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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스토리]최우수의원 정성호 - 대통합민주신당 경기 양주·동두천(2008. 02. 05)
- 2008. 02. 05 정치
- 학교·군대·보호시설 인권교육 기반 마련 대통합민주신당 정성호 의원은 17대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건설교통위원회, 행정자치위원회 3개 상임위를 두루 거쳤다. 대부분 의원이 2개 상임위를 거치는 것과 비교하면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기에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정 의원은 3개 상임위에서 모두 국감 NGO 모니터단으로부터 국정감사 우수위원으로 선정됐다. 법사위 우수의원으로 선정된 것은 변호사 출신이라는 전공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의원들에 비해 불리했던 건교위와 행자위에서도 우수의원으로 선정된 것은 돋보이는 일이다. 그는 17대 국회에서 총 72건의 법안을 발의하여 28건이 통과됐다. 전체 299명 의원 중 5위권 안이다. 이는 “민생과 직결되는 좋은 법을 만들고 잘못된 법을 고치는 것”이 국회의원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라는 그의 신념 덕분이다. 그가 발의한 대표적인 법률안으로 먼저 2004년 미군공여지 주변 지역의 체계적 발전을 지원하는 ‘미군기지 공여구역 주변지역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을 들 수 있다. 반환공여지역을 환매보다 공익사업에 주로 활용토록 하고 외국인 투자지역, 외국교육기관, 첨단과학기술단지 등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이어 지난해 6월에는 동법의 일부 개정 법률안을 제출했다. 이 개정 법률안은 ▲미군기지의 오염 치유를 위한 기본 비용은 국방부가 내되 자치단체도 비용을 부담하고 ▲발전종합계획안에 포함된 개발제한구역을 풀고 대학 이전이나 공장 증설 시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외에도 학교, 군대, 보호시설 등에서의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인권교육 추진 기반을 마련하는 내용의 인권교육진흥법안, 재외국민 투표권 행사를 위한 공직선거법 및 국민투표법 개정안, 택지개발 예정지구 지정에서 공급 승인까지 절차를 단축하는 택지개발촉진법 개정안, 부당한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한 대학교원에게 재심사 기회를 부여하는 내용의 대학교원 기간제 임용 탈락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안 등이 주요 성과로 꼽힌다. 지난 4년간 정성호 의원의 활동은 ‘정책국감’과 ‘민생예산심사’로 요약할 수 있다. 정 의원은 한건주의식 폭로나 보여주기식 이벤트를 최대한 자제하려 애썼다. 그 대신 국민의 눈으로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정부 예산 낭비를 감시함으로써 합리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2007년 행자위에서는 자치행정 견제기구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지방의회의 문제점, 지자체 공로연수제의 방만 운용, 사후 검증 없는 공무국외여행제도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 조치를 권고했다. 앞서 2006년 건교위에서 활동할 때는 건교부와 주공 및 토공에 대한 국정감사를 통해 분양원가 공개를 강력히 요구하고, 부도임대주택 문제 대책 마련을 촉구하여 ‘부도 공공임대아파트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정에 기여했다. 정성호 의원은 경실련,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선정하는 우수의원뿐 아니라 국회사무처가 주관하는 ‘입법 우수의원’ 명단에도 해마다 이름을 올려 국회 안팎에서 두루 좋은 평가를 받았다.
- 표지 이야기
- [내 마음의 길]양주 회암사지(2006. 11. 28)
- 2006. 11. 28 스포츠
- 비어있으니 가득하구나 - 양주 회암사지 생각이 사라진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오로지 자연의 풍경이었다. 감히 그 정경을 두고 적멸이라 말하는 것은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적멸에 다다라본 적은 없지만 내 상상 속에 그곳은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장면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적멸은 그저 그것으로만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움직임보다 더 큰 움직임으로 남았던 것이다. 모든 움직임이 그친 적멸은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움직임일 터이니 말이다. - 이지누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 중에서 입담 좋은 유홍준 교수는 그의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어머니의 입을 빌려 폐사지를 ‘망한 절’이라 했다. ‘망한 절을 망했다 하지 않고 거기서 좋은 것을 찾아 말했으니 복 받을 일’이라고도 했다. 불자들께는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지만 어떨 때는 ‘망한 절’이 ‘흥한 절’보다 더 절답게 느껴진다. ‘장하던 금전벽우 잔재되고 남은 터’에 쑥대와 방초만이 무성하고, 빈 공간에 염불소리와 목탁소리 대신 산새소리와 낙엽 구르는 소리만 쓸쓸히 흘러 다닌다. 적멸은 아니더라도 적요하기 그지없으니, 이 폐허가 바로 가장 큰 절간인 것이다. 무학대사 부도. 양주의 회암사는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지만 지공화상에서 나옹선사, 무학대사로 이어지며 고려시대 불교를 크게 일으켰던 3대사찰의 하나였다. 조선 건국 후 억불숭유의 새로운 이데올로기 밑에서 그나마 회암사는 태조 이성계의 정신적 조언자 역할을 했던 무학대사의 존재로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 끝내 소멸의 운을 맞게 된 것은 명종 때에 이르러서였다. 파국의 전야는 외려 화려했다. 불심이 두터웠던 문정대비(중종의 비, 명종의 어머니)의 신임을 얻은 허응당 보우대사는 회암사에 머물며 불교중흥을 도모했다. 유생들의 강력한 반대 속에서도 회암사의 중창불사를 이룩한 보우는 1565년(명종 20) 4월 5일 낙성식을 겸한 성대한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열었다. 그러나 이틀 후 문정대비가 서거하니, 때를 기다려온 유생들의 빗발치는 상소로 그는 사월초파일날 제주도로 유배되어 마침내 제주목사 변협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와 함께 회암사도 불길에 휩싸여 폐사되고 말았다. 이이의 ‘논요승보우소(論妖僧普雨疏)’에서 보여지듯 조선의 유가(儒家)들에게 보우는 요승이자 적승(賊僧)이었지만, 그는 본디 수도자 본연의 자세를 지키며 종종 산천을 돌아보는 만행을 즐거움으로 삼던 ‘숨어사는 현자’였다. 그를 문정대비에게 천거한 것도 저잣거리에서 그와 어울리던 유가들이었다. 거부할 겨를도 없이 급작스레 봉은사 주지로 임명되면서 세상의 한복판으로 나간 보우는 ‘지금 내가 없으면 후세에 불법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라며 지배이데올로기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다 기꺼이 순교의 길을 갔다. 삼라만상이 모두 자기니/무엇 때문에 문밖으로 달려갈 필요가 있겠나/경계와 마음, 마음과 경계가 다른 경계 아니니/대지에 가득한 산과 강이 무엇인고/적적한 가을 멧부리에 성긴 비 지나가고/바람 앞에 푸른 풀잎 너울너울 춤을 - 보우 ‘오도송’ 중에서 화엄사지 부도(왼쪽)와 무학대사 부도 앞 쌍사자 석등. 세상과의 치열한 싸움도 끊기고 경계와 경계마저 허물어져버린 지금, 흙으로 돌아간 것과 흙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들이 모여 여기 또 다른 가람을 열었다. 그 폐허의 가람 위에 또다시 계절이 지나고, 어느 날 문득 눈이 내려쌓이면 그렇게 또 지워지는 것인지 채워지는 것인지 알 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다만 비어 있으니 가득할 뿐이다. 글·사진/유성문〈여행작가〉 rotack@lycos.co.kr ●●● 늦가을 회암사지는 1만여 평의 빈 터에 적요만이 가득하다. 봄이면 그토록 흐드러지던 벚꽃나무의 잎마저 시들고, 여기저기 흩어진 주춧돌 사이의 잡초들 또한 서리 맞아 누렇게 변해만 갈 때 회암사지는 비로소 ‘폐사지의 미학’을 완성한다. 옛 부도전이었을 법한 곳에 남은 키 큰 부도 1기와, 절이 불탄 후 새로 지은 회암사 앞 언덕바지에 자리한 지공, 나옹, 무학 3화상(和尙)의 부도와 부도비, 석등 등이 옛 회암사가 남긴 유물들이다. 특히 조선시대 부도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무학대사의 부도와 그 앞에 놓인 앙증맞은 쌍사자 석등이 눈여겨볼 만하다. 돌아오는 길에 소흘에서 고모리 쪽으로 길을 잡으면 늦가을 호숫가의 낭만적인 정취를 거쳐 국립수목원, 광릉, 봉선사 등을 차례로 둘러볼 수 있다. ●●● 가는 길 의정부 - 양주 - 덕정사거리(우회전) - 회암사지 - 소흘 - 고모리저수지 - 국립수목원(예약관람) - 광릉 - 봉선사
- 유성문의 길
- [이색 유망직업]양주 술판 '우리술' 지킴이(2003. 12. 25)
- 2003. 12. 25 경제
- 전통술 애착 없이는 오래 못 버텨전통발효술 '7-4주'로 유명한 (주)칠갑산주조(대표 박양호) 윤종림 부장(36)은 1년 내내 술에 절어 산다. 그가 술꾼(?)으로 주계(酒界)에 정식 데뷔한 지 올해로 13년이 되었으니, 13년 동안 술에 취해 산 셈이다. 술에 취해 쓰러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시제품이 나오면 그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셔 숙취가 있는지, 다음날 기분이 어떤지 체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술에 취해 '주조사'로서의 품위를 잃어버린 적이 없다. 선천적으로 술에 강한 체질도 체질이지만 주조사란 직업정신이 누구보다 확고하기 때문이다. "아마 지난 13년 동안 먹은 술이 밥보다 많을 겁니다. 술에 강한 체질도 그렇지만 우리의 전통 발효술이었기에 지금 까지 건강하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전통 발효술이 아니었다면 오래 전에 알코올중독자로 전락해 폐인이 되었을 겁니다." '신토불이'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대구가 고향인 그가 술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 충남 청양에 위치한 (주)칠갑산주조의 가족이 되면서부터다. 처음에는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다. 혈기왕성한 청년으로 전통술 주조의 달인이 되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술맛을 익히기 위해 밤샘작업을 밥 먹듯이 했다. 소주와 맥주, 양주가 판치는 우리의 술문화를 전통술로 맞서보겠다는 오기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최고의 술꾼(주조사)이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주조사가 되기 위해 주류회사에서 일한다는 말에 처음에는 친구들이 놀리더군요. '젊은 사람이 할 일도 많은데 하필 술 만드는 일이냐'고. 더군다나 맥주나 양주회사도 아니고 전통술을 만드는 곳이라고 하니 '막걸리는 실컷 먹을 수 있어 좋겠다'고 비아냥거리더라고요." 시음 위해 커피-담배는 금물 당시만 해도 전통술 하면 떠올리는 게 고작 막걸리가 전부였을 정도로 인식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윤 부장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술 개발만이 전통술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이들의 비아냥을 웃어넘겼다. "이제 세계에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술을 개발해야 할 때입니다. 전통술 말입니다." 윤 부장은 세계 시장에서 명성을 떨칠 수 있는 술은 우리 전통술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전통술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낮에는 실험실에서 술과 씨름하고 밤에는 연구서적을 10여 년 뒤적이는 주경야독 끝에 술의 생명인 '누룩'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었었다고 회고한다. "발효기술을 개발하는 것만으로 좋은 술을 만들 수는 없지요. 주당들의 입맛과 취향, 기분까지 읽을 줄 알아야 술다운 술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는 좋은 술을 개발하기 위해 항상 최상의 신체 컨디션을 유지한다. 하루에 20∼30번씩 시음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담배나 커피는 금물이다. 술은 단순한 알코올 음료가 아니라 과학과 감각이 결합한 종합예술인 셈이다. 그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통술에 대한 젊은이들의 그릇된 선입견과 체계적이지 못한 전통기법 전수이다. "일본이 백제에서 술 만드는 기술을 갖고 정종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우리를 앞서 있지요. 이젠 젊은이들의 참여가 필요한 때입니다. 직업인으로서 주조사는 한 번 도전해볼 만한 유망직업이지요. 최선을 다하면 부와 명성을 거머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술 개발을 강조하는 그는 가장 한국적인 술을 만드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말했다. 김재홍 기자 atom@kyunghyang.com
- 양주에 취해 '곤드레만드레'(2003. 09. 18)
- 2003. 09. 18 사회
- 2002년은 사상 처음으로 가계의 상품 소비 가운데 수입품 비중이 20%를 넘어선 해이다. 가계의 실질 재화(상품) 소비 중 수입품 비중(1995년 불변가격 기준)은 22.1%였다. 이렇게 된 데는 수입 양주의 역할이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 등에서 값싼 생활필수품이나 농-수산물 수입도 많이 늘었지만 IMF 환란 극복 이후 양주-골프채-외제차 등 사치 고급품 수입이 급증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양주를 얼마나 소비했을까. 관세청에 따르면 2002년 외국산 주류 수입액(관세 기준)은 3억9천8백만달러에 이른다. 이는 57억달러를 웃도는 석유 수입액의 10분의 1을 약간 밑도는 수준이다. 양주 수입 액수로 보면 위스키가 67%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포도주가 26%로 그 뒤를 잇고 있다. '화이트 스피릿'(보드카-진 등 투명한 주류)-브랜디-리큐어 등의 소비도 애호가를 중심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위스키 가운데 세계적인 브랜드인 발렌타인-조니워커-로열살루트-시바스리갈 등 영국산 상품을 유난히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2002년 우리나라의 영국산 스카치 위스키 수입액(관세 기준)은 1억7천8백만달러였다. 스페인-미국-프랑스에 이어 네번째의 수입국이다. 이밖에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더 글렌리벳-블랙 앤드 화이트-짐빔-잭 다니엘-크라운 로열 등도 애호가 사이에서는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유흥업소에서 90% 이상 소비 대한주류공업협회에 따르면 2002년 국내에서 소비된 위스키의 양은 500㎖ 기준으로 6천4백30만5천6백84병에 이른다. 하루 평균 17만 병이 소비되는 셈인다. 국민 1인당 연간 소비량은 1.4병이다. 이 중 90% 이상이 룸살롱이나 단란주점,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에서 소비된다. 관련 업계와 연구기관 등은 이 가운데 위스키의 10%는 그냥 버려지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시중 판매가로 따지면 2천억~3천억원 규모다. 2억~3억달러의 외화가 하수구로 버려지는 것이다. 한편 대한주류공업협회에서 밝힌 판매액에 따르면 2002년 맥주는 3조2천억원, 소주는 2조8천억원, 위스키는 1조5천억원이다. 국민 1인당 한 해 음주량은 소주 59병, 맥주 86병꼴이다. 매일 맥주 1천만 병, 소주 8백만 병이다. 특히 위스키는 1998년 한 해 1인당 소비량이 0.7병에서 1.4병으로 배나 늘었다. "신은 인간을 만들었다. 인간은 술을 만들었다"는 이마누엘 칸트의 말이 새삼스럽지 않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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