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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레는 신자유주의 무덤이 될 것”(2021. 12. 24 15:24)
- 2021. 12. 24 15:24 국제
- “칠레가 신자유주의의 요람이었다면 이젠 신자유주의의 무덤이 될 것이다.” 좌파연합 ‘존엄성을 지지한다’의 후보 가브리엘 보리치(36)가 지난해 12월 19일 칠레의 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986년생인 그는 올 3월 민주화 이후 최연소 칠레 대통령이 된다. 1973년 군부쿠데타로 비극적 최후를 맞은 살바도르 아옌데(1908~1973) 이후 이념적으로 가장 왼쪽에 있는 대통령이다. 칠레 제헌의회가 현재 논의하고 있는 새 헌법을 적용받을 첫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신자유주의의 종식”을 선언하며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신자유주의는 ‘대처리즘’이나 ‘레이거노믹스’ 이전 칠레 시민의 피와 무덤 위에서 싹을 틔웠다는 역사적 사실이 새삼 환기됐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 선거 중 1차 투표의 일부 결과를 얻은 후 주먹을 치켜들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1970년 소아과 의사 출신 좌파 정치인 아옌데가 칠레 대통령에 당선됐다. 세계 최초로 혁명이 아닌 선거를 통해 들어선 사회주의 정부였다. 세계경제가 불경기의 늪으로 빠져들던 무렵이었으며, 칠레에서는 토지 없는 농민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잇달아 시위를 벌이는 등 빈부격차 문제가 특히 불거졌다. 아옌데 대통령은 구리 산업 국영화, 아동 무상 우유 급식, 토지개혁, 사회보장 확대 등을 추진했다. 아옌데 임기 첫해 인플레이션은 34.9%에서 22.1%로 크게 줄었고, 전 정부에서 3%도 이루지 못했던 경제성장률은 8%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사회주의 정책에 불만과 두려움을 품은 강대국과 다국적 기업들이 투자를 끊으면서 칠레 국내총생산(GDP)은 곤두박질쳤고 물가상승률도 140%로 뛰어올랐다. 지주, 고용주, 백인 상류층 등 국내 보수파들도 아옌데의 정책에 반발했다. 아옌데가 구리 광산을 국영화하자 미국은 구리 가격을 일부러 폭락시켜 칠레경제를 뒤흔들었다. 오일쇼크 등 세계적 경제위기도 칠레경제를 혼돈으로 몰아갔다.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당시 국방장관(1915~2006)은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궁을 포위하고 아옌데의 교전 끝 자살로 선거를 통해 만들어진 사회주의 정권은 막을 내렸다. 피노체트 군부정권의 비극 피노체트 군부정권은 집권하자마자 아옌데의 모든 정책을 무효화했다. 정권은 미국과 영국의 시카고학파 출신 경제학자들을 초청해 경제정책을 만들도록 했다. 복지·교육예산 등이 삭감됐고, 259개 국영기업 중 14개의 기업과 1개의 은행을 제외하고 모두 민영화됐다. 연금, 보험, 교육, 전력 송배전 등의 공공서비스가 대거 민간영역으로 넘어갔다. 1973년 평균 94%이던 관세율은 1978년 14%로 대폭 내려갔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영국과 미국보다 칠레에서 먼저 만들어졌던 것이다. 해외투자가 재개되면서 1975년 470%까지 치솟았던 물가는 안정됐으며 피노체트 집권 시절 칠레경제는 연평균 6%씩 성장했다. 그러나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빈곤율이 상승했다. 민영화된 연금 체제에서 칠레 노동자들은 기여금 대비 40%도 되지 못하는 연금을 받았고, 대학 등록금은 비쌌다. 정권에 저항하는 시민은 잔혹한 탄압을 받았다. 칠레 정부의 과거사 조사결과에 따르면 17년간의 피노체트 집권 기간 사망자가 약 3000명, 실종자가 1200명 발생했으며 고문 피해자도 수만명에 달한다. 피노체트 시절 국가범죄에 대한 재판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칠레에서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친 뒤에야 대처와 레이건의 시대가 열렸고, 한국의 신군부 정권 역시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였다. 2019년 10월 25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 EPA·로이터연합뉴스 칠레는 1989년 피노체트를 몰아내고 민주화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1988년 10월 피노체트의 집권 연장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반대가 높게 나온 것이다. 그러나 피노체트 시절인 1980년 제정된 헌법은 이후에도 개정되지 못했다. 피노체트 헌법에는 교육, 의료, 복지 등 국민의 기본권에 관한 내용이 없었으며 노동법률 등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돼 있었다. 민주화 이후 중도좌파 정부가 집권해도 칠레 정부가 떠안은 피노체트 시대의 유산은 해결할 수 없었다. 칠레의 1인당 GDP는 2018년 기준 1만6000달러가 넘는다. 이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인구의 45%는 여전히 빈곤층에 해당한다. 지니계수도 0.46(2017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칠레에서 ‘신자유주의 종식’을 요구하는 대중운동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1년 대학 등록금 인상에 맞서는 시위가 칠레 전역에서 벌어졌다. 당시 칠레대 재학 중이던 보리치 역시 시위를 이끈 학생 지도자 중의 한명이다. 보리치는 2013년 고향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본격 입문했으며, 2017년 재선에 성공했다. 버스요금 인상이 기폭제가 돼 벌어진 2019년 시위에서는 ‘1973=2019’란 팻말 구호도 등장했다. ‘1973년 체제’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야 한다는 요구였다. 최저임금 인상을 주요 공약으로 중도 우파 성향인 세바스타인 피녜라 대통령은 2020년 개헌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쳤다. 개헌을 요구하는 시민의 압력을 더 이상 묵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칠레 국민 78.99%는 개헌을 택했다. 2021년 7월 ‘마푸체’ 원주민 여성인 엘리사 롱콘(59)을 의장으로 하는 제헌의회가 출범해 1년 동안 개헌을 논의했다. 2019년 시위부터 제헌의회 출범까지 이어진 좌파 시민운동이 보리치의 당선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칠레 시민은 ‘신자유주의 종식’에 대한 지지와 양극화된 경제만큼 깊고 넓은 분열을 동시에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보리치는 최저임금 인상과 대대적인 사적 연금 개편, 의료 시스템 정비, 국영 리튬 회사의 설립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우파 연합 기독사회전선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56)는 기성정치권에 대한 비판, 불법 이민에 대한 강경한 태도 등으로 정치 아웃사이더에서 대선주자로까지 발돋움했다. 피노체트 시절의 경제 성과에 대한 긍정평가도 했다. 아옌데와 피노체트의 대리전처럼 벌어진 선거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카스트 지지자인 아우로라 오비에도(68)는 “난 아옌데 정권도 경험했는데 매우 혼란스러웠다. 먹을 것도 없고 뭐든 구하려면 줄 서서 기다려야 했다”고 말했다. 반면 미레야 가르시아(65)는 “쿠데타는 우리 가족을 완전히 파괴했다”며 “이번 선거는 칠레를 위험에 빠뜨릴 극우와 젊은 층을 대변할 후보의 대결”이라고 말했다. 50년의 세월 동안 더욱 깊어진 분열의 골은 보리치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숙제다. 하지만 개헌과 함께 칠레 역사의 한 페이지가 매듭지어진 것만큼은 분명해보인다.
- [장하나의 눈]신천지라 쓰고 신자유주의라 읽는다(2020. 03. 13 15:10)
- 2020. 03. 13 15:10 오피니언
- ‘뭐? 신천지라고?’ 몇 년 전 ‘새누리가 신천지’라던가 하는 소리를 들어본 것 같은데, 코로나19에 뜬금없이 신천지라니. 신천지 관련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이거 영화야, 실화야’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분노로 이어지기엔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하나님의 새 나라의 제사장’이 될 터인데 학업·취업·가족·연애 그리고 코로나19가 무슨 대수냐? 수십만 명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여전히 화가 안 난다. 신천지 교도의 60%가 20대 청년이라는 기사를 보았을 때 뇌가 흔들리는 충격을 받았다. ‘대체 20대가 왜?’ 수천 명의 신천지 청년 교도들이 일제히 교리 시험을 보는 동영상을 눈으로 보고서야 ‘이게 진짜구나’ 싶었다. 눈 앞에 펼쳐진 그 광경이 코로나19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신천지, 청년’으로 검색을 해보니 신천지를 탈퇴한 청년들의 인터뷰나 이와 관련한 기사들이 꽤 있었다. 신천지가 왜 청년을 노리는지, 청년은 왜 신천지에 빠지는지 그리고 청년들을 포섭하는 신천지의 구체적인 수법들이 나열돼 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다지만, 한국사회와 한국의 청년들에게는 진단만 난무할 뿐 처방이 없다. 신천지를 제거하면 우리 사회는 치유될 것인가? 신천지는 사이비 종교인 동시에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다. 신천지가 암적 존재일지라도 악성 종양처럼 도려낼 수는 없다. 그들은 건강해야 하고 행복해야 하는 나 같은 사람이고, 그들 역시 우리다. 그들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새 나라를 원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먹고살 만한 안정된 직장을 구하고, 취미 생활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고, 특별한 사람을 만나 특별한 관계가 되어도 보고, 멋진 차를 사거나, 작더라도 나만의 공간을 구해 멋진 인테리어를 해보고 싶고, 맛있는 것 먹고, 좋은 옷 입고 싶고…. 말도 안 되지만 그걸 하나님의 새 나라가 대체했다. 사이비 교주의 말대로 선택받은 14만4000명에 들어 영생을 얻는 게 더 현실적인 목표로 느껴질 만큼 청년들에게 꿈은 감히 꾸어선 안 되는 금기의 영역이 됐다. 수능을 보고 나서,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고민은 늘어가는데 고민을 나눌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때 누군가 나타나 고민을 들어주고 심리테스트를 해주고,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때 신천지 교도였다는 청년의 인터뷰를 보고 너무도 허망했다. 지금 우리는 다시 꿈을 꾸어야 한다. 주 40시간 땀 흘리면 먹고살 만한 사회가 되는 꿈, 상시 지속적인 업무에는 비정규 노동자를 쓸 수 없는 사회가 되는 꿈 말이다. 청년들에게 꿈을 꾸라고 하지 말고 나부터 꿈을 꿔야 한다. 택시 운전으로 4인 가족을 부양하고 저축해서 집을 살 수 있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고한다. 나 때는 더 힘들었다며 청년들 속이지 말고, 근거 없이 무조건 노력하라고 충고하지 말고, 내 자식만 살아남길 바라지 마라(그런 건 불가능하니까). 특히 전태일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청년에게서 꿈꿀 자유마저 앗아간 신자유주의와 양심껏 좀 싸우자.
-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9) 자기계발의 시대 신자유주의적 귀족교육(2016. 08. 22 17:33)
- 2016. 08. 22 17:33 사회
- 이 대놓고 신자유주의적 성공주의를 드러내고 있다면, 이러한 날것 상태의 자기계발주의와는 달리, 많이 ‘조리된’, 하여 그 욕구를 보다 승화된 양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교육운동이 대형교회 대안학교운동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사람들은 당황했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것이 그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물음이었다. 대답은 하나다. 적어도 그 시대에는 여러 가치관에 따른 다양한 답을 이야기할 여유가 없었다. 단지 하나만이 절박하게 요청되었다. 돈, 돈을 벌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무렵 출판계에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러한 추세는 이후 거의 10년 동안 서점가를 휩쓸었다. 이른바 ‘자기계발서’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 이전까지 가장 높은 판매부수는 단연 소설 분야의 것이었고, 몇몇 소설가들은 밀리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그런데 2000년대에는 자기계발서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였다. 놀랍게도 2000년대 베스트셀러 20권 중 무려 10권이 자기계발서들이다. 기독교 출판계도 예외가 아니다. 1999년 번역되어 출간된 가 그 신호탄이었다. 이 책은 2년 만에 무려 27쇄, 20만부 이상 팔렸다. 이후 수많은 기독교 자기계발서들이 쏟아져나왔다. 특히 2006년 번역 출간된, 미국 최대의 메가처치 레이크우드 교회의 담임목사인 조엘 오스틴의 책 은 기독교 출판물 중 최대의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또 미국에서 가장 특징적인 메가처치인 새들백 교회 담임목사인 릭 워렌의 책 시리즈도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한국인 저자 김동환의 책 의 판매량도 수십만권에 달했다. 2006년대 중반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출간됐다. 기독교 출판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6년 한 대형서점의 자기계발 코너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만부 이상 팔린 이 책들은 거의 모두 ‘성공’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돈을 벌 수 있게 하는 다양한 방법들에 관한 것이다. 이 시기 자기계발서들에 대한 주목할 만한 비평서인 에서 저자 이원석은 이 공통점에 대하여 “바깥의 사회구조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자기 자신을 주목하도록” 만드는 신화들이라고 좀 더 분석적으로 이야기한다. 즉 자기계발서들이 주장하는 성공 비법들은 개개인의 자기계발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하여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개개인은 능동적으로 자기를 쇄신해야 한다. 그런 쇄신은 무한히 가능하고, 그 쇄신에 따라 성공이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이가 남자건 여자건, 부자건 빈자건,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사회적 범주가 어떠하건 상관없다. 쇄신은 사회적 규정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노력에 좌우된다. 즉 자기계발은 철저히 개개인의 문제다. 한데 흥미로운 것은 자기계발은 개인적으로 수행되지만, 그 내용은 사회가 이미 규정한 것이라는 점에 있다. 즉 자기계발은 사회가 정한 원리에 따라 개개인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규율하는 수행과정을 의미한다. 이때 사회가 정한 원리란 크게 보면 신자유주의적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자기계발은 신자유주의적 삶의 수행법이며, 신자유주의적 인간의 자기 관리법이다. 지난 글에서 우리는 교회들의 배금주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것은 이 시기 자기계발서들 속의 신자유주의적 원리가 여과되지 않고 적나라하게 표출된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날것 상태의 신자유주의적 양상으로서의 배금주의는 동시대 기독교 출판물들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인 저자 김동환의 “서울대 출신 최강의 국·영·수 선생님들이 ( )에서 뭉쳤다.” 여기서 괄호 안에 들어갈 문구는 무엇일까? 참고로 이 전단지에 들어간 다른 문구들은 이렇다. “강북 강남 통틀어 이렇게 막강한 선생님들이 한꺼번에 모인 학원은 찾기 어렵습니다.” “수준별, 실력별, 맞춤식 학습을 통해 확실한 실력 향상을 목표로 학습이 이루어집니다.” 정답은 ‘장안평 다니엘비전학원’이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학원 광고다. 그런데 핫한 학원가로 유명한 대치동도 아니고 분당 정자동도 아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잘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다. ‘다니엘’이니 ‘비전’이니 하는 표현으로 봐서는 기독교 냄새가 풀풀 난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이 섞여 있다. 이 학원은 장안평이라는 지명에서 드러나듯이, 고소득층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학원이 아니라 서민층을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기숙학원이다. 흥미로운 것은 새벽 5시10분에 예배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 세 번의 기도와 예배를 통해 철저한 신앙훈련을 하는 곳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신학대학 입시학원이 아니라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입학을 목적으로 하는 입시학원이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것은 무료학원이라는 점에 있다. 원장은 의 저자 김동환이다. 서울대 종교학과 출신이고 전교 수석 졸업자로 알려졌다. 그가 이 학원에서 문제아인 청소년들을 SKY대학들에 입학시켰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것은 그가 창안했다는 공부법인 ‘다니엘 학습법’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을 야기시켰다. 입학 문의가 속출했다. 이에 중상위층 학생 대상의 유료학원을 만들려 했다가 재정 투명성 문제로 실패했다. 그렇지만 책은 전국 도처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그는 전국의 무수한 대형교회들을 돌면서 강연을 했다. 또 다니엘 학습법을 주제로 하는 무수한 수련회를 이끌었다. 즉 장안평의 기숙학원은 소문의 진원지일 뿐이다. 다니엘 학습법 신드롬은 전국적 현상이었고, 특히 대학입학을 꿈꾸어도 좋을 중상위계층에서 더 열기를 띠었다. 이는 자기계발서 현상이 단지 독서행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삶 전체가 투입된 실천적 수행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사례에 속한다는 것을 뜻한다. 다니엘비전학원 전단지에 의하면 “21세기 다니엘 같은 하나님의 준비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다니엘 학습법’의 목표다. 즉 ‘21세기 크리스천 인재 양성’, 그것이 바로 ‘다니엘 학습법’으로 표상되는 신자유주의적 기독교 입시교육 신드롬의 지향점인 것이다. 다니엘비전학원 광고지 김동환은 기숙학원을 통해서 다른 교육, 즉 공교육의 교육과정 전체를 대체하고자 했다. 국·영·수 세 과목의 ‘입시교육’과 예배와 기도라는 ‘종교교육’으로 구성되는 입시 맞춤형으로 축소된 교육과정으로, 크리스천 인재를 양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대놓고 신자유주의적 성공주의를 드러내고 있다면, 이러한 날것 상태의 자기계발주의와는 달리, 많이 ‘조리된’, 하여 그 욕구를 보다 승화된 양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교육운동이 대형교회 대안학교운동이다. 1990년대 말 이전까지 개신교계 대안학교들은 크게 세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다. 첫째는 장애인학교 같은 특수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대안학교이고, 둘째는 일종의 진보적 가치의 대안교육운동으로, 입시중심 교육에 반대하는 생태주의나 사회공동체주의적 대안학교다. 그리고 셋째는 근본주의적 신앙에 기반을 둔 홈스쿨링 운동이다. 이 세 가지 대안학교들은 모두 주류사회의 질서에서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벗어난 교육운동의 성격을 띤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개신교계에는 특히 대형교회가 주도하는 새로운 대안교육운동들이 활기를 띤다. 귀족교육으로서의 자기계발적 수행법 이 시기에 대형교회들이 대안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이렇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종교계, 특히 개신교계 사립학교의 종교교육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거세졌다. 나아가 종교계 사학법인들의 비민주적 재단 운영에 대한 사회적 검열의 요구도 빗발쳤다. 여기에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교회학교도 문제였다. 이때 대형교회의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은 두 가지 문제제기가 결합된 양상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민주주의적 사회론의 기조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였고, 다른 하나는 교회 사학 운영의 전근대성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이 두 문제제기가 수렴되는 지점에 ‘21세기 글로벌 시대 크리스천 인재 양성’이라는 목표가 있다. 즉 민주주의적 사회론의 평등주의나 사학 운영의 전근대성의 공통된 문제점은 현행의 교육제도가 사회를 이끌어갈 엘리트의 양성을 방해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하여 기독교가 주도해서 엘리트 교육을 위한 대안적 교육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2000년대 대형교회들이 주목했던 대안학교운동이다. 2000년대 베스트셀러였던 기독교 자기계발서. 그런데 다니엘 학습법이 개발자 개인의 교수법에 의존하고 있다면, 대형교회의 대안학교운동은 좀 더 제도적이고 시스템적 체계를 중요시했다. 즉 신자유주의 시대의 엘리트로 성장하게끔 하는 제도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장치들이 활용되는 교육기관으로 기독교계 대안학교가 부각된 것이다. 그러므로 개발자 개인의 창의적 교수법 외에는 별다른 자원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전자와는 달리, 후자는 인적·물적 자원이 기존의 공교육보다 훨씬 더 풍부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이는 막대한 인적·물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그 자원을 활용하는 데 있어 지지부진한 논의과정을 거의 거치지 않고 신속하게 활용할 수 있는 대형교회에 가장 용이한 것이었다. 더구나 자녀교육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강남·강동·분당의 중상위계층이 대대적으로 결집된 이 지역의 대형교회들에겐 교인들의 필요에 대한 맞춤형 기획인 측면도 강했다. 하여 대형교회들의 대안학교운동은 일종의 귀족화 교육의 측면을 지닌다. 그것은 명문대학 입학뿐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글로벌 시대에 맞는 국제적인 인재의 자격을 갖추게 하는 총체적 교육을 추구하는 학교라는 것이다. 유·초년 교육기관에서부터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까지 다양한 대안교육기관들이 속속 설립되었고, 그 학비는 일반 교육기관보다 훨씬 높았다. 단, 교인들에게 입학의 특전이나 학비의 특전을 주는 경우가 많아, 이런 교육운동은 일종의 선교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지역사회에 대중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일이고, 그들을 교인화하기에도 용이하며, 교인들의 결속도를 높이는 방법이기도 했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귀족학교들은 배금주의나 성공지상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사실 다니엘학습법처럼 가난한 학생들에게 성공욕구를 부추기는 교육과는 달리, 처음부터 풍요로운 학생들에게 성공이란 삶의 최종 목적이 아니다. 성공도 격조 있게 이룩되어야 한다. 풍요를 위임받은 자가 격조 있게 재산을 관리하는 청부론처럼, 귀족적 대안교육은 성공도 품격을 필요로 하는 삶의 요소임을 강조했다. 신앙은 바로 그러한 품격 있는 성공의 준거다. 하여 귀족적 대안학교의 신앙은 웰빙적 자기계발의 수행법인 것이다.
-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
- [신간]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外(2015. 03. 16 16:20)
- 2015. 03. 16 16:20 문화/과학
-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 조하나 보크만 지음·홍기빈 옮김·글항아리·2만8000원 냉전시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루어진 정치·경제적 논의들을 제시하고 이 시기에 동서 대립을 넘어 교류했던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활동을 복원한 책이다. 담배는 숭고하다 리처드 클라인 지음·허창수 옮김·페이퍼로드·1만5000원 담배에 관한 종합비평서다. 이 책이 쓰여진 20년 전 미국에서는 금연운동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지은이는 문학과 철학, 정신분석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 접목시켜서 담배와 흡연 습관을 해부하고 있다.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법인 지음·불광출판사·1만4000원 인터넷, SNS 등 온갖 미디어를 통해 많은 정보들이 넘쳐난다. 이 책은 경직되고 고착된 검색에서 벗어나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유·사색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누가 진짜 범인인가 배상훈 지음·앨피·1만3500원 프로파일러인 지은이가 다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범죄사회를 분석한 책이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범죄의 발생 경과와 수사과정, 범죄사건이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양상과 효과 등을 짚었다.
- 신간
- [김호기의 예술과 사회]U2의 노래와 신자유주의의 종언(2013. 04. 22 17:41)
- 2013. 04. 22 17:41 문화/과학
- 최근 내 시선을 끈 뉴스의 하나는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의 사망이다. 대처의 사망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대처는 신자유주의를 상징하는 정치가다. 1980년대 이후 환호와 증오를 동시에 받아온, 사회과학 연구자들은 물론 다수의 시민들을 고뇌하게 만들어온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U2의 1987년도 앨범 | 경향자료사진 이론적으로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새로운 버전이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를 중시했다면,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개입에 맞서는 시장에서의 자유를 특권화한다. 시장에서의 자유가 경쟁 메커니즘에 의해 보장된다는 점에서 경쟁은 신자유주의의 기본 원리이자 자본주의의 생산 및 재생산을 담당하는 조정원리를 이룬다.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경쟁은 지고지순의 미덕으로 간주되며, 무한경쟁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승인된다.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 낳은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시장 메커니즘을 정상화함으로써 생산과 분배의 효율성을 제고시킬 수 있다는 논리가 신자유주의의 핵심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역사적으로 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의 이른바 ‘국가의 실패’를 대신해 등장한 발전전략이다. 신자유주의를 적극 채택한 사례로는 1980년대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가 꼽힌다. 특히 영국의 대처 정부는 세금감면, 규제완화, 민영화, 사회보장기금 삭감 등의 정책들을 통해 시장에의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이러한 전략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진행된 포스트포디즘(post-Fordism)이라 불리는 자본주의 유연화 모델과 결합하여 침체된 경기를 회복시키는 데 어느 정도 가시적 성과를 가져왔다. 딱딱한 이야기가 길어졌다. 대처의 사망 소식을 접하면서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핵심 논리와 역사적 등장을 자연 떠올리게 됐다. 1980년대는 개인적 경험에서도 잊을 수 없는 시절이었다. 전반부에는 서울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다녔고, 후반부에는 독일에서 사회학 공부를 이어갔다. 영국의 대처 정부와 독일의 콜 정부가 추진하던 신자유주의를 직접 목도할 수 있었기에 대처의 사망 소식은 당시 내가 가졌던 상념들을 돌아보게 했다. 1980년대 후반 독일 대학은 1968년 68혁명의 분위기가 적잖이 퇴조되고 신자유주의가 절정에 달하면서 혼돈스러운 풍경을 보여줬다. 한편에서는 새롭게 부상한 녹색당에 대한 지지가 작지 않았지만, 다른 한편에선 과도한 경쟁논리가 대학사회에도 강화하면서 자유와 진리 탐구라는 대학 특유의 활력이 상실돼가고 있었다. 그런 혼란스럽고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나를 포함한 학생들에게 큰 위안을 안겨준 것 가운데 하나가 아일랜드 출신의 록그룹 유투(U2)의 노래들이었다. U2가 1987년에 발표한 는 팝 음악 역사상 기념비적 앨범이다. 놀라운 판매량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보여준 사회비판적 태도는 젊은 세대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얻었다. 당시 록 음악이라고 해서 모두 비판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더 클래쉬(The Clash)처럼 U2보다 더 급진적인 펑크록 그룹들도 있었다. U2가 특히 관심을 모은 것은 뜻 깊은 가사와 록 특유의 연주에 있었다. [The Joshua Tree]에는 사랑과 신앙에서 사회 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곡들이 담겨 있다. ‘With or Without You’는 발표된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요즘도 음악방송에서 가끔 들을 수 있기도 하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나는 아직도 내가 찾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어(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다. 인권과 환경 등 다양한 사회운동에도 적극 관심을 보여온, U2를 대표하는 보노(Bono)는 이 곡이 기독교 신앙에 관련된 곡이라고 말한 바 있지만, 그 제목에 담긴 다의적 의미는 신자유주의의 황량한 현실에 내동댕이쳐진 젊은 세대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기억된다. 전 영국 총리 대처의 신자유주의정책에 희생됐던 사람이나 반대했던 사람들은 대처의 죽음을 신자유주의의 파산에 비유했다. 4월 17일 대처의 장례행렬이 지나는 가운데 ‘편히 쉬길(Rest in Peace)’이라는 조사를 비꼰 ‘창피하게 쉬길 (Rest In Shame)’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 모습. | AP/연합 국가의 실패에 따른 시장의 복권을 부각시킨 신자유주의 전략은 1990년대에 들어와 한계에 직면했다. 사회보장의 축소는 소득분배를 악화시키고, 노동시장 유연화는 고용불안 및 실업을 증대시킴으로써 신자유주의 정부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약화시켰다. 주목할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영국의 블레어 정권 등 적지 않은 국가들에서 새로운 중도진보 정부가 등장했지만, 이들 역시 신자유주의로부터 그렇게 자유롭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모델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지속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가 구조적 위기에 직면한 것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통해서다. 하지만 이후 최근까지 진행된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은 듯하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평가하는 시각은 이중적이다. 한편에서는 미국식 금융체제의 한계가 여지없이 드러났다고 보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신자유주의의 종언이 시작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전자의 이슈에 대해선 나름대로의 공감대가 형성됐는데,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수렴돼 왔다. 하지만 후자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려 왔다. 진보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의 몰락이 자명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그 주장이 섣부르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이라고 믿어. 그러면 모든 색깔들이 하나가 될 거야. 하나가 될 거야. 그래 나는 여전히 달리고 있어. (…) 나는 아직도 내가 찾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어.” 대처의 사망 소식에 오랜만에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를 들어봤다. 그들이 꿈꾸는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적으로 믿음이 더욱 두터워지는 세계인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자유와 평등이 더욱 실현된 세계일 것이다. 경쟁 메커니즘이 가져오는 효율성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인간성을 파괴하고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것이라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하고 실현가능한 대안적 발전모델을 구체화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우리 인류는 이제 신자유주의와 과감히 결별해야 할 때가 됐다. 김호기
- 김호기의 예술과 사회
- [신간]왜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는가 外(2012. 12. 04 13:58)
- 2012. 12. 04 13:58 문화/과학
- 콜린 크라우치 지음·유강은 옮김·책읽는수요일·1만5000원 저자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세력이 약화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해졌다. 책은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했는지, 그러면서도 대기업들은 어떻게 이 위기를 이용해 부와 권력을 확대했는지 보여준다. 이병천 지음·후마니타스·1만5000원 지난 3월 출간된 장하준 교수의 는 진보진영 내부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장하준 교수의 작업이 진보진영 내부의 허점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재벌·국가 중심 틀에 갇혀 있다고 지적한다. 이상돈 지음·소진·1만8000원 미국 헌법 제도가 한국에 미친 영향, 미국 대통령제의 기원과 발전, 대통령의 전쟁과 조약 체결권, 미국의 프라이머리 제도 등을 다룬 책이다. 책에 따르면, 미국 헌법 제정자들은 일반 국민들이 대통령을 뽑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는 판단에서 선거인단 투표라는 간선제적 방식을 채택했다. 한종선 외 지음·문주·1만4500원 1987년 폐쇄될 때까지 12년 동안 최소 513명이 사망하고 다수는 시신조차 찾지 못한 사건이 있었다.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의 생존자 한종선씨(당시 9살)가 28년 만에 끔찍했던 기억을 증언한다. 이어지는 2부에는 사건의 의미를 조명하는 공저자들의 글이 실렸다.
- 신간
- [북리뷰]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의 참회 고백(2012. 06. 19 14:47)
- 2012. 06. 19 14:47 문화/과학
- 필자가 서울대 법대를 다니던 1970년대에는 경제활동에 대해선 정부가 강력한 규제를 해야 한다고 보는 ‘정부 간섭주의’가 정설로 자리 잡고 있었다. 1979년에 미국에 유학을 간 필자는 행정법을 수강했다. 우리와 달리 미국 행정법은 행정절차와 규제행정이 주된 내용인데, 그 중에 ‘규제 해제’에 관한 비중이 컸다. 당시는 카터 행정부가 항공산업에 대한 규제를 해제한 직후였다. 공익과 소비자를 위해선 자유경쟁이 필수적이고, 정부 규제는 독과점을 초래해서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경쟁에 뒤진 이스턴 항공사는 파산했는데,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미국인들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카타니 이와오 지음·이남규 옮김·기파랑·1만3000원 1980년 대통령 선거 시즌이 시작되자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후보는 감세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감세를 통해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주장은 그 때 처음 들어보았다. 레이건 후보는 압도적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필자는 솜이 물을 빨아 들이듯이 ‘규제 해제’와 ‘감세’라는 독트린에 빠져들었다. 케인스 대신에 하이에와 밀튼 프리드먼이 나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말았다. 저자 나카타니 이와오는 닛산 자동차에서 근무하다가 하버드에 유학을 가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따고 일본에 돌아와서 대학에서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철학을 전파했다. 고이즈미 정권이 들어서자 저자는 일본 경제 ‘구조개혁’에 직접 참여해서 미국식 자유주의 경제논리를 일본에 접합시켰다. 그러자 일본 기업의 전통이던 종신고용이 무너졌고, 자유무역 추세에 따라 일본의 제조업은 중국과 동남아 등지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났고, 빈부의 차이가 커졌다. 불과 10여년 사이에 일본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했다. 저자는 이 책이 자신의 ‘참회와 전향’이라고 했다. 자신이 미국 유학을 통해 받아들였던 신자유주의 경제철학은 원래 잘못됐고, 그것을 일본에 전파하고 시행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주도한 구조개혁이 일본인을 행복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가 자율적으로 굴러간다”는 주장은 “계급사회 엘리트들의 암묵적인 생각”일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일본에 남아있는 기득권 구조에 메스를 대는 동시에, 시장 메커니즘이나 글로벌 자본주의가 가진 폭력성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역수로 잡아 일본이나 세계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한다. 그는 미국이 주도한 글로벌 자본주의가 폐단이 많다고 역설한다. 글로벌화에 따른 빈부 격차 확대는 “‘시장의 실패‘에서 유래하는 것이기보다는 글로벌 자본주의 그 자체에 내재된 본래적 기능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라고 말한다. 일본이 미국식 개혁을 추진한 결과는 비참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국 등 인건비가 싼 나라에서 나오는 제품과 경쟁을 해야 했던 기업들은 ‘격차가 의욕을 낳는다’는 사상에 기초해서 회사 종업원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는 분단형 개혁을 추진했다. 그 결과로 일본은 미국에 이어 빈곤층의 비율이 가장 높은 세계 제2위의 ‘빈곤국가’가 되고 말았다. 저자는 2008년 금융공황으로 인해 “자본주의가 ‘인류보편의 원리’였던가?”에 대해 의문이 일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쿠바와 부탄의 예를 들면서, 국민의 행복은 물질적 풍요와 비례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일본이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을 폐기하고 덴마크 등 북유럽국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을 재평가한 대목이 흥미롭다. 저자는 미국이 보기 드문 ‘이념형 종교국가’라서 실패했다고 본다.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이라크 전쟁은 그러한 성격을 규명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유와 평등의 이념에서 생성된 민주적 시스템인 시장 메커니즘을 전세계로 확산시키는 것이야말로 ‘정의’라고 믿고 있다고 꼬집는다. 덧붙이자면, 필자는 아직 이 책의 저자만큼 시장자본주의를 불신하고 있지는 않다. 이상돈
- 북리뷰
- [커버스토리]신자유주의에 지친 대중의 마음 꿰뚫다(2010. 12. 16 16:42)
- 2010. 12. 16 16:42 사회
- 고통에 웬만큼 내성이 생긴 사람이라도 그것이 임계치에 도달하면 비명을 지르게 마련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회 구성원들이 느끼는 고통이 일정 수위에 도달하면 그 고통은 사회적 현상으로 터져나온다. 지금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신자유주의가 남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보내는 독서 대중들의 열광은 그 고통이 목구멍을 넘어 터져나오는 비명이자, 혼란한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열망의 표출이다. <편집자 주>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10월30일 정식 판매를 시작한 후 한달 만에 15만부가 팔리며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정원식 기자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지난 10월 30일부터 정식으로 서점 판매를 시작했다. 판매 시작 5일 만인 11월 3일, 온라인 서점 ‘빅4’인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온라인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11월 11일에는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에 오른 후 계속 1위를 지키고 있다. 소설이 아닌 인문사회분야 책으로는 이례적인 일이다. 장하준 교수의 책에 대한 독자들의 호응 자체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2007년에 나온 <나쁜 사마리아인들>만 해도 그 뒤 한 해 동안 10만부가량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그 속도에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압도한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2007년 10월 1일에 출간돼 10월 31일까지 한 달 동안 2만부가 팔렸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올해 11월 1일에 출간돼 11월 30일까지 15만부가 팔렸다. 출간 직후 한 달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판매량에서 7배 정도 앞선다. ‘장하준’이라는 지명도 있는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구매하는 고정 독자층의 존재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다. 불안정한 시대, 독자들의 욕구 장 교수의 책이 독자들에게 주는 호소력은 먼저 서술의 평이함과 대중적인 친화력에서 찾을 수 있다. 책을 펴낸 박윤우 대표(도서출판 부키)의 말이다. “장 교수의 책은 경제학을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주류경제학은 계량적 모델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데, 장 교수는 계량적 모델보다는 역사적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다음으로 장 교수가 아무래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 경제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책을 쓴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결정적인 건 경제학자들은 이론 중심으로 말하지 사회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말하지 않는다. 장 교수는 구체적인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말한다. 독자들로서는 공감할 수밖에 없다.” 전공자 수준의 경제학 지식이 없어도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내용의 평이함이라는 표층적인 이유만으로는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독자들의 반응은 불안정한 시대상황으로부터 비롯된 독자들의 정서적 욕구와 연관돼 있다. 출판사의 분석에 따르면 이 책 구매층의 70%는 남성들이다. 스포츠 마니아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의 특성상 남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MLB파크’의 한 회원(아이디 ‘SS반다인’)은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장하준 교수의 논박은 참 통렬하게 느껴지는데, 1997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사항이 바로 자유주의 경제학의 충고를 충실히 따르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IMF의 권고는 많은 개방, 더 많은 규제 철폐, 더 많은 노동 유연성을 허용하라는 것이었죠. 사실 대부분의 경우 뭔가 사회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느끼지만 권위 있는 학자의 말에 눌려서, 지식이 없어서, 마음 속으로는 그게 아닌 것 같은데, 딱히 논박할 근거도 없고… 그러한 부분을 장하준 교수가 책에서 시원하게 긁어주는 느낌이더군요. 예를 들어, 작은 정부와 더 많은 규제 철폐가 경제 발전의 지름길이라는 신자유주의 명제는 규제투성이인 한국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을 설명할 수 없죠. 어려운 경제학 이론이 안 나와서 읽기도 편합니다.” 우리 사회에 신자유주의 정책이 도입된 이후 느껴온 불안과 불만의 정체를 장하준 교수의 책이 ‘통렬하게’ 해명해주었다는 것이다. 최근 <불안증폭사회>라는 책을 펴낸 심리학자 김태형씨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후 한국 사회가 불안과 공포에 점령당했다고 말한다. 김씨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인들이 두 가지 고통스러운 교훈을 얻었다고 본다. “하나는 이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냉혹한 진리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경제의 미래가 너무나 불확실하다는 사실이다.” IMF는 한국 국민들의 마음에 하나의 트라우마로 자리잡았다. 문제는 이를 치유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씨는 책에서 “불행하게도 한국 사회는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발전 노선을 채택함으로써 한국인들의 트라우마를 계속 악화시켰고 공포를 만성화시켰다”면서 “신자유주의는 한국인들을 자나 깨나 불안과 공포에 떨도록 만들어버린 셈”이라고 썼다. 신자유주의 정책 불만 ‘통렬한 해석’ 외환위기가 남긴 불안과 공포는 근거없는 심리적 망상이 아니다. 한국인들의 삶의 질은 실제로 그 이전보다 더 나빠졌다. IMF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신자유주의적 제도를 수용한 이후 한국 사회의 소득불평등은 두드러지게 벌어졌다. 소득 상위 20%의 소득을 소득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소득5분위 배율을 보자. 이 배율은 상하위 소득 격차가 벌어질수록 커진다. 한국의 경우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 격차는 1990~1997년 사이에는 약 4배였다. 소득 격차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4.94배로 급등했고, 2008년에는 6.2배로까지 벌어졌다. 외환위기 당시 IMF는 구조조정, 고금리, 재정긴축, 민영화, 규제완화 등을 구제금융 지원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는 전형적인 자유시장 경제학의 논리에 입각한 정책 패키지다. 오랜 관치금융과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이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유산이라고 여겼던 한국 사회에서 구제금융 조건은 개혁을 추진할 수단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기조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그대로 유지됐고, 이명박 정부는 복지예산마저 줄여가며 더욱 공격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인들의 마음에 트라우마로 자리잡으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사진은 1997년 당시 임창렬 부총리가 IMF 구제금융 신청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경향신문 신자유주의는 인위적인 강제가 없는 자유로운 시장이 최상의 경제 조절 장치라고 본다. 이 때문에 자유로운 시장의 작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부 개입이나 시장 규제를 최소화할수록 경제가 성장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장하준 교수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서문에서 자신이 책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은 “자유 시장주의자들, 혹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해 온 이야기는 잘해야 부분적으로 맞고, 최악의 경우에는 완전히 틀렸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자유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은 자유로워야 한다. 정부가 개입하여 시장에 참여하는 주체들에게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지시하면 자원이 적재적소에 쓰이지 못하게 된다”고 말한다. 반면, 그들은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자유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시장에는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종의 규칙과 한계가 있다. 시장이 자유로워 보이는 것은 단지 우리가 그 시장의 바탕에 깔려 있는 여러 규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 규제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에서 장 교수는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시장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이유를 들어 특정 규제의 도입을 반대하는 것은, 그 규제를 통해 보호될 권리들을 부정한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 표명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가 자신들의 주장과 달리 정치적인 견해 표명이든 아니든, 불평등을 제도화하든 말든, 경제가 성장하기만 한다면 긍정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장하준 교수에 따르면 자유 시장 정책은 경제성장과 거의 무관하다. 18~19세기 영국이나 19~20세기 초 미국은 보호무역을 통해 성장했다.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한 이후에는 경제 성장률 하락을 경험했지만 보호주의와 정부 개입 정책을 썼던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성장률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소득 상위계층의 세금을 깎아주는 일은 경제의 파이를 키워주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소득 하위계층에게도 이익이 될까. 장하준 교수는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 사례를 들어가며 부자들을 위한 정책인 신자유주의가 지난 30년 동안 성장을 가속화하는 데 실패했고, 부자 감세는 소득 불평등만 심화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장하준 교수의 책이 주목받는 데는 자유 시장 경제학에 맞설 수 있는 이론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학자들이 주류경제학자들에 비해 드문 탓도 있다. 정승일 박사(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출판 시장에서 이례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현상을 1990년대 초중반 한국 사회의 공병호 신드롬에 비유했다. 정승일 박사는 장하준 교수의 경제 이론에 가장 폭넓게 공감하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부자 감세는 소득 불평등만 초래 1990년대 초반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했다. 사회주의를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대안이라고 생각했던 진보진영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한편으로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부는 대내적으로 군부독재의 유산을 청산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세계화’를 주창했다. 한국은 김영삼 정부 시기인 1994년과 1996년에 각기 세계무역기구(WT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정 박사는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개발독재 또한 대안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민주화가 진행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화가 진행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해석할 수 있는 해석의 틀이 필요한 시점에 공병호 소장이 나타나 해석의 빈틈을 메웠다”며 “당시 보수진영은 공병호 소장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고 진보개혁 진영은 이렇다 할 대항담론을 만들지 못했다. 그나마 정운찬 사단이라고 하는 경제학자들이 대항 세력이었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관치를 비판하고 경제 질서의 투명화를 주장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는 금융자본에 무제한의 자유를 허용한 신자유주의에 조종을 울린 사건이다. 사진은 2008년 9월 파산보호 신청을 하며 세계 금융위기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리먼브라더스 본사. |로이터/연합뉴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열풍 이면에는 이처럼 공병호 신드롬이 나타났을 무렵과 비슷한 ‘해석의 부재’ 상황이 자리잡고 있다고 정 박사는 생각한다. “<나쁜 사마리아인>도 잘 팔린 책이지만 그건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에 나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본산이라고 할 미국과 영국의 주류 언론조차도 신자유주의 조종을 선언했다. 이건 주류경제학의 사고체계가 무너진 사건이다. 우리 사회 주류경제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해석하거나 설명해줄 능력이 없다. 그들을 통해서는 시장의 공정성과 복지국가의 중요성 같은 화두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없다. 장하준 교수의 새 책이 지금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장하준 교수는 「Weekly경향」과의 전화 인터뷰(인터뷰 기사 참조)에서 “내 말도 틀릴 수 있다”고 했다. 물론 그가 내세운 주장들이 틀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책을 통해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틀릴 수도 있다고 주장했고, 지금 그의 책을 집어드는 이들은 이 같은 그의 주장에 열렬하게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표지 이야기
- [신간]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간들 外(2010. 08. 11 17:41)
- 2010. 08. 11 17:41 문화/과학
-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간들 세계적인 좌파 이론가 데이비드 하비는 자신의 전공인 지리학에 마르크시즘을 접목한 이론틀로 마르크시즘의 영역을 넓힌 학자다. 책은 2004년 데이비드 하비가 독일에서 행한 두 차례의 강의를 묶어낸 것이다. 책의 1부 ‘신자유주의와 계급권력의 복원’과 2부 ‘지리적 불균등발전론을 위한 노트’가 강의 내용에 해당한다. 하비는 책에서 신자유주의는 지배계급의 권력복원 시도라고 비판한다. 데이비드 하비 지음·임동근 박훈태 박준 옮김·문화과학사·1만7000원 망루 로 주목받은 주원규씨가 용산참사를 소설로 형상화했다. 그러나 단순히 참사를 있는 그대로 복원한 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서사의 중심축은 교회 전도사 정민우다. 어느날 그에게 ‘이 땅에 나타난 재림 예수’라는 제목의 글이 날아든다. 종교와 자본이 서로 내통하면서 빚어지는 한국사회의 천민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작품이다. 주원규 지음·문학의문학·1만1000원 누가 무장단체를 만드는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지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존재해온 무장단체를 분석한 책이 나왔다.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1992~2007년 사이에 헤즈볼라, 하마스, 탈레반, 코소보해방군, 타밀호랑이 등 80개 무장단체를 심층적으로 조사했다. 무장단체는 어떻게 조직되고, 어떻게 유지되며, 그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책은 이러한 질문을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풀어낸다. 클라우스 슐리히테 지음·이유경 옮김·현암사·1만8000원 생명전쟁 생명에 대한 연구는 단순한 연구에서 그치지 않는다. 유전자변형식품, 배아복제, 게놈변형 같은 영역들은 걸핏하면 정치적인 논쟁의 영역으로 끌려들어간다. 책은 첨단 생명과학이 우리 사회에 가져올 변화를 신중하고 종합적으로 예측한다. 저자는 생명의 진화, 분화, 소멸 등의 문제를 낙태, 안락사, 지속가능한 생명의 미래 등과 연관지어 풀어낸다. 윌리엄 F 루이스 지음·조은경 옮김·글항아리·1만8000원
- 신간
- [신간 탐색]신자유주의는 빈곤층만 미워해(2010. 05. 26 16:08)
- 2010. 05. 26 16:08 문화/과학
- ㆍ가난을 엄벌하다 로익 바캉 지음·류재화 옮김·시사IN북·1만2000원사회 개혁 프로그램으로서의 신자유주의는 일반적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시장에 많은 자유를 허용하는 기획으로 이해된다. 이 같은 신자유주의 기획이 실제로는 개인 자유의 신장이 아니라 기득권 세력의 권력 장악을 위한 이념적 선전 공세에 불과했다는 것이 신자유주의 비판자들의 주장이었다. 프랑스 사회학자 로익 바캉은 여기에 새로운 각도의 비판을 보탠다. 신자유주의는 복지를 줄이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처벌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체제 형벌국가 모델은 미국에서 고안됐다. 이 모델의 특징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톨레랑스 제로’(무관용)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뉴욕시장을 지낸 루돌프 줄리아니는 뉴욕시 치안 유지에 이 ‘톨레랑스 제로’ 원칙을 적용했다. 그는 당시 뉴욕시 경찰국장 윌리엄 브래턴과 쌍두마차를 이뤄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사회 전체로 범죄가 확대된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실천했다. 무관용 원칙 아래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우생학적 선입견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미국 보수주의 싱크탱크 맨해튼연구소의 재정 지원을 받아 복지국가를 공격하는 이론을 고안한 정치학자 찰스 머리는 “인간은 사회 불평등이 가져온 결핍 때문이 아니라 정신적·도덕적 태만 때문에 범죄자가 된다”고 설파했다. 범죄 발생 원인을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 탓으로 돌린 것이다. 줄리아니 시장은 언론으로부터 뉴욕시 범죄율을 획기적으로 줄였다는 평가를 받으며 영웅이 됐다. 무관용 원칙이 옳았던 것일까. 실상은 달랐다. 줄리아니가 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1993년부터 1996년 사이에 뉴욕에서 범죄가 줄긴 줄었다. 그러나 치안에 무관용 원칙을 도입하지 않은 보스턴, 시카고, 샌디에이고 등 다른 대도시에서도 범죄는 줄었다. 줄어든 것은 범죄만이 아니다. 같은 시기에 뉴욕시 사회복지 예산의 3분의 1이 삭감됐다. 복지 예산은 삭감된 반면에 경찰력 증강과 장비 마련에 든 돈은 5년 동안 40%가 늘어났다. 그러나 경찰이 잡아넣은 것은 난동, 방뇨, 고성방가 등 경범죄자들이었다. 경찰은 범죄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가난한 지역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감시했고, 그 결과 경찰의 과잉폭력에 항의하는 고발 건수의 80%가 이들 지역에서 나왔다. 빈곤층 출신 잡범이 대량으로 수감되면서 교도소는 ‘산업’이 됐다. 민영교도소는 1983년 이후 8년 동안 27만6655개로 늘어났다. 주식시장에도 상장돼 있는 민영교도소는 ‘경비절감’을 이유로 재소자들의 사회복귀지원 프로그램을 축소했다. 형벌 국가로의 전환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신자유주의 기획에 따라 진행된 복지국가 축소 과정과 동궤를 그린다. 복지 축소가 유발한 사회적 소외의 피해자인 빈곤층은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사회적 쓰레기’로 간주돼 사회로부터 격리된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유토피아는, 자유를 부르짖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가장 가진 것 없는 자만이 아니라 조만간 보호 영역 바깥으로 밀려날 자에게서도 자유를 박탈할 것이다. 그것은 과거의 억압적 부성주의와 야만적 자본주의로의 퇴행”이라고 말한다. ‘살균된 세상’을 꿈꾸는 신자유주의 체제는 ‘자유의 수호자’가 아니라 ‘자유의 적’이다.
- 신간 탐색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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