리라는 예상도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AP연합뉴스 10년 단위로 국가 지도자를 교체하는 완전한 권력 재편은 이뤄지지 않지만, 이번 당대회를 기점으로 10년간 재임한 리커창(李克强) 현 총리의 후임자를 결정하는 등 시진핑 집권 3기를 함께할 주요 지도부에는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현재 중국 최고 지도부를 구성하는 7명의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서는 리 총리 외에도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72·국회의장 격)과 한정(韓正) 부총리(68) 등 2명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공산당 내부의 ‘7상8하’(67세 유임·68세 퇴임) 관례에 따른 것으로 올해 67세인 리 총리까지 상무위원 자리에서 물러난다면 시 주석을 제외한 상무위원 6명 중 3명이 물갈이되는 셈이다. 나머지 중앙정치국 위원 18명 중에서도 올해 9명이 퇴임 대상이다. 5년 만의 당대회 10월 16일 개막 중국 공산당 당대회는 5년에 한 번 열린다. 5년 동안 당과 국가를 이끌 새로운 지도부 구성이 당대회의 가장 큰 역할이다. 차기 지도부는 사실상 막후에서 사전에 결정되지만, 형식적으로는 당대회에 참가하는 대의원(대표)들이 중앙위원을 선출하고, 이들이 최종적으로 지도부를 결정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를 위해 공산당은 내부적으로 수개월에 걸쳐 각 지역과 부문별 당대회 대표 선출 작업을 진행한다.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지난 9월 26일 “당 중앙의 지도 아래 제20차 당대회 대표 선출이 순조롭게 완료됐다”며 이번 당대회에 참가할 2296명의 대표 명단을 공개했다. 이들은 당 기층 조직을 대표해 10월 16일 개막하는 제20차 당대회에서 차기 지도부 구성 과정 등에 참여한다. 당대회 첫날에는 당 총서기인 시 주석이 대표들 앞에서 정치보고를 한다. 지난 10년간의 집권 성과를 총결산하고 ‘전면적인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기치로 한 향후 집권 구상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당대회 대표들은 1주일의 대회기간 동안 분야별 토론과 당장(黨章·당헌) 개정안 등 주요 안건을 심의하고 마지막 날 투표를 통해 20기 당 중앙위원회를 구성할 200여명의 중앙위원과 170명가량의 후보위원을 선출한다. 차기 지도부 구성을 위한 첫 번째 절차다. 이때 선출된 중앙위원들이 다음날 제20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20기 1중 전회)를 열어 25명의 중앙정치국 위원을 선출하고 이 가운데 다시 7명을 최고 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최종 결정한다. 시진핑, ‘인민영수’ 칭호 받나 시 주석은 이번 당대회를 통해 공산당 총서기와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에 3연임할 것이 확실시된다. 내년 3월 열리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국가주석직 3연임까지 확정지으면 당·군·정을 장악한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로서 다시 5년의 임기를 갖게 된다. 시 주석은 이미 2018년 헌법에서 국가주석 연임 제한 규정을 없애 장기집권에 장애물이 되는 요소를 제거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10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이번 당대회 관전 포인트는 시 주석의 3연임 자체가 아니라 그의 당 내외 위상이 얼마나 강화되느냐다. 시 주석이 당대회에서 ‘인민영수’라는 칭호를 부여받아 사실상 종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열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이는 시 주석이 명실상부하게 ‘위대한 영수’로 불렸던 마오쩌둥(毛澤東)과 같은 반열에 오르고 장기적으로 공식 직책을 맡지 않더라도 평생 배후에서 실질적인 최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당대회에서 논의할 예정인 당장 개정안도 시 주석의 당내 입지와 위상 강화가 주목적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제19차 당대회에서 당장에 삽입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라는 용어를 압축해 ‘시진핑 사상’으로 바꾸려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시진핑 사상을 당장에 들어 있는 ‘마오쩌둥 사상’과 같은 반열로 격상한다는 의미다. 알프레드 우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16자로 된 현재 버전을 5자로 줄이면 사람들이 기억하기 용이해질 뿐 아니라 시 주석을 마오쩌둥과 동등한 인물로 만드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당장에는 ‘덩샤오핑(鄧小平) 이론’도 들어 있지만 ‘이론’은 당의 용어에서 ‘사상’만큼 심오하고 웅장하지는 않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말했다. 차기 지도부 구성에도 관심 시 주석의 3연임이 기정사실화 하는 만큼 관심은 집권 3기를 함께할 차기 지도부 구성에 모아진다. 10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날 리커창 현 총리의 후임으로는 부총리 출신이 차기 총리를 맡았던 관례에 따라 후춘화(胡春華·59) 현 부총리와 시 주석 집권 1기 때 부총리를 지낸 왕양(汪洋·67)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유력한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두 사람 모두 리 총리와 같은 공산주의청년단 출신이지만 후 부총리는 상대적으로 더 계파색이 짙고 나이도 젊어 자칫 후계구도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이 시 주석에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4명의 부총리 중에서도 후 부총리를 제외한 3명이 모두 교체 대상이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첫 진입이 예상되는 1960년대생과 중앙위원 진출이 예상되는 1970년대생들의 약진도 눈여겨볼 만하다. 현재 정치국 상무위원은 모두 1950년대생이다. 현 정치국 위원 중 후 부총리와 천민얼(陳敏爾) 충칭시 당 서기(62), 딩쉐샹(丁薛祥) 당 중앙판공청 주임(60) 등 60년대생 3인방이 상무위원 승진을 놓고 경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외에도 황쿤밍(黃坤明) 중앙선전부 부장(66)과 리창(李强) 상하이 당 서기(66), 차이치(蔡奇) 베이징시 당 서기(67) 등 시 주석 측근 그룹이 상무위원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이들이 시진핑 집권 3기를 함께할 유력한 후보군이라면 70년대생들은 차기 주자군으로 분류된다. 현재 중앙위원회는 후보 위원 2명만이 70년대생인데 이번 당대회를 통해 10% 정도가 70년대생들로 꾸려지리란 예상이 나온다. 이들은 시 주석이 3연임을 넘어 향후 10년간 더 집권하는 상황을 가정하면 60년대생들을 건너뛰고 차세대 지도부를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 가운데 1명이 시 주석의 후계자가 될 수도 있다.
- ‘제로 코로나’ 시진핑에 독배되나(2022. 06. 10 14:05)
- 2022. 06. 10 14:05 국제
- ㆍ중국 경제 상황 악화에 리커창 급부상… 방역정책 불신도 깊어져 “올해는 내가 총리를 맡는 마지막 1년이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 등 중국 지도부가 모두 참석한 가운데 지난 3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 베이징|연합뉴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임기를 언급했다. 2013년 3월 전인대에서 국무원 총리에 선출돼 시진핑(習近平) 집권 1∼2기를 함께한 리 총리는 3연임 제한에 따라 10년의 임기를 마무리하고 내년 3월 전인대에서 물러나게 된다. 중국 공산당 내 주요 파벌 중 하나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으로 한때 시 주석과 최고 권력자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그는 처음 총리가 될 당시만 해도 중국 경제정책을 주무르는 실세 총리가 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집권 1∼2기를 거쳐 시 주석의 1인 권력이 강화되면서 리 총리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실권 없는 총리’, ‘잊힌 2인자’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그런 그가 내외신 기자들 앞에 사실상 마지막으로 서는 기자회견에서 임기를 언급한 것은 마치 씁쓸한 고별사처럼 들렸다. 임기 마지막 해를 조용히 마무리할 것으로 보였던 리 총리의 존재감이 최근 새롭게 부각하고 있다. 그동안 존재감이 미약했던 말년 총리가 새삼스레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중국의 경제 상황 때문이다. 리커창 존재감 급부상 최근 리 총리 부상설의 도화선이 된 건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5월 14일자에 실린 연설문이다. 3주 전에 있었던 국무원 회의 연설 내용이 뒤늦게 전면에 걸쳐 보도되면서 그 배경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일부 외신은 공산당 내에서 시 주석의 강력한 권력에 균형을 맞추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해석했다. 5월 25일 경제 상황과 관련한 전국 단위 회의에서 나온 리 총리의 발언이 불을 붙였다. 그는 “4월 이후 취업과 산업생산 등의 지표가 선명히 낮아져 일부 방면에서는 2020년 심각한 코로나19 충격 때보다 어려움이 더 크다”며 경제 상황에 큰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한쪽으로의 쏠림이나 획일화를 방지하고 방역을 잘하는 동시에 경제사회 발전 임무를 잘 수행해야 한다”며 “(경제) 발전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기초이자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리 총리가 시 주석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제로(0) 코로나’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는 해석까지 나왔다. 급기야 공산당 내 권력투쟁설에 이어 ‘시샤리상(習下李上)’, 즉 시진핑이 지고 리커창이 뜬다는 말까지 회자하기 시작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리 총리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지난 3월 말 상하이의 도시 봉쇄로 중국 경제 상황이 크게 악화하면서부터다. 경제 상황을 염려하는 리 총리의 발언은 이미 공개 석상에서 여러차례 나왔다. 이런 상황이 권력 구도와 연결돼 해석되는 건 공산당이 올가을 시 주석의 3연임 여부를 결정할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시 주석 3연임은 이미 확정됐다고 보는 게 정설이지만 권력 재편기에는 온갖 소문과 추측이 난무하게 마련이다. 최근 갑자기 불거진 시 주석의 건강 이상설도 같은 맥락이다. 일부 외신이 시 주석이 뇌동맥류 진단을 받았다는 보도를 내놨지만 시 주석은 여러차례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이른바 ‘시자쥔(習家軍·시진핑 사단)’으로 분류되는 톈진(天津)시장의 돌연사를 놓고 부패 의혹을 고리로 한 리 총리 측의 반격이라는 추측이 나도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봉쇄령이 내려진 중국 상하이 푸둥지역으로 향하는 터널 입구에서 경찰관들이 방호복을 입은 채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 상하이|로이터연합뉴스 ‘신뢰의 위기’ 당 대회를 앞두고 다양한 설과 추측이 나돌지만 대부분은 근거가 불분명하다. 지금도 중국 안팎에서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의심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주로 시 주석의 권력 기반을 흔들려는 의도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렇다고 시 주석의 3연임에 당내 이견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기도 어렵다. 공산당 중앙판공청이 최근 퇴직 간부들에게 “당 중앙의 방침을 함부로 논하거나 부정적인 정치적 발언을 퍼트리지 말라”며 함구령을 내린 것도 당내 원로들을 중심으로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해석이 있다. 특히 시 주석이 제로 코로나를 고수하면서 경제 상황 악화로 3연임 가도에 일정 부분 발목이 잡히고 있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중국 정부는 올해 5.5% 안팎의 경제성장률 목표를 제시했지만 지난 1분기 성장률은 4.8%에 그쳤다. 2분기 성장률은 최악의 경우 1%대로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상하이 봉쇄가 시작된 이후의 각종 경제지표가 암울한 전망을 뒷받침한다. 지난 4월 중국의 소매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11.1% 감소했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의 선행지표 역할을 하는 산업생산 증가율은 -2.9%를 기록했다. 같은 달 도시 실업률은 중국 정부의 관리 목표(5.5%)를 넘어서는 6.1%였다. 모두 코로나19 확산 초기 경제적 충격이 컸던 2020년 2~3월 이후 최악의 수치다. 국제금융기관과 투자은행은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대까지 낮췄고 사실상 정부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3연임을 준비하는 시 주석으로서는 뼈 아픈 결과다.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공언은 허언이 되고 제로 코로나 정책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과 불만만 커질 수 있어서다. 이미 민심의 동요도 일고 있다. 상하이에서는 두 달 넘게 도시 봉쇄가 이어지면서 주민들이 식료품 부족에 시달리고 막무가내식 방역 조치에 항의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베이징과 톈진 등 다른 도시에서도 대학생들이 학교 측의 방역 조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중국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일단 베이징과 상하이 등 주요 도시의 봉쇄가 모두 해제됐지만, 제로 코로나를 고집하는 한 비슷한 상황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심각하게 바라봐야 할 것은 ‘신뢰의 위기’다. 개혁·개방기를 거치며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룬 중국사회에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일정한 자유를 희생하더라도 공산당의 일당 체제와 사회 시스템에 반기를 들지 않겠다는 일종의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존재했다. 특히 중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과 굴기를 보며 자란 지금의 젊은 세대는 중국의 애국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2020년 중국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먼저 코로나19 확산을 통제하고 방역 성공을 만방에 과시하며 주요국 가운데 유일한 플러스 성장을 이룬 것은 이들의 자부심을 더욱 높이는 계기였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도 제로 코로나 정책을 지속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인민 사이에서 방역 정책에 대한 의문과 불신이 싹트고 있기 때문이다. 상하이 봉쇄 과정을 겪은 한 중국인 기자는 워싱턴포스트에 “(중국사회의) 암묵적 합의는 깨졌다. 행복하게 살게 해주면 (공산당의) 이익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신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그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시진핑 ‘3연임 대관식’ 앞 올림픽 성패는(2022. 02. 11 17:57)
- 2022. 02. 11 17:57 스포츠
-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지난 2월 4일 개막했다.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20일까지 15개 종목에서 109개의 금메달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 이번 올림픽 개최로 중국 수도 베이징은 동·하계 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전 세계 유일의 도시가 됐다. 중국은 2020년 동계올림픽을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개최 이후 달라진 자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과시할 무대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번 동계올림픽 분위기는 중국의 부상을 만천하에 각인시킨 2008년 하계올림픽 개최 당시와는 사뭇 달랐다. 우선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상황이 올림픽 열기를 반감시켰다. 인권문제를 고리로 한 미국 등 일부 서방국가의 외교적 보이콧까지 더해져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시작 전부터 김이 빠졌다. 우크라이나의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등 국제정세도 올림픽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켰다. 중국 베이징 국가체육장에서 지난 2월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열리고 있다. / 이종섭 특파원 2008년과 2022년 베이징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은 부상하는 중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린 계기였다. 14년이 흐른 지금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나 국력은 당시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커졌다. 경제 성장은 괄목할 만하다. 2008년 4.6조달러 규모였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18조달러로 4배 가까이 늘었다.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고, 2008년 미국의 30% 정도에 불과했던 GDP 규모는 80% 수준까지 높아졌다. 명실상부한 전 세계 주요 2개국(G2)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경제 성장은 군사, 우주 등 다방면에서 대국의 굴기로 이어졌다. 2008년 580억달러 수준이던 중국의 한해 국방예산이 지난해 2090억달러로 3배 이상 늘었다. 독자 건조한 항공모함을 취항했고, 현대전에서 ‘게임체인저’라고 부르는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서는 미국에 앞서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2019년 달 뒷면에 인류 최초로 무인 탐사선을 착륙시킨 데 이어 지난해에는 화성에 무인 탐사선을 보내고 독자적인 우주정거장 건설에도 나섰다. 5세대(5G) 이동통신과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중국의 굴기는 무섭게 뻗어나가고 있다. 이번 올림픽은 중국에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라 정치적 이벤트이기도 했다. 2008년 하계올림픽 당시 국가 부주석이었던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2년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당 총서기로 선출되며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다. 2017년 제19차 당대회에서 총서기에 재선출된 시 주석은 이듬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가주석직 3연임 제한 조항을 없애 장기집권의 기반을 마련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그의 3연임을 결정지을, 올가을 제20대 당대회를 앞두고 열리는 가장 큰 국가적 행사였다. 시 주석은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장기집권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자 발판으로 삼을 태세였다. 이런 의지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 국내외에 던지는 메시지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중국이 강조하고 있는 동계올림픽의 콘셉트 중 하나는 ‘저탄소 올림픽’이다. 시 주석은 2020년 유엔 총회에서 2030년 탄소 배출 정점을 달성하고 206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했다. 올림픽 개회식에서 한족과 55개 소수민족 등 각 민족 대표단이 국기인 오성홍기를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도 시 주석이 집권 이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우며 민족 통합을 강조해온 것과 무관치 않다. 올림픽 성화의 마지막 봉송 주자로 신장 위구르족 출신 크로스컨트리 스키선수를 내세운 것은 소수민족 탄압 등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국제사회를 겨냥한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지난 2월 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최한 동계올림픽 환영 연회가 열리고 있다. / 중국정부망(중국 국무원 홈페이지) 올림픽에 드리운 악재들 동계올림픽 분위기는 시 주석의 구상과 다소 엇나가는 모습이다. 2008년 하계올림픽 때도 중국의 티베트 시위 유혈 진압 등으로 비판적 여론이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참석하는 등 중국을 보는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다. 중국이 미국의 지위를 넘보는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시 주석 집권 이후 권위주의적 통치시스템을 강화하면서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미국이 신장 위구르족 인권문제 등을 이유로 선제적으로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며 중국의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여기에 일부 동맹국들이 가세하면서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개막 전부터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했다. 코로나19도 이번 올림픽에 드리운 악재다. 상당수 국가 정상과 대표단이 코로나19를 이유로 올림픽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내 관중의 경기 관람을 허용해 코로나19 방역 성공을 전 세계에 과시하려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개막을 앞두고 세계적으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고 중국 내에서도 산발적 감염이 계속되자 입장권 판매 계획을 철회하고 조직된 소규모 관중에게만 관람을 허용해 겨우 무관중 대회를 피했다. 선수단과 대회 관계자들에게는 관중을 비롯한 외부와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하며 정해진 동선 안에서만 이동이 가능한 ‘폐쇄루프’ 시스템을 적용했다. 코로나19 방역은 여전히 올림픽의 최대 난제였다. 각국 선수단과 대회 관계자들이 본격 입국을 시작한 지난 1월 23일 이후 공항 입국과 ‘폐쇄루프’ 내 검사 과정에서 400명 이상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중국의 국내 확산세는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광시(廣西)좡족자치구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는 등 불안한 상황을 이어갔다. 일촉즉발의 우크라이나 상황도 중국을 도와주지 않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지의 대규모 병력을 전진 배치하며 침공 우려를 키워갔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베이징올림픽이 끝나기 전 러시아가 군사적 침공을 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내일일 수도 있고 수주가 걸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 자체로 올림픽에 모여야 할 세계의 관심이 흩어졌다. 실제 올림픽 중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전 세계 평화와 화합의 장’이라는 올림픽의 취지는 더욱 무색해지는 상황이다. 시 주석은 이를 의식한 듯 지난 2월 5일 올림픽에 참석한 정상급 인사들을 초청해 연 환영 연회에서 “예로부터 올림픽은 인류 평화와 단결, 진보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며 “우리는 올림픽의 초심을 되새겨 세계 평화를 함께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난해 12월 유엔 총회에서 채택한 ‘올림픽 휴전 결의’를 가리켜 “이는 국제사회의 공통된 목소리”라고 역설했다.
- 시진핑의 중국몽 실현 바닷길 열리다(2018. 10. 29 15:26)
- 2018. 10. 29 15:26 국제
- 배로 1시간 걸리는 홍콩~마카오는 육로로는 3시간 넘게 소요된다. 주하이를 거치면 시간은 더 늘어난다. 강주아오대교 개통으로 30분 만에 이들 도시를 잇게 됐다. “산을 만나면 길을 뚫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逢山開路 遇水架橋).”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올해 신년사에서 인용한 문구다. 이 말을 실현이라도 하듯 10월 24일 홍콩에서 광둥(廣東)성 주하이(珠海)를 거쳐 마카오를 잇는 강주아오(港珠澳)대교가 정식 개통했다. 이는 총연장 55㎞인 세계 최장 해상대교로 9년간 13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완성했다. 10월 24일 개통한 강주아오대교의 모습. 총연장 55km로 워낙 길다보니 해저터널 구간을 두 개의 인공섬을 만들어 연결했다./신화통신·연합뉴스 바닷길을 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강주아오대교는 1983년 홍콩의 사업가 후잉샹(胡應湘) 허허(合和)실업 회장이 주하이와 홍콩을 연결하는 ‘링딩양대교’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 시작이다. 기술적인 문제로 쉽게 실현되지 못하다가 21년이 지난 후에야 본격적인 설계에 착수했다. 공사가 시작된 것은 2009년부터다. 강주아오대교의 양쪽 교량 가운데는 6.7㎞의 해저터널 구간으로 이어져 있다. 완성한 터널을 바닷속에 묻는 침매(沈埋) 공법으로 만든 해저터널 중 세계에서 가장 길다. 또 이 해저터널은 2개의 인공섬으로 연결돼 있다. 건설현장의 총책임자인 린밍(林鳴)은 중국 인터넷매체 펑파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건설과정 중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2개의 인공섬으로 교량과 해저터널의 ‘변환점’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동쪽과 서쪽에 위치한 인공섬은 넓이가 10만㎡에 달한다. 800만㎡에 달하는 해저 진흙을 파낸 후 단면이 농구장 크기에 해당하는 초대형 철강 원통을 세워 바다 위에 고정한 뒤 모래를 메워 만들었다. 이 철강 원통의 높이는 18층 건물과 맞먹는다. 총연장 55㎞ 세계 최장 해상대교 개통 매일 100여명의 인부들이 다리 건설에 투입됐다. 기술적 문제 해결을 위해 참여한 연구원도 500명이 넘는다. 공사기간 중 추락 등 안전사고로 9명의 인부가 목숨을 잃었다. 건설인부 사망, 예산 초과 등 악재로 지난해 12월 예정이던 개통이 여러 차례 미뤄지기도 했다. 중국이 ‘고난의 행군’을 마다하지 않고 다리를 놓은 배경에는 시 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이 있다. 시 주석은 광둥성 9개 도시와 홍콩, 마카오 경제를 하나로 묶는 웨강아오 대만구 건설계획을 밝혔다. 시 주석이 직접 구상하고, 직접 추진한 국가전략이다. 대만구의 인구는 6600만명,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중국 전체의 9분의 1에 달한다. 거대한 소비시장, 지리적 이점 등을 이용해 2030년까지 세계 최대의 경제허브로 성장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수도권 지역의 슝안(雄安)신구, 남부 하이난(海南) 자유무역구와 함께 시 주석의 중국몽(中國夢) 실현을 이끌어줄 삼두마차다. 대만구 발전의 걸림돌은 낙후된 육로 인프라였다. 배로 1시간 걸리는 홍콩~마카오는 육로로는 3시간 넘게 소요된다. 주하이를 거치면 시간은 더 늘어난다. 강주아오대교 개통으로 30분 만에 이들 도시를 잇게 됐다. 1시간 생활권으로 묶인 셈이다. 한정(韓正) 부총리는 23일 주하이에서 열린 개통식 축사에서 “강주아오 개통으로 웨강아오 대만구 발전에 경쟁력이 상승했다”며 “홍콩, 마카오, 주하이 3개 지역의 경제·무역에 도움을 줌은 물론 해당 지역 발전에도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강주아오대교를 오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승객들이 승차권 확인을 받고 있다./EPA·연합뉴스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 원칙하의 홍콩, 마카오와 중국 본토의 경제·사회적 통합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대교 개통으로 200개의 버스노선과 5분당 1대(출퇴근시간) 운행되는 셔틀버스 등이 쉴 새 없이 사람과 물자를 실어나른다. 9월 홍콩과 중국 본토를 연결하는 ‘광선강(廣深港) 고속철’이 개통되면서 2시간 이상 걸리던 홍콩~광저우 이동시간이 48분으로 단축됐다. 베이징~홍콩도 고속철로 8시간45분이면 도착한다. 사람과 물자의 빈번한 교류와 이를 통한 경제권 통합으로 홍콩이 고도의 자치와 민주주의 제도가 상실되고 ‘중국화’가 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교 건설로 리더십 과시 지도자들 토목기술의 총아로 꼽히는 다리 건설은 중국의 지도자들이 리더십을 과시하는 수단으로도 이용됐다. 특히 중국에서 가장 긴 강줄기인 창(長)강에는 1950~1970년대 경쟁적으로 교량이 들어섰다. 1957년 개통된 우한(武漢)의 창강대교는 신중국 성립 후 창강에 건설된 첫 교량으로 ‘만리창강 제1교’라고도 부른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소동파의 ‘수조가두(水調歌頭)’를 본떠 지은 ‘수조가두·유영(游泳)’에서 “창강대교가 남북을 가로지르니 천연의 요새가 탄탄대로로 변했다”고 칭송했다. 이 다리의 건설은 제1차 5개년 계획의 중요한 성과로 기록됐다. 그러나 중국 기술이 부족해 당시 소련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1968년이 돼서야 창강에 온전한 중국 기술로 만든 다리가 건설됐는데 바로 난징의 창강대교다. 이념 대결이 뜨거웠던 냉전시대에 중국의 기술적 자부심을 높여줬다. 대약진 운동의 고난을 견디고 있던 중국인들에게 희망이 됐다. 창강의 다리들이 마오쩌둥의 체면을 세워줬다면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자부심은 샤먼(廈門)대교다. 1991년 개통된 이 다리는 중국의 첫 해상 교량이다. 푸젠성 지메이와 샤먼섬을 연결하면서 샤먼 경제발전을 가속화시켰다. 대교 현판은 장쩌민 주석의 친필이다. 경제특구인 샤먼에 들어선 해상 교량은 중국의 개혁개방 성과를 과시하는 선전물로도 쓰였다. 시 주석은 강주아오대교를 통해 제2의 개혁개방 성과를 노리고 있다. 올해는 개혁개방 40주년이다. 개혁개방 40주년에 맞춰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서의 자신감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시 주석의 아버지인 시중쉰(習仲勳)이 개혁개방 초기 광둥성 서기와 성장을 지냈다는 점에서 개인적 의미도 남다르다. 강주아오대교가 중국몽으로 가는 교량 역할을 해 명실상부한 ‘시진핑 주석의 다리’로 기록되기를 기대할 것이다.
- [특집| 박근혜-시진핑-아베]한중일 보수계열 새 지도자 등장했다(2012. 12. 24 20:02)
- 2012. 12. 24 20:02 정치
- ㆍ박근혜·시진핑·아베 모두 유력 정치가문 출신 공통점… 영토문제 등 놓고 3국 갈등 가능성도 2012년 말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는 모두 새로운 지도부를 결정했다. 지난 11월 중국 공산당 제18차 당대회에서의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 취임을 시작으로, 일본에서는 12월 중의원 총선에서 아베 신조 총재가 이끄는 자유민주당이 승리해 민주당과의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한국의 대선에서 박근혜 당선인이 차기 대통령으로 결정된 것을 마지막으로 동아시아 3국의 차기 지도부는 모두 보수적 색채를 띠는 세력이 들어서게 됐다. 동아시아와 군사·경제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미국의 경우 1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집권 2기를 맞았다. 박근혜 18대 대통령 당선인 | 박민규 기자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 연합뉴스 아베 총리 우익색채 가장 강하게 드러내 동아시아 3국의 새 지도자들은 모두 유력 정치인의 후손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외신들은 박 당선인이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사실 못지않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보도한 바 있다. 시 총서기의 아버지 시중쉰 역시 1959년 국무원 부총리까지 오를 정도로 건국 초기 비중 있는 역할을 한 정치인이었다. 이후 시중쉰은 정치적 숙청의 희생양이 됐고, 시 총서기 역시 입당이 여러 차례 좌절되는 경험을 맛봤지만 권력층 2세들을 중심으로 한 태자당 세력의 지원을 받아 차기 국가주석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12월 26일 총리로 취임하는 일본의 아베 총재 집안도 일본의 정치 명문가다. 총리를 지냈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를 비롯, 중의원 의원을 지낸 조부 아베 간, 외무대신을 지낸 아버지 아베 산타로의 영향을 받아 지난 2006년 총리 자리에 오른 뒤 다시 한 번 더 총리를 역임하게 됐다. 세 지도자에게 공통된 국가주의적 경향은 이처럼 국가 요직을 맡아 정치적 역할이 컸던 선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국 난사군도 놓고 인접국과 분쟁 상존 각국의 지도부가 새롭게 들어서는 상황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변화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크게는 전통적인 한·미·일 축이 유지될 것인지, 남북관계와 한·중관계의 개선에 따른 역학관계의 변동이 있을지로 대별된다.미국의 오바마 2기 행정부는 1기와는 달리 한국의 새 정부와 북한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북한이 광명성 3호 위성을 실은 로켓 발사를 강행하면서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데 대해 오바마 행정부는 이전까지 고수해온 ‘전략적 인내’ 방침을 버리고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돌아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전략적 인내’가 전 정권인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비해 온건한 기조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별다른 대응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밑바탕에 깔려 있던 ‘북한 체제붕괴론’을 따라가는 모양새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 1기의 대북정책 기조가 ‘방임’에 가까웠다면 집권 2기에 들어서면 보다 과감한 정책공간이 열린다는 점에서 볼 때 대화와 협상을 위한 ‘새 판 짜기’라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새 판을 짜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북한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 모두를 의식한 전략으로 보인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미국은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을 통해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국방비를 증액시켜 자신의 부담을 덜고자 하는 것”이라며 “북핵문제의 악화가 겹칠 경우 한·미동맹을 대 중국 봉쇄의 최전방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 강화를 노리는 미국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 이상의 안보적 긴장을 낳을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한국의 새 정부는 대북관계와 한·중관계의 향배에 따라 남·북·중 사이의 호전된 분위기를 바탕으로 대미관계에서 중요한 열쇠를 쥘 수도 있다. 김 교수는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정책의 전향적 변화 조짐에 주목하고 김정은 정권이 개방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기 때문에 한국 새 정부가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쥐려면 향후 대북관계 설정에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의 한·중관계 역시 북한이라는 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박 당선인의 대선 공약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이명박 정부에 비해 유화적인 대북정책을 예상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시 총서기의 정치적 부상을 전후한 시기에 중국이 자국의 ‘핵심이익’에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가 강하게 결부돼 있다고 표명한 데서도 볼 수 있듯 남북관계는 한국과 중국 간 관계를 가늠하는 잣대였다. 이홍규 동서대 교수는 “현 정부에서 남북관계 악화로 인해 한·중관계까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박 당선인이 제시할 대북정책의 향방에 따라 한·중관계가 개선될 여지는 크다고 본다”면서 “중심에 놓여 있는 북한 변수를 어떻게 접근할지에 따라 중국, 나아가 미국과의 외교도 영향을 받을 수 있어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선 무엇보다 남북간 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 아베 신조 일본 자민당 총재 | 연합뉴스 중국이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독자적인 행보를 자제하도록 촉구하는 태도를 취한 것도 한국의 입장에선 중국과의 접촉을 용이하게 할 단서가 됐다. 이명박 정부가 대북 강경책에서 정책방향을 전환할 기회를 찾지 못한 채 경색된 남북관계를 유지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통한 실리 획득에 실패했던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당시 중국은 한국 정부와는 배치되는 입장을 유지했다. 한국은 북한에 대해 간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통로를 잃은 셈이었다. 한국과 중국의 새 지도부의 성격이 양국관계를 호전시킬 수 있는 좋은 조건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 교수는 “박 당선인이 중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 때문에 중국 지도부가 상당히 호감을 갖고 있다는 점도 양국관계 개선에 좋은 조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시 총서기는 박 당선인이 자신과 같은 2세 정치인이란 사실 때문에 일종의 동류의식을 느낀다고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중국 외교 MB보다 호전 여지 중국의 대외정책은 장기적으로는 확장적인 태도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의 영토분쟁 외에도 남중국해에 있는 난사군도의 영유권을 놓고 인접한 5개국과 벌이는 분쟁의 위협도 상존하고 있다. 시 총서기와 태자당 세력의 성향은 후진타오 주석에 비해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바 있어 총서기 취임 전부터 주변국들은 양대 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대외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워 왔다. 특히 난사군도 영유권 분쟁의 경우 분쟁이 확대되면 미국도 개입할 수 있다는 의사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미국이 개입할 경우 분쟁해역에 매장된 지하자원 문제뿐만 아니라 중국의 국가적 자존심까지 자극할 것이어서 두 강대국 사이에 유지된 협력과 대립의 이중적 관계가 급속도로 변할 수 있다. 경제영역에서 미국은 자본주의와 자국 통화체제 유지에 필수적인 중국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는 반면 환율과 교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동아시아 안보상황을 둘러싼 문제에서도 미국의 태도는 동일하다. 전통적 동맹국가인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유지해 중국의 확장을 견제하는 한편, 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는 점 때문에 협력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이홍규 교수는 “기본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안별로 대립하는 구도였지만 북한문제는 미·중 양국간 균형을 뒤집을 수 있는 요소를 갖고 있다”며 “일본은 갈등구조 내부에서 미국의 지원을 이용하려는 전략인 데 비해 한국은 갈등구조의 외부에서 실리를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이러한 전략은 아베 총재가 우익적 색채를 강하게 표명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이번 중의원 총선에서 자민당이 공명당 및 유신회와의 연립정권을 통해 확보한 의석이 개헌선인 중의원 총 의석의 3분의 2 선에까지 이름에 따라 일본 우익세력의 오랜 숙원이었던 군대 보유가 가시화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일본의 현행헌법은 방위적 차원의 무장 목적 외에는 군사력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아베 정권은 개헌을 통해 자위대에 군대의 지위를 부여할 계획이 포함된 개헌안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군국주의의 부활을 막기 위해 60년 이상 지속된 군대 보유 금지 조항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경우 동아시아 주변국들이 반발하고 나서 군사적 긴장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제7차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원자바오 중국 총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 함께 회의에 임하고 있다. 한·중·일 3국의 지도부가 바뀜에 따라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 연합뉴스 일본의 우경화로 인한 외교관계의 긴장을 바탕으로 미·일동맹에 미묘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일본 우익의 시나리오다. 일본 내 일부 극우세력이 지속적으로 자위대의 군 전환과 더불어 주일미군의 감축을 요구하는 것만큼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적지만, 일본은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을 통해 주변국에 지속적인 자극을 주는 한편 대미관계에서도 보다 주도적인 위치를 얻으려는 노력도 늦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화량 확대를 통해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경기침체를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아베 정권이 통상 및 경제정책에서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미·일관계의 균형추는 일본보다는 미국 쪽에 쏠려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아베 총재의 우경화 정책은 국내정치용이라는 분석도 있다. 서울대 일본연구소의 박정진 교수는 “일본이 우경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자민당·민주당 정권을 가리지 않고 이어진 추세로 이 배경에는 대지진 피해복구와 재건이라는 과제가 있다”며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 이 움직임이 가속화할 것은 분명한데 떠들썩한 대외관계를 벌이는 것처럼 하고 한국과 중국에 실질적인 위협을 주는 것은 피해 국내적으로 결속력을 강화하고 정치적 지지를 높이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일반 국민들 사이에 확산되는 국가·민족감정이 한 국가의 국경을 넘어 동아시아 전반으로 퍼져나가게 될 경우의 위험이다. 한국에서도 독도문제에 대해 일본이 유례없이 강한 입장을 표명해옴에 따라 중국의 경우처럼 반일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원치 않더라도 국민 여론이 대외정책 방향에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임기 전반에 걸쳐 일본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이명박 정부를 이어 박근혜 당선인의 새 정부에서도 대일관계에 큰 변화는 있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지만, 양국의 극우 여론이 힘을 얻을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전통적으로 문제가 제기됐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나 위안부 보상 문제에 더해 공세적인 군사행동까지를 포함하는 일본 자위대의 군 전환 논의는 대일 여론을 악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 특집
- [특집| 박근혜-시진핑-아베]일본 ‘국가개혁과 군사대국’ 꿈꾼다(2012. 12. 24 20:01)
- 2012. 12. 24 20:01 정치
- ㆍ아베 차기 총리 평화헌법 개정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천황을 국가원수로 격상 움직임 경제위기와 안보위기의 복합적인 동아시아 국제정세 속에서 일본은 점진적으로 보수화 및 보통국가화의 과정을 밟아 왔다. 2012년 12월 중의원 총선에서 자유민주당이 압승하고 보수강경파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가 차기 총리에 취임할 예정이라 일본이 보통국가화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되었다.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 인정을 넘어서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금지한 평화헌법 제9조를 개정하여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변경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헌법개정을 위해 2013년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파가 3분의 2 의석을 차지하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개헌파가 3분의 2 의석을 훨씬 넘어선 것을 고려하면 2013년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파의 승리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본 국민의 개헌 찬성이 과반수를 넘어섰고, 전후체제를 지탱해온 평화헌법의 개정이 목전에 다다랐다고 할 수 있다. 일본 도쿄 자민당사에서 아베 신조 총재(왼쪽에서 네 번째)가 당선을 의미하는 꽃을 붙이고 있다. | 연합뉴스 참의원 선거 개헌파 승리 땐 더욱 힘 받아 이는 전후 미국 주도에 의해 성립된 평화헌법의 정치체제가 무너지고, 일본이 주도하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형성하게 된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오자와 이치로 의원이 지속적으로 주창해온 보통국가론에 의하면, 일본이 정상적인 보통국가로서 정상적인 안보·외교정책을 수행해야 한다고 하고, 이를 위해 평화헌법의 개정이나 해석 변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1차헌법(1889년)을 성립했고, 태평양전쟁 이후 2차헌법(1946년)을 형성했는데, 이제 3차헌법을 성립할 제3의 개국 (開國) 시기가 도래했다고 한다. 일본은 장기 경제침체 속에서 동일본 대지진의 재난을 맞아 국제경쟁력이 하락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일본의 산업경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일본 국민이 단합해서 추진해 나갈 유신과 같은 새로운 국가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이는 헌법개정과도 연계되어 있다. 부국강병을 위해 안보와 경제를 포괄하는 정상적인 보통국가의 정치체제와 헌법을 성립한다는 것이다. 자민당의 헌법개정 초안에는 일본 천황을 국가원수로 격상하고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변경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한국전쟁과 냉전시기에 소련·중국·북한의 공산권을 상대하기 위해 미국이 일본에 헌법개정과 재무장을 권유했다는 논의가 있다. 당시 일본은 경제 우선과 전쟁 반대를 위해 평화헌법의 유지를 주장했다고 한다. 일본에는 반핵무기와 반전쟁의 국민정서와 시민단체가 존재한다. 한편 일본이 보통국가화하는 과정에서의 미·일동맹 향방과 관련,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해방·독립되어야 한다는 주장, 미·일동맹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 일본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해야 한다는 주장, 주일미군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 미·일동맹을 계속 유지하고 강화시켜야 한다는 주장 등 다양한 논의가 등장했다. 미·일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을 견제하고 일본의 군사력 증강에 기여하고자 하는 전략과 함께, 미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일본이 독자적인 안보·외교정책을 수행하고자 하는 복합적 의도가 공존한다. 아베의 자민당 정부는 미·일동맹을 통해서 중국을 견제하면서, 헌법개정을 통해 일본이 독자적인 안보·외교정책을 수행하도록 하는 정치체제를 구축하려고 한다.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은 중국의 부상과 군사력 증강 및 그에 따른 영토·자원분쟁에 대응하는 측면이 있는데, 전후 평화헌법을 중심으로 한 경제 우선·안보 자제의 원칙과 정책이 변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안보와 관련한 군수산업, 우주산업, 원자력 관련산업 등의 제한을 없애고 연구개발과 수출 판매를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중국과 경제 안보 측면 충돌 가능성 높아져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1990년대 이후 장기침체 속에서 2008년 미국 금융위기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커다란 경제적 충격을 당하고, 경제회복을 위한 돌파구로 안보 관련 산업들의 국제경쟁력을 활용하고자 노력한다고 볼 수 있다. 정찰위성·조기경계위성·요격미사일·레이더무기·원자력무기·원자력잠수함·차세대전투기 등 일본이 국제경쟁력을 가지고 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분야는 상당수 존재한다. 안보측면에서 보면, 일본의 군사력이 증강하면서 일본이 군사대국화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은 평화헌법 9조의 군대 보유 금지조항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전력의 자위대를 유지하고 있다. 자위대의 해군과 공군은 한국군을 능가한다는 평가가 있고, 일본은 한국에 비해 두 배 수준의 이지스함을 보유하고 있다. 노다 총리의 자문기구인 국가전략회의 ‘평화프런티어소위원회’의 보고서(2012.7)에는 중국 위협론을 내세워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고 일본의 재무장을 권유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보고서 관련자는 북한체제의 붕괴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의 중·일간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상정하고,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고 중국이 부상하는 세력 전이의 과정에서 주요국 간의 전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자민당은 헌법개정 없이도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국가안전보장기본법안을 마련하고 의회에 제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 국가 정체성과 국가 이익을 우선하면서 경제재건을 추구하는 부국강병으로의 일본의 국가개혁과 군사대국화가 진전되고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변모하면서, 중·일간의 패권경쟁이 본격화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부상하는 중국과 상대적으로 하락하는 일본의 패권경쟁이 영토분쟁과 과거사문제로 심화되면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다. 안보와 경제, 양 측면에서 위기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국제환경에서, 동아시아의 세력 불균형에 대응해서 한·미동맹에 기초한 한·중·일+미국의 세력균형구조 즉 동아시아 균형네트워크의 정책틀이 유지되고 활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의 힘이 다소 약화되는 시점에 미·일동맹과 주일미군의 역할이 일본과 동아시아의 안보상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갈등과 협력이 공존하는 미·중관계 속에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세력 균형적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김성철
- 특집
- [표지이야기]중국 시진핑시대 ‘안정적 변화’ 전망(2012. 11. 13 14:53)
- 2012. 11. 13 14:53 국제
- 베이징에서는 계엄을 방불케 하는 엄중한 경비 속에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이하 당 대회)가 시작됐다. 이른바 양회라 불리는 전인대가 열리는 3월과 당 대회가 열리는 10월(혹은 11월)마다 베이징은 열병을 앓는다. 검문검색이 강화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회의가 열리는 천안문 광장 주변은 평소의 자유로운 분위기와는 다르게 출입시 통제가 강화될 뿐 아니라 주변 도로를 지나는 택시의 창문 봉쇄 등 엄격한 제한이 뒤따른다. 특히 대표단이 머무르는 호텔이나 주변 지역은 술집은 물론이고 식당 등 제반 상업시설들도 잠시 영업을 제한받기도 한다. 올해는 이런 일상적인 통제에서 정도가 더해 베이징 시민들의 일반적인 취미생활인 연 날리는 것까지 금지될 정도로 도를 넘는 통제가 실시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최고 권력자의 자리인 공산당 총서기에 내정된 시진핑 국가부주석. | 연합뉴스 어느 때보다 유난히 진통 겪은 당 대회 이렇듯 이번 당 대회 준비과정은 유난히 진통을 겪었다는 것이 세간의 평이다. 보통의 경우 7∼8월에 열리는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내부 조율을 끝내고 당 대회는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화려하게 시작되는 데 비해, 이번에는 시진핑의 잠적사태, 당장(黨章)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삭제 논란, 원자바오 총리의 재산문제 등 당 대회 개최 직전까지도 대내외적으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이번 당 대회는 사전에 차기 정치국 상무위원회 명단이 사실상 공개되는 관례와는 다르게 11월 15일 열릴 제18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18기 1중전회)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 결과를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사실상 사전 합의에 의한 예측 가능성을 최대 장점으로 내세운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 정치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당 대회의 핵심 쟁점은 향후 권력 방향을 가늠하게 할 정치국 상무위원회 세력분포와 당 총서기가 되는 시진핑의 리더십이 어떻게 제시될 것인가다. 후진타오 시대의 9명에서 다시 장쩌민 시대처럼 7명으로 축소되게 될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어느 계열이 다수를 차지하느냐와 장쩌민의 삼개대표(三個代表),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에 이은 시진핑의 리더십 실체가 무엇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중 정치국 상무위원회 세력분포의 문제는 지난 8월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장쩌민 계열이 다수를 차지하는 방향으로 대략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장쩌민의 브레인이자 현재 숨은 정치적 실체인 쩡칭훙 전 부주석의 심모원려(深謀遠慮)가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17차 당 대회에서 리커창을 제치고 시진핑을 차기 총서기로 내정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시작된 이 장정은 자신을 제치고 태자당의 새로운 실세로 떠오르던 보시라이를 후진타오 계열과 손잡고 쳐내는 데 성공하면서 정점을 이루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정치의 경우 일반적으로 이 선에서 모든 갈등이 봉합되고 새로운 협력적 경쟁구도가 만들어져 왔다. 차오스를 쳐낼 당시 장쩌민과 리펑이 그랬고,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금의 중국 내 권력구도는 이런 일반적인 관례와는 달리 당 대회가 진행되는 이 시점에도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인 정치적 합의가 아닌 봉합책으로서의 정치국 상무위원회 차액선거의 실시는 이런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당내 민주주의가 많이 진척됐다고는 해도 중국에서의 선거는 합의에 의한 예측 가능한 선거가 일반적인 데 비해 지금 채택된 차액선거는 돌발적인 상황 발생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기존 중국에서 관행적으로 인정되어 왔던 파벌들이 급격히 재편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그간 중국 내 파벌은 장쩌민 계열의 상하이방, 쩡칭훙을 통해 장쩌민과 손잡은 태자당 대 후진타오 계열의 공청단파로 구분되어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파벌구조는 현실정치에서는 상하이방-태자당-군 원로로 이어지는 장쩌민 계열과 공청단파-테크노크라트의 연합 형태인 후진타오 계열로 나타나게 된다. 장쩌민 2기부터 후진타오 2기까지 10여년을 공고하게 버텨오던 이 구조가 파열음을 내게 된 계기는 태자당 내의 주도권을 둘러 싼 보시라이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태자당과 군 원로들이 보시라이가 내세우던 좌파사상을 둘러싸고 분열되면서 중국 정치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상황으로 접어들게 된다. 여기서 쩡칭훙은 시진핑을 차기 지도자로 옹립할 때 힘을 보탰던 지방 관료들과의 광범위한 제휴를 통해 자신들의 세력을 취합한 뒤 후진타오 계열과 손잡고 보시라이를 쳐내게 된다. 지난 8월 베이다이허 회의가 끝날 때만 해도 이 새로운 협력적 경쟁구도로 이번 당 대회가 순조롭게 마무리지어질 것으로 예상됐었다. 상하이방-태자당-군원로 세력과 결탁 그런데 이 기회에 태자당과 군 원로 그룹의 좌파 계열를 쳐내려는 세력과 이에 대응하려는 좌파 세력들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시진핑 잠적, 당장 논란, 원자바오 재산파동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고, 이 과정은 결과적으로 중국 정치에 새로운 파벌 형성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선출의 가장 큰 특징은 홍색자본가의 대거 등장이다. 장쩌민의 삼개대표에서 시작된 기업가들의 당 대회 진출의 길이 성숙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들 홍색자본가들은 지방의 국유기업 대표, 관료들과 더불어 강력한 지방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지방 관료들은 이미 시진핑 추대 때 범장쩌민 계열, 정확히 얘기하면 시진핑 계열로 편입된 상태이고, 홍색자본가들은 본질적으로 친장쩌민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후진타오 계열의 개혁적 테크노크라트들과 사사건건 대립해온 지방 국유기업 대표들이 가담하면서 장쩌민의 정치적 그늘 아래 쩡칭홍을 매개로 상하이방-태자당-군 원로로 연결되는 범시진핑 계열이 형성되고 이들이 중국 정치의 현실적 힘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외된 좌파 태자당-군부들은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대변할 대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보인다. 공청단파와 테크노크라트의 연합세력인 후진타오 계열은 일련의 정치투쟁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데 실패한 데다가, 자신들의 힘의 원천이라 할 중앙관료집단의 규합에 실패하면서 급격히 위축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일부 좌파의 ‘잃어버린 10년’ 주장은 이들에게 뼈아픈 얘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의 뿌리 깊은 중앙관료조직에서 아직은 주도권을 점하고 있고, 후진타오가 정치적으로 건재한 이상 이들의 미래를 비관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이들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범후진타오 계열, 혹은 중립 성향을 포함하여 3석을 지킬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은 중의적인 표현을 중요시한다. 역으로 중의적인 표현, 특히 공식 매체의 행간의 뜻을 보면 중국 권력의 실제 흐름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지난 10월 11일 중국 인민일보에 “成功之路 光明之路 希望之路”라는 논설이 실렸다. 직역하면 성공의 길, 광명의 길, 희망의 길이라는 후진타오의 지난 10년을 평가한 글이다. 그런데 이 글을 기점으로 인민일보의 전과 후의 논점에 미묘한 변화가 보인다. 이 글의 부제는 제16차 당 대회 이후 중국 특색사회주의 정치 발전의 길이다. 이전이라면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을 부제로 삼았을 것이다. 중국 특색사회주의는 아직 자신의 대표이론을 갖지 못한 시진핑이 주요하게 언급하는 정치 슬로건이다. 원제의 중의적인 해석을 보면 이 변화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성공의 길, 덩샤오핑이 내세운 선부론이 연상된다. 희망의 길, 후진타오의 조화사회가 연상된다, 아직은 희망일 뿐이다. 문제는 광명의 길이다. 가장 화려한 찬사임과 동시에 광명은 장쩌민이 한때 근무했던 유제품 회사의 명칭이다.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중의적이라면 과민한 걸까?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 중 대화를 나누고 있는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뒤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지나가고 있다. | AP연합뉴스 범시진핑 계열의 가장 큰 특징은 이공계 중심의 상하이방, 공청단파와는 다르게 인문사회계열 출신이 많다는 점이다. 시진핑 스스로가 칭화대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정치사상 교육을 전공했다. 특히 시진핑은 문화혁명 때 중국 고등교육이 전면 중지된 시기 대입시험 없이 당성을 기준으로 선발한 홍농공병(홍위병, 농민, 노동자, 군인 중에 선발) 학생 출신이다. 이들은 보통 학습능력보다는 당에 대한 충성도와 업무 추진능력을 더 인정받는 그룹이다. 이러한 시진핑의 교육 배경은 향후 그의 대표이론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전통 중시 중국특색사회주의 강조 시진핑은 관례상 아직 자신의 고유 이론을 공식화시키고 있지는 않지만 기존 발언에서 특히 자신의 정치적 배경이던 당 학교에서의 연설을 살펴보면 온고지신의 역사관과 중국 특색사회주의, 그리고 이론 학습과 실천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자신이 사상을 위해서 이혼까지 감수한 경력(그는 태자당 출신 첫 부인의 영국 유학 제의를 거부하고 이혼했다. 80년대 태자당 출신들은 정치에 혐오를 갖고 외국 유학을 선호했었다.)이 있듯 시진핑은 전형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기도 하다. 향후 시진핑의 공식 이론은 전통을 강조하는 데서 출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론적 원칙에 충실하면서 현실문제에 대응하려 할 것이다. 이런 시진핑의 정치사상적 성향은 그의 권력 배경인 태자당-군 원로-지방 세력과 결합되면서 후진타오에 비해 보수적인 성향을 띠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그의 새로운 권력기반인 지방 관료들과 국영기업 대표들이 중앙 테크노크라트의 개혁 요구에 수세적으로 대처해온 과거를 생각할 때 향후 중국 개혁의 향방은 급속적인 변화보다는 온고지신 형태의 안정적 변화에 경도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지금 중국의 현실이 온건한 개혁에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정 규모를 갖춘 경제에서는 사실상 가장 높은 지니계수를 나타내는 나라가 중국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후진타오가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사회안전망 사업이 그 진척과는 상관없이 현실적인 유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늘어만 가는 인민들의 복지 확대 요구를 온건한 개혁으로 충족시키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다. 경제환경 역시 녹록지 못하다. 연안을 중심으로 1만 달러의 함정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중국 경제성장 속도가 둔화하는 상황에서 시진핑이 과거 장쩌민이나 후진타오처럼 성장의 과실을 안정적으로 누릴 것이라고 예측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대외적으로도 G2의 위상에 맞는 정치, 군사적인 역할을 해내기에 중국은 아직 준비되지 못한 것이 너무 많다. 결국 시진핑의 시대는 이런 다각적인 요구들이 종합적으로 분출되고 이 요구들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많다. 국내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요구도 지금의 중국이 신임 시진핑 총서기가 원활하게 처리하기에는 너무 벅차 보인다. 특히 연임에 성공한 오바마가 중국에 대해 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공격적인 정책을 펼 것이라는 예측이 만연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중국의 미래가 그렇듯 상황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시진핑이 아니라 시진핑이 대표하는 중국의 파워엘리트들이 기존의 전망을 어떻게 현실화시켜 나가는가이다. 이들은 개혁·개방 이후 수없는 위기상황에 대처하면서 지금의 중국을 만들어 왔다. 이들은 지금도 정책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더구나 시진핑 시대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안정적인 권력구조를 보이고 있다. 중앙정권은 불안한 듯 보이지만 그것을 받치는 지방권력, 경제적 통제력, 거기다 무엇보다 중요한 군부 장악력은 덩샤오핑 이후 최고 수준이다. 강한 장악력을 가진 중국, 그러나 흔들리는 중국. 역사적으로 이런 중국이 선택한 방향을 너무나 잘 아는 우리가 걱정해야 할 현실이다.
- 표지 이야기
- [포커스]중국 시진핑 ‘시스템 정치’의 승리(2010. 10. 26 17:53)
- 2010. 10. 26 17:53 국제
- ㆍ공산당 원로와 장쩌민 후원 받아 리커창과의 대결서 역전극 중국 정치를 움직이는 것이 시스템인가 개인인가 하는 문제는 관련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 오랜 관심거리였다. 이와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중국 정치를 개인의 카리스마에 기대어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개혁·개방 전 마오쩌둥이나 개방 직후 덩샤오핑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는 의심할 여지없는 개인 카리스마에 기댄 리더십이었다.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선출된 시진핑 국가부주석(원안)이 지난 10월 18일 후진타오 국가주석(가운데) 등과 함께 베이징에서 열린 제17차 당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결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장쩌민 이후의 중국 지도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개인보다는 시스템을 중심으로 권력을 분유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집단지도체제로 불리는 중국의 이 특유한 권력체계는 개방화가 가속되고 있는 중국을 불확실성에 입각해 보게 되는 가장 큰 이유였다. 덩샤오핑 이후 중국의 지도체제는 집단지도체제와 함께 현임자가 아닌 전임자에 의한 후계자 옹립이라는 격세지명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 두 가지의 특징은 지금의 중국 정치를 이해하는 가장 핵심 코드이다. 장쩌민을 위시로 하는 덩샤오핑 이후의 중국 지도체제는 이 두 가지 코드를 중심으로 격렬한 내부 권력투쟁을 진행해 왔고, 그 투쟁의 결과로 이 두 코드는 점점 강화되어 고정되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전임자에 의한 후계자 옹립 특징 덩샤오핑이 원래 구상한 후계구도는 후진타오-주룽지로 구성되는 당정분리 체제였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중국인들 사이에는 당에는 후진타오, 정에는 주룽지라는 말이 회자됐었다. 이 구도가 흐트러진 이유는 잘 알다시피 천안문 사태와 그에 이은 장쩌민의 부상이었다. 장쩌민의 부상과 이후 일련의 권력투쟁에서의 승리는 후진타오를 현임이 아닌 후계자로 밀어내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일은 장쩌민의 부상에 숨어 있는 조언자들의 역할이다. 장쩌민을 덩샤오핑에게 추천한 인물은 중국 공산당 원로인 쑹핑(宋平)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시만 해도 정치적 변방이었던 상하이에 숨어 있던, 중앙 정계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장쩌민을 덩샤오핑에게 적극 추천하여 중국의 새로운 지도자로 만든다. 변방에서 일약 중앙 정계의 스타가 된 장쩌민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는 공산당 원로들의 지지를 받는 것과 군을 장악하는 일이었다. 이 두 가지는 변변한 권력기반이 없던 장쩌민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장쩌민이 상하이에서 데려온 유일한 인물인 쩡칭훙(曾慶紅)이었다. 쩡칭훙은 중국 공산당 원로의 자제들인 이른바 태자당 출신이다. 그는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장쩌민의 권력 기반을 다졌고, 이 과정에서 중국의 실질적인 2인자로 자리잡게 된다. 장쩌민이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 원로들은 보다 확실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장기적으로 대변해줄 수 있는 인물을 모색한다. 중국 공산당 원로들에게 장쩌민은 그리 달갑지 않은 카드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 일은 자신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이었다. 특히 이 일은 장쩌민의 권력이 더 확고해지기 전에, 보다 정확하게는 덩샤오핑이 생존해 있을 때 확정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때 후진타오를 강력하게 지지하고 나선 인물이 앞에 얘기했던 쑹핑이다. 쑹핑은 서장 변방에 나가 있던 후진타오를 장쩌민에 이어 덩샤오핑에게 소개한 인물이다. 그는 장쩌민이 집권 초반기 권력을 확실히 다지지 못했을 때 당에는 후진타오, 정에는 주룽지라는 표현으로 후진타오의 미래를 확정지으며 중국 정치의 한 고비를 화려하게 마무리 짓는다. 장쩌민이 ‘삼강’(三講), ‘삼개대표’(三介代表)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적 슬로건으로 반대파들을 무력화시키고 확실한 권력기반을 다지며 ‘장쩌민을 위시로 하는’ 집단지도체제를 확립하고 있을 때 후진타오는 중앙 당학교에서 숨을 죽이며 차기를 기다려야 했다. 부친 시중쉰은 강력한 정치적 자산 후진타오의 시대는 그 시작과 함께 장쩌민이라는 거대한 그림자와의 싸움이었다. 이 싸움에서 후진타오가 택한 방법은 ‘토론’이었다. 후진타오는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내부에서 각 사안별로 끝장 토론을 벌이며 상대방을 설득하는 작전을 썼다. 시진핑의 등극으로 한·중관계가 어떤 흐름을 가질지 관심사다. 지난해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방한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을 접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 방식은 중국 지도부로서는 아주 낯선 방식이었다. 그 전임자인 장쩌민은 쩡칭훙이 물밑에서 움직이면서 상대의 약점을 잡아 위협하는 전술을 주로 운용했었다. 장쩌민은 지방에서 올라와 변변한 인맥은 없었지만 권력의 핵심에 속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청렴할 수 있었다. 장쩌민은 이를 십분 활용해 대외적으로는 ‘삼강’, ‘삼개대표’ 등 ‘이론 학습’을 내세우면서 내부적으로는 반부패를 무기로 반대파를 압박했다. 개혁·개방 초기 혼란을 틈타 부패가 만연해 있던 당시 중국 지도자들에게 이 방법은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첫 희생자로 이름을 올린 베이징 시장이었던 천시퉁(陳希同) 사건을 시발로 가장 큰 라이벌이었던 차오스(喬石)를 밀어낼 때도 이 방법은 주효했다. 반면 후진타오는 장쩌민의 거대한 그림자에 눌려 실질적인 힘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최고지도자의 업무를 시작해야 했다. 당시 장쩌민은 권력의 핵인 중앙군사위원회 자리를 쉽게 넘겨주려 하지 않았다. 장쩌민은 이 과정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좀 더 유지하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후진타오는 지난한 권력투쟁의 결과로 9명으로 늘어난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의 토론을 무기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 나가기 시작한다. 일주일에 1~2회 만나는 것으로 알려진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의 토론은 후진타오가 헤게모니를 가질 수밖에 없는 자리이다. 중국의 당 총서기는 당 소속 싱크탱크로부터 모든 정보와 정책에 대한 직보를 받는다. 물론 국무원발전센터 등 국무원 산하의 총리를 위한 싱크탱크도 존재하지만 조직을 장악한 당 싱크탱크와는 그 정보의 질에 있어 상대가 될 수 없다. 후진타오는 이 구도를 충분히 활용해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장악해 가면서 자신의 권력 기반인 중국 공산당 청년단을 십분 활용하며 장쩌민 라인에 대한 정치적 압박에 돌입한다. 흔히들 상해방(上海方)이라 불리는 장쩌민 라인에 대한 정치적 압박은 자연스럽게 장쩌민을 고립시키고 장쩌민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 과정에서 후진타오는 중국 공산당 청년단 계열인 퇀파이(團派) 2인자 리커창(李克强)을 차기 지도자로 강력하게 밀게 된다. 장쩌민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게 분명한 리커창의 부상은 중국 공산당 원로들에게도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장쩌민의 책사인 쩡칭훙이 다시 역사의 중심에 등장한다. 쩡칭훙은 자신이 장쩌민에게 추천한 시진핑을 차기 지도자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시진핑은 자신의 경력이나 능력과는 독립되게 자신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勛)이라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태자당 출신들과는 다르게 시진핑은 사실상 아버지의 덕을 그리 크게 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시중쉰이 문화혁명기 덩샤오핑과 더불어 가장 먼저 숙청을 당했고, 하방(下放)된 상태에서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다른 태자당 출신들이 가문의 그늘에서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시진핑은 고아로의 삶을 살아야 했다. 시진핑 시대 최대 변수는 민주화 요구 쩡칭훙이 파고든 지점은 중국 공산당 원로들이 시중쉰과 그의 아들에게 가진 부채의식이었다. 중국 공산당 원로들이라면 누구나 고생만 하다 일찍 세상을 뜬 시중쉰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항일전쟁기의 고아들이 저우언라이(周恩來)의 부인에 의해 보호 받으며 성장한 것과는 달리 문화혁명기에 희생된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자식들은 곧 이은 개혁·개방의 혼란기에 충분히 보호 받지 못한 것도 이들의 부채의식을 깨우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중국 공산당 원로들과 장쩌민의 지원을 받은 시진핑은 리커창과의 정치 대결에서 극적인 역전극을 펼치며 마침내 국가부주석 자리에 올라 차기를 예약하게 된다. 하지만 국가부주석 자리에 오른 뒤에도 시진핑은 결코 안심할 수 없었다. 장쩌민 아래서 침묵의 세월을 보내며 시선을 피했던 후진타오와는 달리 시진핑에게는 리커창이라는 아주 강력한, 그것도 현실적 힘을 가진 경쟁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작년 중국 공산당 4중전회에서 시진핑이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선출되지 못하자 사람들 입에서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말이 나온 것은 바로 이 현실적 힘의 문제였다. 하지만 1년여에 걸친 격렬한 내부 투쟁의 결과 운명은 시진핑의 손을 들어주었다. 시진핑은 5중전회에서 중앙군사위 부주석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차기 지도자의 자리를 확실히 굳혔다. 이제 문제는 시진핑이 어떻게 자신이 중국 최고지도자에 걸맞은 인물인가를 증명하는 것이다. 지금의 시진핑에게는 장쩌민의 이론도, 후진타오의 토론도 없다. ‘삼개대표’도 ‘조화 사회’(和諧社會)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통치철학을 준비하는 일 자체가 만만치 않다. 또 하나의 문제는 자신의 통치기반을 만드는 일이다. 흔히들 얘기하는 태자당을 시진핑의 통치기반으로 보기에는 태자당 내에서의 시진핑의 위치가 그리 공고하지 못하다는 문제가 있다. 리커창과의 관계 설정도 시진핑에게는 두통거리이다. 후진타오-원자바오의 관계처럼 협력적 경쟁관계가 되기에는 리커창의 힘이 너무 세다. 이들의 관계는 과거 장쩌민 초기처럼 경제에 관한 실권을 모두 리커창에게 주는 방식으로 풀릴 가능성이 많다. 장쩌민 초기에 주룽지가 중국 경제의 ‘차르’로 불린 것처럼 경제문제에 대한 실권을 리커창에게 주고 자신은 통치철학을 마련하고 통치기반을 조성하는 데 힘을 써 첫 5년 간의 1기 체제를 순조롭게 마무리하고 2기 체제를 맞이하는 전략이다. 시진핑이 이러한 자연스러운 권력 장악 경로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지만 다른 변수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서서히 목소리를 내고 있는 민주화 논쟁이 그것이다. 후진타오의 ‘조화 사회’에 이어 시진핑이 선택할 수 있는 통치철학은 복지를 핵심으로 하는 공평과 민주화 중 하나이다. 지금으로서는 경제성장을 책임질 리커창과 갈등 없이 차별화할 수 있는 복지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지만, 중국 내에서 민주화 목소리가 더 커진다면 민주화를 무기로 리커창과의 전면적인 차별화로 나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 경우는 중국으로서나 주변 국가들, 무엇보다도 시진핑 자신에게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지금의 중국에서 급진적인 민주화 논쟁은 혼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자오쯔양(趙紫陽)의 말로는 중국 지도자들에게 이 길을 쉽게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한다. 중국 공산당 원로들의 지지 위에 선 시진핑이 그들의 요구를 멀리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중국 정치를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극적이고 화려하다. 하지만 중국 정치는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그것이 지금의 중국을 안정시키는 가장 핵심 요소이다. 시진핑의 미래 역시 그 시스템 하에서 펼쳐지게 될 것이다. 강현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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