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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20%대’ 대통령이 만든 정치 실종 시대…결국은 ‘각자도생’(2024. 09. 09 06:00)
2024. 09. 09 06:00 정치
지지율 하락에도 변화 없어…대통령으론 국회 개원식에 첫 불참 견제기능 제대로 못 한 여야 책임…쟁점들 정치적 해결 어려울 듯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국사회가 대통령제에 관해 ‘참교육’을 당하고 있다. 여론, 지지율 변화에 무감한 대통령에게는 특별한 견제 장치가 없다는 것이 이번 교육의 핵심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30%를 밑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리얼미터의 일간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에 나선 지난 8월 29일 이후 하루동안 지지율은 2.1%포인트 급락했다.(30.4→28.3%) 이날 윤 대통령은 의료개혁, 친일 논란, 김건희 여사 수사, 채 상병 특검, 당정관계, 영수회담 등에 관해 설명했다. 지지율 하락은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설명과 여론의 괴리감에서 비롯됐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들은 지지율이 급락하면 국정운영을 쇄신하는 척이라도 했다. 그러니 지지율은 대통령제 민주주의에서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유효한 장치처럼 여겨졌다. 윤 대통령은 달랐다. 국정브리핑 직후 참모들에게 “선거 없는 지금이 개혁을 추진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2일에는 ‘민의의 집합체’인 국회 개원식에도 불참했다. 이른바 ‘87년 체제’ 이후 대통령이 불참한 첫 사례다. 대신 “국회를 먼저 정상화하고 초대하는 것이 맞다”는 꾸지람을 전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여당인 국민의힘 지지율에도 미치지 못한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하버드대 교수는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에서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한 지도자가 행정부 권력을 확대해 자유와 법치를 훼손하고, 서서히 민주주의를 질식시킨다”고 지적했다. 이 공식은 한국 대통령제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국회가 제정한 법이 아닌 정부의 행정명령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이 ‘정치적 부채, 책임’에서 자유로울 경우 이는 더욱 극대화된다. 다음 선거에 출마할 일도 없고, 정치적 계보가 있어 정권연장이 사명인 것도 아닌 경우다.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사실이 발견되지 않으면 ‘정치적 이유’로 탄핵당할 일도 없다. 이렇게 위기에 무감각해진 대통령은 국민의 불편에도 무감각해진다. 실제로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경험담이 나오고 있지만 윤 대통령은 “의료 현장을 한 번 가보라. 비상 진료체제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라거나 “국민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나. 국가가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겠나”라고 말했다. 의료개혁과 관련해 여야가 제안한 의견을 모두 일축하고 있는 정부가 국민에게 의견을 되묻는 상황은 기만에 가깝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러한 상황이 해소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전국단위 선거가 2026년 6월 3일 예정인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다. 윤 대통령 임기를 1년 정도 남겨둔 시점이다. 선거 승패가 국정운영 방향에 영향을 주기엔 너무 늦다. 국회가 삼권분립 취지에 맞게 행정부를 견제할 것이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주요 현안에 목소리를 내지만 대통령실에 무시당하거나(2026년 의대 정원 증원 유예 제안) 뒤늦게 자기검열(제3자 추천 방식 채 상병 특검법) 중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정책적 측면에선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을 두고 당내 혼선부터 정리해야 한다. 정치적 측면에선 계엄령과 같은 확인 불가능한 의혹에 스스로 휘말리고 있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정치가 완벽히 실종된 상태”라며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정쟁 외에 민생 의제들이 해결되는 모습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의 과거 행보로 볼 때 국정기조 변화는 굉장히 어려운 만큼 추석 명절 즈음이면 대통령 지지율이 지금보다 더 하락하는 상황을 볼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4일 경기도 의정부시 권역응급의료센터인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을 찾아 응급 의료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은 현실을 어떻게 보나 윤 대통령의 국정브리핑은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많은 의문을 만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우리 경제가 확실하게 살아나고 있고, 앞으로 더 크게 도약할 것”이라고 말한 점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지난 7월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을 2.5%로 전망했는데, 이는 미국(2.6%)에 이어 주요 선진국 중 두 번째로 높다는 것이다. 해당 전망치에는 기초적인 함정이 있다. 윤 대통령이 단순히 경제성장률이라고 말한 내용은 본래 ‘전년 대비’ 경제성장률이라고 말해야 정확하다. 어떤 해의 성장률이 유독 낮으면 이듬해 성장률은 높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전쟁으로 2022년 -1.2%로 역성장한 러시아의 2023년 경제성장률은 3.6%였다. 2023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4%, 미국은 2.5%, 일본은 1.9%였다. 주요 선진국 평균은 1.7%로 명시됐다. 기저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해당 수치로만 비교하면 지난해 한국은 주요 선진국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게 성장했고, 전쟁 중인 러시아는 주요 선진국을 뛰어넘어 성장했다는 의미가 된다. 심지어 러시아는 올해도 3.2%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윤 대통령 말대로면 전쟁 중인 러시아가 세계에서 경제성장이 가장 빠른 나라 중 하나다. 게다가 한국은 2024년 2/4분기에 1/4분기보다 -0.2% 역성장했다. 전망치 하나를 보여주며 “경제가 확실하게 살아나고 있다”는 말을 체감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외교, 통일 측면에서도 현실과 괴리감을 만드는 말들이 쏟아졌다. 외교 영역에선 “한·일관계를 12년 만에 정상화시켰고, 정부 출범 이후 11차례의 정상회담과 활발한 고위급 교류를 통해 안보와 경제협력을 활성화시켰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정부를 향해 ‘친일’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한·일관계’ 개선을 업적으로 언급했다. 특히 이러한 행위가 대통령 스스로 외교적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것이란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 어떻게든 대일관계가 악화하지 않게 관리해야 할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의미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퇴임을 앞두고 방한한 것을 두고 “기시다 총리의 ‘최고 성과’는 ‘윤석열 대통령’”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기 3년차에 통일 정책으로 내놓은 ‘8·15 통일 독트린’ 역시 마찬가지다. 자유와 번영을 북한에 전파하겠다는 발상은 기존 정부의 통일정책을 역행한다. 이는 박정희 정부의 7·4 남북공동성명,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 등 보수 정부의 대북정책도 포함한다. 윤 대통령의 정치적 지향점이 국민의힘 계열이 맞느냐는 지적은 이와 무관치 않다. 윤 대통령의 독특한 인식은 민주주의에 대한 관점에서도 드러난다. 이준한 인천대 정외과 교수는 “대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한 번 선출되면 눈치 보지 말고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다”며 “대통령 책임하에 국가적 과제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고, 국회 지원을 받아 수행하라는 것인데 윤 대통령은 이를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정부와 국회의 관계를 동등한 ‘분립’이 아닌 상하 ‘위계적’ 구조로 본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개원 연설 불참 역시 해당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에 가면 ‘이제 그만두셔야죠’라고 야당이 면전에 대고 시위를 하고, 어떤 의원은 ‘살인자’라고까지 퍼붓는데 이런 곳에 왜 대통령이 가야 하나”라고 말했다. 누구든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이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이다. 실제로 1987년 이후 집권한 대통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빠짐없이 국회 개원 연설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상태에서도 국회를 찾았다. 유독 윤 대통령만 특별하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지난 9월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여야 대표가 정부를 견제할 수 있나 정부의 국회 경시는 결국 제대로 견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여야 정당의 책임이다. 특히 국민의힘을 두고는 오히려 “윤 대통령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견제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주요 국면마다 당정 불화설이 나오고 있다. 한 대표가 제안한 ‘의대 증원 유예‘뿐만 아니라 채 상병 특검법을 둘러싼 ‘제3자 추천 방식’ 역시 사실상 거부됐다. 한 대표가 당을 장악할 겨를도 없이 대통령의 거부가 이어진 것이다. 당내 친윤계를 중심으로 ‘제3자 추천 방식’에 반대하는 기조도 분명하다. 윤석열 정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채 상병 특검법 안에 숨은 나쁜 의도, 즉 정쟁용으로 대통령 탄핵을 빌드업하기 위한 음모라는 게 저희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음 대선까지 2년 넘게 남은 상황에서 한 대표의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등도 자기 목소리를 내는 중이다. 한 대표는 점점 진퇴양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제3자 추천 방식’은 오히려 민주당을 포함한 야 5당이 받았다. 이들은 한 대표 구상대로 특검 후보를 대법원장이 추천하도록 하되, 야당에 특검 후보 비토권(재추천 요구권)을 추가로 부여해 지난 9월 3일 발의했다. 이를 두고 한 대표는 “(민주당이 발의한 특검법안) 내용을 봤는데 바뀐 게 별로 없더라”며 선을 그었다. 다만 “제 입장은 그대로”라며 향후 대통령과의 갈등 가능성은 남겼다. 결국 본인 말을 뒤집고 대통령에 굽히거나 맞서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이다. 지지율이 20%대로 주저앉았지만 임기는 2년 이상 남은 대통령을 따를 것이냐의 문제다. 이 교수는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굉장히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결코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독특한 관계”라며 “특히 한 대표는 대통령실과 물밑에서 조율해야 할 일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거부당하고 있다. 이를 볼 때 대통령에게 굽힐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9월 4일 민주당 의료대란대책특위와 함께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을 방문, 추석 명절 의료 대응 여력 등을 살핀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상황이 복잡한 것은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다시 돌아왔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혐의 1심 재판 선고가 오는 10월로 예고돼 있다. 정부를 향한 견제가 모두 ‘이재명 방탄용’이라고 정쟁화되는 상황이다. 특히 증거 없는 계엄령 의혹 제기는 역공의 빌미만 되고 있다. 정작 대통령 및 여당과 정책대결로 갈 수 있었던 금투세는 빠르면 9월 말에나 당내 입장이 정리될 전망이다. ‘보완 후 입법’을 말하지만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끝까지 관철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자칫 이름뿐인 금투세로 남을 수도 있다. 결국 한국의 정치 지형은 ‘지지율 20%대에도 경로 변경은 없는 대통령’과 ‘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여야 대표’의 각축전 상황이다. 의료개혁을 포함해 현안이 정치적으로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의미다. 한국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각자도생 사회’라는 오명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인권 감수성 실종…인권위 짓밟으러 왔나”(2023. 11. 03 11:13)
2023. 11. 03 11:13 사회
ㆍ석원정 전 국가인권위 위원 인터뷰 석원정 노동인권회관 부소장(65)은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으로 임명돼 올해 7월 23일까지 활동했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윤석열 정부 임기 1년을 지난 시점까지 인권위 내부의 상황변화를 겪고 나온 사람이다. 그는 2023년 인권위의 현 상황을 “아수라장이 됐다”라며 “참담한 심경”이라고 밝혔다. 인권위원 임기를 마치고 이주노동자 인권운동 활동가로 돌아온 석 부소장을 지난 11월 1일 서울 중구 동호로 소재 노동인권회관에서 만났다. -지난 9월 25일과 10월 30일 열린 국가인권위 전원위원회를 방청했습니다. 저 같은 기자들뿐 아니라 10월 30일엔 인권단체 사람들까지 방청하고 있었는데도 일부 인권위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무처에서 월권했다며 ‘비켜라’라는 등의 말을 하고 다른 인권위원은 ‘사무처 직원들에게 대신 사과드린다’고 맞받는 등 공방을 벌였습니다. 석원정 부소장께서는 가장 최근에 인권위 비상임위원을 마쳤습니다. 지금 인권위 내부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요. “자세한 이야기는 못 들었고 인권위 운영 규정을 바꾸겠다고 하다가 일단 차기 회의로 미뤘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사실 올해 상반기부터 분위기가 영 아니었습니다.” -올해 상반기부터 이렇게 된 겁니까. “그전부터 회의 분위기는 별로 안 좋았습니다. 새로 임명된 특정위원이 본인의 주장을 담은 문건을 배포할 때도.” -어떤 주제였습니까. “에이즈예방법 전파매개행위 처벌에 대해 위헌이라고 헌법소원이 들어오면서 그에 대해 인권위가 헌법재판소에 의견을 내는 절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합헌이라는 주장을 펴면서 문건을 돌렸어요. 개인적으로 그분 주장이 놀라웠어요. 우리 내부에서도 한바탕 논란이 있었는데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상임위원회 간담회에서 오간 발언 같은 게 언론에 나기 시작했죠.” -해군 두발 기준 관련이었던가요. “네. 초안에 의견을 넣었던 것을 언론이 특정 위원의 혐오발언이라고 보도하면서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거죠. 그전에도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그만둘 때쯤 국가인권위가 소위원회에서 많은 진정 사건을 다루고 실태조사 같은 걸 했는데, 아주 중요한 문제는 결국 전원위원회에서 많이 다루게 되거든요. 전원위원회에서 토론이나 의견·주장, 또 전문가들의 의견이 조사되고 제시되지만 결국 의견이 합치 안 되면 나중에는 표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원위를 구성하는 인권위원이 11명이니 6명이면 과반인데 이제 지형이 뚜렷해져 버린 겁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임용된 두 상임위원 중 한 분은 올 때부터 ‘진보가 어떻고 민주당이 어떻고 기존에 있었던 분들은 다 좌파’다, 기존에 나온 결정은 거의 진영논리에 의해 결정된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어이가 없어서 일일이 하나하나 대꾸하기도 그랬습니다. 정말 그분들 눈에 그렇게 보여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인지 묻고 싶었어요. 서미화 위원님 그만두시고 저도 그만두면서 인적 구성이 확 바뀌니 이후의 상황이 뻔히 예상됐습니다. 남아 있는 분들에겐 미안하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합니다. 제가 있을 때 지금 분란이 되는 상임인권위원을 피진정인으로 하는 갑질 진정 같은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이었으니까요. 상상 이상으로 불편했지만 너무나 빨리 정말 아주 더 안 좋은 방향으로 치닫는 것을 보니까 요새는 참담하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드디어 인권단체들까지 나서서 참….” -10월 30일 전원회의가 열리던 날 인권단체들이 인권위 앞에서 특정상임위원은 물러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어요. “해당 위원들이 구체적 개별사건에서 저렇게까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고 결론도 그렇게 몰고 가니 참 그렇습니다.” -그만둔 뒤로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으로 복귀했는데 인권위 내부에서는 그 역할을 하는 분이 사라진 겁니까. “인권위원 구성 중에서요? 그런 셈이죠. 저뿐 아니라 소수자에 속하는 장애인 쪽도 서미화 위원이 그만두면서 현재 공백이 된 상태입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새로 임명된 분들이 회의 석상에서 ‘좌파민주당 논리’, ‘진영논리에 오염돼 있다’는 등의 언급을 많이 하는데 실상은 반대 아닙니까. 예컨대 많이 거론된 반례가 과거 보수 쪽 추천으로 왔던 홍진표 상임위원인데, 이분은 보수를 대표해서 왔고 또 보수적 시각을 견지했지만 적어도 사무처와 갈등관계는 아니었다는 평가를 받거든요. 전원회의 방청을 했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이 취재기자 방청석 뒷줄에 그날 안건과 관련된 인권위 사무처 직원들이 앉아 있었는데, 특정 위원들이 언성을 높일 때마다 뒤에서 나직한 한숨 소리가 들리더군요. “지난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송두환 인권위원장의 발언이 생각납니다. 인권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 문명의 문제라고요. 저는 그 말씀이 맞다고 봅니다. 현 윤석열 정부 이전에 임명된 상임위원 중에도 정말 보수 인사가 있었는데, 사무처 직원 중에는 그분을 존경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물론 아주 예민한 문제는 전원위에서 각자 주장을 내세우면서 티격태격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인권위의 권위나 기존의 관행을 짓밟는 방식으로 지금처럼 하지는 않았어요. 인권위의 위상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국민의 기대감, 그다음으로 정권과 정부에서 인권위 결정을 존중하는 태도 등으로 가늠해볼 수 있을 텐데 일단 인권위 내부가 저렇게 아수라장이 돼 있는 상황이고요. 현재 산적해 있는 인권사안에 대해 제대로 연구라든가 정책개발 같은 것이 될까 싶습니다. 인권위원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아마 일이 손에 안 잡히는 상황 아닐까요.” 석원정 전 인권위원이 11월 1일 서울 중구 노동인권회관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조태형 기자 -자괴감이나 이런 것도 굉장히 많이 느낄 듯하고요. 문재인 정부 때 인권위원으로 임명됐는데, 지금 상황과 뚜렷이 대비되는 당시 성과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게 있나요. “하도 여럿이라 특별한 기억은 안 나는데…. 스텔라데이지호 재수색 관련해 진정이 들어온 적이 있어요. 한번 수색은 했는데 인양은 안 했잖아요. 예산 편성해서 인양해 달라, 그런 진정이 들어왔는데 논의 끝에 최종적으로 기각인가 각하됐던가 아마 그랬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포함해 네다섯 분의 인권위원이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그때 우리가 주장한 것이 신원권이었거든요. 세월호도 그렇고 이태원도 그렇지만….” -신원권이 뭡니까. “가족의 한 사람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 때 그 유가족들이 진상을 규명하고 또 원상회복을 요구한다든가 진상을 파악하고, 손해배상을 받거나 치유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그걸 신원권이라고 이름을 붙였더라고요. 그게 딱히 국내 어떤 법규나 이런 데 명시돼 있지 않지만, 국제인권규약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세월호 때 신원권 이야기가 등장한 것으로 압니다. 지금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도 이게 딱 맞는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이태원 특별법이 도대체 무슨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만드는 거냐고 할 때 가족들·유족들에겐 신원권인 거죠.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만들고, 그다음에 수습할 수 있는 권리·치유의 과정 이런 것들을 다 전체적으로 신원권으로 보는 건데, 스텔라데이지호의 사례도 거기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거죠. 인용은 안 됐지만 우리는 적어도 소수의견을 담았고, 그 과정에서 진정을 낸 유족 측으로부터도 당시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했고, 그리고 또 소수의견이었지만 그 설파된 논리로 위안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태원 건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다른 많은 진정 사건도 그렇겠지만 어떻게 보면 한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일이라도 당사자에게는 세상의 전부일 수밖에 없는 그런 사건이 많습니다. 스텔라데이지호나 세월호 같은 사건에 대해 인권위가 어떤 입장을 취했느냐 하는 점은 정확히 기록해둬야 합니다. 인용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을 제기한 당사자들이 이해를 받고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는 것 그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거든요.” -어찌됐든 유족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네. 그런 역할은 사실 거의 최소한의 역할이에요. 하여튼 인권위가 우리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히 있습니다. 사실 인권침해가 기존법이나 법을 포함한 규범, 정책·제도·문화 이런 것이 완전히 잘못돼 있어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또는 그런 것이 형성돼 있어도 거의 제대로 기능을 못 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례도 많거든요. 그런 경우도 어딘가에서는 그 부분을 짚어주면서 이게 제자리, 제 궤도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예컨대 정부나 정부기관이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함에도 이게 잘 안 되니 누군가는 지적해주고 바른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하고요. 결국 인권위가 제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독립된 합의제 기구로 만들어놓은 거죠.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이나 현 정부가 어떤 특정사안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면 인권위가 그걸 그대로 따르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정의연(정의기억연대) 집회방해 구제 진정 기각 건도 그렇고 ‘윤석열차’ 논란도 그렇고, 마음이 무겁습니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새로 오는 인권위원들이 보수적일 것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견된 문제였습니다. 인권위의 미래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논란이 됐던 ‘현병철 인권위 2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비관론도 있었고요. 문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이런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라는 건데…. “어떤 특정한 이슈를 놓고 위원들이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이게 인권적이냐 반인권적이냐는 분명히 다른 결의 문제입니다. 굉장히 놀라운 게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분들의 인권 감수성이에요. 물론 모든 사람이 이걸 다 갖출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적어도 인권위원 직을 맡았으면 최소한 그때부터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그분들이 왜 인권위원회 일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분들이 여기에 온 게 인권위를 짓밟으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달리 어떻게 해석할 방도가 없는 거죠.” -전 정부에서 임명된 인권위원장과 사무총장을 빨리 쫓아내고 자신 중 한명이 위원장이 되거나 다른 인물을 세우려는 목적으로 보인다는 건가요. “본인들이 인권위원장을 맡고 싶어서 그러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현재 위원장과 사무총장을 조기에 사퇴시키려 하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위원장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어요. 공개적인 회의 석상에서도 그렇게 무례하게 구는데 그렇게밖에 해석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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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얻어맞은 ‘다음’ 여론 수렴 기능 실종(2023. 10. 13 11:07)
2023. 10. 13 11:07 정치
ㆍ한·중전 종료 후 쏟아진 해외 IP발 ‘클릭 응원’ ㆍ‘매크로 놀이’ 가능성에도 여권 ‘여론조작’ 공세 경기도 성남에 있는 카카오 판교 사옥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 문재원 기자 정말로 “반국가세력(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국내 포털 여론을 조작하려고 획책한 것일까. 시스템의 맹점을 악용한 일부 사용자들의 ‘장난’에 여당과 정부가 낚인 것일까. 10월 1일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한·중 축구 8강전에서 발생한 포털사이트 ‘다음’ 내 과다 ‘클릭 응원’ 현상의 여파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다음의 집계를 보면 당시 약 3130만 건의 클릭 응원 중 중국을 응원한 클릭이 93.2%(2919만 건)로 한국 응원 클릭(6.8%·211만 건)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누가 봐도 이상한 이 결과에 화들짝 놀란 다음은 8년 넘게 운영해온 클릭 응원 사이트를 닫았다. 여당과 정부는 “제2의 드루킹 사태”, “반국가세력의 개입” 등을 운운하더니 지난 10월 4일 ‘여론 왜곡·조작 방지 대책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TF가 출범한 날 다음을 운영하는 카카오의 주가는 52주 신저가(4만1600원)로 추락했고, 수많은 주주가 손해를 봤다. 진실이 무엇인지를 떠나서 이 같은 ‘이상 클릭’ 응원을 실행한 측과 뚜렷한 물증 없이 TF를 띄운 당정 모두 책임이 가볍지 않다. 다음은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 이후 줄곧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시달렸다. 논란의 중심이었던 ‘아고라’를 닫았고, 댓글창도 사실상 닫았지만 ‘색안경’을 끼고 다음을 바라보는 일각의 시선은 여전하다. 클릭 응원 현상을 놓고 “다음은 상대적으로 이용자가 적어 여론조작이 용이하니 중국인 이용자나 친중국 한국인 이용자의 여론조작 놀이터가 되고 있단 말인가”라고 의혹을 제기한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의 말은 현 정권이 다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늠케 한다. 해외 2개 IP에서 1989만 번 ‘클릭’ 판단을 위해선 우선 집계된 ‘수치’를 정확히 봐야 한다. 당시 클릭 응원이 끝났을 때 화면에 표시된 최종 응원 수는 약 3130만 건이었다. 이중 접속지역이 확인된 인터넷주소(IP)로 클릭된 응원 수는 2294만 건이었다. 두 수치가 차이가 나는 이유는 ‘클릭 응원’ 시스템이 특정 IP에서 과도한 중복 클릭이 발생할 경우 이를 응원 수에서 제외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단순 최종 응원 수만 따지자면 실제로는 3130만 건보다 더 많았을 것이란 게 다음 측의 추정이다. 중요한 건 확인된 IP에서 나온 2294만 건의 클릭 응원이다. 여기에는 모두 5591개의 IP가 관여했다. 다음의 ‘클릭 응원’의 경우 별도의 로그인 없이 계속 응원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구조다. IP 지역을 보면 국내 IP가 95%(5318개)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정말 ‘친중국’ 국내 사용자들이 대거 중국 응원에 나섰을까? 아니다. 이들 95%에 해당하는 국내 IP가 생성한 클릭 응원 수는 고작 301만 건(13.1%)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86.9%에 해당하는 1993만 건의 응원은 어디서 나왔을까. IP 비중에서는 전체의 5%에 불과한 해외 IP에서 나왔다. 더 놀라운 건 이 1993만 건 중 99.8%에 해당하는 1989만 건이 단 2개의 IP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예컨대 하나의 IP를 1명의 사용자로 간주한다면 단 2명이 중국을 응원하는 클릭을 1989만 번이나 누른 셈이 된다. 2개의 해외 IP 중 네덜란드 IP에서 79.4%에 해당하는 1539만 건이, 일본 IP에서 20.6%에 해당하는 449만 건이 각각 클릭됐다. 2개의 IP에서, 사람의 힘으로 단시간 내 1989만 번을 클릭하기란 불가능하다. 다음은 해당 사용자가 ‘매크로(자동완성프로그램)’를 사용해 고의적으로 중국 응원 클릭을 높였다고 보고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중국 응원을 주도한 2개의 IP 주인은 몇명일까. 이들의 국적은 중국인일까, ‘친중국’ 한국인일까, 아니면 일부 극우세력이 주장하는 ‘북한 세력’일까. 지금으로선 아무도 모른다. 해당 클릭 응원이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들어왔다고 추정되기 때문이다. 가상사설망을 통하면 실제 접속지역을 속일 수 있다. ‘생뚱맞게’ 네덜란드 IP가 나온 이유다. “반국가세력” 운운한 당정의 발언이 무색해지는 부분이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매크로와 VPN을 이용하면 한 사람이 해외 IP로 수천만 번 클릭을 올릴 수 있고,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라며 “오히려 다음의 한·중전 클릭 응원에 참여한 IP가 겨우 5500여개로 너무 적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고 말했다. 2008년 6월 1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다음의 ‘아고라’ 깃발을 들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촛불집회부터 아고라 논란까지, 다음의 ‘수난사(史)’ IT업계에선 이번 사건을 단순한 ‘매크로 놀이’로 보고 있다. 아무리 봐도 실행자 측에서 얻을 실익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중국에 대한 응원이 시작된 시각부터 이상하다. 한·중전은 국내 시각으로 10월 1일 오후 9~11시에 치러졌다. 2개의 해외 IP에서 집중 클릭이 시작된 건 경기가 끝난 뒤인 10월 2일 0시 30분 이후부터였다. 이미 한국의 승리로 끝난 경기에 뒤늦게 들어가 중국 응원을 잔뜩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의문이다. 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번 클릭 응원 매크로를 ‘재미삼아’ 주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특정되기도 했다. ‘클릭 응원’을 통해 뭔가 금전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도 아니었다. 애초에 IT업계에서 “놀랐다”고 할 정도로 접속 IP가 적었던 점을 감안하면 여론조작을 노린 클릭 응원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번 사건은 일부 커뮤니티에서 해당 결과를 문제삼으면서 알려졌다. 이후 국민의힘에서 넘겨받아 잇달아 ‘중국발 여론조작’ 의혹을 제기했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TF를 구성해 대응하겠다”고 나서면서 일이 일파만파 커졌다. 여당은 본격적으로 ‘다음 때리기’에 나선 모양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0월 4일 페이스북에 “다음이 여론조작의 숙주 역할을 하고 있다”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여론조작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데, 발본색원해서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보수의 ‘다음 때리기’는 익숙한 장면이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사태’ 이후 다음은 보수세력으로부터 “좌익”, “좌빨” 등의 오명을 얻었다. 다음이 개설한 온라인 여론광장인 ‘아고라’에는 당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글과 토론이 연일 열렸다. 아고라에 필명 ‘미네르바’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썼던 박대성씨는 검찰에 구속됐다가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당시 한남동에 있던 다음 사옥 앞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아고라를 폐지하라는 극우·보수단체들의 집회가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 때는 다음, 네이버 등 포털 규제를 위해 연구기관을 통해 시장 경쟁상황 평가에 나섰다가 ‘포털 길들이기’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일었다. 2018년에는 조선일보 출신 기자를 고위 임원으로 영입하는 등 노력했지만 아고라는 결국 2019년 초 문을 닫았다. 지난 총선 및 대선 국면에서는 다음에서 제공하는 뉴스 댓글을 놓고 편향성 논란이 제기됐다. 올 6월부터는 24시간 동안만 댓글이 남아 있는 ‘타임톡’으로 체계를 완전히 개편했다. 댓글이 가져오는 사용자들의 재유입 효과가 분명함에도 과감하게 이를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스포츠팀 응원을 위해 만든 ‘클릭 응원’도 닫았다. 여론 수렴 공간으로서 다음의 역할은 갈수록 쪼그라드는 중이다. 카카오에서 다음 등 ‘포털 비즈’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10% 이하다. 국내 포털·검색 시장에서도 네이버·구글에 이어 3위까지 밀렸고, 시장 점유율 추정치도 5% 이하로 적다. 이에 반해 매번 편향성이나 규제 논란에 오르는 등 ‘리스크’는 여전히 크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카카오가 여차하면 포털 사업을 매각할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올봄에도 카카오가 포털 비즈 사업부를 별도로 독립시키자 매각설이 돌았다. 카카오는 이를 부인한다. 다음 관계자는 “확인 결과 비로그인 방식의 서비스는 ‘티스토리’ 내 게시물에 대한 ‘좋아요’ 및 ‘댓글’ 외에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며 “서비스 전반에서 어뷰징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모니터링 체계를 점검하고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여당 “댓글 국적 표기해야”, 업계 “역차별 우려”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여당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본인이 올 1월 발의한 일명 ‘댓글 국적 표기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이참에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IT업계에선 실효성 부족과 역차별 우려 등을 들어 제도 도입에 반대한다.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으로 판단된 상황에서 단지 IP 주소만으로 국적을 따져 표기하는 게 무슨 실효성이나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규제를 받지 않는 해외 사업자와의 역차별로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만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가 마련돼 실행될 경우 업체들 모두 시스템을 새로 도입하고 유지해야 한다. 여기에는 상당한 금액의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어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위헌 결정이 난 인터넷 실명제의 경우도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도입되면서 규제를 받던 국내 동영상 플랫폼 사업자들이 줄줄이 몰락했다. 반면 해외 사업자라는 이유로 규제를 받지 않던 유튜브는 급격히 시장을 확대했고, 현재는 점유율을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국내에서도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됐다.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은 “포털이나 플랫폼이 제공하는 뉴스나 미디어의 편향성이 가져오는 각종 부작용을 고려할 때 투명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면서도 “다만 이는 업계에서 자율적인 조치를 통해서 해야 하는 부분이지 정부나 정치세력이 관여한다면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앞으로 클릭 응원 수사를 맡은 경찰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만약 별 의미 없는 ‘매크로질’로 드러난다면 여당과 정부는 다음(카카오)에 사과라도 해야 할 판이다.
표지 이야기
[취재 후]저출생 정책에서 실종된 중요한 고리(2023. 09. 08 11:23)
2023. 09. 08 11:23 사회
오세훈 서울시장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제안하면서 “황무지에서 작은 낱알을 찾자는 것”이라고 말했을 때,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무지 작은 낱알’은 해볼 만한 정공법은 다 쓰고 난 후에야 쓸 만한 비유 아닐까. 강은미 정의당 의원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낳고 키울 환경 다 갖춘 다음에나 고려해볼 정책”이라는 말에 공감했던 이유다. 박송이 기자 ‘낳고 키울 환경’의 핵심 중 하나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양육자는 아이를 돌볼 시간과 스스로를 돌볼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야 하고,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을 보장받아야 하며,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전가되는 돌봄을 남성에게도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과 성평등이라는 과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저출생 정책의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출생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장시간 노동과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지적하면서 “남성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여성이 남성을 대신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보편적 생계부양자 및 돌봄자 모델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 일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게 하려면 당연히 노동시간 단축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맥락에서 정부가 쏟아내는 각종 저출생 대책에서 중요한 연결고리가 하나 빠졌다는 생각을 했다. 기업의 부담과 책임이다. 정재철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강사는 “기업 책임을 유도해야 한다는 발상 없는 지금의 위기대응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공동체적 관점에서 기업도 책임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뜻이다. 저출생 예산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낳고 키울 환경’으로의 유의미한 전환책이 보이질 않는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에 대한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빠른 속도로 해당 정책을 추진 중이다. ‘저출생은 해결할 수 없다’는 무능한 한국 정치의 고백처럼 들린다.
취재 후
[오늘을 생각한다]정치 실종 시대의 ‘멸공’(2023. 09. 08 11:23)
2023. 09. 08 11:23 오피니언
현대 국가의 엘리트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정당성에 대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역사적으로 축적된 가장 권위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작동시킨다. 가령 2010년대 들어 중국공산당 엘리트들은 30여 년에 걸친 신자유주의적 개혁·개방정책으로 불평등과 노동착취 등 모순이 축적되고 곳곳에서 비공식 파업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기존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인민에게 더 이상 작동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떠올려낸 것은 무엇일까? 바로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어딘가에 묵혀 있던 국가주의 프로젝트였다. ‘국가 부흥’이란 과제는 민주주의나 시민불복종을 불가능케 만들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의 민간 사회운동은 여느 때보다 어두운 시기를 보내고 있으며, 비판적 지식인들은 반간첩법의 위력 앞에 침묵하고 있다. 이런 역변은 윤석열 대통령과 그가 대변하는 일군의 복고주의적이고 반공주의적인 신자유주의 엘리트 그룹에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윤석열 정부와 그에 가장 친화적인 지지세력은 가장 구태의연하고 극우적인 방식으로 사회운동을 공격한다. 이를테면 윤 대통령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자신의 전폭적 지지를 향한 여론의 반응이 전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광복절, 느닷없이 “공산전체주의자”를 거론하며 역사적 독립운동의 스펙트럼을 오른쪽 한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일본군 장교 출신들이 주도했던 육군사관학교가 난데없이 홍범도 흉상을 철거하겠다고 결정한 것 역시 이런 공세와 무관하지 않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장기적인 경기 불황이 전면화되자 윤 대통령은 높은 노조 가입률 속에서 건설산업 현장의 유의미한 대안을 제시해온 건설노조를 향해 전방위적인 공격을 가했다. 노동자를 향한 이런 공격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민생에 위배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반공주의적 공격을 수행하는 데 진실 역시 전혀 중요하지 않다. 아래로부터 이견이 형성되는 틈을 봉쇄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당연히도 이런 공세의 결과는 더 큰 불평등과 착취율일 것이다. 윤석열에게 ‘멸공’은 대체 뭘 위한 걸까? 오늘날 많은 시민이 절망하는 이유는 대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다지 나을 것 없는 거대 야당은 쉴새 없이 뒷걸음질 치고 있고, 핵심 정치인의 과오를 덮고 방탄행위를 하는 것에 올인하고 있다. 재야의 올드보이들은 사분오열해 구태의연한 민주-반민주 전선으로 회귀하고 있고, 심지어 몇몇은 괴물과 싸우다가 유사 괴물로 변모하고 있다. 그런 이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기긴 어렵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민주적이고 평등한 방식으로 크고 작은 모임을 다시 만들고, 민주주의와 평등, 기후정의와 같은 가치를 지향하며 연결해나가는 것만이 정치가 실종된 시대의 멸공 프로파간다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싶다.
오늘을 생각한다
[시사 2판4판]실종된 참사 책임자를 찾습니다(2023. 07. 28 11:05)
2023. 07. 28 11:05 정치
시사 2판4판
‘왜’와 ‘어디로’ 실종…뭘 위한 재난문자죠?(2023. 06. 09 11:23)
2023. 06. 09 11:23 사회
ㆍ민방공 경보 알맹이 빠진 표준문안 수정 추진 ㆍ현 90자에서 157자로 바꾸면 구형폰 수신 불가 북한이 발사체를 발사한 지난 5월 31일 7시쯤 서울역 대합실에서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서울시가 보낸 경계경보 재난문자는 이날 6시 41분 도착했다. / 연합뉴스 “오늘 6시 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5월 31일 서울시가 발송한 재난문자에 서울 일대 시민들은 ‘대혼란의 아침’을 맞았다. 위급 재난문자에 적용되는 사이렌 음까지 울렸지만 왜 대피해야 하는지,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빠져 있었다. 경보에 놀란 시민들이 일시에 포털 접속을 시도하면서 네이버 접속 장애도 발생했다. 불안감만 조성했을 뿐 대피에 필요한 정보는 전달하지 않은 채 22분이 흐른 뒤에야 행정안전부의 ‘오발령’ 문자가 도착했다. 이어 서울시가 ‘경보 해제’ 문자를 보냈다. 혼란은 소동으로 끝났지만 “실제상황이었으면 어쩔 뻔했나”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이번 소동은 재난대응 체계의 큰 허점을 드러냈다. 재난문자는 알맹이가 없었고, 중앙정부·지자체 간 소통채널은 무너져 있었다. 재난문자상 경보 발령 시각은 32분이었지만, 재난문자가 전파된 시점은 6시 41분으로 9분이나 늦었다. 오발령이냐, 경보 해제냐를 두고 행정안전부와 서울시가 공개적으로 다투면서 국무조정실이 감찰까지 나섰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세계 1위(전 국민의 95%·미국 시장조사기관 퓨리서치의 2019년 조사결과)인 한국에서 재난문자는 재난대응 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다. 책임소재를 두고 행안부와 서울시의 공방이 앞으로도 이어지겠지만, 정작 중요한 건 이번 소동을 재난문자 체계의 재정비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재난문자에 어떤 정보를 얼마나 더 담을 수 있는지, 이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점은 없는지 등을 짚었다. 재난문자, 정보 더 담을 수 없나 서울시가 보낸 ‘경계경보 발령’ 재난문자는 행정안전부 예규인 ‘재난문자방송 기준 운영규정’의 표준문안을 그대로 따왔다. 2008년 최초로 만들어져 여러 차례 개정돼온 이 규정엔 태풍, 호우, 대설, 감염병, 방사능 누출 등 각종 재난에 상응하는 문안이 나열돼 있다. 그중 ‘적의 침공’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민방공 경보’는 경계경보·공습경보·화생방경보로 나뉘는데, 세 경보의 문안이 조금씩 다르다. 경계경보의 표준문안 내용은 “오늘 ○○시 ○○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5월 31일 서울시민들이 전송받은 그대로다. 다음 단계인 공습경보의 표준문안은 주·야간 두 가지다. “오늘 ○○시 ○○지역에 공습경보 발령. 가까운 지하대피시설로 대피 후에 방송으로 전달되는 국민행동요령에 따라 행동해 주시기 바랍니다”(주간). “오늘 ○○시 ○○지역에 공습경보 발령. 전등을 끄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 후에 방송으로 전달되는 국민행동요령에 따라 행동하시기 바랍니다”(야간). 화생방경보 문안은 “오늘 ○○시 ○○지역에 화생방경보 발령. 호흡기 및 피부 등을 보호하시고, 방송으로 전달되는 국민행동요령에 따라 행동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다. 이 운영규정은 중앙정부·지자체 등의 ‘재난문자 입력자’가 표준문안을 활용하되 상황에 맞게 수정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하지만 5월 31일 서울시가 그랬던 것처럼 위급 상황에서는 표준문안 그대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알맹이 없는’ 재난문자는 일본 J-경보(전국순시경보시스템)의 메시지와 대비되면서 더욱 비판을 받았다. 일본 오키나와현에선 북한의 발사체 탐지 1분 만인 6시 30분에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보입니다. 건물 안 또는 지하로 피난해 주십시오”라는 경보메시지가 전파됐다.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발사체가 5월 31일 남쪽으로 발사된 뒤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 공습경보가 내려지자 섬 주민들이 급히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 연합뉴스 행안부는 늦게나마 ‘왜’ ‘어디로’를 포함할 수 있도록 재난문자 규정을 정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행안부의 김경희 재난정보통신과장은 지난 6월 7일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재난문자 문안은 재난 종류별로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해 논의를 곧 시작할 예정이고, 6월 말까지는 전문가 회의도 열 계획”이라면서 “예규를 정식으로 개정하려면 두세 달은 걸리지만 선시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정보 충분하게’ vs ‘소외 단말기 없게’ 재난문자에 ‘왜’ ‘어디로’ 등의 정보를 넣기로 했다고 해도 고민은 남는다. ‘얼마나 구체화할 것이냐’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현재 90자인 문자수를 늘려 지역별 대피소 등 구체적인 정보를 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부에선 “문자수를 늘리면, 일부지만 재난문자를 못 받는 이들이 나올 것”(행정안전부)이라며 주저하고 있다. 재난문자의 문자수 확대가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 쪽에서는 문자의 ‘실효성’을 강조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안전교육이 철저한 미국에선 경보가 울리면 일단 하던 일을 멈추고 바깥으로 나오지만, 한국은 경보 발령 이유와 구체적인 행동요령을 알려줘야만 움직이는 편”이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재난문자에는 ‘왜 발령했나’는 물론 ‘전기차단기를 내리고 가스 밸브 잠그고 신속하게 이동하라’ 등의 구체적 요령과 지역별 대피소 등이 지역 맞춤형으로 담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 교수는 그러면서 “현재 통신기술로도 지금의 90자를 넘어선 157자 재난문자가 가능하고, 각 구별 발송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현 불가능한 방안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90자 이내’인 재난문자의 문자수를 157자로 늘리는 것은 실제로 가능하다. 다만 재난문자 수신기능 의무 탑재가 적용된 2019년 이전에 출시된 LTE 단말기의 경우 ‘157자 재난문자’는 깨진 형태로 전달되거나 아예 수신이 안 될 수도 있다. 정부가 ‘157자 재난문자’ 적용을 망설이는 이유다. 재난문자는 문자가 아니다? 현재의 재난문자는 사실 ‘문자’라기보다는 ‘문자로 전하는 방송’에 가깝다. 재난문자는 CBS(Cell Broadcasting system)라 불리는 체계에 의해 전파되는데, 특정 상대에게 보내는 문자와 달리 동일 기지국 안에 있는 단말기에 동일한 문자가 전송된다. TV나 라디오가 상대를 가리지 않고 같은 내용을 내보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은 2005년 세계 최초로 재난문자 전국 송출체계를 만들었지만, 정작 3G 스마트폰 단말기에 대해선 긴급재난문자 수신기능 의무화 작업을 하지 못했다. 지금도 3G폰엔 재난문자가 오지 않기 때문에 정부는 3G폰 이용자들에게 안전디딤돌 애플리케이션을 깔아 이 앱을 통해 재난문자를 확인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3G폰 이용자들은 (정부가 걱정하는 2019년 이전 출시 4G폰 이용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재난문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니, 재난문자를 157자로 늘리되, 재난문자에서 소외되는 이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공하성 교수)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5월 31일 시청 브리핑실에서 이날 오전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발사체 발사와 관련해 서울시가 발송한 ‘경계경보’ 재난문자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재난문자를 통해 지역별 대피소를 안내하는 방안은 가능할까. 현재 CBS 시스템은 시·군·구별 전송이 가능하기 때문에 불가능하진 않다. 행안부 관계자는 “코로나19 재난문자, 경찰의 실종자 문자에서 이미 활용된 링크 첨부 방안을 이번에 함께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 경우에도 득실을 잘 따져야 한다고 본다. 통신 분야 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대피소를 확인하기 위해 접속자가 동시에 몰릴 경우 기지국이 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기능을 못 하게 되면, 그때는 전화통화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서 “코로나19 확진자 정보나 실종자 정보 확인을 위한 접속량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접속량이 순간적으로 몰릴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글에 익숙하지 않은 이주민 등 외국인을 고려해 문자 대신 그림을 이용한 재난문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을 위해 만든 ‘이머전시 레디 앱(Emergency Ready App)’을 깔면 외국어로 번역된 재난문자를 받아볼 수 있지만, 관광객을 비롯한 단기 체류자들은 이 앱을 잘 알지 못해서다. 행안부 측은 “그림 재난문자의 경우 오히려 혼란을 줄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어 적절한 방안을 찾기 위해 국책기관을 통해 연구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진짜 대피해야 할 일 생기면? 재난문자 체계를 정비한다 해도 모든 재난대응 정보를 문자로 확인한다는 건 비현실적이다. 재난대응과 관련한 상식은 미리 숙지하고 있을수록 좋다. 일단 가까운 대피소를 잘 모른다면 한번쯤 확인해두기를 권한다. PC에서는 국민재난안전포털 → 민방위 → 비상시설 → 대피소에서 지역별 대피소를 확인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 안전디딤돌 앱을 깔면 첫 화면에서 ‘대피소 조회’가 가능하다. 이번 경계경보 문자에선 ‘대피 준비를 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대피를 준비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대피 준비’는 화재 위험을 대비해 전열기 코드를 뽑고, 가스 밸브 등을 잠근 다음 비상물품을 챙겨 대피소로 떠날 준비를 하는 단계를 말한다. 국민재난안전포털은 이때 필요한 비상물품으로 “30일분의 쌀, 라면, 밀가루, 통조림(식량)과 식수, 버너와 부탄가스(15개 이상), 가정용 상비약품, 방독면 등”을 제시한다. 현실적으로 가족 수대로 30일치 식량을 보관해두기는 어렵다. <거의 모든 재난에서 살아남는 법>(2018년 따비 출판)의 저자인 성상원 작가의 ‘노하우’를 참고해보자. 그는 미리 준비해두면 좋을 비상물품으로 “줄만 당기면 알아서 데워지는 발열 도시락(한 사람당 두 끼 정도·대피 12시간 뒤엔 비상배급체계 가동될 것을 전제), 2ℓ 이상의 물, 구급상자, 물티슈와 티슈, 손전등 기능이 있는 자가충전 라디오, 은박지 소재로 된 담요(1개당 1000원이면 구입 가능), 던져서 불을 끄는 소화기, 민간방독면 등”을 제시했다. 비상물품은 많으면 많을수록 도움이 되겠지만 사실 성 작가가 가장 중요하다며 제시한 ‘첫 번째 준비물’은 따로 있었다. 체력이다. 성 작가는 “하루 스?R 100개 이상, 플랭크 3분 이상은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야 대피하는 과정에서 체력 손실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다”면서 “비상시 들고 가야 할 것이 많은 가족일수록 체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할 말 있습니다](34)정책·철학 다 실종…문화도 ‘퇴행’했다(2023. 06. 02 11:29)
2023. 06. 02 11:29 문화/과학
제23회 부천국제만화축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 / 인터넷 커뮤니티 화면 캡처 윤석열 정부 1년에 대한 평가는 사회 전 분야에서 참담한 수준이다. 문화 분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타 분야에 비해 존재감이 미미했고, 상대적으로 큰 실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농담처럼 “그나마 다행이지 않냐?”는 자조적인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문화정책은 역대 이전 정부들에서도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거나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큰 틀에서 보면 정책 방향이나 내용 면에서 별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정부마다 나름 문화정책의 목표와 방향은 존재했다. 정책적으로 독자적인 특징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은 그야말로 아무런 특징도 찾을 수 없는, 문화정책의 부재 상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년간,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 국회의 현안 질의 과정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이 ‘청와대 이전에 따른 활용 방안’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청와대 이전이 그만큼 논란의 대상이 되는 주제이긴 하다. 이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결국 청와대 이전 건 외에는 논의할 거리조차 마땅치 않았다는 말이 된다. 윤석열 정부에서 내세우는 문화정책의 내용을 찬찬히 뜯어봐도 뉘앙스나 용어만 바뀌었을 뿐, 대부분 이전 정부에서 해오던 것들의 답습에 불과하다. 해오던 사업이라도 잘하면 다행이다. 세부사항과 현황을 살펴보니 현상유지는커녕 사실상 퇴행이라고 규정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윤석열 정부는 문화정책의 비전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세계일류 문화매력국가’를 제시한 바 있다. 문제는 이러한 수사를 뒷받침할 개념이나 철학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공허한 구호로밖에 들리지 않는 까닭이다. 문화매력국가라는 것에 대한 개념 정의나 근거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윤 정부만의 차별성 있는 정책이나 사업들도 거의 없다 보니 “아예 문화정책이 없다”는 비판마저 제기된다. 알맹이 없이 그저 미사여구를 나열하는 수준이다. 이런 수사마저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언어를 그대로 적용할 뿐이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자유와 공정’을 문화정책에서도 그대로 적용하는 식이다. 억지로 갖다 붙이다 보니 내용도 어색하고, 구조적 완성도마저 떨어지는 애매한 상황이 돼버렸다. 자유의 경우 ‘윤석열차’와 같은 예술검열 사건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고 창작환경의 자유가 위축되는 자기 모순적 상황에 빠져버렸다. 공정의 경우도 예술계 내에선 세대나 젠더, 지역, 국적 등 다양한 차별이 존재한다. 하지만 정책적 대상을 장애 예술로만 한정하고 있다. 이마저도 장애인의 보편적 권리나 환경 개선보다는 개별화된 홍보성 사업에 그치고 있다. 나아가, 각각의 정책 의제가 서로 연결되지 못한 채 단순 나열에 가까운 상황에 머물러 있다. 이들 의제를 어떻게 정책 비전과 연결할 것인지의 정책적 논리구조도 빈약하다. 문화체육관광부 홍보물 / 해당 홈페이지 캡처 ‘K컬처’라는 공허한 슬로건  윤석열 정부 문화정책에서 특히 강조하는 개념으로 ‘K컬처’가 있다. ‘K(케이)’는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면서 이를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K팝, K무비 등이 널리 사용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보편이 됐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는 ‘K컬처’를 정책적 용어로 본격 사용하기 시작했다. K콘텐츠, K아트, K관광, K스포츠 등. 문화영역의 거의 모든 분야에 K를 갖다 붙이고 있다. 실제 사용되는 방식을 보면 협소하기 그지없다. K컬처가 한국의 문화나 한국의 문화콘텐츠를 지칭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K컬처를 위한 특별한 접근이나 방법론이 있지도 않다. 다시 말해 윤석열 정부의 K컬처는 사실상 한국문화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몇몇 한국의 문화콘텐츠 인기에 편승하려는 얄팍한 속셈에 지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문화정책의 통합성과 전문성은 결여돼 버렸다. 문화(산업) 생태계에 대한 접근이나 협력체계에 관한 내용도 생략되고 말았다. 예를 들면 윤석열 정부는 인기 K팝 그룹을 통한 국가적 이미지 제고와 경제적 수익 창출에는 관심이 있지만, 그 토대가 되는 아이돌 육성 시스템의 폐해와 연습생들의 인권 문제, 산업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조건 등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오로지 결과를 내세울 수 있는 사업들과 이를 통한 가시적인 성과를 드러내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문화정책의 불균형이 점점 심화될 수밖에 없다. 현 정부 들어 이른바 돈이 되는 K컬처, 관광, 콘텐츠 등으로 정책의 방향이 과도하게 쏠리고 있다. 그에 반해 지역문화, 생활문화, 생활체육, 전통문화 등 문화영역들의 소외와 위축은 심각한 수준에 다다른 상황이다. 되살아나는 블랙리스트의 악몽  ‘블랙리스트’로 대표되는 예술검열 사건들이 다시금 확대되는 것도 중대한 문제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문화예술계의 문제를 정치적 이념화를 통해 정쟁적으로 풀어나가려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윤석열차’ 사건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통령을 풍자한 작품이 상을 타자, 주최 측에 주의를 줬다. 박보균 장관은 “순수한 공모전을 정치 오염시킨 게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이 예술검열이 아니라는 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주장을 폈다. 하지만 정치적인 부분을 문제 삼는 박 장관의 발언에서 이 사건은 이미 ‘예술검열’ 사건임이 드러난다. 더더구나 예술검열을 막고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할 정부가 검열 사건의 주체라는 점에서 박근혜 시기의 블랙리스트 악몽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 1년 동안 예술검열 사건이 끊이질 않았다. 그 빈도도 점차 늘어가는 추세다. 블랙리스트는 단순히 예술검열 사건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당시 블랙리스트 사건은 국가 전체가 조직적으로 시민과 예술인을 검열한 국가 범죄였다. 이러한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이를 계획하고 작동시켰던 이들이 우선 책임을 져야겠지만, 이러한 국가단위 범죄 작동의 토양이 된 문화예술계의 고질적인 문제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인의 불안정한 지위, 지원사업 중심의 예술정책, 권위주의적 문화행정과 관료주의, 문화예술에 대한 도구적 접근 등이 모두 원인으로 작용했다. 블랙리스트 철폐 운동은 예술검열 사건뿐만 아니라 이렇게 중층적으로 얽히고설킨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 들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는 ‘블랙리스트의 부활’은 문화예술계의 고질적 병폐가 다시금 강화되고 있음을 뜻한다. 미국 ‘LA 컨벤션 센터’와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지난해 8월 열린 K컬처 페스티벌 ‘케이콘 2022’ 행사 모습. / 박선영 소장 제공 이러한 상황에서 문화정책의 미래를 상상하고, 혁신과 변화를 논의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 가뜩이나 지금 우리 사회는 기후위기, 기술자동화, 초고령사회, 지역불균형, 계급양극화 등 많은 변화를 겪고 있고, 복합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럴수록 문화정책은 좁은 의미의 문화예술 영역 정책이 아닌, 사회변화에 조응하고 시민의 삶과 일상을 변화시키는 철학이자 원리로서 변화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사회변동에 국가정책을 연결시키고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문화정책의 개념을 잡고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은 지극히 단기적 성과만을 추구한다. 정책 사업들도 폐쇄적인 개별 사업 구조로 짜여 있어 한계가 뚜렷하다. 기존의 협치와 협력구조를 거부하고, 폐쇄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고집해서는 유연한 정책적 대응은 불가능하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 인사과정에서 드러나듯 인맥과 정치성향에 따라 좌우되는 코드인사와 일차원적 성과 중심으로 작동되는 문화행정 관행은 일선 공무원들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정책적 사고를 가로막고 있다. 문화 거버넌스 확대하는 정책을  문화정책이 정치권력의 도구가 아닌, 시민과 문화 현장이 지속적으로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몇 년간 문화 현장은 블랙리스트와 미투 등을 통해 많은 사람이 상처를 입었다. 이에 대한 피로감이 컸다. 더불어 변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널리 퍼졌다. 한꺼번에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토론과 협치를 통해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예술 공공기관, 전문기관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동시에 다양한 문화적 주체들과의 수평적 협력체계를 복원해야 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문화 거버넌스 체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문화정책이 앞으로 미래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 삶의 원리이자 원칙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혁신과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조건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변화의 목소리와 움직임이 현장에서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 1년간 사실상 퇴행에 가까운 행보를 보여주었던 윤석열 정부가 이제라도 문화 현장과 소통하고 협력하기를 바란다. 문화정책과 문화행정의 혁신을 통해 미래에 걸맞은 문화정책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대전환의 큰 발걸음을 내딛기를 기대해 본다.
할 말 있습니다
[시네프리뷰]실종- 수배범을 목격한 아버지가 사라졌다(2022. 06. 10 14:05)
2022. 06. 10 14:05 문화/과학
그의 영화는 소재적으로 사회가 외면하고 금기시하는 도덕과 관계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이런 요소가 관객에 따라서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주의를 환기하고 이야기에 몰입시키는 장치로서 역할이 크다. 제목 실종(さがす/ Missing) 제작연도 2021 제작국 일본, 한국 상영시간 124분 장르 드라마, 스릴러, 미스터리 감독 가타야마 신조 출연 사토 지로, 이토 아오이, 시미즈 히로야, 미사토 모리타 개봉 2022년 6월 15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엔케이컨텐츠 근래 국제적으로 평가를 받는 일본 영화감독들은 공교롭게도 한국과 인연이 깊다. 한때 고전 영화를 공부하며 일본 감독들의 이름과 작품을 섭렵하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반가운 일이다. 최근 배우 송강호의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브로커>의 연출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맡았다. 1995년 <환상의 빛>으로 데뷔한 이후 내놓은 <원더풀 라이프>(2001), <아무도 모른다>(2005), <걸어도 걸어도>(2009),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등 대부분의 작품이 유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선 상업적으로도 크게 사랑받았다. 이제는 명실상부 세계적 감독의 반열에 올라섰다. 2010년대 이후로 가장 주목받는 일본 영화계의 신예로 꼽히며 ‘제2의 고레에다 히로카즈’로 언급되는 하마구치 류스케 역시 대학원 졸업 작품 <심도>(2011)를 합작 형태로 한국에서 찍었다. <아사코>(2019), <드라이브 마이 카>(2021), <우연과 상상>(2022) 등 내놓는 작품마다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자주 한글이나 한국배우 등 한국과 관련된 이미지가 발견된다. 이번에 개봉하는 <실종>의 감독 가타야마 신조 역시 ‘봉준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라고 먼저 소개되는 인물이다. 무서운 신예의 일취월장 두 번째 작품 2018년 내놓은 첫 장편영화 <시블링스 오브 더 케이프(Siblings of the Cape)>(2018)는 큰 논란을 빚으면서 화제로 떠오른 작품이다. 가난한 오빠는 자폐증을 가진 여동생을 돌보기가 버겁다. 오빠는 한쪽 다리를 전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된 후 둘의 생활은 더욱 피폐해진다. 결국 그는 동생을 돈벌이에 이용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다. 시작부터 경쟁사회에서 도태된 소수자들의 불편한 상황이 비정하게 나열되는 이 작품은 파격적 노출까지 더해져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실종>은 가타야마 감독이 3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장편영화다. 날것과 같았던 전작에 비해 장르적 구성이 치밀해지고 예술적 기교도 풍성해졌다. 루게릭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던 엄마가 죽고 난 후, 중학생 카에데(이토 아오이 분)는 종종 정신 줄을 놓고 빈틈이 많아진 아빠 사토시(사토 지로 분)의 일거수일투족이 불안하기만 하다. 어느 날 저녁, 아빠는 딸에게 지하철 안에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범 야마우치 테루미(시미즈 히로야 분)를 목격했다며 포상금을 이야기한다. 다음 날 아침 아빠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휴대전화도 두절되고 만다. 학교 선생님이나 경찰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다들 형식적으로만 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함이 커져만 가던 카에데는 스스로 아빠를 찾아 나서기로 한다. 염세적 세계관 속에 자리한 인간애 그의 영화는 2편밖에 안 되지만 확연히 눈에 띄는 공통분모가 있다. 일단 꽤 염세적인 세계관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사회의 밑바닥에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나선다. 그들과 비교해 평범해보이는 주변 인물들 역시 각자의 안위와 욕망을 위해 안절부절못하는, 소심하고 위태로운 심성을 드러낸다. 그들에게 완벽한 구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행히 눈앞의 폭풍은 지나가지만, 욕망의 밑바닥부터 새로운 바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이런 영화의 시선이 인물에 대한 섬세한 관심과 관찰을 통해 가능했다는 점은 다분히 역설적이다. 결국 그들 모두는 평범한 우리를 대변하는 자화상과 다름없다. 더불어 그의 영화는 소재적으로 사회가 외면하고 금기시하는 도덕과 관계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이런 요소가 관객에 따라서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주의를 환기하고 이야기에 몰입시키는 장치로서 큰 역할을 한다. <실종> 역시 표면적으로 현상수배 중인 연쇄살인범과 그와 연루된 실종사건이라는 스릴러 장르의 외피를 차용한다. 극이 전개될수록 과거로 후퇴하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결국엔 누가 선인이고 악인인지의 경계조차 모호해져 혼미한 감정을 이끌어낸다. 간만에 ‘영화적 재미’를 만끽하게 해주는 작품을 보았다. 봉준호 감독의 조연출 출신 가타야마 신조 bunshun.jp 가타야마 신조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될 때마다 ‘봉준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일본인 감독이 어떻게 봉 감독의 조감독 생활을 경험했을까? 2007년 여름에 그들은 처음 만났다. 당시 일본은 TV 프로그램의 규모가 커지면서 영화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영화산업 전반이 회의에 빠져들고 있었다. 가타야마 감독은 10대 후반에 TV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일을 시작해 조감독을 했지만, 영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인가를 두고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즈음 한국인 친구에게서 봉준호 감독이 일본 촬영 스태프를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당시 봉준호 감독은 미셸 공드리, 레오 카락스 감독과 함께 도쿄를 배경으로 한 합작 옴니버스 영화 <도쿄!>(2008) 중 <흔들리는 도쿄>편을 연출하고 있었다. 가타야마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여러 연출방식으로부터 자극받았다. 촬영 전부터 철저하게 준비하는 스토리보드, 배우와 스태프를 존중하는 소통방식, 무엇보다 작품만을 위해 타협하지 않고 모든 것을 통제해내는 능력을 보며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감독이 돼보고 싶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가타야마 감독은 봉준호 감독 밑에서 좀더 영화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차기작 <마더>에서도 조감독으로 지원했다. 한국어를 잘 못 해 짐이 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받아주고 최소한의 소통으로도 작업할 수 있도록 가능한 역할을 맡겨준 그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다. 가타야마 감독은 만약 봉준호 감독을 만나지 못했다면 영화 만드는 일을 그만뒀을 거라며 은인이라고 말한다. 한참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는 일본의 젊은 감독을 우리가 예의주시하게 되는 이유 중 특별한 하나다.
시네프리뷰
실종된 컨벤션 효과…이재명, 돌파구 찾을까(2021. 10. 15 13:52)
2021. 10. 15 13:52 정치
“우리 조사 시점을 보면… 컨벤션 효과가 맥시멈에 도달해 있어야 했다.” 10월 13일 주간경향과 통화한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의 말이다. 한길리서치는 민주당 경기경선이 치러지던 9일부터 서울경선·후보확정(10일), 그리고 그다음 날까지 3일간 여론조사를 했다. 쿠키뉴스의 의뢰로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2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다. 휴대전화, 유선전화 RDD 무작위 추출 방식으로 표본을 추출했으며, 응답방식은 유선 전화면접 19.2%, 무선 ARS 80.8%이었다. 표본오차는 ±3.1%포인트(95% 신뢰수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0월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사실상 절반 이상의 조사가 후보 확정되고 나서 한 것이었다. 이런 시점에서 조사했으면 적어도 9월 조사보다는 좋은 결과를 보였어야 한다. 게다가 국민의힘 토론회에서 윤석열 후보가 근근이 버티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양자대결에서 윤석열은 2.2%포인트 지지율이 떨어진 반면(40.3→38.1%), 이재명은 4.0%포인트가 빠졌다(38.6→34.6%). 윤석열에게도 오차범위 내에서 밀리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번달에는 지난달 앞섰던 홍준표와 양자대결에서도 역전을 허용했다(33.0%:35.3%). 당 대선후보로 선출됐으므로 지난달 윤석열에게 1.7%포인트 정도 뒤졌으면 이번에 5%포인트 정도는 역전해야 했는데 오히려 격차가 더 벌어졌다.” ‘컨벤션 효과가 없었다’는 데는 주간경향이 접촉한 대부분의 여론조사 전문가, 선거 컨설턴트, 정치평론가가 동의하는 대목이다. 왜 나타나지 않았을까. “대장동 의혹이 만만치 않게 보인다. 박근혜 탄핵 전이라면 쉬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면서 통치자 또는 행정책임자의 책임에서 정치적 책임을 강조하는 식이 돼버렸다.” 홍 소장의 설명이다. “박근혜가 삼성에 직접 돈을 안 받았어도 최순실에게 말도 사주고 돈도 주고 하는 것을 경제공동체가 성립하는 것으로 포괄적으로 가버렸다. 구속된 전 성남시 직원 유동규는 이재명 밑에 있던 사람이다. 이재명 후보가 측근이 아니라고 부인해도 ‘썼겠지’가 돼버린다. 법 해석과 무관하게 국민은 일종의 정치공동체로 받아들인다.” 그는 대통령 후보자로 선출된 이재명 지사가 현재 놓인 상황이 1997년 대선 때 이회창 전 신한국당 총재의 아들 병역비리 꼴과 유사하게 돼버렸다고 덧붙였다. “도덕성 논쟁 같은 것이다. 법 이전에 원칙과 사회적 책임 같은 문제다. 이재명의 대장동 의혹과 윤석열의 고발사주는 단순 의혹사건이 아니라 현재 형사 수사가 진행되는 사건이며, 여야 대선 유력후보의 최측근이 고발된 사건으로 형사책임을 묻는 검경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여론조사업을 시작한 1987년이나 1992년 이래 역대 대선 레이스 중 여야 후보가 수사 선상에서 치열하게 논쟁하는 꼴은 처음 본다.” 지지율 정체, 결국 대장동 때문?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지난 4개월 동안 경선과정에서 벌어진 ‘갈등’이 쉽게 치유되기 어렵다는 점이 ‘컨벤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로 봤다. “이재명캠프의 희망사항대로 2017년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을 상회하거나, 버금가는 득표율로 깨끗하게 가르마가 타졌으면 여당후보로 확정되면서 약간의 컨벤션 효과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선이 끝나자마자 사사오입 논쟁이 벌어지면서 그쪽(이재명 후보)도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결국 과반저지-결선투표라는 목표 달성에 실패한 이낙연 후보 쪽을 지지자들이 경선불복 프레임으로 공격하면서 분위기를 냉각시켰다는 것이다. 실제 경선 막판 3차 선거인단 결과가 이낙연 압승(62%), 이재명 참패(28%)를 기록하자 이재명 지지입장 팟캐스트·유튜버를 중심으로 “이재명에 반감을 품은 신천지·부동산카페 개입설” 등 음모론에 가까운 주장을 적극 내놓기도 했다. 안 대표의 말이다. “정치인들이야 원팀을 구성하겠지만, 지지층 사이에 벌어진 감정의 골을 달래고 얼러 서운한 감정은 털어내고 원팀을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민주당에 그런 지도력이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 역시 여야 후보에게 제기된 고발사주 의혹, 대장동게이트가 지지여론에 큰 역할을 하지만 국민 내지는 유권자의 시각에서 볼 때 두 이슈의 성격은 다소 다르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후보의 고발사주 의혹은 어떻게 보면 정치권력을 가진 ‘그들만의 쟁투’였고, 공수처나 대검에서 수사하고 있으니 잘못하면 윤석열이든 누구든 처벌될 수는 있다. 반면 대장동 의혹은 서민 주머니를 털어 수천억 돈잔치를 한 사안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부동산이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게이트로 몰아가려고 하는데 프레임 전환이 먹혀들지 않았다. 물론 곽상도 아들 50억원에서 보듯 법조카르텔과 보수 진영 인사들이 더 많이 연루될 가능성은 있어 보이지만 문제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민간기업에 특혜를 몰아준 것이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벗어날 수 없는 본질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내홍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안 대표를 비롯해 “대장동 이슈는 내년 3월 대선까지 간다”는데도 주간경향이 접촉한 선거전문가들은 일치된 의견을 냈다. 안 대표의 말이다. “선거기간 내내 여권의 딜레마가 될 것이다. 수사는 이제 시작된 것이다. 계속 관계자들이 검찰에 출두하고 성남 쪽에 불리한 이슈들이 계속 나오는데 예컨대 국정감사에 나와 원샷으로 나와 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수사결과가 발표된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 실정을 파고드는 국민의힘 선거전략에 호응해 정부에 적대 세력화된 영끌 2030 청년들, 집 없는 무당파층, 중도층이 이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정치평론가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10월 10일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통합 관련 메시지가 거의 없어서 놀랐다”고 말했다. “강경일변도의 포도대장과 같은 스탠스로는 중도층을 끌어오는 건 쉽지 않다. 대통령은 포도대장을 뽑는 것이 아니다. 여든 야든 국민을 하나로 통합한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보여야 국민은 안심한다. 이번 정부를 평가해보면 진영으로 나뉘어 극단적인 대결구도를 보였는데, 다음 정부 5년을 또 이런 극단적인 국가분열 속에서 지낸다고 생각한다면 여든 야든 누가 지지하겠는가.” 그는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두가지라고 밝혔다. 대통합과 대전환이다. 민주당 경선에서 후보가 된 이재명 지사가 대전환 쪽이라면 이낙연 전 대표가 차지하고 있던 포지션이 대통합 이미지였다. “이낙연 후보는 네거티브를 하면서 대통합 이미지가 훼손됐다. 나는 이낙연캠프가 전략적으로 실수한 것으로 본다. 반면 이재명은 통 크게 껴안는 스탠스를 좀더 가져야 한다. (이재명이 보여주는) 문제해결 능력의 측면은 대중이 인정하는 부분은 있으나 불안해하는 것은 통합 이미지가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을 앞으로 어떻게 전략적으로 가져갈 수 있을지, 이게 앞으로 이재명 앞에 놓인 중도확장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될 것 같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10월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관련 변호인단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가장 큰 리스크는 이재명 자신”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을 역임한 시사평론가 신철우씨는 경선과정의 내홍이 선거 끝까지 갈 것으로 전망했다. “내면적으로는 수습이 어렵다. 외형적으로는 민주당 원팀으로 가겠지만 그간 지지자들끼리 서로 상처에다 소금을 뿌리는 멘트를 한 상태다.” 더 큰 문제는 결국 과반의 지지로 승리한 이재명 후보 쪽이라는 것이 신 평론가의 진단이다. “어차피 진 사람들에게는 패배의 상처가 있다. 이긴 쪽에서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안티들이 서로 강한 상태에 양측 지지자들의 골 깊은 상황에서 ‘신천지와 손잡았다’는 식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고, 또 그런 음모론의 진원지가 당 밖이다 보니 통제가 되지도 않는다. 실제 본선에 갔을 때는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것이 내부의 적이다. 본선캠프가 새로 꾸려진다고 하더라도 그런 상처를 봉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과거의 사례를 비춰볼 때 ‘용광로 캠프’ 역시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정세균이나 이낙연 쪽 초·재선을 받기는 하겠지만, 결국은 주요 포스트는 경선과정에서 공신들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그 안에서 화학적 결합이 어렵다면 직능1본부와 2본부를 나누듯 그런 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박신용철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위원은 “이재명의 가장 큰 취약점은 국방·외교와 같은 외치를 전혀 모른다는 점”이라며 시급히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아무리 사람을 쓰고 보강하더라도 후보자 자신이 흐름을 알아야 하는데 성남지사와 경기도지사와 같은 행정경력만으로는 국방·외교 경험을 쌓을 수 없었다는 것이 이 후보가 극복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로 보인다. 11월이면 국민의힘도 후보가 결정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어느 한편이 큰 표 차로 이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결국 위기관리를 어느 쪽에서 잘하느냐가 관건인 선거가 될 것 같다.” 그는 “무엇보다 가장 큰 리스크는 이재명 후보 자신”이라고 덧붙였다. “이재명은 항상 싸움을 붙여서 커온 정치인이다. 싸움에는 능하다. 게다가 즐긴다. 파이터 기질이 있다. 메시지나 주요정책을 본인이 직접 결정·관리한다. 캠프에서도 후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이재명의 정치내공은 상당하다. 정무감각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탁월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데도 능수능란하다. 후보 선출 뒤 도지사 사퇴계획을 국정감사 뒤로 미룬 것은 국정감사장을 활용해 국민의힘 의원들의 파상공격을 직접 맞받아칠 계획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선이라는 것이다. 추진력은 있어도 인간미는 없어보일 수 있다. 너무 뛰어나 스텝이 꼬인다면 플랜B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컨벤션 효과가 없는 것은 아무래도 대장동 타격 탓이 가장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민주당 지지층 안에서도 분열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지층이면서 이재명 비토층이 제법 있는데 이낙연의 승복으로 표면적으로 봉합은 됐지만 지지층의 화학적 결합은 쉬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는 대장동 이슈와 관련 검경이 수사를 하겠지만 미흡하다는 여론이 높을 경우 현재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특검 이야기도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내년 3월 대선 성격은 반대투표? “검찰이 드러난 것을 덮진 못하겠지만 드러나지 않은 것을 파헤치는 식의 수사까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단적으로 아직까지 성남시청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지 않았다. 배임 혐의 여부를 확인하려면 대단히 중요한 장소인데 아무리 대통령이 철저한 수사를 지시해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는 ‘대장동은 국민의힘 게이트’라는 이재명 후보의 주장을 끝까지 고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미 그런 논리를 펴다 민주당 3차 국민선거인단 선거에서 참패하지 않았나. 이제까지 대응 방침이 중도층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반증”이라며 “경선과 본선 전략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기도 국감 정도에서 사과하는 모습으로 기조를 바꿀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번 대선은 누구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서 투표한다기보다 누가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투표장으로 가는 ‘반대투표’가 압도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결국 이재명이냐 윤석열 또는 홍준표냐와 같은 인물변수가 아니라 정권연장이냐, 정권교체냐는 것이 투표의 기준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재명 지사가 일하는 스타일을 가까이서 보면 매사 철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늘 큰 그림을 그리면서도 오점을 남기지 않으려고 신중하고 철저하다는 인상이었다. 대장동 의혹은 오히려 부동산 개혁 이슈를 전면화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이재명캠프에서 부동산 정책팀에 참여하고 있는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그는 이재명표 부동산정책의 양대 축인 기본주택과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중 후자의 정책설계를 맡고 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대장동 사건의 핵심이 공공의 필요 때문에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하면서 개발하는 것인데 결국 엉뚱한 사람들이 돈을 벌었다는 것이 아닌가. 공공이 땅을 보유하고 임대하면 공공수요를 계속 충족할 수 있다고 본다. 아직 구체적인 정책개발은 논의되지 않고 있지만 대장동 사건이 오히려 근본적인 개혁, 부동산 대개혁에 나서도록 등을 떠미는 느낌이 든다.” 유튜버·팟캐스트 등 이른바 장외의 이재명 지지자 그룹이 오히려 ‘원팀’에 방해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이재명캠프 총괄자문단장을 맡았던 안민석 의원은 “물론 유튜브 등에서 일부러 부풀려 이야기하는 가짜뉴스나 추측성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라면서도 “제도권 의정활동에 함몰돼 있는 정치권과 알권리 차원에서 역할을 해주는 빅마우스·스피커들의 역할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라고 말했다. 그는 “대장동 이슈의 경우도 여의도보다는 좀더 자유로운 공간인 유튜브에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라며 “진보·보수를 떠나 대장동게이트의 실체를 밝히는 데 그분들이 오히려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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