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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작은도서관 문 열게 해주세요”(2023. 12. 29 16:00)
- 2023. 12. 29 16:00 사회
- 분양·임대 혼합 ‘소셜믹스’ 아파트 입대의·임대의 갈등으로 개관 막혀 경기도 하남시의 한 공공분양·임대 아파트단지 내 ‘작은도서관’이 출입문이 잠긴 채 방치돼 있다. 송진식 기자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찾아간 경기도 하남시의 A아파트단지. 이 단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건립한 혼합단지(공공분양·임대·장기전세 공존) 아파트다. 일명 ‘소셜믹스’로도 불린다. 단지 한복판에 들어서자 주민들의 공동시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 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깨끗한 새 건물인 외관과 달리 내부는 사뭇 을씨년스러웠다. 주민카페, 방과후교실, 작은도서관 등이 있는 1층 전체가 불이 꺼진 채 찬바람만 감돌았다. 한낮인데도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방치된 지 오래된 듯했다. 잠시 1층을 서성이자 불 꺼진 사무실에서 아파트 관리 직원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여긴 입주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 시설 조성이 안 됐다. 아무도 이용 안 한다”고 말한 뒤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특히 눈에 띄는 건 1층 가장 안쪽에 있는 ‘작은도서관’이었다. 유리문 현관에 도서관 개관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책꽂이에 책이 가득 꽂혀 있고, 공용 테이블 위에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책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작은도서관만큼은 조성이 완료돼 당장 사용해도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어쩐 일인지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었다. 이 단지에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2년 넘도록 커뮤니티 센터가 이처럼 무용지물로 방치돼 있는 걸까. ■집주인들 반대에 작은도서관 개관 난망 이 아파트는 정부의 공공주택 소셜믹스 정책에 따라 건립돼 현재 공공분양 210가구, 공공임대 167가구, 장기전세 307가구가 거주 중인 중대형단지다. 집주인(분양) 가구보다 임차인 가구가 2배 이상 더 많다. 입주는 2021년 2분기에 시작했다. LH는 공공주택을 지을 때 ‘주택건설기준규정’을 준용한다. 규정에 따르면 500가구 이상 아파트단지를 조성할 때는 경로당, 어린이놀이터, 어린이집, 주민운동시설, 작은도서관, 다함께돌봄센터를 주민공동시설로 설치해야 한다. 이중 다함께돌봄센터는 입주자들이 원하지 않으면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이 아파트의 경우 경로당, 어린이놀이터, 어린이집은 각각 다른 건물(동)에 마련됐다. 그외 공동시설 공간은 커뮤니티 센터에 함께 들어섰다. 센터 1층에 주민카페·멀티프로그램실·작은도서관·방과후교실이, 2층에는 운동시설인 체력단련실이 자리 잡았다. 문제는 작은도서관 개관을 놓고 집주인들(입주자대표회의, 이하 ‘입대의’)과 임차인들(임차인대표회의, 이하 ‘임대의’) 간 갈등이 벌어지면서 시작됐다. LH는 2022년 3월 공공임대단지를 대상으로 작은도서관 지원을 위한 공모전을 벌였다. 임대의에서 커뮤니티 센터 내 작은도서관 개관을 위해 지원 신청을 했다. 그해 4월 LH로부터 도서관 운영에 필요한 집기류 구매 등 일정 금액을 지원받는 대상으로 선정됐다. 아파트단지 내 작은도서관의 실내 모습. 시설 조성이 완료됐지만 집주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개관하지 못하고 있다. 임차인대표회의 제공 그러자 입대의에서 곧장 반발하고 나섰다. 본래 의무시설로 조성된 작은도서관을 개관하는 일임에도 분양 가구 집주인들의 사전동의 없이 지원금을 신청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임대의가 “본래 임차인들을 대상으로 한 지원금”이라고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집주인들이 LH에 집중적으로 민원을 제기했고, 입대의 대표가 자진사퇴하면서 작은도서관 개관 문제는 차츰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입대의가 도서관 개관을 놓고 “집주인들 찬·반 의사를 물어봐야 한다”며 머뭇거리는 동안 임대의에서는 2022년 8월 초까지 도서관 개관을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했다. 임대의 관계자는 “적은 지원금임에도 발품을 팔아가며 책꽂이와 탁자 등 집기류를 마련했고, 부족한 물품은 주민들의 기부를 받아 마련했다”고 밝혔다. 기부자 중에는 도서관 개관을 바라는 집주인들도 있었다. 도서관 운영위원회를 꾸려 운영위원도 뽑았고, LH가 활동비를 지급하는 ‘도서관 매니저’도 채용했다. 작은도서관이 구비해주길 희망하는 도서 신청도 받았다. 도서관의 이름도 공모해 ‘꿈이 자라는 도서관’이란 의미의 ‘꿈자람’을 선정했다. 임대의가 개관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집주인들은 지속적으로 LH와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제기했다. LH는 결국 임대의에 “시설을 사용할 수 없다”는 방침을 알려왔다. 집주인들의 동의를 구하라는 얘기였다. 집주인들에게 도서관 개관 찬·반을 묻는 입대의의 투표는 해를 넘긴 2023년 1월에야 열렸다. 결과는 부결(반대)이었다. ■“어디 세입자가 겸상을”…센터 ‘개점 휴업’ 이후 임대의는 도서관 개관을 위해 LH, 하남시, 국민신문고 등에 민원을 넣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끝내 문을 열지 못했다. 입대의 측에 여러 번 도서관 문제 협의를 위한 만남과 대화를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하남시가 중재를 위해 양측 만남을 주선해 보려고도 했다. 입대의가 거절해 결국 양측이 시 관계자를 각각 따로 만나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입대의 측은 현재 작은도서관 개관 조건으로 도서관 공간의 일부를 ‘다함께돌봄센터’로 조성해 달라고 요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임대의 측은 입대의가 무리한 요구를 해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임대의 관계자는 “작은도서관 면적이 총 175㎡(약 53평) 정도인데, 이중 35㎡(약 10평)만 도서관으로 쓰고 나머지(140㎡)는 돌봄센터로 하겠다고 요구해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센터 1층에 보면 다른 공간도 많은데 왜 유독 도서관 공간을 돌봄센터로 쓰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 센터 1층에 당초 ‘방과후교실’로 마련된 공간의 경우 현재 단지 관리업체가 사무실로 쓰는 등 용도와 다르게 사용 중이다. 아동복지법상 돌봄센터의 최소면적 기준은 66㎡(약 20평)다. 경기도 하남시의 한 공공분양·임대 아파트 내 커뮤니티센터 모습. 작은도서관 개관 문제로 주민들이 갈등을 빚으면서 센터 전체가 미사용 상태로 남아 있다. 송진식 기자 임대의는 입대의가 돌봄센터 조성을 위한 준비에 나서지 않는 점을 들어 돌봄센터를 열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하남시는 최근 공고를 내고 다함께돌봄센터를 희망하는 아파트단지들의 신청을 받았는데, A아파트는 신청을 하지 않았다. 도서관 문제를 둘러싸고 입대의와 임대의가 몸싸움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한 집주인은 “어디 세입자가 (집주인과) 겸상을 하려고 하나”며 폭언을 쏟아냈다. 양측의 감정 대립이 격화되면서 커뮤니티센터 내 다른 주민공동시설 조성도 줄줄이 중단됐다. 체력단련실의 경우 입대의가 “운영위원의 절반을 집주인들이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역시 일정이 멈춰섰다. 결국 684세대, 2000여명에 달하는 주민들을 위해 마련된 공동시설과 커뮤니티센터는 2년 넘게 개점 휴업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주간경향은 작은도서관 관련 입대의 입장을 듣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했지만 접촉에 실패했다. 단지의 관리사무소에 취재 내용과 취지 등을 얘기하고 입대의에 전달해 달라고 요청도 해봤지만, 관리사무소 측은 거절했다. “입대의가 취재에 응하는 걸 원치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이유를 댔다. ■허술한 법령, 사태 해결에 소극적인 LH 사태의 근본 원인에는 허술한 법령 문제가 있다. 주택건설기준규정에서는 단지 규모별로 조성해야 할 주민공동시설을 말 그대로 ‘규정’만 하고 있다. 조성 의무만 부여하고 있을 뿐 시설 개관이나 운영에 대한 규정은 별도로 없다. 이렇다 보니 법적 의무로 조성된 시설이라도 개관이 지연되는 문제에 대해 제재하거나 강제할 수단이 없다. A아파트처럼 입대의와 임대의가 별도로 구성된 혼합단지에서 이 같은 문제는 더욱 두드러진다. 혼합단지라도 분양동과 임대동이 분리된 경우 입대의와 임대의가 각각 단지 운영과 관리를 맡도록 법령이 개정됐지만, A아파트의 경우 분양과 임대·장기전세가 한 동에 혼재돼 있어 이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경기도 하남시의 한 공공분양·임대 아파트단지에 ‘작은도서관’ 개관을 촉구하는 임차인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송진식 기자 결국 기존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공동시설 개관이나 운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임차인들은 ‘을’의 입장에 놓이게 된다. 공동주택관리법에서는 혼합단지의 경우 “입주자대표회의와 임대사업자가 단지의 관리에 관한 사항을 결정한다”고 규정한다. A아파트처럼 임대의가 구성된 단지에 한해 임대사업자(LH)가 임차인들과 해당 문제를 협의하도록 돼 있다. 임차인들이 집주인들과 단지 관리 문제를 놓고 직접 협의를 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막혀 있는 셈이다. A아파트는 임차인 가구가 집주인 가구보다 2배 이상 많고, 매월 같은 관리비를 내고 있는데도 그렇다. 이 문제는 수년 전부터 논란이 돼 법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임대사업자인 LH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만 LH는 “양측 간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임대의 관계자는 “시청에선 그래도 현장에 나와 주민들을 만나고 중재를 해보려는 시도라도 했는데 LH는 그간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LH 관계자는 “현재 작은도서관 공간을 할애해 돌봄센터를 설치한 후 공동사용이 가능한지 여부를 하남시와 협의 중”이라며 “단지 내 시설의 운영에 있어 LH가 강제조정할 순 없다. 지속적으로 중재와 협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 건설업계 ‘순살 아파트’ 대책도 밥그릇 싸움(2023. 11. 17 16:10)
- 2023. 11. 17 16:10 경제
- 서울시 혁신안에 업종 간 갈등…건축법 개정안도 진통 붕괴 사고가 발생한 검단 LH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이 아파트 전면 재시공 및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 4월 인천 검단신도시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지하주차장 상판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를 계기로 진행된 LH 아파트에 대한 추가 조사에서 조사대상 102개 단지 중 20개 단지의 철근 누락 사실이 확인됐다. 부실공사로 지어진 건축물을 의미하는 일명 ‘순살 아파트’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사고 이후 시공을 맡았던 GS건설에는 과태료 부과와 함께 영업정지 10개월의 처분이 내려졌다. 발주처인 LH엔 지금 강도 높은 감사와 구조조정 등 ‘칼바람’이 불고 있다. LH의 ‘해체설’까지 거론된다. 이한준 LH 사장은 이미 사퇴 의사까지 밝힌 상태다. 부실공사에 연루된 감리·시공업체 80여 곳이 경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부실공사의 책임을 묻는 과정은 진행 중이지만 근본 원인을 찾아 사전에 부실공사를 막기 위한 해법을 마련하는 작업은 더디다. 사고 발생 6개월이 넘도록 정부가 “마련하겠다”던 부실공사 방지 종합대책은 아직 소식이 없다. 국토교통부는 주택공급활성화대책(9~10월), 8만 가구 신규택지 공급 계획(11월) 등 주택공급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정부가 머뭇거리는 사이 서울시는 최근 ‘부실공사 제로 서울’을 전면에 내세우고 자체적인 건설 안전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국회에는 건축물의 구조 안전을 건립 초기 단계부터 확보하기 위해 공사 발주 시 ‘설계’와 ‘구조’를 분리해 발주하도록 하는 내용의 건설법 개정안이 이미 발의된 상태다. 지자체와 국회에서 추진되는 안전대책을 놓고 건설업계의 업종 간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대립과 갈등이 이어지는 중이다. 대책이 현장에서 실행되기 전까지 숱한 진통이 따를 전망이다. 건설업계에선 “부실공사 당사자들끼리 밥그릇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전문건설협 “하도급 말살” 반발 서울시는 지난 11월 7일 ‘서울형 건설혁신 대책’을 발표하고 부실공사를 근절하겠다고 선언했다. 서울시가 발주하는 공공 공사는 물론 관내 민간 공사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부실공사 업체 처벌, 입찰제도 개선 및 건설 숙련공 양성 방안까지 포함하는 종합대책이다. 대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항목은 서울시가 발주하는 공사의 경우 건설 단계에서부터 안전과 직결되는 주요 공정을 원도급사가 직접시공토록 한 부분이다. 현재는 대형 건설사인 원도급사가 공사를 수주한 뒤 다시 공정별로 중·소건설사로 도급(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공사가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재하청)이 부실공사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철근, 콘크리트, 교량공 등 시설의 구조 안전에 영향을 미치면서 공사비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핵심 공정’은 앞으로 원도급사가 100% 직접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2022년 4월에도 ‘직접시공 확대 및 관리방안’을 통해 원도급사의 직접시공 확대 정책을 추진했다. 올 상반기에 서울시 SH공사가 발주한 ‘고덕강일 3단지’ 건설공사의 경우 철근·콘크리트공사, 흙막이공사, 전열교환기설치공사 등 전체 공정의 30%가량을 원도급사가 직접시공했다. 이번 대책에서는 직접시공의 범위가 보다 넓어지고, 명확해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1월 7일 ‘서울형 건설혁신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공사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공사에 대해 50% 이상의 직접시공 의무제가 필요하다”며 “서울시의 직접시공 선언을 환영하며 다른 광역자치단체도 안전과 품질을 위한 직접시공 확대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건설현장에서 숙련공으로 근무하는 A씨는 “아무래도 대기업 책임 하에 주요 공정을 시공하게 되면 노동자 처우나 안전대책이 지금보다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원도급사로서 직접시공이 확대되는 데 따른 문제나 부담은 특별히 없다”면서도 “다만 인건비 등 공사금액이 다소 증액될 가능성은 있다”고 전망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직접시공 확대 과정에서 나타나는 공사비 증액 등은 정부에 건의해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간 주요공정을 하도급받아 시공해오던 전문건설업체들은 집단 반발하고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는 서울시 대책이 나온 이튿날 바로 성명을 내고 “하도급을 말살하려는 이번 대책을 즉시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건설사업은 종합적인 계획·관리·조정을 하는 종합건설업이 원도급을, 직접시공을 담당하는 전문건설업이 하도급을 주로 담당하면서 상호 원·하도급 관계를 형성해 수행해왔다”며 “일방적으로 전문건설업을 배제한다면 시공할 수 있는 공사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원도급사가 공사의 모든 공정을 직접시공할 수는 없다. 전문건설업체들의 반발이 이어질 경우 주요공정 외 다른 하도급 공정에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아무리 주요공정이라 해도 전문성이 높은 전문건설업체에 불가피하게 하도급을 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 원도급사 입장에서도 협력관계인 전문건설업체들의 반발은 부담이다. 서울시는 협회 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하도급이 전면 금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협회 주장대로 공사가 끊기는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전문건설업체들이 컨소시엄을 만들어 공동입찰에 나설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고 말했다. ■건축사와 구조기술사 ‘충돌’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LH 아파트 붕괴 사고 현장에서 현장 점검 중인 국토교통부 사고조사관의 모습 /연합뉴스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인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건축법 개정안’을 놓고선 건축사와 건축구조기술사가 대립각을 세우는 중이다. 현행 건축법은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감리를 건축사만 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건축물의 구조 안전에 대해선 건축구조기술사 등 관계 전문기술자의 ‘협력’을 받도록 하고 있다. 검단 LH 아파트 붕괴사고의 경우 무량판 구조물임에도 기둥의 전단근이 아예 빠지는 등 설계 단계에서부터 구조의 안전성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이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서는 건축물의 구조 관련 설계는 반드시 건축구조기술사가 하도록 했고, 공사 감리 등의 업무도 직접 수행할 수 있게끔 하는 조항도 신설했다. 개정안대로라면 현행 건축설계 발주·수주 과정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지금은 법률상 설계 권한이 있는 건축사가 통째로 공사를 수주한 뒤 건축물의 구조 부분에 대해선 건축구조기술사에게 별도로 일을 맡기는 방식으로 업무가 진행된다. 보기에 따라선 ‘협력’ 관계일 수도, ‘하청’ 관계일 수도 있다. 개정안을 적용하면 건축물의 설계 부분은 건축사가, 구조 부분은 건축구조기술사가 각각 수주받아 공사를 맡게 된다. 건설업계에서는 개정안 시행 후 건축사들의 기존 업무 영역이 축소되고 수익은 감소할 것으로 내다본다. 건축사 단체들은 개정안 폐기를 요구한다. 대한건축사협회, 한국건축가협회, 한국건축설계학회 등은 지난 11월 9일 공동성명서를 내고 “LH 사고를 비롯한 건설현장 안전사고는 저가 수주 경쟁, 설계·공사기간의 절대적 부족, 감리 독립성 결여, 안전불감증과 같은 종합적인 문제로 인한 결과”라며 “이번 개정안은 건축 분야의 상호협력 시스템의 붕괴를 일으키는 ‘건축생태계 붕괴 촉진법’”이라고 밝혔다.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은 “건축물은 다양한 건축 분야 전문가들의 협업과 확인, 수많은 조정 작업을 통해 완성되는데 구조 분리만을 담아낸 편협한 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이런 중대한 법안임에도 충분한 논의 및 의견수렴 과정이 생략된 점 역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건축사들 사이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건축구조기술사 측의 ‘청부 입법’이라는 소문마저 돌고 있다. 건축구조기술사 단체는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관계자는 “개정안에 대해 아직 협회 측의 입장이 공식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며 “의견이 모아지는 대로 입장을 발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건축사 단체와 건축구조기술사 단체는 지난 8월 검단 LH 아파트 붕괴사고의 ‘책임 소재’를 놓고 한차례 공개적인 의견다툼을 벌인 바 있다. 당시 입장문에서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는 “구조기술사들이 협력이라는 탈을 쓴 하청으로 전락해 일부 건축사들의 갑질에 신음하는 대상이 됐다”며 설계와 구조의 분리 발주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개정안을 바라보는 학계의 입장도 설계 전공(건축학)이냐, 구조 전공(건축공학)이냐에 따라 미묘하게 갈린다. 수도권의 한 건축학부 교수는 “설계와 구조의 분리 발주냐 아니냐를 떠나서 건축사와 건축구조기술사는 건축물의 안전과 품질을 위해 협력해야 하는 관계”라며 “개정안을 놓고 싸우기에 앞서 부실공사를 근절하기 위한 건설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지방의 한 건축공학과 교수는 “해외 사례를 볼 때 설계와 구조를 한꺼번에 발주하고 수주하는 곳은 우리밖에 없다”며 “엄연히 설계와 구조의 영역이 다르고, 필요한 전문 지식이나 업무 경험 등도 다르기 때문에 분리 발주를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10월 6일 공개한 ‘건축물 부실공사의 원인 및 개선과제’ 보고서에서는 “건축물의 구조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건축물의 설계단계에서 구조설계가 세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며 “설계단계에서 기본설계와 구조설계를 분리해 발주함으로써 건축사와 건축구조기술사의 역할과 권한을 각각 부여하는 등의 법·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번 개정안의 경우 국토부와 사전 공감이나 의견조율 없이 발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개정안을 놓고 이익단체 간 견해 차이가 크다고 들었다”며 “정부의 입장이나 방침은 아직 따로 없고, 지금은 개정안 관련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대한건축사협회, 한국건축가협회 등이 지난 11월 9일 국회에 제출된 건축법 개정안의 폐기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서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한건축사협회 제공 ■“밥그릇 싸움 멈춰야” 부실공사를 막기 위해 서울시가 내놓은 대책도, 국회에 발의된 건축법 개정안도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려면 극복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서울시 대책의 경우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지가 관건이다. 예컨대 서울시는 2019년 11월 건설 일용직 노동자 여건 개선을 위한 표준근로계약서를 조례로 마련했다. 시가 발주하는 공공 공사의 노동자들에게 4대 보험, 주 5일 40시간 근무 시 주휴수당 지급 등을 의무적으로 보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막상 현장에서는 표준계약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은평구에서 서울시 발주 공사에 참여했다는 B씨는 “한 전문건설업체와 계약 후 화장실 설비 업무를 맡았는데, 그 업체가 주휴수당을 주지 않으려고 ‘주 4일 근무 후 주말 초과근로’ 등 편법 근무를 요청해와 어쩔 수 없이 응했다”며 “현장 문제를 서울시가 다 관리·감독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강동구에서 시 발주 공사에 참여한 C씨도 주휴수당 등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다. 그는 “업체를 상대로 고소장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건축법 개정안은 당장 국회 본회의 문턱부터 넘어야 한다. 개정안에 참여한 여당 의원이 11명으로 많지 않아 당내 주류 여론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현재 여당과 정부의 경우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 1기 신도시 특별법 추진 등 건축 안전보다는 부동산 개발 문제에 힘을 싣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분리 발주를 감당할 건축구조기술사 인력이 충분치 않다는 우려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집계를 보면 2022년 말 기준 건축구조기술사는 전국에 1273명으로, 건축사(2만6980명)에 비해 적다. 국가공인자격인 건축구조기술사는 고시 수준의 고난도 시험으로 합격률이 극히 낮기로도 유명하다. 학계에서도 해당 분야 전문인력 수를 더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축업계가 서로 이해관계를 따지기에 앞서 부실공사 근절을 위해 협력하는 게 우선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금처럼 정부 따로, 지자체 따로, 국회 따로 할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김성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조직국장은 “서울시 대책이나 국회 개정안을 놓고 벌어지는 논란을 보면 결국 부실공사 당사자들끼리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양상으로밖에 안 보인다”며 “현장에서 안전 시공을 하는 인력은 노동자인데, 막상 노동자는 논의에서 배제돼 있다. 함께 대책 마련에 나서자고 정부 측에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순살 LH’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될까(2023. 08. 04 11:21)
- 2023. 08. 04 11:21 경제
- ㆍ“분양가 부풀려졌다” 비판에 철근 누락 오명까지 구조물에서 철근 누락이 확인된 LH의 한 공공분양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보강공사를 위한 임시 기둥들이 설치돼 있다. / 연합뉴스 지난 7월 5일 당첨자가 발표된 서울 동작구 수방사 부지 공공분양주택 청약(사전청약)은 여러모로 많은 화제를 낳았다. 지하철 1호선과 9호선 중간에 위치한 일명 ‘더블 역세권’에 한강 조망까지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청약 전부터 “당첨만 되면 바로 5억원 차익” 등 ‘로또 청약’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를 입증하듯 전체 79가구 모집인 일반분양 청약에 5만957가구가 몰려 ‘645 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높은 경쟁률만큼 화제가 된 건 분양가였다. 공급면적 기준 약 90㎡(전용면적 59㎡·17.88평) 아파트의 분양가가 8억7200만원으로 추산됐다. 3.3㎡(1평)당 분양가는 3196만원으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발표한 6월 말 기준 서울 민간 아파트 평균 분양가인 3.3㎡당 3192만원보다 높다. 수방사 부지는 국방부가 수십 년간 보유해온 공공토지다. 이 점을 들어 시민단체들은 “분양가가 터무니없이 높다”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분양원가를 공개하라고 요구 중이다. 최근에는 철근이 누락된 일명 ‘순살 LH’ 아파트 사건까지 불거지면서 분양원가 공개 요구에 보다 힘이 실리고 있다. LH의 공공분양주택 고분양가 논란은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됐다. 핵심은 분양원가 공개이지만, 정부와 LH는 “공공주택 공급에 지장이 있다”며 줄곧 원가공개를 거부해왔다. 이 와중에 최근 대법원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LH를 상대로 제기한 분양원가 공개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려 주목된다. 앞서 1심에서도 경실련이 승소했기 때문에 다시 진행될 2심 결과에 따라 LH가 공급하는 아파트의 분양원가가 공개될 가능성이 있다. 경실련 “수방사 분양으로 국방부, LH 돈방석” HUG의 민간 아파트 평균 분양가 통계를 보면 부동산 가격이 급등을 시작한 2019년 1월 3.3㎡당 2508만원이던 서울 지역 분양가는 올 1월 3063만원으로 22.1% 올랐다. 민간 통계에서도 최근 3~4년새 전국 아파트 분양가가 20~30%가량 상승한 것으로 집계된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토지비용이 높아졌고, 원자재와 인건비가 오르면서 건축비도 상승한 결과다. 수방사 부지는 지난 정부에서 본래 신혼부부를 위한 ‘신혼희망타운’으로 분양하려다 청약이 한 차례 연기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새 공공주택 브랜드인 ‘뉴홈’으로 개편되면서 수방사 부지의 신혼희망타운 물량 대부분이 일반분양으로 전환됐다. 분양가 상승 추세를 반영하더라도 수방사 뉴홈의 분양가는 과거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LH가 2019년 수서역 인근에 분양한 ‘수서 신혼희망타운’은 강남 역세권이라는 입지 조건에도 55㎡가 5억4100만~5억7100만원에 분양됐다. 분양 당시 “분양가가 2배 부풀려졌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수방사 뉴홈에 비하면 한참 저렴하다. 2021년 민간 참여 공공분양으로 공급된 ‘위례자이 더 시티’의 경우 일반물량 전용 74~84㎡가 7억~7억9000만원에, 신혼희망타운은 전용 59㎡가 5억1800~5억5600만원에 각각 분양됐다. 신혼희망타운의 분양가는 ‘주변 시세의 60~70%’로 산정한 데 반해 수방사 뉴홈은 ‘주변 시세의 80%’로 책정됐다. 기본적으로 뉴홈의 분양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방사 부지의 경우 당초 신혼희망타운으로 조성돼 공급될 예정이었음을 감안하면 뉴홈으로 공급되면서 분양가가 오히려 높아졌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현재 공개된 수방사 뉴홈의 분양가는 사전청약에서 추산한 ‘추정 분양가’다. 향후 본청약에서 분양가가 더 오를 수도 있다. 2021년 사전청약을 진행한 성남복정1지구 전용 59㎡(일반)의 추정 분양가격은 6억7600만원이었지만, 2022년 말 진행된 본청약에서는 분양가가 7억3000만원 수준까지 올라 일부 수분양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경실련은 LH와 국방부가 수방사 부지 분양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고 비판한다. 경실련은 “국방부가 1960년대부터 보유한 것으로 보이는 수방사 부지의 3.3㎡당 당시 취득가를 1만원이라고 추정할 경우 뉴홈의 실제 분양가는 2억5000만원”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가구당 6억2000만원가량의 분양수익이 발생해 국방부와 LH가 모두 1660억원 규모의 개발 수익을 수방사 부지에서 올리게 된다는 게 경실련의 주장이다. LH, 최근 5년간 분양 등으로 21조원 수익 아파트 분양가는 크게 토지비(택지비)와 건축비로 구성된다. 이중 토지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땅값이 비싼 서울의 경우 분양가에서 토지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60~70%에 달한다. 경실련은 수방사 뉴홈의 토지비를 취득가로 계산했기 때문에 분양가가 매우 낮게 나왔다. 이에 반해 현행법상 공공택지 내 토지비는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산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볼 때 경실련이 추정한 분양가는 수긍하기 어렵다”면서도 “LH가 공공택지를 조성해 판매하거나 개발·분양하는 과정에서 많은 수익을 내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공공주택의 공급 목적이 국민의 주거안정임을 감안하면 저렴하게 조성되는 공공택지를 주변 시세와 비슷한 감정평가액으로 판매하는 게 옳은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경기가 2015년 즈음부터 본격적인 활황기를 맞으면서 LH는 매년 수조원의 수익을 냈다. 김수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LH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공공주택 분양과 신도시·택지개발로 99조5000억원의 매출, 21조24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부동산 활황이 절정에 달했던 2019~2021년의 3년 동안은 매년 평균 5조원가량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을 정도다. LH는 거둬들인 수익을 공공임대 공급과 관리에 사용한다. 같은 기간 공공임대사업으로 발생한 손실은 8조1600억원이다. 공공임대손실을 제외하고도 5년간 약 13조원가량의 순이익을 본 셈이다. 특히 임대손실 대부분은 임대아파트의 건축 연한이 오래된 데 따른 감가상각에 의해 발생했다. 건물은 낡아도 토지 가치는 계속 상승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자산가치를 고려하면 임대손실 문제가 심각하다고 볼 부분도 아니다. 김 의원은 “LH가 이미 회계상으로도 천문학적 수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난 상황이지만,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는 공공주택 분양원가 등을 감안하면 실제 수익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LH가 개발하는 저층 주거지 사업 후보지인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인근 지역 / 연합뉴스 LH 분양원가 공개소송 ‘2라운드’ 결과는 주택법에서는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는 공공주택을 분양할 때 분양가격의 택지비와 공사비 등의 내역을 62개 항목별로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LH도 아파트 입주자 공고를 낼 때 해당 내역을 공개 중이다. 그러나 LH가 공개한 내역들을 보면 분양되는 개별 가구당 분양가격 내역이 아닌 단지 전체 조성 총액 기준으로 금액이 공개되고 있어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다. 내역 자체도 실분양가를 기준으로 작성돼 정작 중요한 수익과 원가가 얼마인지는 알 수가 없다. LH는 공사비 내역을 공개하면서 “분양가격의 항목별 공시 내용은 사업의 실제 소요된 비용과 다를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아놓았다. LH의 분양원가가 일부 공개된 사례도 있다. 2004년에는 LH가 공공택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토지를 수용당한 한 개인이 “개발 후 얻은 이익에 비해 토지보상비가 너무 적다”며 원가공개 및 보상비 추가 지급 소송을 내 승소했다. 2010년에는 LH의 ‘임대 후 분양전환’ 아파트를 분양받은 수분양자들이 최초 고지금액보다 분양가가 너무 높다며 원가공개 소송을 내 승소했다. 통상적인 분양원가 공개 사례는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그간 공공주택의 고분양가 논란이 일 때마다 정부와 LH는 “시세보다 저렴하다”고 항변했다. 이는 반대로 해석하면 “시세보다 저렴하니 얼마의 수익을 내도 상관없다”는 말이 된다. 원가공개 요구도 번번이 거절했다. 제주도지사 시절 “공공아파트 원가공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원가공개 질의를 받자 “취지는 공감하지만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위한 재원을 순식간에 없애버릴 수 있다”고 사뭇 다른 입장을 보였다. 결국 LH 공공주택의 원가공개 문제는 법정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대법원은 지난 7월 27일 경실련이 LH를 상대로 제기한 분양원가 공개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심 파기 환송 판결을 내렸다. 경실련 손을 들어준 것이다. 경실련은 2019년에 LH에 분양원가 공개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LH를 상대로 소송을 냈는데, 1심 재판부가 “분양원가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LH가 항소심에서 “경실련이 소송 청구 기한을 넘겨 소송을 제기했다”고 주장해 승소하자 경실련은 대법원에 상고심을 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따라 분양원가 공개문제는 다시 고법으로 넘어왔다. 경실련은 “법원도 인정했듯이 LH 건설원가(분양원가)는 집값 안정과 서민 주거안정, 투명 행정을 위해 중요한 정보”라며 “LH는 더 이상 분양원가 공개를 거부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 [시네프리뷰]콘크리트 유토피아-대재난 후 남은 유일한 아파트 속 집단광기(2023. 08. 04 11:21)
- 2023. 08. 04 11:21 연예
- 시간이 지나면서 아파트 주민들은 외부에서 아파트에 침입하려는 사람들을 ‘바퀴벌레’라고 칭하며 이 ‘바퀴벌레’들을 도우려는 주민들도 색출해 처단한다. 대재난 직후 자멸해가는 인간군상을 시니컬하게 그리고 있는 영화다. 제목 콘크리트 유토피아(Concrete Utopia) 제작연도 2021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29분 장르 드라마 감독 엄태화 출연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박지후, 김도윤 개봉 2023년 8월 9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제작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공동 제작 BH엔터테인먼트 제공/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보며 수년 전 읽은 책 한 권이 생각났다. <휴먼카인드>. 저자가 누구였더라,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뤼트허르 브레흐만이다. 책은 인간의 ‘악한 본성’을 파헤친 것으로 알려진 여러 심리학 실험의 ‘진실’을 추적한다. 예컨대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1971년 스탠퍼드대 감옥실험(대학생들을 임의로 죄수와 간수로 나눠 역할을 부여하자, 간수 역할을 맡은 대학생들이 필요 이상의 ‘가학성’을 드러내 결국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결과를 보여줬던 실험. 이 실험 이야기는 영화(<엑스페리먼트>(2001)로도 만들어졌다)의 경우 한 프랑스 사회학자가 ‘팩트체크’를 해보니 실험을 생각해낸 사람은 짐바르도가 아니라 한 학부생이었고, 아무런 규칙도 없는데 자연스럽게 간수역 학생들이 가학적 규칙을 떠올린 것도 아니었다. 책에 따르면 규칙 중 상당수 역시 그 학부생이 고안해냈다. 거기다 그런 규칙이 고지됐을 때 간수역을 맡은 학생 중 3분의 2는 참여를 거부했다는 사실도 스탠퍼드 기록보관소에 보관된 문서를 통해 규명해냈다. 나머지 3분의 1조차 죄수들에게 친절하게 대함으로써 짐바르도 교수를 곤란하게 했다는 것이 책이 밝혀낸 ‘진실’이다. 요컨대 인간의 본성엔 디폴트로 ‘악(惡)’이 내재해 있다는 점을 증명해낸 것으로 알려진 짐바르도 교수의 스탠퍼드 감옥실험은 한마디로 사기극이었다는 것이 책의 주장이다. <휴먼카인드>가 밝혀낸 심리실험의 진실 영화의 기본설정은 이렇다. 원인 미상의 대지진이 일어난다. 그냥 단순 지진이 아니라 지각이 크게 출렁거려 지상의 모든 건물이 파괴된다는 설정이다. 서울시내 대부분의 주거시설이 무너졌다. 어떤 이유인지 딱 한 곳, 언덕 기슭의 황궁아파트만 무너지지 않았다. 이제 폐허 가운데 우뚝 선 황궁아파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들의 목적지가 된다. 수많은 사람이 황궁아파트로 몰려든다. 쓸데없이 허세만 부리는 그 지역구 국회의원과 비서관까지도. 이름은 거창하지만 지어진 지 꽤 된 구축아파트로 보인다. 바로 이웃에 있었지만, 집값은 더 비쌌던 드림팰리스 아파트 주민들은 대재난 이전엔 황궁아파트 사람들을 은근히 멸시하고 깔봤던 모양이다. 이제 피난처는 황궁아파트밖에 없다. 살아남은 드림팰리스 아파트 주민들도 황궁아파트에 와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필품(이미 재난으로 사회시스템은 붕괴됐기 때문에 돈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을 주는 대신, 수용해달라고 부탁한다. 앞서 짐바르도 실험, 그리고 그를 반박하는 책 <휴먼카인드>를 떠올린 건 시간이 지나면서 황궁아파트 사람들이 보여주는 가차 없는 집단광기를 영화가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홍보사 측에서 사전에 영화를 홍보하며 이 영화의 장르를 ‘블랙코미디’라고 선전했는데 영화가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웃음기는 사라진다. 맞다.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찝찝한 여운이 가시지 않는 영화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반복적으로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들이 제정한 강령의 제1조다)이라는 구호를 외친다. 우리만의 것이니 외부의 누구에게도 일말의 권리침범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이기적인 주장으로 치닫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파트 주민들은 외부에서 아파트에 침입하려는 사람들을 ‘바퀴벌레’라고 칭하며 이 ‘바퀴벌레’들을 도우려는, 그러니까 자신의 집에 숨겨주었던 주민들도 색출해 처단한다. 이 광기의 중심엔 아파트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대책위 위원장 903호 영탁(이병헌 분)이 있다. 영화는 주인공 격인 602호 민성(박서준 분)·명화(박보영 분)의 관점에서 이 집단광기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민성은 영탁의 최측근이 되고, 그나마 영탁이 주도하는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간호사 출신의 명화지만 주인공 부부는 물론 영탁의 캐릭터, 그리고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이탈한 809호 도균(김도윤 분)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도 감정이입이 쉽지 않은 영화다. 다시 말해 영화는 대재난 직후 자멸해가는 인간군상을 시니컬하게 그리고 있다. <휴먼카인드> 저자가 밝힌 것처럼 인간-호모 사피엔스 종이 지구상 지배종이 될 수 있었던 근본 동력, 타자에 대한 친화력과 유대감은 발휘되지 못한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뭔가 찝찝한 여운을 떨쳐버리기 힘들 것이다. 한국의 아파트문화 비판, 공감을 받을 수 있을까 유튜브 캡처 재난이 일어났고, 불가사의하지만 모든 거주 공간이 파괴된 가운데 아파트 한 채만 우연히 살아남았다면? 이라는 질문을 영화는 던진다. 그후 인간군상의 행태들을 짚는 일종의 사고실험을 이어간다. 이 이야기는 과연 얼마나 보편성을 얻을 수 있을까. 한국의 주거문화 중심이 아파트로 바뀌게 된 건 대체적으로 1990년대 이후쯤일 것이다. 이른바 브랜드아파트 열풍을 일으킨 것이 ‘래미안, 당신의 이름이 됩니다’라는 카피와 함께 아파트 열쇠고리를 슬쩍 노출하는 ‘래미안(來美安)아파트’ 광고 이후쯤으로 기억한다(사진·이 CF가 대히트를 치면서 래미안아파트 이전에 삼성물산이 지은 아파트들도 이름을 래미안으로 변경해달라는 민원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아파트 브랜드는 거주인들의 사회적 신분과 부를 드러내는 지표가 됐다.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니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휴거’(휴먼시아에 사는 거지)나 ‘엘사’(LH아파트에 사는 사람)라는 차별 유행어가 등장한 것이 2018~2019년 무렵인 것 같은데 사실 거주 아파트 브랜드로 사람의 신분을 차등화하고 차별하는 건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당장 이웃 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아파트(アパ-ト)’ 거주란 엘리베이터도 없는 2층짜리 허름한 건물의 단칸 월셋집에서 산다는 뜻이다(넷플릭스에 공개된 애니메이션 시리즈 <코타로는 1인 가구>(2022)에서 주인공 꼬마 코타로가 사는 집이 일본사회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아파트’다). 한국의 아파트에 해당하는 일본의 집단주거시설은 보통 맨션으로 통한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아파트 열풍이 시작된 1970년대 후반이나 1980년대 지어진 아파트들만 해도 맨션이라는 이름을 많이 달고 있었다.
- 시네프리뷰
- [시사 2판4판]‘순살 아파트’에 ‘순살 방통위원장’까지(2023. 08. 04 11:20)
- 2023. 08. 04 11:20 정치
- 시사 2판4판
- 산업단지 개발, 알고 보니 ‘아파트 분양’(2023. 06. 02 11:30)
- 2023. 06. 02 11:30 경제
- ㆍ아산탕정테크노 단지…저가 토지 수용 후 아파트 건설 충남 아산탕정테크노 일반산업단지 2공구 부지 건너편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다. / 주영재 기자 길은 좁고 구불구불했다. 개천 위로 난 작은 다리는 차량이 지나가기에 위태로워 보였다. 차로 몇 분 올라가니 이내 산업단지 조성공사 현장에 닿았다. 충남 아산시 탕정면 용두리 1-8일원의 산지를 깎아 만드는 아산탕정테크노 일반산업단지이다. 약 11만평(약 36만8763㎡)인 산업단지 부지 북쪽으로 물한산(284m)과 꾀꼬리산(271m)이 있고, 남쪽으로는 방화산(168m)이 있다. 경사가 가파른 편이라 수십m 이상 바위와 흙을 깎아내 여러 단으로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산에서 나온 바위들이 공사장 한쪽에 높이 쌓여 있었다. 공사로 드러난 황토색 절개지 바로 위쪽으로 깊은 숲이 보였다. 산업단지 부지와 주변 산지는 생태자연도 1등급으로 지정된 곳이다. 1등급이 아닌 지역도 상당 부분은 2등급으로 지정돼 있다. 지난 5월 31일 이곳에서 만난 임장빈 아산탕정테크노 일반산업단지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청정지역이라 산업단지 허가가 나와선 안 될 지역이었다”면서 “2015년 이후 공사만 8년째인데, 완공 후에도 주변 산업단지도 놀고 있는 땅이 많아 분양이 제대로 될까 싶다”고 말했다. 아산탕정테크노 일반산업단지는 1·2공구로 나뉜다. 2016년 8월 시행사(탕정테크노파크)가 처음 허가받은 용두리 부지를 1공구로 하면서, 인근 갈산리 일대를 2공구로 신설하는 변경승인신청을 했다. 충청남도는 2018년 10월 19일 이를 승인했다. 임 위원장의 한숨은 자신의 땅이 수용당한 갈산리 일대에 이르자 더 커졌다. 1공구 중심부와 직선거리로 4.6㎞, 차량으로는 약 9.4㎞, 13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이곳 10만평 부지(31만7376㎡)는 1공구의 지원시설로 3500세대의 아파트와 학교, 주차장, 산업체가 입주할 복합시설 용지 등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산업단지보다 아파트 개발에 더 큰 관심 지난해 12월 14일 충청남도 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서 갈산리 땅의 수용재결을 인용하면서 지난 1월 말부터 바닥 다지기 공사가 시작됐다. “평지라 공사비도 적게 들고 큰 도로(왕복 6차선의 국도 43호선과 2025년 준공 예정인 당진천안고속도로)와 역(천안아산역, 탕정역)도 멀지 않아 교통이 좋죠. 아산의 마지막 남은 금싸라기 땅이라면서 모든 건설사가 욕심을 낸 땅이에요.” 임 위원장이 부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농사를 짓지 못하도록 일부 부지는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올해 9월까지 포도 농사를 짓겠다며 남겨둔 나무들도 보였다. 2공구 북쪽의 이순신대로 건너편으로는 3953세대, 3027세대의 아파트단지들이 높이 서 있다. 2공구 부지에도 3500세대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임 위원장은 아파트 개발을 목적으로 산업단지 계획변경이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산업단지 개발을 명목으로 값싸게 농지를 수용한 후 아파트를 분양해 개발이익을 남기려는 사업에 공무원과 정치인들이 길을 열어줬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지원단지 명목으로 이렇게 먼 거리에 있는 부지까지 하나의 산업단지로 묶어 변경해준 거죠. 이런 논리라면 경기도에 산업단지를 세우고, 지원단지라는 명목으로 수㎞ 떨어진 서울 강남의 땅을 수용할 수 있는 거죠.” 시행사는 입주업체 직원들을 위한 기숙사 시설을 1공구에 계획했지만, 급경사 산지라 정주환경이 좋지 않아 2공구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1공구를 추가로 확장하고, 2공구에도 산업시설이 들어서면서 주거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에 이를 충족할 필요성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충남도 산업단지계획심의위원회에서 주거수요 예측에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3차례에 걸쳐 수정하기도 했다. 시행사 쪽은 지가상승과 공사비 증가로 1평당 133만원인 기존 조성원가로는 산업단지 건설이 어렵다면서 아파트 부지를 분양해 추가 수익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시행사는 심의위원회에서 “지원시설용지를 개발해 거기에서 일부 남는 이득금으로 산업단지 조성원가를 ‘다운(Down)’시켜 산업단지도 살고 지원용지도 살 수 있게끔 하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그러나 본말이 전도된 논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2017년 열린 심의위에서 한 위원은 “10단이 넘어가는 대절토사면을 만들어 내는 험준한 지형개발이 기본적으로 조성원가가 높아지니까 2공구 아파트 개발을 해야 한다는 이 논리가… 타당한 논리가 너무 약하다. 그 명분이 있어야 다음 심의에 원만한 승인절차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는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에 관한 특례법(특례법)을 이용해 편법으로 택지를 개발하는 사례라고 봤다. “산업단지 안에 노동자들이 주거할 곳으로 공동주택이 들어갈 순 있지만, 변경승인하면서 처음 허가받을 때 없던 대단지 공동주택단지가 그것도 몇㎞씩 떨어진 곳에 들어왔다. 산단 규모도 10만평 정도로 작은 편인데, 국도와 연결되는 진입도로를 내는 데 435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굉장한 특혜성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임 위원장은 “대장동은 수익의 반을 국가에서 환수했지만, 이건 모두 민간사업자가 가져가는 것이라 대장동보다 더한 경우”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충남도 관계자는 “조례를 통해 이윤이 나도 10% 이상은 가져갈 수 없도록 했다. 준공 정산으로 돈이 남을 경우 기존 분양가에서 토해내도록 해 그만큼 산업용지 가격이 싸진다”고 말했다. 산단 개발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그러나 “조성원가를 여러 방법으로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익을 남길 방법은 있다”면서 “시행사 입장에선 아파트가 가장 이익이 많이 남지만, 대단지 아파트 개발은 사실 산업단지 조성 목적에 위배된다는 점에서 허가가 쉽진 않아 요즘은 흔한 사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시행사들이 아파트를 넣어야 인구 유입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논리로 설득한다고 했다. 실제 충남도 관계자도 “산단 근로자에게 특별공급으로 내 집 마련의 여건을 만들어줄 수 있고, 아산시와 도 입장에선 그만큼 인구 유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을 비롯해 60여명의 토지주는 변경승인신청을 허가해준 충청남도의 행정처분이 무효라면서 두 차례 소송을 제기했는데 1심에선 두 재판부에서 승소와 패소가 엇갈렸고 2심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충남도의 행정처분을 무효로 할 정도로 그 하자의 정도가 중대하고 명백하지는 않다고 보고 있다. 다만 변경신청의 정당성은 부족하다고 봤다. 대전고등법원 제1행정부는 지난 2월 2일 선고에서 “단지 분양단가 인하만을 목적으로 하여 추가로 지원단지를 개발하는 내용의 산업단지계획이 승인되는 경우, 그러한 산업단지계획은 산업단지계획 제도의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지원단지 내 공동주택 등의 개발사업을 통한 사업시행자의 이윤 추구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도 있으므로 그러한 경우에까지 산업단지계획을 승인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토지수용 제도 공익성·공정성 높여야 충청남도는 2019년 2월 2공구 주민들의 재산권 피해를 막기 위해 2공구 토지보상이 50%를 넘었을 때 토지수용 재결을 신청하도록 사업시행자와 협의를 마쳤다고 문서로 밝혔다. 맹지인 1공구 주민들은 대부분 토지매매에 동의한 반면, 보상비와 개발 이후 분양가의 차이가 크게 날 2공구 토지주들은 대부분 반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1·2공구를 ‘일단의 토지’(하나의 산업단지)로 보면 수용재결을 위한 토지면적 50% 이상 확보라는 조건을 손쉽게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수용재결이 이뤄졌다. 항소심에서 뒤집히긴 했지만 1심 법원에서 신뢰보호원칙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수용재결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다만 법원은 대체로 1·2공구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더라도 주거환경 개선 효과나 교통망 확충에 따른 기능적 연계가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산업단지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중앙토지수용위원회는 2022년 8월 2공구에 대해 주민동의가 50%를 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용재결을 취소했다. 그 후 반대운동을 했던 2공구 토지주 일부가 시행사와 토지매매에 동의하면서 50%를 넘겨 그해 12월 수용재결이 다시 이뤄졌다. 토지수용에 앞서 시행사와 지자체, 주민이 함께 감정평가사를 선정해 감정평가를 한다. 아산탕정의 경우 주민동의서를 위조해 특정 감정평가사를 선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 동의서를 시행사 등에 유리하게 조작한 부동산 업자들이 사문서 위조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 이런 논란 속에 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서 2020년 첫 번째 수용재결 취소가 있었다. 임 위원장은 “감정평가 동의서를 위조하는 등 절차상의 문제도 있지만, 변경승인 당시 시행사가 법적 자격 요건을 갖추지 않은 문제도 있다”고 주장했다.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민간기업이 산업단지의 사업시행자 자격을 얻으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시공능력을 갖춘 건설사가 주주로 있어야 한다. 현재 시행사 주주로 참여하는 대우건설이 지분을 처음 얻은 때는 2019년 2월 14일이고, 2018년 10월 변경신청을 할 당시엔 없었다. 충남도는 해유종합건설이 참여했다고 하지만 해유건설의 2017년, 2018년 감사보고서나 탕정테크노파크의 감사보고서의 주주명부엔 해유건설이 없었다는 점에서 사업시행자 자격 요건에 중대하고 명백한 흠결이 있다고 임 위원장 등은 주장한다. 토지수용 제도 자체의 공익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승수 대표는 “공익성이 인정될 때 토지수용이 가능한데 공익성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민간기업의 이윤 추구에 동원되는 게 문제”라면서 “민간기업이 산업단지 특례법을 악용해 땅장사를 하는데 국가가 강제수용권을 부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 대표는 “우선적으로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한 특례법을 폐지하고, 현재 진행되는 특혜성 산업단지 사업에 대한 전면적 수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승종 국토연구원 주택·토지연구본부 연구위원은 “중토위에서 공익성 협의를 통해 택지개발로 분양 이익을 과도하게 실현한다면 그 이익에 상응하는 만큼 산업단지 내 토지 가격을 낮추도록 하는 통제가 뒤따를 것”이라면서도 “산업단지가 필요로 하는 규모에 맞춰 택지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산업단지 조성으로 이주자가 있을 경우엔 영국이나 미국처럼 인근 지역에서 동일한 주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주택 가격의 차액을 보상해주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 강남 아파트 경비의 비극···언제쯤 ‘사람대접’ 받을까(2023. 03. 24 12:51)
- 2023. 03. 24 12:51 사회
- ㆍ숨지기 전 관리소장 ‘갑질’ 피해 호소 노동부, 감시직 승인 취소 가능성도 “근무를 마치고 경비복만 벗으면 사람처럼 대접받는데, 경비복을 입으면 사람 아닌 취급을 받습니다. 우리도 똑같은 사람입니다.”(경비노동자 이광현씨) 경비노동자의 현실을 꿰뚫는 말이다. 한국사회가 지난 수십 년 동안 경비노동자를 바라본, 부정할 수 없는 시각이기도 하다. 관리책임자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기고 사망한 경비노동자가 일했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 앞에서 지난 3월 20일 동료 경비노동자들이 관리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70대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일터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숨지기 전 남긴 호소문에서 ‘갑질’ 피해를 언급했다. 이를 계기로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전반적인 노동 환경과 처우 등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투명인간’, ‘ 파리목숨’,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 등으로 수식되는 경비노동자의 실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20년 5월 최희석씨가 입주민의 폭언·폭행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당시에도 경비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 등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다. 정부와 국회는 대책도 내놓았다. 하지만 현장에선 “1도 변한 게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주간경향 1507호 표지 이야기). 경비노동자 문제는 누군가 사망하면 반짝 주목을 받았다가 시간이 흐르면 공론장에서 시나브로 사라졌다. 이런 행태가 반복돼왔다. ‘직장 내 괴롭힘’ 적용 어려워 이번엔 다를까. 고용노동부는 이번 사망 사건과 관련해 갑질 의혹뿐 아니라 이곳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노동실태 전반을 근로감독하겠다고 나섰다. 근로감독 결과가 나오면 필요한 조치도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14일 오전 8시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노동자 박모씨(74)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박씨는 사망 1시간 전쯤 ‘주민에게 드리는 호소문’이라는 제목의 글을 동료 경비노동자들에게 휴대전화로 전송했다. 박씨가 자필로 작성한 뒤 사진으로 찍은 것이다. 호소문에는 “관리소장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그간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호소문은 유서가 됐다. 박씨는 2013년부터 이 아파트에서 일했다. 2019년에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경비반장으로 승진했다. 이곳 경비조직은 업무를 총괄하는 경비대장, 근무조 를 관리하는 경비반장, 일반 경비원 등의 구조를 갖춘다. 경비 인력은 총 77명이다. 경비대장을 제외하고 A·B조가 각각 24시간 맞교대로 근무를 선다. 경비원은 2차 간접고용 형태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전체 관리 업무를 위탁관리업체에 맡기고, 관리업체는 다시 경비업무를 경비용역업체에 하도급 줬다. 지난해 12월 새로운 관리소장이 부임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경비업무 외의 업무지시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관리소장이 박씨 등에게 인격적 모멸감을 줬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동료 경비노동자의 말이다. “관리소장이 주재하는 조회에 원래 경비대장이 들어갔다. 경비대장이 한 달 정도 들어간 이후 못하겠다고 했다. 대신 박씨 등 반장들이 조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관리소장이 군대처럼 복명복창을 시켰다고 한다. 목소리가 작다고 구박하기도 했다. 또 박씨가 반장인 근무조의 신입 경비원이 화재경보기를 오작동하는 등 실수를 했다. 이를 빌미로 관리소장이 지난 2월 박씨에게 책임지고 반장직을 그만두라고 했다. 그러다 3월 8일에 박씨를 일반 경비원으로 강등시켰다. 박씨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거다.” 박씨 사망 이후 동료 경비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났다. 70여명이 지난 3월 20일 아파트 앞에서 관리소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경비노동자들이 이렇게 단체행동을 하는 건 보기 드문 장면이다. 이들은 “박씨를 죽음으로 내몰고 모든 경비원을 고용불안에 떨게 하는 관리소장을 해임하라”고 주장했다. 입주민들에게서 관리소장 사퇴를 위한 서명도 받았다. 관리소장은 그러나 갑질 의혹 등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리사무소 측은 “구체적인 갑질이 나온 게 없지 않나. 말로만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박씨의 사망을 둘러싼 사실관계 등을 파악하기 위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아울러 고용노동부도 움직였다. 노동부 서울강남지청은 지난 3월 17일 근로감독에 착수했다. 이번 근로감독은 ‘수시감독’이다. 이는 종합계획에 따라 시행하는 정기감독에 반영되지는 못했지만, 언론보도 등을 통해 노동관계 법령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때 진행한다. 근로감독은 일주일 동안 이뤄지며 필요하면 연장할 수 있다. 근로감독관은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의 지위를 갖는다. 노동부가 우선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건 박씨의 사망 원인으로 지목된 갑질 의혹이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다만 박씨의 사례에는 이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근로계약 관계에 있는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서만 적용 가능하다. 박씨가 근로계약을 맺은 사용자는 경비용역업체이지, 관리소장이 아니다. 노동부도 이 점을 인지하고 있다. 노동부 서울강남지청 관계자는 “법률상 직장 내 괴롭힘을 적용할 수 없더라도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권고 등 행정지도를 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런 빈틈을 이유로 경비노동자 등 하도급 노동자의 갑질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사용자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감시직 승인 취소될까 노동부는 이곳 경비노동자의 노동 실태 전반도 감독하고 있다. 이들은 24시간 맞교대로 일하면서 급여는 최저임금에 맞춰져 있다. 이렇게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이유는 ‘감시·단속직’의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감시·단속직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상한, 휴게, 수당 등 주요 조항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대표적인 감시직이 바로 경비노동자이다. 지난 3월 17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의 경비초소 모습. 앞서 이 아파트에서 일하던 경비노동자가 관리책임자의 ‘갑질’ 의혹을 담은 유서를 남기고 사망했다. / 정희완 기자 박씨가 일하는 아파트도 과거 노동부로부터 감시직 승인을 받은 상태다. 그러나 현재 감시직 승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승인 기준은 심신의 피로가 근로기준법을 적용해야 할 정도인지 여부다. 또 2021년 10월부터 휴게시설 설치와 휴게시간 보장 등의 조건이 신설됐다. 사업장에는 별도의 휴게시설을 마련하는 게 원칙이다. 휴게시설에는 적정한 실내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냉난방 시설을 갖춰야 하고, 유해물질이나 소음에 노출되지 않아야 한다. 야간에 수면 등을 취할 때 몸을 눕힐 수 있는 충분한 공간도 확보해야 한다. 다만 충분한 휴게 공간과 시설이 마련된 경우에는 별도의 장소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그런데 이 아파트에는 경비노동자가 ‘쉴 수 있는’ 변변한 휴게실이 없다. 지하에 휴게실 같은 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쉴 환경은 아니라는 얘기다. 경비노동자 A씨는 “이곳은 석면이 떨어지고 쾨쾨한 냄새가 나서 쉴 수가 없다. 말만 휴게실”이라고 말했다. 경비노동자 B씨도 “지하에 창고 같은 공간에서 식사만 한다. 여긴 휴게실이 아니다”라며 “휴게시간에는 그냥 경비초소에서 쉰다”고 했다. 또 “야간에도 초소에서 잔다”고 B씨는 말했다. 실제 비좁은 초소에는 작은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폭도 좁고 길이도 짧은 편이다. 고시원처럼 침대 끝부분은 책상 아래 놓여 있다. 휴게시설 미설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해당한다. 감시직 승인이 취소되면 경비노동자들은 주 40시간(최대 52시간), 유급주휴일, 연장·휴일 근로수당 등을 받을 수 있어 임금이 대폭 상승한다. 다만 입주민 입장에선 관리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반작용으로 경비원 인원 감축 등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는 뜻이다. 경비노동자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남우근 한국비정규센터 정책연구위원의 말이다. “감시직이 취소되면 인력을 줄이는 등 문제 해결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어 조심스럽기는 하다. 그렇다고 문제를 덮을 순 없다. 노동부가 감시직 요건을 엄격하게 판단해 취소해야 할 사안이면 취소해야 한다. 인건비가 오르지 않거나 인상 폭을 최소화하도록 야간근무 등 불필요한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방식으로 근무체계를 개편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제 서울시가 설립한 서울노동권익센터는 2021~2022년 두 차례 근무체계 개편 무료 컨설팅을 진행했다. 경비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임금을 유지하면서, 입주민은 관리비 상승의 부담도 덜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노동부는 2021년 8월부터 비슷한 취지의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올해도 이르면 4월부터 사업 진행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근로감독을 통해 감시직 승인 요건의 충족 여부를 점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이 때문에 승인의 유효기간을 설정하는 방안이 추진되기도 했다.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1년 8월 감단직 승인을 3년마다 받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동부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이상한 자술서·동의서 박씨가 일한 아파트는 지난해 12월 경비용역업체가 변경되면서 4명에게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이들이 오랫동안 계약을 연장해 왔다면 ‘계약갱신기대권’이 인정될 여지도 있다. 부당해고에 해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노동부는 근로감독에서 이 부분도 살펴보고 있다. 경비노동자들은 또 올해부터 3개월 단위로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이른바 ‘초단기 쪼개기’ 계약이다. 이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경비노동자가 갑질과 열악한 처우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쉽게 해고될 수 있어 문제 제기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계약 종료 전 일괄적으로 사표를 받고도 있다. 경비노동자와 경비용역업체가 체결한 근로계약서에는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는 내용도 포함됐다. 퇴직금을 2개월 이내에 지급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조항이다. 퇴직금은 근로기준법상 14일 이내에 정산을 완료해야 한다. 또 근무를 교대할 때 앞선 근무자가 30분 동안 근무복을 벗지 않고 인계받는 근무자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내용도 ‘무임금 노동’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30분 동안 연장 근로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계약서에 첨부된 자술서와 동의서도 문제로 꼽힌다. 아파트에서 일하다가 다른 업무를 하게 됐을 때 경비용역업체에 통보하지 않으면 업체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또 휴게시간을 침해당했을 때도 미리 얘기하지 않으면 경비용역업체에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문구도 있다. 이는 사용자의 책임인 경비노동자의 합법 업무와 휴게시간 등의 준수를 경비노동자에게 떠넘기려는 포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부 서울강남지청은 같은 아파트 청소노동자의 노동 실태도 근로감독 대상에 포함했다. 지난 3월 9일 이곳에서 근무하는 70대 청소노동자가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그는 사망 전날 계약기간이 남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해고를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남우근 위원은 “이 아파트가 특별한 게 아니다. 다른 아파트단지에서도 위법하거나 부당한 노무관리 방식이 만연해 있다”라며 “이제 와서 노동부가 근로감독을 한다고 하는데, 이런 불법적 상황들에 대해선 이미 근로감독을 시행했어야 했고 잘못된 부분은 제도를 개선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 [할 말 있습니다](11)충정아파트 철거, ‘용적률 사기극’ 돼선 안 된다(2022. 06. 24 17:14)
- 2022. 06. 24 17:14 사회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에 있는 충정아파트. 김영준씨 제공 서울시는 2019년 4월 현존하는 최고(最古) 아파트 중 하나인 충정아파트를 문화시설로 전면 보존(기부채납)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충정아파트가 포함된 서울 서대문구 마포로5구역 제2지구(이하 5-2지구)의 용적률 상한을 기존의 526%에서 595%로 대폭 상향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존의 용적률에 1할 이상을 얹어주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할 정도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보편화됐으나, 정작 원형이 된 초창기의 아파트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현실을 반영해 내린 결정이었다. 특히 서대문구라는 서울 시가지 한복판에서 80년 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충정아파트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전문가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아파트가 가진 역사성과 보존의 당위성을 주장해 오고 있었다. 한국 근현대사 그 자체인 충정아파트 1937년 일본인 도요타 다네마쓰가 지은 충정아파트는 상·하수도는 물론이고, 수세식 변기와 가스·응접실, 거주민을 위한 식당 등을 갖춘 거주시설이었다. 당시로써는 ‘근대의 최첨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명 화가 김환기가 머무르기도 했던 충정아파트는 뛰어난 입지와 시설 때문에 역설적으로 다양한 주체에 의해 파란만장한 용도의 변화를 겪게 된다. 해방 직후 적산(敵産)으로 간주된 충정아파트는 미 군정이 미군숙소(트레머호텔)로 이용했다. 한국 정부에 소유권을 이전한 이후엔 ‘6형제를 잃은 아버지’라는 거짓말로 정부를 속인 한 개인이 충정아파트를 호텔로 통째로 불하받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후 1960년대에 다시 일반 아파트로 돌아온 충정아파트는 1979년 서울시의 충정로 확장 과정에서 전면부가 헐려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됐다. 충정아파트에 새겨진 이력은 단순히 오래된 아파트의 차원을 넘어 질곡의 한국 근현대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도시환경정비사업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구의회 의견 청취·의결 과정에서도, 충정아파트의 가치와 보존의 당위성은 인정받았다. 2020년 9월 열린 서울 서대문구의회 재정건설위원회에서는 서울시가 제안하고 5-2지구 추진위가 수립한 정비계획 변경(안)에 대해 충정아파트 유지·보수 계획 구체화 등의 수정 의견 반영을 전제로 전원 찬성 의결이 내려졌다. 당시의 의사록에서는 충정아파트의 보존과 활용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들이 확인된다. 하지만 충정아파트의 보존 계획은 마지막 관문인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2021년 8월에 열린 도계위는 5-2지구의 정비계획 변경(안)에 대해 보류 결정을 내렸다. 그로부터 10개월이 흐른 지난 6월 15일 재상정이 이뤄졌으나 결과는 전면 보존이 아닌 완전 철거였다. 1962년 5월, 전면부가 헐려나가기 이전의 서울 충정아파트. 석지훈(연세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씨 제공 철거 결정을 담은 서울시 도계위의 심의 결과가 확정되자마자, 언론에서는 이 소식을 앞다퉈 보도했다. 그중에는 ‘박원순표 흔적 남기기 사업의 종말’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가 있는 한편, 충정아파트의 역사성을 재조명하는 보도도 관찰됐다. 5-2지구가 충정아파트의 전면 보존을 조건으로 기존 용적률의 1할을 상회하는 인센티브를 받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내용은 찾기 어려웠다. 지난 6월 16일 서울시에 문의한 결과, “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충정아파트의 철거 결정만을 내렸을 뿐이며 5-2지구 추진위가 추후 제시하는 정비계획 수정안에 충정아파트를 대신하는 면적의 문화시설 기부채납이 이뤄진다면 용적률의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만약 5-2지구의 정비사업이 이대로 추진된다면, 3년 전 충정아파트의 전면 보존(기부채납)을 전제로 부여된 용적률 인센티브가 충정아파트의 전면 철거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셈이다. 건물을 남겨 활용하는 것과 제아무리 바닥에 표식을 남긴다 한들 철거해 공터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도시와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후자를 전면 보존이라고 간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단지 충정아파트와 같은 면적의 문화시설을 새로 지어서 기부채납한다는 이유만으로, 당초 충정아파트의 전면 보존을 전제로 부여했던 용적률 인센티브를 서울시가 철회하지 않는다면 이는 문화재를 인질로 삼은 ‘용적률 사기극’이라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오세훈 시정으로 넘어오면서 바뀐 태도 충정아파트가 이런 사례의 처음은 아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아파트,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아파트의 재건축 사업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한 동 남기기’ 사업 또한 충정아파트와 유사한 용적률 인센티브 문제를 안고 있다. 박원순 전 시장의 재임기 동안 서울시에서는 ‘근현대 유산의 미래유산화 기본구상’(2012), ‘2025 서울시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 매뉴얼’(2015) 등의 수립을 통해 정비사업 추진 시 흔적 남기기 시설의 기부채납 인정, 용적률 인센티브 5% 부여 및 해당 기부채납 시설의 용적률 산입 제외와 같은 구체적인 근현대 문화유산 보존 및 활용 방안을 제도화했다. 반포주공아파트와 개포주공아파트에서 이뤄진 ‘한 동 남기기’ 또한 해당 주거동을 상가·문화시설로 리뉴얼하는 대신, 용적률 상향 인센티브를 부여받는 것은 이미 확정된 상황이었다. 오세훈 시정으로 넘어오면서부터 서울시의 태도가 바뀌었다. 2021년 12월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주거동의 완전 철거 안건이 상정됐다. 서울시와 강남구는 조합을 상대로 흔적 남기기 사업의 백지화를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 내내 이미 부여된 용적률 인센티브에 대한 서울시의 공식적인 언급은 없었다. 이를 지적하는 보도 또한 찾아보기 어렵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1년 4월의 보궐선거 당선 직후부터 새로운 시정 슬로건으로 ‘다시 뛰는 공정도시 서울’을 내걸었다. 문화재 보존과 용적률 인센티브를 둘러싸고 지금의 서울시가 보여주는 태도는 ‘공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만약 충정아파트와 반포·개포주공아파트의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지금과 같이 계속한다면 대표적인 ‘불공정’ 사례로 도시사(史)에 길이 남게 될지도 모른다. 과연 이것이 ‘공정도시 서울’이 추구하는 서울의 미래상이었는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 할 말 있습니다
- [아세안 기업열전](18)프리미엄 아파트로… 베트남서 우뚝 선 ‘대원’(2022. 02. 04 15:48)
- 2022. 02. 04 15:48 국제
- 베트남 호찌민 한복판 빈탄호수 뷰를 가진 아파트, 신도시 중심부 지하철 역사 앞의 36층 주상복합 건물은 럭셔리 주거공간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모두 한국기업 대원이 건설했고, 칸타빌(Cantavil)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빈탄호수 옆 칸타빌 혼까우(Cantavil Hon Cau)는 2006년 1㎡당 3000달러로 분양 당시 베트남 최고가에 전량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한국기업이 베트남에서 최초로 시행과 시공을 모두 맡아 분양한 안푸 칸타빌 / 대원 제공 한국 건설업체들의 해외 진출은 그 역사도 오래됐고, 지역도 아시아부터 아프리카, 남아메리카까지 글로벌시장 곳곳으로 광범위하다. 대개 인프라와 대형 플랜트 위주로 공사를 추진했다. 신흥시장에서 고급 주택시장을 겨냥해 진출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 대원은 지방에서 출발한 국내 건설사로 해외시장에서 프리미엄 아파트로 성공한 거의 유일한 브랜드다. “대원의 길은 어떻게 달랐기에 이 자리에 올랐을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2000년부터 공략 시작 대원은 2000년부터 베트남 공략을 시작했다. 당초 중국을 유력한 해외공장 설립 후보지로 고민하던 대원은 베트남 경제수도 하노이 인근에 섬유 생산기지를 설립했다. 1986년 베트남이 도이모이 개혁개방 정책을 도입한 이후, 한국기업들의 러시가 이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원의 진출은 그리 빠른 편이 아니었다. 대원이 베트남을 선택한 건 봉제 분야는 낮은 생산비가 경쟁력의 핵심이기 때문이었다. 임금이 낮은 이머징 마켓으로의 진출 차원이었다. 전략은 들어맞았다. 2001년과 2002년에 설립한 대원비나(Daewon VINA)와 대원텍스타일베트남(Daewon Textile Vietnam)은 생산성과 매출, 이익률 모두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현지 사업을 운영하면서 대원은 베트남 경제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시장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음을 목격했다. 높은 경제성장률과 빠른 소득 증가는 상·중류 계층의 증가를 불러올 것이고, 이는 결국 고급 주거시설의 수요를 만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베트남 현지 부동산과 건설업 현황을 조사한 대원은 현지기업과 손잡고 대원-투덕 주택개발 합작회사와 대원-혼까우 주택개발 합작회사를 잇달아 세우고 아파트 건설에 돌입했다. 외국인 단독 투자가 어렵긴 했지만, 신흥시장 해외사업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면 현지회사와의 협력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 시기 한국 아파트 시장의 성장이 본격적으로 둔화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베트남 프로젝트 추진의 촉진제로 작용했다. 준비작업을 끝낸 대원은 2005년 호찌민 안푸지역에 아파트를 짓기 위한 첫 삽을 떴다. 안푸 칸타빌(Anphu Cantavil)은 한국기업이 베트남에서 최초로 시행과 시공을 모두 맡아 분양한 아파트였다. 이후 대원은 호찌민 내 ‘칸타빌 프리미어(Cantavil Premier)’라는 현대식 주상복합 아파트, 빈탄호수 옆의 ‘칸타빌 혼카우’ 건설을 비롯해 관광지로 유명한 다낭 다푹(Da Phuc) 신도시 개발에 뛰어들었다. 주택시장에서 경험과 평판을 쌓은 대원은 산업시설 분야로 나아갔다. 베트남 투자 붐이 일면서 한국기업들이 생산시설을 신·증축하려는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지공장 건설수요는 대원의 또 다른 현지법인인 대원E&C가 맡았다. 2017년에는 현지 중산층을 겨냥한 대중 브랜드 ‘센텀웰스(Centum Wealth)’ 아파트를 선보였다. 전응식 대원 대표는 “지금 베트남 1인당 국민소득이 2700달러 정도로 한국의 1980년대 후반과 비슷한데, 한국에서 일어났던 소득 증가, 주택 수요 확대, 신도시 개발 등의 메가트렌드가 여기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베트남은 사업 기회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예상대로 베트남 전역에서 개발이 한창이다. 부동산 개발과 함께 대원은 베트남 내수시장을 목표로 스타트업과 협업을 통해 신규 테크 사업에 투자하는 업무에 관심이 많다. 글로벌 테크기업의 상승세와 스타트업 열풍은 베트남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대원은 호찌민에 퍼블릭오피스 1호점을 성공적으로 운영했고, 벤처투자기관인 더인벤션랩과 함께 베트남 진출 스타트업 투자와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협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미 공유주방서비스와 휴대전화 수리업체, 병원 등이 베트남에 진출했다. 대원이 호찌민에 현대식 주상복합 아파트로 건설한 칸타빌 프리미어 / 대원 제공 타 기업이 넘지 못한 장벽 넘어 베트남 주택건설시장에서 대원의 성공은 이례적이다. 대원이 베트남시장에서 성과를 냈다는 건 다른 한국기업들이 극복하지 못한 장벽을 이겨냈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시장 전망 분석과 접근방식 차이를 들 수 있다. 외국 기업의 베트남 현지 건설사업 참여에는 여러 법률적 제약과 복잡한 인허가 취득 절차 등 넘어야 할 산이 많기로 유명하다. 대원은 꼼꼼한 현지조사를 거쳐 현지기업과의 합작회사 건립으로 진입장벽을 넘었다. 두 번째는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장기적 관점의 전략 수립과 추진이다. 건설업계의 보이지 않는 규제까지 해결해 나가려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기업으로는 모두 비용이다. 시작부터 완공까지 10년이 넘게 걸리는 프로젝트가 흔한 베트남시장에 단기 성과만을 노리고 진출한다면 버틸 재간이 없다. 대원 창업자인 전영우 사장과 2세 전응식 대표는 대를 이어가며 베트남시장을 집중 공략했다. 중장기 비전과 전략이야말로 가족기업의 장점이다. 대원의 이런 특성은 고스란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세 번째는 시장변화에 발맞춘 사업 포트폴리오의 전환이다. 베트남 진출 이후 10년 동안 대원은 고급주택을 겨냥했다. 그후에는 중산층 맞춤 아파트와 산업체 수요 대응으로 전환을 시도했다. 호찌민을 벗어난 대도시 개발사업에 참여하면서, 신규 트렌드인 공유오피스 사업과 스타트업 투자에도 발을 담갔다. 대원의 베트남 진출 사업이 항상 성장가도를 달렸던 건 아니다. 고급주택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졌고 팬데믹이 찾아왔다. 코로나19는 베트남 건설과 부동산시장 침체를 불러왔고, 그 영향으로 대원의 베트남 현지법인도 지난해 매출액이 감소했다. 그나마 2021년 3분기 실적은 상승세를 보였다. 올해 베트남 경제성장률은 6.5%를 넘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 2022년 대원이 한국기업의 프리미엄 브랜드 파워를 현지에서 다시 한 번 펼쳐보일 수 있을까. 코로나19가 불러온 위기를 딛고 대원이 성장 질주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 아세안 기업열전
- [엄길청의 이코노베이션](3)‘신분재’로 가는 아파트(2021. 07. 23 15:04)
- 2021. 07. 23 15:04 경제
- 코로나19 악몽이 좀처럼 떠나가질 않고 있다. 정말 질기고 못내 고통스럽다. 다신 이런 생떼 같은 절망에 인류는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최근 영국 언론 ‘이코노미스트’는 정상화지수를 발표했다. 코로나19 이전의 활기를 점검하는 도시들의 회복지수인데, 주요 조사항목들이 눈길을 끈다. 외부 행인, 상점 이용, 사무실 사용, 교통 혼잡상황을 주로 조사했다. 이외에 여행, 문화 등도 있지만, 한마디로 도심의 풍경과 도시의 심장부 상태가 핵심이다. 2021년 6월 말 현재, 세계 정상화지수는 66/100이다. 코로나19가 극심했던 2020년 4월은 가장 낮은 35/100였다. 한국은 73/100으로 나왔다. 대체로 다른 나라에 비해 그래도 좀 앞선 편이다. 서울의 집값이 코로나19 이후 갑자기 부상한다. 특히 그동안 수도권에 비해 기본인프라가 좋은 편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수도권 신주거지 가격에 비해 시세가 낮던 서울 주요지역들에 의미 있는 변화가 컸다. 대표적인 지역이 마포구 아현역 주변 지역이다. 이곳은 오랫동안 분당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서울 왕십리 지역도 그렇다. 사통팔달한 이곳이 꽤 오래 평촌보다 낮은 관심권에 있었다. 여기도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강북구와 도봉구 등의 아파트 가격도 주변 수도권 신주거지에 비해 주목도가 밀리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이젠 전혀 아니다. 고소득 국가 시세 추월한 서울 아파트 한마디로 코로나19 이후에 도시입지의 가치가 혁혁하게 반영되는 현상이 뚜렷하다. 그러나 언제나 세상의 가격은 어느 정도가 있다. 그런 점에서 부동산은 시세 비교를 유의미하게 본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의 나라가 되면서 우리는 이제 유엔무역개발위원회(UNCTAD)로부터도 올해 6월부터 선진국으로 분류가 되고 있다. 한국은 장차 5만달러를 넘어 10만달러로 가야 할 몸이다. 인구가 5000만명이 넘는 대형국가로 5만달러를 넘어 10만달러를 향하는 나라는 지금 미국이 유일이다. 그 외의 5만~10만달러 권역은 대개는 작은 나라들이고, 오래전부터 상공업에 능한 나라들이다. 그런데 주요 선진국들의 수도의 집값은 요즘 서울시세에 비해 결코 높다고 할 수가 없다. 결국 보기에 따라 지금 서울 집값은 다소 일시적인 거품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 pixabay 최근 1~2년을 기준으로 보면 파리가 가장 주택 평균가격이 높은데, 60만유로쯤 된다. 우리 돈으로 한채당 약 8억원이다. 파리가 비싼 이유는 프랑스 사람보다 유럽 사람들이 더 살고 싶어하는 도시인 까닭이다. 영국 런던도 비슷한 이유로 주택 평균가격이 두 번째로 비싸다. 거의 파리 집값 수준이다. 다음은 나라가 아주 작은 룩셈부르크이고, 우리 돈으로 치면 약 7억원 내외이다. 그다음은 좀 낮아져 스웨덴의 스톡홀름, 스위스 베른 등이 50만유로 근처이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노르웨이 오슬로, 덴마크 코펜하겐, 핀란드 헬싱키, 아일랜드 더블린 등이 그 뒤를 차지한다. 이들은 일찍이 한자동맹 도시들로서 수백년을 발트해와 북해에서 서로 상공업도시로 교류하며 지낸 도시문명이 가져온 주택시장 역사의 초강자들이다, 노르웨이, 룩셈부르크는 국민소득이 10만달러 이상, 스위스는 8만달러, 덴마크는 6만달러의 엄청난 고소득의 나라인데도 주택가격은 3만달러의 수도인 서울 아파트가 요즘은 더 세다. 물론 서울도 다가구주택이나 연립주택을 포함한 전체 공동주택 시세는 아일랜드의 더블린보다 조금 낮지만, 서울 아파트는 이런 도시 중에서도 상급이다. 이런 수치는 서울의 신규아파트 공급 부족이란 근본 문제 외에도 우리 국민 사이에 평소 아파트에 대한 지나친 편애 의식이 작용함을 걱정하게 된다. 이번 아파트 시세 급등 사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지난 10년 정도 서울의 재개발·재건축 억제 시책의 부작용 요소가 크다. 그런데 요즘은 서울 아파트 공급이 부진한 동안 반사적으로 많이 생겨난 수도권 택지조성 지역의 신규아파트들이 코로나19 이후 서울의 새 아파트 선호현상의 상승파도에 같이 올랐다. 그러다 보니 이 지역에서는 도시가치 격상의 안전장치로 서울과 고속철도망 연결 민원이 국가적인 핫이슈가 됐다, 주택경제주의 올지도 몰라 주택은 가장 중요한 개인자산이고, 또 누구나 가져야 할 국민의 기본자산이다. 그런데 이런 점들이 부동산정책을 다루기 어렵게 만든다, 하나는 자유가격의 이유가 되고, 하나는 공정한 가격의 조건이 된다, 국민소득 3만달러의 나라가 되면 대체로 주택은 점점 자유가격에다 공정한 가격을 보완하게 된다. 고소득국가에서는 미국만이 비교적 자유가격이 주도하는 나라다. 한국의 미래선택은 국민이 할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변하면 주택가격은 민감하게 변하고, 이제부터 유권자 또한 이점을 아주 유념하게 될 것 같다. 어쩌면 주택경제주의가 올지도 모른다. 장차 국민소득이 향상될수록 서울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시장재도, 공공재도 아닌 ‘신분재(estate goods)’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 원래 신분(estate)이란 단어는 부동산(real estate)과 같이 연결돼 쓰인다. 유럽에서 계급사회가 작동할 때 신분을 이 단어로 사용했고, 지금은 부동산도 ‘estate’로 줄여 일반적으로 쓰인다, 만일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점점 그런 의미로 번져나가면 수도권 아파트들은 서울과의 문화, 교통, 상업, 교육, 정보화 등의 주거환경 연결기능 확장을 놓고 지역 선거철마다 쟁점화하는 ‘정치재(political goods)’의 성격을 띨 가능성도 있다. 이러다간 요즘 일상재(commodity)란 일상재는 다 주문과 배송으로 집어삼키려는 플랫폼 사업체들에게 우리나라 주택의 일상재 공급도 맡겨야 할까 보다. 아무리 봐도 저 많은 정치인의 주택공약은 참 공허하고 허접하기 짝이 없다.
- 엄길청의 이코노베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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